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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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9 저자: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좋아하는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지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팬덤. 팬픽이란게 있다고 들어만 봤지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장르였다. 오래전 어느 책에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책과 ‘일 포스티노’ 영화를 소개해 놓은 걸 읽고 궁금해서 갖춰뒀었다. 작가 자신이 푹 빠졌던 시인 네루다의 삶의 몇 장면을 상상해서 만들어낸 소설이었다. 얇고 금세 읽혔다. 대체로 경쾌한 분위기로 시작해서 계속 밝게 이어지다 노벨상 수상 축하파티에서 흥겨움은 절정에 이른다. 후반부는 군사 쿠데타와 네루다의 죽음, 네루다 전담 우체부 마리오의 어두운 앞날로 마무리되었다. 칠레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소설과 소설 원작의 영화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계란 굴리는 마리오-베아트리스 커플의 첫 섹스나, 노벨상 파티 기념 격정적인 섹스 같은 건 나름 웃기라고 쓴 것 같긴 한데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머지는 재미있는 상상력이네, 하고 읽을 만했다.
많은 비유-메타포가 등장했다. 진부하지 않은 비유를 건져올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결국 속담처럼 남들이 닳디닳게 쓴 비유들을 키치하게 읊는 게 평범한 사람의 말이다. 시인과 소설가는 그걸 넘어서려고 열심히 단어를 고르고 이야기를 짓고 할 것이다. 문득 네루다가 시를 사랑한 것처럼, 마리오가 베아트리스를 사랑한 것처럼, 작가가 네루다를 사랑한 것처럼 무언가에 푹 빠져 본 기억이 있는가 돌아보았다. 꾹꾹 눌러쓸만큼 모아놓은 말들이 있을까 뒤적였다. 연기처럼 만져지지 않고 먼지처럼 자잘한 것만 있긴 있었는데 이젠 없는 것 같다. 그럼 남이 진지하게 덕질해서 남겨 놓은 걸 재미있게 읽으며 보내도 그만이다. 쿠데타 같은 폭력적인 삶이 덮쳐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편지 배달하고 전화 받고 라면을 삶고 그러다 가끔 들여다보고 뭐라도 쓰고 싶으면 쓰고, 읽고 쓰려고 모두가 위대해질 필요는 없다.

+밑줄 긋기
-“번드르르한 말처럼 사악한 마약은 없어. 출구석 술집년을 베네치아 공주처럼 느끼게 만들지. 그리고 나중에 진실의 순간이 오면, 즉 현실로 되돌아오면 말이란 부도수표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 네 미소가 나비보다 더 높이 난다는 말보다 술주정꾼이 주점에서 네 엉덩짝을 치근덕거리는 게 천만번 낫지.”
베아트리스가 펄쩍 뛰었다.
“나비처럼 ‘번진다’고 했어요.”
“난다고 하든 번진다고 하든 그게 그거야. 왠지 알아? 말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야. 허공에서 사라지는 불꽃놀이일 뿐이라고.” (63, 산통을 깨뜨리는 베아트리스의 어머니는 그와중에 비유를 몇 개나 썼냐)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67, 이쯤 되면 베아트리스네 엄마도 전투적인 시인 아닐까)

-크리스마스인데도 여기는 눈이 오지 않으니 정말 이상하죠. 틀림없이 양키 제국주의 때문일 거예요. (121, 사회주의자의 이게 다 ~때문 시전. 아름답다 할 메타포가 넘치는데 난 자꾸 이런 블랙 유머에만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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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 - 탄수화물, 먹어야 사는 이유 오미사이언스
최낙언.노중섭 지음 / 헬스레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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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9 저자:최낙언, 노중섭.

커피공부 책을 끝으로 이제 맛책 그만 읽자 했는데, 오미 시리즈로 단, 쓴, 짠, 신, 감칠맛이 출간된 걸 알고 정신을 차려보니 ‘단맛’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아니 이번엔 공저잖아…(그래도 같은 저자 15권 째야…)다섯 권 다 안 읽는게 목표이고 다음 궁금한 책은 ‘쓴맛’인데 아무래도 결국 시리즈 다 읽지 않을까 걱정(?)이다. 동저자의 ‘내 몸의 만능일꾼, 글루탐산’을 이미 읽었으니 감칠맛은 확실히 거르기로 다짐하며 지갑을 부여잡고 있다.

마음이 불편할 땐 맛책이 위로가 된다. 음식을 먹어야 위로 받는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다. 남들 불경, 성경, 꾸란 펼치듯 맛책을 펼치면 어지럽지만 예쁜 분자식도 있고(세상 물질 중 먹을 거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알려주고), 괜찮아, 안심해, 다들 불량 지식으로 불안감 조성하고 있어, 이게 반복이라 그런가 싶다.

읽던 중 꿀이나 캐러멜화 반응에서 아, 이거 읽었던 내용인데? 하고 참고문헌 보니 해럴드 맥기의 ‘음식과 요리‘가 끼어 있다. ‘음식과 요리’를 통독해버리고 이래서야 다 까먹지, 했는데 나름 남은 게 있긴 했나 보다.

책 목차엔 안 나오는데 요즘 많이 먹게 된 알룰로스에 대해서 갑자기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얘도 설탕 친구였다. 단당류 천연 희귀당이라고, 포도당과 과당과 알룰로스는 분자식도 같았다. 다만 우리 몸의 효소가 당류로 알아보지 못해서 그냥 배설된다고 했다. 당알콜은 대체로 흡수가 안 되지만 얘는 소장에서 흡수 되는데 에너지로 안 쓰고 소변으로 배설된다. 점점 인간은 ATP합성에 도움도 안 될 걸 더 비싸게 사서 먹고 싸고 있다. 그래도 다른 감미료에 비해 제일 친숙한 단맛이긴 하다. 이러고 읽었더니 책에 금세 나와 버려...하하하….

단백질 중에서도 우연히 단맛 수용체에 결합되어 감미가 느껴지는 것들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단맛은 당이 다가 아니고, 특정 물질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우리 혀(단맛 수용체)에 착 붙냐 안 붙냐에 따라 달고 안 달고가 달라지는 것이다. 단맛이래도 각자 특성 차도 있고 경제성 없는 것은 식품 원료로 잘 안 쓰니까 원재료명 읽는 게 취미인 나도 잘 모르는 게 많았다.

처음 읽는 출판사 책이었는데 저자의 기존 책들보다 오타도 적고 책 만듦새도 좋았다(오타는 그래픽의 캡션 중에 ‘닽백질’ 하나만 기억남). 평량 큰 고급 종이에 양장본이라 책이 비싸서 많은 사람이 못 볼 우려는 있다. 다른 맛 시리즈도 궁금해졌다.

+밑줄 긋기
-결국 단맛을 느끼는 것은 우리 몸의 배터리인 ATP를 공급할 에너지원(탄수화물)을 찾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단맛 수용체를 가지고 당을 찾으면 우리 뇌가 쾌감을 부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단맛은 그 음식이 우리의 에너지 수요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신호다. (64, APT대신 ATP를 외치고 계심)

-탄산 유해론이나 산성 식품/알칼리성 식품 같은 주장은 터무니없는 사이비 지식이다. (66, 혈액은 에너지 대사로 만들어진 이산화탄소가 pH7.4를 유지해준다고 한다. 탄산수 좋아하는 가족들 별로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두 안전한 것들이라 얼마만큼 먹는 것이 좋으니만 따지면 되는데, 여전히 좋은 식품과 나쁜 식품이 따로 있고, 악을 박멸해야 한다는 식의 근본주의적 시각이 많다는 점이다. (68, 최낙언 선생님의 팬이라면 백 번은 들었을 반가운(?) 구절. 괜찮아 안 죽어 그냥 적당량 먹어)

-하여간 설탕보다 안전한 감미료도 없다. 단지 너무 먹을 뿐이다. (129)

-요즘 농촌 들판에는 커다란 흰 덩어리의 ‘볏짚 곤포 사일리지’를 볼 수 있다. 추수하고 남은 볏짚을 덩어리로 만든 뒤 발효액을 뿌려 분해해야 사료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136, 논에 거대 마시멜로라고 부르던 그것)

-세포가 세포를 만들 수 있지 음식이 세포를 만들 수 없다. 음식은 몸세포가 사용하는 재료이자 연료일 뿐이다. 식품의 기능과 우리 몸의 기능을 완전히 구분해야 하는데, 음식과 건강 이야기는 항상 뒤죽박죽 섞어서 말하기 때문에 발전이 없다. (139, 그러니까 난 닭가슴살이 아니다.)

-포도당=글루코스=덱스트로스=혈당, 건포도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247, 오 이걸 여태 몰랐다니)

-(...과당은) 온도가 높아지면 단맛이 감소한다. 과일을 냉장고에 보관하였다가 차가워진 과일을 먹어보면 훨씬 더 달게 느껴지는데, 새로운 단맛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당이 단맛 수용체에 더 강하게 결합할 수 있는 입체이성체의 형태로 변하기 때문이다. (260, 그동안 우리 엄마는 일부러 과일을 상온에 내놓았다가 까주며 그게 더 달다고 했는데 와...이제 반박할 수 있게 되었다.)

-온도에 따른 단맛의 변화는 당에 따라 다른데 과당이 가장 변화가 크고 설탕이 가장 작은 편이다. (260)

-자이란은 헤미셀룰로스의 하나로 지구에서 셀룰로스, 키틴에 이어 3번째로 풍부한 다당류이고 자일로스가 주성분이다. (264, 랭킹 나오면 왠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옮겨옴. 자일로스를 환원시켜 자일리톨 생성)

-알룰로스는 항비만 활성, 고지혈증 억제 효과, 항염증 효과 등이 있다고 알려졌다. (266)

-람노스도 만노스처럼 주로 다른 당과 결합한 다당류로 존재한다. 이들은 감미료로 사용되지 않지만 나에게 이들이 친숙한 것은 증점다당류에 많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에 사용하는 구아검과 로커스트콩검과 타라검은 주사슬이 만노스로 되어있고, 갈락토스가 가지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268, 아이스크림 제조와 물성에 조예가 깊은 저자께서 자주 듣던 원재료 물질의 자주 못듣던 당류 이름(분자)도 알려주셨다.)

-커피 생두에 가장 많은 성분도 만노스이다. 생두에 가장 많은 것이 세포벽인데 세포벽의 주성분이 갈락도만난으로 이것을 분해하면 만노스와 갈락토스가 된다. (269, 커피 공부 읽었으나 처음 읽는 기분인 휘발성 독자여…)

-사탕무는 식물학적으로는 무가 아닌 근대에 가까워 석죽목 근대속에 속한다. (272, 무가 아니었어!!!)

-자당(=설탕)의 자는 사탕수수 자, 맛이 좋다는 뜻도 포함.(273)

-어린 유아의 입안에는 혓바닥뿐만 아니라 입안의 모든 부분에 단맛을 감지하는 미각 수용체가 있어서 단맛이 아주 적은 유당(설탕의 20~25%감미도)도 아기에게는 충분히 달게 느낀다. (280, 젖도 충분히 달게 느낌)

-1996년 프랑스 Lyon대학에서 개발한 합성 물질인 럭두네임Lugduname이 현재 가장 강한 단맛 믈질로 알려졌다. 설탕의 22만~30만 배나 달다. (344, 상상이 어려운 단맛)

-먹지마시오: 베릴륨, 아세트산 납, 둘신, 에틸렌글리콜(부동액 재료) (363-365, 달다고 다 우리 몸에 좋지는 않다. 많이 먹으면 죽거나 아프다. 쓴맛이 대부분 나쁘지만 일부는 소량으로 약이 되듯이)

-설탕보다 더 좋은 원료를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대체 감미료를 사용하는 것은 설탕을 줄이기 힘들어서 사용하는 차선책일 뿐이다. 그리고 설탕을 줄이려면 설탕의 역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설탕을 제대로 알아보는 방법이 다른 모든 종류의 감미료와 비교해 보는 것이다. (367, 이렇게 단맛 여정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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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2 펭귄클래식 75
샬럿 브론테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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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4 샬럿 브론테.

1권의 두께와 변죽만 울리는 비밀에 질렸다면 독자들이시어, 2권은 온갖 사건이 빵빵 터져 읽는 재미가 더 있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시길.

말한 대로 2권 읽기가 조금 더 재미있었다. 우연히 헤매다 친척들로부터 구원받고, 갑자기 혈연이 거액의 유산을 남겨주는 건 밤나무 쪼개버린 벼락보다 낮은 확률이겠지만, 결혼식 날 사실 신랑감에겐 미친 부인이 있었다, 맨몸 알거지로 손필드 장을 나와 굶어 지쳐 죽어버릴 뻔했다, 광신 사제가 강제로 부인 만들어 인도 끌고 가려고 했다, 그리고 유년기의 고생까지 더하면 그 정도 행운은 줘도 좋았다. 소설 속에서나마 그렇게 망할 뻔한 인생 행복하게 해주면 좋지. 역시나 망한 인생이던 로체스터가 이제 부와 힘이 역전된 제인 에어의 선택으로 구원 받는 것도 자기가 좋다는데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됐다.

풍경과 심리 묘사가 치밀했고 그래서 분량이 많아서 읽긴 힘들었지만, 거의 이백 년 전 이런 서사로 독자들이 도파민 터졌을 것 생각하면, 심지어 거의 이백 년 후의 독자인 나도 다른 재미 거리 마다하고 주말 내 읽었으니 그래서 고전이구나, 끄덕이게 되었다.

다치고 몸이 불편해진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서로의 행복을 키워나갈 수 있다면 복된 인생일 것이다. 슬프게도 현실에서는 둘 중 하나 혹은 둘다 마음이 지치고 사랑은 휘발되어 끊어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지옥을 견디는 관계가 많다. 정말 행복한 사람들은 어디 둘만 꼭꼭 숨어서 잘 지내느라 소설 속 이야기처럼 소문 나지 않을 것이다.

자립 자조를 외치는 제인의 이야기는 당시의 여성들에게는 환상의 환타지였을 텐데, 지금은 제법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 어쩜 제인처럼 구원자가 되는 숭고한 영혼들도 어딘가는 있겠지. 건투를 빈다. 나는 그냥 제인에게 이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만한 파란만장과 불행의 롤러코스터를 탈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뭔가를 최대한 선택하지 않는 삶이었으면.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고 싶다. 내 영혼은 그렇게 맑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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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새가 아닙니다. 어떤 그물망으로도 저를 잡을 수 없습니다. 저는 독자적인 의지를 가진 자유인입니다. 그 의지를 지금 발휘해서 떠나려고 하는 겁니다.”
다시 한번 애를 써야 자유로워질 터였다. 나는 그의 앞에 똑바로 몸을 세우고 꼿꼿이 섰다.
“그렇다면 당신의 그 의지가 당신의 운명도 결정할 거요.” 그가 말했다. “당신에게 내 손과 내 가슴과 내 재산의 일정 몫을 주겠소.” (제인은 새장에 갇힌 새이길 거부한다.)

-“나의 제인을 공단 천과 레이스로 차려입히고 머리엔 장미꽃을 꽂게 하겠소.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 머리는 더없이 귀한 베일로 덮어주겠소.”
“그러면 저를 못 알아보실 거예요, 주인님. 그리고 저는 더 이상 주인님의 제인 에어가 아니라 어릿광대 옷을 입은 원숭이에 불과할 거고요. 빌려온 깃털을 뒤집어쓴 어치 새일 거예요. (어치가 성질이 더럽다고 한다. 제인은 계속 새 취급 받길 거부한다.)

-그가 내게 더 많은 물건들을 사줄수록 성가시기도 하고 타락한다는 생각이 들어 내 뺨은 점점 더 달아올랐다.(자본주의에 굴하지 않는 저런 영혼이면 좋겠다.)

-“저는 노예가 될 바로 그 사람들과 주인님의 그 후궁 거주자들에게 자유를 가르치는 선교사가 되어 나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마 저는 그 후궁에 입장이 허락되겠지요. 그러면 반란을 선동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말 꼬리가 세 개 그려진 군기를 휘날리는 부대의 군사령관 격인 주인님께서는 순식간에 우리 손에 의해 족쇄가 채워져 구금될 것입니다.(반란의 제인2)

-미래의 아내가 자신과 남편이 함께 죽을 거라는 말을 하다니요. 그런 이교도적 발상이 의미하는 바가 뭐였을까요? 저 같으면 남편과 함께 죽을 생각이 전혀 없어요.(제인 에어 명언집 같은 거에 들어갈 만한 말)

-그의 손은 이미 로체스터 씨를 향해 내민 상태였고, 그의 입술은 이미 “그대는 이 여자를 그대의 아내로 맞겠습니까?”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가까운 곳에 있던 누군가가 또렷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결혼은 계속해서는 안 됩니다. 혼인 장애 사유가 있음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이 결혼 무효야!의 원조)

-“안 돼, 네 혼자 힘으로 떨어져 나가야 해. 누구도 널 도와주지 않아. 네 스스로 네 오른쪽 눈을 뽑아야 해. 네 스스로 네 오른손을 잘라내야 해. 네 심장이 희생물이 되어야 해. 네가 사제가 되어 네 심장에 못을 박아야 해.”(눈이 빠지고 손이 잘리는 건 로체스터의 복선인 것 같기도. 제인은 그렇게나 힘든 이별을 스스로 선택한다.)

-나는 나를 그토록 사랑해 준 사람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사랑과 숭배의 대상인 우상을 버려야만 했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한 단어에 견딜 수 없는 내 의무가 담겨 있었다. ‘떠나!’라는 단어였다.(단호한 헤어질 결심.)

-내가 나 스스로를 보살필 거야. 더 외로울수록, 홀로 남겨질수록, 의지할 이가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길 거야.(갖추고 싶은 미덕)

-나는 다시 한번 보통의 소화 기능을 지닌 사람이 백여 가지 산해진미가 차려진 잔칫상을 혼자 받았을 때 느꼈을 감정을 느꼈다.(로또 당첨되도 거북한 이 맑은 영혼)

-나 역시 여동생은 필요하지 않아요. 아내를 원합니다. 평생 동안 내가 유효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절대적인 내 소유물로 보유할 수 있는 유일한 협력자를 원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몸서리가 쳐졌다. 골수까지 그의 영향력이 느껴졌고, 내 사지마저 그가 꽉 움켜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로체스터나 리버스나 제인을 소유하고 지배할 생각만 했다. 제인은 그걸 알고 다 떨궈냈다.)

-그러나 그의 아내로서 가게 된다면 나는 늘 그의 옆을 지키면서 늘 억눌리고 늘 억압당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내 타고난 열정의 불꽃을 끊임없이, 억지로 낮게 타오르게 만들어야 하고, 안에서만 타오르도록 강요해야 하고, 비명 소리 한마디 내지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감옥에 갇힌 거나 매한가지인 그 불꽃이 내 안의 핵심 장기들을 하나둘씩 다 소진해 버린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일은 정말로 견딜 수 없는 일일 것이었다. (사랑 없이 결혼과 선교행을 요구하는 리버스 오만 정이 뚝 떨어졌다. 결국 제인은 로체스터의 곁에서 늘 그의 옆을 지키게 되지만 그건 제인의 의지 대로 사랑이라서 선택한 것이고 누구 말릴 일가도 없었지만 하여간에 행복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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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1 펭귄클래식 74
샬럿 브론테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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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260912 저자: 샬럿 브론테.

과외 선생이 된다는 건 모르는 가정 안에 풍덩 들어간다는 뜻이다. 공부 공간이 좁고 답답한 발코니인데 그 안에 책상을 놓고 이혼한 제 아빠(이름으로 칭해짐)를 쏙 빼닮았다는 아이 얼굴에 관한 품평을 들은 뒤 문이 닫히고.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 집을 나가서 아직 안 들어왔다고 걱정하는 두 남매를 보고(엄마는 내가 과외 끝나는 시간에 딱 맞춰 장 본 걸 들고 들어오셨다). 일본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다가 건너온 아이는 한국이 아직도 낯설고, 거실에 앉은 남자 어른을 보고 아빠니? 했더니 아빠 아니에요! 꽥 소리지르기도 하고. 열이 펄펄 끓는 아이에게 수업 대신 타이레놀을 먹이고 자리에 눕혀 재우고 돌아오기도 하고. 엄마와 말이 안 통해 말티즈 강아지를 동생처럼 끌어안고 하늘아, 하는 걸 떼어놓고 책상 앞에 앉혀야 하고. 엄마가 맛있는 배달 점심 식사와 체리나 골드키위 같은 당시엔 비싼 과일을 간식으로 주면서 시험 공부를 하라고 선생과 아이를 방안에 다섯 시간 가두기(?)도 하고. 면접만 갔던 집에 애아빠가 이상한 질문과 반응만 해대서(아마도 정신질환자였다) 아이가 울상으로 아빠, 하고 말리던 기억…
나는 그다지 길게 맡은 학생이 없었기 때문에 만난 학생 수가 많았고, 특이한 부모와 온갖 가정사를 마주한 날이 많았다.

고아로 외삼촌이 돌아가신 외숙모 집에서 학대 당하며 머물던 어린 제인 에어도 로우드 학교를 거쳐 로체스터의 손필드 장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더구나 18세의 입주 가정교사란, 이 집을 나가면 거처할 곳 없는 신세란, 그런데 나보다 나이가 두 배보다 더 많은 권위주의적인 학생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횡설수설 말을 걸어온다면, 나는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제인 에어의 타고난 기질과 유소년기에 지독한 더부살이를 한 탓에 형성된 체념과 고집이 그나마 어떤 사람을 겪든 잘 참고 지나가게 하는 듯보였다. 나는 그게 안 되서 힘들다. 학생이 힘들고 학부모가 힘들고 동료들이 힘들다.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소수의 무례하고 추궁해대기 바쁜 사람들 때문에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지만 가정교사 제인 에어를 생각해 봐, 퇴근이라는 게 사실상 없다!

점점 가정교사는 아이만 가르치고 돌보는 것이 아니라, 손님 맞이 음식 준비도 거들고, 응접실에서 노다거리는 귀하신 분들의 병풍도 되어주고, 방화의 불길도 잡고, 뭔가의 공격으로 피투성이가 된 로체스터의 친구 간호도 밤새 해주고, 결정적으로 변덕스럽고 혼란스러운 주인의 말벗이 되어 본인까지 혼란스러워지고 만다. 그렇지만 두들겨 패는 외사촌 외의 남자 사람이랑 이렇게 오래 같이 지내본 것도 처음이고, 그 남자가 자꾸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네가 필요해, 하면서 애절하게 굴고, 그러면 그런 상황에서 엉뚱하게도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기도 한다.

생각보다 이 소설의 장르는 미스터리/공포/스릴러에 가까웠다. 고딕 어쩌구… 그러니까 애기 때 축약판으로 보고 기억한 다락방의 미친 여자 나오는 책인 것도 틀리진 않은데 이미 알고 보려니까 막 두근거리는 느낌이 없는 건 좀 아쉽다.

로체스터의 -하오체는 많이 어색하고 짜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인이 주인님 거리는 것도 거슬리지만 그게 둘의 고용-피고용 권력 관계를 잘 보여주는 호칭이기도 하니까, 집주인 맞으니까 뭐 여기서는 내가 체념하기로 했다.

갑자기 제인 에어를 읽게 된 건 에이드리언 리치의 서평을 읽어서이다. 폭풍의 언덕보다 제인 에어가 나아, 하는 그 말을 확인하려면 남은 제인 에어2권과 폭풍의 언덕도 봐야 한다. 고전이란...두께 참… 그래도 이렇게 두껍게 이야기를 계속 토해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건 알겠으니, 이미 리치 선생한테 엄청 스포일러 당했지만 묵묵히 읽긴 읽어야겠다.

+밑줄 긋기
-왜 나는 늘 고통을 겪고, 늘 험상궂은 표정으로 위협받고, 늘 욕을 먹고, 영원히 비난받아야만 했던가? 왜 나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지 못했던가? 왜 내가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기 위해 애쓰면 아무 소용이 없었던가?(열 살에 이런 의문으로 고통 받는 건 좀 가혹하다. 그런데 내 열 살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기분이다.)

-나는 내 신분을 희생해 자유를 사고 싶을 정도로 담대한 용기를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리드 집안에서 쫓겨나면 갈데 없고 먹고 살 길 없어...그런 시대도 있고 여전히 그런 사람도 있긴 하니까…)

-인간이란 본래 반드시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하는 존재다. 그런 사랑을 베풀 만한 보다 가치 있는 대상이 없던 나로서는 작은 허수아비처럼 색 바래고 남루해진 조각 인형을 그저 사랑하고 아끼는 데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를 쓸 뿐이었다.(그래서인가 너 커서 내 보기엔 망가진 허수아비 같은 남자한테 막 사랑에 빠지고 그래…)

-‘모두들 리드 부인이 내 은인이라고 말하고 있어. 그렇다면 은인이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존재일 거야.’

-나는 난생처음으로 복수 비슷한 감정을 맛보았다. 그 맛은 삼키면 따뜻하고 풍미 넘치는 포도주처럼 향기로운 맛이었다. 그러나 쇠붙이 냄새나 뭔가 부식하는 듯한 냄새가 나는 그 뒷맛은, 독극물을 먹은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복수 시리즈만 보았지, 저런 비슷한 감정은 느낀 적이 있던가...생각보다 아예 나쁜 놈으로 살진 않았나 봄)

-“하지만 피할 길이 없다면 참는 게 네 의무일 거야. 어쩔 수 없이 참는 게 네 운명인 일을 ‘난 못 참아.’라고 말한다면 그건 나약하고 어리석은 짓이야.”(병에 걸려 얼마 후 세상을 떠날 아직 어린 아이 헬렌이 이런 달관을 한 게 씁쓸했다. 나도 잘 못 참는 ‘못 참아…’)

-내 본성 안에는 한곳에 안착하지 못하는 들뜬 심정이 내재해 있었다. 어떤 때는 그런 심정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마음을 교란했다.(동아시아인들은 그걸 역마살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영국엔 그런 이름이 없었나 보다.)

-인간이란 평온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헛된 일이다. 인간은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활동을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운명보다도 더 정적인 운명에 처해지고 있지만,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무언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반란의 제인)

-나는 서서히 그런 삶이 지닌 안정되고 편안한 특권적 가치를 고마워하지 않는 심리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런 시점에서 차라리 불확실할지언정 전력을 다해 발버둥 치며 분투하는 폭풍우 속에 내던져진 삶을 살았더라면, 그리고 거칠고 험하고 고통스러운 체험을 통해 지금 내가 그 한가운데서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평온한 삶을 갈망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더라면,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겠는가!(폭풍우 그거 굳이 왜...좋지 않아…)

-“주인님, 방금 제게 ‘카도’를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르치는 학생의 향상에 대한 칭찬이야말로 선생님들이 가장 탐내는 보상이지요.”(난 일찍부터 싼타 할아버지 따위 믿지 않았어)

-그런 변덕스러운 기분 상태가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런 변화무쌍한 기분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그런 감정의 기복이 나와 전혀 무관한 원인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득도한 스님 같은 마음 가짐. 그러나 말만 그러고 결국 남의 감정 기복에 휩쓸리고 마는 제인...)

-“저는요, 주인님. 주인님께서 저보다 나이가 많다거나 세상 구경을 더 많이 하셨다는 이유로 제게 명령할 권리를 가지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권리는 선생님께서 그 시간과 경험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달려 있지요.”(꼬박꼬박 말대꾸 잘해서 마음에 드는 제인. 대개는 벌받고 짤리고 할 건데 로체스터 ‘나한테 이런 사람 너가 처음이야’를 시전하는 듯)

-당신이 설령 다른 대다수 사람들과 비교하여 다른 틀에 넣어져 만들어진 것 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더라도 그건 당신 자신의 공이 아니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요.(집주인 아저씨는 가끔 짜치는 말투로 바른 말도 하긴 함)

-당신에게서 언뜻언뜻 조밀한 새장 창살 사이로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을 던지고 있는 새 모습을 보게 되오. 활기차고, 들떠 있고, 결연한 포로처럼 갇혀 있는 새 말이오. 자유롭게 풀려나기만 하면 그 새는 구름처럼 훨훨 높이 날아오를 거요. 여전히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소?(나도 새야.)

-그러니 앞으로는 계속해서 우리 두 사람이 영원히 단절되어 있다는 말을 반복해야만 해.─하지만 살아 숨 쉬고 생각할 수 있는 한 나는 분명히 그 사람을 사랑할 거야.(이루지 못할 사랑을 놓지 못하는 마음. 그거 이 중년한테는 너무 희미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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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서 인류애로 - 성적 지향과 헌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강동혁 옮김, 게이법조회 해제 / 뿌리와이파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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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0 저자: 마사 누스바움.

미선이-Sam
https://youtu.be/CLXroGPSNds

원서는 2010년, 번역서는 2016년에 나온 책을 2026년에 읽었다. 2000년대 초반 섹스앤더시티에 나오던 게이 친구들은 2020년대 앤저스트라이크댓에도 여전히 등장하고, 심지어 앙숙이던 앤서니와 스탠포드는 결혼식을 올린다. 거기에 LGBT+, 다양한 인종과 문화 배경의 인물들이 추가되었다. 미국은 확실히 변하고 있고, 그게 문화 컨텐츠에도 반영이 된듯하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워낙 안 보다보니 어떤지 모르겠다. 박상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가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다. 트랜스젠더 유튜버가 텔레비전 예능에 출현하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커밍아웃하고 연예계 활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문화 예술계만 그럴까, 온 일상 자체가 아직 비주류라고 스스로를 드러내기에는 너무도 모질고, 냉랭한 편견과 혐오가 깔려 있다.

연방 헌법과 주 헌법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판례를 통해 이 책은 자유와 평등을 누릴 대상에서 성소수자가 제외될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잘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징그러움, 혐오의 형태를 근원적 혐오-주로 죽음이나 더러움에서 느끼는-를 다른 대상에게 덮어 씌워 버리는 투사적 혐오라는 말로 표현한다. 혐오에 관한 이야기는 사회학이나 심리학, 철학에서 더 파고들만한 주제 같다. 이 책은 법철학, 법윤리에 더 초점을 맞춰서 혐오에 관한 부분은 논의에 필요한 최소한만 다룬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도 자신과 다른 존재들에게 선을 긋고 그들보다 더 우월하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안심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는 충분히 설명된 것 같다.

특정 사람들이 비범죄화 되고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인종 문제에서 많이 유비하고 있었다. 형식적인 법률 면에서 미국은 인종주의를 많이 극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흑인을 범죄자 취급하거나, 아시안을 멸시하는 풍토는 여전하다. 우리 나라도 이주 노동자나 결혼 이주민과 그 자녀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고 공론화도 많이 되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들’에게 가혹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이지 남들과 다른 존재에게 무자비하다. 하물며 성소수자라면 대놓고 혐오하고 타도할 대상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주로 일부 종교계가 그렇다.
이미 아이들 때부터 패거리 문화가 인종이나 성적 지향이 아니더라도 조금 다르다 싶은 아이들을 얼마나 소외시키고 괴롭히는지 모른다. 끝없이 차별 금지, 평등, 인권, 존중 같은 걸 입에 올리지만, 자괴감이 든다.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일까 싶다. 인간 자체가 갈라치기에 너무 특화된 종족 같다. 부모가 그렇게 키우고, 또래집단에서, 미디어에서 남을 혐오하는 태도를 점점 강화한다. 학교가 말뿐인 인권교육을 하고 있을 뿐, 이게 교육으로 되는 문제인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인류애라는 말은 참 아름답다. 그렇지만 주로 ‘인류애가 사라진다’하는 표현에서나 접할 만큼 아득하다. 나도 점점 인간 혐오로 가는 기분이다. 이토록 비슷한데, 또 이토록 다른 인간들이 같이 평화롭게 사는 일은 아직도 어렵다. 지상 평등 낙원이라 할 나라가 어디 있기는 있는 걸까? 없다는 데 더 치우치는 마음이지만 우리가 향해야 할 방향인 건 알겠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약 같은 걸 수돗물에 타고 싶다. 미워하면 저절로 이유를 만드는 뇌들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게 슬프고 이상하다.

+밑줄 긋기
-적의에 대한 사법적 존중은 또한 이성에 따른 정치라는 근본적 패러다임마저 깨뜨린다. 적의에 대한 반응으로 만들어진 법에는 이성적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23)

-이와 같은 헌법의 정치적 태도는 반집단주의적이다. 이에 따르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국가 전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것이 분명한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다수의 이익이 개인의 기본권에 우선할 수 없다. 이 정치적 입장은 좌파와 우파 사이의 대치와는 다른 것으로, 좌파의 집단주의나 우파의 집단주의 모두와 대비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입장이다.(26)

-사람들이 자신의 냄새나고 부패해가며 너무나도 인간적인 신체에 대해 느끼는 불편감은 도처에서 일관적으로 외부에 투사되어 왔다. 공동체의 오물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 불편감을 투사함으로써 지배적인 집단은 자신을 깨끗하고 천상적인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4)

-혐오스러운 동물성의 세계와 ‘나’사이에 준-인간이 존재한다면, ‘나’는 필멸하는/부패하는/냄새나는/진액이 흘러나오는 것들로부터 그만큼 떨어져 있게 되는 셈이다. 진짜 위험과 신뢰할 만한 연관관계가 거의 없는 이 투사적 혐오는 망상을 먹고 자라며 예속을 만들어낸다. 혐오가 자신을 순수한 것으로, 타자를 더러운 것으로 표상하려는 뿌리 깊은 인간적 필요에 봉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필요가 사회를 공정하게 만드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오히려 이러한 전략은 사회의 공정성을 해친다. (55)

-평등한 자연권은 덕이 있는 사람이나 특정한 사회 규범에 따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73)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탐색을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79, 종교와 양심의 자유)

-표면적인 대칭성을 넘어, 다양한 집단에 속하는 시민들이 살면서 무언가를 추구하려 할 때 실제로 어떤 기회를 누릴 수 있느냐를 엄격히 검토할 때에만 우리는 법이 시민들을 진정으로 평등하게 존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4, 실질적 평등)

-혐오에 차 있는 사람들은 타인을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보지 않기에 그들을 존중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90)

-‘혐오의 정치’로부터 ‘인류에의 정치’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보다 일반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이는 집단을 앞세우는 사람과 개인적 자유의 영역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늘 있어온 해묵은 논쟁이다. 이를 좌우의 이념대립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105)

-그러므로 “당신은 결혼할 수 없소”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미국식 인생 주기를 결정짓는 의례 중 하나에서 완전히 배제됨을 의미한다. (185)

-사람들은 국가가 기혼자들에게 법적으로 제공하는 갖은 특권을 누리기 위해, 다시 말하면 결혼을 하기 위해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증명을 할 필요가 없다. 유죄판결을 받은 중죄인들, 양육비를 지불하는 데에 실패한 이혼 부모들, 가정폭력 전과가 있거나 감정적 학대의 전과가 있는 사람들, 불량납세자들, 마약중독자들, 강간범, 살인범, 인종차별주의자나 반유대주의자들처럼 편견에 찌든 사람들도 결혼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모두 결혼할 수 있다. 실제로 헌법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결혼할 수 있는 기본권을 보장한다. 어쨌거나 이성과 결혼하는 경우에는 말이다. (188-189)

-(그러나 중혼에 반대하는 법적 주장들은 극도로 취약하다. 일부다처제 혼인권을 제약할 만큼 강력한 국가의 법익은 성 평등에 따르는 이익이라지만, 만일 그렇다면 다부다처제에 따른 결혼은 허용되어야 한다.)(221)

-성행위에 따르는 건강상의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결정은 과식이나 흡연, 등산처럼 자신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겠다는 다른 모든 결정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결정은 개인이 스스로 내리는 것으로서, 그 결과로 인해 타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에만 범죄가 된다. (277, 이 책 내내 소중히 다뤄지는 자유와 평등. 어떤 행위나 관계들은 거기에서 예외 취급을 받아 행복 추구가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 전체에서 다룬 것처럼 혐오란 이면에 여러 형태의 낙인과 위계질서를 감추고 있는, 신뢰할 수 없는 힘이다. 혐오는 마치 피해처럼 작용하는 경우에 한해, 전통적인 생활방해법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입법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278)

-혐오의 정치는 우리가 무엇을 통제하고 싶어하는지, 또 무엇을 통제하지 않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통제의 이유에 대해서조차도 명료히 생각하지 못하돌록 방해해왔다. 이 분야에서의 사유가 그토록 엉성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엉망진창인 “사생활” 개념과 그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280)

-헌법은 사회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감각을 표현한다. 자유와 평등은 무엇이며, 기본권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자유와 평등, 두 영역 모두에서 어느 정도 보호되는 구역을 갖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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