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었다. 모든 이교도에 대하여 출입을 불허했다. 아테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다 에게해로 나와 크레타 섬을 지나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그 곳에는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도서관이 있었다. 이교도인 난 밤이 되길 기다려 몰래 잠입하거나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한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저녁이 찾아 들면 고딕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지중해의 붉은 손길이 넘실거렸다 . 붉은 유혹에 책을 덮고 나와 지중해가 바로 바라 보이는 바위에 앉아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던 석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응시하곤 했다." - 잉글랜드 삼등훈작사 조르바 -


일행과 시와 사막에서 헤어졌다. 이집트 남부 아스완의 아부심벨로 떠나는 일행과 헤어져 사막에서 며칠을 더 머문 후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일반적인 여행 코스인 아부심벨을 뒤로 하고 알렉산드리아로 간 이유는 그 곳에 기원전 3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건립된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작성되고 보관되어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이 도서관은 오랜 세월 화재와 침략 등으로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를 인정받아 유니세프의 지원 아래 재건되었다. 이런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이 도시가 내 흥미를 끈 것은 30대 초반 한참 열중하던 온라인 게임 <대항해 시대>의 추억 때문이었다.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온라인 게임에서 잉글랜드 출신 고고학자인 내 케릭터가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애용한 루트 중 하나가 아테네-알렉산드리아 구간이었다. 머릿글에 기록한 내용이 그 당시의 게임 장면이다. 실제 키보드로 화면을 돌려 바라보던 지중해의 풍경은 묘한 동경을 자아냈는데, 그 풍경을 바라보며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게임 속에서 응시하던 지중해의 붉은 석양에 직접 휩싸이게 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맨 왼쪽에 '월'이 새겨져 있다. '워~얼' 하고 테이프 늘어지는 모양새다.>


도서관은 트램이 통과하는 복잡하고 지저분한 길을 배경으로 주변 풍경과는 이질적인 깨끗하고 현대적인 하얀색 건물이었다. 활처럼 약간 휘어진 직사각형의 전면부 넓은 벽면에는 지구상 존재하는 많은 언어가 조각 되어 있었다. 익숙한 몇몇 언어를 제외하면 상형문자라 해도 무방할만큼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한글도 포함되어 있는데 여섯 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가 찾은 건'월','세','름' 세 자 뿐이다. 초,중,종성의 조합이라는 이론에만 충실했는지 초,중,종간 간격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왠지 소리 내어 읽으면 테이프 늘어지는 소리가 날 듯 했다. 자음 크기 하나가 알파벳 크기만 하니 한글 한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이 유독 커 보였다. 누군가는 그 곳에 새겨진 글자 수로 각 언어의 우월함을 자랑하고자 하는데 재건 관련 유니세프에 기부한 기부금 액수에 비례하는 바가 크다고 하니 문화마저 우열과 차별에 이용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책과 도서관이야말로 그런 편견과 차별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이지 않을까. 도서관다운 아이디어가 돋보인 건축물이었다.


< 도서관 이용 여성들은 대부분 히잡을 착용했고 챠도르 이상의 복장은 보기 힘들었다.>


이슬람 문화권을 여행하면서 가장 관심있게 바라본 것 중 하나는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였다.도서관은 가장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장소라 여겨져 특히 눈여겨 지켜보았다. 히잡을 두른 학생들이 모여서 책을 검색하고 열람하고 공부하는 모습은 왠지 이질적이면서도 희망적이었다. 이슬람의 전통 의복은 그 개방성 순으로 나열하자면 히잡-챠도르-니깝-부르카의 순이라 할 수 있는데 히잡이 가장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도서관에도 히잡을 착용한 여성이 가장 많았으며 니깝 이상의 복장을 한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문화가 행동을 규제한다고 한다. 근데 문화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관찰자마저 규제한다. 묘하게도 니깝이나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을 볼 때마다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는 나의 행동 하나 하나를 스스로 규제하게 만드는 자기 검열에 빠지곤 했다. 반나절 정도 도서관에 머물렀다. 주로 문학과 인문학 관련 서가를 돌아다녔는데 문학 관련 한글 서적은 한 권도 찾지 못했고 인문학 쪽에만 세 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 


<아마 지금은 한강의 소설들이 많이 자리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바닷길은 석양이 지중해를 서서히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도시 한 끝을 물들이기 시작한 노을이 굽이 도는 해안길을 돌아 숙소 앞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몰래 내 뒤를 밟아 이 곳까지 침범해 있었다. 오래된 성벽처럼 자리한 방파제 한 끝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면 하늘과 바다 전체가 붉어질 것이었다. 순간 검은 실루엣이 나를 지나치는가 싶더니 석양 속으로 성큼 성큼 걸어갔다. 석양 속으로 낚싯대를 던지는 노인의 뒷모습이 노을 속에 박제 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풍경이 되어 버린 듯했다. 대항해 시대의 어느 촌부와도 같았다. 구태여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백년 만에 도래한 것에 감격하다 웃음이 나왔다. 대항해시대 내가 타고 온 갤리선이 보이는 듯 했다. 노를 저어 다시 아테네로 가야 하나!!! 

<가끔 풍경이 되는 피사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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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2-06 0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년 전 이맘 때 이집트 다녀왔어요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다른 어느 도시와도 달랐어요. 알렉산더 대왕의 영향으로 서구 문물의 영향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곳이었지요.
저도 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막 헤집고 다녔답니다. 이래도 되나 하면서요.

잉크냄새 2026-02-06 20:03   좋아요 0 | URL
2년 전이면 제가 방문한 시기에 비해 많은 부분이 변했겠네요. 제가 갔을 때는 주변으로 낡은 트램이 다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중해 항구로서 유럽과의 교류가 빈번했는지 확실히 이집트 다른 이슬람 도시들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이긴 했어요.
도서관은 마구 헤집고 다녀도 됩니다. 소리만 안 내면...ㅎㅎ

마힐 2026-02-06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게임 속 루트를 현실에서 적용하셨다니... 잉크냄새님은 전생에 진짜 고고학자였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하필 눈에 띈 한글이 왜 월, 세, 름 이였을 까요? ‘월세 룸‘ 으로 들릴 것 같은데요..

잉크냄새 2026-02-06 20:07   좋아요 1 | URL
아, 고고학자 하니까...고등학교 2학년때 인디아니 존스 최후의 성전을 보고 이과에서 문과로 변경하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월세 룸‘, 한국의 망조 든 현실을 잘 아는 공인중개사 출신이 벽면 디자인에 참여한 듯 합니다.ㅎㅎ

감은빛 2026-02-06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기다렸던 여행기가 올라왔군요. 새로 재건한 도서관이 아주 멋지네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어렸을 때는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을 가보고 싶었어요. 에너지를 중심으로 환경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비행기로 장거리 비행을 하는 일입니다. 평소 일상에서 탄소배출량이 매우 적은 제가 만약 유럽을 한번 다녀오면 10년치 이상의 탄소를 배출하는 결과가 되죠.

그럼에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두 곳 있는데, 하나는 여기 알렉서드리아 이고, 또 하나는 옛 콘스탄티노플입니다.

잉크냄새 2026-02-06 20:11   좋아요 0 | URL
와! 제가 글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매번 이렇게 여행기 기다려 주시는 분이 계시니 힘이 납니다. 불끈!!!

전 코로나때 도심에 사슴이나 멧돼지가 출몰하는 걸 보고 기후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탄소배출 관련하여 삶이 많이 변화되었어요. 글 마지막에도 보시면 비행기가 아닌 갤리선 노 저을 궁리를 하고 있잖아요. ㅎㅎ

카스피 2026-02-06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 지었다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로 대 도서관이네요.이집트가 경제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많은 돈을 들여 도서관을 새로 건립할 정도로 과거 이집트의 영광에 많은 자부심이 있음을 느낄수 있네요.

잉크냄새 2026-02-06 20:13   좋아요 0 | URL
이집트는 죽은 자가 산 자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대 이집트 문명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죠.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이집트뿐 아니라 전 세계의 보물이니 재건의 필요성은 충분해 보이네요.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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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모 레비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절멸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를 증언하는 작가가 되었다. 기억해내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 여기고 사회가 망각해가는 것을 경계한 그가 1987년 어느 날 자살을 했다. 그리고 10년 후 재일 조선인 2세인 저자는 토리노로 향했다. 쁘리모 레비의 삶과 죽음, 그의 사상, 증언하고자 했던 시대와 좌절의 시간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디아스포라인 레비의 삶은 또 다른 디아스포라인 저자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 레콩키스타 시기 이탈리아로 이주한 그의 조상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했고 유대인이란 그저 사라져가는 습관이나 문화에 불과했다. 2차 대전 초기에도 다른 유럽 지역과 달리 유대계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다. 그에게 유대인이라는 것은 그저 주근깨가 있고 없고 정도로 생각할 만큼 의식 자체가 희박했다. 그러나 인종법 반포 후 교수와 학우들이 대부분 그에게서 멀어져 감을 느꼈을 때 그는 공동체라는 삶 속에서 자신이 점점 불순물처럼 분리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찌와 인종법은 그렇게 유대인과 인종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인간'이라는 보편성 앞에서 '유대인'이라는 것은 '주근깨'가 있고 없는 정도의 차이라고 믿고 있었다. - <주기율표> p379 - 


아우슈비치는 그에게서 이름을 박탈했다. 이름의 박탈은 인간이 아닌 사물로의 전환이었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그런 지옥에서 그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체험하고 이겨낸 일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증거를 가지고 살아남아 야만의 시대를 증언하기 위한 의지였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그가 인간으로 살아온 문명의 형식을 전부는 아니라도, 잔해만이라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단테의 <신곡>을 외우고, 동료가 된 프랑스인에게서 프랑스어를 배우며 문명의 틀을 유지했다. 그렇게 그는 살아남았다. 


우리는 노예로서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박해를 받으며 분명 죽음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따라서 전력을 다해 그것을 지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후에 남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동의를 거부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물론 비누가 없고 물이 더럽더라도 세수를 하고 겉옷으로 닦아야만 한다. -p152-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후 그는 증언을 위한 삶을 살아갔다.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한 '장 아메리'의 비극적인 자살에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뮐러'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레비가 어느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고 연락한 그는 화학자인 레비가 그의 전공으로 말미암아 수용소에서 만난 독일인이었다. (문득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영화의 레싱 박사가 떠올랐다. 귀도의 절박함이 그에게는 그저 수수께끼에 불과했으니까.) '뮐러'는 나찌와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고,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독일인의 집단적 책임이 아닌 나찌라는 개인들의 일탈로 치부하고, 이제 원한이 아닌 공생을 말할 것을 부드럽게 종용하며 관용을 이야기했다. 참혹한 진실은 세월 앞에 무뎌져 갔다. 피해자가 오히려 부당한 의심과 무관심과 싸워야 했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반 독일 시민은 무지한 채 안주하고, 그 위에 껍질을 씌웠다. 나찌즘에 동의한 것에 대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무지를 이용한 것이다. 눈,귀,입을 모두 닫고 눈앞에서 무엇이 일어나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p221-


1987년 그는 자살했다. 유서가 없음으로 그 죽음의 의미는 유추될 수 밖에 없다. '장 아메리'처럼 과거의 추악한 기억에 무너진 것인지, '뮐러'로 대변되는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무장한 가해자에 대한 절망인지, 팔레스타인을 침략한 이스라엘 시오니즘 유대인에게서 또 다른 나찌의 잔영을 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증인으로써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기 본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잔혹했던 야만의 시대를 생존으로 증언했다면 망언과 비양심으로 잊혀지는 망각의 시대를 죽음으로 고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Let our fate be a warning for you (우리의 운명을 당신들을 위한 경고로 삼아라). -p285- 어느 수용소 인골이 쌓인 영묘의 표지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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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29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 서경식 작가는 프리모 레비 빠였던 듯합니다~ 책3권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되더라구요..^^;;

잉크냄새 2026-01-29 20:25   좋아요 0 | URL
아마도 디아스포라라는 공통 분모가 두 분을 엮은 듯 합니다. 덕분에 저도 서경식 교수와 쁘리모 레비의 책을 다수 접하게 된 계기가 되었네요.

감은빛 2026-01-30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군대에 입대하면서 속으로 나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버텼습니다. 만약 내가 인간인데도, 지금 이런 부당한 상황을 하루종일 겪어야 한다면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군대에 있는 동안 내 인권은 끊임없이 제한당하는 처지에 처해도 인간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하니 정말 버틸만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저를 엄청 괴롭혔던 고참이 제대하면서 저에게 가볍게 사과를 했는데, 그게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뭔가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어떤 생각이 갑자기 달라지면 정신이 입은 상처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6-01-30 21:49   좋아요 0 | URL
훈련소에 들어가면서 올빼미 번호를 부여받는 순간부터 훈련병들은 사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나 봅니다. 오죽하면 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고참의 사과가 가벼워 보인 것은 그것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뱉어낸 가벼운 말에 불과한 이유가 아닐까요. ‘군대라는 특수 사항이니 이해해라.‘라는 말로 그 고참은 벌써 자신을 관대한 우위적 입장에 위치시켜 버리니까요. 그걸 이해 못하는 사람을 관대하지 못한 편협한 인간의 위치로 전락시키고요.
 

그런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김경미-


남자의 오토바이가

좁은 골목길

앞서가는 폐지 리어카 노인한테


너무 작고 말라서

잘 보이지도 않던 노인한테


미친 듯이 경적을 누르며

욕을 해 대는 남자를

사귄 적이 있었다


그 오토바이 뒤에 앉아서

남자의 허리를 껴안고

이 사랑이 영원하게 해 주세요

빌기나 했던


빌어먹을 시절이 있었다

빌어먹을!


삶은 과거 기억에 시간과 감정을 양념처럼 추가하여 버무린다. 아무리 초라한 삶이라도 아름답게 기억되어야 하기에 과거는 장밋빛으로 버무려지기 마련인데 시인은 그 과거에 가운데 손가락을, 뻑을 날린다. 젊다는 건 아무리 빌어먹을 시절이든, 빌어먹을 놈팽이든 자꾸만 그 앞에 사랑을 먼저 놓으려 하기에 사랑만이 보인다.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 그게 청춘이 아닐까. 광석이 형이 부릅니다. "너무 빌어먹을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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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23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들도 청춘의 시절 비러먹을 남자를 만나는 것처럼 남성들도 두쫀크를 사달라는 여친의 강요에 한겨울 추위에 2시간 줄서 꼴랑 쿠키 몇개 사다바치는 빌어먹을 사랑을 할 때도 있지요.

잉크냄새 2026-01-24 10:11   좋아요 0 | URL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이 빌어먹을 것들에 남녀노소가 따로 있겠습니까. ㅎㅎ

yamoo 2026-01-23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시네요..ㅎㅎ

잉크냄새 2026-01-24 10:11   좋아요 0 | URL
이제는 은유와 비유로 버무린 시보다 직설적인 화법의 시가 더 와 닿네요. ㅎㅎ

마힐 2026-01-24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빌어 먹을 정도로 자기 것이 얼마나 없으면 그렇게 다닐까요?
빌어먹을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요? ㅎㅎ
사실 내 스스로 벌어 먹을 줄 아는 시절도 철들어야 되지, 그 전까지는 그냥 빌어 먹고 살아야죠. 뭐.
전 아직도 빌어 먹습니다. ㅠㅠ

잉크냄새 2026-01-25 20:42   좋아요 1 | URL
‘빌어먹을‘이 관형사일 때는 아주 빌어먹을 상황이지만
‘빌어먹다‘로 동사화할 때는 누구도 외면하기 힘든 삶의 본질이 스며있네요. ㅎㅎ 누구나 빌어먹던 한 시절을 건너왔으리라 봅니다.

페크pek0501 2026-01-25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느낌이 남다른 시입니다. 이 시 좋습니다.^^

잉크냄새 2026-01-25 20:43   좋아요 0 | URL
김경미 시인의 시가 느낌이 남다른 경우가 꽤 많은 것 같아요.

감은빛 2026-01-26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짧은 시와 짧은 글이 인상적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상하게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절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도,
그 시절엔 왜 그렇게 멋있게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이 청춘이고, 그런 것이 인생이라면,
왜 또 나이가 들어서는 이제 와서 이런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야를 주는 것인지
뭐 끝까지 알 수 업는 것이 인생이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겠지요.

잉크냄새 2026-01-26 21:37   좋아요 0 | URL
젊은 시절에는 대부분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은 경험을 가지고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가는 환상을 한 번 정도 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늙어서야 겨우 알게된 것이 참 아쉽습니다. 그래서 그 하고 싶은 일만을 기억하고 과거로 다시 가 봤으면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마당개로 태어난 보리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1견칭 주인공 시점의 서사이다. 보리의 삶은 어린 시절을 같이 한 해피,메리,쫑의 삶 그 자체이다. 김훈의 묘사는 어찌나 살아 숨쉬던지 소설 내내 봄 햇살, 여름 소나기, 가을 바람, 겨울 눈속을 보리와 같이 뛰어다녔다. 서글프지만 아름다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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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fox 2026-01-16 0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당개의 시각으로 작성한 책이라는 점에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인것 같아요^^. 오늘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잉크냄새 2026-01-16 20:21   좋아요 0 | URL
작가의 심리 묘사가 탁월합니다. 예전에 마당에 기르던 개의 모습이 아주 많이 생생하게 떠오르더군요.

마힐 2026-01-24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 이름이 ‘보리‘라 하니 ‘깨달음‘ 이네요. ㅎㅎ
개가 깨닫는 수준이 되니 개의 시각으로 서사를 풀어낸 것 아닐까요?
그럼 개에도 불성이 있다는 선문답이 풀렸네요. ㅎㅎ
.................
죄송합니다. 썰렁했습니다. ^^;

잉크냄새 2026-01-25 20:39   좋아요 0 | URL
보리가 쌀‘보리‘가 아니고 ‘보리‘달마였군요.
사실 쌀‘보리‘ 시각의 1견칭 시점이긴 한데 ‘보리‘달마가 되는 순간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변환되는군요. ㅎㅎ
마당개 보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충분히 불성이 있어 보입니다.
 

티벳으로 들어가는 길이 또 다시 막혔다. 첫번째는 티벳 독립 운동이 일어난 3월에는 티벳 출입 자체가 봉쇄되기 때문이었고 두번째는 당시 달라이 라마에게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했던 한국이 북유럽 몇몇 국가와 더불어 출입국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티벳행은 불가능해졌고 꿩 대신 닭이라고 잡은 코스가 동티벳이었다. 동티벳은 현재 행정구역상 쓰촨성에 속하나 티벳 독립 전 티벳의 영토를 잘라 쓰촨에 넘겨준 곳이라 동티벳으로 불린다고 한다. 운이 좋다면 티벳의 바로 앞 빠탕巴塘까지 갔다가 샹그릴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갈 예정이었다. 사실 동티벳으로의 일정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식적으로 출입이 통제된 곳은 아니지만 외국인에 한하여 버스표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다만 사람이 아닌 버스표의 문제이니 들어가는 것이 마냥 불법은 아닌 상황이었다. 리탕理塘까지만 들어가면 추방 당할 때 쓰촨이 아닌 윈난으로 내려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캉딩 초입 차마고도 청동상들이 즐비하다.>


청두成都에서 9시간을 달려 도착한 동티벳의 첫 도시 캉딩康定은 차마고도로 알려져 있다. 마을 초입에 '차마고도의 첫 도시' 라는 문구가 걸려 있지만 보통 팬더의 고향 야안雅安을 차마고도의 시발점으로 본다. 국가 지정 차 집결지 '차마사'가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캉딩은 큰 물줄기가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는 해발 고도 2600m의 작은 마을이다. 티벳의 초입답게 돌산에는 불경과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눈에 띄었고 타르쵸와 룽다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도착한 첫 날 저녁 비를 맞으며 찾아간 숙소에는 방이 없었다. 난처해 하는 나를 가만히 쳐다 보던 숙소 여주인이 우산을 들고 삼십 분 가량 같이 다녀준 것이 따스하고 오래도록 기억으로 남는다. 여기에서 이틀을 묵었는데 밤새 벼락치는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야 했다. 다음 날 버스 정류장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역시나 외국인은 리탕행 표를 끊을 수 없었다. 꼬인 일정을 걱정하며 건물을 나오니 한 건장한 사내가 따라붙으며 외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현재 외국인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며 자기가 운전하는 헤이쳐黑车를 이용하라고 했다. 헤이쳐는 불법적으로 운행되는 봉고차였다. 새벽 3시로 출발 시간을 정한 후 헤어졌는데 잠시 눈을 붙이는 내내 한밤중에 불법차를 이용한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나와 같은 배낭 여행객이 있으리라 위안 삼으며 잠을 청했다. 


새벽 세 시에 터미널로 나가니 어둠 속에 검은 봉고차가 한 대 서 있었다. 내가 제일 늦은 듯 이미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가운데 자리만 하나 비어 있었다. 일가족인 듯 비슷한 외모의 기골이 장대한 장족들이었다. 여행객은 나 혼자였다. 여자들은 맨 뒤에 타고 남자들이 앞에 두 칸을 차지했는데 어깨가 떡 벌어진 그들 사이에서 꼼짝없이 갇힌 형국이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잘 씻지 않는 그들에게서 참기 힘든 악취가 풍겼는데 싸늘한 한밤중에 문을 닫고 달리는 흔들리는 봉고차에서 기절하듯 잠이 들 때까지 꽤나 힘들었다. 차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뜨니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뭉게 구름은 초원의 양들이 바람에 날려간 듯 흘러갔다. 초르텐 주위로 실제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 녹색 초원을 배경으로 타르초와 룽다가 경전 소리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창 밖의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는데 평야에서 초원으로, 계곡에서 산등성이로, 산등성이가 갑자기 탁 트인 초원으로 바뀌었다. 바다를 제외한 모든 풍경이 그 길 위에 있는 듯 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그냥 일상적인 풍경이었는지 차는 무심코 쉬지 않고 길을 달렸다. 길을 막은 나무와 바위도 치우며 달렸고 양지 버섯을 팔려 길을 막고 선 현지인과 진지한 가격 협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둠이 깔리자 날씨가 급변하고 좁고 구부러진 도로의 풍경은 경이가 아닌 경악으로 바뀌었다. 오른쪽 도로면이 강인지 절벽인지 모르는 미지가 공포를 더 부채질했다. 리탕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새벽 1시였다. 리탕은 중국에서 사람이 사는 가장 높은 마을인 해발고도 4200m의 마을이었다. 캉딩에서 리탕까지 보통 8시간이 걸리는데 특별히 차가 막히는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22시간이 걸린 것이 의아해 물어보니 중간에 길을 우회하여 온 것이다.  


<리탕 언덕배기 초르텐과 양떼>


차마고도는 야안雅安~라싸拉萨 구간의 천장공로川藏公路와 쿤밍昆明~라싸拉萨 구간인 전장공로滇藏公路로 나뉜다. 천장공로는 다시 망캉芒康을 지나는 천장남로와 창뚜昌都를 지나는 천장북로로 나뉜다. 그러니까 천장공로인 캉딩에서 출발한 버스는 천장남로를 달려 리탕에 도착하는데 헤이쳐는 천장북로와 남로의 분기점인 신뚜챠오新都桥에서 천장북로로 접어든 것이었다. 이름 모를 길을 거쳐 단빠丹巴와 따오푸道孚를 지나 남쪽으로 길을 꺽어 리탕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리탕에서 버스표를 구하지 못해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방향을 틀었다. 뜻하지 않게 천장남로와 천장북로, 그리고 전장공로를 모두 달리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각자가 느끼는 여행의 묘미는 모두 제각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의 의외성을 가장 흥미로워한다. 그래서 여행시 큰 밑그림만 그리고 중간 일정은 그때 그때 상황에 맡기는 편이다. 가장 아름다운 길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기대이며 가장 소중한 길은 이미 지나온 길에 대한 기억이다. 우연히 탄 헤이쳐, 우연히 일행이 된 장족, 우연히 접어든 천장북로의 여정, 차마고도 세 개의 길을 모두 지나는 행운까지, 뜻하지 않은 의외성이 품고 있는 순간의 긴장감과 다소의 스트레스, 뜻밖의 환희는 여행이 가져다주는 백미이다. 


천장북로를 달린 그 날 차가 정차하지 않아 사진은 거의 찍지 못했는데 며칠 후의 여행기록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 날의 풍경은 두 번 다시 허락되지 않았다" 


<쓰촨 청두에서 윈난 쿤밍까지 7대의 버스를 갈아타며 59시간을 달렸다. 따오청에서 야딩 풍경구로 들어간 것까지 포함하면 9대의 버스, 67시간이다. 이제는 소화하기 힘든 여정이다.>




<리쟝의 어느 까페에서 통기타 연주로 알려지기 시작해 내가 이 길을 여행할 즈음에는 차마고도 거의 모든 마을에서 들려오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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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1-08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은 여행가 이신가요?
오래 전 tv에서 차마고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곳에서 끊임없이 노동을 하던 여인들이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해요.

잉크냄새 2026-01-08 22:20   좋아요 1 | URL
거창하게 여행가는 아니고요 그냥 여행을 좋아합니다. 처음 직장 옮길 때 큰 맘 먹고 반 년 정도 돌아다녔어요. 그 후로도 가끔 시간 내서 돌아다니고요. ㅎㅎ
다큐멘터리에 나온 곳은 아마 옌징 소금 염전에서 일하는 여인들일 겁니다. 위에 지도 보시면 망캉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그 당시 티벳 퍼밋을 못 받아 들어가지 못했어요. 지금은 아마도 댐 건설로 사라져 버렸을 겁니다.

차트랑 2026-01-08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이 쪽이 빠를것 같아 이곳에 답 드립니다.
공유하기를 클릭하시면
화살표 표시가 있을겁니다 < > 이런 식으로요.
이때 우측 화살표시를 누르면
전체 소스를 보여줍니다.
그 소스 전체를 복사하셔서 붙이기 하시면
성공하시리라 믿습니다.

설명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행여 실패하시면 다시 알려주십시요 잉크냄새님~!

잉크냄새 2026-01-09 00:14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공유에서 < > 누르니 전체 소스가 나오네요.
알라딘의 설명이 잘못된 것인지 유튜브의 소스코드 복사 자체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알라딘에 수정 요청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차트랑 2026-01-08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튼 양 옆으로 < > 보이는데 이걸 보셔야합니다 ㅠ

잉크냄새 2026-01-09 00:15   좋아요 0 | URL
수정 완료했습니다.
노래 한번 들어보세요. ㅎㅎ

차트랑 2026-01-09 18:4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댓글 센터링을 어떻게 해야 정확히 들어가는지 몰라
엉뚱한 곳에 센터링을 하게되더군요.

이젠 좋 알듯합니다^^

차트랑 2026-01-09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싸~!
노래 잘듣겠습니다 잉크냄새님~ ^^

잉크냄새 2026-01-09 18:26   좋아요 0 | URL
최초의 글에 연이어 댓글을 다시려면 맨 처음 작성한 댓글에서 댓글달기 누르시고 댓글 다시면 됩니다.
노래 관련은 아래 댓글에 남길게요. ㅎㅎ

차트랑 2026-01-09 18:42   좋아요 0 | URL
앗 그쪽이 아니었네요 이쪽이었는데
센터링을 잘못 했군요 ㅠ
이제 정확한듯요~

차트랑 2026-01-09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어나면서 늘 노래를 듣는데요.
오늘 아침은 이 쪽 서재의 노래를 듣습니다.
업로드 해주신 노래가 아주 마음에 드네요.
잘 듣겠습니다.

내용이 궁금해서 번역기를 돌렸는데,
번역기가 시킨일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번역기가 해낸 결과가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제목을 알려주는데...
滴答부터 저의 예상이 완전 틀려버리네요 ㅠ
滴 = 물방울 적, 인지라 속으로 판타스틱한 해석을 해본 연후의 깜놀시전입니다.


《똑딱》 노래:칸칸 작사:고지 작곡:고지 (운남瀘구호)

똑딱똑딱똑딱 시계는 계속 돌아간다
똑딱똑딱똑딱 소우(小雨)는 물보라를 두드리고 있다
똑딱똑딱똑딱 아직도 그를 괴롭히지 않을까?
똑딱똑딱똑딱 눈물 몇 방울이 이미 떨어졌다
똑딱똑딱똑딱 외로운 밤 누구와 이야기할까
똑딱똑딱똑딱 슬픈 눈물은 누가 닦아줄까
똑딱똑딱똑딱 마음을 정리하고 출발하자
똑딱똑딱똑딱 또 누군가가 너를 잡아당길 거야

아, 이 노래, 중독성 있네요 ㅠ

잉크냄새 2026-01-09 18:35   좋아요 0 | URL
역시 노래를 좋아하시는 차트랑님께서 알아봐 주시는군요. ㅎㅎ
˝지음˝ 이로세

해석은 다 비슷한데 삼구와 마지막구의 牵挂(첸과)의 해석이 좀 틀렸네요.
牵挂(첸과)는 걱정하다 로 해석하면 됩니다.
삼구 : 아직도 그 사람 걱정을 하고 있나요
마지막구: 누가 또 당신을 걱정해줄까요

특히 낯선 도시에서 통기타 선율로 듣는 도입부가 참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차트랑 2026-01-09 18:48   좋아요 1 | URL
노래가 좋아서 가사가 궁금했는데,
어쩐지 특히 마지막은 이상하다 했습니다.
갑자기 잡아당긴대서 행여나 했더니....
AI형께서 마지막에 특히 오류를 내셨군요.

좋은 저녁되십시요 잉크냄새님~~
노래 잘 듣겠습니다~

잉크냄새 2026-01-10 00:03   좋아요 0 | URL
의미보다는 감성이죠.
좋은 노래 되었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6-01-09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가의 글 같습니다. 여행 작가, 하면 더 멋있지 않습니까?
˝그 날의 풍경은 두 번 다시 허락되지 않았다˝ - 이 순간도 두 번 다시 오지 않지요. 이런 것 생각하면 시간을 아껴 써야 할 것 같아요.
청동상 사진이 참 신기합니다.
멋진 여행가가 되시겠다면 응원하겠습니다. 여행과 글, 잘 어울립니다.^^

잉크냄새 2026-01-09 18:39   좋아요 0 | URL
그날 천장북로의 사진을 찍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 풍경은 앞으로도 펼쳐질꺼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거든요. 아마 티벳으로 들어갔다면 더 멋진 풍경도 만났겠지만 티벳행이 무산되면서 진짜 그런 풍경은 다시 허락되지 않았어요. 어떤 풍경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와 인연이 되어야만 만나나 봅니다.

여행가가 못되더라도 기억에 남은 여행의 추억을 글로는 계속 써볼까 합니다.

마힐 2026-01-09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생 때 헤이처로 라싸를 들어가려다 검문에 걸려 여행국에서 2박 3일 취조(?)받았던 생각이 나네요. ㅎㅎ 우여곡절 결국 라싸를 가게 되었지만, 곤륜산맥을 넘어갈 때 고산증이 너무 심하게 오는 바람에 여행이고 뭐고 집에 돌아갈 생각 밖에 안 났어요. ㅜㅜ 잉크냄새님은 고산반응이 없으신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한번 꼭 ‘라싸 가기‘ 도전하시길 바래요. ^^

잉크냄새 2026-01-10 00:06   좋아요 1 | URL
저보다 오랜 중국 생활을 하셨으니 더 멋진 경험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기억 하나하나가 또 추억을 만들어 가리라 봅니다. 2박 3일이 절대 헛된 시간이 아니었을 겁니다.
참고로 전 폐활량이 좋은 편이 아닌데 고산 증상은 없는 몽뚱이입니다. ㅎㅎ

감은빛 2026-01-26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래전에 일했던 춣판사에서 윈난성 여행 에세이를 낸 적이 있어요.
그 작가님은 노동운동 판에 계셨던 전교조 교사였는데, 시를 잘 쓰셨던 분이었어요.
그때는 아직 제가 편집 일을 시작하기 전이어서 그저 마케터로서 원고를 읽기만 했었네요.
이후 다른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배워 익히면서 좀 더 일찍 이 일을 했다면,
훨씬 더 많은 글들을 다른 시각으로 읽었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암튼 그 책을 내는 과정에서 읽었을 때에는,
윈난성이 어딘지도 몰랐고, 그냥 머나먼 중국 땅 서쪽 어딘가라고만 어렴풋이 생각했었어요.

잉크냄새님의 이 글을 읽으니 참 사람의 경험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9대의 버스로 67시간이라니!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을지 짐작하기 어렵네요.
오래 전에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바양고비까지 12시간? 14시간?
암튼 초원을 가로지르며 비포장 도로를 버스로 이동했었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나라 차량과는 달리 서스펜션이 거의 없는 거의 수명이 다 한 낡은 버스는 그냥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아픈 상황이었는데, 초원을 그냥 달리는 건 정말 힘들었습니다.
잉크냄새님의 67시간 중 대부분이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허리 괜찮으십니까? ㅎㅎㅎㅎㅎ

잉크냄새 2026-01-26 21:44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제는 무리수입니다. 아마도 허리가 버텨내지 못할 겁니다.
그때만 해도 그냥 엉덩이가 눌려 감각이 없어진 것 외에는 버틸 만 했거든요. 차 타면 바로 잠들고 차창 밖으로 풍경 보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도 저런 장거리 여행을 버티게 한 큰 이유일 겁니다.
지금은 아마도 저 마을 중간 어디쯤에는 비행장이 건설되지 않았을까요? 제가 다닐 즈음에도 따오청에 작은 비행장이 들어선다는 풍문이 돌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험난한 일정이 가져오는 여행의 묘미는 잊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