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는 크레온 왕국의 지배 하에서 살게 된다. 그녀 자신이 왕의 딸이고 하이몬의 약혼자이므로 그녀는 영주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크레온 자신도 아버지이자 남편이므로 혈연의 신성함을 존중해야 하며, 이 경건성에 대립되는 어떤 명령도 내려서는 안 된다. 이처럼 그들 두 사람 속에는 서로 대립되는 양면성이 내재하면서 서로 대항하고 뒤바뀌며 강조되며, 그 개인들은 바로 자신들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파멸한다... 고대와 근대 세계의 모든 뛰어난 예술작품들 가운데 <안티고네 Antigone>야말로 가장 뛰어나고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보인다. _ 헤겔, <헤겔의 미학강의 3> , p933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헤겔의 미학강의 Vorlesungen uber die Asthetik : Mit einer Einfuhrung hrsg>에서 소포클레스(Spphokles, BCE 497~406)의 <안티고네 Antigone>를 근대까지의 문학작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는 <안티고네>가 갖는 뛰어난 문학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투쟁하는 개인과 그들이 저항해 싸우는 것과의 대립구조가 헤겔의 변증법을 설명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만약 파토스의 일면성이 충돌의 근거가 되면 다름 아니라 그 파토스는 생생하게 행위로 드러남으로써 어느 특정한 개인만이 파토스가 되었다는 것이 특히 강조되어야 한다. 만약에 그 일면성이 해소되어야 한다면, 그 파토스는 오직 하나의 파토스로만 행동해야 하므로 결국 제거되고 희생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개인이다. 왜냐하면 개인이란 오직 이 하나의 삶일 뿐이기 때문이다. _ 헤겔, <헤겔의 미학강의 3> , p932


 헤겔의 <안티고네> 해석에서 설명되는 직접적인 대립은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이다. 사자(死者) 폴뤼네이케스의 매장을 둘러싼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갈등은 신의 법칙과 인간 법칙이라는 인륜(人倫)의 대립, 여성의 원리와 남성의 원리, 무의식과 의식의 대립으로 전환 해석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이 가져온 파멸적인 결과는 <안티고네>에서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헤겔은 <안티고네>를 높게 평가한다.


 인륜적 위력들 서로 간의 운동과 인륜적 위력들을 생명과 행위 속에 정립하는 개체들의 운동은 양측이 다 똑같은 파멸을 경험하는 데에서 그 참된 결말에 도달한다. 왜냐하면 그 위력들 중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실체의 좀 더 본질적인 계기가 되는 데에 하등 앞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양측의 동등한 본질성 그리고 그것들의 아무런들 상관없는 병존이 곧 그것들의 자기(自己)를 결여한 존재이다. 행실 속에서는 그것들이 자기 본질로서 존재하기는 하지만 상이한 것으로서 존재하는데, 이는 자기(自己)의 통일과 모순되고 또 그것들의 무법성과 필연적 파멸을 이루는 것이다. _ 헤겔, <정신현상학 2> , p456


 크레온이 상징하는 인간적 법칙은 <정신현상학>에서 설명되는 정신적 본질이다. 이에 대항하는 안티고네가 상징하는 신적 법칙은 자기 의식이다. 보편적인 정신적 본질과 개별적인 자기의식은 대립하지만, 사실 그들의 뿌리는 서로에게 두고있다. 그들은 서로 다르지 않기에 , 그들의 대립은 어느 일방의 승리로 귀결되지 않는다. 어느 한편에 의한 다른 편의 전복이 일어나는 그 지점에서 승리는 패배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의 자리 전환이 일어나면서 모두가 부정되며 새로운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정신적 본질은 우선 자기의식에 대해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법칙(법률)으로서 존재한다.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성이 아닌 형식적 보편성이었던 검증의 보편성은 지양되었다. 이에 못지 않게 정신적 본질은 또한 영원한 법칙인데, 그런 영원한 법칙은 바로 이 개인의 의지에 근거를 두지 않고, 오히려 즉자 대자적으로 존재하며, 직접적 존재의 형식을 가진 만인의 절대적인 순수 의지이다. 이 만인의 순수 의지는 또한 단지 마땅히 그러해야 할 뿐인 계율이 아니며, 그것은 존재하고 또 유효하다. 정신적 본질은 직접적으로 현실인 범주의 보편적 자아이고, 또 세계는 오직 이 현실일 따름이다. 그런데 이 존재하는 법칙이 단적으로 유효하다고 해서 자기의식의 복종이 결코 자의적으로 명령하고 그 안에서 자기의식이 자신을 인식하지 못할 터인 그런 주인에 대한 봉사는 아니다. 오히려 법칙은 자기의식이 스스로 직접적으로 지니고 있는 그 자신의 절대적 의식의 사고이다. _ 헤겔, <정신현상학 1> , p417


  <안티고네>에서 결말은 안티고네와 약혼자 하이몬, 크레온의 부인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생존자는 크레온이지만,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진정한 승리자는 모든 것을 잃었고, 패배자는 죽었다.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에서 이제 정신은 어떻게 고양될 수 있을까.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다음 상황에서 소외된 정신과 국가 권력과의 새로운 관계가 모색되면서 정신의 고양은 계속 이어진다. 그렇다면, <안티고네>에서는 이러한 고양이 표현되어 있을까?


 권력을 지니고서 백일하에 놓여 있는 법칙에 맞서 무의식적 정신은 현실적 수행을 위한 도움을 오직 핏기없는 그림자에서만 지닐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자와 어둠의 법칙으로서 무의식적 정신은 처음에는 환한 대낮과 힘의 법칙에 굴복한다. 왜냐하면 전자의 권력은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서 유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적인 것으로부터 그 명예와 위력을 탈취한 현실적인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먹어 치운 셈이다... 공개적인 정신의 완성은 그 반대로 전환되며, 그는 자신의 최고 권리가 최고의 불법이고 또 자신의 승리가 오히려 자기 자신의 파멸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폴리네이케스나 안티고네처럼) 자신의 권리를 훼손당한 사자(死者)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그를 침해한 위력과 동등한 현실성과 권력을 갖춘 수단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위력들이 적대적으로 들고 일어나서 자신들의 힘인 가족 간의 공경심을 모독하고 부숴버린 공동체를 파괴한다. _ 헤겔, <정신현상학 2> , p460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시 <헤겔의 미학강의>로 돌아가자. 헤겔은 본문에서 합창(코러스)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같이 적극적으로 극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은 극의 흐름에 따라가면서 서정을 통해 서사를 전달하는 이중성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안티고네>의 마지막 코러스는 최종 주제가 담긴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극 <안티고네>에서 코러스에 의한 마무리는 휘브리스에 대한 경구로 끝맺음된다.


 합창은 사실은 행위 속으로 파고들어가 이와 관계하지도 않으며, 투쟁하는 주인공들에 대항해 어떤 권한도 행사하지 않고 이론적으로만 심판을 내리고 경고하고 연민을 보이거나, 상상 속에 지배하는 신들의 영역으로 외화되는 신적인 권리와 내면적인 위력에 호소한다. 이렇게 표현될 때 이미 보았듯이 합창은 서정성을 띤다. 왜냐하면 합창은 행동을 하지 않으며, 또 어떤 사건도 서사적으로 서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본질적이고 보편성을 띤 서사적인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_ 헤겔, <헤겔의 미학강의 3> , p924


코러스 : 양식(良識)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네. 신들에게 불경을 범해서는 안 되는 법이라오. 뽐내며 허풍을 떨면 언제나 큰 매를 벌기 마련. 나이를 먹으며 지혜를 배우게 되는구나. _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 p80/332


 개인적으로 <안티고네>에 대한 헤겔의 해석이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변증법적 구도 안에서 무리하게 해석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앞선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이 사실은 그 이전에 있었던 오이디푸스 아들간의 대립의 연장 구도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공격하는 자와 지키려는 자. 안티고네와 크레온 이전에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있었다. 


 인간적인 방식으로 본다면, 공동체를 점유하지 못한 채 그 정상에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그 공동체를 공격하는 자(폴리네이케스)가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을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한낱 개별자로 포착할 줄 알고 이런 무력함 속에서 추방하는 자(에테오클레스)는 권리를 자신의 편에 둔다. _ 헤겔, <정신현상학 2> , p458


  크레온은 테베를 지키려는 에테오클레스를 인정하는 대신, 공격해온 폴리네이케스를 부정하고 매장을 금지한다. 이때, 안티고네가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매장한 것에 대해 헤겔은 신의 법칙에 따른 것이라 하지만 과연 그런 것일까. 소포클레스의 3부작 중 2부에 해당하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우리는 신의 저주를 아버지로부터 받는 폴뤼네이케스를 볼 수 있다. 


 오이디푸스 : 너는 추방한 아우를 죽이고 아우의 손에 죽게 되리라. 그렇게 저주하노라. 너에게 새 집을 주라고 아버지 타르타로스의 가증스러운 어둠을 부르고 여기 복수의 여신들을 부르며, 너희들의 마음에 무서운 증오를 불어넣은 전쟁의 신 아레스도 부르노라. 자, 내 말은 다 들었으니 이제 가거라. 가서, 모든 카드모스인들과 그 믿음직한 동맹군들에게 말해라. 오이디푸스가 그런 저주를 두 아들에게 상으로 주었다고.


 코러스 : 폴뤼네이케스여, 당신의 과거 행적이 마음에 들지 않소. 이제 서둘러 돌아가시오. 


 폴뤼네이케스 : 아아, 내가 온 길이여, 내 임무는 실패로 끝났구나. 아아, 동료들이여. 아르고스에서 군대를 이끌었지만, 어떤 종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불행한 자로다. _ 소포클레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 , p239/332


 결국 폴뤼네이케스가 선택한 것은 인간 법칙에 대한 거부나 반항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에 따라간 어쩔 수 없음이 아니었을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안티고네의 선택 또한 인간 법칙에 대한 거부와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닌 인간에 대한 연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안티고네>의 마지막 코러스에서 드러나듯 신들에 대한 불경(휘브리스 hybris)의 대가를 치루는 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런 상황에서 과연 공동체 윤리와 정신과 같은 냉정한 분석이 의미가 있을까. 이런 점에서 헤겔의 <안티고네> 해석에 감탄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폴뤼네이케스 :  그래, 날 잡지 마라. 이 길이 내 앞에 놓여 있구나. 아버지와, 아버지가 불러낸 복수의 여신들이 정한, 불행하고 사악한 길을 가야겠구나.  제우스 신께서 너희들에게 행운을 내리시길 빌겠다. 내가 죽어서 요구한 임무를 수행한다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장례를 베풀 수 없으니까.〕 자, 이제 날 놓아 다오. 잘 있어라! 너희들이 살아 있는 나를 다시 보는 일은 없겠지.


안티고네  : 아, 불쌍한 내 신세!

폴뤼네이케스 : 울지 마라!


안티고네 : 오빠, 오빠가 예언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누가 한탄하지 않겠어요?


폴뤼네이케스 : 죽어야 한다면 죽어야겠지.


안티고네 : 그건 안 돼요. 내 말을 들어요.


폴뤼네이케스  : 설득해도 안 되니까 설득하려 들지 마라.


안티고네 : 나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에요. 오빠를 잃게 되면. _ 소포클레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 , p241/332


 헤겔의 <안티고네>에 대한 해석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 ~ )의 안티고네 해석 일부를 옮겨본다. 안티고네가 갖는 이중성에서 근친상간의 욕망을 발견하고, 욕망이라는 매개로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2~1981)의 해석과도 결을 달리한 버틀러의 해석도 흥미롭지만, 역시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안티고네는 친족의 경계에 드러난 인식 가능성의 한계를 상징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순수하지 못한 방식으로, 누구든 낭만화하거나 사실 모범적 사례로 참고하기는 어려운 방식으로 친족의 인식 가능성을 상징한다. 결국 안티고네는 자신이 반대하는 것의 위상이나 언어를 전유해서 크레온의 통치권을 가장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오빠에게 운명지어진 영광을 주장하기까지 한다.... 안티고네의 죽음은 극 전체에서 언제나 이중적이다. 즉 그녀는 살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았으며, 따라서 아이들을 낳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죽음은 살지 못했던 삶을 의미하고, 그리하여 크레온이 마련한 삶의 무덤으로 다가갈 때 그녀는 지금껏 내내 자신의 것이었던 어떤 운명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존속될 수 없는 욕망, 안티고네가 더불어 살아가는, 다름 아닌 근친상간의 욕망 그 자체가 아닌가? _ 주디스 버틀러, <안티고네의 주장>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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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8-27 1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애들 사회책에서는 법단원에서 안티고네를 자연법 예비시아버지(?)를 실정법 이렇게 대립해 놓는 읽을 거리가 있었거든요? 헤겔의 인간적 법칙대 자기 의식을 그렇게 변용한 건지 다른 관점인지 궁금해지네요 ㅋㅋ 좋은 글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08-27 21:52   좋아요 2 | URL
아, 그렇군요. 요즘 학생들 수준이 매우 높네요... 자연법과 실정법의 구도는 <정신현상학>에 있는 여러 예시 중 하나로 보다 와닿는 내용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다녔을 적에는 헤겔과 변증법 이름만 들어본 것 같은데, 학생들이 할 일이 참 많을 것 같네요... 일찍 학교가 가서 다행입니다.^^:)

英賢. 2023-08-27 2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포클레스의《안티고네》에서 주인공 안티고네는 이를 두고 신들에 의한, 글로 쓰이지 못한
틀림이 없는 법이며 정의롭다고 부른다.

˝어제, 오늘이 아닌 영원히 산다는 걸 법이라고 부르니,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아무도 모르느니라.˝

- 헤겔, 《정신현상학》, p.447

반유행열반인 2023-08-28 08:0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Andy님. 인용해주신 부분을 보면 자연법이라고 지칭할 만한 정의가 나오는 군요 ㅎㅎㅎ워낙 청소년용으로 풀어둔 토막글만 봐서 출처가 궁금했는데 원전이 헤겔이었다니ㄷㄷ

겨울호랑이 2023-08-28 12:19   좋아요 2 | URL
Andy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베이징은 첨단 기술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전자 산업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두 나라는 반도체 제조에서 사실상 대만에 의존한다(p214)... 대만은 미국과 중국 모두의 군대가 미래를 걸고 있는 첨단 반도체 생산지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실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래의 전장이기도 하다. _ 크리스 밀러,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 p215/294


 미국은 경쟁국 중국에 휘둘리지 않고 미래의 자국 경제안보를 확립하기 위하여 자국 내 반도체나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즉, 자국 내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한국이나 일본 등 기존 안보동맹국 간의 결속을 활용하는 전략을 보인 반면, EU의 움직임은 미국처럼 원료 공급망을 쥐고 있는 중국만을 향한 목표 설정보다는 전세계 배터리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중,일 아시아 3국에 맞설 수 있는 유럽 자체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정책적 전략에 더욱 가깝다. _ 정경윤 외 2인, <이차전지 승자의 조건> , p91/141


 칩 워(Chip War)와 배터리 워(Battery War). 첨단기술과 관련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고, 그 중심에는 반도체와 이차전지(배터리)가 자리한다. 그리고, 이 두 산업은 현재 우리나라 산업의 현재와 미래 주력 산업이라는 점에서 위기이자 기회가 된다. 둘 다 첨단 산업이지만, 산업에서의 공수(攻守)는 서로 다르다. 트랜지스터의 집적화가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서는 오랜 설계 역사 갖고 있는 미국이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며 우위를 점한 반면, 에너지의 효율과 안전성이 우선인 배터리 산업에서는 리튬, 코발트, 흑연 등 주요 광물을 선점한 중국이 한 걸음 앞서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반도체에서는 D램과 낸드플래시, 파운드리 일부에서, 배터리에서는 양극재와 배터리 분야에서의 기술과 양산능력에 있다.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놓고 볼 때 반도체 설계, 지식재산, 장비, 제조, 기타 다른 단계 등을 종합해보면 중국 기업은 6퍼센트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조지타운대학교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39퍼센트, 한국은 16퍼센트, 대만은 1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칩은 다른 어디에서도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첨단 로직 칩, 메모리 칩, 아날로그 칩의 경우 중국은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설계, 미국, 네덜란드, 일본의 기계장치, 한국과 대만의 제조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_ 크리스 밀러,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 p189/294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에서는 서로 긴밀하게 엮인 반도체 공급망에서 TSMC가 주목된다. 오직 파운드리 제조에만 초점을 맞추며 고객사를 경쟁사로 만들지 않는 전략을 통해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회사로 살아남은 TSMC. 이에 반해, 반도체 설계와 제조 등 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위해 끊임없이 어려분야로 확장하는 삼성의 전략은 사뭇 대조된다. 경쟁사와 협업을 해야하는 삼성과 고객과는 경쟁하지 않는 TSMC. 현재는 TSMC의 시가총액이 삼성에 앞서 있고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방향성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과거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인텔 등이 걸었던 한순간의 오판으로 순식간에 도태된 반도체의 역사를 떠올려본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TSMC의 출범은 모든 칩 설계자들에게 의존할 만한 파트너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TSMC는 절대 칩을 설계하지 않고 그저 만들기만 하겠노라고 모리스 창은 약속했다. '우리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터였다... TSMC의 사업은 1990년대 내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제조 공정은 쉼 없이 개선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구텐베르크가 되고자 했던 모리스 창의 계획은 그에게 훨씬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당시에는 이 사실을 깨달은 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모리스 창과 TSMC 그리고 대만은 세계 최신 반도체 생산을 독점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_ 크리스 밀러,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 p137/294


  반도체 전쟁에서는 인공지능, 5G 등 최근 급증한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는 생산능력이 이슈다. 그리고 세계 최대 생산능력을 보유한 대만의 TSMC를 둘러싼 양안 관계(兩岸 關係)가 지정학적 위험이라면,  배터리 전쟁에서는 광물 확보를 둘러싼 자원민족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남아메리카 지역의 염호(鹽湖)에 집중된 리튬과 콩고에서 집중생산되는 코발트 등은 과거 석유를 무기로 세계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 중동의 사례를 떠올리게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를 국유화 하기전 이미 상당부분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점이다.


 리튬 삼각지대에 속한 또 다른 나라인 아르헨티나는 리튬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묻혀 있는데, 그 양이 1700만 톤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칠레보다 두 배가량 많은 것인데, 2019년 기준 리튬 생산량은 칠레의 약 3분의 1 정도였고83 중국 내 생산량보다도 적었다. 현재 아르헨티나에서는 칠레와 유사하게 염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시설 두 곳만 운영 중이다. 리튬 생산 업체 리벤트Livent와 오로코브레Orocobre가 각각 관리하는 옴브레무에르토Hombre Muerto염원과 올라로스Olaroz염원의 시설들이다. _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배터리 전쟁>,  p170/424


 리튬은 분쟁 광물conflict mineral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도 리튬 채굴에서 나온 수익으로 무장 단체를 지원하는 곳은 없다. 재래식 채굴이나 아동노동이 이뤄지지도 않는다. 매장층의 위치와 복잡한 채굴 방식 때문에 이런 상황이 변할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배터리에 사용되는 금속 중 두 번째로 중요한 코발트는 좀 다르다. 시장에 공급되는 코발트의 약 60퍼센트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중앙아프리카 국가 콩고에서 나온다. _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배터리 전쟁>,  p212/424


  역할 분담이 거의 결정된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안에서 첨단 부문에서 중국의 진입을 막으려는 칩 워. 이에 반해, 일대일로를 바탕으로 해외에 자원거점을 미리 확보하고 막대한 정부 지원으로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끌어올려 주도권을 장악한 중국에 대항하려는 미국 중심의 공급망, 그리고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EU 등이 펼치는 배터리 워. 첨단 산업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발견한다. 주식 시장에서 보이는 삼성전자와 에코프로 주가의 (-) 상관관계는 이 같은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창은 TSMC가 경쟁자들을 기술적으로 따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회사는 스스로 반도체를 설계하는 반면에 TSMC는 중립적 입장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TSMC의 "연합군" 파트너십이라 불렀다. 반도체를 설계하고, 지식재산 사용권 판매로 돈을 벌고, 소재를 생산하고, 장비를 만드는 십여 개의 회사와 일종의 동맹 관계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회사 중 상당수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지만 이들 중 웨이퍼에 칩을 새겨 넣는 일을 하는 곳은 없으며, 설명 시도한다 해도 TSMC를 이길 곳은 없었다. _ 크리스 밀러,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 p170/294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중국은 국가 주도로 원료/소재/부품 등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전체적으로 장악해가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남미, 호주, 아프리카 대륙 일부 지역에 생산이 한정된 리튬, 코발트, 니켈 광산을 속속 집어삼키고 있다... 중국 내 매장된 리튬 원광석의 양은 전 세계 매장량의 10%에 지나지 않지만, 1차 가공품인 리튬 화합물은 중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배터리 소재 생산에 직접 필요한 1차 가공품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p81)... 배터리 음극재의 핵심소재인 흑연 역시 중국이 전 세계 흑연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이 배터리 원료 공급망을 싹쓸이하자 유럽과 미국의 마음은 조급해졌고, 이것이 글로벌 공급망의 편재화를 가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_ 정경윤 외 2인, <이차전지 승자의 조건> , p8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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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파라는 용어는 통시대적인 용어가 아니라 우리 역사의 특정한 시기(기간)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용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일본(정부)의 정책에 동조하거나 협력한 이들은 전근대에도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침략에 협력한 조선인들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르지 않았다. 통상 학계나 친일파 청산 관련 법령에서 규정하는 "구한말 이래 일제의 국권침탈과 식민 지배와 일제의 대외 침략에 적극 협력한 부류"가 곧 이 책에서 다루는 친일파다. _ 변은진, 박한용, 이용창, <일제강점기 친일세력 연구-조선귀족, 중추원, 친일단체(1910~1937)를 중심으로>, p20/588


 제78주년 광복절. 지난 해부터 3.1절, 광복절 등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전부터 기념일의 의미를 훼손하는 극우집단의 소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공공의 장(場)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현실은 참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오늘도 대통령은 광복절에서 광복보다는 건국, 좌익척결, 일본과의 우호,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경축사를 했다. 또 다시 참담해지는 마음.


[관련기사]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 특이점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212073


  광복절을 맞아 뉴스타파에서 예전에 만든 <친일과 망각>을 다시 본다. 자신의 현재를 지키기 위해 과거를 잊기를 강요하고, 광복 대신에 건국을, 독립 대신에 반공을 보다 높이 외치는 이들. 시간이 흘러 기억하는 이들도 사라지고, 친일파 대신 친일파 후손들이 부와 권력을 넘겨받은 지금 우리가 친일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나간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현재 화합을 이뤄야 한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얼핏 타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친일과 망각>은 우리에게 친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나는 과거문제를 잊기 위해서라도 이걸 묻기 위해서라도 나는 과거 문제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정리하는 그런 이리 빨리 됐으면 좋겠어요.' 


 <뉴스타파 -민국 100년 특집>의 윤경로 친일 인명사전 편찬 위원장의 말은 우리가 왜 친일을 기억해야 하는가를 잘 알려주는 문장이라 여겨진다. 일신의 안녕을 위해 가야할 길을 가지 않은 자와 힘든 길인 줄 알면서도 가야할 길을 간 이들을 살피고 이를 통해 미래에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광복절의 의미가 아닐까. 그러지 못한 것은 적시에 정리되어야 할 것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이는 반민특위에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니라 여겨진다.




 친일파는 그저 단지 일본과 친한 이들이 아니라, 일제의 흉포한 식민통치에 부역하고 민족을 배반한 자들이다. 청산되지 못한 세력의 계보에 속해 제국의 군인, 경찰, 밀정, 낭인들이 저지른 발길질과 뺨 때리기 정치를 칭송하기에 친일파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이들은 모두 그런 의미에서의 '친일파'다. 기꺼이 제국의 신민이 된 자들이며, 그 체제를 온몸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친일행위자들만이 아니라, 이들을 옹호하고 이들이 만들어놓은 기득권을 고스란히 쥐고 지금도 그 반역의 역사를 이어나가려는 자들은 모두 다 '친일파'다. '친일파'는 따라서 '역사적 개념'이며 '정치적 개념'이자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세력의 '실명'(實名)이다. _ 오익환외,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p28/284


 일제의 요구는 시기마다 달랐고, 친일파 또한 이러한 요구에 맞춰 각 시기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고 그 영향도 각각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컨대 '합병' 이후 일제가 '매국'을 요구할 리 없다. 이때부터는 식민통치에 대한 협력이 본질적인 요구이며, 친일파는 여기에 보조를 맞추었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전쟁협력행위가 일제의 핵심 요구였고 여기에 맞춰 친일파들은 내선일체·황국신민화를 부르짖으며 전쟁협력행위에 복무했다. 나라를 팔아넘기라는 요구에는 매국이, 식민통치에 협력하라는 요구에는 직업형 친일이, 전쟁에 조선인들을 동원시키라는 요구에는 전쟁협력형 친일이 각각 대응된다. 매국과 전쟁협력 가운데 어느 것이 죄가 무거운가 하는 식의 법률적 접근은 역사적 현상인 친일문제를 제대로 해명하는 데 부적절할 수 있다. 결국 일제의 침략과 식민통치의 변화 과정과 관련해서 역사적으로 친일파들의 행위를 검토해야 한다. _ 변은진, 박한용, 이용창, <일제강점기 친일세력 연구-조선귀족, 중추원, 친일단체(1910~1937)를 중심으로>, p390/588

 이 모든 사태의 기점(起點)에 바로 반민족적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와해가 놓여 있다. 1949년 6월 6일, 그날이 우리 역사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이날을 우리는 모두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반역의 역사가 당시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라는 자의 명령으로 시작된 날이며, 이후 우리 현대사의 무수한 희생과 굴곡,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왜곡된 역사의식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_ 오익환외,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p2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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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8-16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생식물이 숙주가 사라지지 않는 한 생존 기반이 사라지지 않듯 윤짜장 같은 극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친일의 생존 기반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네요.

겨울호랑이 2023-08-16 15:28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다만, 극우가 힘을 받으면서 그동안 숨겨왔던 이들의 속내가 다 드러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문제점까지 보다 깊이 그리고 널리 알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레이스 2023-08-18 0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경축사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저렇게 말하지? 했더니 남편이 웃더군요.

겨울호랑이 2023-08-18 08:18   좋아요 1 | URL
이제는 친일 발언이 나올 것으로 예상을 하게 됩니다만, 그래도 막상 들으니 마음이 참담해집니다...
 

  K 배터리는 중국이나 일본이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 초격차 기술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무기가 바로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이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56/236

 

 최근 증권 시장에서 반도체와 함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2차 전지 산업. 많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2차 전지 산업에 대해 소개하고 붐을 일으킨 저자와 책은 단연 박순혁의 <K 배터리 레볼루션>라 할 수 있다. 본문은 우리나라 2차 전지 산업이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경제적 해자 또는 초격차를 양극재와 배터리 분야에서 갖고 있으며, 향후 우리나라의 2차 전지 산업이 매우 유망하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담고 있다. 여기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선을 살펴보자. 


 K-배터리의 전성기는 너무 짧았고, 제대로 돈을 벌지도 못했다. 2010년대 10년 동안 K-배터리는 너무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핵심 인력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껴야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덤덤했다. ESS에서 300건이 넘는 화재 사고가 났는데도 '산업이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하며 가볍게 넘겼다. Northvolt와 같은 젊고, 강하고, 빠른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K-배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20년대에 K-배터리가 지는 태양이 될지, 아니면 다시 떠오르는 태양이 될지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_ 선우 준,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 하권>, p234/420


 선우 준의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에서 K 배터리의 전망을 다소 불투명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박순혁의 <K 배터리 레볼루션>과 상반된 전망을 내린다. 낙관적인 전망과 비관적 전망. 그렇지만 그 출발점은 같다. 2차 전지 산업 중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있는 부분은 NCMA배터리의 양극재 부분이며, 음극재와 분리막 등의 소재 산업 경쟁력이 부족하며, 리튬 등 자원 확보 문제는 산업의 지속적인 과제가 된다는 점이다.


 이차전지 소재와 관련된 주식은 양극재 주식만 보시라.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 배터리의 심장은 양극재다. ② 양극재 기술의 진입장벽이 엄청나게 높다. ③ 양극재가 배터리 원가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④ K 양극재 4대 업체의 90%급 하이니켈은 독보적 경쟁력을 가진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40/236


 리튬 이온 전지는 일본, 한국, 중국의 동양 3국의 사업이다. 세 나라 중에서 흑연 음극 기술이 가장 뒤처져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흑연 산업 자체가 낙후되어 있어서 전지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케미칼에서 천연흑연을 만드는 것이 한국에서 흑연 음극 사업의 전부다. _ 선우 준,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 상권>, p367/430


 결국, <K 배터리 레볼루션>과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의 차이는 2차 전지의 주력 제품에 대한 전망 차이에서 비롯된다. 전자는 NCM(니켈-크롬-망간) 배터리가 향후 주력이 될 것으로, 후자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주력이 될 것으로 보기에 하이니켈 배터리와 양극재에 경쟁력을 보이는 우리나라 2차 전지의 미래 전망이 여기에서 갈리게 된다. NCMA(하이니켈) 배터리와 LFP 배터리 이들의 장, 단점은 무엇일까. 


  NCMA 배터리와 LFP 배터리를 상호 비교하기 위해서는 분자 혹은 분모를 동일하게 놓고 차이점을 파악하면 된다. 먼저 분모인 무게를 동일하게 놓았을 때 NCMA는 LFP 대비 85%의 에너지를 더 저장할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에너지가 85%가 더 많으면, 이 에너지로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더 늘릴 수도 있고, 가속력를 더 빠르게 할 수도 있으며, 짐을 더 많이 실을 수도, 실내 공간을 더 크게 만들 수도 있는 등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하다. NCMA 배터리와 LFP 배터리의 비교에서 보듯, 결국 에너지밀도가 높은 배터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이 세계 배터리 산업의 미래를 주도하게 된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38/236


 다소 거칠게 요약하면, NCMA 배터리는 에너지 효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화재 위험이 높다. 이에 반해, LFP는 에너지 효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상대적으로 매장량이 풍부한 철(Fe)을 사용하기에 보다 저렴하고 화재 위험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LFP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전성이다. 플라스틱 캔을 사용한 대용량의 LFP를 보면 LFP 전지가 얼마나 안전성이 우수한지 알 수 있다. 중국의 Winston, CALB, Sinopoly는 100Ah가 훨씬 넘는 용량의 LFP 전지를 만든다. 이렇게 용량을 높여도 발화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LFP 전지의 장점이다. CATL과 BYD의 팩 설계 등으로 경쟁력이 향상되었지만, LFP 전지의 부활은 NCM 전지와 관련이 깊다. 2016년까지 NCM 전지는 성능과 안전성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발화, 폭발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_  선우 준,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 상권>, p50/430


 다시 두 책의 주장을 LFP에 한정시켜 보자면, <K 배터리 레볼루션>에서는 LFP 배터리는 저렴하다는 장점을 가진 비효율적인 배터리로 단정짓지만,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에서는 화재 위험이 없는 안전한 배터리로 소개한다. 비효율적인 싸구려 전지 vs 안전하고 저렴한 대중적인 배터리. LFP 배터리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결국 한국 2차 전지 산업의 현실에 대한 동일한 가정에서 끌어낸 서로 다른 결론을 끌어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향후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대중화가 시작되고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되었을 때 LFP가 결국은 주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끊임없이 K 배터리에 대한 우려를 불러오는 요인이기도 하다.


 2020년대에는 2010년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자동차 시장이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업체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줄이다가 없앤다는 계획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지만 전지 기술은 거의 한계에 와 있는 느낌이다. 2017년부터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전기차 화재 사고는 전지 기술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격차는 더욱더 커져만 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목표가 계속 내려가면서 새로운 길이 보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SK온과 같은 후발업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몸이 무거워진 선발업체는 관성에 의하여 계속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다. _ 선우 준,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 상권>, p386/430


 K 배터리의 화재 안전성 기술이 최고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할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만든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이 화재 문제 때문에 대규모 리콜 사태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수조 원을 물어준 것이 언론에 대서특필된 게 불과 얼마 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업계를 들여다보면 내부의 시각은 다르다. '배터리는 경험 산업'이라는 말이 화재안정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쉽게 말해 '화재도 겪고, 대규모 리콜 경험도 있어야, 그 취약점을 보완해 더욱 안전한 기술을 확보하게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지금 글로벌 넘버원의 화재안정성 기술을 갖게 된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여러 번에 걸쳐 각종 화재 관련 리콜 비용을 부담하면서 조금씩 개선하고 발전해온 덕분이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85/236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에서는 BEV(Battery Electric Vehicle) 산업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다. 즉,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가 아닌 하이브리드 차량인 HEV(Hybrid Electric Vehicle)에서 수소전기차로 바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전망은 다소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은 전기차 산업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내용과는 다소 다른 전망과 관점을 알려준다. 이러한 내용이 다소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를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분명하게 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자동차 시장은 엔진이 없는 전기차인 BEV와 엔진이 있는 전기차인 HEV의 경쟁이다. 2010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BEV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2020년대로 오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HEV가 시장을 확대하면서 엔진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_ 선우 준,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 하권>, p314/420


 PS. <K 배터리 레볼루션>과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으로 나오는 리튬, 코발트 등 자원과 관련해서는 <배터리 전쟁>을 통해 자원민족주의 등의 현실을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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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팔렌 체제의 비범한 부분이자 이 체제가 전 세계에 확산된 이유는 이 조약의 규정들이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절차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 기본 요건들을 받아들인 국가는 국제 체계 덕분에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받으면서 자신들만의 문화와 정치, 종교, 국내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국제 시민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p38)....  베스트팔렌 개념은 다양성을 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각 사회를 현실로 인정하면서 다양한 다수의 사회들을 공동의 질서 추구 작업에 끌어들였다. 이 체제는 현재 국제 질서의 기반으로 남아 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39


 헨리 앨프리드 키신저 (Henry Kissinger, 1923 ~ )의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World Order>에서 30년 전쟁의 결과물인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phalia, 1648)에 기초하여 국제 정치를 바라보는 책이다. 본문에서 키신저는 근대 유럽의 출발점이기도 한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규칙'과 '세력균형'을 특징으로 집어낸다. 규칙이 국제질서의 출발을 의미한다면, 세력균형은 국제질서의 유지/존속을 의미한다. 


 질서의 두 측면인 힘과 정당성 사이에서 절충을 이루는 일은 정치가의 능력의 핵심이다. 도덕적 차원은 생각하지 않고 힘만 계산하면 모든 의견 충돌이 힘의 시험으로 바뀔 것이다. 야심은 쉴 줄을 모르고, 국가들은 변화하는 힘의 배치에 관한 힘든 계산을 하느라 고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편 균형 상태를 무시하는 도덕적 금지는 십자군이나 도전을 부추기는 무능한 정책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410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정자가 필요하다. 유럽 중부에 대해서는 통일 독일제국 등장 이전의 프랑스, 유럽 대륙에 대해서는 영국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조정자로서 기능했고, 이 역할은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넘어갔다. 다만, 세력균형에도 불구하고 체제 내에서의 움직임이 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세력균형을 무너뜨리려는 신흥국(프로이센, 러시아)의 등장으로 새로운 균형점으로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이러한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베스트팔렌조약은 유럽 정치에서 하나의 체제로 작동했고,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통해 이는 세계질서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다만, 여기에는 걸림돌이 있었다.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은 동맹국들 간의 구체적인 협정이나 유럽의 영구적인 정치 구조를 지시하지 않았다. 정의에 따르면 세력 균형에는 이념 상의 중립과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적응이 필요하다. 19세기의 영국 정치가 파머스턴 경은 이 개념의 기본 원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할 뿐이며, 그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39


 키신저는 베스트팔렌 조약의 원칙이 세계 원칙으로 적용되기에는 체제의 걸림돌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한다. 힘과 도덕성이 국제질서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라 했을 때 중국 문명은 과도한 도덕성의 강조로 폐쇄적인 면을, 이슬람 문명은 지나친 힘의 강조로 지나친 팽창주의를 펼치는 등 차이가 있었기에 국제질서에 베스트팔렌 조약의 특성을 직접 이식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세계체제에 걸맞게 베스트팔렌 조약의 원칙은 적용될 필요가 있었다.


  유교는 중국문화에 가까운 정도에 따라 정한 위계질서 상의 속국들로 세계를 분류했다. 이슬람은 평화의 세계, 즉 이슬람의 세계와 이슬람의 세계와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전쟁의 세계로 세계를 나누었다. 따라서 중국은 자신들이 이미 질서 정연하다고 생각하거나 도덕성의 함양 정도에 따라 내부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정돈된 세계를 찾으러 해외에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반면, 이슬람은 이론적으로 정복이나 전 세계적인 개종을 통해서만 세계 질서를 수립할 수 있었다. 실제로 두 방법을 위한 객관적인 조건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406


 이러한 상황에서 전후 세계질서에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은 민주주의를 통해 힘과 도덕성을 함께 완비한 조정국으로서 1970년대 폐쇄된 중국을 개방으로 이끌고, 전쟁 직전의 중동을 세력균형의 상태로 만들었음을 키신저는 강조한다. 이처럼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는 세계 질서를 위해 희생하는 국제조정자로서 미국의 모습과 미국 정치인들이 인식하는 국제정치의 틀이 잘 담겨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지만, 그것이 과연 객관적 인식인가 하는 물음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세력 균형의 절차상의 측면, 즉 경합 중인 당사자들의 도덕성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방식은 위험할 뿐 아니라 비도덕적이었다. 민주주의는 가장 훌륭한 통치 방식인 동시에 영원한 평화를 보장해 주는 유일한 방식이기도 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293


 국제 사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맡기 시작한 미국은 세계 질서를 추구하는 과정에 새로운 차원을 보탰다. 대의제에 의한 자유로운 통치라는 개념 위에 설립된 미국은 자국의 발흥을 자유 및 민주주의의 확산과 동일시하면서 이 요인들이 이제껏 세계가 성취하지 못한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403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기본적으로 주위 국가들의 호의에 근거하여 외교 정책을 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운명을 저당 잡힐 거라고 기대할 수도 없었다. 기본 원칙은 모든 핵심 국가들이 그 질서를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힘과 정당성을 결부 짓는 국제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닉슨이 생각하는 국제 질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국에 대한 문호 개방을 자극한 것은 바로 그러한 국제 질서에 대한 비전이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342


 여기서 한 권의 책을 더해 보자. 찰스 킨들버거(Charles Poor "Charlie" Kindleberger, 1910 ~ 2003)는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를 통해 세계평화, 안정, 성장 등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를 공급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갖춘 '경제적 선두'를 말한다. 킨들버거는 같은 책에서 경제적 선두는 내외적 요인에 의해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교체되어 왔음을 말하지만, 미국 이후의 경제적 선두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한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자리를 이어받기를 원하는 국가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지만, 미국 또한 물러나길 원치 않을 것이다. 국제질서의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지만, 심판이자 동시에 선수로서 국제 질서에서 달러와 석유로 결합된 경제력과 무력을 바탕으로 미국 중심의 규칙과 현 상태의 세력균형을 강요하는 상황 속에서 국제적 리더십의 부재. 이것이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들이 느끼는 세계질서의 공감대가 아닐까. 

 

 경제적 선두는 국민소득, 성장률, 기술혁신의 수와 그것이 장차 개화될 가능성, 생산성 증가율, 투자 수준,  원료 및 식량과 연료의 통제, 각종 수출시장 점유율, 금 보유고와 외환 보유고, 자국 화폐가 다른 나라에서 교환수단, 계산단위, 가치의 축적 수단으로 쓰이는가의 여부 같은 것 중 어느 하나로 어느 하나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것들과 함께 또 다른 경제적 기준들이 혼합되는 가운데 경제적 우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경제적 선두는 최상의 경우 지배나 헤게모니보다는 세계경제의 리더십에 따른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가 된다. 즉 지도자가 명령하듯이 타자에게 어떻게 처신할지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지시하고 또 그를 추종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설득하는 것이다. _ 찰스 킨들버거,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 , p28 


 킨들버거는 리더십의 공백, 부재 이후 움직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조정자의 무력을 가지고 베스트팔렌조약의 조약국 간 상호평등의 원칙 아래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경우, 극점체제는 단극(單極)에서, 양극(兩極)으로 다시 다극(多極)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법칙은 아닐런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에서 보여지는 미국 정치인들의 인식과 주변국들이 느끼는 세계질서의 흐름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페이퍼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금본위제 시기 영국의 경우에서와 같은 강한 리더십, 최소한 1970년대 초까지의 IMF와 세계은행(미국), 또는 GATT의 보복 위협은 그러한 장애물들을 뚫거나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적절한 힘과 목적을 가진 효율적인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 체계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변형되어, 유용한 방향으로 처음 발을 내딛는 자가 무임승차하는 다른 이들에 의해서 희생된다. 자비로운 전제주의가 가장 효율적인 체계라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평등한 국가들 사이의 다원적 협력체계 혹은 세력균형에서와 마찬가지로 엔트로피에 종속된다. _ 찰스 킨들버거,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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