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여년 중 가장 덥다는 요즘입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밀어 닥친 폭염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다른 생각도 해봅니다. 제가 아직 40대 한창때임에도 이처럼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 한다면, 나이 드신 분들 특히 에어컨을 갖추지 못한 분들에게 이 더위는 어떤 의미일런지 생각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 ~ 2002)의  <세계의 비참 La Misere du Monde> 속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할머니의 말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생각해 봅니다.


 

[사진] 쪽방촌의 무더위(출처 : 뉴스1)


 내가 또 한 번 넘어졌지 뭐요. 6월에 팔을 다친 이후로 몇 번씩이나 깁스를 할 일이 생겼는지 모른다오. 그 상태에서 어느 날 또 넘어졌으니까.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야. 그때가 8월 15일이지. 그런 식으로 자꾸 넘어지고 다치고 한거라오.... (웃는다) 하기야 웃을 일도 아니지. 그때가 8월 바캉스철이니 누구 부를 사람이 있어야지, 모두들 휴가를 떠나고 없으니...(p1455)... 내 일을 하는 동안 서로를 귀찮게 하는 일이란 게 어떤 건지를 너무나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오. 다 늙은 노인네를 도대체 어떻게 도와 줄 수 있겠수? 이것 보우, 우릴 살려 두려고 하는데... 하기야 이걸 산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웃음) (p1459) <세계의 비참 3> 中

 


 '고독'이라는 주제의 인터뷰를 하신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혼자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버티는 독거노인의 슬픔을 느끼면서,  무더운 여름날에는 더위를, 추운 겨울날에는 추위를 혼자서 견뎌야 하는 이분들의 어려움 또한  인터뷰 뒷면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 속에 이분들을 방치하고 있는 현실이 우리나라 노인문제의 현주소가 아닌지도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최선의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는 최선의 정체가 추구하는 목표와 같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차 말했듯이, 전쟁의 목표는 평화이고 노동의 목표는 여가이므로, 개인이나 국가나 여가 선용에 필요한 탁월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여가 선용과 마음의 계발에 필요한 탁월함 중 어떤 것은 여가를 선용할 때 작동하고, 다른 것은 노동할 때 작동한다.... 용기와 끈기는 노동에, 철학(philosophia)은 여가에, 절제와 정의감은 노동과 여가 모두에 필요한데, 여가를 즐기며 평화롭게 사는 자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특히 철학과 절제와 정의감이 필요한데, 축복이 넘치는 가운데 여가를 많이 즐길수록 이 세 가지에 대한 필요도 그만큼 커진다. (1334a11) <정치학> 제7권 15장 中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는 <정치학 Politika>을 통해 여가의 중요성을 위와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가 선용은 단순히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탁월한 인간이 되기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속에서 휴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더위를 피하면서 재충전하는 이 시간 속에서 나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이웃분들 모두 즐거운 휴가보내시고 건강하게 재충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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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자나 2018-08-02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도 취약층인 노인과 아이들이 걱정되더군요. 없는 사람은 여름 나기가 낫다더니 그것도 옛말이 되려나봐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8-08-02 23:15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습니다. 짧은 생각입니다만,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 더 큰 문제인것과 맞닿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에어컨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이 더위보다 그분들을 더 힘겹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2018-08-03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3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8-03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의 궁극적 목적이 여가이고,
그 여가 활용을 통한 탁월한 인간이 되는 것

독서야말로 가장 근사치에 도달한 여가를
위한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8-03 11:25   좋아요 0 | URL
어렸을 때에는 휴가를 보낼 때 빠듯한 일정으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것이 가장 좋은 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숨을 내쉰 후에야 다시 들이쉴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을 비우고 독서를 통해 다시 채운다면 그보다 더 좋은 여가 선용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레삭매냐님께서는 이번 여름을 로맹 가리를 통해 의미있게 채우고 계신 것 같아 많이 부럽습니다. 더운 날 건강하게 보내세요!^^:)

2018-08-04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4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 영성으로 이끄는 교육
얀 우베 로게, 안셀름 그륀 지음, 장혜경 옮김 / 로도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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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Kinder Fragen nach gott>는 안셀름 그륀(Anselm Grun) 신부와 독일 교육학자 얀 - 우베 로게(Jan - Uwe Rogge)가 어린이 교육과 부모의 영성(靈性)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교육학자인 얀 - 우베 로게의 교육관에 뼈대를 두고 여기에 안셀름 그륀 신부의 영성을 살로 입힌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에 앞서 얀 -우베 로게 교수의 교육관을 살펴보자.


  저 책에 관한 서평을 보니 저의 교육관이 주요한 4가지 개념을 교육의 핵심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주장에 동의합니다. 경계의 경험과 규정, 인내, 여유, 위대한 감정의 경험. 아이들의 삶에 동행하는 사람은 위대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이때 교육의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경험하는 갖가지 감정을 지지하는 것입니다.(p9)... 또한 교육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란 지금 이 순간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한편 인내는 여유와 깊이 관련돼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허용하는 것입니다.(p10)... 끝으로 아이들에겐 경계가 필요합니다. 경계는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정해줍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경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p11)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中


 얀 - 우베 로게 교수는 자신의 교육관을 위대한 감정의 경험, 여유, 인내, 경계로 크게 정리한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면 부모들 또한 아이들과 함께 여러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위대한 경험의 과정을 부모는 어떠한 마음올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안셀름 그륀 신부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들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아이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아이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아이에게서 배운다는 의미이다. 또한 두려움에 직면한 아이와 동행한다는 건 그 아이가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내는지 지켜본다는 의미이며,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p102)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中


 그렇지만, 많은 경우 부모들은 이 과정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아이의 경험의 의미를 아이와 함께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과거에서 의미를 끌어와 공감하지 못하거나, 심한 경우 자신의 바람을 아이들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해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진] 화목한 가정(출처 : https://kor.pngtree.com/)


 부모는 항상 자신의 바람을 아이에게 투영할 위험이 높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이 살아서는 안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모든 길을 열어주었다고 믿지만, 사실 아이는 부모의 삶을 대신하는 것일 뿐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p72)...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려면 교육적인 격려와 아이의 유일성에 대한 경탄 사이에서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p73)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中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는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를 삶의 동반자 관계로 바라본다. 같은 위치에 있는 동등한 가정의 구성원들이기에 모두의 목소리는 소중하다. 그리고, 이는 부모들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바라는 부모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이 원하는 부모는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지지해주는 부모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둔 부모, 모든 문제에 대해 서둘러 대답해주는 부모가 아니다. 사실 완벽한 부모는 없다.(p41)... 완벽주의를 버리라는 건 아이가 무엇을 원하든 상관하지 말고 무관심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완벽주의의 반대말은 '나는 최선을 다했어. 그걸로 됐어!' 하는 식의 인간적 태도를 키우는 것이다.(p42)...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자의식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강점을 깨닫고, 더불어 자신의 약점과 문제점을 인정해야 자신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불완전함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p43)... 아이들은 자신에게 뭔가 기대하는 관계를 원치 않는다. 조건 없는 인정과 사랑을 원한다.(p46)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中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부모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였을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의 신비를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은 끈기 있는 지혜의 스승이다. 말로 하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어른들이 금세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다.(p23)... 사회적 병폐가 만연한 세상에서 방향을 잃은 채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살다 보니 내면을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다.(p26)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中


 나를 닮은 아이가 보이는 행동 속에서 내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아이의 행동이다 보니 좋은 모습도 있지만, 내가 부족한 모습 또한 발견되기에,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기쁨. 슬픔. 반가움, 안타까움 등 수많은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느낄 때가 많다. '이 점은 고쳤으면 싶은데...' 하는 부분에 대해 부모가 안타까움을 느끼거나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화'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거의 모든 부모가 느끼는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풀어낸다면 아마 자녀와의 관계가 위태로워질 것이기에 많은 부모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순간을 넘길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경우에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내 부모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나와 아버지 나이 차이는 30년 나는데 반해 나와 연의 나이 차이는 35년도 넘게 난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겪으신 셈이니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아이 문제를 바라보면 아버지보다는 형님되는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되어 조금은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대하게 되고, 동시에 아버지를 조금씩 더 이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이가 지혜의 스승이라는 말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된다.  


 교육학자 카타리나 마르틴과 헬무트 베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디엔가 도착하기 위해 발걸음을 떼는 것이 아니다. 움직이기 위해 발을 옮겨놓는 것이다. 목적을 위해 길을 희생하는 건 삶을 희생하는 것과 같다. 교육도 이와 같다. 배우고 알아가는 것은 길이지 목표가 아니다.(p27)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中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는 우리에게 자녀를 어떻게 키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빨리 태어난 사람이 늦게 태어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 가정(家庭)이고, 함께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 교육(敎育)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자녀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완전한 희생 대신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길이라는 내용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책의 막바지에 이르게 된다.


[사진] 황혼 무렵 노모와 아들(출처 : 위키트리)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자식이 부모의 심적 균형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부모에게는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부부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가 남게 된다. 많은 가족 구성원이 함께 살다가 다시 부부만 남게 된다. 이때 부모는 다시 남자와 여자가 되어야 한다.(p221)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中


 언젠가 자녀들은 독립할 것이고 부모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때 다시 신혼때처럼 남자와 여자 둘 만이 남았을 때, 우리는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황혼(黃昏)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저자 중 한 명인 안셀름 그륀 신부의 다른 저작 <황혼의 미학>을 통해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이는 다음 기회로 미루면서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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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9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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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9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4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4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실크로드 세계사 - 고대 제국에서 G2 시대까지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작은 진동들은 사방으로 뻗어나간 네트워크를 따라 전달되었다. 그 길을 따라 순례자와 전사 戰士, 유목민과 장사꾼들이 여행하고, 먼 곳에서 온 물건이 거래되었으며, 사상이 교류하고 수용되고 다듬어졌다. 이 길은 번영뿐만 아니라 죽음과 폭력, 질병과 재앙도 실어 날랐다. 끝없이 뻗은 이 연결망은 19세기 말 독일 지질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 Ferdinand von Richthonfen에 의해 명명된 이후 그 이름으로 불렸다. 바로 실크로드 silkroad다.(p14) <실크로드 세계사> 中


[사진] 실크로드(출처 : 위키백과)


 피러 프랭코판(Peter Frankopan)은 <실크로드 세계사 The Silk Road : A new history of the world>속에서 고대부터 2010년대까지 문명 교류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유럽이 세계사의 중심인 시기는 매우 짧았으며, 오랜 기간 세계의 중심은 중앙아시아였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세계 유수의 지적 증심지는 유럽이나 서방이 아니라 바그다드와 발흐, 부하라와 사마르칸드였다... 그들은 사상을 주고받으면서 철학과 과학, 언어와 종교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p16)... 그러나 근대 초기에 진보의 주역이 바뀌었다. 15세기 말 두 차례의 해양 탐험이 가져온 결과였다... 갑자기 서유럽은 지방의 벽지라는 위치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통신과 수송과 교역 시스템의 구심점으로 탈바꿈했다.(p17) <실크로드 세계사> 中 


 중앙아시아 중심의 세계사를 표방하는 <실크로드 세계사>는 로마보다는 페르시아가, 십자군보다는 셀주크 투르크가 역사의 중심에 놓여 있다. 마치, 지도를 거꾸로 보는 것과 같은 인식 변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대 사회가 결코 분리된 각각의 문명권이 아닌 서로 영향을 깊이 미치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약 900 페이지에 이르는 내용을 읽을 때마다 벽에 부딪치고 말것이다. 그러니, 일단 아래의 내용을 인정하고 넘어가자. 인류 역사는 고대부터 교류의 역사였다.


 고대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로마를 서유럽의 시발로 보는 것은 로마가 줄곧 동방을 바라보고 있었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동방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인도를 페르시아만 및 홍해와 연결하는 교통량이 늘면서 고대의 초기 실크로드는 활기를 띠었다.(p59) <실크로드 세계사> 中


 후대에 '비단길'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실크로드를 따라 종교, 문화, 사상, 질병 등이 활발하게 퍼져나가게 된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이 이 길을 따라 전염되었으며, 이 길을 통해 헬레니즘(Hellenism) 문화가 통일  신라에도 전파되었고, 불교와 기독교 역시 이 길을 통해 동과 서로 퍼져나갔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전파되면서 서로 혼합되고 받아들이면서 영향을 끼쳤다. 동방 기독교는 영지주의(gnosis)와 결합하면서, 서방 기독교와 다른 모습을 보였으며, 중국의 불교는 도교(道敎)의 영향으로 선(禪)사상을 결합시키는 등 독자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7세기 초의 문헌들은 기독교 성직자들이 자기네의 생각을 불교와 조화시키려 노력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는 그저 불교와 상충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대체로 말해서 기독교가 바로 불교라고 중국에 갔던 한 선교사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기독교 사상과 불교 사상을 체계적으로 융합하려 노력했다.(p110) <실크로드 세계사> 中


 그리고, 이러한 문명의 교류와 발전의 중심지는 바로 중앙아시아였다. 동과 서의 교류 중심지로서 중앙아시아는 세계의 교역품과 금(金)과 은(銀)이 모이는 풍요로운 곳이었고, 티그리스- 유프라테스(Tigris- Euphrates) 강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오랜 기간 인류에게 에덴(Eden)동산이었다. 그렇지만, 15세기에 들어 실락원(Lost Paradise)의 시대가 대항해 시대의 개막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메리카 식민지가 개척되던 초기 많은 양의 금과 은이 중앙아시아로 흘러가면서 중앙아시아는 크게 부흥하게 되지만, 분위기가 바뀌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그다드는 이슬람 세계의 풍요와 왕권의 중심지, 후원과 위신의 완벽한 상징이었다. (p165)... 많은 자료들은 대규모 교역품이 페르시아만을 드나들고 중앙아시아에 이리저리 뻗어 있던 육로를 따라 이동했음을 입증한다... 9세기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7 만점의 도자기를 실은 배가 난파한 사실은 당시 엄청난 교역 물량을 보여준다. 이 시대는 황금기였다.(p168) <실크로드 세계사> 中


 당시 황금시대가 시작된 것은 유럽뿐만이 아니었다. 발칸 반도에서부터 북아프리카까지 오스만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건설 계획이 추진되었다. 그 자금은 계속 늘고 있는 조세 수입으로 충당했다.(p384)... 그러나 서아시아가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에서 흘러들어오는 금, 은과 기타 보물들의 홍수로 돈을 벌고는 있었지만, 가장 큰 수혜자는 수출품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바로 인도, 중국, 중앙아시아였다.(p386)... 유럽과 인도의 영화는 아메리카 대륙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p392) <실크로드 세계사> 中


[사진] 피사로의 잉카 제국 정벌(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Cajamarca)


 15세기 유럽이 중심이 된 것은 과학, 종교, 자본주의의 결합을 통해 이룩한 것이었다. 풍요로운 부(富)를 과시하는 중앙아시아에 비해 가진 것이 없던 유럽은 대항해 시대를 통해 폭력을 행사할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동양에 대한 인식의 변환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부정적인 의미에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형성되는 것도 이즈음부터다.


 유럽이 1490년대의 대탐험 이후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은 그들이 폭력 및 군국주의와 굳건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p423)... 싸움과 폭력과 살육도 정당성이 있는 한 미화되었다. 이것이 아마도 종교가 그렇게 중요해진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p424)... 유럽 각국 정부는 군비에 충당할 자금이 부족하자 대출 시장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미래의 세금 수입을 담보로 돈을 뜰어올 수 있었다... 정부 부채에 대한 그들의 투자는 애국심으로 포장될 수 있었다. 국가 재정에 투자하는 것은 출세하는 길이었고, 또한 부자가 되는 방법이었다.(p428) <실크로드 세계사> 中


 표면 아래서 강력한 흐름이 눈에 띄지 않은 채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시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태도가 뻣뻤해지고 있었다. 동방을 이국적인 초목과 보물로 가득한 놀라운 나라로 보던 태도를 바꾸어, 현지 주민들을 아메리카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나약하고 쓸모없는 사람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p451)... 아시아에 대한 태도는 얻을 수 있는 이득으로 인한 흥분에서 노골적인 수탈에 대한 생각으로 바뀌었다.(p451) <실크로드 세계사> 中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시작된 식민지화는 19세기 들어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중국이 반식민지 상태에 빠지면서 제국주의(帝國主義) 시대는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동시에, 중앙아시아 역시 교역의 감소와 더불어 쇠퇴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지만, 이는 비극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인도의 대부분이 영국의 손에 넘어가자 육상 교역로가 생명력을 잃었다. 구매력과 소비력, 자산과 관심이 결정적으로 유럽 쪽으로 옮겨갔다. 군사기술과 전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기병대의 중요성이 떨어진 것 또한 수천 년 동안 아시아를 이리저리 연결해주던 길을 따라 운송되던 물량의 감소를 촉진했다. 중앙아시아는 그 이전의 남부 유럽과 마찬가지로 사라져가기 시작했다.(p457) <실크로드 세계사> 中

 

 인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과 부동항(不凍港)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대립은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1813 ~ 1907)으로 치닫게 된다. 이제는 전쟁터로 바뀐 중앙아시아는 러시아, 영국, 오스만 투르크의 격전장이 되버렸다. 아직 석유를 주동력으로 사용하기 이전, 이 지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기에는 세계적인 밀의 생산지 우크라이나가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지역의 전략적 가치에 관심을 기울인 이는 히틀러(Adolf Hitler, 1889 ~ 1945)였다.


[사진] 우크라이나 밀(출처 : https://www.agweb.com/article/higher_wheat_prices_more_complex_than_ukraine_turmoil_naa_ben_potter/)


 문제를 러시아의 영토가 빠른 속도로 확장되면서 자신감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p468)... 크림 반도와 아조프해에서 벌어지고 다른 곳들에서 잠깐 비쳤던 어렴풋한 전쟁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익이 걸려 있었다... 러시아를 통제하고 암묵적으로 인도에서의 영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법은 크림 반도와 캅카스 전역의 통제권을 오스만에 넘겨주는 것이었다.(p477) <실크로드 세계사> 中


당시 식량부족으로 힘들어 하던 히틀러는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Unternehmen Barbarossa)을 통해 소련을 침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침공 결과는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Schlacht von Stalingrad)를 통해 독일의 패배로 끝나게 되지만, 이 지역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 바르바로사 작전(출처 : http://www.stalkerzone.org/collapse-barbarossa-stopped-hitlers-death-machine/)


 히틀러는 1940년 7월 말 새로운 모험을 발표하면서 그것을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위장했다. 이제 볼셰비즘을 제거할 기회라고 그는 요들 장군에게 말했다. 그러나 사실 문제가 된 것은 원자재와 무엇보다도 식료품이었다... 바케는 독일의 문제에 소련이 해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집착했다. 러시아 제국이 팽창하면서 스텝 지대는 유목민들의 목장에서 곡창지대로 서서히 변모했다.(p612)... 우크라이나는 열쇠였다. 흑해 북안과 카스피해 너머까지 펼쳐지는 풍요로운 농작물 평원을 손아귀에 넣으면 독일은 천하무적이 된다.(p613) <실크로드 세계사> 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을 대신해서 중앙아시아에서 소련과 대립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이 중앙아시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레이건의 아래 말이 잘 표현하고 있다. 미국은 '검은 황금'이라 불리우는 석유의 생산지인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결코 잃어서는 안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란-이라크 전쟁(1980 ~ 1988)', '걸프전쟁(1990)', '미국 -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 ~ )', '미국 - 이라크 전쟁(2003 ~ 2011)'등의 사건이 직간접적으로 미국과 연계되어 이어지게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소련과 따뜻한 바다 인도양의 입구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소련이 왜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 그 나라를 점령하고, 가능하다면 이란과 파키스탄까지 점령하려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리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란에 매장된 석유는 세계 경제의 장기적인 건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p795) <실크로드 세계사> 中


 15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계속된 유럽-미국의 패권은 최근 중국(中國)의 부상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들어가는 중국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실크로드 세계사>는 마무리 된다. 


[그림] 일대일로(출처 : http://chinesewiki.uos.ac.kr/wiki/index.php/%EC%9D%BC%EB%8C%80%EC%9D%BC%EB%A1%9C)


 중국 정부는 물자와 에너지원에 연결되고 도시, 항구, 대양들에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꼼꼼하고도 신중하게 구축하고 있다. 교역의 물량과 속도를 대폭 늘리기 위한 기반시설을 개선하거나 아예 새로 건설하는 데 막대한 돈을 투자한다는 발표가 매달 새로 나온다.(p854)... 시진핑이 2013년에 제시한 일대일로 一帶一路 비전에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다는 것은 중국이 미래를 계획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p862)<실크로드 세계사> 中


 <실크로드 세계사> 가 다루는 시대의 범위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약 9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그렇지만, 해당 시기의 주요 사건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서술하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다. 동시에,  실크로드의 역사 전체를 보여준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세계사의 우리의 시각이 확장됨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살펴보자.


  많은 경우 우리는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 개인의 극단적인 분노의 결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그처럼 엄청난 일이 개인의 단순한 증오에서만 비롯되었을까? 여기서 당시 히틀러가 단기간에 유럽을 지배하면서 식량과 원자재가 부족했었다는 점을 연계해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자원 부족을 절감한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게 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자원을 소모하는 인구(人口)를 줄이려는 목적으로도 유대인 대학살을 감행한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와 나치독일의 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유태인 학살은 나름의 위기 탈출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태인 학살을 독일 국내 문제, 히틀러 개인의 문제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조금 범위를 넓혀 본다면, 이처럼 새롭게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실크로드 세계사>는 이렇게 새로운 관점을 여러 곳에서 제시한다.


 이처럼, <실크로드 세계사>는 우리에게 문명권들간의 영향력과 배경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를 통해서 '국내'요인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버리고, 세계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실크로드 세계사>는 좋은 문명교류사 입문서적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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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6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6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7-26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 개 주셨으니 기대되는 책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8-07-26 18:28   좋아요 0 | URL
두꺼운 페이지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만,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큰 부담없이 즐겁게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읽자나 2018-07-26 1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국주의 특히 영국이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분쟁의 씨앗을 심어 놓았는지 보고 화났던 기억이...

겨울호랑이 2018-07-27 09:55   좋아요 1 | URL
네 읽자나님의 말씀처럼 현대 중동 문제의 씨앗을 유럽 열강들이 심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중동 및 아프리카의 난민 문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서니데이 2018-07-27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무척 더운 날씨입니다.
겨울호랑이님,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고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7-27 18:28   좋아요 1 | URL
정말 계속 더운 요즘이네요. 서니데이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루돌프 폰 예링 권리를 위한 투쟁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0
루돌프 V.예링 지음, 윤철홍 옮김 / 책세상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법(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법이 부당하게 침해되고 있는 한 법은 이러한 투쟁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즉 민족과 국가 권력, 계층과 개인의 투쟁이다. 이 세상의 모든 권리는 투쟁에 의해 쟁취되며, 중요한 모든 법규 Rechtssatz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법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쟁취된 것이다.... 법은 끊임없는 노동이다. 더욱이 이것은 국가 권력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요구되는 노동이다.(p37) <권리를 위한 투쟁> 中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 ~ 1892)은 그의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 Der Kampf um das Recht>에서 법을 투쟁(鬪爭)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를 도출하기 위해 그는 개인간 소유권(所有權) 분쟁을 예시로 설명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 의해 부당한 권리 침해가 있을 경우 우리 앞에는 두 개의 선택이 놓여있다. 법적인 다툼인가, 아니면 조용하게 넘어갈 것인가. 


 권리 침해가 있는 경우 모든 권리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즉 자기 권리를 주장해서 상대방에게 저항할 것인가, 즉 투쟁한 것인가 혹은 다툼을 피하기 위해 권리를 포기할 것인가? 이 결정이 어떻게 내려지든 간에 권리자는 두 가지 경우에 하나의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p53)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저자는 권리를 침해한 자가 모욕한 것은 그 권리가 아닌 권리를 소유한 사람이라는 점을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강조한다. 즉, 재산권 침해가 아닌 인격모독 사건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권리를 침해받은 사람은 인격 모욕을 참아서는 안되고, 이에 대한 반격을 해야한다. 예닝은 이를 자신에 대한 '의무'라고 해석한다.


 원고가 권리에 대한 굴욕적 침해를 방어하려는 소송에서는 사소한 소송의 목적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격 그 자체와 인격적 법감정에 대한 주장이라는 이상적 목적을 위해서 투쟁한다.(p55)... 내면의 소리는 그에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며, 그에게는 이미 무가치한 소송물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 명예, 법감정, 자존심 등을 위해 소송하라고 강조한다(p56)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인격 그 자체에 도전하는 굴욕적 불법에 대한 저항, 즉 권리에 대한 경시와 인격적 모욕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형태로서의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의무다. 이것은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의무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의무다.(p57) ... 어떤 물건이 우연히 내 권리 범주 안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나를 침해하지 않고서는 내게서 빼앗아갈 수 없다. 나와 그 물건 사이의 유대는 우연이 아니라 나의 의지에 의해 결합되기 때문이다.(p75)... 소유권은 오직 물질적으로 확장된 내 인격의 외연에 불과하다.(p76)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어떻게 보면, 재산권 침해를 개인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의 비약을 막고자, 예링은 '악의(惡意)의 추정(推定)' 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법률 용어로 악의는  '법률의 효과에 영향을 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상대방이 악의가 있다는 것은 '내 권리를 인지했음에도 침해하려는 자'라는 것을 의미하고, 예링의 논리는 보완된다.

 

 당사자를 효과적으로 움직이게끔 하는 유일한 것은 당사자를 소송으로 이끈, 상대방에 대한 악의(惡意)의 추정(推定)이다. 만약 이러한 악의의 추정에 반증을 제시한다면 원래의 반감은 약화될 것이며, 당사자는 이익의 관점에서 사건을 고찰하게 되고, 이에 따라 화해가 성립된다.(p61)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이러한 투쟁의 동력을 예링은 법감정(法感情)이라고 해설하면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닌 감정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결론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개인은 투쟁해야 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저자는 이를 국제법으로까지 확대시켜 나간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1948년에 제정된 우리 헌법에는 우리의 법감정이 흐르고 있는가?


 인간이 자기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고통은 그 권리가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즉 그것이 일차적으로는 해당 개인에게, 그 다음에는 인간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아주 강압적이고도 본증적인 자기 고백을 내포하고 있다.(p77)... 오성(悟性)이 아니라 오직 감정만이 이 문제에 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권리의 심리적 원천을 법감정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다. 법의 힘은 사랑의 힘과 마찬가지로 감정 속에 깃들어 있다.(p78)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주관적 혹은 구체적 권리를 위한 투쟁은 권리의 침해 혹은 불법적인 억압에 의해 야기된다. 개인의 권리든 민족의 권리든 그 어떤 권리도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기 떄문에, 이 투쟁은 아래로는 사법으로부터 위로는 헌법과 국제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률분야에 걸쳐 반복된다는 결론에 이른다.(p51)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사진] 삼총사(출처 : http://www.isrageo.com/2017/09/23/dumas868/)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pere, 1802 ~ 1870)의 <삼총사 Les Trois Mousquetaires>의 처음을 보면 주인공 달타냥이 삼총사(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달타냥의 작은 실수에도 자신이 모욕당했다는 느낌을 받은 삼총사들은 결투를 약속하고 이렇게 그들의 모험은 시작된다..


 위의 장면을 언뜻 보면 등장인물들이 너무 쉽게 화를 낸다고 여겨지지만, 이들의 정서에 '악의 추정 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해가 된다. 결국, 이러한 일을 통해 예링이 말한 '악의 추정 원칙'은 서구의 법감정이 반영된 것이며, 법감정에는 사회의 모든 것이 녹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감정이 우리의 감정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1948년 헌법을 제정할 때 서구 법체계를 따랐기 때문에 우리 법 속에는 서구 법감정이 흘러있다. 이처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법체계 때문에 우리는 권리를 위한 투쟁이 아닌 현실과 다른 법을 고치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통해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법에 대한 생각을 2018년 7월에 일어난 슬픈 사건과 함께 엮어 하게 된다.


 나의 견해로는 민감성, 즉 권리 침해에 대한 고통을 느끼는 능력과 실천력, 다시 말하면 공격을 물리치는 용기와 결단이 바로 건전한 법감정을 판단하는 두 가지 표준이다.(p79)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우리는 약자의 권리 침해에 대해 고통을 느끼는 능력과 실천력이 뛰어난 정치인 노회찬을 잃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체계 속에서 불법을 괴로워하다 운명을 선택한 그의 죽음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54731.htm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권리를 위한 투쟁> 중 자신에게 엄격했던 그를 생각하게 하는 문장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법률을 적용하려는 용기를 가진 소수자들의 운명은 진정한 순교로 나타난다. 자신들로 하여금 자의에 승복하기를 허용하지 않는 소수자들의 강력한 법감정이 스스로에게는 저주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p86) <권리를 위한 투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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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7-25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투쟁!! 투쟁!!!

겨울호랑이 2018-07-25 15:42   좋아요 1 | URL
^^:) 사회의 잘못된 제도가 차츰 고쳐지길 바라봅니다.

NamGiKim 2018-07-25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싶어 집니다.^-^

syo 2018-07-25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투쟁의 결과물이 법은 아닐까요. 투쟁의 승리자들이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조문을 만들고 겸사겸사 전리품도 챙기고.....

겨울호랑이 2018-07-25 20:13   좋아요 0 | URL
예링은 본문에서 타인에 대한 투쟁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법에 대한 투쟁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syo님의 투쟁의 결과물이 법이라는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현실에서도 판례가 또 하나의 법으로서 작용하는 모습을 보면 법은 역사와 더불어 승자의 기록이라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갱지 2018-07-28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리를 위한 투쟁...의 원동력은 인간의 힘이겠지요. 중생들이 모여서 만든 힘이던, 소수 권력자가 가지는 힘이던,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부가 중심이고.
그런 논리라면 법의 세분화라는 게 신용할 수 있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또 기본적인 윤리도덕조차 법이 필요한 세상이니
참 난감한 법이네요.

겨울호랑이 2018-07-28 10:28   좋아요 1 | URL
갱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법으로 인간 삶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법을 이용하기 전에 사회의 상식으로 조화롭게 조정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2018-08-02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2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3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튼의 평화론
토마스 머튼 지음, 조효제 옮김 / 분도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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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더 정확히 말해 "우리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하다.(p44)... 공산주의자들이 핵무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라는 질문과 상관없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라. 우리는 핵무기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핵무기를 없앨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소련에게 사용할 것인가? 이 점에 대해 조금이라도 할 말이 남았는가? (p46) <머튼의 평화론> 中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 ~ 1968)은 저서 <머튼의 평화론 Peace in the Post Christian Era>에서 핵무기를 보유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상되는 답은  강력한 핵을 통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과 민주주의의 수호 정도겠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 머튼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핵 억지력을 옹호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윤리 원칙을 악용하는 작태에 우리는 우려를 금치 못한다. 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핵 억지력에 수반된 역설은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역설의 한 변형이다. 즉, 우리가 살기 위해서 기꺼이 남을 죽이고 나 자신도 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도저히 정상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오도된 관점이다.(p52) <머튼의 평화론> 中 


 오늘날 이 나라에서 전 세계가 공산주의의 수중에 떨어지느니 모두 함께 자멸하는 게 낫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모두 포기한 패배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똑같은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다.(p227) <머튼의 평화론> 中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은 민간인과 군인, 적과 나 자신을 구분하지 않고 해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는 머튼의 이야기는 다른 반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대량살상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의 사용은 괜찮은가? 이에 대한 머튼의 반론 역시 명확하다. 전쟁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머튼은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진다. 전쟁을 통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설령 어떤 전쟁이 '정당한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전쟁 도중 명백하게 정당하지 않은 수단에 의지하게 되거나 병사들과 전략가들이 한없이 비인도적인 잔혹성에 사로잡히게 될 경우 '불의의 전쟁'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p122) <머튼의 평화론> 中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게 무엇인가? 우리의 종교인가 우리의 물질적 부인가? 아니면 종교와 돈을 우리가 완전히 동일시하게 되어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이제 도저히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p147) <머튼의 평화론> 中 


 머튼은 1960년대 냉전(冷戰)상황이 윤리(倫理)의 붕괴, 가치관의 상실에서 온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윤리와 가치가 붕괴된 현실에서 개인은 물질적 풍요에 빠지게 되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이러한 진단은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이라는 처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내가 작금의 긴박한 전쟁 직전 상황 속에서 단 하나의 근본적 진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피상적이고 극단적인 종교적 신조를 반대하는 것이다. 모든 핵전쟁, 그리고 꼭 핵무기가 아니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도시와 인간과 국가와 문화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것은 극히 중대한 범죄행위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교 윤리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그 어떤 정상적인 도덕률에 의해서도 금지되는 행위다... 우리에게는 영성적이고 윤리적인 중심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폭력성을 자제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도록 도와주는 내적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p61) <머튼의 평화론> 中 


 머튼은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자가 최선(最善)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노력하고, 이를 공론화(公論化)시킬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군비감축 등 구체적인 평화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최선의 인간 가치를 옹호하고 북돋우어야 한다.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와 자신의 도덕성에 걸맞은 방식으로 자기 삶을 발전시킬 권리가 바로 그러한 최선의 인간 가치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이 보유한 거대한 파괴력이 범죄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인류를 지켜야 한다.(p48) <머튼의 평화론> 中 


 문제의 핵심은 점진적이고 합리적으로 협상된 군비 철폐안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잘 연구하여 희망의 분위기와 협상의 자신감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선결적인 과제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인 것이다.(p185) <머튼의 평화론> 中


 국가의 논리적 행동을 자극하기 위하여 여론의 압력이 반드시 한몫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바로 이 때문에 개명된 양심이라면 반드시 준수할 도덕정 한계를 명백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원칙을 공표하고 그 원칙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대외적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그런 원칙이 정책의 향방에 결정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p202)...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동으로 발언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내적 의도와 외적 행위 간의 거리를 좁혀야 함을 의미한다.(p238)  <머튼의 평화론> 中


 이렇게 바라본다면, 머튼의 평화론은 다른 평화론자들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는 일반론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머튼의 평화론이 다른 이유는 행동의 주체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 주변이 사악(邪惡)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문제를 알려주기에,  독자들은 반성(反省)하게 된다. 


 전체주의와 관련해 우리 외부의 적인 공산주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파시즘적 경향 또는 집단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도 반대해야 한다.(p48) <머튼의 평화론> 中 


 그러므로 만일 평화의 복음이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더 이상 확신에 차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와 일치와 사랑의 생생한 모범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겠다.(p232)<머튼의 평화론> 中


 군비 철폐를 내걸고 회의를 개최하여 선전 목적의 제안을 내놓았다가 상대방이 그것을 진지하게 취급하려는 기색이 보이면 황급히 그 제안을 거두어들이는 식의 행태를 부릴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이런 점에 있어 공산주의자들이 부정직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서방 역시 허물이 있기는 마찬가지다.(p42) <머튼의 평화론> 中 


 많은 이들이 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tic for tac strategy'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임이론(game theory)에서 비롯된 듯하다. 대표적으로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 ~ )도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를 통해  TFT(Tic For Tac) 전략을 통해 유전자의 진화해 왔음을 밝히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보복전략이 우수한 전략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비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사진] 2017년 국가예산 중 국방비 비중 약 10%(출처 : http://hansang1006.tistory.com/146)


 이 책은 핵무기를 대규모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공격용이건 보복용이건 간에 그리스도교 윤리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취한다.(p39)... 제한된 전쟁을 추구하기보다 온전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더욱 그리스도교 정신에 맞고 더욱 인도적일 뿐만 아니라 더욱 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p40) <머튼의 평화론> 


[그림] 스티븐 코비의 시간관리 매트릭스(출처 : 국민일보)


 스티븐 코비(Stephen Richards Covey, 1932 ~ 2012) 박사에 의하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중요함 - 긴급함'의 Matrix를 잘 활용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중요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에 매여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 국방과 관련해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보다 진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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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4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머튼이 이런 책도 썼군요! 우아

겨울호랑이 2018-07-24 14:19   좋아요 1 | URL
네, 토머스 머튼이 일반적으로 <칠층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토머스 머튼의 장자의 도>와 <머튼의 평화론>을 좋아합니다.^^:)

2018-07-24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4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7-24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칠층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읽히지 않아 버린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20대때 안 읽히니 평생 못 읽을 것 같았는데. 그 이름만 들어도 그 명성 그대로..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24 14:42   좋아요 1 | URL
저도 <칠층산>이 쉽게 안 읽혔습니다. 수도경험을 경험한 분들은 피부에 다가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책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고백록에 해당하는 책들은 읽기 힘들어 피하게 됩니다. 카알벨루치님 감사합니다.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