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들른 오래된 시장 한켠에 위치한 국밥집은 여전히 문이 닫혀 있었다. 한달 전 들렀을 때도 닫힌 출입문에 붙은 A4 용지에 전화번호가 붙어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나 싶어 전화해보니 손자가 받았다. 얼마전 국밥집 옆 계단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중이시라는 말에 얼른 나으시라는 인사를 전한 기억이 났다. 옆집에 들어가 국밥을 시켜 놓고 주인장께 옆집 할머니 안부를 물으니 며칠 전 돌아가셨고 이미 장례도 마친 상태라고 했다.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국밥을 앞에 놓고 앉아 있으니 문득 가슴 한켠이 조금 아렸다. 국물이 넘어가도 아린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식사중 반주를 하지 않는데 오늘은 왠지 그래야만 했다. 한 잔을 비우고 다시 채운 잔은 향을 대신해 탁자 맞은 편에 올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좋은 곳 가시라고.


국밥집에 처음 들른 것은 반 년 정도 전이었다. 낡은 재래 시장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문득 고등학교때 이 곳 어디에서 순대와 떡볶이를 먹은 기억이 나서 무작정 건물로 들어선 길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아도 그 장소를 찾을 수는 없었고 마침 출출하던 차라 낡은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탁자와 벽지와 식기에서는 손때 묻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고 시장 바깥쪽 유리문을 통과한 햇살이 세월 위에 반사되어 식당 전체가 푸근했다. 고기를 많이 넣어줄까? 라는 말과 함께 나온 국밥은 지금까지 먹어본 국밥중 고기가 가장 많아서 그릇 밖으로 자꾸 넘치려고 했다. 젊은 사람이 밥 한그릇으로 되겠냐며 자꾸 더 가져다 먹을 것을 권하셨다. 고기가 너무 많아 계산 별도로 하는 거 아니야? 라는 다소 치졸한 의심을 하였는데 젊은 사람 일하려면 많이 먹어야 해서 고기 많이 넣었다는 답변에 스스로 미안해졌다. 그 미안함에 이 곳 근처를 지날때마다 국밥을 먹었다. 밥 먹는 동안 할머니는 보통 옆 자리에 앉아 손자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식당 한 구석 칸막이로 별도 구분한 좁은 공간에서 아버지를 일찍 잃은 두 손자와 함께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겨울을 살아왔노라고, 그래도 주눅들지 않게 키워보려고 열심히 살았노라고, 지금은 두 손자 모두 공무원이 되었고 첫째는 얼마전 손자 며느리도 데리고 왔노라고 말을 이어갔다. 기억력이 좋지 않으신지 매번 처음 본 손님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틀니를 끼지 않으셨는지 오므라진 입술 위에 쪼글쪼글 맺혀진 주름이 인절미 드시던 외할머니 입술 같기도 했고 이 하나 남지 않은 웃음 띈 붉은 잇몸이 아이의 해맑음을 떠올리게도 했다. 국밥을 앞에 두고 매번 할머니의 똑같은 삶의 말들을 들어야했는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온 힘을 다해 말한다는 것,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 삶을 대여섯번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뱉어내어지지 않는, 기억 속에서나 가끔 살아날 누군가의 삶이 되어 버렸다.


뜻하지 않게 소주 한 병을 다 마셔버리고 나온 어두운 복도, 햇살이 닫힌 출입문 너머 오래되어 윤기가 흐르는 탁자에서 빛나고 있었다. 몽환적인 햇살 사이로 피어오르던 먼지의 어른거림이 누군가의 영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련함이 낮술 때문인지, 어떤 기억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시는 마주칠 수 없는 기분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반주는 싫어하지만 나이 먹을수록 가끔은 홀로 낮술을 마실 일들이 종종 생기는 일을 막을 방법은 없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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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2-26 21: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집니다.
잉크냄새님께서 마신 소주 한 병에 우리의 마음이 다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2026-02-27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27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27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27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6-02-27 03: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동네에서는 재래시장이 조금 거리가 있지만, 아이들 어릴 때 살았던 집 출퇴근 길에는 오래된 시장이 있었어요. 그 시장 입구에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떡볶이집이 있었죠. 퇴근길에 자주 순대를 사먹어서 단골이 되었고, 할머니께서는 갈 때마다 많은 양을 주셨어요. 거의 정량의 두 배쯤. 그러다 어느 날 그 시장 전체가 사라져버렸어요. 한참 후에 그 자리에 큰 건물이 들어설 거라고 공사가 시작되었어요. 한동안은 그 할머니께서 가게를 그만두고 어떻게 지내실지 가끔 궁금해하곤 했는데, 완전히 잊고 지낸지 오래되었네요. 어느 동네에서든 늘 단골집을 만들지만, 그 할머니 떡볶이집은 아마 평생 잊을수 없는 단골집이, 단골집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곧바로 생각날 그런 가게였어요.

잉크냄새님의 마음이 그득 느껴지는 글이네요. 저도 그 할머니께 술 한잔 올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잉크냄새 2026-02-27 13:31   좋아요 2 | URL
글에 적었듯이 고기가 자꾸 튀어나올 정도로 많은 양을 담아주셨어요. 그런데 그걸 먹으며 고기 추가 받으려고 넣은거 아니야 하는 치졸한 생각이 떠올랐고 나중에 그 생각이 아주 부끄러워졌어요. 그래서 그 근처를 지나면 꼭 들러서 부끄러움 한 조각 떨구고 오곤 했습니다. 제가 부산 돼지 국밥을 좋아하는데 사는 곳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던 차에 마침내 찾아낸 단골집이었습니다.

술은 제가 대신 올렸습니다.

마힐 2026-02-27 07: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래 마음에 남을 글이네요.
국밥집 할머니 이야기를 읽는데 괜히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저희 아버지도 얼마 전 체육관 문을 닫으셨거든요.
나이가 든다는 건 이렇게 하나 씩 닫히는 문을 바라보는 일인가 싶어 조금 먹먹했습니다.
혼자 소주 한 병으로 인사를 건네신 그 마음, 담담한 애도 공감됩니다.
저도 가끔은 그렇게 조용히 마음을 건네게 될 것 같네요.
잉크냄새님 잔잔한 일상, 좋은 글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6-02-27 13:28   좋아요 3 | URL
나이 들수록 사람이든 물건이든 낡고 오래되어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아쉬움과 무상함, 뭐 그런 종류의 서글픔이 자주 느껴집니다.
국밥집 할머리의 죽음을 접하고 시장 한 구석에 앉아 시장과 같이 낡아가고 늙어가다 어느 날 문득 사라지는 존재처럼 보여 많이 아쉬웠나 봅니다. 그래서 한 잔 올린다는 핑계로 한 병 마시고 나온 길이었습니다.
언제 또 그런 서글픔이 스며나오면 또 소주 한 잔 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2026-02-27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27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26-02-27 14: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상향으로 기억하는 한국의 모습은 이렇게 따뜻하고 정감이 있는 옛스러움이 가득합니다. 이젠 좀 여유가 있어서 일년에 한번 정도 고향에 가서 어린 시절 친구들과 옛날 즐겨찾던 곳들을 다니지만 이런 정감있는 모습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온기 가득한 기억에서 아련한 아픔과 함께 푸근함을 얻고 갑니다.

잉크냄새 2026-02-27 19:50   좋아요 1 | URL
따스한 기억을 간직한 풍경들이 낡고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는 것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참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실상이기도 합니다.짧은 글 푸근함 얻고 가신다니 다행이라 생각되네요.

니르바나 2026-03-01 0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의 글에서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느낍니다.
적의가 난무하고, 눈에 보이지 않았지 총칼이 바람을 가르는 세상에서 말입니다.
가난을 극혐하는 요즘과 달리 대부분 가난했던 저 시절에
잉크냄새님처럼 우리들은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마저 情으로 대접했지요.
다음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 개편할 때,
수필편에 잉크냄새 <낮술>을 실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권주가로 읽힐까봐 조금 걱정이 됩니다만. ㅎㅎㅎ

잉크냄새 2026-02-28 22:39   좋아요 1 | URL
부에 대한 욕망은 가난과 더불어 가난만이 품고 있던 정감들도 모두 날려버린 모양입니다. 댓글 주신 분들의 글에서도 그런 감정에 대한 진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배어나는 듯 합니다. 낡고 오래되고 늙고 지친 것들에서 느껴지는 아련함이 가끔 아득하게 다가옵니다.
교과서에 올리시려면 술만 모자이크 처리하면 될 듯 합니다. ㅎㅎ
 
고기로 태어나서 -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한승태 노동에세이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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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힘쓰는’고기와 ‘맛있는’ 고기로 격하하여 가장 밑바닥으로 내리친다. 밑바닥에서 살풍경으로 펼쳐지는 인간의 삶과 비인간의 죽음은 대조적이지만 비참함과 처절함에 있어 유사하다. 노동 에세이 작가가 직접 위장 취업하여 써 내려간 4년여의 고발이자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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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6-02-24 0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인간의 조건]은 읽었었는데, 이후로 무슨 책을 냈는지 모르고 지나왔군요.
읽어봐야 할 책인데 잉크냄새님 덕분에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잉크냄새 2026-02-24 20:04   좋아요 0 | URL
작가는 <인간의 조건> - 최근 <퀴닝>이라는 제목의 개정판으로 재탄생, <고기로 태어나서>,<어느 동사의 멸종>으로 이어지는 노동 에세이 삼부작을 완성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내용에 웃으면 안되는데 할 정도의 블랙유머도 장착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었다. 모든 이교도에 대하여 출입을 불허했다. 아테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다 에게해로 나와 크레타 섬을 지나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그 곳에는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도서관이 있었다. 이교도인 난 밤이 되길 기다려 몰래 잠입하거나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한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저녁이 찾아 들면 고딕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지중해의 붉은 손길이 넘실거렸다 . 붉은 유혹에 책을 덮고 나와 지중해가 바로 바라 보이는 바위에 앉아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던 석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응시하곤 했다." - 잉글랜드 삼등훈작사 조르바 -


일행과 시와 사막에서 헤어졌다. 이집트 남부 아스완의 아부심벨로 떠나는 일행과 헤어져 사막에서 며칠을 더 머문 후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일반적인 여행 코스인 아부심벨을 뒤로 하고 알렉산드리아로 간 이유는 그 곳에 기원전 3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건립된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작성되고 보관되어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이 도서관은 오랜 세월 화재와 침략 등으로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를 인정받아 유니세프의 지원 아래 재건되었다. 이런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이 도시가 내 흥미를 끈 것은 30대 초반 한참 열중하던 온라인 게임 <대항해 시대>의 추억 때문이었다.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온라인 게임에서 잉글랜드 출신 고고학자인 내 케릭터가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애용한 루트 중 하나가 아테네-알렉산드리아 구간이었다. 머릿글에 기록한 내용이 그 당시의 게임 장면이다. 실제 키보드로 화면을 돌려 바라보던 지중해의 풍경은 묘한 동경을 자아냈는데, 그 풍경을 바라보며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게임 속에서 응시하던 지중해의 붉은 석양에 직접 휩싸이게 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맨 왼쪽에 '월'이 새겨져 있다. '워~얼' 하고 테이프 늘어지는 모양새다.>


도서관은 트램이 통과하는 복잡하고 지저분한 길을 배경으로 주변 풍경과는 이질적인 깨끗하고 현대적인 하얀색 건물이었다. 활처럼 약간 휘어진 직사각형의 전면부 넓은 벽면에는 지구상 존재하는 많은 언어가 조각 되어 있었다. 익숙한 몇몇 언어를 제외하면 상형문자라 해도 무방할만큼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한글도 포함되어 있는데 여섯 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가 찾은 건'월','세','름' 세 자 뿐이다. 초,중,종성의 조합이라는 이론에만 충실했는지 초,중,종간 간격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왠지 소리 내어 읽으면 테이프 늘어지는 소리가 날 듯 했다. 자음 크기 하나가 알파벳 크기만 하니 한글 한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이 유독 커 보였다. 누군가는 그 곳에 새겨진 글자 수로 각 언어의 우월함을 자랑하고자 하는데 재건 관련 유니세프에 기부한 기부금 액수에 비례하는 바가 크다고 하니 문화마저 우열과 차별에 이용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책과 도서관이야말로 그런 편견과 차별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이지 않을까. 도서관다운 아이디어가 돋보인 건축물이었다.


< 도서관 이용 여성들은 대부분 히잡을 착용했고 챠도르 이상의 복장은 보기 힘들었다.>


이슬람 문화권을 여행하면서 가장 관심있게 바라본 것 중 하나는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였다.도서관은 가장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장소라 여겨져 특히 눈여겨 지켜보았다. 히잡을 두른 학생들이 모여서 책을 검색하고 열람하고 공부하는 모습은 왠지 이질적이면서도 희망적이었다. 이슬람의 전통 의복은 그 개방성 순으로 나열하자면 히잡-챠도르-니깝-부르카의 순이라 할 수 있는데 히잡이 가장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도서관에도 히잡을 착용한 여성이 가장 많았으며 니깝 이상의 복장을 한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문화가 행동을 규제한다고 한다. 근데 문화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관찰자마저 규제한다. 묘하게도 니깝이나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을 볼 때마다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는 나의 행동 하나 하나를 스스로 규제하게 만드는 자기 검열에 빠지곤 했다. 반나절 정도 도서관에 머물렀다. 주로 문학과 인문학 관련 서가를 돌아다녔는데 문학 관련 한글 서적은 한 권도 찾지 못했고 인문학 쪽에만 세 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 


<아마 지금은 한강의 소설들이 많이 자리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바닷길은 석양이 지중해를 서서히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도시 한 끝을 물들이기 시작한 노을이 굽이 도는 해안길을 돌아 숙소 앞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몰래 내 뒤를 밟아 이 곳까지 침범해 있었다. 오래된 성벽처럼 자리한 방파제 한 끝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면 하늘과 바다 전체가 붉어질 것이었다. 순간 검은 실루엣이 나를 지나치는가 싶더니 석양 속으로 성큼 성큼 걸어갔다. 석양 속으로 낚싯대를 던지는 노인의 뒷모습이 노을 속에 박제 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풍경이 되어 버린 듯했다. 대항해 시대의 어느 촌부와도 같았다. 구태여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백년 만에 도래한 것에 감격하다 웃음이 나왔다. 대항해시대 내가 타고 온 갤리선이 보이는 듯 했다. 노를 저어 다시 아테네로 가야 하나!!! 

<가끔 풍경이 되는 피사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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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2-06 0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년 전 이맘 때 이집트 다녀왔어요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다른 어느 도시와도 달랐어요. 알렉산더 대왕의 영향으로 서구 문물의 영향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곳이었지요.
저도 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막 헤집고 다녔답니다. 이래도 되나 하면서요.

잉크냄새 2026-02-06 20:03   좋아요 0 | URL
2년 전이면 제가 방문한 시기에 비해 많은 부분이 변했겠네요. 제가 갔을 때는 주변으로 낡은 트램이 다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중해 항구로서 유럽과의 교류가 빈번했는지 확실히 이집트 다른 이슬람 도시들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이긴 했어요.
도서관은 마구 헤집고 다녀도 됩니다. 소리만 안 내면...ㅎㅎ

마힐 2026-02-06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게임 속 루트를 현실에서 적용하셨다니... 잉크냄새님은 전생에 진짜 고고학자였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하필 눈에 띈 한글이 왜 월, 세, 름 이였을 까요? ‘월세 룸‘ 으로 들릴 것 같은데요..

잉크냄새 2026-02-06 20:07   좋아요 1 | URL
아, 고고학자 하니까...고등학교 2학년때 인디아니 존스 최후의 성전을 보고 이과에서 문과로 변경하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월세 룸‘, 한국의 망조 든 현실을 잘 아는 공인중개사 출신이 벽면 디자인에 참여한 듯 합니다.ㅎㅎ

감은빛 2026-02-06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기다렸던 여행기가 올라왔군요. 새로 재건한 도서관이 아주 멋지네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어렸을 때는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을 가보고 싶었어요. 에너지를 중심으로 환경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비행기로 장거리 비행을 하는 일입니다. 평소 일상에서 탄소배출량이 매우 적은 제가 만약 유럽을 한번 다녀오면 10년치 이상의 탄소를 배출하는 결과가 되죠.

그럼에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두 곳 있는데, 하나는 여기 알렉서드리아 이고, 또 하나는 옛 콘스탄티노플입니다.

잉크냄새 2026-02-06 20:11   좋아요 0 | URL
와! 제가 글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매번 이렇게 여행기 기다려 주시는 분이 계시니 힘이 납니다. 불끈!!!

전 코로나때 도심에 사슴이나 멧돼지가 출몰하는 걸 보고 기후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탄소배출 관련하여 삶이 많이 변화되었어요. 글 마지막에도 보시면 비행기가 아닌 갤리선 노 저을 궁리를 하고 있잖아요. ㅎㅎ

카스피 2026-02-06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 지었다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로 대 도서관이네요.이집트가 경제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많은 돈을 들여 도서관을 새로 건립할 정도로 과거 이집트의 영광에 많은 자부심이 있음을 느낄수 있네요.

잉크냄새 2026-02-06 20:13   좋아요 0 | URL
이집트는 죽은 자가 산 자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대 이집트 문명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죠.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이집트뿐 아니라 전 세계의 보물이니 재건의 필요성은 충분해 보이네요.

firefox 2026-02-17 0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행복한 한해 되세요^^

잉크냄새 2026-02-17 21:28   좋아요 0 | URL
불여우님도 행복한 한해 되세요.
올해도 즐거운 독서 생활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레이스 2026-02-28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집트에 거대한 박물관이 건립되었다 해서 그곳에 가고 싶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져간 유물 되돌려 달라고 한다던데,,, 과연 돌려줄까 싶네요 ^^;;

잉크냄새 2026-02-28 21:29   좋아요 1 | URL
제가 여행중인 시기에는 박물관이 시내에 위치했었는데 외관상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박물관 입구 양측으로 커다란 석상이 서 있던 모습과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던 투탕카멘이 기억 나네요.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미이라들도요.ㅎㅎ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돌려줘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유럽제국주의 입장에서는 그냥 시혜 베풀듯 몇 개 던져줄 것 같네요.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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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모 레비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절멸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를 증언하는 작가가 되었다. 기억해내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 여기고 사회가 망각해가는 것을 경계한 그가 1987년 어느 날 자살을 했다. 그리고 10년 후 재일 조선인 2세인 저자는 토리노로 향했다. 쁘리모 레비의 삶과 죽음, 그의 사상, 증언하고자 했던 시대와 좌절의 시간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디아스포라인 레비의 삶은 또 다른 디아스포라인 저자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 레콩키스타 시기 이탈리아로 이주한 그의 조상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했고 유대인이란 그저 사라져가는 습관이나 문화에 불과했다. 2차 대전 초기에도 다른 유럽 지역과 달리 유대계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다. 그에게 유대인이라는 것은 그저 주근깨가 있고 없고 정도로 생각할 만큼 의식 자체가 희박했다. 그러나 인종법 반포 후 교수와 학우들이 대부분 그에게서 멀어져 감을 느꼈을 때 그는 공동체라는 삶 속에서 자신이 점점 불순물처럼 분리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찌와 인종법은 그렇게 유대인과 인종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인간'이라는 보편성 앞에서 '유대인'이라는 것은 '주근깨'가 있고 없는 정도의 차이라고 믿고 있었다. - <주기율표> p379 - 


아우슈비치는 그에게서 이름을 박탈했다. 이름의 박탈은 인간이 아닌 사물로의 전환이었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그런 지옥에서 그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체험하고 이겨낸 일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증거를 가지고 살아남아 야만의 시대를 증언하기 위한 의지였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그가 인간으로 살아온 문명의 형식을 전부는 아니라도, 잔해만이라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단테의 <신곡>을 외우고, 동료가 된 프랑스인에게서 프랑스어를 배우며 문명의 틀을 유지했다. 그렇게 그는 살아남았다. 


우리는 노예로서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박해를 받으며 분명 죽음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따라서 전력을 다해 그것을 지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후에 남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동의를 거부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물론 비누가 없고 물이 더럽더라도 세수를 하고 겉옷으로 닦아야만 한다. -p152-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후 그는 증언을 위한 삶을 살아갔다.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한 '장 아메리'의 비극적인 자살에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뮐러'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레비가 어느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고 연락한 그는 화학자인 레비가 그의 전공으로 말미암아 수용소에서 만난 독일인이었다. (문득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영화의 레싱 박사가 떠올랐다. 귀도의 절박함이 그에게는 그저 수수께끼에 불과했으니까.) '뮐러'는 나찌와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고,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독일인의 집단적 책임이 아닌 나찌라는 개인들의 일탈로 치부하고, 이제 원한이 아닌 공생을 말할 것을 부드럽게 종용하며 관용을 이야기했다. 참혹한 진실은 세월 앞에 무뎌져 갔다. 피해자가 오히려 부당한 의심과 무관심과 싸워야 했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반 독일 시민은 무지한 채 안주하고, 그 위에 껍질을 씌웠다. 나찌즘에 동의한 것에 대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무지를 이용한 것이다. 눈,귀,입을 모두 닫고 눈앞에서 무엇이 일어나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p221-


1987년 그는 자살했다. 유서가 없음으로 그 죽음의 의미는 유추될 수 밖에 없다. '장 아메리'처럼 과거의 추악한 기억에 무너진 것인지, '뮐러'로 대변되는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무장한 가해자에 대한 절망인지, 팔레스타인을 침략한 이스라엘 시오니즘 유대인에게서 또 다른 나찌의 잔영을 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증인으로써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기 본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잔혹했던 야만의 시대를 생존으로 증언했다면 망언과 비양심으로 잊혀지는 망각의 시대를 죽음으로 고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Let our fate be a warning for you (우리의 운명을 당신들을 위한 경고로 삼아라). -p285- 어느 수용소 인골이 쌓인 영묘의 표지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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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29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 서경식 작가는 프리모 레비 빠였던 듯합니다~ 책3권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되더라구요..^^;;

잉크냄새 2026-01-29 20:25   좋아요 1 | URL
아마도 디아스포라라는 공통 분모가 두 분을 엮은 듯 합니다. 덕분에 저도 서경식 교수와 쁘리모 레비의 책을 다수 접하게 된 계기가 되었네요.

감은빛 2026-01-30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군대에 입대하면서 속으로 나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버텼습니다. 만약 내가 인간인데도, 지금 이런 부당한 상황을 하루종일 겪어야 한다면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군대에 있는 동안 내 인권은 끊임없이 제한당하는 처지에 처해도 인간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하니 정말 버틸만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저를 엄청 괴롭혔던 고참이 제대하면서 저에게 가볍게 사과를 했는데, 그게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뭔가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어떤 생각이 갑자기 달라지면 정신이 입은 상처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6-01-30 21:49   좋아요 0 | URL
훈련소에 들어가면서 올빼미 번호를 부여받는 순간부터 훈련병들은 사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나 봅니다. 오죽하면 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고참의 사과가 가벼워 보인 것은 그것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뱉어낸 가벼운 말에 불과한 이유가 아닐까요. ‘군대라는 특수 사항이니 이해해라.‘라는 말로 그 고참은 벌써 자신을 관대한 우위적 입장에 위치시켜 버리니까요. 그걸 이해 못하는 사람을 관대하지 못한 편협한 인간의 위치로 전락시키고요.
 

그런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김경미-


남자의 오토바이가

좁은 골목길

앞서가는 폐지 리어카 노인한테


너무 작고 말라서

잘 보이지도 않던 노인한테


미친 듯이 경적을 누르며

욕을 해 대는 남자를

사귄 적이 있었다


그 오토바이 뒤에 앉아서

남자의 허리를 껴안고

이 사랑이 영원하게 해 주세요

빌기나 했던


빌어먹을 시절이 있었다

빌어먹을!


삶은 과거 기억에 시간과 감정을 양념처럼 추가하여 버무린다. 아무리 초라한 삶이라도 아름답게 기억되어야 하기에 과거는 장밋빛으로 버무려지기 마련인데 시인은 그 과거에 가운데 손가락을, 뻑을 날린다. 젊다는 건 아무리 빌어먹을 시절이든, 빌어먹을 놈팽이든 자꾸만 그 앞에 사랑을 먼저 놓으려 하기에 사랑만이 보인다.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 그게 청춘이 아닐까. 광석이 형이 부릅니다. "너무 빌어먹을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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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23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들도 청춘의 시절 비러먹을 남자를 만나는 것처럼 남성들도 두쫀크를 사달라는 여친의 강요에 한겨울 추위에 2시간 줄서 꼴랑 쿠키 몇개 사다바치는 빌어먹을 사랑을 할 때도 있지요.

잉크냄새 2026-01-24 10:11   좋아요 0 | URL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이 빌어먹을 것들에 남녀노소가 따로 있겠습니까. ㅎㅎ

yamoo 2026-01-23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시네요..ㅎㅎ

잉크냄새 2026-01-24 10:11   좋아요 0 | URL
이제는 은유와 비유로 버무린 시보다 직설적인 화법의 시가 더 와 닿네요. ㅎㅎ

마힐 2026-01-24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빌어 먹을 정도로 자기 것이 얼마나 없으면 그렇게 다닐까요?
빌어먹을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요? ㅎㅎ
사실 내 스스로 벌어 먹을 줄 아는 시절도 철들어야 되지, 그 전까지는 그냥 빌어 먹고 살아야죠. 뭐.
전 아직도 빌어 먹습니다. ㅠㅠ

잉크냄새 2026-01-25 20:42   좋아요 1 | URL
‘빌어먹을‘이 관형사일 때는 아주 빌어먹을 상황이지만
‘빌어먹다‘로 동사화할 때는 누구도 외면하기 힘든 삶의 본질이 스며있네요. ㅎㅎ 누구나 빌어먹던 한 시절을 건너왔으리라 봅니다.

페크pek0501 2026-01-25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느낌이 남다른 시입니다. 이 시 좋습니다.^^

잉크냄새 2026-01-25 20:43   좋아요 0 | URL
김경미 시인의 시가 느낌이 남다른 경우가 꽤 많은 것 같아요.

감은빛 2026-01-26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짧은 시와 짧은 글이 인상적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상하게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절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도,
그 시절엔 왜 그렇게 멋있게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이 청춘이고, 그런 것이 인생이라면,
왜 또 나이가 들어서는 이제 와서 이런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야를 주는 것인지
뭐 끝까지 알 수 업는 것이 인생이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겠지요.

잉크냄새 2026-01-26 21:37   좋아요 0 | URL
젊은 시절에는 대부분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은 경험을 가지고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가는 환상을 한 번 정도 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늙어서야 겨우 알게된 것이 참 아쉽습니다. 그래서 그 하고 싶은 일만을 기억하고 과거로 다시 가 봤으면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