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남 - 폭발적으로 깨어나고 눈부시게 되살아난 사람들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20250111 올리버 색스.

WING - Dopamine
https://youtu.be/qlrpeYdm9Ec

이 책에 나온 사례와 엘도파 치료 적용을 이해하려면 파킨슨증과 수면병(뇌염후증후군, 그 병세가 파킨슨증과 유사한 경우가 많음)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한다. 책머리에 자세하게 병에 대한 소개가 되어 있지만, 제대로 이해를 못했던 것 같다. 약 복용 이후 잠시 회복되는 듯하던 환자들이 극심한 부작용이나 퇴행을 보이는 걸 읽으면서 그럴 거면 뭐하러...박사님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네...하는 생각을 했다.

MSD매뉴얼에 설명된 파킨슨병
https://www.msdmanuals.com/ko/home/%EB%87%8C-%EC%B2%99%EC%88%98-%EC%8B%A0%EA%B2%BD-%EC%9E%A5%EC%95%A0/%EC%9A%B4%EB%8F%99-%EC%9E%A5%EC%95%A0/%ED%8C%8C%ED%82%A8%EC%8A%A8%EB%B3%91-pd

그렇지만 약물 치료가 없으면 뇌의 도파민 신경체가 망가진 사람들에게는 폭발적인 되돌림, 회생, 변화 같은 게 잠시라도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올리버 색스 박사가 부작용이나 퇴행에도 불구하고 약물 치료를 계속 시도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수치나 통계로 모든 것을 돌리는 환원주의를 경계하고, 환자의 병력과 입장을 관찰하고 공감하며 직접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서사를 가능한한 섬세하게 전달하려는 시도가 특색있었다. 이 책이 있었기에 나중에 조금 더 대중적으로 잘 읽히게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같은 책도 있었겠다 싶다.

잠든 듯 죽은 듯 갇혀 있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마저 갇힐 뻔한 걸 박사님 덕에 알 수 있는 건 귀한 경험이었지만, 조금 걱정도 되었다. 건강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그들의 분투와 삶이 그저 흥미거리가 될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애써야 할 부분이 종종 있었다. 환자의 사적 영역과 불행, 사회 속 인간들이 자제하고 억제하는 부분들이 무너졌을 때의 비참한 모습 같은 게 특히 그랬다.

이런 우려나 비판을 의식했는지, 박사님은 자신의 연구와 이 책에서 취한 관점, 환자들이 공통으로 겪은 깨어남, 시련, 적응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상세히 후술해 놓았다. 이것만으로도 책 한 권은 될 법하다. 사례들을 보기 전에 이걸 먼저 보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박사는 괴테의 문구 인용으로 대답을 해 놓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실이 이론이다. … 현상 뒤의 무언가를 찾아다녀봐야 쓸데없다. 현상이 바로 이론인 까닭이다.’(360). 이 관점에서 본다면, 독자들이 먼저 사실을 접하며 직접 느끼고 알아가길 바라서 굳이 이런 순서로 책을 엮은 듯하다. 이 책은 여러 번 주석을 뒤집고 내용을 붙였다 뺐다 하면서 개정판을 계속 냈다는데, 거기에서도 박사가 어떻게 자신이 경험하고 알게 된 것을 잘 전달할지 고민한 것, 그리고 박사가 가진 환자에 대한 애정과 염려가 엿보였다.

깨어남 이후 환자들이 큰 어려움으로 이행될 때 내가 아무 고민 없이 ‘부작용’이라고 지칭한 상황에 대해서 박사는 그 용어 자체를 반대하며 내재한 ’근본적인 문제‘, ’병에 걸리기 쉬운 경향‘ 등으로 다르게 보고자 한다.
’그런데 이 모든 현상을 ‘부작용’으로 부르다니 그 얼마나 부조리한 노릇인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경험과 성격, 전체적인 기질과 관계없이 그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말이다. 각 환자 개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런 반응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으며, 세계의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환자의 특성을 이해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자연이 본질적으로 연극적이며(“이 세계는 일종의 연극 무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시처럼 자신을 드러낸다는 사실(한때는 모두가 알았던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397-398)

유행병으로 번졌던 특정 시기의 수면병과 뇌염후증후군은 국지적으로 발생하거나 잘못 진단되어 발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1990년대에도 드물게 병례가 등장하고 있다. 비슷한 듯 진행 양상이 조금은 다른 파킨슨증 환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증가 추세(2025년 기준 최근 4년간 약 13퍼센트 증가)라고 한다. 파킨슨증이든, 알츠하이머든, 정신질환이든, 뇌손상이든, 과거의 모습을 잃고 다른 인격체나 다른 상태로 생을 이어가는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사례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에 다가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들이 마주한 심연을 짐작하며 고통을 더는데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이 책을 영화화한 작품도 파일을 구해놨었는데 조만간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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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이 일어나는 생각을 하면 바로 발작이 일어나요. 그래서 발작이 일어나지 않는 생각을 하려고 해도 발작이 일어나요. 발작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면 또 발작이 일어나요. 선생님은 이게 강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보세요?”(99)

-“(…) 하지만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병에 휘말려 들어가는 걸 알 수 있어요. 파도가 헤엄치는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처럼요. 저 병이 누나를 집어삼켜 우리 곁에서 빼앗아 가는 것 같아요…” Y부인은 서른다섯 무렵에 사실상 말을 잃고 정지된 채, 깊고 아득한 곳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남편과 자녀들은 무력감으로 고통받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결국 입원하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결정한 사람은 Y부인 자신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난 이제 됐어. 더 할 일이 없어.” (163, 내 안에 갇히지 않았음에 감사하기. Y부인의 가정은 슬프게도 저 입원과 함께 해체되었다.)

-“야, 이놈들아, 그만 좀 내버려두지 못해! 이 빌어먹을 검사가 무슨 의미가 있어! 그 대가리엔 눈하고 귀도 안 달렸어? 내가 슬퍼서 죽어간다는 게 안 보여? 빌어먹을, 좀 평화롭게 죽잔 말이다!” 이것이 로날드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나흘 뒤, 그는 잠자다가 혹은 혼미한 상태에서 죽었다. (205, 사랑을 잃으면 죽기도 한다.)

-‘고통이 이 방 안 어딘가에 있다고 느껴왔지만 그게 어딘지 안다고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군요.; (209, 저 느낌 왠지 알겠다.)

-“선생님처럼 사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무엇에 비교하시겠습니까?” 그는 다음의 답을 한 자 한 자 늘어놓았다. “감금. 박탈. 릴케의 <표범>같다.”

수많은 창살이 스쳐 지나가 그의 시선은
지쳐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에게는 수천의 창살만 있고
수천의 창살 뒤에는 어떠한 세계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병동을 훑어보고는 다시 타각타각 알파벳을 가리켰다. “여기는 인간 동물원이다.” (…) “내게 있는 것은 어떤 끔찍한 실재다.”(…) “그리고 어떤 끔찍한 부재가 있다. 내가 말하는 실재는 성가시게 따라붙고 밀쳐대고 짓누르는 제약과 구속과 훼방의 상태다. 나는 이걸 보통 ‘막대기와 고삐’라고 부른다. 부재란 끔찍한 고립과 차가움, 쪼그라드는 것이다. 이건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 아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한없이 깊은 어둠, 비현실.”(325-326, 뇌염후증후군 환자 레너드 L.이 알파벳보드로 표현한 자기의 생.)

-열 살 때는 이런 소리를 자주 했다. “나는 평생을 책 읽고 글 쓰면서 보내고 싶다. 책 속에 파묻혀 살고 싶다. 사람은 도저히 믿음직하지 못하다.” (…) (서른 살에) 입원하자마자 바로 병원 도서관 관리를 맡았다.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고, 정말로 책 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는 실로 책에 완전히 파묻혀 살았고, 어떻게 보면 어린 날의 소원이 무시무시한 형태로 성취된 셈이다. (327-328)

-정신분열적 환각의 기능(과 양상)은 일반적으로 현실 부정의 성격을 띤다. 반면에 마운트카멜병원 환자들한테 나타난 양성적 환각의 기능(과 양상)은 현실 창조의 성격을 띤다. 다시 말해 운명으로 인해 잔인하게 부정당한 행복하고 충만한 건강한 삶을 상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들의 환각이 건강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은 소망의 표시라고 본다. 그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상상과 환각뿐이기에, 그들은 환각 속에서 풍요롭고 극적인 인생다운 인생을 경험한다. 그들의 환각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감각기능과 운동기능, 사회적 기능에서 극도로 고립된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어떤 환자가 풍요로운 양성적 환각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껏 즐기라고 권장한다. 삶을 추구하는 모든 창조적 노력을 권장하듯이.(338, 색스 박사의 ‘환각’을 읽을 때 박사가 엘에스디 사용 경험을 털어 놓은 게 어렴풋이 떠오른다. 환각에 대해 긍정적이고 대안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이 놀라운 각주 부분이었다.)

-“처음엔 말입니다, 선생님, 저는 엘도파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그 생명의 묘약을 처방해 준 선생님께 감사했죠. 그러다가 모든 게 나빠졌을 때는 그게 이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독약이라고요. 그걸 내게 준 선생님을 저주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공포와 희망, 증오와 사랑...지금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근사하면서 끔찍하고,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일이죠. 결국엔 슬픈 일이고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나는 그냥 놔두는 게 최선입니다. 약은 이제 그만이에요. 지난 3년 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평생을 갇혀 지내던 장벽을 뚫고 나온 겁니다. 이제는 제 자신으로 살아갈 겁니다. 엘도파는 그냥 두셔도 됩니다.” (344, 레너드 엘의 경험과 통찰은 이 책의 사례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라이프니츠의 ‘최적률’(건강)은 수치로 나타난 지수가 아니라 엄청나게 다양한 세계, 현실성 그 자체인 세계라는 구조에서 가능한 방대하고 다양한 관계를 시사하는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질병이란, 구조 혹은 서롂가 허약하고 경직된 까닭에 최적률에서 이탈한 상태인 셈이다(질병 자체의 힘이 워낙 강력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건강의 양상은 비한정적이고 확장적이며 세계의 충만함을 지향한다. 반면에 질병의 양상은 한정적이고 환원적이며 세계를 자기 안으로 축소시키려 든다. (361, 건강과 질병에 대한 다른 관점. 그저 아프거나 불편해지는 것 이상의 존재론적 변화.)

-처음에는 마른 토양에 물을 공급하거나 침체 지역에 돈을 지원하듯 엘도파를 ‘적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조만간에 합병증이 발생한다. 합병증이 발생하는 것은 애초에 복잡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그것은 단지 한 가지 물질의 고갈이나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뇌조직 자체에 결함 혹은 장애가 있는 것이며, 그 밖의 부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386, 병은 제거 가능한 단일 원인이 아닌 여러 구조적 문제가 겹쳐지며 나타난다고도 볼 수 있다.)

-투약량은 늘리거나 줄이는 것뿐, 다른 일은 할 수 없다(투약 간격을 조정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뇌 반응과 행동은 여러 차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1차원적인 언어로는 기술하거나 산정하기 어렵다. 환자의 반응을 투약량으로 ‘적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가정하는 것은 뇌가 일종의 척도이고 그 엄청난 복잡성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믿는 꼴이다.“ 생물 조직은 생리학 및 화학 조직으로 축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니덤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왜냐면 어떤 것으로 축소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394)

-질병disease의 중심 개념이 편안하지 않음dis-ease인만큼 치료의 중심 개념은 편안함이다. 환자에게 편안함을 더해주는 모든 것이 잠재적 병리 요소를 감소시키며 최선으로 적응하게끔 돕는다. (409, 나를 만나는 의사 선생님들이 이런 생각을 늘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들에게 현실이란 현실 속 사람들에 의해 주어지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부재에 의해 그들의 현실은 박탈당한다. 우리의 현실감, 신뢰감, 안정감은 절대적으로 인간관계에 의존한다. 견고한 관계는 재난에서 우리를 구해낼 생명줄이요, 망망한 고해에 뜬 북극성이자 나침반이다. (…) 중요한 점은 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집에 있는 듯 편안하게 느끼는 것, 세계라는 집에 진짜 자신의 자리가 있음을 마음속 깊이 느끼는 것이다. (414, home sweet home)

-나는 지옥이란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의 환자들은 돌아왔다. 돌아온 이들에게서는 그 경험의 자국이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 궁극의 심연을 겪었으며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경험이 그들을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환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뇌염후증후군의 심연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자기만의 심연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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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작은어린이가 ‘평생 기억하는 지구 이야기’(누나가 읽던 것. 중고로 3천원에 샀는데, 견출지로 아름다운 가게, 1000원, 붙어 있어서 빡치는 부분)를 재미있게 읽고선 후속작 ‘평생 기억하는 공룡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해서 였다. 무려 1400원에 파는 개인 판매자를 찾아서 판매 리스트를 둘러보다보니 이렇게 저렇게 담게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한 권씩 둘러 볼까?

‘마인크래프트’ 관련 두 권. 아직 게임을 사 줄 생각은 없는데, 나아아아아중에 사줄테니 책으로 세계관이라도 익혀라... 작년 상반기 내내 용암치킨 노래를 신나게 부르던 어린이용으로 마련해 보았다. 닌텐도 버전을 살지 피시 버전을 살지 난 그것도 잘 모르겠구나...


‘베니스에 간 가스파르’ 예전에 알라딘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가스파르와 리사 수건만 있고 책은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해서 골랐다. 베니스에도 가 본 적이 없구만!!!










‘인버스’ 예전에 우끼님이 단요의 책을 읽고 리뷰 써 달랬는데 그러고나서 몇 년이 흘렀다... 지금은 인버스 탔다가 망할 버블 시기이지만 그냥 궁금하니까 구매 도서 중 제일 비싼 오천원-

‘자살 가게’ 성귀수 번역본인 것만 전에 눈으로 익혀서 대충 프랑스 소설이겠네, 정보 없이 담아 봤다. 한국이고 프랑스고 일본이고 뭔 가게 나오는 책이 다 인기인가 보다. 과자 가게, 빨래방, 편의점, 시간도 팔고, 자살도 팔고, 자본주의 답다. 















‘new’ 근육운동가이드 이지만 내가 산 건 2011년판이다...아니 그런데 지금 검색하다보니 올해 여성운동판이 나온 걸 알게 되었다. ㅋㅋㅋㅋ 혼자 집구석에서 덤벨 케틀벨 하다가 알통도 생겼다 없앴다 다쳤다 나았다 다시 아프다 이러고 있어서 책이라도 한 번 참고해 보려고... 화려한 도판인데 2800원. 거의 90퍼센트 할인이다. 

이 모든 게 배송비 포함 21150원. 책 한 권 값이라 가끔 중고 잘 털면 폐지 줍줍 하면서 기쁜 기분...그런데 책 사고 나니 알라딘이 오랜만에 적립금 상을 줬다. 오예. 와. 앗싸! 받은 날 터는게 국룰이고 내 돈 주고 살 만하지 않은 걸 장바구니에서 고르는데 그래서 오늘 제가 고른 책은...일단 쿠폰 천원 쓴다고 코코아 현미칩을 담았고... 이전의 오리지날 현미칩 먹을 만 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는 사드 전집을 적립금으로 모으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기어이 이미 동서문화사판으로 소장 중인 ‘소돔120일‘ 성귀수 번역본을 질렀다. ㅋㅋㅋㅋㅋㅋㅋ와 그걸 또 사냐 하고 나 뽑아준 알라딘 현타오겠다. 아니 재고 떨어줘서 고마워할지도...(페이퍼에 상품 첨부해도 19금이라 표지가 잘 안 뜨는 부분)

나 이제 소돔 120일 두 개다. 사드가 지옥에서 펄쩍펄쩍 춤을 추겠다. 너 보라고 쓴 거 아니라고. 악성 독후감 쓰면 이ㅏ묄머ㅏ내겨ㅐㅑ머 해버린다고 날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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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1-10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인인증을 했었나… 표지 뜹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6-01-11 13:06   좋아요 0 | URL
저는 확실히 뜨네요 ㅋㅋㅋㅋ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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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8 임솔아.

맨 마지막 소설 ‘눈과 사람과 눈사람’을 제일 먼저 읽었다. 신년이라서 어울릴까 했는데 배경이 신년이긴 했다. 눈이 쌓인 호숫가에 모인 여성들, 여섯이었다가 넷만 모였지만 멀리 하나까지 다섯이 계속 이어지려 애쓰고 있었다. 연대하다 싸우다 다시 자신 없이 희망을 끌어올리려 분투하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오래 전 읽은 윤이형의 ‘작은마음동호회’와 ‘붕대감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바로 윤이형의 발문이 이어졌다. 고통으로 가득찬 소설집이면 아마 나중으로 미뤄뒀을 것 같다. 고통 서사 중독자이긴 했는데, 오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진화에서 고통이 기여한 바가 있어서 고통 받고 고통에 민감한 존재들이 여태 남아 있고, 또다른 고통 받는 자손들을 이어갔겠지만… 꺼져 진화… 꺼져라 고통… 이렇게 남의-그것도 매우 잘 쓰던 소설가의- 서평을 먼저 읽고 소설들 하나씩 꺼내 읽는 건데 이게 나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는 더 읽어봐야 알겠다. 다 읽고 나니 서평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독서에 큰 영향을 안 준다. 어차피 직접 읽기 전엔 아무 것도 모른다. 다행이다. 휴.

‘줄 게 있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왜.
‘병원’은 카프카 생각난다고 하면 작가가 좋아할지 화낼지 모르겠다. 윤동주의 병원도 나왔다. 이전에 변신의 잠자의 방 건너편 병원에 대해 상상해 쓴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내가 겪은 병원은 저것보다는 나은데 저런 병원도 어느 세상에는 있겠지. 저런 삶도 가능하겠지. 곧 불가능하겠지. 아, 상해진단서를 끊을지 말지 그걸 끊으면 건강보험이 안 된다고 해서 결국 안 끊었던 것 같은, 입원한 나와 엄마를 한심하게 다루던 의료진들이 여럿 있던 병원이 그나마 저기랑 가깝겠다. 거기에는 피를 흘리는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전에는 책을 다 읽도록 뭔가를 쓰거나 밑줄을 긋거나 하지 않았었다. 다 읽고 나서 다시 뒤적이며 건질 만했던 문장이 생각나면 옮기고, 아니면 말고, 했다. 지금은 뭔가 집중력이 무너졌는가, 책한테 딴지를 걸고 싶은가, 대화를 하고 싶은가, 인터랙티브는 아니고 오도방정을 떨며 아무말잔치를 하려고 책읽기는 뒷전인 것 같았다. 이제 한동안은 책 다 읽을 때까지 뭘 찌그리지 말아야지. 옮겨적지 말아야지. 이 책도 거의 절반을 봤지만 남은 동안만이라도 그래야지. 하는 주절이를 마지막으로 적는다. 에효. 후지다.

‘다시 하자고’ 피아 구분 못하다가 분리되는 홀가분함
‘추앙’ 사람 같지도 않은 새끼들 다 죽었으면. 이라고 쓰는데 갑자기 눈 뒤쪽으로 뭐가 위아래 훝고 지나갔다. 비문증은 반대쪽 눈인데. 너무 성질 내지 말아야지.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나는 빌러비드랑 빌리버드가 늘 헷갈린다. 병든 사람이 곁의 사람을 병든 사람처럼 만드는 되먹임을 나는 많이 겪어 봤다고 하기에는 또 다른 모습이라 뭔가 징글징글한데도 애증인지 애정인지 수프 먹고 싶었다.
‘신체 적출물’ 손톱이나 머리카락 말고 잃어본 적 없어서 다행이다.
‘선샤인 살레’ 열대섬 가 본 기억이 나고 다시 가고 싶지만 비행기를 오래 못 타서 이젠 해외 못 갈 것 같다. 이름 잃고 낙원 같은 곳에 이름 없는 사람들과 아주 잠시만 교감하다 일회용 감정 관계 묻고 사라지는 삶 그거 아주 워너비 아닌가 그래서 소설 속에만 있다.

오, 앞에서부터 읽은 소설들은 다 인상적이고 좋았다. 순서대로 읽을 것을 괜히 표제작부터 읽었다. 이거는 매운맛 먹고 샤벳 같은 걸로 도닥거리는 순서였는데 나는 눈부터 실컷 퍼먹고 야 싱겁냐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역시 아까 다짐한 것처럼 책읽기에 집중하고 괜히 옆에서 추임새 넣는 메모 같은 거 좀 자제해야 겠다. 그편이 더 나은 독서인 걸 오랜만에 알았다. 한국 소설 읽기도 오랜만이다. 아주 오랜만인데 생각보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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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에도 자격이 있겠지요. 우리에겐 그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봤어요. 나래씨는 성폭력 피해자였고 앞장서서 싸워왔어요. 나래씨는 피해자들의 싸움에 우리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받아들인 것 같아요. 고통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고통마저 약탈해서 정의로운 척하는 족속을 보듯이 우리를 본 것 같아요. 우리가 정말 그런 사람들일까요?(183, ’눈과 사람과 눈사람‘ 중. 당사자성. 고통이 짙으면 비뚤어지기도 한다.)

-단단해지고 싶어서 자기의 말랑말랑한 부분을 떼어내 냉동실에 넣어 얼리는 사람은 단단한 사람일까 말랑말랑한 사람일까. (203, 윤이형의 발문 중)

-그들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회는 그들이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210, 흑흑)

-“그렇게 슬픔을 이겨나가는 거야.”
이겨나가야 할 정도의 슬픔이 나에게는 없었다. (17, ‘줄 게 있어’ 중. 슬플 거라고 단정하지 마. 슬픔을 강요하지 마. 너의 죄책감을 내 죄책감 스위치 켜는데 쓰지 마.)

-“있고 싶어요.”
“그래, 잊어야지.” (33, 말 되게 못 알아 처먹는 인간들. 사람을 말려죽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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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 주니어 클래식 1
윤소영 풀어씀 / 사계절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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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6 윤소영 풀어씀.



원전을 읽는 게 꼭 필요한가 싶으면서도,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종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을 갖춰놨다. 동시대에 같은 결론을 향해 달려가던 월리스의 말레이제도도 함께 꽂혀있다. 생각보다 겁이 많기 때문에 풀어쓰기 해 둔 이 책, 종의 기원,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를 읽고 나머지에 도전하는게 낫지 싶었다. 그런데 잘 집중해서 읽지는 못했다. 일부 중요 내용 발췌와 해설, 쉽게 설명하려는 시도가 좋긴 한데 막 엄청 새롭고 이런 건 못 느끼겠는게 그간 다윈의 후예 내지 후학 연구자들이 이런저런 진화론 영향 받은 생물학, 동물학, 뇌과학, 지구과학, 사회학 관련 써둔 책에서 주워먹은게 적지는 않았나 보다. 다윈의 연구와 주장의 가치, 한계를 간단하게 정리한 건 처음 진화론에 관해 읽는 청소년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이해가 한 번에 쉬울 것 같지는 않다.

다윈의 연구를 요약 정리해 둔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말레이제도를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윈보다 덜 유명했지만 같은 방향으로 다른 어디에서부터 나아가던 사람의 탐색 과정이 더 궁금했다. 제대로 안 읽은 건가, 인용도 할 말도 많지 않아 오늘은 간단한 독후감 끝. 나중에 기회되면 진짜 종의 기원에 도전하자. 나아아아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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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류는 두 차례에 걸쳐 과학의 손이 그들의 천진한 자기애에 가한 거대한 모욕을 참아내야 했다. 첫 번째는 우리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거의 상상하기조차 힘든 규모의 대우주 안에 있는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두 번째는 생물학 연구로 인해 신의 특별한 피조물이라는 특권을 강탈 당한 채 동물계의 일원으로 추방당했을 때였다. (158, 프로이트의 말을 굴드가 ‘다윈 이후’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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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서 생명으로 - 인간과 자연, 생명 존재의 순환을 관찰한 생물학자의 기록
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 김명남 옮김 / 궁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20250104 베른트 하인리히.

길을 걷다 외진 보도 위 내려앉은 까마귀를 보았다. 까마귀는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죽은 쥐나 죽은 비둘기의 살점이었던 것 같다.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어 한참 들여다보지 않고 지나쳤지만, 그때 알았다. 도시에 까마귀나 길고양이가 없다면, 이곳저곳 죽은 생물체가 발에 치일 것이다. 사람이 일부러 치워서 종량제 봉투에 넣지 않는 이상 썩는 내가 동네에 가득할 것이다. 청소도 하고, 먹이도 되고, 동물들이 하는 일이야 말로 낭비 없이 더 나아지는 쪽이었다.

원제 Life Everlasting은 ‘영원한 생명’ 쯤 되니 너무 거창해서 그런지 번역서 이름은 ‘생명에서 생명으로’가 되었다. 책의 내용을 조금 더 잘 표현하자면 죽음(주검)에서 생명으로가 더 적당하겠지만, 왠지 무겁고 음울해져서 이 책의 밝고 호기심 넘치는 분위기, 죽은 생명체들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생명력 가득한 존재들을 다 표현하지 못하겠다. 죽음의 재활용꾼보다는 생명의 재활용꾼 정도가 더 알맞은 느낌이 온다. 그냥 생명에서 생명으로로 둬도 좋겠다.

송장벌레, 수염하늘소, 비단벌레, 까마귀, 곰, 코요테, 하이에나, 독수리, 금파리, 균류(버섯 등), 인간 등의 공통점은 생명이 떠나간 유기체를 자기 영양분으로 삼고, 그렇게 죽은 것들로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청소동물/생물이라는 말도 쓰이지만 이들은 재활용, 재순환 도우미쯤 되겠다. 숲이나 인간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지만, 인간이 있는 곳에서는 방부처리, 천천히 썩는 관짝, 화석연료 사용하는 소각, 쓰레기종량제봉투(그나마 매립이긴 하지만 비닐봉지가 문제), 이런 것들이 유기체 분해 및 원소들의 물질계 회귀를 더디게 만든다. 나는 화학물질로(Ai는 범죄 악용에 책임을 지기 싫어 그런지 강산보다는 알칼리 가수분해를 추천했지만 자세한 프로세스는 끝내 설명하지 않았다) 뼈까지 다 녹여 액상화하고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사실 장례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산 자를 보호하기 위한 의례이다. 그러니까 나도 하인리히 아저씨의 친구처럼 숲 같은데 냅둬주라고 하고 싶지만, 남은 사람들이 그걸 못 견딜 일이니까 그냥 알아서 하라고 간섭 말아야지 뭐… 언젠가 죽으면 더 이상 잔소리도 못할 테니 모두에게 다행이다.

소똥구리 부분은 작은어린이가 잠들기 전에 소리내어 읽어주었다. 쇠똥구리인 줄 알았는데, 국어 사전에선 둘다 표준어라고 했다. 코끼리 똥을 먹는 거대 소똥구리 헬리오코프리스 딜로니 이름을 듣자, 어린이는 이름이 헬리코프리온하고 비슷하다고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 헬리코박터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AI에게 학명 어원을 물어보니 소똥구리는 heli-(태양), coplis(소똥구리)이고(고대 이집트 신화에서는 태양과 이걸 굴려 움직이는 소똥구리가 꽤나 신성한 동물이다. 땅 속 똥구슬 안 번데기에서 부활하듯 나오는 건 미라에도 영감을 준듯하다. 책 뒤에서 나오더라.), 뒤의 나선이빨상어나 나선균 쯤 되는 녀석들은 helico-(나선)이 접두사라고 알려줬다. 오...발음이 비슷하다고 다같은 종류는 아니지만 그 중 두 가지는 비슷한 모양과 어원을 딴 것이었다...
작은어린이 만할 때 파브르 곤충기에서 소똥구리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여기에서도 저자가 직접 관찰하고 연구하던 생물이라 그런지 흥미롭게 읽혔다. 똥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번식까지 하는 쪽으로 진화한 게 신기하고, 참 알뜰하고 부지런한 이 생물 덕분에 초원이 질척한 똥으로 뒤덮이지 않고 (똥을 영양분 위주로 땅에 묻어버림, 질긴 섬유소 찌꺼기들은 나중에 다른 딱정벌레들이 먹어치워 줌) 청소가 되는 구나. 어디서나 가장 힘든 뒤치닥거리를 하는 존재가 있다. 그래서 남이 저지른 뒷수습을 할 때 똥 치운다 소리를 하는가 보다.

곤충이 탈바꿈하는 것을 저자는 ‘정말로 죽음 후의 환생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른다’고 한다. 이 부분을 보고 영화 미키17을 생각했다. 먼저 본 친구가 새로 생기는 미키가 정체성부터 외형까지 싹 바뀌는 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는데, 그걸 곤충의 우화로 비유하면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너무 포유류 중심적 사고에 갇혀 있구나..아직 그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 곤충 이야기를 읽고 나니 갖다 붙이면서 보면 그래도 즐길만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게 되었다. (기대하면 실망하는 걸 알지만 오랜만에 기대라는 걸 해 봄…)

저자는 책 말미에 자신이 원하는 죽음 후의 향연에 대해 적어 놓았다. ‘우리가 아는 한 우주에서 가장 장엄하고, 크고, 현실적이고, 아름다운 것, 곧 우리 자연의 생명과 내가 이어져 있기를 바란다. 지상 최대의 쇼가 벌이는 파티에 나도 끼기를 바란다.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에.’(262) 벌레와 새의 미시적인 세상을 오래 들여다보던 사람은 훨씬 더 거시적인 세상까지 확장될 힘도 가진 것 같다. 내 렌즈의 배율이 되게 폭이 좁고, 나는 심한 근시이기도 해서 그냥 죽으면 끝, 했는데 죽어도 계속, 하는 외침이 더 힘있고 설득력있게 느껴져서 감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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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까마귀는 포가 묘사했듯이 섬뜩하고 음침하기는커녕 세상에서 제일 명랑한 새다. 특히 잔치를 벌일 가능성을 앞두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큰까마귀는 풍장도 더없이 쾌활하게 수행한다. 나는, 선택할 수만 있다면, 큰까마귀로 환생하고 싶다. (109)

-지상을 걷는 생물체가 하나 있으면 죽는 생물체도 하나 있는 법이고, 생물체 하나가 죽을 때마다 고도로 농축된 영양분이 다른 생물체들에게 공급되는 셈이다. 사체가 클수록 그것을 먹고사는 생물들에게 먹이가 많이 돌아간다. 한 장소에 짧은 기간 동안 다량의 먹이가 존재한다면, 그 덕분에 청소동물도 몸집이 더 커질 수 있다. 여러 끼니를 때울 수 있으니까. (120)

-지저깨비(151):나무를 깎거나 다듬을 때에 생기는 잔조각.

-놀랍게도 덩치가 큰 녀석이 늘 이기는 건 아니었다. 근육 온도가 더 높은 쪽이 이겼다. 인간의 체온보다 몇 도 높은 정도였다. 그런 녀석은 다리가 제일 빨랐다. 소똥구리의 달리기 속도는 근육 온도와 직결된다. (195, 덩치보다는 열정, 속도!)

-(알래스카갈색)곰들은 사람에게 익숙한 데다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성내지 않는다. 어차피 사람보다 연어가 더 맛있지 않을까. 적어도 갈색곰에게는. (208, 우리도 연어가 더 맛있어. 오래 전 북극 탐험대는 겁없이-사실은 살려고 어쩔 수 없이- 북극곰 잡아 간을 먹다가 급성 비타민 에이 중독으로 많이 죽었다. 연어는 끽해야 기생충이나 신선도에 따른 장염, 식중독 정도니 죽을 확률은 더 낮겠다.)

-연어가 유달리 많은 시기에는 곰도 물려서, 근육질 살점은 놔두고 껍질을 벗겨서 곤이나 이리로 충혈된 생식소만 먹는다. 뇌도 곧잘 먹는다. 뇌는 지방 함량이 높은 별미이다. 곰들은 가을에 동면할 때가 되면 지방이 90킬로그램쯤 더 붙은 상태이다. (208, 이런, 초밥 뷔페 같은 곳에서 생선만 빼먹고 밥은 버리는 사람새끼들만큼이나 얄미운 곰새끼들이다. 다행히도 곰이 낭비한 것 같은 부분은 다른 동물의 먹이로 쩔해 준 셈이다. 이 경우에는 갈매기들.)

-그들(갈매기, 흰머리수리, 큰까마귀, 수달, 까마귀, 까치, 어치, 너구리) 덕분에 연어는 질소, 인, 기타 영양분을 바다에서 강과 주변 삼림으로 배달하는 ‘꾸러미’로 기능한다. 질소 부족은 숲의 성장을 제약하는 요소이므로, 연어는 큰 곰은 물론이거니와 큰 나무를 키우는 데도 기여하는 셈이다. 그 나무들은 장대비가 쏟아질 때 뿌리로 물을 붙잡아 둠으로써 유역을 형성하고, 나아가 연어의 산란에 필요한 환경을 형성한다. (212, 생태계의 아름다운 작용, 반작용, 질소순환에 번개나 박테리아만 기여하는 줄 알았는데 동물계도 먹고 싸고 하면서 보태고 있다. 고등 생명과학에서 이건 얘길 안 한다… 아 그리고 인간도 질소로 비료 합성하는 법-공기로 빵 만드는 법-발견/발명해서 식물과 식물 먹는 동물과 그거 둘다 먹는 인간을 먹여살리고 있다. 안 그랬으면 80억 어림 없었겠지...언제 그렇게 늘었어 또…)

-빛의 의미는 다양하다. 짝을 부르는 것부터 먹이를 유인하는 것, 포식자를 속이는 것까지. 어떤 요각류는 스스로 생산한 발광 물질(아마도 세균?)을 분출하여 자기 위치를 숨긴다. 문어가 먹물을 뿜어서 몸을 감추는 것과 비슷하다. (216, 빛이 하나도 없는 암흑의 생물들은 스스로 빛을 내거나 뿜는다. 지드래곤처럼 ‘자체 발광이 직업병이래’)

-낙하한 고래 주검에서 확인된 대형 동물상(세균을 제외한 범주를 말한다)은 400종이 넘는다. 어느 한 주검에 모이는 종류만 헤아려도 100종이 넘는다. 어느 시점이든 수많은 종류의 청소동물 수만 마리가 고래 뼈대에서 열심히 분해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단계는 10년까지 걸린다. 고래가 완전히 분해되기까지는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221, 이 부분을 보니까 고기들만 싫다고 하지 않으면, 죽은 뒤의 나를 해저 생물들에게 밥으로 주고 싶다. 고래보다 먹잘 건 없다만...)

-춥고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는 죽은 식물이 재순환되지 못한다. 그런 식물은 먼저 토탄으로 변했다가, 그다음에 갈탄이 되고(형성된 지 1만 년 미만으로 섬유질이 아직 남아 있다), 그다음에 역청탄 혹은 연탄이라고 불리는 물질로 변한다. 그보다 더 지나면 무연탄 혹은 경탄이라고 불리는 물질이 된다. (원유의 기원은 아직 논쟁 중이다. 한 가설은, 석유는 주로 조류나 동물성 플랑크톤 같은 고대 생명이 불완전하게 분해되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보다 더 지배적인 가설은, 그렇게 만들어진 게 맞다는 주장이다.) (227, 가설이나마 화석연료의 기원을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석탄은 충돌하는 지각판에 끼어서 지하 140-190킬로미터까지 묻혔고, 그곳에서 극단적으로 높은 압력과 온도를 겪음으로써 결국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물질 중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로 바뀌었다.
우리에게 다이아몬드는 영원과 순수의 상징이다. 그런데 다이아몬드가 생명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비단 사랑을 통한 재생뿐 아니라 생명의 영속성을 뜻하는 상징으로도 느껴진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의 화석이다. 생명이 지구의 진화 역사에서 벼려짐으로써 탄생한 화석이다. 그러나 다이아몬드가 정말 생명의 소중함을 선언하는 상징이라면, 그 생명이란 오늘날 살아 있는 특정 동물종의 생명만을 뜻하는 광고 문구 같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모든 시대의 모든 생명을 뜻할 것이다.(228-229, 오 그런데 이것도 일부의 주장이라고 한다. 생명체가 된 적 없는 탄소가 물질계에서 곧바로 다이아몬드가 됐을 수도...챗지피티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생명체가 다이아몬드로 변하는 가설에 대해 그림으로 그려줬다.)

-녀석이 그물 너머에서 퍼덕이는 것을 본 승리의 순간, 흥분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더듬이가 한 쌍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제야 그것이 나방이란 걸 알았다.
확인해보니 녀석은 벌새나방이라고도 불리는 황나꼬리박각시속(헤마리스) 나방이었다. (234, 나도 어릴 적에 집안에 벌새 같은 게 들어와서 날아다니길래 벌새다! 하고 잡아 놓고 보니 박각시나방이라고 했다…)

-벌새는 다리가 여섯이고 발가락은 없다. 벌새는 긴 부리와 긴 혀가 있지만, 박각시는 돌돌 말거나 펼 수 있는 빨대처럼 긴 주둥이가 있다(어떤 종은 주둥이 길이가 몸통의 두 배다). 벌새는 몸집에 비해 큰 뇌가 있지만, 박각시는 가슴에 뉴런이 약간 뭉쳐 있고 머리에는 그보다 더 작은 덩어리가 있을 뿐이다. 벌새는 근육으로 뼈를 곧장 잡아당겨서 두 날개를 움직이지만, 박각시는 뼈가 없고 날개는 네 장이다. 벌새는 혈액을 통해서 근육으로 산소를 펌프질하는 폐가 있지만, 박각시는 폐가 없고 혈액이 산소를 운반하지 않는다. 똑같은 게 거의 하나도 없다. 겉모습이 닮았다는 점 외에는. (236, 이제 둘을 절대 헷갈릴 일은 없겠다. 엄청 친절하게 비교, 대조해줌)

-문어는 알에서 나올 때부터 문어처럼 생겼다. (239, 변태하지 않는다는 뜻)

-그러나 또 다른 새로운 이론도 있다. 구더기에서 파리로, 애벌레에서 나방으로의 변태는 연속성이 없고 너무나 극단적이므로, 그런 곤충의 성체는 정말로 새로운 생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이런 동물들은 바다에서 살면서 체외수정을 하던 고대 어느 시점엔가 다른 종과 결합하여 잡종이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 유전자 지침을 품게 되었고, 그 지침은 환경 조건이 알맞을 때 활성화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런 동물은 두 동물이 혼합된 키메라이고, 첫 번째 동물이 살다 죽은 뒤 두 번째 동물이 나타난다. (241, 와우, 흥미로운 가설이다. 그치만 우리는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말자. 다음에 나오는 유글레나는 애기 때 막 자르고 재생되고 그런 거 배울 때 나온 줄 알았는데 걔는 플라나리아라고 한다...아무튼 유글레나, 광합성하는 동물이라니, 아니 산 채로 식물이 될 수 있는 동물이라니 동충하초도 아니고 멋지다.)

-우리 인간의 변형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새로운 특징이 추가된다. 첫째, 우리의 변화는 점진적이로 평생에 걸친다. 둘째, 유전자만이 아니라 뇌도 지시를 내린다. 우리의 뇌는 사상을 통해서 거의 말 그대로 환생을 초래할 수 있다.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들의 환생도. (244, 그런데 그 뇌를 통한 환생이 생각보다 많이 어렵다. 코뚫고 귀뚫고 문신 새기는 것보다 더 많이 어렵다.)

-우리는 유전자의 산물만이 아니다. 우리는 또한 사상의 산물이다. 내 몸, 내 적혈구의 산소 운반 능력, 내 뇌의 물리적 회로, 나를 움직이는 화학물질은 남들의 사상에 의해서 결정된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부분적으로나마 그로부터 형성되는 게 분명하다. 사상이 미치는 장기적 영향은 지진, 가뭄, 비, 햇빛 같은 자연의 장난들이 미치는 영향보다 더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뒤지진 않는다. (257)

-그러나 현대의 화장은 의식이 아니다. 모두의 서식지인 지구 생물권을 존중하는 방식도 아니다. 그보다는 소각에 가깝다. 시신을 불에 태워 날리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유독 화학물질이 발생한다. 현대의 산업으로서 화장업은 전 세계 다이옥신과 푸란 배출량의 0.2퍼센트를 차지하고, 유럽에서는 대기 중 수은 공급원으로서 둘째가는 양을 배출한다. 매년 북아메리카에서 발생하는 시신을 화장하는 데 필요한 화석 연료는 자동차로 달을 80번 왕복할 수 있는 양에 맞먹는다. 화장은 엄청나게 값비싼 처분 방법이다. 요즘은 갈수록 많은 사람이 좀 더 사적이고, 자연적이고, 비싸지 않은 ‘수목장’을 인식하고 시행하는 추세이다. (260, 화장의 배신...그럴 줄은 몰랐네. 불이 완전연소를 하기 힘든 건 물론이고 우리 몸엔 온갖 금속성 원소들도 있는 것이다…)

지드래곤-OUTRO. 신곡 (神曲) (Divina Commedia)
https://youtu.be/x7jyiyEBZ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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