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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 유럽 변방의 작은 섬나라 영국이 어떻게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만들었는가
니얼 퍼거슨 지음, 김종원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평점 :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 ~ 1873)이 의도했던 대로 상업(Commerce), 문명(Civilization), 기독교(Christianity)가 아프리카에 주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네 번째 "C" 즉 정복(Conquest)과 함께 올 것이다.'(p231)
<제국 Empire>은 영국 제국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다룬 닐 퍼거슨(Niall Ferguson)의 저술이다. <제국>은 영국이 다른 유럽 열강보다 강대한 제국(帝國)을 건설할 수 있었던 원인을 시대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16세기 에스파냐, 포루투갈에 비해 늦게 제국으로 출발한 영국이 어떤 방식으로 최대 제국으로 발돋움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제국이 해체되었는지 분석하는 <제국>을 통해 영국 제국주의의 특성을 살펴보자.
1. 제국의 시작 : 뒤늦은 출발 그리고 남다른 발전
영국은 다른 유럽 제국보다 늦게 식민지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에스파냐, 포루투갈과는 달리 달리 금, 은 등의 귀금속이 산출되는 지역을 차지하지 못했다. 대신, 사탕수수 등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을 식민지로 개발하게 되었다. 에스파냐, 포르투갈이 식민지 개발을 통해 화폐(money)를 가져온 반면, 영국은 식민지에서 원재료를 본국으로 가져올 수 밖에 없었고, 이를 통해 영국 본토는 제조업이 발달할 여건을 갖추게 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모건이 약탈한 은화를 갖고 행한 일이었다. 그는 자메이카의 부동산에 투자하여 리우미뉴 계곡(오늘날의 모건 계곡)에 100만 평 가량의 땅을 취득했다. 나중에 그는 성 엘리자베스 교구에 500만 평을 추가했다. 중요한 점은 그곳이 사탕수수 재배에 이상적인 곳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국의 해외 팽창의 특성이 낳은 일반적인 변화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영제국은 금을 약탈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설탕 재배와 더불어 발전했다.'(p47)
[그림] 플랜테이션 농업(출처 : http://blog.daum.net/_blog/)
2. 자본 시장 : 선진 금융제도
1688년 명예 혁명은 당시 금융 선진국이었던 네덜란드의 금융 기법이 잉글랜드에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선진 금융 기법을 통해 동원된 자금력의 우세는 영국이 경쟁국보다 앞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전해진 주식회사 제도를 통해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만들고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어가게 되었다.
'신용이 전쟁을 낳고 평화를 낳으며 육군을 육성하고 해군을 무장시키고 전투를 치르고 도시를 포위한다. 그리고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군자금이라고 불린다... 신용이 보수 없이 군인을 싸우게 하고 식량 없이 육군을 행군하게 하고, ... 그것은 난공불락의 요새이며... 그것은 대부 허가증이 되고... 수요가 있을 때는 즉시 재무부와 은행을 충분한 자금으로 채운다.'(p62)
'(7년 전쟁의 승리는) 해군의 우위에 기반을 둔 승리였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영국이 프랑스보다 결정적으로 우위에 있는 한 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바로 돈을 빌리는 능력이다. 영국의 모든 전쟁 경비의 3분의 1이상이 대부금으로 조달되었다. 윌리엄 3세 치세에 네덜란드 것을 모방한 제도가 이제 본래의 특성을 발휘하게 됨으로써, 피트 정부로 하여금 투자하는 대중에게 낮은 이율의 채권을 판매하여 전쟁 비용을 늘릴 수 있게 했다. 대조적으로 프랑스 인들은 구걸을 하거나 훔치는 수밖에 없었다. 주교 버클리가 썼듯이, "신용은 잉글랜드가 프랑스보다 우위에 있는 주요한 강점"이었다.'(p76)
[그림] 동인도회사(출처 : http://mediapen.com/news/view/183191)
3. 노동 시장
또한, 영국의 식민 정책은 노동 시장에서도 다른 제국들과 차이가 있었다. 종교의 자유, 경제적 자유 등을 추구하던 이들은 해외로 진출했고, 마치 '잡초를 뽑듯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한편, 귀금속 대신 설탕산업을 육성해야 했던 식민지는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노동력이 제공되고, 카리브해에서 설탕이 제조된 후 이 제품을 팔아 자본이 영국으로 유입되는 산업 구조가 마련되었다.
'1660년대 초에서 1950년대 사이에 20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영국 섬을 떠나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소수만이 돌아왔다... 영국을 떠나면서 초기 이주민들은 그들의 전 재산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걸었다... 영국 제국에 없어서는 안 될 기초가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대량 이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국 탈출이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것은 전 대륙을 하얗게 변화시켰다.'(p104)
'식민화에 대한 그들의 용어는 "플랜테이션'이었다. 존 데이비스의 말에 의하면 정착민들은 "좋은 곡식"이고, 원주민들은 "잡초"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사회적 원예술 이상의 것이었다. 이론상 플랜테이션은 식민화, 즉 정치적 변경 지역에 충성스러운 백성들을 내보내 정착지를 건설하는 고대 그리스의 관행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었다. 그러나 사실 플랜테이션은 오늘날 우리가 "인종 청소"로 알고 있는 것을 의미했다.'(p108)
'뉴펀들랜드 어장은 오랫동안 영국 어부들을 멀리 대서양으로 이끄는 유인이었다. 물론 아메리카에서 그 어장에 도달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웠다. 뉴잉글랜드 근해 역시 물고기가 가득했다. 마블헤드 앞바다에는 물고기가 풍부해서 "발을 적시지 않고도 물괴의 등을 밟고 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p114)
'1770년에 이르자 영국, 서아프리카 그리고 카리브 해 사이의 삼각 무역은 플랜테이션에 지속적으로 노동이 공급되게 했다. 아메리카 본토 식민지들은 지속적으로 그곳에 식량을 공급했다. 설탕과 담배는 영국으로 흘러들어가 상당 비율이 유럽 대륙으로 재수출되었다. 그리고 이 신세계 상품들로부터 이윤은 제국의 아시아 교역의 수레바퀴에 기름을 쳤다. '(p139)
[그림] 노예무역 (출처 : https://0jin0.com/tag)
4. 과학
19세기 영국이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해군의 지배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국 해군의 지배력은 산업 혁명 이후 발전된 과학인 '증기기관', '전신 케이블' 그리고 '철도' 등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한편, 영국 육군은 지도를 만드는 '지구 과학'의 뒷받침으로 제국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노예 제도에 반대한 전쟁과 아편을 위한 전쟁의 공통점은 영국 해군의 지배력 덕분에 가능했다. 증기력은 영제국을 접합시켜 주었다. 1850년대에서 1890년대 사이에 잉글랜드에서 케이프타운까지 여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2일에서 19일로 줄었다. 증기선은 훨씬 빠를 뿐 아니라 외양도 커졌다. 그래서 같은 기간에 평균 총 용적 톤수는 대략 두 배가 되었다. 1870년대에 이르면 인도에서 오는 전보가 몇 시간 안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고, 여왕은 전보를 주의 깊게 읽었다. 이것은 빅토리아 여왕 치세 동안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세계는 축소되었다... 1840년대 말에 이르자 전보가 육상 통신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고, 1850년대에 이르면 인도의 건설 공사는 전신이 폭동을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정도로 충분히 발전했다. 전신 케이블과 증기선 노선은 세계를 일제히 단축시키고 통제를 더 쉽게 만든 세 개의 금속 네트워크들 가운데 두 가지였다. 세번째는 철도였다.'(p242)
'빅토리아 시대에 일어난 세계 통신 혁명은 "거리의 소멸"을 완수했다. 단거리뿐 아니라 장거리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전쟁시에 거리는 극복되어야만 했다. 단지 영국 군사력의 주요 원천이 세계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이다.'(p243)
'빅토리아 중기 제국의 모든 구성 요소처럼, 인도 육군 역시 과학 기술(총을 생산하는 기술뿐 아니라 지도를 만드는 기술에도)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배적 기술에서 경위의(經緯儀)가 전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p246)
[사진] 증기선(출처 : http://qumalog.tistory.com/entry)
5. 교육
영국이 발달된 금융 제도,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계의 약 25퍼센트에 해당하는 육지와 대양을 지배하는 제국을 유지하는 것에는 자체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효율적인 제국을 통치하는 수단이 필요했으며 이는 관료 집단에 의한 통치로 현실화 되었다. 효율적인 제국의 관료집단은 어떠한 방식으로 양성되었는가? 이는 '주입식 교육'으로 제국의 이념을 공무원에게 입력시키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키플링은 <오티스 이어의 교육>에서, "제국의 작업에서 증기가 인력을 대체할 때까지", 항상 "단순 기계적인 일에 혹사당하고 소모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런 사람들은 "라이어트(ryot, 소작농민)나 쟁기를 끄는 수소와 더불어 국가의 기초가 되는 초석이라는 영예를 공유하는 일반 시민(열병의 희생양)이었다." 오티스 이어는 "공식적인 풍자에 의하면" 전형적으로 "눈이 움푹 들어간 사람으로, 스스로를 돕기에는 무력하지만 남을 해치고 훼방 놓고 괴롭히는 데에는 강하며, 불평불만으로 들끓는 나약한 군중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었다.'(p259)
<제국>에는 영국 제국이 다른 경쟁 제국(프랑스 제국, 에스파냐 제국 등)보다 앞설 수 있었던 이유를 위와 같이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 영국인인 저자의 주관적 한계 또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 윤리적 측면에서 일어난 심오한 변화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단지 수익성이 없게 되자 노예 제도는 폐지되었다고 주장되곤 하지만, 모든 증거는 이와 다르다. 실제로 노예 제도는 여전히 수익성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폐지되었다.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은 집단의 심정 변화다. 모든 위대한 변화들처럼, 그것 역시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1740년대와 1750년대에는 아메리카에서 소위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고 영국에서 감리교가 발흥하면서 그러한 이념은 더욱 광범위한 프로테스탄트 집회로 확산되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계몽주의의 가르침으로 인해 노에 제도 반대로 돌아섰다.'(p179)
우리는 미국 남북 전쟁(美國南北戰爭, American Civil War, 1861 ~ 1865)을 대표적인 노예 해방 전쟁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노예 해방이 남북전쟁 모두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노예 해방에 반대하는 남부의 주(州)와 북부의 주(州)간의 대립은 단순한 이데올로기 대립이 아닌 경제체제의 대립이었다. 산업화를 통해 북부는 노예제가 필요없어진 반면, 농업에 의존했던 남부에서는 노예제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미국남북전쟁이 발생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남북전쟁은 '노예 해방'이라는 아름다운 가치의 실현을 위해 일어난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1세기 이전에 일어난 영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에서는 영국에서의 노예제 폐지를 종교에 기반한 박애정신의 확대로만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저자가 경제적 체제 대립이라는 해석방법을 모르지 않았을테고,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과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그림] 남북전쟁(출처 : http://www.kamerican.com/GNC/new/)
또한, 이슬람 포로를 학살하는 영국군의 모습에 대해 묘사하고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는 부분을 보면 제국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그래도 영국 제국주의가 다른 곳보다는 인도적이었다는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십보 백보'차이정도 아닐까.
'이 내용을 읽으면 독일군 SS 장교들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 인들에게 행했던 방식이 떠오른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이 살인을 목격한 영국 병사들은 처음에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쳤고, 총이 발사되었을 때는 "분노와 야유의 함성"을 터뜨리며 장교의 행동을 큰 소리로 비난했다. 비슷한 상황에서 독일 병사들이 공개적으로 상급자를 비난한 일은 있다 하더라도 아주 드물었다.'(p221)
<제국>에서는 영국 제국주의가 다른 유럽의 제국주의와 달랐던 점을 상품시장, 노동시장, 문화, 정부, 자본시장 등의 분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고, 이를 통해 영국이 가장 강력한 제국을 만든 원인에 대해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원재료 공급지로서의 식민지 역할, 네덜란드와의 합병으로 인한 선진 금융 기법의 전수, 종교적/경제적 이윤을 추구한 자발적인 식민지 이주, 과학기술의 적절한 적용, 효과적인 제국 통치를 위한 교육 시스템 구축. 이러한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영국을 제국주의 시대의 승자(勝者)로 만들었음을 <제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저자 자신이 영국인인 관계로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다소 우호적인 목소리는 영화 <덩케르크 Dunkirk>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독자에게 선사하는데 이 부분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라 생각된다. 다음은 영국을 이어 새로운 제국인 미국(美國, America) 순서다. 다음은 저자의 또다른 저서인 <콜로서스 Colossus>를 통해 미국 제국주의를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