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260629 저자: 배수아.


쿠팡 구독 한 달 하고 해지해서 오늘이 쿠팡 플레이를 볼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특별휴가(그런 걸 받았다)가 끝나가는 오후, 시즌5의 후반부와 시즌6을 아직 다 보지 못했다. 2배속으로 시즌6 초반부까지 달려왔을 때, 어후 갑자기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가 지겨워졌다.

조금 읽다 만 책을 펼쳤다. 내가 비교적 최근에 나온 배수아 작가의 책에서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면, 조금 더 옛날로 가 보면 알아들을 말이 조금 있을까 했다. 이 소설은 2000년도에 나왔다. 26년이란 시간은 어마무시하다. 영원히 삼십 대에 머물러 있지는 못하므로, 요즘의 연애 없고 혼인 안 한 젊은이들의 삶은 짐작도 못하겠다.

이 책과 보던 드라마의 시기가 크게 차이나지 않아서 그런지, 뉴욕의 네 친구들과 한국 대도시의 다섯 친구들의 모임이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다만 뉴욕 친구들은 연애도, 섹스도, 직업에서의 성공도, 밤에 나가서 신나게 노는 것도 갈망한다. 한국 친구들은 함께 모이기는 하지만 다른 친구가 없을 때는 험담도 하고, 스스로 혼인하지 않음을 선택했는데 막상 먼저 결혼 발표를 한 친구 앞에서는 네가 손해 보는 거다, 말하면서 은근한 질투를 느낀다.

1인칭 화자인 유경은 자신의 원가족을 혐오한다. 그나마 사촌인 금성과 마음을 트고 지낸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 다닐 때까지 사귄 교진(오빠의 과외 선생이었음)을 우연히 마주치고는 또다시 보고 싶어 한다. 직장상사인 유부남 아저씨 길이란 인물과 술김에 자긴 했지만, 그에게 관심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막상 길이 유경에게 자신의 파트너가 되라고 강요할 때는 거절한다. 욕 박고 차단, 직장이라 그런 게 안 되나? 요즘 같으면 거절 이후에도 계속 들이대는 것은 직장내 성폭력, 괴롭힘, 스토킹 이런 게 되지 않나. 한 두 번 얽었다고 마치 자기 소유물인양 집착하고 거절당하자 얼굴에 물을 뿌려대고 화를 내는 길 아저씨 새끼가 정말 징그러웠다. 그런데 유경은 자신은 탈연애주의니까, 같이 자는데 지장 없고 연애 감정 느낄 필요도 없는 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론을 내린다.
내가 뭘 본 걸까. 주체성의 결론이 왜 그렇게 가는지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는 그저 속물성을 가진 인간상들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사랑이란 현상도 관념도 믿지 않고, 사람에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애초에 기대를 걸지 않고, 딜도를 선물하는 사촌에게 섹스하자는 말도 하고, 그래도 잘 남자는 필요하니까 연애 없이 끌리는 남자랑 하긴 할래, 그러는 화자의 모습이 뭐랄까...안타까웠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결정에 대해서는 그 이유든 뭐든 그럴 수 있지, 했는데 연애로 규정짓는 행위도 안 하겠어, 하는 건 뭐 본인의 선택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삶과 사람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래도 수의사가 되겠다고 공부 열심히 하는 건 대단하긴 했다. 2000년도에는 회사 다니면서 야간 대학 편입해서 수의사 되는 게 가능했던 시대였던가… 암튼 모두가 좋은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유경아, 사랑을 믿어봐, 라고 할 자신은 없었다.

책이 나오던 시기에는 미성년이었기 때문에 그때의 언니 오빠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길은 없다. 소설에 그런 흔적이 남아 있을까, 싶었지만 사람 사는 거 특별히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제목이 궁금하게 해서 읽게 되었는데, 그 제목이 소설 속 문장으로 놓인 부분은 감흥이 없었다. 심지어 지겹다면서 “그와 관계를 갖기로 마음을 정리했어.”하고 다짐까지 하는 걸 보면서 그냥 어질어질했다. 배수아 책은 이거 말고도 더 사 둔 게 있는 것 같은데 어쩌지.

+밑줄 긋기
-조직이란 잘 체계화된 폭력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서 결혼을 하지 않으면 섹스를 할 수 없고 아이를 낳을 수 없고 가족수당을 타지 못하며 주변에 돌봐줄 사람이 하나도 없을 말년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채 느끼지 못하는 극심한 폭력이다.
사람들은 남자/여자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먹이와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서 일한다. (71,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의 결혼관은 이렇다고 한다. 이 중 첫문장만 마음에 든다.)

-그 아이는 원래 노동이란 걸 혐오했다. 노동이란 파출부나 가난한 집 딸이나 그리고 가끔은 엄마 같은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노동은 손에 굳은살이 배기게 하고 마사지를 받으러 다닐 시간이 없게 만들고 스트레스 때문에 히스테리가 되기 쉽다.(…) 미경은 내가 알기로 한 번도 직업을 가진 적이 없다. (119, 노동 혐오는 너무 나갔지만, 노동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내 자신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 유경, 이겨내라, 이겨내! 세상 사람들의 온갖 달콤한 혓바닥에 속아서 자신을 내주지 마라. 기억하라. 너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너뿐이다. 모든 관계는 허울이다. 기댈 생각은 하지 마라.(129, 곁에 아무도 없었다면 나도 저렇게 마음 먹었을 것이다. 주체성에 대한 집착.)

-기억 아득한 젊은 날 나는 그를 사모했다. 지금껏 내가 경험한 또 다른 가장 고독한 것이었다. (131, 어제 읽은 책도 사랑하면 고독하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정형화된 역사에 익숙해져서 다른 형태의 진술을 해석하지 못한다. 아니 다른 형태의 진술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 역시 교진과 나에 대해서 지금 말하게 되었을 때 그 우화의 정형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말이란 도처에 함정이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지키는 길은 단지 침묵뿐이다. (135, 나도 틀에 박힌 독후감 말고 다른 걸 써 봐야 하는 걸까.)

-지금 잘생기고 돈 많은 미혼 남자를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별 볼일 없고 지지부진한 노예 상태로 사는 것이 결혼이지만, 그래도 자연도 하는데 내가 한 번의 경험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172)

-나는 앞으로의 인생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행운이나 성공도 없지만 치명적인 파국이나 불이익을 겪지 않고 진행될 것으로 믿는다. 그 대신 한 발 한 발 앞으로 가는 거다. (188, 이정도면 엄청 낙관주의 같은데)

-지금 당장 나에게도 꿈이 있다. 탈한국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프라이드도 아니다. 바로 웨이터가 서 있는 저 문으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다. 근사하게 옷을 차려입고 있는 척하는 계급의 그런 사람이. 상대편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거드름과 자신이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존재라는 오만한 관용으로 뭉친 사람이. 그리고 나를 쳐다본다. 헤게모니의 승자가 된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고.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에게 아주 쿨하게 말해 주는 것이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하고. (207-208, 빌드업이 길었는데 한 마디 해주는 게 너무 약했다… 자본주의의 발기 부전 돼지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이 앞으로 나가지 않을 때는 무한급수와 확률 분포 같은 문제를 풀었다.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면 인생의 추상적인 문제들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218-219, 작가의 말 중, 오우 진심이신가요? 저에게는 적어도 수학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논리적 해석이 안 되는 걸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가의 연인들 -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
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60628 읽다 중단. 저자:박수현

ㅎ은 댓글을 주고 받다 우연히 이어진 어느 시절의 친구였다. 내 독후감에 형광펜을 긋듯 마음에 닿는 구절을 짚어주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이런 허접한 글에서 무언가를 건져가는 게 고맙고, 부끄럽고, 신기했다.
그 무렵 내가 쓴 단편소설을 봐 주는 친구가 둘 있었다. ㅎ는 세 번째 독자가 되어 주었다. 조금 더 다듬으면 좋게 될 거라고 주로 칭찬을 많이 해줬다. 댓글로 말장난을 하며 서로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나눠 가졌다.
아직 나는 ㅎ의 동생 이름이 기억난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ㅎ을 실제로 본 날도.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만나서 멕시칸 음식을 먹었다. 커피도 마셨다. 살던 집앞에 같이 가보기도 했다. ㅎ이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면서 어떤 예술인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열정을 보였을 때 나는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ㅎ를 보았다.
ㅎ은 내 풀어진 신발끈을 묶어주려고 했다. 나는 정색을 하며 아직 신발끈 묶어준 남자 한 명 없는데, 여자한테 맡기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ㅎ과 나는 개천변을 따라 걸었다. 지하철 역까지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들은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ㅎ의 얼굴도 하루 만에 장기 기억에 남기기란 쉽지 않았다. 그냥 그날의 분위기, 방문했던 장소들,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댓글들 정도가 ㅎ의 흔적이다. 나는 공부를 한답시고 독서와 독후감에 소홀했고, ㅎ도 어느 순간 방문이 뜸해지다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서가의 연인들’은 ㅎ이 언젠가 읽는 중이라고 언급해서 마련해 둔 책이었다. 소설들을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론에 맞추어 해석하고 있었다. 첫 꼭지가 ‘백년의 고독’이라, 내가 여러 번 읽는 책은 흔치 않은데, 내 인생책 중 하나를 저자는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했다.
일단 프롤로그에서부터 막혔다. 문장의 장식이 내가 소화할 수준이 아니었다. 격하고 감정적이랄까. 그리고 ‘백년의 고독’ 속 사랑에 대한 관점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그런데 난 반댈세, 근친상간의 맥락을 쏙 빼놓고 두 사람의 사랑을 전투와 공격성으로 눙칠 수 있는가?
그리고 소설을 읽은 나는 등장인물들과 가계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그나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 이 책을 펼친다면 인물이나 서사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대체 누구네 무슨 얘기냐 하고 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남은 부분 중에 내가 읽은 소설을 다룬 글들만 골라 보기로 했다. 역시나 다회독한 인생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한강의 ’채식주의자‘ 두 가지만 남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었던(지금은 소설을 사랑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변주곡 같은 구성이 일품인 이 소설을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과 질투만 쏙 빼와서 줄거리를 소개하는 게 그야말로 이 서사를 뻔하게 전달하는 듯해서 탐탁치 않았다. 사비나를 ‘토마시의 분신’이라 일컫는 것도 놀랄 만한 해석이었다. 둘은 모노아모리가 아니라는 것 말고는 향하는 방향도, 사랑하는 방식도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를 다룬 부분은 그 징글징글한 형부의 관점에서 욕망도 사랑에 포함시키며, 영혜와 인혜보다는 형부 이야기가 대부분을 이룬다. 이렇게 읽는 게 참신한 시각일 수도 있지만, 시각에다가 작품을 끼워 맞춘 듯보였다. 일단 그 형부의 역겨운 욕망에 이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라캉까지 들이미는 게 별로다 못해 충격이었다.

부제에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 이라고 적혀 있지만, 이 책이 다루는 사랑의 범위는 독점적 이성애로 아주 좁았다. 그 사랑에 관한 틀마저 매우 주관적으로 여겨졌다. 모든 관계를 그런 틀에다가 맞추어 설명하고 해석하다 보니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굳이 꾸역꾸역 읽지 않고 놓아주기로 했다.

목차에 읽은 책이 겨우 세 권. 세상에 책은 너무도 많고 내가 본 건 티끌 수준도 안 된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렇게나 저자와 독해의 방식이 어긋나 본 적은 처음이었다. 사실 책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모두의 독서는 저마다의 오독이고, 책은 그럴 수 밖에 없도록 세상에 던져진 것이다.

ㅎ이 나와 내 글을 아껴준 만큼 나는 되돌려주지 못했었다. 심지어 ㅎ이 인상깊게 읽었던 책마저 몇 년 만에 읽고는 까 까 까 안 봐를 시전하고 있다. ㅎ와 나는 서로를 오독해서 어느 시절 이야기를 나눴고, 그때는 옛날이 되었다. 나는 또다른 친구들과 또다른 오독을 나누며 살아간다. 지금의 내가 만약 ㅎ이 내 앞에 신발끈이 풀린 채 있다면, ‘도와줄까요?’ 묻고 고개를 끄덕이면 신발을 묶어줄 것 같다. 내가 받은 관심과 칭찬도 어떤 사랑이었을텐데. 그걸 받기만 하고 우리는 멀어졌다. 그렇지만 가끔 나는 ㅎ를 생각한다.

+밑줄 긋기
-결핍을 발견하면서, 그는 이전에 몰랐던 제 고독을 깨닫는다. 나는 이토록 헛헛한 못난이, 빈 곳 투성이었구나. 사랑에 빠지기 전에 그럭저럭 온전해 보였던 그는 갈망과 결핍을 겪은 이후 치명적으로 부족해진다. 구멍이 뚫린다. 불구가 된다. (28, 어떤 사랑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다를 것 같아서 선뜻 공감이 안 간다...는 나는 이 방향으로 흐른 건 ‘망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 순간 닥치는 행복은 ‘원래 없어야 하는 것’인 데다 ‘예상을 벗어난 낯선 것’이므로 공포스러울 수 밖에 없다.(34, 대체 얼마나 불행한 삶만 이어왔길래…)

-오죽하면 롤랑 바르트는 “여자는 칩거자, 남자는 사냥꾼, 나그네이다. 여자는 충실하며(그녀는 기다린다), 남자는 나돌아 다닌다(항해를 하거나 바람을 피운다).”라고 말했겠는가. (192-193, 뒤에서 상투적 정황이라고 가리키긴 하지만, 여자 남자를 저렇게 단정해 둘로 나눈 말을 인용한 게 맞나 싶었다. 심지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끼워 맞추기에도, 사비나나 프란츠 같은 주요 등장인물을 보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반대로 여성은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어도 단 한 명의 아이만 낳는다.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202, 진화심리학을 빌려와서 이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다수와의 성관계를 통해 가장 강한 유전자를 얻으려는 전략-내용을 읽은 적이 없어서 이 단정적인 말에 빼애액 하고 말았다.)

-알몸이란 타인에 관한 지식의 마지막 보루다. 사람들은 알몸을 보면 그를 다 알았다고 생각한다.(206, 사람들은, 에서 나는 빼 줄래? 아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섬
김한민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60628 저자: 김한민.



이 책은 어쩌다가 내게 왔고 내 책꽂이에서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렸다. 나이 든 저자와 눈이 안 보이는 어린 독자가 삽질을 하면서 책을 만들어 놓고 하염 없이 읽어주길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낚시 비슷하다.

그림책 같기도 시집 같기도 한 책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몇 달 전에 아이에게 읽어준 ‘꽃들에게 희망을’이 생각났다. 책 말고도 한참 고민하고 부딪힌 문제와 씨름하고 공들여 만든 걸 남들이 발견해주길, 하고 바라게 되는 일은 많은 것 같다.

한 번 시작된 이야기를 마무리 짓긴 어렵고, 마무리 지을 만큼 나아가기도 쉽지 않다. 애초에 뭘 쓸지 찾기도 떠오르기도 녹록치 않다. 그냥 어느 날 이거 써야지, 하고 파박 찾아오길 기다리는 거지.
책은 아니지만 아무말이나 쓰고 싶어서, 난 책섬들을 떠도는 여행자가 되었고, 다음에 같은 책섬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은 안 될 여행일기 같은 걸 계속 만들고 있다. 놀러 가서 사진을 듬뿍 찍어오는 사람들처럼, 그런데 누가 보면 좋고 아니더라도 나중의 내가 아, 거기 갔었지, 그런 곳이고 그런 느낌이었군, 하고 떠오를 정도만 남겨두면 충분하다.


+밑줄 긋기
-책은 오솔길
문장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걸려 넘어지는 문장이 있어.

그 문장 앞에서 넌 작아지지. (81, 그렇게 걸리는 문장들은 일단 주섬주섬 모아 놓는다.)

-이 결투는 처음부터 불리한 게임.

쓰지 말 이유는 수만 가진데,
써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98-99, 쓰기는 왜 쓰는지를 찾아가는 여정 아닐까)

-책은 만든 사람 게 아니니까.(134-1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례기 - 창비장편소설
방영웅 지음 / 창비 / 199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260627 저자: 방영웅.


어려서 텔레비전에서 ‘분례기’ 드라마를 봤던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 아이들 볼만한 수위는 아니었다. 그래도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고, 나무 하러 간 분례가 강간 당하고, 노름쟁이 남편에게 폭행 당하고, 미쳐버려 옥화처럼 보퉁이를 든 채 어딘가로 떠나는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책으로 다시 읽어보니 그때 드라마를 꼼꼼하게 다 봤던 모양이다. 찾아보니 드라마가 방영된 시기가 1992년, 국민학교 2학년때인데 그 어린애가 보기엔 좀 충격이었을 것 같다.
1997년에 창비에서 나온 초판을 중고로 샀는데 책이 때도 타고 세게 찍힌 자국도 있고 책장 사이에서 정체 불명의 터럭도 나왔다. 그런데 이야기 결이랑 책 모양새랑 어울렸다. 이야기 속 남자들은 죄 개보다 못한 새끼들이고 여자들은 다양하게 고생을 하다가 죽거나 미쳤다.
슬프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하고 허구래도 이런 삶을 산 여자들이 있었대면 미치고 팔짝 뛰겠고 그런데 문장은 또 예쁘게 잘 깎아놔서 재미있었다. 똥 위에서 태어나 평생 똥례라 불리며 살아갈수록 점점 불행으로 흘러드는 삶인데, 그걸 보고 재미있으니 좀 미안하다. 책을 읽으면서 30년도 더 전에 본 드라마가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건 이야기의 힘이겠다.

+밑줄 긋기
-도대체 저것들은 무슨 새일까? 섬삼새, 콩새, 고지새, 방울새, 장박새, 되새, 멧새, 촉새, 무당새, 쑥새…...? (28, 나도 늘 새 이름이 궁금한데 생김새 분간을 잘 못하겠다.)

-찔레는 똥례에게 말한다.
얘, 뭘 죽니. 죽지 마.
찔레가 이렇게 속삭이자 그 주위에 있던 솜나무, 얼레지, 인동, 으름, 놋동이, 때죽나무, 오리나무, 청미래, 가막살나무, 세잎양지, 개서나무, 매자나무, 층층나무, 대사초, 고로쇠나무 등이 덩달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찔레 말이 옳어. 죽긴 왜 죽니, 이팔청춘에…(120, 나무 이름은 익어도 나무의 모습이 어떤지 떠올릴 줄 모른다. 새도 나무도 잘 모르고, 모른다고만 하고 게으르다.)

-“지난 겨울에 졌던 꽃이 지금 또다시 폈잖어. 그러니께…”
똥례는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차린다. (122, 연쇄 강간범 용팔이가 똥례한테 건넨 말인데 그냥 확 용팔이놈은 가새바위에서 떠밀어버리고 싶다.)

-“돈 있다고 그런 디다 쓰면 어떡해유. 그러니께 우리가 이렇게 못산다 말유.”(170, 우동 사 먹고 밥집에서 옷 갈아입고 시집 가라는 걸 분례는 굳이 상엿집 안에서 갈아입고 가겠다고 한다. 남들 눈에 띌 새라 몰래 n번째 부인 되러 가는 길이 서러운 줄도 모른다.)

-봄이 되어 그런지 기운이 하나도 없다. 아니 답답하다. 방안은 똥이 가득 찬 똥독 같은 생각이 들고 누가 똥바가지로 똥독 속에 든 자신을 꾹 누르는 것 같다. (197, 평생 똥이라 불려온 여자가 기분마저 똥통 빠진 것 같다니 슬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개의 뇌 - 뇌의 새로운 이해 그리고 인류와 기계 지능의 미래
제프 호킨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이데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60624 저자: 제프 호킨스.


책을 쓴 사람은 신경과학자이면서 컴퓨터 공학자이다. 뇌에 대해 뭔가를 알고 싶다면 1부로 족하다. 2부의 인공지능에 대한 생각은 책이 나온 2021년에조차 유효했을지 의문이다. 한계가 많고 범용성이 떨어진다며 그 발전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던 AI는 생각보다 똑똑하고 학습을 잘하고 문제해결능력도 우수해졌다. 3부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주로 저자의 자유로운 상상이다. 책 초반의 뇌 이론마저 저자가 속한 연구팀의 가설이 대부분이고 이게 검증되고 통설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이 책을 잘 못 알아들으면서도 읽고, 이 글에 여러 단어를 동원하고 자판을 눌러 글자가 새겨지는데에는, 뇌의 움직임과 뇌의 명령을 받은 몸의 움직임과 세상을 지각하는 뇌의 감각과 과거의 지식 같은게 마구 동원되었을 것이다. 뇌의 작용을 다른 신체활동과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부위들의 움직임의 모임, 새로운 틀 짓기 같은 것으로(내가 제대로 봤다면) 표현한 게 흥미로웠다. 나머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그런 기대는 확률이 낮은, 이런 상상들은 그닥 내 뇌가 움직이는데 도움이 못됐다. 뇌에 관해 꼭 읽어보라거나 많은 걸 알려준다고는 못 하겠다. 그냥 이런 의견도 이런 상상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읽히는, 그러나 앞머리 이론 설명 덕에 결코 만만하게 쉽게 읽히지는 않는 책이었다.

+밑줄 긋기
-만약 우주가 존재했다가 사라졌는데, 그것을 아는 뇌가 하나도 없었다면, 우주는 실제로 존재한 것일까?(33)
만약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348, 책의 시작과 마무리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지며 지능이란 무엇인지 저자의 생각을 전개한다.)

-이것을 나타내는 용어가 바로 감각-운동 학습이다. 다시 말해, 뇌는 우리가 움직일 때 우리의 감각 입력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함으로써 세계모형을 배운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노래를 배울 수 있는 이유는 집 안에서 우리가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니는 순서와 달리 노래의 음정 순서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에 존재하는 것 중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66-67)

-가지돌기 극파는 먼쪽 가지돌기에서 서로 인접한 시냅스 집단이 동시에 입력을 받을 때 일어나며, 이것은 그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의 활동 패턴을 알아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활동 패턴을 감지하면 가지돌기 극파가 발생하는데, 이 극파는 세포체의 전압을 높이면서 신경세포를 예측 상태로 돌입하게 한다. 이제 신경세포는 극파를 발화할준비가 되었다. (80, 신피질의 90퍼센트의 시냅스들은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되 충분히 자극하지는 못하는 가지돌기 극파를 통해 뇌가(사람이?) 예측을 하게 만든다.)

-정상적인 시각은 정적인 과정이 아니라 활동적인 감각-운동 과정이다. (141)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수천 개의 피질 기둥에 분산되어 있다. (149)

-신피질은 모형을 배우는 일을 멈추는 법이 없다. 주의를 옮길 때마다 어떤 것의 모형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된다. 모형이 일시적이건 오래 지속되는 것이건 학습 과정은 동일하다. (159, 뭔가 배움 종류마다 뇌 쓰임이 다를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은 감각-운동 영역과 계속 생성되는 틀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능 기계가 우리보다 더 빠르고 깊게 생각하고,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감지하고,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을 가는 날이 오면, 우리가 무엇을 배우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231)

-하지만 대다수 분야에서는 학습 속도가 세계와 물리적으로 상호 작용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제한된다. 따라서 기계가 갑자기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지능 폭발은 일어날 수 없다. (237,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초인적 지능 기계는 모든 종류의 비행기를 능숙하게 조종하고, 모든 종류의 기계를 다루고,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 또 세계 각국의 언어를 다 말하고, 전 세계 모든 문화의 역사를 알고, 모든 도시의 건축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이 집단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의 목록은 너무나도 길기 때문에, 어떤 기계도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237, 모두 까지는 아니라도 아주 다양하게는 가능한 범용 인공지능의 세계가 왔습니다 선생님…)

-나는 지능과 지식을 기반으로 한 후손의 가능성을 고려하라고 했고, 이 후손이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후손과 똑같이 가치 있는 존재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346, 인류의 유전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책의 구성
-1부-신피질이 작용하는 방식, 세계 모형을 방식을 설명하는 이론
-2부-오늘날(2021년 이전)의 AI는 진정한 지능이 있지 않다는 주장
-3부-지능과 뇌 이론을 바탕으로 보는 인간의 조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