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 유럽 변방의 작은 섬나라 영국이 어떻게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만들었는가
니얼 퍼거슨 지음, 김종원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 ~ 1873)이 의도했던 대로 상업(Commerce), 문명(Civilization), 기독교(Christianity)가 아프리카에 주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네 번째 "C" 즉 정복(Conquest)과 함께 올 것이다.'(p231) 


<제국 Empire>은 영국 제국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다룬 닐 퍼거슨(Niall Ferguson)의 저술이다. <제국>은 영국이 다른 유럽 열강보다 강대한 제국(帝國)을 건설할 수 있었던 원인을 시대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16세기 에스파냐, 포루투갈에 비해 늦게 제국으로 출발한 영국이 어떤 방식으로 최대 제국으로 발돋움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제국이 해체되었는지 분석하는 <제국>을 통해 영국 제국주의의 특성을 살펴보자.


1.  제국의 시작 : 뒤늦은 출발 그리고 남다른 발전


 영국은 다른 유럽 제국보다 늦게 식민지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에스파냐, 포루투갈과는 달리 달리 금, 은 등의 귀금속이 산출되는 지역을 차지하지 못했다. 대신, 사탕수수 등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을 식민지로 개발하게 되었다. 에스파냐, 포르투갈이 식민지 개발을 통해  화폐(money)를 가져온 반면, 영국은 식민지에서 원재료를 본국으로 가져올 수 밖에 없었고, 이를 통해 영국 본토는 제조업이 발달할 여건을 갖추게 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모건이 약탈한 은화를 갖고 행한 일이었다. 그는 자메이카의 부동산에 투자하여 리우미뉴 계곡(오늘날의 모건 계곡)에 100만 평 가량의 땅을 취득했다. 나중에 그는 성 엘리자베스 교구에 500만 평을 추가했다. 중요한 점은 그곳이 사탕수수 재배에 이상적인 곳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국의 해외 팽창의 특성이 낳은 일반적인 변화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영제국은 금을 약탈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설탕 재배와 더불어 발전했다.'(p47)


[그림] 플랜테이션 농업(출처 : http://blog.daum.net/_blog/)


2. 자본 시장 : 선진 금융제도


 1688년 명예 혁명은 당시 금융 선진국이었던 네덜란드의 금융 기법이 잉글랜드에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선진 금융 기법을 통해 동원된 자금력의 우세는 영국이 경쟁국보다 앞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전해진 주식회사 제도를 통해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만들고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어가게 되었다.


 '신용이 전쟁을 낳고 평화를 낳으며 육군을 육성하고 해군을 무장시키고 전투를 치르고 도시를 포위한다. 그리고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군자금이라고 불린다... 신용이 보수 없이 군인을 싸우게 하고 식량 없이 육군을 행군하게 하고, ... 그것은 난공불락의 요새이며... 그것은 대부 허가증이 되고... 수요가 있을 때는 즉시 재무부와 은행을 충분한 자금으로 채운다.'(p62)


 '(7년 전쟁의 승리는) 해군의 우위에 기반을 둔 승리였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영국이 프랑스보다 결정적으로 우위에 있는 한 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바로 돈을 빌리는 능력이다. 영국의 모든 전쟁 경비의 3분의 1이상이 대부금으로 조달되었다. 윌리엄 3세 치세에 네덜란드 것을 모방한 제도가 이제 본래의 특성을 발휘하게 됨으로써, 피트 정부로 하여금 투자하는 대중에게 낮은 이율의 채권을 판매하여 전쟁 비용을 늘릴 수 있게 했다. 대조적으로 프랑스 인들은 구걸을 하거나 훔치는 수밖에 없었다. 주교 버클리가 썼듯이, "신용은 잉글랜드가 프랑스보다 우위에 있는 주요한 강점"이었다.'(p76)


[그림] 동인도회사(출처 : http://mediapen.com/news/view/183191)


3. 노동 시장


 또한, 영국의 식민 정책은 노동 시장에서도 다른 제국들과 차이가 있었다. 종교의 자유, 경제적 자유 등을 추구하던 이들은 해외로 진출했고, 마치 '잡초를 뽑듯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한편, 귀금속 대신 설탕산업을 육성해야 했던 식민지는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노동력이 제공되고, 카리브해에서 설탕이 제조된 후 이 제품을 팔아 자본이 영국으로 유입되는 산업 구조가 마련되었다.


 '1660년대 초에서 1950년대 사이에 20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영국 섬을 떠나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소수만이 돌아왔다... 영국을 떠나면서 초기 이주민들은 그들의 전 재산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걸었다... 영국 제국에 없어서는 안 될 기초가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대량 이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국 탈출이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것은 전 대륙을 하얗게 변화시켰다.'(p104)


 '식민화에 대한 그들의 용어는 "플랜테이션'이었다. 존 데이비스의 말에 의하면 정착민들은 "좋은 곡식"이고, 원주민들은 "잡초"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사회적 원예술 이상의 것이었다. 이론상 플랜테이션은 식민화, 즉 정치적 변경 지역에 충성스러운 백성들을 내보내 정착지를 건설하는 고대 그리스의 관행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었다. 그러나 사실 플랜테이션은 오늘날 우리가 "인종 청소"로 알고 있는 것을 의미했다.'(p108)


 '뉴펀들랜드 어장은 오랫동안 영국 어부들을 멀리 대서양으로 이끄는 유인이었다. 물론 아메리카에서 그 어장에 도달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웠다. 뉴잉글랜드 근해 역시 물고기가 가득했다. 마블헤드 앞바다에는 물고기가 풍부해서 "발을 적시지 않고도 물괴의 등을 밟고 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p114)


 '1770년에 이르자 영국, 서아프리카 그리고 카리브 해 사이의 삼각 무역은 플랜테이션에 지속적으로 노동이 공급되게 했다. 아메리카 본토 식민지들은 지속적으로 그곳에 식량을 공급했다. 설탕과 담배는 영국으로 흘러들어가 상당 비율이 유럽 대륙으로 재수출되었다. 그리고 이 신세계 상품들로부터 이윤은 제국의 아시아 교역의 수레바퀴에 기름을 쳤다. '(p139)


[그림] 노예무역 (출처 : https://0jin0.com/tag)


4. 과학


 19세기 영국이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해군의 지배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국 해군의 지배력은 산업 혁명 이후 발전된 과학인 '증기기관', '전신 케이블' 그리고 '철도' 등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한편, 영국 육군은 지도를 만드는 '지구 과학'의 뒷받침으로 제국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노예 제도에 반대한 전쟁과 아편을 위한 전쟁의 공통점은 영국 해군의 지배력 덕분에 가능했다. 증기력은 영제국을 접합시켜 주었다. 1850년대에서 1890년대 사이에 잉글랜드에서 케이프타운까지 여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2일에서 19일로 줄었다. 증기선은 훨씬 빠를 뿐 아니라 외양도 커졌다. 그래서 같은 기간에 평균 총 용적 톤수는 대략 두 배가 되었다. 1870년대에 이르면 인도에서 오는 전보가 몇 시간 안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고, 여왕은 전보를 주의 깊게 읽었다. 이것은 빅토리아 여왕 치세 동안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세계는 축소되었다... 1840년대 말에 이르자 전보가 육상 통신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고, 1850년대에 이르면 인도의 건설 공사는 전신이 폭동을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정도로 충분히 발전했다. 전신 케이블과 증기선 노선은 세계를 일제히 단축시키고 통제를 더 쉽게 만든 세 개의 금속 네트워크들 가운데 두 가지였다. 세번째는 철도였다.'(p242)


 '빅토리아 시대에 일어난 세계 통신 혁명은 "거리의 소멸"을 완수했다. 단거리뿐 아니라 장거리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전쟁시에 거리는 극복되어야만 했다. 단지 영국 군사력의 주요 원천이 세계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이다.'(p243)


 '빅토리아 중기 제국의 모든 구성 요소처럼, 인도 육군 역시 과학 기술(총을 생산하는 기술뿐 아니라 지도를 만드는 기술에도)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배적 기술에서 경위의(經緯儀)가 전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p246)


[사진] 증기선(출처 : http://qumalog.tistory.com/entry)


5. 교육


 영국이 발달된 금융 제도,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계의 약 25퍼센트에 해당하는 육지와 대양을 지배하는 제국을 유지하는 것에는 자체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효율적인 제국을 통치하는 수단이 필요했으며 이는 관료 집단에 의한 통치로 현실화 되었다. 효율적인 제국의 관료집단은 어떠한 방식으로 양성되었는가? 이는 '주입식 교육'으로 제국의 이념을 공무원에게 입력시키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키플링은 <오티스 이어의 교육>에서, "제국의 작업에서 증기가 인력을 대체할 때까지", 항상 "단순 기계적인 일에 혹사당하고 소모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런 사람들은 "라이어트(ryot, 소작농민)나 쟁기를 끄는 수소와 더불어 국가의 기초가 되는 초석이라는 영예를 공유하는 일반 시민(열병의 희생양)이었다." 오티스 이어는 "공식적인 풍자에 의하면" 전형적으로 "눈이 움푹 들어간 사람으로, 스스로를 돕기에는 무력하지만 남을 해치고 훼방 놓고 괴롭히는 데에는 강하며, 불평불만으로 들끓는 나약한 군중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었다.'(p259)


 <제국>에는 영국 제국이 다른 경쟁 제국(프랑스 제국, 에스파냐 제국 등)보다 앞설 수 있었던 이유를 위와 같이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 영국인인 저자의 주관적 한계 또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 윤리적 측면에서 일어난 심오한 변화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단지 수익성이 없게 되자 노예 제도는 폐지되었다고 주장되곤 하지만, 모든 증거는 이와 다르다. 실제로 노예 제도는 여전히 수익성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폐지되었다.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은 집단의 심정 변화다. 모든 위대한 변화들처럼, 그것 역시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1740년대와 1750년대에는 아메리카에서 소위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고 영국에서 감리교가 발흥하면서 그러한 이념은 더욱 광범위한 프로테스탄트 집회로 확산되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계몽주의의 가르침으로 인해 노에 제도 반대로 돌아섰다.'(p179)


  우리는 미국 남북 전쟁(美國南北戰爭, American Civil War, 1861 ~ 1865)을 대표적인 노예 해방 전쟁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노예 해방이 남북전쟁 모두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노예 해방에 반대하는 남부의 주(州)와 북부의 주(州)간의 대립은 단순한 이데올로기 대립이 아닌 경제체제의 대립이었다. 산업화를 통해 북부는 노예제가 필요없어진 반면, 농업에 의존했던 남부에서는 노예제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미국남북전쟁이 발생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남북전쟁은 '노예 해방'이라는 아름다운 가치의 실현을 위해 일어난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1세기 이전에 일어난 영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에서는 영국에서의 노예제 폐지를 종교에 기반한 박애정신의 확대로만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저자가 경제적 체제 대립이라는 해석방법을 모르지 않았을테고,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과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그림] 남북전쟁(출처 : http://www.kamerican.com/GNC/new/)


 또한, 이슬람 포로를 학살하는 영국군의 모습에 대해 묘사하고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는 부분을 보면 제국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그래도 영국 제국주의가 다른 곳보다는 인도적이었다는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십보 백보'차이정도 아닐까. 


 '이 내용을 읽으면 독일군 SS 장교들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 인들에게 행했던 방식이 떠오른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이 살인을 목격한 영국 병사들은 처음에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쳤고, 총이 발사되었을 때는 "분노와 야유의 함성"을 터뜨리며 장교의 행동을 큰 소리로 비난했다. 비슷한 상황에서 독일 병사들이 공개적으로 상급자를 비난한 일은 있다 하더라도 아주 드물었다.'(p221)


 <제국>에서는 영국 제국주의가 다른 유럽의 제국주의와 달랐던 점을 상품시장, 노동시장, 문화, 정부, 자본시장 등의 분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고, 이를 통해 영국이 가장 강력한 제국을 만든 원인에 대해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원재료 공급지로서의 식민지 역할, 네덜란드와의 합병으로 인한 선진 금융 기법의 전수, 종교적/경제적 이윤을 추구한 자발적인 식민지 이주, 과학기술의 적절한 적용, 효과적인 제국 통치를 위한 교육 시스템 구축. 이러한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영국을 제국주의 시대의 승자(勝者)로 만들었음을 <제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저자 자신이 영국인인 관계로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다소 우호적인 목소리는 영화 <덩케르크 Dunkirk>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독자에게 선사하는데 이 부분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라 생각된다. 다음은 영국을 이어 새로운 제국인 미국(美國, America) 순서다. 다음은 저자의 또다른 저서인 <콜로서스 Colossus>를 통해 미국 제국주의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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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7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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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7 2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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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7 2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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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7 2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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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5: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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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5: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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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14: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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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14: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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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9-01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9월입니다. 즐겁고 기분 좋은 날들로 이어지는 한달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편안한 금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09-01 19:23   좋아요 1 | URL
^^: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상쾌한 9월 출발과 한주 마무리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1. 현악 4중주(Quartet)


'고전적인 콰르텟(Quatuor)에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악기 편성은 두 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첼로죠.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소나타나 교향곡의 일반적인 진행 - 알레그로, 안단테, 미뉴에트, 피날레 -를 따르죠. 따라서 현악 4중주의 독창성은 형식 자체에 있는 게 아닙니다. 소나타와 교향곡도 진행은 똑같으니까요. 그보다는 같은 족 族에 속하면서도 각기 개성이 있는 네 개의 악기들에 그 형식을 적용했다는 점이 독창적이죠.'(p265)


'현악4중주를 처음 쓴 작곡가는 일반적으로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 ~ 1809)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이든이 현악 4중주를 완성된 형태로 만든 것은 사실이에요. 이 분야에서 하이든의 첫 시도들은 1755년까지 거슬러올라가는데 그때까지는 조곡 형식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죠... 하이든을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한, 그를 현악 4중주의 창시자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p267)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 ~ 1791)는 1782년에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의 음악을 접하고서 여섯 편의 현악 4중주를 만들었죠. 이 여섯 개의 경이로운 작품들은 하이든에게 헌정되었습니다. 하이든은 첫 곡, 현악 4중주를 듣자마자 모차르트도 있는 자리에서 그의 부친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이렇게 말했다지요. "신 앞에서 그리고 정직한 인간으로서 말하건대 당신 아들은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입니다.'(p270)



2. 종교음악


 '모차르트를 생각해봐요 바로크 시대 사람이자 바로크 양식의 영향하에 있는 예술가죠. 하지만 모차르트의 C단조 미사곡이나 <아베 베룸 코르푸스 Ave Verum Corpus>가 팔레스트리나의 모네트보다 덜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술은 경건과 고양이라는 상반되는 두 효과를 통해 종교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로마네스크 예술이 감성의 경건에 부응한다면 바로크 예술은 감성의 고양에 해당하죠. 전자는 말을 삼가게 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후자는 기쁨을 불러일으켜 <마그니피카드 Magnificat (마리아의 찬가)>를 낳는 겁니다.'(p284)



3. 깊이 읽기 : 그리고리오 성가의 탄생

 

'새로운 성가는 모든 신성로마 제국의 영토 에서 적용되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갈리아 지방의 성가와 로마 지방의 성가가 점차 융합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성가의 권위를 확정 하기 위해 서유럽의 여러 지역 교회의 전통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카롤링거 왕조의 음악가들은 성가들의 기원을 그레고리오 1세라고 언급하기 시작했고 그의 얼굴이 여러 필사본에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장크트 갈렌 수두원에 보관되어 있는 <하르트커 수사의 교창 성가집 Antifonario Hartker>은 그 대표적인 실례이며, 여러 성가가 성령에게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탄생"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실행한 전례의 자유와 관련해서 보자면, 서유럽의 종교 곡의 역사 중 마지막 페이지를 구성한다.'(p881)



 한동안 가을을 부르는 비가 내리더니 기온도 많이 떨어지고 하늘도 푸르러 졌습니다. 초가을이 되었군요. 이웃분들 모두 여유롭고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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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전원생활(田園生活)에 대한 책 두 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가 그 책들입니다. 둘 다 전원생활, 시골생활에 대한 이야기지만 주제에 대한 저자들의 입장은 사뭇 다릅니다. <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는 서울 생활을 정리한 후 경북 성주로 이주한 엄윤진 작가의 경험담을 다루고 있는데 반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는 시골 생활에 다소 부정적인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통해 시골에 대한 두 작가의 다른 입장을 비교/대조해 봤습니다.


1. 결단


 <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의 엄윤진 작가는 다소 즉흥적으로 성주 이주를 결심합니다. 엄윤진 작가는 다소 즉흥적인 결정으로 제2의 인생을 열지만(물론, 작가는 성공적으로 안착을 합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시골 생활에 대해 신중한 고려를 조언합니다.


가. 길을 잃고 집은 만나다 : '그 무렵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내가 도시에서 무엇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울하게 보내게 될지도 모를 내 상황에 조금 겁을 먹고 있었던 것 같다...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혼자면 어때, 그런 맘도 들었다.... 정말 이상했다. 난 이미 이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p21)


나. 지쳐 있을 때 결단하지 마라 : '모든 것을 접고 시골에 틀어박히기로 마음먹는 것은 정말로 괜찮을까요. 당신은 벌써 여러 번 우려내 맛과 향이 다한 차 같은 존재인가요. 오랜 세월을 축적해온 그 귀한 지식과 경험과 기술과 인관관계를 몽땅 하수구에 버리고 마는 식의 삶은 순수함과는 분명 다릅니다... 시골로 거처를 옮겨 지치고 지친 심신을 충분히 쉬게 하고픈 마음은 압니다만 그런 피로야 반년쯤 쉬면 바로 사라집니다. 다시금 일하고픈 의욕이 솟구칩니다. 그때 당신이 아직 도시에 있다면 재기할 기회는 시골에 비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가장 지쳐 있을 시기에 중대한 결단을 내리는 일은 피해야만 합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p48)


2. 선택


  <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에서는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이 끌려 집을 구매한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는 아름다운 경치에 끌려 내린 결정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가. 길을 잃고 집은 만나다 : '왠지 모르게 산길이 마음을 끌었다. 편안한 느낌, 그 이상이었다. 산길이 많이 굽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내려오는데 오른쪽 창으로 한옥의 지붕이 눈에 띄었다.... 그 틈 사이로 살며시 집이 보였다. 고즈넉하니 멋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주인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빈집이었다. 마당의 잔디는 손을 본 듯하나 그 주위는 온통 나무였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때 내가 잡목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몇 년째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옷자란 풀이었다. 뒷마당은 언감생심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집이 네 채나 되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 (p20)

 

나. 아름답다고 좋은 곳이 아니다 : '자연에서의 현실이란 것을 잘 몰랐던 젊은 시절, 몰래 눈여겨둔 별장지가 있었습니다. 높은 지대에서 바라본 전망은 아름다운 아즈미노에서도 각별했습니다. 그곳에 집을 짓고 살면 구름 위에서 생활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집필 의욕이 솟구쳐 생각대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집필 의욕이 솟구쳐 생각대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기대에 사로잡혔습니다... 만약 당신이 땅값이 싸다는 점에 눈이 멀어 곧바로 사기로 결정하고 말았다면 이는 중대한 실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시 땅값과 비교하면 분명하면 분명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쌉니다.  하지만 현지 시세를 감안하면 턱없이 비싼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운 것입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p33)


3. 불편한 생활


 시골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생각하는 시골 생활에 대한 공통적인 어려움은 불편함일 것입니다. <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 에서는 시설에 대한 불편함이 나타나 있고,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는 불편함의 의미를 찾아갈 것을 권고합니다.


 가. 푸세식은 힘들어 : '진짜로 급한 게 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첫째, "화장실이랑 세면장!"하고 소리쳤다. 정말이지 난 밤에 "푸세식" 화장실에 가는 것이 무서웠고 샤워도 쪼그리고 앉아 씻는 게 아니라 서서 하고 싶었다. 두 번째, 겨울에도 따뜻한 방! 작고 아늑한 방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에가 고치를 틀듯 말이다. 세 번째, 환한 주방 만들기. 그리고 노후한 전기와 보일러 시설 손보기.'<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 (p33)


 나. 불편함이 치유다 : '시골에서는 내 일은 내 힘으로 한다는 강한 마음가짐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이주하고 나서 도시의 편리함과 비교하며 불평을 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굳이 불편한 곳에서 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불편함이, 너무 편리한 도시 생활로 흐늘흐늘해진 당신 심신을 달련시켜 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뇌를 계속 지배해 온 싸구려 이미지를 말끔히 제거하고 가혹한 현실과 대치하는 묘미를 알게 해 줍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p185)


4. 이웃과의 관계


 시골에서 이주했을 때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이웃과의 문제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는 이웃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하는 반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는 되도록 관계를 가지지 않는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가. 세상사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  '연(蓮) 밭을 만들면서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면서 사는 비결은 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나는 마을 어른들과 큰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여쭈었다. 방법을 말씀하실 때마다 수용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말씀드렸다. 다행히 그런 자세 때문에 어르신이 웃으면서 그러셨다.' <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p53)


나.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  '시골 생활을 시작할 때 그 지역 주민들과 접촉하는 정도를 미리 정해 두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아주 중요한 문제에는 단호한 양자택일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긴밀히 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둘 중 하나만 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어울리지 않고 미움을 사는 편이 어울리고 나서 미움을 사는 편보다 원망이 훨씬 더 적다는 점입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p129)


 <우리 시골에서 살아볼까?>,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모두 시골 생활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시골 생활을 보는 관점은 반대입니다. 아마 현실은 그 중간 어딘가 있을 것입니다. 시골생활이란 두 얼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자기만의 주택을 가졌을 때 위의 작은 연못과 같은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아래 사진과 같은 분위기 있는 공간을 가질수도 있고(다소 잡초가 많네요) 이를 통해 여유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여유는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서는 가질 수 없는 부분이고 많은 이들이 이러한 여유를 가지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는 것은 자연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의무가 권리보다 큰 것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황과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위의 연못을 5분만 바라보면 곧 질리게 됩니다만, 관리하기 위해서는 해야할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새 자라는 잡초를 보면서 자연의 무한한 생명력에 감탄함과 동시에 빨리 제거해야하는 의무감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시골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시골 생활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의 공통점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나가는 어린 아이를 보면 누구나 웃음을 지으며 예뻐하지만,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처럼 시골 생활도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 것을 알면서도 시골 생활을 그리는 것은 아마도 우리 조상들의 삶의 공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많은 비가 오고 난 후 하늘과 공기가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나고 있습니다. 이웃분들 모두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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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6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6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8-26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움을 말하긴 했지만 두 분 다 낭만적인 글이네요. 리얼한 경험담 들어보면 분투기죠. 비 오고 자고 나면 훌쩍 자라는 잡초 정리에 쉴 틈이 없고 텃밭 관리, 집 주위 정리도 고역이라 연못 메워 버렸다는 분도 다반수. 겨울철 난방비가 50~100만원 이상, 주말이면 이 사람 저 사람 놀러 온다고 하는 터에 그 수발에 정리에 또 지치고,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편의점이라도 갈라 치면 차타고 5분 이상 나가야 되는 온갖 귀찮음... 무턱대고 갈 게 아니라 얼마 간 살아보고 결심할 일이죠. 농사나 손재주 있는 분들 아니면 노년엔 더 피해야 할 게 시골 생활이라는 게 인터넷중론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8-26 22:24   좋아요 1 | URL
네 그렇지요^^: 도시에서는 당연하게 갖춰진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어느 정도의 마음 가짐이 우선 필요할 것 같아요^^:

yureka01 2017-08-27 08: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도시가 게으른 이유가 피곤 때문입니다. 직장이란 조직은 사람의 심신을 파먹죠. 시골의 부지런함은 심신이 보충하거든요. 바람.물.공기.심지어 하늘에 구름 마저도 경이롭다 라면 시골이 맞을 것이고, 그래서 모든 불편을 행복으로 바꾸죠. 도시는 반대로 돈을 행복으로 바꾸려 들거든요. 이 차이점입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시골가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주거에 대한 제품들이 워낙 잘 나오니 시골에서도 도시의 아파트 처럼 깔끔하게 얼마든지 만들수 있죠. 건축을 좀 알면 시골 생활도 훨씬 주거환경도 자유롭거든요....시골은 뭐든지 가급적 자체해결의 재미를 못느끼면 시골 가면 망합니다. 환경을 유지 보수 설계할 기술이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거든요..그러니 시골 갈려면 도시인들보다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이게 안되니 시골가서 전원의 낭만을 찾다가는....못버티죠..

겨울호랑이 2017-08-28 14:43   좋아요 0 | URL
^^: 유레카님의 ‘시골은 불편을 행복으로 바꾸고, 도시는 돈을 행복으로 바꾼다‘라는 표현 정말 공감되는 멋진 표현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불편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한 도피처로 생각하는 것이 귀향이 실패하는 주된 이유라 생각되네요. 유레카님 행복한 일요일 보내시고, 마음에 드시는 멋진 사진을 찍으시길 바랍니다.^^:

. 2017-08-28 14:40   좋아요 2 | URL

장문의 댓글을 스마트폰으로 작성했으나 댓글이 지워져서 폰에서 북플을 아예 지워버렸습니다..ㅎㅎ

유레카님의 도시가 게으른 이유에 대해서 매우 공감되더군요.. 감정 에너지소모... 이게 상당히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더군요... 육체노동보다 더 한 피로함이 몰려오더군요... 그래서 감정 노동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이롭게 하기보다 해롭게 하기 때문에 비교적 사람이 없는 시골로... 산으로.. 가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시골에서의 삶도 도시와 같으면 무의미하겠지요... 위에 포스팅에서도 나오죠.. 관계를 맺어서 서운해지는 것보다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낫다고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밀착되면 밀착될수록... 본질은 흐려지거든요... 보통 고마움은 멀리.. 안 보일 때 생각나는 법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과의 거리를 멀리해야겠지요... 도시는 매일 사람이 붙어 다니니... 심신을 파먹을 수밖에요.. 시골 가니 사람 한 번 만나려고 하면 한참을 가야 한 사람 만날 정도죠... 사람이 귀하니... 속은 몰라도 겉으로라도 다 친절함을 베풀더군요..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 편할 수 있다면... 그러한 삶도 나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난중일기 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이은상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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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도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난중일기 亂中日記> 뒷편 책 표지글이다. 그렇지만, <난중일기>를 이렇게 표현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난중일기> 속에는 물론 충무공(忠武公)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렇지만, <난중일기>에는 이러한 원론적인 이야기보다 평범한 우리 삶의 모습이 훨씬 더 많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치고 있다. 날씨, 업무 내용, 제사일 등의 공적인 내용, 가족 이야기, 건강 이야기, 사람에 대한 평가는 물론 점 치는 이야기와 꿈 해몽 이야기까지 소소한 삶의 기록이 <난중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단순히 <난중일기>를 '애국일기'로 한정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기 힘들다. 더 나아가, <난중일기>에 대한 이러한 편견 - 애국일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보다 많이 안 읽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간단하게나마 <난중일기>에 표현된 기록을 통해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난중일기> 속에는 매일의 날씨, 업무처리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업무일지(業務日誌) 같다는 느낌을 독자들에게 준다. 


' 갑오 정월 초이레. 맑음. 동헌방에 앉아 배 첨지, 남의길과 종일 이야기를 했다. 늦게 공무를 보았으며 남원(南原) 도병방을 사형했다.'(p200)


'을미 칠월 열나흘. 늦게 갰다. 군사들에게 말미를 주었다. 녹도 송여종을 시켜 죽은 군졸들에게 제사 지내도록 쌀 두 섬을 주었다. 이상록, 태구련(귀련), 공태원들이 들어왔다. 어머님의 쾌평하시다니 이런 다행한 일이 없다.'(p434)


 그런가 하면, <난중일기> 속에는 저자의 좋지 못한 건강 또한 나타나 있다. 일기 곳곳에는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장군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이런 기록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온 장군의 강철과 같은 무인(武人) 이미지는 현실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정유  구월 스무나흘. 맑음. 몸이 좋지 못해서 신음하였다. 김홍원(金弘遠)이 보러 왔다.

정유 구월 스무닷새. 맑음. 이날 밤 몸이 몹시 좋지 못하고 허한이 온몸에 배었다.

정유 구월 스무엿새. 맑음. 몸이 좋지 않아 종일 나가지 않았다.'(p681)


[사진] 충무공 이순신 동상(출처 : http://blue-paper.tistory.com/185)


 또한, <난중일기>에는 저자의 인간적인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회식(會食)이야기, 활쏘는 이야기, 점(占)을 치는 모습, 간밤에 꾼 꿈을 해몽하는 부분 또한 여러 부문에 나타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장군의 인간적인 면을 확인하게 된다. 


'병신 사월 초여드레. 종일 비, 비. 늦게 들어가 부찰사와 마주 앉아 술을 마셨다. 몹시 취하여 관등(觀燈)하고 헤어졌다.'(p452)


'갑오 구월 초하루. 맑음. 앉았다 누웠다 잠을 못루고 촛불을 켠 채 뒤척이며 지새었다. 이른 아침 세수하고 고요히 앉아 아내의 병세에 대해 점을 쳤더니, "중이 환속하는 것 같다(如僧還俗)"는 괘를 얻고 다시 쳤더니, "의심이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如疑得喜)"는 괘를 얻었다. 아주 좋다.'(p328)


 그중에서도 <난중일기> 속에 인간적인 면이 가장 잘 표현되는 부분은 원균에 대한 기록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난중일기> 곳곳에는 경상우수사 원균에 대한 불신(不信)과 비난을 확인할 수 있는데 보통 근엄하고 인자하게 그려지는 충무공의 모습과 달리 뒷담화(?)에 가까운 일기 내용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 이순신'을 느끼게 된다.


 '계사 팔월 스무엿새. 비가 오다 개다 하였다... 원 수사가 술을 마시겠다고 하므로 약간 주었더니, 잔뜩 취해서 흉학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었다. 해괴하다....

계사 팔월 스무여드레. 맑음. 원 수사(원 균)가 와서 음흉하고 간휼한 말을 많이 하였다. 심히 해괴하다.

계사 팔월 그믐. 원 수사가 또 와서 영등으로 가자고 독촉한다. 참으로 음흉하다. 그가 거느린 스물다섯 척의 배는 모두 내보내고, 다만 칠팔척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니, 그 마음 쓰고 행사함이 모두 이따위다.'(p188)


 임진왜란(壬辰倭亂) 7년의 기간을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이미지로 막연하게 느낄수 밖에 없다. 막연한게 다가오는 과거 기록은 우리에게 추상적으로 인식된다. 그렇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이의 기록은 비록 어렵고 힘든 시기였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의 삶"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임진왜란 7년의 기간동안 하루하루가 끔찍했을 것이라 우리는 짐작한다. 그렇지만, <난중일기>는 어려운 중에도 회식이 있었고, 바쁜 중에도 활쏘기를 하는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우리는 외적의 침입에 일치단결하여 대응한 조선 수군을 막연하게 상상하지만, 그 안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있었고, 개인적인 감정 대립이 있음을 또한 확인할 수 있다. <난중일기>속에는 우리의 일상(日常)과 다름없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의 기록이 모여 <난중일기>라는 시대의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난중일기>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이 '군신(軍神)'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위장병에 고생하며 결근을 하기도 하고, 동료와 갈등을 겪으며 마음 고생을 하는,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꿈 해몽과 점에 의지하기도 하는' 평범한 인간임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충무공의 위대함은 인간적인 약점(弱點)에 의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한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난중일기>를 읽으며 희노애락(喜怒愛樂)의 감정과 의식주(衣食住)가 펼쳐지는 삶의 공간인 일상(日常)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어느 '개인의 하루'가 7년 동안 모이고, 어느 개인들이 모여 사회(社會)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물을 우리는 지금 '임진왜란'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하루가 결코 작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책표지 뒷면의 글을 바꾸어 <난중일기>를 읽은 느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일상(日常)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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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8-23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중일기 문체를 보니 왜 김훈이 칼의노래 문체와 닮았는지알것 같군요.. ^^

겨울호랑이 2017-08-23 20:20   좋아요 0 | URL
^^: 그렇군요.. 저는 작가도 역사적 사실을 모사할 때는 배우처럼 몰입해서 닮아간다는 것을 곰곰발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2017-08-23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3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4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4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8-25 0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퇴근하며 해철형 생각했는데ㅜㅜ

겨울호랑이 2017-08-25 07:05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저도 참 아쉽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10-10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추석 때 시간죽이기 겸사하여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를 다시 봤는데, 감동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다시 생각해도 위대한 것은 본인의 불굴의 의지도 있지만,
왜 그를 많은 백성과 병사들이 따르냐는 말이죠.

다른 장군(원균)이나 고관대작들은 기생을 끼고 좋은 안주에 술만 마시기 바쁘지만
정작 통제사인 본인은 병사들이 먹는 식단을 비교하여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최근 광해군을 다시 생각하며, 한명기교수의 <광해군>이란 책이 다시 떠오르나, 드라마에서 광해군은 이순신을 옹호하는데
이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역사가 문듯 아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적어도 광해군이 조정에서 혹은 무군사로 내려갈 때 사관이나 기록만큼은 분명 기록에 의지했습니깐요..



겨울호랑이 2017-10-10 17:13   좋아요 0 | URL
^^: 만화애니비평님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요즘 「남한산성」도 개봉하는 등 16세기 조선에 대한 내용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 같네요.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에 대한 재조명과 해석이 꾸준히 이루어진다면 만화애니비평님께서 말씀하신 역사에서의 아쉬운 점도 점차 줄여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히드라 이야기
페르낭 브로델 지음, 김홍식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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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는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에 대한 입문서(入門書)다. 본문은 강의형식으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내용을 파악하기는 역자가 작성한 해제(解題)가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 리뷰에서는 해제를 중심으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담긴 전체적인 그림을 살펴보자.


1. 시간(Time) : 중층적 시간대에서의 변증법 구조


가. 장기지속(longue duree)의 역사


 브로델은 역사를 '표층의 역사'와 '심층의 역사'로 구분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심층의 역사'에 주목하고 있다. 브로델에 따르면 장기 지속하는 심층의 역사가 인간의 조건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빙하의 90%가 수면 밑에 있으며 빙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듯이,  '무의식'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의 이론이 브로델의 역사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진] 의식과 무의식(출처 : 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71)


 '브로델은 단기적 시간대에 주목하는 역사를 "표층의 역사"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 세계의 배후에는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장기 지속하는 "심층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고 봅니다... 장기 지속하는 역사가 만들어내는 심층의 세계는 브로델에게서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인간의 조건을 결정하는 구조는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p151) ... 둘째, 장기 지속하는 심층의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의미는, 브로델이 본격적으로 연구했던 주제는 아니지만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무의식과 관련됩니다.(p153)... 셋째, 장기 지속이라는 개념은 역사를 기술하는 내용이나 결과라기보다는 역사를 기술하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p158)


나. 시간 지속의 변증법 dialectique de la duree

 

  브로델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표층의 역사'와 '심층의 역사' 의 대립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표층의 역사'를 움직이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과 '심층의 역사'를 움직이는 '천천히 흐르는 시간'과의 대립이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이러한 힘과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역사학 뿐 아니라 사회과학 방법론 전반에 걸쳐진 개념임을 브로델은 강조한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중적이고 모순적 contradictoire인 여러 가지 시간, 그처럼 사회적으로 진행되는 시간의 지속은 과거의 실체일 뿐 아니라 씨실과 날실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삶을 짜는 피륙입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과 천천히 흐르는 시간, 이 둘 사이에는 활발하고 밀접한 대립 opposition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우리 역사가들이 보기에 이러한 대립이야말로 사회적 실제의 핵심에 존재하며 다른 어느 요소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p145)


다. 다중적(혹은 중층적) 시간대 temporalite multiple(p143)


 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과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 같은 시간대에 공존(共存)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기 때문에 우리는 '중층적 시간대'에서 살고 있다고 브로델은 설명한다.


 '역사상 일어났던 모든 혁명은 짧은 시간의 힘이 긴 시간의 힘과 격전을 치르며 승리한 사례들입니다. 그만큼 엄청난 에너지가 수면 아래에 오랫동안 잠재해 있다가 짧은 기간안에 빠른 속도로 응집해서 폭발했음을 뜻합니다. 실패한 혁명은 반대로 빠른 속도로 응집하는 짧은 시간의 힘이 긴 시간의 힘에 굴복한 셈입니다... 브로델은 시간을 알기 위해 제삼의 참조점을 잡는 인식의 방향을 뒤집어서 사회적 실재를 알기 위해 시간을 참조점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참조점이 바로 중층적 시간대라는 "시간의 지도"인 셈입니다.'(p150) 


2. 공간(Space) : 경제계(經濟界)


가. 삼층집 모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다루고 있는 모델은 물질생활을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 그리고 시장 경제 위에 자본주의가 위치하면서 계층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형태로 구성된다. 자급자족 경제를 '물질 생활'이라고 한다면, 교환이 발생한 이후 '경제 생활(시장경제)' 형태가 발생하게 된다.


 '브로델은 14~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약 400 ~500년 동안의 유럽에 적용했던 여러 가지 모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삼층집 모델입니다. 맨 밑에는 물질생활이 있고, 그 위에 시장경제가 있고, 꼭대기에 자본주의가 위치한다는 경제 모델입니다. (물질생활 - 시장경제 - 자본주의)(p162)... 인간이 가족이나 마을 단위에서 자급자족하며 사느냐, 아니면 교환하며 사느냐는 기준에서 보면, "물질생활(물질문명 civilisation materielle)"은 거의 다 자급자족에 가까운 사용가치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로델은 자급자족에서 탈피해, "교환가치의 문지방을 넘어서며서부터 경제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이때부터 물질생활의 거대한 등판을 딛고 "경제생활 vie economique"이 시작됩니다.'(p169)


 여기서,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특수한 형태로 단순한 경제 구조로 정의되기 어려운 문화적 실체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자본주의는 경제 영역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특수한 형태입니다. 그 실체는 인접한 영역과 그 영역들에 침투한 모습을 비추어 보지 않고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을 것이고, 그때에야 자본주의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p182)... 자본주의는 물질생활과 시장경제를 자신의 존재 기반으로 깔고 앉아 독점으로 높은 이익을 추구하는 무언가의 활동이다. 그러기 위해 기존의 사회 질서와 위계, 국가, 문화 등 온갖 영역에 침투하여 무언가의 사회적 구조물을 만들어 그와 결합해 존재하는 실체다.'(p183)


나. 경제계 economiemonde


 또한, 브로델은 일정 공간 내에서 중심부-중간부-주변부의 구조를 가지면서 하나의 독립된 경제권을 다음과 같이 '경제계'로 정의하고 있다.


 '경제계의 특징으로는 첫째, 경제계는 일정한 지리적 공간을 차지하며 그 공간의 한계를 이루는 울타리는 매우 천천히 변한다. 둘째, 경제계에는 하나의 핵, 즉 중심이 존재하며 이 핵이 경제계 전체의 분업을 조직하는 힘을 행사한다. 셋째, 경제계는 이 핵을 중심으로 생활수준의 높낮이가 갈리는 계층적 경제원(중심부, 중간부, 주변부)으로 분화된다는 것입니다.'(p163)

 

다. 삼층집과 경제계의 조합


 '주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15 ~18세기의 자본주의를 분석할 때 도입한 삼층집 모델과 함께 생각해보면, 삼층집 모델을 지리적 공간에 횡적으로 펼치고 그 공간에 '중심부-중간부-주변부'라는 계층적인 지배/종속관계를 더한 것이 경제계 모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중심부에도 자본주의-시장경제-물질생활의 삼층집이 있고, 중간부와 주변부에도 각각 삼층집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브로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중심부의 최상층에 위치한 자본주의가 경제계 전체를 조직하는 힘을 발휘하는 곳이 됩니다.'(p189)


 위의 삼층집과 경제계 모델을 브로델의 설명에 따라 조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 삼층집과 경제계의 조합(by 겨울호랑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에서는 이처럼 브로델의 역사를 움직이는 힘과 경제 모델이 잘 정리되어 있다. 아마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는 시간적으로 '표층의 역사'와 '심층의 역사'가 부딪혀서 만들어낸 힘(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공간적으로는 '경제계'에'중심부-중간부-주변부'의 관계 속에서 어떤 작용을 하여 경제계가 확대 또는 축소되어 왔는지가 그려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론해본다. 구체적인 내용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통해 확인해 보면 될 듯하다. 이처럼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원서 3권(번역본 6권)에 해당하는 경제사상(經濟思想)의 큰 틀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는 유익한 브로델 사상 입문서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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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살롱 2017-08-22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내용을 읽기 좋게 써 주셔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8-22 20:04   좋아요 0 | URL
^^: 퐁당살롱님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인 2017-08-22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잖아도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브로델을 언급하는 책이 있었죠. 브로델에 대한 짧은 소개였지만 맘에 들어서 구하려고 하는데, 겨울호랑이님의 리뷰 덕분에 자료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8-22 21:08   좋아요 0 | URL
^^: 그렇군요 태인님께 작은 도움이 되어 저도 기쁘네요. 즐거운 독서 되세요^^:

황금모자 2017-08-22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로델 이후로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 시리즈를 읽어보시면, 브로델의 ‘중심-중간(아주변)-주변‘ 이론이 어떻게 변형돼서 쓰이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이 책도 도전해보세요. 이 이론은 나중에 가라타니 고진이 [세계사의 구조]에서도 이용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8-22 21:55   좋아요 0 | URL
^^: 황금모자님 감사합니다. 월러스틴과 「근대세계체제」가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황금모자님 덕분에 보다 알찬 독서를 할 수 있을것 같네요. 좋은 책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08-23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3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