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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보코프 문학 강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4월
평점 :
-20251019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이 책을 읽기 전, 읽는 도중 결심했다. 여기 나온 웬만한 소설은 읽고서 강의를 듣듯 각 챕터를 읽기로. 대학 때 참고문헌 하나도 안 읽고 한 학기를 보낸 뒤 방학 때나 뒤늦게 책을 읽으면서 후회한 적이 많았다. 아 미리 좀 읽을걸. 대학 때 책을 정말 안 읽었던 걸 조금 후회한다. 지금이라도 신나게 보니까 됐다.
그래서 이 책 덕에 읽게 되었거나 먼저 읽었거나 아직 읽지 못한 책의 목록들.
-제인 오스틴『맨스필드 파크』:2024년 12월. 지만지 발췌본으로도 부피가 크긴 했지만 이렇게 요약해서 읽는 짓은 너무 많은 즐거움을 내다 버린다는 깨달음을 주었던 독서
-찰스 디킨스『황폐한 집』:2024년 12월-2025년 1월. 처음 읽는 디킨스. 의외로 재미있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보바리 부인』:2018년 6월, 2025년 9월. 펭귄과 민음사 두 가지 판본으로 봤는데, 여기서부터 소설 먼저 읽다간 나보코프 선생 강의 내내 재수강하겠어... 하면서 강의록 먼저 읽고 두 번째 읽었는데, 캬, 결말 알고도 재밌게 읽히는 소설/영화가 찐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2021년 1월. 펭귄판으로 읽은 지 오래되었지만 사실 이걸 다시 읽기엔 매력이 없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스완네 집 쪽으로』:흠 아마도 2035년쯤 은퇴하면 도전하기로...올재클래식판으로 전권 2만 9천 원이란 획기적인 가격에 김창석 선생님 번역으로다 잘 모셔놨다. 2019년에 syo 님이 올재 사려면 교보문고 온라인 줄 서라고 알려줘서…
-프란츠 카프카「변신」:2017년 11월에 민음사판 두 번째로 읽다가 졸았다고 한다. 그때 임신 중인데 에일리언 전 시리즈, 미드 덱스터, 변신 막 이런 무서운 것만 골라 보고 그랬지… 2025년 10월, 강의를 듣기 위해 문예출판사, 영문과 출신 번역가의 1970년대 번역본이면 중역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게 또 아마도 영어로 적힌 나보코프 영어판 책을 또 한글로 옮긴 거랑 싱크가 제법 맞았다. 그리고 세 번째 읽는 변신은 정말 재미있게, 슬프게 읽었다. 카프카는 나한테는 졸린 작가였는데 빌린 김에 중역판이나마 다른 글들도 다 읽어볼까 한다.
-제임스 조이스『율리시스』:집에 웬만한 사전보다 두꺼운 종이책이 있다만(엄마가 사고 안 봄), 문학동네 판 전자책을 어느새 기웃대고 있었다. 나보코프가 이 책 영업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놔서, 서사도 못 따라갈 나놈을 위해 요약 발췌로 한 번 훑어줘서, 아 친절하네 고약한 책이라는데 왜 자꾸 관심 가게 만듦... 이게 고수의 솜씨로군 얘들아 율리시스 재밌겠지? 읽어 볼래? 하는 무서운 교수님...
나보코프 선생님의 친절하고 유머 넘치는 강의 수강생이 된 듯(다행히 진짜 대면 수업은 아니라 책 안 읽어왔다고 딱밤 맞거나 질문에 헛소리로 대답한다고 경멸하는 눈초리 안 받아도 돼서 다행) 거의 네 계절을 재미있는 책에다가 흥미로운 강의까지 잘 읽으며 보냈다. 쟁여둔 나보코프 선생님의 책들도 왠지 더 봐야 할 것 같고… 악명 높은 벽돌들 빼고는 다 읽고(숙제했다!) 수업 들어서 뿌듯하기도 하고… 나보코프 선생님의 러시아 문학 강의도 전자책 질러놨는데 이건 좀 천천히 수강하기로 한다. 나도 이만큼은 못되어도 사분의 일쯤은 닮은 재미있고 유익한 선생이 되고 싶은데 되겠냐...
+밑줄 긋기
-이 학교의 교사들은 그가 ˝주변 환경에 순응하지 않는다, ‘으스댄다‘(러시아어로 작성한 숙제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쓴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화장실의 더럽고 축축한 수건을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러시아 싸움꾼처럼 주먹 아래쪽을 이용해서 뺨을 때리듯이 하지 않고 손마디를 이용해서 싸운다˝며 그를 비난했다.(‘티브이는 사랑을 싣고’에 나갔으면 생활기록부에 학생 나보코프에 대한 악평이 전국으로 전파를 탔겠다.)
-웨츠티언은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을 끝맺었다. “나보코프는 훌륭한 교사였다. 맡은 과목을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강의의 대상이 된 작품을 심오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학생들도 그런 마음을 갖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그 맛을 조금이나마 보게 되어서 황송하옵고…)
-책을 읽을 때는 세세한 부분들을 알아차리고 귀여워해줘야 합니다. 책에서 하찮지만 햇빛처럼 밝은 요소들을 사랑스럽게 쓸어모은 다음이라면, 일반화라는 달빛을 쬐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성품처럼 진부한 일반화부터 시작한다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니 책을 이해할 실마리를 잡기도 전에 책에서 멀어질 것입니다.(사랑은 하찮은 부분들을 귀여워하는 것부터…)
-한심한 하청 문사인 비평가들이 ‘진짜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 그 인물이나 사물을 대입했을 때 그들이 아무리 비현실적으로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천재적인 작가에게 진짜 삶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자신이 그런 삶을 창조하고, 그런 삶이 빚어내는 결과까지 창조해야 하니까요.(피조물 아닌 조물주가 되고픈 사람들이 창작자가 되는 거겠죠)
-문체는 도구도 아니고 방법론도 아닙니다. 단순히 단어의 선택만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존재인 문체는 작가의 개성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 또는 특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문체를 말할 때는, 예술가 개개인의 독특한 본질, 그리고 그것이 예술적인 작품 속에 표현되는 방식을 뜻합니다. 모든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만의 문체를 갖고 있지만, 우리가 논할 가치가 있는 것은 천재적인 작가들 각각의 독특한 문체뿐임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그 천재성은 작가의 영혼 속에 깃들어 있을 때에만 문체를 통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냅니다.(개성인데 별볼일 있으려면 타고나야 하는 거냐…)
-사전을 보면 진은 빻은 곡식, 특히 빻은 호밀을 증류해서 만드는 독한 술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크룩은 어디를 가든 지옥을 휴대하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휴대용 지옥이라...... 이것은 나보코프의 표현입니다. 디킨스가 아니라.(깨알 같은 저작권 주장)
-하지만 이 모든 가난한 아이들 중에서, 살았든 죽었든 반만 살아 있든 상관없이 ˝고통 속에 활기를 잃은 가엾은 아이들˝ 중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는 조입니다. 그리고 조는 미스터리 테마와 아주 밀접하게, 아주 맹목적으로 휘말려 있습니다.(조는 정말 독자들 가슴 후벼파려고 작정하고 작가가 괴롭히는 불쌍한 아이…)
-레스터 경은 변호사의 살인범을 찾아내는 일을 버킷 형사에게 맡깁니다. 처음에 버킷은 전직 군인 조지를 의심합니다. 그자가 털킹혼을 협박하는 것을 들은 사람이 있었거든요. 버킷은 사람을 시켜 조지를 체포하지만, 나중에 레이디 데들록을 가리키는 듯한 많은 단서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거짓 단서입니다. 진범은 프랑스인 하녀 오르탕스니까요. (책 안 읽어온 학생들에게 스포일러 가차없는 교수님)
-하지만 작가가 거슬리게 도드라지지 않는 이상을 실천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작가의 존재가 작품 전체에 퍼져 있기 때문에 그의 부재가 곧 일종의 찬란한 존재감이 됩니다. ‘II brille par son absence‘라는 프랑스 속담 그대로입니다. ‘그의 부재가 그를 빛나게 한 다‘는 뜻입니다. 『황폐한 집』과 관련해서, 우리는 말하자면 최고의 신도 아니고 작품 전체에 고고하게 퍼져 있지도 않 은 작가, 그보다는 상냥하고 공감할 줄 알며 게으르게 빈둥거리는 반신 같은 작가를 보고 있습니다.(디킨스 완전 까진 않지만 절반만 깜. 넌 반신이여...반편이여...하고)
-이 소설의 뛰어난 플롯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에스터의 입으로 이야기의 일부를 말하게 한 점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면 이 아가씨가 내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ㅋㅋㅋ깊이 공감합니다…1인칭 시점 전환되는 순간 텐션 떨어지고…)
-형식(구조와 문체)= 주제: ‘왜‘와 ‘어떻게‘= ‘무엇‘ 디킨스의 문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감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입니다.(안개, 자연발화, 이런 게 이제 읽은지 열 달된 소설에서 남는 것들이네요.)
-어떤 독자들은 이런 장면들에 굳이 시간을 들여 살펴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학은 이렇게 별것 아닌 묘사들로 이루어집니다.(묘사를 무시하지 말자. 서사에만 파묻히지 말자.)
-위대한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공통으로 주는 인상이 무엇일까요(여기서 ‘우리‘란 좋은 독자를 말합니다)? 시의 정밀함과 과학의 설렘입니다. (선생님, 전 나쁜 독자는 벗어났는데 나쁜 독후가머는 너무나 유혹적입니다…)
-하지만 소설이나 시에 대해 실화냐는 질문을 던지지는 마세요. 스스로를 놀리지 맙시다. 문학에 실용적인 가치는 전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실화냐?)
-에마 보바리라는 여성은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지만, 『보바리 부인」이라는 책은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겁니다. 책은 사람보다 오래 삽니다. (그 덕분에 돌아가신 선생님 말씀을 영접하옵니다.)
-소재는 조야하고 혐오스러울지 몰라도, 표현 방식은 예술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이런 것이 문체입니다. 이런 것이 예술입니다. 책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이것밖에 없습니다.(소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 귀한 이 내용이 책 안에서 제법 반복된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천창이 북쪽으로 난 다락방처럼 차가웠다. 게다가 권태가 조용한 거미처럼 그녀의 가슴속 모든 구석에 그 어두운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플로베르 천재쥬? 하고 계속 베껴두심)
-아, 정말이지 비열하고, 믿을 수 없고, 속물적인 번역가들 같으니! 누가 보면 영어를 거의 모르는 오메가 플로베르의 글을 영어로 번역한 줄 알겠습니다.(밀란쿠 할배도 비슷하게 번역가들을 욕하곤 했다. 원작자는 빡쳐도 독자 입장에선 그나마 반갑고 감사한 강독선생님들이십니다...)
-그가 말채찍을 찾고 있을 때, 에마가 먼저 밀가루 부대 뒤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허리를 굽힙니다. 샤를은 그녀를 도우려고 그녀의 뒤에서 함께 몸을 숙였다가 어색한 장면을 연출합니다(중세의 돌팔이 의사인 프로이트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아주 많은 의미를 읽어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마는 로돌프에게 멋진 말채찍을 선물로 줍니다(프로이트 영감이 어둠 속에서 키득거리고 있군요).
(…)그러자 에마는 그의 말채찍에 달린 값비싼 장식을 지적하며 빈정거립니다(이제는 어둠 속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악마 같습니다).
(위 괄호는 모두 나보코프의 마음의 소리인데, 프로이트(와 그 추종자들)에게 용감하게 비아냥거리고 있다. 포로리가 나 때릴 거야? 하고 너부리한테 개기는 얼굴 떠오름)
-어떤 구절이나 문장의 아름다움은 두운법과 유운에 은연중에 달려 있다. 모음은 자꾸 반복되기를 원하고, 자음도 자꾸 반복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둘 다 항상 다양한 변주를 원한다고 큰 소리로 외친다.(아 그래 들리긴 한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나름대로 맞춘다고 맞춘 건데)
-발자국을 보고 뒷걸음질치는 크루소, 빛을 받아 프리즘처럼 무지개빛을 띤 양산 아래에서 미소짓는 에마, 죽음을 향해 가면서 길가에 늘어선 상점 간판들을 읽는 안나, 이런 것이 전설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며, 이 순간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다.(셋다 뭔 소설인지는 알겠는데 저 장면들이 각인까진 안 된 걸 보니 저 하류로군요?)
-문장의 폭과 길이를 최대한 늘리고 채우는 경향, 문장 안에 기적적으로 많은 수의 절, 삽입구, 종속절, 종속절의 종속 절을 꽉꽉 밀어넣는 경향. 확실히 언어의 인심만 따진다면, 프루스트는 진정한 산타입니다.(프루스트 산타설. 으앙 산타할아버지 이 채찍은 뭐죠? 훠훠훠 미안 루돌프 건데 바뀌었다)
-문학작품의 재료란 다름 아닌 나의 과거이며, 경박하게 즐거워하는 와중에, 빈둥거리는 순간에, 부드러운 애정과 슬픔 속에서 나를 찾아온 그 재료들을 나는 그들의 최종적인 목적은 물론 심지어 생존 가능성조차 예견하지 못하고 저장해두었다. 묘목에 영양분이 되어줄 것들과 함께 놓인 씨앗이 미래를 예견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이참 서정적인 프루스트 아니 마르셀 아니 여기다 밑줄 쳐 둔 나보코프)
-딱정벌레의 등껍질 안에는 아주 얇고 작은 날개가 감춰져 있지요. 딱정벌레는 그 날개를 펼쳐 서투른 솜씨로 몇 마일이나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 딱정벌레 그레고르는 단단한 등껍질 안에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끝까지 모릅니다(이건 내가 관찰 결과 알아낸 훌륭한 사실이니 여러분 모두 평생 소중히 간직하기 바랍니다. 그레고르 와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내게도 날개가 있을까 그럼 왜 나는 볼 수가 없을까’)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그를 착취하고, 그를 속에서부터 파먹는 기생충입니다. 이것은 딱정벌레가 된 그를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인간적인 문제입니다. 배신, 잔혹성, 더러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을 찾고 싶다는 애처로운 충동이 그에게 딱정벌레의 껍데기라는 갑옷을 만들어준 겁니다. 처음에는 이 껍데기가 단단하고 튼튼해 보이지만, 결국은 인간이던 시절 그의 병든 육체와 정신만큼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이라는 세 기생충 중 누가 가장 잔혹할까요? 처음에는 아버지인 것 같을 겁니다. 하지만 최악의 존재는 아버지가 아니라 여동생입니다.(선생님, 전 이 소설을 덕분에 세 번째 읽고서야-이 글을 읽기 전입니다- 여동생이 최고 빌런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 벅 멀리건이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지? 잊어버렸어.
자네가 뭐라고 했냐면, 스티븐이 대답했다.아, 그냥 디덜러스예요. 이 친구 어머니가 짐승처럼 죽었잖아요.
벅 멀리건의 뺨이 붉게 달아오르자 그가 더 젊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내가 그랬어? 그가 물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고?
(…)자네 어머니의 뇌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네. 그래서 의사를 피터 티즐 경이라고 부르고, 이불에 그려진 미나리 아재비를 꺾으려고 했지.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환자의 비위를 맞춰줘야 해. 그런데 자네는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에 가위표를 긋고는 나한테 골을 내는군. (패륜아 취급한 멀리건 놈에게 스티븐이 화내자 멀리건 놈은 한술 더 떠 패드립 고인드립 마구 쳐댄다. 이런 거-난 다른 의미로- 못 참지.)
-모든 예술은 어떤 의미에서 상징적입니다만, 예술가의 미묘한 상징을 현학자의 진부한 비유로 바꿔버리려고 고의로 수작을 부리는 비평가에게는 ˝그만 둬, 도둑놈아˝라고 말해야 합니다.(그래서 제가 소설책 맨 뒤 평론이나 해제를 읽길 꺼려요. 그만 둬 도둑놈아 사기꾼아 안 하려고…)
-스티븐은 그의 말이 가슴에 남긴 상처들을 가린 채, 몹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어머니가 모욕당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야.
그럼 뭔데? 벅 멀리건이 물었다.
내가 모욕당했기 때문이야. 스티븐이 대답했다.
벅 멀리건은 발꿈치를 축으로 휙 돌아섰다.
아, 정말 구제불능이로군! 그가 소리쳤다. (내 어머니를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나를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를 시전하는 스티븐)
-조이스가 한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캔버스의 어두운 구석에 자신의 얼굴을 넣는 것. 이 작품의 꿈속을 돌아다니는 갈색 매킨토시의 남자는 다름 아닌 작가 본인인 것입니다. 블룸이 자신의 창조주를 언뜻 본 겁니다!(이렇게 스포일러 당할 것을 예상했다. 이제 애플 로고만 봐도 갈색옷 남자가 어른거리며 나야 나, 할 것 같다.)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에 대해서 나는, 당연히 절대적으로 반대합니다. 나는 빌려온 신화, 추레한 우산, 어두운 뒷계단 으로 이루어진 프로이트 교파 소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프로이트 싫다고 몇 번을 말하시는지)
-상식은 지나치게 일찍 진리의 달빛을 받고 기쁨에 눈을 빛냈던 온화한 천재들을 많이 짓밟아버렸습니다. 상식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괴상한 그림들에 뒷발질로 흙을 끼얹었습니다. 상식의 악의 없는 발굽이 보기에 파란 나무는 광기를 의미하는 것 같았거든요. 상식은 추악하지만 힘센 나라들을 부추겨서 역사 속의 틈새가 생기는 순간 공정하지만 연약한 이웃들을 밟아버리게 했습니다. 그런 기회를 이용하지 않으면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이라면서요. 상식은 근본적으로 부도덕합니다. 인류의 선천적인 도덕이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희미한 먼 옛날부터 제 뿌리가 되어주 었던 마법의 의식만큼이나 비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상식이란 나쁘게 말하면 ‘흔해진 생각‘입니다. 따라서 상식의 손이 닿는 순간 모든 것이 편안하게 싸구려가 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비전과 가치는 아름다운 원인데, 처음 서커스를 보러 간 아이의 눈이나 우주처럼 둥근 원인데, 상식은 사각형입니다.(그러니까 티발 씨 하지 말라고. 모두 에프코드 외쳐!!!)
-항상 정해진 자손만 낳는 것을 거부할 만큼 긍지 높은 정신을 지닌 사람은 모두 뇌의 뒤편에 비밀스러운 폭탄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그냥 재미를 위해서라도 그 폭탄을 꺼내 상식이라는 모범도시에 조심스레 떨어뜨리자고요. 폭발의 눈부신 불빛 속에서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겁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보기 드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한 속물들의 자리를 대신하겠지요. (일단 폭탄이 불이라도 붙게 설계를 해야 할텐데요 선생님...자꾸만 긍지를 잃어 어렵습니다)
-반면 창의적인 상상력은 주인으로 하여금 소설 속에서 배출구를 찾게 이끌었을 겁니다. 주인이 현실 속에서 실행했다면 망칠 수도 있었던 행동을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더 철저하게 해내게 만드는 거지요. 범죄자는 진정한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멋진 금발 아가씨와 함께 멋진 차의 주인을 무참히 죽인 뒤 그 차를 몰고 로스앤젤레스로 화려하게 입성하는 진부하고 얼뜨기 같은 장면을 상상하며 만족스러워합니다. 만약 작가의 펜이 필요한 가닥들 을 제대로 연결한다면 이런 상상도 예술이 될 수 있겠죠. 그러나 범죄 그 자체는 진부한 것들의 승리이며, 성공을 거 두면 거둘수록 더욱 더 얼간이 같은 모습이 됩니다. (상상력 딸리는 범죄자 대신 소설가가 되라고 긁긁)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을 발전시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분야에도 전율을 느낄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있으니까요. 순수과학의 전율도 순수예술의 즐거움 못지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방면에서든 생각이나 감정의 설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소설도 과학책도 가끔 저를 설레게 해요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