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8)

첫 여섯 달은 깊은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침에 잠이 깼을 때 애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도 했다. 그녀는 늘 그보다 일찍 일어나, 그가 간신히 눈을 뜨기 적어도 40분이나 한 시간 전부터 돌아다녔고, 그래서 그는 빈 침대에서 기어 나와 잠이 덜 깬 상태로 빈 부엌에 들어가 자신이 마실 커피를 준비하는 데 익숙했다. 그럴 때마다 1층 반대편 끝 작은 방에서 그녀가 타자를 치는 딸깍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거나, 위층 어떤 방에서 그녀가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리곤 했다. 때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저 그녀가 책을 읽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아니면 집 안 다른 곳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 애나와 공유했던 평생의 삶 동안 형성된 오랜 습관의 영향하에서 몽롱한 채로 어떤 일을 할 때 그 모든 괴상한 기억의 실수가 벌어졌을 것이다. 장례가 끝나고 겨우 열흘이 지나고 난 아침에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들고 부엌 의자에 앉아 있다가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쌓인 펼쳐진 잡지들 쪽으로 우연히 눈길이 내려갔을 때 그랬다.

(68-69)

두 달 뒤 그는 환지통 에세이를 쓰는 일에 파묻혀 있다. 은유적 적합성이 점점 분명해졌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환지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게 어디로 튈지 지금 시점에서는 알 수 없고 이걸 끝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지만 당장은 이것이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뇌 지도, 감각 수용체, 신경 회로 연구를 계속해 나갈 동기가 된다. 이것은 정신적, 영적 통증을 몸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노력의 한 부분이다. 그는 죽은 자식을 애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죽은 부모를 애도하는 자식,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여자,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이들의 고통이 신체 절단의 후유증과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 본다. 사라진 다리나 팔은 한때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단된 일부, 자신의 환상에 속하는 부분이 여전히 깊고 지독한 통증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치료가 가끔 이 증상을 완화해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 치료법은 없다.

(77)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죽으면 산 자가 죽은 자를 삶과 삶이 아닌 것 사이의 일시적 림보 같은 곳으로 계속 들어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 자마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은 자의 의식은 영원히 소멸한다. 애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더니 그가 전화기를 든 이후 처음으로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한 말들 알아듣겠어? 바움가트너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애나의 숨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전화선이 죽어 버린다.

(123)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어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우리가 가진 것은 좋은 거지만 이제는 이 정도 좋은 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어쨌든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째서 나와 결혼한다는 생각이 당신에게 두려움을 주느냐는 거예요.

(130)

50여 년이 며칠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나니 내 인생이 흐릿하게 한 덩어리로 쏜살같이 흘러가 버린 듯한 느낌이다. 나는 늙었지만, 날들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에 나의 많은 부분이 아직 젊게 느껴진다. 따라서 손에 연필을 쥘 수 있고 눈앞의 문장을 볼 수만 있으면 여기 도착한 아침 이후 해온 일과를 똑같이 할 생각이다. 마침내 더 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일어나 떠나면 그뿐이다. 그때 너무 늙어 걸을 수 없다면 교도관에게 도와달라고 할 것이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나를 배웅해 줄 게 분명하다.

(133)

얼마 전, 40대와 50대 초반 시절 자기보다 나이 많은 친구나 동료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 지퍼를 올리는 걸 잊고 나오는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허리띠 바로 아래 헛간 문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레스토랑의 자기 자리로 느릿느릿 돌아오곤 하던 70대 중반과 80대 초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친구들. 처음에 바움가트너는 이 해로울 것 없는 실수가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재미는 없어졌다. 그때쯤에는 볼 만큼 봐서 열린 바지 앞자락이 종말의 시작임을, 세상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긴 비탈로 가는 첫걸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지기 시작하자-지난 두 주 동안 네 번-그 클럽의 정회원이 되는 데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릴지 궁금해진다.

(151)

마흔두 살 된 남자가 막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었다. 젊은 아내가 갓난아기를 병원에 두고 라이언스 애비뉴 양장점 위의 텅 빈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는 부엌 카운터에 있는 호밀빵 덩어리에서 한 조각을 잘라 내고 청어를 조금 준비하고, 작은 유리잔과 슬리보비츠 한 병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식탁에 앉는다. 그는 먹고 마시고, 먹을 게 사라진 뒤에도 두세 잔 더 마신다. 그에게는 엄숙하지만 의기양양한 순간, 평생 다른 어떤 때와도 다른 시간이다. 감정의 큰 파도가 일어 정신이 강인하고 때로는 마음마저 차갑고 단단한 이 남자를 삼킨다. 그의 내장에서 대양이 일렁이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며 그 자신으로부터 그를 끌어내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마흔두 살에 마침내 아버지라, 그는 생각한다.

(184)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은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알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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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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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천선란 작가님의 연작소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천선란 작가의 소설들은 아빠의 취향에 맞는 것 같아. 그래서 신간이 나오면 꼭 챙겨보곤 한단다. 이 책은 지난 해에 나왔는데 이번에는 좀 늦었구나. 천선란 님은 주로 SF 소설을 쓰셨는데,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인간미 짙은 소프트 SF 소설이 읽기 편했단다.

이번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는 좀비를 다룬 소설이란다. 좀비라는 소재는 영화, 드라마 등 많은 매체에서 다루어서 좀 식상할 수 있지만, 천선란 님은 자신이 추구하시는 인간미를 더하는 것으로 색깔을 달리하신 것 같았어. 이 책은 연작소설이라고 했어. 3개의 작품이 실려 있단다. 그 세 작품 모두 좀비가 된 지구가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란다. 미래의 어느날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좀비가 되었고, 지구는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방호복을 입지 않으면 외출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단다. 그렇게 황폐화된 지구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 세 편을 들려주고 있단다.

 

1.

첫 번째 작품은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라는 작품이란다. 주인공은 옥주와 묵호 이렇게 두 사람이야. 필리핀에서 시작한 전염병은 처음에는 단순한 열병인줄 알았는데 치명적인 이 병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단다. 그런데 이 열병은 변형되어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었단다. 이 좀비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 보던 좀비와 비슷했어. 말도 하지 못하고 인간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런 존재였고 다른 사람들을 물어서 좀비로 만드는 그런 존재였어.

묵호는 진균학자로 발병 초기 한국인 관광객이 병에 걸렸을 때 조사단 중 한 명으로 필리핀에 갔었어. 그도 죽을뻔했다가 살아나서 돌아왔단다. 옥주와 묵호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그들은 다른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에 탑승할 기회를 갖게 되었어. 그들이 탄 우주선에는 모두 20명이 탑승했고, 320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향하고 있었어. 옥주가 동면 장치에서 깨어났을 때 그들이 가기로 했던 행성이 아닌 다른 행성에 도착해 있었고, 우주선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어. 누군가 의도적으로 선체 내부 기계들을 고장 낸 것처럼 보였고, 핏자국도 여기저기 있고, 모두들 죽어 있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주선 안에 AI 키사한테 물어보니, 탑승객 중에 타일러 조라는 사람이 감염된 상태에서 탑승했다는 거야. 타일러 조는 깨어나서 사람들을 물어뜯고 죽였다는 거야. 묵호도 타일러 조에게 물렸다고 했어. 묵호는 자신이 물렸음에도 옥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옥주의 동면장치를 타일러 조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고 했어. 그렇게 해서 옥주는 피해를 보지 않았던 거야. 묵호는 볼살이 뜯겨 잇몸과 치아가 다 드러나 있었어. 묵호는 정신을 잃고 중태에 빠져 있는 상태였어. 묵호는 좀비로 변한 것은 맞지만 다른 좀비들과 달리 전두엽과 해마가 살아 있어서 아직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거야.

우주선 안은 여전히 타일러 조가 돌아다니고 있었어. 옥주는 도망가야 했어. 옥주는 묵호를 데려가려고 했으나, AI 카사는 안 된다고 했어. 타일러 조가 옥주를 발견했어. 이때 정신을 차린 묵호는 타일러는 잡고 막고 있었어. 옥주가 도망갈 시간을 만들어준 것이지결국 묵호는 논개처럼 타일러 조를 죽이고 자신도 함께 죽었단다. 옥주는 새로운 행성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단다.

 

2.

두 번째 작품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라는 소설은 좀비로 많은 이들이 감염된 지구에서 도망가지 도 못 가고 숨어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나와 아버지와 병든 어머니와 함께 80년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어. 어머니의 병명은 정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증상으로 보았을 때 치매에 걸리신 것 같았어. 그런데 그 병에 걸리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숨소리로 대화를 한다는 이야기가 가슴 아프면서도 그래도 소통할 수 방법을 찾아서 안도감도 들더구나. 지은이의 실제 어머니를 모델로 한 것 같구나.

====================

(156)

엄마는 이제 숨으로 우리랑 대화할 거야. 그러니 잘 듣고, 온몸으로 기억해 둬. 아가가 가장 가까이서 들었던, 한때 너의 숨이기도 했던 숨의 말을 잘 들어야 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숨에 모든 말이 새겨져 있으니까. 어렵지 않아. 집중의 문제지. 긴장할 때 숨은 빨라지고, 편안할 때 숨은 느려지고, 두려울 때 숨은 딱딱해지고, 슬플 때 숨은 축축해진단다. 화가 날 때 숨은 잘게 쪼개지고, 답답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욕망할 때 숨은 뜨거워지고 낙담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사랑을 느낄 때 숨은 찬란해지고 그리움을 느낄 때 숨은 잠시 멈춘단다. 그리고 이런 숨은 코나 입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빠는 엄마의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어깨와 등에서도 숨을 느낀단다. 특히 엄마처럼 숨으로 소통하는 인간들은 더 잘 느낄 수 있어. 엄마 품에 안겨봐. 아가를 가장 온전하게 안고 있던 품. 한때 아가의 전부였던 품. 오르락내리락하는 숨의 리듬을, 아가가 영원히 기억했으면 좋겠어. 아빠는 그럴 거거든. 그럴 수 있거든.

====================

아파트 밖에는 좀비들이 득실거려서 밖에 나가기 쉽지 않았어. 하지만 먹거리가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지. 어느날 아버지가 그렇게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어. 좀비로 변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아버지가 사라진 지 3.. ‘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어. 그러다가 은미라는 여자를 만났어. 은미는 왼쪽다리를 절단한 상태였는데, 지체장애인 딸 노윤이 있었어.

노윤을 안전한 아파트에 피신시켜 두고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나와 있던 거야. ‘는 은미에게 50내 남자를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모른다고 했어. ‘는 마지막으로 지구를 떠날 수 있다는 광고 전단지를 보았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곳으로 가려고 했어. 은미는 그 광고 전단지를 믿지 않았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그들과 함께 했어. 딸 노윤이도 데리고 왔어. 노윤이는 보육원에 있었는데 그곳에는 옥주와 묵호가 일하고 있었단다. 그렇게 첫 번째 소설과 이어져 또 다른 재미도 주는구나.

헬기 소리가 났어. 그들은 아파트 옥상으로 가서 헬기를 부르려고 했어. 그렇게 가는 길에 는 좀비로 변한 아빠를 보고 말았어. ‘는 잠시 망설였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다시 발걸음을 옮겨 옥상으로 갔어. 하지만 헬기는 멀어져 갔어. 소리를 지르지만 헬기에서는 들리지 않았어. 헬기로 총을 쏘았단다. 그렇게라도 존재를 알려서 헬기가 돌아오게 하려고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그들은 과연 안전하게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을까.

….

 

3.

세 번째 작품은 <우리를 아십니까>라는 작품이야. 레즈비언 커플로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란다. 주인공 는 뇌종양에 걸리고, 존엄사 센터를 찾아갔어.  ‘의 아내는 언젠가 깨어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를 위해 있었던 일들을 녹음기에 녹음해 두었단다. 예정대로 존엄사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간호사가 오더니 를 물어서 감염시켰단다. 간호사도 좀비 바이러스 보균자였던 거야. ‘는 좀비가 되었지만 얌전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침대에 누워만 있었단다.

원래 좀비로 감염이 되면 뇌가 완전히 망가져야 하는데, 여전히 사람일 때의 기억을 갖고 있었어. 아무래도 뇌종양이 좀비의 일반적인 상태를 억제하는 것 같았어. 몇 년이 지나고 아내는 어떤 소녀 보균자에게 물려서 감염이 되었어. 아내는 좀비로 완전히 변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인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때 존엄사 간호사로부터 얻어 보관하고 있던 주사를 자신과 에게 반씩 넣고 정신을 잃었단다.

그런데 그때 가 깨어났어. 아내가 그동안 녹음해 둔 것을 듣고 있었던 일을 알게 되었어. 그들의 집에는 그들이 키웠던 거북이 장풍만 제대로 된 생명체로 존재했고, 아내는 좀비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어. 자신은 좀비의 몸에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고.. ‘는 장풍을 바다에 데려다 주기로 하고, 아내를 카트에 넣어서 같이 데리고 갔어. ‘에게 나타난 또 하나의 증상, 장풍이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어. ‘는 장풍이를 바다에 놓아주고 아내와 둘이 바다에 앉아 있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

세 연작소설 중에 <우리를 아십니까>를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희망을 던져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구나. 비록 몸은 좀비의 몸이었지만, 옛 기억 다 가지고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으니 인간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 그 존엄사에 사용했던 약과 뇌종양을 잘 이용하면 좀비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

아빠가 게을러서 소설을 읽은 지 한참 뒤에 독서편지를 쓰다 보니 기억력이 오락가락 하는구나. 메모를 한 것이 있긴 한데, 그것도 제대로 적혀있지 않고.. 그래서 오늘은 잘못 이야기한 부분이 있을 거야. 이야기 흐름의 전체적인 맥락만 참고하면 좋을 듯.. 너희들이 좀 여유 있으면 이 책을 읽어봐도 좋으련만숙제하느라 이런 재미있는 소설을 보지 못해 안타깝구나. 그나저나 이 소설 속 같은 무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내 목소리 들려?

책의 끝 문장: 이제 이 행성에는 우리뿐입니다.

 


옥주, 너는 찾았니?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줄 줄 알았던, 바깥에서 얻어 온 상처를 감싸줄 줄 알았던, 언제든 돌아갈 둥지인 줄 알았던 하나뿐인 부모가 우리의 삶을 종말로 만들려 했던 이유. - P49

꼭 날아야만 새인가? 우리를 정확히 분류하려면 공룡까지 거슬러 올라 가야 해. 고작 인간 따위 따위 뿌리의 깊이가 달라. 우리에겐 날개와 부리가 있어. 알을 낳지. 그런 여러 특징이 있어. 하지만 날개가 꼭 날기 위해 있다고는 할 수 없지. 모든 인간이 자기 신체를 전부 활용하며 사는가? 사용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닌가? ‘비행’은 날개의 활용일 뿐, 새의 정의가 될 수는 없지. 마찬가지로 ‘보행’도 ‘언어’도, 다리와 입의 활용일 뿐 인간 본질이 될 수 없지.

이런, 아빠가 너무 나약한 소리를 하는구나. 아빠가 이럴 때마다 이해해 줄 수 있니? 사실 나약한 소리처럼 들렸겠지만, 이건 정말로 약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야. 더 단단해지기 위해 마음에 낀 거품을 빼는 거란다. 거품을 뺄 줄 알아야 해. 그래야 밀도가 높아져.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거품을 빼는 과정은 필수야. 그러니 아빠가 하는 나약한 말들을 깊이 새기지 말고, 여러 번 곱씹지 마. 온도가 높아지면 지워지던 펜 기억나? 그 펜으로 쓴 문장이라 생각해. 제비의 따뜻한 온기가 닿으면 거품이 다 터져버려 사라지는 문장들이야. - P146

"태어난 게 벌이 될 수는 없어. 살아 있는 게 죄인 사람은 없어. 오해하지 마. 가끔 벌처럼 느껴질 땐, 등을 봐. 그 사람의. 노윤이의. 한참 동안 바라보면 햇살에 반짝이는 털들이 보여. 특히 뒷덜미에. 숨을 쉴 때마다 그것들이 움직여. 광대에도 털이 나 있어. 반짝여. 어깨가 미세하게 위로, 아래로, 또 위로, 다시 아래로… 숨을 쉴 때마다 바뀌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어서 더 편하고 때로는 슬퍼. 얇은 옷에 앙상하게 튀어나온 척추가 보여. 오돌토돌. 가녀리지만 단단함이 느껴져. 뼈로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몸에도 이토록 단단한 뼈가 있구나. 무너지지 않겠구나. 나약하지 않구나. 살아 있구나. 살아 있는 걸 마음에서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는데 미리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야지." - P195

‘우주를 정의 내린 건 인간이잖아요. 저 밖에 있는 공간을 우주라고 부르자고. 저기에 우주가 있다고. 더 큰 것에 작은 것이 담기는 게 진리니까. 우주는 제 안에 인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팽창하지만, 인간은 우주를 알고, 우주를 명명하고, 우주를 헤아리려 하잖아요. 사람들은 우주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예요. 우주가 우리 뇌에 담긴 거예요. 더 큰 쪽이 늘 작은 걸 이해해요. 더 큰 게 언제나 더 고요하고, 잠잠하고, 잘 견뎌요. 노윤이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참고, 견디고 있어요. 세상이 노윤이를 이해하는 속도보다 노윤이가 세상을 훨씬 빨리 이해했으니까.’ - P206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바다는 변하지 않거든. 변덕이 심해. 종잡을 수 없어. 하지만 파도가 닿지 않는 바다 깊은 곳은 묵묵해. 아름다워. 휩쓸리지 않아. 지구의 대부분은 바다였어. 지구는 원래 묵묵해. 담담하고. 하지만 변했어. 인간이, 그렇게 했어.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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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오스의 바위
아민 말루프 지음, 이원희 옮김 / 교양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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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민 말루프의 <타니오스의 바위>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이 책도 아마 알라딘 SNS 북플에서 알게 된 책으로 기억해. 책 소개를 읽어보니 재미있을 것 같고, 지은이 약력을 읽어보다가 낯익은 책 제목이 보이더라구. 예전에 엄마의 친척분이 엄마한테 주신 책 중에 <동방의 항구들>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의 지은이더구나. 지은이 아민 말루프는 레바논에서 베이루트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기자로 일하던 중 레바논 내전이 일어나 프랑스로 귀화한 이후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라고 하는구나. 오늘 이야기할 <타니오스의 바위> 1993년에 쓴 작품으로 프랑스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프랑스 콩쿠르 수상작을 두어 권 읽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괜찮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 책에 대한 기대치도 조금 더 올라갔단다.

<타니오스의 바위>는 소설 속 화자의 고향, 레바논의 크파리야브다의 전설로 내려오는 타니오스의 바위에 관한 이야기란다. 타니오스의 바위는 타니오스 키크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어. 타니오스는 1840 11 4일 사라진 이후 아무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단다. 크파리야브다는 산악 지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데, 영주에 의해 다스려지고, 영주의 직책 이름은 샤이크였단다. 샤이크는 세습된다고 했어. 이야기가 펼쳐지던 시기의 샤이크는 프란시스라는 사람인데 이 당시의 샤이크가 워낙 유명해서 샤이크 시대라고 하면 프랑시스가 샤이크 역할을 맡았던 시대를 말한다. 소설에서도 호칭을 샤이크로 하니 아빠도 샤이크라고 할게.

샤이크는 마음의 권리를 지키려고 노력을 하여 상위 관리자들을 설득하여 다른 마을보다 세금도 적게 내고 있었어. 그 밖에 일들을 통해서 마을사람들에게 인기도 좋았단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아빠가 생각하기에 큰 흠이긴 하지만 여자를 너무 밝힌다는 거야. 마을의 여자들을 모두 자신의 소유하고 생각하는 못된 여성관을 가지고 있었어. 대주교도 그런 샤이크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집안 좋은 가문인 이웃 요르드 영주의 딸을 소개해주어 결혼을 했단다. 그렇게 명망 있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면 바람기가 잦아들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 버릇이 어디 가겠니. 그의 아내도 남편의 바람기에 화가 많이 났지만 샤이크의 바람기는 시들 생각이 없었어. 마을의 여자들은 샤이크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옷을 추레하게 입고 다녔단다. 그런데 라미아라는 여자는 그렇게 추레하게 입고 다녀도 미모를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단다. 라미아는 샤이크 집사 게리오스의 아내, 그러니까 결혼한 사람인데도 샤이크의 눈에 걸려들었단다. 샤이크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권위와 힘에 이길 수 없어서 그만 질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해가 바뀌고 라미아는 아들을 낳았어. 겉으로는 집사 게리오스의 아들이었지만, 실제로는 샤이크의 아들이었어. 샤이크는 자신도 눈치를 챘는지 라미아의 아들 이름을 자신의 선조 이름으로 지어 주려고 했는데, 게리오스의 처형인 후리예가 영리하게 넘어가서 이름은 게리오스와 라미아가 생각하고 있던 타니오스라고 지었단다. 소설 제목에 나오는 타니오스가 이렇게 태어났단다. 1821 6월이었어.

 

1.

라미아가 낳은 아들이 샤이크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았어. 샤이크의 아내는 수모를 참을 수 없다면서 아들 라드를 데리고 처가로 가버렸단다. 샤이크는 처가에 가서 장인어른께 이르기를,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단다. 하지만 샤이크의 아내는 한동안 처가에 머무르기로 했어. 라미아의 언니 후리예는 어렸을 적 인연으로 샤이크와 허물없이 지내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어. 후리예는 샤리크를 찾아가 성경에 손을 얹게 하고 타니오스의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라고 했고, 샤이크는 그렇게 했단다. 그래서 타니오스가 샤이크의 아들이라는 소문은 일단 일단락되었어.

얼마 후 샤이크의 아내는 요르드 영주의 병사들을 대거 데리고 왔단다. 병사들은 크파리야브다에 머물면서 식량을 축내고 온갖 횡포를 부렸어. 샤이크 아내 나름대로 복수의 방식이었어. 어찌나 많이들 먹어대는지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메뚜기 떼라고 불렀단다. 그들은 한동안 식량을 축내고 돌아갔단다.

타니오스가 자라서 친구들과 놀다가 싸움이 붙었어. 이유는 친구가 타니오스에게 타니오스 키크라고 부르며 조롱했기 때문이야. 키크는 요리의 한 종류인데, 샤이크가 키트를 요리해 달라고 타니오스의 엄마를 불러서 다른 짓을 했다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 거야. 그래서 타니오스는 속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샤이크라고 의심했어. 어느날 타니오스는 마을을 배회하는 샤이크의 전 집사 루코즈를 만났어. 루코즈는 무슨 잘못을 해서 15년 전에 마을에서 추방된 사람이었는데 마을에 다시 나타난 거야.

루코즈는 크파리야브다 접경지역에 큰 땅을 사서 농장으로 만들고 큰 부자가 되었어. 루코즈는 타니오스와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졌는데, 루코즈는 타니오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겠다고 했단다. 루코즈가 추방된 사람이란 것을 타니오스도 알고 있었어. 그런데 이야기해보니 그리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지. 그가 자신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한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 그래서 비밀로 했단다. 아참, 루코즈에게 아스마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타니오스는 그 딸에 반하게 된단다.

샤이크의 처가로부터 아내가 병에 걸려 죽었다는 소식이 왔어. 샤이크는 비록 오랫동안 따로 살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내이니 장례사절단을 꾸려 요르드에 갔단다. 샤이크는 남편으로 장례식에 온 손님들을 받기도 했어. 그때 영국 출신 스톨튼이라는 목사를 처음 만나게 된단다. 당시 그 마을이 대부분 가톨릭이었는데, 흔치 않은 개신교 목사를 만났단다. 샤이크는 가톨릭 대주교와 갈등을 하고 있었어. 대주교가 장례식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아들 라드를 사흘라인에 있는 목사가 운용하는 학교에 보낼 생각을 했단다. 후리예의 남편인 부트로스 사제는 이런 사실을 알고 대주교를 찾아가 설득했지만 대주교는 끝내 장례식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단다. 그래서 샤이크는 라드를 스톨튼 목사가 운영하는 학교에 보냈는데, 타니오스도 함께 보냈단다. 타니오스는 유능한 학생이었고, 라드는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 싶어했단다.

 

2.

잠시 당시 레바논 상황을 이야기했구나. 이 소설의 배경인 1820년대에서 1840년대까지의 레바논과 주변국에 대한 역사를 아빠는 당연히 모르지.. 책에 나와 있는 것을 조금 정리했는데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 이집트의 왕 무함마드 알리의 아들 파샤가 새로운 동방제국을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 이집트가 동방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소식은 유럽에 전해지고 유럽국가들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달랐어. 영국은 이집트의 이런 의도를 반대했고, 프랑스는 지지했단다. 레바논 국경지대 산악지대를 통치하던 아미르는 파샤의 공격에 항복을 하고 산악지대는 이집트의 지배를 받게 되었어. 산악지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집트 지배를 반대했단다. 그 산악지대에 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크리파야브다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이집트는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면서 샤이크의 토지를 몰수한다고 했어. 이에 샤이크의 재산은 점점 줄어들었어.

사흘라인 스톨튼 목사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라드와 타니오스. 라드는 목사의 부인이 키우던 꽃들을 모두 칼로 베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단다. 그 외에도 라드는 계속 말썽만 부렸어. 결국 학교에서 잘렸는데 샤이크는 타니오스도 못 가게 했어. 학교에 못 가게 된 타니오스는 단식 투쟁을 했고, 이모 후리예가 타니오스를 업고 목사의 집에 데려고 왔어. 목사 부부는 타니오스가 그들의 집에 머물면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었단다. 그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타니오스의 머리가 하얗게 세었단다. 타니오스는 루코즈의 딸 아스마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아스마도 타니오스를 좋아해서 둘은 사랑하는 사귀게 되었단다.

1838년 새해 첫날 큰 지진이 일어났단다. 크파리야브다 마을에서도 서른 명이나 죽었어. 1838년은 지진을 시작으로 괴질, 산사태, 기근 등 재앙이 이어졌단다. 그런 와중에 이집트 군대가 마을에 침략하자 마을 사람들도 출동했어. 이집트 사령관은 샤이크에게 회동을 갖자고 했어. 루코즈에 집에서 하자는 소리에 샤리크는 반대했어. 추방당한 이의 집에서 할 수 없다고 했지. 아들 라드가 대신 참석했는데, 라드는 루코즈의 딸 아스마를 보고 첫눈에 반했단다. 라드는 루코즈에게 아스아와 결혼하고 싶다고 청혼을 했고, 루코즈는 반갑게 허락했단다. 아스마는 타니오스와 사랑하는 사이인데 말이야. 그 당시는 아버지가 딸의 결혼을 결정할 수 있던 시기였단다.

이 소식을 들은 타니오스는 분노를 했어. 그동안 로코즈와 나름 친하게 지냈는데, 자신을 그렇게 배신을 할 수 있냐면서 분노를 했지. 타니오스는 이 결혼을 어떻게 하면 막을까 생각했단다. 타니오스의 형식적 아버지이자 샤이크의 집사 게리오스는 라드가 루코즈의 딸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샤이크에게 이야기했어. 샤이크는 추방자의 딸과 결혼을 당연히 반대했지. 게리오스는 이 일을 대주교에게 중재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대주교는 루코즈를 찾아가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딸을 보고는 자신의 아들과 루코즈의 딸을 결혼시키려고 했단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게리오스는 대주교에게 따지러 갔다가 우발적으로 대주교를 죽이고 말았어.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타니오스는 게리오스에게 도망가자고 제안을 하고 둘은 키프로스 섬으로 도망을 갔단다. 대주교의 죽음을 조사하러 이집트 군이 왔는데 그들은 수색을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재산을 약탈해 갔단다. 그리고 라드가 이 사건에 관여되었다고 판단하고 체포해 갔단다.

 

3.

게리오스와 타니오스는 키프로스 섬에서 숨어 지냈어. 그곳에서 파힘이라고 하는 동향 사람을 만나서

고향 소식을 간간히 들었단다. 타니오스는 키프로스 섬에서 타마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어. 게리오스와 타니오스가 피신 온 지 일 년쯤 되던 날 파힘은 이집트에 항복을 하고 산악지대를 통치하던 아미르가 죽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어. 그래서 그들도 더 이상 도망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그래서 파힘과 함께 고향에 돌아가기로 했단다. 그런데 타니오스는 세관원의 미신 때문에 다음 배를 타야 했어. 타니오스의 머리가 하얗게 세었는데 그 세관원이 백발이 배를 타면 가라앉는다는 미신을 가지고 있었어.

다음 배를 기다라면서 여인숙에 머물렀는데, 여인숙 주인이 이야기하기를 아미르가 죽지 않았다는 거야. 알고 보니 그렇게 친절하던 파힘이 아미르의 첩자였던 거야. 파힘에 속아 고향으로 돌아온 게리오스는 곧바로 처형당하고 그 사건과 관여되었다고 의심받아 체포 중이던 라드도 교수형에 처해졌단다.

아들을 잃은 샤이크는 복수를 다짐했지만 이집트 군대의 지원을 받는 아미르의 힘을 셌단다. 어느날 아미르의 앞잡이 살룸이 와서 샤이크를 체포해갔어. 그러면서 봉건제가 끝났으니 기뻐하라고 했어. 마을은 추방자였던 루코즈가 관리하게 되었다고 했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고 루코즈의 말을 따르지 않았지. 남편 게리오스를 잃은 라미아는 언니 후리예의 집에서 지냈단다. 루코즈는 크파리야브다 마을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착한 일도 해보려고 했으나 사령관은 강력한 조치를 하려고 명령했어. 루코즈는 사령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단다. 그리고 루코즈와 이집트 사령관은 이웃 사흘라인도 공격하여 지주를 포함하여 수십 명을 죽였어. 사령관이 루코즈에게 명령하기를 크파리야브다 마을 사람들에게 무기를 집집마다 하나씩 빼앗으라고 했으나 루코즈도 알고 있었지무기를 갖고 있는 집들이 거의 없다고루코즈는 조종당하는 독재자가 되어갔어.

한편 타니오스는 키프로스에서 스톨튼 목사를 만나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단다. 영국 순양함을 타고 갔어. 학교에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던 타니오스는 영국군의 통역과 번역 일을 맡았어. 당시 영국군은 산악지대를 공격하여 승리하고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단다. 영국군은 아미르와 항복문서를 전달하는 조약을 맺게 되었어. 이 항복문서를 번역하여 아미르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타니오스가 맡았어. 그 아미르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나 마찬가지였는데 늙고 초라한 그의 모습을 보자 불쌍한 느낌마저 들었어.

영국군이 정한 망명지는 원래 아미르가 싫어하는 이스탄불이었는데 타니오스는 영국군과 중재해서 몰타 섬으로 변경해 주었단다. 영국군과 함께 돌아온 타니오스는 영웅이 되어 마을로 귀환했단다. 영주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영주 대리 업무를 하게 되었어. 이제 전세는 역전되었어. 영국이 개입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되어 친 이집트 세력은 몰락하게 되었지. 루코즈도 심판을 받게 되었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죽이자고 했지만, 타니오스는 결정하기 힘들어했어. 더욱이 타니오스가 사랑했던,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아모스가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어. 타니오스는 결국 재산몰수와 추방령으로 결정했단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의 불만이 가득했어. 이웃 마을 사흘라인의 영주 아들이 찾아와서 자신도 루코즈를 심판할 자격이 있었고 했어. 루코즈가 이집트 사령관과 함께 사흘라인을 공격하여 영주와 그곳 마을 사람들을 수십 명 죽였잖아.

그런 와중에 샤이크가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타니오스는 루코즈의 처분을 샤이크가 올 때까지 미루자고 했단다. 진정한 영주가 결정하는 것이 옳다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다음날 루코즈는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단다. 불만을 품고 있던 사흘라인 병사들의 짓으로 의심되었으나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었어. 마을사람들은 오히려 타니오스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어. 샤이크가 돌아왔단다. 그런데 엄청 고생한 것으로 보이고 눈까지 멀었어. 샤이크는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 듣고는 사흘라인과 문제는 고민해서 해결하겠다고 했단다. 그런 일들이 있고, 타니오스는 한 바위 위에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사라졌는데, 그 이후 아무도 그의 소식을 접할 수는 없었단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마지막으로 앉았던 바위를 타니오스의 바위라고 불렀대.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비록 한 권짜리 책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단다. 1800년대 전반 레바논과 주변국의 역사를 조금이지만 알게 된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그곳에도 치열하게 삶을 살고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좋았단다. 어려우면 어쩌나 하면서 책을 펼쳐 들었는데,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지은이 아민 말루프의 다른 작품들도 살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의 바위들은 이름이 있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 너머 멀리 보이는 바다, 나는 수평선을 향해 길처럼 좁고 길게 뻗은 바다의 조각을 보고 있었다.


<보부상 나데르의 잠언집> 중에서 다음 글은 그날의 장면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 바위에 함께 앉았을 때 나는 타니오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앞에서 또다시 문들이 닫히거든 네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그리고 또 다른 인생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배에 올라서 너를 기다리는 도시를 향해 떠나거라."
- P182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특권 폐지를 바란다면 외국인들을 그 지역 주민들이 부러워하지 않는 신세로 살도록 강요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을 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인들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대우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 P196

"살인자의 머리를 갖고자 그들은 무고한 사람을 네 명이나 살해했다. 카흐탄 베이크는 자신은 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었다고 내게 말했다. 이제 내일이면 크파리야브다 사람들이 또 다른 무고한 사람들의 목을 베러 몰려갈 것이다. 늘 그렇듯 그럴싸한 이유를 내세우면서 그들의 복수전은 대대로 이어지고, 오랜 세월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하느님은 그저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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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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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알라딘 인터넷 서점 SNS 북플에서 알게 된 손턴 와일더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라는 소설이야. 이 책은 1927년 출간하여 이듬해인 1928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품이란다. 책이 출간된 지 100년 가까이 되었는데, 또 출간되었단다. 그만큼 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오늘날 읽어도 공감이 가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단다.

오늘날 뉴스를 보면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안타까운 뉴스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단다. 그런 뉴스를 보다 보면 그 장소에 나와 가족들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우연히 그 장소에 있었어 운명을 달리한 이들의 명복을 빌게 된단다. 다시는 그런 사고가 일어나질 않기를 바라지만 그런 불의의 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난단다. 그런 불의의 사고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운명을 달리한 걸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쓴 소설이 오늘 이야기할 손턴 와일더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라는 책이다. 지은이 손턴 와일더는 소설과 희곡 부문 모두 풀리쳐 상을 받은 유일한 작가라고 하는데, 아빠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란다.

1714 7 20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갑작스럽게 붕괴되며 다섯 명의 여행자가 목숨을 잃는 사고로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매일 수백 명이 오가던 100년도 더 된 다리가 그날 갑자기 붕괴되었어. 사람들은 다리 옆에 있던 성당이 그 다리를 늘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어. 이탈리아 출신으로 선교를 하러 페루에 왔다가 이 비극적인 순간을 우연히 목격한 주니퍼 수사는 질문을 던졌단다. 그들의 희생은 단순한 우연인지, 신의 계획인지독실한 신자였던 주니퍼 수사는 이 사건에 희생된 사람들은 신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희생자들의 삶을 조사하였단다. 그리고 조사 과정을 적은 책이 바로 이 책이란다.

 

1.

먼저 몬테 마요르 후작 부인을 조사했단다. 몬테 마요르 후작 부인의 이름은 마리아였단다. 마리아는 결혼 전부터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했으나, 가족의 성화로 인해 결혼을 하긴 했으나 사랑하지 않는 이와 결혼이었어. 그래도 딸 클라라를 낳았단다. 딸 클라라와 아주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클라라는 자신은 페루에서 결혼하지 않겠다면서 홀로 스페인으로 떠났단다.

딸이 떠난 이후 마리아는 점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 그 당시 혼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지. 그저 책을 읽었어. 아주 많이 읽었다고 하는구나. 딸 클라라는 자신의 계획대로 스페인에서 결혼하여 백작 부인이 되었어. 그리고 마리아는 클라라의 초대로 스페인에 방문했단다.

어렸을 때부터 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었으면 철이 들만 할 텐데, 여전히 말다툼만 계속 하다가 마리아는 일정보다 빨리 집에 돌아왔단다. 그리고 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그가 죽고 난 이후에 이 편지들은 유명한 문학작품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방대한 독서가 마리아 자신도 모르게 뛰어난 작가로 만든 모양이구나.

홀로 지내는 마리아에게 페피타라는 소녀가 말벗 봉사하러 왔어. 페피타는 산타마리아 로사 데 라스 로사스 수녀원에서 지내던 수녀였어. 고아였던 페피타를 수녀원장이 키워주었는데, 수녀원장이 보기에 페피타는 똑똑하고 해서 내심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어. 다른 이들에게 그런 사실을 숨기고 오히려 페피타에게 힘든 일들을 더 많이 시켰는데, 말벗 봉사도 그런 일들 중 하나였단다. 어느날 마리아와 페티타는 함께 연극을 보러 갔단다. 그런데 마리아는 머릿속에 딴 생각을 한다고 연극이 어떤 내용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연극은 카밀라 페리촐레라는 유명한 배우가 주연을 맡았는데, 카밀라는 관객 중에 마리아 후작 부인이 있는 것을 보고, 마리아는 비꼬면서 흉보는 노래를 즉흥적으로 불렀단다. 마리아는 딴 생각을 하느라 그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어. 중간에 페피타가 눈치 채고 마리아에게 나자고 해서 중간에 집에 왔단다.

총독이 연극에서 일어난 이 해프닝을 알게 되어 카밀라 페리촐레를 불러 마리아 후작 부인에게 사과하라고 명령했단다. 그렇게 카밀라가 마이라의 집에 찾아왔어. 마리아는 그날 딴 데 정신이 팔려서 카밀라가 자신을 흉보는 노래를 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했잖아. 그래서인지 마리아는 오히려 자신이 연극에 집중하지 않았다면서 먼저 사과를 했단다. 카밀라 페리촐레는 마리아와 이야기를 해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했단다.

….

얼마 후 딸이 임신했다는 소식이 왔어. 이것은 무료하던 마리아의 생활을 바꿀만한 큰 기쁜 소식이었단다. 마리아는 페루의 전통대로 아기의 행복을 기원하는 순례를 떠났단다. 페피타도 동행했어. 그들은 그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만 그 다리를 건너고 말았고 다시는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단다.

 

2.

산타마리아 로사 데 라스 로사스 수녀원에 고아 쌍둥이 마누엘과 에스테반이 있었어. 둘은 쌍둥이며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서로 의지하고 친하게 지냈단다. 텔레파시 같은 것도 통하는 것 같았어. 그리고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해서 둘만의 비밀 이야기도 나누었어. 그들이 자라서 고아원에 나와서 함께 지내면서 필경사 일을 했어. 연극의 대본이나 악보 등을 필사하는 일을 했어. 그러다가 한 연극을 봤는데, 그 연극에서 연기하는 배우 카밀라 페리촐레에 푹 반해버렸단다.

카밀라는 쌍둥이 형제가 필경사라는 것을 알고 둘 중에 한 명을 불러 편지를 대필해달라고 부탁을 했어. 그 한 명이 마누엘이었어. 마누엘은 간간히 카밀라의 편지를 대필했어. 그런데 에스테반에게는 그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어. 마누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에스테반이 모르는 비밀이 생긴 거야. 에스테반은 우연히 마누엘이 카밀라과 함께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마누엘과 카밀라가 사랑하는 사이인 줄 알고, 자신은 괜찮으니 둘이 같이 지내도 된다고 했어. 마누엘은 그런 사이 아니라고 했지만 에스테반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어. 어느날 마누엘은 다리를 다치게 되었고, 에스테반을 치료를 해주면서 보살펴주었지만, 마누엘의 상처는 점점 덧나면서 결국 허망하게 죽고 말았단다.

에스테반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그 죽음이 마치 자신 때문이라면서 크게 자책했단다. 에스테반은 그 일을 잊기 위해 일에 몰두했단다. 하지만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자책감에 빠지게 되고 결국 자살시도까지 했단다. 같이 일하던 선장이 에스테반의 자살시도를 보고 그를 목숨을 구해주었어. 그러면서 에스테반을 설득했어. 에스테반은 선장의 충고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하러 갔는데, 그 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어.

….

 

3.

앞선 마리아 후작 부인과 쌍둥이 형제를 이야기하면서 연극 배우 카밀라 페리촐레를 이야기했는데, 세 번째 이야기기는 카밀라 페리촐레와 그를 키워준 피오 아저씨의 이야기란다. 이곳 저곳을 떠돌던 피오 아저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카페에서 노래하는 12살의 카밀라를 보았어. 그리고 그 아이가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돈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와서 보살펴 주면서 아이를 데리고 이곳 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노래로 돈도 벌고 그랬어.

시간이 흘러 소녀의 탈을 벗고 아가씨가 된 카밀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어. 피오 아저씨는 카밀라를 연극배우로 데뷔를 시켰단다. 카밀라는 연기가 조금 부족했지만 외모 덕분에 성공한 연극배우가 된단다.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된 카밀라는 피오 아저씨와 잦은 의견 대립으로 말다툼을 했어. 카밀라는 이제 피오 아저씨와 따로 생활하고 사교계에도 들어갔어. 하지만 카밀라도 세월의 벽을 넘지는 못했어. 나이가 들면서 전성기가 지나고, 어찌 하다가 아들까지 생기고, 거기에 천연두까지 걸려서 연극계를 떠나 은둔하며 지냈단다.

피오아저씨는 그런 카밀라를 안타까워하면서 도와주려고 찾아갔지만, 카밀라는 차갑게 거절하면 쫓아냈단다. 피오 아저씨는 카밀라의 아들만이라도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했어. 사진이 공부도 시키고 잘 키우겠다고 여러 번 설득을 하고, 결국 카밀라는 허락했어. 피오 아저씨와 카밀라의 아들 하이메는 피오 아저씨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그 다리 위에 있었단다.

주니퍼 수사는 희생당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았지만 그들의 어떤 공통점도 찾지 못했단다. 신의 의도를 나타내는 어떤 암시도 찾지 못했단다. 그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는 것만 다시 확인했어. 그리고 그들을 사랑했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그것은 이번에 희생된 다섯 명뿐만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이들도 해당된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리고 그런 사랑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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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지금 이 순간에도나 말고 에스테반과 페피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오직 카밀라만이 그녀의 아들과 피오 아저씨를 기억하고, 오직 이 여인만이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는 곧 죽을 것이고, 그 다섯 명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

….

결국 결론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사랑하자는 것 같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714 7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지며 다섯 명의 여행자가 그 아래의 골짜기로 추락했다.

책의 끝 문장: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심 안도하며 "십 분만 늦었다면 나도…"라고 혼잣말을 했겠지만, 주니퍼 수사에게는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왜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우주에 어떤 계획이 있다면, 인간의 삶에 어떤 패턴이 있다면, 갑자기 중단된 저들의 삶 속에 숨겨진 불가사의한 무언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주니퍼 수사는 그 순간 대기를 가르고 떨어진 그 다섯 명의 숨겨진 삶을 조사하겠다고,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떠난 이유를 밝혀내겠다고 마음먹었다. - P14

백작은 그녀의 편지를 읽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그가 즐긴 것은 문체였고, 그것만으로 편지의 모든 풍부함과 의도를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대부분의 독자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기록’이라는 문학의 목적 자체를 놓치고 말았다. 문체는 쓰디쓴 액체를 담아 세상에 권하는 하찮은 그릇에 불과하다. 후작 부인이 자신의 편지가 아주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매우 놀랐을 것이다. 훌륭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항상 고결한 마음 상태로 살아가고, 우리에게 특별해 보이는 작품이 그들에겐 그저 평범한 일상과 다름없을 테니 말이다. - P30

옛날 다리 대신 새로운 다리가 세워졌지만, 그 사건은 잊히지 않았다. 리마 사람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속담 같은 표현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어떤 사람은 "화요일에 보세. 다리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말이야"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가 "내 사촌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근처에 산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싱긋 웃는다. 그 말은 머리 위해 매달린 칼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사고에 대한 시도 있고 페루의 문집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고전들도 있지만, 진정한 문학적 기념비는 주니퍼 수사의 책이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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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나는 술 마시는 느낌을 사랑했고,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그 특별한 힘을 사랑했고, 정신의 초점을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의식에서 덜 고통스러운 어떤 것들로 옮겨놓는 그 능력을 사랑했다. 나는 술이 내는 소리도 사랑했다.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술 마시는 분위기도 좋아했다. 술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우정과 온기, 편안하게 한데 녹아드는 기분, 마음에 솟아나는 용기.

(34-35)

다른 사람이 진정한 버전의 나를 눈치채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파티장이나 술집에서 다섯 잔째 와인을 기울이는 나를 본 사람들도 그지 조심스러운 사람이 어쩌다 긴장을 풀고 조금 흐트러지는 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친한 친구들은 내 눈을 보면 술에 취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내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눈빛이 흐릿해지는 것이 보이면, 내가 내 속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약간 비틀거리거나 평소마다 목소리가 조금 커져도 사람들에게 취했다는 말을 듣는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조용하고 얌전하게 술에 취했다. 어수선해지는 건 내 머릿속일 뿐이었다.

(85-86)

충분하다니? 알코올 중독자에게 그것은 생경한 미지의 언어다. 충분히 마시는 일이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술이라는 보험을 찾고 또 찾는다. 첫 잔을 마시고 따뜻한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그 느낌을 지속시키는 것, 그걸 강화하고 증대하는 것, 그걸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아는 리즈라는 여자는 알코올 중독을 탐욕의 병이라고 불렀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에 느끼는 허기, 집착, 불안, 끝없는 결핍감을 일컬은 말이었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이란 많을수록 좋고 많아야 한다. 석 잔을 마실 수 있다면 왜 두 잔만 마시는가? 네 잔을 마실 수 있는데 왜 석 잔만 마시는가? 도대체 왜 멈추는가? 그리고 어떻게 멈추는가?

(101)

술을 마시면 내 마음 가득한 더러운 기분이 사라졌어요.”

(107)

술을 마시면 내가 원하는 성숙한 모습의 내가 되어 메를로의 섬세한 맛을 논하고, 그것이 구이 요리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떠들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 잘 어울렸고, 삼촌들, 숙모들,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것도, 술잔을 입에 댄 채 다른 사람들이 술 따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다 편안했다. 나는 술을 통해서 상태를 변화시킨 것 같았고, 그런 느낌은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여기에서 두려움+=용기라는 또 하나의 방정식이 생겨난다.

(114)

비극은 그 보호막이 작용을 멈추면서 시작한다. 변신의 수학은 바뀐다. 이것은 불가피한 결말이다. 장기간에 걸친 과음은 우리 인생을 망가뜨린다.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맺은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업무에 장애가 발생한다. 재정 문제, 법적 문제에 부딪히거나 경찰과 부딪힐 수도 있다. 고통이 커지면 어느 순간 옛 수학(불편+=불편 없음)은 전처럼 들어맞지 않게 된다. 편안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소심함이나 두려움, 분노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좀 더 깊고 근원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방정식은 더욱 강력하고 완전한 내용으로 바뀐다. ‘고통+=자기 망각이라는.

(138)

알코올은 우리를 그런 어처구니없는 불능의 방정식으로 몰아간다. 자신의 힘을 느끼고자 상대를 성적으로 유혹하고, 성적 매력을 발휘하려고 술을 마시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다. 그렇게 느끼는 힘은 작위적이고, 자기 내면의 것이 아님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차 안에서 그렇게 로저의 입김과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멍청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움쭉달싹할 수 없었다. 반발의 거품이(그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끓어올랐지만, 그것은 아주 미미했다.

술은 거짓된 미혹이다. 알코올은 힘을 주지만, 준 만큼 그대로 앗아간다.

(139-140)

알코올 중독자들은 책임 회피의 귀재들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늘 타인이나 사물 탓으로 돌리는 것, 이것은 알코올 중독자를 가려내는 징후기도 하다. 이들은 관계가 꼬이는 엉켰을 때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 그해 여름 나는 데이비드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에게 의문에 찬 눈길을 던졌다. 그에게는 뭔가 부족했다. 뭔가 마땅치 않았다. 나한테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내가 가진 거대한 결핍감의 크기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내 소망의 부조리함도 감지하지 못했다.

(164)

술이 없으면 나는 우리에 갇힌 동물 같았다. 그러니 늘 술을 끼고 살 수밖에 없었다. 술이 없으면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생각과 팔다리가 내 것이 아닌 듯했고, 그것들을 사용할 방법도 나를 멀리 비켜가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일요일 아침이면 늘 그런 느낌을 받았다. 홀로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면 텅 빈 하루의 시간밖에는 아무것도 나를 기다리는 것이 없었다.

(166-167)

혼술이 역설은(그러면서 정말로 위험한 것은) 우리가 정서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혼자 술 마시던 시절, 술이야말로 내 진정한 감정의 문을 열어주는 유일한 도구라고 느꼈다. 술을 마시고 녹아내린다. 술을 마시고 녹아내린다. 술을 마시고 흐느낀다.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 걸어 고통을 호소한다.

(185-186)

몇 가지 규칙도 세운다. 혼자서는 마시지 않는다. 아침에는 마시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마시지 않는다. 주말에만 마신다. 오후 5시 이후에만 마신다. 술 마시러 가기 전에 우유나 올리브유를 한잔 마셔서 위벽을 보호하고 지나치게 취하는 일을 막는다. 술 한잔 마실 때마다 물 한 잔을 같이 마신다. 이렇게 자신에게 음주를 조절할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어떤 일이든, 그야말로 어떤 일이든 시도한다.

(226)

술 깬 아침의 막막한 걱정. 내가 아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모두 그런 경험이 있고,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파티 다음날 잠에서 깨어 전날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오전 내내 걱정에 잠겨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참다 못하면 파티 주최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반응을 살핌으로써 우리 행동의 단서를 찾아내려 하기도 한다.

(235)

술은 망상을 낳는다. 술과 함께 하는 인생은 모험 가득한 낭만의 행로로 여겨지고, 밝은 햇살 아래 출렁이는 눈부시고 역동적인 바다처럼 느껴진다. 단 한 잔의 술로도 우리 가슴은 에너지와 열정에 부풀어 오르고, 조금 전까지 가슴을 짓누르던 문제를 몽땅 해결할 수 있을 듯 자신만만해진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다. 술은 우리 인생을 정체시키고, 바위처럼 그 자리에 붙박아둔다.

(260)

술을 끊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느낌을 말한다. 인생이 움직임을 잃고 색깔을 잃고 마침내 덜컥 멈춰서는 듯한 느낌. 우리가 도달한 곳은 전혀 원하지 않던 곳(마음에 안 드는 직장, 건강하지 않은 관계_이고, 탈출구는 짐작되지 않으며, 상황을 변화시킬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

(270-271)

알코올 중독에 오래도록 빠져 있다 보면 비디오 속에 사는 듯, 남이 써준 대본을 읽는 듯, 인생의 사건에 무력한 느낌을 받는다. 인생은 수많은 장면이 뒤엉킨 꼴사나운 연극이 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맡은 역할을 소화하는 것이다. 왼쪽으로 입장, 오른쪽으로 퇴장, 대사를 읊고, 평론가들이 이 공연에서 오지 않았기만을 기도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의 인생 대본에 핵심을 이루는 요소는 바로 기만이다.

(330)

그 순간 나에 대한 오기가 솟았다. 처참한 내 인생이 한눈에 들어왔다. 술 마시고 싸우고 이 남자 저 남아에게 뛰어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민망한 인생, 지루한 인생, 게다가 극도로 피곤한 인생이었다. 결국 남는 게 무엇인가? 이 모든 소동이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우리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피하고자 술을 마시지만, 다음날 아침 깨어나면 그 선택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개의 목에 걸린 줄처럼 우리를 끌어 내리고 우리의 전진을 방해한다. 모멸감, 이 모든 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찔함. 마이클, 줄리안, 우울증, 불안, 거짓말, , , …… 내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고 또 흘러갈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이 그랬듯이.

(334-335)

내가 마지막 술을 마신 장소는 마이클의 집 거실이었고, 시간은 자정 직전이었다. 재활센터 입원 사실을 아는 몇몇 사람 중 필라델피아의 친구 샌디가 보스턴까지 와서, 입원 전 마지막 저녁을 함께 했다. 식전에 맥주와 와인을 마셨고, 식사 중에는 와인을 마셨으며, 식후에는 바에 가서 코냑을 마셨다. 샌디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그녀의 잔에 담긴 술도 훔쳐 마셨다. 마이클의 집에 돌아오자 적포도주 한 병을 땄다. 마이클의 말에 따르면, 나는 거실에 우뚝 서서 이제 자러 간다고 말하고는, 적포도주 한 잔을 쭉 들이켜고서 비틀비틀 거실을 나갔다.

(355)

개선이라는 말은 허약한 느낌이 들며, 심지어 기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술을 끊는 것은 단선적 의미의 개선에서 한 발짝 나아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에 관련이 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파도와 두려움, 감정, 성공과 실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삶은 개선된다(적어도 개선될 가능성은 생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인생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깨어 있는 정신으로 우리가 만든 유대관계를 존중하며 행동한다면 삶의 개선이란 거의 저절로 이루어진다.

(362)

술을 끊고 나서의 첫날 아침 느낌을 이야기하고 싶다. 마치 나의 옛 인생에서 쑥 뽑혀 나와 맑고 깨끗하고 독립적인, 꽃과 빛이 가득한 새 들판에 내려진 느낌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느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몇 주가 지나는 동안 내게는 자신감과 안도감, 드디어 내 인생의 개선에 나섰다는 인식에서 나온 희망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366-367)

나는 알코올 중독자다. 그러니까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자시 인정은 밀물과 썰물처럼 한순간 차올랐다가 다음 순간 빠져버린다. 술 마시던 시절의 일을 돌이켜보면, 내가 올코올 중독자라는 증거는 많고도 많았다. 알코올을 들이켜면 내게는 강박 충동과 자제력 상실이라는,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는 일련의 생리적 반응이 일어났다. 그래도 나는 아직 알코올 중독이 영구적인 진해성 질병이라는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술을 마시고 자제력을 잃지 않았던 적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알코올에는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순기능도 있지 않은가? 그냥 꼭 한 잔만 하면 안 될까? 이런 질문은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같은 두려움과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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