"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그러고 나서 그는 원망스러운 눈빛을 제게 보내며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희들은 나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듣고 흘려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겁쟁이의 이 한탄이 어째서 예리한 바늘이 되어 제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것인지요?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들 비참한 농민들에게, 이 일본인들에게 박해와 고문이라는 시련을 주시는지요? 아니, 기치지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다른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57/206


 저는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자가 통과한 부락은 모두 관리들에게 습격당하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머릿속에 의심이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관리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배교한 자들이 관리의 앞잡이로 이용된다는 것을 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배교자는 자신의 비참함과 상처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동료를 한 사람이라도 더 자신과 같은 운명 속으로 끌어넣으려고 합니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74/206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의 <침묵 沈默>에는 두 침묵이 나온다. 하느님의 침묵과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의 침묵. 로드리고 신부는 끊임없이 자신과 일본인 신자들에게 닥친 시련에 대해 기도를 드리며 탄원을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 뿐이다. 다른 한 편으로 로드리고 신부는 기치지로의 고백성사 요청에 대해 침묵한다. 계속 이어지는 기치지로의 배교(背敎)와 회개(悔改). 로드리고는 나약한 기치지로의 모습에 대해 침묵한다.


 농민들 중에 저희 종교를 불교와 비슷한 종교로 혼동하는 사람조차 상당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 자비에르 신부님조차도 통역의 실수로 처음에는 비슷한 오역을 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은 일본인은 우리가 믿는 주님을 그들이 오랫동안 믿어 온 태양의 신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73/206


  로드리고 신부는 하느님의 침묵을 '신(神)의 부재(不在)'로 해석하고 절망에 빠져든다. 자신의 스승 페레이라 신부처럼. 자신보다 앞서 일본에 들어와 배교하고 일본인이 된 페레이라 신부는 제자 로드리고 신부에게 자신의 배교를 정당화하고 자신의 길을 따를 것을 권유한다. 참된 진리인 교회의 가르침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일본의 신자들은 진정한 신자가 아니며, 교회를 통한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페레이라 신부. 그렇지만, 이러한 말이 로드리고 신부의 마음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정작 그를 움직인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일본인 신자들의 순교.


 일본인은 인간을 미화하거나 확대시킨 것을 신이라 부르고 있어. 인간과 동일한 존재를 신이라 부르지.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하나님은 아니야.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55/206


  성 자비에르 신부가 가르치신 하나님이라는 말도 일본인들이 멋대로 오오히(大日)라고 부르는 신앙으로 변해 있었어. 태양을 숭배하는 일본인에게 데우스(Deus)와 오오히는 거의 비슷한 발음이었던 거야. 그 착오를 비로소 깨닫게 된 내용의 편지를 자네는 읽지 않았던가? (p153)... 데우스와 오오히를 혼동한 일본인은 그때부터 우리의 하나님을 그들 식으로 바꾸고, 그런 다음 다른 것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어. 언어의 혼란이 없어진 뒤에도 이 굴절되고 변화된 신앙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거야. 자네가 아까 말한 포교가 가장 화려했던 시대에 가서도, 일본인들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아닌 그들이 굴절시키고 변화시킨 하나님만을 믿고 있었던 거지.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53/206


 이 나라는 늪지대야. 결국 자네도 알게 될 테지만, 이 나라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늪지대였어. 어떤 묘목이라도 그 늪지대에 심으면 뿌리가 썩고 잎이 누렇게 말라 버리지. 우리는 이 늪지대에 그리스도교라는 묘목을 심은 거야.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52/206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서 벗어나길 원하지만, 신부의 믿음으로 인해 죽어갈 수밖에 없는 이들. 이들을 바라보며 로드리고는 결심하고 바로 이 순간, 로드리고는 자신의 기도에 대한 답을 듣는다. 침묵이 깨진 것이다.


 "밝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오늘까지 내 얼굴을 밟았던 인단들과 똑같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 "그러나 당신은 유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가서 네가 할 일을 이루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너에게 성화를 밟아도 좋다고 말한 것처럼 유다에게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라고 말했던 것이다. 네 발이 아픈 것처럼 유다의 마음도 아팠을 테니까.".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94/206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고 신부에게 하느님은 어떤 존재였을까. 분노하는 하느님, 질투하는 하느님, 욥의 하느님, 요나의 하느님이 아니었을까. 죄에 대해 심판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더 큰 재산을 돌려주며, 이방인들을 회개시켜 주시는 약속의 하느님. 절대적인 교회의 아버지로서 하느님을 생각했기에 이들은 낯선 문화와 약해지는 신자들의 마음에 대해 침묵하며 배척했던 것은 아닐까. 로드리고 신부의 침묵은 이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하느님의 침묵은 선택이라는 상황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목자(牧者)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닐까. 모든 고통에서 나오는 선택을 '수고했다'며 받아들이는 마음.


 <침묵>을 통해 로드리고 신부의 침묵은 구약(舊約)의 침묵이라면, 하느님의 침묵은 신약(新約)의 침묵이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배교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성직자로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뎌야 했을 로드리고 신부. 이를 통해 그는 성직자로서 죽었지만, 믿음 안에서 참된 신앙인으로 거듭난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인간까지 그리스도는 찾아 구원하셨던 것일까? 문득 신부는 이렇게 생각했다. 악인에게는 또한 악인으로서의 강함과 아름다움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기치지로는 악인의 가치도 없다. 누더기처럼 어딘지 더러울 뿐이다. 불쾌감을 누르며 신부는 고해성사의 마지막 기도를 외우고 습관에 따라서 "평안히 쉬어라"라고 중얼거렸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20/206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나 불평이나 원망을 늘어놓기 위해서다. 신부로서 그것은 굴욕이며 수치였다.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 위해 있는 것이지 결코 원망을 듣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시련의 날에 악창에 걸린 욥이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_ 엔도 슈사쿠, <침묵> , p97/206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17세기 일본교회를 배경으로 신앙(神仰)의 문제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선교를 둘러싼 기존 사회와의 갈등과 신앙문제를 다루는 작품 속에서 한국 가톨릭 교회역시 19세기 박해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했기에, <침묵>은 보다 의미있게 다가온다. 로드리고 신부의 인간적인 고민과 함께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를 생각하게 된다. 윤지충(尹持忠) 바오로와 권상연(權尙然) 야고보 등이 제사를 거부하고 부모의 신주를 불태우며 4대 박해로 이어지는 한국 가톨릭교회 순교사 속에서 북경교회에서 교리(敎理) 해석을 좀 더 유연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천주실의 天主實義>의 저자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처럼 동양문화의 천(天)과 하느님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유연성이 있었더라면, 조선교회와 일본교회는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릴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이와 함께, 영화 <미션 MIssion>에서 보여지듯 신부들은 초대교회와 같은 신앙공동체를 낯선 곳에서 펼치려 하지만, 결국 제국주의의 첨병에 설 수 밖에 없었던 가슴아픈 역사 속에서 로드리고 신부의 기도에 대한 응답에 빠른 응답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결말이었을까라는 의문도 함께 던져본다.


  번역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갈무리 하려 한다. 사실, <침묵>은 예전에 바오로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읽고, 이번에 홍성사에서 출간된 책으로 다시 읽었다. 책은 잘 읽히는 편이지만, 용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불만을 갖는다.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내용이라면 번역도 가톨릭에 맞게 하는 편이 자연스러운데, 개신교식으로 번역된 부분은 낯설게 다가왔다. 가톨릭 전례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침묵>을 영화화한 <사일런스 Silence>가 있다는 것을 이웃분이신 레삭매냐님의 소개로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직 보진 못했지만,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Charles Scorses, 1942 ~ )의 작품이니만큼 기대가 된다. 레삭매냐님께 감사드리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일찍이 나는 당신과 같은 가톨릭 신부에게 물은 적이 있소. 부처님의 자비와 가톨릭교의 하나님의 자비는 어떻게 다르냐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에 중생이 의지하고 매달릴 수 있는 부처님의 자비, 이것을 구원이라고 일본에서는 가르치고 있소. 하지만 그 신부는 분명히 말했소. 가톨릭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그것과 다르다고 말이요. 가톨릭교의 구원이란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것뿐 아니라 신도가 가능한 한 지켜야 할 강인한 마음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보면 당신도 역시 가톨릭교의 가르침을 이 일본이라는 늪지대 안에서 어느 틈엔가 잘못 인식해 버린 것이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190/206


 첨탑을 가진 건물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곳에 교회가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저 진흙과 나무 조각을 반죽해서 만든 가난한 움막 속에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신도들은, 어쩌면 자기들에게 성체성사를 주고 자신들의 고해를 들어주고 아이들에게 세례를 줄 사제를 굶주린 듯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선교사나 사제들이 모두 추방당한 이 광야에서 이제 그들에게 생명수를 가져다줄 사람은 이 황혼의 섬에 있는 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주님이시여! 당신께서 만드신 것은 모두 선이요, 당신이 계시는 집은 이처럼 아름답습니다. _ 엔도 슈사쿠, <침묵> , p7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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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5-07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7 20:52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이하라 2022-05-07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7 20:53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thkang1001 2022-05-07 1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7 20:55   좋아요 1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그레이스 2022-05-08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2-05-08 12:13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thkang1001 2022-05-08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8 12:14   좋아요 0 | URL
^^:) 다소 흐린 날이지만, 좋은 일요일 오후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5-08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2관왕이시군요.
더더욱 축하드리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8 21:16   좋아요 0 | URL
네 이번 달에는 운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얄라얄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