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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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심윤경 님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소설을 이야기할게. 아빠가 심윤경 님의 소설은 <설이>, <위대한 유산> 이렇게 두 권을 읽어봤어. 오늘 이야기할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심윤경 님의 대표작이자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란다. 200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이 작품으로 심윤경 님은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는구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소설은 이미 유명한 작품인데, 아빠는 이제서야 기회가 되어 읽어보았단다. 소문대로 재미있더구나.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도 들었어. 우리나라 아픈 현대사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소설이었어.

이야기는 1977년 인왕산 자락 윗동네에서 시작한단다. 그 윗동네까지 와서 산다는 것은 다들 가난한 사람들이었어. 한 집만 빼고 말이야.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는 삼층집이 하나 있었거든. 그런 마을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란다. 주인공은 8살 한동구로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 그 해는 7살 터울 동생 영주가 태어난 해이기도 했어. 동구는 동생인 영주를 무척 사랑했단다. 하지만 집안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

어린 동구에게도 욕을 거침없이 날리는 할머니가 있었고, 그 할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증오하는 사람이 동구의 엄마였단다. 고부간의 갈등이 장난 아니었어. 며느리가 하는 모든 것에 간섭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아버지는 고부간의 갈등을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늘 할머니의 편에 섰단다. 어느 때는 선을 넘어 엄마한테 손찌검까지 했어. 영주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딸이라고 큰 실망하며 엄마한테 잔소리를 할 정도였어. 첫째 동구가 아들인데 말이야. 동구는 영주를 무척 아끼고 잘 보살펴주었어. 어린 영주를 업어서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도 재미있었어.

….

시간이 흘러 영주가 태어난 지 일 년이 되어 돌잔치가 되었어. 엄마는 영주의 돌잔치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할머니가 한바탕 소동을 벌였고, 이날도 아버지는 엄마를 때렸어. 결국 생일상은 미역국만 간단히 차리는 것으로 끝냈어. 아버지는 여느 날처럼 출근을 하고 할머니는 목욕탕에 갔단다. 그렇게 아버지와 할머니가 집에 없자, 엄마는 잽싸게 영주의 돌잔치 음식을 준비했어. 생일떡, 잡채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마을 사람들에도 돌렸어. 그러면서 할머니한테 이야기하지 말라고 입단속도 시켰단다. 물론 동구도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단다. 그렇게 엄마와 동구와 영주만의 돌잔치를 마치고, 할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다 치웠단다.

 

1.

시간이 흘러 1979, 동구는 3학년이 되었어. 원래 담임이던 선생님이 일이 있어 그만두시고, 중간에 박은영 선생님이 새로 오셨어. 동구는 3학년이지만 여전히 한글을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어. 그래서 학기초 엄마는 학교에 불려갔고, 동구가 글을 못 읽는 것 때문에 집에서는 또 아버지와 엄마가 싸웠어. 이번에도 박은영 선생님이 엄마를 호출해서 학교에 가셨어.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선생님과 달랐어. 박은영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동구는 셈을 잘하는 것을 보면 머리는 좋은데, 난독증이 있는 것 같다고 했어. 그러면서 특수 학교를 소개해 주셨단다. 하지만 동구네 집안은 특수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 되었지.

동구가 한글을 제대로 못 읽는 와중에 아직 세 돌도 안된 동생 영주가 한글을 정확히 읽었단다. 영주가 한글을 읽는 것을 본 식구들은 깜짝 놀랐고,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은 영주를 구경하러 와서 다들 신동이라고 천재라고 한마디씩 했단다. 동구도 그런 영주를 자랑했어. 자신은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상관없어. 자신의 사랑스러운 동생이 한글을 척척 읽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던 거야.

동구가 특수학교에 갈 수 없는 사정을 알게 된 박은영 선생님은 동구를 불러 방과 후 한 시간씩 같이 공부하자고 했어. 동구는 박은영 선생님을 좋아했는데, 같이 한 시간씩 공부하자고 하니 신이 났단다. 그렇게 몇 달을 공부를 하고 나니 동구는 이제 글을 읽을 수 있었단다. 동구는 박은영 선생님을 짝사랑하며 선생님과 결혼하는 꿈이 생겼단다.

….

지금이 1979년이라고 했잖아. 1979년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해란다. 길고 긴 군사독재가 측근의 총에 의해 끝난 해이고, 그로부터 두 달도 안되어 군사반란이 일어난 해이기도 해. 이 소설의 배경인 인왕산 자락은 청와대와 가까운 동네이다 보니, 이 역사적인 사건이 삶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단다. 1979 12월 어느 날 엄마는 동구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단다. 동구는 이유를 몰랐지만 나중에 친구들로부터 동네에 탱크와 군인들이 잔뜩 있다고 했어. 동구는 말로만 듣던 탱크를 처음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친구와 함께 탱크로 보러 갔단다.

가는 길에 주리 삼촌을 만났어. 주리 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난 사람으로 고려대 법학과에 합격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 고시에서 여러 번 떨어지고 지금도 고시 공부를 하는 고시생이었어. 주리 삼촌은 동구와 친구를 붙들고 포장마차에서 먹을 것을 좀 사주고 집으로 돌려 보냈단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로 박은영 선생님도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 멍하게 창 밖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어.

 

2.

동구는 4학년이 되는 것이 싫었어. 박은영 선생님과 헤어져야 하니까.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 1980년 동구는 4학년이 되었고 4학년 담임은 오준근 선생님이었어. 오준근 선생님은 정말 최악이었어. 귀 물기, 머리카락 뽑기, 겨드랑이 냄새 맡게 하기 등 변태 같은 짓을 하는 선생님이었어. 박은영 선생님은 6학년 2반을 맡았어. 그런데 이 변태 같은 오준근 선생님이 박은영 선생님을 좋아해서 작업을 걸려고 했어. 동구가 박은영 선생님과 친했다는 것을 알고 수업이 끝나고도 동구를 집에 보내지 않고 동구를 이용해서 박은영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어.

동구는 이 일을 주리 삼촌한테 이야기하자 주리 삼촌은 자신이 해결해주겠다면서 학교에 왔어. 주리 삼촌은 자신을 동구의 친삼촌이라고 소개하면서 오준근 선생님을 은근히 압박하면서 동구를 집에 일찍 보내달라고 했단다. 오준근 선생님은 꼼짝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동구는 고마운 마음에 주리삼촌을 박은영 선생님께 소개시켜주었어. 동구가 주리 삼촌을 소개하면서 공부 잘하고 고대 법대 나왔다고 하니, 박은영 선생님은 주리삼촌에게 이태석을 아냐고 물어봤고 주리삼촌은 잘 아는 후배라고 이야기했어.

이 인연으로 주리 삼촌, 박은영 선생님, 이태석, 그리고 박은영 선생님의 제안으로 동구도 함께 자리를 했단다. 박은영 선생님은 대학교 시절 이태석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것 같아. 그리고 박은영 선생님이 이태석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 그들은 당시 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단다. 계엄령이 계속 될 것 같은지군부가 순순히 물러날 것 같은지쿠데타가 또 일어날 것 같은지등등 동구는 박은영 선생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았어. 옆에 앉아 맛있는 안주 먹는 것도 좋았어. 근데 주리 삼촌이 권한 술을 먹고 그만 취하고 말았지. 그것도 아주 심하게... 박은영 선생님을 사랑한다는 취중진담까지...

..

그것이 박은영 선생님과 마지막일 줄이야. 박은영 선생님은 휴가를 쓰고 할머니 생신 잔치를 위해 광주에 간다고 했어.. .. 설마 그날? 그 다음 주부터 박은영 선생님은 학교에 나오지 않으셨어. 동구는 엄청 걱정을 했지. 여름방학이 되어도 여름방학이 지나 새로운 학기가 되어도 오시지 않았어. 어느 날 주리 삼촌이 동구를 불러서 이야기하기를 선생님이 돌아가셨으니 그만 기다리라고 했단다. 광주에 가셨다가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가하셨다가 그만 변을 당하셨던 것 같아. 광주 민주화 운동은 늘 슬픈 이야기를 담게 되는구나. 동구는 주리삼촌의 말을 믿지 않았어. 그 이후로도 계속 선생님을 기다렸단다. 아빠도 그 소문이 헛소문이고 소설이 끝나기 전에 박은영 선생님이 다시 돌아오시길 바랬단다.

....

동구의 집에도 어둠이 드리웠어...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서 빚쟁이한테 돈을 빼앗겨서 살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어. 엄마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버지한테 대들기 시작하면서 부부싸움도 전보다 더 잦아졌어. 이웃에 어떤 할머니가 이사 왔는데 알고 보니 할머니의 고향 사람이었어. 할머니보다 2살 어리셔서 둘은 금방 친해져서 자매처럼 지내고 같이 여행도 갔단다. 어느 날 할머니는 여행가시고 아버지와 엄마는 여느 때처럼 부부싸움을 하고 있을 때 동구와 영주는 감나무 아래서 놀고 있다가 감을 딴다고 동구가 영주를 무등 태웠다가 그만 잘못 떨어져서 영주가 그만 죽고 만 사고가 일어났어. 지은이가 어린 주인공에게 너무 가혹한 벌을 주는 것 같구나. 선생님과 이별의 아픔도 아직 치유하지 못했는데 어려서부터 그렇게 예뻐했던 동생이 죽다니.. 그것도 자신이 무등을 태워주다가 말이야. 동구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이 일로 집안은 거의 풍비박산. 여행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엄마한테 더욱 욕지거리를 날리고.. 결국 엄마는 안방에다 항아리를 깨뜨리고 실성한 듯 집을 뛰쳐나가 들어오지 않았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신병원에 입원하셨어. 엄마의 식구들, 그러니까 외가 식구들은 할머니가 집에 계속 계시면 집에 안 보내겠다고 했어. 동구는 할머니에게 이야기했어. 할머니와 단둘이 할머니의 고향 노루더미에 가서 살자고.. 동구 자신도 여기에 있으면 영주 생각이 자꾸 나서 괴롭다고 했어. 엄마를 한동안 볼 수 없지만, 엄마가 나아질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렇게 동구와 할머니는 할머니의 고향으로 떠나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결국 박은영 선생님도 돌아오시지 않았구나. 책을 읽을 때도 찡했는데 지금 독서편지를 쓸 때도 또 찡하구나.

소설 제목이 왜 <나의 아름다운 정원>일까? 생각해 봤어. 소설 초반부에 잠시 언급되었던 삼층집에 있는 커다란 정원을 이야기하기에는 그 정원은 주인공 동구와 큰 인연이 없었단다. 그저 동구가 갈 수 없는 이상향일 뿐이었어. 소설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정원은 마음 속의 정원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 동구가 가장 행복했던 3학년 시절이 동구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었던 거야. 그런데 그 행복했던 시간이 너무 짧고,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기에는 동구 나이는 너무 어려서 너무 안타까웠단다. 오늘은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동생은 성질이 급한 아기였다.

책의 끝 문장: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쿠데타가 또 일어날 수는 없을 거라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지? 그동안 권력은 군부의 손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어. 권력자에게나 국민에게나 독재는 지겹도록 신은 낡은 구두 같은 거란 말이야. 반면 민주는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는 새 구두지. 언제까지나 낡은 구두를 신고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장은 새 구두보다 편안해. 군부는, 우리에게 다시 헌 구두를 내밀면서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신으라고 말할 거야. 지금 민주의 희망을 꺾고 다시 군부독재의 시절로 돌아가도록 강압한다면 사람들은 새 구두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새 구두를 신고 발뒤꿈치가 쓸리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할 테지. - P255

"선배의 눈빛을 보자마자 못마땅해하는 거 알 수 있었어요. 사실 나, 선배의 그런 눈빛 때문에 선생님이 되려는 꿈도 접고, 평생 구겨진 바지만 입고 살겠다고 결심했던 적도 있었어요. 기억나요? 영등포의 인쇄소에 선전 문건 초안을 받아 들고 갔던 날, 내가 면바지를 다려 입고 왔다고 선배는 화를 냈잖아요. ‘도대체 정신이 있는 얘야? 아까 다섯 시 전에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지금 도대체 몇 시야? 다들 양치질도 못하고 며칠씩 날밤을 새우며 작업을 하는데 너는 집에 가서 바지나 다려 입고 왔구나!’ 하고 소리를 질렀었지요." - P259

문득, 지금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들도 아버지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버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절대적인 권위가 오늘날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힘이 되지 못하고, 아버지가 애써 생각해낸 위로의 말이 엄마의 병을 낫게 하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할머니가 저렇게 한심한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책임지지 못하고, 아버지가 한 번도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끔찍한 무력함일 것 같았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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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겨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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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6-02-09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어디죠?

bookholic 2026-02-09 19:38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태백산 다녀왔어요~~~^^
 
















(43-44)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수년 전 아버지에게 알츠하이머가 닥친 것, 그 때문에 아버지가 기약 없이 입원한 전문 클리닉에 매일 찾아가야 했던 것이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끝나지 않는 기나긴 시련이었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녀가 스무 살에 결혼한 이래 무언가 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바라보는 것에 처음으로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홀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어머니는 나이 들어 신체가 쇠약해짐에 따라 거동의 자유를 새로 방해받기 전까지 얼마 동안 되찾은 자율성을 여유롭게 누렸다.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난 그 손님이 자기 남편의 요양원 입소를 유사한 감상으로 환영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마침내 자유다!’라는 감상 말이다.


(58-59)

어머니 자신도 틀림없이 이런 쇠락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내심 확신하고 인정했다. 해결되지고, 개선되지도 않을 문제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내가 나아지면…” 또는 내가 회복되면…”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마치 생물학적인 사태의 추이를 변화시킬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쫓아버리려는 듯 말이다. 어머니는 무력감에 굴복하기 힘들어했지만 건강 상태가 좀처럼 저항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뻔히 거짓말인 줄 알면서 , 어머니가 괜찮아지시면…” 또는 그래요, 어머니가 다 나으시면…”하고 대답했다. 사실 어떻게 자기 어머니에게 아뇨. 어머니는 회복 못 하실 거예요. 낫지 못하실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60)

우리는 집으로 되돌아가길, 혹은 진짜 자기 집을 되찾길 기다리며 다소 긴 기간 동안 임시 체류하러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영구히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죽을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서인지는 안다. 블라디미르 장켈베비치는 이 라틴어 격언을 즐겨 인용했다. ‘죽음은 확실하나, 시간은 불확실하다.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 적시할 수 있다. 일단 그런 시설에 들어가면 장소는 확실하다, 설령 시간이 아주 머지않은 듯 보인다 해도, 시간보다 훨씬 확실하다고.


(74)

엘리아스는 계속해서 말한다. “해로하는 노부부를 제외하면,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은 오랜 감정적 유대가 최종적으로 끊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개인이 어떤 긍정적 정서적 관계도 맺은 적 없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건강을 돌봐주는 의사와 간호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노인들은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격리되고 낯선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그것은 개인에게는 외로운 일이다. 내가 여기서 걱정하는 점은, 아주 고령이 될 때까지도 매우 활발하게 지속되는 성적 욕구의 문제뿐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을 즐기고 같이 있으면서 정서적 만족을 느끼는 인지상정의 문제다.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런 종류의 인간관계 역시 줄어들고 거기에서는 대체물을 찾기 어렵다.”


(100-101)
우리는 공공서비스 관할의 모든 부문에서 그랬듯, 돌봄 인력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의해 프랑스의 병원에서 얼마나 많이 감축되었는지 안다. 그 정책들은 언제나 강력한 비용 절감 계획을 작동시켜왔고, 지금도 그렇다. 병원 근무자들이라면 직종에 관계없이 프랑스의 보건 공공서비스가 파산 상태(다른 나라들이라고 썩 사정이 낫진 않다)에 다다랐다고 자주 강력하게 규탄해왔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았고-반대로 사정은 계속 악화해, 프랑스 정부는 심지어 코로나19 위기 동안 병상 폐쇄라는 살인적인 정책을 추진했다-우리는 그런 상태를 거의 정상으로 받아들이며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듯 보인다. 기필코 이런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 지치지 말고 계속 분노해야 하며, 이 분노를 소리 높여 강하게 외쳐야만 한다.


(117)

전체주의적성격은 매일매일 두드러져만 갔다. 어머니의 삶 전체가 구획되고 통제되었으며, 그녀를 대신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어머니는 자율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 사람으로서의 지위까지 상실했다. 그렇다. 탈인간화로 인해 노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지경까지 다다른다.


(119-120)

산다는 것은 시간, 시간성 그리고 당연히 공간성과 관계 맺는 것, 즉 시간 속에 스스로를 투사하고 공간 안에서 움직일 능력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는, 말하자면 고령, 노년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 존재론적 관계를 수정하고 무화하며 파괴한다. 공간성의 상실, 시간성의 소멸은 인간 실존의 조건 그 자체를 규정하는 것을 점차 사라지게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수많은 인잔 존재의 실존과 관련된다. 어떤 면에서는 거의 모든 인간 존재의 실존과 관련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늙는 것이 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한 말이다. 정치 담론과 행정보고서에서 이야기되는 기대 수명의 상승과 이른바 인구 고령화는 나이가 아주 많고 의존적인 사람들의 수가 계속 엄청나게 증가할 것임을 함축한다. 삶은 건강한 삶뿐만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삶, 쇠약해진 삶이기도 하다.


(131-132)

이 짧고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서 난 어머니의 이미지를 본다. 그녀는 버림받은 아이였고, 열네 살에 무슨 일이든 하는 하녀, 가정부로, 공장노동자로 위치지어졌다그녀는 스무 살에 결혼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55년 동안 함께 살았다그리고 이제 여든 살이 넘어서 자유를 발견했고, 모든 순간을 즐기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녀를 책망할 권리를 가로챌 수 있겠는가?


(149)

난 죽음-지워짐에 관한 푸코의 말을 좋아한다. 그는 아리에스의 탄식과 힘 있게 결별하는 발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죽음은 사건 아닌 것이 되었다. 대개 사람들은 사고사가 아니라면 약품들의 덮게 아래 죽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몇 시간, 며칠 또는 몇 주간 의식을 완전히 잃는다. 그들은 지워진다. 우리는 의료와 제약이 죽음과 동반하면서 죽음으로부터 고통과 극적 성격을 앗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난 무언가 통합적이고 극적인 거대 의례로 되돌려지는 죽음의 정화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관 주변의 소란스러운 눈물들이 언제나 모종의 냉소주의에서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상속의 기쁨이 뒤섞일 수도 있다. 난 이런 종류의 예식보다는 사라짐의 부드러운 슬픔을 더 좋아한다.

지금 우리가 죽음을 맞는 방식은 내계는 오늘날 통용되는 어떤 가치 체계, 어떤 감수성을 명확히 나타내는 듯 보인다. 향수 어린 충동 속에서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관행들을 되살리고자 하는 데는 몽상가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보다는 차라리 죽음-지워짐에 의미가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181-182)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암묵적이든 잠재적이든 어머니를 통해 유지되어온 내 과거와의 연속성이 이제 끊어져버렸다. 혹은 몹시 느슨해져버렸다.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 어떤 청소년으로 자라났는지에 얽힌 일화들을 앞으로 누가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가족의 지형도, 조상의 계보도를 누가 내게 그려줄 수 있을까? (중략) 내 젊은 시절의 기록 보관자이자 역사가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


(195-196)

자기 어머니를 애도하는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잃어버린 젊음을 애도하는 것이라고 알베르 코엔은 쓴다. 내게 이보다 더 적절한 문장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건 망각되거나 부인된 모종의 면모들, 구체적으로 우리가 수치스러워했던 것들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소개한다.” 코엔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을 소개한다.” 코엔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은 동양식 억양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은 프랑스어 오류를 자랑스러워하며, 고상한 예법에 대한 당신의 무지를 미치도록 자랑스러워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붙인다. “약간 뒤늦은, 이 자부심.” 그는 모두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신 아들들이여, 당신의 어머니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만일 당신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내 죽음의 노래를 읽고 어느 날 저녁 어머니에게 더 부드럽게 대한다면, 나와 내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내 글쓰기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이 말들은,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신 아들들이여, 내가 나 자신에게 표할 수 있는 유일한 조의다. 아들들이여, 시간이 있는 동안,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는 동안이다, 서두르시라. […] 하지만 난 당신들을 안다. 그 어떤 것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한 오래도록 당신들의 그 끔찍한 무관심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 어떤 아들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아들들은 모두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며, 이 바보들은 곧 벌을 받는다.


(237)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공장을 다시 보러 갔다. 외벽은 국민전선의 포스터와 그라피티로 뒤덮여 있었다. 내부는 모든 것이 황폐한 인상을 주었다.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바닥엔 짙은 녹색의 깨진 병 조각들, 유리 파편들이 널려 있었다병뚜껑을 고정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금속 링을 거는 빨간 고무 패킹들 또한 오렌지색으로 바랜 채 흩어져 있었다. 이 황량한 무대를 두고 나는 어머니의 것이었던 세계에서 어머니의 실존이 어떠했을지 생각했다. 오늘날 바람이 쓸고 간 텅 빈 공간을 한때 가득 채웠던 유기체들에게는 숨 막힐 정도로 격렬했을, 물론 [유리 제품] 제조용 가마들에서 내뿜던 열기에 대해. 지옥같이 참기 어려운 소음에 대해, 온갖 직무의 극단적인 난도에 대해, 자재들에서 나오는 분진의 위험성에 대해, 떄로는 심각했을 숱한 노동 재해에 대해지나간 과거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를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 난 생각했다. , 이것이 어느 서민 여성의 삶이었고, , 이것이 그녀의 노년이다. 난 그렇게나 빨리 세번째 단어를 덧붙여야만 하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263)

엘리아스가 쓴 이 말을 틀렸다고 하기란 불가능하다. “아직도 활기차고 가끔은 기분 좋은 느낌으로 가득한 자신의 몸이 느릿해지고 쉬 피로하며 어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다시 말해 노인들, 죽어가는 사람들과의 동일시는 다른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은 자신이 늙고 죽을 것이라는 관념을 극구 부정하려 하며 그에 저항한다.”


(299)

결국 근본에 있는 정치적 문제는 이것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발언할 수 있는가? 이 기본이 되는 정치적 행위가 가장 극심하게 지배받고 박탈당하고 취약한 사람 가운데 그렇게 많은 이에게 여전히 접근 불가능하다면 그들에 관해서, 그들을 위해서 말하고 그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 작가에게, 예술가에게, 지식인에게 돌아오는 과제가 아닐까?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것,” 또는 어쩌면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또는 그들에게 이제는 없는, 아니면 의존적인 고령자들의 경우처럼, 그들이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그 목소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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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걸로 슈마허에게 가르쳐줘. 전봇대를 받아 탑승자를 다치게 할 바에야 길고양이를 치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는 걸. 애들한테 걷어차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가르쳐주듯. 세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이미 다 있는 거, 우리 다 하고 있는 거야. 보험사에는 평가액, 은행에는 신용 점수가 있고, 결혼 정보 회사에도 입사 시험에도 학교 시험에도 다 있잖아. 등급, 석차, 점수, 우리 이마엔 이미 바코드가 찍혀 있어. 리더기만 들이대면 하고 얼마짜린지 다 나와.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할 뿐이지.


(164)

사랑만이 고통에도 의미를 주니까요. 그 고통엔 의미가 있어 더욱 고통스러워니까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견디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거예요. 무의미하기만 한 고통은 그걸 겪고 견디는 우리들끼리 무의미하게 만드니까요. 오로지 휘몰아치는 고통만이 있을 뿐이고 우리도, 다른 모든 것도 거기에 이리저리 휘날리기만 하는 티끌들인 거예요. 영인은 쓸쓸히 창밖을 봤다.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다들 그러죠. 자기 인생을 쓰면 책 한 권은 너끈히 될 거라고 하지만 그 책의 대부분은 지루하고 하찮기만 할 거예요.


(198)

어떤 것이 자율이라는 건 필연히 다른 것들이 타율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한 논리의 문제죠. 무버에 적혀 있는 말처럼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필연히 움직이지 않는 단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밭솥을 생각해보면 쉽죠. 인공지능이 알아서 밥을 짓는다고 우리가 자율밥솥이라고 하나요? 자동밥솥일 뿐이고 자율주행도 결국엔 자동주행일 뿐이죠. 그 반대라면 우린 밥솥이 무슨 밥을 짓든 먹을 수밖에 없고 차들이 어떻게 주행하든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명백한 횡포고 억압이며 사실 별로 낯선 것도 아니죠. 늘 가장 강력하고 악독한 횡포와 억압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왔으니까요. 우리가 지금 얼마나 자율적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배척하는지 생각해보면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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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여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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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6<얼음 속의 여인>을 이야기해줄게.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그 동안 여러 번 이야기했으니 곧바로 6 <얼음 속의 여인> 이야기를 할게.

6권은 1139 11월에 시작한단다. 이전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잉글랜드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사이에 내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어. 내전의 전선은 계속 이동했는데, 이 시기에는 우스터 시라는 곳까지 이어져서 이곳 사람들의 많은 피해를 입었단다. 특히 힘없는 여자들이 많은 피해를 입어서 거의 절반이 죽었다고 했어. 나머지 사람들은 도망을 가서 그들 중 일부는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왔단다. 그들 중에는 부상자들도 많아서 수도원 진료소에서 치료를 했는데, 진료소 자리가 부족해서 일반인들의 집에서도 치료를 받았단다. 내전이 길어지면서 국경 지역의 일부 영주들은 이를 이용하여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이들도 있어서 나라는 점점 혼란에 빠지게 되었어. 주인공인 캐드펠 수사와 그의 지인 휴 베링어는 이 일에 대해서 논했지만, 그들이라고 뾰족한 해결책은 있는 것은 아니야.

어느날 우스터 시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의 보좌수사 허워드 수사가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왔단다. 허워드 수사는 사라진 귀족 자재 남매를 찾으러 왔다고 했어. 그들은 18살 에르니마 위고냉과 13살 이브 위고냉이었어. 그들도 내전 때문에 피난을 가는 길이었고, 힐라리아 수녀가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고 했어. 그들은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오기로 했는데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았던 거야. 한편 그 남매의 외숙 로랑스 당제는 현재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도착했어. 이 일은 프레스코트 행정장관도 보고를 받았으나, 프레스코트 행정장관은 위고냉 집안과 반대 진영이라서 비협조적으로 나왔어.

인근에 있는 브롬필드 수도원에서 도움 요청이 왔어. 길에서 발견된 의식 잃은 중상자를 브롬필드 수도원에서 보호하고 있는데, 치료를 해달라는 도움이었어. 이에 캐드펠 수사가 브롬필도 수도원으로 가게 되었지. 그 중상자의 이름은 엘리어스로,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브롬필드 수도원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에 다친 것이라고 했어. 문득 캐드펠은 엘리어스가 사라진 위고냉 남매를 알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캐드펠은 엘리어스를 치료하기 시작했어. 캐드펠의 정성스런 치료로 엘리어스는 의식을 되찾았지만, 아직 기억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였어. 그러면서도 엘리어스는 가는 길에 소녀의 일행을 만났다고 했어. 엘리어스가 위험한 위기를 넘기고 안정을 되찾은 다음, 캐드펠은 엘리어스가 이야기한 곳을 정찰해 보았단다. 그리고 숲에 숨어 있는 동생 이브 위고냉을 찾았어. 이브 위고냉이 이야기하기를 누나 에르미나는 애인을 만나 함께 떠나고 자신은 누나를 뒤쫓다가 길을 잃었고, 함께 가던 힐라이아 수녀님과도 헤어졌다고 했어. 이브는 누나의 그런 행동해 불만이 가득했단다. 캐드펠은 이브를 데리고 브롬필드 수도원에 오다가 얼음 속에 갇혀 죽은 한 소녀를 발견했는데, 나이대로 보아 안타깝게도 에르미나 같았어. 하지만 이브에게는 이 사실을 모르게 그의 시선을 막아가면서 일단 브롬필드 수도원으로 데리고 왔어.

브롬필드 수도원에 도착하니 그곳에 휴 베링어가 와 있었어. 캐드펠은 휴 베링어와 함께 다시 얼음 속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갔단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얼음을 깨고 시신을 브롬필드 수도원으로 데리고 왔단다. 이브도 그 시신을 보게 되는데, 그 시신은 자신들을 데리고 왔던 힐라리아 자매라고 했어. 캐드펠도 얼음을 깨면서 시신을 꺼낼 때 추리를 해서 그 시신의 주인공은 에르미나가 아닌 힐라이아 자매라는 것을 알았단다. 그렇다면 에르미나는 어디로 간 것인가? 정말 애인과 어디로 떠난 것인가?

 

1.

캐드펠과 휴 베링어는 이브 일행이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농가를 찾아갔단다. 그런데 그 농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불에 다 타버리고, 개들은 누군가에서 도살당하고 폐허가 되어 있었어. 인근에 있는 농가를 찾아가 물어보니, 힐라리아 자매는 엘리어스 수사와 함께 브롬필드 수도원으로 갔다고 했어. 그렇다면 그들은 함께 브롬필드 수도원으로 오다가 괴한을 만나 힐라리아 자매는 죽고, 엘리어스 수사는 중상을 입은 것으로 추측했어. 농가 주인이 이야기하기를 그들이 떠난 다음 날 어떤 검을 숨긴 젊은 남자가 위고냉 남매 일행을 찾으러 왔었다고 했어.

의문의 인물이 드디어 등장하는구나. 에르미나가 애인과 도망간 쪽은 휴 베링어와 부하들이 순찰하기로 했는데 그곳에서 캘롤리스 장원이라는 곳이 다 폐허가 되었고 시신들도 그대로 있었어. 그런데 이 약탈은 우스터 시에서 난리가 나기 전에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었으니 그 일과는 관련 없는 일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캐드펠은 숲에서 에르미나의 머리장식을 발견했는데 에르미나가 애인과 말을 타고 가다가 떨어뜨린 것 같았어. 그리고 그 애인은 불에 탄 장원의 젊은 주인 에브러드 보터레이로 추정되었단다. 에브러드는 피신하는 길에 약탈자와 싸움이 붙어 부상을 입고 또 다른 장원에서 머물고 있는 것을 캐드펠이 발견했단다. 하지만 그곳에 에르미나는 없었어. 에브러드에게 물어보니 에르미나는 동생을 찾아야 한다며 그곳을 떠났다는 거야. 에르미나는 젊은 혈기를 가진 아가씨답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그런 스타일인 것 같구나.

캐드펠은 다시 브롬필드 수도원으로 왔어. 엘리어스는 여전히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어. 아빠는 이 사람이 좀 의심스러웠단다. 아빠의 추리가 잘못될 수도 있겠지만, 엘리어스가 무엇인가 숨기면서 기억을 못하는 척 하고 있는 것 같았어. 엘리어스는 이브와 이야기를 하면서 기억을 하나하나 되찾는 듯 했어. 그러다가 힐라리아 자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터뜨리고 흥분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했단다. 그러고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미친 듯이 눈보라 속을 뚫고 숲으로 달려갔단다. 이때 그의 곁에는 이브만 있었어. 이브는 캐드펠 수사를 불러오게 되면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서 혼자서 엘리어스 수사를 쫓아갔단다.

엘리어스는 계속 달려가서 숲 속에 있는 어떤 움막에 가서야 쓰려져 정신을 잃었단다. 뒤늦게 캐드펠은 엘리어스 수사와 이브가 사라진 것을 알고 그들을 수색했어. 휴 베링어의 도움을 받아 밤새 수색했지만 찾지 못하고 수도원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그날 아침 에르미나가 수도원에 나타났단다. 그런데 에르미나가 수도원에 나타나기 전에 캐드펠은 에르미나가 어떤 남자와 같이 오는 걸 봤어. 그런데 수도원에는 혼자 도착했어. 그럼 그 남자는 또 누구인가.

에르미나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했어. 에르미나는 어떤 부부가 도와주어 그들의 집에 있다가 동생의 소식을 듣고 수도원으로 온 것이라고 했어. 그러면서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잘못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에브러드와 다신 만나지 않겠다고 했어. 그런데 수도원 근처까지 함께 온 남자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캐드펠은 에르미나에게 유도 질문을 해서 스스로 말하게 했단다. 그제서야 에르미나는 그 남자는 외숙이 그들을 찾으라고 보낸 사람이었다는구나.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 남자와 좋은 감정을 갖게 된 모양이구나.

한편, 엘리어스 수사를 쫓아가던 이브는 엘리어스 수사와 함께 움막에 있다가 밖으로 나왔는데 하필 그때 약탈자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어. 이브는 약탈자들에게 붙들려 가게 되었어. 이브는 그들 몰래 포도주를 한 방울씩 떨어뜨렸어. 눈길에 떨어진 포도주는 마치 핏방울처럼 보였어. 움막에서 정신을 잃었던 엘리어스는 깨어나고 이브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고, 포도주 방울을 따라 길을 떠났단다.

캐드펠도 다시 수색을 하여 엘리어스와 이브가 머물렀던 움막을 발견했어. 그곳에 사람이 머물던 흔적이 있어서 캐드펠은 엘리어스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았어. 그 곳에서 수사의 망토뿐만 아니라 힐라리아 수녀의 망토도 발견했단다. 그런데 수녀의 망토에는 핏자국이 있었어.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다가 캐드펠 역시 이브가 남긴 포도주 흔적을 발견하고 포도주 방울을 따라 갔단다. 그리고 약탈자들이 산 속에 세운 성채 같은 요새를 발견했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여 다시 돌아와서 휴 베링어의 부대를 이끌고 다시 성채 밖에 진지를 구축했고, 공격하기 시작했어.

약탈자들의 리더는 알랭이라는 사람이야. 알랭은 이브를 인질극에 이용하자, 휴 베링어의 군대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어. 이브는 요새에 갇혀 있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데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려고 잠입한 것을 알았어. 그 누군가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단다. 그 누군가는 적군을 제압하고 이브와 함께 도망치다가 그만 발각되었어. 그래서 다시 반대로 도망치다가 요새의 감시탑 꼭대기에 갇히게 되었단다. 약탈자들이 그곳에 오지 못하게 통로를 봉쇄했지만, 그들 또한 도망 나갈 방법이 없었어.

그제서야 그 누군가는 자신을 소개했어.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 앞서 에르미나를 수도원까지 데려다 준 외숙의 부하였어. 올리비에와 이브는 방법을 찾았어. 그들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장비를 이용하여 계속 소리를 했고, 그 소리는 캐드펠이 듣고 감시탑에 이브가 있는 것을 보았어. 그리고 이브의 상황을 알아채고 휴 베링어에게 공격을 지시하여 휴 베링어의 군대는 대대적인 공격을 했단다. 그러다가 요새에 불이 났어. 그 불은 곧 크게 번져 이브와 올리비에도 도망가야 했어. 약탈자들이 화재로 인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도망을 갔는데 이브가 다시 약탈자의 우두머리 알랭에게 잡혔단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몰골이 말이 아닌 엘리어스가 나타났어.

그의 모습은 몰골이 말이 아닌 점이 오히려 알랭을 더욱 놀라게 했단다. 알랭은 엘리어스가 자신들이 공격하여 죽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살아나서 나타났으니 귀신인 줄 알고 깜짝 놀라 당황을 한 거야.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브가 그로부터 탈출하고 올리비에는 알랭을 공격을 했어. 알랭은 결국 올리비에와 결투 끝에 칼에 찔려 죽고 말았어. 알랭이 죽자 남아 있는 부하들은 모두 항복을 했단다. 그런데 그 싸움이 끝나고 올리비에는 곧바로 사라졌단다. 올리비에는 모드 왕후 측 사람이고 이곳은 스티븐 왕의 지역이기 때문에 사라진 거야.

….

 

2.

브롬필드 수도원에 돌아와 이브는 누나 에르미나와 만났단다. 사건이 다 해결된 것 같은데 캐필드는 뭔가 찜찜함이 남아있었단다. 자신의 추리하기에 알랭의 동선과 힐라이아 수녀의 동선이 맞지 않는 것이었어. 요새에서 있던 일로 보아 엘리어스를 다치게 한 것은 알랭이 맞지만 힐라리아 수녀는 그의 짓이 아닌 것 같은 거지. 엘리어스는 이제서야 기억이 하나둘 되살아나면서, 자신이 수녀를 죽였다고 괴로워했단다. 그러면서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단다. 엘리어스 수사는 힐라리아 수녀와 단 둘이 추운 겨울 오두막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너무 추우니 둘은 체온으로 몸을 녹이기로 했어. 그런데 그 순간 엘리어스는 욕정이 일어났다는 거야. 그런 상황에서 욕정이 일어나는 자신을 질책하면서 엘리어스 수사는 더 나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수녀가 잠든 뒤에 옷으로 덮어주고 오두막 밖으로 나와서 거닐다가 도적떼를 만나 부상을 당했다는 거야. 그렇다면 누가 힐라리아 수녀를 죽인 것일까.

….

캐드펠의 마음에 또 하나 찜찜함이 있었어. 에르미나가 갑자기 에브러드에게 마음을 접은 이유가 마음에 걸렸어. 그런데 그 에브러드가 브롬필드 수도원에 자신이 잃어버린 말을 찾으러 왔다고 했어. 그런데 그 자리에 에르미나가 이상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어. 다름 아닌 힐라리아 수녀처럼 분장을 하고 나타난 것이야. 에브러드는 힐라리아 수녀로 분장한 에르미나를 보고 기겁을 하면서 혼잣말을 했단다. 그 옆에 있던 캐드펠은 그가 한 혼잣말을 들었어. 에르미나는 에브러드가 힐라리아 수녀를 죽였다고 의심을 하고 있어서 그런 일을 꾸민 거야.

결국 정황 증거들을 늘어 놓자 에브러드는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게 되었단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에르미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캐드펠에게 이야기했어. 적들이 쳐들어왔을 때 농장 사람들을 다 나두고 에브러드는 혼자 도망가버렸다고 했어. 이걸 보고 에브러드가 겁쟁이라는 것을 알고 에르미나는 그를 버렸다고 했어. 에르미나가 돌아가려고 하자 에브러드는 강제로 추행하려고 했어. 에르미나는 저항하다가 몸에 품고 있던 단검으로 에브러드를 부상 입히고 그 사이에 도망갔단다. 캐드펠이 에브러드를 처음 만났을 때 부상 중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약탈자에게 입은 부상이 아니고 에르미나에게 입은 부상이었어. 에르미나는 그곳을 곧바로 떠나지 않고 나무 뒤에 숨어 살펴보았다고 했어. 섣불리 도망갔다가 그에게 다시 붙잡힐 수 있으니 말이야. 얼마 후 상처를 치료한 에브러드는 말을 타고 집을 떠났어.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돌아왔는데 붕대에는 다시 피가 많이 난 상태로 돌아왔어. 그때는 몰랐는데, 그가 에르미나를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움막에 잠들어 있는 힐라리아 수녀를 보고 강간을 하고 살해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대. 그래서 할라리아 수녀를 죽인 사람이 에브러드라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었던 거야. 에르미나는 힐라이라 수녀가 죽은 것은 자신의 책임이 크다가 크게 자책했단다. 에르미나가 젊은 혈기로 마음 가는 대로 하는 막가파인줄만 알았는데, 침착하고 영리한 아가씨가 진짜 모습이구나.

이틀 뒤 올리비에가 브롬필드 수도원에 찾아왔어. 에르미나와 이브를 보호해서 그들에게 외숙에게 데려가려고 온 거야. 캐드펠은 올리비에와 이야기를 하다가 깜짝 놀랐단다. 올리비에가 자신의 출신이력과 살아온 날들을 이야기했는데, 캐드펠이 십자군 원정 당시 사랑에 빠졌던 시리아 여인 마리암이 올리비에의 엄마였던 거야. 그러니까 올리비에는 캐드펠의 아들이었어. 하지만 캐드펠은 이제 와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안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그저 속으로만 건실한 청년이 된 자신의 아들을 보고 뿌듯해 했을 것 같구나. 올리비에는 에르미나와 이브를 데리고 길을 떠났단다.

….

여기까지가 <얼음 속의 여인>의 이야기란다. 이번으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여섯 권을 읽었는데, 실망을 주지 않는 작품들이 없구나. 이 시리즈는 셜록 홈즈, 뤼팽, 포와르 시리즈에 결코 꿀리지 않을 것 같은데 왜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니지, 아빠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아무튼 아직도 15권이나 남아 있어 행복하구나. 천천히 아끼면서 읽어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139 11월 초, 후에는 지지부진해지고 말았으나 처음에는 그토록 갑작스러웠던 내전의 파도는 우스터시를 엄습하여 가축과 재산과 여자들의 절반쯤을 휩쓸어 가버렸다.

책의 끝 문장: 그래, 캐드펠 자신 또한 자랑하기에 부족함 없는 아들을 얻지 않았는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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