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도입 : 호모 벨리쿠스(Homo Bellicus 전쟁하는 인간) 


'트로스가 그의 무릎을 잡고 애원하려 했으나 그는 칼로 그의 간을 찔렀다. 그러자 간이 쏟아져나오며 거기서 검은 피가 흘러내려 그의 품안에 가득 고였다. 혼절한 그의 두 눈을 어둠이 덮었다. 그러자 아킬레우스는 물리오스에게 다가가 창으로 귀를 찔렀고 그러자 즉시 청동 창끝이 다른 귀로 뚫고 나왔다. 그 다음 그가 아게노르의 아들 에케클로스의 머리 한복판을 자루 달린 칼로 내리치니 칼은 온통 피에 젖어 뜨거워졌고 그의 두 눈은 검은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붙잡았다... 그래서 그가 죽음을 눈앞에 보며 팔을 늘어뜨리고 서 있었을 때 아킬레우스가 칼로 목을 쳐 그의 머리를 투구와 함께 멀리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척추에서 골수가 솟아나오며 그는 땅 위에 길게 뻗었다.' - 호메로스 Homeros, <일리아스 Ilias> 제20권 468 ~ 483 -


 <일리아스>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오래전부터 인류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쟁의 실상이 어떻게 개인에게 인식되는가는 또다른 문제라는 사실에 저자는 주목한다.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극한의 경험 The Ultimate Experience>에서 근대인(近代人)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 변화를 다루고 있다. 요약하자면, 전쟁에 대한 인식은 근대와 현대로 이행되는 동안 '데카르트(Rene Descarte, 1596 ~ 1650)의 이분법(Dualism)'과 '낭만주의(Romanticism)'를 통해 극적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극한의 경험>의 내용을 따라가보자.


 G. 전쟁, 정신이 지배한다 : 1450 ~ 1740년


 근대 초기 전투에 참여한 이들은 이전 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대한 극복이 선결과제였다. 이에 지휘관들은 개별 전투원들의 어려움을 감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분법(二分法)'을 적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투원들은 '정신의 고양'을 통해 전투력을 극대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정신(精神)'의 고양은 조직(공동체)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근대 초기 전쟁에 대한 인식은 근대 후기에 들어 <인간 기계론>으로 대표되는 '유물론(唯物論)'의 등장으로 바뀌게 된다.


 '근대 초기 전투원들은 전쟁이 무언가 깊은 진실을 밝혀준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인 전쟁 경험을 통해 무언가 특별한 지식과 권위를 획득했다고 주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문화적 모형과 자원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많은 수도승이 겪는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육체적 고통을 겪었고, 많은 판사가 듣는 것보다 더 심한 고문 비명을 들었으며, 많은 해부학자가 보는 것보다 더 자주 인간의 내장을 보았기 때문이다.'(p70)


 '전쟁을 각각 집단적 수단과 개인적 수단, 명예로운 삶의 길로 그리는 경험담 사이의 갈등은 근대 초기에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관한 주요 갈등이었다...하지만,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고 국가가 발흥하며 집단적 수단으로의 전쟁 경험담이 우위를 차재했다. 모든 군인이 집단적 이익을 개인적 이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상식이 되었다.'(p203)


 '세상의 확실한 토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데카르트는 점차 세상 전체를 의심하게 되었고, 결국 확실한 것은 사고 자체밖에 없었다. 데카르트는 자아를 사고와 동일시했다. 그는 영혼과 마음, 육체라는 삼위일체식 구분을 포기하고, 육체와 정신이라는 명쾌한 이분법을 채택했다. 육체는 예전에 마음이 담당한 기능의 전부와 영혼이 담당한 기능 일부를 흡수했고, 자율적인 기계로 이해되었다.'(p166)


A. 전쟁, 육체를 깨우다 : 1740 ~ 1865년


 <인간 기계론>에서 정신(精神)보다 육체(肉體), 이성(理性)보다 감성(感性)이 우선시 된다. 이처럼 인간의 육체와 감성이 강조되면서, 집단보다는 개인(個人)의 존재가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 육체적 경험이 진실이 되었고, 경험에 대한 인간의 감성이 이성을 대신한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쥘리앵 오프루아 드 라메트리 Julien Offroy de La Mettries는 1747년에 한층 대담한 논문을 발표했다.이 논문을 출간한 것이 바로 근대 유물론의 선언이 된 <인간 기계론 L'Home-machine>이다. 그는 데카르트의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파기하는 동시에 정신과 영혼의 존재도 부인했으며, 생각과 느낌이 물질의 작용이라고 주장했다.(p212)...육체적 경험과 계시에 관련해 라메트리는 계시의 진실을 육체적 경험의 진실과 반드시 일치해야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육체적 경험이 계시에 가깝다고 결론지었다.(p214)... <인간 기계론>의 두 번째 신조는 적절한 경험적 연구로 얻은 결론은 명확하고 단순하다는 것이다.'(p215)


  '감수성 숭배는 추상적 철학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실제 일상 삶에서 따를 수 있는 두 가지 가르침이 특히 중요했다. 첫 번째 가르침은 사소한 감각과 감정에도 가능한 깊은 관심을 갖고, 감각과 감정의 영향에 마음을 활짝 열라는 것이었다.(p228)... 감수성 숭배가 전한 두 번째 현실적인 가르침은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경험에 마음을 활짝 열 뿐만 아니라 감각과 감정의 범위를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감각주의 철학자들은 더 많이 느낄수록 그만큼 더 완전하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감수성 * 경험 = 지식 '(p229)  

 

 위에 있는 감수성 공식을 우리는 후에 <호모 데우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여기서, 개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극한의 경험>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는 <전쟁과 평화> 중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은 다른 구절을 통해 살펴보자. 마치, 신병교육대에서 하는 '분열'을 연상시키는 이 대목에서 개인 전투원의 존재는 중요하게 취급받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그의 온 정신은 상관 옆을 가장 멋지게 지나가는 것에만 쏠려 있는 것 같았고, 그것을 잘 실행하고 있다고 느끼는 듯 몹시 행복해 보였다. "왼발... 왼발... 왼발..."하고 걸음마다 속으로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배낭과 총의 무게에 짓눌린 제각각 엄중한 얼굴을 한 병사들의 벽이 잇달아 이 박자에 맞춰 움직여 갔다. 이 수백 명의 병사도 각기 마음속으로 한 걸음마다 "왼발... 왼발... 왼발..."하고 복창하고 있는 것 같았다.'(p356) -레프 톨스토이  Lev Tolstoy, 1828 ~ 1910) <전쟁과 평화 Война и мир>- 


[사진] 국군의 날 분열 장면(출처 : 연합뉴스)


 '감수성 문화는 군사 영역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하고 오래 지속된 영향이 일반 사병과 관련된 것이다. 감수성이 감각과 감정의 위상을 크게 향상시키며 사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긴 것처럼, 군사 영역에서의 감수성은 일반 사병의 위상을 크게 향상시키며 일반 사병이 군대의 사고 과정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p256)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Phalanx) 이후 집단적 전투대형은 유럽 보병들의 주요 전술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비록 집단간의 전투라는 전쟁 양상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시대는 분명 과거와는 달리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변화를 읽는 자가 등장하고 승기를 잡게 된다.


 '18세기 말이 되자 일반 사병의 시대가 동트며, 가장 위대한 근대 군사 개혁 하나가 등장했다. 나폴레옹 시대에 강압 대신 포섭이 병사들을 훈련하고 운용하는 주된 수단이 되었고, 이로써 군대가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나고 새로운 에너지원의 빗장이 풀렸다...나폴레옹 군대는 군인들의 지식과 지략이라는 바로 그 에너지를 포섭해 군대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당연히 나폴레옹 군대는 병사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데 낭비되는 힘을 훨씬 더 줄였고, 병사들의 주도권과 에너지를 훨씬 더 많이 활용했다.'(p264)


L. 육체의 눈으로 전쟁을 보다 : 1740 ~ 1865년


 승자의 이름은 '나폴레옹 (Napoleon Bonaparte, 1769 ~ 1821)'이고, 이 시대의 흐름은 '낭만주의(Romanticism)'로 정리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낭만주의의 본질은 무엇일까. 

 

'낭만주의 운동의 본질은 인간의 개성을 사회적 규약과 도덕성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목표에 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족쇄는 바람직한 욕구의 대상이 될 만한 활동을 훼방하는 한낱 쓸모없는 방해물이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무법적인 새로운 자아를 자극하고 고무함으로써 사회적 협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예들은 무정부주의나 전제정치 가운데 하나를 대안으로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p869) -버트런트 러셀 (Bertrand Russell, 1872 ~ 1970), <서양 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근대 초기에 용기는 육체와 정신의 단순한 역학 관계를 내포했다. 당시 용기는 순전히 정신적인 자질이었고, 정신의 힘이었다. 겁먹은 육체가 보내는 메세지를 극복하고 육체가 정신의 의지에 완전히 복종해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정신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18세기에 용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 감각주의적 해석은 용기를 정신보다 신경계에 속하는 육체적 힘으로 이해했다. 강한 신경계는 튼튼한 타악기처럼 극심한 감각을 전달해도 부서지지 않지만, 허약한 신경계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신은 인간의 능력을 기껏해야 제한적으로 통제할 뿐이라는 것이다.'(p314)


 <극한의 경험>에서는 근대(近代)를 배경으로 전쟁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개인 회고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 현대(現代)에서 전쟁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지지만, <극한의 경험>에서 현대전은 에필로그로 간략하게 언급될 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채워본다.


M. 너를 깨우친 것들, 1865 ~ 2000년


 <극한의 경험>을 통해 베트남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 내에서 '반전(反戰)'여론은 높았고, 이러한 여론의 흐름에 대해 미국 정부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병사 개인의 감성을 무시할 수 없는 근대 이후의 서구 전통 때문이 아니었을까. 때문에, 미국군은 지상군 투입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그와 달리, 우리 역사에서는 서구의 낭만주의와 같은 전통(개인의 감정을 고려하는 전통)이 없었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베트남 파병에 대한 제약은 존재하지 않았고, '한국전쟁에 대한 보은(報恩)'이라는 감정만이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로 인해 많은 군인들이 베트남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베트남 전쟁은 이제 우리의 전쟁이 되버렸다. 이렇게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전장(戰場)이었던 베트남과 베트남인들 뿐 아니라,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도 피해자가 되버린 비극(悲劇)으로 귀결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진] 베트남 반전 운동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insh635&logNo=10175407401&parentCategoryNo=&categoryNo=28&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사진] 베트남 파병 한국군(출처 : 한겨레21)


 이와 같은 내용으로 전쟁에 대한 근대인의 인식 변화를 그린<극한의 경험>은 저자인 유발 하라리가 2008년 저술한 책이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를 최근 집필한 그가 <극한의 경험>을 수정보완한다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 '슈퍼 솔져 Super Soldier'의 도래를 예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사진] 슈퍼 솔져 (출처 : 다나와)


덧붙이는 말 A. 늦었지만, 책을 선물해 주신 알라딘 이웃분 ******님께 감사드립니다.^^: 


베트남 전을 다룬 책 중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이 생각나 뒤늦게 올립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된 후 '실로이옹 병'에 걸려 베트남인들을 보면 계속 '실로이옹(용서하세요)'을 연발하는 등장인물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미안함을 느끼게 했을까. 그리고, 누가 그에게 미안함을 느끼도록 만들었는가. 책을 읽는 동안 제게 들었던 물음이었습니다.


'허만호의 병명은 자신이 말한 대로 ‘비정형충동조절질환’이라는 것이었는데, 병동 안에서는 ‘실로이옹 병’으로 통했다. ‘실로이옹’이란 월남어로 ‘용서하세요’란 뜻이었다. 그가 왜 그런 병에 걸렸다가, 또 무슨 계기로 호전됐는지는 위생병도 모른다고 했다. 단지 그의 병명이 ‘실로이옹 병’으로 통하게 된 것은 잠꼬대 때문이라는 것만 안다고 했다. 밤이고 낮이고 잠만 들었다 하면, 허만호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실로이옹’이라고 잠꼬대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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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7-27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물 받았기에 읽어보셨군요. ^^

겨울호랑이 2017-07-27 13:19   좋아요 2 | URL
^^: 좋은 이웃분들 덕분에 하라리와의 만남은 선물로 맺어지게 되었네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7-07-27 13:26   좋아요 2 | URL
미국과 달리 우리에게는 낭만주의 문화가 없었기에 베트남 파병에 국민 저항이 약했다는 해석이 신선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7-27 13:29   좋아요 1 | URL
^^: 그냥 그렇지 않았을까 짧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는 짧은 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지만 문화적 전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7-07-27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7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7-07-27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발 하라리는 고대 전쟁에서 ‘개인의 감정‘이 대체로 무시됐다는 점을 너무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숱한 고대의 전쟁 기록들이 ‘개인‘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지휘관들 중심으로 서술된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극한 상황‘에 다다른 경우에 개개인의 감정이 완전히 무시될 순 없었겠죠. ‘조직‘보다 ‘개인‘이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전투병들은 (심지어 용병들 까지도) 옛날 옛적에도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으로 도망친 경우도 부지기수로 많았으니까요.『플루타르코스 영웅전』만 보더라도 숱한 영웅들이 무지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전쟁터‘에서 ‘조직‘을 배신하고, 지휘관을 배신하고, 전우들을 배신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빤히 바라보는 앞에서‘ 도망친 병사들도 셀 수 없이 많이 나오거든요.『전쟁과 평화』의 후반부에 아주 인상적으로 그려진 ‘나폴레옹 군대 패잔병들의 대규모 탈영 내지는 탈주 러시‘의 경우에도, 그 탈주병들이 단순히 ‘고대의 전투병‘보다 ‘개인 감정‘을 훨씬 더 중시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혹한과 배고픔‘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나부터 살고 보자‘는 ‘생존 본능‘이 작동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결국 고대 전쟁에서의 ‘탈주병의 모습‘과 뭐가 다른 게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27 19:04   좋아요 2 | URL
^^: <극한의 경험>에서 유발 하라리가 근대 초기와 근대 후기의 사상 변화를 구분하면서 제시한 근거들이 대체로 개인의 회고록 이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개인의 감정이 글에 나타나 있는가 없는가를 통해 사상의 변화를 통해 유발 하라리가 묘사하고자 한 것은 전투에 참여한 개인의 감정보다는 ‘사회의 전쟁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oren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을 공포 앞에 선 단독자‘의 처지에 놓인다면, 아마도 정면으로 그것을 맞이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벌써 20여년 전입니다만, 사격 훈련 시 교관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너희가 지금은 조준 사격을 하지만, 막상 전쟁 나봐라. 다들 머리를 참호 안에 처박고 총만 들고 허공에 쏠거면서... ˝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모든 병사들은 이런 공포를 가지고 있고, 지휘관들은 이들을 억지로 끌어내서 죽음과 직면하게끔 한 것이 전장의 실상이라 생각됩니다...이런 참혹한 상황에서 전쟁 심리를 분석하는 것도 어찌보면 참 냉정한 작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oren님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27 22:25   좋아요 1 | URL
<극한의 체험> 읽기 전까지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요약 전달로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

야전공병 2017-08-01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10년 군번입니다. 참호에 머리를 박던 자들이, 옆 전우의 죽음을 보고 분개하여 달려들것이라는 훈련소 교관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겨울호랑이 2017-08-01 22:42   좋아요 0 | URL
네.. 전장이라는 공간은 공포, 분노, 절망, 슬픔이라는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는 극한의 공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