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에이드리언 리치 지음, 이주혜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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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6 저자: 에이드리언 리치.



식구들과 망고와 초콜릿을 나누어 먹었다. 냉장고가 고장나 녹은 냉동망고와 피비상품인 다크초콜릿이었다. 여기보다 여름이 더 뜨거웠을, 아직 뜨거울 지역에서 주재료가 만들어졌다. 어쩌면 그곳까지 케이팝이나 한국산 반도체가 탑재된 전자기기는 닿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세계는 기우뚱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쁜 놈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이분법을 생각한다. 나쁜 놈이 힘을 잡았을 때는 타도할 권력, 되찾아야 할 민주주의, 항의와 선언이 이어진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토록 정의롭다. 문제는 나쁜 놈이 밀려나고 난 뒤이다. 사적 이익을 위한 권력 남용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자본주의의 냉혹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자유란 앞에 ‘경제적’이 붙은, 자산가가 되는 꿈이다. 나쁜 놈의 반대편이 힘을 가진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외치기는 겸연쩍은 모양이다. 이것도 금지된 침묵일까. 나쁜 놈에 반대하는 오롯이 착한 놈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못과 삭제와 억압과 차별에 대항하는 목소리는 어느 시대이건 계속되어야 한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그렇게 계속 목소리 내길 주저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모성이나 이성애를 강제된 제도, 학습된 것으로 보는 관점은 참신했다. 인종 문제, 유대인 정체성 같은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보였고, 시인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 무엇이 이 미친 세상에 내놓아야 할 시인지도 계속 질문하고 있었다. 자신이 걸쳐져 있는 교차성에 대해 끝없이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동의하는 주장도 있었고, 특정 사람들을 삭제시키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삭제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레즈비언이 찐 사랑, 이성애는 너희들이 속고 있는 거야! 게이 때문에 레즈비언이 그 대칭처럼 오해받는 거야! 하는 건 사랑에 대한 관점이 너무 좁고, 그외의 사람들을 모두 망했다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읽게 된 건 ‘자두’라는 소설 안에 이주혜 작가가 자신이 번역한 이 책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주워들었지만 에이드리언 리치는 세 아들을 낳았고, 순서는 모르겠지만 레즈비언 정체성을 찾았고 아마도 이혼했고 남편은 자살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산문집이라니까 그냥 막연히 페미니스트 작가로군, 사회운동가로군, 했는데 시작은 시인이었다. 시가 해야 할 일을 여러 글에서 반복해서 이야기하는데, 시를 가끔 읽지만 현대 시는 해방 세상에 대한 시는 프로파간다라고, 문학계에서 쳐주지 않는 건지, 그런 시가 별로 없는 건지 어찌되었든 나에게는 그런 목소리가 닿은 적은 드물었다. 어쩌면 담겨있는데 그걸 읽어내지 못했었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 비트는 시 정도는 읽었던 것 같다. 이런 걸 따지기에는 시를 별로 안 읽었다.

초콜릿 조각을 똑같이 나눠먹는 기계적 평등이나 실천하는 나란 인간은 집안 내 권력 구조가 존재하는 것도 대충 알겠고(내가 최상위 포식자, 폭군이다) 그렇게 누가 시키지도 않은 가부장 노릇과 모성과 이성애가 비벼져 있어서 그런지(그런데 이성애 동성애로 나누는 자체가 성 정체성을 스펙트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막 읽을 때 사이다 같거나 내가 향해야 할 방향을 이끌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하고 여성주의 책을 오랜만에 펼쳤다가 아 안 되네 나란 놈 설득이 안 되네… 하는 게 반복이다. 동시에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헌법과 판례를 들어 동성애자-주로 게이- 차별 멈춰! 하는 책이다)를 읽다보니 둘다 평등 세상 꿈꾸는 건 같은데 왜 사이는 안 좋은가 싶었다. 사이좋게 지내자, 우적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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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이 못마땅하게 느끼는 점은 로체스터의 관능성이 아니라 제인을 자신의 대상이자 창조물로 삼으려고 하고, 아낌없이 보석을 줘가며 제인을 꾸미고 싶어하고, 다른 이미지로 재창조하려고 하는 그의 경향성이다. 제인은 미인이나 요염한 여자로 낭만화되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하며 그에게 하렘의 일원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다.(67)

-내가 가난하고, 미천하고, 못생기고, 몸집이 작다고 해서 영혼도 감정도 없는 줄 아세요? 틀렸어요! 나도 당신처럼 영혼이 있고 감정도 풍부해요!(…)나는 지금 관습이나 인습을 통해, 또는 육체를 통해 당신에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내 정신이 당신의 정신을 향해 말하는 거예요. 마치 우리 둘 다 무덤을 지나 하느님의 발치에 서 있을 때처럼 평등하게, 그리고 지금처럼 평등하게요! (68-69, 초2때 그저 다락방의 미친 여자 나오는 공포소설로 읽었던 제인에어를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안 읽은 폭풍의 언덕도 같이… 리치는 이런 인용된 구절들을 들어 앞의 소설을 더 높게 친다.)

-이 작가에게 인간관계란 ‘고통스러운 수치심이나 풀죽은 굴욕감을 느끼지 않는’사람들 사이의 거래, 그리고 누구도 타인에게 이용 가능한 대상이 되지 않는 거래를 말한다. (75, 그 반대의 것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예속, 종속, 억압...)

-붕괴는 한순간의 행위가 아니다
근본적인 중단
무너짐의 과정은
조직적인 부패다

영혼에 지은 최초의 거미집이고
먼지의 표피이고
축을 뚫고 들어가는 벌레이고
기본적인 녹이다-

멸망은 형식적인-악마의 작품
연속적이고 느릿한-
한순간의 실패는-어떤 인간도 하지 않는다
미끄러지기는-충돌의 법칙 (115, 에밀리 디킨슨을 리치 선생님이 소개시켜줬는데 나는 여전히 시를 잘 모른다. 뮤리엘 루카이저는 저자가 꼭 읽어보라 해서 검색해보니 번역 시가 없다.)

-마지막으로, 또 한 번의 결혼을 위해 아내와 딸의 곁을 떠나놓고 그들의 이름을 시집의 제목에 가져다 쓰고, 버림받은 스트레스와 고통으로 써 내려간 전 부인의 편지를 이용해 새 아내에게 바친 시집을 묶어낸 시인에 대해 혹자는 뭐라고 말할까?(…)대체 무슨 목적으로? 시 속에 편지를 삽입한 것은 나로선 전례를 떠올릴 수도 없는, 시의 역사상 가장 앙심으로 무장한 비열한 행위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고, 이러한 행동을 가능하게 한 그 부적절한 에고는 로웰의 시집 세 권 모두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123-124, 로웰의 시집을 무자비하게 까기 위해 강한 어조로 비판을 했는데, 미발표 산문이다. 인용할 때 허락을 구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

-‘어머니’에게 아이는 최소한 9개월, 종종 몇 년까지 이어지는 지속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어머니 됨은 처음에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렬한 통과의례-임신과 출산-를 통해서, 그다음은 양육의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 본능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128, 겪지 않으면 잘 모를 배움.)

-가부장제에서 집단 아동 돌봄의 목적은 단 두 가지다. 첫째, 경제개발 중이거나 전쟁 중에 수많은 여성을 노동력으로 유입하려는 목적, 둘째, 미래 시민을 세뇌하려는 목적이다. (131, 공교육과 사교육도 두 가지 목적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

-‘이 문제가 다른 여성들에게도 유효한가?’(133)

-모성 제도 아래서 모든 어머니는 어느 정도는 아이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172)

-‘아이 없는 여자’와 ‘어머니’는 잘못된 양극화로, 모성과 이성애 제도에 복무한다. 이렇게 단순한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212)

-부모 노릇이라는 말이 사실은 한쪽 부모인 어머니의 역할을 뜻하는 것처럼 특별하고 중요한 현실을 은폐하듯, 게이라는 용어도 페미니즘과 여성 집단의 자유를 위해 중요하게 분별할 필요가 있는 윤곽을 흐리게 만드는 목적에 복무할 수 있다. (263, 이건 좀 너무 갔다 싶었다. 특정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너네 존재 자체가 우리까지 너네 유사품으로 만들어서 문제야, 하는 건 퀴어라는 말로 묶지 마, 니들도 남자니까 하여간에 나빠 하는 걸로 읽힌다.)

-1976년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브뤼셀 국제재판소는 ‘강제적 이성애’를 ‘여성 대상 범죄’ 중 하나로 지정했다. (267, 두 사례가 덧붙는다.)

-그보다 우리는 모든 성애의 삶이 하나의 연속체이며, 남성과의 관계도 포함하는 연속체라는 복잡한 사회적 모델을 가정합니다. (280, 이성애를 하나의 제도로 보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거짓 의식을 강요 받은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는 리치 선생에게 샤론, 크리스, 앤이 반박하는 편지글을 위의 내용을 담아 보냈다. 리치 선생도 자신의 의도와 바람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인생에 흥미와 의미가 가득하다고 믿었던 나 역시 어떤 것 때문에 죽은 자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즉, 그들은 운명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금기가 되어버린 이름,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정체성 때문에 죽었다. (296, 그런 금기의 존재는 다양하다.)

-아름다운 언어도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억압자의 언어가 때로는 아름답게 들릴 수 있음을 아는 시인. (317, 윤리적 예술, 윤리적 미학 이런 말이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논란의 영역이었다.)

-그 세계는 뒤집혀
왼족이 항상 오른쪽이고
그림자가 사실은 육체이며
우리는 밤새 깨어 있고,
천국은 바다의 깊이 만큼
얕고,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 (324,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 인용. 마지막 줄 맴찢)

-이들(메리 울스톤크래프트, 시몬 드 보부아르, 제임스 볼드윈)은 ‘원래 그런 것’처럼 보였던 것들도 사실은 사회적 산물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이로워도 누구에게는 불리할 수도 있으며, 이와 같은 산물도 얼마든지 비판하고 변화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343)

-‘진정한 변화는 원래 알고 있던 세계의 붕괴를, 정체성을 부여했던 모든 것의 상실을, 그리고 안전의 종말을 의미한다.’(344, 제임스 볼드윈을 인용)

-시는 우리 존재의 고통을 풀어줄 수 없다. 그러나 점점 쌓여가는 삶의 다급한 일들, 우리 스스로 등을 떠밀어 우리 것인 양 받아들인 거짓 욕구와 필요 아래 묻힌 욕망과 취향을 드러내줄 수는 있다. (369, 시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나는 남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즉 자신으로 사는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여성들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내가 몰랐을 뿐.(408)

-성애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면서 얼마나 예리하고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442, 오드리 로드, ‘성애의 사용: 성애라는 힘’의 글이 각주로 인용되어 있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개인과 사회 권력의 관계, 개인과 집단적인 인간 경험의 대변동과의 관계는 언제나 가장 풍성하고 복잡한 질문이 될 것이다. 이때 숨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개인적인 역사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무엇을 알게 될까? 당신과 운명을 함께 한다고 믿는 사람은 누구인가? (475)

-그 작가의 사회적 정체성이 무엇이든, 작가는 글쓰기라는 행위의 본질상, 의사소통과 연결을 위해 애쓰는 사람, 언어를 통해 옥타비오 파즈가 ‘잃어버린 공동체’라고 부른 것과 살아 있는 대화를 유지하고자 탐색하는 사람이다. 때때로 자신의 글이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던질 쪽지처럼 느껴지더라도 말이다.(481)

-우리는 왜 파시스트의 통치 방식이, 시민권과 인권의 파괴가 여기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했을까? 한 국가로서 우리가 독단적인 가짜 순수에 집착하면서 우리나라의 상황, 우리 정치의 내출혈은 모른 척 눈을 감아 왔기 때문이다. (508, 독재자들을 지원하는 공화당과 민주당을 이란성 쌍생아 정당이라고 저자는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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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매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8
김금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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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30 재독. 저자:김금희.


나의 책 9권 꼽아보기를 하며 몇 권을 쥐어짜던 나는 스스로 의심이 들었다. 내가 좋아한다던 책들이 사실 가물가물했다. 어떤 상징이거나 어렴풋한 느낌만 남았다. 그래서 김봉곤, 김금희의 소설을 꺼내 보았다. ‘생명의 도약’이나 ‘감각 환각 착각’ 같은 과학책은 확인하는데 조금 더 오래 걸릴 테니까. 아마 다시 안 볼 수도 있고.

다 저녁 때 이거 오늘 다 읽겠네, 할 만큼 김금희의 중편 소설은 폭이 손가락 한 뼘 쯤 되고, 페이지는 다 떼고 소설만 보면 124쪽 안에서 끝났다. 다시 읽으며 아주 초반과 아주 후반의 장면은 기억이 났지만, 내가 이 책을 읽긴 했었나 싶었다. 소설을 다시 읽을 때 그렇게 레드썬 하는 기분이 들면, 그게 또 약간 횡재한 것 같다. 재미있었다고, 잘 썼다고 생각만 남은 글이 다시 읽어도 재미있고 잘 쓴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다. 변한 건 나였어!

읽는 나는 첫 번과 이번이 달랐다. 뭐라고 콕 찝어 설명할 수 없지만 하여간에 그렇다.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강처럼, 그 발도 사실 같은 발이 아닌 것이다. 매기와 재훈의 만남도 그랬다. 2002년 월드컵 광장을 스치던 그들과, 아마도 2016년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가던 무렵 레이디치킨 2층에서 숨어서 만나는 그들은 같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또 흘러가는 건 비슷했다. 재훈은 찌질해보이지만 동시에 가여웠다. 이번에는 블룸 씨처럼 처용처럼 뭔가를 빼앗긴 양(그런데 그거 원래부터 네 거 아냐) 바쁜 남자가 아니라 이건 사랑, 연애, 하고 생각하려고 하지만 상대방의 조심조심으로 그게 잘 안 되어 이건 외도, 불륜, 하고 애정이 수치심으로 자꾸 치환되는 남자 화자의 율리시스였다. (서울, 순천, 제주, 부지런히 다닌다.) 김금희는 그런 걸 쓸 수 있는 작가였고 그래서 내가 좋아했다. 좋아한다.

+밑줄 긋기
-사랑은 프라이빗한 것이지만 쇼잉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그 마포구 와우산로17길에서 깨달았다. (11, 심지어 도로명주소야.)

-우리는 뭐든 그렇게 ‘축적’이라는 것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사진도 찍지 않았다. 둘이서 다정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아무리 기계의 눈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렇게 제삼의 눈을 바라보는 게 차마 못할 일이었다. (63,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많은 재훈. 매기가 좀 아깝다.)

-“그 순댓국집 아줌마에게서 왔지.”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을까?”
매기는 한동안 말해주지 않다가 우리를 그나마 예쁘게 봐준 사람이잖아, 라고 했다. (120, 매기의 전설. 손이(네일아트가) 예쁘다고 칭찬하던 아줌마의 노래 속에서 생겨났다.)

9권 꼽아보기
https://www.mytop9books.com/share/IhpCrjbn

2021년 겨울의 매기. 2026년 여름의 매기와 온도차가 있는 듯 없는 듯.
https://m.blog.naver.com/natf/22220354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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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9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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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30 저자: 제임스 조이스.

집에 표지가 시커먼 ‘율리시스’가 있다. 내 것이 아니라 엄마가 디지털대학 문창과에 다닐 때 산 것이고, 읽으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발목 인대가 파열되었을 때 그 책을 발받침대로 썼다.
두껍기만 한 걸 뭐. 남들이 우와 새로운 문학 어쩌고 이러면 괜히 피했었다. 그런데 ‘나보코프 문학 강의‘를 읽다가 나보코프 선생에게 낚였다. 강의를 하기 위해, 강의록을 쓰기 위해, 아니면 진정 재미있어서, 나보코프는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을까? 친절하게 나보코프 선생은 줄거리와 책 속 문장과 자신의 해석을 비등비등 적어 주었다. 그렇게 나한테 ‘율리시스’ 영업을 했다. 나는 그의 수강생은 아니므로 읽기 숙제 따윈 없었다. 그런데 발받침 말고 또다른 번역본이 비교적 최근 나온 걸 알게 되었다. 그럼, 이건 긴 여정일테니 시시때때로 보면 되지 않을까? 하고 전자책을 샀다.

오디세이가 열풍인 시기에 율리시스1권을 일단 마쳤다. 1권이라니. 2권이 남아있다니. 해도 졌고 하루가 저물었는데(다 읽은 건 정오 무렵이긴 한데, 소설 후반부에서 해가 졌으니 저녁 8시께라고 블룸이 추측해서 시간을 알려줬는데.) 뭐 더 할 말이 남은 것인가. 아아.
어느 땐 내가 이걸 휴대전화랑 태블릿 번갈아가며 병원 대기실 같은 데서 드문드문 읽으니까 파편처럼 보이는 걸지도 몰라, 했는데, 1권의 후반부를 진득하니 앉아서 이어서 읽어보니 어떻게 읽든 상관없었다. 그냥 적당히 뒤죽박죽이다. 귀찮아서 미주를 안 봤더니(일부만 보고 나중에 책 다 본 후에 끝에서 훑어봄) 더 그랬겠다. 운율, 말장난, 그런 걸 친절한 번역가 선생님이 각주로도 달아 설명해주셨는데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도 친절한 각주에도 불구하고 다 읽는데 8년 쯤 걸렸었나. 이번엔 이 정도면 신속했다.

1권 끝, 나보코프 선생이 말하는 2부 10장(내 책에서는 13장)까지 읽었다. 나보코프 선생 말로는 내가 읽은 번역본처럼 장마다 오디세이와 관련된 제목이 붙은 판 때문에 사람들이 온갖 개소리 같은 해석을 내놓아서 조이스가 그 제목들을 다 지워버리고 다음 판을 냈다고 주장했다. 뭐 그랬다는데 이 책에서는 세이렌, 키클롭스 그런 게 살아 있다.
읽다가 아 이게 맞나요, 내가 영업 당한 이 책이 맞나요, 하고 중간에 ‘나보코프 문학 강의’를 펼쳐 다시 읽기도 했다. 다는 아니고. 그런데 같은 책인지 모르겠더라. 1권을 다 읽고 다시 한 번 나보코프를 넘겨보니 이제 좀 짝패는 맞출 정도, 이 장면 기억나지, 그 정도까지 읽었다. 읽었냐. 넘겼다. 읽는 내내 남은 페이지 수를 얼마나 자주 흘깃댔는지.

스티븐은 초반부에 나오고선 찾기 힘들었다. 아일랜드의 너저분한 아저씨들이 블룸이 쏘다니는 곳마다 널려 있다. 아주 잠시 누군지 모를 화자가 술집에서 대화에 참여하며 관찰하고 빈정거리기도 하고, 3인칭인 척 1인칭에 가까운 해변의 아가씨 시점을 가장한 아저씨 시점도 있었다. 어절마다 어쩌고, 섹스, 저쩌고, 섹스 이렇게 안 쓴 거 보면 내내 그 생각만 한다더라 하는 말이 늘 그렇진 않은가 했다. 그렇지만 블룸의 대가리 속은 저렇게 노골적이지는 않더라도 불쑥불쑥 성에 대한, 아내 몰리에 대한 회상들이 스쳐간다. 블룸은 몰리가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한다고 생각하며 이곳저곳 다니면서 하루를 보낸다.

오쟁이 진다는 말을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번역본에서 처음 봤다. 멀리 보면 처용가부터 이상의 ’날개‘도 그렇고 최근에는 박찬욱 영화까지 다 나열하기 구차할 만큼 많은 작품들이 같은 소재를 변주한다. 주제일 수도 있고 이야기 속에 곁다리로 나오기도 한다. 주로 남자 문학가들이 소재로 쓰는 영역인데, 그게 남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상황일까 싶었다. 이 소설 속 블룸의 분노도 두려움도 슬픔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의 바깥 상황과 뇌내 망상, 회상, 잔상, 거기에 감정은 거의 없다. AI처럼 줄줄 읊고 있다. 사람이 생각보다 조리있게 완성된 서사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것 같은데, 아, 사람은 저렇게 쓴 것처럼 사고하지도 않는다, 싶었다.

두꺼운 책을 약간 겁낸 적이 있었는데, 꾸역꾸역 어떻게든 끝장을 본 책이 늘수록 이제 두께는 책 고르기에 중요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 그점이 좋다. 그거 말고는 뭐 분량 상관없이 재미있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런데 두꺼울수록 지루한 위기 구간을 좀 더 자주 만날 가능성은 있다. 그래서 율리시스2권은 다음이 궁금하기도 하고, 내내 이럴 거냐, 더 재미없어질 거냐, 뭐 그런 복잡한 마음이라 천천히 틈틈이 봐야 겠다.

+밑줄 긋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우리 어머니에 대한 모욕이 아니야.
-그럼 뭔데? 벅 멀리건이 물었다.
나에 대한 모욕이지, 스티븐이 대답했다. (나보코프 책에 인용된 부분에도 똑같이 밑줄을 그었다는 사실. 패륜 개그에 약한 나)

-못나고 모자라: 가냘픈 목에 숱 많은 머리에 달팽이 살 같은 잉크 자국. 그래도 누군가는 저 아이를 사랑했고 낳아서 품안에도 품고 마음속에도 품었겠지. 그런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온 세상 사람들이 저 아이를 발로 짓밟아 뼈도 없는 달팽이처럼 으깼으리라. (대놓고 뼈를 때리는데 너무 잔인할 정도로 인간 혐오다.)

--우린 관대한 민족이지만 동시에 정의도 지켜야 한다네.
-그런 거창한 말이 전 두렵습니다, 스티븐이 말했다, 우리를 아주 불행하게 만들거든요. (정의는 공정을, 그리고 불행을.)

-역사는, 스티븐이 말했다, 제가 깨어나려고 애쓰는 악몽입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외침소리가 들렸다. 삐익 호루라기 소리: 골. 그 악몽의 뒷발에 걷어차이면 어쩌지? (스티븐의 말이 계속 마음에 들었나 보다.)

-까마득한 옛날에 사라진 한 사람이 쓴 이런 신기한 책장들을 읽다보면 누군가와 하나가 되는 느낌을 갖는데, 그 누군가는 한때 ...... (독자에게 그렇게 하나가 되자 하고 있다.)

-그래, 내 자리는 지금 여기야. 암, 지금 여기고말고. 아침의 입 탓에 나쁜 이미지만. 꿈자리가 사나웠는지. 그놈의 샌도 아령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어. (3월에 그은 밑줄인데, 고작 아령 나왔다고 그은 거냐?)

-우리의 수의. 우리의 죽은 몸을 누가 손댈지 우리는 결코 모른다. 몸 씻기고 머리 감기고. 분명히 손톱과 머리카락도 자를 것이다. 약간은 봉투에 보관하고. 그래도 나중에 또 자란다. 궂은일이다. (생전에 시신 기증 서약을 하면 결코 까지는 아닐 것 같다.)

-젊을 때 소망하는 것을 조심하라, 어차피 중년에 구하게 될지니. (오히려 젊을 때 소망이 없는 것을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중년에 구할텐데)

-놈들의 문명이란 문명은 죄다 우리한테서 훔쳐간 거야. 잡놈 귀신의 혀짤배기 자식들. (이 말하는 아일랜드인은 영국을 증오하면서 동시에 유대인도 증오한다. 뭐 그렇다고…)

-그런 부류의 사람, 그러니까 저 너머 도더 강변 홍등가에서 처녀의 명예를 존중할 줄 모르고 군인들이나 천박한 남자들과 어울리면서 여성의 품격을 깎아내리다 경찰서로 끌려간 타락한 여성들을 혐오했다. (이런 장면과 사고 어디서 봤는데, 하고 겨우 생각해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47), ‘율리시스’는 1922년 2월 2일(조이스의 생일)에 출간되었다고 하니까 이런 생각은 최소 25년 이상 아 아니다 100년 이상 이어진다. 그들과 다른 우리라고 선 긋고 우아해지기)

-바로 그때 불꽃 하나가 귀가 멍멍하게 뻥 소리를 내며 솟구치는가 싶더니 오! 그때 원통 폭죽이 터지는데 마치 오! 하는 한숨소리 같고, 모두들 황홀감 속에 오! 오! 소리칠 때 폭죽이 한줄기 비 황금 머리칼 실들을 내뿜고 나서 그것들이 떨어지자 아! 그 모든 게 황금빛을 띠고 떨어지는 녹색 이슬 같은 별이 되니, 오 너무나 아름답고, 오, 부드럽고, 감미롭고, 부드러워라! (나보코프가 뭐라고 했나 봤더니 이 장 대부분을 통째로 클리셰라고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몹시 섬세하고 아름답다고 했다.)

-항상 어떤 친구의 약점은 그 마누라를 보면 안다. 그래도 사랑에 빠진다는 것, 그건 운명적이다. 자기들끼리만 아는 나름의 비밀을 갖고 있다. 누군가 여자가 돌봐주지 않으면 개차반이 될 작자들. (블룸은 대놓고 커플 혐오. 그런데 자기 혐오로는 생각 안 하나 보다.)

-내게는 긴 하루였네. 마사, 목욕, 장례식, 열쇠의 집, 그 여신 조각상들이 있는 박물관, 데덜러스의 노래. 그다음엔 바니 키어넌에서 고함치던 그놈. (1권 줄거리 버전1.)

-오 내 사랑 그대의 아담하고 흰 처녀 살을 나는 죄다 올려다보았네 야한 가죽띠 거들 땜에 난 끈적끈적한 사랑을 했네 못된 우리 둘 그레이스 달링 몰리는 삼십분에 그놈과 침대에서 멧 힘 파이크 호시스 라울 아무개를 위한 주름 속옷 선생님 부인 향수 검은 머리 풍만한 살 아래서 끙끙아가씨 젊은 눈 멀비 통통한 젊은이들 나를 제과점차 윙클 빨간 슬리퍼를 아내가 설친 잠 방황 수년에 걸친 꿈이 돌아온다 꼬리 끝 아겐다스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가 자기 걸 내게 보여줘 내년에 팬티 차림으로 돌아와 다음에 자신의 다음에 자신의 다음. (1권 줄거리 버전2.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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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안 예쁘면서 책 구매와 연동성 더 떨어지는 SNS로 변신한 것 같다.

1. 기존 서적 이미지 옆에 i를 누르면 상품 상세 페이지와 연결되어 책 정보도 보고 장바구니에 담고 모여 있는 100자평이나 리뷰도 모바일 버전으로 볼 수 있었는데 이제 어느 걸 눌러봐도 읽고 싶어요 말고는 구매를 위해 담을 곳을 못 찾겠다. (이게 북플만 이렇게 됐고 알라딘 앱에서는 i가 남아 있다.)

2. 마니아 제도는 날아간 것인가! 읽었어요 눌러보면 몇 번째 마니아 그렇게 책에 대한 글을 많이 쓰거나 구매를 많이 하면 올라가는 게(누군가 알고리즘을 약간 분석하기도 했다) 있었다. 그런데 이제 책을 눌러도, 내 프로필을 눌러도 마니아가 없다... 나름 누구누구 작가의 높은 순위의 마니아야...또 이 작가 읽은 유저 누구 있나 이렇게 둘러보기 좋았는데 못 찾겠다. (아 이것도 알라딘 앱에서 북플로 들어가면 남아 있어...)

알라딘은 1)pc버전 블로그(카테고리까지 상세히), 2)모바일형 미니멀한 서재(글 목록만 보이고 심지어 대댓글도 못 달았던. 지금도 그런가?), 3)SNS형 피드로 보는 북플 이렇게 세 개 이상 운영하는게 오 엄청 비효율, 그러면서도 각자 연동되는 게 또 나름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연동성이나 책 정보까지의 접근성이 오히려 점점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전 그렇다구요... 다른 이웃분들은 어떠실지.... 아직 이것저것 고치는 중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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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6-08-30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전체적으로 업데이트 중이라 한동안 기존에 있던 기능들이 안보일 거라는 글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제가 잘못 봤거나 아닐 수도 있어서 단정적으로 말씀은 못드리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서 글 남겨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6-08-30 14:52   좋아요 1 | URL
아직 갈아 엎는 중이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수 2026-08-30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리둥절해하다가..북플앱에선 없고 알라딘앱으로->북플 가자니 그럼 북플앱 깔필요가 없는데 싶어요

반유행열반인 2026-08-30 14:53   좋아요 1 | URL
참 안 예쁘고 알라딘앱엔 독보적이 없다는 점이 차이점일까요ㅋㅋㅋ반갑다 유수님

유수 2026-08-30 19:12   좋아요 1 | URL
저도..!

막시무스 2026-08-30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첨엔 좀 아쉬워 했어요! 말씀하신게 북플이나 알라딘의 매력이었는데! 좀 기다리면 될꺼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ㅎ
즐건 휴일되시구요!ㅎ

반유행열반인 2026-08-30 14:53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알아서 잘 마무리들 해 주시겠죠. 늘 건강하시길!

잉크냄새 2026-08-30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북플과 알라딘앱이 별도로 존재했군요. 요즘 북플 관련 글을 보면서도 뭐가 달라졌다는거지 했더니... 궁금증 하나 풀렸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6-08-30 14:54   좋아요 1 | URL
북플, 알라딘, 알라딘ebook(만권당), 투비컨티뉴드 등 온갖 것이 있는 걸로 알고 있사와요...
 
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20260829 저자: 김봉곤. 재독.

몇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이제 이 여름 끄트머리에 이 소설을 다시 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저 여기 있어요!

첫 읽기는 8년 전 전자책으로, 이번에는 친구가 읽던 걸 물려 받아 종이책으로 읽는다. 설렜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며 설렜던 것이 얼마만인가.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문장이지만 화자도 설레보였다. 재기발랄한 소설가를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독자들은 잃었다. 잊었다. 박현욱 소설책 작가의 말에서 소설가는 편집자로서 아직 책을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읽으면서, 여전히 소설가이면 좋겠다. 펴내건 아니건 일단 쓰고 있으면 운 좋으면 또 닿겠지.
문장 하나하나 만날 때마다 놀랐다. 이 소설이 이번 달에 나온 것이라면 좋았겠다. 그렇더라도 그때만큼 화제가 될지는 몰라도, 나는 새로운 작가를 만났어, 하고 어디 이야기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멈추는데 사실 내가 뭐에 씌여서 이런 걸 수도, 남들은 안 그럴 수도 있다.
플래그 스티커가 군데군데 문장들을 가리키고 있어서 나랑 다른 밑줄을 구경하는 재미까지 챙겼다.

작가의 두 소설집은 청년기의 (어쩌면 마지막) 불꽃 같은게 펑펑 터지는 것처럼 읽혔다. 이 젊었던 이는 나이 먹음을 어떻게 문장에 섞었을지 궁금하다. 나만 그러냐.

이 소설집의 첫 소설 ‘컬리지 포크’를 읽었을 때, 화자가 교환학생으로 간 곳이 교토의 예술학교라서 설렘을 넘어 반가웠다. 나도 갈 거야 교토… 오래된 것이 아직 남은 큰 도시가 넌 20세기 사람이었단다, 하고 알려줄런지. 앙증맞은 문장들이 넘쳐서 초반부터 밑줄을 벅벅 긋고 싶은 걸 참았다.

이번 읽기는 망한 사랑보다 망하기 전의 사랑에 더 눈길이 갔다. 그게 왜 이렇게 생생할까 나는 왜 같이 두근거릴까 나는 왜 게이한테 공감하고 있을까 아무렴 어때 하고 장면과 문장을 즐겼다.

‘여름, 스피드’. 소설에다 쓰고 나락갈래 안 쓰고 버틸래 하면 나는 안 쓸게, 하는 거 보니 소설에 대한 사랑이 많이 식었다. 그냥 인정 욕구나 인생 건 어그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몰라. 화이팅.

‘디스코 멜랑콜리아’에서 남산과 힐튼 호텔이 잠시 등장하는데, 그 호텔 이제 없다. 있었다는 것만 알지, 그 둘레길만 지나가봤지, 가 본 적은 없는데도 책에만 남은 장소는 아쉽다. 책에나마 남았다.

‘라스트 러브 송’을 읽을 땐 헤어진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지, 그러면서 어정쩡한 기분을 애도하는 상황을 상상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은 헤어진 사람과 다름 없지 않지, 아닌가 다른가 안 다른가, 어쨌거나 양쪽 다 최대한 나중에 느끼고 싶은 기분이다.

‘밝은 방’은 이전 읽기 땐 정신 없고 뭔말 하는 거야 싶었는데, 율리시스를 1/3쯤 읽고 왔더니(박상륭 전집도 2/3, 또 또 더 충분히 재미없는 것들 두꺼운 것들) 충분히 너그러워져서 후후 이 정도는 ㅈ밥이지, 어디 더 정신 없어져 봐라, 더 해 봐, 더 해 봐.

마지막으로 읽은 중편은 음, 아니 에르노 게이 버전(이렇게 미리 쓰고 계속 읽었더니 아니 에르노가, 아니 그 사람 소설 이름-내가 안 읽은-이 등장한다). 이런 걸 써야 신춘문예에 당선되는구나. 되었었구나. 오토픽션의 윤리에 대해서 걱정하며 써야 하는 나라/시대/판이 되었으니 이젠 아닐 수도 있겠다. 나는 그냥 인간 관계를 잘 못 간수하면 사달이 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아니 문학을 하려면, 연애를 하려면 프랑스에서 태어났어야 해. 아무렴 더 해 봐.

힘들게 쓴 글은 힘들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뭐 이제는 읽는 건 힘들지 말아야지, 그냥 후려갈긴 걸 수도 있어, 하고 여유를 부린다. 어쩜 그땐 이 걸쭉한 사랑 타령을 읽을 준비가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간 700권이 넘는 책이 스쳐갔고, 사람도 시간도 장면도 장소도 그랬다. 오토픽션 까는 듯한 소리하다가 내가 쓰는 독후감을 보니 아, 결국 나도 비슷한 짓을 하고 있네? 하면 어딜 감히,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르겠다. 말은 이렇게 했는데 사실 휴일 하루를 할애해 이 소설집과 ‘Auto‘를 지금 나만큼 진지하게 읽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지도. (작가 본인 제외. 심지어 작가 본인마저 오래 안 읽었을 가능성이 높을까.)

오늘 아침에는 몇 주 만에 드립 커피를 두 잔 분량 정도 마셨기 때문에 이 읽기가 충분히 올려치기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 책 읽을 때마다 그렇게 되냐고. 그냥 좋은 건 좋다고 말해요. 책을 회수하고 전자책에서 글자들을 지우고 분서갱유 난리를 부려도 나한테는 2018년, 2020년의 그 책들이 있어서 내키면 읽을 수 있다. 읽어도 된다. 생생한 기분과 감정까지 베껴온 건 아닐 거잖아.


+밑줄 긋기
-어쩌면 나는 젖떼기와 애도 그 모두에 실패한 것일지도 몰랐다. (17, ‘컬리지 포크’ 중. 연애의 끝은 평생 어려워서 막 60, 70대도 치정 살인하고 그러잖아…)

--책을 만든다.
-소설을 읽고 쓴다.
딱 두 줄. 명료했다. (18, 정말, 간결한 다짐인데. 아직도 하고 있나요? ‘읽힌다’는 자신의 몫이 아니니까)

-“(…)하지면 현실과 글쓰기, 현실과 환상, 현실과 자신의 소설이 뒤섞여 직조되는 소설은 언제든 유효합니다.”라고 그는 말해주었다. (20, 나도 그 말을 받아 적었다. 그러고나서 끄트머리를 읽으며 작가는 유효하고 싶었네, 영리하지만 밥맛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호의 제국’은 어렵게 구한 책이라고 형섭이 말했지만 감사 인사도 잊은 채 손때가 묻고 가장자리가 구겨진 그 책을 안고 나는 으흐흐흐 하다가 베란다로 뛰쳐나가 도시를 내려다보며 또 으흐흐흐 웃었다. 건물은 낮고 나무는 높아! 감탄하면서. (23, 화자의 연애 감정과 교토의 낮은 스카이라인에 대한 애정도 섞여 있겠지만, 뭔가 책변태들은 그럴만 하지 할 장면 아닌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누군가를 위협하는 것도 너무나 손쉬웠다. 손쉬운 만큼 너무 위험했다. 그리고 그도 나도 터무니없이 나약했다. (30, 게이 혐오 테러를 발견하고 놀란 가슴, 나까지 덩달아 놀라 내 몸은 문장을 기억하지만 서사는 대체로 잊었구나 다행이다 재밌겠다 하는 마음과 장면의 불편함이 뒤섞였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꼭 글을 쓰는 사람만을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뒤늦게 찾아왔다. 그러나 편집자든 작가든 좋은 독자여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란 말은 생각해볼 거리가 있었다. 그는 편집은 꽃다발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 말했다. (41,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무식하고 무례했던 나에게 에하라 선생님이랑 화자 둘이서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시네.)

-사실 나는 언젠가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좋은 걸 가지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그건 내것이 아니라고.(61-62, ‘여름, 스피드’ 중. 지금보면 소름 돋지만 설마 본인이 일부러 지뢰를 묻어두진 않았겠지...설마?! 소설 쓰랬지 누가 소설 살래)

-아는 척과 모르는 척. 둘 중에 무엇이 날 망쳐왔는지 모르겠다. (100, ‘디스코 멜랑콜리아’ 중. 나는 압도적으로 앞의 쪽)

-췌사:쓸데 없이 덧붙인 군더더기 말(129, 2018년에도 찾아봤는데 독후감을 돌아보니 체사(오타냄), 란 말도 알게 된 사실만 적어 놓고 뜻은 안 적어놔서 다시 찾아봤다. 그외에 는개, 조크스트랩, 카멜토 같은 건 어렴풋이 기억은 나는데 안 나도 좋을 것들…)

-한편, “불행한 삶을 사는 대신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갖길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하는 문학 선생님의 말에 망설임 없이 손을 번쩍 들었던 예전의 나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208, 뛰어남을 얻지 못하는 대신 행복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손, 이미 원하는 걸 가졌으니 뛰어남도 하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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