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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 기후 붕괴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케이트 마블 지음, 송섬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기후학자인 저자는 트로이의 예언자 카산드라의 이야기로 책의 첫 장을 시작한다. 트로이의 공주인 카산드라는 어릴 적 우연한 사고로 예지력을 얻었으나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한 댓가로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에 걸린다. 트로이는 목마로 인해 멸망할 것이니 성으로 들이지 말고 태워버릴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비운의 예언자이다. 저자는 기후 위기에 직면한 현재의 지구와 기후학자인 자신의 입장을 결국 멸망해버린 트로이와 예언자 카산드라에게 감정 이입하며 그 고단한 심정을 풀어가고자 한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은 이미 익숙해서 무감각해진 단어가 되어 가고 있다. 정치적 입장과 경제적 제약 등의 문제로 공동의 목표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저자는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외피를 빌려 기후 위기의 지구를 이야기한다.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경이로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위기를 외면하고 왜곡하는 이권 단체들에 대한 분노, 기후 위기의 진범인 인간으로서의 죄책감, 기후 위기가 몰고 올 자연 재해와 그로 인해 인간 사이에 저질러질 죄악에 대한 두려움, 인간으로 인해 사라질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애도, 오존층의 보호 등 지금껏 인간이 이루어낸 작은 성공으로 말미암은 실날같은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 등 아홉 가지의 감정으로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카산드라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신화 속 카산드라의 저주는 구혼을 거절당한 찌질남 아폴론에 의하여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 속 카산드라의 저주는 누구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있을까. 현재 기후 위기의 대책으로 거론되는 플랜A는 기온의 상승을 초래하는 온실가스의 배출을 중단하는 것이고 플랜B는 지구 공학적 방법으로 지구가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플랜A는 무조건 가야 할 길이고 플랜B는 인간 오만함의 극치라고 평가한다. 플랜B에 해당하는 공학적 방법으로는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 복사열을 조절하는 방안과 탄소 순환을 조작하는 이산화탄소 제거의 방안 등이 거론되는데 이 방법들은 아직 유의미한 규모로 시행되지도 않을 뿐더러 극도로 위험한 불완전 요소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학적 방법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대기업과 같은 이권 단체가 탄소 제거라는 먼 미래의 전망을 이용해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또한 그들이 기후 위기의 불확실성을 강조하여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을 통념화하려는 의도라고 분노한다. 그것이 그들이 걸고 있는 저주이다.
신화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카산드라의 저주를 끝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저주의 멍에를 지고 많은 이들이 애초에 없던 길을 걸었다. 그들의 발자국 뒤로 남은 그 길은 이제서야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기후 위기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적 같은 구원은 없다. 다만 기후 모델에는 인간이 빠져 있다. 낙관적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 인간만이 유일한 변수라는 말이다. 지구의 미래는 인간의 두 손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인간만이 희망이라는 뻔뻔한 자기기만적 망상에는 빠지지 말자. 다만 결자해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