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 중동, 아시아 - 인류의 기원부터 현재까지
장 졸리 지음, 이진홍 외 옮김 / 시대의창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그림] 선사시대의 아프리카(p11)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 중동, 아시아 L'Afrique Atlas Historique et son environnement Europeen et Asiatique >는 다른 아프리카와 관련된 책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선사 시대의 아프리카 역사부터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계보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개체는 말라위와 케냐에서 발견된 호모루돌펜시스로 약 25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더 오래된 인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알려졌다. 약 4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프레안트로푸스 아프리카누스가 있고 350만년 전의 케니안트로푸스 플라티오프스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서 유라시아로 이주했음을 알려준다.(p9)


 대부분의 아프리카 역사서들이 선사시대 아프리카와 식민시대이전의 아프리카를 별도로 구분짓지 않고 한데 모아 서술하는데 반해,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에서는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였음을 시각적으로 보다 잘 보여준다. 책은 마치 중고등학교 사회과 부도를 보는 듯 풍부한 시각적 자료 제공을 통해 이전에 잘 알지 못한 아프리카 부족 역사를 제공하기에 우리는 아프리카 역사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현대 아프리카의 비극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림] 빈 회의(1815~ 1830) 시기의 아프리카(p111)


 독자들은 유럽의 여러 강대국에 의한 아프리카 침략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19세기 초반의 지도 모습에서 자연 환경에 따라 거주지가 바뀌온 여러 부족들의 영역을 확인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지형적 특성은 북부지역의 사하라 사막과 중부의 사바나 초원, 남부의 열대 우림, 동부의 고원지대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자연 환경의 영향으로 아프리카의 여러 부족은 선사 시대 이래 자유롭게 살고 있었지만, 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 분할 시에는 이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림]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1818~ 1939) 시기의 아프리카(p134)


 제국주의 시대 만들어진 현대의 아프리카 국경이 아프리카 부족의 분포와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것임을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는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이로부터 최근까지도 발생하고 있는 부족간 내전이 발생하고 있는 현재 아프리카 문제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시각적 자료를 통한 문제 제기는 이 책이 주는 장점이라 여겨진다.


 반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은 무엇인가.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으로 된 책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철저하게 유럽인의 입장에서 아프리카 문제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러한 점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이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을 제국주의 시대를 총평한 다음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자.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아프리카 식민지는 종주국에 거의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심지어 포르투갈은 더 가난해지기까지 했다. 한 예로 1960년 포르투갈의 1인당 국내총생산 GDP은 앙골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p156)... 식민지 건설의 경제적 수익이 형편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1960년 기준으로, 유럽 열강은 무역량에 견주어 너무 많은 비용을 해외 영토의 인프라 건설에 쏟아 부었다.... 이렇게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 든 투자비와 농업보조금은 식민지가 본국에 가져다준 수익보다 훨씬 높았다. 아프리카 식민지 건설로 인한 적자액이 총 700억 금 본위 프랑(1913)에 달했다. 이는 마셜 플랜으로 프랑스가 받은 원조금의 세 배에 해당한다.(p157)


 저자의 유럽의 아프리카 지배를 요약하면 유럽은 아프리카에서 손해를 입었으며, 식민시대를 통해 아프리카는 무거운 세금에서 해방되었고, 교육, 의료 서비스 등에서 큰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식민시대가 아프리카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암흑 시대는 아니었다...


 1939년 유럽인이 전체 인구의 0.4퍼센트에 불과했던 네덜란드 동인도의 경우, 국민의 세금 부담이 과거 이슬람 술탄 시대보다 낮았다. 영국령 인도의 경우에도 1941년 전체 인구 약 3억 3800만 명 중 유럽인의 수는 13만 5000명으로 0.004퍼센트에 불과했다. 무굴 제국이 주로 사치스러운 궁전을 유지하느라 부과했던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던 인도 납세자들에게, 식민 정부는 중간 과정을 없애는 방법으로 부담을 덜어주었다... 식민지 개발과 근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식민 본국에서 교육을 받고 서구화한 엘리트 계층이 등장한다... 의료 부문은 가장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다. 식민 통치기 말에는 영아 사망률도 크게 준다.(p157)... 끝으로, 유럽 식민지 몇 군데에서 후기에 발생한 분쟁(케냐, 알제리, 앙골라, 모잠비크)을 제외하면, 식민 통치기간은 대체적으로 비교적 평화롭게 번영한 시대였다.(p158)


 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대를 겪은 우리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일제 시대(1910 ~ 1945)의 시대에 철도, 도로, 항만 등의 건설이 이루어졌음을 근거로 일본이 우리 나라를 근대화시켰다는 주장과 책의 본문의 내용은 사실당 동일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일제 시대 이루어진 근대화로 인해 행복했으며 지금 행복한가?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 중동, 아시아>는 위와 같은 의미에서 <유럽인이 바라본 아프리카 역사 - 지도를 중심으로- > 라고 제목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른 책에서 제공하지 않는 선사 시대부터 대항해 시대 이전의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반면, 프랑스인인 저자의 편향된 시각이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이 책은 아프리카 역사 부도로만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아프리카 역사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인의 입장에서 저술된 책을 추가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8-05-27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지도 크기가 넘 작다는 걸 봐도 충분히 이해되는 책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5-27 18:49   좋아요 0 | URL
역시 북다이제스터님의 통찰력은 날카롭기만 합니다! ㅋ 한 방에 정리되네요.

2018-05-27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7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18-06-04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를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현재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내전들이 따지고 보면 19세기 서구제국주의자들이 그어놓은 컴퍼스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호랑이 2018-06-08 15:32   좋아요 1 | URL
NamGiKim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프리카의 문화와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인위적인 분할이 아프리카를 내전으로 몰고 있는 주요 원인이라 생각됩니다. 피식민지인들을 배려하지 않은 제국주의 시대의 상처때문에 지금도 아프리카의 피가 흐르고 있다 여겨집니다...

NamGiKim 2018-06-08 12:07   좋아요 1 | URL
따라서 아프리카 내전의 원흉은 서구 제국주의자들이라 볼 수 있다 봅니다.
 
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 ~ 1875)의 <안데르센 동화전집>은 안데르센의 작품 168편을 모아 놓은 전집이다. 본문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어공주>, <못생긴 새끼 오리>,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등 여러 동화가 담겨 있다. 안데르센은 머리말을 통해 자신의 동화 유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비평가들이 동화집에 대한 평가를 꺼려하자, 다시는 동화를 쓰고 싶은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동화와는 거리가 먼 작품에 매달리고 있을 때 "인어공주"의 줄거리가 머릿속을 맴돌아 다시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나는 동화와 이야기를 즐겨 들었다. 어릴 때 들었던 이런 이야기를 옮겨 쓰면서 고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될 때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에 신선함을 가미했다. 이 책에 나온 이야기 중 <부싯깃 통>, <장다리 클라우스와 꺼꾸리 클라우스>, <못된 아이>, <길동무>는 이렇게 쓰여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아나크레온의 시에 <못된 아이> 이야기가 나온다. <꼬마 이다의 꽃>, <엄지 아가씨>, <인어 공주>는 창작한 것이다.(p11) <머리말> 中


 머리말을 통해 <안데르센 전집>에 실린 동화의 성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덴마크 전래 민담을 작가가 적절하게 고친 이야기들이며, 다른 하나는 작가의 창작 작품들이다. 유래가 다른 이들 동화는 각각 어떤 특성이 있는지 이번 리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1. 전래 동화 : <못된 아이> <길동무>에 담긴 권선징악과 해악


 <안데르센 동화전집> 속 중에서 전래 동화로 전해 지는 <못된 아이>와 <길동무> 속의 이야기에는 전형적인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성격과 해학(諧謔, Humour)이 담겨 있다. <못된 아이> 속 큐피드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전래 도깨비의 모습을 연상하거나, <길동무>에서 경상도 아랑전설(阿娘傳說) 속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래 동화 속 이야기들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기초했음을 깨닫게 된다.


  큐피드는 못된 아이다. 절대로 큐피드와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큐피드가 여러분의 늙은 할머니 심장을 쏘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할머니는 아주 오래 전에 화살을 맞아서 이제 아픔을 느끼지 못하지만 결코 잊지 못한다. 짖궂은 큐피드! 이제 여러분도 그를 알게 될 것이다. 큐피드가 얼마나 못됐는지를!(p59) <못된 아이> 中


 "아닐쎄,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네. 난 자네에게 진 빚을 갚았을 뿐이네. 교회에서 나쁜 사람들이 시체를 내던지려 했던 일을 기억하나? 자넨 그 죽은 남자가 무덤 속에서 편히 쉬도록 전 재산을 내놓았네. 내가 바로 그 죽은 남자라네." 말이 끝나자마자 길동무는 사라져 버렸다.(p76) <길동무> 中


2. 창작 동화 : <인어공주> <눈의 여왕> 에 담긴 철학적, 종교적 의미


[사진] 인어공주 공식 포스터(출처 : 위키백과)


 <안데르센 동화전집> 속 창작동화는 전래 동화에 비해 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작가가 애정을 갖고 있는 <인어공주>를 통해 철학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인어공주>는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으며, 동시에 줄거리가 흥미롭기 때문에 아이들도 즐겨 읽을 수 있다.(p11) <머리말> 中 


 호기심 많은 인어공주는 할머니에게 사람에 대해 질문을 하는데,  할머니(안데르센 동화에서 할머니의 이미지는 '자비로운 현자'로 표현된다)는 인간만이 가지는 '불멸의 영혼'을 자신의 손녀에게 말해준다. 


 "그들도 죽는단다. 우리보다 생명이 훨씬 더 짧지. 우리는 삼백 년까지도 살 수 있지. 우리에겐 무덤도 없고 죽으면 물거품으로 변하지만 말야. 우리는 불멸의 영혼이 없기 때문에 다시는 생명을 얻지 못한단다. 우리는 해초와 같아서 일단 꺾이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지. 하지만 인간은 다르단다. 인간은 죽어서 흙이 된 후에도 영원히 사는 영혼을 가지고 있지. 영혼은 맑은 공기를 뚫고 반짝이는 별들 너머로 간단다. 우리가 물 위로 떠올라 인간 세계를 보듯이 인간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찬란한 곳으로 올라가지."(p85) <인어공주> 中


 그리고, 인어공주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자 열망하게 된다. (어린이판) <인어공주>에서는 인어공주가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져, 인간이 되기를 희망했다는 것으로 편집을 하지만, 원본에서 말하는 바는 다르다. '사랑'으로 이야기를 바꾼 것은 '불멸의 영혼'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겠지만, 이로 인해 <인어공주>의 성격은 크게 달라지게 된 부분은 아쉽게 느껴진다. 


 "우리에겐 왜 불멸의 영혼이 없나요?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이 되어 별 너머에 있는 찬란한 세계에 가 볼 수 있다면 제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겠어요." 인어공주가 애처롭게 말했다... "제가 죽으면 물거품이 되어 바다 위를 떠다니겠죠? 파도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름다운 꽃도 붉은 해도 보지 못하겠죠? 어떻게 하면 영혼을 얻을 수 있나요?"(p85) <인어공주> 中


  (전집)<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영혼을 얻을 수 있다는 할머니 말을 듣고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게 된다. 원본에 따르면 인어 공주에게 왕자는 불명의 영혼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지, '목적'이 될 수 없었다.


 '틀림없이 왕자가 탄 배일 거야. 내게 소망과 행복을 가져다줄 왕자 말야. 꼭 왕자를 얻고 말테야. 영혼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p86)  <인어공주> 中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와 거래한 파우스트(Faust)처럼 인어공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마녀에게 목소리를 주고, 사람이 된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에 소통할 수 없었던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결국 물거품이 되버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말을 우리는 비극(悲劇)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제 목소리를 가져가 버리면 제겐 뭐가 남죠?"

 "아름다운 모습이지. 우아한 걸음걸이, 그윽한 두 눈, 이것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어. 아직도 그럴 용기가 있니?"(p88) <인어공주> 中


[그림] 인어공주와 마녀와 거래 (출처 : http://oddidragon.tistory.com/24)


 소통 대신 외적인 아름다움을 선택한 인어공주의 선택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는 불멸의 영혼을 얻기를 희망했고, 비록 사람이 되어 사랑을 얻지는 못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어공주>는 진정한 해복한 결말로 끝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넌 공기의 딸들과 함께 있단다. 인어에겐 영혼이 없지.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영혼을 가질 수 없어. 인어가 영혼을 얻으려면 다른 힘에 의존해야 한단다. 공기의 딸들도 영혼이 없지만 착한 일을 하여 스스로 영혼을 만들 수가 있지. 삼백 년 동안 착하게 살면 불멸의 영혼을 얻어 인간들이 누리를 행복을 누릴 수 있단다. 가련한 인어 공주야, 넌 온 마음을 다해 우리처럼 영혼을 얻으려고 노력했어.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면서 말야.그 고통이 너를 너를 공기의 정령들 세계로 끌어 올린 거야. 이제부터 삼백 년 동안 착하게 살면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 있단다." 인어 공주는 눈을 들어 겸허하게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느꼈다.(p96) <인어공주> 中


  전집에 수록된 작품 중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눈의 여왕> 에서도 철학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이성의 거울'이라 하는 호수에 살고 있는 눈의 여왕은 주인공인 카이에게 '이성'이라는 놀이에서 '영원'이라는 글자를 맞추게 하지만, 글자를 맞추지 못한다.


[그림] 눈의 여왕(출처 : 위키백과)


 여왕은 그 호수를 '이성의 거울'이라고 불렀으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카이는 멍이 든 것처럼 추위로 온몸이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카이는 뭘 만들려는 것처럼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열심히 이리저리 맞추었다. 카이가 하고 있는 놀이는 차가운 이성이었다. 카이의 눈에는 자신이 만든 모양이 매우 훌륭하고 대단한 것으로 보였다. 카이는 얼음 조각들을 짜 맞추어 여러 가지 글자를 만들었지만, 아무리 애써도 만들어지지 않는 글자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원'이라는 글자였다. 눈의 여왕은 카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글자를 맞춘다면 넌 네 자신의 주인이 되지."(p295) <눈의 여왕> 中


 차가운 이성으로 맞추지 못한 '영원'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맞출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눈의 여왕>은 마무리 된다. 작품 속에 담긴 기독교적인 성격은 다른 안데르센의 창작 작품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 등에서도 발견된다.


 카이와 게르다는 의자에 앉아서 서로 손을 꼭 잡았다. 눈의 여왕이 살던 성에서 경험했던 추위와 황량함이 악몽처럼 기억에서 사라졌다. 할머니가 햇볕을 쬐며 앉아서 성경 구절을 큰 소리로 읽었다. "너희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p299)  <눈의 여왕> 中


 왕비의 창백한 두 뺨이 장밋빛으로 물들더니 두 눈이 커다랗고 또렷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는 그 책갈피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피에서 피어난 장미였다. "이제 알겠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를 보는 이는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왕비가 부르짖었다.(p428)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 中


 <안데르센 동화전집>에는 이처럼 다른 유래를 가진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어떤 전래동화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담겨 있는 반면, 창작 동화에는 안데르센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영원', '사랑' 등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서로 다른 유래를 가진 이야기들이 묶여서 어른들에게는 삶의 의미를, 아이들에게는 즐거움과 흥미를 주기에 <안데르센 동화전집>이 모든 세대에 널리 읽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5-23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3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5-23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데르센 동화집 읽은지가 오래되어서 다시 읽으면 새로울 것 같아요.
전에 읽었던 것도 잘 기억나지 않는 내용이 많고, 예전에 읽었던 것과 다른 내용도 있는 것 같아서요.
겨울호랑이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5-23 20:11   좋아요 2 | URL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과 어른이 되어서 읽는 동화책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 친구 같던 책을 지금와서 살펴보니, 현인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네요. 서니데이님도 하루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밤 되세요^^:)

북다이제스터 2018-05-23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좀 생각이 다른데요.^^ 아이들을 획일적 일관된 방향으로 길들이는 <안데르센 동화집>이 아이들에게 금서가 될 날을 꿈꿔봅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18-05-23 21:11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전래 동화 등이 어린이들에게 기존 사회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 여겨집니다. 동시에, 세대 간 유대감 형성 또는 문화의 전승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긍정적인 역할이라 여겨집니다.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전래 동화라 생각됩니다. 더 나아가 이와 관련된 문제는 전래 동화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교육‘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하지 않나 판단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5-23 21:17   좋아요 1 | URL
아, 미처 생각해 보지 못 했습니다. 세대 간 유대감 형성과 문화의 계승이 중요한 일인지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생각거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8-05-23 21:32   좋아요 0 | URL
예전보다 동화책도 많이 나오고, 유튜브 등 영상매체도 많아서인지 아이들(연의 포함)이 예전만큼 전래동화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안데르센 동화집>의 위상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다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는 어느 순간에는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도 하게 되네요. 저 역시 북다이제스터님 말씀 덕분에 동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AgalmA 2018-05-23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주인공들은 하지 말라는 걸 해서 일을 키우고 고생을 사서 하죠. 하긴 인간도 이 버릇 못 버려서....
그리하야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 먹지 말라 운운, 십계명을 인간에게 조건으로 내거는 거, (이건 좀 다른 경우지만)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쳐라 등등 그것들은 이야기의 은유 구조지 사실이라고 믿지 않게 된단 말이죠-ㅅ-!

겨울호랑이 2018-05-23 21:51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멀리 갈 것 없이, 왜 저는 부모님께서 공부하란 말을 듣지 않아서 고생을 사서 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건 은유가 아니라 팩트인 듯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5-23 22:07   좋아요 2 | URL
^^:) AgalmA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으니 긍정하게 되네요. 물론, 전부 다는 아닙니다만. ㅋ 저 역시 많이 부족합니다만, <성경>안의 의미를 해석하고 받아들일 때, 당시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신에 대한 여러 입장을 경청하게 되네요.

2018-05-23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23 22:32   좋아요 1 | URL
너무 까불대다 혼날 거 같아서🙏😅🙏

2018-05-24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4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8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8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 ~ 1856)의 삶을 그린 평전이다.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산숭해심(山崇海深)으로 정리한 추사의 예술과 학문세계가 시기별로 소개되고 있으며, 본문에 많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 볼거리 또한 풍부하다. 책에서 서술된 추사의 삶에서 큰 분기점을 고른다면 1809년 아버지를 따라 자제군관의 지위로 연경(燕京)을 방문하여 여러 학자들과 교류한 일과 1840년 제주도 유배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연경을 방문한 추사는 담계 옹방강(覃溪 翁方綱, 1733 ~ 1818)과 운대 완원(芸臺 阮元, 1764 ~ 1849)과 특히 깊은 친분을 유지하면서, 이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추사는 완원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뜻을 세워 자신의 아호를 완당(阮堂)이라 했고, 연행 후 중년으로 들어서면서 추사보다 완당이라는 호를 더 많이 사용했다.(p71) <추사 김정희> 中


 연경 방문 이후 추사는 청나라 학자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게 되었다. 이는 추사의 학문과 예술세계를 깊게 한 반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추사가 거만하다는 인상을 갖게 하는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제주도 유배 이전 추사의 글씨는 중국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는데, 이러한 그의 서체는 한 세대 이전의 서예가 원교 이광사(員嶠 李匡師, 1705 ~ 1777)와 많이 비교되었다. 저자는 두 사람의 서체를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원교의 <대웅보전>과 추사의 <무량수각> 두 글씨는 두 사람의 세예 세계가 얼마나 달랐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무량수각>은 기름진 획의 예서풍 글씨이고 <대웅보전>은 굳센 획에 리듬이 있는 해서체이다.(p243) <추사 김정희> 中


 추사는 자신과 다른 서체를 가진 원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는데, 제주도 유배 이전 대흥사에 들려 원교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현판을 내리게 할 정도로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청명 임창순(靑溟 任昌淳, 1914 ~ 1999)의 글에서도 원교에 대한 추사의 박한 평가를 확인하게 된다.

 

 김정희는 <서원교필결후 書員嶠筆訣後>에서 "세상 사람은 원교의 글씨 이름에 떨려서 그의 학설을 절대적인 것으로 신봉했다" 하였으며(p226)... <서결 書訣>에 대하여 거의 완전한 곳이 없을 정도로 혹평하였다.(p227) <청명 임창순> <원교 이광사전(員嶠 李匡師展)에 부침>中


 자부심이 강한 김정희에게 제주도 유배는 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지금은 비행기로 편하게 갈 수 있는 제주도는 과거에는 높은 파도와 잦은 풍랑등으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지난 2016년에 제주도에 배를 타고 갈 일이 있었다. 큰 배였음에도 비가 날리는 검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추사가 살았던 과거에는 어떠했을까. 


[사진] 추사는 저 검은 제주도 바다 저편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by 겨울 호랑이)


 제주는 옛 탐라인데 큰 바다가 사이에 끼어 있어 이곳을 건너가려면 보통 열흘에서 한 달 정도가 소요되곤 했다. 그런데 공이 이곳을 건널 적에는 유독 큰 파도 속에서 천둥 벼락까지 만나 죽고 사는 것이 순간에 달린 지경이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고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했고, 뱃사공도 다리가 떨려 감히 전진하지 못했다.(p245) <추사 김정희> 中


 들어가는 것만큼 험난했을 약 10여년의 제주도 유배생활을 통해 추사는 자신만의 필체인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하게 되었다. 걸작 <세한도 歲寒圖> 또한 이 시기에 그려진 것을 생각해본다면, 제주도 유배 시기를 통해 김정희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던 '완당'에서 '추사'라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진] 세한도 (출처 : 위키백과)


 서체의 기본은 해서(楷書)와 행서(行書)인데 (제주도) 유배 이후 추사의 간찰 서체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금석기와 예서의 맛이 들어가면서 필회개에 강약의 리듬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편지의 글씨들은 한마디로 해서, 행서, 예서(隸書)의 필법이 서로 뒤엉켜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아무 잘못이 없고 오히려 필획의 굳센 느낌만 강하게 다가온다.(p344) <추사 김정희> 中


 제주도 유배 이후 추사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예술 세계를 인정하는 넓은 마음도 갖추게 되었다. 제주 유배 이전 비판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글씨도 다시 달 것을 정중하게 요청하는 추사의 모습 속에서 한결 원숙해진 대인(大人)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원교는 원교대로 한 생(生)이 있고, 나름의 성취가 있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내가 원교의 시절에 태어났으면 원교만 한 글씨를 썼을 것인가. 사실 원교가 왕희지를 따른 것 자체야 잘못이 없지 않은가. 세상이 의심하지 않은데 어떻게 원교만이 그것이 왕희지의 진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p356)<추사 김정희> 中


 추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제주도 유배를 통해 플라톤(Platon, BC 427 ? ~ BC 348 ?)이 말한 '동굴(spelaion)의 비유'를 떠올리게 된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평생을 어둠 속에서 묶여 있다가 지내던 이가 동굴 밖의 햇빛을 바라보게 되는 상황을 <국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가령 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풀려나서는, 갑자기 일어서서 목을 돌리고 걸어가 그 불빛 쪽으로 쳐다보도록 강요당할 경우에, 그는 이 모든 걸 하면서 고통스러워할 것이고, 또한 전에는 그 그림자들만 보았을 뿐인 실물들을 눈부심 때문에 볼 수도 없을 걸세.(515c)... 그러나 만약에 누군가가 그를 이곳으로부터 험하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통해 억지로 끌고 간다면, 그래서 그를 햇빛 속으로 끌어내 올 때까지 놓아 주지 않는다면,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또한 자신이 끌리어 온 데에 짜증을 내지 않겠는가?(515e)... 그러기에, 그가 높은 곳의 것들을 보게 되려면, 익숙해짐(synetheia)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네.(제7권 515e) <국가, 정체> 中  


 추사가 기득권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보지 못했을 보다 넓고 큰 경지를 제주도 유배를 통해 끌려 가서 보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그 시기가 10여년이 되었기 때문에 그가 바라본 아름다운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유배 시기는 추사에게 '고통스럽지만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단련(鍛鍊)의 시기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추사 김정희>에서 저자는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 ~ 1799) 일화를 서두에 언급하면서 그의 파란만장했던 생애가 그의 뛰어난 글씨를 연계하는 분위기를 피워낸다. 만약, 추사가 글씨를 쓰지 않고 사상가로 남았다면 그의 인생은 편안했을까?


 김노경이 우리 집 아이의 글씨라고 대답하자, 채제공이 말하기를 "이 아이는 필시 명필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오. 그러나 만약 글씨를 잘 쓰게 되면 반드시 운명이 기구할 것이니 절대로 붓을 잡게 하지 마시오. 그러나 만약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게 하면 크게 귀하게 되리라" 했다고 한다.(p30)... 추사가 글씨를 잘 쓰게 되면 운명이 기구할 것이나 문장으로 나아가면 크게 귀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속뜻은 과연 무엇일까?(p31) <추사 김정희> 中


 글씨를 쓰면 기구한 운명이 될 것이나, 문장에 전념하면 이름을 떨칠 수 있다는 채제공의 예언은 분명 흥미로운 부분이 있지만, 추사의 글씨와 학문을 분리해서 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추사의 글씨가 그의 학문 세계를 담아내기 때문이 아닐까.


 금강산의 만이천봉은 모두가 절경이며 볼 적마다 새로운 것처럼 추사(秋史)의 글씨도 얼핏 보면 비슷한듯하나 모두가 특수한 형태를 지니고 웅장한 만폭, 구룡이나 섬세한 만물상처럼 볼 적마다 보는 사람의 넋을 뺏고 만다. 그러므로 몇 번을 거듭하더라도 또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추사(秋史)는 명필이기에 앞서 대경학자(大經學者)이다. 학자로서의 성과는 오히려 글씨에 묻혀서 바로 아는 사람이 적다. 저술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으나 그는 중국에서 들어온 고증학을 집대성한 학자다. 그러므로 글씨가 학문에 근거를 두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p220) <청명 임창순> <추사 김정희 명작전(秋史 金正喜 名作展)>中


 <추사 김정희> 뒷부분에는 과거 <완당평전>을 저술했던 저자가 이를 절판시킬 수 밖에 없었던 사연과 <추사 김정희>를 쓰게 된 이유 등이 담겨 있다. 그러한 사연 때문일까. 책을 읽으면서 과거 청나라의 영향을 받던 '완당'이 자신만의 세계를 갖춘 '추사'로 거듭나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추사 김정희>속에서 뛰어난 학자이자 예술가의 모습과 함께 시간에 따라 원숙해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기에 추사에 대한 좋은 평전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좋은 책을 선물해주신 이웃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5-22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2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2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2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22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사가 제주 갔다 오면서 인물 됨됨이로서도 학자로서도 완성되는 부분이 너무 감동스럽더라고요! 사과를 받아줄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없었던 게 슬프던;_;)! 추사 글씨는 볼 때마다 어줍잖게 따라하고 싶어서 근질근질ㅜㅋㅜ)...뭐 나만 그런 건 아니니까ㅎㅎ;;...일단 벼루 열 개를 아작내고 붓 천 개를 몽당붓으로 만들어야 가능하다는데ㅎㄷㄷ

겨울호랑이 2018-05-22 22:46   좋아요 1 | URL
정말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하란 말도 있는 것 같아요. 이젠 AgalmA님의 ‘1일 1글씨‘ 개봉인가요? 기대해 봅니다!^^:) 생각해보니 「세한도」처럼 ‘1일 1그림‘에 추사체로 작품 설명을 ‘시‘로 하시면 3박자를 갖춘 예술 작품이 되겠어요!

AgalmA 2018-05-22 22:57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글을 담은 문인화처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긴 했는데 까마득한 저의 실력에ㅜㅜ....

겨울호랑이 2018-05-22 23:02   좋아요 1 | URL
태어나면서부터 문인이 있나요?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겠지요. AgalmA님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참, 음악까지 넣으면 거의 4D수준의 예술이.... 겨울호랑이님께서 AgalmA님께 부담을 백배로 선믈하셨습니다 ㅋㅋ

AgalmA 2018-05-22 23:14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이 옹방강과 완원의 역할을ㅎㄱㅎ!
얘얘~ 연의 가르치기도 힘든 분이야...ㅎㅎ;

겨울호랑이 2018-05-22 23:17   좋아요 1 | URL
ㅋㅋ 저는 믹스커피를 즐겨마시는초의선사 역을 맡겠습니다.

2018-05-22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2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마천(司馬遷, BC 145 ? ~ BC 86 ?)의 <사기 史記>는 중국 24史 정사 중 으뜸으로 꼽히는 책이다. 그 중 <본기 本紀>는 중국 고대부터 한 무제(漢 武帝)까지 시기 동안 제왕(帝王)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한 책으로 역자인 김원중 교수는 <사기 본기>의 의의를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한 사마천의 역사관에서 찾는다. 

 

 본기의 서술 체계를 보면, 반드시 제왕의 역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던 사람을 실권자로 보아 선정의 기준을 삼았다고 볼 수 있다... <항우 본기>를 설정하고는 오히려 서초 西楚의 연도를 기록하지 않고 '한나라 원년' 혹은 '한나라 2년'의 형태로 기록하였는데, 이로써 '항우 열전'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며 <항우 본기>라 한 것은 정명 定名의 원칙에 위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역사가 유지기 (劉知幾, AD 661 ~ 721)가 <사통 史通>의 곳곳에서 반고를 기리고 사마천을 깎아내리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 비롯된다.(p30) <사기본기 史記本紀> 역자 해제 中


 반면, <사통>의 저자 유지기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사기> <항우 본기>에 대해 비판한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기 본기>의 역자 는 제왕의 위치보다 권력의 실질에 초점을 맞춰 사마천의 역사관을 옹호하는 반면, <사통>의 저자는 <본기>와 <세가>의 모호한 분류 기준을 비판하고 있다.


 사마천이 <사기>에 천자를 본기로, 제후를 세가로 한 것은 참 합당한 일이다. 다만 본기/세가/표/지/열전과 같이 분류의 범주는 정해졌음에도 그 구분의 실제 내용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후대의 학자들이 그 의미를 상세히 알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p107)... 항우 項羽는 군웅의 한 사람으로 과분한 자리를 차지했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더욱이 군주였던 적도 없으므로, 옛날의 사례로 비춰본다면 제나라 무지 無知나 위나라 주우 州吁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어떻게 그 이름자를 피하고 왕이라 부른단 말인가?(p108) <사통 史通> 내편 中 


 <사통>의 <사기>비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유지기는 <사기>의 사마천 기록에 간략하게 기록되거나, 생략된 내용이 많기 때문에 다른 자료를 참고하지 않는다면, 내용 평가가 어렵다고 비판한다. 


 <사기>에는 이들 역사서에 들어 있는 아름다운 일 가운데 생략되고 누락된 것이 매우 많았다. 만일 옛 기록을 가지고 현재의 기록과 비교하고...... 그러므로 태사공(사마천)도 당연히 같은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사마천의 기록은 매우 부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반고가 사마천에 대해 부지런했다고 칭찬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p806) <사통 史通> 외편 中 


 또한, 유지기는 <사기>의 기록에서 역사의 흐름을 '천명(天命)'에 의존한 서술 또한 비판하고 있다. 역사(歷史)가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을 기록한 자료라면 그 원인과 결과가 인간에게 한정되어야 함에도, '하늘의 뜻'을 여기에 끌어들이는 것은 역사가로서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이 유지기의 입장이다.


 (사마천은) 하늘이 바야흐로 진 秦나라에게 천하를 평정하도록 했으니, 아직 그 사업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도 위나라가 이윤 伊尹같은 인물을 얻은들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성패를 논할 경우에 사람들이 한 일을 중심으로 생각해야지, 굳이 천명에 미루어 말하기 시작하면 그 이치가 어긋나게 되어 있다.(p813) <사통 史通> 외편 中 

 

 역사가인 사마천이 '천명'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사기 본기> 의 시작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기 본기>는 <오제 본기 五帝 本紀>부터 시작된다. 신화(神話)의 시대로부터 역사가 기록된 이유를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일찍이 서쪽으로는 공동 空桐에 이르렀고 북쪽으로는 탁록을 지나왔으며, 동쪽으로는 바닷가까지 가고 남쪽으로는 바닷가까지 가고 남쪽으로는 강수와 회수 淮水를 건넌 적이 있는데, 때때로 장로 長老들이 황제, 요, 순을 칭송하는 곳에 가 보면 풍속과 교화가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달라, 이것들을 총괄해 보면 옛 글의 내용에 어긋남이 없고 사실에 가깝다.(p70) <사기본기 史記本紀> 中


 사마천은 위와 같이 사료(史料)를 확보하기 위해 곳곳을 직접 방문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신화 역시 인간의 이야기라는 사실과 역사의 흐름에는 개별적인 인과 관계 뿐 아니라 보편적인 흐름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천명'이라 부른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본다. 이와 같은 점을 살펴봤을 때 <사기 본기> 역사 서술의 특징은 '실질' 권력 위주의 역사 서술과 신화의 시대를 역사의 시대로 기술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독창적인 사마천의 <사기>의 내용은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이 기록물 자체는 한 인간이 궁형(宮刑)의 치욕을 딛고 기록을 남기고자 노력한 결과물로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준다고 생각된다.


PS. <사기 본기> 중 <오제 본기>는 중국 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화는 과연 얼마만큼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 <중국신화전설> 속 고대 동방의 어느 나라와 관련된 기록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사진] 무궁화(출처 : 위키백과)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은 장수국 중의 하나인데 이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가 수명이  매우 길었다. 그들은 가축과 들짐승을 잡아 먹었으며 그 나라에서 많이 생산되는 무궁화(木槿花)를 쪄서 일상 식품으로 먹기도 했다 무궁화는 관목(灌木)에 속하는 나무에 피는 꽃인데 붉은색과 보라색, 그리고 흰색의 여러 가지가 있었다.(p391)... 수명이 짧은 꽃(무궁화)을 먹는 그들이 장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장수는 어쩌면 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군자로서의 품덕이나 자애로운 마음씨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인자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오래 살았다고 하니까... 군자국 사람들은 옷과 모자를 모두 격식에 맞추어 차려입었고 허리에는 보검을 찼으며 모든 사람들이 각자 호랑이 두 마리를 하인으로 부렸다.(p392) <중국신화전설 1> 中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05-17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 두 마리가 하인이고, 무궁화를 일상적으로 먹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요.
요즘 차로 마시는 히비스커스가 무궁화속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맛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편안한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5-17 22:25   좋아요 1 | URL
^^:) 무궁화 차가 있군요. 아마 호랑이를 하인으로 둔 조상님들 입맛이 요즘 우리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 군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봅니다. 서니데이 군자님 편한 밤 되세요!^^:)

2018-05-18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7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2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2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22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은 어떤 하인 역할을....(노...농담요;)
지금은 환생해서 연의 하인 아빠 역.

겨울호랑이 2018-05-22 22:51   좋아요 1 | URL
ㅋㅋ 세상의 모든 아빠가 딸아이의 하인이겠지요. 아내의 머슴이기도 하구요..ㅋㅋ 물론, 누군가는 마님의 마당쇠일 것 같다는 19금 상상도 해봅니다 ㅋㅋ
 
민족이란 무엇인가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1
에르네스트 르낭 지음, 신행선 옮김 / 책세상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민족(民族, nation)


 이 말은 다의적(多義的)이어서 국민 ·부족 ·종족 등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으며, 또 실제로는 이들과 부분적으로 중복되는 요인도 있다. 그러므로 민족은 언어, 거주하는 지리적 범위, 경제생활과 문화, 동류로서의 공속의식(共屬意識)을 공통으로 가지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집단이다. 이들 여러 요인이 상호관련하는 하나의 전체로서 통일되고, 개개의 요인이 단독으로 민족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들 여러 요인이 복합하여 어떤 민족이 생성 발전하는 과정 중에 그 민족에게 고유한 특징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민족성이다. [출처 : 두산백과]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 1823 ~ 1892)는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민족' 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데,  '도덕적 양심' 또는 '정신적인 원리'라 불리우는 이 기준을 통해 한 민족을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은 인종의 노예도, 언어의 노예도, 종교의 노예도, 강물의 흐름의 노예도 산맥의 방향의 노예도 아닙니다. 인간들의 대결집, 건전한 정신과 뜨거운 심장이야말로 민족이라 부르는 도덕적 양심을 창출합니다.(p83)  <민족이란 무엇인가> 中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영혼이며 정신적인 원리입니다. 한쪽은 과거에 있는 것이며, 다른 한쪽은 현재에 있는 것입니다. 한쪽은 풍요로운 추억을 가진 유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이며, 다른 한쪽은 현재의 묵시적인 동의, 함께 살려는 욕구, 각자가 받은 유산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입니다.(p80)  <민족이란 무엇인가> 中


 저자에 따르면 민족을 구성하는 여러 요인인 언어, 종교, 지리, 사회 등 여러 문화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의지'만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아마도 '유럽'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게르만이라는 공통된 종족(種族)의 출발점 위에 기독교라는 공통된 종교(宗敎), 자신들 고유언어(言語)의 망각은 유럽 민족 구분에서 종족, 종교, 언어의 문제를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특수한 유럽의 역사적 바탕 위에서 출발한 르낭의 민족 정의가 다른 지역, 다른 시대에도 통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 여겨진다.


 민족 nationalite의 존재 기반을 제공했던 원칙을 세계에 도입했던 것은 바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었습니다...  원칙적으로 베르됭 조약은 계속되는 분열의 길을 제시한 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에스파냐는 바로 오늘날 우리가 그 개화를 목격하고 있는 완전한 민족적 실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p58) <민족이란 무엇인가> 中


 본질적으로 두 가지 상황이 그러한 결과를 낳는 데 기여했습니다. 우선은 게르만 사람들이 그리스 민족, 라틴 민족과 지속적인 접촉을 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상황은 정복자 쪽에서 자신들 고유의 언어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p59)... 이로써 게르만족 침략자들의 풍속이 가지고 있는 극도의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흘러 그들이 강요했던 유형 자체가 민족국가의 전형이 되는 중요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p60) <민족이란 무엇인가> 中


[그림] 2016년 현재 유럽 연합 회원국 현황(출처 : 연합뉴스)


 게르만족과 기독교, 언어의 공통성을 바탕으로 저자는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을 통해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이 힘을 합쳐 유럽연방을 구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EU)을 연상시키는 '유럽 연방'이라는 개념은 당시에는 실현되지 못하지만, 2차례에 걸친 아편전쟁(阿片戰爭, Opium Wars)과 아프리카 분할 등 제국주의 침략에서는 적극적인 동맹과 협조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미합중국을 제쳐놓고 생각하자면, 유럽의 지적, 도덕적 위대함은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영국 사이의 동맹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동맹을 파기하는 것은 진보의 조종(弔鐘)이 될 것이다. 이 세 강대국이 서로 단결했을 때라야 세계를 지휘할 수 있을 것이다.(p16)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中


 평화는 유럽의 공통된 이해에 의해서만, 나아가서는 위협적인 태도로 넘어가고 있는 중립국들 간의 동맹에 의해서만 확립되고 유지될 수 있다.... 가장 강력한 국가에 대항하여 유럽 공동체의 안녕에 유용한 것이라고 판단되는 결정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다양한 국가들의 개입, 중재, 동맹 안에 있다.(p43)... 이 힘이 연방 협정에 의해 그들 사이에 연계된 유럽 합중국 Etats-Unis d'Europe의 핵심이 되기를 기대해보자.(p44)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中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저자가 주창한 유럽연방의 기본원리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내부적으로는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 self-determination)가, 외부적으로는 유럽연방의 원칙이었으며, 이를 통해 만들어진 하나된 유럽은 세계의 지도국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여겼다.


 사실 민족자결주의는 사소한 부분을 규명하려 하기보다는 너그럽게 받아들여져야만 한다.(p29)... 독립적인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쟁의 참화에서 인류를 벗어나게 하기에는 부적절하다.(p50)... 민족자결주의라는 원칙에 유럽 연방의 원칙, 즉 모든 민족들에 우선하는 집단의 원칙을 결합시킬 때에야 비로소 전쟁의 종말을 보게 될 것이다.(p51)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中


 <민족이란 무엇인가>와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이라는 두 개의 글을 종합해 볼 때 르낭의 글은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민족이란 정신적 원리를 공유하는 집단이고, 당시 갈등관계였던 프랑스와 독일이 공통된 이해관계 속에서 유럽이라는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 평화롭게 살아가야 하며, 이를 통해 유럽은 번영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의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우리는 유럽민족과 그들의 민족의식 그리고 유럽 연합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2016년 브렉시트(Brexit), 여러 가지 안건에 대한 EU회원국들의 내부 갈등 문제를 생각한다면 '유럽인'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르낭이 내린 민족의 정의를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반면, 분단된 지 70년이 흘렀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통일을 원하는 우리의 경우를 보더라도 '민족 = 정신적인 원리'라는 르낭의 정의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또한, 그가 말한 '유럽'이라는 개념이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는가 하는 의심 또한 가지게 되고, 이러한 부분들은 한계라 여겨진다.


[사진]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출처 : 한국일보)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유럽인들이 바라보는 유럽의 모습을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는 점과 유럽 공동체의 성격을 유럽인이 아닌 이들에게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프리쿠키 2018-05-15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르낭의 이 저작에 대한 한계점을 지적하신 부분 공감합니다.
오랫동안 점철된 독일과 프랑스의 땅 따먹기(알자스와로렌)에 대한 프랑스인 르낭의 반박문인가 ? 라는 아전인수격 논리에 반감이
들었던 걸 부인할 수 없네요^^

겨울호랑이 2018-05-15 16:57   좋아요 2 | URL
^^:) 저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토를 빼앗겼으니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프랑스도 30년 전쟁을 통해 빼앗은 땅임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생각됩니다.

2018-05-15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5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5-15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단된 지 70년이 흘렀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통일을 원하는 우리”는 왜 그런지 사유가 궁금해집니다. ^^

겨울호랑이 2018-05-15 17:20   좋아요 2 | URL
체제가 달라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름에도 통일을 원하는 우리 민족과 같은 민족임에도 큰 거부감없이 다른 국가(오스트리아, 독일 등)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르낭의 주장이 일반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하는 문제는 ...... 좀 더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제게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네요...

syo 2018-05-15 17:44   좋아요 3 | URL
제가 정말 이 말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지금 딱 판이 깔린 것 같아서요.

˝북다님이랑 호랑이님이랑 붙으면 누가 이겨요??˝

........ 죄송합니다. 그냥 두 분이 무슨 알라딘 독서판의 김두한-시라소니 같으서서 그만....ㅎ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5-15 17:47   좋아요 0 | URL
물론, 북다이제스터님이 이겨요^^:)

북다이제스터 2018-05-15 17:49   좋아요 1 | URL
네, 제게는 무척 어려운 문제여서 여쭤봤습니다. 언젠간 알게 될 날 있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책을 기웃해 봅니다. ^^

Tempus_fugit 2018-05-18 13:59   좋아요 3 | URL
아시는 바와 같이 통일에 대한 염원에는 개인적, 국가적, 민족적, 국제적 차원의 필요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 하나인 ‘민족적’ 차원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민족의식은 통일신라 이후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의 침략과 억압을 받으면서 형성되었습니다. 분단 후 남한에서는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통해 민족의식이 재생산 되어왔고 우리 사회를 운명공동체로 인식하는 전통적 관념이 오랫동안 존속해 왔습니다. 북한 역시 구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상태에서 내적 통합 의 이데올로기로 민족주의를 인정해 왔습니다. 그러한 남북한의 민족주의는 마이네케가 ‘국가민족’ ‘문화민족’으로 구분 것 중 ‘문화민족(문화, 언어, 전통, 풍속 등의 문화적인 공동체험의 소유에 입각한 공동체의식)’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남과 북은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민족적인 정통성’이 약화되어왔고 약화돼가고 있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하는 방향이 다를 뿐 그러한 문화적인 민족의식은 약화되어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론조사(2017 통일의식조사)에서 [통일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분명하게 갖고 있지 않은 ‘반반/그저 그렇다’라고 응답]이 증가하였다는 것과 [‘통일이 매우 필요하다’는응답]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단순히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통일을 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8-05-18 14:19   좋아요 2 | URL
고향을 북에 두고 남쪽으로 오신 분이나 해방이전 독립투쟁을 하신 분들도 계신반면, 통일을 대박으로 보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에서 보편적인 요인을 찾는 것은 그래서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마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고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향후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 같네요. kokoro님 덕분에 ‘마이네케‘의 민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5-18 21:10   좋아요 2 | URL
결국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 문제일뿐이라고 생각하면 제 넘 짧은 생각일까요?^^

겨울호랑이 2018-05-18 21:40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통일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 이러한 모든 것을 추상적으로 묶는 개념이 있다면 ‘민족‘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민족‘ 또한 후세에 학습시키는 이데올로기 일 수 있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됩니다... 다만, 이것을 ‘낡은 이념‘ 으로 생각하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같네요. 참 어렵습니다.^^˝)

서니데이 2018-05-17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도 비가 많이 내렸는데, 오늘도 비가 오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은 서늘한 하루입니다.
겨울호랑이님, 따뜻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5-17 18:27   좋아요 1 | URL
네 비가 많이 와서 공기가 맑네요. 서니데이님도 상쾌한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