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론의 핵심적인 쟁점은 우주의 시작이 있었는지 혹은 없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 특이점은 단순히 물질의 시작이 아니다. 이것은 공간의 시작이자 시간의 시작이고 물리학 자체의 시작이다. 즉 모든 것의 존재의 시작이다. _ 니콜라스 하이엄 외, <프린스턴 응용수학 안내서 1> , p933


  제프리 R. 윅스(Jeffrey R. Weeks)의 <우주의 모양 The Shape of Space>은 위상수학의 곡면, 다양체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우주의 기원, 모양에 대해 설명하는 위상수학, 우주학 입문서다. 여러 그림과 사이트를 통한 인터넷 자료 제공으로 최대한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 애쓴 노력이 담긴 책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위상수학은 낯선 분야이기에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저자는 에드윈 A. 애벗(Edwin A. Abbott, 1838 ~ 1926)의 전설적인 수학 소설 <플랫랜드 Flatland: A Romance of Many Dimensions>의 상황을 빌려와 설명하는데, 결론적으로 추정되는 우주의 모형은 타원형 기하(a+b+c>180,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보다 큰 기하), 유클리드 기하(a+b+c=180), 쌍곡형 기하(a+b+c<180)로 압축시킨다. 그리고 이로부터 유력한 모형인 삼차원 토러스(3-torus)를 소개한다. 


[그림] 3차원 토러스(출처 : 위키백과)


 만약 우주가 타원형 기하를 가진다면 우주는 닫혀 있어야 합니다. 반면 우주가 유클리드 혹은 쌍곡형 기하를 가진다면, 우주는 닫혀 있을 수도 있고 열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_ 제프리 R. 윅스, <우주의 모양> , p231


 1890년에 클라인은 훨씬 더 일반적인 해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다중연결된 우주입니다. 다중연결된 삼차원 다양체 중 가장 단순한 것은 바로 삼차원 토러스입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삼차원 다양체가 다중연결되었다는 것은 그 다양체 안에서 자신의 다중상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닫힌 삼차원 다양체 중 삼차원 구를 제외한 모든 것은 다중연결된 것입니다. 유명한 푸앵카레의 추측은 더 이상의 예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_ 제프리 R. 윅스, <우주의 모양> , p240


 저자가 삼차원 토러스를 기본 모델로 설명한 것은 무한히 많은 방향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구조(다중연결)를 갖기 때문으로, 적어도 이러한 구조를 갖는다는 것은 '균질성'과 '등방성'이라는 최소한의 기준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결론은 '우주의 모양을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내려진다.


 관찰을 통해, 우주에서 적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부분은 균질하며 등방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균질성은 우주의 어떤 두 지역도 기본적으로는 똑같다는 말입니다. 물론, 상당히 큰 규모로 볼 때 말입니다... 등방성은 우리가 우주의 어디에 있든지 간에 기본적으로는 모든 방향이 똑같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등방적인 우주는 반드시 균질합니다.(p224)... 다행히도 우리가 고려해야 할 균질하고, 등방적인 국소적 기하는 세 개밖에 없습니다. 즉, 타원형 기하, 유클리드형 기하, 그리고 쌍곡형 기하입니다. _ 제프리 R. 윅스, <우주의 모양> , p225


 중력은 전체적으로 우주를 지배한다. 충분히 큰 규모에서 관찰된 우주는 공간적으로 균일하고(공간의 어떤 점도 다른 점보다 선호되지 않는다) 등방성(어떤 방향도 다른 방향보다 선호되지 않는다)인 로버트슨 - 워커(Robertson-Walker)메트릭에 의해서 잘 설명된다. 메트릭은 시간에 종속적이다. _ 니콜라스 하이엄 외, <프린스턴 응용수학 안내서 1> , p931


 우리는 우주의 모양을 3개의 공간과 1개의 시간을 통해 설명한다. 이른바 시공간(Space-Time)은 빅뱅(Big Bang)과 함께 태어났고, 약 46억년 이전(빅뱅 이전)의 세계는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우주는 무한(無限)이라 하겠다. (동시에, 우주의 나이가 46억년이라는 사실은 우주의 유한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진 도구로는 우주의 온도가 충분히 내려간 탄생 이후 38만년 정도부터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관찰의 한계점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이상한 사건들이 빅뱅 직후 수 억 조분의 일 초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온도, 압력 그리고 밀도가 엄청나게 높았는데, 무한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중력이 양자의 특성을 띠게 되지만 중력에 대한 양자이론은 아직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빅뱅 직후의 우주가 어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_ 제프리 R. 윅스, <우주의 모양> , p237


 우주는 팽창하면서 식었습니다. 빅뱅으로부터 약 30만 년이 지나자, 우주는 뜨거운 플라즈마가 기체로 응축될 수 있을 정도로 식었습니다. 우주는 투명해졌고, 따뜻하지만 맑은 수소와 헬륨으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_ 제프리 R. 윅스, <우주의 모양> , p251


  이러한 한계점은 왜 생겨나는가. 그것은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알아내는 방식이 '빛'에 의한 '시간 안'에서의 관찰이기 때문이다. 관찰은 눈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빛은 결코 '광속 光速'이라는 '절대수치'를 넘어설 수 없다. 이로부터 우리의 관찰을 통한 우주 모형의 증명은 한계점을 갖고 출발한다. 시간적으로는 '시간 탄생 이전'을 규명하지 못하며, 우주 공간의 팽창 역시 설명할 수 없다. 몇 억년 이전 출발해 관측된 '빛'으로부터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허블의 법칙 - 우리은하에서 거리가 먼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우리은하에서 멀어지고 있다 - '를 확인하는 정도다. 또한, 관찰된 결과는 오히려 더 큰 수수께끼를 던져주는데, 천구의 모든 방향에서 거의 같은 온도의 빛이 관측된다는 것은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된다. '우주초단파배경복사'가 던져주는 이러한 의문은 기존의 빅뱅 모델이 갖는 한계점 - 지평선 문제 - 와 연결된다.


 실제 우주의 좋은 모형이 되기 위해서 우주 모형은 천문학적인 관측에서 옳은 결과를 예측해야만 한다... 우주론적 관측과 관련하여 핵심이 되는 물리량은 적색편이, 면적 거리(혹은 겉보기 크기), 거리의 증가에 대응하는 국소적 부피가 있다. 발산된 빛에 대한 관측된 빛의 비율이 모든 파장에서 같다는 점은 적색편이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_ 니콜라스 하이엄 외, <프린스턴 응용수학 안내서 1> , p933


 원래 우주의 온도는 기체로 응축하기 시작한 때의 플라즈마와 같은 약 3000K였습니다. 그러나 우주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1100배로 팽창했고, 3000K의 적외선 광자로 파장이 늘어나서 차가운 2.7K의, 즉 절대 영도보다 2.7도 높은 초단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주초단파배경복사  Cosmic Microwave Background[CMB] radiation입니다. 그것은 현재 1세제곱센티미터 당 약 400개의 광자 밀도로 전체 우주를 채우고 있습니다. _ 제프리 R. 윅스, <우주의 모양> , p253


 이러한 '지평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인플레이션 (Inflation 급팽창)이론이 내놓으며1980년대부터 제기되어 현재 주류이론이 되었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 펜로즈(Sir Roger Penrose, 1931 ~ )다.


 구조의 형성과 관측 환경에 영향을 주는 근본적인 성질 중 하나는 원인이 되는 영향이 빛의 속도보다 큰 속도로 전파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한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원인이 되는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역은 과거 영원뿔에 의하여 경계가 만들어진다. 우주의 나이가 유한하다는 것과 같이 고려하면, 위의 한계는 인과적으로 연결이 가능한 우주 영역의 경계가 되는 입자 지평선의 존재성을 알려준다... 지평선의 중요성은 두 가지이다. 지평선은 구조와 균일성의 근원과 관계되는 인과 한계성의 근본이 되고, 우주에서 실험할 수 있는 것의 절대적인 한계를 나타낸다. 우주의 초지평선 구조에 관한 현재의 많은 추측은 관측을 통하여 확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시 지평선 너머에 있는 것과 관련된 어떤 분명한 정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_ 니콜라스 하이엄 외, <프린스턴 응용수학 안내서 1> , p934 


 <실체에 이르는 길>에는 인플레이션 이론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근거와 함께 자세히 담겨있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입장은 전체적으로 '대칭(對稱, symmetry'에 부정적인 그의 전반적 성향과도 맞닿아 보인다.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 ~  1900)은 '아름답움이 진실이고, 진실은 아름답다'고 했지만, 매끈한 대칭 보다는 복잡한 프랙탈(fractal)구조를 더 선호하는 펜로즈의 비판을 초끈이론, M이론 역시 피해가지 못한다. 과학계에서 유행처럼 등장하는 새로운 이론에 비판적인 펜로즈의 입장은 <실체에 이르는 길>의 별도의 리뷰에서 다루기로 하자. 여기서는 펜로즈가 정리한 인플레이션 이론의 대강만 챙기자.


 구스(Alan Guth)의 인플레이션(급팽창) 이론이 알려진 후, 사람들은 우주의 '급팽창 시기'가 우주의 균질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주는 놀라울 정도로 균질하며 매우 큰 스케일에서 공간적으로 평평하다. 이것은 우주론학자들에게 커다란 수수께끼였다... 표준모형에서 열화에 꼭 필요한 인과적 상호교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를 '지평선 문제'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의 또 다른 장점은 물질의 분포와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가 균일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끈함 문제 smoothness problem'로 알려져 있다. _ 로저 펜로즈, <실체에 이르는 길 2> , p389


 <우주의 모형>에서 언급한 우리 우주의 모형은 대단히 추상적이다. 추상적일 뿐 아니라 증명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스스로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Godel's incompleteness theorems)처럼 우주 안에 살고 있는 우리가 우주의 한계 너머를 규명한다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백가쟁명(百家爭鳴)처럼 펼쳐지는 것이 아닐까. 우주의 모양을 단적으로 아는 것도 좋겠지만, 이러한 이론 등을 배우는 과정에서 팽창하는 우주와 함께 우리 자신도 커나가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 역시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위상수학을 잘 알았더라면 <우주의 모양>을 더 깊이 있게 이해했겠지만, 일단 이 정도로 내용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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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1-09-05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급해주신 책 중에서 <플랫 랜드>는 읽어볼 수 있을까 싶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9-05 22:38   좋아요 1 | URL
언제나 깊이있게 책을 읽으시는 초란공님께서는 <플랫 랜드>외에 다른 책들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전에 다른 책들이 초란공님의 관심을 끌어야 하겠지만요. ^^:)

초란공 2021-09-05 23:17   좋아요 1 | URL
이제 읽고 싶은 책이 많이 보이는데 노안이 와서 마음만 급해집니다~^^; 겨울호랑이님처럼 즐길 수 있으면 하고 바랄뿐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9-06 05:17   좋아요 1 | URL
저도 초란공님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읽을 책은 많지만 이런저러한 상황이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네요... ㅜㅜ 그럼에도 놓지 않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초란공님께서도 여유로운 독서 되세요! ^^:)

scott 2021-10-08 15: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축!

항상 좋은글, 리뷰
고맙습니다 ^ㅅ^

겨울호랑이 2021-10-08 17:38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mini74 2021-10-08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 얼굴을 한 호랑이님 ㅎㅎ 축하드립니다. 어렵지만 항상 잘 보고 배우고 한답니다 ~

겨울호랑이 2021-10-08 17:39   좋아요 1 | URL
미니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서니데이 2021-10-08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0-08 18:36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0-08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축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0-08 23:46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독서괭 2021-10-08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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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 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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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 밑부분에 쳐놓은 거미줄에서는 바야흐로 무서운 사투가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모기 모양이나 모기보다는 한결 완강하고 정력적으로 생긴 날벌레와 그 날벌레보다 작은 거미 한 마리와의 싸움이었다. 파득거리는 벌레의 날래에서 무시무시하게 큰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길상은 물 묻은 손을 뻗쳐 거미줄을 확 젖혔다. 거미는 몸을 움츠리고 가사상태를 위장하면서 다리 두 개를 뻗쳐 벌레는 잡고 놓질 않는다. 두 개의 다리는 흡반이 달린 문어 다리 같았다. 순간적으로 견딜 수 없는 증오심에서 길상은 거미를 문들어 죽이고 말았다. _ 박경리, <토지 5> , p336/670 


 토지 독서챌린지. <토지 5>에서 서희와 그를 따르는 평사리 사람들은 용정에 정착한다. 서희는 자신의 수완을 발휘해서 많은 재산을 쌓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점차 안정적으로 정착해간다. 서희와 함께 하는 길상 역시 집안일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본문에서 펼쳐진다. <토지 5> 중 일부를 읽은 이번 주 독서에서는 길상이 세수하면서 우연히 보게 된 거미와 날벌레의 싸움 장면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필사적으로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거미와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날벌레. 먹지 않으면 죽고 반대로 먹히면 죽는 치열한 삶(生)의 현장을 길상은 그야말로 하늘(天)이 되어 지켜본다. 이 순간, 이 자리에서만큼은 길상이 하느님 또는 '신의 대리인'에 다름아니다.  


 중국 문자 가운데 이른바 하늘(天)에는 다섯 의미가 있다. 첫째, 물질지천(物質之天) 즉 땅과 상대적인 하늘이다. 둘째, 주재지천(主宰之天) 즉 소위 황천상제(皇天上帝)로서 인격적인 하늘이다. 셋째, 운명지천(運命之天) 즉 우리 삶 가운데 어찌 할 도리가 없는 대상을 지칭한 것이다. 넷째, 자연지천(自然之天) 즉 자연의 운행을 지칭한 것이다. 다섯째, 의리지천(義理之天) 즉 우주의 최고 원리를 지칭한다. _ 풍우란, <중국철학사(상)> , p61


 펑유란(馮友蘭, 1894 ~ 1990)의 <중국철학사 中國哲學史>에 나오는 천(天)의 의미는 소설의 인물들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거미의 생사를 좌우한 길상은 주재지천의 하늘을, 거미에게 다가운 갑작스러운 죽음의 손길은 운명지천의 하늘일 것이며, 거미와 운명의 싸움을 한 날벌레는 자연지천의 하늘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의리지천을 느꼈을까... 


 신변에 위기를 느꼈음에도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거미는 그만큼 기아선상에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굶주린 것에게서 먹이를 빼앗고 죽이기까지 했다면 그것은 과연 옳은 처사였더란 말인가. 비를 바라보면서 길상은 생각한다. 이런 경우 자신의 손길이 벌레에게 있어서 하느님이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심판은 과연 옳았던가? 인간의 경우에도. _ 박경리, <토지 5> , p336/670


 이러한 상황에서 길상은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올바른 행동이었는지를 돌아본다. 문단의 마지막 문장처럼 이번 페이퍼에서는 길상의 생각을 인간의 경우에 적용시켜 보려 한다. 날벌레를 구하려는 길상의 행동이 '측은지심 惻隱之心' 이라는 인간 본성 - 사단(四端) - 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이러한 판단이 거미에게 '시비지심(是非之心)'의 대상일 수 있을 것인가. 인류의 보편적 원칙이라는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보편적인 사회의 원칙이 되어야 하겠지만, 이러한 법칙을 보편적으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거미는 인간이 아니므로 적용대상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길상의 생각 속에서 벌레는 의인화가 되어 있기에 적용시켜 본다.) 물론,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와 같이 형이상학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답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순수한 이론적 원칙들을 [자명한 것으로] 의식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는 순수한 실천 법칙들을 의식할 수 있다."(KpV, A53=V30) 선의 이념을 가진 이성적 존재자는 선험적으로 도덕법칙을 의식하며, 이런 도덕법칙들의 최고 원칙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된다.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KpV, 7 : A54=V30)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GMS:4, 421) _ 임마누엘 칸트, <실천이성비판>, p370


 



이러한 보편적 법칙의 현실 적용과 관련하여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1821 ~ 1881)의 <죄와 벌>을 떠올리게 된다. 라스꼴리니꼬프의 알료나 이바노브나(전당포 여주인) 살해는 다분히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에 근거한다. 한 사람의 살해가 더 큰 효용(效用,Utility)을 가져온다면, 그 살해를 긍정할 수 있다는 라스꼴리니꼬프의 이론과 주장은 스스로를 '주재지천'의 하늘에 앉힌다. 얼핏 논리적으로 보여지는 그의 이론이지만, 그의 이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 수 없다면 우리 모두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에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 생명에 대한 근원적 존중 때문일까. 각자 나름의 논리가 있지만, 서로 부딪치는 논리에서 우리는 우리가 갖는 '정의(正義)'라는 개념이 흔들림을 느낀다. 이처럼 흔들리는 가치관 속에서 보편적인 행동원칙을 찾아 행동하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빼앗은 돈의 도움을 받아 훗날 전 인류와 공공의 사업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는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 작은 범죄 하나가 수천 가지의 선한 일로 보상될 수는 없는 걸까? 한 사람의 생명 덕분에 수천 명의 삶이 파멸과 분열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고, 한 사람의 죽음과 수백 명의 생명이 교환되는 셈인데, 이건 간단한 계산 아닌가! 그 허약하고 어리석고 사악한 노파의 삶이 사회 전체의 무게에 비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그 노파의 삶은 바퀴벌레와 이(蝨)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이 없고, 어떠면 그보다 더 못하다고도 할 수 있어. 왜냐하면 그 노파는 해로운 존재니까. _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상)>, p161/680


 그래, 바로 맞아! 그게 인간의 법칙이야...... 법칙, 소냐! 바로 그래......! 그리고 난 알아, 소냐. 머리와 정신이 견고하고 강한 사람이라야만 사람들의 주권자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야! 더 많이 용기를 내어 일을 감행하는 사람만이 사람들 눈에는 옳아 보이는 것야.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하는 자만이 그들의 입법자가 되고, 더 많은 일을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구보다도 옳은 사람이 되는 거야!  _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하>, p351/838

 

다른 한 편으로, 라스꼴리니꼬프의 살해는 역설적으로 탐욕의 화신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정화(淨化)시키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라르(Rene Girard, 1923 ~ 2015)의 <폭력과 성스러움 La Violence et le Sacre> 에 표현되듯 '살해'라는 폭력을 통해 '탐욕의 화신'이 '불쌍한 전당포 여주인'으로 전환되는 신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지. 이에 대해서는 리뷰에서 자세히 다루는 것으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알료나 역시 자신은 성실하게 삶을 살았을 뿐이라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정도만 짚도록 하자.


 수많은 제의 속에서 희생은, 때로는 아주 무시하지 않는 한 느껴지기 마련인 <아주 성스러운 것>으로, 때로는 그 반대로 아주 심한 위험에 처하지 않고서는 저지를 수 없는 일종의 <죄악>으로, 이처럼 상반된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희생물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다. 왜냐하면 그 희생물이 성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희생물은 죽임을 장하지 않으면 성스럽게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는 <양가성 ambivalence>이라는 이름을 받을 만한 순환논리가 들어 있다. _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 p10 


 라스꼴리니코프의 정의(正義)와 알료나의 성실함/생활력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죄와 벌>이라는 한정된 사회에서 우리는 어느 가치에 더 우선권을 주어야 할 것인가. 이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가치와 이해당사자가 충돌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접점을 찾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논리를 알기쉽게 설명한 고병권의 <다시 자본을 읽자>를 통해 살펴보자. 


 '옳음 대 옳음' , '권리 대 권리'의 충돌이라는 겁니다. 둘 다 '노모스'(nomos)를 갖추었다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이율배반'(Antinomie)이 생겨납니다. 대립하는 주장인데 둘 다 옳으니까요. 이런 모순에서는 논리, 즉 로고스가 더는 기능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는 여기에는 '힘'이 재판관으로 들어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_ 고병권, <다시 자본을 읽자> , p210/284


 고병권이 해설한 <자본론 Das Kapital>의 논리 중 하나는 이율배반의 상황에서 둘 다 옳다고 했을 때 힘의 논리가 들어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리바이어던, 사회계약이 출현했다고 보면 되겠다. 더 나가면 원래 출발점인 <토지 5>에서 가출해서 이번 페이퍼에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테니 이만 멈추는 것으로 하되, <자본>을 관통하는 '착취'의 개념이 '모순'으로부터 나온다는 것까지만 담도록 하자. '필요노동'이라는 공통된 개념에 대해 '이윤율'과  '잉여가치율'이라는 상반된 해석에서 오는 차이. 이것이 <자본> 전체를 관통하는 '착취'의 시작이며,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의 일부로,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는 씨앗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내가 '모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설'입니다. 앞서 이율배반, 즉 '대립하는 두 개의 주장이 모두 옳은' 상황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주장이 상반된 옳음을 동시에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역설(paradox)' 입니다. 하나의 견해(doxa)에서 반대 방향 내지 다른 방향(para-)이 생겨나는 것이죠. _ 고병권, <다시 자본을 읽자> , p212/284


 '필요노동' 부분이 자본가에게 '필요한' 이유는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사회형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본이 가능하려면 노동자의 존속이 '필요'합니다. 노동력이 재생산되지 않으면 잉여가치는 불가능하니까요. 따라서 자본이 가능하기 위한 토대로서 그것은 필수죠... 노동자에게 '필요'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 즉 노동일 전체는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때 필요노동에 해당하는 부분은 역사적 사회형태와 관계없이 인간에게 언제나 '필요한' 부분입니다. _ 고병권, <생명을 짜 넣는 노동> , p224/309


 <토지 5> 안에서 무심코 거미를 죽이고 고민에 빠진 길상의 옆에 앉아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와 함께, 이러한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가진 이들이 각자의 종교를 가지고 기도를 올릴 때 이를 들어야 하는 하느님의 입장은 참 대략 난감할 듯하다. 이를 잘 표현한 영화 <브루스 올 마이티  Bruce Almighty>를 떠올리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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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4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4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9-04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토지의 한구절에서 몇 권의 책을 떠올리시며 페이퍼를 쓰신 건지! 그저 감탄에 입만 쩍 벌어지네요!! 저도 신의 입장이라면 곤란할 때가 많겠다 싶어요~ 신기하게 저도 토지 읽으면서는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많이 했는데 길상이 옆에 앉아 생각하셨다니 다 느낌이 비슷한가 싶네요!^^

겨울호랑이 2021-09-04 23:04   좋아요 1 | URL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거리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 내게 의미 있는 이는 얼마나 되는지. 책을 읽을 때에도 그런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구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한 구절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장편인 <토지>를 읽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는데, 아무래도 많은 구절이 지나가서일까요. 더 다양한 관점을 찾게 되는 것 같아 좋네요. 붕붕툐툐님 말씀을 들으니 보편적 이성보다는 보편적 감성이 더 쉽게 공감되는 것 같아요. 붕붕툐툐님 평안한 밤 되세요! ^^:)
 

황제가 태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정직하구나! 이것은 사람의 감정상 어려운 것인데 고윤이 능히 그렇게 하는구나. 죽음에 임박하여서도 말을 바꾸지 않았으니 믿음직하고, 신하가 되어서 임금을 속이지 않았으니 곧은 것이다. 마땅히 그의 죄를 특별히 없애주어서 그를 표창하여라."

마침내 그를 사면하였다.(p49/150) - P49

고윤이 말하였다.

"무릇 역사라는 것은 인주(人主)의 선악을 기록하여 장래를 위해 권고하거나 경계하기 위한 것이니, 그러므로 인주는 두려워하여 꺼리는 바가 있게 되어 그의 행동거지를 신중히 하는 것입니다. "(p52/150)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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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9-04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음에 임박해서도 말을 바꾸지 않다니... 저는 역사 속에서 이런 인물을 보면 참 위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목에 칼을 대고 있으면 살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막 할 것 같습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21-09-04 18:07   좋아요 1 | URL
자신의 믿음,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살고자 하는 본성을 거스른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아름다운 모습이라 여겨지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태자 탁발황(拓跋晃)이 말하였다.
"하늘과 사람의 도(道)는 다르며, 비천하고 고상한 것은 본분이 결정되어 있어서 서로 만날 수 없는데, 이치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창고에 있는 물품을 쓸데없이 쓰고 백성들을 피폐하게 하며 유익함이 없는 일을 하여 장차 어디에 그것을 이용하려 하십니까?(p20/175) - P20

황상이 이에 말하였다.
"너희들은 어려서부터 넉넉하고 편안하게 자라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지 못하였다. 이제 너희들로 하여금 배고픈 고통을 이해하도록 하여 어물(御物)을 절약해야 한다는 것을 알도록 할 뿐이다."(p60/175)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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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9-04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고픔과 가난을 겪어 봐야 남의 형편을 헤아리게 되고 배려하게 되지요.
그러고 보면 경험이 자산인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9-04 18:10   좋아요 0 | URL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힘든 경험이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이 큰 것은 분명함에도, 그 길이 좁은 길이기에 피하려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 모습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