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박상륭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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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5 박상륭.
 

 
(문요어: 중원인들의 고전 ‘산해경’에 나온다. ‘...태산이라는 곳에는, 문요어가 있는데, 생김새가 잉어 같고, 물고기 몸에 새의 날개가 있으며, 푸른 무늬와, 흰 머리에 붉은 주둥이를 하고 있다. ...낮이면 날아다닌다. 그 소리는 난계 같고 맛은 신데, 이것을 먹으면 미친병을 낫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나타나면 대풍이 든다.’(2128, 정재서 역 민음사, 89 재인용))
 
 박상륭 장편 읽기 여정이 아마도 끝났다. ‘죽음의 한 연구’(재독), ‘칠조어론’, ‘잡설품’, 그리고 새해 특집으로다가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까지 읽었다. 마지막 책은 이전에 서두를 읽기 시작하다가 힘들어 놓아 두었다가 다시 읽었다. 오랜만에 박상륭을 읽으니까 아, 어렵고 지루해 뒤지겠는데 그런데도 마치 고향에 온 듯했다. 나는 진짜 고향에 가도 거긴 이제 아무 것도 없고 정도 없고 의절한 사람 몇과 거친 과거의 기억만 남아서 별 감흥이 없지만, 이 익숙한 문체와 세계관은 하여간에 반가웠다. 그런데 친구에게 이 책 읽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번역될 수 없고 미래 독자들에게 많이 가닿지 않을 이야기들에 대해 말하다보니, 그 쓰잘 데 없음에 대해 동조해 버려서 약간 김이 빠지기도 했다. 나는 참 쓰잘 데 없는데 내 시간과 집중을 갈아 넣고 있구나… 무맛의 곤약을 마구 퍼먹고 있구나… 그래도 이거 자기 좋으라고 쓴 것만은 아니고 나중에 올 여래/미래 독자에게 열심히 말도 걸고 대답도 해놓고 설명도 해놓고 그랬다고, 해 봤자 그 미래가 한 줌도 아니고 한 톨쯤 될 나같은 빙충맞은 독자여서 그래 그게 다 뭐람...락 이즈 데드..,소설 이즈 데드…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마저 읽었다.
 
 자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신을 죽이고 기독교를 까대고 초인 선언을 했던 자라투스트라를, 호기롭게도 박상륭 선생은 이상한 가학증 환자처럼 괴롭히다가 죽여버린다. 일단 절친 독수리와 뱀을 졸라 죽이고 태워버리고 길을 떠나게 한다. 하산의 길이다. 그러다 만난 늙은이 앞에서 지루하게, 신이 어때서 설마 죽었겠냐 죽인게 잘 한 짓이겠냐, 하고 설교들을 땐 한마디 입도 달싹이지 못하고 바위에 묶인 귀처럼 멍청 듣고만 있게 한다. 산 아래에서는 거지에게 밥 몇 술 얻어 먹고는 중요 부위 가리던 다 낡은 천쪼가리도 뺏기고, 그리워 다가간 인간들에게는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하다가 하필이면 간 날이 장날이라 곡마단 오는 날 곡예사가 다쳐 제대로 된 쇼를 못 보게 된 마을 사람들이 폭동 일으키다 권력자에게 진압된 날이 그가 하산한 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죄양마냥 돌을 던져 초인이다가 다시 인간이 되려던 되었던 존재를 죽여 버린다. 산에서 나온 이 남자의 유언은 강과 바다가 닿은 데에다 장사 지내 줘라...이런 거고 이걸 유지로 받든 이는 역설적으로 성직자이다.
 
 아직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를 읽지 않은 채 이 책을 읽어서 한 번 더 걸러 걸러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라 이게 맞나, 모르겠다. 긴 각설이타령은 일단 풀어 놓고 가신 건 다 봤고, 누군가 읽겠다 하면 ‘죽음의 한 연구’나 ‘칠조어론’까지는 도전해보라 하겠지만, 뒤에 두 권은 사실 잘 모르겠다. 앞의 둘에 비해 읽는 고통을 참을 만큼 즐거운 읽기까지는 못 된다. 늙음과 죽음 앞에서는 초인까지도 사실 초인이 아니었고 우리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미약자, 소립자, 그렇게 쭈그러드는 게 인지상정인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소설마저 작가의 말년과 함께 그렇게 쪼그라든 느낌이 없지 않았다.
 아직 안도하기엔 이르다. 산문집이랑, 중단편전집이 떡 버티고 있으니까...제일 큰봉우리는 넘었지만 자잘하게 읽을 거리들이 남아 신나고 괴롭다. 유기징역이지만 징역 2월도 괴롭긴 괴로운 것… 스스로 갇힌 감옥이래도 괴롭긴 마친가지이다. 이놈의 피학성 유희 같은 독서는 좀 던져버리면 좋겠는데 입 속의 마시멜로 같이 말랑하고 폭신하게 씹히는 책은 영 못 읽는 병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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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이라는 모태는 불모라는 것입네다. 정통 쪽에서 이르는 ‘이단’은, 모두 간음의 자식이거나, 서자들입네다. 마찬가지로, 어느 천재적 대가의 어록도, 그것을 잘 읽고, 잘 소화했을 때, 하나의 ‘정통’이 세워지게 될 터입네다만, 그 오독 내지는, 몰이해를 통해, 서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버글여 나타날 터입네다. 이 늙은네도 그래서, 공이 뽑아 심은 ‘신의 이빨’에서 까여져 나온 새기 독룡이라는 얘기를 드렸던 것이외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러니 이 늙은네는, 공의 설법을, 공의 의도대로 이해치 못한, 그 오독이나 몰이해, 또는 곡해의 결과라고 치부하시면 될 터입네다. ‘정통이라는 모태는 불모’여서, 사실은 새로 태어나는 자식들에 대해, 늙은 계모 같은 것일지도 모릅네다. 좋은 의미에서나 나쁜 의미에서나, 인류사의 변전은, 이 서자들에 의해 이뤄져 온다는 것을 고려해주셨으면 합네다.(2007-2008)
 
-늙은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이미 여러 차례나 해버린 말을 다시 반복한 것이나 아니었는가, 그것을 반성해보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말은, 반복을 통해서만, 그 의미가 더 강조된다고, 스스로 위로를 꾸며낸 듯, 다시 시작했다. (2035, 이 바로 앞에 읽으면서 뭐야 왜 했던 말 또 해? 했더니 즉답해주는 저자여...죽어서도 친절하네)
 
-Nune Scripsi Totum Pro Homo Da Mihi Potum! :나는 인간에 대하여 너무 많은 말을 하였도다, 술 한잔 내게람!‘의 뜻이라고 하나, (2066, 이건 누가 한 말이야? 하고 제미나이에게 물으니 원래 사람, 이라는 자리에 그리스도, 가 들어가고 책 열심히 필사하던 수도사들이 여백에 끄적이는 낙서 같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언어란 그러고 보면, 중년 훨씬 지난 놈팽이모양, 제 계집과의 상관에서는 시랑토 못 하면서, 남의 계집 발가락 새 휘집어 드는 일엔 된장을 싸매고 덤비는 것모양, 즐비하게 널려 있는 사물이나 존재도 다 표현해내지 못하면서, 보이지도 않는 우주적 대력들의 불알도 까고, 공알도 뽑아낸다. 두려운 것은, 그것의 전와력이다. (2070, 패설가의 언어론은 비유도 참 상스러운 것. 전와력의 와는 그릇될 와訛, 와전할 때 그 와이다.)
 
-어느 날, 저 자식은, 이 푸타나의 품에 안겨, 비등하는 피뿐만 아니라, 골까지 빨리고 있음을 발견할 테다. 그리고 이 어미는, 자식이 병든, 황폐한 껍질만 남았을 때, 퉤 뱉어버려 버릴 것이다. 그가 버려진 자리에, 그의 늙은 어미의 자애로운 품이 열려 있다. 자식은, 당분간, 죽음에의 욕망이 차오를 때까진, 괄약근이 느슨한, 이 늙은 마누라의 품을 떠나려하지는 않을 테다. 역의 균형은,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 탈이다. 괄약근이 느슨한, 어미의 가슴을 차고 일어나는 자식에게, 그 어미를 배반해야 하는 데는, 꼭히 ‘명분’이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다. 그 자식은, ‘균형 잡기’라는 그 역, 그 달마에 묶인 망석중일 뿐인 것이다. 상극적 질서 체계 속에서는, 유위도 무위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푸타나의 품으로 달려가는 자식에게, 늙은 어미의 자비를 들어, 만류하려 드는 일은, 나타나 보이기에는 긍정적이며, 정당하고, 아름답되, 실제에 있어서는, 그것이야말로 부정적 참전이라고, 독단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인간은, 푸타나 품에서도 못 살지만, 늙은 여신의 품도 오래 견뎌내지를 못하는, 역의 균형대 위에 올려진, 위험한 줄타기 광대이기 때문이다. (2172, 이놈의 모지란 남성적 인간. 폭도가 되는 것도 일탈 욕망도 다 남탓. 그런데 요즘 내가 공감할 만한 환상.)
 
-‘유행’이란 말은 ‘흘러 바뀐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듯하되, 이래서 보면 ‘유행’이라는 것도, 흐름을 솔려놓은 역괘와도 비슷한 것이구나, ‘솔아 있음’이 바뀌는 것이구나. 역의 회귀, 되풀이되는 솔음(2173, 그래서 반유행 해봤자 레트로 되는 거냐...아휴)
 
-산로는, 허긴 고득의 까닭이었겠지, 자기가 그렇게도 못 잊어 했으며, 경애까지 바쳐, 그 품에 안겨, 삶을 쉬고 싶다고 했던, 그 대지, 인간의 대지의 한가운데 처해서, 구토로 목젖을 꼴록거리며, 뒤를 잘못 돌아본 이는, ‘롯의 아내’ 만은 아니었던 듯싶다고, 새로, 고향, 그 산정의 고독을, 그리워했다. 그러며, 혼자였을 떄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며, 다시금 인간이 되려 하강하련다, 고 하지 안 했던가, 라고, 자신을 추슬러보려고도 했다. (2174, 초인 무르려다 좆된 모성 모씨)
 
-인간은 뛰어넘어야 할 어떤 것이라고, 그래서 자기는 인간을 사랑한다고 믿어왔었는데, 자기가열심히 사랑해온 인간은, 결국은 자기 자신뿐이 아니었는가-회한이 그를 쳐댔다. (2175)
 
-전에 나는, 이 세상은, 끝날까지 그 끝을 보기 위해서라도, 돌아오고 또 돌아와, 죽어도 좋을 만큼 살아볼 만큼, 대지는 뜨듯하고 온화해서 좋은 데다, 세계는, 명주로 안 댄 풍더분한 옷처럼, 포근하게 감싸준다고 여겼으나,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리라. 살이 닿는 자리는 견딜 수 없이 싸늘하고, 사람들의 정이 닿은 자리에서는, 피와 걸이 흘러내리고 있는도다. 오 회귀의 바퀴여, 시간이여, 구르기를 멈추라! 생명의 불이여, 기름이 다했은 즉, 이제는 꺼질지어다, 더 타오르지 말지어다!(2178, 육조인지 칠조인지 입에서 설법했던 내용에도 있던 것 같은데, 오래전부터 나도 다짐하길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말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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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남 - 폭발적으로 깨어나고 눈부시게 되살아난 사람들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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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1 올리버 색스.

WING - Dopamine
https://youtu.be/qlrpeYdm9Ec

이 책에 나온 사례와 엘도파 치료 적용을 이해하려면 파킨슨증과 수면병(뇌염후증후군, 그 병세가 파킨슨증과 유사한 경우가 많음)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한다. 책머리에 자세하게 병에 대한 소개가 되어 있지만, 제대로 이해를 못했던 것 같다. 약 복용 이후 잠시 회복되는 듯하던 환자들이 극심한 부작용이나 퇴행을 보이는 걸 읽으면서 그럴 거면 뭐하러...박사님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네...하는 생각을 했다.

MSD매뉴얼에 설명된 파킨슨병
https://www.msdmanuals.com/ko/home/%EB%87%8C-%EC%B2%99%EC%88%98-%EC%8B%A0%EA%B2%BD-%EC%9E%A5%EC%95%A0/%EC%9A%B4%EB%8F%99-%EC%9E%A5%EC%95%A0/%ED%8C%8C%ED%82%A8%EC%8A%A8%EB%B3%91-pd

그렇지만 약물 치료가 없으면 뇌의 도파민 신경체가 망가진 사람들에게는 폭발적인 되돌림, 회생, 변화 같은 게 잠시라도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올리버 색스 박사가 부작용이나 퇴행에도 불구하고 약물 치료를 계속 시도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수치나 통계로 모든 것을 돌리는 환원주의를 경계하고, 환자의 병력과 입장을 관찰하고 공감하며 직접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서사를 가능한한 섬세하게 전달하려는 시도가 특색있었다. 이 책이 있었기에 나중에 조금 더 대중적으로 잘 읽히게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같은 책도 있었겠다 싶다.

잠든 듯 죽은 듯 갇혀 있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마저 갇힐 뻔한 걸 박사님 덕에 알 수 있는 건 귀한 경험이었지만, 조금 걱정도 되었다. 건강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그들의 분투와 삶이 그저 흥미거리가 될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애써야 할 부분이 종종 있었다. 환자의 사적 영역과 불행, 사회 속 인간들이 자제하고 억제하는 부분들이 무너졌을 때의 비참한 모습 같은 게 특히 그랬다.

이런 우려나 비판을 의식했는지, 박사님은 자신의 연구와 이 책에서 취한 관점, 환자들이 공통으로 겪은 깨어남, 시련, 적응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상세히 후술해 놓았다. 이것만으로도 책 한 권은 될 법하다. 사례들을 보기 전에 이걸 먼저 보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박사는 괴테의 문구 인용으로 대답을 해 놓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실이 이론이다. … 현상 뒤의 무언가를 찾아다녀봐야 쓸데없다. 현상이 바로 이론인 까닭이다.’(360). 이 관점에서 본다면, 독자들이 먼저 사실을 접하며 직접 느끼고 알아가길 바라서 굳이 이런 순서로 책을 엮은 듯하다. 이 책은 여러 번 주석을 뒤집고 내용을 붙였다 뺐다 하면서 개정판을 계속 냈다는데, 거기에서도 박사가 어떻게 자신이 경험하고 알게 된 것을 잘 전달할지 고민한 것, 그리고 박사가 가진 환자에 대한 애정과 염려가 엿보였다.

깨어남 이후 환자들이 큰 어려움으로 이행될 때 내가 아무 고민 없이 ‘부작용’이라고 지칭한 상황에 대해서 박사는 그 용어 자체를 반대하며 내재한 ’근본적인 문제‘, ’병에 걸리기 쉬운 경향‘ 등으로 다르게 보고자 한다.
’그런데 이 모든 현상을 ‘부작용’으로 부르다니 그 얼마나 부조리한 노릇인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경험과 성격, 전체적인 기질과 관계없이 그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말이다. 각 환자 개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런 반응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으며, 세계의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환자의 특성을 이해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자연이 본질적으로 연극적이며(“이 세계는 일종의 연극 무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시처럼 자신을 드러낸다는 사실(한때는 모두가 알았던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397-398)

유행병으로 번졌던 특정 시기의 수면병과 뇌염후증후군은 국지적으로 발생하거나 잘못 진단되어 발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1990년대에도 드물게 병례가 등장하고 있다. 비슷한 듯 진행 양상이 조금은 다른 파킨슨증 환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증가 추세(2025년 기준 최근 4년간 약 13퍼센트 증가)라고 한다. 파킨슨증이든, 알츠하이머든, 정신질환이든, 뇌손상이든, 과거의 모습을 잃고 다른 인격체나 다른 상태로 생을 이어가는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사례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에 다가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들이 마주한 심연을 짐작하며 고통을 더는데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이 책을 영화화한 작품도 파일을 구해놨었는데 조만간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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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이 일어나는 생각을 하면 바로 발작이 일어나요. 그래서 발작이 일어나지 않는 생각을 하려고 해도 발작이 일어나요. 발작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면 또 발작이 일어나요. 선생님은 이게 강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보세요?”(99)

-“(…) 하지만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병에 휘말려 들어가는 걸 알 수 있어요. 파도가 헤엄치는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처럼요. 저 병이 누나를 집어삼켜 우리 곁에서 빼앗아 가는 것 같아요…” Y부인은 서른다섯 무렵에 사실상 말을 잃고 정지된 채, 깊고 아득한 곳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남편과 자녀들은 무력감으로 고통받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결국 입원하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결정한 사람은 Y부인 자신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난 이제 됐어. 더 할 일이 없어.” (163, 내 안에 갇히지 않았음에 감사하기. Y부인의 가정은 슬프게도 저 입원과 함께 해체되었다.)

-“야, 이놈들아, 그만 좀 내버려두지 못해! 이 빌어먹을 검사가 무슨 의미가 있어! 그 대가리엔 눈하고 귀도 안 달렸어? 내가 슬퍼서 죽어간다는 게 안 보여? 빌어먹을, 좀 평화롭게 죽잔 말이다!” 이것이 로날드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나흘 뒤, 그는 잠자다가 혹은 혼미한 상태에서 죽었다. (205, 사랑을 잃으면 죽기도 한다.)

-‘고통이 이 방 안 어딘가에 있다고 느껴왔지만 그게 어딘지 안다고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군요.; (209, 저 느낌 왠지 알겠다.)

-“선생님처럼 사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무엇에 비교하시겠습니까?” 그는 다음의 답을 한 자 한 자 늘어놓았다. “감금. 박탈. 릴케의 <표범>같다.”

수많은 창살이 스쳐 지나가 그의 시선은
지쳐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에게는 수천의 창살만 있고
수천의 창살 뒤에는 어떠한 세계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병동을 훑어보고는 다시 타각타각 알파벳을 가리켰다. “여기는 인간 동물원이다.” (…) “내게 있는 것은 어떤 끔찍한 실재다.”(…) “그리고 어떤 끔찍한 부재가 있다. 내가 말하는 실재는 성가시게 따라붙고 밀쳐대고 짓누르는 제약과 구속과 훼방의 상태다. 나는 이걸 보통 ‘막대기와 고삐’라고 부른다. 부재란 끔찍한 고립과 차가움, 쪼그라드는 것이다. 이건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 아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한없이 깊은 어둠, 비현실.”(325-326, 뇌염후증후군 환자 레너드 L.이 알파벳보드로 표현한 자기의 생.)

-열 살 때는 이런 소리를 자주 했다. “나는 평생을 책 읽고 글 쓰면서 보내고 싶다. 책 속에 파묻혀 살고 싶다. 사람은 도저히 믿음직하지 못하다.” (…) (서른 살에) 입원하자마자 바로 병원 도서관 관리를 맡았다.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고, 정말로 책 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는 실로 책에 완전히 파묻혀 살았고, 어떻게 보면 어린 날의 소원이 무시무시한 형태로 성취된 셈이다. (327-328)

-정신분열적 환각의 기능(과 양상)은 일반적으로 현실 부정의 성격을 띤다. 반면에 마운트카멜병원 환자들한테 나타난 양성적 환각의 기능(과 양상)은 현실 창조의 성격을 띤다. 다시 말해 운명으로 인해 잔인하게 부정당한 행복하고 충만한 건강한 삶을 상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들의 환각이 건강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은 소망의 표시라고 본다. 그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상상과 환각뿐이기에, 그들은 환각 속에서 풍요롭고 극적인 인생다운 인생을 경험한다. 그들의 환각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감각기능과 운동기능, 사회적 기능에서 극도로 고립된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어떤 환자가 풍요로운 양성적 환각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껏 즐기라고 권장한다. 삶을 추구하는 모든 창조적 노력을 권장하듯이.(338, 색스 박사의 ‘환각’을 읽을 때 박사가 엘에스디 사용 경험을 털어 놓은 게 어렴풋이 떠오른다. 환각에 대해 긍정적이고 대안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이 놀라운 각주 부분이었다.)

-“처음엔 말입니다, 선생님, 저는 엘도파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그 생명의 묘약을 처방해 준 선생님께 감사했죠. 그러다가 모든 게 나빠졌을 때는 그게 이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독약이라고요. 그걸 내게 준 선생님을 저주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공포와 희망, 증오와 사랑...지금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근사하면서 끔찍하고,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일이죠. 결국엔 슬픈 일이고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나는 그냥 놔두는 게 최선입니다. 약은 이제 그만이에요. 지난 3년 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평생을 갇혀 지내던 장벽을 뚫고 나온 겁니다. 이제는 제 자신으로 살아갈 겁니다. 엘도파는 그냥 두셔도 됩니다.” (344, 레너드 엘의 경험과 통찰은 이 책의 사례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라이프니츠의 ‘최적률’(건강)은 수치로 나타난 지수가 아니라 엄청나게 다양한 세계, 현실성 그 자체인 세계라는 구조에서 가능한 방대하고 다양한 관계를 시사하는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질병이란, 구조 혹은 서롂가 허약하고 경직된 까닭에 최적률에서 이탈한 상태인 셈이다(질병 자체의 힘이 워낙 강력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건강의 양상은 비한정적이고 확장적이며 세계의 충만함을 지향한다. 반면에 질병의 양상은 한정적이고 환원적이며 세계를 자기 안으로 축소시키려 든다. (361, 건강과 질병에 대한 다른 관점. 그저 아프거나 불편해지는 것 이상의 존재론적 변화.)

-처음에는 마른 토양에 물을 공급하거나 침체 지역에 돈을 지원하듯 엘도파를 ‘적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조만간에 합병증이 발생한다. 합병증이 발생하는 것은 애초에 복잡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그것은 단지 한 가지 물질의 고갈이나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뇌조직 자체에 결함 혹은 장애가 있는 것이며, 그 밖의 부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386, 병은 제거 가능한 단일 원인이 아닌 여러 구조적 문제가 겹쳐지며 나타난다고도 볼 수 있다.)

-투약량은 늘리거나 줄이는 것뿐, 다른 일은 할 수 없다(투약 간격을 조정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뇌 반응과 행동은 여러 차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1차원적인 언어로는 기술하거나 산정하기 어렵다. 환자의 반응을 투약량으로 ‘적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가정하는 것은 뇌가 일종의 척도이고 그 엄청난 복잡성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믿는 꼴이다.“ 생물 조직은 생리학 및 화학 조직으로 축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니덤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왜냐면 어떤 것으로 축소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394)

-질병disease의 중심 개념이 편안하지 않음dis-ease인만큼 치료의 중심 개념은 편안함이다. 환자에게 편안함을 더해주는 모든 것이 잠재적 병리 요소를 감소시키며 최선으로 적응하게끔 돕는다. (409, 나를 만나는 의사 선생님들이 이런 생각을 늘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들에게 현실이란 현실 속 사람들에 의해 주어지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부재에 의해 그들의 현실은 박탈당한다. 우리의 현실감, 신뢰감, 안정감은 절대적으로 인간관계에 의존한다. 견고한 관계는 재난에서 우리를 구해낼 생명줄이요, 망망한 고해에 뜬 북극성이자 나침반이다. (…) 중요한 점은 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집에 있는 듯 편안하게 느끼는 것, 세계라는 집에 진짜 자신의 자리가 있음을 마음속 깊이 느끼는 것이다. (414, home sweet home)

-나는 지옥이란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의 환자들은 돌아왔다. 돌아온 이들에게서는 그 경험의 자국이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 궁극의 심연을 겪었으며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경험이 그들을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환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뇌염후증후군의 심연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자기만의 심연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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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작은어린이가 ‘평생 기억하는 지구 이야기’(누나가 읽던 것. 중고로 3천원에 샀는데, 견출지로 아름다운 가게, 1000원, 붙어 있어서 빡치는 부분)를 재미있게 읽고선 후속작 ‘평생 기억하는 공룡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해서 였다. 무려 1400원에 파는 개인 판매자를 찾아서 판매 리스트를 둘러보다보니 이렇게 저렇게 담게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한 권씩 둘러 볼까?

‘마인크래프트’ 관련 두 권. 아직 게임을 사 줄 생각은 없는데, 나아아아아중에 사줄테니 책으로 세계관이라도 익혀라... 작년 상반기 내내 용암치킨 노래를 신나게 부르던 어린이용으로 마련해 보았다. 닌텐도 버전을 살지 피시 버전을 살지 난 그것도 잘 모르겠구나...


‘베니스에 간 가스파르’ 예전에 알라딘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가스파르와 리사 수건만 있고 책은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해서 골랐다. 베니스에도 가 본 적이 없구만!!!










‘인버스’ 예전에 우끼님이 단요의 책을 읽고 리뷰 써 달랬는데 그러고나서 몇 년이 흘렀다... 지금은 인버스 탔다가 망할 버블 시기이지만 그냥 궁금하니까 구매 도서 중 제일 비싼 오천원-

‘자살 가게’ 성귀수 번역본인 것만 전에 눈으로 익혀서 대충 프랑스 소설이겠네, 정보 없이 담아 봤다. 한국이고 프랑스고 일본이고 뭔 가게 나오는 책이 다 인기인가 보다. 과자 가게, 빨래방, 편의점, 시간도 팔고, 자살도 팔고, 자본주의 답다. 















‘new’ 근육운동가이드 이지만 내가 산 건 2011년판이다...아니 그런데 지금 검색하다보니 올해 여성운동판이 나온 걸 알게 되었다. ㅋㅋㅋㅋ 혼자 집구석에서 덤벨 케틀벨 하다가 알통도 생겼다 없앴다 다쳤다 나았다 다시 아프다 이러고 있어서 책이라도 한 번 참고해 보려고... 화려한 도판인데 2800원. 거의 90퍼센트 할인이다. 

이 모든 게 배송비 포함 21150원. 책 한 권 값이라 가끔 중고 잘 털면 폐지 줍줍 하면서 기쁜 기분...그런데 책 사고 나니 알라딘이 오랜만에 적립금 상을 줬다. 오예. 와. 앗싸! 받은 날 터는게 국룰이고 내 돈 주고 살 만하지 않은 걸 장바구니에서 고르는데 그래서 오늘 제가 고른 책은...일단 쿠폰 천원 쓴다고 코코아 현미칩을 담았고... 이전의 오리지날 현미칩 먹을 만 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는 사드 전집을 적립금으로 모으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기어이 이미 동서문화사판으로 소장 중인 ‘소돔120일‘ 성귀수 번역본을 질렀다. ㅋㅋㅋㅋㅋㅋㅋ와 그걸 또 사냐 하고 나 뽑아준 알라딘 현타오겠다. 아니 재고 떨어줘서 고마워할지도...(페이퍼에 상품 첨부해도 19금이라 표지가 잘 안 뜨는 부분)

나 이제 소돔 120일 두 개다. 사드가 지옥에서 펄쩍펄쩍 춤을 추겠다. 너 보라고 쓴 거 아니라고. 악성 독후감 쓰면 이ㅏ묄머ㅏ내겨ㅐㅑ머 해버린다고 날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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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1-10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인인증을 했었나… 표지 뜹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6-01-11 13:06   좋아요 0 | URL
저는 확실히 뜨네요 ㅋㅋㅋㅋ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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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8 임솔아.

맨 마지막 소설 ‘눈과 사람과 눈사람’을 제일 먼저 읽었다. 신년이라서 어울릴까 했는데 배경이 신년이긴 했다. 눈이 쌓인 호숫가에 모인 여성들, 여섯이었다가 넷만 모였지만 멀리 하나까지 다섯이 계속 이어지려 애쓰고 있었다. 연대하다 싸우다 다시 자신 없이 희망을 끌어올리려 분투하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오래 전 읽은 윤이형의 ‘작은마음동호회’와 ‘붕대감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바로 윤이형의 발문이 이어졌다. 고통으로 가득찬 소설집이면 아마 나중으로 미뤄뒀을 것 같다. 고통 서사 중독자이긴 했는데, 오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진화에서 고통이 기여한 바가 있어서 고통 받고 고통에 민감한 존재들이 여태 남아 있고, 또다른 고통 받는 자손들을 이어갔겠지만… 꺼져 진화… 꺼져라 고통… 이렇게 남의-그것도 매우 잘 쓰던 소설가의- 서평을 먼저 읽고 소설들 하나씩 꺼내 읽는 건데 이게 나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는 더 읽어봐야 알겠다. 다 읽고 나니 서평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독서에 큰 영향을 안 준다. 어차피 직접 읽기 전엔 아무 것도 모른다. 다행이다. 휴.

‘줄 게 있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왜.
‘병원’은 카프카 생각난다고 하면 작가가 좋아할지 화낼지 모르겠다. 윤동주의 병원도 나왔다. 이전에 변신의 잠자의 방 건너편 병원에 대해 상상해 쓴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내가 겪은 병원은 저것보다는 나은데 저런 병원도 어느 세상에는 있겠지. 저런 삶도 가능하겠지. 곧 불가능하겠지. 아, 상해진단서를 끊을지 말지 그걸 끊으면 건강보험이 안 된다고 해서 결국 안 끊었던 것 같은, 입원한 나와 엄마를 한심하게 다루던 의료진들이 여럿 있던 병원이 그나마 저기랑 가깝겠다. 거기에는 피를 흘리는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전에는 책을 다 읽도록 뭔가를 쓰거나 밑줄을 긋거나 하지 않았었다. 다 읽고 나서 다시 뒤적이며 건질 만했던 문장이 생각나면 옮기고, 아니면 말고, 했다. 지금은 뭔가 집중력이 무너졌는가, 책한테 딴지를 걸고 싶은가, 대화를 하고 싶은가, 인터랙티브는 아니고 오도방정을 떨며 아무말잔치를 하려고 책읽기는 뒷전인 것 같았다. 이제 한동안은 책 다 읽을 때까지 뭘 찌그리지 말아야지. 옮겨적지 말아야지. 이 책도 거의 절반을 봤지만 남은 동안만이라도 그래야지. 하는 주절이를 마지막으로 적는다. 에효. 후지다.

‘다시 하자고’ 피아 구분 못하다가 분리되는 홀가분함
‘추앙’ 사람 같지도 않은 새끼들 다 죽었으면. 이라고 쓰는데 갑자기 눈 뒤쪽으로 뭐가 위아래 훝고 지나갔다. 비문증은 반대쪽 눈인데. 너무 성질 내지 말아야지.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나는 빌러비드랑 빌리버드가 늘 헷갈린다. 병든 사람이 곁의 사람을 병든 사람처럼 만드는 되먹임을 나는 많이 겪어 봤다고 하기에는 또 다른 모습이라 뭔가 징글징글한데도 애증인지 애정인지 수프 먹고 싶었다.
‘신체 적출물’ 손톱이나 머리카락 말고 잃어본 적 없어서 다행이다.
‘선샤인 살레’ 열대섬 가 본 기억이 나고 다시 가고 싶지만 비행기를 오래 못 타서 이젠 해외 못 갈 것 같다. 이름 잃고 낙원 같은 곳에 이름 없는 사람들과 아주 잠시만 교감하다 일회용 감정 관계 묻고 사라지는 삶 그거 아주 워너비 아닌가 그래서 소설 속에만 있다.

오, 앞에서부터 읽은 소설들은 다 인상적이고 좋았다. 순서대로 읽을 것을 괜히 표제작부터 읽었다. 이거는 매운맛 먹고 샤벳 같은 걸로 도닥거리는 순서였는데 나는 눈부터 실컷 퍼먹고 야 싱겁냐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역시 아까 다짐한 것처럼 책읽기에 집중하고 괜히 옆에서 추임새 넣는 메모 같은 거 좀 자제해야 겠다. 그편이 더 나은 독서인 걸 오랜만에 알았다. 한국 소설 읽기도 오랜만이다. 아주 오랜만인데 생각보다 좋았다.

+밑줄 긋기
-연대에도 자격이 있겠지요. 우리에겐 그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봤어요. 나래씨는 성폭력 피해자였고 앞장서서 싸워왔어요. 나래씨는 피해자들의 싸움에 우리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받아들인 것 같아요. 고통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고통마저 약탈해서 정의로운 척하는 족속을 보듯이 우리를 본 것 같아요. 우리가 정말 그런 사람들일까요?(183, ’눈과 사람과 눈사람‘ 중. 당사자성. 고통이 짙으면 비뚤어지기도 한다.)

-단단해지고 싶어서 자기의 말랑말랑한 부분을 떼어내 냉동실에 넣어 얼리는 사람은 단단한 사람일까 말랑말랑한 사람일까. (203, 윤이형의 발문 중)

-그들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회는 그들이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210, 흑흑)

-“그렇게 슬픔을 이겨나가는 거야.”
이겨나가야 할 정도의 슬픔이 나에게는 없었다. (17, ‘줄 게 있어’ 중. 슬플 거라고 단정하지 마. 슬픔을 강요하지 마. 너의 죄책감을 내 죄책감 스위치 켜는데 쓰지 마.)

-“있고 싶어요.”
“그래, 잊어야지.” (33, 말 되게 못 알아 처먹는 인간들. 사람을 말려죽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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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 주니어 클래식 1
윤소영 풀어씀 / 사계절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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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6 윤소영 풀어씀.



원전을 읽는 게 꼭 필요한가 싶으면서도,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종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을 갖춰놨다. 동시대에 같은 결론을 향해 달려가던 월리스의 말레이제도도 함께 꽂혀있다. 생각보다 겁이 많기 때문에 풀어쓰기 해 둔 이 책, 종의 기원,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를 읽고 나머지에 도전하는게 낫지 싶었다. 그런데 잘 집중해서 읽지는 못했다. 일부 중요 내용 발췌와 해설, 쉽게 설명하려는 시도가 좋긴 한데 막 엄청 새롭고 이런 건 못 느끼겠는게 그간 다윈의 후예 내지 후학 연구자들이 이런저런 진화론 영향 받은 생물학, 동물학, 뇌과학, 지구과학, 사회학 관련 써둔 책에서 주워먹은게 적지는 않았나 보다. 다윈의 연구와 주장의 가치, 한계를 간단하게 정리한 건 처음 진화론에 관해 읽는 청소년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이해가 한 번에 쉬울 것 같지는 않다.

다윈의 연구를 요약 정리해 둔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말레이제도를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윈보다 덜 유명했지만 같은 방향으로 다른 어디에서부터 나아가던 사람의 탐색 과정이 더 궁금했다. 제대로 안 읽은 건가, 인용도 할 말도 많지 않아 오늘은 간단한 독후감 끝. 나중에 기회되면 진짜 종의 기원에 도전하자. 나아아아중에...

+밑줄 긋기
-지금까지 인류는 두 차례에 걸쳐 과학의 손이 그들의 천진한 자기애에 가한 거대한 모욕을 참아내야 했다. 첫 번째는 우리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거의 상상하기조차 힘든 규모의 대우주 안에 있는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두 번째는 생물학 연구로 인해 신의 특별한 피조물이라는 특권을 강탈 당한 채 동물계의 일원으로 추방당했을 때였다. (158, 프로이트의 말을 굴드가 ‘다윈 이후’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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