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걱정 말아요... 아이가 읽고 있는 책 제목에서 좀처럼 눈을 떼기가 어렵다.


 제목을 통해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되지만, 선뜻 잘 지은 제목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무엇일까. 그것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 때문일까.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그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책 내용처럼, 이 제목은 '걱정'이라는 프레임 속에 가두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책의 원제는 <Rudy's Worry>.


 비록, '걱정' 프레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걱정은 걱정 말아요>는 주제를 잘 표현한다. 걱정은 혼자 만의 문제가 아니며, 함께 나눔으로써 걱정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아이의 입장에서 잘 표현한 책이다. 무어보다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걱정이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사람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에서 걱정과 불안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살아있는 동안 우리 곁 그림자의 다른 이름이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걱정을 완전히 뿌리뽑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 마음에 다가온다. 다만, 걱정 중에서도 나눌 수 없는 문제(죽음과 같은)도 있다는 것은 책에서 말하지 않는데 이는 아이들 수준을 넘는 인생의 큰 과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걱정하지 말고 문제해결에 집중해라' 식의 결론으로 흐르지 않는 것은 적절한 메세지의 선택으로 보여진다. 일단은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멋진 어린이일테니까. 걱정을 걱정하지 않기는 어른들도 쉽지 않지만, 적어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근심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마음을 닫고 혼자 고민하는 부모들에게도 이 책은 여러 생각할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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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9-23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걱정은 걱정말아요 노래🎤가사 같은 제목이네요~ 문제(또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은 비단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는 고향집 책장에 꽃혀있는데 겨울호랑이 님 글을 보니 기억이 났어요 이번 추석에 내려가는 김에 갖고와서 읽어보아야겠습니다~ 행복한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0-09-23 22:20   좋아요 1 | URL
^^:) 그렇습니다. 저도 바로 노래 가사가 떠오르더군요. 한글 제목은 노래의 영감을 받은 듯 합니다. 파이버님 말씀을 들으니 곧 추석임이 떠오르네요. 행복한 추석 연휴, 즐거운 독서 되세요! 미리 인사드립니다

han22598 2020-09-24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걱정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같아요.ㅠㅠ 걱정의 감정과 생각을 환기 시키기 위한 방법이나 기술(노하우) 등이 조금 필요하기도 한 것 같아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0-09-24 05:12   좋아요 0 | URL
han22598님 말씀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자기만의 의식, 방식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초등 2학년 온책읽기 4번째. 입이 똥꼬에게...

특이한 제목의 「입이 똥꼬에게」는 여러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입, 눈, 코, 똥꼬 등 몸의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에 대해 알려주면서도, 어느 것 하나 우리 몸에 필요하지 않은 기관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냄새나는 똥꼬까지도.

아이들은 참 똥을 좋아한다. 똥 얘기만 나와도 코를 틀어쥐지만, 항상 웃음을 보여준다. 「입이 똥꼬에게」는 똥꼬 이야기를 통해 이런 아이들의 마음에 맞게 편안하게 다가간다.

내용에는「배꼽이 없어요!」처럼 몸의 일부가 없어져 벌어지는 소동이 포함되지만, 별다른 신체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배꼽과는 달리 큰 난리가 난다. 그리고 이런 부작용을 통해 아이들에게 지각과 소화에게 각 기관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이런 면에서 책은 아이들에게 개체로서 신체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과 함께 사회구성원으로서 개인의 역할, 직업에 대한 사고를 확장시켜준다.

이런 면에서「입이 똥꼬에게」는 아이즐 인체 팝업북 시리즈와 같이 인체를 설명하는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현재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 어렵지만, 꼭 이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직접 만져가면서 그림으로 이해하는 책이라면 직접적으로 아이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전에는 어려서 부모가 읽어주거나, 읽지 않았던 글 내용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것은 부차적 성과로 여겨진다.

이처럼 인체 백과사전을 통해 지각과정과 호흡과정에 대한 지식도 함께 읽히면서, 음식이 우리에게 오는 과정을 이해하고 나아가 사회활동에 대한 공부까지 한다면 「입이 똥꼬에게」의 주제 전반을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조금 욕심을 내서 DK 인체 시리즈도 꺼내놓지만, 일단 그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이미 아이에게는 차고 넘칠만한 양이니까...

그림만 보던 인체팝업북의 글도 시간이 흘러 읽은 것처럼, 언젠가 관심있으면 보겠지... 마지막으로 책이 부모에게 전하는 메세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부모들 아이들의 꿈을 존중해줄 것을 넌지시 요청한다. 아이들이 커서 입이 될 지, 손이 될 지, 아니면 똥꼬가 될 지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무엇이 되기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선택을 받아들여달라는 요청은 숨겨진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내용은 정리되었으니 아이와 함께 나눔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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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21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똥뿐만 아니라 방귀도 좋아한답니다. 누가 방귀 끼면 막 웃지요.

겨울호랑이 2020-09-21 16:16   좋아요 0 | URL
^^:) 그렇습니다. 왜 지저분한 것만 좋아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편견이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요즘 연의의 책장에서 지금은 읽기 쉬워진 책들을 골라 따로 챙겨 놓고 있습니다. 사촌동생들에게 책을 주기 위해 비워진 공간들은 곧 새로운 책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 1946 ~ )의 <우리 엄마> <우리 아빠가 최고야>책에 잠시 시선이 머물게 됩니다. 엄마와 아빠의 자식 사랑을 다룬 두 책이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우리 아빠 최고야>의 아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이에게 '보여지는' 존재인데 반해, <우리 엄마> 속에서는  '함께 하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겠지요. 두 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함께 하는 아빠와 자신을 버리고 함께 하는 엄마의 차이는 작지 않은 것임을 새삼 느낍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엄마와 자녀의 모습이 표현됩니다. 그저 엄마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요.


 우리 엄마는 무용가가 되거나 우주 비행사가 될 수도 있었어요. 어쩌면 영화배우나 사장이 될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우리 엄마가 되었죠. <우리 엄마> 中


 '엄마, 어디 있어요? 엄마!' 나는 '으앙!' 하고 울었어요. 무릎에서 빨간 피가 흘렀어요. 엄마를 소리쳐 불렀어요. "엄마!" "희진아, 엄마 여기 있어~".... 엄마를 찾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 中


  도올 김용옥 교수의 <효경 한글역주>에서는 이러한 엄마와 자녀의 관계를 <부모은중경 父母恩重經>을 통해 설명합니다. 출산의 고통을 통해 맺어진 이들의 관계는 생명의 탄생이라는 원초적 관계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맺어진 아버지와의 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효(孝)의 가장 원초적 출발은 모성애이다. 동물의 세계에 있어서도 수컷은 수태과정에 주로 기능하며,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출산과 양육은 암컷의 모성애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효의 교감의 가장 원초적 대상은 엄마일 수밖에 없다(p166)... 아버지에 대한 효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문명의 가치관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효라는 것도 문명화되고 윤리화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자연적이고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그 원초성이 퇴색되지 않는다.(p167) <효경 孝經 한글역주> 中


 <부모은중경>의 뛰어난 사실은 "부모"를 말하면서도 오로지 "엄마의 무한한 은혜"를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p170)... <부모은중경> 은 극적인 대화로써 사람을 끌어들이며 곧바로 엄마가 아기를 가진 후 열 달 동안 고생하는 모습을 그리는데, 한 달, 두 달, 세 달... 열 달까지 그 태아의 생성모습을 그리는 언어가 오늘날의 발생학적 사유와 대차가 없으며 그 묘사기법이 매우 절실하다. 그리고 천 개의 칼로 배를 휘젓고 만 개의 칼로 심장을 찌르는 듯하 엄마의 산고를 묘사하고 곧이어 앞서 말한 어머님 은혜 십게찬송(十偈讚頌)이 설파된다.(p171) <효경 孝經 한글역주> 中


 아빠의 사랑은 사회적 관계이고 엄마의 사랑은 원초적 관계이기에, 전자는 위압적이고 권위적이며 수직적이고 당위적이며 이성적인 반면, 후자는 인종적이고 포용적이며 수평적이고 자연적이며 감성적이라는 저자의 설명은 매우 냉정하게 들리지만,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제대로 설명했다 생각됩니다. 조금은 다르지만, 세라 블래퍼 허디 (Sarah Blaffer Hrdy, 1946 ~ )의 <어머니의 탄생 Mother Nature>은 아기와 엄마의 결합을 진화적 논리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젖빨기의 에로스와 연인의 에로틱한 감정의 대립 구도는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까지 거슬러올라 갈 수 있겠지만, 가족 내의 사랑을 이렇게 대립적으로만 바라볼 것은 아니기에 여기서는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모성(母性)과 성성(性性)은 부성(父性)과 남성(男性)의 성적 경험에는 적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뗄 수 없게 연결되어 있다. 남성과 다른 영장류 수컷의 성적 욕망은 암컷과의 교미가 자신의 정자가 난자를 수정시킬 가능성을 높여 주었기 때문에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난자의 수정은 교미가 여성의 번식 목표에 봉사하는 여러 가지 길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p834)... 젖 빨기의 에로스, 아니면 이성애적 어른 커플의 에로틱한 감각 중 어떤 것이 먼저라고 이야기할 것인가? 나는 전자가 먼저라고 추측한다. 모성은 성적 감각과 단단하게 엮여 있으며, 투덜거림과 속상임, 촉감과 냄새를 통해 어머니가 이 아기를 최우선 수위에 두도록 만드는 어머니 대자연의 보상 체계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은 아기의 일이다. 진화적 논리는 그 자신을 위해 어머니 역할의 감각적인 측면을 향휴하는 어머니들의 편에 굳게 서 있다.(p835) <어머니의 탄생> 中


 <어머니의 탄생>에서 보여지는 대립 구도와는 달리 매트 리들리(Matt Ridley, 1958 ~ )는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Nature Via Nurture: Genes, Experience, and What Makes Us Human>에서 태어나는 인간과 만들어지는 인간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누구와의 관계가 더 밀접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모두 필요한 존재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부모에 대한 아이의 시선과 기대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하는지는 엄마와 아빠의 숙제인 듯 합니다. 


 아이의 책장을 정리하면서 오래 전 읽었던 책들 안에서 서로 다른 부모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PS. 최근에 개정되어 나온 <우리 아빠>는 이전 제목인 <우리 아빠 최고야>때보다 권위를 내려놓은 아빠의 느낌을 받게 되어 좋게 느껴집니다. 내용까지 읽어보진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아빠와 자녀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진 다른 표현이 아닐까 짚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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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7-02 07: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효경 생각에 반대합니다. ^^
아빠와 엄마 역할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하는 산물이라고 봅니다.
효경 당시 문화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

겨울호랑이 2020-07-02 07:51   좋아요 2 | URL
제가 인용한 <효경 한글역주> 중의 내용은 도올 김용옥 교수의 해석으로 <효경>의 본문과는 조금 다릅니다. 해당 부분은 <부모은중경>에 대한 설명이 더 많이 되어 있습니다만, 본문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대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엄마와 아빠의 역할도 달라지고,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감정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엄마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연의를 보면서 제 한계가 아닌 아빠의 한계라 스스로 위안을 했는데,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보니 변명의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제가 더 노력해야겠네요 ^^:)

단발머리 2020-07-02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는 책 나와서 반갑습니다. 거짓말 1도 안 보태고 제가 맨 위의 두 권은 백번도 더 읽었다죠 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20-07-02 18:02   좋아요 0 | URL
정말 앤서니 브라운의 책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네요. 다른 문화권에서도 꾸준히 아이들에게 사랑 받는 것을 보면, 어른이 된 후에도 아이들의 감정을 잘 잡아내는 작가의 뛰어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2020-07-05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05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마]의 생각 : 책을 보고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언젠가 죽기 때문에, 늘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죽음을 반가운 손님으로 받아들이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감동적이에요.


나[연의]의 생각 : 할아버지는 참 좋으시겠어요. "저도 이모 보고 싶은데..." 아내 잘 만나시고 하늘나라에서도 잘 지내세요.


[아빠]의 생각 :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챙겨가는 물건들은 비록 그쪽에서는 필요없는 것들 뿐이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고 기다렸기에 두려움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생각하게 됩니다.



 학교 과제로 나오는 [가족과 함께 하는 독서] 중 이번에 <여행 가는 날>을 함께 읽게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그 손님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할아버지. 이것저것 챙겨서 좋은 날 떠나는 할아버지는 사실은 저 세상으로의 여행을 떠납니다. 독자들은 처음에는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지만 낯선 손님과의 대화 속에서 무언가 보통의 여행이 아님을 알아가게 되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우리는 여행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동화임에도 죽음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룬 <여행 가는 날>. 이번 페이퍼에서는 [아빠]의 생각에서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가볼까 합니다. 


"걱정 말거라. 나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란다." <여행 가는 날> 中 

 

 <여행 가는 날>은 두 가지 면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책입다. 하나는 '뽀얀 안개같은 손님'으로 표현되는 저승사자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을 맞이하는 할아버지의 자세입니다. <신과 함께>의 저승 3차사로 알려진 저승사자의 존재는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공포의 신(神)이지만, <여행 가는 날>에는 마치 '꼬마유령 캐스퍼'처럼 친근하게 등장합니다. 친근한 여행 동반자로서의 저승사자를 통해 독자들은 죽음이 결코 두려운 존재만은 아님을 깨닫습니다.


 명신손님처럼 멀리 낯선 땅에 깃들어 있으면서 긴 여행을 통해 이 땅을 찾아오는 신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어둠의 신 저승사자다. 그들은 저 멀리 저승 황천에 살면서 인간 세상으로 훌쩍 건너와서는 수명이 다한 사람들을, 또는 신의 노여움을 산 사람들을 왈칵 붙잡아서 아득한 어둠의 땅으로 데려간다. 한번 그네들에게 붙잡히면 꼼짝없이 모든 것을 다 잃어야 하는 공포의 대상이 저승사자다.(p134)... 망자를 잡아가는 삼차사는 일직사자와 월직사자, 강림도령이라 돼 있는데, 강림도령의 활약이 두드러진다.(p180) <살아있는 한국 신화> 中


 "이제야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단다." 할아버지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했어요. 손님이 왔으니 할아버지는 이제 먼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해요. 뽀얀 안개같은 이 손님은 할아버지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러 왔답니다. <여행 가는 날> 中


 또한, <여행 가는 날>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은 낯선 손님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손님을 기다렸다는 할아버지의 말 속에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Marcus Tullius Cicero, BC 106 ~ BC 43)가 <노년에 관하여 Cato Maior de Senectute> 했던 죽음이 편한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 그것은 우리 나이의 사람들을 가장 불안하고 걱정스럽게 하는 것 같네. 죽음이 노년에서 멀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토록 오래 살아오면서도 노인이 죽음은 무시되어 마땅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 왜냐하면 죽음이 영혼을 영생할 어떤 곳으로 인도한다면 죽음은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네.(p78)... 내가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치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육지를 발견하고는 항구에 입항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네.(p81) <노년에 관하여> 中


 또는 남겨진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할아버지의 말 속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 ~ 1986)가 <노년 La Vieillesse>에서 말한 '죽음은 주변인에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보부아르가 말한 죽음에 대한 주변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죽음 앞의 인간 L'homme Devant la Mort >에 자세히 나오지만, 이미 여러 페이퍼에서 다루었기에 여기서는 짚고만 넘어가겠습니다.


 "아, 그렇지! 가는 길에 이 동전으로 통닭을 사 가자. 오랜만에 함께 둘러앉아서 먹으면 눈물 나게 맛있을 거야." "그런데 할아버지, 안 슬퍼요?" "슬프기는, 미안하지. 남겨진 사람들이 슬퍼할까 봐 그게 미안해."<여행 가는 날> 中 

 

노인에게 죽음은 더 이상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운명이 아니다. 죽음은 이제 임박한 것, 개인적인 사건이다.(p614)... 죽음은 사르트르가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부르는 범주에 속한다. 우리는 노년을 이 범주에 넣었었다. 대자는 거기에 도달할 수도, 그것을 향해 자신을 투사시킬 수도 없다. 죽음은 내 가능성들의 외적인 한계이다... 내가 죽게 되면 그 죽음은 타인에게 죽음인 것이지 나 자신에게 죽음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타인들이 나를 보는 관점을 취하여 내가 늙는 것을 알듯이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이 앎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이며 외적으로 제기된 것이다.(p615)... 사실 죽음이 가까이 온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죽음은 가까이도 멀리도 있지 않다.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을 바란다는 것, 혹은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긍정의 의미다.(p617) <노년> 中


 <여행 가는 날>은 이와 같이 죽음을 잘 준비해서 맞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준비된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연의]의 생각에도 살짝 언급이 되었지만, 사실 몇 개월 전에 연의는 이모를, 연의 엄마는 언니를 긴 여행으로 떠나보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책의 의미가 저희 가족에게 깊숙하게 와 닿습니다. 


 <여행 가는 날>에서 할아버지는 여행 끝에 헤어진 부모님과 아내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여행을 떠납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도 우리는 할아버지가 만남을 이뤘는지에 대한 답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바가바드 기타 Bhagavadgita>에서 스승 크리슈나가 왕자이자 제자인 아르주나에게 한 이야기 속에서 할아버지 여행의 끝을 짐작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지향도 그곳을 향해야하지 않을까요.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 하루 죽어간다는 다른 말이기에.

 

 목숨이 끝나는 순간에 나만을 기억하며 육신을 버리는 사람은 누구나 다 나의 지경에 이를 것이니, 거기에는 의심이 없느니라. 어쨌거나 목숨이 끝나는 순간 어떤 성질의 것을 기억하며 떠났거나 간에 틀림없이 그대로 되는 것이니, 쿤티의 아들아 그것은 일생을 거기 젖어 있었기 때문이니라.(p331) <바가바드 기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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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06-13 2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세계의 장례. 100만 번을 산 고양이 글을 일고 저도 구입해서 읽었어요. 죽음은 드러내지는 않고 잊고 사는 것 같아도 늘 우리 안 깊은 곳에 있는 질문이죠.

죽음을 소멸로 인식 한 아이와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날 수도 있고, 하늘 나라에서도 잘 지내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세상을 대하는 반응이 확실히 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죽음이 소멸이라는 생각을 너무 어렸을 때 해서 힘든 시간을 보내왔어요

연의의 글을 한참 들여다보며 따뜻한 위안을 받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6-14 07:53   좋아요 2 | URL
나와같다면님 말씀으로부터 죽음과 고통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종교가 시작되었다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사실 죽음 이후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인식을 벗어나지만,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의 자세가 조금 달라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2020-06-15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5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6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6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유가 있어요」와 「불만이 있어요」는 자녀와 부모사이에 의레 이뤄지는 대화가 담긴 그림책입니다. 코를 후비는 아들의 습관을 지적하는 엄마와 이에 대한 이유를 대는 아들이 「이유가 있어요」의 내용이라면, 「불만이 있어요」는 딸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에 대한 불만을 담고 있습니다.

고쳤으면 하는 습관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아들의 이유를 들어주는 엄마와 딸의 불만에 귀기울이며 변명(?)하는 아빠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마치 「스타워즈」시리즈 중 4편 「새로운 희망」과 5편 「제국의 역습」을 떠올리는 책 구성이 재미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는 딸이 과제물로 「불만이 있어요」의 내용을 바탕으로 책띠를 만들었습니다. 아빠도 가려먹으면서 왜 골고루 먹느냐는 딸의 질문에 책 속의 아빠는 참 재치있게 대답합니다. 평소 딸의 관심사를 잘 아니 가능한 대답이겠지요. 이제 같은 질문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책의 아빠만큼 대처하기에는 순발력이 부족해서 정공법을 택하기로 합니다.

˝그렇구나, 아빠도 가려먹는게 있으니 다음부터 아빠는 김치를 잘 먹을께. 연의도 버섯을 함께 잘 먹자.˝

책의 아빠처럼 재밌는 대답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이야기를 통해 엄마와 아빠, 아들과 딸을 이해하는 시간을 「이유가 있어요」「불만이 있어요」를 통해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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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5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5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