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이반지하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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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3 이반지하.

프로 퀴어 정병러의 (우)수작 타령을 하다가, 사 놓고 안 본 이반지하 책을 읽기로 했다. 두 번째다. 첫 번째 책보다는 나 이제 덜 웃길 거야, 엄숙근엄진지, 그런 느낌으로다가 조금 묵지근해진 느낌이라 처음에는 아...두 번째 나온 책을 먼저 볼 걸 그랬나…그걸 안 사고 세 번째로 훅 넘어오는 건 트릴로지에서 2부는 원래 김빠지니까 제껴, 하고 맥락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건 아닐까, 배트맨 비긴즈 보고 다크나이트 안 보고 다크나이트 라이즈로 바로 가면 어...하는 그런 거인지는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를 안 봐서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웃기다는 첫 책이 마냥 웃기지 않아서 아마도 저 웃기다고 주장하는 두 번째 책은 한참 미뤄둘 것 같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읽고 생각보다 많이 이반지하선생에 관해 찾아본 것 같다. 일단 김하나 선생과 북토크 같은 걸 하면서 최대한 점잖은 사람의 상호작용 의례를 하려는 노력도 보고, 유튜브에서 편의점 알바 하는 일상을 공개하며 아빠가 이렇게 힘들게 벌어 먹고 살아, 비슷한 말을 브이로그에 담으며 덤덤한 체험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도 보았다. 동아리 방에 몇 년 묵은 교환일기인지 빵다이어리인지 이름 기억 안나는 기록장에 적힌 소8 이란 이름도 계속 어른거리고, 곁의 사람에게 ‘김소윤씨는 디스크가 터져서 수술을 받았대’ 해 봤자 스무살 무렵 스치듯 안녕한 동기의 건강사에 대해서는 그래? 하고 정치 뉴스만큼에도 관심을 안 갖는 뭐 그런 나만 혼자 쌓는 내적 친밀감… 팬심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나의 어떤 가능세계의 예술가의 삶 같은 걸로 어설픈 동일시를 하는구나 싶었다.

만6세 때 읽던 책부터, 만40세까지 쳐사모으는 책들을 꾸역꾸역 이고 지고 오느라 자꾸만 넓혀낸 공간과, 반지하에서 15층의 온 벽면이 책장인 공간으로 기어 올라오느라 정작 책 읽고 놀 시간에다 노동력과 정신력까지 섞어 갈아 화폐로 교환하고, 그걸 또 알라딘에 바치며 온갖 폐지로 교환하는 삶을 돌아보았다. 집게처럼 버리지도 못하고 지고 다니기도 힘든 자신의 작품들을 (하필이면 회화작가여서 캔버스를 놓을 곳도 없어서) 트렁크에서 꺼내지 못하는, 퀴어 문화제며 헤테로 결혼식 사회에 온갖 북토크까지 이런저런 행사 안 가리고 스스로의 삶을 지탱하느라 애쓰는 예술가를 보며 아...저것이 보헤미안...주렁주렁 달린 인간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알림장과 회신문에 사인을 하고 숙제나 시험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그래그래 적당히 살다 나중에 조금 힘든 노동하며 지내는 삶도 나쁜 건 아니지, 그런 속물적인 쁘띠부르주아지 행세하는 내가 되어 버린 오늘을 괜히 부끄러워하면서…

돌출된 디스크가 더 망가지지 말라고 9900원에 산 8킬로그램짜리 쇳덩이 케틀벨로 데드리프트 흉내를 내면서 아휴, 난 수술할 만큼 심해지지 않은 게 어디냐, 혈전 막혀 퉁퉁 붓던 다리에 하지정맥류까지 돋을 기미가 보이니 이런저런 압박스타킹을 수집하면서 서서 일하는 사람의 필수템이지, 거기에다 걸칠 파격 할인하는 옷가지 나부랭이들을 장롱에 치덕치덕 쌓고 신발장에 자리가 없어 한숨쉬며 신발들을 포개어 놓는 나는, 책을 읽으며 내심 예술 안 하길 잘했다...커밍아웃 할 일 없어 다행이네...하는 치졸한 내가 자꾸 고개를 디밀어서 꼴밤을 백 대 쯤 먹여주고 싶었다.

+밑줄 긋기
-어디로 갈 것인가,
가 아니라 속한 곳에서 도망치는 것이, 멀리멀리 달아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감각.
뛰지 않고 있어도 바람이 옆머리를 흩뜨리며 마음의 정면으로 휭휭 불어닥치는.
향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다.
이따금 다시 붙잡혀 올 것을 알면서. (10)

-그런데 그렇게 딱딱 맞춰서 이 단추를 저 구멍에만 끼울 거라면 이 세상에 간지와 멋이랄지, 인간성 같은 건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하지만 나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인간으로 존재하길 포기했다. 교복 속을 살뜰히 채운 충전재로서 죽음 같은 10대를 살아냈다. (53)

-나는 어느덧 쑥쑥 자라, 벗을 건지 입을 건지를 넘들 앞에서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비로소 사회에서 이 정도의 자유는 허락없이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 사회에서 이만큼 늙어내지 못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55)

-호텔이 만드는 쾌적함이 노동의 산물인 것은 모를 수 없이 당연했으나 그걸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어떤 노동이 있다는 것은 감각되지 않아야 쾌적했다. 하지만 그 노동이 되는 기분은 어땠더라. (118)

-이 사회에서는 비로소 어떤 쓸모가 완전히 박탈당한 후에야 소위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36)

-그것 말고도 다채로운 폭력이 정말 많은데, 강간은 왜 그토록 매력적인 장치인가. 강간은 왜 이리 예술 서사에서 뛰어난 기능을 갖고 있나. 무대 위 강간에 대해선 으레 관객 모두가 어마어마한 피해라고 그 폭력성을 단번에 수긍하기 때문일까. 현실 강간은 그게 범죄이고 피해라는 걸 인정받기까지 여전히 너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갖고 중립 얘기를 하시는데, 예술로 넘어가면 갑자기 모두가 저것은 진짜! 고난이고 진짜! 고통이라는 데에 쉬이 동의하는 것 같다. 강간은 인생을 망쳐버린다고!
내 경험에 따르면 인생을 분명 망치기는 하는데, 글쎄 뭐랄까, 사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그런 거다. 그렇게 처음부터 동등한 입장에서 만져지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그렇게 동등하게 만져진 사람이 몇이나 되려나. 한국에서 평생을 살면 아주 어릴 때부터 남녀노소에게 강제로 만짐당하게 되는 것이고, 그건 나이가 들어서도 매한가지다.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그런 일이 후루룩 생긴다. (326)

-그러니까 나는 이제 저런 사람들이 된 것이다. 누군가를 보필하고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주로 기능하며 그 누군가가 베푸는 것에 아주 적절한 리액션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도, 또 이 다음에도 베풂을 받을 수 있다. (340-341)

-그리고 또 돈이 좋은 이유는 남들을 시켜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어찌 보면 결국 쾌적해지기 위함인데, 귀찮고 지저분한 일들을 위탁해버릴 수 있게 해준다. 또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정말로 메뉴만 고르면 된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어떤 걸 시켜야 제일 본전을 뽑을지 고민할 필요없이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사람이 간장 종지처럼 자잘자잘해지지 않게 도와준다. (343)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나는 얼만큼 가난하고 얼만큼 부유한지. 넘들도 그런 궁금증을 갖고 있는지. 혹시 나만 이렇게 매사에 어리둥절하고 있는 건지. 아무래도 이런 궁금증은 너무 상스러운지. 그렇게 분노도 혁명도 없이 일생을 탈 없이 살다 가도 괜찮은 건지.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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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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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1 아니 에르노.


BIGBANG(GD&T.O.P) - 쩔어(ZUTTER)
https://youtu.be/D8t8A8E_Tqc

단순한 열정을 5년 전에 읽었다고 한다.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고 독후감이 남아 있으니까. 집착을 안 읽었을 줄은 몰랐다. 이건 얇다니까 읽어봐야지, 아니 에르노 안 읽는다면서! 뭔가 괜히 욕박고 싶을 때 이 작가 걸 꺼내 읽는 거 아닐까 싶었다.

-‘이걸 쥐고 있는 한 이 세상에서 방황할 일은 없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지금 와서 이 문장을 곰곰 생각해보면, 이것 말고는, 이 남자의 페니스를 손으로 꼭 감싸쥐는 것 말고는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10)

초반부부터 아이 참 아니 에르노가 또 아니 에르노 했네...똥을 싸도 박수갈채를 받고 남자친구 아침 발기한 성기 붙들고 있던 걸 회상하다 써 갈겨도 노벨상을 받고 뭐 그러는 거다. 차 버렸든 차였든 이제 부재의 상태로 발광을 할 테니까 일단 봐주고 넘어간다.

-모든 여선생에게서 완절무결하고 단호한 태도를 찾아내면서, 내가 그들 모두를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하지만 전에는 나도 선생이었고,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은 여전히 선생이지 않은가-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고등학교 시절, 여선생들이 너무 강렬한 인상을 주어서 그 직업을 갖게 되거나 그들을 닮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때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나의 적이 속한 그 집단은, 그 이름과 그렇게 잘 어울렸던 적이 결코 없었던 것들, 즉 교직 종사자 전체로 확대되었다. (14)

오늘 명예퇴직 공문을 가만 들여다보며 20년 이상이래...난 연금 밀린 걸 다 털어 넣어도 이제 17년 몇 월인 걸… 그런데 그만두면 뭘 해 먹고 사냐 빚은 뭘로 갚냐 출근하겠다고 사재낀 옷이랑 신발값은 어쩔 거냐 하면서 자기를 전직 교사였다고 회상하는 아니 에르노가 조금 더 밉게 읽혔다.

-이러한 탐색과 광적으로 여러 단서들을 짜맞추는 행위를 보며 지능의 탈선적 사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차라리 지능의 시적 기능, 문학과 종교 및 편집증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그 기능이라고 하고 싶다.
게다가 나는 그 시기에 가졌던 욕망, 감각, 행위들을 추적하여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내가 겪은 대로의 질투를 써나가고 있다. 내게는 그것만이 이 강박관념에 물질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본질적인 무언가를 놓칠까봐 두려워한다. 요컨대, 실재에 대한 질투로서의 글쓰기. (38)

사이버 스토킹에 흥신소 놀이는 거참 저의 고약한 취미 중 하나였는데… 이미 40년생 언니 아니지 할머니도 지겹게 편집증의 삶을 살고 그걸 또 치덕치덕 폼나는 단어 발라 문장으로 적어 두셨다. 전 이제 손 씻었습니다. 행복해요. 라라라라랄

-나는 내가 대량생산되어 대체될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했다. 이 논리를 거꾸로 뒤집어서, 그의 젊음이 가져다주는 이점들이 그에 대한 나의 집착에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인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성찰해보려고 애쓰고 싶은 의욕은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자기 기만이 주는 희열과 난폭함에서 절망으로부터 구원되는 길을 발견했다. (47-48)

내가 아닐 수도 있었어…는 언제나 씁쓸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할머니한테도 그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어… 젊은 남자 수시로 갈아끼웠잖아… 젊은 건 아름답지만 네 뭐 젊은이한테 집착하느라 세월 보내고 쭈그러지는 할머니들 보면 조금 안타깝긴 합니다… 인생의 무게는 각자의 몫…

-가장 커다란 행복처럼 가장 커다란 고통도 타자로부터 오는 것 같다. 나는 두려움 때문에 그 고통을 피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그 고통을 두려워하여 적당히 사랑하거나, 음악이나 정치참여, 정원이 있는 집과 같은 관심사의 일치를 더 중시하거나, 혹은 삶과 유리된 쾌락의 대상으로 여러 명의 섹스 파트너를 둠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이 육체적 사회적 고통에 비하면 비이성적이며 심지어 물의를 일으킬 만한 것일지라도, 하나의 사치일지라도, 나는 생의 평온하고 유익했던 몇몇 순간보다도 그 고통을 더 사랑할 것이다. (50)

할머니...찐마조히스트 인정… 전 그 반대로 사랑하기로 했어요… 생의 평온하고 유익했던 몇몇 순간들로 그 고통들을 몰아낼 것이다.

-(학교에서 문학 텍스트의 구절들에 제목을 붙이듯이, 자기 삶의 순간들에 제목을 붙이는 것은 아마도 삶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닐까?) (67)

통제 욕구도 인정… 제목을 붙이고 일단락해 놓으면 일단 편-안-

-그 여자는 자신이 다른 곳에서도, 또다른 여자의 생각과 육체 속에서도 살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으리라. (69)

우리 할머니도 내가 여기서 아마도 질투의 감정으로 매번 읽고 까고 안 읽어 시바 하다 또 꺼내 읽고 또 까고 하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을 것이다….

감기약 먹고 골골 졸려운 오후에 이 책 읽고 대작가 까는 독후감을 쓰다 보니 아주 잠이 싹 달아나게 개운한 아드레날린 샘 솟음… 제가 소작가면 까지도 않아요… 할머니는 버섯 같은 무엇이나 까고 계셨군요…. 인상 깊지만 꼬추타령은 일절만 옮기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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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을 잘못 샀나?했더니
책 맞습니다... 한 권만 샀겠어요...디카페인 커피도 샀습미다.
또 책들고 꽂을 데 찾다 한숨 폭 쉬고 아무데나 대충 꽂아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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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사랑
정예인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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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7 정예인.

브로콜리너마저-커뮤니케이션의 이해
https://youtu.be/bo__WpTO_Lc

소재와 책 소개에 낚이지 말자. 퀴어에 관해 읽은 책 중 가장 실망스러웠다. 앞으로 가장, 이 갱신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아오 군더더기 문장 한참 읽다보니 나도 군더더기가 많아졌다.

책 전체가 글자 수 채우려고, 책 페이지 맞추려고 떼어내지 않은 군더더기가 너무 많아. 부사랑 직유가 많아도 너무 많아. 접속 부사 ‘하여간’나도 습관처럼 쓰는데 이렇게 남발하면 꼴뵈기 싫은 거였구나… 괄호는 가독성 떨어지게 진짜 왜 이렇게 많아? 굳이, 싶은데다 (어쩌고) (저쩌고) (미치고) (빡치고)

사실 그런 안 예쁜 구석이 나랑 겹쳐서 빡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나보다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글을 다듬고 책을 엮는 일은 그 군더더기들을 열심히 깎으면서도 재미없지 않을 정도로는 남기는 것 아닐까. 이 책은 두 가지 다 못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편집자는 자기 책을 조금이라도 미리 편집해 볼 시도는 안 하는 걸까. 아니, 담당 편집자 뭐했는지 궁금해. 동종업계라 할말하않 했다면 방임, 유기다. 글항아리 출판사라 믿었어… 세상 아무 것도 믿지 말자...

정작 독자가 궁금해 할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한듯 상황과 맥락에 대한 설명이 적다. 거의 없다. 배경도 없고, 그런 사적인 관심에 대해서는 놉, 그냥 이런 나의 감정과 생각과 존재 자체만 읽어줘, 읽는 입장에서는 인색하다 싶었다. 참고 읽는데 왜 보상을 안 해줘!!! 감동도 재미도 한 톨도 안 줘 왜!!!!!!!

철저하게 쓰는 이만을 위한 책들이 있고, 이 책도 그쪽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그렇지만, 그런 거라면 굳이 책이었어야 했나 싶다. 독자는 그래도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펼치는데, 이해하라고 하면서 이해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게 보이고, 어쩜 그럴 능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다.

난 그래, 하고 써갈기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문장이나 글 엮는 방식이 너무 아쉽다. 실험적이고 싶었다면 망한 실험이다. 아무나 의식의 흐름 따라할 수 있는 건 아닌 걸 한 번 더 확인. 셀프 편집자적 논평이 자꾸 들러 붙어서 너어어어어어무 산만해. 뭐라고 하는지 매번 곱씹어 보려다 여러 번 포기했어.

매 챕터를 읽을 때마다 아...앞으로 글을 이렇게 쓰면 안 되겠다...하는 다짐과 가르침은 많이 받았다. 이거 일기로 읽으면 되는 건가...하는 순간 그냥 예전 일기 가져다 다듬어 복붙한 페이지가 책의 1/3쯤 되었다. 간절하지 않을 때 계약 때문에 어거지로 책 내는 건 그냥 작가나 출판사나 안 하는 게 좋지 않나. 억지로 쓰지 말자… 억지로 쓴 것처럼 읽히게 하지 말자...

저자의 삶의 방식이나 그걸 처음 듣는 주변 이들의 반응이나 수용은 나쁘지 않다. 나쁠 게 없다. 그런데 왜 날 안 봐? 나 피하는 것 같아? 하는 건 본인이 그렇게 느꼈다면 정말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관종의 호들갑이 시선집중에 실패했을 때 그 화살을 관심 주지 않는 다수에게 쏘아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나도 아주 보통의 존재예요, 하기 보다는 난 이렇게 특별해, 남과 달라, 보라고, 봐봐, 왜 안 봐?? 난 정신병자다 끼야아악 하는 글이 읽기 힘든 건 내가 평양냉면 슴슴 담담 담백 병에 걸려서 그럴 수도 있겠지.

그리고 나랑 비슷한 애가 날 지긋이 관찰할 (인내심 가질) 경우가 있다면, 되게 짜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중간에 알라딘 매입가가 1500원인 걸 찾아 보고 좌절했다… 그런 걸 알라딘은 잘도 나에게 비싸게 팔았겠다…

뭐 내가 이 책을 까내린다고 해서 쓴 사람의 삶까지 까내린다고는 누구도 생각 안 했으면 좋겠다. 삶은 길고 그렇게 쉽지도 않고 언제나 또다른 반전인 거 알아요 아니까...글쓰는 건 더 쉽지 않아요… 상담사도 아니고 왜 내 돈 주고 남의 한탄과 푸념을 듣고 있지… 서사라기보다는 한탄과 푸념 이상으로는 읽기 어려웠어요… 공감과 연민 이런 것보다 읽을 수록 기가 빨리는데도 다 읽고 성질나서 독후감 갈겨야지 하고 참고 꾸역꾸역...매몰비용 고려 안 하는 멍청한 나야… (정용준 김금희는 좀 사랑하니까 더 안 미워하려고 산문집 읽다가 놓고 소설로 도망갈 수 있었으나…)

결론은 (재미든 감동이든 뭐든 한 톨이라도 있는) 잘 쓴 책/글을 읽고 싶다면 기대를 접고 다른 책들을 찾아보자...
1.폴리아모리의 삶을 조금 가까이서 좋은 글로 접하고 싶다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홍승은)
2.정병러 퀴어이지만 너무 우중충하지는 않고 덤덤 내공이 느껴지는 극에 달한 희비가 갈마드는 드라마...를 읽고 싶으면 이반지하의 책들(난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만 읽음)을 권합니다.

+밑줄 긋기
-이런 종류의 책은 자칫하면 굳이 읽어야 되나 싶은 아무개의 중얼거림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책에 저자가 물씬 물들어 있어서 저절로 매혹되었다.) (21, 괄호 바깥까지만-소피 칼 책 말고, 소피 칼을 인용하지는 않고 두루뭉술하게 인상평만 냅다 던지는 이 책. 아직 21쪽인데 냅다 던지고 싶어. 참고 더 읽어 볼게.)

-폴리아모리 비유에 관한 나의 해석을 얘기하는 중인데, ‘동시에 사랑하기’보다 ‘균형 맞추며 관계 맺기’가 자연스럽게 먼저 나온다. 그게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일이니까. 각기 다른 존재들의 면면에 따라 나 역시 다르게 그러나 진실하게 감응하는 일. (37)


-그는 나의 명철함과 예리함, 재기발랄함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귀여움과 흰 도화지 같은 순진함, 정서적으로 기복이 별로 없는 사람 특유의 안정감을 좋아했다. 다르게 말하면 그는 나의 과민함과 규범으로 통제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나는 그의 둔감함과 정상성을 끝내 어쩌지 못했다. (74, 취향이 저랑 같으심-취향만 같겠냐고...)

-상대에 대한 소유욕이 별로 없는 성격은 보기 드문 장점이자 가끔은 한숨 나오는 단점이 된다. (79)

-...말미의 두어 단락이 핵심이었다. 인간이란 같이 산책하고 싶어서 결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오래도록 그럴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인생이 아닌가 한다는 내용이었다. 마무리에 이르러서야 진영이 나에게 이 책을 권한 이유를 알았다. 참 소박하고 따뜻하고 정답고...야, 근데 이거 너무 미괄식이잖아!
이런 게 진영의 소통 방식인 것이다. (87)

-큰 위기가 닥치면 멘붕이 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오히려 문제 해결에 혈안이 되어 과하게 각성돼서 용감해진다. (94, 우린 이걸 조증 삽화라 부르기로 했어요.)

-영화를 보다 사람들이 웃는 포인트에서 이렇게까지 의아한 적은 처음이었다. 몇몇 관객들이 웃을 때마다 나는 놀라서 충격에 휩싸일 정도였다. ‘여기서? 왜? 뭐가?’ (126, 내가 어제 마릴린 맨슨 콘서트에 수녀 분장을 하고 나온 빌리 코건을 보고 큰어린이랑 그렇게나 웃었는데 곁의 사람만 안 웃고 저게 왜 뭐가 웃긴지 모르겠다 하던데 서로 웃음 포인트가 어긋나는 경우에는 슬퍼진다.)

-뭘 안다고 다짜고짜 내가 좋다는 걸까? 하여간 보호받는 아이가 된 기분이 든다. 왠지 좋은 일 같다. (137)

-직업인으로서 나는 돈 주고 살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만들 의무가 있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고민하였다. (152, 그건 편집자일 때도 그렇겠지만 작가일 때 더 큰 의무가 아닐까 싶어요…)

-나라는 존재 전부를 언제나 꽉 안아주는 애인 덕분에, 세상을 향해 서 있는 나는 괜히 자랑스럽다. ‘세상 사람들, 나한테는 이런 사람이 있거든요?’ 이런 마음. (156)

-어떤 LGBTQIA+들은 나를 싫어하거나 아니꼬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한남’과 결혼한 주제에 ‘오픈리 퀴어’이기까지 하니까. 정상성을 획득해놓고 소수자성까지 탈취하려는 욕심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대놓고 그렇게 말한 사람은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지레 생각한다.
‘애매한 위치’ 그리고 ‘설명할 수 없음’이 나의 핵심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늘 ‘지금까지의 세상에 없던 것’ ‘기존의 방식이 아닌 것’이다. (168-169)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똑 부러지는 K장녀’페르소나가 기본값이었던 나는 “오냐오냐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애기 공주”에 대충격을 받았다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제야 보호자라는 걸 가져본 기분이었다. 이렇게 마음껏 뒹굴어도 된다고? 그는 라텍스로 이루어진 존재인가? 아릿할 만큼 다디 달았다. (171)

-망했다.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매일 이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아직도 가끔 절망한다’는 게 매우 수치스럽다. 나 뭐 돼? 응… 어릴 때 나는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고, 장차 더더욱 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줄 알았기 때문에 계획은 하나도 세워두지 않았다. (199, 난 언제나 플랜B, C, D….Z까지 헤아리느라 잠을 잘 못잤지 말입니다. 망하고 나면 다 똑같어 J나 P나...)

-회사를 떠나고 결혼 제도에서도 빠져나오면서 내 계급은 점차 하강했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팍팍 체감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쉽게 말하자면 마포구에서 영등포구로, 그다음 관악구로 거주지가 바뀌었다. (205, 여기에서 관악구 지박령은 일단 기분이 존나 상하는 동시에 와...이웃집 퀴어였어 악성독후가머 목 따러 올지도 모르니 조심해야겠...지만 이미 늦었어 태어난 김에 그냥 살듯이 나도 읽은 김에 독후감 그냥 쓸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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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 2025-04-27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반유행열반인 2025-04-28 18:31   좋아요 0 | URL
ㅎㅎㅎ아시마님께 큰 웃음 드려 기쁘고 웃음포인트도 궁금해지네요.

아시마 2025-04-29 11:19   좋아요 1 | URL
“읽을 수록 기가 빨리는데도 다 읽고 성질나서 독후감 갈겨야지하고 참고 꾸역꾸역“ 이 대목 꼭 저라서요. ㅎㅎㅎ 매몰비용 고려타령까지 ㅋㅋㅋ 저는 약간 시작한 글은 끝을 본다는 강박이 있어서 ㅎㅎㅎ 그래도 요새는 많이 고쳐져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내던지기도 하는데, 그랬다 다시 주워온다는게 함정이죠. ㅎㅎㅎㅎㅎ
나같은 사람 또 있구나 싶어 무지 웃었어요. ^^

반유행열반인 2025-04-28 21:24   좋아요 0 | URL
아이코 제가 늘 그래서 반갑습니다 ㅋㅋㅋ전작주의는 버렸는데 완독주의는 못 버려서 읽다가 포기하면 지는 기분이구요 ㅋㅋㅋㅋ
 

광주충장로점과 부산서면역점에서 책들이 동시에 날아왔다. 오래 담아둬도 안 팔리던 책이랑 사려다가 친구 책들이 안 모여 못 산 책이랑 김금희 신작(아직 예약 출간) 한 번에 시켰다.

책탑 사진은 어째서 삐딱...

’첫 여름, 완주’ 김금희의 신간, 오디오북 먼저 나왔다는데 청소년 소설 느낌의 표지인데 박정민 배우네 출판사 책이라니까 궁금하기도 해서 일단 질러 봤다. 신간은 이거 딱 한 권...

‘혐오에서 인류애로-성적 지향과 헌법’-오래 전에 신간으로 나왔을 때 궁금하다고 담아놨는데 동네 서점에다 시키려니 그렇게 오래된 책은 안 판다고... 9900원에 모셔옴

‘가부장제 깨부수기’-캐럴 길리건의 돌봄의 윤리 찾다가 관련 책은 못 찾고 공저서만 하나 있어서 가져와 봤다.

’천 개의 뇌‘-위에 두 책 사려는데 배송료 무료가 안 되서 역자 이름으로 검색해서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번역하신 선생님이 비스무레한 제목으로 옮긴 걸 또 얹어 봤다. 뇌 책 그만 본다며...

’CIA 분석가가 알려 주는 가짜 뉴스의 모든 것‘-좀 말 같은 말을 들어보고 싶어- 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가 생각나는 오래된 책들 중 가장 새로 나온 책. 일단 사 봄.
https://youtu.be/bo__WpTO_Lc?feature=shared

‘비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어디서 야하다 소리를 들었는데 800원 균일가로 몇 달 담아둬도 누구도 거둬가지 않아 제가 거뒀...

‘플랫4’-100원 모자라서 배송료가 붙어서 300원짜리 만화책 샀는데 귀여울 것 같은 느낌적 느낌

‘빅뱅이 뭐예요?’-빅뱅 좋아해서...이지만 어린이 주려고 샀다.

꽂을 자리 없어 망연자실...책더미 들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아무데나 처박아놓는 나놈아...폐지 그만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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