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물 처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비교적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토대였던 가정 중 일부가 턱없이 부정확했음이 연구 결과 드러났다. 실제로 그간 핵폐기물 처리는 우리 지식이 그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속도를 훨씬 더 앞질러 이뤄졌다. 일단 처리하고 나중에 조사하자는 식이야말로 재앙을 부르는 안일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바다에 투기한 방사성 원소는 회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저지른 잘못은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7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 The Sea around us>를 읽던 중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후쿠시마 핵폐수 투기와 관련하여 1961년판 저자의 머리말을 옮겨본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60여년 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마치 일본의 투기와 미국의 방관을 그리고 우리 정부의 협조를 비판하는 듯한 내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울림이 크다.
핵폐기물을 버리거나 혹은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도록 허가하는 미국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의 한 관계자는 공식석상에서 "그 용기들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동안 애초의 안전성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실토했다. 이미 바다에 버린 온갖 용기, 그리고 원자과학의 실용성이 점차 커감에 따라 앞으로 버려질 용기에 담긴 내용물이 바다로 유출되는 것은 오로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이제는 핵폐기물의 쓰레기장 구실을 하는 강에서도 오염된 지표수가 바다로 흘러드는 데다 원자폭탄 실험으로 발생한 방사능 낙진도 대부분 광대한 바다 표층에 내려앉고 있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5
누군가는 핵폐수가 안전하며, 이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것은 괴담 유포라고 비난한다. 그렇지만, 60여년 전에도 지금도 무단투기의 결과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인간의 한 세대보다 훨씬 더 긴 반감기를 갖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불확실성은 알 수 없기에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적으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결론이야말로 교조주의적인 주장이 아닐까.
규제 당국이야 안전하다고 큰소리치지만, 이 모든 관행은 매우 불완전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해양학자들은 깊은 바다로 흘러든 방사능 원소가 결국에 가서는 어떻게 될지에 대해 "그저 막연하게 추측만 할 따름"이라고 말한다(p15)... 심해의 난류(亂流), 바닷속에서 여러 방향으로 겹겹이 흐르는 광대한 하류의 수평적 흐름, 해저 바닥의 광물질을 싣고 심층에서 위로 용승(湧昇)하는 물줄기, 그와 반대로 아래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표층수...... 이 모든 과정이 어우러져 바닷물은 엄청난 규모로 뒤섞이며, 그 결과 방사능 오염물질이 바다 전체에 골고루 퍼진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6
레이첼 카슨은 방사성 오염물질이 바다에 투기되었을 때 수산물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기준치 180배에 달하는 세슘우럭이 의미하는 바도, 그리고 그 세슘우럭이 가까운 일본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도 저자는 상세하게 설명한다. 해류에 의한 핵폐수의 위험이 닥치기 전에 수산물에 의한 우리 건강은 이미 위협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게 미치는 위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해양 동물이 방사능 동위원소를 체내에 축적하고 분배하는 현상이 한층 더 심각한 문제다. 바닷속에 사는 동식물은 방사성 화학 물질을 섭취해 체내에 농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구체적 과정에 관한 정보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바다의 작은 생명체는 바닷물에 있는 무기물을 섭취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무기물이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방사능 동위원소가 주위에 있을 경우 이를 대신 사용한다. 그로 인해 바닷물 농도의 무려 100만 배에 달하는 방사능 동위원소를 체내에 축적하는 일도 더러 생긴다. _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머리말, p16
앞서 말했듯 레이첼 카슨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머릿말은 1960년대 초반에 쓰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이상 지난 시점에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은 주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바다의 시간은 인간의 기준으로 재어질 수 없다는 것과 우리는 바다로 인해 연결되어 있다는 것. 레이첼 카슨은 여러 곳에서 인류와 환경에 닥친 미래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개인적으로는 카슨의 예언이 트로이의 카산드라(Cassandra) 예언처럼 사람들에게 믿어지지 않는 그러나 반드시 실현되는 예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침묵의 봄>에서 보여준 저자의 통찰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명성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의 불안도 커지게 될 것이라는 불안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