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 ~ 1856)의 삶을 그린 평전이다.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산숭해심(山崇海深)으로 정리한 추사의 예술과 학문세계가 시기별로 소개되고 있으며, 본문에 많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 볼거리 또한 풍부하다. 책에서 서술된 추사의 삶에서 큰 분기점을 고른다면 1809년 아버지를 따라 자제군관의 지위로 연경(燕京)을 방문하여 여러 학자들과 교류한 일과 1840년 제주도 유배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연경을 방문한 추사는 담계 옹방강(覃溪 翁方綱, 1733 ~ 1818)과 운대 완원(芸臺 阮元, 1764 ~ 1849)과 특히 깊은 친분을 유지하면서, 이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추사는 완원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뜻을 세워 자신의 아호를 완당(阮堂)이라 했고, 연행 후 중년으로 들어서면서 추사보다 완당이라는 호를 더 많이 사용했다.(p71) <추사 김정희> 中


 연경 방문 이후 추사는 청나라 학자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게 되었다. 이는 추사의 학문과 예술세계를 깊게 한 반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추사가 거만하다는 인상을 갖게 하는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제주도 유배 이전 추사의 글씨는 중국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는데, 이러한 그의 서체는 한 세대 이전의 서예가 원교 이광사(員嶠 李匡師, 1705 ~ 1777)와 많이 비교되었다. 저자는 두 사람의 서체를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원교의 <대웅보전>과 추사의 <무량수각> 두 글씨는 두 사람의 세예 세계가 얼마나 달랐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무량수각>은 기름진 획의 예서풍 글씨이고 <대웅보전>은 굳센 획에 리듬이 있는 해서체이다.(p243) <추사 김정희> 中


 추사는 자신과 다른 서체를 가진 원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는데, 제주도 유배 이전 대흥사에 들려 원교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현판을 내리게 할 정도로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청명 임창순(靑溟 任昌淳, 1914 ~ 1999)의 글에서도 원교에 대한 추사의 박한 평가를 확인하게 된다.

 

 김정희는 <서원교필결후 書員嶠筆訣後>에서 "세상 사람은 원교의 글씨 이름에 떨려서 그의 학설을 절대적인 것으로 신봉했다" 하였으며(p226)... <서결 書訣>에 대하여 거의 완전한 곳이 없을 정도로 혹평하였다.(p227) <청명 임창순> <원교 이광사전(員嶠 李匡師展)에 부침>中


 자부심이 강한 김정희에게 제주도 유배는 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지금은 비행기로 편하게 갈 수 있는 제주도는 과거에는 높은 파도와 잦은 풍랑등으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지난 2016년에 제주도에 배를 타고 갈 일이 있었다. 큰 배였음에도 비가 날리는 검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추사가 살았던 과거에는 어떠했을까. 


[사진] 추사는 저 검은 제주도 바다 저편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by 겨울 호랑이)


 제주는 옛 탐라인데 큰 바다가 사이에 끼어 있어 이곳을 건너가려면 보통 열흘에서 한 달 정도가 소요되곤 했다. 그런데 공이 이곳을 건널 적에는 유독 큰 파도 속에서 천둥 벼락까지 만나 죽고 사는 것이 순간에 달린 지경이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고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했고, 뱃사공도 다리가 떨려 감히 전진하지 못했다.(p245) <추사 김정희> 中


 들어가는 것만큼 험난했을 약 10여년의 제주도 유배생활을 통해 추사는 자신만의 필체인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하게 되었다. 걸작 <세한도 歲寒圖> 또한 이 시기에 그려진 것을 생각해본다면, 제주도 유배 시기를 통해 김정희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던 '완당'에서 '추사'라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진] 세한도 (출처 : 위키백과)


 서체의 기본은 해서(楷書)와 행서(行書)인데 (제주도) 유배 이후 추사의 간찰 서체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금석기와 예서의 맛이 들어가면서 필회개에 강약의 리듬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편지의 글씨들은 한마디로 해서, 행서, 예서(隸書)의 필법이 서로 뒤엉켜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아무 잘못이 없고 오히려 필획의 굳센 느낌만 강하게 다가온다.(p344) <추사 김정희> 中


 제주도 유배 이후 추사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예술 세계를 인정하는 넓은 마음도 갖추게 되었다. 제주 유배 이전 비판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글씨도 다시 달 것을 정중하게 요청하는 추사의 모습 속에서 한결 원숙해진 대인(大人)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원교는 원교대로 한 생(生)이 있고, 나름의 성취가 있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내가 원교의 시절에 태어났으면 원교만 한 글씨를 썼을 것인가. 사실 원교가 왕희지를 따른 것 자체야 잘못이 없지 않은가. 세상이 의심하지 않은데 어떻게 원교만이 그것이 왕희지의 진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p356)<추사 김정희> 中


 추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제주도 유배를 통해 플라톤(Platon, BC 427 ? ~ BC 348 ?)이 말한 '동굴(spelaion)의 비유'를 떠올리게 된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평생을 어둠 속에서 묶여 있다가 지내던 이가 동굴 밖의 햇빛을 바라보게 되는 상황을 <국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가령 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풀려나서는, 갑자기 일어서서 목을 돌리고 걸어가 그 불빛 쪽으로 쳐다보도록 강요당할 경우에, 그는 이 모든 걸 하면서 고통스러워할 것이고, 또한 전에는 그 그림자들만 보았을 뿐인 실물들을 눈부심 때문에 볼 수도 없을 걸세.(515c)... 그러나 만약에 누군가가 그를 이곳으로부터 험하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통해 억지로 끌고 간다면, 그래서 그를 햇빛 속으로 끌어내 올 때까지 놓아 주지 않는다면,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또한 자신이 끌리어 온 데에 짜증을 내지 않겠는가?(515e)... 그러기에, 그가 높은 곳의 것들을 보게 되려면, 익숙해짐(synetheia)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네.(제7권 515e) <국가, 정체> 中  


 추사가 기득권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보지 못했을 보다 넓고 큰 경지를 제주도 유배를 통해 끌려 가서 보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그 시기가 10여년이 되었기 때문에 그가 바라본 아름다운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유배 시기는 추사에게 '고통스럽지만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단련(鍛鍊)의 시기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추사 김정희>에서 저자는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 ~ 1799) 일화를 서두에 언급하면서 그의 파란만장했던 생애가 그의 뛰어난 글씨를 연계하는 분위기를 피워낸다. 만약, 추사가 글씨를 쓰지 않고 사상가로 남았다면 그의 인생은 편안했을까?


 김노경이 우리 집 아이의 글씨라고 대답하자, 채제공이 말하기를 "이 아이는 필시 명필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오. 그러나 만약 글씨를 잘 쓰게 되면 반드시 운명이 기구할 것이니 절대로 붓을 잡게 하지 마시오. 그러나 만약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게 하면 크게 귀하게 되리라" 했다고 한다.(p30)... 추사가 글씨를 잘 쓰게 되면 운명이 기구할 것이나 문장으로 나아가면 크게 귀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속뜻은 과연 무엇일까?(p31) <추사 김정희> 中


 글씨를 쓰면 기구한 운명이 될 것이나, 문장에 전념하면 이름을 떨칠 수 있다는 채제공의 예언은 분명 흥미로운 부분이 있지만, 추사의 글씨와 학문을 분리해서 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추사의 글씨가 그의 학문 세계를 담아내기 때문이 아닐까.


 금강산의 만이천봉은 모두가 절경이며 볼 적마다 새로운 것처럼 추사(秋史)의 글씨도 얼핏 보면 비슷한듯하나 모두가 특수한 형태를 지니고 웅장한 만폭, 구룡이나 섬세한 만물상처럼 볼 적마다 보는 사람의 넋을 뺏고 만다. 그러므로 몇 번을 거듭하더라도 또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추사(秋史)는 명필이기에 앞서 대경학자(大經學者)이다. 학자로서의 성과는 오히려 글씨에 묻혀서 바로 아는 사람이 적다. 저술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으나 그는 중국에서 들어온 고증학을 집대성한 학자다. 그러므로 글씨가 학문에 근거를 두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p220) <청명 임창순> <추사 김정희 명작전(秋史 金正喜 名作展)>中


 <추사 김정희> 뒷부분에는 과거 <완당평전>을 저술했던 저자가 이를 절판시킬 수 밖에 없었던 사연과 <추사 김정희>를 쓰게 된 이유 등이 담겨 있다. 그러한 사연 때문일까. 책을 읽으면서 과거 청나라의 영향을 받던 '완당'이 자신만의 세계를 갖춘 '추사'로 거듭나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추사 김정희>속에서 뛰어난 학자이자 예술가의 모습과 함께 시간에 따라 원숙해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기에 추사에 대한 좋은 평전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좋은 책을 선물해주신 이웃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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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2: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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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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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3: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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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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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5-22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사가 제주 갔다 오면서 인물 됨됨이로서도 학자로서도 완성되는 부분이 너무 감동스럽더라고요! 사과를 받아줄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없었던 게 슬프던;_;)! 추사 글씨는 볼 때마다 어줍잖게 따라하고 싶어서 근질근질ㅜㅋㅜ)...뭐 나만 그런 건 아니니까ㅎㅎ;;...일단 벼루 열 개를 아작내고 붓 천 개를 몽당붓으로 만들어야 가능하다는데ㅎㄷㄷ

겨울호랑이 2018-05-22 22:46   좋아요 1 | URL
정말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하란 말도 있는 것 같아요. 이젠 AgalmA님의 ‘1일 1글씨‘ 개봉인가요? 기대해 봅니다!^^:) 생각해보니 「세한도」처럼 ‘1일 1그림‘에 추사체로 작품 설명을 ‘시‘로 하시면 3박자를 갖춘 예술 작품이 되겠어요!

AgalmA 2018-05-22 22:57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글을 담은 문인화처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긴 했는데 까마득한 저의 실력에ㅜㅜ....

겨울호랑이 2018-05-22 23:02   좋아요 1 | URL
태어나면서부터 문인이 있나요?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겠지요. AgalmA님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참, 음악까지 넣으면 거의 4D수준의 예술이.... 겨울호랑이님께서 AgalmA님께 부담을 백배로 선믈하셨습니다 ㅋㅋ

AgalmA 2018-05-22 23:14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이 옹방강과 완원의 역할을ㅎㄱㅎ!
얘얘~ 연의 가르치기도 힘든 분이야...ㅎㅎ;

겨울호랑이 2018-05-22 23:17   좋아요 1 | URL
ㅋㅋ 저는 믹스커피를 즐겨마시는초의선사 역을 맡겠습니다.

2018-05-22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2 2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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