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모리스는 전쟁에 찬성했고, 그것이 불가피하며 심지어 두 나라의 존속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양과 학식이 있는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진화론적 사상에 몰두한 이래, 그는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삶이란 매 순간 전쟁이 아닐까? 자연의 조건 그 자체가 지속적인 전투, 가장 강한 자의 승리, 행동으로 유지되고 쇄신되는 힘, 죽음에서 늘 새롭고 신선하게 부활하는 생명이 아닐까? 그는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입대해 전선에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그때 자신을 사로잡았던 뜨거운 조국애가 떠올랐다. 아마도 국민투표를 했더라면 프랑스는 황제에게 충성해도 전쟁을 선택하지는 않았으리라. 그 자신도 일주일 전에는 이 전쟁이 유해하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공언했었다. 독일왕자에게 스페인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현안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었다. 문제가 복잡해지고 혼란이 증폭되자 누구 할 것 없이 오류에 빠진 듯 보였다. 도대체 어느 쪽에서 도발을 시작했는지조차 불분명했고, 분명한 것은 정해진 시간에 한 민족으로 하여금 다른 한 민족을 공격하게 하는 불가피하고 숙명적인 법칙뿐이었다. 한순간 거대한 전율이 파리를 관통하였다. 모리스는 불타오르는 밤의 광경이, 모든 대로에서 횃불을 흔들며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하고 외치던 군중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26)

낡은 제정(帝政)은 국민투표로 신임을 얻긴 했지만 뿌리까지 썩어 있었다. 자유를 말살함으로써 애국주의적 이념을 약화시킨 제정은 다시 자유주의적 기치를 내걸었지만 이미 늦었다. 자기 스스로 풀어놓은 끝없는 환락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한다면, 제정은 금세 무너질 게 틀림없었다. 크림전쟁, 이탈리아전쟁의 무훈으로 빛나는 군대는 확실히 용맹하기 이를 데 없는 전통을 가졌으나 돈으로 사람을 사는 대리복무제로 망가졌고, 군사훈련도 타성에 젖어 있었으며, 승리를 지나치게 확신한 나머지 현대 과학의 새로운 기술 도입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 평범하기 그지없는 장군들은 쓸데없는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었고, 몇몇은 전쟁에 대해 가공할 정도로 무지했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황제는 괴로움과 망설임 속에서 이제 막 시작되는 전쟁을 맞아 잘못된 보고를 받기도 했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를테면 모두가 까막눈 상태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떼처럼 두려움 속에서 지리멸렬하게 전쟁터로 나아갔다.

 

(82)

문득 높다란 황색 담장에 쓰인 나폴레옹 만세!”라는 글귀가 꿈을 꾸는 듯 멍한 모리스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좌절감과 가슴이 찢기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전설적인 승리를 구가하며 전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가 안중에도 없었던 약소국의 일격에 쓰러졌다는 게 사실일까? 반세기 만에 세상천지가 변했다. 뼈저린 패배감이 영원한 승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모리스는 매형 바이스가 일전에 뮐루즈 앞에서 고통스럽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 오직 그만이 사태를 통찰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를 서서히 약화시킨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있었고, 젊음과 활력이 담긴 새로운 바람이 독일에서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패권 시대가 끝나고 또다른 패권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뜻할까? 하기야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나라에서 불행이 닥치고, 미래를 향해 가는 나라, 가장 합리적이고 건강하고 강고한 나라가 승리하는 게 당연하잖아!

 

(152-153)

모두가 울화통을 터뜨렸다. 병사들을 재미삼아 이리저리 돌리는 놈들이 세상천지에 어디에 있나! 헐벗은 들판에 펼쳐진 주름진 대지를 통해 병사들은 길 양쪽 가장자리로 열을 지어 걸었고, 장교들이 두 대열 사이로 지나갔다. 랭스에서 야영한 다음날 샹파뉴에서 병사들이 했던 즐거운 행군, 농담과 노래로 떠들썩했던 행군, 프로이센군을 따라잡아 격퇴하리라는 희망 속에서 배낭을 가볍게 들어올렸던 행군과는 전혀 달랐다. 이제 분노와 침묵 속에서 그들은 어깨를 짓누르는 소총과 배낭을 저주했고, 지휘부를 더 이상 믿지 않았으며, 절망에 사로잡힌 채 채찍질을 두려워하는 가축떼처럼 천근만근 발을 그저 앞으로 옮길 뿐이었다. 이 가련한 군대는 자기들의 십자가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227)

그러나 많이 배운 모리스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전쟁이 삶 자체요,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이라고 생각했다. 정의와 평화의 개념을 도립한 자는 불쌍하고 유약한 존재가 아닐까? 어차피 냉혹한 자연이란 끝없는 살육의 장일 뿐이니까.

 

(367-368)

그러나 불굴의 투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세번째 돌격이 이루어졌을 때, 프로스페르는 경기병과 프랑스 기병대 틈에 있었다. 여러 연대라 끊임없이 부서졌다. 다시 생성되는 거대한 파도일 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의식이 없었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제피르, 귀를 다쳐 더 빨리 달리는 제피르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제 그는 중앙에 있었다. 주변의 말들이 뒷발로 섰고, 거꾸러졌다. 병사들은 바람에 휩쓸린 것처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말 위에서 죽은 몇몇 병사가 안장에 앉은 자세 그대로 동공이 풀린 채 계속 돌격했다. 새로이 진격한 200미터 후방으로 시체들과 빈사자들로 뒤덮인 그루터기 밭이 보였다. 그중에는 머리가 땅에 처박힌 병사들도 있었다. 밭에 쓰러져 누운 또다른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툭 튀어나온 눈으로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교의 말로 보이는 거대한 검정말은 배가 터진 채 다시 일어나려 발버둥쳤고, 그 때문에 두 앞발이 쏟아져나온 창자에 뒤엉켰다. 적의 포화가 더욱 거세지며 양쪽 날개가 다시 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리자, 기병들은 뒤로 물러나 전열을 재정비했다.

 

(456)

스당에서는, 황제의 거추장스러운 짐이 주민들의 저주와 비난이 이는 가운데 군청 정원의 라일락 뒤에 놓여 있었다. 비참한 고초를 겪는 불쌍한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그것을 어디로 치우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짐에 어린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운, 그 짐이 자극하는 뼈아픈 패배의 기억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둠이 깊은 어느 밤이었다. 수많은 은냄비, 꼬치 회전기, 고급 포도주 바구니와 함께 말들, 마차들, 화물 마차들이 극비리에 스당에서 빠져나갔고, 도둑질할 때처럼 살금살금 불안한 걸음으로 캄캄한 도로를 통해 벨기에로 넘어갔다.

 

(568-569)

전투가 끝난 지 열흘이 넘었지만, 여기저기서 잊히고 버려졌던 부상병들이 계속해서 야전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중 네 명은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발랑의 빈집에 누워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의아했는데, 아마도 이웃 주민들이 도와준 것 같았다. 그들의 상처에 구더기가 우글거렸다. 결국 그들은 상처가 오염되어 죽고 말았다. 병상에 스며들어 환자를 죽이는 것은 아무런 치료 방법이 없는 바로 그 화농균이었다. 입구에서 괴저 내새가 코를 싸쥐게 했다. 배농관에서 역한 고름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수술 부위를 다시 열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뼛조각을 집어내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뒤이어 농양이 생겼고, 점점 부풀다가 터졌다. 얼굴이 흙빛이 된 지치고 야윈 불쌍한 환자들이 온갖 고통에 시달렸다. 어떤 환자들은 벌써 반쯤 해체된 시체처럼 꼼짝하지 않고 누워 숨소리도 없이 며칠을 보냈다. 또 어떤 환자들은 병세가 광증을 유발한 듯 땀에 흠뻑 젖은 채 불면으로 잠도 못 이루며 연신 헛소리를 했다. 어쨌든 조용한 환자든 시끄러운 환자든 간에, 염증에 생기면 만사가 끝이었다. 세균이 이 환자에서 저 환자로 옮겨다니며 그들 모두를 똑 같은 부패의 물결 속으로 휩쓸어갔다.

 

(658-659)

모리스가 이 광적인 꿈에 젖은 것은 코뮌 자체에 대한 은근한 불만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위협이 가중될수록 코뮌이 너무나 모순된 요소들로 서로 충돌하고, 쉽게 흥분하고, 일관성을 상실한 채 어리석은 짓만 거듭하는 것 같았다. 코뮌이 약속한 온갖 개혁 가운데 실현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고, 훗날까지 지속될 과업도 전혀 없으리라는 것이 확실했다. 특히 코뮌의 가장 큰 잘못은 서로를 찢어발기는 경쟁심과 의심에서 비롯되었다. 벌써 온건한 의원들, 불안을 느끼는 의원들이 더 이상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다른 의원들은 그날그날 터지는 사건의 추이에 따라 움직였고, 독재가 들어서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급진적인 혁명 분파들이 조국을 구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클뤼즈레, 돔브로프스키에 이어 로셀이 의심의 대상이 될 참이었다. 전시(戰時) 시민 대표로 임명된 들레클뤼즈조차 대단한 권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시 비쳤던 위대한 사회적 시도는 무능하고 절망에 빠진 이 의원들 주변에 시시각각 확대되는 고립감 속에서 점차 자취를 감췄다.

 

(705-706)

그때 장은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땅거미가 지는 이 시각. 불타는 도시 위로 서광이 비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가차없는 운명과 감당하기 힘든 재앙 속에서 분명 모든 것이 종말을 맞이했다. 프랑스는 그처럼 엄청난 불행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잇따른 패전, 지방 영토의 상실, 수십억 프랑의 배상금, 피로 물든 참혹한 내전, 사방에 널린 시체와 파괴의 잔해물, 돈도 명예도 없는 궁핍, 한마디로 다시 건설해야 할 하나의 세계! 그 자신도 찢기는 가슴을 거기에 묻었다. 그가 사랑한 모리스도 알이에트도, 그가 꿈꾸었던 행복한 내일의 삶도 폭풍우에 휩쓸려갔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글거리는 맹화 너머로, 싱그러운 희망이 더없이 맑고 고요한 하늘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영원한 자연, 영원한 인류의 신선한 소생이었다.그것은 희망을 품고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새로운 청춘이었다. 그것은 수액이 오염되어 잎을 노랗게 물들이는 썩은 가지를 잘랐을 때 푸르른 줄기를 힘차게 내뻗는 생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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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 노년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감속노화 실천법
정희원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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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우연히 정희원이라는 분의 강연을 보게 되었는데, 말을 조리 있게 잘 하시고, 그 분이 하라는 대로 다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 마치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할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심각하지는 않지만 건강의 이상 신호가 하나 둘 나타나기 때문에 건강에 좀 유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희원 님이 느리게 나이는 방법에 대한 강연을 보고는 아빠도 더 늦기 전에 습관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정희원이라는 분은 그 강연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검색해 보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오시는 유명한 분이더구나. 서울아산병원에서 노년내과 의사로 재직 중이라고 했어.

그냥 내과가 아니고 '노년내과'라는 분과는 처음 들어본 것 같은데, 좀더 전문적으로 보이더구나. 초고령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나라에 맞게 노년내과는 더욱 성장할 텐데, 그런 점에서 정희원 님은 전공도 잘 선택하신 것 같구나. 전문의 자격증 이외에 한국과학기술원 의과학대학원에서 이학박사도 취득했다는구나. 책도 여러 권 쓰셨는데, 좀더 건강한 노년의 생활을 대비해야겠다고 아빠도 한 권 사서 읽어보았단다. 그 책이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줄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이라는 책이란다.

사람들은 누구나 늙는단다. 하지만 똑같이 늙지는 않지. 어떤 사람은 나이 팔십에도 일상생활을 누리는데 문제가 없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같은 나이에 휠체어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어. 그런 결정이 젊은 시절에 어떻게 먹고 어떻게 운동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따라 좌우된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먹고 싶은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몸을 혹시 시킨다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얼마나 탓할까? 아빠도 더 늦기 전에 느리게 늙는 생활습관을 가져보려고 마음 단디 먹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단다.

 

1.

먼저 노화가 무엇인지 이해를 해야 한단다. 우리나라에서는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정의하고 있단다. 하지만, 숫자 나이는 의미 없다고 다들 이야기한다. 오늘날 65세를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단다. 지난 50년간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젊게 오래 사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단다.

===================

(27)

40이 새로운 20”, “50~60대는 신()중년이라는 말은 우리의 삶이 헬스용 고무밴드를 잡아 늘인 것처럼 오른쪽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2005년 프랑스에 살고 있는 40세 여자는 향후 44.7년을 더 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1952년에서는 30세 여자가 44.7년을 더 살 수 있었다. ‘40이 새로운 30’은 지난 50년간 우리가 건강하고 젊게 살 수 있는 10년을 얻게 되었다는 말이다. ‘신중년은 지금의 60대가 과거의 50대처럼 건강하고 사회적 활력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기대수명(한 시점에 태어나는 사람이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간)이 꾸준히 증가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건강수명도 늘어나면서 개개인의 생애 주기 자체가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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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노화는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란다. 그러므로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거야. 단순히 오래 사는 수명보다 건강수명이 중요하단다. 이 책에는 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건강한 노년을 위한 방법들을 제시해준단다. 그 방법들이라는 것이 새로운 것들이라기 보다는 건강 상식에 포함되어 어디선가 들어본 내용들이란다. 다시 한번 경각심을 일으키고 실천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꼼꼼히 읽어보았단다.

먼저 잘 먹기.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은 보통 먹는 것도 신경을 쓴단다. 현미밥을 먹고, 단백질 보조제를 먹고, 닭가슴살을 먹곤 하는데, 그것도 자신의 몸 상태에 맞게 먹어야 한다고 해... 저탄수화물, 저지방, 고단백질의 식단이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면서, 자신의 몸에 맞는 식사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했어. 특히 줄여야 하는 것 중에 단순당과 정제 곡물을 줄어야 한다고 하는구나. 잘 먹기는 아빠뿐만 아니라, 너희들과 엄마도 함께 알아두었으면 좋겠구나.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멀리해야 하니, 쉽지 않겠구나. .. 쉽지 않은 "잘 먹기"구나.

===================

(122-123)

단순당과 정제 곡물에 의해 혈당이 빠르게 오르는 상황에서는 즐거움의 호르몬인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머릿속에서 분비된다. 이 때문에 많은 현대인이 탄수화물에 중독되어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도파민과 엔도르핀에 대한 목마름이 생기기에 흔히당이 땡긴다고들 말하는 것이다. 당 중독 회로는 생활 습관 개선으로 사그라들게 만들 수 있다.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에게 우선 일주일만 단순당과 정제 곡물을 멀리하라고 권한다. 이렇게만 해도 오후에 늘 느끼던 머릿속의 안개가 사라지고 서너 시면 어김없이 당기던 단 음식이 어느 순간 떠오르지 않는다. 확실한 실천이 동반되면 1~2주 이내 부종이 개선되고, 저장돼 있던 글리코겐이 분해되어 체중이 3~4kg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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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먹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제대로 운동하기란다. 무작정 운동하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운동해야 하는 거야. 잘못된 방법과 잘못된 자세로 운동을 하면 오히려 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운동으로 즐겨 하는데 걷는 것도 올바른 자세로 제대로 걸어야 한다고 했어. 이 책에는 각 운동방법에 대해 그림이 함께 실려 있단다. 마치 체육 교과서처럼 말이야.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의자에 앉아서 생활을 한단다. 회사에 다니는 아빠나 학교에 다니는 너희들도 많은 시간 앉아서 지내잖니. 그렇다 보니 앉아있는 자세가 무척 중요하대. 오랫동안 잘못된 자세로 앉아 있으면 근골격계에 이상이 온다는 거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아빠의 자세도 엉망이라서, 다시 각성하고 올바른 자세로 앉았단다.

나이 들수록 근력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 책에서도 코어와 둔근, 그러니까 엉덩이 근육을 힘써야 한다면서 그림과 함께 소개해 주었단다. 역시 실천이 문제지. 아빠가 예전에 홈트레이닝을 한다고 앱을 깔았다가 한 달을 못 채우고 만 적이 있단다. 이 책을 보니, 다시 한번 홈트레이닝을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더 이상 늦게 않게 말이야.

….

마지막으로 뇌건강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단다. 아무리 신체가 건강하면 뭣하니.. 뇌가 망가져서 치매라도 걸리면 신체 건강도 아무 소용 없지. 뇌 건강을 지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수면이라고 했어. 우리 식구들은 충분한 수면 시간을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 같구나. 잠이 부족하면 운동을 해도 근육이 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그 외에 수면 부족은 만병의 원인이고, 충분한 수면은 만병의 양약이란다. 그리고 명상과 호흡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라고 하는데, 명상이 좋다는 것은 알아서 아빠도 몇 번 해 본 적은 있지만, 그 짧은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더구나. 꾸준함이 그렇게 힘든 일이야.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지 예비능이라는 필요하대.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만, 몸으로 따지자면 근육과 비슷한 거야. 나이 들면 근육 운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나이 들면 인지 예비능을 높여야 한대. 이 책에서는 인지 예비능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들을 소개해 주었단다.

….

강연은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처럼 빨려 들어가 들었는데, 책은 그 만큼은 아니었단다. 익히 알았던 건강 상식에 관한 이야기들이었고 중요한 것은 결국 실천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게 했어. 그동안 아빠가 건강에 대해 너무 소홀히 한 것에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단다. 너희들과 함께 오래 건강하게 살려면 더 늦기 전에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여야겠구나. 그리고 먹는 것도 무작정 맛있는 것만 찾는 것이 아니라, 잘 먹어야겠구나.

그럼, 잘 자려면 그만 독서편지를 마쳐야겠다. 이상.

 

PS,

책의 첫 문장: 매일 많은 분이 약과 처방전, 영양제 묶음을 들고 나의 진료실을 찾는다.

책의 끝 문장: 한 해 한 해 가장 소중한 1년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과학자들은 노화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시각을 점수화해서 연구에 사용한다. 뉴질랜드의 젊은 성인들을 관찰한 연구에서, 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반적으로 더 나쁜 생활 습관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동년배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 또한 좋지 않았다. 나이 듦에 대한 시각은 수명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이가 든다는 착각>을 쓴 예일대의 베카 레비(Becca Levy) 교수팀이 장년기의 미국인 660명을 23년간 관찰했더니, 노년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하는 이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보다 7.5년 더 생존했다.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더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수명을 7.5년 줄이는 효과는 평생 하루 한갑 정도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하다. - P10

노화의 정의는 ‘유전자와 환경이 시간의 흐름과 상호작용하여 세포, 조직, 기관, 개체에 일으키는 구조와 기능의 변화’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질병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체 구조와 기능이 쇠퇴하는 현상’으로 정의하지만,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많은 질병은 그 자체가 생물학적 노화의 결과인 경우가 많으므로 원인을 별도로 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생물학적 기전이 때에 따라 강화되기도, 약화되기도 하므로 생체 구조와 기능이 꼭 ‘쇠퇴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시간과 유전,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벌어지는 무척이나 광범위한 변화를 노화로 묶을 수 있다. 단, 태어난 시점부터 생식이 가능한 연령대까지의 변화인 ‘성장과 발달’ 과정은 통상적으로 노화에 포함하지 않는다. - P33

7만 8천 명의 캐나다 인구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더니 흡연, 신체 활동, 음주, 식사 네 가지 요인에 따라 20세기에 기대할 수 있는 여명이 남자는 16.8년, 여자는 18.9년까지 달라질 수 있음이 나타났다. 12만 명 이상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분석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50헤를 기점으로 기대할 수 있는 여명의 차이가 흡연 적정 체중, 신체 활동, 음주, 식사의 적절성에 따라 남자는 14.0년, 여자는 12.2년까지 달라짐을 보였다. 최근에 미국의 성인 72만 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낮은 신체 활동, 마약 중독, 흡연, 스트레스, 과음, 나쁜 식사, 나쁜 수면위생, 부족한 사회관계의 8가지 생활 습관을 합쳤을 때 40세를 기점으로 남성은 24년, 여성은 21년의 수명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 P82

순서를 바꿔 혈당 상승을 느리게 만드는 방법이다. 흰쌀밥을 먹기 전에 채소를 먼저 먹는 방법인데, 정제 곡물을 채소와 배합해서 복합 탄수화물처럼 만드는 것이다. 채소를 포함한 식이섬유  고기, 생선 등 단백질 -> 탄수화물의 순서로 먹는 것이 혈당을 느리게 올린다. - P121

기초대사량 계산하는 법
남자 : 88.362+(13.397 x 몸무게kg) + (4.799 x 키cm) – (5.677 x 나이)
여자 : 447.362+(9.247 x 몸무게kg) + (3.098 x 키cm) – (4.330 x 나이)
- P135

걷기는 정신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바르게, 그리고 긴장 없이 걷는 과정에서 여러 관절의 부드럽고 율동적인 움직임을 자각하며, 풍경과 소리를 느끼고,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살피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마음챙김 명상이 된다. 실제 숲속을 걸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감소한다는 연구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 활동을 할 때 우리의 뇌는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엔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기분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운동, 특히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은 뇌 유래 신경성장인자인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수치를 증가시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뇌의 BDNF 수치가 높아지면 신경 세포의 성장과 생존이 촉진되며, 신경세포 간의 연결이 강화되어 기억력과 학습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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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09-07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사이에 여기저기 아픈데가 생기더라구요. 노화가 왔다고 생각하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요.ㅜㅜ 노화는 내 삶의 결과란 문장이 확들어 옵니다.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네요. bookholic님의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기초대사량 계산해보니 1561.931 인데 정상인가요? ㅎㅎ )

bookholic 2024-09-07 22:11   좋아요 1 | URL
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미래의 몸은 지금 바꿀 수 있습니다..^^
마힐 님도 함께 노력해요...
기초대사량은 나이 대와 신체 조건에 따라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랑 비슷하신것 보면 정상이신 것 같습니다..ㅎㅎ
주말 잘 보내시고요~~
 
















(30)

번영하고 발전하는 18세기 프랑스에서 바로 그러한 계급 사이의 불균형이 날카롭게 의식되었다. 혁명은 가난한 사람들이 일으키지 않는다. 부유해진 사람들이 자신의 실력이 무시되고 멸시당한다고 느낄 때 모순된 제도를 타도하기 위하여 혁명을 일으킨다. 바르나브(Antoine Barnave)가 열렬한 혁명가가 된 동기는, 일곱 살 때 어머니와 함께 극장에 갔을 때 클레르몽 통네르라는 귀족에게 자기들의 좌석을 내주어야 했던 억울하고 불쾌한 기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많은 부르주아들이 품고 있었던 불평불만과 자존심의 훼손이 그들로 하여금 앙시랭레짐을 미워하게 하고 그것을 없애버리는 혁명으로 치닫게 하였던 것이다.


(52-53)

루이는 흔히 말하는 사람 좋은사람이었다. ‘사람 좋은사람이라는 개념에는 유능하다든가 흑백이 분명하다든가 의지가 꿋꿋하다든가 책임감이 강하다든가 혹은 믿음직하다든가 하는 따위의 뜻은 들어 있지 않다. 루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뚱뚱한 몸집에 어디로 보나 호인형 남자였다. 미식가이고 무도회와 사냥을 즐기고 특히 열쇠를 만드는 취미가 있었다. 취미를 취미 삼아 즐기는 정도라면 골치 아픈 정무에 휴식을 제공하는 오락거리쯤으로 생각하겠지만, 루이는 골치 아픈 정치는 아예 질색이고 사냥과 열쇠 만들기에만 전념하는 편이었다. 그는 국왕 참의회에서 골치 아픈 일이 논의되면 곧 피곤해져서 회의석상에서도 졸곤 했다고 한다. 그러한 인물이었으니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한들 무슨 유익한 일을 과단성 있게 해낼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에 직면하여 어찌 일을 제대로 판단하여 책임성 있게 처리할 수 있었겠는가?


(75)

파리의 공기는 날로 험악해졌다. 국민회의 결의해도 불구하고 왕이 군대를 비밀리에 이동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빵값은 매일같이 폭등하고 있었다. 파리의 빈민은 굶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빵집을 습격할 기세였다. 통계에 의하면 당시의 파리 시민 65만 중 10만이 갖가지 형태의 빈민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거지이거나 거지에 가까운 가난뱅이들이었다. 이 최하층 빈민이 아니라도 파리 시민은 대부분 극소수의 부자 말고는 곡가의 앙등을 견디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파리 시민은 곡가 앙등의 원인이 불황이나 흉작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일부 부유층의 사재기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짓을 하는 반사회적인 인간들이야말로 왕을 지지하고 국민의회를 반대하는 자들이라고 믿고 있었다.


(108)

바스티유를 함락시킨 지 2 2개월 사이에 프랑스 국민은 새 국민으로 변하였다. 그 새 국민의 마음속에 지난 6월 이후 3개월 사이에 갑자기 분노와 불만이 쌓였다. 지금까지 왕당파를 노려보던 프랑스 민중의 눈은 혁명을 반역하고 민중을 배신한 푀양파로 돌려지고 있었다. 민중의 분노와 불만은 막 제정된 결함투성이의 헌법을 그대로 두지 않을 태세였다. 그 헌법을 진정한 민주주의 헌법으로 새로 만들고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는 데는 앞으로 1년이면 족하였다. 혈통의 특권적 지배를 무너뜨린 민중은 이제 돈의 특권적 지배를 오래 참고 견딜 생각이 없었다. 푀양파와 같은 보수적 부르주아는 헌법의 제정으로 혁명은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민중은 혁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혁명은 계속 민중의 힘에 의해 추진되어 갔다.


(128)

파리 코뮌이란 무엇일까? 그 뜻은 파리 시의회(City Council)라는 뜻이었다. 파리는 본래 행정구역이 60구로 나뉘어 있었는데, 1790 5월에 48개의 섹시옹(section)으로 개편되었다. 섹이옹마다 1800명 정도의 능동 시민이 있었는데, 그들의 대표자들이 시 코뮌을 구성하는 반혁명 세력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런데 8 10일 사건을 계기로 각 섹시옹이, 특히 노동자들의 섹시옹이 그들의 코뮌 대표자들을 수동 시민으로 교체하여 코뮌의 능동 시민을 압도하게 되었다. 수동 시민은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없었으므로 압력에 의하여 능동 시민과 수동 시민의 차별을 없애고 보통선거에 의하여 새 국회인 국민공회 소집을 가결하였으므로 코뮌의 불법성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합법성의 기분은 이미 개정하기로 선포한 낡은 헌법의 원리에 의하여 측정될 것이 아니라 새 헌법의 원리에 의하여 측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 헌법의 원리에 보통선거의 원리였다. 그런데 이 보통선거의 원리를 입법회의로 하여금 승인케 한 것은 파리 코뮌이었으니, 입법회의는 파리 코뮌의 실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74)

로베스피에르의 연설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공회는 연설문을 인쇄하여 전국 코뮌에 배포하기로 가결하였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였다. 그 실수란, 그가 비난한 의원들의 이름을 밝히라는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의 비난은 정곡을 찌른 것이고 시의적절한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의 비난은 정곡을 찌른 것이고 시의적절한 것인 만큼 그의 비난에 대하여 뭔가 양심이 찔리는 데가 있는 자들은 모두 그의 비난에 대하여 뭔가 양심이 찔리는 데가 있는 자들은 모두 그의 비난이 자기를 향한 것이라는 위협을 느꼈다. 만일 로베스피에르가 비난의 대상자들 이름을 밝혔더라면 위협을 느낀 자가 그리 많지 않았을 터인데,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이 반대파의 수를 늘리고 그들의 위기의식을 더욱 격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로베스피에르가 무서웠다. 그가 손을 쓰기 전에 재빨리 선수를 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위협을 느낀 자들은 온건한 평원파 의원들을 회유하여 다음 날 공회에서 로베스피에르를 칠 계획을 세웠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회의 과반수 획득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구태여 선수를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두 번째 실수였다.


(179)

따라서 자코뱅의 세 번째 전통은 참 민주주의의 이상이었다. 평등주의적 민주의의이며, 진정한 자유에 대한 갈망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자코뱅이 제정한 1793년 헌법의 제5조는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면 봉기는 인민 전체에게도, 인민 각자에게도 가장 신성하고 불가결한 의무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 수호의 최후 수단으로서의 민중 봉기를 국민의 권리를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코뱅의 자유에 대한 사랑과 민주주의의 이상이 어느 정도의 것이었던가를 말해 주는 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229)

나폴레옹이 왕이 아니라 황제간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르봉 왕가의 왕족들이 루이 16세의 어린 아들을 루이 17세라고 칭하였고, 그가 일찍 죽자 루이 16세의 큰 동생 프로방스 백작이 루이 18세라고 자칭하면서 왕정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 판국에, 그들의 왕정을 부정하면서 다른 왕정을 창업한다는 것은 논리상 모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스스로 혁명의 아들로 자처하고 있었는데, 혁명이 낳은 왕이란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역사상 프랑스인 최초의 군인 황제인 샤를마뉴의 정통 계승자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아헨에 있는 샤를마뉴의 사당을 참배했을 뿐만 아니라 샤를마뉴처럼 가톨릭교회의 성별을 필요로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229-230)

그는 교황 피우스 7세에게 제관의 대관(戴冠)을 교섭하는 데 성공하였다. 피우스는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을 교회 앞에 무릎꿇게 함으로써 교회의 권위를 드높일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주재하기 위하여 파리로 향하였다. 1804 12 2일 노트르담 성당에서 성대한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대관식은 교황이 제관을 나폴레옹의 머리 위에 씌어주려는 극적인 클라이맥스에 이르렀다. 나폴레옹은 관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일반 관중 쪽으로 돌아서서 제 손으로 관을 제 머리에 위에 얹었다. 그의 제관은 다른 어느 누구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해서라는 것을 온 세상에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자기 손으로 황비 조제핀 드 보아르네에게 관을 씌워주었다. 이제 나폴레옹의 제위는 이중으로 성별되었다. 하나는 국민투표의 인민의 소리에 의하여 또 하나는 종교의식의 신의 소리에 의하여. 피우스 7세가 나폴레옹에게 걸었던 기대는 하나밖에 실현된 것이 없었다. 그것은 혁명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력을 다시 사용한 것이었다. 1806 1 1일부터 옛 역서가 다시 사용되었다. 이는 혁명의 종결을 알리는 또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58)

나폴레옹 제국은 족벌 제국이었다. 황제의 형제들과 친척 및 부장들을 위성국가의 통치자로 봉하였다. 그러한 그가 1810년에는 가장 사랑하는 막내 동생 루이를 네덜란드 왕위에서 몰아내고 네덜란드를 프랑스에 합병하였다. 루이가 네덜란드의 밀무역을 철저히 단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륙봉쇄의 성패가 나폴레옹의 운명을 좌우하고 나폴레옹 제국의 모든 정책은 대륙봉쇄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해안 지역들을 프랑스에 합병하게 된 이유도 거기 있었고, 심지어 교황령이나 일리리아 지방까지도 무리하게 합병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그런데 영국해에 접해 있는 가장 중요한 네덜란드에서 밀무역을 막지 못한다면 대륙봉쇄의 운명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305)

샤를도 형 루이처럼 67세의 홀아비였으나 형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활동적이고 정렬적이고 명쾌한 성격만이 형과 다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력과 사상도 매우 달랐다. 샤를은 왕당파의 두목으로서 헌장을 우습게 여기고, 프랑스 혁명을 악마의 장난으로 믿고, 왕권신수설을 진심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이 이제 왕권신수설을 부정한 헌장을 준수해야 하는 입헌군주가 되었으니 과연 그가 얼마나 헌장에 충실한 것이며 정당정치의 군주로서의 임무에 성실할 것인가는 매우 의심스러웠다.


(329-330)

그런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산업혁명을 경험한 선진 산업국가들은 빈부의 격차가 생기는 원인을 미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누구의 눈에도 명백히 나타난 빈부의 격차를 어떤 방법으로든지 줄이긴 해야 했다. 이런 생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실천에 옮기려는 운동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는데, 이를 사회주의라고 하고 그 운동을 사회주의운동이라 한다.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은 갖가지 이론과 형태로 19세기 선진 산업국가들의 역사를 색칠한다. 특히 19세기 프랑스의 역사가 그렇다.


(341)

이제 국민은 공화정을 확정할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는 1815년 이래 한번은 보수적인 또 한번은 자유주의적인 입헌주정을 시도했으나 두 번 다 실패하고 말았다. 전자는 프랑스 혁명 자체를 부정하려다가 실패하고, 후자는 프랑스 혁명은 인정하였으나 상층 및 중층 부르주아의 이익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실패하였다. 오를레앙 왕가는 프랑스 혁명이 내세운 국민주권의 원리를 시인하면서도 신흥 부르주아에 의한 권력 독점을 위해 지나친 제한선거를 고집하다가 무너졌다. 복고 왕정은 정통파를 만들어내고, 7월왕정은 오를레앙파를 만들어내어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정치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지만, 그들이 프랑스의 정치 무대를 차지하는 일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


(431-432)

파리 코뮌 기간 중 벌어진 공전의 참변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럽 문화와 현대 문명의 중심지 파리에서 어떻게 하여 그런 끔찍하고 야만스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코뮌 직후부터 거기에 대한 갖가지 해석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사학의 생명은 해석에 있다고 하지만 파리 코뮌에 대한 해석만큼 오늘날까지 극심한 대립을 보이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파리 코뮌의 해석이 처음부터 유달리 현저한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농후하게 띠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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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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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최근에 미국에 사는 교포 작가들의 책들이 번역 출간되는 일이 자주 있단다. 얼마 전에 새로 알게 된 미국 작가 이창래 님의 책들도 우리나라에 꾸준히 번역 출간되었더구나. 아빠는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많은 작품들을 쓰셨고,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었대. 이창래 님은 서울에 태어나신 이후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가게 되었다는구나. 그래서 이창래 님의 소설들은 우리나라와 관련된 소설들을 주로 쓰셨고,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작품은 많은 상들을 수상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 이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아빠가 너희들에게 이야기 해줄 책은 가장 최근작인 <타국에서의 일 년>이라는 작품이란다. 이번 작품은 우리나라 색깔을 거의 뺀 작품으로 한 청년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지은이 이창래 님의 <타국에서의 일 년>뿐만 아니라 이전 작품들에 대한 호평이 이어져서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쳐서 그런지, 아빠는 썩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단다. 누군가에게 추천까지는 못하겠더구나.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책은 취향이 읽는 이마다 다르니까

 

1.

책이 700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양이긴 한데, 스토리 라인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어. 그럼 최대한 요점만 뽑아서 이야기를 해볼게.

틸러라는 20대 초반의 남자가 있었어.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12.5%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어. 하지만 겉모습은 완전 백인이었단다. 그는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떠나고 줄곧 아버지와 둘이 지냈어. 아버지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한 사이는 아니었단다. 아버지와 아들의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나 할까.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경제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엄마의 부재가 늘 틸러를 그늘지게 만들었단다. 엄마가 집을 떠나기 전까지는 틸러와 사이 좋게 지냈기 때문에 틸러는 엄마와 추억을 가끔씩 꺼내곤 했단다.

틸러는 현재 30대 밸이라는 여자와 밸의 아들 빅터 주니어와 함께 지내고 있단다. 그렇다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었어. 틸러와 밸이 나이차가 많이 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연인 사이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 그런데 그들은 다른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았단다. 그들은 거의 집에서 은둔 생활을 했단다. 그 이유는 밸의 고발로 남편이 도망 중이었고 그로 인해 증인 보호를 받고 있었거든. 생필품을 살 때만 잠깐 나갔다가 오곤 했어. 빅터 주니어도 학교에 가지 않고 홈스쿨링으로 공부를 했는데, 틸러도 빅터 주니어를 가르치곤 했단다.

틸러가 밸이 함께 지내기 약 일 년 전에 틸러는 퐁이라는 중국계 사업가를 만나게 된단다. 틸러가 골프 캐디 아르바이트를 할 때 퐁을 만났는데, 퐁은 틸러를 좋게 봐서 자신이 하는 사업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어. 이제 막 청년에 들어선, 거칠 것이 없는 틸러는 퐁의 제안을 받아들였단다. 그 이후 틸러는 퐁을 따라 하와이, 중국 등 외국 경험을 하게 된단다. 이 소설은 틸러와 밸의 현재 지내는 내용과 틸러와 퐁이 과거에 지냈던 일들을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해준단다. 읽다 보니 틸러가 나이 많은 밸과 함께 지내는 것은 어머니의 부재를 밸로부터 찾으려는 것은 아닌가 싶었단다. 그리고 살갑지 않은 아버지와 관계를 퐁으로부터 보완을 하려는 것은 아닌가 싶었어. 만난 지 얼마 안되었지만 퐁에게 많이 의지하고 신뢰를 했거든.

퐁도 아픈 과거가 있었단다. 1966년 중국문화대혁명 당시 예술가였던 퐁의 부모님들은 박해를 받고,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고 했어. 고아가 된 퐁은 어떤 시골 마을에 배정을 받아 자라게 되었는데 그리 행복한 어린 시절은 아니었어.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사업가가 된 것이라고 했어. 퐁도 부모님에 대한 애정 결핍, 가족에 대한 애정 결핍을 틸러에게 찾으려고 했으려나. 주요 등장인물인 틸러, , 퐁 모두 외로움을 가득 안고 사는 사람들 같았단다.

 

2.

밸의 아들 빅터 주니어가 고작 여덟 살뿐인데 요리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빅터 주니어는 요리 동영상을 한번 보고 나면 곧바로 그 요리를 바로 만들었단다. 맛도 엄청 좋았어. 집에서 갇혀 지내던 빅터 주니어는 새로운 재미를 알고 이것저것 요리를 했고, 틸러와 밸은 빅터 주니어를 위해 요리 준비를 해주었어. 빅터 주니어의 요리 솜씨가 우연히 마을에 소문이 나면서, 위험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조금씩 교류를 넓혀가게 되었어. 밸은 그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틸러는 자신들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걱정을 했단다.

손님들도 초대하여 저녁도 함께 먹었는데, 틸러는 무척 민감해 있었고 그로 인해 다른 손님들과 트러블도 있었어. 밸과도 마찰이 빚어져서 밸은 혼자 집을 나가기도 했어. 틸러는 밸을 걱정하다가도 어린 빅터 주니어를 보살펴야 하는 책임감이 있었어. 그리고 빅터 주니어도 자신처럼 엄아 없이 자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빅터 주니어에게 더욱 잘해주고 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단다. 다행히 얼마 안가 밸이 다시 집에 돌아왔어.

….

, 이번에 틸러의 지난 일년 동안 퐁과 있었던 이야기를 해줄게. 틸러는 퐁이 함께 해외 출장을 가자고 해서, 호놀룰루와 중국 선전에 함께 와서 퐁의 친구들과 친척들, 그리고 동업자들과 만나게 되었단다. 줄곧 외롭게 지내던 틸러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을 거야. 퐁은 그곳에서 자무로 만든 건강음료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단다. 자무라는 것을 처음 들어봐서 찾아봤더니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생산되는 전통 의학 및 허브 음료라고 하는구나. 퐁의 친척들과 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자꾸 어머니와 추억이 떠오르고 부재에 대한 아픔이 느껴졌단다. 아무리 즐거워도 다른 이들로부터 채워질 수 없는 공백이란다.

퐁이 잠시 미국에 다녀온다고 했고 틸러는 퐁 없이 선전에서 지내게 되는데 약속했던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어.. 중요한 건 퐁이 거금의 사업자금을 가지고 갔다는 거지.. 퐁이 계속 오지 않게 되자, 퐁에게 투자금을 댔던 이들이 틸러를 감금하고 구타당하기도 했단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을 떠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그 길에서 밸과 빅터주니어를 만나게 된단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이 틸러를 성장시켰을까? 소설의 흐름은 성장소설처럼 보이지만, 아빠 생각에 틸러는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왜냐하면 여전히 엄마의 부재를 극복하지 못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나이 많은 밸을 만난 것으로 보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한 편으로 밸과 빅터 주니어와 함께 생활하는 것을 보면, 그 전과 달리 책임감도 생기고, 빅터 주니어를 자신과 같은 길을 가지 않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어. 하기야 청춘의 성장이 눈에 확 뜨이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소설이 무적 길긴 하지만 아빠는 큰 감흥은 받지 못했단다. 지은이 이창래 님의 이전 소설들은 어떤지 나중에 기회 되면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내가 이 위대하다는 나라 어디에 사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책의 끝 문장: 눈을 뜨고, 입을 크게 벌리고, 준비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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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정말로 저는 떠나야 돼요. 제가 여기 남아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자동인형인 줄 아세요? 감정 없는 기계처럼 보이나요? 내 입에 문 빵 조각을 빼앗기고 내 컵에 담긴 생명수가 엎질러지는 걸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가난하고 미천하고 못생기고 작다고 해서, 영혼도 마음도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잘못 생각하셨어요! 나도 당신처럼 영혼을 갖고 있어요. 당신과 똑같이 마음이란 걸 갖고 있어요! 하느님이 나에게 미모를 선물하시고 부유함을 허락하셨다면, 내가 지금 당신을 떠나는 게 힘든 것처럼, 당신도 나를 떠나기 힘들었을 거예요. 나는 관습이나 전통이나 죽어 없어질 육신을 매개로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게 말하는 거예요. 우리 둘 다 무덤을 지나, 하느님의 발치에 동등하게 서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동등하니까요!”

 

(37-38)

한동안은 아마 지금과 같으시겠죠. 아주 잠깐 동안요. 그 후에는 냉정해지실 거예요. 그러다 변덕스러워지시겠죠. 그러다 엄해지실 테고, 저는 나리의 마음에 들려고 많은 고생을 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저에게 많이 익숙해지시면 어쩌면 다시 저를 좋아하게 되시겠지요. 절 사랑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실 거라는 말이에요. 나리의 사랑은 6개월이나 그 이전에 거품이 되어 사라질 거예요. 남들이 쓴 책을 보니, 남편의 열정은 아무리 오래 지속돼 봐야 그 정도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친구와 동료로서는 저의 친애하는 주인께서도 저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121)

이제 어떤 상황인지 알겠지. 그렇지? 청춘과 한창 시절의 반을 말할 수 없는 비참함 속에서 보내고, 반을 쓸쓸한 고독 속에서 보내고 난 뒤에 처음으로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을 찾아낸 거요. 당신을 찾은 거요. 당신은 나와 꼭 맞는, 보다 나은 나의 인격이자 나의 선한 천사요. 나는 당신에게 강한 애정으로 묶여 있소. 당신은 선량하고 재능 있고 사랑스러워. 내 가슴엔 뜨겁고 엄숙한 정열이 있소. 그게 당신에게로 기울어져, 나의 중심과 생명의 샘으로 당신을 끌어들이고, 나의 존재로 당신을 감싸지. 순순하고 강한 불길로 타오르며, 당신과 나를 하나로 융합시키고 있소 이것을 느끼고 알았기 때문에 당신과 결혼하기로 결심했던 거요. 나에게 이미 아내가 있다고 말하는 건 공허한 조롱이오. 그녀가 끔찍한 악마일 뿐이라는 것은 당신도 확인했잖소. 내가 당신을 속이려 한 것은 잘못이었소. 하지만 당신의 성격에 존재하는 완고함이 두려웠소. 편견이 미리 뿌리를 내릴까 봐 두려웠소. 위험한 고백을 하기 전에 당신을 안전하게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소. 겁쟁이 같은 짓이었어. 지금처럼 당신의 고결한 마름과 아량에 먼저 호소했어야 했는데, 고통스런 내 삶을 솔직하게 열어 보였어야 했소. 내가 얼마나 더 고상하고 가치 있는 삶에 굶주리고 목말로 했는지를 당신에게 설명했어야 했소. 나의 결의가 아니라(이 단어로는 약해) 내가 성실하게 지극히 사랑하고 그 보답으로 성실하게 지극히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에 저항할 수 없는 나의 천성을 먼저 보여 주었어야 했소. 그 후에 내 정절의 서약을 받아 달라고 청하고, 당신의 서약을 나에게 달라고 청했어야 했소. 제인…… 이제 나에게 서약해 주시오.”

 

(191)

외롭다고 표현한 이유는, 내 눈에 보이는 골짜기 굽이에, 나무에 반쯤 가려진 교회와 사제관을 제외하고는 건물을 하나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저 멀리 끝에 부유한 올리버 씨와 그의 딸이 살고 있는 베일 저택의 지붕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눈을 가리고, 돌로 된 문설주에 머리를 기댔다. 하지만 곧 나의 작은 마당과 그 너머 풀밭을 가르는 쪽문을 밀어 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리버스 씨의 포인터인 늙은 개 카를로라는 것을 금세 알아보았다. 세인트 존은 팔짱을 끼고 거기에 기대 서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언짢아 보이는 얼굴로 근엄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들어오겠느냐고 물었다.

 

(207)

그가 새 책 한 권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시집이었다. 현대 문학의 황금기였던 그 시절의 운 좋은 독자들이 자주 볼 수 있었던 진정한 작품 중의 하나였다. 슬픈 일이다! 이 시대의 독자들은 그때만큼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운 내시길! 여기서 비난이나 불평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시는 죽지 않았고 천재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물욕의 신이 아무리 힘을 뻗친다 해도 이런 것들을 속박하거나 소멸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시와 천재는 언젠가 그 생명과 존재와 자유와 힘을 다시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하늘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강력한 천사들이요! 더러운 영혼이 승리하고 약한 영혼이 파멸에 눈물 흐릴 때, 그들은 미소 짓는다. 시가 파괴되었다고? 천재가 추방되었다고? 아니다! 범부들이여, 그렇지 않다. 질투심으로 그런 생각에 이끌리지 마라. 아니다, 시와 천재는 살아 있을 뿐 아니라, 권력을 쥐고 명성을 되찾을 것이다. 어디에나 퍼지는 그들의 신성한 힘이 없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의 비천한 지옥에 남겨질 것이다.

 

(334)

나는 이제 결혼한 지 10년째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그 사람을 위해 온전히 산다는 것이 무언지 알고 있다. 나는 스스로 대단히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내 생명인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만큼 남편에게 가까웠던 여자는 없을 것이다. 나만큼 절대적으로 그의 뼈 중의 벼요, 살 중의 살이었던 여자도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의 에드워드와 아무리 오래도록 같이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각자 가슴에서 뛰는 심장 박동에 싫증 내지 않듯이, 그도 나와 함께 있을 때 싫증이라는 것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다. 함께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혼자 있을 때처럼 자유로운 동시에 같이할 때처럼 즐겁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오래도록 이야기한다. 우리의 얘기는 서로의 생각을 좀 더 생생하게 귀로 전해 준다. 나는 온전히 그에게 신뢰를 보내고, 그는 온전히 나에게 신뢰를 바친다. 우리는 성격적으로 매우 잘 맞고 그래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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