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 연주하기 위해 거리를 둘 것. 이것이 굴드의 미학이다... 피아노 자신과도 거리를 둘 것. 그는 녹음이 있기 전 며칠 동안 자신의 피아노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피아노는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로 연주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연주하는 것의 정신적 형상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의 손가락의 속박 사이에 일종의 투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손가락의 속박에서 우리가 해방된다. 형상이 "그 개념의 순수성으로부터 한눈을 팔아 피아노에 부딪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p99)


피아노(Piano)


'작곡가는 책상에 않아 작곡하는 사람과 건반앞에서 작곡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 림스키코르사코프 (Nikolai Rimsky-Korsakov, 1844 ~ 1908) -


'피아노는 명연주를 위한 악기일 뿐만 아니라 탐사 기구, 음악적 실체와의 접촉수단이다.' - 차이코프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 ~ 1893) - 


'피아노는 누가 치든 어느 정도 "만들어진" 소리가 납니다. 피아니스트는 이 기계적인 연주를 뛰어넘어 음표들이 노래하게 해야 해요.... 피아노는 두 가지의 필요에 부응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악기에요. 우선은 탐색의 악기라는 쓰임새가 있죠. 우리는 그 유용성 때문에 피아노를 씁니다. 그러면서도 피아노는 독주악기, 비르투오소의 악기죠. 그 아름다움 때문에 쓰는 악기도 하단 말이에요. 작곡가는 피아노 건반을 휘저으면서 다성음악의 구성요서들을 발견합니다. 건축가가 종이에 설계도를 그리듯 작곡가는 피아노로 교향악을 구상할 수 있어요.'(p112)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 ~ 1791)


'피아노는 모차르트에게 쓰임 받는 악기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쳤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모차르트의 초기 작품들, 그러니까 그의 어린 시절 작품들은 모두 하프시코드를 염두에 두고 쓰였죠. 하지만 만 15세부터는 피아노와 친숙해져서 일상적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p114) ... 모차르트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서 얼마나 깊은 행복을 느꼈을까요! 타그린씨, <환상곡 C단조> 도입부를 기억합니까? (타그린) 제가 여덟 살 때에는 그 곡이 피아노의 위대함과 고결함 그 자체였죠.'(p115)


리스트(Franz Liszt, 1811 ~ 1886)와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 ~ 1849)


'피아노 제작자들이 이 악기를 최신식으로 개량한 바로 그 시점에 리스트와 쇼팽이 출현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리스트와 쇼팽이 각자 페달을 새롭게 발견했다면... 쇼팽의 음표 하나하나가 피아노를 노래하게 만드는 이유를 이해하는데 그 점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특히 <녹턴 C# 단조>는 선생님이 방금 말씀하신 페달의 실질적 활용 가능성에서 탄생한 변화를 아주 잘 보여주죠.'(p116)



초여름날이 느껴지는  6월 첫 주말이네요. 비가 없어 다소 건조한 날이지만, 청명한 일요일 오전입니다. 피아노 연주곡과 함께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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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4 12: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굴드는 비범해요. 피아노 연주를 오랫동안 해도, 몇 달 동안 피아노와 떨어져 있으면 연주 감각이 잃어버려요. 제가 어렸을 때 3년 동안 피아노 학원을 다녔어요. 집에 전자 키보드가 있어서 학원 갔다가 집에 돌아보면 피아노 교본의 곡을 연습했어요. IMF가 왔을 때, 피아노 학원 다니는 것을 그만뒀어요. 학원을 그만뒀어도 생각날 때마다 전자 키보드를 쳤어요. 중학생 되고 나니까 피아노 연주의 재미를 잃어버렸어요. 그때부터 연주 감각도 잃기 시작했어요.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은데, 피아노에 대한 관심을 책에 몰빵했으니 다시 배우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6-04 12:51   좋아요 3 | URL
cyrus님께서도 피아노를 배우셨군요. ^^: 저도 어린 시절 <체르니 40번>까지 쳤던 기억이 나네요.. 피아노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연습해도 선생님께 많이 혼나기만 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요.. 당시 피아노와 태권도를 함께 배웠었는데, 태권도가 더 멋있어 보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피아노를 잘 치는 것이 태권도를 잘
하는 것보다 제 삶에 더 유용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cyrus님의 ‘손이 굳는다‘는 말을 누구보다 잘 실감하는 1인입니다.^^

2017-06-04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4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6-06 0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작곡가들은 악기를 만지며 얼마나 황홀경에 빠져들었을지 제가 늘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죠. 다시 안 태어나고 싶지만 혹여라도 태어나면 음악가가 되고 싶을 정도로ㅎ;

겨울호랑이 2017-06-06 10:39   좋아요 1 | URL
AgalmA님은 음악을 하셔도 잘 하셨을듯. 사실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왠지 악기 하나씩을 취미로 하실 것 같다는 편견이 제겐 있네요... ㅋ

. 2017-06-08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도 예전에 어떻게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쳤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지금은 악보 봐도 뭐라고 써져있는지 모를겁니다.. 체르니..ㅎㅎ 오랜만에 들어봅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17-06-08 19:32   좋아요 1 | URL
^^: 저는 요즘 캐스터네츠로 바꿨습니다.ㅋ

. 2017-06-08 19:35   좋아요 0 | URL
캐스터네츠..ㅎㅎ 그 또한 추억의 악기네요..ㅎㅎ 템버린,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가 삼총사였나요..ㅎㅎ
 

 

<신과 함께>는 주호민 작가가 그린 웹툰을 출판한 책이다. 주로 제주 지역 민간 설화를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해석하여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기존의 리뷰 작성 방식은  만화책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적절치 않은 방식이라 생각되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본다. <신과 함께>에서 다루고 있는 설화 중 주요한 몇몇 인물에 대해 <살아 있는 한국 신화>에 수록된 원전(原典)의 내용과 저자인 신동흔 박사의 설화 해설을 옮겨 볼 계획이다. 결론 부분에 다소의 스포가 있지만, <신과 함께>의 많은 내용이 작자 창작이라는 점과  설화들 다수가 '해피엔딩'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독서에 큰 방해는 안되리라 생각된다.


 1. 천지왕과 수명장자, 대별왕과 소별왕, 태초에 싸움이 있었다

 

[그림] 대별왕과 소별왕(왼쪽부터)


'수명장자가 도끼로 머리를 깨라고 하는 뜻밖의 상황에서 천지왕은 수명장자 머리에 씌웠던 두건을 벗겨서 돌아선다. 천지왕은 왜 그냥 돌아선 것일까?... 인간 세상의 일에 대해 신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을 제한하는 사고가 거기 담겨있음을 본다. 인간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신이 달려와서 그를 쳐 죽인다든가 하는 것은 한국 신화의 사고 방식이 아니다.'(p44)


  '소별왕이 수명장자를 징치하고 세상의 질서를 잡은 것은 원시적 삶에서 문명적 삶으로 나아온 역사적 과정의 신화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별왕(또는 미륵)의 존재다. 본질을 꿰뚫는 지혜와 생명을 살려내는 능력을 함께 지녔으면서도 이 세상을 책임질 수 없었던 진짜 능력자 말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저승이라 부르는 또 다른 세상에서 사람들의 빛이 되었다.(p47)... 소별왕에게 이승을 넘기고 저승으로 떠나간 대별왕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구원과 희망의 존재가 된다. 그 구원은 저세상에서의 일이지만 이 세상에서의 구원을 향해서도 열려 있다.'(p48)


[그림] 저승 삼차사 : 해원맥, 강림도령, 이덕춘(왼쪽부터)


 2. 저승 삼차사 : 백년해골을 모신 사만이와 저승 삼차사


 '명신손님처럼 멀리 낯선 땅에 깃들어 있으면서 긴 여행을 통해 이 땅을 찾아오는 신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어둠의 신 저승사자다. 그들은 저 멀리 저승 황천에 살면서 인간 세상으로 훌쩍 건너와서는 수명이 다한 사람들을, 또는 신의 노여움을 산 사람들을 왈칵 붙잡아서 아득한 어둠의 땅으로 데려간다.'(p134)


 '잠깐 저승사자 이야기를 해보자면, 염라대왕 명을 받고 사람의 영혼을 거두러 오는 이 어둠의 사자는 셋이 함께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삼차사"라는 말이 보편화되었을 정도다. 삼차사를 명차지 차사와 복차지 차사, 녹명차지 차사라고 말하고 있는데, 다른 자료에서는 천황차사와 지황차사, 인황차사라고도 하고, 저승차사 이승차사 부왕차사라고도 하며, 일직사자와 월직사자, 이원사자(또는 강림차사)라고도 한다. 세 사자에게는 각기 해원맥과 이덕춘, 강림도령이라는 이름이 붙이기도 한다.' (p150)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초상에 임하여 저승사자를 위한 상을 차리는 풍속이 이어져 왔다. 혹시라도 저승사자들이 마음을 돌려 목숨을 살려주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죽은 이를 편안하게 데려가주기를 기원하는 행위였다. 떠나는 이에 대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함으로써 아쉬움과 서글픔을 달래고자 했던 바, 그러한 마음의 표시를 미신이라고 폄하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신이, 죽은 자와와 산 자가, 그리고 산 자와 산 자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p154)


 3. 용사 강림 : 염라왕을 잡으러 저승으로 간 용사 강림


 '이름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강림도령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차사다. 본래 이승의 차사였는데 능력을 인정받아 저승의 차사가 되었다.'(p443)


 '이 신화를 관통하는 기본 요소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다. 죽을 운명을 탐지하고 그것을 회피하려다가 결국은 운명에 맞닥뜨리는 버물왕 삼형제의 역정이 그러하며 억울한 죽음이 원수의 자식으로의 환생과 재죽음으로 이어지는 서사도 그러하다. 과양생이 각시가 김치원에게 요구한 것도 생사 문제의 해명이었으며, 강림이 염마왕을 찾아 저승길을 넘나드는 것 역시 생사의 경계를 오간 자취에 해당한다.'(p478)


[그림] 할락궁이, 황우양씨, 막막부인(왼쪽부터)


 4. 할락궁이 : 신비의 꽃세상서 천꽃밭 찾아간 할락궁이


 '신비한 꽃의 세상을 우리는 한 편의 본풀이 신화를 통해 제대로 만나볼 수 있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신비의 꽃들이 가득한 꽃밭이 있으니, 그 이름은 "서천꽃밭"이다. 그 꽃밭을 주재하는 신의 이름은 할락궁이(또는 한락궁이).'(p184)


 '이 이야기의 신화적 재탄생의 핵심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바로 서천꽃밭의 상상력에 있다. 사람을 웃기고 울리며 죽이고 살리는 신비의 꽃들이 가득 차 있는 꽃밭. 그 꽃밭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하면 저 너머 또다른 세상이었다.(p201)... 서천꽃밭이 꽃이 표상하는 생사와 고락은 이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 및 행로와 맥이 통한다. 이 신화 속의 사라도령과 원강아미, 할락궁이는 생과 사가 엇갈리는 경계 속에서 누구보다 큰 비애를 경험하는 존재들이다.'(p203)  


 '사라도령과 원강아미는 삶과 죽음을 경계로 갈라져야 하는 운명에 직면한다. 온몸으로 그 운명에 맞서보지만 마침내 남는 것은 회한과 절망이었다... 할락궁이는 그야말로 사무치는 원한과 분노의 화신이었다.(p203)... 할락궁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사의 경계에 놓인 채로 누구보다 크고 뜨겁게 희비의 쌍곡선을 경험한 그였다. 그러니 그는 세상 누구보다 밝은 거울이 된다.'(p205)


 5. 황우양씨와 막막부인 : 시험에 대처하는 황우양씨와 막막부인


 '<성주풀이>는 가신(家神)의 내력을 풀어낸 신화이다. 부부가 함께 가정에 깃들어서 아내는 집터의 신이 되고 남편은 집의 신이 되어 집안을 수호해주게 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p416)... 이 신화의 서사적 맥락은 한 가정의 평화가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가 회복되는 과정을 기본 줄기로 삼고 있다.(p417)... 이 부부의 동선에서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바로 "믿음"이다. 겉으로 내놓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이어져 있다.'(p419)


 '황우양씨와 집의 신인 성주신이 되고 막막부인이 집터의 신인 지신이 되는 것도 의미심장한 면이 있다. 겉으로 눈에 보이는 화려함은 당연히 "집"의 몫이다. 하지만 집보다 더 중요한 것이 터다. 터가 좋아야 집이 잘되는 법이다. 집은 허물어져도 터는 영원히 남는다.'(p422)


[그림] 여산부인, 녹두생이, 노일저대(왼쪽부터)


 6. 조왕신 여산부인과 측간신 노일저대 


 '전체적으로 인물간의 대립 관계가 매우 극적으로 부각되어 있는 것이 이 신화의 특징이 된다.(p577)... 노일저대가 "배설"의 장소인 뒷간의 신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정확히 들어맞아서 오히려 놀랍다. 배설에 대한 본능적 욕구란 인간의 삶에서 사라질 수 없는 요소이다. 배설하기 때문에 인간이다. 그리고 그 배설을 통해 생명이 자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의 어둡고 추한 부분이지만, 또한 그를 위한 자리가 필요하다. 노일저대에게 측도부인이라는 신직이 부여되는 것은 이러한 삶의 이치가 신화적으로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p580)


 7. 불운의 신 지장


 '이름만 보면 "지장보살"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 신은 "지장이 많다" 할 때의 지장에 가까운 존재다. 살 煞이 끼었다거나 사 邪가 둘렸다 할 때의 부정한 그 무엇이 지장이다.(p588) ... 빛 속의 신과 그늘 속의 신을 갈라본다면 지장은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그늘 가운데도 가장 어둡고 차가운 쪽에 자리 잡은 신이 될 것이다. 그러한 존재를 관심의 대상으로 여기고 신령한 의례의 대상으로 삼아서 한 편의 덩그런 신화를 전승해온 것이 지난 시절의 민중들이었다.'(p593)

 

 

<신과 함께>에 나오는 신 神 의 모습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차라리 낯설기까지 하다. 미남  美男, 미녀 美女의 모습으로 인간 위에 군림하는 그리스 신과는 달리 우리 신의 모습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며 우리 이웃들의 모습이다.


 '멋지고 아름다우며 강령한 힘을 가진 신, 인간과 전혀 다른 차원의 전능한 신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신들이 우월한 능력으로 인간의 삶을 지켜준다면 참 고맙고 편안한 일 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간 신화는 왜 이렇게 굳이 남선비와 노일저대 같은 누추하고 험한 존재들을 신으로 삼는 것일까. 이는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성이 다른 데 있지 않고 그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p581)


  <살아 있는 한국 신화>의 저자 신동흔 교수는 신성 神性을 우리 자신 안에서 발견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신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의 주요 신들이 태양신, 바다의 신, 달의 여신 등 멀리 떨어진 존재인 반면, 우리 민화에는  집을 지켜주는 가택신,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 대문을 지켜주는 문왕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 그리스 신화에서 신은 누구나 될 수 있지 않다. 신들은 하늘과 맞닿은 올림푸스 산에서  '불멸 不滅'의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그들만의 삶을 누린다. 인간으로서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신들의 피가 섞여 '반인반신 半人半神'의 영웅으로 살아가는 정도가 최선일 뿐 대부분, '필멸 必滅'의 존재인 인간은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신에 대한 두려움은 신들이 살고 있는 올림푸스 산의 모습 속에 잘 드러난다.

 

[사진] 올림푸스 산 (출처 : 나무위키)


 그리스 신들이 사는 거처가 멀리 떨어져 경외 敬畏의 대상인 올림푸스산이라면, 우리네 신들(산신령)이 사는 산은 우리 주면에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우리 앞 산, 뒷산이다. 엄마가 떡을 팔고 집에 오다가 호랑이를 만나기도 하는 곳. 우리 근처에 우리의 신들은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들은 결코 먼 존재가 아니었다. 민간설화가 많이 남아있는 제주의 오름을 보면 우리 '신들의 공간'을 느끼게 된다.

[사진] 제주 오름 (출처 : http://jejulover.tistory.com/24)


 신화(myth) 神話라고 하면 그리스 아프로디테가 바리데기 공주보다 더 익숙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신화를 읽다보면 그리스 신화에 없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아마 오랜 세월 우리 선조들이 느꼈던 그런 감정이 아닐까. 우리는 그러한 감정을 우리 신화를 통해 느낀다. 바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잠시나마 시간을 내서 <신과 함께>와 <살아 있는 한국 신화>를 통해 따뜻함을 느끼고 우리 삶을 충전하는 것 또한 삶을 살아가는 작은 지혜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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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7-06-02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잡이라는 티비 프로그램 보는데 주호민 나와서 반가웠어요.
저는 저승편 3권만 본 것 같은데, 영화로도 만들어진다죠?^^

겨울호랑이 2017-06-02 17:54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올 여름에 영화 개봉한다고 하던데, 캐스팅도 하정우, 이정재, 차태현, 주지훈 등이 나온다고 하니 기대되네요.^^:

2017-06-02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2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마천 2017-06-03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의 위력이 강한 곳에서 신들이 함께 머물려 인간을 돌봅니다. 일본도 비슷해요. 신과 함께 대단한 웹툰이라고 들었는데 제주에 뿌리를 두었군요. 오늘도 새로운 지식 나눔. 호랑이님 화이팅 ^^

겨울호랑이 2017-06-03 13:4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사마천님 말씀 들으니 그리스에 올림푸스산이 있다면, 일본에는 후지산이 있음을 생각하게 되네요^^: 그래서 일본을 ‘신의 나라‘라 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내용의 만화라 사마천님께서 편하게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2017-06-03 14: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寒 氷 저승편에서 봤던 한빙지옥이 떠오르네요..
타인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 자를 심판하는 지옥..
마음이 얼어붙은 적도, 타인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 적도 있기 때문에..

겨울호랑이 2017-06-03 14:53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저승편에서 7가지 지옥이 떠오르네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AgalmA 2017-06-03 2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이 이 글 쓰셔서 더 어울림요ㅎ ˝비나이다 비나이다 겨울호랑이님께 비나이다˝~ ˝에비~ 겨울호랑이님이 잡아 가신다!˝~ ˝만나면 반갑다고 곶감곶감~˝
(내 귀에 굿청장치)

겨울호랑이 2017-06-03 20:44   좋아요 2 | URL
ㅋㅋ 이런.. 졸지에 산신령 졸개 호랑이가 되버렸네요 ㅋㅋ

. 2017-06-08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일 기억이 남는 신화는 단군신화입니다.. 예전에 만화로도 재미있게 봤습니드.. 호랑이는 사람이 못 되고 곰은 사람이 되고.. 생각해보면 곰이 오히려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동물이 사람이 되어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요?

겨울호랑이 2017-06-08 19:54   좋아요 1 | URL
^^: 저도 인간인지라 잘 모르겠네요. 인간이 새의 날개, 호랑이 이빨 등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자신이 없는 것을 동경하는 것은 아닐까요? 큰 머리같은...
 
사통 (한정보급판) - 오천 년 중국사에서 가장 탁월한 역사서 사통
유지기 지음, 오항녕 옮김 / 역사비평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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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통 史通>은 당나라 역사학자 유지기(劉知機, 661 ~ 721)가 저술한 '역사 歷史'에 관한 책이다. 내편 內編 10권 36편, 외편 外編 10권 13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통>은 내편에서는 사관 史官으로서 역사를 어떻게 기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외편에서는  과거 사료 특히, 사마천(司馬遷, BC 145? ~ BC86?)의 <사기 史記>, 좌구명(左丘明, BC 556 ~ BC451)의 <춘추좌전 春秋左傳>, 반고(班固, 32 ~ 92)의 <한서 漢書> 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다.


  역자 오항녕 교수의 말에 따르면 <사통>은 '동양의 역사란 무엇인가?'로서 의미를 가진다. 이번 리뷰를 통해 중국 역사서의 서술과 역사관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유지기가 생각하는 동양의 역사는 무엇일까? 역사는  '불후의 사적을 남기기 위한 인간의 기록'이다. 그리고, 역사 기록자인 사관은 이를 충실하게 기록할 의무가 있다.

 

 '위로 제왕으로부터 아래로 보통 사람들까지, 또 가깝게는 조정의 관리로부터 멀게는 산림에 묻혀 숨어 있는 사람까지, 누구나 조바심을 내면서 공적이나 명성을 열심히 추구한다. 이는 왜인가? 불후의 사적 事績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불후의 사적이라고 부르는가? 바로 역사서에 이름이 남는 일이다.'(p597)


 유지기는 <사통>의 내편 14편에서 22편에 이르기까지 사관들의 역사서술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4. 칭위 稱謂 : 호칭 사용의 정확성


 '칭위'는 사람 인물을 기재할 때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기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유지기는 사관이 주관적인 판단으로 기재한 일관성 없는 호칭을 비판한다.

 

 '옛날부터 쭉 살펴보면 명칭을 정하는 방법은 한결같지 않았으며, 인정과 도리에 따라 만들어졌기에 본래 정해진 기준이 없었다.(p260)... 자신의 마음 속에서 애증이 생긴 나머지 제멋대로 명칭을 부여하고 다시 그것을 삭제하는 것도 합당한 원칙 없이 자신의 붓끝에서 나왔으니, 이 같은 역사서는 내용도 결코 기준이 될 수 없고 각각의 편명도 해괴할 뿐이다.(p262)... 사론 한 마디, 한 구절은 주의를 기울여 올바르게 작성해야 한다(p264)... 어떤 이름을 버리고 채택하는 방식에 변함없는 규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근대의 역사서에 대체로 이러한 잘못이 많이 보인다.(p265)'


15. 채찬 採撰 : 사료 수집의 적절성


 '채찬'에서 저자는 동일한 사실에 대한 다른 여러 견해가 생길 수 있음을 전제한다. 그러면서 사관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비판적 판단을 통해 역사서에 이를 기재할 것을 요구한다.


 '대체로 동일한 사실을 기록해도 다른 견해가 생기는 이유는 아마 말하는 사람마다 이거다 저거다 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쓰는 사람들 역시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p280)... 그러므로 역사를 저술하는 사람은, 길거리에서 듣고 말하는 사실이 사리에 어긋날 수 있으며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가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p281)... 아아! 떠나간 사람들은 아득한 구천에 있어 두 번 다시 살아날 수 없는데, 한 번 역사가가 잘못함으로써 그들에게 가해진 비방이나 칭송은 멀리 천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그러므로 학자라면 이상한 내용이나 의심스런 사실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다루어야 할 것이다.'(p282)


16. 재문 載文 : 문장 인용의 주의점

 

 '재문'에서는 문장 인용 시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저자는 간략하게 사실만을 기술하여 후세에서 객관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판단할 수 있도록 기술할 것을 사관들에게 요구한다.


 '위진魏晉 이후에는 모든 문장이 잘못된 쪽으로 부화뇌동하게 되었다. 그 문제점을 잘 헤아려 논해보면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거짓 설정(허설 虛設)이고, 둘째 얼굴이 두껍다(후안 厚顔)는 것이고, 셋째 남의 손을 빌리는 것(가수 假手)이고, 넷째 자기모순(자려 自戾)이고, 다섯째 분별없이 한 가지 기준으로 개괄하는 것(일개 一槪)이다.'(p290)


 '지금 역사를 저술하면서 문장을 수록할 때 내실 없이 화려하기만 한 것들은 버리고, 반면 바르고 실질적인 것들은 잘 모은다면 아무리 문장이나 꾸미는 작은 재주밖에 없는 사람이라도 바른 길이 무엇인지 알고 옮겨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p301)


17. 보주 補注 : 주석의 득실과 우열


 '보주'에서는 역사가들이 주석을 붙였을 때 보다 신중하게 살펴 기재할 것을 요구한다. 역사가들이 신중하지 않게 작성한 주석은 후세에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에 신중을 기해 작성되어야 한다. 


 '대체로 역사를 편찬하고 거기에 주석을 덧붙이는 경우, 다른 사람의 기록을 통해 사실을 설명하기도 하고 스스로 의견을 내기도 하는데, 기록은 한이 없고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믿고 따를 만한 하나의 학설이나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모범을 만들기 어렵다. 무릇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상세히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p311)


18. 인습 因習 : 인습의 오류와 병폐


 '인습'에서는 사관들이 과거 역사서의 잘못된 점을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고쳐나갈 것을 강조한다. 


 '아아! 예로부터 두루 살펴보면 이 같은 종류의 실수가 매우 많았으니, 지워야 하는데 지우지 않은 것이 어찌 단지 갈홍의 이름뿐이겠는가. 어찌 이런 일로 해서 홀로 비웃음 섞인 꾸짖음을 자초하는가. 역사를 편찬하는 사람이 사건을 상세히 판별하고, 그것을 정밀하게 서술하여 한 구석을 보면 나머지 세 구석을 판단할 수 있고, 지나간 것을 보고 앞으로 올 것을 알 수 있다면 아마 큰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p325)


19. 읍리 邑里 : 출신지 기록의 오류


 역사가 흐르면서 지명(地名)은 계속 변화되어 왔다. 사관들이 이것을 일관성있게 기술하지 않으면 후세에 많은 혼돈이 생길 수 있으니, '읍리'에서는 이것을 바로 잡을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잘못은 모두 누적된 버릇이 계속 전해지면서 차츰 습속을 이뤘던 데서 생겼으니, 미혹되었으면서도 고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함께 도모하기는 어렵지만, 만들어진 뒤에는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천 년 동안 따르면서 그대로 고사로 삼았는데, 하루아침에 바로잡으려고 하면 반드시 반대에 부딪칠 것이다.'(p335)


20. 언어 言語 : 언어 표현의 사실성


 사관이 역사를 기록할 때는 당시의 상황을 마치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기술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기록을 남겨야 잘된 역사 서술이라 할 수 있다.


  '대개 정치를 잘하는 자는 사람을 차별하여 다스리지 않기 때문에 풍속이 정밀하든 거칠든 누구나 그 교화를 입을 수 있다. 역사 서술을 잘하는 자는 일을 가려서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이 아름답든 추하든 모두 후세에 전해질 수 있다. 사실에 전혀 오류가 없고 언어도 분명 진실에 가깝다면 훌륭한 옛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먹다 남은 술지게미를 얻는 데 그치겠는가.'(p352)


21. 부사 浮詞 : 어쭙지 않은 말과 과장


 '부사'에서는 화려한 수식어 등은 들어내고 간략하게 표현할 것은 요청한다. 사족 蛇足이 될만한 말은 빼고, 핵심적인 내용만 서술할 것을 요청한다.


 '말에 일정한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또한 이것인지 저것인지 결정이 되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가 일단 한마디 하면, 역사서에는 그에  대한 두세 가지 다른 평가가 생기는 법이다. 번잡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올바른 도리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쓰면 쓸수록 보는 사람이 혼란스러워진다.'(p362)


 '대개 오리 다리가 짧다고 다른 것을 이어 붙이면 괴로워지는 법이고, 역사서의 문장이 간략하다고 다른 말을 덧붙이면 오히려 누가 된다. 그러니 선대 역사가의 기록에 무언가를 더하고 빼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p367)


22. 서사 敍事 : 서사의 방법과 유의점


 '서사'에서는 사관이 역사 서술 시 유념해야할 점을 말한다. 역사서는 결국 개별 문장들의 집합이므로, 문장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문장을 잘 쓴다는 것은 핵심적인 내용을 최대한 간략하게 담는다는 것이며, 사관들은 이를 염두에 두고 사실을 기술해야 한다.


  '무릇 훌륭한 국사 國史란 서사가 정교해야 하는데, 서사가 정교하다는 것은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담아대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니, 간략하다는 한마디가 담고 있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p379)


 '대개 사실을 서술하는 방법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재능과 행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둘째는 사건의 시말만 기록하는 것이다. 셋째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전모를 알 수 있게 하는 경우가 있다. 넷째는 저자의 평론을 빌려 저절로 드러나게 하는 경우이다.'(p381)


 '서사 敍事라는 것도, 산만한 문장이나 불필요한 이야기를 헛되게 덧붙이고 여기저기서 끌어오지만, 반드시 핵심이 되는 내용을 취하고자 하면 결국 한마디 한 구절에 지나지 않는다.' (p387) ... 말을 기호로 표현하면 글자가 되고, 글자를 짜놓은 것이 구절이 되며, 구절이 쌓이면 한 장 章이 되고, 장이 쌓이면 편 篇이 되는데, 편목이 나누어지면 한 역사가의 견해로써 세상에 통용된다.'


 '역사에서 가장 힘써야 할 데가 분명 문장과 관련된 훈련임을 잘 알 수 있다. 오경부터 삼사에 이르기까지 그 서술은 문장만 가지고도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을 모두 전달하고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근래의 저작은 이와 다르다. 그 서술에는 헛되이 수식을 더하고, 가볍게 채색을 일삼는다.'(p403)


 서양의 역사학자 E.H. 카((Edward Hallett Carr, 1892 ~ 1982)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라고 정의했다. 과거의 사실을 현재 시점에서 끊임없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서양의 역사'라면, '동양의 역사'는 무엇일까?


  유지기는 <사통>에서 일관성있으면서도 간략한 핵심 서술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강조한 유지기의 사관 史觀은 서양의 근대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 ~ 1886)의 실증사관(實證史觀 Empirical History)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사관들은 무엇때문에 '불후의 사적'을 도모하여 애쓴 사람들의 기록을 간략하고 핵심적으로 남겼을까? 그 답은 비록 역사서는 아니지만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용비어천가 125장 (그림 출처 : http://simjeon.kr/file/yb/yb-3.htm)


 동양에서 역사란 후세에 재평가되고, 교훈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인 듯하다. 서양에서 역사란 '현재 시점에서 규정된 과거의 기록'이라면, 동양에서 역사란 '미래 시점에 해석될 수 있는 과거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유지기에게 역사는 '미래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는 아닐런지. <사통>을 보다 깊이 있게 읽기 위해서는 중국 고대 역사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사통> 자체로도 동양의 역사학자들이 추구한 역사서 집필의 방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에 비록 <사통>은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충분히 일독(一讀)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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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1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1 16: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성실한 리뷰의 양대산맥은 겨울호랑이 님과 사이러스 님이시군요. 리뷰 진국 인정합니다아 !

겨울호랑이 2017-06-01 16:15   좋아요 2 | URL
곰곰발님의 창의적인 페이퍼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이웃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2017-06-01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1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6-01 18: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한마디로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것 같은데요, 애당초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런 역사서가 과거나 현재까지 단 한번이라도 존재할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6-01 19:30   좋아요 3 | URL
^^: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아마도 그런 역사책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단어 선택에도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고 생각이 되네요..

cyrus 2017-06-01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정교과서가 폐지되지 않았으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채찬의 중요성을 배우지 못했었을 겁니다.

겨울호랑이 2017-06-01 19:33   좋아요 1 | URL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혼의 정상화‘같은 말은 감히 못했을텐데요... 지금이라도 국정교과서가 폐지되어 다행입니다.

AgalmA 2017-06-01 2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가도 역사가지만 행정가도 중요하죠. 오늘도 100년된 근대문화유산을 어떤 협의도 없이 허문 인천구청장 규탄 소식이 들리고^^;;

북다이제스터 2017-06-01 21:03   좋아요 2 | URL
jtbc 보고 계시네요. ㅋ 저도 그걸 보는 중 입이다. 아, 국정 역사교과서 얘기 나오네요. ㅎㅎ 사효나라 ㅋ

AgalmA 2017-06-01 21:06   좋아요 2 | URL
시간에 늘 쫓기니 멀티로ㅎ;
JTBC도 문제가 자주 보여 걸러 들으며 봅니다ㅎ;

북다이제스터 2017-06-01 21:10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 님 글에 객이 자꾸 글 남겨 정말 죄송히지만, 뉴스룸도 손석희도 객관적이지 않죠. ^^

겨울호랑이 2017-06-02 02:08   좋아요 1 | URL
^^: AgalmA님 말씀처럼 역사를 기록하는 이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만드는 이도 중요하지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主體)니, 우리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 생각되네요. 밤에 늦게 끝나 뒤늦게 확인하니 AgalmA님과 북다이제스터님께서 jtbc뉴스룸을 요약해 주시고, 평가까지 해주셨네요. 덕분에 뉴스시간 아끼게 되었습니다.ㅋ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2017-06-01 2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학교 다닐 때는 E.H. 카의 <역사란 무엇이가?> 가 필독서 였는데..
유지기의 <사통> 은 부끄럽게도 낯서네요..
1500년 전에 쓴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부제만으로도 그 무게감이 전해지네요

겨울호랑이 2017-06-02 02:13   좋아요 2 | URL
^^: 유지기 <사통>이 번역된 것이 2012년이니 비록 1,500년 전에 저술되었지만, 최근에 발굴된 책처럼 우리가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됩니다. 생각해보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보다 사마천의 <사기>가.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보다 유지기의 <사통>이 보다 심도있게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볼 때, 동양의 지혜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심을 좀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마천 2017-06-02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랫만에 들어본 이름이네요. 사통
이 책 까지 호랑이님 덕에 보게 됩니다
감사 ^^

겨울호랑이 2017-06-02 12:40   좋아요 1 | URL
^^: 사마천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형이상학 논고 대우고전총서 27
라이프니츠 지음, 윤선구 옮김 / 아카넷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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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이상학 논고 Discours de Metaphysique>는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의 저술 중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 <형이상학 논고>, <제일철학의 개선 및 실체의 개념에 대하여>, <자연, 실체들의 교통 및 영혼과 육체 사이의 결합에 관한 새로운 체계>, <동역학의 시범>, <자연과 은총의 이성적 원리>, <모나드론>의 7개 저술이 담겨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라이프니츠의 '실체'의 개념을 살펴보도록 하자.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가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는 철학 1명제로부터 출발한다면,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신(神)의 실존'으로부터 개별 모나드의 실존으로 내려가게 된다.


1. 완전한 실체 : 신(神)


 먼저 정리해야할 개념이 '실재성'이다. 라이프니츠는 스콜라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실재성(realitas)'과 '완전성(perfectio)'는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라이프니츠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라이프니츠는 실재성은 '모순율'과 '가능성'을 충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재성은 조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정도(精度)를 가지게 된다. 현실적 존재는 신으로서 최고의 정도를 가지는 반면, 무(無)의 정도는 '0'이 된다. '무'와 '신' 사이의 정도를 가지는 것을 우리는 '관념(觀念)'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더이상 분할할 수 없는 관념이 바로 'monad'가 된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실재성은 모순이 없는 적극적인 의미 내용이다. 모순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으므로 실재성의 첫 번째 조건은 내용이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여기에 중요한 실재성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것은 최고의 정도가 모순되지 않고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p339) -해제 中-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모든 관념들은 그 자체로 실재성을 가지고 있으며, 실재성(완전성)의 크기에 따라 존재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무한한 존재인 신(神)의 실재성은 이처럼  '가능성'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지만, 유한한 존재들은 이러한 가능성만으로 실재할 수 없다. 존재가 본질에 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신(God)만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완전한 '실체 substance'가 된다.


 '완전성이 무엇인가를 식별하는 데에 적용할 수 있는 아주 확실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를 들어 수나 도형의 본질과 같이, 최고의 정도가 불가능한 형상들 formes 또는 본성들 natures은 완전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수들 중에서 가장 큰 수(또는 모든 수의 갯수)는 모든 도형들 중에서 가장 큰 도형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모순을 포함하지만, 가장 큰 지식과 능력은 어떠한 불가능한 것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고의 무한한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 신은 형이상학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의미에서도 가장 완전하게 행위하며...'(p30) <형이상학 논고>中


 '나는 신이 행한 것은 최고로 완전한 것이 아니고 신은 훨씬 더 잘 행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는 많은 근대인들의 견해에도 동의할 수 없다.'(p34) <형이상학 논고>中


 '신이 가능하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기 위하여 단지 가능성 또는 본질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실제로 신적인 본성의 탁월한 특권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Ens a se(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다.'(p96) <형이상학 논고>中


2. 라이프니츠의 실체 : 모나드(Monad)


 라이프니츠의 실체는 '모나드(Monad 單子)'다. 이들 모나드는 단순한 실체이며, 분할 불가능한 연장과 형태가 없는 '관념'이다. 그리고, 이들 관념은 '창(窓)이 없기' 때문에 오직 개별적으로 '신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신은 그가 우주에 대하여 갖는 상이한 관점에 따라 다양한 실체들을 산출한다. 그리고 한 실체에 발생하는 것이 그들이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함이 없이 다른 모든 실체에 발생하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은 신의 중재를 통하여 모든 실체의 고유한 본질이 된다.'(p68) <형이상학 논고>中


 '우리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모나드는 복합된 것 안에 있는 단순한 실체에 다름 아니다... 복합된 것이 존재하므로 단순한 실체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분이 없는 곳에서는 연장도, 형태도 또한 분할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모나드들은 자연의 진정한 원자이고, 간단히 말하면 사물의 요소이다.'(p251) <모나드론> 中 

 

 '모나드들은 단지 한번에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있다고, 즉 그들은 단지 창조를 통해서만 생성되고 파괴를 통해서만 소멸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모나드가 어떤 다른 피조물에 의해 그의 내부에 영향을 받거나 변화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나드들은 어떤 것이 그 안으로 들어가거나 그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창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p253) <모나드론> 中

 

 이들 모나드는 주어(主語)형태로 존재하며, 이들에 대해 서술될 수 있다. 이는 '주어는 술어에 의해 설명된다'는 내용으로 정리되며,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 ~ 1970)의 기술론(descriptive theory)을 연상시킨다. 다만, 러셀이 기술론을 통해서 주어가 존재(existence)할 수 없음을 밝힌데 반해, 라이프니츠는 모나드의 속성으로서의 '기술(서술)'을 의미하는 한계를 가진다.


 '관념이나 사물의 정의로부터 도출되는 것은 그 사물에 대하여 진술될 수 있다. 존재는 신, 즉 우리가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가장 완전한 존재의 관념으로부터 도출된다. 따라서 신에 대해서 존재가 진술될 수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실제로는 단지 다음과 같은 내용만이 도출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신이 가능하다면, 이로부터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도출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정의가 실질적 정의라는 것을 또는 그것이 모순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그것을 추론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p17)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 中


 '모든 참인 진술은 사물의 본성 안에 그 근거를 갖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한 명제가 동일명제가 아닐 때, 즉 술어가 명시적으로 주어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 때, 그것은 잠재적으로 그 안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주어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술어가 그 주어에게 귀속됨을 또한 판단할 수 있도록, 주어 개념은 항상 술어 개념을 포함하여야 한다.'(p48) <형이상학 논고>中


3. 신(God)과 모나드(Monad)의 관계


 그리고, 신은 조화 가능한 모든 모나드들의 지각을 예견하고, 모나드의 지각에 상응되도록 모나드들을 배열하게 되며(예정조화설豫定調和說), 항상 최선의 것을 추구하도록 우리 의지를 규정( the best possible world)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유의지(自由意志)에 따라 선택하기 때문에 신의 뜻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신이 유한한 실체들을 전체에 순응하도록 미리 조정하여 창조하였기 때문에, 유한한 실체가 다른 실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다른 실체의 표현 정도가 감소할 때 자신의 표현정도가 증가하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다.'(p72) <형이상학 논고>中


'신은 그의 의지를 어떤 특별한 관점에서 표현하거나 모방함으로써 의지가 항상 그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추구하도록 섭리하였다. 이러한 결정을 통하여 신은 우리의 의지를 강제함이 없이, 우리 의지에 최선으로 보이는 것을 선택하도록 우리의 의지를 규정한다.'(p111) <형이상학 논고>中


  라이프니츠의 존재론은 '신(神)의 존재'로부터 개별 모나드(單子)의 속성을 밝히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의 철학은 스콜라(Schola) 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초기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354 ~ 430)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구체적으로, 라이프니츠는 실재성의 소극적 성질과 관련하여 '차가움은 뜨거움의 소극적 성질'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악(惡)을 선(善)의 결핍'으로 판단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결핍론'과 통한다.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 사용과 관련해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 신들을 닮은 모나드의 왕국을 '신국(神國)'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동저자의 <신국론>의 내용과 연결된다. 이러한 이유로, 라이프니츠 철학 이전에 기독교 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라이프니츠 철학은 존재론적인 면에서는 현대의 러셀의 '기술론'과 맞닿아 있을 만큼 시대에 앞선 철학이기도 하지만, 실체론에 있어서는 중세(中世) 기독교 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 역시 존재한다. 중세의 한계와 현대의 가능성을 그 사이에서 보여준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통해 사상(思想)의 발전(發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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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7-05-30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웅, 어려워요~--;
저는 님의 리뷰로 갈음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__)

겨울호랑이 2017-05-30 16:53   좋아요 1 | URL
제가 정리를 잘 못해서 어렵게 느끼신 듯 합니다... 쉽게 쓰려고 하는데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네요.. 다음에는 잘 정리해 보겠습니다. 양철나무꾼님 감사합니다^^:

sslmo 2017-05-30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헛~, 아닙니다~!
님은 충분히 잘 정리해주셨고,
덕분에 제가 어려워라 하는 분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습니다.
님의 것이 그렇다는게 아니라, 제가 어려워 하는 분야라는 말이었습니다.
덕분에 정리되었는걸요, 제가 완전 감사드려야 하죠~^^

연의 어린이는 더운데 잘 지내나요?^^

겨울호랑이 2017-05-30 17:04   좋아요 0 | URL
네^^: 사실 저도어려워서 여러 차례 본문 수정을 했습니다. 그래서제가 잘 이해 못해 어렵게 느끼신 듯하여 추후 수정, 보완리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연의는 하루가 다르게 쑥 커나갑니다. 이젠 제법 어린이 티가 나는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양철나무꾼님 건강에 유의하시고 하루 마무리 즐겁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5-30 2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철학 논쟁이 일정 부분 증명이 힘든 내용에 있기에 논외로 한다면, 철학 논쟁의 백미는 논리 형식에 있는 거 같습니다. 라이프니치의 형식 논리에 big jump가 ‘따라서‘ 앞뒤에 있었는지 살펴본 재미가 있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5-30 23:13   좋아요 2 | URL
라이프니츠 저술의 원문이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만연체‘로 서술된 면이 있었습니다. 제가 편집한 부분이 북다이제스터님께 논리상의 비약으로 비춰진 것은 아닌지 다소 염려가 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7-05-30 23:24   좋아요 2 | URL
‘신은 그의 의지를 어떤 특별한 관점에서 표현하거나 모방함으로써 (따라서) 의지가 항상 그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추구하도록 섭리하였다‘에서 자연스러운 자연을 창조한 신이 ‘특별함‘과 부자연스러움으로 뜻을 표출하고 섭리한다는 것이 ‘따라서‘ 앞뒤에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논리 형식 오류로 보입니다, 내용과 뜻과 상관없이요. ^^

겨울호랑이 2017-05-30 23:43   좋아요 2 | URL
제 리뷰에 누락된 부분에 대해 북다이제스터님께서 짚어주셨네요^^: 라이프니츠는 완전한 신이 자신의 의지(선의지)를 개체들에게 ‘조명‘처럼 비추며 인도하지만, 결코 개체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는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의 뜻은 ‘신국‘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개체들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에서 각각 분리되어 있으나 이들의. 두 세계의 관계 역시 신의 예정조화로 질서를 유지한다고 라이프니츠는 주장합니다만... 저 역시 깊이 와닿지는 않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 , 제 리뷰의 부족한 부분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5-30 23:44   좋아요 1 | URL
더 어려운 얘기입니다. ㅠㅠ
개체들은 자유의지가 원래 없는 존재라고 신경생리학자들이 밝혔다고 하는데...ㅠㅠ

겨울호랑이 2017-05-31 00:01   좋아요 2 | URL
네.. 우리가 ‘원자모형‘에 익숙해서 모나드를 ‘원자‘라는 개념으로 쉽게 생각하게 되는데, 모나드를 쉽게 ‘명사‘로 생각하시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되실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산소‘, ‘카이사르‘ 같은 관념이 모나드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물질적인 ‘수소‘는 연장(extensión)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나드가 아닌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만... 많이 어렵습니다..ㅜㅜ

AgalmA 2017-06-03 21:21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신경계 자유의지에 대해 강한 믿음이 있으신 거 같은데
˝우리가 자유의지를 실행하는 것은 최초의 의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발생한 후에 그것을 거부하거나, 그것에 동참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에 대한 반응에 의해서이다.(benjamin libet) p56˝ <가상계>
이런 생각은 어떠신지. 여울님 서재글에서 봤지요. http://blog.aladin.co.kr/yeoul/9347129
간혹 저는 자유의지를 신경계 우연적 충돌로 환원하는 주장에서 모든 것을 신의 주사위로 말하는 것과 동일한 느낌을 받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6-04 00:04   좋아요 1 | URL
^^: 여울님과 AgalmA님의 글을 지금 읽었네요. ‘자유의지‘라는 문제에 대해서 라이프니츠와 스콜라 철학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신‘ 은 창조의 주체로서 능동적 존재, ‘인간‘은 창조된 피조물로서 수동적 존재라는 인식이 놓여있고, 그위에서 자유의지 문제가 언급이 됩니다. 그렇게 볼때, 라이프니츠가 말한 ‘자유의지‘ 문제는 놓여진 상황에 대한 일종의 ‘대응‘ 성격이 강하다고 여겨지네요. 주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선택지 역시 제한적이었으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유의지는 일종의 ‘선택의 자유‘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능동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현대 과학 철학과는 같은 단어, 다른 의미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제 짧은 의견입니다. 북다이제스터님과 AgalmA님 그리고 여울님 덕분에 보다 깊이 생각해 수 있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일깨워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AgalmA 2017-06-03 22:15   좋아요 2 | URL
여울님도 말씀하셨지만(남의 서재에서 이거참ㅎ;..)
신경계와 자유의지는 매우 미묘한 관계입니다.
이 책 주장에 따르면, 신경계는 ‘초기 발생의 작용이자 표현이자 경향성‘이라고 할 수 있죠. 그것들은 육체에게 ‘사유의 개정‘을 요구합니다. 즉 그것들을 실행하지 않을 시 가상성으로 그냥 끝날 수 있다는 말이죠. 다시 초기 전제로 돌아가 만약 행동으로 현실계가 되었을 때 그것은 신경계의 강렬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연속적인 사고와 반응(동참, 거부)이 뒤따르게 됩니다. 이 모든 걸 신경계로 다 설명하지 못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경계로 인한 반복적 행동이 다수 있더라도 예외성(이것까지 신경계 작용으로 설명하려 들고 있지만)을 신경계의 돌연변이 증상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거죠.
저는 지금 어떤 인간적 우위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양쪽의 가능성과 의심스러움을 더 생각해봐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6-04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이 말씀하신 모나드와 연장을 전 추상성과 구체성으로 이해했는데요. 추상성이 구체성을 포괄한다고 하지만 그 추상성이 개별 구체성을 포괄한다는 것에 언제나 한계가 있단 뜻으로 보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7-06-04 00:37   좋아요 1 | URL
아갈마 님 말씀을 제가 잘 이해하지 못 했다는 전제 하에, 자유의지는 동참과 거부 행위의 사후 합리화 과정이라고 이해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7-06-04 00:36   좋아요 1 | URL
그리고 자유의지는 선택의 자유를 포함하여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하는 모든 착각 행위를 포괄하는 것 같습니다.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 은 - 순간의 꽃-


시(詩)는 압축적인 표현으로 시인과 독자가 만나는 문학이라 개인적으로 어렵게 다가오는 문학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가 시인이 의도한 바와 같은지, 내가 시인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머리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시가 가슴까지 내려가기전 머리에 맴돌다 빠져가는 느낌이 드네요. 지금껏 많은 시를 읽지 못했지만,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세계(世界)에 제가 다가가지 못하는 벽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습니다. 여러가지 장벽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장벽을 시와 함께 정리해 봅니다.


1. 언어(言語) 장벽

 

시인(詩人)이 사용하는 시어(詩語)는 의미가 함축적이고, 여러 의미를 담기도 하며, 그 자체로 리듬을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시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기도 하지만, 특히 외국 시인인 경우 보다 높은 언어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1616)의 sonnet 14의 영어원문입니다.


Not from the stars do I my judgement pluck,

And yet methinks I have astronomy,

But not to tell of good or evil luck,

Of plagues, of dearths, or season's quality;

Nor can I fortune to brief minutes tell,

Pointing to each his thunder, rain, and wind,

Or say with princes if it shall go well

By oft predict that I in heaven find.

But from thine eyes my knowledge I derive,

And, constant stars, in them I read such art

As truth and beauty shall together thrive

If from thyself to store thou wouldst convert :

or else of thee this I prognosticate,

Thy end is thruth's and beauty's doom and date. (p409)


 영문 시는 제게 외국어(外國語)라는 언어의 한계 때문인지 어렴풋하게 내용이 다가옵니다. 마음 깊이 아름다움을 느끼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래 번역시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나는 별들에게서 판단을 얻으려 하지 않노라.

그러나 내겐 점성술이 있다고 생각한다.

운의 길흉을 말하려 함도 아니요.

질병 기근 계절에 대하여 말하려 함도 아니라.

또 개개인의 생에 오는 풍우 뇌성을 

그 시각까지 예시할 수도 없고,

또는 하늘에서 자주 나타나는 전조를 보고

경사스러울 것을 왕후에게 고하려 하지도 않노라.

그러나 나는 그대의 눈으로부터 지식을 얻고,

불멸의 별 그 눈 속에서 이런 것을 읽었노라.

'그대 회심하여 자신의 공급자가 된다면,

진(眞)과 미(美)는 같이 번영하리라'고.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예언하리라.

'그대의 죽음은 진과 미의 종말이라'고.(p23)


 외국 작가의 작품인 경우 원전(原典)을 통해 보다 깊이있게 다가가고 싶지만, 지금 현재 언어적 장벽을 포함한 문화적 장벽은 제가시를 즐기게끔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2. 지식(知識) 장벽

 

 대부분의 시가 가슴을 적신다면, 어떤 시는 머리로 읽어야 하는 시도 있습니다. 이 상(李 箱, 1910 ~ 1937)의 <운동>과 같은 시가 그렇습니다.


運動(운동)


一層(일층)우에있는二層(이층)우에있는三層(삼층)우에있는屋上庭園(옥상정원)에올라서南(남)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北(북)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해서屋上庭園(옥상정원)밑에있는三層(삼층)밑에있는二層(이층)밑에있는一層(일층)으로내려간즉東(동)쪽으로솟아오른太陽(태양)이西(서)쪽에떨어지고東(동)쪽으로솟아올라西(서)쪽에떨어지고東(동)쪽으로솟아올라西(서)쪽에떨어지고東(동)쪽으로솟아올라하늘한복판에와있기때문에時計(시계)를꺼내본즉서기는했으나時間(시간)은맞는것이지만時計(시계)는나보담도젊지 않으냐하는것보담은나는時計(시계)보다는늙지아니하였다고아무리해도믿어지는것은필시그럴것임에틀림없는고로나는時計(시계)를내동댕이쳐버리고말았다


 시 전체가 한 문장으로 연결된 이 시는 해설없이는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전집에서 설명한 시의 해설 부분을 살펴봅니다.


 '해설 : 이 작품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와 관련된다. 시적화자는 1층에서 3층 옥상을 오르내리면서 동서남북의 방향을 헤아리고 태양의 고도와 움직임의 방향을 가늠해본다. 그리고 태양이 하늘의 한복판에 와  있는 순간에 자신의 위치를 헤아려보게 된다. 공간 속에서 고도(상하), 위도(남북), 경도(동서)라는 세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다.'(p245)


  해설을 통해서 <운동>이라는 시가 물리학 법칙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먼저 시의 배경지식인 상대성(Relativity) 이론입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의 <상대성 이론> 중 시와 연관된 '시계실험'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추측이지만, 천재(天才) 이 상이 아래의 실험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관측자는 시계와 측정자를 가지고 원판 위에서 실험할 수 있다. 이 정의들은 관측에 근거한다. 이 실험에서 관측자는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실험을 시작하기 위해 원판 중앙과 모서리에 동일한 시계를 하나씩 놓았다. 이 시계들은 원판에 대해서 모두 정지해 있다.... 기준 좌표계에서 보면 모서리에 있는 시계는 원판 중앙에 있는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 원판에서 또는 일반적인 모든 중력장에서 시계가 놓인 위치에 따라 시계는 빠르게 가기도 하고 느리게 가기도 한다. 이렇기 때문에 기준 좌표계에 관해서 정지해 있는 시계를 가지고 시간의 정의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p85)


  이러한 상대적 시간 속에서 시인은 공간적 운동을 노래합니다. 작품에 대한 수리철학적 해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시(詩)는 화자의 수직운동과 태양과 시계의 회전운동을 노래한다. 태양이 양(positive)의 방향으로 운동하고 있는 동안에 시계는 그 대립인 음(negative)의 방향으로 운동한다(p215) ... 이 시의 회전운동은 태양이 동(東)에서 서(西)로 양(+)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안에 시계는 반대로 음(-)의 방향으로 회전한다. 그리고 태양이 한 바퀴 회전하는 동안에 시계는 바쁘게 2바퀴를 회전해야만 한다. 정오의 시각만이 태양과 시계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일치하는 유일한 곳이다. 또한 그곳은 화자의 시선과도 일치한다. 그러므로 3방향의 운동이 동시에 일치하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시간이 멈춰버린 것이다.'(p218)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의 교점, 태양과 시계와 화자의 교점이 시간적으로는 '정오'에서 공간적으로는 '옥상'에서 형성됩니다. '시계를꺼내본즉서기는했으나'라는 구절을 통해 시인의 시계는 정지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정지된 시계'를 통해 시간의 정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결국 화자는 쓸모없는 시계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운동 運動>의 내용인듯 합니다.(이 내용과 '자아분열'이 연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를 마음으로 느끼기 전에 겪는 이러한 언어적(또는 문화적) 장벽, 지식 장벽외에도 다른 여러 장벽이 있기에 아직 시는 제게 어려운 분야입니다. 이런 장벽에 걸려 시가 머리에서 차마 가슴까지 내려가기 전 증발해 버리고 말지만, 작가와 좀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꾸준히 한다면 언젠가는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 상의 시를 읽고 나니 문장도 괜히 길어집니다..) 앞뒤없이 시를 멀리하는 자신을 합리화시켰네요... 보다 쉬운 시(詩)도 많으니 다른 작품으로 접근하는 편이 더 나을 듯 합니다.ㅋ 


이웃 여러분, 시(poem)와 함께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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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8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8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28 17: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상의 시 한 편 읽기 위해서 이 시를 연구한 학술 논문 한 편을 먼저 읽어야합니다.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5-28 17:41   좋아요 1 | URL
그래야할 것 같네요. 많이 어렵다는 느낌이 듭니다^^

AgalmA 2017-05-28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상 시와 상대성이론을 비교한 논점이 멋집니다^^b 수학과 과학을 늘 대입해보는 겨울호랑이님 특징이죠ㅎㅎ

겨울호랑이 2017-05-28 21:46   좋아요 2 | URL
^^: 에고. 이 상 전집에 ‘상대성 이론‘이 나와있어서요... 생각해보면 꼭 고등학교 때 국/영/수를 못한 애들이 사회 나와서 국/영/수를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꼭 군대 안 다녀온 애들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경우와 마치 비슷한 것 같군요..ㅋ

AgalmA 2017-05-28 22:11   좋아요 2 | URL
영/수는 아직도 제 恨이죠ㅎ;;
음...제가 군대를 안 다녀와서 양성 병역 의무제 찬성하는 지도요ㅡ,.ㅡ 지금 가라고 한대도 가긴 갈 거라는.
다만 국가 착취 구조로 운영되는 지금 시스템이 병역 문제를 남녀 성대결로 만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5-28 22:15   좋아요 2 | URL
^^: 여성의 군 복무가 필요하다면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겠지요. 다만 현재 지상군 중심의 한국군 체제에서 여성징병제는 수용할만한 여건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평화 정착이후 단계적으로 지원제로 가야겠지요.^^:

AgalmA 2017-05-28 22:21   좋아요 2 | URL
인구 축소와 기술 발전화로 어차피 군대는 인적 자원을 줄일 수밖에 없는 수순이죠. 이미 지금 전쟁 양상도 지상군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니까요. 거의 날마다 군대내 위계적 성폭력 문제가 자주 터지니 여성 병역을 기피하게 만든다는 게 문제죠.

겨울호랑이 2017-05-28 22:26   좋아요 2 | URL
네 AgalmA님 의견에 동감합니다. 육군 위주로 운용되는 현 상황과 일본제국군의 구태를 벗은 군 제도 개혁. 그런 후 인적쇄신이 한국군의 선결과제라 생각되네요.. 군 기득권 세력 교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5-28 22:43   좋아요 1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과해야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경우, 여성은 군복무 대신 사회적 약자돌봄과 같은 대체 의무 부과가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마립간 2017-05-29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병역 의무에 대한 대체 복무는 실현 장벽이 별로 없기에 논의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여성이 병역 의무를 하지 않는 것이 선천적 이유가 더 큰지, 아니면 후천적 이유(사회적 환경)가 더 큰지 고민되지만 저는 잠정적으로 전자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5-29 11:17   좋아요 0 | URL
저도 여성의 병역 문제가 이슈가 될 가능성은 현재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향후 인공지능의 발전 등으로 ‘전투‘보다 ‘전략‘이 더 중요해지는 시점에는 이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체 능력이 전쟁 수행 능력과 직결되는 과거와 전쟁 양상이 달라진다면, 이에 따른 제도 변화도 이야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2017-05-29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30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9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30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