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월호에는 비트코인과 관련한 특별부록이 제공되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내용을 중심으로 최근 투기광풍이 불고 있는 비트코인에 대한 전망에 대한 내용을 이번 페이퍼에서 정리해봅니다.


1. 암호화폐와 비트코인


암호화폐의 한 종류인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은 암호화 프로토콜과 공개장부의 업데이트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블록체인(Block Chain)기술이라고 부른다.


'최근 투기 광풍에 휩싸이며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암호화폐는 암호화 기술로 신뢰 기반을 구축해 이른바 "제3자 신뢰 주체" 없이도 가치가 이전될 수 있는 혁신적인 수단이다. 중개자 없이 거래되려면 이중지급 문제를 극복하는 노력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를 해결한 것이 바로 공개 열쇠와 사용자 개인 열쇠(private key)로 구성된 암호화 프로토콜과 다수가 참여하는 작업증명 방식의 인증과정이다. 모두가 참여하는 공개장부의 업데이트 과정에서 누구도 손대기 어려운 거래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기존 보안 개념인 "금고와 보초" 대신 "공개와 참여" 개념을 도입한 역발상의 혁명적 사고 전환이다.(p8)'


2. 블록체인 기술


  '거대 분산 장부 시스템'인 블록체인 기술은 아직 개발 초기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섣부른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렵다. 다만, 향후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은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이끌어가는 기술로 일반에 인식되고 있고, 자칫 기술을 선점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비트코인 거래 규제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금융 분야를 중심으로 시작된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은 이제 제조업, 공공서비스 등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될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블록체인 시스템의 확장성과 안정성에 비판적인 의견도 여전히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기에는 현실적인 기술 검증이 필요해, 아직은 제약 사항이 많다.(p78)... 블록체인 기술의 본질은 신뢰성과 투명성에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지능정보 기술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융합 기술이며, 산업별 디지털 혁신 전략과 결합해서 새 정보통신기술 서비스를 탄생시킬 것이다. 대량생산기계 중심의 20세기와는 달리, 사람이 중심이 되는 21세기에 블록체인은 매우 적합한 기술이다.(p79)'


3. 비트코인 혁명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이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측면은 금융사에 의존하지 않고, 참여자 모두에게 정보가 공개되는 '개방형 구조'다. 현재 금융통화제도가 중앙은행(한국은행)과 민간은행의 통화공급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인 반면, 비트코인은 개인이 채굴(mining)을 통해 통화를 공급할 수 있고, 이러한 통화에 대한 정보를 모두와 공유하기 때문에 '참여형 경제구조'를 가능케 한다는 장점이 있다.


 '비트코인 혁명은 가능성이 무한한 역사적 혁신이다. 은행의 금융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고객군에는 단순한 기회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가장 폐쇄적인 금융 시스템에 모두가 참여하게 해주는 개방형 플랫폼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신뢰의 토대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기술이라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들을 의아케 하는 구석도 있다. 그만큼 암호화폐는 법정화폐가 대표하는 신뢰체제와 확연히 구분되는 혁명적 대안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던지는 핵심 메세지는, 단순히 기술혁신을 넘어 기술로 입증되고 생성되는 신뢰의 토대 아래 민간 주도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p9)'


[사진] 블록체인 (출처 : 매일경제)


4. 비트코인 거래소의 위험


 이와는 반대로 비트코인 거래소에도 거래 지연 위험과 거래소 관련 위험이 따른다. 실제로 얼마전 우리나라 비트코인거래소인 '유빗'이 해킹으로 인해 파산당한 사례가 있다.


 '비트코인 거래소는 두 가지 주요 위험을 안고 있다. 첫째, 거래 지연에 따른 가격 변화와 교환 실패, 사기 위험이다. 실제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폭  문제는 법정화폐의 거래소 이체 업무와 연관된다... 또 다른 주요 사안은 거래소 관련 위험이다. 소비자 보호 차원의 보안 문제와 거래소 파산의 가능성이야말로 암호화폐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위험 요인이다.(p11)'


관련기사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712191607001&code=920100


5. 비트코인과 금융 투기


[사진] 비트코인 가격 현황( 출처 : https://blockchain.info/ko/charts/market-price?timespan=all)


 비트코인은  2014년부터 1,000달러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다가 2017년에 들어 급등하여, 2017년 12월에는 최고 19,000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아 극심한 투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비정상적인 비트코인의 거래 속에서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를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프랑스의 역사가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은 그의 저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zation and Capitalism>를 통해 암스테르담 증권 시장과 투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6. 금융 투기 : 암스테르담의 증권 시장


'암스테르담에서 새로운 것이 있다면 그 거래량, 유동성, 공급성, 투기의 자유 등이다. 투기는 거의 광적으로 일어나서 투기를 위한 투기가 되었다. 이런 것을 보여주는 현상으로서 1634년 경에 네덜란드를 열광케 한 튤립 광증(tulipomanie : tulip mania)이 있는데 이때 그 자체로는 "아무 가치가 없는" 튤립 구근 하나를 "새로운 마차 1량, 회색빛 말 2마리, 마구 일체"와 바꾸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p132)'


'투기꾼은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팔기도 하고 결코 보유하지도 않을 것을 구입한다. 이것을 소위 "백색(en blanc)"매매라고 한다. 정리 기간이 되면 이런 것들은 손실 또는 이익으로 결판이 난다. 사람들은 이 작은 잔액을 결제하고 나면 이 투기 놀음은 다시 계속 된다. 또 다른 종류의 것인 프리미엄(prime) 거래는 약간 더 복잡한 종류의 것이다. 사실 주식은 장기적으로 오르게 되어 있으므로, 투기란 단기적인 움직임에 관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순간적인 가격 변동을 노리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뉴스 하나만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암스테르담의 투기의 액수가 대단히 크고 폭발적이었으며, 더구나 초기부터 그것이 상대적으로 엄청난 규모였다는 것은 여기에 대자본가만이 아니라 소시민들도 가담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중 어떤 광경은 마치 오늘날 경마의 마권 사는 모습과도 비교할 수 있으리라.!"'(p135)'


 '이러한 광경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거래소가 소액 전주(錢主), 소액 투자가의 주머니에서 어떻게 돈을 길어오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p136)'


 주식거래가 일반화되지 않은 17세기 증권시장의 모습을 브로델은 소액 투자자의 주머니에서 거래소로 돈이 옮겨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비록, 비트코인 시장에서는 거래소가 하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미미하지만, 비트코인의 가격이 폭락하는 날 소액투자자의 부(富)는 누군가에게로 아마도 이전될 것이다. 브로델과 같은 역사가가 아니더라도 많은 금융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위험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사기다. 끝이 안 좋을 것이다."(Bitcoin is a fraud. It won't end well.) - 제이미 다이먼(제이피모건체이스 JP Morgan Chase, 최고경영자 CEO) - 


 "장기적 관점에서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은 번영하겠지만, 비트코인의 가격은 무너질 것이다. 이것이 나로선 최선의 추론이다." - 케네스 로고프(美 하버드 대학 교수) -


 "진짜 거품이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다. 비트코인은 가치를 창출하는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버크셔 해서웨이 Berkshire Hathaway ,최고 경영자 CEO) - 


 "거대한 투기거품이다." (A gigantic speculative bubble.)  -누리엘 루비니 (美 뉴욕대학 교수) - 


 "비트코인은 오로지 편법의 잠재력과 관리, 감독 부재 덕분에 성공하고 있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능이 전혀 없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 (美 컬럼비아대학 교수) -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락을 계속하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규제에 대한 찬반(贊反)이 팽팽히 맞서면서, 한편에서는 '투기에 대한 규제'를 다른 한편에서는 '4차 산업 기술 보호'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개인적으로는 '기술 보호'와 '투기에 대한 규제'는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벌써 10여년도 지난 일이지만, 한때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아이템이 고가에 거래되는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온라인 게임은 IT시대의 중요한 콘텐츠였고, 이에 대한 투자로 한때 우리나라 게임이 세계적으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게임'에 대한 투자와 '게임에 사용되는 아이템'의 거래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지 않을까. 리니지와 리니지 아이템의 연장선장에서 비트코인 문제를 바라본다면, 비트코인 문제의 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을 것 같다. 


PS. 금융투기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책들이 투기와 투자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기에 여기 올려봅니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18-01-17 22: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침 오늘 오후에 서울 모 호텔에서는 ‘블록체인‘과 관련된 전문가들이 여럿 방한해서 주제 발표도 했더군요.

블록체인은 분명 유용한 기술이긴 한데, 그 기술을 활용하는데 쓰이는 중요한 수단인 ‘가상 화폐‘ 자체의 가격이 너무나 급등락해서 참으로 문제가 많은 듯합니다. 화폐야말로 ‘가치 척도‘인데, 비트코인, 이더리움, 네오 등등 수많은 가상 화폐들은 화폐 가격이 하루에서 수십 %씩 급등락을 거듭하니까 말이죠. 유시민이 비트코인 광풍을 두고 ‘바다 이야기‘에 비유했다가 혼쭐이 난 기사도 있더군요. 과학자 정재승이 유시민의 언급을 두고 아예 대놓고 ‘너무 무식한 얘기‘라고 반박도 했던데, 단적으로 이런 모습들 하나만 보더라도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두고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짐작하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제 주변에서도 이미 작년 여름부터 끊임없이 ‘비트코인 광풍‘에 대해 자주 논란을 벌이는 걸 봐오곤 했는데, 결론은 아주 단순한 듯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매우 유용한 기술이고 중요한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가상화폐 투기는 정말로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게 분명하다.˝는 사실이죠. 지금 하루 24시간 내내 거래되는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이 대략 ‘어제‘ 기준으로 700조원이라고 마침 ‘어제‘ 들었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그 사이에 바로 그 시가총액이 300조원이 공중으로 증발했더군요.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투기 광풍‘에 노출된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 경제적 약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 취약한 상태에 그대로 방치된 채 놓여 있다는 점이고, 이 문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거듭 악화일로였는데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에서조차 아직까지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거죠.(금융위원회에 ‘대책반‘이 생긴 게 며칠 안 되었죠.)

한때 엄청난 도박 광풍을 몰고 왔던 ‘바다 이야기‘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대략 300만 명쯤 생겼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투기 광풍이 단지 신용불량자만 양산한 게 아니라 엄청난 ‘가정 파괴‘까지도 이어졌을 듯하고, 그 와중에 약삭빠른 사기꾼들을 숱하게 배불리게 만들었다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심하게 얘기하면 ‘거대한 도박판‘이 벌어지는 와중에 온갖 부정과 부패와 악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는 거죠. 정부의 강력한 단속이 마침내 그걸 쓸어낼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말이죠..

가상화폐 투기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아주 큰 후유증을 겪을 게 명백해 보입니다. 이미 ‘채굴‘ 쪽에서도 ‘다단계 사기꾼들‘이 적잖이 적발되고 있고, 지금도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데다가, ‘가상화폐 매매‘ 쪽에서는 ‘채굴‘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온갖 부정과 부작용들이 난무하고 있으니까요.

댓글이 너무 길었네요. ‘투기 광풍‘에 대헤 제가 읽었던 책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찰스 P. 킨들버거가 쓴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더군요. 그런데 그 책은 일반인들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내용을 많이 다뤄서 함부로 권하기는 어려운데, 그보다 한결 재미있고 쉽게 쓰인 책 가운데 찰스 맥케이의 『대중의 미망과 광기』라는 책도 읽어볼 만하더군요.^^

겨울호랑이 2018-01-17 22:22   좋아요 0 | URL
oren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 투자의 문제로 돌리기엔 비트코인 투기 후유증이 만만찮아 보입니다...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은 이름만 들어보았는데 이미 oren님께서는 읽으셨군요. 보다 평이하게 쓰여진「대중의 미망과 광기」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oren님 좋은 책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oren 2018-01-17 22:38   좋아요 5 | URL
찰스 P.킨들버거의 책 속 구절을 정리해 놓은 게 있어서, 그 가운데 이번 ‘비트코인 투기 광풍‘과 관련해서 재음미해 볼 만한 구절들을 찾아봤습니다.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는 제가 따로 정리해 놓은 ‘요약본‘만 가끔씩 들여다볼 때가 있는데, 매번 읽을 때마다 참으로 교훈적인 이야기가 많다는 걸 거듭 느끼게 되더군요. 소제목 옆에 붙은 숫자는 ‘책 속 페이지 숫자‘입니다.^^

* * *

눈먼 자본 5

패닉과 광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최대한의 지식을 동원해 좇고 상상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는 대단한 분량이 쓰여졌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특정 시점마다 엄청난 금액의 멍청한 돈이 부지기수의 멍청한 사람들 손에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 당면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명분을 이유 삼아 이런 사람들의 돈-우리는 이 돈을 눈먼 자본(blind capital)이라고 부른다-이 주기적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불어나고 꿈틀대는 욕망에 주체를 못한다. 이 돈은 누군가가 자신을 집어 삼켜 주기를 갈망하며 ˝흘러 넘친다˝; 흘러 넘치는 돈이 누군가를 찾아내면 ‘투기‘가 벌어지고; 투기가 이 돈을 다 먹어 치우고 나면 ‘패닉‘이 발생한다.

월터 배젓, 『에드워드 기븐에 관한 소론Essay on Edward Gibbon』가운데


눈에 익은 단계들 5

나는 위기가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증권거래위원회가 있든 없든, 파탄을 몰고 올 새로운 투기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익히 눈에 익은 단계들을 밟아가며 다가오고 있다; 핵심 우량주가 붐을 일으킨 다음, 이류 종목들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이어서 장외시장에서도 투기판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새로 상장된 주식을 둘러싼 또 한 차례의 끝물 장세가 지나가면, 마침내 피할 수 없는 붕괴가 찾아올 것이다. 이 일이 언제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빌어먹을 일은,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버나드 J. 라스커(1970년 뉴욕증권거래소 회장으로 재직)
그가 1972년에 했던 말 가운데, 존 브룩스가 쓴『고고의 시절The Go-Go Years』에서 인용

돈을 버는 일이 이보다 더 수월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 64

예전에는 투기적 모험과는 거리가 멀었던 기업과 개인들 중에서도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한 소란스런 게임에 뛰어들기 시작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진다, 돈을 버는 일이 이보다 더 수월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이 든다. 지본이득을 위한 투기는 사람들을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에서 일탈시켜 ‘광기‘나 ‘거품‘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묘사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이끈다.

패닉에 대한 처방들 92

˝악마는 맨 뒤에 처진 사람을 잡아먹는 법이다(Devil take the hindmost)˝, ˝재주껏 도망쳐라(Sauve qui peut)˝, ˝맨 뒷사람이 개에 물린다(Die Letzen die Runde)˝, 이런 말들이 채닉에 대한 처방들이다. 이와 비슷한 광경은 사람들이 들어찬 극장 안에서 불이 났다고 고함칠 때의 모습이다. 연쇄편지가 연출하는 과정도 이와 닮은꼴이다. 왜냐하면 그 연쇄고리가 무한정 확장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소수의 투자자들만 가격 하락이 시작되기 전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연쇄 과정의 초반에 참가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자신들이 합리적이라고 여길 것이라고 믿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다.

튤립 광기 197

역사가 사이먼 샤마(Simon Schama)가 제공한 사례 하나를 보면, 화이트크라운 1파운드(네덜란드어로 ‘Witte Croon‘이며 일반적인 품종이어서 무게 단위로 매매되었다)에 525플로린을 양도 시점(가령 돌아오는 6월)에 완납하고, 소 네 마리를 먼저 지불하는 방식으로 거래했다. 선불 계약금 지불에 쓰인 여타 현물로는 토지, 주택, 가구, 금은제 그릇, 회화작품, 양복과 코트, 마차, 회색 점박이 말 한 쌍 등이 있었다; 그리고 희귀종 튤립인 비체로이(Viceroy) 한 그루의 가치는 양도 시점의 완납 대금 2500플로린과 함께 현물 선불금으로 밀 2라스트, 돼지 네 마리, 양 열두 마리, 포도주 2옥스헤드, 버터 4톤, 치즈 수천 파운드, 침대 한 개, 몇 가지 의류, 큼지막한 은제 컵 하나였다.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 305

부정행위는 경제가 호황기일 때 증가한다. 재산은 호황기에 만들어지며, 개인들은 부의 증식 과정에 끼어들기 위한 탐욕에 빠지고, 사기범들이 이 탐욕을 이용하려고 등장한다. 호황기에는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의 숫자가 늘어나고, 자신들을 사기범의 희생물로 제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 ˝일 분마다 한 명씩 속아 넘어간다.˝

부도덕의 극치 312

스프라그의 인용과 번역이 정확하다면, 호레이스(Horace)는 그들의 자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라; 할 수 있다면 정직하게 돈을 벌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라.˝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조나단 스위프트의 언급도 이와 마찬가지로 냉소적이다: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리고 나서 혹시 미덕이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 하라.

발자크는 마지막 한 방이라고 부를 만한 말을 남겼다: ˝가장 미덕 있다는 상인들이 당신 앞에서 가장 노골적인 자세로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말을 들려줄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나쁜 일에서 잇속을 챙겨 나온다.˝

겨울호랑이 2018-01-17 22:50   좋아요 0 | URL
^^: 킨들버거의 책은 정말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경제강대국의 흥망」도 최근 중국의 부상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시했는데, oren님께서 추천해주신 「광기, 패닉,..」역시 킨들버거의 통찰이 빛날 듯 합니다. ‘투기‘와 관련해서는 ‘왜 사람들은 폭탄돌리기를 하면서도 자기 차례에 폭탄이 터지지는 않을 것이라‘기대하는지... 참 궁금해 집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7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스크> 읽으셨네요. 반갑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1-17 22:27   좋아요 1 | URL
「리스크」로 대동단결! ㅋㅋ

북다이제스터 2018-01-17 22:31   좋아요 1 | URL
비트코인의 투기 광풍은 상대적 단기간 우려지만, 비트코인으로 장기적 순기능인 국가 소멸을 기대해 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1-17 22:39   좋아요 1 | URL
다른 한편으로 블록체인 기술로 ‘국가‘를 대체하는 ‘거대금융자본‘이 우려되기도 합니다. 이미 여러 분야로 진출한 대자본들이 국가를 초월한 경제 공동체 ‘애플나라‘, ‘아마존 공동체‘등을 만들다면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2018-01-17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雨香 2018-01-18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홍색으로 옮겨주신 말들에 백퍼 동의하고 있습니다. 1년여전부터 블록체인 등 가상화폐 관련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님도 잘 아시겠지만 경제정책의 도구로서의 화폐의 기능이 사실 더 큰 화폐의 기능이지 역할인데, 기술을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 경제정책의 도구로써의 화폐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더군요.

다만, 금본위체제가 무너진 것에 대한 경험과, 유로화를 봤을 때(개별국가는 경제정책의 도구로써의 화폐 기능을 잃어버린) 가상화폐의 시대는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어떤 분의 글을 읽었는데 우리나라 정부도 이미 4~5년 전부터 가상화폐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고,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더군요. 다만, 잠시 정치적 공백기(박근혜정권말)와 다른 나라들의 방향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더군요.

겨울호랑이 2018-01-18 07:56   좋아요 1 | URL
雨香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책수단으로서의 화폐에 대한 논의는 현시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에서 통화조절 능력을 상실했을 때 이에 대한 대안도 이제는 이야기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雨香 2018-01-18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가상화폐의 시대는 겨울호랑이님의 우려처럼 ‘거대 금융 자본‘의 시대라고 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경제는 금융 자본에 의해 움직였다고 봐야 하는데요. 사실 IT 기업들의 성장뒤에도 거대 금융 자본의 지원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기에 자금을 대 주고,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CFO나 관리자를 소개시켜줘 안정적인 성장을 지원하고 본인들은 거대 수익과 함께 영향력을 잃지 않고요, 그래서 IT와 거대금융자본이 가상화폐 결합이 이뤄진다면 .... )

겨울호랑이 2018-01-18 08:00   좋아요 1 | URL
국가의 경제권력이 사라지고, 경제권력이 금융 자본에게 넘어간다면 이후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국가/경제권 단위가 아닌 기업단위 경제 블록화가 된다면 노동/소비가 모두 대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AgalmA 2018-01-20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테일러 피어슨 <직업의 종말>은 자본의 힘이 금융->기업->개인에게 넘어가는 게 4차산업혁명의 흐름이라고 진단했죠. 비트코인도 그 예가 될 테고요.
유시민 작가처럼 이 모든 게 사기다 할 게 아니라 저는 이런 기술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정재승 박사 쪽인데요.
이 기술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플랫폼이 잘 짜여지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비트코인 거래소 파산 문제도 그런 플랫폼의 부실함 때문인 것이니까요. 아직 공부가 부족해 내부를 자세히 모르니 그림만 떠오르는 상태^^;

겨울호랑이 2018-01-20 20:2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비트코인도, 블록체인 기술도 아직은 기술개발 초기라 향후 전망을 내리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직업의 종말>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본의 힘이 ‘기업‘에서‘개인‘으로 이전되기를 바라봅니다...
 
도덕감정론 - 개역판
아담 스미스 지음, 박세일 옮김 / 비봉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의 대표작은 <국부론 The Wealth of Nations>이다. 그렇지만 그는 죽어서 자신의 묘비병으로 "도덕감정론의 저자, 여기 잠들다"라고 써 놓을 정도로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애덤 스미스가 애착을 가졌던 <도덕감정론>에 대해 이번 리뷰에서는 살펴보도록 하자.


1.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행동원리 : 동감(同感)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원리 중 하나는 '동감(同感)'이다. 동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며,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 중 특히 고통에 대해 더 생생하게 느낀다. 같은 감정이더라도 우리가 타인의 기쁨보다는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利己的 : 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天性 : nature)에는 분명 몇 가지 행동원리(principles)가 존재한다. 이 행동원리로 인하여 인간은 타인의 행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기 그 행운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행운을 얻은 타인의 행복이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민(憐憫 : pity)이나 동정심(同情心 : compassion) 또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느끼게 되는 종류의 감정이다.(p3)'


 '상상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타인이 처한 상황에 놓고 스스로 타인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상상한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방식은 마치 우리가 타인의 몸속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그와 동일한 사람이 되고, 그럼으로써 타인의 감각에 대한 어떤 관념을 형성하며, 비록 그 정도는 약하다고 하더라도, 심지어는 타인의 것과 유사한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p4)...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동류의식(同類意識 : fellow-feeling)을 느끼게 되는 원천은 바로 이것이다.(p5)'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슬픔보다는 기쁨에 더 큰 공감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숨기려 한다. 그래서, 알게된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은 그에게 큰 굴욕감을 안겨 주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공감을 통해서 타인의 고통에 위로를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태도는 매우 비인간적인 것으로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다른 이들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기본 행동 원리가 '공감'이라면, 자기 행동의 원칙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우리의 비애(悲哀)보다는 환희(歡喜)에 대해 더 많이 동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재부(財富)는 과시하고 빈궁(貧窮)은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우리가 겪는 빈곤과 고통이 폭로되는 것만큼 치욕적인 것은 없으며, 그리고 우리의 처지가 모든 인간들의 눈에 다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의 반만큼도 생각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것보다 더 굴욕적인 일은 없다.(p91)'


 '불행한 사람들에 대하여 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모욕(侮辱)은 그들의 재난(災難)을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친구의 기쁨에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단지 무례(無禮)한 행동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친구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이야기할 때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엄청나게 비인간적인 행동이다.(p16)'


2. 자기 행동의 준칙 : 공정한 방관자


[사진] 칸트(출처 : 위키백과)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 칸트 -


 애덤 스미스는 자기 행동의 판단 기준은 공정한 방관자가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처럼 노력할 것을 <도덕감정론>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준칙을 지키는 것을 저자는 <도덕감정론>에서 '시인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공정한 방관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노력하라'는  애덤 스미스의 준칙은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가 <실천이성비판 實踐理性批判,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에서 말한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개인이 공정한 방관자의 입장에서 사회 정의에 부합될 수 있도록 행위했을 때, 사회전체적으로 애덤 스미스가 추구한 미덕(美德)이 달성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가 추구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잠시 애덤 스미스의 미학(美學, Aesthetics)을 살펴보자.


 '우리가 우리의 감정과 동기에 대해 어떤 판단을 형성할 수 있건 간에, 그 판단은 항상, 타인의 판단은 실제로 어떠한가, 타인의 판단은 특정 상황에서는 어떠할까, 타인의 판단은 상상하건데 어떠해야할 것인가, 하는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준거(準據)에 관계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를 우리가 상상하는 공정한 방관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보도록 노력한다.(p210)'


 '우리가 우리를 만족시켜 주는 모든 것들, 즉 건물의 형태나 기계의 설계나 한 접시의 고기 요리의 맛을 시인한다(approve)고 표현하는 것은 언어상으로도 적절한 표현이다.(p628)'


 '미덕은 어느 한 가지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의 적절한 정도(程度)에 있다. 나는 이 적절한 정도를 정하는 천연적 및 원시적인 척도(尺度)는 동감(同感) 또는 공정한 방관자의 상응하는 감정을 그 척도로 삼아야한다고 생각한다.(p586)'


3. 아담 스미스의 미학(美學)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애서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상대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미(美)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평가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때 '절대미'에서 어느정도 떨어져 있는가를 비평기준을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미덕에 대해 말할 때도 절대미덕에 얼마만큼 근접해있는가를 통해 행위에 대한 평가를 한다. 이를 경제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최선(最善)을 대신한차선(次善)의 선택'이 될 것이고, 수학으로 표현한다면 극한(極限, limit)에서 '절대미에 무한 수렴'의 개념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결국 애덤 스미스는 '적절한 감정의 조화를 통해 절대적인 미에 가까워지려는 적절한 노력'이 아름다움을 향한 우리 사회가 나가야할 바로 지적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어떤 행위에 대하여 그것이 어느 정도의 비난이나 갈채를 받아야만 할지를 결정할 때, 우리는 항상 서로 다른 두 가지 기준을 사용한다.  첫 번째 기운은 완전한 적정성(適正性)과 완미(完美)라는 개념이다... 두 번째 기준은, 이 진선진미(盡善盡美)한 상태로부터 접근해 있는 정도 또는 떨어져 있는 정도를 기준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p39)...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상상력(想像力)에 호소하는 모든 예술작품들을 판단한다...작품을 비교하는 기준은 특정 분야의 예술이 통상 도달해 있는 탁월성(卓越性)이 된다. 그리고 그가 이 새로운 척도(尺度)에 의해 판단할 때, 그 작품은 흔히, 그것과 경쟁할 수 있는 다른 작품들 대부분보다 훨씬 더 완미에 접근해 있다는 이유로, 최고의 갈채를 받을 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p40)'


4. 애덤 스미스의 철학 체계


 이상의 논의를 정리했을 때, 우리는 일차적으로 타인의 감정에 동감을 하고, 이로 인해 그 사람으로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받게 되고, 이러한 동감과 공감이 우리 개인의 일반준칙에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이 모여서 사회전체가 보다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 논의한 철학체계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성품이나 행동을 시인(是認 : approve)할 때 느끼는 감정들은 네 가지 근원(根源)에서 나온는데, 이들은 몇 가지 점에서 서로 다르다. 첫째, 우리는 행위자의 동감(同感)에 대해 동감(同感 : sympathize)한다. 둘째, 우리는 그의 행위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의 감사하는 마음에 공감(共感 : enter into)한다. 셋째, 우리는 그의 행위가 이상의 두 가지 동감이 그것의 행동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일반준칙(一般準則)과 일치하는 것을 것을 관찰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행위는 개인이나 사회의 행복을 촉진시키는 경향을 가진 행위체계(行爲體系)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간주할 때, 그 행위들은 이러한 효용(效用)으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마치 우리가 설계가 잘된 기계에 일종의 아름다움을 귀속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p629)'


 <도덕감정론>에서는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행동원리인 '동감'과 자기 행동의 원칙인 '공정한 방관자의 입장'을 통해 사회의 미덕(美德)에 맞는 행동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전체 사회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하면서 애덤 스미스의 철학 체계를 완성시키고 있다. 이러한 틀 안에서 <국부론>의 이론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의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흔히들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를 통해 시장경제 체제를 이야기 하지만, 그 전제는 '공감하는 인간'이 시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감할 수 없는 인간'인 법(法)에 의해 인격(人格)이 부여된 '회사(company)' 특히, 대규모 자본이 시장의 주체가 되었을 때에도 완전경쟁의 시장의 논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바로 <도덕감정론>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진 물음이라 생각된다. 이제는 이러한 전제 위에서 <국부론>을 읽을 차례다. 


 PS. <도덕감정론>은 1759년에 쓰여졌고, <실천이성비판>은 1788년에 쓰여졌으니, 칸트의 정언명령이 애덤 스미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PS2. <도덕감정론>을 보다 맛있게 즐기는 법


  아담 스미스의 말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322)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Ethica Nicomachea>과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 ~ BC 43)의 <의무론 義務論>을 <도덕감정론>과 함께 읽는다면 보다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시학 詩學>도 곁들인다면 더 좋지 않을까도 생각되기에, 다음 기회에 페이퍼로 정리해 보려 한다...


 '비극이나 로망스의 가장 흥미 있는 주제는 유덕하고 대담한 왕(王)이나 왕자(王子)의 불행이다. 만약 그들이 지혜롭고 굴(屈)하지 않는 강인한 노력을 통해 그러한 불행에서 벗어나서 그들이 전에 누리던 우세(優勢)와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매우 열렬히 그리고 심지어 지나칠 정도로 찬탄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의 불행에 대해 느끼는 비애와 그들의 성공에 대해 느끼는 기쁨은 함께 결합되어, 우리가 그들의 지위와 성품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가지는 편애(偏愛)에 기인한 찬탄을 고조(高潮)시키는 것으로 보인다.(p430)'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17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8-01-17 17: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재 바탕이 흰색에 검은 글자가 되어서 읽기 편해졌습니다. 하하하하.

겨울호랑이 2018-01-17 17:03   좋아요 0 | URL
^^: 제 서재 배경이 랜덤 변환이라 이웃분들께서 가끔 읽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재 바탕을 고민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galmA 2018-01-20 19:46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의견에 동감요-,-; 사실 그동안 좀....)))

북다이제스터 2018-01-17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혹시 <도덕감정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은 없었나요?^^

사람들이 상호 애정으로 단결하여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로 하는 지지를 ‘감사와 우정, 존중의 마음으로’ 준다면, 사회는 번영할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그러한 동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회는 합의된 노고의 금전적 교환에 의해 지지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겨울호랑이 2018-01-17 17:22   좋아요 2 | URL
^^: 아마 해당되는 문구는 <국부론>에서 인용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도덕감정론> 에서 ‘미덕(美德)의 완미(完美)함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가능한 최대의 이익(利益)을촉진하도록 지도하고, 우리의 모든 저급한 감정을 인류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종속시키고, 우리 자신을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 간주하면서 우리 자신의 번영이 전체의 번영과 일치하거나 혹은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범위 내에서만 우리 자신의 번영을 추구하는 것에 존재한다.(p505)‘는 내용이 나오는데, 미덕과 관련한 아담 스미스의 논조와 연계시켜보면 아담 스미스가 ‘감사와 우정, 존중‘을 경시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혹시 제가 못 찾았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 찾게 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7 17:41   좋아요 3 | URL
스미스가 미덕을 경시했다기 보다는 미덕이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자신 편향성을 없앨 수 없기 때문에 ‘금전적 교환’에 의존한다라는 논리로 보이더라구요.

“무언가를 하려는 욕망이 우리 판단을 편향시킨다. 또한 행동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도 우리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욕망이 또다시 편향을 야기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 행동에 대해 편향되지 않는 관점을 가질 수 없다.”

이런 취지는 <국부론>에 나오나 보네요. ^^

겨울호랑이 2018-01-17 18:02   좋아요 3 | URL
^^: 아마도 「도덕감정론」이 인간 감정을 다루기에 인간의 이기심이 드러나는 경제 문제를 설명하기에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어 「국부론」을 집필한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을 유념해서 「국부론」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22 16:12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관련 내용을 찾아 정리해서 먼 댓글로 달았습니다. 하루 잘 보내시고, 시간되실 때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눈이 온다니 퇴근길 안전하게 들어가세요!

2018-01-18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0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1-18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부론에 대해서 편견만 잔뜩 갖고 있다가 이 책이 사실은 국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든 행복을 위한 책이었고 심지어 식민지 정책도 반대했다는 내용이 있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에겐 국부론 보다 도덕감정론이 ‘아담 스미스’란 이름으로 먼저 알려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8 09:47   좋아요 1 | URL
조그만 메모수첩님 말씀처럼 고전을 요약본으로만 접하게되면, 전체 논조 속에 숨어있는 저자의 사상을 온전히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저자의 대표 저작만 알려져 있는 경우도 많아 일반에 왜곡되어 알려진 사상가들이 많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 역시 그런 사상가 중 한 명인 것 같아요. 관심을 가지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AgalmA 2018-01-20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하는 인간‘ 상정을 이해는 하는데요. 진화론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허점이 생깁니다. 우리는 공동체 형성을 통하기도 했지만 차이와 경쟁을 통해서도 진화를 해 왔어요. 그러니 ‘공감하는 인간‘이라는 절대 요소만으로 사회를 구성할 수 없습니다. 위에 계신 북다이제스터님이 바로 그 부정성의 해결을 위해 ‘금전적 교환의 보상‘을 스미스가 전제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걸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결국 정치와 경제는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겨울호랑이 2018-01-20 20:07   좋아요 1 | URL
^^: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어떻게 보면 대립될 수도 있는 두 체제를 각자 정치와 경제면에서 운용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도덕감정론>은 정치적 배경을, <국부론>은 경제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조만간(?) <국부론> 리뷰에서 북다이제스터님과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내용을 함께 고려해보겠습니다.
 

2018년 1월호.

1. 직원이 뽑은 사장 :
스위스 우만티스에서 시행한 기업민주주의. 집단지성의 효율적 활용으로 인한 매출 증대. 선거 기간 중의 어수선한 분위기 등은 이에 대한 대가.

2. 2018년 금리 인상의 귀환 :
2017년 11월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부채 부담 증가. 문재인 정부의 다주택자들에 대한 규제는 향후 다주택자들의 임대사업자 전환여부에 따라 성패가 달라질 것.

3. 가사 노동 해방의 그늘 : 21세기 하인 그룹
맞벌이 가정의 증가에 따른 가사 노동의 외주화. 이에 따른 독일 내 외국인 가사 도우미의 증가.

4. 디지털 소비 욕구 절제 해야 산다
마더 교수는 개인적으로 빈둥거리며 아무 것도 안할 때나 지루할 때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당신은 최근 창밖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청소년을 본 적이 있는가? -본문 중-

5. 방탄소년단 성공 신화 분석
작은 기획사 소속 ‘흙수저 아이돌 그룹‘의 SNS 소통과 팬과의 교류로 인한 성공 신화

6. 미국 법인세 감면
법인세 인하는 결코 실물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의 해외 이전은 수익성 때문이다. 법인세는 이익이 생겨야 내는 세금이다. -본문 중-

7. 추천 경제 도서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15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5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8-01-15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 법인세 감면에 대해서 한국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군요. 좀 답답해요,,저 세금 인하는 사실 미국의 중,하위층에게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거든요. 저같은 영세민은 그 얘기 들으니 한숨만 나옵니다.

그런데 ‘맞벌이 가정의 증가에 따른 가사 노동의 외주화. 이에 따른 독일 내 외국인 가사 도우미의 증가. 향후 우리의 가정은?‘은 이해가 잘 안되는데 한국 맞벌이 가정의 증가에 따른 가사 노동의 외주화와 이에 따른 독일 내 외국인 가사 도우미의 증가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건가요?

그리고 님의 서재 바탕이 검정 색이라 저처럼 노안이 심한 사람은 좀 읽기 어렵네요~~~.^^;;;

겨울호랑이 2018-01-15 16:16   좋아요 0 | URL
사실 미국 재정수익 원천의 다수가 개인 소득세임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감세 정책은 다분히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 ‘우리 가정은?‘은 제가 메모한 내용이어서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은 내용입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삭제했습니다. 제 서재 배경는 random 변동이라 아마 내일이면 바뀔 것 같습니다. 제가 북플로 작성하다보니 확인이 미처 안된 부분도 있습니다. ^^: 라로님 감사합니다

깐도리 2018-01-15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프터 크라이시스는 읽어봐서 눈길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5 16:18   좋아요 0 | URL
깐도리님께서는 이미 읽으셨군요.. 부끄럽게도 사실 저는 위의 책 중 읽은 책이 없습니다. 깐도리님의 서평을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2018-01-15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5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5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잡지에 블록체인, 비트코인에 관한 내용은 없던가요? 놀랍게도 제 주변에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사람이 없어요. 만약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지인이 있었다면 저도 지인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을 거예요. ^^;;

겨울호랑이 2018-01-15 19:53   좋아요 0 | URL
^^: 이런이런.. cyrus님 그렇잖아도 별책부록으로 비트코인 내용이 있어 정리중이었는데, 딱 걸렸네요 ㅋㅋ

雨香 2018-01-16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코노미 인사이트 보시는 군요.. 저는 처음에 몇 번 보다가...(내용 때문이 아니라 밀려 있는 책들이 많아서요. 안 뜯은 시사인도 수두룩합니다.)
1월호 눌러보니 <최저가 경제학의 빛과 그림자>, <‘21세기 하인 계급‘>에 관심이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6 11:59   좋아요 1 | URL
^^: 저도 다음달 호 오기 전 밀려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신경제의 빛보다 그림자를 조명해 주는 기사가 많아 균형을 잡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아 구독하고 있습니다^^
 

 

'굶주린다는 것은 고통을 의미한다. 즉 불가능한 선택이 주는 고통이다. 하지만 그 이상이다... 아만다에게 굶주린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슬픔이다.(p14)... 필리핀의 어느 농가에 도착해서 우리가 처음 들은 말은 집이 누추해서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굶주린다는 것은 또한 굴욕적인 삶을 의미한다... 굶주림의 네번째 차원은 공포이다. 고통, 슬픔, 굴욕, 그리고 공포.(p15)' <굶주리는 세계> 中


 굶주린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끼니를 거르는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지속적인 굶주림으로 인해자신과 주의의 사람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과 이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비참함 또는 굶주림으로부터의 탈출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중요한 기본 과제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가령 세계에 식량이 부족하지는 않다는 역설적인 현 상황은 굶주림에 대한 문제에 복잡함을 더한다.


  '식량이 풍부한데도 굶주림이 존재하는 것은 제3세계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50년대 이래로 식량생산 증가분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인구증가율을 앞지르고 있다. 미국고등과학진흥희(AAAS)의 1997년 연구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 중 78%가 식량이 남아도는 나라에 살고 있다.(p25)' <굶주리는 세계> 中


 식량이 풍부함에도 굶주림이 존재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저명한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Jeffrey Sachs에게 빈곤의 근본적 원인은 "지리적"이다. 그의 책 <빈곤의 종식 The End of Poverty>(2005b)에서 삭스는 "지리는 숙명이다." 라고 지적하고 있다. 어느 한 나라가 만약 접근하기 어려운 입지와 질병에 걸리기 쉬운 환경, 극단적인 기후 그리고 파괴되기 쉬운 토양을 갖고 있다면, 가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발전의 사다리에 심지어 그들의 첫 발조차 올려놓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올바른 요소들 - 훌륭한 항구, 부유한 세계와의 긴밀한 접촉, 양호한 기후, 적절한 에너지원 그리고 전염병으로부터의 자유-을 갖춘 대부분의 사회는 극단적인 빈곤으로부터 해방되어 왔다.(Sachs,2005c:47)"(p33)' <현대 경제지리학 강의> 中


 제프리 삭스에게 있어 빈곤의 원인은 '지리적 문제(Geographical problem)'에서 비롯된다. '지리적 숙명'에 의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는 제프리 삭스의 주장에 따르면'굶주림'과 '빈곤'은 가난한 국가 내의 문제로 한정된다. 이러한 빈곤의 내재(內在)적 원인론과는 반대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Jean Ziegler,1934 ~)는 빈곤의 구조적 문제를 굶주림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구조적 기아"를 정의하기는 더 어려워.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끝도 없이 헤매거나, 뼈와 거죽만 남은 여자들이 불쌍한 아이를 안고 난민 캠프 앞에 길게 줄을 서는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수십만병의 아이들이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잃는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구조적 기아"에 있어.(p60)'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中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에서는 빈곤퇴치를 위한 내재적 노력이 외부의 압력(다국적 기업, 외국 정부)에 의해 좌절된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면서 제3세계의 굶주림 문제가 이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님을 뒷받침하고 있다. 


  '1970년 칠레의 인민전선은 101가지 행동강령을 발표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칠레가 처한 높은 유아사망률과 어린이 영양실조라는문제를 놓고 본다면 어쩌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소아과 의사 출신인 아옌데가 내건 이 공약이 벽에 부딪힌 것은 칠레의 농장을 장악한 네슬레가 1971년 협력거부 방침을 결정하면서부터이다. 아옌데 정부는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 정부와 네슬레를 축으로 하는 다국적기업에 의해서 고립되고, 결국 CIA와 결탁한 군인들이 대통령궁을 습격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칠레의 어린이들은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된다.(p13)'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中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는 다국적 기업에 의한 구조적인 빈곤의 문제를 제기되며 <굶주리는 세계>에서도 세계화 시대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다국적 기업임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이들 다국적 기업들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일까.


 'NAFTA 같은 무역 조약, 그리고 세계은행, IMF, WTO 같은 기구들이 새로운 지구 경제를 지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에서 진짜로 이득을 보는 것은 국가들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나 본사를 두고 다른 나라의 사무실과 공장을 관리할 수 있는 거대 다국적/초국적기업들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많은 나라의 GNP를 능가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전세계 무역의 70% 이상을 차지하면서 세계경제에서 거대한 주체로 군림하고 있다.(p271)' <굶주리는 세계> 中


 세계 경제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추구하는 바는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 ~ 1929)에 따르면 결국 '수익 창출 능력의 극대화'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수익 창출 능력은 구체적으로 '미래 현금 흐름의 현재 가치(Present Value of Future Cash Flow)'를 통해 기업 가치로 환원되고, 기업가치는 시장에서 주가의 형태로 거래된다면, 무상 분유 공급으로 시장이 축소되는 것과 같은 미래 현금 흐름을 감소시킬 어떠한 유인(誘因)도 다국적 기업을 지배하는 대주주는 원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를 저지시키려는 일련의 노력들이 세계 곳곳에서 행히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세계의 빈곤을 감소시키기 위해 어떤 해결 방안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자본 시장에서 최종적으로 협상을 벌이는 자가 자본을 구매하는 것은 장래에 이윤을 얻기 위해서이다. 즉 내용상으로 보자면 그는 나중에 또 다시 팔기 위해서 자본을 미리 사두는 것이다. 그렇게 미리 사두고자 하는 그의 계획은 그가 협상하는 자본이 앞으로 가져올 수익의 전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일정한 덩어리의 자본의 가치란 그것의 수익 창출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즉, 수학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자본의 가치란 그 수익 창출 능력의 함수이다. (p113)... 따라서 자본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란 결국 매매되고 있는 유가 증권들이 대표하는 소유 재산이 어떠한 수익 창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어림짐작으로 추측하여 그것을 자본화한 것이 된다.(p115)'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 中 


 '빈곤/굶주림'을 세계화 시대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로 정리했을 때 이에 대한 여러 해결 방안이 존재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 ~ )과 가라타니 고진(Karatani Kojin, 1941 ~ )은 세계 기구를 통한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고진이 제시한 방법은 보다 급진적인데, 빈곤이라는 문제를 국내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해결 방안을 마지막으로 제시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나는 전 지구적인 해결을 요하는 문제가 점점 더 늘어날수록, 어떤 나라가 독립적으로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논증했다. 따라서 우리는 전 지구적인 결정을 하는 기구들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구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 그 기구들이 더욱더 책임감을 느끼게끔만들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직접 선거로 구성된 입법부를 갖춘 지구 공동체에 대한 구상에 다다르게 된다.(p254)' <세계화의 윤리> 中


 '인류는 지금 긴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 환경파괴, 경제적 격차이며, 이들은 분리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p224)... 이것들은 일국(一國) 단위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각국에서 군사적 주권을 서서히 국제연합에게 양도하도록 하여, 그것을 통해 국제연합을 강화, 재편성하는 것입니다... 각국에서 이와 같이 주권의 방기가 이루어지는 것 외에 국가를 지양하는 방법은 없습니다.(p225)' <세계공화국으로> 中

 

글을 마치기 전 결을 달리하지만, 조세와 관련한 국제적 협력을 주장한 토마 피게티(Thmas Piketty, 1971 ~ )의 내용도 옮겨본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20세기에 창안되었지만 미래에도 틀림없이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만 할 사회적 국가와 누진적 소득세라는 두 가지 기본 제도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현 세기의 세계화된 금융자본주의를 다시 통제하려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개발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이상적인 수단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과 결부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될 것이다.(p617)' <21세기 자본> 中


PS.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굶주린 세계>는 주로 절대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으나, 체감 빈곤은 '상대적 빈곤'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 현실이다. 2017년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50조원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최저 임금 인상으로 사업이 어렵다고 하는 사업주들이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2018년에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다.


관련 기사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17397


 '일본, 타이완, 한국은 식량 수입과 외국인 직접투자 금지, 진정한 토지 재분배, 대규모 정부 보조, 자국 생산자들에 대한 관세 보호 등의 정책들 때문에 전후 주목할 만한 성장과 생활수준 개선을 이루어냈다. 핵심은 빈민들 -농민과 노동자-의 소득과 구매력을 증대시킴으로써, 이들이 물건을 구매하여 지역산업을 지탱하고 따라서 강력한 국내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버블업(bubble-up) 경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즉 생활수준 개선의 혜택이 바닥에서부터 경제 전반으로 침투해 상승함으로써 진정한 발전 발전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는 부유층의 순이득이 결국 빈민들에게로 "떨어질 것"(trickle down)이라는 기존의 이론-현실 속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가 힘든-과는 반대되는 것이다.(p212)'<굶주리는 세계> 中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1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1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1-11 1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통기간이 정해져 있는 식료품인 경우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40% 정도가 그냥 폐기된다고 하더군요. 이비에스 다큐에서 본 기억이... 참.. 지랄 같죠. 키겔 같은 대형 곡물 회사도 곡물 가격 떨어질까봐서 곡물을 바다에 버린다고 하죠 ? 기아에 죽어가는 인구가 엄청난다데 말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1 14:15   좋아요 2 | URL
식량 뿐 아니라 의류 회사도 제품의 가격유지를 위해 팔리지 않는 많은 제품을 불태운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우리가 지불하고 있는 제품의 가격에는 팔린 제품뿐 아니라 팔리지 않는 제품의 가격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덕분에 제품의 가격은 더 높아지게 되고, 돈이 없는 사람은 구매하지 못하고, 소비자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그런 면에서 합리적인 소비 역시 중요하게 됨을 말씀을 통해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1 2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넘 좋고 훌륭한 페이퍼 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8-01-11 22:47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추운 날 건강하게 하루 마무리하세요.
 

 장준하(張俊河, 1918 ~ 1975)의 항일(抗日) 투쟁 자서전 <돌베개>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만주군인(滿州軍人)이었던 박정희(朴正熙, 1917 ~ 1979)에 대해 궁금증이 일어나게 된다. 군인 박정희는 어떻게 탄생했고, 그의 만주군 복무시절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번 페이퍼는 이에 대해 살펴보되, 군인으로서 광복군과 만주군이라는 서로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서로 대비되는 두 인물을 직접 비교하는 방법의 효과에 대해는 이미 <영웅전>을 통해 입증된 바 있어 부족하나마 플루타르코스의 방식을 따라가 본다. 


'우리에게는 <영웅전>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비교 열전>은 23쌍의 그리스 영웅과 로마 영웅의 일생을 기술한다. 그중 19쌍은 두 사람의 성격과 업적을 비판적으로 비교하고 있다.(p6)... 플루타르코스(Ploutarchos, AD 50(?) ~ 120)는 <비교 열전>에서 그리스와 로마 영웅들의 위대한 업적들을 그리되 역사가의 시각에서 정치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 영웅들의 내면세계와 성격(ethos)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인물의 특징을 밝혀내고 있다.(p7)'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中 


1. 군(軍)입대 동기


가. <돌베개> : 집안의 불행을 대신한 지원


<돌베개>에서 저자는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일본의 요시찰인물이 된 부친을 대신하여 일본군에 자원했음을 밝히고 있다. 원치않은 일본군으로의 입대 후 저자는 광복군을 찾아 탈주하게 되며 <돌베개>를 통해 고난의 여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일인들이 가장 주목하고 또 미워하던 목사 가운데 한 분이 나의 아버님이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였다는 죄목으로 선천 宣川 신성 神聖 중학교 교직에서 축출당한 뒤에 더 계속 요시찰 인물로 늘 형사들이 뒤를 따르던 형편의 집안이었다. 나는 장남이다. 거기다 일본에서 피해 와 있다. 다른 신학교와 달리 정규대학 과정의 일본신학교 재학생이다. 학도병 지원의 자격이 부여되어 있는 처지다. 그리하여 나는 우리 집안의 불행을 내 한 몸으로 대신하고자 이른바 그 지원에 나를 맡겨버린 것이었다.(p13)' <돌베개> 中

나. <군인 박정희> : 긴 칼 차고 싶어 갔지


 반면, <군인 박정희>에서 그려내고 있는 박정희의 입대(入隊) 동기는 지극히 개인적이었다.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안정된 교편생활을 하던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만주군(滿州軍)에 자원하게 된다.


 '박정희는 당시 군국주의 하에서 최고의 권력집단이었던 군인을 어릴 때부터 동경했고, 그래서 군인이 되기 위해 만주로 갔다는 얘기다. 그와 '긴 칼'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이 있다. '"박 선생님이 만주로 떠난 지 3~4년이 지난 어느 여름방학 때 박 선생님이 긴 칼 차고 문경에 오셔서 십자거리에 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갔지요. 누런색 군복에 빨간 견장, 붉은 군모, 그리고 에리(목 칼라)에는 별이 하나 그려져 있더군요. 그리고 칼을 하나 차고 있었는데 칼끌이 땅에 닿을 정도로 길었습니다. 하숙집으로 자리를 옮긴 후 박 선생님께서는 방에 들어가지마자 문턱에 그 긴 칼을 꽂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군수, 서장, 교장을 불러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세 사람 모두 박 선생님 앞에 와서 머리 숙여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마 박 선생님을 교사시절 괴롭혔던 걸 사과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제자 이순희 증언)(p78)' <군인 박정희> 中


  '한편 박정희의 만주행 배경에 대해 이견을 펴는 사람도 있다. 만주 봉천군관학교 5기 출신이자 해방 후 육사에서는 2기생으로 같이 졸업한 송석하는 97년 필자에게 "박정희가 만주로 간 것은, 교사를 하다가 일본 육사를 가려고 했는데 그때 이미 나이가 많아 만주 군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사로 갈 계획을 하고 만주로 왔다"고 주장했다. 즉 박정희는 일본 육사 입학을 위해 만주 군관학교를 징검다리로 삼았다는 얘기다.(p81)'<군인 박정희> 中


 이러한 증언을 보면 결국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지원은 개인의 출세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는 듯하다. 물론, 다음과 같이 만주(滿州)라는 곳이 당시 조선 청년에게 주었던 황금이 넘쳐나는 엘도라도(El Dorado)의 이미지 역시 청년 박정희의 만주행에 영향을 주었겠지만, 역시 개인의 영달을 넘는 수준은 아닐 듯 하다.


 '박정희의 만주행에는 시대상황도 한 몫을 했다. 당시 일제는 만주 침략을 계기로 대륙 병참기지화 정책을 전개했다. 반면 조선에 대해서는 영구통치를 위해 조선인을 완전한 일본인으로 만드려는 이른바 황국신민화 정책을 폈다... 이런 사정으로 조선의 젊은이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그 탈출구로 만주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만주는 "동양의 서부"로 일컬어질 만큼 희망과 기회의 땅이었다.(p80)' <군인 박정희> 中


2. 군인으로서의 활동


가. <돌베개> : OSS 훈련과 국내 진입 작전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광복군으로 합류한 장준하는 시안 西安에서 OSS 훈련을 받으며 서울지역 침투 공작을 준비한다. 비록 이 작전은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돌베개> 속에서 죽음을 앞 둔 결연한 저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5월의 태양 아래 우리는 "OSS"대원이 되기 위한 훈련에 들어갔다. "Office of Strategic Service"의 약자인 "OSS"는 미국의 전략첩보대를 의미한다. 중국에서의 OSS 활동은 앞으로 있을 미군의 일본 상륙작전을 위해 눈부신 예비공작 단계에 있었다.(p281)... 한반도에 대한 연합군의 공략은 일본의 본토 사수의 결의를 꺾자는 데 있는 것이다. 이 공략을 돕기 위해 경무기로 무장된 우리가 잠수함이나 낙하산으로 투입되어 우선은 첩보활동, 다음 단계로 정보 송신, 그리고 최종으로 유격대 조직 및 군사시설 파괴공작을 수행하도록 미리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3단계 활동이 성공할 경우, 국민군을 조직하여 미군 상륙과 때를 맞추어 후방 교란을 지휘하는 책임까지 졌으며, 국내 교란에 필요한 무기와 탄약의 공중지원을 받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면밀한 작전의 초안자가 바로 이 장군이었으므로 그 위험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지대장으로서는 나를 죽음의 골짜기에 집어 넣기에 고민이 컸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작전 계획은 1944년 겨울에 이미 연합군 중국 전구 사령부를 거쳐 미 국방성 펜타곤의 찬성을 얻었으며, 전황의 추이와 병행시켜 1945년 초기에 연합군 사령부에서 검토되고 있었던 것이다.(p289)' <돌베개> 中


나. <군인 박정희> : 독립군 토벌설과 비밀광복군 설


 일본육사를 졸업한 박정희는 1944년 7월 만주에서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당시 만주군으로 복무한 그에 대해 크게 2가지 설을 <군인 박정희>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에 따르면 박정희는 독립군을 토벌할 정도로 용맹한 만주군이나, 비밀광복군으로 활약할 정도의 인물이 되지 못한다. <군인 박정희>에 따르면 그는 그저 평범한 행정장교로서 1년 1개월을 복무한 후 쓸쓸히 귀국한 패잔병이었으며, 자신이 광복군임을 부인한 평생을 '일본군인'으로 살아간 인물이었다. 


 1) 박정희의 '독립군 토벌설'


 '8단 본부에서 그와 가장 가까이서 근무했던 중국인 동기생 고경인 씨의 증언을 다시 들어보자. "44년 7월 하순경부터 8월 초순경까지 보름간에 걸쳐 일본군과 합동으로 팔로군대토벌 작전이 있었는데, 8단에서는 2개 대대가 참가했습니다. 박정희는 부관이 되기 전 2~3개월간 제2중대(?) 소속 소대장으로 있으면서 이 작전에 참가했지요. 그러나 박정희가 토벌작전에 참가한 적은 있으나 그의 부대가 팔로군과 교전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p100)... "나는 소규모 전투를 포함, 10여 차례 (팔로군 토벌) 전투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박정희는 연대 을종부관으로 있어서 전투 경험이 전연 없다.... 박정희는 (내근을 하다보니) 그럴 기회가 없어서 중국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8단 시절 박정희는 놀고 술먹을 기회가 많았다. 그는 비교적 편히 지냈다.(방원철 증언)(p101)' <군인 박정희> 中


 2) '비밀광복군 박정희'의 진상


 '1967년 박영만은 <광복군> 상/하권 두 권짜리로 된 논픽션 소설을 출간했다. 하권의 골자는 박정희가 이미 해방 전부터 광복군과 비밀리에 내통하면서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하권에는 당시 박정희와 같이 만주군 8단에 근무했던 신현준(봉천 5기)까지 가담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신씨는 "해방 전엔 광복군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증언하고 있다.(p119)... 이 책이 나온 후 청와대로 가져가 박 대통령에게 선물했더니 박 대통령이 내용을 훑어보고는 "내가 어디 광복군이냐, 누가  이 따위 책을 쓰라고 했느냐"며 노발대발했다. (p120)' <군인 박정희> 中


3. 광복 후 귀국


 <돌베개>의 주인공 장준하와 <군인 박정희>의 주인공 박정희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시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역사의 흐름에 실려 귀국한다. 다만, 장준하는 백범 김 구(金九, 1876 ~ 1949)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반면, 박정희는 패잔병의 신분으로 배를 타고 돌아오게 된다.


가. <돌베개>


 '"아, 조국의 땅이 우리를 맞으러 온다. 우리를 마중하러!"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눈에 띄지 않던 솜구름이 버섯처럼 돋아나 시야에 들어오고 그 밑에는 서해안의 섬들이 바다에서 솟아나는 듯이 옹기종기 떠올랐다... 겨울 날씨 같지 않게 기창 밖으로 보이는 조국은 아름다웠다. 옥색 하늘이 엷게 풀어지고 남색 바다가 치마처럼 퍼졌으며 섬들이 크고 작게 벌어졌다... 그렇다. 우리의 갈망이 버섯처럼 조국을 환상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눈을 비비고 또 비비었으나 섬들은 돌덩이로 솟아올라 움직이는 듯한 착각 속에 제자리에 주저않고 있었다. 저 위에 나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 처자가 있을 것이다. 저 위헤 하늘을 우러러 울고 땅을 치며 발을 굴러 울던 나의 조국이 있고 나의 동포가 목이 아프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p343)'<돌베개> 中


나. <군인 박정희>

 '1946년 5월 초순. 중국 천진항에서 미군 상륙용 함정인 LST 한 척이 뱃고동을 울리며 동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이 날 "귀국선" 갑판 위에서 한 젊은이가 무거운 시선으로 중국 땅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일제의 패망으로 패잔병 신세가 되어 귀국하는 "박정희 중위"였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꿈에도 그리던 군인이 되어 당당하기만 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몰골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p96)' <군인 박정희> 中


 <돌베개>에서 장준하는 집안의 불행을 막고자 일본군에 자원했으나, 자신의 뜻이 있었기에 일본군에서 벗어나 광복군으로 합류한 후 국내진입작전을 통해 자신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군인 박정희>에서는 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만주로 건너가 원하는 큰 칼을 찼으나, 이 시기에 그가 무엇을 추구했는가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이러한 기록을 통해 바라볼 때, '군인(軍人)'으로서 장준하는 '제가'의 수준에서 입대하여 '치국'을 생각하며 그의 광복군 생활을 마친 반면, 박정희는 '수신'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만주군 생활을 마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이들의 이후 삶은 그들의 뜻과는 다르게 풀려갔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다소 거친 논리의 비약일 수 이겠지만, 한국 현대사의 비극(悲劇)은 '수신'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이들에 의한 '치국'의 수준에 이른 이들에 대한 탄압으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 돌아보면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PS. <태백산맥>의 주인공 김범우 모습에서 살짝 장준하 선생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두 인물에 공통되는 OSS 대원으로서의 경력 때문이겠지만, 두 인물이 over lap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1930년대와 40년대 만주가 우리 할아버지들에게 미국 서부와 같은 이미지였다면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배경이 만주로 설정된 것도 전혀 뜬금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배우게 된다. 박정희는 어디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을까?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08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8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8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8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1-08 15: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장준하 선생의 비극적인 죽음은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돌베개보다 김준엽 선생의 <장정>을 먼저 읽었는데 <장정>이 역사학도로서 사실기록에 충실했다면 <돌베개>는 문학적 감성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기록이었던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08 15:05   좋아요 2 | URL
장준하 선생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비극이라 생각됩니다. 청산되지 못한 이들에 의한 비극적인 죽음과 감춰진 진실...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현대사의 문제점이 응축된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여겨집니다. 조그만메모수첩님 감사합니다.^^

2018-01-18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