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챠는 일몰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쟌시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는 늦은 밤 11시 경이었다. 며칠 머물던 오르챠에서 쟌시로 떠난 것은 해가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8시경 이었다. 당시 오르챠는 인도에서 꽤나 오지로 통하던 곳이었고 몇 대 되지 않는 택시는 이미 역으로 떠난 후였다. 오르챠에서 일행이 된 대학생 커플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머물게 되었고 마칠 즈음에는 이미 한 대의 택시도 남아 있지 않았다. 꽤나 난감한 시간을 보내고 식당 주인과 숙소 주인까지 발벗고 나서고서야 젊은 청년이 끄는 지붕이 없는 오토릭샤 한 대를 대절할 수 있었다. 18킬로 정도의 산길로 대략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작은 동네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니 검은 도화지를 하얀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거친 붓으로 몇 번 휙~휙~ 훒어 버린 듯 하늘은 온통 별들의 향연이었고 계곡 사이의 하늘은 붓의 뒷길을 쫓아가는 여정과도 같았다. 흥에 겨워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데, 릭샤 청년이 샛길로 빠져 들어갔다. 친구를 같이 태워가고 싶다길래 흔쾌히 허락하고 다시 콧노래에 빠져들었다. 친구를 태운 릭샤는 다시 길을 에돌아 나와 산길을 달려갔다.


삼십 분 내내 불빛 하나 없는 길을 오직 오토릭샤의 불빛에 의지해 달렸다. 근데 어느 순간 앞자리에 동승한 릭샤 청년과 그의 친구가 자꾸 속닥거리며 어깨 너머로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그 동작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몇 차례에 걸쳐 계속되었고 마음 속에 의심의 덩어리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는 남미와 더불어 최악의 여행 난코스로 여겨졌다. 남자는 강도를 당했고 여자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인도 여행 코스의 특성상 그런 소문들이 삽시간에 퍼졌는데 델리에서 택시 강도를 당한 동양인 여행자와 인도 중부 고어에서 강간 살해된 북유럽 여행자의 소문이 돌고 있던 시기였다. 곧 의심은 눈덩이처럼 커져 확신으로 바뀌었고 다음 소문의 당사자가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온 몸을 감쌌다. 인도인치고 건장한 체격의 두 청년이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사건에 대비해 배낭 속에 몇 단위로 분할해 소지하던 돈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 별다른 상해 없이 최소한의 돈만 지불하고 이 사태가 끝나기를 바라며 몸을 뒤척이던 순간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무언가 묵직한 물건이 느껴졌다.  


<매일 일몰을 찾아 마을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건 일명 맥가이버칼로 불리던 스위스 군용 나이프였다. 칼을 발견한 순간 한쪽으로 기울었던 마음의 추가 균형을 맞추려는 듯 급격하게 기지개를 켰다.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모험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 칼날을 펴 꺼내 들었다. 평소 과일이나 깍던 둔탁해 보이던 십 센티 길이의 칼날은 그날 따라 살의라도 품은 듯 하얗게 빛났다. 물론 나의 의도는 상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칼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하여 그 맘을 포기하기를 바란 것이다.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칼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최선인데 왠지 그들도 돌아보지 않았다. 칼의 존재를 모르고 달려들기라도 하면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식으로 칼의 존재를 알릴 것인가. 괜히 먼저 들이밀어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오르챠를 떠나올 때 대학생 커플이 건네준 사과 봉지가 생각났다. 배낭 옆에 들어있던 사과를 꺼내 깍았다. 그리고 잘라낸 사과를 칼과 함께 움켜 쥐고 두 청년의 어깨 사이로 들이밀었다. "eat ." 사과가 얹어진 칼을 본 것일까. 움찔 하는 그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다행히 의도대로 칼의 존재는 알린 듯 했다. 쟌시역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나머지 사과 서너 개를 시간에 맞춰 깍았고 그들에 넘기고 나도 먹었다. 긴장감에 줄창 피워대던 담배 필터에 바짝 마른 입술이 달라붙어 떨어져 나왔고 필터에 찝찌름한 피가 묻어 나왔다. 문득 나의 모습이 아귀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사과가 건네지고 얼마 뒤 드디어 역의 불빛이 보였다. 릭샤가 정지하기 전 뛰어내려 길 건너편으로 달려갔다. 릭샤 청년 둘도 릭샤에서 내려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무니 입술에서 또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안도감에 기이한 웃음이 터졌다. 한참 허리를 구부려 웃음을 뱉어 내었다. 담배를 다 피울 동안 두 청년은 말없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 떠나지 않지? 한참을 서로 응시하다 담배꽁초를 버리고서야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줄까 말까. 괘씸하기는 했지만 놀란 눈으로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잠시 고민하다 심호흡을 하고 길을 건너 두 청년 앞에 섰다. 그리고 백 루피를 꺼내 건넸다. "one fifty, two hundred" 안도감에 따블을 건넨 것이다. 바라나시 역으로 걸어가는 내내 심장은 여전히 두근 반 세근 반 두근거렸다. 


난 이 사건을 재치로 위험을 넘긴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고 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에서 다음 구절을 보고 말았다.


"인도에서는 시외에 나갈 때는 택시나 릭샤를 가릴 것 없이 운전석에 반드시 조수를 한 사람 태우고 둘이서 다닌다. 어쩌면 승객이 도둑으로 돌변할지 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도 기행 p89-


그러니까 말이죠, 사건을 릭샤 청년의 입장에서 재구성해보면,

<숙소 아저씨의 호출이 온 것은 어둠이 내린 저녁이었다. 몇 번을 거절했으나 반협박성 요구에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 윗 동네에 사는 크리슈나가 같이 가주겠다기에 돌아오는 길에 여행자라도 태워 돌아올 요량으로 승낙했다. 탑승한 여행자는 한국인으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국인을 처음 보는 크리슈나도 그 모습이 재밌는지 연신 뒤돌아보며 웃었다. 오랫만에 만난 우리도 이런 저런 이야기로 즐거웠다. 시간이 지나니 콧노래가 그쳤다. 그리고 뭔가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뒤를 돌아본 크리슈나가 놀란 얼굴로 칼에 대해 들릴 듯 말 듯 이야기했다. 칼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행객이 뭐가 아쉬워서 강도짓을 한단 말인가. 순간 우리 둘의 어깨 사이로 사과가 들이 밀어졌다. 사과 밑에는 투명하게 반짝이는 칼날이 함께 놓여 있었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수시로 사과와 칼날이 우리 둘의 사이를 파고 들었다. 돌아보니 입술에는 피가 붉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아귀같았다. 드디어 역에 도착하니 건너 편으로 냅다 튀었다. 그리고 한참을 서서 웃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돈을 따블로 주고 헐레벌떡 멀어져 갔다. 저건 미친 놈이 틀림없다. fucking korean!>


<저들의 삶은 이해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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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10-06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그 순간에는 오싹하고도 무서웠을 것 같아요. 잉크냄새님의 재치가 돋보였네요. 후일담이라 맘 놓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

잉크냄새 2026-10-06 23:51   좋아요 1 | URL
저보다도 릭샤꾼과 친구가 오싹하고 무서웠을 겁니다. 둘이나 타고 강도를 당할뻔 했으니까요. 저도 재치라 생각했는데 법정 스님에 따르면 강도로 살짝 돌변한 상황이죠. ㅎㅎ

마힐 2026-10-07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쪽 다 몸은 현재에 여여하게 자기 할일을 했지만 속으로는 무수히 많은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었네요. ^^ 지나고나서야 웃을 수 있지만 당시 상황엔 여러 개의 우주가 펼쳐졌네요. ㅎㅎ 사과를 깍을 때 맥가이버 음악이 머리 속에서 흘러 나왔을 것 같네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장애를 이유로 멈추지 않는 삶들의 이야기
권용덕 지음 / 김영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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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개인의 불행이나 결핍으로 치부될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정상의 범주에 위치시키고 언제든 비정상을 차별할 근거 위에 서 있다. 문제는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의 구조에 있다. 동정과 시혜의 시선이 아닌 평등과 참여의 관계로 무게 중심을 이동해야 구조는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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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fox 2026-09-30 0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가 약한 부분중 하나인것 같아요. 다름이 틀림이 되지 않고 다 같이 행복할수 있는 국가가 되면 좋을 것 같네요. 저도 읽어보고 싶은 책인 것 같아요. 잉크냄새님 오늘도 행복히시고 건강하세요.

잉크냄새 2026-09-30 20:58   좋아요 1 | URL
장애를 보며 느끼는 동정심은 자연스러운 감정일텐데 그 밑에 무의식중 깔려있는 차별 의식이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동정보다는 평등한 눈빛을, 시혜가 아닌 같이 참여하는 공동의 장을 요청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한국어 사용자들은 문장 하나를 말할 때마다 그렇게 상대와 자신의 지위를 확인한다. 너는 나에게 반말과 존댓말을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나는 너에게 존댓말밖에 쓰지 못할 때 나는 금방 무력해진다. 순종적인 자세가 되고 만다. 그런 때 존댓말은 어떤 내용을 제대로 실어나르지 못한다.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도전적인 아이디어들이 그렇게 한 사람의 머리 안에 갇혀 사라진다. 나의 자존을 지키지 못하는 언어, 틀렸다고 꾸중 듣기 좋은 말을 자주 쓰고 싶을 리 없다. 단기적인 대책은 상사, 선생님, 윗세대와 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장기적인 대책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다. 한국의 세대 구분이 그렇게 촘촘하고 계층 간 단절이 심한 것, 이 사회가 그토록 출세 지향적인 것은 언어 탓이 꽤 크다고 생각한다. ‘존댓말 쓰고 반말 듣는 상황’을 다들 피하고 싶지 않나. 오래도록 그런 처지에 내몰려 억울함이 쌓이고 묵으면 한이라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p282-


처음 중국 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일 중 하나가 중국 직원들의 억양과 말투였다. 직원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쓰는 언어는 동등했다. 그들 사이의 언어와 나에 대한 언어가 다르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그들과 나 사이의 나이와 직책과 서열을 언어와 관련 짓고 있었다. 동등한 언어의 사용, 그들 사이의 말이 나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때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데 몇 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해외 고객의 공정 감사에 대응할 일이 많았다. 영어와 중국어권 고객과의 협상 자리의 언어는 평이하고 동등했다. 대화에 높낮이가 없었고 조심스런 격식만이 느껴졌다. 반면 (일본어는 잘 모르지만 분위기상) 일본과 한국 고객과의 언어는 나를 얼마나 낮추고 있는지, 그리하여 당신이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지는 보여주려는 무의식적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사용할 때 나의 언어 습관은 무척 달랐고 행동의 양태도 달랐다. 스스로 느낄 뿐 아니라 제삼자도 흥미롭고 의아하게 지켜보던 모습이었다. 한국어가 훌륭한 언어인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존댓말이 갑질의 언어로 변질될 때 존대는 굴종을 요구한다. 훌륭한 한글이 존댓말로 대표되는 동방예의지국의 언어가 아니라 반말이 사라진 평등한 나라의 언어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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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6-09-18 0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커피숍 직원이 고객이 아니라 상품을 높이는 것을 희화화 해서 보여주는 코메디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높임말이 참 어렵죠. 나보다 상관이 대화 상대 앞에서 그보다 직급이 낮지만, 나보다는 더 높은 분을 언급할 때 호칭을 높여야 하나? 아님 낮춰야 하나? 이게 참 애매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아무생각없이 다 높이면, 저 가게 직원 말투가 되는 거죠.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가 나오셨어요. 만오천원 되십니다.

잉크냄새 2026-09-19 10:02   좋아요 0 | URL
제가 느낀 바가 있어서 중국에서 복귀한 이후 다시 회사에서 임원직을 수행하면서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했어요. 나중에 퇴사할 때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존댓말을 사용한 것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하더군요. 전 사실 일 잘했다는 말을 기대했는데...ㅎㅎ 그만큼 한국 사회 생활에서 연공 서열에 따른 언어의 사용이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페크pek0501 2026-09-18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댓말이 갑질의 언어로 변질될 때 존대는 굴종을 요구한다.˝
생각해 볼 만한 문제예요.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 좋은 글이 많더라고요.^^

잉크냄새 2026-09-19 10:10   좋아요 0 | URL
성급한 결론일지 모르지만 전 한국 사회 갑질의 주요 원인중 하나가 존댓말의 변질이라고 생각해요. 말이 의식을 결정하는 언어결정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 갑과 을을 구분하게 만듭니다. 을이 갑에게 하는 존대에는 굴종이, 갑이 을에게 하는 존대에는 비꼼과 무시가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마힐 2026-09-20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중국어도 한국과 같은 존댓말은 없지만 호칭으로 상대방을 윗사람으로 보느냐, 나랑 동등 혹은 나보다 아래로 보느냐로 나뉘어 집니다. 다만 그 구분이 한국처럼 확실하지 않고 모호하긴 합니다. 대신 어투나 감정을 통해 이해해야 하죠. 한자어의 특성인가 봅니다. 뜻으로만 해석해야 하니. 아무튼 존대든 하대든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 언어적 폭력이 되는 건 한국이나 중국이든 같은 것 같습니다.

잉크냄새 2026-09-20 19:28   좋아요 1 | URL
‘您닌‘과 ‘你니‘의 구분이라든지, 나이를 묻는 예의있는 표현이라든지...하는 것을 ‘조심스런 격식‘ 이라는 문구에 포함해 보았어요. 세상 어디나 언어적 폭력이 존재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 언어가 존댓말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갑과 을의 언어로 변질될 때 그 폭력의 상흔은 훨씬 크고 잔혹합니다. 말이 의식을 제한한다는 언어결정론에 가장 부합하는 하나의 예시가 존대말과 반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갑질은 어느 사회나 존재하지만 ‘갑질‘이란 단어가 옥스포드 사전에 등재된 건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죠.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 기후 붕괴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케이트 마블 지음, 송섬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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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기후학자인 저자는 트로이의 예언자 카산드라의 이야기로 책의 첫 장을 시작한다. 트로이의 공주인 카산드라는 어릴 적 우연한 사고로 예지력을 얻었으나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한 댓가로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에 걸린다. 트로이는 목마로 인해 멸망할 것이니 성으로 들이지 말고 태워버릴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비운의 예언자이다. 저자는 기후 위기에 직면한 현재의 지구와 기후학자인 자신의 입장을 결국 멸망해버린 트로이와 예언자 카산드라에게 감정 이입하며 그 고단한 심정을 풀어가고자 한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은 이미 익숙해서 무감각해진 단어가 되어 가고 있다. 정치적 입장과 경제적 제약 등의 문제로 공동의 목표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저자는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외피를 빌려 기후 위기의 지구를 이야기한다.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경이로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위기를 외면하고 왜곡하는 이권 단체들에 대한 분노, 기후 위기의 진범인 인간으로서의 죄책감, 기후 위기가 몰고 올 자연 재해와 그로 인해 인간 사이에 저질러질 죄악에 대한 두려움, 인간으로 인해 사라질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애도, 오존층의 보호 등 지금껏 인간이 이루어낸 작은 성공으로 말미암은 실날같은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 등 아홉 가지의 감정으로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카산드라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신화 속 카산드라의 저주는 구혼을 거절당한 찌질남 아폴론에 의하여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 속 카산드라의 저주는 누구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있을까. 현재 기후 위기의 대책으로 거론되는 플랜A는 기온의 상승을 초래하는 온실가스의 배출을 중단하는 것이고 플랜B는 지구 공학적 방법으로 지구가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플랜A는 무조건 가야 할 길이고 플랜B는 인간 오만함의 극치라고 평가한다. 플랜B에 해당하는 공학적 방법으로는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 복사열을 조절하는 방안과 탄소 순환을 조작하는 이산화탄소 제거의 방안 등이 거론되는데 이 방법들은 아직 유의미한 규모로 시행되지도 않을 뿐더러 극도로 위험한 불완전 요소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학적 방법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대기업과 같은 이권 단체가 탄소 제거라는 먼 미래의 전망을 이용해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또한 그들이 기후 위기의 불확실성을 강조하여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을 통념화하려는 의도라고 분노한다. 그것이 그들이 걸고 있는 저주이다.  


신화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카산드라의 저주를 끝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저주의 멍에를 지고 많은 이들이 애초에 없던 길을 걸었다. 그들의 발자국 뒤로 남은 그 길은 이제서야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기후 위기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적 같은 구원은 없다. 다만 기후 모델에는 인간이 빠져 있다. 낙관적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 인간만이 유일한 변수라는 말이다. 지구의 미래는 인간의 두 손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인간만이 희망이라는 뻔뻔한 자기기만적 망상에는 빠지지 말자. 다만 결자해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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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6-09-18 0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강의를 다닐 때마다 카산드라가 된 기분을 느낍니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을 비롯한 기후 재난을 예시로 들면, 그나마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하는데, 곧이어 그래서 우리가 뭘 해야 하나요? 라고 묻는데, 뭐라 답하기가 참 어렵죠. 요즘은 인공지능을 현명하게 쓰시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쓸데없는 질문 때문에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력과 냉각수가 어마어먀 하거든요.

잉크냄새 2026-09-19 09:52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환경 활동가이신 감은빛님의 입장도 떠올려보곤 했습니다. 작가의 입장이 곧 감은빛님의 입장이겠구나 싶더군요.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더위처럼 곧 사그라들어버리겠죠. 결국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데이터센터는 경제성 없는 것도 확인되었고 엄청난 전력과 수자원을 필요로 하고 열과 소음 발생등 계속 파열음이 나는데도 우리나라는 지자체마다 최우선 과제로 채택하는 아이러니한 짓거리를 하고 있네요.
 

< AI가 그려줬어요 - 속옷 가게와 삼류 극장 간판은 같은 거리에 있지 않았다>


길 건너편의 어떤 풍경에 매료되어 걸음을 멈췄다. 화려한 여성 속옷 가게 앞에서 서성이던 한 여인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별것 아닌 모습에 발걸음을 멈춘 것은 그 곳이 중동의 어느 도시였고 그 여성은 검은색 차도르로 온 몸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중동 어느 거리에서 상반신을 훤히 나체로 드러낸 여성이 그려진 영화 포스터를 봤을 때만큼이나 이질적이었다. 무채색 거리에 레이스가 달린 붉은 속옷을 걸친 마네킹이 쇼윈도우를 통해 노출된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기실 궁금했던 것은 검은색 차도르를 착용한 그 여인이 어떤 선택을 할까 였다. 들어갈까 아닐까. 감히 사진기를 꺼내 찍을 엄두는 못 내고 가만히 지켜 보았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남편인 듯한 남자가 나와 쇼핑백을 그녀에게 건넸다. 아! 이 여성은 속옷 고를 자유마저 차압당하고 살고 있구나. 이 또한 차도르라는 폐쇄적인 이미지가 가져온 편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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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04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실적으로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에서 저런 여성 속옷가게가 가두 상권에 공공연히 있을 수는 없지만 실제 중동 여성들의 경우 차도르 밑에 의상이나 속옷은 자유로운 서구 여성 못지 않게 매우 화려하다고 합니다.아무래도 억압된 상황에 대한 일종의 욕구분출이 아닐까 싶네요.

잉크냄새 2026-09-04 20:09   좋아요 0 | URL
이슬람의 본산지인 사우디(수니파), 이란(시아파) 처럼 진짜 엄격하게 이슬람의 율법이 지켜지는 나라는 꿈도 못 꿀 상황이지만 주변국들은 좀 관대한 편이더군요. 이 글도 시리아 중부의 어느 도시에서 마주한 내용입니다.

모나리자 2026-09-06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의 풍경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네요. 온통 검은 차도르로 감싼 여인의 모습과 너무 대비되어서요. 그나저나 미 이란 전쟁 얼른 끝나야 할 텐데 한없이 길어지네요.
잉크냄새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잉크냄새 2026-09-06 14:01   좋아요 1 | URL
제 기억에 대낮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아요. AI한테 조명단계를 좀 낮춰달라고 해도 말을 잘 듣지 않아 좀 밝게 나왔어요. AI 생각에도 속옷가게는 조명이 밝을거라는 선입견이 있나 봐요. ㅎㅎ
미국 이란 전쟁을 보면 이제는 전장은 지역적이지만 국지전 개념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세계가 고통받네요. 트럼프 빼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감은빛 2026-09-18 0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 이슬람 문화권은 매우 과학적이고 철학적이며 평등한 문화였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속옷 하나 살 수 없는 시대로군요. 이런 것이야말로 깨져야 하는 악습이네요.

잉크냄새 2026-09-19 09:39   좋아요 0 | URL
코란의 해석이 참 무섭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종교적 해석도 결을 달리 해야하는데 종교 원리주의가 워낙 막강한 모양입니다.
말씀처럼 몇몇 악습만 없앤다면 이슬람 문화가 관대하고 참 매력적인 면이 많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