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신 인안나 - INANNA, THE FIRST GODDESS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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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획득한 하늘과 땅의 기득권을 다 버리고 선택한 모험이었다. 어느 누구도 다시 목숨 붙여 돌아오지 못하는 사지를 향한 지나친 욕망이었다. 인안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녀는 하늘과 땅에서는 아무도 못 말리는 사랑과 풍요의 여신이지 전쟁의 여신으로 맹위를 떨쳤지만, 저승에 내려가자마자 송장이 되었다. 마지막 들숨과 날숨도 떨어졌다. 죽은 것이다... 죽은 자가 사흘 만에 부활했다. 산 채로 저승 원정 길에 오른 일도 최초의 사건이었고, 그곳에서 죽었다가 부활한 것도 최초의 사건이었다. 아니, 최초의 기적이었다. _ 김산해, <최초의 여신 인안나> , p81/179

김산해의 <최초의 여신 인안나>는 수메르 신화의 진정한 주인공 여신(女神) 인안나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으로의 여행 끝에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부활하여 승리자가 되었다는 '메시아의 수난과 부활'이라는 기독교 교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우리는 이미 고대 신화에서 발견하며 놀라게 된다. 이와 함께 인안나에 녹아있는 올림푸스 신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책을 읽는 다른 재미가 된다.

인안나의 저승 여행은 끝이 났고, 그의 사랑도 끝났다. 그리고 진정한 승리자는 인안나였다. 그는 하늘의 여왕이었고, '큰 땅'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여신이었다. 그것은 수메르 만신전에서 전례 없던 위업이었다. 죽음에서 사흘 만에 부활한 인안나는 가장 위대한 신이 되었다. 아울러 그녀는 이승과 저승의 운명을 결정하는 거룩한 신이 되었다. 그래서 두무지는 비록 저승으로 붙잡혀 가지만, 인안나가 정해준 그의 운명으로 반년 동안 죽었다고 다시 부활하여 이승에서 나머지 반 년을 보내는 삶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_ 김산해, <최초의 여신 인안나> , p122/179

바람을 피는 남편을 벌하는 장면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헤라, '메'를 엔키로부터 훔쳐가는 장면에서는 헤르메스, '메'를 통해 지혜를 통치하는 면에서는 '아테나', 사랑을 관장하며 인간 길가메시에게도 마음을 빼앗긴다는 점에서는 '아프로디테', 실질적인 이승의 지배자라는 점에서는 '제우스', 지혜의 신 엔키를 술에 취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디오니소스', 저승으로부터의 귀환 이후에는 죽음마저도 관장하는 '하데스'가 결합된 인물이 인안나임을 생각해본다면 여신 인안나가 얼마나 강력한 신이며, 신들의 원형임을 알게 된다. 이런 면에서 인안나가 수메르 신화의 주인공이고, 빛나는 '아폴론'와 같은 존재가 분명하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아폴론'과 같은 인안나가 아닌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같은 '엔키'다.

하늘의 땅의 여왕, 전쟁, 풍요, 다산, 완전하고 다양한 여성성, 여성적인 삶의 원리, 여성들의 수호천사, 품위 있고 당당한 부인, 수많은 도시와 왕들의 수호신, 금성(金星) 등으로 상징화된 여신들의 본바탕에 자리를 잡고 있던 진정한 여신이 있었다. 인안나였다. _ 김산해, <최초의 여신 인안나> , p5/179

엔키는 지혜의 신으로 '메'의 원래 주인이다. 그러다가, 인안나에게 속아 '메'를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인안나를 축복하는 넓은 아량을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인안나가 저승에서 죽음을 당했을 때, 유일하게 인안나를 돕기로 결심하고 그가 부활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그가 최고신이 될 수 있게 만든 것도 바로 엔키다. 그런 면에서 수메르 신화에서 빛나는 양(陽)은 여신 인안나지만, 이러한 양을 만들어 낸 음(陰)은 남신 엔키라 할 수 있겠다. 마치 음(陰)에서 양(陽)이 나온다는 <도덕경 道德經>의 내용처럼. 고대 수메르인들도 이러한 생각을 했었을까.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태음력(太陰歷)'을 사용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달'을 관장하는 엔키는 마치 주(周)나라의 주공(周公)처럼 왕은 아니지만, 고대 수메르 문명의 중심에 서 있는 신(神)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았을까. 인안나가 지배하는 코스코스(Cosmos)를 잉태한 카오스(Khaos)를 상징하는 것이 엔키의 다른 모습은 아닐까를 생각해본다. 실제로, 고대 수메르 신화에서 엔릴이 대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키려 했을 때, 몰래 이를 막아선 것도 엔키였음을 생각해본다면, 그에게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면모도 찾을 수 있다.

"내 권능을 걸고 말하노라. 내 신성한 성전을 걸고 말하노라. 네가 가지고 간 '메'는 네 도시의 거룩한 성소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제장이 그 거룩한 성소에서 찬송하며 일생을 보내도록 하겠다. 네 도시 사람들은 번영을 누릴 것이다. 우루크 아이들은 기쁨이 넘치리라. 우루크 사람들은 에리두 사람들과 동지로다. 우루크는 위대한 곳으로 부활하리라!"(p44)... '메'의 전 주인 엔키는 역시 큰 신이었다. 그는 비록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여신에게 빼앗겼지만 새로운 지배자를 축복해 주었다. 하여 그는 패자이면서도 여신의 영원한 웃어른으로 남게 되었다. _ 김산해, <최초의 여신 인안나> , p51/179

이와 함께 <최초의 여신 인안나>와 <길가메쉬 서사시>를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두 서사시 모두 '여행과 '죽음''을 주제로 하지만, 불멸의 신과 필멸의 인간이라는 존재의 차이가 있기에 여행의 결말을 달라지게 된다. 여행 끝에 죽음을 정복한 신(神) 인안나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하는 길가메쉬. 그가 느꼈을 '허무'가 고대 지혜문학의 주요 주제와 연관된다는 점도 이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최초의 여신 인안나>는 현재 우리에게 거의 잊혀진 여신(女神)에 대한 이야기다. '양(陽)'을 상징하는 여신의 이야기도 분명 흥미롭지만, '음(陰)'을 의미하는 남신의 이야기도 이에 못지 않다. 마치, <주역 周易>에서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오고, 땅의 기운이 상승하면서 교감하며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며, 최고의 괘로 꼽는 '지천태(地天泰)' 괘(卦)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고대 수메르 신화에는 존재한다.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는 이러한 조화를 되살리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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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9-16 0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통 아시아권에서 양은 남성이고 음은 여성인데.. 같은 아시아초기 문명인데도 중국 문명과는 또 다르네요. 하긴 지금의 중동쪽이니 같은 아시아라고 하기도 그러네요….

겨울호랑이 2022-09-16 09:23   좋아요 1 | URL
기억의집 말씀처럼 신화 안에서 고대 수메르 문명과 고대 중국 문명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차이가 생긴 원인을 여러 면에서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인류 문명의 모계사회 전통이 인안나 신화에 표현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듯하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에서 ‘음양‘ 사상이 선진시대 이후 ‘오행‘과 ‘태극‘과 결합하며 절대성을 부가하기 이전에는 보다 상대적인 개념이었던 것과 같은 흐름 속에서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개인적인 추측일 뿐입니다. ^^:) 기억의집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달리 말하면, 오키나와에게 미국의 종속국가인 일본의 ‘국체’는 자연의 가장 위대한 보고들 중 하나를,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공식에 따라 계속 그 힘을 무제한으로 동아시아에 투사할 수 있는 요새로 전환하도록 재촉하는 존재다.
말하자면 그것은, "지역 평화, 협력 그리고 공동체로 나아가는 움직임에 반하고, 헌법에 명기돼 있는 지역자치 원칙에 반하며,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고, 자연보존 명령에 반하는" 것이다.78 오나가 지사는, 그가 2015년 유엔 인권위원회 앞에서 중앙정부를 "주민의 뜻을 무시"한다고 비난했을 때 조금도 과장한 것이 아니었다.
요컨대, 오키나와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연 자체의 개입 가능성인데, 그것은 미국과 일본정부가 헤노코 매립 프로젝트가 야기할 거대한 지질학적, 지진학적, 기후학적 문제들을 기술적으로 "해결"할 아무런 방도가 없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 것이다. 인간의 법(human laws)은 왜곡되거나 무시당할 수 있지만, 자연의 법칙(laws of nature)은 그렇지 않다.

샌프란시스코 조약/냉전 체제는 그것이 확립된 지 약 70년이 지나 유효사용기한이 다 끝나가고 있다. 아베는 지금 그 틀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면서 그 노력의 대부분을 워싱턴에 굽실거리는 데 바치는 한편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과 대립하면서 끊임없이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동시에 자신의 도박이 지닌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 푸틴과 화해하고 무역전쟁 확대에 반대하는 시진핑과 손을 잡는 쪽으로 살짝 움직이고 있다. 그는 또한 시진핑과 푸틴의 유라시아 전략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는 매우 드물지만, 중대한 역사적ㆍ지정학적인 터닝포인트의 첫 단계를 목도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처럼 양면적 위기를 맞고 있지만 이 국가들을 지배하는 제도적 틀은 격동의 2차 세계대전과 뒤이은 샌프란시스코 조약(1951) 체결로 확립된 이후 7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 미국은 논란의 여지없이 ‘세계의 주인’이었으며,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제는 미국의 그와 같은 지배력을 굳히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1 그때 중국은 분열돼 있었고 그 체제에서 배제당했으며, 한국도 분단돼 있었고 전쟁 중이었다. 일본 또한 분단(오키나와가 본토에서 잘려 나갔다)되고 점령당했으며 ‘점령 장치’로서 군사기지와 미군의 자유가 당연한 것, 지역과 세계의 ‘안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동아시아 일원, 특히 한반도와 오키나와열도에 단단히 채워진 냉전의 매듭이 풀리고 외국군의 점령이 종식된다면 포스트-샌프란시스코 조약, 포스트-냉전, 포스트-미국 헤게모니의 포괄적 지역질서로 가는 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돼야 비로소 핵과 기후변화 문제를 풀 수 있다.

호주와 일본은 또 협력관계를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해 고안된 미국과의 외국군 방문협정에도 참가하기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삼각동맹은 (인도를 불러들여) 사각 즉 "쿼드Quad" 동맹이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일본 (그리고 호주) 국방정책의 핵심은 핵무기로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서는 것이다.

법원은 어느 정도는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고 헤노코기지 공사를 멈추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겠지만, 오키나와현이 법정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라고는 사실상 생각할 수 없다. 1959년 (*미군 비행장 확장 반대운동을 둘러싸고 벌어진) 스나가와砂川 소송 이래 당시 최고재판소가 채택한 원칙은 굳건히 견지돼 왔다. 바로 미국과의 안보조약에 관한 문제들은 "고도로 정치적인" 것이어서 사법적 다툼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65 사실상 안보조약(안뽀)이 헌법(겐뽀)에 우선하며, 사법부는 (안보의) 특권을 유지하려는 확고한 자세를 갖고 있다. 설사 모든 오키나와 사람들이 "안 돼!"라고 하더라도 정부는 밀어붙일 것이며, 법원은 그것을 합법화할 것이다. 새 기지는 건설될 것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과의 평화(강화)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얄타에서 합의한 것들은 왜곡되거나 모호해졌다. 유럽에서 시작한 동서 대립이 격화되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전후 아시아는 애초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국제질서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국제적 협정이었다. 이와 관련 있는 다른 안보협정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이 지역의 냉전적 대립구조의 토대를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샌프란시스코 평화회의 주최국인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정책적 우선순위를 충실히 반영했다. 이 체제는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과 지속적인 군림, 즉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보장했으며, 일본에 평화헌법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주었지만, 대신 다른 동아시아 사람들과 국가들에는 영속적인 분열을 안겨주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그런 수많은 경계선 문제들을 만들고 증폭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쿠릴열도에서 남극대륙까지 그리고 미크로네시아에서 스프래틀리군도까지의 광대한 지역들이 그 조약에 포함됐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그들의 최종 처분이나 정확한 지리적 한계를 명시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 지역 전체에 여러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의 씨앗을 뿌리고 말았다.

도쿄재판은 난징 대학살, 일본 광산과 공장에서의 한국과 중국인의 강제 노동 그리고 일본군이 한국, 중국 및 기타 국가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매매춘에 동원한 것과 같은 문제들에서 중국인과 조선인 등이 받은 고문과 학대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을 간과했다. 대신 도쿄재판은 "가장 직접적으로 서방 연합군에 영향을 끼친 일본의 행동들, 예컨대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과 연합군 전쟁포로 학대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과의 평화조약은 처벌보다는 "관대한" 쪽이었으며, 전후 일본의 민주화와 경제부흥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역코스reverse course"가 결국 미군 점령기간에 전쟁범죄자로 공직에서 제거되거나 기소당한 보수 정치인들의 복귀 쪽으로 방향을 틀게 만들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공통의 토대를 둔 미해결 문제들 중에서 근본적인 해결을 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동서를 가르고 있던 벽이 완전히 무너진 유럽ㆍ대서양 지역에 비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 일어난 변화들은 근본적인 분열을 치유하지 못했다. 소련의 붕괴를 빼고는 이 지역 냉전의 대립구조는 기본적으로 계속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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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당신의 정념이 너무 강렬하다면 그것을 분산시켜 버리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내가 가끔 해 보니 쓸모가 있었다. 그것을 여러 개의 욕망으로 잘게 부수고, 원한다면 그중 하나가 나머지를 이끌고 지휘하게 두라. 그러나 행여 그가 당신을 지배하고 군림하려 들까 염려스러우니, 그것을 나누고 한눈 팔게 하여, 약화시키고 붙들어 놓으라.

자연은 이처럼 덧없음이라는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서 일해 나간다. 우리의 고통에 대한 최상의 의사로서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것은 시간이며, 시간은 우리 상상력에 다른 일거리들을 연이어 제공함으로써 아무리 강력한 것이었을지언정 처음의 느낌을 해소하고 부셔 버리며, 주로 이 방식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내 행동의 대부분은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보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어떻든 나 스스로 그 길로 간 것이 아니라 [풍속을 따라] 이끌려 간 것이며 외적 이유들에 의해 그리 간 것이다. 왜냐하면 불편한 것들만이 아니라, 아무리 추하고 악하며 피할 수 있는 일들마저도, 어떤 조건과 상황에 의해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친절에 대한 고마움의 정도는 전적으로 친절을 베푼 자의 의도가 무엇이냐에 관련된다. 친절과 관련된 다른 사정들은 말이 없고 죽은 것, 우연한 것일 뿐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자기 전부보다 여자가 주는 얼마 안 되는 것이 여자로서는 더 비싼 대가일 수 있다. 어떤 일에서는 희소성이 그 가치를 더한다면 바로 이 경우가 그럴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적은지는 살피지 말라, 대신 그것을 가지게 된 사람이 얼마나 소수인가를 보라. 화폐의 가치는 주형(鑄型)과 주조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달라진다.

호기심은 만사에 두루 사악한 것이지만, [배우자의 부정이라고 하는] 이 일에서도 파괴적이다. 어떤 약도 증세를 악화시키고 더 심각하게만 만드는 병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보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로 인한 치욕은 주로 질투에 의해 증대되고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에 대한 복수는 우리를 치료해 주기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나로서는 누가 나더러 훌륭한 항해사라거나 대단히 검박하다거나 혹은 아주 정결하다거나 하는 찬사를 보낸다면 조금도 고맙지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누가 나를 배신자라거나 도둑 혹은 주정뱅이라고 부른다 해도 [내 이야기가 아니니] 조금도 언짢아지지 않을 것이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잘못된 칭찬에 배가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나를 보고 있고, 배 속까지 나를 연구하며 내게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더 정확히 알려져 있기만 하다면 칭찬을 덜 받아도 나는 기쁘다. 내게는 어리석다고 보이는 것을 지혜로움이라고 여기며 사람들이 나를 현자로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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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동하면서 행동 그 자체 말고 다른 과실을 추구하지 않으며, 먼 나중의 결과와 목적을 거기에 연결시키지도 않는다. 각 행동마다 저 나름의 한 판 시합을 하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면 매번 과녁에 딱 맞히게 되기를!

그러나 이해관계와 사적 정념에서 비롯한 모질고 가혹한 마음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듯, 의무라고 불러서는 안 되며, 사악하고 배신하는 행위를 용기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폭력과 증오로 기우는 자기들의 성정을 그들은 열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진실의 길은 하나이고 단순하며, 개인적 이익과 자기 사업의 편익을 따르는 길은 이중적인 데다 고르지 않고 제멋대로이다. 인위적 자유로움을 꾸며서 해 보려는 경우도 이따금 봤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세계는 영원한 널뛰기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쉴 새 없이 흔들린다. 땅도 코카서스의 바위들도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모두가 함께 흔들리고 또 각자 따로 흔들린다. 항구성마저 더 느슨한 동요일 뿐이다. 나는 나의 대상을 고정시킬 수가 없다.

후회란 우리의 의지를 부인하는 일이요, 상념들의 변덕일 뿐이며, 그것은 우리를 온갖 방향으로 끌고 다닌다. 후회는 후회하는 자에게 지난날의 미덕과 순결을 부인하게 만든다.

가장 고매한 영혼은 가장 많은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닌 영혼이다. "여기 대(大) 카토에 대한 고개 끄덕일 만한 증언이 있다. 그는 무슨 일에나 마찬가지로 적응할 줄 아는 유연한 정신을 지니고 있어서, 그가 맡게 된 일이 무엇이든 이 사람이야말로 오직 이 일을 위해 태어난 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티투스 리비우스)

우리는 민중과 더불어 살고 그들과 거래한다. 만약 그들과의 교제가 우리에게 짐스럽고, 지체 낮은 평민들에게 우리를 맞춰 가기를 경멸한다면 ? 그러나 이들 평범한 하층민들은 가장 섬세한 사람들만큼이나 견실한 경우가 흔하다 ? (어떤 지혜건 공통의 바보스러움에 맞추지 못하는 지혜란 따분하거니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에도 남들의 일에도 참견하려 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적인 일이건 사적인 일이건 그 사람들과 함께해 풀리는 법이다.

우리는 항상 [죽음의 순간에] 다른 것을 생각한다. [저 세상에서의] 보다 나은 삶의 희망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든든하게 만들거나, 혹은 우리 자식들의 능력, 혹은 우리 명성이 미래에 빛날 일, 혹은 이 삶의 고통이 사라지는 일, 혹은 우리 죽음의 원인이 된 자들을 위협하는 복수극을 떠올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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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불이 켜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뢰도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시사IN>이 신뢰도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래 현직 대통령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신뢰도 중에서 가장 낮았다. ‘역대급‘ 기록 경신이다. 보통 대통령신뢰도는 임기 첫해에 가장 높았다가 서서히 떨어지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나쁜 시그널이다. 신뢰는 정치인의 핵심 자본이다. 대통령은 국정 수행을 위해최고 자리에 있는 정치인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앞날이 녹록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 P14

이 중 ‘김건희 여사 등 주변 관리‘는2.43점으로 최저점이었다. 대선 경선 때부터 우려되었던 바다. 지난해 당내 경선경쟁자였던 당시 홍준표 후보는 윤석열후보를 공격하며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리스크‘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시사IN> 제740호 "윤석열 패밀리‘가 넘어야 할 10대 본부장 리스크" 기사 참조).
김건희 여사는 주가조작·허위이력·논문표절 의혹 등을 샀다. 윤석열 대통령의장모 최 아무개씨는 ‘위조 잔고증명서 사건과 관련해 형사재판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민사재판 2심에서도 불법행위 방조가 인정됐다. - P15

검찰을 둘러싼 ‘정치 구도‘와 2022년검찰 신뢰도 조사 결과를 겹쳐보면,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검찰은 우리 편‘이라는일종의 일체감을 느끼고 민주당 지지자들사이에서는 그에 비례해 적대감이 커지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 성향에 따라 ‘좋은 검찰‘ ‘나쁜 검찰‘로 구분될 경우, 단일기관 신뢰도 하락을 넘어 전반적인 사법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 P21

왜 그럴까. 이번 조사에선 ‘문재인‘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지난 5월9일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롭게 문항에 포함되면서 지난해 1~4위였던 노무현·박정희·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이 모두 줄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퇴임 첫해 ‘문재인 신뢰도‘는 15.1%다. 순위로 보면 각각민주당 계열 정부와 보수정당 계열 정부의 상징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대통령에 이어 3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 P24

방역이라는 순전히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듯 보이는 분야가, 사실은 얼마나 정치적이고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영역인지국민들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2년 사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배웠다. ‘방역과학‘은 성립하지 않는다. 과학은 좋은 방역 정치의 기반이기도, 나쁜 방역 정치의 핑계이기도 하다. 
좋은 방역 정책이란 과학을 기반으로 좋은 정치적 판단을  행할 때 나오는 것이다. "정치 방역에서 과학·표적 방역으로 전환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가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까닭을 이번 신뢰도 조사결과가 설명해주고 있다.  - P27

레거시 미디어뿐만 아니라 ‘대안 미디어‘로 여겨졌던 유튜브까지도 불신의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제20대 대통령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같은 정치적 국면을 거치면서, 편향을 강화하는 정보와 가짜뉴스로 점철된유튜브 환경이 피로감을 부추긴 것으로파악된다. 온라인 공론장은 더욱 양극화되었다. 그 결과 언론매체에 대한 무관심이 올해 신뢰도 조사의 가장 큰 특징 중하나로 나타났다. - P28

정정보도를 하느니 아예 기사를 삭제하겠다는 그들의 자존심이 허탈할 뿐이다. 오보를 내고도 아무런 사과나 해명도 없이스윽 삭제해버리는 일이야 하루이틀 된 게 아니지만, 이런 몇몇언론의 태도가 한국 언론 전체의 신뢰도를 갉아먹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의 목표가 ‘노조 흠집 내기‘라면 기사가 나오자마자 거의 성공한다. 그러나 이를 바로잡기는 매우 어렵다. 언론 보도 피해 당사자는 몇 배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런데 오보를 낸 당사자는 당당하게 나온다. - P34

날이 갈수록 더 많은논란을 일으킬 ISDS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시민들에게 노출시켜왔다. 한국-론스타 분쟁 같은 사건을 ‘소송‘으로 해결해주는 ‘국제 법정‘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않는다. 언론들이 국제 법정으로 부르는ICSID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같은 조직역시 법정과는 어떤 상관도 없다. ICSID는 ‘분쟁 당사자들이 다투는 장소 제공‘
‘증언 기록‘ ‘증거 보관‘ ‘관계자들에 대한연락‘ 등을 수행하고 그 대가를 받는 ‘행정서비스 제공 기관‘이다. 무엇보다 ISDS는 소송이 아니라 ‘중재‘의 일종이다. - P45

서래는 바다 모래를 양동이로 파서굴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간다. 그죽음의 방식을 보고 많은 관객들이 ‘아,
저 사람은 내 마음속 어떤 감정이라도가져갈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던 것같다. 서래는 마치 샤먼, 무당이나대속하는 예수처럼 종교적인 인물이다.
그가 땅으로 들어갈 때 우리가 갖고 있던그리움과 슬픔까지 다 자신의 것으로받아들이고 묻히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관객들은 주인공이 되어‘ 슬퍼하는 게아니라, 주인공이 안쓰러워서 눈물을흘리게 된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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