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유 관념이란 감각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마음에 명석하고도 판명하게 떠오르는 관념이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에 따르면 대표적인 본유관념이 '신(神)의 관념'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관념을 우리에게 넣어 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객관적 세계의 존재, 즉 외계 물체의 존재는 이 '신의 성실성(veracitas dei)을 매개로 하여 증명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생각이다.' (출처 : 철학 사전)


 대륙의 합리론(合理論)과 영국의 경험론(經驗論)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부분 중 하나가 '본유 관념(innate idea)'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로크의 <인간지성론>을 중심으로 '본유관념'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고대 그리스의 본유관념


 '본유 관념'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올라갈 수 있다. 플라톤(Platon, BC 427 ~ BC 347)의 <메논 Menon>에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BC 399)가 노예 소년에게 질문을 통해 기하학 증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플라톤은 이를 통해 진리가 인간 내면에 있으며 '상기(想起)'를 통해 인식할 수 있다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메논>에 나타난 '본유 관념'을 확인해 보자.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아무도 가르치지 않고 단지 질문할 뿐인데, 그 스스로 자신으로부터 인식을 되찾음으로써 인식할 수 있지 않겠나?

메논 :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런데 그가 자신 속에서 인식을 되찾는 것이 상기하는게 아니겠나?

메논 : 물론이죠.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이 아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인식은 그가 언젠가 획득했던 것이거나, 아니면 언제나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겠나?

메논 :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래서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또한 언제나 알았을 걸세. 하지만 언젠가 획득했다면, 그는 적어도 이승에서 획득하지는 않았을 걸세. 아니면 이 아이에게 누가 기하학하는 걸 가르친 적이 있나?' (85 d ~ e) <메논 Menon> 


2. 데카르트의 본유관념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기하학)이 절대적 진리로서 본유 관념의 자리를 차지했다면, 근대 초기 유럽에서는 '신(神)'의 개념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본유 관념을 통해 '신 존재'를 증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데카르트는 '정신- 물질'의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한다. <성찰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tia, in quibus Dei exstentia, & animae hamanae a corpore distinctio, demonstrantur> 중 '본유 관념'에 해당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런 관념 가운데 어떤 것은 본유적(innatae)이고, 어떤 것은 외래적(adventitiae)이며, 다른 나머지는 내 자신이 만들어 낸(factae) 것으로 생각된다.(p61)... 내 속에 있는 관념은 상과 같은 것이고, 게다가 이것은 자신이 기인하는 사물의 완전성을 잃어버리기는 쉬우나, 이 사물보다 더 큰 것 혹은 더 완전한 것을 가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무엇이 귀결될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그 표상적 실재성이 대단히 커서 형상적으로 혹은 우월적으로 내 안에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나 자신이 그 관념의 원인이 될 수 없음이 확실하다면, 이 세상에는 나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관념의 원인이 되는 다른 사물도 현존하고 있음이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관념 가운데는 나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 관념이 있는데, 이때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또한 다른 관념들, 즉 신(神), 물질적이고 생명이 없는 것, 천사, 짐승, 마지막으로 나와 유사한 다른 인간을 표현하는 관념이 있다.'(p67) -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中 -

 

3. 로크의 경험론


 이처럼 '본유 관념'에 기초한 데카르트의 사상이 대륙 합리론의 바탕이 되었다면, 이와는 입장을 달리하는 영국 경험론의 입장은 무엇일까. <인간지성론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는 이전 사상에서 인정되는 '본유 관념'을 비판하고, '관찰'과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메논>에서 노예 소년을 증명으로 이끈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듯한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렇다면 아이들이 생각하고 알고 동의할 수 있을 때 자연이 이들에게 심어준 개념들을 (만약 그런 개념들이 있다고 한다면) 모를 수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가? 아이들이 외부사물들에서 얻은 인상들은 지각하면서도 자연이 몸소 수고를 기울여 마음속에 새겨놓은 글자들을 모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외부에서 얻은 개념들을 받아들이고 동의하면서도 자신들의 존재의 원리들 안에 짜넣어지고 지워질 수 없는 글자들로 심어져서 그들이 장차 획득하게 될 모든 지식과 그들이 행하게 될 미래의 모든 추론의 토대이자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상정되는 개념들을 모를 수 있을까?...따라서 설령 더욱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관념들과 이 관념들을 나타내는 이름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성인에게 제시되어 늘 지체없이 동의되는 몇몇 일반적인 명제들이 있다고 해도, 이 명제들은 다른 것들은 알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으므로 지성을 갖춘 사람들의 보편적인 동의를 얻을 수 없으며 따라서 결코 본유적이라고 상정될 수 없다.'(p88)


 '내가 알고 있는 기존의 학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본유 관념들, 즉 그들이 바로 맨 처음 존재하게 될 때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본래적인 글자들(original characters)을 갖고 있다.... 나는 내가 지성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관념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관념들은 어떤 경로로 점차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줄 때, 내가 앞서 제1권에서 말했던 바(본유관념에 대한 논박)가 훨씬 더 쉽게 받아들여지리라고 본다. 나는 이를 위해 각자의 관찰과 경험에 호소할 것이다.'(p149)


 <인간지성론>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바로 다음에 이어진다. 


 '이제 마음이 이른바 백지(white paper)라고 가정해보자. 이 백지에는 어떤 글자도 적혀 있지 않으며 어떤 관념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하여 이 백지에 어떤 글자나 관념이 있게 되는 것인가?... 마음은 어디에서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를 갖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나는 한 마디로 경험(experience)에서라고 대답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그 토대를 갖고 있다.'(p150)


 '백지'상태 의 인간은 '관찰'과 '경험'을 통해 여러 관념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로크는 <인간지성론>에서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본유 관념'을 인정하지 않는 경험론에 대한 당대의 비판과 현대의 비판을 다음에서 살펴보자.


3. 빈 서판에 대한 당대의 비판 :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1646 ~ 1716)는 그의 저서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에서 로크의 경험론을 비판하고 있다. 다소 복잡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간략하게 줄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신(神) 안에서 인간은 한계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를 인식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따라서 경험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가, 또는 우리가 자신의 고유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논쟁 문제로 말하자면, 우리가 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통찰한다하더라도, 우리도 또한 고유한 관념을, 즉 말하자면 작은 모사물이 아니라, 우리가 신 안에서 통찰하게 되는 것에 상응해야 할 우리 정신의 특성들 또는 변형들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은 필연적일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정신이 그의 현 상태 안에서 그들을 개별적으로 판명하게 고찰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다양하고 아주 작은 형태들과 운동들의 감각 외에는 다른 어떤 감각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정신은, 자신의 감각이 전적으로 아주 작은 형태들과 아주 작은 운동들에 대한 감각들로 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p24) < 형이상학 논고 Discours de Metaphysique> -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 - 中


4. 빈 서판에 대한 현대의 비판 : 스티븐 핑거


 그렇지만, 스콜라(Schola)철학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보다 설득적으로 경험주의 사상을 비판하고 있는 책은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1954 ~ )의 <빈 서판 The Blank Slate>이라 생각된다. <빈 서판> 머리말은 다음과 같은 말로 로크 사상의 의의와 책의 저술 목적을 설명한다.


 '로크가 겨냥한 공격 대상은 인간이 수학적 이상, 영원한 진리, 신의 관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하는 본유 관념 이론이었다... 로크는 정치의 현 상태에 대한 교조주의적 정당화에 반대했다. 자명한 진리로 강요되었던 교회의 권위와 신성 왕권이 대표적이었다... 로크의 빈 서판 개념은 또한 세습적인 왕권과 귀족 신분의 정당성의 토대를 침식시켰다... 지난 세기 동안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많은 분야에서 빈 서판 학설은 합의된 토대로서 작용했다.'(p30)


'인간 본성에 대한 이 이론, 즉 인간 본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모든 종교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이 포함되어 있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들이 각각의 종교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현대 지식 세계에서는 빈 서판이 세속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종교적 전통들이 결국에는 과학의 명백한 위협들을 참고 받아들였듯이,  우리의 가치관도 빈 서판의 종말을 이기고 꿋꿋이 살아남을 것이다.'(p28)


 스티븐 핑거는 <빈 서판>에서 경험주의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저자는 '본유 관념'을 극복한 경험주의의 모순을 '과학(科學)'적으로 증명하면서, '경험주의'는 '전체주의'라는 또다른 폐해(弊害)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빈 서판에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 빈 서판으로 인해 인간 본성에는 공백이 생겼고, 전체주의적 체제가 그 공백을 열심히 채웠지만 그것은 전체주의의 대학살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교육, 양육, 예술을 사회 개조를 위한 형식으로 악용하고 있다(p737)...좋고 나쁜 영향에 상관없이 빈 서판은 뇌 기능을 설명하는 경험적 가설이고 따라서 진위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마음, 뇌, 유전자, 진화를 연구하는 현대 과학은 빈 서판이 그릇된 이론임을 갈수록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p738)


 결국, '본유 관념'은 종교(宗敎), 사회 체제(社會體制) 등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사상(思想)으로 작용했으며, 이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등장한 경험주의 역시 지금은 또 다른 사상이 되어 우리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빈 서판>을 통해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科學)'을 통해 이러한 이념(理念 : 경험주의의 폐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사진] Monsanto에서 생산되는 GMO 제품( 출처 : Monsanto 홈페이지)


 생명공학을 활용한 유전자 변형 생물(GMO :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이 글로벌 대기업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우리는 지금 '과학'이라는 또다른 이름의 '본유 관념'이 지배하는 세계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많은 책들이 '과학'이라는 또다른 종교를 말하고 있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도구로서의 과학'이 아닌 '주체가 되버린 과학'을 많이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상황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페이퍼를 정리하다보니 대중과학서적을 보다 재밌게 읽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빈 서판>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양과학서이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단순하지 않다. 사실, <빈 서판> 뿐 아니라 우리가 접하고 있는 많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서적 중 많은 주제가 오랜 논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예를 들면, <이기적 유전자>, <코스모스>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오랜 철학적 과제를 안다는 것이 비록 쉽지 않지만, 이러한 논쟁의 역사와 내용을 안다면 보다 재미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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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학의 역할 vs 철학의 역할
    from Value Investing 2017-08-01 22:54 
    겨울호랑이 님께서 여러 책들에서 인용해 주신 문장들 때문에 '본유 관념'과 '빈 서판' 이론뿐만 아니라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까지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베르그송은 그의 주저인 『창조적 진화』에서 과학의 역할과 철학의 역할을 아주 흥미롭고도 명쾌하게 비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들 가운데 이번에 겨울호랑이 님의 글 때문에 다시금 펼쳐 읽고 거듭 음미해 볼 만한 대목들을 '먼댓글 형식'으로 덧붙여 봅니다. 한가지 덧붙일 점은,『창조적 진화』
 
 
oren 2017-08-01 1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학‘이 아무리 ‘만능열쇠처럼‘ 여겨지더라도 결국 과학은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과학으로서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됩니다. 앙리 베르그송도 ‘과학이 끝나는 지점‘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 말했고요. 어쨌든 ‘철학‘은 영원히 ‘과학을 보완하는 임무‘를 어깨 위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마치 아틀라스가 무거운 지구를 어깨 위에 계속 떠메고 있듯이요.
* * *
본래적인 의미의 과학이 모두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충분한 설명을 할 수도 없다는 것

원인을 실마리로 하여 합법칙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근본적인 힘은 사실은 의지로부터 설명된다. 따라서 인식은 물질의 변용이라는 주장에는 모든 물질이 주관적인 인식의 변용, 즉 주관의 표상이라고 하는 주장이 언제나 정당성을 갖고 대립된다. 그렇지만 모든 자연과학의 목적과 이상은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완성된 유물론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유물론을 명백히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또 하나의 다른 진리로 이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 진리란 우리가 앞으로 고찰해가면서 분명해질 것인데, 그것은 내가 충족 이유율에 근거한 체계적 인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본래적인 의미의 과학이 모두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충분한 설명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학은 세계의 가장 심오한 본질에는 접촉하지 못하고, 표상을 넘어서지도 못하며,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표상과 다른 표상과의 관계를 가르치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겨울호랑이 2017-08-01 17:54   좋아요 0 | URL
베르그송이나 쇼펜하우어 모두 ‘과학의 한계‘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군요. 19세기에 선각자들이 이미 깨달았던 부분을 21세기에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사회의 발전‘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oren님 감사합니다^^:

AgalmA 2017-08-03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험론과 합리론 비교 궁금했는데 겨울호랑이님이 이렇게 상세히 말씀해 주셔서 좋네요^^

인간은 태어날 때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촘스키 견해는 본유관념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알다시피 경험과 학습이 쌓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즉 인간은 완전히 백지상태라 보기도 어렵고 관찰과 경험만으로 존재한다고도 보기 어렵습니다. 생물학에서는 인간의 신체는 거대한 화학작용이지요. 그 논리에서는 본성이 있기 어렵죠ㅎ. <신의 입자>에서 레더먼이 비유했다시피 우리는 축구공의 실체는 보지 못하고 축구 경기를 해괴하게 바라보는 외계인의 상태라고 해야겠죠. 상태들은 보는데 원인은 정확히 모르는. 그래서 본문에서 말하신 ‘공백‘ 논란처럼 각자의 인식과 이데올로기로 이많은 관념과 질서를 배태하고 향유하는 것이겠고요.

겨울호랑이 2017-08-03 14:4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레더먼이 말한 내용은 칸트 철학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결과‘만을 볼 수 있기에 각자의 기준에 따라 ‘원인‘을 범주화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린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