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떤 어부보다도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어두운 해류의 층마다 정확히 그가 바라는 수심에다 미끼를 놓고 그곳을 헤엄쳐 가는 고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난 정확하게 미끼를 드리울 수 있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_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p38/228 


 주가 Price = 주당순이익 EPS * 주가수익비율 PER.


 주당순이익이 기업이 갖고 있는 실력이라면, 주가수익비율은 이러한 실력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말한다. 전자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점수라면, 이 점수에 등급(degree)을 부여하는 것이 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유명한 가치투자들인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1894~1976)과 필립 피셔(Philip Fisher, 1907~2004). 그레이엄이 <증권분석 Security Analysis>을 통해 정량적 가치에 초점을 맞췄다면, 피셔는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 Common Stocks and Uncommon Profits>를 통해 정성적 가치에 주목한다.


 보수적인 투자자는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어떤 업종이나 산업에 대해 현재 증권가에서 내리고 있는 평가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보수적인 투자자는 이런 평가가 해당 산업의 펀더멘털이 보장하는 것에 비해 더 긍정적인지, 혹은 더 부정적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사해야 한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76


  거칠게 요약하면, 그레이엄은 주당순이익에, 필립 피셔는 주가수익비율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레이엄이 기업의 절대가치를 파악해서 잔여자산의 유무를 파악해서 지지 않는 투자를 추구한다면, 피셔는 기업의 상대가치를 끊임없이 높일 수 있는 활동에 주목한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차이는 절대성과 상대성의 차이이기도 하다.

 

 보수적인 투자의 첫 번째 영역을 간단히 말하자면 생산과 마케팅, 연구개발, 재무 관리라는 기본적인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탁월한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첫 번째 영역은 결국 결과의 문제다. 반면 두 번째 영역은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이런 결과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인 필요한가에 관한 것이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24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수치를 해석하는 지성(知性)과 기업에 열광하는 감성(感性)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지향점을 찾아가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할 이성(理性)을 파악하는 문제는 바로 자신의 투자철학이 될 것이다. 필립 피셔의 장기투자라는 철학은 끊임없이 PER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기에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주당순이익은 저평가될 것이고, 주당순이익 없이 과열된 주가수익비율은 광기에 빠지기 십상이기에 이들 모두가 중요한 것은 물론이겠지만.


 

리스크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장기적인 투자가 훨씬 유리하다. 종합하면 단순히 수학적으로 생각하더라도 확률은 물론 리스크 대비 보상을 고려햘 때 보유하는 편이 더 낫다. 위대한 기업의 주식이라면 장기적으로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보다 단기적으로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게 틀릴 확률이 훨씬 더 높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149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의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에서 노인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바다에 대해 많은 경험을 갖고 바다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을 운(運)이라 여기지만, 반드시 그럴까. 어쩌면 그는 자신이 가진 미끼를 물고기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마케팅 활동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실력(EPS)는 우수했을지 모르지만, 고기와의 교감(PER)에는 부족함이 그의 실적(Price)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감 넘친 노인에게 피셔 3부작을 추천한다...


PS.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의 초판이 1958년이고, <노인과 바다>가 1952년 출판되었으니, 노인이 마음먹을 수 있다면 읽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도 아닌듯하다..


 주가의 결정적인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은 매우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다 : 어떤 개별 종목의 주가가 전체 주식시장의 움직임과 비교해 현저할 정도로 변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주식에 대한 증권가의 평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p59)... 증권사의 "재평가" 문제는 주가수익 비율의 변덕스러움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다. 그러나 재평가가 결코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재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지금 기업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 것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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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11-13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가 주식 투자를 했으면 무척 잘했을 거 같습니다. ㅋ 그의 꼼꼼함과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을 봐서는요. ^^
헤밍웨이가 주식투자를 해 본적이 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ㅋ

겨울호랑이 2023-11-13 20:41   좋아요 2 | URL
아, 저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습니다. 지금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같은 궁금증이 드네요. 그렇지만, 만약 제가 헤밍웨이의 지인이라면 그와 주식에 관래서는 별로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식이 폭락하기라도 하면 라이플 세례를 받지 않을까 생각만해도 좀 무섭네요...ㅋㅋㅋ
 

 완성된 <뮤지엄 산>은 지붕의 기복을 정교하게 사용하여 입구에서부터의 긴 산책로를 거쳐 뮤지엄 본관에 도착하며, 다시 그 앞에 스톤 가든을 배치한 직선 구조를 이루고 있다. 본관 건물은 세 개의 직육면체가 평행하게 비껴가게 늘어서고 또 하나의 직육면체가 비스듬하게 그것들을 연계하는 배치이며, 그것들의 결절점에 정육면체와 원통(실린더), 이른바 <안도적 입체>가 들어가서 명쾌한 기하학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동선을 이끄는 공간의 연쇄는 복합적이므로 높이가 달라지고 갑자기 개구(開口)가 열리는 등 안도 다다오의 문법이 고스란히 실현되어 있다.... 한국은 석재가 풍부한 만큼, 돌을 사용하는 데는 공을 들였다. 그래서 채용한 아이디어는 안팎의 이중 상자로 이루어진 중첩 상자 구성으로, 바깥쪽은 돌 붙임 벽으로 덮은 상자, 안쪽은 노출 콘크리트로 소재의 차이를 도드라지게 했다. 30만 개의 돌판이 필요했으며, 그것을 설치하는 작업은 장관이었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87


[사진] 뮤지엄 산 안내도


 지난 주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안도 타다오-청춘>이란 주제의 대규모 개인전. 건축가의 전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만,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 자체가 이미 작품이니 그 안에서 건축가의 의도, 건축의 특징을 느끼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1976년부터 10년 동안의 안도 주택 특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세련된 노출 콘크리트에 의한 디자인. 둘째, 기하학적인 형태. 셋째, 빛에 대한 집착. 넷째, 시선과 동선을 중시.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85


[사진] 뮤지엄 산 전시관 외부


 콘크리트 소재감이 흡사 스키야의 나무처럼 단정하여 내부 공간의 품위와 밀도를 높이고 있다. 안팎의 뛰어난 공간 배치와 어우러져 당대 비할 데 없는 철근 콘크리트 주택이 되고, 심지어 건축의 변치 않는 본질에 다가가며 어떤 가식도 없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05


 건축가에게 기하학이란 도형이나 공간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형태 자체를 만들어 가는 원리이다. 계산에 따라 끌어내는 대수 값으로 길이나 크기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형적으로 풀어야 한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30


[사진] 빛의 공간 The space of Light 입구


[사진] 빛의 공간 The space of Light 내부 천장


 실내에 발을 들여놓는다. 벽이 평행하게 여러 개 겹쳐서 투사되는 그림자에 농담이 생긴다. 벽은 빛을 흡수하여 바깥 세계의 소리가 소멸한다. 굳게 침묵을 지키는 실내에서 시간이 정지한다. 스며 나오는 그림자는 신비한 느낌을 휘감은 침묵의 두께로 모습을 바꾼다. 가늘고 긴 슬릿을 통해 흘러 들어와 떨어지는 빛이 투명한 층으로 순화되어, 방 전체를 밝히지 않고 벽에 흡수되어 간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48


 내외부가 연결된 콘크리트 구조와 기하학적인 구도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어둠의 대비. 물과 바람의 길처럼 건물을 크게 가로지르는 구도. 그 여백을 통해 안도 다다오의 공간(空間)을 읽는다. 그렇다면, 시간(時間)은 어디에 있을까?


 정육면체 등의 근원적인 도형이 그대로 유지되면 기하학의 절대성은 흔들리지 않는데, 안도는 지오메트리와 풍토성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는다. 르코르뷔지에 같은 플라톤주의 계승자들과의 차이가 거기서 드러난다. 대지를 읽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대지의 배후에 있는 지형, 문화, 기맥(氣脈) 같은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37


  뮤지엄 내부에서 우리는 시간을 발견하지 못한다. 건물 바깥에 심어진 가을꽃들이 자태를 뽐내지만, 건축의 수명에 비길바는 아니다. 뮤지엄 산에서 안도 다다오의 시간을 찾기 위해서는 좀 더 멀리서 지켜봐야 한다. 뮤지엄 산을 둘러싼 수십 억년의 역사가 담긴 대지(大地)와 산. 거기에서 자라난 수십 년 수령의 나무들. 이들이 바로 공간을 둘러싼 시간이 아닐까.


 식물은 성장한다. 특히 수목은 수명이 몇십 년, 때에 따라서는 1백 년이라는 규모이며, 사찰 경내에 있는 나무는 몇백 년에서 1천 년 단위이다. 안도의 내면에 있는 시간의 계측 단위에는 두 가지 표준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건축으로, 몇 년이 걸려서 준공하고 그 후에는 수십 년 단위로 유지, 보수하면서 지속된다. 다른 하나는 수목 또는 식생으로, 이것의 수명은 최소 50년에서 1백 년이며 앞으로도 긴 세월 동안 생명을 유지한다. 안도의 신체에는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 수명이 함께 갖춰져 있어서 건축과 수목, 양쪽을 오가면서 생명을 불어넣는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76


 때마침 단풍의 계절이었다. 산등성이에 펼쳐진 이 땅을 본 안도는, 거기서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생명의 힘'을 느꼈다고 한다. 이 흙에서 솟구쳐 오르는 힘은 미래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자손 대대로 이어져 갈 땅이라고. 이 절묘한 대지를 보고 안도는 그 자리에서 설계하기로 결단을 내리고 스케치도 그린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499


[사진] 뮤지엄 산 외경


 젊은 시절 프로권투선수였던 안도는 두가지 싸움을 펼친다. 자연을 대상화하고 그것을 인간의 세계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서구적 가치관과의 싸움 그리고 주어진 환경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자 하는 싸움. 모든 예술가가 마찬가지겠지만, 안도 다다오에게도 작품은 치열한 싸움의 결과물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주거야말로 거점이며 전투의 요새이다. 안도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어디까지나 개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산다', '생활한다'는 것에 대해 자아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정도까지 드러내는 원시 욕구를 사고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주거는 그것들을 폭 감싸서 덮어 버린다"... 자신의 주거를 만들어 그 안에 기존 마을 풍경 속에서 키워 온 생활을 외부 자본에 맡기지 않고 관철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이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48


 건축은 싸움입니다. 거기에는 긴장감을 지속시킬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모든 것이 걸려 있습니다. 긴장을 지속하고 사물을 끝까지 파고들어 그 원리까지 되돌아가서 재조합하는 구상력이야말로 문제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기존의 조합을 깨부수는 강력함을 가진 건축을 낳는 것입니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58


 

 <뮤지엄 산>에서 안도 다다오의 도록 <TADAO ANDO : YOUTH>를 구입했다. 이 도록은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에서 설명된 주요 작품에 대한 생생한 컬러 사진을 제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해준다. <안도 다다오-안도 다다오가 말하는 집의 의미와 설계>는 건축의 도면에 대한 정리가 잘 되어 이들을 통해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바라본다면, 보다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물의 교회>에서는 무덤 앞에 세우는 표시처럼 우리를 마주 보는 네 개의 십자가를 빠져나와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게 되며, 거기서 다시 물의 정원에 우뚝 선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다. 반대로 <빛의 교회>에서는 성당 정면에 벽을 찢고 빛이 된 십자가가 출현한다. 전자가 행진에 의한 죽음과 재생의 의식이라면, 후자는 현현(顯現) 그 자체이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87


[사진] 물의 교회


[사진] 빛의 교회


 서로 다른 두 개의 교회를 연결시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재림의 의미를 해석한 글 안에서 스토아학파적인 안도 다다오의 면모를 깨닫게 된다. 이 참에 임석재의 서양 건축사도 정리해봐야겠다...


 포스트모던이라 불리는 1970년대 이후의 현대는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 이후의 건축과 도시계획에 있어 포스트모더니즘은 개별 건축물부터 도시에 이르기까지 통일감 있는 디자인으로 구성하겠다는 야망을 단념하고 유동하는 하나의 무리가 된 세계 속에서 로컬한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스승인 단게 겐조(1913~2005)의 모더니즘으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전향한 이소자키 아라타(1931~2022)를 에피쿠로스학파에 비교한다면, 단게-이소자키와 같은 국가적 엘리트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맨주먹으로 출발한 안도 타다오(1941~ )는 스토아 학파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처럼, 형성된 질서는 반드시 해체되고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되므로 그 운명에 화내고 슬퍼해봤자 소용이 없으니, 오히려 사태를 냉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더 나아가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일까? _ 아사다 아키라,<안도 타다오, YOUTH> <안도 타다오의 스토아학파적 건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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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0-16 0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에 다녀오셨군요 그런 곳이 있다는 말 들어본 적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느새 십년이 되다니... 안도 다다오 이름만 알고 잘 모르기도 하네요 안도 다다오 건축을 보고 서양건축사를 정리하시려 하다니 멋지시네요 저는 그런 거 보면 그걸로 끝일 텐데... 하나에서 다른 걸로 이어지는 공부를 하면 좋을 듯하네요


희선

겨울호랑이 2023-10-16 07:42   좋아요 2 | URL
저도 뮤지엄 산 근처에 자주 가면서도 제대로 감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사실 이번에도 거의 지나칠 뻔 했는데 다행히 기회가 잘 맞았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많은 기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 놓쳐버린 것이 얼마나 많을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기회를 통해 무엇인가를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계획에는 어긋나지만, 우리 삶을 재밌게 해주는 일탈이 아닌가 싶습니다. 희선님, 감사합니다! ^^:)

yamoo 2023-10-16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기 어디 인가요? 저도 시간되면 가볼까 합니다만..^^;;

겨울호랑이 2023-10-16 10:13   좋아요 2 | URL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안쪽에 있는 <뮤지엄 산>입니다. <안도 다다오 - 청춘>은 10월 29일까지 예정되어 있어 시간이 조금 촉박하네요... 조금 멀지만 좋은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yamoo님 좋은 하루 되세요! ^^:)

2023-10-16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6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3-10-20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뮤지엄 산>이로군요!!! 저는 2017년에 다녀오고 다시 못 가서 아쉽습니다. 너무 예쁘고 신기한 곳이었죠. 그 때는 백남준 전시 보고 제임스 터렐관 갔었어요.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건축가들도 천재인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23-10-16 17:47   좋아요 2 | URL
지금도 백남준 전시와 제임흐 터렐관에서 전시 중이라 안도 다다오 전 이외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 도한 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재생과 부활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다른 분들에게도 멋진 공간으로 기억되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
 


 때아닌 홍범도(洪範圖 , 1868~1943)장군에 대한 후대의 사상검증과 그 결과로 육사에서 흉상이 철거된다는 어이없는 결정이 만만치 않은 역풍을 가져온 듯하다. 흉상 철거의 근거는 홍장군이 1920년대 만주지역에서 자행된 일제의 민간인 학살 등이 탄압을 피해 소련으로 넘어가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 등은 이미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기에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1920년대 독립군을 바라보는 이른바 좌익 계열의 연구가의 관점에 있다.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은 1919년 8월 국내진공작전을 대담하게 감행, 함경남도 혜산에 진입해 일본군 수비대를 섬멸하고, 10월에는 강계, 만포, 자성 등을 기습해 일본군을 타격했다... 청산리 대첩 이후 독립군 부대들의 대규모 승전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 이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김좌진 독립군부대와 홍범도 독립군부대가 1921년 우수리강을 건너 소련 땅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군 주력부대들은 청산리대첩 이후 일본군의 야수적 탄압에 겁을 먹고,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민중들을 내팽개치고 투쟁의 현장에서 벗어나 안전한 북만 땅으로 도피해 갔던 것이다... 이것은 독립군이 자산계급의 군대였고 부르주아민족주의를 사상적 바탕으로 하는 군대였으며, 활동에서 분산성과 산만성을 갖고 자파 중심으로 서로 배척하고 질시한 데 있었다. _ 박경순, <1960년대 이후 항일무장투쟁 연구 1>, p24


 홍범도 장군과 독립군을 바라보는 좌익 연구가들은 민족주의 성향의 부르주아적 한계를 대일항쟁의 한계로 인식하고 비판한다. 홍범도 장군의 삶과 철학은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들 다수처럼 변절되지 않은 한결같았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관점에 따라 21세기 뉴라이트 사관의 역사학자들에게는 공산주의자로, 레프트 성향의 역사학자들에게는 부르주아적 민족주의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 이와 같은 후대의 왜곡에 의해 인정받지 못한 독립투사들이 홍범도 장군 한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장군 생전에 생겨나지도 않은 북측 정권의 악행으로 사상범으로 몰려 사후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 서기 전(BCE)에 태어나 그리스도교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천당에 가지 못하는 단테 알레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의 <신곡 La Divina Commedia>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중세의 교조주의와 다를 것 없는 오늘날 정부의 행태가 많은 반발을 일으키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31 착한 스승은 내게 “너 지금 보는 이 영혼들이 누군지를 넌 묻지 않느뇨? 그럼 너 더 나아가기 전에 내 알리고 싶노라.

34 저들이 죄를 짓지 않았고 공이 있다 해도 그것은 너 믿는 믿음의 한 몫인

성세聖洗를 못 받았기에 넉넉치 못하니라.

37 그리고 그리스도교 이전에 있었던 만큼 맞갖게 하느님을 섬기지 못하였나니 나 역시 이들 중의 한 사람이로다.

40 다른 죄 때문이 아니라 다만 이 탓으로 우리는 버림을 받고 오직 이 흠집 까닭에 가망도 없이 우리는 뜬 소망 속에 사느니라.”

43 내 그 말을 듣자 마음이 큰 슬픔에 사로잡혔나니 뛰어나게 값진 사람들이 림보(지옥 제1환)에 걸려 있음을 안 탓이어라. _ 단테 알레기에리, <단테의 신곡 - 상>, p68/634



 친일(親日)과 반일(反日) 사이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실에서 조금은 덜 알려져 있지만, 1930년대 항일투쟁의 역사를 되짚어보려 한다. 앞서와 같이 1920년 경신참변(庚申慘變) 등으로 위축된 항일무장투쟁은 무너지는 듯했으나, 공산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때마침 1931년 만주사변(滿洲事變)과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中日戰爭)을 일으키며 중국내륙으로 침탈해 오는 일본군에 대한 투쟁을 전개해간다. 투쟁의 중심이 김일성(金日成, 1912~1994), 김 책(金 策, 1903~1951), 최용건(崔庸健, 1900~1976) 등 동북항일연군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 금단의 영역으로 언급을 피한 것이 오늘날 친일세력의 부활과 확장을 가져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페이퍼의 마지막은 친일파들이 홍범도 장군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단서가 되는 부분을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친일 행적을 반공 이념으로 덮으려는 움직임이 마음을 답답하게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풀지 못한 숙제가 다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작은 위안을 삼는다...  


 홍범도는 1921년 9월 연해주지방에서 고려공산당 중앙간부 명의로 ‘우리 고려 노동군중에게’라는 문건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독립군이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거둔 승리를 자랑스럽게 언급하는 한편, 싸워야 할 대상은 일제뿐만 아니라, 동족 내부의 관료와 유산자, 가짜 공산당원 등도 해당된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던 것이다. 그 성명서의 일부를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전략) 환기하며 단합할 지어다. 우리 의병대들을!! 그들은 일찍 서북간도에서 일본 군벌주의자를 박멸하는 전쟁에 아름다운 이름과 거룩한 성적을 날아내였나니라. 동무들이여! 손에 잡은 총을 더욱 굳게 잡고 참된 자유를 각오하는 혁명자를 단합하여 우리의 행렬을 채우라. 주의할 지어다 우리의 수적晩賊은 자못 일본침략주의자뿐 아니라 동족 사이에도 있나니라. 자세히 말하면 관료급 유산자이며 홍○와 같은 외홍내백한 가면공산당원들이로다. (중략) 동무들이여 잊지 말지어다. 일본 군국주의자와 전쟁하는 동시에 세계 만방에서 압박받는 노동자 동지들이 후원하리라. 또는 이 동지들이 멀지 아니하여 압박계급과 대전을 개하리니 이 대전은 참으로 우리를 해방시키고 세계로 하여금 진리의 낙원을 형성하리니 정신을 가다듬어 전투준비에 급급할진저.-1921년 9월 15일 고려공산당 중앙간부(제3국제공산당 고려부) 각 의병대 수령 홍범도·최진동·허재욱·안무·이청천(윤상원,〈자유시사변과 홍범도〉,《역사연구》10, 역사학연구소, 2002, 271·277쪽) _장세윤, <홍범도>, p23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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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9-06 1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음 글을 더 기다리게 하는 반가운 페이퍼네요. 홍범도 장군께서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질투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작 장군은 한 길을 보며 간 분이었는데 말이죠.

겨울호랑이 2023-09-06 13:04   좋아요 2 | URL
각자 자신의 관점에 따라 시대와 인물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역사가의 연구임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하나의 관점 대신 다양한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해석된 결과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상과 이념만이 옳고 나머지는 다 그르다는 식의 접근은 인문학이 아닌 종교겠지요...

베이글 2023-09-06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풀지 못한 숙제가 다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말씀이 저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답답하게만 보였던 이 사태를 능동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준 말씀입니다.

오늘도 좋은 글과 책 소개 감사합니다.
좋은 오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3-09-06 14:51   좋아요 1 | URL
네, 많이 힘든 요즘이지만 돌이켜보면 박근혜 탄핵 직전 인 2016년에도 극심한 혼란 속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골이 깊은 만큼 산도 높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베이글님 평안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다음 날은 쉬는 날. 레츠는 '첫 심부름'을 하기로 했다. 다섯 살인 아리사와 샤나는 엄마의 부탁으로 심부름을 했다. 레츠는 일곱 살이니까 시키지 않아도 심부름을 갈 수 있다. _ 히코 다나카, 요시타케 신스케, <레츠의 심부름> , p12

 


일곱 살 어린이 레츠는 부모님께서 TV를 보며 무심코 던진 말을 듣고 '스스로' 심부름을 나간다. 부모님 어느 누구도 부탁하지 않은 심부름. <레츠의 심부름>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심부름이라는 숙제를 내고 해결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바쁜 여름 방학 기간을 지나고 2학기 첫 독후감 시간. 연의가 고른 책은 <레츠의 심부름>이다. 오랫만의 독후감이라 쉬운 책으로 가볍게 몸을 풀고 가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연의가 쓴 독후감을 읽으니 7살 레츠의 생각과 행동이 귀엽게 보였나 보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나도 처음엔 그랬지'라는 문장을 보면, 아마도 예전 연의 자신의 모습을 레츠에게서 발견한 것 같아. 아빠는 <레츠의 심부름>을 읽으면서 레츠가 왜 심부름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는지를 생각했어. TV를 보면서 다섯 살 아이가 심부름 하는 모습을 보며 기특하다고,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엄마와 아빠의 말. 레츠가 듣고 싶었던 것은 엄마 아빠의 칭찬이 아니었을까.


 "쟤들, 엄마 아빠 흉내 내고 있어." 엄마 말에 아빠가 대꾸했다.

 "부모들이 하는 얘기를 들은 거지. 나도 조심해서 말해야겠군." 레츠도 한 마디 했다.

 "조심해서 들어야겠군." _ 히코 다나카, 요시타케 신스케, <레츠의 심부름> , p8


 그래서 아빠는 <레츠의 심부름>을 읽으면서 아빠는 연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좋게 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봤어. 너무 엄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연의가 잘 한 일에 아빠가 칭찬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야. 필요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면 레츠의 심부름이 엄마 아빠에게는 '가출'이 되었던 것처럼 서로 엇나가지 않을까.  


 다른 한 편으로 연의가 예전에 읽었던 <이슬이의 첫 심부름>도 떠올리게 되었어. 엄마 심부름으로 가게에 우유를 사러 간 다섯 살 이슬이 이야기. 거스름돈을 받아와야 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심부름을 해야했던 이슬이 이야기와 책을 읽고 나서 엄마 신용카드로 심부름을 했던 연의 모습이 떠오르는 구나. 이제는 다 커서 용돈으로 알아서 가계부도 쓰는 나이까지 되었으니 아빠야말로 '연의가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예전에 아빠가 6학년 크리스마스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동시집을 사주시면서 동시 5개를 외우면 원하는 선물을 사주신다고 했었던 적이 있었어. 시집에서 시를 골랐는데, 아무래도 외우기 쉬운 짧거나 익숙한 시를 고르게 되더라. 그 중 하나가 <과수원 길>이었어.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잎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타고 훨훨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옛날의 과수원길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잎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타고 훨훨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옛날의 과수원길


 연의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 시는 유명한 노래 가사이기도 했어. 덕분에 아빠는 시 1개는 쉽게(?) 노래에 맞춰 외우고 숙제를 할 수 있었어. 이 이야기를 왜 했느냐구? 흠, 연의가 고른 책을 보니 옛날 아빠의 <과수원 길>이 떠오르는구나. 그냥 그렇다구. 자,  그럼 이번 한 주도 활기차게 보내자!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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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09-04 2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겨울호랑이 2023-09-04 22:01   좋아요 2 | URL
참 그리운 시절입니다...
 

 핵폐기물 처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비교적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토대였던 가정 중 일부가 턱없이 부정확했음이 연구 결과 드러났다. 실제로 그간 핵폐기물 처리는 우리 지식이 그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속도를 훨씬 더 앞질러 이뤄졌다. 일단 처리하고 나중에 조사하자는 식이야말로 재앙을 부르는 안일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바다에 투기한 방사성 원소는 회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저지른 잘못은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7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 The Sea around us>를 읽던 중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후쿠시마 핵폐수 투기와 관련하여 1961년판 저자의 머리말을 옮겨본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60여년 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마치 일본의 투기와 미국의 방관을 그리고 우리 정부의 협조를 비판하는 듯한 내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울림이 크다.


 핵폐기물을 버리거나 혹은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도록 허가하는 미국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의 한 관계자는 공식석상에서 "그 용기들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동안 애초의 안전성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실토했다. 이미 바다에 버린 온갖 용기, 그리고 원자과학의 실용성이 점차 커감에 따라 앞으로 버려질 용기에 담긴 내용물이 바다로 유출되는 것은 오로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이제는 핵폐기물의 쓰레기장 구실을 하는 강에서도 오염된 지표수가 바다로 흘러드는 데다 원자폭탄 실험으로 발생한 방사능 낙진도 대부분 광대한 바다 표층에 내려앉고 있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5


 누군가는 핵폐수가 안전하며, 이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것은 괴담 유포라고 비난한다. 그렇지만, 60여년 전에도 지금도 무단투기의 결과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인간의 한 세대보다 훨씬 더 긴 반감기를 갖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불확실성은 알 수 없기에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적으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결론이야말로 교조주의적인 주장이 아닐까.


  규제 당국이야 안전하다고 큰소리치지만, 이 모든 관행은 매우 불완전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해양학자들은 깊은 바다로 흘러든 방사능 원소가 결국에 가서는 어떻게 될지에 대해 "그저 막연하게 추측만 할 따름"이라고 말한다(p15)... 심해의 난류(亂流), 바닷속에서 여러 방향으로 겹겹이 흐르는 광대한 하류의 수평적 흐름, 해저 바닥의 광물질을 싣고 심층에서 위로 용승(湧昇)하는 물줄기, 그와 반대로 아래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표층수......  이 모든 과정이 어우러져 바닷물은 엄청난 규모로 뒤섞이며, 그 결과 방사능 오염물질이 바다 전체에 골고루 퍼진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6


 레이첼 카슨은 방사성 오염물질이 바다에 투기되었을 때 수산물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기준치 180배에 달하는 세슘우럭이 의미하는 바도, 그리고 그 세슘우럭이 가까운 일본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도 저자는 상세하게 설명한다. 해류에 의한 핵폐수의 위험이 닥치기 전에 수산물에 의한 우리 건강은 이미 위협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게 미치는 위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해양 동물이 방사능 동위원소를 체내에 축적하고 분배하는 현상이 한층 더 심각한 문제다. 바닷속에 사는 동식물은 방사성 화학 물질을 섭취해 체내에 농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구체적 과정에 관한 정보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바다의 작은 생명체는 바닷물에 있는 무기물을 섭취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무기물이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방사능 동위원소가 주위에 있을 경우 이를 대신 사용한다. 그로 인해 바닷물 농도의 무려 100만 배에 달하는 방사능 동위원소를 체내에 축적하는 일도 더러 생긴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6


 앞서 말했듯 레이첼 카슨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머릿말은 1960년대 초반에 쓰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이상 지난 시점에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은 주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바다의 시간은 인간의 기준으로 재어질 수 없다는 것과 우리는 바다로 인해 연결되어 있다는 것. 레이첼 카슨은 여러 곳에서 인류와 환경에 닥친 미래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개인적으로는 카슨의 예언이 트로이의 카산드라(Cassandra) 예언처럼 사람들에게 믿어지지 않는 그러나 반드시 실현되는 예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침묵의 봄>에서 보여준 저자의 통찰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명성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의 불안도 커지게 될 것이라는 불안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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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8-30 14:1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오염수 투기에 어떻게 보수.진보가 나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해양 생물들이 처한 상황이 가장 가슴아프고 국가가 저지르는 불법을 무력하게 지켜봐야하는 개인들의 절망감, 불필요한 서로간의 다툼이 슬프네요.

2023-08-30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3-08-30 14: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사안들이야말로 더 장기적이고 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죠.
오염수는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 누적되는 것이다는 말이 있더군요. 한국이 그토록 우습게 여기는 중국조차 후대세대 생존의 문제라고 접근하는데, 우리는 당장의 수산물 소비에 모든 촛점이 맞춰지고 있네요.

겨울호랑이 2023-08-30 14:53   좋아요 6 | URL
정치가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정치적 사안에 대해 개인의 이익과 연관지어 판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개인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야 할 문제와 그렇지 않은 문제는 분명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오염수 배출에 대한 대응이 미국-일본의 고립화 전략에 대한 반격으로 해석하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물론, 복잡한 국제 관계에 있어 여러 변수 중 하나겠습니다만, 적어도 현재 중국의 대처가 보다 대의명분과 상식에 부합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 나라는 대의명분도 실리도 모두 놓치고 있다는 현실이 참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