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 사회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빈곤의 인류학
조문영 엮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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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3 조문영 엮음

내가 겪은 가난을 생각해 본다. 내내 가난하지는 않았다. 부모는 빈약하나마 경제활동을 계속했고 근근히 먹고 살았다. 우리집이 부자가 아니라는 건 알았다. 아마도 가난한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경제적인 부분보다는 가정폭력과 아빠의 정신건강이 더 큰 문제였다.

이십 대 초반 자립을 꿈꾸면서 첫 곤궁함에 부딪혔다. 왕복 네 시간 가까이 걸리는 통학도 힘들었고 아빠의 주사도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와 함께 한 가출 이후 나만 서울에 남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독립하게 되었다. 국립대라 싼 편인 등록금을 대준 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월세와 생활비는 집에서 지원해주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들어오길 바라고 그랬을 것이다. 월세랑 밥값이랑 교통비까지 60만원은 있어야 버틴다. 과외 알바를 두 개 하면 마련할 수 있는 돈이었다. 중개업소에 첫 달 과외비의 절반을 떼어주는데 한 달만에 짤리면 정말 큰일이 났다. 다음 과외 구할 때까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녔다. 같은 동아리에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부모님에게 생활비와 집세는 물론 넉넉한 용돈까지 따로 챙겨 받는 동기와 선후배들이 있었다. 공부하며 돈을 벌며 동아리 활동까지 열심히 하는 건 꽤나 버거웠다. 슬프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빈정상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자주 뒤틀렸다. 영화 기생충에서 충숙이 돈이 다리미라고 했다. 항상 너그럽고 친절하게 대해주고 여럿이 먹는 술값 밥값 깍두기 시켜주는 선배들을 볼 때면 고마우면서도 비참한 기분이 자꾸 스쳤다. 나는 누군가에게 베풀 수 없는 너그러움이었으니.

그나마도 스스로 벌 수 있을 때는 다행이었다. 갑자기 아토피성 피부염이 심해졌다. 가려워서 잠도 못자고 상처 때문에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한창 예쁠 나이에 흉해진 외모는 자존감까지 박살을 냈다. 크게 패배한 마음으로 집에 아쉬운 소리를 했다. 월세와 병원비를 보태주면서 아빠는 온갖 싫은 소리를 해댔다. 잘 걷지도 못하는 내게 다시 장거리 통학을 하라고 했다. 겨우 회복을 하고 졸업 한 학기 남기고 귀향할 때까지 버텼다. 복지 정책으로 지원금 주면서 간섭하는 국가라는 아빠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짐작만 할 뿐이다.

집에 돌아가고 일 년 만에 다시 가정폭력을 피해 엄마와 집을 나왔다.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모아둔 이전 임차 보증금은 아빠가 미리 빼앗은 상태여서 달랑 아르바이트로 모은 백삼십만원만 들고 있었다. 대학 졸업하고 수험생/취준생 신분이었다. 보증금 백에 월세 삼십 반지하를 구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부를 했다. 이상하게 가난해지면 병이 도진다. 퐁퐁 날리는 곰팡이 포자 속에서 아토피성 피부염과 싸우며 시험에 합격하고 취업을 했다. 반지하를 벗어났고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되었다.

그렇지만 가난은 언제나 쉽게 다시 돌아온다. 이제 막 새 전세집으로 이사를 마쳐 모은 돈 다 털어넣고 몸이 아파 병가 중인 상태에서 아기가 생겼다. 낳기로 결정하고 나니 역시 또 돈이 문제였다. 전세금에 부은 돈 일부를 엄마에게 받고 은행에서 사천만원 대출 받아 신혼집을 구했다. 혼인신고만 하고 가장 저렴한 세간들을 사모아서 살림을 차렸다. 6개월 후에 아기가 태어났다. 단열이 안 되는 전세집 벽에는 결로가 맺히고 곰팡이가 생겼다. 부모 양쪽다 피부염 앓는 유전자를 물려준데다 환경까지 엉망이니 어린 아기는 아토피성 피부염을 심하게 오래 앓았다. 한창 귀여울 시절 양볼에 진물과 피가 흐르는 커다란 상처를 긁어대며 못 자던 아기를 생각하면 여전히 슬프다. 다행히 지금은 멀쩡하다.

가난을 벗어난 방법은 단순하다. 학부 5년 대학원 10년 끝에 힘들게 학위를 얻은 남편이 월급 잘 주는 기업에 취직했다. 주택담보대출이랑 학자금대출 같은 빚이 억대로 남아 있어도 그냥저냥 갚으며 먹고 살 걱정은 안 한다.

개인의 운과 노력과 학벌로 빈곤을 벗어났지만 모두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면 오래 힘들게 일해도 많이 벌지 못 하는 사람들은 계속 힘들게 산다.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사는 일 마저 보장받기 어렵다.

이 책은 그렇게 벗어날 길 없는 가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대하고 서로 도와가며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과 대학생들이 반빈곤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알게된 점과 느낀 점들을 정리해 놓았다. 가난한 사람들, 이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을 만한 다양한 가난의 원인과 저마다의 살아남는 방식이 있었다. 용산참사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철거민의 삶, 마을과 지역단위의 연대, 노인, 쪽방촌, 홈리스, 장애인, 노점상, 영세상인. 이 책에 실리지 않은 가난은 또 얼마나 많을까. 실업, 질병, 사고, 이혼, 사업 실패, 유기, 탈학교, 가출, 폭력, 난민, 탈북민, 이주민 등등등. 누구에게든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가난이 닥쳐올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에게는 오지 않을 일 겪고 싶지 않은 일 치부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편견을 가지고 심지어 혐오한다. 온정적인 시선을 보내더라도 나보다 낮은 곳의 부족한 누군가에게 내가 뭔가를 베푸는, 그 때문에 권력을 가진 듯 굴면서 상처를 만들고 인권을 침해하기도 한다.

빈곤을 싸워야 할 것으로 삼고 힘들어하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행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참 대단해 보였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덕에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이 되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그런 활동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은 무엇일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비웃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라도 내가 놓일 수도 있었던 (있을) 위치의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를 계속 들어야겠다. 그 입장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겠다. 할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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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3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3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1-23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유행열반인님 글을 읽으니 우리는 우리가 당하고 싶지 않는 경험을 원치 않게 하는 이들을, 마치 그것인양 바라보는 것에 익숙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 대신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일지도, 우리가 조금 운이 좋았을 뿐임에도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네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3 15:46   좋아요 1 | URL
운이 좋았고 대신 겪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만으로도 슬프고 죄스러워지네요.

북다이제스터 2020-01-23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에 크게 공감합니다. 엉뚱하지만 반우행열반인 님께서 요즘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책 <팩트풀니스> 읽으시면 무엇이라 하실지 퍼뜩 궁금해집니다.
즐거운 설 명절 보내세요. ^^

반유행열반인 2020-01-23 18:17   좋아요 1 | URL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모르는 책이라 길게 드릴 말씀이 없는데 남들이 좋다 하면 슬쩍 엇나가는 못된 습벽이 있습니다...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01-23 18:48   좋아요 1 | URL
북플에선 짤리던 뒷부분 새해인사가 피씨버전에선 보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북다이제스터 2020-01-23 18:53   좋아요 1 | URL
저도 북플로 보는 중이라 글
뒤에 무슨 말씀하셨는지 현재 모릅니다.
알라딘도 이 문제 알텐데... 바쁘거나 기술적 어려움이 크거나, 돈이 없거나, 셋 모두이거나 그럴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

무식쟁이 2020-01-24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삶에서 꺼내온 아픈 언어라 먹먹하게 다가오지만.
또 이렇게 스스로 치유해가시는 씩씩한 열반인님. 정말 멋지신 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0-01-24 18:30   좋아요 0 | URL
제가 뭐가 멋져요. 좋은 말씀 건네주시는 무님이 더 멋지심ㅎㅎ 아프고 치유하고 할 거 없어요 이제 ㅎㅎ자본주의에 적응 잘 해서 소비의 노예하고 알라딘 플래티넘 몇 년 계속 하고 ㅋㅋㅋ나 맨날 낭만파괴해서 죄송해요...그래도 콩깍지는 일찍 벗겨드리는게 실망을 덜 하시는 길로 알고...
 
거짓말 읽는 법
베티나 슈탕네트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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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1 베티나 슈탕네트

모짜렐라슈나이저-너의 거짓말
http://naver.me/FfmLlBey
친밀함과 관심을 내보이며 다가와 단물만 쓱 빨고 사라진 아이 하나에 분개한 스물한 살 꼬꼬마는 미니홈피 일기장에다 동시 같은 걸 끄적여 놓았다. 동아리에서 베이스 치는 오빠가 그걸 보고 야 여기에 내가 곡 붙여도 되냐, 하고 노래를 지어왔고, 졸업 후 친한 사람 몇몇이 모여 얼마간 밴드를 할 때 그 노래도 대표 합주곡이 되었다. 홍대 앞 클럽 관객 없는 무대에서 몇 번의 공연을 하고, 노트북과 믹서와 마이크와 옷걸이를 휘어 스타킹으로 감싼 자체제작 팝스크린을 들고 남의 연습실을 전전하며 어설프게 녹음도 하고, 밴드 멤버 중 제일 재주좋은(잉여력 넘치는) 기타리스트(지금 같이 삼)가 엉망인 내 음정 음색을 이런저런 필터로 위장, 믹싱, 마스터링해서 디지털 음반까지 발매했다. 그 망령은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 대륙진출도 함… http://bar.qianqian.com/ipad#search/모짜렐라/
아무튼 네 곡 담긴 EP의 타이틀이 될 만큼 거짓말에 관심이 많은 젊음이었군요.

엄마 아빠가 가게를 하실 때 사기 당하는 무서운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다. 양복을 입은 멀끔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가게에 들어와 물건을 고르고 수표를 내밀었다. 수표 금액에 비해 저렴한 물건을 구입한 남자는 거스름돈으로 받은 현금을 쥐고 사라졌다. 남자가 나가고 나서야 수표 조회를 해 본 부모는 뒤늦게 확인한 도난수표 문구를 보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가게 문 밖을 뛰쳐나가보았지만 남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다른 사람과 그들의 말과 글과 행동을 대할 때의 기본값이 의심과 불신이 된 것이. 나는 속는 걸 싫어하고 처음에는 아무 것도 믿지 않아요, 하는 말에 엄마는 어째서 그러냐고, 자신은 왠만하면 앞에 마주한 사람의 말이 다 진짜라고 여긴다고 내가 이상하다고 했다. 내가 이상한가요. 이상하군요.

스스로 매우 솔직한 편이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데 주저함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살면서 했던 거짓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가장 큰 거짓말은 무엇이었나?
와, 생각났다. 진짜 왜 그러고 살았냐 싶은 사례가. 나는 내가 죽었다고 거짓말 한 적이 있다.
열여덟 살 때였다. 내가 자주 놀던 피씨통신동호회에 굳이 차명의 아이디를 새로 만들어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이곳 이용자인 누구누구가 학교 4층 창밖 내다보며 까불다 떨어져서 죽었습니다. 얘가 맨날 이 동호회에서 놀던 게 생각나서 소식 전하러 왔습니다.
추모글이 올라오고 난리가 났다. 며칠 후에야 뒤늦게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이 안 되어서 접속 못하는 사이 친구 새끼가 장난글을 올렸다는 해명글을 올렸다.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야이 관종새끼야 니가 지어낸 거지 하는 싸늘한 반응도 동시에 얻었던 것 같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정말 관심을 끌려고 했던 것도 같고, 죽었다 해놓고 동호회 활동을 접을 굳은 결심이었던 것도 같다. 그 굳은 결심이 별로 안 굳어서 다시 쪼르르 접속한 게 문제지.

사실 거짓말한 직후에는 내가 잘못인 줄도 몰랐다. 그냥 민망하고 창피하다는 기분이 잠시 들었고, 금세 잊었다. 그게 잘못인 것은 얼마 후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다. 같이 수다떨고 놀던 H라는 아이가 친구와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가다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모두 믿을 수 없어했다. 전에 누구누구처럼 장난일 거라고 했다. H와 가까운 사람 몇이 확인해주고 조문을 갔다온 뒤에야 H의 죽음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슬픔과 함께 감당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제서야 거짓말의 무거움을 조금은 알아먹게 되었고 함부로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 아침 대양에 빠진 건포도향 커피를 진하게 내리고 허니버터비스킷을 구워 꼬맹이들과 함께 먹으며 이 책을 펼쳤다. 며칠 전 십대가 된 큰꼬맹이가 책 제목을 소리내어 읽으며 호기심을 보였다.
거짓말 읽는 법?
응. 거짓말이 옳다 그르다 하는 책 아니고,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알아보는 책이야.
그렇군. 거짓말에는 상대방을 위한 거짓말이 있고, 세상을 좋게 하려는 거짓말도 있고, 자기 이익을 위한 거짓말도 있어.
야, 그런 건 어디서 봐서 아는 거야?
고릴라랑 고양이 나오는 책 있잖아. 고릴라가 텔레비전 부쉈는데 고양이가 자기가 그랬다고 감싸주잖아. 고양이는 고릴라를 정말 사랑해서 거짓말을 한 거야.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우리는 친구 이야기였다. 거짓말을 생각할 때 대부분은 남을 속이고, 그로 인해 상처를 주고, 그러니 거짓말은 나쁘다, 하는 담론에 매몰되고 만다. 그런데 꼬맹이가 대뜸 선의의 거짓말부터 이야기하는 게 놀라웠다. 언젠가 머리 큰 꼬맹이가 다 엄마를 위해서야, 알면 쓰러져, 하면서 나를 속이는 미래를 생각한다. 콜버그 도덕성 발달이론에 별로 맞지 않게 자유롭게 자라는 꼬맹이를 보면 나의 양육 태도와 내가 설파한 프로파간다가 얘 인성과 사회성에 과연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지 잠시 회의감도 든다. 네 인생이니까, 정신 단단히 차리고 잘 살려무나...내 말 너무 심각하게 듣지 말고…

이 책은 윤리, 도덕적 판단에서 벗어나 인식론의 관점에서 거짓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한다. 거짓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저해하는 것들을 하나씩 짚어간다. 예를 들면 거짓, 거짓말, 거짓말 하는 사람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잊는다. 누군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 번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이해를 방해한다. 거짓말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소통을 원하고, 대화가 이루어지고, 그 매체가 언어이기 때문이고, 또한 거짓말에 속는 사람이 바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것은 거짓말이란 도덕적이지 못한 누군가가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속이려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통념을 벗어나야 진정 거짓말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나 아렌트의 생각 일기 중 “나는 거짓말을 할 수 있으며, 할 수 없다면 나는 자유롭지 않다.”는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거짓말을 할 능력도 있어야 하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자유도 전제되어야 한다. 단순하지가 않다. 뿐만 아니라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앎이란 무엇인가, 지식과 믿음과 의견의 차이는 무엇인가도 물어야 한다. 앎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니 자연스레 칸트의 철학도 이 책에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 하이데거의 세계, 끝없이 의심한 끝에 도달한 데카르트의 (그걸로 뭘 더 할 수 있겠어 싶은) 결론, 그리고 야스퍼스의 진실에 대하여에서 성토하는 거짓의 문제도 언급된다. 아 다 어려워...그래도 야스퍼스의 글을 인용한 부분은 왠지 적어 놓고 싶었다. 우리가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로 만날 떄에야 가능한 함께 하는 생각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는 상대가 진정성을 가질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나부터 먼저 속을 열어 보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나의 개방성이 진정성을 가지며, 그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줄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있다. 나는 솔직함 그 자체이며, 내 목적을 위한 어떤 수단으로 개방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또 내가 어떤 인간을 믿고, 이 믿음이 어떻게 자라나며, 그리고 이 믿음이 진실이라는 보상을 얻을지 아니면 환멸을 안길지 하는 책임 역시 나의 몫이다.”
거짓이 아닌 진실을 택해야 할 이유를 멋지고 용감하게 선언한 말로 들렸다. 누군가와 만나고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고립되지 않고 ‘너’를 만나고 ‘우리’를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

철학 담론은 확실히 어려워서 제대로 이해한 부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드문드문 안다는 것, 믿는다는 것, 내가 거짓, 거짓말, 속이고 속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온 관점과 그와는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들에 관해 먼저 산 철학자들의 생각과 저자의 관점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뭔말인지 잘 모르는데 흥미롭게 읽히는 신기한 책이었다. ㅋㅋㅋ 반납 전에 다시 한 번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 하자니 믿음에 대한 것도 궁금해졌다. 지금 내가 쓴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어떻게 진실과 거짓을 받아들일 것인가. 글을 쓴 내가 사실은 50대 미혼 남성에, 아이는 낳은 적도 키운 적도 없고, 아침엔 순대국밥으로 해장을 했고, 이 책을 읽지도 않고서 남이 써 놓은 글들을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아 짜 맞췄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 책에는 칸트도 한나 아렌트도 데카르트도 하이데거도 야스퍼스도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을 수도. 철학책이 아니고 거짓말을 잘 파악하는 요령을 담아둔 처세술 내지 자기 개발서일 수도 있잖아. 누구도 이런 의심을 하면서 남의 글이나 말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정보를 수집하다가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테니까. 다른 사람과 아무런 연결고리를 만들지 못할테니까. 그러니 인간이 가진 기본값은 의심과 불신보다는 믿거나 ‘적당히 속아주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의심과 불신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전지전능과 통제에 대한 욕심이다. 그러니 내려놓고, ‘나부터 속을 열어보이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삶을 살아야겠네, (이미 그러고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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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1-21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점점 물이 오르다 못해 넘쳐흐르는 반님의 리뷰.... 신년에는 독서신이 내리셨군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1 18:09   좋아요 0 | URL
syo님 재치의 발끝만큼이라도 따라가고 싶은데요...그냥 마구잡이로 읽고 쓰는 요즘이어요 ㅎㅎ

무식쟁이 2020-01-24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구잡이로 읽고 쓰는게 이정도라는 거죠?
(요즘 1일1페이퍼 하시는군요. )

반유행열반인 2020-01-24 22:00   좋아요 0 | URL
하루 하나는 아니고 이틀에 한 번 정도 올려요 ㅋㅋ복직 전 발악...

무식쟁이 2020-01-24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열반인님 목소리가 일케 이쁘시다구요?? 😲
전투적으로 걸걸허숙희 보이스일 것만 같은건 저만의 편견. 이게 바로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군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4 22:00   좋아요 0 | URL
저거 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펙팅...ㅋㅋㅋㅋ속고 계십니다. 제목부터 거짓말이잖아요.

2020-01-24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1-24 21:58   좋아요 0 | URL
우와아아아아!!! 진짜 이렇게나 비스무레한...왜 이럴까요 우리 ㅋㅋㅋ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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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이언 매큐언

안녕하신가영-우리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
https://youtu.be/GG6VP77uv1w



줄리언 반스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내 말에 친구는 반스도 괜찮지만 이언 매큐언 쪽이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어톤먼트 영화만 보고 이언 매큐언은 읽은 게 하나도 없어서, 그럼 읽어볼까 하고 이 책을 골랐다. 줄리언 반스는 슬렁슬렁 읽어도 잘 넘어갔는데 이언 매큐언은 표현이 더 비장?하고 열심히 문장을 꾸며놔서 그보다는 조금 더 집중해서 봐야 했다. 그래도 재미있고 잘 읽히는 편이었다.



아아, 나는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한 왕국의 왕으로 여길 수 있네.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

—셰익스피어, 『햄릿』



제목의 넛셸, 호두 껍데기는 햄릿의 구절에서 따왔다. 이 이야기 자체가 또다른 햄릿의 이야기라는 걸 드러내고 시작한다. 어머니와 삼촌이 눈이 맞아 아버지를 죽이고 그걸 알게 된 햄릿이 복수하는 이야기.

다만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을 보고 어머니와 삼촌의 악행을 알게 되어 저게 진짜 아버지냐 아니냐 저게 참말이냐 아니냐 고민하다 복수를 결행하지만, 넛셸의 화자는 어머니 뱃속의 태아로 불완전하나마 자궁 벽에 귀를 대고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거짓말과 음모의 현장을 (목격은 못하지만) 듣고 상상한다.

호두 껍데기에 갇힌 알맹이마냥 좁은 뱃속에 뒤집혀 있으면서도 알 건 다 아는 아이. 아버지를 죽이려는 어머니를 끝내 미워할 수 없어 사랑하는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위에 따라 자신의 자유와 성장 환경이 달라질 것을 마냥 염려하고 저울질 하는 아이. 뱃속 아이가 바깥 세상을 낱낱이 이해할 수 있다는 설정. 아이는 엄마가 듣는 온갖 팟캐스트를 들으며 국제 정세와 세상 이치를 이해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낭송해주는 시를 들으며 운율을 이해한다. 다 듣고 있었단 말야? 첫애 임신 때는 마릴린 맨슨과 클래식을 번갈아 들으며 대항해시대를 죽어라 했더니 애가 자라서 음악 취향 독특한 겜돌이가 되었다. 둘째 태중에는 에어리언 1,2,3,4,프로메테우스,커버넌트까지 찍고 미드 덱스터 전편…낳기 직전까지 읽은 책이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 유혈 낭자한 컨텐츠를 많이 소비했지만… 아직은 착하게 잘 크고 있다.



이 소설 보면서 거짓말에 대해 인식론으로 접근하는 철학책도 같이 읽는 중이다. 엄마 트루디는 이름부터 디카페인마냥 진실한-에 디가 붙었다. 내연남이자 아이의 삼촌인 클로드와 함께 낡았지만 비싸게 팔 수 있는 집을 차지하기 위해 집의 소유주인 아이 아빠 존 케언크로스를 제거하는 음모를 꾸미고 거짓을 준비한다.



“그럼.” 아버지가 말한다. 그의 말에는 그가 알지 못하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이만 가볼게.”



여기 왜 밑줄 쳐놨냐. 죽음과 사랑의 컵을 들이킨 존의 마지막 말이 왠지 슬펐나 보다. 독이 든 스무디를 마시게 하려고 트루디는 존이 상기시킨 옛 사랑을 위한 건배 제의를 한다.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게된 사이는 사랑한 적 없던 사이보다 훨씬 못한 게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그저 헤어지고 멀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증오하고 제거하고 싶어진 마음이란. 그래서 건네는 거짓말이란. 거기에는 돈과 욕심이 끼어 있다.



뱃속의 태아란 바깥 세상을 얼마나 간파하건 간에 무력하고 무기력한 존재라, 그 아이가 실행할 수 있는 복수란 이미 예측 가능하고 그래서 결말도 약간 싱겁긴 했다. 존의 유령이 나타나 클로드와 트루디를 휩쓸고 가는 장면의 으스스함은 마음에 들었지만 읽으면서도 그저 뱃속 아이의 꿈일 뿐, 하면서 더 서글퍼질 뿐이었다. 테레즈 라캥의 두 커플이나 박쥐의 태주와 상현은 그나마 극심한 죄책감 속에 결국 죽음 밖에는 다른 끝을 생각하지 못하지만, 여기 두 커플은 죄책감조차 너무나 희박해 더욱 밉살스러웠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안 예쁜 커플은 처음 본다. 섹스도 안 예쁘고 둘이 티격태격하는 것도 꼴보기 싫고. 서로를 증오하고 물어뜯고 빈정대는 게 이미 다 끝난 놈들 같은데 오로지 합의점이라고는 존을 없애고 싶고 그의 집과 돈을 차지하고 싶다는 마음 뿐인데 그게 이렇게 일치단결해서 너무 쉽게 사람을 죽여버린다. 어쩜 뒷수습은 제대로 생각도 안 하는 멍청함도 똑같다.



이웃의 리뷰에서 존이 죽임 당한 이유를 시를 읊어서, 라고 했는데.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아이 아빠가 (클로드처럼 상투적인 말을 남발하진 않더라도) 건조하고 실용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고, 엄마가 새로 사랑에 빠진 사람이 시를 쓰고 시를 읽고 시를 낭송하는 사람이라면, 뱃속 아이의 입을 빌린 소설가는 누구에게 더 호의적인 말을 했을까. 일리가 있네, 아버지는 죽어도 싸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ㅎㅎㅎㅎㅎ.

조금 더 나아가서 엄마를 밤낮없이 뚜들겨패는 아버지를 내연남과 엄마가 공모해서 죽여버리는 이야기라면, 뱃속 아기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설정하다보니 갑자기 우리 엄마 생각난다. 신혼 3일 만에 술처먹고 때리고 옷단추찢어서 벗어던지고 유리를 박살내는 미친놈이 남편이 된 걸 깨달았을 때, 그런데 뱃속에 나라는 호두 껍데기 만한 게 생긴 걸 알아서 도망갈수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절망의 나락은. 죽여버릴 생각은 못했을까. 아빠의 줄줄이 남동생들은 엄마를 참 좋아하고 잘 따랐다. 엄마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따뜻하게 답변해주는 사람이었으니. 외국 나가서도 형수형수 하면서 편지 쓰던, 자기 신혼집을 굳이 우리집 근처에 마련하던, 자기 부인에게 형수 좀 보고 배워, 하던 그 삼촌들 중에 엄마를 좋아했던 놈도 몇몇은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매일 술처먹고 그 착한 형수를 괴롭히는 자기 형을 죽이고 싶은 놈도 한둘은 있지 않았을까. 그럼 뱃속에 있던, 그러다 태어난 나는 누구를 응원했을까. 누구를 응원해야 했을까. 그래도 유전자 반을 물려준 아빠? 엄마를 해방시켜줄(그리고 다시 유사한 지옥으로 끌고 내려갈) 삼촌? 결국 다같은 할아버지한테 난 남자새끼들이라 다 노답이지 싶다. 나도 얼마간의 유전자를 나눠가진 노답 집구석. 암튼 그런 지옥이 싫어서 스물 다섯 살의 나는 엄마를 때리는 아빠를 때리고 엄마 손을 잡아 당겨 구급차를 타고 집을 나왔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아빠는 독이 든 스무디를 진작에 마셨을 거에요. 그러니까 혼자 살아남은 걸 기쁘게 여기고 잘 사세요.

기승전패륜ㅋㅋㅋㅋ



자유의지에 대해 부정하며 사랑에 대해 아이가 남긴 슬픈 코멘트를 밑줄 쳐놨다. 유전자와 지나온 날이 만든 두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를 되게 냉소적으로 써 놨다. 아이야, 그래도 네 말대로 네 ‘추측은 전에도 틀린 적이 있다.’

이제 복수를 위해 태어났으니 진짜 ’잔을 통해 마시는 와인, 불빛 아래 직접 읽는 책, 바흐의 음악, 해변 산책, 달빛 아래서의 키스’ 를 누리며 진짜 사랑을 겪어보길. 네 말대로 ‘그 모든 것이 비싸지 않고, 손에 넣을 수 있으며,’ 네 앞에 놓여 있으니까.



‘하지만 나조차 안다. 사랑이 논리를 따르지 않으며, 권력이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연인들은 갈망뿐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첫 키스에 이른다. 늘 이점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피난처가 필요하고, 또 어떤 이는 그저 황홀경이라는 초현실만 요구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나 비이성적인 희생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경우는 드물다. 과거의 실패에 대한 기억도 빈약하다. 어린 시절은, 유익하게든 그렇지 않게든 성인의 피부를 뚫고 빛난다. 성격을 형성하는 유전의 법칙 또한 그러하다. 자유의지 따위는 없음을 연인들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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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드 동백꽃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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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처음 원두를 샀다. 십수년 전에는 다른 입점 업체들이 있어서 화장품, 가방, 쿠키, 샴푸, 같은 것도 샀었다. 별별 걸 다 팔았던 알라딘... 괜히 옛날 이야기...라떼는 말이야...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구운 크로아상이랑 먹으려고 연하게 커피를 내렸다.
놀랍게도 별 맛이 없었다. 맛대가리가 없다 이 뜻은 아니고 시지도 쓰지도 달지도 않은 것이 진짜 특색이 없었다. 그런데 마시면 아 내가 커피를 마시는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뒷맛 같은 것조차 여운을 안 남기니 물처럼 마시라면 장점이긴 하겠는데 내리거나 마시는 동안 향도 거의 없다. 커피보다는 차 마신 기분이었다.
커피는 하나도 모르고 그냥 드립백에 든 거나 간편 필터 컵에 걸고 블렌딩 원두 갈려 있는 거 대충 사다 내려먹는 사람이라 내가 요령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오후엔 좀 더 진하게 내려서 도전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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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 2020-01-19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두 번 구매했는데 그냥 평범하더라고요. 근데 얼마 전에 입맛에 안 맞는 원두도 몇 번 나와서 저는 이정도면 만족이다 싶어서 마셨어요. 예전에 향도 좋고 맛있던 알라딘 블랜드가 그리워요.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0-01-19 10:33   좋아요 1 | URL
다른 블렌드도 있었군요 ㅋㅋ 무난무난하긴 한데 너무 무난해서 다음엔 다른 종류 살 것 같아요. 200g 언제 다 먹지...

무식쟁이 2020-01-19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향이 없는 커피라니... 슬푸다..
뭔데 이러케슬프지?
(저 요즘 걤성폭발중이에요..)

반유행열반인 2020-01-19 11:49   좋아요 0 | URL
제 코가 이상한가 싶어 커피 꾹꾹 눌러 담아 지금 내리는 중인데요. 처음엔 향 비슷한 게 나는 듯 하다가 지금은 코를 처박고 들이대고 맡아도 음 어디갔니 어디갔어 하는 느낌이에요...진짜 말씀 듣고 보니 슬프네요. 뭔가 누가 떠나버리고 뒷자취 찾는데 안 남아서 서글픈 감각임...

반유행열반인 2020-01-19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하게 내리면 그 건포도향?과일향? 이라는 걸 긴가민가하게 느낄 수 있다. 그니까 태평양에 빠진 건포도알갱이의 향 정도...우유를 넣으면 조금 고소해져서 봐줄만 한 수준까지...이 커피는 무조건 진하게 먹는 걸로...

공쟝쟝 2020-01-19 14:22   좋아요 1 | URL
태평앙에 빠진 건포도라니 비유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1-19 14:38   좋아요 0 | URL
나쁜 건 아닌데 진짜 심심한 커피라고 밖엔 할 말이 없어요 ㅋㅋㅋ

scott 2020-01-19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에 향이 없다니 이러면 원두를 사먹을 이유가 없네요. 그런데 왜 알라딘은 동백꽃향이 날것처럼 화려한 문구로 홀릭했네요. 로스팅에 문제가 있었나봐요태평양에 빠진 건포도 알갱이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01-19 21:22   좋아요 1 | URL
감각, 특히 미각이란 너무도 주관적이어서 제가 특정 냄새나 맛을 못 느끼는 미맹일수도 있지요!(열반인 미맹설) 그러니 어떤 분들에게는 좋은 커피일수도... 그러나 평은 대체로 평범하다는 말이 다수...(알라딘이 제 리뷰를 늘 싫어합니다. 맨날 까면서 매출 방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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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3 줄리언 반스

보내야 하는 시간동안 책을 읽었다. 의외로 그 시간이 꽤 괜찮았다! 밖은 춥고 안은 따뜻했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그런데 무척 재미있었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많이 남은 게 신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걱정이 들었다. 그저 평범하고 최악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살아온 날들, 그 작은 역사를 문득 돌아보다가 나야 말로 구제불능의 쓰레기였고 내 인생 자체를 부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어쩌나 하는. 그래서일까 미리부터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매번 되뇌이고 가깝고 먼 예전 일들을 돌아보며 부끄러워 하는 일을 반복한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내가 상처주고 고약하게 굴었던 사람들은 내가 그러는 걸 모른다.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이십 대 어린 날. 나는 이제 두 사람 분을 먹어야겠군, 하며 커다란 오리지널 와퍼를 꼭꼭 씹어 삼켰다. 두 줄이 그어진 사진을 보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니어 와퍼 하나를 겨우 꾸역대며 삼키고 밤새 토하던 옆 사람 모습이 기억난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 너무 무서워서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 정도의 충격을 받을 정도로 준비되지 않은 임신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사건이다. 그래도... 배부른 채 수근대는 소리 무시하며 낳기 며칠 전까지 돈벌러 나가고 찢어지는 고통으로 낳고 젖먹이고 안아 재우는 건 누구였을까요. 목을 매거나 욕조에서 손목을 긋지 않은 건 감사할 일이지만. 그냥 십 년 전의 그런 일들 생각이 난다.
주제는 사뭇 다르지만, 잃었던 기억을 되짚어가는 구성에서 올드보이가 생각났다. 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니, 자기가 겪은 일을 어찌 잊지? 기억에도 있고 일기도 쓰고 편지도 쓰고 하잖아.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진실을 담는데 취약하고 편향된 관점이 담기는지 뒤늦게 알았다. 거기에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축복인양 바라던 망각이 기억을 잠식하는 꼴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이런 거구나...내가 틀릴 수도 있겠구나...그걸 모르고 누굴 미워하고 누구에게 미움받는 걸 모르고 살 수도 있겠구나… 약간 무서워진다.
어릴 때는 여럿이 몰려다니고 농담 따먹고 궤변 늘어놓고 그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특히 남자애들 패거리 노는게 너무 재미있어 보였는데. 그깟 빻은 놀이가 뭐가 부러웠나 모르겠다. 면밀히 주변인으로 관찰하며 배운 거라곤 음담패설과 욕뿐, 남남이고 여여고 여남이고 셋 이상의 이너써클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노닥거리는 소설 보면 괜히 회한에 젖는다. 지나고 보면 걔들도 다 저 살기 바빠서 안 만날 걸...토니가 친구도 없고 부인하고도 이혼하고 자식도 안 찾아오고 하는 걸 보면 대체 말년에 남는 사람이란 누굴까 무얼까 싶다. 저놈처럼 눈치없고 생각 없이 살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착하게 대하며 살아야겠다 싶다. 급 교훈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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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1-14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멋대로 기억을 재배치하는가봐요. 저도 이소설 엄청엄청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음. 이것도 재구성된 기억인지 자신감 급하락.

반유행열반인 2020-01-14 16:55   좋아요 0 | URL
책 읽고 좋았었다고 남은 기억은 정확하지 않아도 누구도 해치지 않으니 자신감 하락하지 않는 걸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