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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여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5월
평점 :
오래 산 나무한테는 뭔가 힘이 있을 것 같지 않나. 한국은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가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이기도 했다더군. 이제는 그런 일 거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마을을 바라보고 사는 느티나무나 여러 나무가 있을 거야. 동양은 비슷한 정서가 있기도 하지. 나무를 영험하게 여기는 거. 그런 걸 당산나무다 하던가. 일본은 신사에 신사를 지키는 커다란 나무가 있는 듯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만화에서 줄을 묶어둔 나무 자주 본 듯해. 그건 뭔가를 지키려는 거더군. 그걸 잘 알면 자세하게 말할 텐데 조금밖에 몰라.
이번에 만난 《녹나무의 여신》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가 되고 서른다섯해를 기념해서 쓴 《녹나무의 파수꾼》 다음 이야기야. ‘녹나무의 파수꾼’과 ‘녹나무의 여신’은 온 세계에 동시에 나왔던가 봐. 히가시노 게이고는 세계에 알려진 작가군. 지난 2023년에 백번째 책을 냈다지. 정말 대단해. 작가가 되고 책을 백권이나 내다니. 이제 백권 넘었겠어. 히가시노 게이고 책 백권 다 못 봤지만 꽤 많이 만났어. 세어보지 않아서 얼마나 만났는지 정확하게 몰라. 몇해 전에 ‘녹나무의 파수꾼’을 만났는데, 그걸 자세하게 말하기는 어려워. 내가 기억하는 건 나오이 레이토가 지금까지 몰랐던 이모를 만나고 이모 일을 이어서 녹나무가 있는 신사를 지키는 일을 한다는 거야. 녹나무에 마음을 남기면 그건 핏줄인 사람만 받을 수 있다고 해. 지난번 이야기에서는 식구를 말한 듯해. 핏줄이 아닌 사람이 나온 것 같기도 한데. 그 일은 야나기사와 집안이 사회봉사로 하는 일이다 했던가.
두번재 이야기에서도 나오이 레이토는 녹나무가 있는 월향신사를 지켜. 여기는 다른 신사와 다르게 사람이 많이 오지는 않지만. 입소문으로 녹나무 힘을 알게 된 사람이 찾아오겠지. 레이토 이모인 치후네는 경도 인지장애로 일상생활은 어떻게든 하지만 가끔 기억이 한번에 사라지기도 해. 자신이 한 일이나 말을 수첩에 적어둬.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시간이 더 흘러가면 혼자 일상생활하는 것도 힘들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거야. 그런 거 생각하면 하루하루 사는 게 무서울 것 같기도 해.
강도사건이 일어나고 월향신사에 왔던 사람이 용의자로 잡혀. 고등학생으로 자신이 쓰고 만든 시집을 월향신사에 놓고 팔리기를 바라는 하야카와 유키나, 중학생인데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은 뒤부터는 자고 일어나면 전날 기억이 모두 사라지는 하류 모토야. 수술 받기 전까지 기억은 있어. 새로운 건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유키나와 모토야는 레이토를 사이에 두고 만나고 유키나가 이야기를 쓰고 모토야가 그림을 그려서 그림책을 만들게 돼. 두 사람이 만든 그림책 그림에 녹나무는 여신으로 나타나. 예전에 뇌를 다치고 수술한 뒤부터 일은 기억하지 못하게 되어 글을 적어두고 소설을 쓰던 사람 이야기를 봤는데. 여기 나온 모토야는 중학생이고 뇌종양 수술 뒤부터 그렇게 됐군. 모토야는 ‘내일의 자신한테’ 일기를 써. 자신이 썼지만 쓴 기억은 없는. 그래도 하루하루 이어서 살아.
녹나무는 기억을 담아두는 거기도 하군. 기억을 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다르지만. 자신이 기억을 맡기고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받을 수도 있대. 그건 한번이고 그 뒤에 다른 사람은 받지 못해. 치후네는 기억을 잃어가고 모토야도 새로운 건 기억하지 못하다니. 다르면서도 비슷하군. 모토야는 뇌종양 수술을 한 뒤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레이토를 만나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워즈 이야기를 하고 즐거워해. 유키나하고는 그림책을 만들면서 오늘을 사는 즐거움을 알게 돼. 그날 기억은 사라진다 해도 일기가 있어서 괜찮았어.
히가시노 게이고가 하고 싶은 말은 유키나와 모토야가 함께 만든 그림책 《소년과 녹나무》에 담은 것 같아. 지나간 날이나 다가올 날이 아닌 지금을 사는 것. 지금 자신이 살아 있는 건 자기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는 것도. 지금 힘들어도 살아 있기에 여러 가지를 느끼겠어. 지나간 날을 아쉬워하고 다가올 날을 걱정해도 어찌하지 못해. 그런 거 알아도 사람은 아쉬워하고 걱정해.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지금, 오늘을 소중하게 여겨야지. 그래야 할 텐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