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사이 <슈퍼배드3>와 <덩케르크 Dunkirk>를 봤습니다. 평소 극장을 잘 찾지 않는 편이지만, 날이 더워서인지 최근 자주 가게 되었습니다. 평소 영화를 잘 알지 못해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영화 관람 중 들었던 짧은 생각을 몇 자 적어봅니다.


[사진] 슈퍼배드3(출처 : 제니스 뉴스)


 아내, 연의와 함께 본 <슈퍼배드3>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인 미니언스들이 등장하지요. 덕분에 보통 극장에서 앞자리를 발로 차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아이들도 제법 몰입해서 이야기에 빠져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연의 역시 처음으로 극장에서 도중에 집에 가자고 조르지 않더군요. 아내말에 따르면 연의는 여태까지는 재미없다고 집에 가자고 이야기하거나, 화장실에 가자고 하는 등 관람시간 동안 수차례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극장올 때도 내심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슈퍼배드3>를 볼 때는 끝까지 재밌게 봤습니다.  그런 면에서 <슈퍼배드3>는 가족사적인 의미(?)가 있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공연을 연의와 함께 볼 계획입니다. <슈퍼배드3>가 재밌었는지, 연의가 컸는지는 좀더 지켜보면 알겠지요...


 <슈퍼배드3>는 나름 자녀와 함께 오는 부모들을 위한 배려도 담겨 있습니다. 악당이 80년대 '발타자르 브랫(Balthazar Brat)' 이라는 인물(첫 번째 사진의 오른쪽)입니다. 복고풍 느낌이 물씬 나는 이 인물을 통해 부모들은 80 ~ 90년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이 인물이 등장할 때 나오는 음악이 있는데, 이 음악을 통해서도 추억을 소환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마이클 잭슨의 'Bad', 영화 'TOP GUN'의 OST 중 하나인  <Take my breath away>, A-ha의 <Take on me> 등이 나오는데, 이들 음악과 당시 패션은 부모들 세대들에게 아련한 추억을 잠시 제공합니다.(평균 3초 정도) 그런 의미에서 <슈퍼배드3>는 모든 세대를 배려한 좋은 가족 영화라 생각됩니다. 줄거리는 뻔하지만, 제가 아이들을 살펴보니 그래도 부모님과 같이 영화를 본 아이들이 더 활짝 웃고 있었기에, 가급적이면 함께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만약 보실 계획이라면요)





[사진] 뎅케르크 (출처 : http://eleit.tistory.com/entry) : 영화 이미지는 아닙니다.


 다음에 본 영화 <덩케르크>는 2017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Jonathan James Nolan) 감독의 작품입니다. 영화는 대화와 불필요한 상황 설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담담하게 전쟁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감독이 전작 <인셉션 Inception, 2010>,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에서 보여준 모습을 기대하고 보신 관객은 다소 밋밋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이 본 제 동생의 감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진행한 영화에 몰입해서 봤습니다. 그렇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덩케르크 철수'와 관련해서 최근의 정치 상황이 계속 연상되어 다소 불편했습니다. 개인적으로 1940년의 '덩케르크 철수' 속에서 2016년 '브렉시트 Brexit' 가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EU에서 탈퇴하여 유럽이기를 거부하고 섬나라 '영국'으로 돌아간 선택을 한 21세기 영국의 모습을 우리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충격적인 결정에 대해 많은 영국인들은 찬성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EU에서 철수해서 영국으로 귀환한 결절을 환영하는 영국 유권자의 모습과 영화 내에서 귀환병들을 환영하는 영국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또한, 유럽대륙을 제패한 독일 제3제국의 모습 속에서 현재 EU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독일의 모습이 관람자의 입장에서 투영됨을 느꼈습니다. 영국인인 놀란 감독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철수 작전을 통해 현대 영국의 결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된 지점입니다. 


 그런 관점- 자신들의 선택인 '브렉시트'에 스스로 합리성을 부여한 것은 아닌가 하는 - 에서 '던케르크'를 본다면 많은 부분이 다르게 보입니다. 프랑스, 벨기에 등 현재 EU 회원국들이자 과거 연합국으로서 동맹국들에게는 과거 '대(對)독일'전선에 대항했다는 이미지를 통해서, 유럽 내 영국의 고립을 약화시키려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와 동시에 '나치'로 대표되는 독일을 고립시키는 듯한 느낌을 영화 전반에서 느끼게 됩니다.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왕에 나간 김에 조금만 더 나가보겠습니다.


세계적으로 배급되는 이 영화를 아마도 많은 유럽인들도 볼 것입니다. 다른 EU 회원국민들의 마음에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독일에 대해 동질감보다는 반감이 더 커지게 되는 것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또한,최근 유럽 등지에 일어나고 있는 EU 탈퇴를 부르짖는 '극우 운동'이 힘을 받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반면, 독일인들은 '유럽 공동체' 보다는 강대한 '독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이 2017년 9월 예정된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강경 우파가 득세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보게 됩니다. 전쟁 영화 한 편에 너무 나간 상상을 하게 되었네요.^^: 다만, '영국 만세!'의 느낌을 통해 어설픈 관객 한 명이 딴 생각을 할 여지를 주었다는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이른바 '국뽕'이라고 하는 이런 느낌은 영화 시작을 기다리며 읽었던 책에서도 느꼈습니다. 영화와는 전혀 관련없는 '한옥' 관련 책이었습니다만...


영화 시작 전 잠시 살림지식총서에서 나온 <한옥>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고판 책은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는 면에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통 가옥 연구를 평생 업(業)으로 해온 저자가 풀어주는 한옥(韓屋)에 대한 이야기는 즐겁게 쉽게 익힙니다. 제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풀이한 마루에 대한 부분입니다.이외에도 한옥의 숨겨진 의미에 대해 저자는 쉽게 설명하고 있고, 이는 이 책만이 가진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또 마루는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또 다른 측면의 매개공간이 되기도 한다... 신과 인간이라는 상/하 개념의 두 존재가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 마루인 것이다. 마루를 땅에 떨어지게 한 것은 인간세속을 벗어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주거에 있어서 다른 공간들이 전부 막힌 구조인데 비해 마루는 아래 위를 비워둠으로써 단면상의 상징성을 유도하기도 한다.'(p71)


다만,  책 중간 중간에 있는 전통 한옥에 대한 저자의 예찬은 현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책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덩케르크>의 '영국만세!'의 연장선입니다.


 '옛날 조석으로 어른들을 문안할 때 아랫사람이 요 밑에 손을 넣어 방의 온도를 살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온돌이 파이프를 이용한 난방으로 바뀌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서양식 난방방법이 들어옴에 따라 우리들은 매사에 감정적이고 다혈질적으로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위대한 미래는 찬란했던 과거와 접목되었을 때에만 약속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p64)


 전통가옥에 대한 예찬이 최근 주거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이어서 현대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책은 마무리되고 있지만 저로서는 상당히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한옥에 대한 좋은 소개서라는 생각이 많이 옅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여러 형제, 남매가 한 이불 속에서 옹기종기 자랄 때에는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도 필여에 따라서는 양보도 할 줄 알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끈끈한 가족애가 있었다. 아기가 아프면 자기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먹였다는 어머니의 모성도 바로 이 가족 간의 굳건한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굳건한 공동체 의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 굳어지면서 우리 민족의 저력이 되었다. 강대국의 옆에 붙어 정치적, 군사적으로 위협을 당했어도 우리의 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이 공동체 의식에 있었던 것이다.'(p88)


 저자가 책을 쓴 목적이 한옥을 소개하자는 것인지, 현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자는 의미인지 참 모호해집니다. 그런 어정쩡함 속에서 과거에 읽었던 책 내용의 일부를 옮겨 봅니다.  아래 내용은 2016년 < 한옥문화> 여름호에 실렸습니다. (이미지가 없어 2017년 봄호의 이미지를 넣었습니다)


'마당에 잔디를 깔거나 정원을 만들어서 그것을 관리하려고 독한 농약을 뿌리는 모습도 보았는데,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마당을 비워두었으면 더 건강한 집이 되었겠다. 한옥은 마당을 그냥 텅 비워 놓아서 그곳을 실내 공간처럼 썼다. 마당에서 음식도 만들어 먹고, 놀이도 하고, 일을 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한옥>과 내용이 거의 동일합니다. 제게 와닿았던 부분은 다음입니다.


 '한옥의 공간 구성에서 현대인의 삶을 건강하게 하는 요소를 찾아내서 그  내용을 집짓기에 적용하자. 이것이 한옥의 현대화다. 과거에는 비가 왔을 때, 평평한 옥상에서 물이 새지 않게 할 기술이 없었다. 지금은 평지붕에 방수를 하는 기술이 있다. 그러니 기와 없이, 옥상을 둔 한옥을 지을 수도 있겠다. 기와가 멋있다면 옛날 기와를 그대로 복제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현대적인 재료로 세련되게 새롭게 처마와 지붕의 선을 디자인해보아도 좋겠다.'(p108)


 예전에는 난방기술이 '온돌'이 최선이었기에 온돌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반면, 지금은 다양한 난방 기술이 있지요.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고,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공감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소개된 한옥 '잔서완석루'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한옥입니다. 잔서완석루는 <제가 살고 싶은 집은> 이라는 책에도 소개된 집이기도 합니다. '잔서완석루'가 한옥이라 불릴 수 있을까 물음을 던지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집은 멋진 집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진> 잔서완석루 (출처 : 한옥문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의(衣), 식(食), 주(住)라 했을 때, '우리 땅에서 난 것이 우리 몸에 좋다(身土不二)'라고 해서 갑자기 양복 대신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바나나, 파프리카 대신 감, 배 등만 먹기는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 적인 과거로의 복귀가 '정답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와 과거와의 조화. 그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슈퍼배드3>는 참 배려심이 넘치는 영화입니다. 날이 무더운 요즘입니다. 이웃분들 모두 좋은 건강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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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3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3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거서 2017-08-03 09: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덩케르크>를 관람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많았을 텐데 하필 패배한 전투의 역사적인 순간이 영화의 소재가 되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영국군의 생존 귀환 프로젝트는 과거보다는 현재의 영국 상황을 맞춰보니 영화의 주제와 맥락이 닿고 영화의 디테일 역시 놀랍더군요. 영화 막바지로 갈수록 영국민의 감정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많다는 것도 느낄 수 있더군요. 스핏파이어 전투기의 구군분투와 독일에 포로가 되는 마지막 장면이 저한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님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덩케르크와 한옥을 연관성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8-03 09:42   좋아요 3 | URL
^^: 네 저 역시 오거서님께서 말씀하신 조종사가 포로가 되면서 마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방어선이 없는 그곳으로 가면 포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쪽으로 활강을 하는 조종사. 적에게 비행기가 넘어가지 않도록 엔진을 폭파시켰던 사람이 자신은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은 알 수 없는 묘한 여운이 남더군요. 개인적으로 <덩케르크>가 배트맨 시리즈처럼 시리즈물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덩케르크 철수 이후 벌어진 ‘영국 본토 항공전‘, ‘노르망디 상륙잔전‘등으로 배트맨 시리즈처럼 3부작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니겠지요..^^: 오거서님 더운 날 건강한 하루 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8-03 10: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덩케에 대한 해석이 좋군요.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인데 겨호 님 해석을 들으니 맞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8-03 11:00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곰곰발님 말씀을 들으니 저 혼자 안드로메다로 간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줄어듭니다. 더운 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고양이라디오 2017-08-03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는 해석 잘 보았습니다~ㅎ

겨울호랑이 2017-08-03 12: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날이 무척 덥네요. 고양이라디오님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AgalmA 2017-08-03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연의 귀여워ㅋㅋ

최근 <군함도>와 <덩케르크> 비교논쟁들 보고 이 글 읽으니 국뽕은 만국의 정서라는 생각도 들고^^; 좀전에 헤르메스님 <거대한 후퇴> 읽은 게 오버랩 되면서 우리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퇴행과 퇴보도 부산물이자 동반자라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군요.

언젠가 중국, 한국, 일본의 건축양식을 비교해보며 결국 각 풍토에 따른 인간의 적응방식 아니었겠나 싶었는데 그걸 어떤 우월성으로 비교하면 개별적 특수성을 너무 간과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물론 상상과 기술력의 혁신 관점에서 보면 비교우위가 당연 생길 수밖에 없겠습니다만요. 요즘은 글로벌해져서 그 격차가 자본에 의한 차이로 더 부각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옥에 대한 저자의 저 발언은 그런 경제 문화적 환경 요인은 간과한 거 같네요.

겨울호랑이 2017-08-03 14:19   좋아요 1 | URL
^^: 그러게요... 진보한다는 것도 마냥 앞으로 간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random walk를 하다보니 장기적으로 ‘나아졌더라‘하는 것이 역사의 발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직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인간의 생활양식의 결과가 ‘주택‘이라고 본다면, 전통이 무너져서 사회가 어렵게 되었다는 논리는 ‘인과오류‘가 아닌가 싶네요.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특수성 문제를 듣다보니 열대지방의 ‘낮잠‘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낮잠을 자는 것이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 기후에서 적응하는 하나의 문화양식임을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화, 글로벌화라는 것은 문화적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강요된 폭력인듯 하네요.

2017-08-03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3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4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4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5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8-05 08:27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요즘 날이 너무 덥네요. 김영성님도 시원하게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본유 관념이란 감각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마음에 명석하고도 판명하게 떠오르는 관념이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에 따르면 대표적인 본유관념이 '신(神)의 관념'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관념을 우리에게 넣어 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객관적 세계의 존재, 즉 외계 물체의 존재는 이 '신의 성실성(veracitas dei)을 매개로 하여 증명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생각이다.' (출처 : 철학 사전)


 대륙의 합리론(合理論)과 영국의 경험론(經驗論)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부분 중 하나가 '본유 관념(innate idea)'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로크의 <인간지성론>을 중심으로 '본유관념'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고대 그리스의 본유관념


 '본유 관념'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올라갈 수 있다. 플라톤(Platon, BC 427 ~ BC 347)의 <메논 Menon>에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BC 399)가 노예 소년에게 질문을 통해 기하학 증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플라톤은 이를 통해 진리가 인간 내면에 있으며 '상기(想起)'를 통해 인식할 수 있다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메논>에 나타난 '본유 관념'을 확인해 보자.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아무도 가르치지 않고 단지 질문할 뿐인데, 그 스스로 자신으로부터 인식을 되찾음으로써 인식할 수 있지 않겠나?

메논 :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런데 그가 자신 속에서 인식을 되찾는 것이 상기하는게 아니겠나?

메논 : 물론이죠.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이 아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인식은 그가 언젠가 획득했던 것이거나, 아니면 언제나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겠나?

메논 :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래서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또한 언제나 알았을 걸세. 하지만 언젠가 획득했다면, 그는 적어도 이승에서 획득하지는 않았을 걸세. 아니면 이 아이에게 누가 기하학하는 걸 가르친 적이 있나?' (85 d ~ e) <메논 Menon> 


2. 데카르트의 본유관념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기하학)이 절대적 진리로서 본유 관념의 자리를 차지했다면, 근대 초기 유럽에서는 '신(神)'의 개념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본유 관념을 통해 '신 존재'를 증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데카르트는 '정신- 물질'의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한다. <성찰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tia, in quibus Dei exstentia, & animae hamanae a corpore distinctio, demonstrantur> 중 '본유 관념'에 해당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런 관념 가운데 어떤 것은 본유적(innatae)이고, 어떤 것은 외래적(adventitiae)이며, 다른 나머지는 내 자신이 만들어 낸(factae) 것으로 생각된다.(p61)... 내 속에 있는 관념은 상과 같은 것이고, 게다가 이것은 자신이 기인하는 사물의 완전성을 잃어버리기는 쉬우나, 이 사물보다 더 큰 것 혹은 더 완전한 것을 가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무엇이 귀결될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그 표상적 실재성이 대단히 커서 형상적으로 혹은 우월적으로 내 안에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나 자신이 그 관념의 원인이 될 수 없음이 확실하다면, 이 세상에는 나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관념의 원인이 되는 다른 사물도 현존하고 있음이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관념 가운데는 나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 관념이 있는데, 이때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또한 다른 관념들, 즉 신(神), 물질적이고 생명이 없는 것, 천사, 짐승, 마지막으로 나와 유사한 다른 인간을 표현하는 관념이 있다.'(p67) -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中 -

 

3. 로크의 경험론


 이처럼 '본유 관념'에 기초한 데카르트의 사상이 대륙 합리론의 바탕이 되었다면, 이와는 입장을 달리하는 영국 경험론의 입장은 무엇일까. <인간지성론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는 이전 사상에서 인정되는 '본유 관념'을 비판하고, '관찰'과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메논>에서 노예 소년을 증명으로 이끈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듯한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렇다면 아이들이 생각하고 알고 동의할 수 있을 때 자연이 이들에게 심어준 개념들을 (만약 그런 개념들이 있다고 한다면) 모를 수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가? 아이들이 외부사물들에서 얻은 인상들은 지각하면서도 자연이 몸소 수고를 기울여 마음속에 새겨놓은 글자들을 모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외부에서 얻은 개념들을 받아들이고 동의하면서도 자신들의 존재의 원리들 안에 짜넣어지고 지워질 수 없는 글자들로 심어져서 그들이 장차 획득하게 될 모든 지식과 그들이 행하게 될 미래의 모든 추론의 토대이자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상정되는 개념들을 모를 수 있을까?...따라서 설령 더욱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관념들과 이 관념들을 나타내는 이름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성인에게 제시되어 늘 지체없이 동의되는 몇몇 일반적인 명제들이 있다고 해도, 이 명제들은 다른 것들은 알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으므로 지성을 갖춘 사람들의 보편적인 동의를 얻을 수 없으며 따라서 결코 본유적이라고 상정될 수 없다.'(p88)


 '내가 알고 있는 기존의 학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본유 관념들, 즉 그들이 바로 맨 처음 존재하게 될 때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본래적인 글자들(original characters)을 갖고 있다.... 나는 내가 지성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관념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관념들은 어떤 경로로 점차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줄 때, 내가 앞서 제1권에서 말했던 바(본유관념에 대한 논박)가 훨씬 더 쉽게 받아들여지리라고 본다. 나는 이를 위해 각자의 관찰과 경험에 호소할 것이다.'(p149)


 <인간지성론>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바로 다음에 이어진다. 


 '이제 마음이 이른바 백지(white paper)라고 가정해보자. 이 백지에는 어떤 글자도 적혀 있지 않으며 어떤 관념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하여 이 백지에 어떤 글자나 관념이 있게 되는 것인가?... 마음은 어디에서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를 갖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나는 한 마디로 경험(experience)에서라고 대답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그 토대를 갖고 있다.'(p150)


 '백지'상태 의 인간은 '관찰'과 '경험'을 통해 여러 관념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로크는 <인간지성론>에서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본유 관념'을 인정하지 않는 경험론에 대한 당대의 비판과 현대의 비판을 다음에서 살펴보자.


3. 빈 서판에 대한 당대의 비판 :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1646 ~ 1716)는 그의 저서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에서 로크의 경험론을 비판하고 있다. 다소 복잡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간략하게 줄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신(神) 안에서 인간은 한계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를 인식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따라서 경험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가, 또는 우리가 자신의 고유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논쟁 문제로 말하자면, 우리가 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통찰한다하더라도, 우리도 또한 고유한 관념을, 즉 말하자면 작은 모사물이 아니라, 우리가 신 안에서 통찰하게 되는 것에 상응해야 할 우리 정신의 특성들 또는 변형들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은 필연적일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정신이 그의 현 상태 안에서 그들을 개별적으로 판명하게 고찰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다양하고 아주 작은 형태들과 운동들의 감각 외에는 다른 어떤 감각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정신은, 자신의 감각이 전적으로 아주 작은 형태들과 아주 작은 운동들에 대한 감각들로 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p24) < 형이상학 논고 Discours de Metaphysique> -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 - 中


4. 빈 서판에 대한 현대의 비판 : 스티븐 핑거


 그렇지만, 스콜라(Schola)철학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보다 설득적으로 경험주의 사상을 비판하고 있는 책은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1954 ~ )의 <빈 서판 The Blank Slate>이라 생각된다. <빈 서판> 머리말은 다음과 같은 말로 로크 사상의 의의와 책의 저술 목적을 설명한다.


 '로크가 겨냥한 공격 대상은 인간이 수학적 이상, 영원한 진리, 신의 관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하는 본유 관념 이론이었다... 로크는 정치의 현 상태에 대한 교조주의적 정당화에 반대했다. 자명한 진리로 강요되었던 교회의 권위와 신성 왕권이 대표적이었다... 로크의 빈 서판 개념은 또한 세습적인 왕권과 귀족 신분의 정당성의 토대를 침식시켰다... 지난 세기 동안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많은 분야에서 빈 서판 학설은 합의된 토대로서 작용했다.'(p30)


'인간 본성에 대한 이 이론, 즉 인간 본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모든 종교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이 포함되어 있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들이 각각의 종교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현대 지식 세계에서는 빈 서판이 세속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종교적 전통들이 결국에는 과학의 명백한 위협들을 참고 받아들였듯이,  우리의 가치관도 빈 서판의 종말을 이기고 꿋꿋이 살아남을 것이다.'(p28)


 스티븐 핑거는 <빈 서판>에서 경험주의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저자는 '본유 관념'을 극복한 경험주의의 모순을 '과학(科學)'적으로 증명하면서, '경험주의'는 '전체주의'라는 또다른 폐해(弊害)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빈 서판에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 빈 서판으로 인해 인간 본성에는 공백이 생겼고, 전체주의적 체제가 그 공백을 열심히 채웠지만 그것은 전체주의의 대학살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교육, 양육, 예술을 사회 개조를 위한 형식으로 악용하고 있다(p737)...좋고 나쁜 영향에 상관없이 빈 서판은 뇌 기능을 설명하는 경험적 가설이고 따라서 진위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마음, 뇌, 유전자, 진화를 연구하는 현대 과학은 빈 서판이 그릇된 이론임을 갈수록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p738)


 결국, '본유 관념'은 종교(宗敎), 사회 체제(社會體制) 등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사상(思想)으로 작용했으며, 이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등장한 경험주의 역시 지금은 또 다른 사상이 되어 우리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빈 서판>을 통해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科學)'을 통해 이러한 이념(理念 : 경험주의의 폐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사진] Monsanto에서 생산되는 GMO 제품( 출처 : Monsanto 홈페이지)


 생명공학을 활용한 유전자 변형 생물(GMO :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이 글로벌 대기업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우리는 지금 '과학'이라는 또다른 이름의 '본유 관념'이 지배하는 세계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많은 책들이 '과학'이라는 또다른 종교를 말하고 있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도구로서의 과학'이 아닌 '주체가 되버린 과학'을 많이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상황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페이퍼를 정리하다보니 대중과학서적을 보다 재밌게 읽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빈 서판>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양과학서이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단순하지 않다. 사실, <빈 서판> 뿐 아니라 우리가 접하고 있는 많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서적 중 많은 주제가 오랜 논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예를 들면, <이기적 유전자>, <코스모스>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오랜 철학적 과제를 안다는 것이 비록 쉽지 않지만, 이러한 논쟁의 역사와 내용을 안다면 보다 재미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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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학의 역할 vs 철학의 역할
    from Value Investing 2017-08-01 22:54 
    겨울호랑이 님께서 여러 책들에서 인용해 주신 문장들 때문에 '본유 관념'과 '빈 서판' 이론뿐만 아니라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까지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베르그송은 그의 주저인 『창조적 진화』에서 과학의 역할과 철학의 역할을 아주 흥미롭고도 명쾌하게 비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들 가운데 이번에 겨울호랑이 님의 글 때문에 다시금 펼쳐 읽고 거듭 음미해 볼 만한 대목들을 '먼댓글 형식'으로 덧붙여 봅니다. 한가지 덧붙일 점은,『창조적 진화』
 
 
oren 2017-08-01 1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학‘이 아무리 ‘만능열쇠처럼‘ 여겨지더라도 결국 과학은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과학으로서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됩니다. 앙리 베르그송도 ‘과학이 끝나는 지점‘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 말했고요. 어쨌든 ‘철학‘은 영원히 ‘과학을 보완하는 임무‘를 어깨 위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마치 아틀라스가 무거운 지구를 어깨 위에 계속 떠메고 있듯이요.
* * *
본래적인 의미의 과학이 모두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충분한 설명을 할 수도 없다는 것

원인을 실마리로 하여 합법칙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근본적인 힘은 사실은 의지로부터 설명된다. 따라서 인식은 물질의 변용이라는 주장에는 모든 물질이 주관적인 인식의 변용, 즉 주관의 표상이라고 하는 주장이 언제나 정당성을 갖고 대립된다. 그렇지만 모든 자연과학의 목적과 이상은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완성된 유물론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유물론을 명백히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또 하나의 다른 진리로 이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 진리란 우리가 앞으로 고찰해가면서 분명해질 것인데, 그것은 내가 충족 이유율에 근거한 체계적 인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본래적인 의미의 과학이 모두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충분한 설명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학은 세계의 가장 심오한 본질에는 접촉하지 못하고, 표상을 넘어서지도 못하며,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표상과 다른 표상과의 관계를 가르치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겨울호랑이 2017-08-01 17:54   좋아요 0 | URL
베르그송이나 쇼펜하우어 모두 ‘과학의 한계‘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군요. 19세기에 선각자들이 이미 깨달았던 부분을 21세기에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사회의 발전‘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oren님 감사합니다^^:

AgalmA 2017-08-03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험론과 합리론 비교 궁금했는데 겨울호랑이님이 이렇게 상세히 말씀해 주셔서 좋네요^^

인간은 태어날 때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촘스키 견해는 본유관념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알다시피 경험과 학습이 쌓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즉 인간은 완전히 백지상태라 보기도 어렵고 관찰과 경험만으로 존재한다고도 보기 어렵습니다. 생물학에서는 인간의 신체는 거대한 화학작용이지요. 그 논리에서는 본성이 있기 어렵죠ㅎ. <신의 입자>에서 레더먼이 비유했다시피 우리는 축구공의 실체는 보지 못하고 축구 경기를 해괴하게 바라보는 외계인의 상태라고 해야겠죠. 상태들은 보는데 원인은 정확히 모르는. 그래서 본문에서 말하신 ‘공백‘ 논란처럼 각자의 인식과 이데올로기로 이많은 관념과 질서를 배태하고 향유하는 것이겠고요.

겨울호랑이 2017-08-03 14:4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레더먼이 말한 내용은 칸트 철학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결과‘만을 볼 수 있기에 각자의 기준에 따라 ‘원인‘을 범주화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린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되네요^^: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언젠가 너도」는 아이가 태어나서 어린이로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 독립해서 다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의 일을 그린 동화책입니다.

동화책인 이 책을 아마도 많은 부모(특히 어머니)가 읽어주리라 여겨지네요. 그렇지만 아마도 아이는 책의 내용을 마음 깊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보다는 책을 읽어주던 엄마가 자신의 어머니(아이의 외할머니)를 이 책을 통해 더 많이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엄마를 위한 동화라 생각됩니다. 책은 다음의 내용으로 마무리 됩니다.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아주아주 먼 훗날,
너의 머리가 은빛으로 빛나는 날
그 날이 오면, 사랑하는 딸아.
넌 나를 기억하겠지.」

딸이 엄마를 기억하는 순간
엄마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아마도 어머니는 곁에 없겠지요
이렇게 세대는 바뀌어가는 것 같습니다

ps. 이 책을 보니 딸을 결혼시키는 아빠의 마음이 담긴 동화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없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책을 써 보면 어떨런지 상상해봅니다.

˝네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던 날
네 손을 잡고 식장으로 들어가는 날이 오면 사랑하는 딸아, 넌 나를 기억하겠지.˝

네... 이렇게 만들면 딱 걸리겠지요 ㅋㅋ
이웃분들 모두 편한 밤 되세요^^: 



[가사 출처 : http://blog.daum.net/seed/1851]


Schoolbag in hand, she leaves home in the early morning 
Waving goodbye with an absent-minded smile 
I watch her go with a surge of that well-known sadness 
And I have to sit down for a while 
The feeling that I'm losing her forever 
And without really entering her world 
I'm glad whenever I can share her laughter 
That funny little girl

 
이른 아침 책가방 들고 손흔들며
미소 지으며 그앤 집을 나섰지
그앨 보낸 뒤 멍하니 한참 그냥 앉아
가는 뒷모습을 보았어
난 아직 그앨 알지도 못한 채
영원히 그앨 놓칠 것 같아
허나 그 예쁜 꼬마가 웃을 때
난 너무 기뻤어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I try to capture every minute 
The feeling in it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Do I really see what's in her mind 
Each time I think I'm close to knowing 
She keeps on growing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잡아보려해도언제나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노력할수록 내 손에서 빠져나갔어
나는 정말 그앨 잘 알고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클수록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Sleep in our eyes, her and me at the breakfast table 
Barely awake, I let precious time go by 
Then when she's gone there's that odd melancholy feeling 
And a sense of guilt I can't deny 
What happened to the wonderful adventures 
The places I had planned for us to go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Well, some of that we did but most we didn't 
And why I just don't know


 

눈비비며 아침식탁에 마주앉아
그 소중한 시간 그냥 보냈지
그애가 간 뒤 미안한 맘에 사로잡혀
죄책감마저 느꼈었어
우리가 계획했었던 여행들
그 멋진 계획 다 어디갔나
(잡아보려 해도 언제나)
가기도 했지만 거의 못했어
정말 왜 그랬나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I try to capture every minute 
The feeling in it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Do I really see what's in her mind 
Each time I think I'm close to knowing 
She keeps on growing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잡아보려 해도 언제나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노력할수록 내 손에서 빠져나갔어
나는 정말 그앨 잘 알고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클수록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Sometimes I wish that I could freeze the picture 
And save it from the funny tricks of time 
Slipping through my fingers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Schoolbag in hand she leaves home in the early morning 
Waving goodbye with an absent-minded smile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그 행복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나
자꾸 클수록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자꾸 클수록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이른 아침 책가방 들고 손흔들며
미소 지으며 그앤 집을 나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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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30 0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30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30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몽테스키외 & 토크빌 : 개인이 아닌 시민으로 살기>는 <법의 정신>의 저자 몽테스키외와 <미국의 민주주의> 토크빌의 사상을 다룬 기초 입문서이며,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일부다. 저자인 홍태영 교수가 생각하는 몽테스키외와 토크빌의 사상은 무엇일까.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1. 몽테스키외(Charles-Louis de Secondat, Baron de La Brede et de Montesquieu, 1689 ~ 1755)


 '<페르시아인의 편지>에서부터 몽테스키외는 프랑스의 군주정이 동양이나 유럽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전제군주정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법의 정신> 후반부의 서술을 통해 몽테스키외는 봉건법 및 당시의 군주정 성격에 관한 논쟁에 참여했다... 그는 프랑스 군주제의 절제된(moderate) 특징이 중간 권력(귀족 계급)에 의한 구조적인 균형과 명예에 대한 열정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p92)


 '프랑스 국민을 절제된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몽테스키외는 "권력 균형과 명예의 원칙"을 제시했다. 다음으로 권력 균형과 명예의 원칙이 가능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귀족정의 요소가 보존되고 강화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서히 힘을 얻고 있는 상업정신에 대한 인식을 위의 원칙들과 결합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가 바라보았던 곳이 영국이었고, 프랑스가 영국과 같은 "상업적 공화국"이 되기를 바랐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연관되어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형태를 취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귀족이라는 중간 계급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다.'(p93)


2.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 ~ 1859)


 '<미국의 민주주의> 1권과 <미국의 민주주의>2권을 통해 토크빌은 민주주의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있으며, 공공정신에 대한 강조 및 정치적 제도와 선택을 결정짓는 이념과 습속에 대한 강조는 두 권의 책을 관통하는 지배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p137)


 '토크빌은 민주주의에 민주주의적 통치 능력을 부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필요했던 것이 자유였고, 이는 더 나아가 "정치적 자유"로 특화된다. 정치적 자유는 고립된 개인들을 연결시킴으로써 그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부과한다. "평등이 만들어낸 악덕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한 가지 치유책밖에 없다. 그것은 정치적 자유다.".'(p154)


 '프랑스는 비록 혁명을 통해 절대왕정을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중앙집권화라는 거대한 권력에 의존함으로써 민주주의적 평등화가 만들어내는 전제주의로 귀결된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코뮌으로 구성된 지방분권적 정치 구조를 통해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막고 있다. 특히 자유로운 인민의 힘이 위치하는 곳은 바로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코뮌이다.'(p157)


저자가 추천하는 몽테스키외와 토크빌 관련 추천 도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책의 출판년도가 2006년이기에 절판된 책도 있고, 재출간책도 있기에 출판사는 다소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PS. 지식인 마을 시리즈를 읽고 여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만, 입문서 리뷰를 쓰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다른 방식으로 정리해보던 중 섣부르게 요약하는 것보다 저자가 정리한 내용 소개와 추천 도서를 함께 정리하는 편이 보다 적절한 방식이라 생각되어 이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사회 계약론과 민주주의에 관심있는 이웃분들은 아래의책들로 즐거운 독서를 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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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7-07-29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어제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의 번외편(?) 그동안 티비에 미방영됐던 부분을 보는데,
그들이 더 좋아졌어요.
윤이상, 젠트리피케이션, 냉동인간 얘기 등을 하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발언인듯 하면서도 정치적인 접근을 놓치지 않더군요.
정말로 좋아서 즐기는 수다로 날밤 새는 게 보였달까요.

위에 언급하신 책들은 하나도 읽은게 없지만,
어제 봤던 저 프로그램이 생각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겨울호랑이 2017-07-29 09:51   좋아요 0 | URL
저는 ‘알.쓸.신.잡‘을 본 적 없지만, 여러 이웃분들께서 많이 소개해 주셔서 간접적으로 인기를 느꼈습니다. 번외편을 했다고 하니 이제 프로그램이 종영된 것 같군요. 양철나무꾼님께서 많이 아쉬우셨듯 합니다. 저도 책 소개를 일단 했지만, 저 역시 다 읽지는 못해서... ㅜㅜ 일단 목록을 만들어 놓고 차차 이웃분들과 함께 성장하는데 뜻을 두려고 합니다.^^:
 

A. 도입 : 호모 벨리쿠스(Homo Bellicus 전쟁하는 인간) 


'트로스가 그의 무릎을 잡고 애원하려 했으나 그는 칼로 그의 간을 찔렀다. 그러자 간이 쏟아져나오며 거기서 검은 피가 흘러내려 그의 품안에 가득 고였다. 혼절한 그의 두 눈을 어둠이 덮었다. 그러자 아킬레우스는 물리오스에게 다가가 창으로 귀를 찔렀고 그러자 즉시 청동 창끝이 다른 귀로 뚫고 나왔다. 그 다음 그가 아게노르의 아들 에케클로스의 머리 한복판을 자루 달린 칼로 내리치니 칼은 온통 피에 젖어 뜨거워졌고 그의 두 눈은 검은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붙잡았다... 그래서 그가 죽음을 눈앞에 보며 팔을 늘어뜨리고 서 있었을 때 아킬레우스가 칼로 목을 쳐 그의 머리를 투구와 함께 멀리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척추에서 골수가 솟아나오며 그는 땅 위에 길게 뻗었다.' - 호메로스 Homeros, <일리아스 Ilias> 제20권 468 ~ 483 -


 <일리아스>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오래전부터 인류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쟁의 실상이 어떻게 개인에게 인식되는가는 또다른 문제라는 사실에 저자는 주목한다.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극한의 경험 The Ultimate Experience>에서 근대인(近代人)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 변화를 다루고 있다. 요약하자면, 전쟁에 대한 인식은 근대와 현대로 이행되는 동안 '데카르트(Rene Descarte, 1596 ~ 1650)의 이분법(Dualism)'과 '낭만주의(Romanticism)'를 통해 극적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극한의 경험>의 내용을 따라가보자.


 G. 전쟁, 정신이 지배한다 : 1450 ~ 1740년


 근대 초기 전투에 참여한 이들은 이전 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대한 극복이 선결과제였다. 이에 지휘관들은 개별 전투원들의 어려움을 감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분법(二分法)'을 적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투원들은 '정신의 고양'을 통해 전투력을 극대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정신(精神)'의 고양은 조직(공동체)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근대 초기 전쟁에 대한 인식은 근대 후기에 들어 <인간 기계론>으로 대표되는 '유물론(唯物論)'의 등장으로 바뀌게 된다.


 '근대 초기 전투원들은 전쟁이 무언가 깊은 진실을 밝혀준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인 전쟁 경험을 통해 무언가 특별한 지식과 권위를 획득했다고 주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문화적 모형과 자원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많은 수도승이 겪는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육체적 고통을 겪었고, 많은 판사가 듣는 것보다 더 심한 고문 비명을 들었으며, 많은 해부학자가 보는 것보다 더 자주 인간의 내장을 보았기 때문이다.'(p70)


 '전쟁을 각각 집단적 수단과 개인적 수단, 명예로운 삶의 길로 그리는 경험담 사이의 갈등은 근대 초기에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관한 주요 갈등이었다...하지만,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고 국가가 발흥하며 집단적 수단으로의 전쟁 경험담이 우위를 차재했다. 모든 군인이 집단적 이익을 개인적 이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상식이 되었다.'(p203)


 '세상의 확실한 토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데카르트는 점차 세상 전체를 의심하게 되었고, 결국 확실한 것은 사고 자체밖에 없었다. 데카르트는 자아를 사고와 동일시했다. 그는 영혼과 마음, 육체라는 삼위일체식 구분을 포기하고, 육체와 정신이라는 명쾌한 이분법을 채택했다. 육체는 예전에 마음이 담당한 기능의 전부와 영혼이 담당한 기능 일부를 흡수했고, 자율적인 기계로 이해되었다.'(p166)


A. 전쟁, 육체를 깨우다 : 1740 ~ 1865년


 <인간 기계론>에서 정신(精神)보다 육체(肉體), 이성(理性)보다 감성(感性)이 우선시 된다. 이처럼 인간의 육체와 감성이 강조되면서, 집단보다는 개인(個人)의 존재가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 육체적 경험이 진실이 되었고, 경험에 대한 인간의 감성이 이성을 대신한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쥘리앵 오프루아 드 라메트리 Julien Offroy de La Mettries는 1747년에 한층 대담한 논문을 발표했다.이 논문을 출간한 것이 바로 근대 유물론의 선언이 된 <인간 기계론 L'Home-machine>이다. 그는 데카르트의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파기하는 동시에 정신과 영혼의 존재도 부인했으며, 생각과 느낌이 물질의 작용이라고 주장했다.(p212)...육체적 경험과 계시에 관련해 라메트리는 계시의 진실을 육체적 경험의 진실과 반드시 일치해야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육체적 경험이 계시에 가깝다고 결론지었다.(p214)... <인간 기계론>의 두 번째 신조는 적절한 경험적 연구로 얻은 결론은 명확하고 단순하다는 것이다.'(p215)


  '감수성 숭배는 추상적 철학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실제 일상 삶에서 따를 수 있는 두 가지 가르침이 특히 중요했다. 첫 번째 가르침은 사소한 감각과 감정에도 가능한 깊은 관심을 갖고, 감각과 감정의 영향에 마음을 활짝 열라는 것이었다.(p228)... 감수성 숭배가 전한 두 번째 현실적인 가르침은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경험에 마음을 활짝 열 뿐만 아니라 감각과 감정의 범위를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감각주의 철학자들은 더 많이 느낄수록 그만큼 더 완전하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감수성 * 경험 = 지식 '(p229)  

 

 위에 있는 감수성 공식을 우리는 후에 <호모 데우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여기서, 개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극한의 경험>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는 <전쟁과 평화> 중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은 다른 구절을 통해 살펴보자. 마치, 신병교육대에서 하는 '분열'을 연상시키는 이 대목에서 개인 전투원의 존재는 중요하게 취급받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그의 온 정신은 상관 옆을 가장 멋지게 지나가는 것에만 쏠려 있는 것 같았고, 그것을 잘 실행하고 있다고 느끼는 듯 몹시 행복해 보였다. "왼발... 왼발... 왼발..."하고 걸음마다 속으로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배낭과 총의 무게에 짓눌린 제각각 엄중한 얼굴을 한 병사들의 벽이 잇달아 이 박자에 맞춰 움직여 갔다. 이 수백 명의 병사도 각기 마음속으로 한 걸음마다 "왼발... 왼발... 왼발..."하고 복창하고 있는 것 같았다.'(p356) -레프 톨스토이  Lev Tolstoy, 1828 ~ 1910) <전쟁과 평화 Война и мир>- 


[사진] 국군의 날 분열 장면(출처 : 연합뉴스)


 '감수성 문화는 군사 영역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하고 오래 지속된 영향이 일반 사병과 관련된 것이다. 감수성이 감각과 감정의 위상을 크게 향상시키며 사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긴 것처럼, 군사 영역에서의 감수성은 일반 사병의 위상을 크게 향상시키며 일반 사병이 군대의 사고 과정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p256)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Phalanx) 이후 집단적 전투대형은 유럽 보병들의 주요 전술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비록 집단간의 전투라는 전쟁 양상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시대는 분명 과거와는 달리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변화를 읽는 자가 등장하고 승기를 잡게 된다.


 '18세기 말이 되자 일반 사병의 시대가 동트며, 가장 위대한 근대 군사 개혁 하나가 등장했다. 나폴레옹 시대에 강압 대신 포섭이 병사들을 훈련하고 운용하는 주된 수단이 되었고, 이로써 군대가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나고 새로운 에너지원의 빗장이 풀렸다...나폴레옹 군대는 군인들의 지식과 지략이라는 바로 그 에너지를 포섭해 군대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당연히 나폴레옹 군대는 병사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데 낭비되는 힘을 훨씬 더 줄였고, 병사들의 주도권과 에너지를 훨씬 더 많이 활용했다.'(p264)


L. 육체의 눈으로 전쟁을 보다 : 1740 ~ 1865년


 승자의 이름은 '나폴레옹 (Napoleon Bonaparte, 1769 ~ 1821)'이고, 이 시대의 흐름은 '낭만주의(Romanticism)'로 정리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낭만주의의 본질은 무엇일까. 

 

'낭만주의 운동의 본질은 인간의 개성을 사회적 규약과 도덕성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목표에 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족쇄는 바람직한 욕구의 대상이 될 만한 활동을 훼방하는 한낱 쓸모없는 방해물이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무법적인 새로운 자아를 자극하고 고무함으로써 사회적 협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예들은 무정부주의나 전제정치 가운데 하나를 대안으로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p869) -버트런트 러셀 (Bertrand Russell, 1872 ~ 1970), <서양 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근대 초기에 용기는 육체와 정신의 단순한 역학 관계를 내포했다. 당시 용기는 순전히 정신적인 자질이었고, 정신의 힘이었다. 겁먹은 육체가 보내는 메세지를 극복하고 육체가 정신의 의지에 완전히 복종해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정신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18세기에 용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 감각주의적 해석은 용기를 정신보다 신경계에 속하는 육체적 힘으로 이해했다. 강한 신경계는 튼튼한 타악기처럼 극심한 감각을 전달해도 부서지지 않지만, 허약한 신경계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신은 인간의 능력을 기껏해야 제한적으로 통제할 뿐이라는 것이다.'(p314)


 <극한의 경험>에서는 근대(近代)를 배경으로 전쟁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개인 회고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 현대(現代)에서 전쟁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지지만, <극한의 경험>에서 현대전은 에필로그로 간략하게 언급될 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채워본다.


M. 너를 깨우친 것들, 1865 ~ 2000년


 <극한의 경험>을 통해 베트남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 내에서 '반전(反戰)'여론은 높았고, 이러한 여론의 흐름에 대해 미국 정부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병사 개인의 감성을 무시할 수 없는 근대 이후의 서구 전통 때문이 아니었을까. 때문에, 미국군은 지상군 투입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그와 달리, 우리 역사에서는 서구의 낭만주의와 같은 전통(개인의 감정을 고려하는 전통)이 없었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베트남 파병에 대한 제약은 존재하지 않았고, '한국전쟁에 대한 보은(報恩)'이라는 감정만이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로 인해 많은 군인들이 베트남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베트남 전쟁은 이제 우리의 전쟁이 되버렸다. 이렇게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전장(戰場)이었던 베트남과 베트남인들 뿐 아니라,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도 피해자가 되버린 비극(悲劇)으로 귀결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진] 베트남 반전 운동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insh635&logNo=10175407401&parentCategoryNo=&categoryNo=28&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사진] 베트남 파병 한국군(출처 : 한겨레21)


 이와 같은 내용으로 전쟁에 대한 근대인의 인식 변화를 그린<극한의 경험>은 저자인 유발 하라리가 2008년 저술한 책이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를 최근 집필한 그가 <극한의 경험>을 수정보완한다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 '슈퍼 솔져 Super Soldier'의 도래를 예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사진] 슈퍼 솔져 (출처 : 다나와)


덧붙이는 말 A. 늦었지만, 책을 선물해 주신 알라딘 이웃분 ******님께 감사드립니다.^^: 


베트남 전을 다룬 책 중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이 생각나 뒤늦게 올립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된 후 '실로이옹 병'에 걸려 베트남인들을 보면 계속 '실로이옹(용서하세요)'을 연발하는 등장인물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미안함을 느끼게 했을까. 그리고, 누가 그에게 미안함을 느끼도록 만들었는가. 책을 읽는 동안 제게 들었던 물음이었습니다.


'허만호의 병명은 자신이 말한 대로 ‘비정형충동조절질환’이라는 것이었는데, 병동 안에서는 ‘실로이옹 병’으로 통했다. ‘실로이옹’이란 월남어로 ‘용서하세요’란 뜻이었다. 그가 왜 그런 병에 걸렸다가, 또 무슨 계기로 호전됐는지는 위생병도 모른다고 했다. 단지 그의 병명이 ‘실로이옹 병’으로 통하게 된 것은 잠꼬대 때문이라는 것만 안다고 했다. 밤이고 낮이고 잠만 들었다 하면, 허만호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실로이옹’이라고 잠꼬대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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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7-27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물 받았기에 읽어보셨군요. ^^

겨울호랑이 2017-07-27 13:19   좋아요 2 | URL
^^: 좋은 이웃분들 덕분에 하라리와의 만남은 선물로 맺어지게 되었네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7-07-27 13:26   좋아요 2 | URL
미국과 달리 우리에게는 낭만주의 문화가 없었기에 베트남 파병에 국민 저항이 약했다는 해석이 신선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7-27 13:29   좋아요 1 | URL
^^: 그냥 그렇지 않았을까 짧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는 짧은 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지만 문화적 전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7-07-27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7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7-07-27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발 하라리는 고대 전쟁에서 ‘개인의 감정‘이 대체로 무시됐다는 점을 너무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숱한 고대의 전쟁 기록들이 ‘개인‘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지휘관들 중심으로 서술된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극한 상황‘에 다다른 경우에 개개인의 감정이 완전히 무시될 순 없었겠죠. ‘조직‘보다 ‘개인‘이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전투병들은 (심지어 용병들 까지도) 옛날 옛적에도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으로 도망친 경우도 부지기수로 많았으니까요.『플루타르코스 영웅전』만 보더라도 숱한 영웅들이 무지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전쟁터‘에서 ‘조직‘을 배신하고, 지휘관을 배신하고, 전우들을 배신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빤히 바라보는 앞에서‘ 도망친 병사들도 셀 수 없이 많이 나오거든요.『전쟁과 평화』의 후반부에 아주 인상적으로 그려진 ‘나폴레옹 군대 패잔병들의 대규모 탈영 내지는 탈주 러시‘의 경우에도, 그 탈주병들이 단순히 ‘고대의 전투병‘보다 ‘개인 감정‘을 훨씬 더 중시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혹한과 배고픔‘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나부터 살고 보자‘는 ‘생존 본능‘이 작동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결국 고대 전쟁에서의 ‘탈주병의 모습‘과 뭐가 다른 게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27 19:04   좋아요 2 | URL
^^: <극한의 경험>에서 유발 하라리가 근대 초기와 근대 후기의 사상 변화를 구분하면서 제시한 근거들이 대체로 개인의 회고록 이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개인의 감정이 글에 나타나 있는가 없는가를 통해 사상의 변화를 통해 유발 하라리가 묘사하고자 한 것은 전투에 참여한 개인의 감정보다는 ‘사회의 전쟁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oren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을 공포 앞에 선 단독자‘의 처지에 놓인다면, 아마도 정면으로 그것을 맞이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벌써 20여년 전입니다만, 사격 훈련 시 교관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너희가 지금은 조준 사격을 하지만, 막상 전쟁 나봐라. 다들 머리를 참호 안에 처박고 총만 들고 허공에 쏠거면서... ˝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모든 병사들은 이런 공포를 가지고 있고, 지휘관들은 이들을 억지로 끌어내서 죽음과 직면하게끔 한 것이 전장의 실상이라 생각됩니다...이런 참혹한 상황에서 전쟁 심리를 분석하는 것도 어찌보면 참 냉정한 작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oren님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27 22:25   좋아요 1 | URL
<극한의 체험> 읽기 전까지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요약 전달로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

야전공병 2017-08-01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10년 군번입니다. 참호에 머리를 박던 자들이, 옆 전우의 죽음을 보고 분개하여 달려들것이라는 훈련소 교관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겨울호랑이 2017-08-01 22:42   좋아요 0 | URL
네.. 전장이라는 공간은 공포, 분노, 절망, 슬픔이라는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는 극한의 공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