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동하면서 행동 그 자체 말고 다른 과실을 추구하지 않으며, 먼 나중의 결과와 목적을 거기에 연결시키지도 않는다. 각 행동마다 저 나름의 한 판 시합을 하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면 매번 과녁에 딱 맞히게 되기를!

그러나 이해관계와 사적 정념에서 비롯한 모질고 가혹한 마음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듯, 의무라고 불러서는 안 되며, 사악하고 배신하는 행위를 용기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폭력과 증오로 기우는 자기들의 성정을 그들은 열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진실의 길은 하나이고 단순하며, 개인적 이익과 자기 사업의 편익을 따르는 길은 이중적인 데다 고르지 않고 제멋대로이다. 인위적 자유로움을 꾸며서 해 보려는 경우도 이따금 봤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세계는 영원한 널뛰기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쉴 새 없이 흔들린다. 땅도 코카서스의 바위들도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모두가 함께 흔들리고 또 각자 따로 흔들린다. 항구성마저 더 느슨한 동요일 뿐이다. 나는 나의 대상을 고정시킬 수가 없다.

후회란 우리의 의지를 부인하는 일이요, 상념들의 변덕일 뿐이며, 그것은 우리를 온갖 방향으로 끌고 다닌다. 후회는 후회하는 자에게 지난날의 미덕과 순결을 부인하게 만든다.

가장 고매한 영혼은 가장 많은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닌 영혼이다. "여기 대(大) 카토에 대한 고개 끄덕일 만한 증언이 있다. 그는 무슨 일에나 마찬가지로 적응할 줄 아는 유연한 정신을 지니고 있어서, 그가 맡게 된 일이 무엇이든 이 사람이야말로 오직 이 일을 위해 태어난 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티투스 리비우스)

우리는 민중과 더불어 살고 그들과 거래한다. 만약 그들과의 교제가 우리에게 짐스럽고, 지체 낮은 평민들에게 우리를 맞춰 가기를 경멸한다면 ? 그러나 이들 평범한 하층민들은 가장 섬세한 사람들만큼이나 견실한 경우가 흔하다 ? (어떤 지혜건 공통의 바보스러움에 맞추지 못하는 지혜란 따분하거니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에도 남들의 일에도 참견하려 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적인 일이건 사적인 일이건 그 사람들과 함께해 풀리는 법이다.

우리는 항상 [죽음의 순간에] 다른 것을 생각한다. [저 세상에서의] 보다 나은 삶의 희망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든든하게 만들거나, 혹은 우리 자식들의 능력, 혹은 우리 명성이 미래에 빛날 일, 혹은 이 삶의 고통이 사라지는 일, 혹은 우리 죽음의 원인이 된 자들을 위협하는 복수극을 떠올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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