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이라 명확한 기억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낯선 도시의 길을 걷다 서점을 발견했을 것이고, 호기심 반 설레임 반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책을 집어들고 겉표지를 살피고 책장을 넘겨보며 내가 아는 일반적인 책과 비교 가늠해보았을 것이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여행지마다 한 권의 책을 사야겠다고. 대부분의 서점에 비치될 만한 책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결국 <어린 왕자>로 정했을 것이다. 


첫 서점은 네팔의 카투만두 타멜 거리의 어느 서점으로 기억한다. 영어나 중국어권이 아닌 나라의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설 때는 항상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사전에 준비해간 긴 문장은 어눌한 발음으로 오히려 어색함을 더하였다. 결국 어색하하는 서점 주인의 얼굴 위로 책 제목만을 말하였다. 다행스럽게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각 나라의 인사말이 어느 정도 통용되듯 각 도시의 서점에서도 <The Little Prince>나 <Le Petit Prince>는 세계 공통어처럼 통하는 단어였다. 


많은 책을 사지는 못했다. 내가 간 나라들이 대부분 한국보다 서점이 활성화되지 않은 점도 있고, 몇몇 도시는 대도시를 경유하지 않고 지나간 경우도 있다. 향후 또 다른 언어 문화권으로 발걸음을 옮겨 리스트를 추가할 수 있을까. 희망사항이다.







 p.s 1) 한국판 기준 시계 방향으로 한국-터키-홍콩-중국-네팔-이집트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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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4-19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저 언어들을 다 하시는 건가요??^^;;

잉크냄새 2021-04-19 20:36   좋아요 0 | URL
그랬으면 아마도 인생이 확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ㅎㅎ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자, 중국어 판본만 가능합니다.
언어 문화권이 다른 도시에 가면 서점에 들려 그냥 한권씩 산 겁니다.
 

물론이지. 우리는 미국의 프랜차이즈니까. 언제나 이 점을 잊어선 안돼. <착취>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행해진 게 아니었어. 실제의 착취는 당당한 모습으로, 프라이드를 키워주며, 작은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며, 요란한 박수 소리 속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형이상학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거야. 얼마나 큰 보증금이 걸려 있는가는 IMF를 통해 이미 눈치 챘잖아. 아이템도 본사에서 조달돼. 인테리어도 마찬가지야. 그게 이 세계의 여건, 한국의 여건이라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p253



 

하루는 산책을 하며 올 여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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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듬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좀 그렇다."는 뜻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어 그냥 쓰다듬을 뿐입니다. 말을 해도 고작 입속말로 웅얼웅얼하는 것입니다. 밥상 둘레에 앉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가난한 아버지의 손길 같은 것. 강보에 아이를 받은 어머니의 반갑고 촉촉한 눈길 같은 것. 동생의 손을 꼬옥 잡고 데려가는 예닐곱 살 누이의 마음 같은 것. 으리으리하지는 않지만 조그맣고 작은 넓이로 둘러싸는 것. 차마 잘라 말할 수 없는 것. 그런 일을 쓰다듬는 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느림보 마음> p103



어떤 사람은 이별을 하고서도 이별을 의심합니다. 이별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이별을 하고서도 이별을 했다는 사실을 거듭 더 확인하려 합니다. 영영 이별이었기를 바랍니다.


<느림보 마음>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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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

중략...

...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끌림> #009 탱고




떠나는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너무 오래 매달리다 보면

내가 붙잡으려는 것이 누군가가 아니라, 대상이 아니라

과연 내가 붙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게임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게임은 오기로 연장된다.

내가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잡을 수 없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어 더 이를 악물고 붙잡는다.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분노한다.


<끌림> #46 고양이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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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만 - 아카바행 버스 안에서 , 와디럼 사막 어느 언저리가 아니었을까. 2009년 3월>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대부분의 경우 풍경이 나를 주박하여 내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또 하나의 풍경이 되곤 하지만 반대로 풍경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내 감정의 일부로 자리 잡기도 하고 때론 서로 스미어 번지기도 한다. 암만에서 아카바로 향하는 그 길의 풍경이 그러하였다. 암만 도심을 벗어난 낡은 버스가 황량한 사막 지역으로 접어들 무렵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눈꺼풀에 맺히는 햇살의 낯선 아른거림에 눈을 뜨니 버스는 희뿌연 모래 바람 속을 지나고 있었다. 쓸쓸함마저 모래 바람 속에 휘말린 듯한 황무지, 모래 먼지와 잿빛 구름에 휩싸여 무채색의 아련함을 간직한 태양, 오랜 세월 한번도 길을 떠나지 못한 사막의 바위... 순간 그들이 먼지 낀 차창을 통하여 내 안으로 들어와 길 떠남 이후 내 가슴속 어딘가를 줄곧 떠돌던 감정 하나를 오래도록 어루만졌다. 문득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며 울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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