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중고서점에 마음에 드는 책이 나온 것을 확인하고 이것저것을 챙겨서 서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책이 위치한 곳에 가도 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서점의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다른 누군가의 장바구니 안에 담겨진 책들을 확인하게 되었네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을 정도는 아니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기에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어제 갑자기 예전 인상깊게 봤던 영화 대사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만나야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고 들었어요.  - 영화 <접속> 中 - 


 결혼 이전 사귀던 여자친구들(?)과 헤어질 때마다 생각했었던 대사들 중 하나입니다.(아마도 다른 내용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을, 나와 함께 할 누군가도 나를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있을꺼야.'로 기억됩니다. 지금 돌아보니 닭살입니다.)


 지금은 그 때는 알지 못했던 누군가와 함께 같이, 그리고 그 때는 예상치 못했던 1인과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달을 바라볼 수 있으니, 작은 행복이라 여겨집니다. 20여년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사람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만나야 할 책은 언젠가 만나겠지요. 아니면, 정말 읽고 싶으면 지금 가서 사서 볼 수 있으니 아쉬워할 필요 없는데 제 욕심이 지나쳤나 봅니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 3가역에 있었던 피카디리 극장의 모습을 담고 있는 <접속> OST를 올리면서 페이퍼를 갈무리 합니다.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PS. 예전 영화가 좋은 것은 그 내용과 함께 자신의 추억도 같이 재생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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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18: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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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1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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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6-24 1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운명이라는 것은 노력하는 자에게 우연이란 다리를 놓아준다” 이 말은 어느 영화에서 나왔을까요? 퀴즈입니다! (검색 금지, 다 보고 있음ㅋ)

겨울호랑이 2018-06-24 19:01   좋아요 1 | URL
이런... 검색하지 않으니 모르겠습니다 ㅜㅜ. 검색해보니 「엽기적인 그녀」군요. ㅋ 이 영화는 인터넷 원작처럼 헤어졌어야 더 애틋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2018-06-24 1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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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1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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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6-24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 검색하면 나오겠죠 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6-24 21:18   좋아요 1 | URL
네, 찾아보니 <엽기적인 그녀>였습니다.^^:) 봤었는데 전혀 기억하지 못했네요.ㅋ

2018-06-24 2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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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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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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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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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6-24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래 전에 이 영화 시사회를
동숭홀에선가 봤었습니다... 한참 영화를 보던
시절이었지요.

한석규-전도연 그리고 당시만 해도 신인이었던
추상미 씨를 무대인사로 만나게 되었는데,
아무도 추상미 씨를 거들떠도 보지 않아 참으로
무안해 하던 기억이 나네요.

한석규의 무대 매너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유니텔 시절의 추억이라고
나 할까요.

겨울호랑이 2018-06-24 22:37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께서도 영화와 관련된 추억이 있으시군요^^:) 지금도 유니텔, 하이텔, 천리안 접속음을 들으면 저 역시 과거로 소환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탱💕📖🗣 2018-06-28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조승우와 이나영 나왔던 영화도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네요. 밀레니엄 감성을 영화로나마 느낄 수 있게되어서 재미있었어요.

겨울호랑이 2018-06-28 12:17   좋아요 1 | URL
영화 「후아유」아닌가 싶네요. 지금은 중견배우로 성장한 이들의 신인 시절 모습을 보면 마치 우리 예전을 보는 듯 합니다^^:)
 

[지도] 정화함대가 개척한 해상실크로드(출처 :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23/2016052302399.html)

 

 인도양에서 홍해의 남단 병목에 있는 아덴(Aden)을 지나 홍해에 진입한 후 북상하다가 아라비아 반도 서안에서 육로로 연결된다... 이렇게 해로와 육로가 결합된 이 교역로에서 인도 상인들이 화물을 아덴까지 해로로 운송하면 거기에서 아랍인이나 그리스인들이 화물을 넘겨받아 지중해 연안 일대에 육로로 운송한다.(p148) <씰크로드 학> 中 

 

 고대 문명권들 간의 교통로인 실크로드(silk road)는 육상과 해상으로 이어져 있었다. 해상 실크로드에서 아덴은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關門)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우리는 지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덴의 역사는 동서양을 잇는 중요한 위치만큼이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아라비아 반도 서남단 예멘의 국제무역항. 아라비아 반도의 서남단, 아라비아해와 홍해의 접점인 아덴만에 자리하고 있다. 화산의 화구(火口)에 지어진 항구도시로 서구 열강들이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1513 ~ 1538년 및 1547 ~ 1548년에 포르투갈이 점령한 바 있으며, 이후 오스만 투르크를 거쳐 술탄 라헤지가 통치하였다. 이 지역에 눈독을 들이던 영국은 1839년 아덴을 할양받아 인도 총독부의 관할하에 두었으며 1937년부터 독립식민지로 운영해왔다. 1967년 아덴 사태 이후 예멘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남예멘의 수도가 되었다가 남북 예멘이 통일되자 수도의 지위를 잃었다. 아덴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일찍부터 이곳은 유향(乳香), 몰약(沒藥), 계피(桂皮) 등 향신료의 집산지이자 중계 무역지였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아덴의 중요성은 더욱더 부각되었다.(p481) <실크로드 사전> 中


 고대로부터 해상 무역항으로서 번성했던 아덴이었지만, 19세기에 들어 강대국간의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러시아의 남진 정책과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간의 대립은 역사에서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 1813 ~ 1907)으로 불리운다. 지리적으로는 서쪽으로는 크림반도로부터 동쪽으로는 조선에까지,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 ~ 1910)로 유명한 크림전쟁(Guerre de Crimee, 1853 ~ 1856)과 영국에 의한 조선의 거문도 점령(1885 ~ 1887)이 이 기간에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러시아가 동쪽으로만 확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남쪽으로도 내려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카데리나 대제의 군대는 흑해 연안을 차지하고 튀르크족을 유럽에서 몰아내기 위해 오스만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 수세기 동안 힌두쿠시 산맥과 페르시아 고원은 인도를 정복하려면 거쳐가는 중간 대기 구역 노릇을 해왔다. 영국의 지도자들은 이 전선을 따라 모든 지역에서 러시아의 전진을 막아야만 한다고 결정했다. 그렇게 '그레이트 게임'이 시작됐다. '그레이트 게임'은 북쪽의 러시아 제국과 남쪽의 대영 제국 사이 지역을 지배하고자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분쟁에 영국 소설가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이 붙인 이름이다.(p378)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中



[지도] 그레이트 게임(출처 :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p251)) 中


 이러한 일련의 역사 흐름 속에서 아덴은 영국의 손에 넘어가기도 했으나, 1960년대에는 다시 소련의 영향력에 놓이는 등 예멘은 냉전(cold war) 대립의 중심에 있었던 분단(分斷)국이었다는 면에서 우리와 여러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덴을 점령한 영국과 오스만 투르크의 협정 속에서 예멘은 1904년 남북으로 분할되었고, 우리 역시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의 이익에 따라 남북이 분할 점령된 아픈 역사를 경험한 바 있다. 

 

 1948년에 남과 북에 두 개의 공화국이 수립되기 훨씬 전에, 한국인들은 양쪽 편으로 갈렸고 워싱턴과 모스끄바가 그런 양자택일을 강화함으로써 한국은 해방 후 몇개월 만에 사실상 분당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분단에는 어떤 역사적인 정당성도 없었다. 만약 어떤 동아시아 나라를 분단했어야 했다면 그것은 일본이었다. 그 대신 한국과 중국과 베트남이 모두 2차 대전의 여파로 분단되었다... 38선이 한국인들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선,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해 제거해야 할 경계가 되었다. 우리가 냉전에서 연상하는 모든 정체적, 이데올로기적 분단들이야말로 한국분단의 이유였다.(p262)...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소련 군함들은 1960년대 말에 인도양에 배치되어 수단, 예멘, 소말리아에서 새로 정권을 잡은 혁명 정부들을 지원했다. 소련이 여러 해 동안 세심하게 관계를 구축해 온 세력들이었다. 이를 통해 소련은 아덴, 모가디슈, 바르바라 등에 부러워할 만한 발판을 확보했다. 따라서 소련은 수에즈 운하 접근을 옥죌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오랫동안 두려워하던 일이었다. (p727) <실크로드 세계사 : 고대 제국에서 G2 시대까지> 中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의 영향으로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소련의 2차 세계대전 후 생겨난 여러 분단국들 중 한국을 제외한 베트남(1975), 독일(1990), 예멘(1990) 모두 통일이 되었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의 분단에서 오는 갈등과 석유를 둘러싼 남북의 대립으로 인한 난민 발생은 예멘의 현재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2018년) 제주도에 온 500여면의 예멘 난민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난민을 받아들여야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해야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고려요인이 있고,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야 하는 풀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과제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강대국의 이익에 의해 희생되어왔던 약소국의 아품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의 출발을 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이유에는 유엔난민기구(UNHCR)의 출발이대한민국의 구호와 재건을 목적으로 유엔한국재건단(UNKRA)설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도 추가된다.


관련기사 : https://www.unhcr.or.kr/unhcr/html/001/001004001001001.html


[사진] 한국과 난민(출처 : https://www.unhcr.or.kr/unhcr/mobile/contents/activity04.jsp)


 이러한 논란의 중간과정에서 이슬람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확산된다는 점은 걱정스러운 지점이다. 이슬람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려면 페이퍼가 너무 길어지기에 다음 기회로 넘기겠지만 적어도 이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는 다음의 이야기 속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10 : 28 ~ 37)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He replied to him, "You have answered correctly ; do this and you will live." But because he wished to justify himself, he said to Jesus, "And who is my neighbor?"... Which of these three, in your opinion, was neighbor to the robbers' victim?" He answered, "The one who treated him with mercy." Jesus said to him, "Go and do likewise."(Lk 10 : 28 ~ 37)


PS. 만약 사마리아인에게 치료 받은 청년이 후에 강도를 만난 다른 이를 못 본 척 외면한다면, 그는 다른 이들로부터 몇 배로 비난받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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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3 1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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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2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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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2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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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 ~ 2002)는 <텔레비전에 관하여 Sur la television>에서 자신의 이론인 '상징적 폭력'과 '장(場) 이론'을 구체적으로 펼치고 있다. 텔레비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검열은 사회 체제를 유지하는 도구(상징적 폭력)의 방편이며, 텔레비전은 이를 둘러싼 여러 이익집단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장(場)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부르디외가 말한 텔레비전의 검열과 장의 내용 그리고 미디어의 전망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1. 검열 : 상징적 폭력


 부르디외가 지적한 텔레비전의 부정적 기능 중 하나는 '검열(檢閱)'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있는 그대로가 아닌 텔레비전에 비춰진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검열 기능은  뉴스의 전달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발휘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기자들에 의해 지각된 것이고, 이것은 곧 기자들에게 '잘 보임'을 뜻합니다. 철학자나 작가가 계속해서 자신의 작품에 의존할 수 없게 된다면, 가능한 한 자주 방송 화면에 나타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p21)... 텔레비전에 접근하는 것은 무서운 검열을 반대급부로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율성의 상실로서, 무엇보다도 주체에 강요되는 커뮤니케이션이 조건입니다. (p24) <텔레비전에 대하여> 中


 텔레비전은 상당히 많은 인구의 두뇌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정보전달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은 다양한 일상사를 강조하면서, 그리고 텅 비고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귀중한 시간을 때우면서, 시민이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가져야 할 적절한 정보들을 멀리하게 만듭니다.(p29) <텔레비전에 대하여> 中


 2. 장(場) 이론 


 부르디외는 사회 공간을 '장'으로 인식하는데, 특히, 저널리즘(journalism)이라는 장은 외부성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텔레비전에서 행해지는 외부성은 광고주, 정치집단과 텔레비전을 소유한 매체, 텔레비전 컨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에 의한 압력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장(場)이란 구조화된 사회 공간입니다. 힘의 장에는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이 있어서, 이 공간 내에서는 항시적인 불평등의 관계들이 있습니다. 힘의 장은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유지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기도 합니다.(p70)... 저널리즘의 장은 하나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문화의 장들, 즉 수학의 장, 문학의 장, 법의 장, 학문의 장 등보다 훨씬 더 외부의 힘들에 종속되어 있습니다.(p91) <텔레비전에 대하여> 中


 텔레비전에 압력을 행사하는 힘 중 하나인 미디어 업체는 최근 자본의 집중화, 거대화라는 분위기에 맞춰 소수의 기업에 집중화되고 있다. 반면, 시청자의 관여정도가 높은 텔레비전 매체 특성 상 시청자들의 의견 역시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청률 조사'를 통해 프로그램의 존폐가 결정되는 미디어의 현실은 이를 잘 설명한다고 여겨진다. 


 세계화를 다룬 저서에서 데이비드 헬드 David Heild와 그의 동료들은 세계적 수준의 미디어 질서를 가져온 다섯 가지 핵심 변화(세계적 미디어 소유권의 집중 증가, 사적 소유권으로의 전환, 초국적 기업 구조, 미디어 산물의 다변화, 증가하는 미디어 합병)를 지적했다.(p783) <현대 사회학> 中

 

 텔레비전은 선명도가 낮기 때문에, 시청자의 관여의 정도가 높다. 따라서 가장 효과 있는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어떠한 과정으로 구성된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다.(p442)... 사람들이 텔레비전 영상을 통하여 깊은 경험에 몰입하게 된다는 사실은 시각적 공간과 모자이크 공간의 차이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p461)<미디어의 이해> 中


 텔레비전에서 시청률은 완전히 특별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긴급성의 압력으로 전환됩니다. 신문들간의 경쟁, 신문과 텔레비전의 경쟁, 텔레비전들간의 경쟁은 일등이 되기 위하여 '속보'를 얻기 위한 일시적 경쟁의 형태를 띱니다.(p46) <텔레비전에 대하여> 中


 <텔레비전에 대하여>를 통해서 부르디외는 텔레비전을 '상징적 폭력이 행해지는 장'이라고 생각하면서, 텔레비전은 결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결론짓는다. 부르디외의 이러한 결론은 최근까지 정치권력에 의한 왜곡 보도 등을 통해 텔레비전의 부정적인 영향을 경험한 우리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텔레비전을 거부하고 기피할 것인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의견을 통해 살펴보자.


 저는 책임의식이 강한 언론인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진실로 말해서, 텔레비전은 정치적 삶과 민주주의에 큰 위험을 준다고까지 생각합니다.(p11)... 텔레비전은 일부 신문과 같이 가장 광범위한 수용자를 찾아서, 외국인을 싫어하고 인종차별적인 선언과 행동을 인정하거나, 정치에 있어서 민족주의가 아닌 협소한 자국적 비전을 매일 보여 줍니다.(p12) <텔레비전에 대하여> 中


3. 텔레비전에 대한 같은 생각, 다른 대처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 ~ )은 1999년 EBS를 통해 <노자와 21세기>라는 주제로 텔레비전 강의를 했었다. 저자는 같은 제목의 책 서문에서 자신이 텔레비전 강의를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해방이후의 우리사회의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변화의 상당부분이 우리 삶의 공간으로 테레비라는 괴물이 진입함으로써 생겨난 사태임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p9)... 사실 테레비는 이미 어떤 "물건"이나,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나로부터 객관화되고 타자화될 수 없는 "사회"다.(p10)... 국민을 교육시킬 수 있는 매체로서 국가정책의 효율성의 증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테레비만큼 강력하고 효율적인 매체는 없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의 현실이다.(p13) <노자와 21세기>(상)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에 대해 부르디외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도올 김용옥은 가치 중립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두 저자의 글 속에서 확인하게 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절대(絶對)'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 현실이라 여겨진다. 그 중에서 어느 면을 더 크게 보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고, 자신의 철학(phliosophy)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제국주의에 대한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 ~ )의 전망을 옮기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치고자 한다. 자본의 집중화에 따라 미디어 제국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요즘, 기든스는 미디어 생태계의 자정(自淨)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 역시 어느 면을 더 크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라 여겨진다...

 

 몇몇 미디어 기업의 손에 있는 인터넷의 전망은 불과 몇 년 전 인터넷 개척자에 의해 받아들여졌던 자유롭고 무제한적 전자 세계의 생각과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사회에는 불가피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보원과 유통 채널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거의 성공하기 힘들 터인데, 독점 방지를 목표로 하는 앤티-트러스트(anti-trust)법 때문이거나, 아니면 대안적 정보원을 찾고 있는 미디어 사용자의 집요하고 창조적인 반응을 통해 제동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형태와 내용이 그 범위와 분량에서 확장을 거듭함에 따라, 개인들은  접하는 메시지와 자료들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데 미숙이 아니라 원숙해지는 것이다.(p786) <현대 사회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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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14: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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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14: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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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14: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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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1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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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2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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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1943 ~ )는 <다중지능 Multiple Intelligences>속에서 인간의 지능을 8개의 지능으로 구분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능이란 시간, 장소, 문화에 의해 정의되며, 어떤 상징도구를 활용하여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업적을 산출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지능은 단일한 것이 아니다. 

 

 지능은 시간, 장소, 문화에 의해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는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그 정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1) 농업, 문학, 예술 같이 문화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영역(domains)과 (2) 어른에 대한 존경, 학문적 전통의 보존, 실용적 해결책의 선호같이 문화 내에 깊숙히 뿌리박힌 가치들(values), 그리고 (3) 개인의 다양한 역량(competences)을 키우고 육성하는 교육체계다.(p239) <다중지능> 中


 가드너는 <다중 지능>에서 8가지의 지능을 언어 지능, 논리-수학 지능, 공간 지능, 음악 지능, 신체-운동 지능, 대인 관계 지능, 개인 이해 지능, 자연 이해 지능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들 8가지 지능의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지만, 이들이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여기에 '실존지능'도 추가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에 어떤 지능이 추가될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지능은 IQ 검사 하나로 결정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드너는 앞서 기술한 정의와 기준을 활용하여 여덟 가지의 지능을 규명하였다. 첫째, 언어 지능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사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둘째, 논리-수학지능은 추상적 관계를 활용/이해/분석하는 능력이다. 셋째, 공간 지능은 시각적/공간적 정보를 지각하고, 이 정보를 변형하여 기억으로부터 시각적 이미지를 재창조할 수 있게 해 준다. 넷째, 음악 지능은 소리로부터 만들어지는 의미를 창조, 소통,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섯째, 신체-운동 지능은 문제 해결과 생산물을 창조하는 데 신체의 일부분 또는 전체를 활용한다. 여섯째, 대인 관계 지능은 타인의 느낌과 의도간의 차이를 식별하고 문제 해결에 이러한 능력을 적용할 수 있다. 일곱째, 개인 이해 지능은 자신의 느낌을 정확히 인식, 판별하고 자신의 정신적 모델을 구축하며, 이러한 모델을 삶에 대한 결정에 활용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자연 이해 지능은 사람들에게 자연 세계의 특징을 식별, 분류 및 활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p7) <다중지능 학교사례> 中 


 가드너가 <다중 이론>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지능이 여러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여러 잠재적 가능성인 다중 지능을 통해 획일적인 교육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저자가 <다중 이론>을 주장한 진정한 목적일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획일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즉 모든 아동들이 같은 것을 같은 방식으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들이 배운 방식에 얼마나 길들여졌느냐에 따라 보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다. 물론 이런 접근은 학술적으로 재능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하다.(p5) <다중 지능> 한국어판 서문 中


 그렇다면 저자가 말한 <다중 지능> 교육의 실제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획일화된 현대 평가 방식 대신 과거 도제제도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즉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강점을 깨달을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와 관련한 대안도 다른 책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볼 때 평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환경을 만들고, 교육과정이 맥락에 기초하여 평가될 수 있도록 영역 프로젝트나 프로세스폴리오와 같은 활동을 고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제제도를 부활시키자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도제제도가 현대의 평가 방식에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p230)... 자원이 한정되어 있을 경우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강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p231) <다중 지능> 中


 <다중 지능>에서 제기한 교육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대안들은 <예술 교과에서의 수업설계와 평가>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예술 교과들인 글쓰기, 음악, 미술 분야에서 다중 지능을 고려한 학습 평가 방향이 각각 제시되고 있다. 저자는 문학, 음악, 미술 이라는 다른 분야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프로펠 모델'에 따라 수업과정을 설명을 하고 있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이 프로펠의 모델에 근거하여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과연 프로펠은 어떤 교육적 활동인지 이해하는 것이 책의 근본적인 목적을 파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첫째 프로펠의 첫 번째 구성요소는 지각(Pereception)이다. 지각은 관찰과 외부 환경에 대한 학습의 동기화를 강화시키는 학습활동이다... 두 번째 구성요소인 창작(Producion)은 지능이 실제 세계에서의 산물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 내리는 인지심리학자들의 주장이 그대로 구현된 수업활동이다. 세 번째 구성요소는 반성(reflection)이다. 반성은 최근 학습에서 강조되고 있는 초인지(Meta-cognition) 기술을 강화하기 위한 수업활동으로서, 최근 학교 교육 목표 연구자들에 의하여 학교 교육이 학생들에게 강조해야할 가장 중요한 탐구기술로서 인정받고 있다.(p7) <예술 교과에서의 수업설계와 평가 Arts Propel 1 : 창의적 글쓰기> 中


 <예술 교과에서의 수업설계와 평가>에서 학생들은 감상자가 아닌 창작자(작가, 연주가, 화가)의 입장에서 진행되는데, 과정 중 일지 작성을 통한 과정 관리와 교사와 동료들에 의한 다면 평가를 통해 입체적인 조언을 받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과거 교육에서는 피교육자와 교육자가 2차원의 원(圓)과 같은 관계를 맺었다면, 이제는 동료와 지역사회 등이 추가되어 3차원의 구(球)와 같은 관계를 맺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을 보다 깊이 알 수 있게 된다.


[그림] 구와 원(출처 : 위키백과)


 포트폴리오는 학생들의 작품집뿐만 아니라, 그들의 작품을 다시 보고 반성을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러한 활동을 교사와 다른 학생들과 더불어 스스로 수행한다. 학생들은 그들의 작품묶음을 보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작품들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그리고 미래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교사들은 이런 반성적 과정을 이끌어 내고, 가끔씩 포트폴리오 자료들에 관하여 생각하게 하기 위해 과제를 준다.(p47) <예술 교과에서의 수업설계와 평가 Arts Propel 1 : 창의적 글쓰기> 中


 <예술 교과에서의 수업설계와 평가>에서 저자는 예술 교과에 대한 초/중등학생들의 교과과정에 대해 다루지만, 저자는 예술 지능 자체는 없다고 단언한다. 대신, 다른 지능의 예술적 발현되는 것을 '예술적'이라고 해석한다. 저자의 이러한 해석은 지능들이 각기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관련을 맺고 표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역량',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결국 지능들의 복합적 표현이라면, 우리는 자신의 강점(强點)을 통해 약점(弱點)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엄격하게 말하면 예술 지능은 없다. 그보다는 지능이 예술적으로 혹은 예술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이 책에서처럼 언어를 설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언어지능을 심미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언어를 은유적으로 또는 파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언어 지능이 예술적으로 활용된 것이다.(p110) <다중 지능> 中


 결국 <다중 지능>을 활용한 교육은 강점을 활용한 교육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다중 지능을 활용한 교육 사례를 담은 이 책 속에서 저자는 강점 활용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슈나이더는 "교사는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여 가르치고 약점은 강점을 활용하므로 보완됩니다."라고 말하였다. 강점에 대한 강조는 아동을 교육과정에 몰입하도록 도와주며 이는 학습에 필수적인 선행 조건이다... 이 교실의 교사들은 종종 아동의 강점을 활용하고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역할과 작업을 창출할 기회를 지원한다.(p152)<다중지능 학교사례> 中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강점을 살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이를 통해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다중 지능> 교육의 지향점이 될 것이다. 요약하자면, 각각의 지능은 실제 생활의 성공에 기여하게 된다. 따라서 학교는 아동이 가진 보다 광범위한 강점을 다루어 주어 학교 밖에서도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p8) <다중지능 학교사례> 中 


 다중지능이론은 교육 이외의 영역에도 효과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다중지능이론을 통해 개인, 팀, 조직은 훨씬 더 복잡한 환경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인적 자원을 사용할 수 있다.(p281) <다중 지능> 中


<다중 지능>에서는 이처럼 인간의 여러 가능성을 긍정하고, 평가와 피드백(feedback)을 통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강점을 키워나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강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교육자들에게 과정을 중시하며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것을 요청한다. 여기에, 교육을 '피교육자-교육자'의 관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 동료 학습자들의 협조도 또한 다중 지능 교육에서 강조되는 사항들이다.


 최근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 교육감(敎育監)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전체 17곳에서 14명이 당선되었다. 진보교육감들의 공통된 교육방향 중 하나인 '혁신학교'는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중 지능>과 통하는 면이 있다 여겨진다. 혁신학교와 관련된 엇갈린 의견도 많지만, 단일화된 평가를 벗어나야 한다는 방향성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만큼 보다 성공적인 제도의 안착을 기대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 지능>에서 다음과 같이 학습부적응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짤막하게 소개한다. 이와 관련하여 보다 많이 알고 싶은 분들은 저자의 다른 책 <열정과 기질>을 읽으면 좋을 듯하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인간의 운명은 불가항력적인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삶의 궤적은 상당 부분 각자가 개발해온 능력과 기술로 구성되고, 각자가 타고난 또는 생의 초기에 발달시킨 지능 프로파일이 하나의 척도가 되어 삶의 궤적에 영향을 미친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피카소(Pablo Ruiz Picasso),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과 같이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이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학습에 심각한 문제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문제로 좌절하는 대신 자신의 강점을 십분 활용하여 각자의 고유 영역에서 비범한 공헌을 했다. 따라서 교육의 책임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강점과 성향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p183) <다중 지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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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8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켄터베리 이야기 The Canterbury Tales>는 영국의 제프리 초서(Geoffery Chaucer, 1343 ? ~ 1400)의 작품으로 켄터베리를 향한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순례를 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페이퍼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켄터베리 이야기>의 프롤로그에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원래 120개의 이야기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토머스 베게트(Thomas Becket, 1118 ~ 1170)의 사당을 향해 가는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여행의 지겨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각자 하나씩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었다. 초서는 이 120개 이야기 중에서 스물한 개를 완성했고 세 개는 미완 혹은 중단된 상태로 남겨 놓았다.(p121) <평생 독서 계획> 中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이들은 성지(聖地)를 향한 공통된 목적을 지닌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었다. '하나된 신앙' 이 강조된 중세의 질서 안에서 이들은 집단으로 움직여야 했으며, 이는 종교행사인 순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봉건 사회는 아주 촘촘한 알갱이들로 형성된 구조였다. 이 사회는 너무 빽빽한 덩어리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개인들은 당시의 '프라이버시'라 할 수 있는 행위로, 비좁은 공간의 과도한 집단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을 고립시키고 주위에 자신만의 울타리를 두르며 꼭 닫힌 정원에 자기를 가두려고 했다... 누군가가 외따로 떨어져 있다면 설령 나쁜 짓을 하려고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도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나쁜 짓을 저지를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다. 혼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적의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홀로 떠돌아다니는 것은 광기의 여러 증상 가운데 하나였다.(p717) <사생활의 역사 2> 中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의미하는 순례는 중세인들에게는 일종의 '세례(洗禮)'와 같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순례는 일상을 떠나 자신을 새롭게 성찰하는 의미와 함께 죄의 용서를 받는다는 의미를 지녔기에, 중세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이성은 그들에게 낯선 곳, 다시 말해 고립을 벗어나 질서 속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이러한 문명으로의 복귀는 그들에게는 사생활로, 궁정으로, 다시 말해 집단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거기로 돌아가지만 고난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정화되고 쇄신된다. 사실 자의든 타의든 위험과 고립 같은 힘든 시련은 강한 자들과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지고의 선을 행해 나아갈 기회였던 것처럼 보인다.(p718) <사생활의 역사 2> 中


 공통의 목적을 가졌지만,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작품 안에서 어느 누군가가 육욕(肉慾)의 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다른 이야기 속에서 교회 전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성(聖)과 속(俗).<켄터베리 이야기>의 세계관을 요약한다면 위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 음란한 색욕(色慾)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십시오. 그것은 정신을 약하게 만들 뿐 아니라 육체까지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음탕한 욕망은 불행을 초래할 뿐입니다. 음란한 행위는 차치하고, 그런 죄를 범하겠다는 의도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만신창이가 됩니까! (p162) <켄터베리 이야기> - 변호사의 이야기 - 中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야곱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위대한 성인(聖人)이에요. 그런데 많은 다른 성인들처럼 두 성인도 두 명 이상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어요... 동정이나 처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만이 지키는 것이에요... 내 남편이 죽으면, 내가 다시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두 남자와 함께 산다고 해도 역시 죄가 아니랍니다. (p173) <켄터베리 이야기> - 배스의 여인의 이야기 - 中 


 <켄터베리 이야기>는 당대 지배층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풍자소설이기도 하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가 <중세의 가을 Herfsttij der Middeleeuwen> 속에서 중세의 두 기둥이라고 표현한 기사(귀족), 학자들 역시 풍자의 대상이 된다.

 

 중세 기사도 이상의 표본적 인물로 칭송되는 부시코 Boucicaut의 전기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 하느님의 의지로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것이 주어졌다. 그것은 신성한 법과 인간의 법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 세상은 일대 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 두 기둥은 기사단과 학자들이다.(p139) <중세의 가을> 中


 귀족이란 말은 자비를 베푼 선조들의 명성일 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예요. 귀족적인 성품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 우리의 진정한 귀족적 성품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오는 것이지,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사회적 지위가 주는 것이 아니에요. (p203) <켄터베리 이야기> - 배스의 여인의 이야기 - 中 


 연금술을 배우면 이런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우리가 쓰는 용어는 아주 이상한 전문적인 말들입니다. 그래서 난해한 학문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작업장에 들어가면, 우리는 아주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모든 재주를 부려보았지만 한 번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p518) <켄터베리 이야기>  - 성당 참사회원 종자의 이야기 - 中


 성직자 역시 <켄터베리 이야기> 속에서 풍자 대상으로 등장한다. 다만, 하위징아는 거대한 교회였던 중세 유럽에서 성직자들은 일반 대중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성직자에 대한 조롱은 일종의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같은 지배계급이었지만, 친근감을 가졌다는 면에서 중세 성직자는 기사, 학자와는 다른 위치에 있었던 듯하다. (이 부분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 삼부회( Etas Generaux)를 구성했던 제1신분, 2신분이었던 성직자, 귀족들에 대한 평민들의 시각과 함께 살펴보면 좋을 듯하니, 잠시 접어두고 간다.)


 제 목숨을 걸고 말하는데, 아마 여러분들은 방귀 소리와 악취가 동일한 속도로 열두 개의 바퀴살로 골고루 퍼져나가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신 고해 수사님은 매우 고귀한 분이시므로 이 지위에 걸맞게 방귀 소리와 냄새를 가장 먼저 맛보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만 해도 교단에서 훌륭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방귀 냄새를 처음으로 맡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p236) <켄터베리 이야기> - 소환리의 이야기 - 中 


 그 시대의 일상적인 종교 생활은 불쑥 정반대의 입장으로 전환되는 극단적인 변화를 보여 준다. 어떤 때는 사제와 수사에게 조롱과 증오심을 쏟아 부었으나, 그것은 동전의 표리(表裏)처럼 마음속 깊이 품은 애정과 존경심의 뒷면일 뿐이었다. (p338) <중세의 가을> 中


 그렇지만, 목적지인 켄터베리에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점점 종교적인 색채를 짙게 띄게 되고, 결국 죄의 용서와 참회, 구원 등 교회 교리를 주제로 한 본당신부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켄터베리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가난한 마음으로 살면 이처럼 복된 나라를 얻을 수 있으며, 겸손하게 살면 하느님의 영광을 얻을 것이고, 굶주리고 목마르게 산 사람은 천국의 완전한 기쁨을 누릴 것이며, 열심히 일한 사람은 평안을 얻을 것이고, 죄를 뉘우치고 죽은 사람은 새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켄터베리 이야기> - 본당신부의 이야기 - 中 


 여러 세속적인 삶의 이야기와 지배 계급에 대한 비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결국 종교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켄터베리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순절 직전의 사육제를 떠올리게 된다. 성스러운 성지 순례 이전 여행의 어려움을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사순 기간 금육(禁肉), 금식(禁食)의 고통을 덜기 위해 행하는 사육제(카니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 사육제과 사순절의 싸움( 출처 : http://www.pictorem.com/24201/Fight%20Between%20Carnival%20and%20Lent.html)


 카니발 Carnival  :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사순절 직전 3~7일에 걸쳐 행하는 제전(祭典). 사육제(謝肉祭)라고 번역하는데, 라틴어의 카르네 발레(carne vale :  고기여 그만) 또는 카르넴 레바레(carnem levare : 고기를 먹지 않는다)가 어원이다. 그리스도교 초기 로마 사람을 회유하기 위하여 그들의 농신제(農神祭)를 인정한 것으로, 이교적(異敎的)인 제전이었다. 이것이 계승되어 매년 부활절 40일 전에 시작하는 사순절 이전 즐겁게 노는 행사가 되었다. (출처 : 두산동아백과사전)


 <켄터베리 이야기>는 이처럼 14세기 중세 영국 사회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우리는 중세인들의 모습을 느끼게 된다. 비록 중세 음악은 다소 낯설게 들리지만, 중세인들의 보편적인 감정은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켄터베리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클리프턴 패디먼(Clifton Fadiman, 1904 ~ 1999)의 <평생독서계획 The New Lifetime Reading Plan>에서 소개한 감상포인트를 마지막으로 <켄터베리 이야기>에 대한 페이퍼를 마친다. 



 맨 앞에 나오는 프롤로그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 영문학 사상 가장 훌륭한 초상화의 갤러리이다. 이 작품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것은, 기사, 방앗간 주인, 수녀원장, 수녀시승, 면죄승, 바스의 여장부, 서기, 상인, 수습기사, 수도참사 회원의 종자의 이야기 등이다. 또한 여러 편의 프롤로그, 에필로그, 각 이야기들을 연결하는 대화들을 읽을 것을 권한다.(p121) <평생 독서 계획> 中

 

 이야기의 동시대성은 각자의 언어적 개성을 드러내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여행'이라는 서술 맥락으로 수용한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잘 들어났다... <켄터베리 이야기>는 산문 형식의 두 글인 멜리베오의 이야기와 파로코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모두 2행 시절로 되어 있다... <켄터베리 이야기>의 문학적 꾸밈은 이야기꾼의 두 가지 기능으로 지탱된다. 초서는 저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소개하나 마지막에는 교육적-그리스도교적으로 충분한 목적성을 보여 주지 못하는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를 전부 부정했다... 초서는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보카치오처럼 폭넓은 이야기들을 통해 삶의 다양함과 활력, 복합적 특징을 부여했다.여기에는 매우 이질적인 주제와 양식, 구조가 공존했다.(p771) < 중세3 : 성, 상인, 시인의 시대> 中


나가기 전에 <켄터베리 이야기>를 선물해 주신 이웃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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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6-16 1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주 모순적인 사육제와 사순제가 붙어 있는 건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지 말입니다(왜 군대식 말투가...). <켄터베리 이야기>가 고상한 척하는 지배층의 아주 세속적인 적나라함을 보여주듯이 말입니다. 여기 우리는 모두 방귀 안 뀌는 듯이 좋은 말, 문장을 구사하는 것에 기를 쓰고 있지만 인간은 아무리 미인도! 누구나 하루에 7번 이상은 방귀를 뀐다는 과학적 보고가...(곰곰이 내 하루를 뒤돌아보며)....인간의 뗄 수 없는 양면성을 말한다는 게 갑자기 방귀에 꽂혀서.... 댓글에서 방귀 냄새 풀풀))) 죄송합니다...(이 댓글은 망했....);;

겨울호랑이 2018-06-16 19:37   좋아요 2 | URL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안 그런 척‘ 하면서 살아가는게 우리 모습이 아닌가 싶네요. 반대로 ‘그런 척‘하면서 살기도 하구요... 적당히 알면서 속고 속이면서 살아가는게 우리 삶인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절대선‘과 ‘절대악‘을 규정한 형이상학적 가치는 사람을 질식시키네요... 방귀처럼 말입니다 ㅋㅋ

2018-06-16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16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독서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인지... 부럽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16 23: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는 북다이제스터님의 깊이 있는 독서가 더 부럽습니다.^^:)

2018-06-17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8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6-18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내용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어 살짝 다녀가려 했는데,
프로필 사진이 바뀌셨군요.
연의 어린이 완전 멋진걸요.
보는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여러모로 보시하고 게십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8 12:22   좋아요 0 | URL
중세와 관련된 내용을 얼기설기 엮은 페이퍼라 좀 길었습니다. 연의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