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튼의 평화론
토마스 머튼 지음, 조효제 옮김 / 분도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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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더 정확히 말해 "우리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하다.(p44)... 공산주의자들이 핵무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라는 질문과 상관없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라. 우리는 핵무기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핵무기를 없앨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소련에게 사용할 것인가? 이 점에 대해 조금이라도 할 말이 남았는가? (p46) <머튼의 평화론> 中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 ~ 1968)은 저서 <머튼의 평화론 Peace in the Post Christian Era>에서 핵무기를 보유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상되는 답은  강력한 핵을 통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과 민주주의의 수호 정도겠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 머튼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핵 억지력을 옹호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윤리 원칙을 악용하는 작태에 우리는 우려를 금치 못한다. 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핵 억지력에 수반된 역설은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역설의 한 변형이다. 즉, 우리가 살기 위해서 기꺼이 남을 죽이고 나 자신도 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도저히 정상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오도된 관점이다.(p52) <머튼의 평화론> 中 


 오늘날 이 나라에서 전 세계가 공산주의의 수중에 떨어지느니 모두 함께 자멸하는 게 낫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모두 포기한 패배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똑같은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다.(p227) <머튼의 평화론> 中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은 민간인과 군인, 적과 나 자신을 구분하지 않고 해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는 머튼의 이야기는 다른 반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대량살상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의 사용은 괜찮은가? 이에 대한 머튼의 반론 역시 명확하다. 전쟁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머튼은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진다. 전쟁을 통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설령 어떤 전쟁이 '정당한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전쟁 도중 명백하게 정당하지 않은 수단에 의지하게 되거나 병사들과 전략가들이 한없이 비인도적인 잔혹성에 사로잡히게 될 경우 '불의의 전쟁'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p122) <머튼의 평화론> 中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게 무엇인가? 우리의 종교인가 우리의 물질적 부인가? 아니면 종교와 돈을 우리가 완전히 동일시하게 되어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이제 도저히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p147) <머튼의 평화론> 中 


 머튼은 1960년대 냉전(冷戰)상황이 윤리(倫理)의 붕괴, 가치관의 상실에서 온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윤리와 가치가 붕괴된 현실에서 개인은 물질적 풍요에 빠지게 되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이러한 진단은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이라는 처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내가 작금의 긴박한 전쟁 직전 상황 속에서 단 하나의 근본적 진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피상적이고 극단적인 종교적 신조를 반대하는 것이다. 모든 핵전쟁, 그리고 꼭 핵무기가 아니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도시와 인간과 국가와 문화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것은 극히 중대한 범죄행위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교 윤리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그 어떤 정상적인 도덕률에 의해서도 금지되는 행위다... 우리에게는 영성적이고 윤리적인 중심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폭력성을 자제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도록 도와주는 내적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p61) <머튼의 평화론> 中 


 머튼은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자가 최선(最善)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노력하고, 이를 공론화(公論化)시킬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군비감축 등 구체적인 평화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최선의 인간 가치를 옹호하고 북돋우어야 한다.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와 자신의 도덕성에 걸맞은 방식으로 자기 삶을 발전시킬 권리가 바로 그러한 최선의 인간 가치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이 보유한 거대한 파괴력이 범죄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인류를 지켜야 한다.(p48) <머튼의 평화론> 中 


 문제의 핵심은 점진적이고 합리적으로 협상된 군비 철폐안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잘 연구하여 희망의 분위기와 협상의 자신감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선결적인 과제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인 것이다.(p185) <머튼의 평화론> 中


 국가의 논리적 행동을 자극하기 위하여 여론의 압력이 반드시 한몫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바로 이 때문에 개명된 양심이라면 반드시 준수할 도덕정 한계를 명백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원칙을 공표하고 그 원칙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대외적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그런 원칙이 정책의 향방에 결정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p202)...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동으로 발언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내적 의도와 외적 행위 간의 거리를 좁혀야 함을 의미한다.(p238)  <머튼의 평화론> 中


 이렇게 바라본다면, 머튼의 평화론은 다른 평화론자들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는 일반론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머튼의 평화론이 다른 이유는 행동의 주체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 주변이 사악(邪惡)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문제를 알려주기에,  독자들은 반성(反省)하게 된다. 


 전체주의와 관련해 우리 외부의 적인 공산주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파시즘적 경향 또는 집단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도 반대해야 한다.(p48) <머튼의 평화론> 中 


 그러므로 만일 평화의 복음이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더 이상 확신에 차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와 일치와 사랑의 생생한 모범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겠다.(p232)<머튼의 평화론> 中


 군비 철폐를 내걸고 회의를 개최하여 선전 목적의 제안을 내놓았다가 상대방이 그것을 진지하게 취급하려는 기색이 보이면 황급히 그 제안을 거두어들이는 식의 행태를 부릴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이런 점에 있어 공산주의자들이 부정직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서방 역시 허물이 있기는 마찬가지다.(p42) <머튼의 평화론> 中 


 많은 이들이 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tic for tac strategy'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임이론(game theory)에서 비롯된 듯하다. 대표적으로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 ~ )도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를 통해  TFT(Tic For Tac) 전략을 통해 유전자의 진화해 왔음을 밝히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보복전략이 우수한 전략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비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사진] 2017년 국가예산 중 국방비 비중 약 10%(출처 : http://hansang1006.tistory.com/146)


 이 책은 핵무기를 대규모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공격용이건 보복용이건 간에 그리스도교 윤리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취한다.(p39)... 제한된 전쟁을 추구하기보다 온전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더욱 그리스도교 정신에 맞고 더욱 인도적일 뿐만 아니라 더욱 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p40) <머튼의 평화론> 


[그림] 스티븐 코비의 시간관리 매트릭스(출처 : 국민일보)


 스티븐 코비(Stephen Richards Covey, 1932 ~ 2012) 박사에 의하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중요함 - 긴급함'의 Matrix를 잘 활용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중요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에 매여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 국방과 관련해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보다 진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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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4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머튼이 이런 책도 썼군요! 우아

겨울호랑이 2018-07-24 14:19   좋아요 1 | URL
네, 토머스 머튼이 일반적으로 <칠층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토머스 머튼의 장자의 도>와 <머튼의 평화론>을 좋아합니다.^^:)

2018-07-24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4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7-24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칠층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읽히지 않아 버린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20대때 안 읽히니 평생 못 읽을 것 같았는데. 그 이름만 들어도 그 명성 그대로..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24 14:42   좋아요 1 | URL
저도 <칠층산>이 쉽게 안 읽혔습니다. 수도경험을 경험한 분들은 피부에 다가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책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고백록에 해당하는 책들은 읽기 힘들어 피하게 됩니다. 카알벨루치님 감사합니다.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