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정원
아야세 마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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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고 감정이 흔들리고 감각하고 집작하지만 (결국) 멀어지는 인간/관계들을 그린 이야기. 첫 두 단편은 그럭저럭 읽었다만, 몸속에 사랑의 돌이 생겨나고(담석증도 요로결석도 아닐진대), 남편이 꽃으로 변하고… 갈수록 어째 내 취향을 벗어나는 괴랄함. <230밀리미터의 축복>이 그나마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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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6-04-1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로결석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겨요.사랑의 돌이라니??? ㅋㅋㅋㅋ 차라리 요로결석 생긴 게 나을 듯.

잠자냥 2026-04-14 15:31   좋아요 0 | URL
요로결석엔 시금치 안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작품 제목은 <떨리다>인데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몸 안에 돌이 자라나요! 그 돌을 꺼내서 서로 교환하면 두 사람 마음이 통해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건데.....ㅋㅋㅋㅋ 돌 꺼내서 줬는데 공명하지 않으면 그냥 돌만 모으게 되거든요? 그런 쓸모없어진 돌만 여러 개 갖고 있는 사람도 나옵니다. 근데 자꾸 전 결석 제거하고 수집한 사람 같아서 이야기에 공명이 안 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케이 2026-04-14 15:36   좋아요 1 | URL
그럼 그 돌을 어떻게 꺼내나요? 꺼내려면 토를 하거나 콧구멍으로 나오거나 응가로 나오거나 하여튼 뭔가 다 지저분한 방법만 떠오르는데... ㅋㅋㅋㅋ 별 것도 아닌 것에 상상력을 발휘해 봅니다.
근데 일생동안 단 한개의 돌을 못받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아 슬프다 ㅜㅜㅜㅜ ㅋㅋㅋ

잠자냥 2026-04-14 15:57   좋아요 1 | URL
돌을 교환하고 싶은 상대한테 꺼내달라고 하면 그 상대가 돌이 있을 것 같은 위치(목덜미 같은 곳)에 손가락을 대고 그냥 몸 안으로 쓱 넣어서 꺼냅니다...ㅋㅋㅋㅋ 이때 상대도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렇게 꺼낸 돌은 버리거나 버리겠다고 하고 일단 가져가거나...(주인공이 고백한 남자는 그렇게 갖고 있는 돌만 8개ㅋㅋㅋㅋㅋ) 서로 좋아하는 사람하고는 꺼낸 돌을 교환해 각자 몸의 비어 있는 틈에 넣는다고 하는데요.. 역시 콧구멍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병원에서 의사가 꺼내주기도 하는데 ㅋㅋㅋ 돌이 의사 손을 싫어해서 자꾸 몸 안으로 도망치려고 하고 비싸다네요. ㅋㅋㅋㅋㅋㅋ

평생 돌 한 개 없는 사람은....... 모돌일까요? ㅋㅋㅋㅋ 모태돌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4-14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읽어 봤으니 함부로 말할건 아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랑의 돌... 남편이 꽃으로 변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네네, 알겠습니다.

잠자냥 2026-04-14 17:43   좋아요 0 | URL
내 맘속의 돌을 받아~~ 사랑의 돌을~ 다같이 돌돌돌~🎶🤣 왠지 이런 가사의 노래가 트로트 버전으로 막 떠오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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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노스는 자기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공포 속에 태어나 그 공포를 끝내 떨치지 못하는 인간적인 블랑슈와 순교보다 삶이 좋다는 콩스탕스가 인상 깊다. 충실한 각주가 장점이지만 역자의 해석까지 각주로 곁들인 것은 좀 과하다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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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4-13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뿔랑의 오페라에 같은 제목이 있는데 이 극이 원작인 듯하네요. 주인공 이름이 같네요. 나도 읽어봐야지...

잠자냥 2026-04-13 11:09   좋아요 0 | URL
네 오페라, 영화, 연극으로 만들어졌어요. 저는 영화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애초에 영화를 위해 쓰인 작품이라 그런지 읽다 보면 영화처럼 상상이 잘 되더라고요.
 
남성 판타지
클라우스 테벨라이트 지음, 김정은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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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과 폭력으로써의 파시즘. 파시즘을 몸의 문제-개인의 육체구조 및 언어가 타자에게 어떻게 작동하는지의 관점으로 분석한 지점이 흥미롭다. 너무 자의적 해석 아닌가 싶은 부분도 있지만 문학비평, 철학, 정신분석, 심리학 등 해박하고 방대한 이론을 바탕으로한 집요한 연구는 그저 경이로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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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4-12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띠용요요용요요요요요용~~~~~~~~~~~~~~~~~~~~~
완독 축하합니다, 잠자냥님! 부럽습니다.

잠자냥 2026-04-12 18:36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단발머리 2026-04-12 18:38   좋아요 1 | URL
👏🙌🎊🎉🥳

다락방 2026-04-1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박대박!! 👍👍👍👍👍

잠자냥 2026-04-12 20:10   좋아요 0 | URL
펼쳤니~~?🤣

건수하 2026-04-12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 축하합니다!! 잠자냥님 멋짐!

잠자냥 2026-04-12 20:10   좋아요 1 | URL
샀니~~~?🤣

건수하 2026-04-12 20:4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전 틀렸어요…..

책읽는나무 2026-04-12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입틀막!
이걸 완독했다구요?(참고로 제 책장에도 꽂혀 있거든요. 책을 한 번 더 올려다 본!)
정말 잠자냥 님의 독서세계는 가히..👍

잠자냥 2026-04-13 10:17   좋아요 0 | URL
책을 올려다 보지 마시고 ㅋㅋ 펼쳐 보십시오~! ㅋㅋㅋㅋ

다락방 2026-04-12 2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순간 가장 부러운 사람 잠자냥 님... 남성판타지 완독자... 대박.....

잠자냥 2026-04-13 10:19   좋아요 0 | URL
이 책 다 읽으면 다른 벽돌책 다 뽀갤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을 덤으로 얻게 됩니다... ㅋㅋㅋㅋㅋ
(근데 일단 당분간 벽돌책은 안녕.. 내 손목에도 쉴 틈을...ㅋㅋㅋㅋ)

바람돌이 2026-04-12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책 읽을 때 들고는 못읽겠던데 어떤 자세로 읽어요? ㅎㅎ 진짜 대박 맞네요.
앞으로 잠자냥님 생각날 때마다 이 책과 함께 떠오를듯요. ㅎㅎ

잠자냥 2026-04-13 10:19   좋아요 0 | URL
들고는 절대 못 읽습니다! 저는 누워서 배 위에 쿠션 올려놓고 그 위에 책 올리고 읽었습니다.

자목련 2026-04-1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 정말 대단해요!
벽돌책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책장 속 조금 두꺼운 책들을 정리해야 하는 고민인데, ㅋㅋ

잠자냥 2026-04-13 14:09   좋아요 0 | URL
그냥 정리하면 아까우니까 꼭 읽고 정리하세요! ㅋㅋ

독서괭 2026-04-1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벽돌 파괴왕! 잠자냥!!!👍👍👍👍👍

잠자냥 2026-04-13 14:40   좋아요 1 | URL
벽돌 파괴왕이라고 하기엔;;;; 집에 안 읽고 쌓아둔 벽돌이 아직 너무 많으므로.... 다 해치우고 나서 왕이 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6-04-1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진짜 멋져요! 이 책 저는 아직 구입은 못했는데 다른 벽돌책은 축에도 못 낄 정도로 두툼하네요~ㅎㅎ 백자평 보니 궁금해집니다.

잠자냥 2026-04-13 14:11   좋아요 0 | URL
한동안 이 책보다 더 두꺼운 책은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화가 님도 천천히 꼭 읽어보세요~
 

종일 비가 내린 어제, 목요일. 연차를 내고 하루 쉬었다. 비가 내러 출근하기 싫어서는 아니고,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 중인 로베르 브레송 회고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퇴근 후 시간을 내서 봐도 되기는 하지만 하필 어제 내가 꼭 보려던 영화 두 편을 함께 상영하기에, 하루에 몰아볼 심산으로 휴가를 냈던 것이다. 오전에는 고양이들과 뒹굴뒹굴 부둥부둥. <남성 판타지>를 두 시간쯤 읽고(900쪽 돌파!), 집안 청소를 마친 후 집을 나섰다. 비가 내려 한산한 평일 오후 정동은 나름 운치 있었다. 3시를 조금 넘긴 시간, 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평일임에도 브레송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앉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일찌감치 예매해둔, 외따로 떨어진 자리에 착석. 불이 꺼지고, 아트시네마 특유의 음악이 흐르는 순간..... 삶이 별건가, 이런 게 행복이지 싶어진다.




첫 번째 영화는 <당나귀 발타자르 Au hasard Balthazar>(1966). 전에 본 영화이기는 하지만  오래되기도 했고, 지금의 나이에 보면 또 어떤 것이 눈에 들어올까 싶어서 극장을 찾았다. <당나귀 발타자르>는 브레송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이 단순한 플롯(그러나 심오한)과 극적이지 않은 전개로 펼쳐진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느 당나귀의 일생이다. 그러나 어제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낌 감정은 지독하게 참혹하다는 것. 커다란 눈망울의 어린 당나귀가 어느 집에 팔려온다. ‘마리’라는 소녀의 집이다. 이 어린 당나귀를 끌어안고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마리와 또 다른 소년 ‘자크’. 마리와 자크는 소꿉동무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당나귀와 함께 여름 한철 즐겁게 보낸 시간도 금방 지나간다. 자크는 내년에 또 오겠다면서 차에 올라타고 손을 흔들며 사라져간다. 그 순간 카메라는 마당의 나무벤치에 자크가 새겨둔 ‘마리♡자크’라는 낙서를 보여준다. 내년에 곧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마리와 자크의 풋사랑도, 곧 덧없이 희미해지리라......

시간이 흘러 당나귀도 마리도 훌쩍 자랐다. 성년기의 그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마리의 삶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발타자르도 마찬가지이다. 마리의 아버지가 횡령 혐의를 쓴 채 빚에 허덕이며 가세가 나날이 기울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청년이 되어 다시 나타난 마리의 첫사랑 자크는 마리의 아버지로부터 문전박대당하고 쫓겨난다. 보아하니 부유한 자크 네 집의 땅을 대신 관리해주던 아버지가 횡령 혐의로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들 간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하게 돌아서는 자크. 그는 여전히 마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리의 귀에 들려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생의 무게에 비하면 공허하기만 하다. 

딸과 아내를 돌보기보다 자신의 명예를 되찾는 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한 마리의 아버지는 저놈의 당나귀처럼 우스꽝스러운 걸 집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 또한 우습게 보는 것이라면서 발타자르를 내다 팔아버린다. 왜 애꿎은 동물에게 분풀이를 하는가. 인간은 이토록 잔인하고 어리석다. 이때부터 발타자르의 삶은 급속도로 나빠진다. 마리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주인을 만나기는커녕 거의 날마다 채찍질을 당하면서 수레를 끄는 그런 당나귀의 삶. 한데 가혹하다 못해 이리도 가혹할 수가. 

발타자르는 이번엔 빵집에 팔려 가는데 이 빵집의 아들, 제라르는 망나니 중에도 천하의 개망나니라 불량패거리와 함께 못된 짓을 일삼는 놈이다. 그래도 아들놈이라고 정신 좀 차리게 할 요량인지 그놈의 애비 애미는 아들에게 당나귀를 이용해 마을 곳곳에 빵을 배달하고 돈을 받아오는 일을 시킨다. 그런데 발타자르도 사람 보는 눈은 있는지 제라르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 그럴 때 이 제라르란 놈이 하는 짓이란! 신문지에 불을 붙여 발타자르의 꼬리에 매다는 것이 아닌가! 엉덩이에 불이 붙으니 그 고통에 발타자르는 화들짝 놀라 달리기 시작한다. 분노가 치미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제라르란 놈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들 중 가장 악한 자이다. 발타자르에게 수시로 못된 짓을 일삼는 것으로도 모자라 발타자르의 첫 주인인 ‘마리’에게도 가장 나쁜 짓을 하는 놈이다. 애초부터 마리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훔쳐보던 제라르는 마리가 발타자르에게 약하다는 것을 알고 당나귀를 이용해 마리를 유혹한다. 여러 차례 마리에게 거부당하면서도 결국 마리를 손아귀에 넣는 것에 성공하는데, 이때부터 마리의 삶 또한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당나귀 발타자르>는 비단 순진무구하고 무해한 동물 당나귀 발타자르만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순진무구하고 연약한 소녀 마리의 삶이 어떻게 주변 인간들에 의해 망가지고 처참해지는지를, 그 두 가련한 생명체의 안타까운 삶을 극도로 건조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마리 역을 맡은 소녀는 <사랑의 사막><독을 품은 뱀>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외손녀이다.



브레송은 <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에서 <당나귀 발타자르>는 두 가지 생각, 두 가지 도식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당나귀의 일생은 인간과 똑같은 단계를 따라가는 것이다. 유년기에는 애정의 손길이, 성년기에는 노동이 그리고 생의 한가운데는 재능 혹은 타고난 재주, 그리고 죽음을 앞둔 신비스러운 시기. 이렇게 그려지는 당나귀의 삶. 당나귀의 여정은 저마다 인간의 한 악덕을 상징하는 사람들을 거쳐 가고 발타자르는 그 악덕 때문에 고통을 겪다가 죽는다. 마리의 아버지는 명예욕과 아집 때문에, 제라르는 욕정 때문에, 그 후의 주인 아르놀드는 탐식(알코올) 때문에, 또 그 후의 주인은 탐욕 때문에 발타자르를 착취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브레송이 말했듯이 마리는 또 다른 당나귀이다. 당나귀와 평행으로 나아가는, 결국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고통당하는 인물로 인색한 인간에게 발타자르가 귀리조차 얻어먹지 못하듯이 마리도 그로부터 음식을 얻지 못하고 단지 잼 한 병을 가져다가 먹을 뿐이다. 잼 한 병으로 욕정의 대상이 되고..... 브레송은 마리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를 버리는 인물”이라고 말하는데, 발타자르의 삶뿐만이 아니라 마리의 삶도 너무나 처연해서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발타자르가 인간들의 손에 의해 망가지듯이 남자들의 손에 의해 망가지는 마리의 삶.





브레송의 영화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경우가 많은데 <당나귀 발타자르>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이 깃들어있다. 물론 이 영화는 브레송이 10년에서 12년에 걸쳐 생각한 끝에 완성한 작품으로 <백치>를 읽기 전부터 구상은 어느 정도 마쳤으나, 브레송은 어느 날 <백치>를 다시 읽으면서 놀라운 구절을 재발견했다고 한다. 백치가 동물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것, 사람들이 백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혜로운 동물을 통해서 삶을 보게 된다는 더없이 멋진 생각에서 <당나귀 발타자르>는 더욱 깊이 있는 영화로 탄생한 것이다. 


“그럴 때 나를 사로잡곤 하던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기억납니다. 난 울고 싶었죠. 모든 게 날 놀라게 만들고 나에게 불안을 안겼어요. 그때 날 끔찍하게 짓누른 느낌은 바로 모든 게 나에게 낯설다는 거였죠. 하지만 그 암흑을 완전히 벗어나던 순간도 기억납니다. 바젤에서 도착해서 스위스에 첫발을 디딘 날, 저녁이었어요. 시장에서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깨어났지요. 그 당나귀가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겼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속이 갑자기 환해졌죠.” -도스토옙스키, <백치>


이어서 본 <아마도 악마가 Le Diable probable>(1977)는 브레송 후기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암울한 작품으로 꼽힌다. 극도로 염세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에 자살을 모방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는 18세 미만 관람이 금지되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주인공 샤를은 사랑은 물론 정치 집회, 종교 모임, 정신분석 등을 전전하지만 끝내 자기의 존재 이유와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마약에 중독된 친구에게 돈을 건네 자신의 살해를 의뢰하기에 이른다. 무얼해도 허무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샤를이 결국 친구들의 권유로 정신과의사를 만나러 가는데, 거기서 자신은 우울증이 아니라고, “꿰뚫어 보는 것도 병”이냐고 되묻는 장면이 인상 깊다. 꿰뚫어 보는 것도 병이 아닐까.... 남들처럼 그냥 눈 감고 쉽게 살면 되는데, 그걸 못하면 마음이 병들기 쉽지 않을까. 브레송은 이 작품에서 “경박한 낙관주의, 돈만 있으면 다 잘된다는 믿음,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을 두고 미친 듯이 날뛰는 사람들의 힘의 우위”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샤를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상태, 죽음에 이르는 데 성공한다. 거기에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을까.....



<아마도 악마가 Le Diable probable>(1977)



극장을 나와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당나귀 발타자르>에서 흐르던 슈베르트 피아노소나타 20번 2악장을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보다 더 완벽한 하루도 없구나 싶어진다. 샤를, 너도 이런 데서 삶의 이유를 찾아보지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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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4-10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잠자냥 님 개멋짐.

저는 이 페이퍼 읽으면서 아니 에르노 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잠자냥 님에게서 아니 에르노를 봅니다. 아니 에르노를 느낍니다. 이게 잠자냥 님이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뭐라고 해야할까, 잠자냥 님은 스스로 되게 빛나는 별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제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다. 스스로 별이 된 사람. 그것이 바로 잠자냥 이다!! 하여간 아니 에르노 생각이 났다는 걸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잠자냥 님이 싫어할지도 모르지만요.

당나귀와 여성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네요. 그런데 그건 지금도 그런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성의 삶은 당나귀의 삶과 다르지 않죠. 당나귀의 삶도 예전과 다르지 않고요. 몇해전에 여행프로그램 봤는데, 여전히 얼음을 당나귀를 통해 나르더라고요. 인간들 먹을 얼음을 나르라고 당나귀가 태어난건가, 라는 생각을 그 때도 했고, 그래서 그 때 뭔가 동물권 관련된 책을 사서 꽂아뒀던 것 같습니다. 여자의 삶도 마찬가지지요. 바로 오늘 본 기사에서도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신고했는데 무혐의로 가해자가 풀려나자 스무살된 피해자 여성이 자살했어요. 핸드폰에는 그녀가 성폭행 후 괴로워서 친구에게 남긴 문자도 있었는데, 나중에야 경찰은 ‘그녀가 핸드폰을 보여주지 않아 그건 몰랐다‘고 했고요. 동물과 여성의 삶은 그렇게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작 남자를 죽인 여자에 대해서는 부모도 사과하라고 세상이 난리인데요.

인류가 더 살아간다면, 훗날에는 동물과 여자를 남자와 같이 대우할 날이 올까요?

잠자냥 2026-04-11 13:2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푸하 미쳐 웬 아니 에르노 ㅋㅋㅋㅋㅋㅋ 이 인간 술 마셨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랑스 영화 자막 없이 보지 못하는 아니 에르노 ㅋㅋㅋㅋㅋ
아니 웬르노….🤣🤣🤣 진심 빵 터졌다!

독서괭 2026-04-11 18:28   좋아요 0 | URL
아 진짜… 잠자냥님 개멋짐22222222

잠자냥 2026-04-12 17:16   좋아요 1 | URL
너희둘 개웃김…..🤣

독서괭 2026-04-11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성판타지 두시간 읽고
청소하고
브레송 회고전 보고
슈베르트 듣고

너무 지적이고 부지런한 휴가다…..
그나저나 당나귀 눈이 너무 처연해보이네요 ㅜㅜ

잠자냥 2026-04-12 17:17   좋아요 1 | URL
응 나 부지런해….😹

당나귀 발타자르는 울음소리가 더 처량합니다….😭
 

최근 한국문학을 오랜만에 읽었다. 그 시작은 정영문의 데뷔작인 《겨우 존재하는 인간》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1997년에 출간되었으나 곧 절판, 소문으로만 전해졌던 명작 중의 하나였다. 몇 해 전 복간된 덕분에 나도 이제야 읽을 수 있었다. 소문대로 좋았다. 내가 이 작품을 좋게 읽은 까닭은 아마도 한국문학이면서도 한국문학스럽지만은 않은 무엇인가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정영문의 다른 작품들도 다 읽어 볼 생각이다). 

번역 문장이 아닌 한국어로 쓰인 글을 읽을 때의 즐거움도 오랜만에 느꼈기에, 내친김에 다른 한국문학도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펼쳐든 책이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이다. 내가 한국 현대 소설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놀라워할 정도로(ex 다락방) 잘 안 읽기는 하지만 그래도 김애란은 드문드문 읽어온 작가이기는 하다. 첫 작품집인  《달려라 아비》부터 《침이 고인다》, 《바깥은 여름》에 이어 이번에 읽은 것까지 네 권은 읽었다. 김애란의 팬인가 싶기도 할 텐데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 편에 가깝다. 그럼에도 김애란을 읽게 된 것은 그 무렵 운영하던 블로그의 이웃들이 김애란 책, 한 번만 읽고 감상평 좀 남겨달라고 해서였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를 읽고서 잘 쓰는 것 같기는 한데 내 취향은 아니라고 했다. 너무 구질구질하다고… 그때부터 그 친구들 사이에서는 농담처럼 김애란의 작품을 ‘구질문학’이라고 명명했었다.

나는 그 가난함과 구질함을 어디서 느꼈던가. 《달려라 아비》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강박증 같은 것은 많이 사라졌지만 《침이 고인다》 또한 여전히 ‘엄마’와 ‘가난한 삶’ 그리고 비루한 ‘서울 상경 살이’가 거의 모든 단편의 주제이자 소재였다. 《침이 고인다》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방’을 얻기 위한 20대의 남루한 투쟁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어떻든 자신만의 ‘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공간’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많이 부족하다. 그 ‘방’은 비가 오면 물이 콸콸 들어오는 반지하의 방이기도 하고, 느닷없이 찾아온 후배에게 속절없이 침범당한 작은 원룸이기도 하고, 신림동의 고시원이기도 하고, 옥탑방이기도 하고, 다 큰 남매가 한 공간에서 같이 자고 먹고 해야 하는 원룸이기도 하고, 노량진 학원가의 학사촌이기도 하다. 

그런 김애란의 인물들은 《바깥은 여름》에서 드디어 자기 집을 가진 이들이 된다. 널찍하고 화려한 집도 아니지만 《침이 고인다에서 방을 찾아 헤매던 청춘들이 어느덧 ‘자기 집’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낡고 보잘것없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집’을 소유하고는 20대의 삶이 아닌 30대의 삶을 살고 있다. 아이도 낳고, 그 아이로 인해 생의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자식 때문에 삶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도, 작가가 그리는 인물들도 그때보다는 어른이 되었구나, 자라고 있구나, 그럼으로써 삶이 던져주는 무게를 조금 더 묵직하게 느끼는구나 싶어졌다. 그런 변화가 조금은 반가웠던 기억도 난다.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기 시작하고 조금 놀랐던 점은 가난과 구질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김애란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더 성장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부유한 자들이 모여서 여는 ‘홈 파티’(<홈 파티>)에 초대를 받고 해외여행을 가기도 하는 것이었다(<숲속 작은 집>). 하긴 《달려라 아비》를 쓸 때보다 작가 자신이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그가 창조한 인물들 또한 20대에서 30대를 거쳐, 40대로 나이 들면서 생활도 조금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지고 그러면서 삶이 조금씩은 달라졌으리라. 그러나 나는 《안녕이라 그랬어》의 단편 하나하나를 읽어나감에 따라 경제적 생활은 조금 나아졌을지 몰라도,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빈곤하구나 싶어졌다. 그래서 답답해졌다. 아니 마음의 빈곤함, 가난함은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한숨이 나왔던 것일까. 

초대받은 ‘홈 파티’ 자리에서도, 해외여행을 떠나서도 계급과 돈의 위력을 줄곧 실감하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의 가난함은 <좋은 이웃>에서 절정에 달한다. 서울에서 전세살이 중인 어느 40대 부부는 늘 관심사가 자가 소유의 집, 그것도 아파트이다. 남편은 새로 들어온 신입이 ‘나보다 부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회사에서도 동료들을 단지 부(富), 집을 소유했느냐 아니냐의 기준으로 바라본다. 방문 학습지 교사였다가 독서지도사로 일하고 있는 아내의 관심사 또한 온통 자기 집의 소유 여부이긴 마찬가지이다. 평소 자신이 특별히 ‘아끼던’ 학생 ‘시우’(그러나 뭐랄까 가난해 보이기 때문에 연민하면서 계급적 우월감을 느끼던 대상)가 어느 날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황해한다. 자기 마음의 들키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스스로 목도하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겁기만 하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그것도 내가 아끼는 학생의 일인데, 마음이 허전하고 휑’하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자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낡은 집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이 과연 ‘반짝이는 세계’로 가는 것일까? 시우를 ‘마주 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생각하다가 아내는 이런 쪼잔한 후회까지 하기에 이른다. “경제적으로 가장 쪼들렸을 때조차 시우네만은 수업료를 안 올렸는데. 그때 그냥 오만 원 더 올려 받을걸…….” 급기야 시우의 수업을 그만둘까 생각까지 한다. 시우가 자신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시우네 이사 소식을 들은 남편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묻는다. “자가래?” 남편의 이 노골적인 질문에 아내는 자기도 모르게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별말 아닌데 왜 수치심이 드는지 알 수 없었”노라 말한다. 그러나 본인도 알고, 읽는 나도 안다. 그 수치심은 바로 마음의 빈곤함/가난함 때문 아닐까. 그토록 아끼고 예뻐하던 학생 시우가 자기보다 낡고 허름한 집에 살 때는 괜찮던 것들이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니 왠지 배가 아프다. 시기심과 함께 알 수 없는 열패감, 열등감에 휩싸여 수업을 그만둘까까지 생각하는 너무나 가난한 마음.

이렇게 사사건건 나와 타인의 삶을 주로 부와 계급으로 비교 평가하는 인물들은 거의 모든 단편에서 등장한다. 여행을 떠나 에어비앤비로 빌린 집에서조차 “모국에서의 오랜 관성 탓인지 집주인 앞에 서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자꾸 환하게 웃게”되고, 부유하고 풍족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면서 “세상에 주류다운 몸짓과 표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생각하기도 한다(<숲속 작은 집>). 이혼한 아내가 새로 만나는 듯한 남자의 인스타를 염탐하면서 그의 사진에서는 “생활의 흔적이 잘 묻어나지 않는다”면서 “아무리 좋은 신발과 가방을 찍어도 은연중 드러나기 마련인 벽지와 장판, 싱크대, 이불 등 계급의 표지”(<이물감>)를 찾아보려 애쓰는 한심하고 비루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심지어 이 남자 ‘기태’는 그-‘최 대표’의 안색과 표정에서 ‘내장의 관상’까지 본다. 여기서 말하는 내장의 관상이란 ‘기태’가 “거래처의 고위 간부나 임원을 접대하며 종종 봐온 낯빛”이다. “오랜 시간 질 좋은 음식을 섭취한 이들이 뿜는 특유의 기운”이라나. “단순히 재료뿐 아니라 그 사람이 먹는 방식, 먹는 속도 등이 만들어낸 순수한 선과 빛, 분위기”라고 한다. “편안한 음식을 취한 편안한 내장들이 자아내는 표정”이며 “음식이 혀에 닿는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찰나가 쌓인, 작은 쾌락이 축적된 얼굴”이다. 아무튼 그런 인상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기태’는 그걸 자기 혼자 ‘내장의 관상’이라 불렀다.(<이물감>), 인스타에 올라간 타인의 사진을 보면서 ‘벽지와 장판, 싱크대, 이불 등’에서 계급 표지를 찾는 것으로도 모자라 내장의 관상 운운하는 장면에선 실소를 떠나 뭐랄까 불쾌한 기분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단편 속 인물은 도배사가 자기 집을 방문했을 “남의 집에 자주 다니는 업자들은 대충 살림만 봐도 그 집 분위기며 사정을 안다던데, 지금 저 여자에게 우리 집은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기도 한다(<빗방울처럼>). 

이런 장면, 묘사, 문장들을 내내 읽다 보니 문득 정말 사람들이 다 이렇다고?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인간은 치졸하기도 한 존재라 잠시나마 그런 비루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안녕이라 그랬어》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의 관심사는 돈과 계급, 아파트이다. 그들은 거의 전부가 부유함과 가난함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자기 또한 그렇게 평가받으리라고 단정 짓고, 그러면서 내면으로 끊임없이 이런 기준에 맞춰 살아가려 기를 쓴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니 경악스럽다 못해 진저리가 쳐친다. 대다수 한국인이 돈에 환장했고, 부유하게 보이려고 애를 쓰고, 서울에 자가 아파트, 빌딩 갖는 게 꿈이라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침이 고인다》의 어느 단편에서인가 “서울이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구절이 있다. “멀리서 보니 한없이 가난해 보이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와 신림동 고시촌을 “지나가는” 수많은 젊은 청춘, 사회에 제대로 편입하지 못하고 주변부로 “학원 강사”와 같은 이른바 “지식인의 막장 직업”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20대의 고단한 삶이 그려지는데 이런 고단한 삶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단편의 문장처럼 서울이 그들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데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노라니 “서울이 그들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아니 인간이 자신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스스로 이렇게 자멸해도 되는 건가, 다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이렇게 한없이 낮아져도 되는 건가 싶어졌다. 

원룸을 벗어나 방 두 칸짜리 빌라로 이사를 가고 낡았지만 오래된 아파트에 살게 되고, 또 언젠가는 서울의 자가 아파트에 입성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재산의 규모를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헤아리고 또 누군가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을 시기하는 치졸한 마음이라면, 그래서 내 삶이 한없이 비루해지는 마음이라면 김애란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 서울의 자가 아파트를 갖게 될지언정, 해외로 여행을 다닐지언정 나에게는 여전히 그 마음만큼은 비루하기 짝이 없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문학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같이 다 그럴까? 서울 사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이 정말 하나같이 다 그럴까? 드물지도 모르겠지만 타인의 재산에, 나의 재산 불리기에 관심 없는 이들도 존재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그런 문학을 읽고 싶다. 《안녕이라 그랬어》를 덮으니, 언젠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었을 때 느낀 당혹감, 그러니까 서울에서,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이 다 이렇게 너무 계산적이고 날카롭고 이기적이기만 하다고?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불쾌함과 씁쓸함이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의 대다수 한국문학은 주변을 관찰하고 그 일상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잘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 그럼에도 버티고 살아가는 자들의 숭고함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고전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고전에서 인간은 세계에 번번이 패배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지고 말지언정 결국 인간으로서 존엄을 회복하려고 애를 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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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4-0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저도 그런 문학을 읽고 싶어요😭 잠자냥님 정말 내 마음같은 이 리뷰 너무 좋아요

잠자냥 2026-04-08 12:03   좋아요 1 | URL
그래도 망고 님은 세계문학 많이 읽잖아요?!
최근에 읽은 <이선 프롬>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같은 그런 명작... 캬
세계에 패배할지언정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자들! 캬.....

망고 2026-04-08 12:09   좋아요 1 | URL
그니까 저 잘하고 있는 거죠?😁(셀프 쓰담쓰담)

잠자냥 2026-04-08 12:16   좋아요 0 | URL
🫳

잠자냥 2026-04-08 12:17   좋아요 0 | URL
😺

케이 2026-04-0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애란 책은 두권 읽었네요. <달려라 아비> 와 <두근두근 내 인생> 이요. 달려라 아비는 거기 나오는 등장인물들과 내 나이가 거의 비슷할 때 읽어서 공감하면서 읽었던 것 같아요. 공용 화장실에서 슬리퍼 세워놓아달라고 쪽지 쓰는거랑 공용 세탁기 쓰는 장면이 생각나요. 김애란 작가가 인천 출신이라 더 공감이 갔던 거 같기도 해요.
저도 몇 년전 강남의 완전 부잣집으로 시집간 절친을 보며 뭔지 질투를 느낀 적이 있어요. 그런 제 자신에게 조금 놀랐어요. 근데 그 친구 결혼해서 사는 모습을 보니 또 강남 노른자 땅에서 가정주부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친구네도 부자인데 정작 본인은 전혀 부자라고 생각 안하고 살더라고요. 오히려 말하는 것만 들어선 걔가 저보다 더 가난하단 생각 들때도 많아요.
근데 전 정말 남의 집이 십억이다 삼십억이다 이래도 부러운 생각이 전혀 안들어요. 주식으로 몇 억 벌었다. 이런 것도 하나도 안 부러워요. 누군가는 저를 자기 기만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있는데 정말로 아무 생각이 안들어요.
부자라고 해서 생로병사의 고통이 다 비켜가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 모든 사람은 느닷없이 찾아오는 지독한 불행 앞에서는 평등하다고 생각해요. 또 돈으로 못하는 게 세상엔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고요.
이상하게 잠자냥님 이번 리뷰 읽고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가 생각났어요. 겨우 겨우 산 외투를 잃어버린 주인공이 참 불쌍하지만 그 소설은 그래도 끝까지 남루하지만은 않잖아요. 심지어 한번씩 웃기기까지 하고. 역시 명작은 명작이네요. ㅋㅋㅋㅋ
저는 3월 달에 결혼 이후 최고로 아팠어요. 너무 아파서 어떤 하루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도 경험했답니다. 그 날 하루 정말 아무 기억이 없어요 ㅋㅋㅋ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잠자냥 2026-04-08 12:27   좋아요 1 | URL
김애란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는 당시 20대들이 좀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던 거 같아요. 제게 그 책을 읽어봐 달라고 했던 친구들도 그 무렵 주로 지방에서 상경해서 신림동에서 살기 시작한 20대들이었고요. 제가 잘 공감 못 했더니 그 친구들이 “애초부터 서울 살아서 그렇다” 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음이 가난하면 결국 가난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면 그 마음이 풍요로워질 일이 있을까요.... 한국은 그냥 좀 비교가 디폴트인 사회 같기도 하고...

많이 아프셨군요! 건강 잘 챙기세요. 아프면 진짜 다 무쓸모 아닙니까!

stella.K 2026-04-08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잠자냥님 이 글 우리나라 소설가들이 읽어보면 좋겠네요. 저는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읽고 너무 심하다 싶어 그 다음부턴 안 읽고 있습니다. 그 구질구질함이 예전에 신경숙의 작품이 좀 그래서 별로던데. 정영문의 소설이 좋군요. 저도 함 읽어보겠습니다.

잠자냥 2026-04-08 12:35   좋아요 0 | URL
물론 그렇지 않은 현대 한국 작가들도 있겠지요. 근데 좀 젊은 작가들의 (김애란은 이제 젊지도 않지만) 일단 폭로 고발 끝!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건 좀 그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퀴어든 젠더든 정치적으로 올바른 감각의/그런 소재만 쓰려고 하는 것도 좀 질리고..... 정영문은 좀 결이 다른 것 같기는 한데...... 호불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건수하 2026-04-08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벽지, 장판, 싱크대, 이불..... 아 숨막혀요. 남의 사진에서 정말 그런 거 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제 주변에서도 보고, 또 그걸 다른 사람에게까지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예민한, 예리한 사람인데 그 예리함 좀 다른데 쓰지 그러나 아쉬웠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 생각보다 많은 걸까나요? 이 책 읽고서 더 열심히 보는 사람도 있을지.

김애란은 저도 몇 권 읽고서 나이가 비슷해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런 것까지 쓸 수 있구나- 이상의 느낌은 안 들어서 요즘은 안 읽고 있어요. 이 리뷰 읽고 나니 <불필요한 여자>의 좋은 점이 새록새록 느껴집니다.,

잠자냥 2026-04-08 14:16   좋아요 0 | URL
우아 진짜 그런 사람 있을 거 같기는 했지만 진짜 있을 줄이야.. 벽지 장판 이불? 이런 거에서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진짜 그 예민함/예리함을 다른 데 쓰라고! 수하 님이 아는 그 사람도 내장의 관상까지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사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이 벽지 장판 이불/ 내장의 관상 이런 걸 말할 정도면 작가 자체가 그런 사람일 거 같아서;;; 왠지 더 싫었어요! 이런 걸 끊임없이 의식? 캐치하고 산다고??? 오마이갓 이런 심정.

건수하 2026-04-08 14:19   좋아요 0 | URL
내장의 관상이라니... 이 표현 너무 이상해요. 그리고 제가 아는 그 사람은 자기가 본 것, 느낀 것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대단해서 (본인이 잘못 보거나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더 싫었어요. 엄청 꼰대이기도 했구요 ㅋㅋ

당연히 작가도 그런 사람이겠죠... 그래서 저도 이 글 읽고 김애란 작가 급 안좋아지기 시작...

잠자냥 2026-04-08 14:20   좋아요 1 | URL
미안하다 애란아…..😂

건수하 2026-04-08 14:2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많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괜찮아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6-04-08 15:21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책을 안읽었고 김애란 작가를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데 작가 자체가 그런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아마도 어쩌면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봤기 때문에, 그 점을 반드시 지적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봅니다.

김애란은 데뷔 당시부터 굉장히 화제였는데, 저는 두 권 인가 읽어보았지만 딱히 찾아 읽게 되는 작가는 아니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는 작가, 그런데 나는 아님. 이렇게 되어버린... 하핫.

그리고 저 역시, 문학은 단순히 고발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너무 고발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그렇고 말이지요. 고발 그 이상의 것을 저는 문학에서 원하고 있습니다.

잠자냥 2026-04-08 15:22   좋아요 0 | URL
오해해서 미안하다 애란아…😹

건수하 2026-04-08 15:25   좋아요 0 | URL
음음 그럼 진실은 알 수 없으니 김애란 작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기로.....

잠자냥 2026-04-08 16:02   좋아요 0 | URL
보류한다 애란아.... (난 아님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4-08 16:04   좋아요 0 | URL
오해해서 미안하다면서요.....

다락방 2026-04-08 16:04   좋아요 0 | URL
아니, 이 분들이 왜이러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04-08 16:10   좋아요 0 | URL
/아니 그건 건수하 버전....
전 그냥 제가 의심한 대로 확신하고 살려고요... ㅋㅋㅋㅋㅋㅋ 초기 단편집부터 느꼈던 지점인데 이게 단순히 관찰만으로 알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4-08 16:11   좋아요 1 | URL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제 버전이라고요? ㅋㅋㅋㅋ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자기 촉을 믿을 수 밖에...

독서괭 2026-04-11 09:52   좋아요 0 | URL
🤣🤣🤣 댓글들 넘 재미지네요!!

바람돌이 2026-04-09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애란 작가의 글은 2개, 이중 하나는 거짓말과 안녕이라 그랬어 읽었어요. 워낙 많은 분들이 읽어서 읽었던 거였는데 좀 많이 우울했었어요. 한국사회에 마음이 우울하고 가난한 사람 정말 많습니다. 나이 불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그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이 가난한걸 몰라요.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 같다고 생각하고, 자기 처럼 살아서 돈을 불리지 못하는 사람은 안타까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무능력자 이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안녕이라 그랬어 읽으면서 그런 마음들이 뾰족뾰족하게 튀어나오는 장면들을 보여줘서 좋았어요. 멀쩡해보이는 마음이 이면이잖아요. 아는 사람의 그런 면을 볼 때 화들짝 놀랐던 것처럼 이 책 보면서는 내 마음 속에 그런거 있지 않나 막 살피기도 했거든요. ㅎㅎ

슬쩍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장바구니에 넣어갑니다. 호불호가 강하다지만 잠자냥님이라면 왠지 믿음이.... ^^

잠자냥 2026-04-10 21:05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마음들을 작품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각성&환기시키는 부분도 있었을 거 같아요. <겨우 존재하는 인간> 바람돌이 님에게도 좋은 작품으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독서괭 2026-04-11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애란을 열심히 읽어왔지만 거짓말이 별로여서 이 책도 별로 읽을 생각이 없네요. 저는 김애란 첨 읽었을 때 어쩜 이렇게 어떤 상황이나 감정을 콕 집어 잘 묘사하나 싶어 빠졌었어요.
문학은 고발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저도 예전보다 한국문학에 손이 잘 안 가는데 그게 그래서인지.. 올리브키터리지 생각하면 차이가 더 느껴지긴 하네요!

잠자냥 2026-04-12 17:19   좋아요 1 | URL
그곳에서도 도서관을 찾은 지적인 그대여~ 열심히 읽고 얼른 글도 쓰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