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노동자와 농민을 상대로 한 그의 꿈의 시도는 놀랄 만큼 빠른 효과를 나타냈다. 그건 노동자와 농민들이 생활현실 속에서 요구하고 바라는 바와 자신들이 운동의 실천조항으로 내건 것들과 유감없이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8시간노동제 실현, 차별대우 철폐, 임금인하 반대, 복지제도 완비, 이런 것들은 노동자들과 뜨거운 혈맥을 통하게 했다. 그리고, 소작료 5*5제로 인하, 소작권이동 반대, 무보수부역 철폐, 마름(농감)들의 횡포 근절, 이런 것들은 농민들의 마음과 맞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경찰력과 맞서는 과정에서 실패는 거듭되었고 결국 남은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상처뿐이었다. 그래도 보람이 있었다면 쟁의를 통해 부분적으로 요구조건을 관철시킨 것이었고, 사회주의 의식을 대중적으로 보다 넓게 확산시킨 점이었다. 일본경찰이란 가공할 살인집단이었다. 일본경찰력이란 무한대로 자행하는 폭력과 금력을 동원한 끄나풀들이었다. 모든 조직이 탐지되는 것은 그들과 농민의 탈을 쓰고 조직에 숨어들거나 조직원들 옆에 밀착해 정보를 빼내었다. 조선사람들을 잡아먹는 조선사람들, 그 인간들 때문에 일본경찰력은 날로 강대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 군상들은 하나도 없었다면 일본경찰력이 그렇게 강해질 없는 일이었다.


(38-39)

도대체 민생단투쟁이란 게 뭔가?”

학습이 끝나고 노병갑은 홍완섭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래, 자네도 지휘간부로서 알아둬야 할 일이지. 그러니까 말야,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만주국이 세워지기 직전인 32 2월에 조선에서 용정으로 건너온 친일파 김성화가 왜놈들의 사주를 받아 <경성매일신보> 부사장 박선윤, 광명회의 정사빈 등과 연합해서 민생단이란 것을 조직했네. 그 단체는 겉으로는 조선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주사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주장과 일치하는 거지. 그런데 속에 감춰진 목적은 북간도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교란시키고 파괴하자는 것이었지. 다시 말하면 민생단은 대규모 밀정 스파이단체였던 거네. 민생단원들은 백색구역(일제 통치지역)의 친공산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적색구역(유격근거지)에까지 자원유격대원으로 가장해 잠입 침투해서 간도 자치며 생활 보장, 조선인 우대 등을 교사하며 내부분열 공작을 획책한 거네. 그러기를 5개월쯤 하다가 민생단은 해산됐지. 그런데 문제는 그놈들의 암약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유격근거지에서 조선사람이면 일단 민생단분자로 의심받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네.”


(76)

, 들어보게. 자네도 알다시피 왜놈들은 만주사변 이후로 조선땅에 군대를 강화하고 경찰들을 증원했네.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이 사회주의자들의 색출과 처벌이네.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이 사회주의자들의 색출과 처벌이네. 그건 왜 그렇겠나? 두 가지 목적 때문이지. 첫째는 조선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새롭게 등장한 적을 완전히 말살시키고 하는 것이지. 그리고 둘째는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으로 농민층과 노동자층이 끝없이 쟁의를 일으키면서 조선땅이 동요하는 것은 제놈들의 만주 장악에 치명적이기 때문이야. 조선의 안정이 만주의 안정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이네. 그래서 왜놈들은 준전시체라는 상황을 설정해 놓고 사회주의 세력의 말살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일세. 그놈들의 총력전은 효과를 거두고 있고, 사회주의자들은 그동안 만 6천여 명이나 검거되면서 악화일로를 걸어왔네. 참 시인하고 싶지 않지만, 냉정하게 판단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머지않아 거의 검거되거나 운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네. 나는 감옥에서 나와 감금상태에 있으면서 이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지. 또 잡혀서 감옥에 갇히는 것을 각오하고 그전 식으로 운동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방법밖에 없느냐 하면, 감금상태는 바로 운동의 중지상태니까. 그런데 운동을 계속하다가 잡히게 되면 재범이고, 재범은 중형을 당하게 되는 것은 더 말할 것 없지 않은가. 그것 또한 운동의 중지상태야. 이 대목에서 내 고민은 심해졌지. 왜놈들은 절대로 사회주의 운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왜놈들은 절대로 사회주의 운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왜놈들의 횡포는 계속되는데 과연 실현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주의 운동을 밀어붙이다가 부지하세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였지. 그 방법은 치열하긴 하지만 자폭적이고, 어느 면에서는 왜놈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네. 그런 측면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네. 왜놈들의 식민지 횡포가 계속되는 속에서 어떤 형태든 행동의 중지보다는 적극성이 떨어지더라도 행동의 지속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지. 그래서 구상한 것이 개인적 사회주의화야. 다시 말해서 우리 집안의 농토를 바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집단농장의 경영이야. 단 사회주의라는 냄새는 일체 풍기지 않고 속으로 감추었으니까 경찰에서 볼 때는 평범한 지주에 불과하지. 허나 실제로는 소작제가 아니라 공동경영이고, 잉여재산으로는 딴 지주의, 특히 왜놈들 농장의 빚을 써서 논이 넘어가게 된 농부들의 빚을 갚아주고 흡수해 들이는 거네. 그럼 그 농부도 보호하고, 왜놈농장들이 토지를 장악해 나가는 것도 막을 수 있는 이중 효과를 발휘하게 되지.


(90-91)

차득보는 장타령을 흥얼거리며 열심히 피를 뽑고 있었다. 피들도 여름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극성스럽게 커올라왔다. 차득보는 농사를 지어갈수록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생명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물보다는 식물이 더 강인한 것도 새롭게 알게 된 것이었다. 강아지풀은 낫으로 싹 베버리면 삼사 일이 지나면서 잎들과 꽃술줄기가 어엿하게 솟았다. 하도 놀랍고 신기해서 다시 싹둑 베버렸더니 역시 거짓말처럼 또 제 모습을 갖추었다. 풀이 그렇데 빨리 자라난다는 것도 희한했고, 다시 제 모습을 갖추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다시 싹둑 베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서야 제 씨를 뿌리고 죽겠다는 강아지풀의 강인한 생명력을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과 함께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언제까지 몇번이나 그러는지 보고 싶었다. 다시 싹둑 낫질을 해버렸다. 그러기를 두 달 동안 했고, 강아지풀은 찬바람이 불어오고 모든 풀들이 스러지는 그때까지 두 치 정도밖에 자라지 못한 난쟁이로 끝끝내 꽃술줄기를 피워올리는 것이었다. 그 지독스러움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 경이로운 일을 공허 스님한테 말했더니 , 니가 인자 득도를 허능구나. 그려서 부처님께서 살생허지 말라고 이르셨느니라. 그리혀서 생명이 지탱되는 동물은 이 시상에 없응게하며 대견해했던 것이다. 피라는 것도 강아지풀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무리 열성으로 뽑아도 남아 있는 뿌리에서 또 새 잎과 죽기가 돋아오르는 것이었다.”


(126)

일본스파이 문제가 연해주의 조선사람들 사회에서 떠돌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다음부터였다. 조선사람들이 일본스파이가 되어 소련국경을 넘나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해주의 조선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나보나 하며 별 관심 없이 들어넘겼다. 스파이라는 특이함도 특이함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보다도 더 관심 써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혁명사회 건설이라고 하여 사회 전반의 제도와 바뀌고 있었고, 특히 농촌에서는 지주라는 것이 전부 없어지고 집단농장이 조직되고 있었던 것이다. 연해주의 조선사람들도 만주의 조선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다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해주에서도 어김없이 논을 일구었지만 그 땅이 러시아지주들의 것인 점도 만주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동안 소작인 생활을 겪어온 그들에게 지주 없는 집단농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경이었고, 새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조선사람들은 그런 사회 건설을 그야말로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167-169)

왜 왔던고 왜 왔던고 만주벌판에 왜 왔던고

낯설고 물설은 만리타국 만주땅에 어인 일로 왔던고

삼천리라 금수강산 왜놈 발에 짓밟혀서 조선 해는 간곳없이 암흑천지 되었으니

뜻 굳은 남아로서 할 일이 그 무언고

빼앗긴 나라 되찾는 것 그것밖에 더 있는가

암흑천지에 불밝힐 일 그것밖에 더 있는가

옳소이다 옳소이다

그 생각이 옳소이다

그 길이 아니 가면 어찌 조선 남아리까, 어찌 조선 남아리까

그러허나 예로부터 옳은 길은 가시밭길

처자식도 생이별에

둘도 아닌 목숨조차 내놓아야 하는 길

그 길을 택한 남아 몇몇이나 되었던가

하나뿐인 목숨을 초로같이 여기고서

의기 푸른 조선 남아들 만주땅에 진을 치니

장하도다 장하도다

하늘이 칭송한다

설한풍 몰아치는 허허벌판 만주땅에

풍찬노숙 몰아치는 허허벌판 만주땅에

풍찬노숙 뼈깎으며 왜놈들과 싸우기 그 몇몇 헤이던고

일년이 십년 되고 십년이 이십년 되어

고향땅이 그리워라 처자식이 목메어라

그래도 굽히지 않은 뜻 일편단심 구국이라

나라 찾아 깃발 날려 금의환향 하렸더니

에고오 어인 일로 갇힌 몸 되었는고

에고오 어찌타 옥사가 웬말인고

어화 원통해라

아이고 절통해라

이대로는 못가겠다 이대로는 못가겠다

원통하고 절통해서 이대로는 못가겠다


애간장 녹아내리게 하는 슬프고 처연한 가락은 절정으로 치달아오르며 달빛 푸르른 벌판으로 퍼져나가고, 난데없는 소리에 이끌려 마을사람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혼백으로도 끝끝내 싸워 이길 터이니 나를 만주땅 뿌리거라

고결하신 그 뜻에 산천초목이 떨고

휘영청 밝은 저 달도 낙루하는데

어찌타 뒤따르는 자들이 그 뜻 모르오리까

무릎 꿇고 머리 조아려 하늘에 맹세하노니

다 못 이루신 뜻 정녕코 이루오리다

남기고 가신 한 기필코 풀겠소이다

굳게굳게 맹세하고 뒤따르오니

어화 님이시여, 님이시여

원통함을 푸시고

절통함도 푸시고

이 거친 만주벌판 떠돌지 마시고

춥고 어두운 구만리장천을 떠돌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시는 얼굴로

백화난만한 극락으로

상춘화창한 극락으로

왕생하오시라

극락왕생하오시라

비옵나니 비옵나니

극락왕생하오시라


(190-191)

그러나 양세봉 장군을 잃어버린 조선혁명당군들의 사기는 전만 같지 못했다. 그런데다 이탈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저하되어 갔다. 반면에 일본군과 만주군들의 공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승리하는 전투가 없어지면서 자꾸 궁지로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총사령 김호석이 만주꾼에 체포되고 말았다. 조선혁명단군이 분산될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그 위기 앞에서 손을 뻗친 것이 동북항일연군이었다. 조선사람들과 중국사람들의 연합군대인 동북항일연군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자는 것이었다. 조선혁명당군들은 만주에 새롭게 등장한 항일세력인 동북항일연군에 편입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혁명당군들은 동북항일연군 대원들로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힘이 약한 군대가 힘이 강한 군대에 흡수된 것이 아니었다. 조선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그건 조국해방을 위해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이 서로 연합하고 협동한 것이었다.


(277-278)

20만 조선사람들의 강제이주는 1937 8 21일 소련 인민위원회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강제이주 결정사항 제1428-326cc호에 기록된 공식적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조선사람들의 첩자행위 방지, 둘째는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의 농업인력 공급이었다.

그리고 강제이주를 직접 명령한 것은 스탈린이었다.


하바로프스크, 당지구위. 조선인들 이주 문제 – – 시기적으로 성숙했음.

이주 시기에 조금도 차질이 없도록 철저한 조치를 조속한 시일 내에 강구하기 바람.

                              당중앙위원회 서기 스탈린

                              1937 9 11 17 40


이것은 스탈린이 보낸 암호전보였다.

그 명령에 따라 연해주 일대의 조선사람 20여만 명은 9월 중순에서부터 11월 말까지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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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츠바이크 선집 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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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 혁명>이라는 책이란다. 작년 말에 이 책이 신간 코너에서 소개되었을 때, 우리가 베르사유 궁전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서 이 책에 더욱 관심을 가졌단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빠가 몇 년 전에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어. 그런데 비슷한 제목의 책이 출간되어 좀 의아했지. 그런데 예전에 읽은 책은 55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고, 이번에 나온 책은 300페이지 남짓 되는 책이었단다. 그리고 예전에 읽은 책은 전기문이나 역사서로 알고 있고, 이번에 나온 책은 소설이라고 명기되어 있었어. 두 책이 다른 건가? 두 책 간의 관계를 찾아보려고 해도 잘 모르겠더구나. 이번에 읽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 혁명>가 이전 책의 개간본도 아니고 말이야. 책 소개에도 이전에 출간된 책과 어떤 관계인지 설명이 안되어 있더구나. 그렇다면 츠바이크가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책을 두 권을 쓴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 일단 책 디자인도 예쁘고, 아빠가 좋아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고 하니 주문을 했지. 책이 도착해서 내용을 좀 봤더니, 아빠가 예전에 읽은 책과 내용이 같더구나.

첫 문장을 비교해 보아도, 예전에 읽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마치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상반되는 주장으로 팽팽하게 맞서 싸우며 100년이나 끌어온 소송을 속개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라고 되어 있고, 이번에 읽은 <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 혁명>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은 수백 년에 걸쳐 벌여온 재판을 세상 밖으로 다시 꺼내는 일과 같다.”

라고 되어 있단다. 어떠니? 동일한 원본을 번역자가 다르게 번역한 것으로 보이지 않니? 그렇다면, 두 책은 원본이 같을 것 같구나. 번역가가 다르고그렇다면 한 책은 페이지가 500페이지가 넘고, 한 책은 300페이지 남짓이며, 300페이지 남짓인 책이 필요 없는 부분은 삭제한 버전으로밖에 생각이 안 되는구나. 그렇다면 아빠가 안 좋아하는 번역 스타일인데원본의 일부를 가위질한 번역…. 이 책의 정체를 알고 싶구나.


1.

그래서 이 책의 줄거리는 아빠가 예전에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읽고 쓴 독서 편지를

좀 베껴와야겠구나. 예전에 줄거리를 아주 상세하게 적어 놓은 것 같구나. 그것을 복사해 와서, 이번에 읽으면서 쓴 메모 중 누락되어 있는 것을 조금 보완하는 것으로 대신할게.

……….

오스트리아 여왕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막내딸답게 약간은 철부지였다고 하는구나. 영리하기는 하지만, 공부보다 노는 것을 좋아했대. 귀여운 막내딸이니 하고 싶은 것 하게 두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런 마리는 15살 어린 나이에 정략결혼으로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하여 프랑스로 오게 된단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가훈을 다시 한번 증명하게 되었어. “다른 이들은 전쟁을 하게 두어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마리 앙투아네트가 결혼하여 프랑스에 왔을 때 나이가 15. 15살이면 무척 어린 나이인데 가족과 떨어져 프랑스와 왔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것도 남들의 시선을 잔뜩 받는 왕세자비였으니 말이야.

남편인 루이 16세는 한 살 많은 16살이었으니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될 수도 있었으나, 루이 16세는 마리와 함께 하는 것보다 사냥 등 자신의 놀거리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결혼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아이가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루이 16세의 신체적 문제가 좀 있었다고 하는구나. 결혼하고 나서 7년이 지난 다음에야, 외과 시술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 요제프 2세의 밤자리 조언을 듣고 나서야 아이를 낳는 것에 성공했단다.

아무튼 그것은 나중 이야기이고, 결혼 직후 신혼 시절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생활을 잠시 이야기를 해줄게.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겉으로는 금슬 좋은 부부로 보였지만, 금슬이 좋다기보다 서로 맞는 것이 없어서 각자 놀다 보니 부부싸움 같은 것이 없었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구나. 지은이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다른 점을 이야기하면서 그 어떤 소설가도 이런 설정이 어렵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러니까 소설 속에서도 이런 부부를 이야기하면 독자들이 억지 설정이라고 했을 것이라는 거지.. 그들이 정략결혼이 아니라면 절대 같이 살 수 없는 그런 부부였던 거야.

마리 앙투아네트가 결혼했을 때는 루이 16세의 할아버지 루이 15세가 왕이었단다. 루이 16세의 아버지도 있었지만, 얼마 안 있다가 돌아가시고, 루이 16세는 왕위 상속 1순위가 되었단다. 루이 15세에게는 애첩 마담 뒤바리가 있었는데, 루이 15세의 세 딸들과 사이가 안 좋았어. 아버지의 젊은 애첩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 루이 15세의 세 딸들은 조카 며느리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이용하여 마담 뒤바리를 공격했어. 어린 마리는 고모들의 계략이 넘어가서 마담 뒤바리를 헐뜯는데 활약하게 된단다. 이 일은 문제가 크게 났었나 봐. 오스트리아에 있는 마리의 엄마 마리아 테레지아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마리아 테레지아가 손을 써서 이 사태를 수습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어느 날 루이 15세는 천연두를 앓다가 갑자기 죽고 말았어. 1774 5 10일이었어. 루이 16세가 드디어 왕위에 올랐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비가 되었지. 둘 다 준비가 안 된 왕과 왕비였단다. 루이 15세가 정치를 잘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죽고 나서 많은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기뻐했고, 새로운, 거기에 젊기까지 한 왕에 대한 기대감으로 루이 16세를 환호했단다. 오래 가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것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도 한몫을 했단다.

이제 왕비가 된 마리는 왕비에 걸 맞는 품격을 지켰으면 좋았겠지만, 결혼 전부터, 왕세자비부터 해오던 생활 그대로 노는 것 좋아하고 사치가 잘못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듯 생활했단다. 옷에 꾸미기에 정성을 다하고, 머리 치장에 정성을 다하고, 장신구에 정성을 다하는 생활이었지궁전 밖에 백성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어. 그런 마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이 은신할 수 있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숨어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성을 달라고 루이 16세에게 요청을 했어. 그래서 루이 16세는 크리아농 성을 마리에게 주었고, 마리는 그곳에서 가장무도회를 여는 등 신나게 놀았어. 마리는 트리아농 성에는 밤 늦게까지 놀다가 새벽에 궁전으로 돌아가고 했다는구나. 결혼한지 오래되었는데 제대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해서 더욱 놀이와 사치에 빠져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단다. 이 소문이 오스트리아까지 전해지고, 테레지아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행동 조심하라고 경고 편지도 보냈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였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 생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서 마리의 오빠 요제프2세가 찾아왔단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우호를 다지기 위한 방문으로 알려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었어. 루이 16세의 결혼생활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첫 번째였고, 엄마 마리아 테레지아의 지시에 따라 마리 앙투아네트를 훈육하려는 것이 두 번째였어. 루이 16세와 남자 대 남자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문제점을 알게 되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외과적 시술로 루이 16세의 문제점을 해결하도록 도와주었단다. 그리고 드디어 마리와 결혼 7년만에 사랑을 나누게 되고, 아이도 갖게 되었단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멀리 있는 엄마로부터 조언과 충고를 받았지만, 그가 좋아하는 사교 모임을 그만둘 수 없었어. 심지어 연극 배우로 연극도 참여했단다. 평범한 연극이라면 모르겠는데, 루이 16세를 조롱하는 희극 <세빌리아의 이발사>라는 연극에서 하녀 역할을 했어. 마리 앙투아네트는 점점 백성들의 눈밖에 났단다. 그리고 그들의 어려운 삶이 모두 오스트리아에서 온 마리 앙투아네트의 탓으로 돌렸어. 국민밉상이 되어 버렸어.

..

국민밉상에 되는데 더 불을 붙인 사건이 있었으니, 일명 목걸이 사건이었단다. 라모트 백작 부인의 사기극으로 판명이 나서, 마리 앙투아네트도 백퍼센트 피해자였지만, 백성들은 마리의 말을 믿지 않았어. 그 사건의 내막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렇단다.

라모트 백작 부인은 로앙 추기경을 속여 자신이 왕비 마리 앙투어네트의 심부름을 한다고 하면서, 로앙 추기경에게 목걸이를 원한다고 이야기했어. 로앙 추기경이 값비싼 목걸이를 라모트 백작 부인에게 건네주었는데, 그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뇌물로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전혀 모르고 있는 일이었지. 중간에서 라모트 백작 부인이 꿀꺽 한 것이었어. 나중에 이 사건이 드러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게 밝혀졌고, 라모트 백작 부인은 종신형을 받게 되었단다.

그런데 라모트 백작 부인은 감옥을 탈출하게 되고, 영국으로 가서 목걸이 사건은 모두 왕비가 시킨 일이라고 거짓 회고록을 썼단다. 그렇게 라모트 백작 부인은 왕비를 중상모략 하였고, 민중들은 이 말을 믿게 되었단다. 그래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더욱 미움을 받는 사람이 되었단다. 이때 프랑스는 나라 빚이 엄청나게 많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이 내야 하는 세금은 계속 오르고 있었고, 물가도 가파르게 올라 빵조차 사먹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사먹지 못하면 케이크를 사먹으면 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구나. 아무튼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이 모든 것들이 왕비의 낭비 탓이라고 생각했어.

마리도 나라의 사태가 엉망이라는 것을 인식을 했는지, 유능하다고 하는 네케르를 재무부 장관으로 고용했어. 한번 고용을 했다면 그를 믿었어야 했지만, 오래 가지 못해서 그를 다시 해임시켰단다. 네케르가 그나마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사람인데, 그마저 다시 자르니,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격이었지. 민중은 더 이상 참지 않고, 행동을 보여주었단다.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여 프랑스 대혁명의 불꽃을 일으켰단다.

때는 1789 7 14. 이 일이 있고 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왕과 왕비의 곁을 떠났단다. 그 중에 남은 이가 페르센이라는 사람인데, 그가 남은 이유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때문이었단다. 페르센은 스웨덴 귀족이었는데, 오래 전 가장무도회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세자비 시절에 처음 만났었는데, 사실 그 때 둘은 첫눈에 반했었단다. 서로의 직위 때문에 사랑을 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페르센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잊지 위해 프랑스를 떠났지만, 세 번이나 다시 돌아왔고, 이번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키기 위해 다시 프랑스에 왔다고 하는구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민중은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서 시위를 했어. 마음 약해빠진 왕을 노리면서 시위대 대부분을 여자들 또는 여자로 위장한 남자들로 했어. 루이 16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단다. 결국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시위대의 요구로 베르사유 궁정전을 떠나 파리의 옛 왕궁인 튈르리 궁으로 왔단다. 그곳에서 몸 사리며 지냈는데, 거의 감금생활이라고 할 수 있었지. 그런 와중에 반대 진영에 있던 미라보라는 사람이 접근을 해왔어. 자신이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면서 말이야. 구체적인 계획도 있었어. 하지만, 그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무위로 돌아갔단다.

이제 더욱 선택지는 줄어들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몰래 탈출 계획을 세웠단다. 이 일은 가장 믿을만한 사람 파르센을 시켰어. 하지만, 국경을 넘기 직전인 바렌이라는 지역에서 그만 발각이 되어, 다시 파리로 강제소환 되었단다. 그들이 발각될 수 밖에 없던 이유가 화려한 마차를 타고 궁 안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궁 안에서 하던 행동을 하니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킬 수밖에 없었단다. 결국 국경 넘기 직전에 발각되어 다시 파리로 돌아왔어.

이런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마리 앙투아네트는 드디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왕비 같은 모습을 보였어. 그녀 몸 속에 숨어 있던 엄마 마리아 테레지아의 피가 흐르는 듯했어. 하지만, 이미 많이 늦었단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로서 품격을 찾으려고 할 때 더 이상 왕비가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루이 16세도 죽음을 앞두고서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는구나.

그리도 드디어 마리 앙투아네트의 심판일.. 여러 가지 혐의가 있었는데, 루이 16세를 타락시켰다거나 백성을 기만했다는 등 입증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국고 낭비, 오스트리아와 결탁 등에 대한 내용도 있었지만, 이런 것들도 그 당시까지만 해도 증거가 없고 심증만 있었다고 하는구나. 다른 사람이 된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변호를 직접 했다는구나. 검찰 측에서도 제대로 된 증거를 내놓지 못했지만,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는 유죄 선고를 받고 처형을 당하게 된단다. 마리가 죽기 전 시누이에게 남긴 편지가 있는데, 이 편지를 읽다 보면 남긴 자식들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더구나. 부모의 마음은 시대와 장소를 따지지 않는 것 같구나.

….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은 늘 재미가 있구나. 아무래도 부패한 왕권을 민중의 힘으로 무너뜨린 통쾌함 때문이 아닐까 싶구나. 나라의 정권을 민중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가 싶구나. 프랑스 혁명 이후 한동안 혼란기를 겪고, 서로 반대를 죽고 죽이고, 다시 왕정 시대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프랑스 혁명은 민주주의 국가를 마련하는데 디딤돌이 되었다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우리나라도 부패한 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여러 번 바꾼 적이 있잖니. 그런 역사적 교훈이 있어도 정권만 잡으면 또 못된 짓을 하고 국민과 척을 두는 이들이 왜 생기는지 모르겠구나. 또 당해봐야 알겠나.

….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여러 잘못은 했지만, 마지막 순간은 왕비의 위엄도 되찾으려고 했고, 왕비의 잘못이 교수형에 처할 만큼의 죄였나, 싶기도 하구나. 우리가 작년에 베르사유 궁전에 갔을 때, 마리 앙투아네트의 방도 보고 거울의 방도 보고 그랬잖니, 기억나지? 정말 사치스럽긴 한 것 같더구나. 하지만 그 사치가 교수형까지 처할 사항인지는 의문이구나. 당시는 사치스러워 백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오늘날은 관광 명소가 되어 발 디딜 틈 없는 곳이 되었으니 아이러니하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은 수백 년에 걸쳐 벌여온 재판을 세상 밖으로 다시 꺼내는 일과 같다.

책의 끝 문장: 한때는 우아함의 상징이었지만 이 모든 고뇌에 괴로워하도록 선택한 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은 수백 년에 걸쳐 벌여온 재판을 세상 밖으로 다시 꺼내는 일과 같다.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아래에 같이 산다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선동을 목적으로 한 인물이 그려질 때, 여론과 그 추종자들로부터 정의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영혼의 진실은 대개 중간 그 어디쯤에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실의 위대한 성인도 아니었고, 특별히 똑똑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은 평범한 성격에, 불타는 열정도 얼음 같은 차가움도 없는 사람이었다. 착한 뜻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악한 의도를 품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평범한 인물이었기에 비극의 대상이 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비극적인 긴장감은 인간과 그의 운명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불균형은 영웅이나 천재들이 그들에게 내려진 사명에 비해서 너무나 좁고 적대적인 주위 세계와 충돌할 때 생겨난다. - P8

세상사는 대개 개개인의 내적 갈등의 결과물들일 뿐이다. 아주 작은 계기가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게 되는 것은 역사가 지닌 위대한 비결 중 하나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나비효과라고 불리는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와 드라가 마신의 결혼, 두 사람의 암살, 카라조르제비치의 즉위, 오스트리아와의 적대. 빈틈없이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세계대전. 역사란 거미줄처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다. 정교하게 조합된 역사라는 장치 속에서는 아주 작은 톱니바퀴라도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렇듯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 가운데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 결혼 이후에 몇몇 해들은 세상의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 P27

오늘날에도 베르사유는 절대 왕정의 가장 웅장하고 도전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도심에서 떨어진 시골 한가운데, 별다른 이유 없이 언덕 위에 자리한 궁전에는 수백 개의 창문들이 인공 운하와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는 원래 도로도 기차도 이어지지 않았었다. 한순간의 기분으로 굳어진, 무의미하게 거대한 호화로움이었다. 바로 이것이 루이 14세의 절대 왕정이 원하던 것이었다. 이러한 의지는 국왕 개인에게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영광은 그 개인에게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짐이 곧 국가다." 그는 지위의 무한함을 표출하기 위해 궁전을 의도적으로 파리 밖으로 옮겼다. 그가 팔을 뻗어 명령만 하면 모래밭은 정원과 숲으로 변하고, 아름다운 궁전이 세워졌다. - P29

왕비에게는 ‘적자 부인(Madame Defizit)’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민주적인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궁정이나 왕, 귀족은 없고 오직 시민만이 있는 나라, 완전한 평등과 자유가 있는 나라를 말했다. 그리고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볼테르, 디드로의 저서에서 말하다시피 왕권은 결코 신이 부여한 유일한 정치체제가 아니었다. 존경심은 호기심으로, 두려움은 분노로 바뀌며 귀족과 시민들은 점점 확신했다. - P144

혁명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넒은 의미를 포괄하는 단어이다. 이 개념은 최상의 이상주의에서부터 현실적인 잔악함에 이르기까지, 위대함에서부터 무자비함에 이르기까지, 정신적인 것에서 폭력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며 변색됐다. 프랑스 혁명에는 두 부류의 혁명가가 있었다. 이상주의적인 혁명가와 복수심에 불타는 혁명가였다. - P266

"대체 언제 너는 진짜 네가 될 작정이냐?" 20년 전 절망에 빠진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는 딸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마리 앙투아네트는 스스로 존엄을 되찾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법 절차를 빠뜨리지 않으려는 심문자 푸키에 탱빌은 그녀에게 체포되었을 당시 어디에 살았냐고 묻는다. 그녀는 자신은 결코 체포된 것이 아니며 국민의회의 요청에 따라 탕플 탑으로 옮겨갔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다. 왕비의 죄목은 혁명 이전부터 오스트리아의 국왕과 정치적인 관계를 맺은 것, 민중의 땀과 열매인 프랑스 재정을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반역자인 대신들과 공모하여 낭비한 것, 황제에게 돈을 보내 자신을 섬긴 백성들을 공격한 것 등이었다. 혁명 이후 프랑스에 대항하여 외국 밀사와 거래하고 남편인 국왕을 선동해서 거부권을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비난을 마리 앙투아네트는 강력히 부정했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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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3-18 0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조작과 선동은 민중들에게 잘 먹힌다는 사실과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 되고 말지요. 다만 조작과 선동의 정치가 지금도 활개를 친다는 게 우리 인간사의 불행한 일 아닐까요?ㅠㅠ

bookholic 2024-03-19 11:58   좋아요 0 | URL
이번 선거에서는 많은 이들이 조작과 선동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7-18)

한번은 파리에서 <모나리자>를 보러 갔다. 이제 모나리자는 전세계에서 온 사람이 럭비 경기처럼 몸싸움을 벌이는 뒤편에 영원히 가려져 있는데, 모두가 앞쪽으로 거칠게 밀고 들어가자마자 모나리자에게 등을 돌리고 셀카를 찍은 다음 다시 힘겹게 빠져나온다. 그날 나는 옆쪽에서 한 시간 넘게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몇 초 이상 <모나리자>를 바라보지 않았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더 이상 수수께끼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나리자는 마치 16세기 이탈리아의 자기 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왜 옛날처럼 나를 그저 바라보지 않는 거죠?’


(50)

수네는 이 결과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젠장, 진짜였잖아무언가가 변하고 있어. 늘 똑같은 게 아냐.” 이 연구는 집단으로서 우리의 집중력 지속 시간이 실제로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 세계 최초의 증거였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인터넷 탄생 이후부터가 아니라 나와 우리 부모님, 우리 조부모님의 삶 내내 벌어지지 있었다. 물론 인터넷은 이러한 추세를 급속화했다. 하지만 연구팀은 인터넷이 유일한 원인이 아님을 발견했다.


(60)

그는 이러한 끊임없는 전환이 세가지 방식을 통해 집중력을 저하한다고 설명했다. 그 첫 번째 방식은 전환 비용 효과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여기에는 방대한 과학적 증거가 있다. 자신이 소득 신도를 하고 있는데 문자가 하나 와서 그 문자를 확인하고(5초간 힐끗 보는 것뿐이다) 다시 소득 신고로 되돌아간다고 상상해보자. 얼은 그 순간 뇌가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이동하면서 재설정되어야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방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야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 증거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때 사람들의 수행 능력이 떨어지고 속도가 느려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전환의 결과입니다.”


(74)

나 또한 핸드폰이 사라지자 세상의 큰 부분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내 핸드폰을 되찾고 싶었다. 이메일을 되찾고 싶었다. 그 둘을 동시에 하고 싶었다. 해변에 있는 집에서 나올 때마다 본능적으로 핸드폰이 잘 있나 주머니를 만져보았고, 핸드폰이 없음을 깨달을 때면 늘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마치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잔뜩 쌓아놓은 책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10대와 20대 때는 며칠이고 침대에 누워 쭉 책만 읽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그때와 달리 프로빈스타운에서는 지나치게 들뜬 상태로 허겁지검 책을 읽고 있었다. 블로그를 훑으며 핵심 정보를 찾듯이 찰스 디킨스를 훑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독서는 정신없이 여기저기서 정보를 추출했다. 그래, 이해했어. 이 아이는 외톨이구나. 그래서 요점은? 어리석은 행동임을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요가는 내 몸의 속도를 늦추었지만 정신의 속도는 늦출 수가 없었다.


(88)

그러므로 몰입 상태가 되려면 단일한 목표를 택해야 하고, 그 목표가 반드시 자신에게 유의미해야 하고, 능력의 한계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여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해서 몰입에 빠져들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몰입은 특별한 정신 상태이기 때문이다. 몰입한 사람은 자신이 오로지 현재에 머무는 기분을 느낀다. 자의식이 사라지는 상태를 경험한다. 자아가 소멸해 목표와 내가 하나되는 느낌과 비슷하다. 내가 기어오르는 암벽이 곧 내가 되는 것이다.


(124-125)

오늘날 재미로 책을 읽는 미국인의 수는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인 2 6000명으로 구성된 표본을 연구하는 미국 시간 사용 조사는 2004년에서 2017년 사이에 재미로 독서를 하는 비율이 남성은 40퍼센트, 여성은 29퍼센트 줄었음을 발견했다. 여론조사 기업인 갤럽은 한 해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미국인 비율이 1978년과 2014년 사이에 세 배로 뛰었음을 확인했다. 현재 미국인의 약 57퍼센트가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점점 커져 2017년에 미국인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17, 하루 평균 핸드폰 사용 시간은 5.4시간이 되었다. 복잡한 소설은 특히 수난을 겪고 있다.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오로지 재미로 문학을 읽는 사람 수가 미국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만큼 철저히 연구되지 않았지만 영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도 비슷한 추세로 보인다. 2008년과 2016년 사이에 영국 소설 시장 규모가 40퍼센트 줄었다. 단 한 해 동안(2011) 페이퍼 소설 판매량이 26퍼센트나 폭락했다.


(132)

궁금했다. 종이책이라는 매체에 담긴 메시지는 뭐지? 글자가 구체적으로 의미를 전달하기 전부터 책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한다. 먼저, 삶은 복잡하다. 삶을 이해하고 싶다면 깊이 숙고할 시간을 충분히 마련해야 하며, 속도 또한 늦춰야 한다. 둘째, 다른 걱정을 제쳐두고 한 가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한 문장, 한 문장, 한 쪽 한 쪽을 따라가는 경험은 가치 있는 일이다. 셋째,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생각하는 방식은 깊이 사고해볼 만하다. 다른 이들에게도 우리처럼 복잡한 내면의 삶이 있다.


(135-136)

레이먼드에게 물었다. 이유가 뭐죠? 그는 독서가 독특한 의식 형태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종이 위의 단어를 향해 관심을 바깥으로 돌립니다. 동시에 그 내용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면서 내면을 향해 엄청난 주의를 쏟습니다.” 눈을 감고 아무거나 상상하려고 애쓰는 행동과는 다르다. “그때 사람들의 관심은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종이 위에 단어를 향해 바깥으로 기울었다가, 그 단어의 의미를 향해 내면으로 기우는 것을 오가는 매우 독특한 상태에 있지요.” 독서는 바깥을 향한 관심과 내면을 향한 관심을 결합하는 방법이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한다. 레이먼드는 그때 우리가 다양한 인물과 그들의 동기, 목표를 이해하려 애쓰고, 그런 다양한 요소를 따라가려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연습입니다. 그때 아마 사람들은 현실에서 실제 인물을 이해하려 할 때와 똑 같은 인지 과정을 사용할 겁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다른 인물을 어찌나 잘 가장하는지, 현재 가상현실 시뮬레이터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기기보다 소설이 훨씬 나을 정도다.


(149)

두 과학자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딴생각(내가 프로빈스타운에서 너무나도 많이, 즐겁게 했던 것)이 주의 집중의 정반대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이유로 딴 생각을 하면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실제로 딴생각은 다른 형태이자 반드시 필요한 형태의 집중이다. 네이선은 우리가 하나의 스포트라이트로 주의로 좁혀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일정량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스포트라이트를 꺼도 우리는 여전히 그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저 다른 사고방식에 에너지를 더 많이 할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주의력이 꼭 낮아지는 것은 아니며다른 중요한 형태의 사고로 자리를 옮기는 것일 뿐이다.


(177)

구글플렉스의 한복판에서 몇 년을 보낸 트리스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마지막 의사 표시로서 슬라이드쇼를 준비해 동료들에게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고 호소했다. 첫 번째 슬라이드에는 이렇게만 쓰여 있었다. “저는 우리가 세상을 더 산만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산만함은 제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삶에서 전부니까요그런데 이곳에서는 수많은 시간이 불가사의하게 사라집니다.” 그는 지메일의 수신함 사진을 보여주었다. “피드도 막대한 양의 시간을 삼켜버립니다.” 그는 페이스북 피드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미국의 13세 이상 17세 이하 어린이들이 깨어 있는 동안 문자 메시지를 평균 6분에 한 개씩 보낸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구글(을 비롯한 다른 기업)이 의도치 않게 우리 아이들의 집중력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핸드폰을 확인하는 트레드밀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189)

이 기술이 우리 아이들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는 신만이 아실 겁니다.” 페이스북의 성장 담당 부사장이었던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한 연설에서 페이스북이 너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기 자녀에게는 그 쓰레기를 사용하지 못하게한다고 말했다. 아이폰을 공동 개발한 토니 파델은 이렇게 말했다. “종종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뭘 내보낸 거지?” 그는 자신이 사람들의 뇌를 날려버리고 재설정할 수 있는 핵폭탄생산에 일조한 것은 아닐지 우려했다.


(256-257)

이 과학자들은 페이스북이 대중에서 공개하지 않는 숨은 자료를 전부 연구한 뒤 확실한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우리의 알고리즘은 분열에 이끌리는 인간 두뇌의 특성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를 그대로 놔둔다면페이스북은 사용자의 관심을 끌고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자 점점 더 분열적인 콘텐츠를 쏟아내게 되리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내부의 또 다른 팀(이들의 작업도 <월스트리트 저널>에 유출되었다)도 독립적으로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 팀은 극단주의 집단에 합류하는 사람의 64퍼센트가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직접적으로 그 집단을 추천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전 세계 사람들이 자기 페이스북 피드에서 회원님을 위한 추천 그룹이라는 말과 함께 인종차별 집단, 파시스트 집단, 심지어 나치 집단을 발견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이들은 독일의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모든 정치집단의 3분의 1이 극단주의라고 경고했다. 페이스북의 자체 팀은 다음과 같이 단도직입적으로 끝을 맺었다. “우리의 추천 시스템이 문제를 키운다.”


(297-298)

다른 많은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도를 했다. 실험의 내용은 무척 다르지만 계속해서 비슷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1920년대 영국에서는 W.G. 켈로그(시리얼 제조업체 창립자)가 하루 근무시간을 여덟 시간에서 여섯 시간으로 줄였고, 작업 중 사고(집중력을 측정하는 좋은 기준) 41퍼센트 줄었다. 2019년 일본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주4일 근무를 도입했고 생산성이 40퍼센트 개선되었다고 보고했다. 같은 시기 스웨덴 고센버그에서는 한 요양원이 임금을 줄이지 않고 하루 근무시간을 여덟 시간에서 여섯 시간으로 줄였고, 그 결과 직원들은 수면 시간이 늘고 스트레스가 줄었으며 병가를 더 적게 냈다. 같은 도시에서 토요타는 하루 근무 시간을 두 시간 줄였고, 그 결과 정비공의 생산성이 114퍼센트로 높아졌으며 이윤이 25퍼센트 늘었다.


(312-313)

우리가 끼니마다 그런 값싸고 형편없는 탄수화물 식품을 먹는다면 계속해서 그 롤러코스터를 타게 됩니다.” 데일은 그런 음식을 카페인과 함께 섭취한다면 혈당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진다고 덧붙였다. “크루아상을 먹으면 분명 혈당이 급상승합니다. 하지만 크루아상을 커피와 함께 먹으면 혈당이 더더욱 치솟고, 그만큼 급강하가 따라옵니다.” 이러한 혈당의 급상승과 급강하는 온종일 발생하고, 그 결과 우리는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어서 오랜 시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 데일은 (비유를 살짝 바꿔서) 이 모든 것인 “BMW 미니에 로켓 연료를 넣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미니는 순식간에 고장 나버릴 겁니다. 로켓 연료를 감당하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미니에 알맞은 휘발유를 넣으면 부드럽게 달릴 거예요.”


(378)

첫 번째 요소는 가장 명백하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달릴 때(어떤 형태든 운동에 참여할 떼) 집중력이 개선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방대한 증거를 발견해왔다. 예를 들어 이 현상을 조사한 한 연구는 운동이 어린이의 집중력에 이례적인 추진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포틀랜드에서 인터뷰한 조엘 닉 교수는 이 증거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요약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경우 유산소 운동이 뇌 연결망과 전두엽, 자기 통제와 집행 기능을 돕는 뇌 화학물질의 생성을 돕니다. 운동은 뇌를 더 크고 효율적으로 만드는변화를 일으킨다. 이를 보여주는 증거가 너무 방대해서 조엘은 이 결과를 확실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증거는 이보다 더 명백할 수 없다. 뛰어다니려는 자연스러운 욕구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아이들을 막는다면, 아이들의 집중력과 전반적인 뇌 건강은 악화될 것이다.


(404)

핀란드의 아이들은 7세가 되기 전까지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때까지 그냥 논다. 7세에서 16세 사이의 아이들은 오전 9시에 학교에 도착하고 오후 2시에 하교한다. 숙제는 거의 없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시험도 거의 없다. 핀란드 아이들 삶의 고동치는 심장에 자유로운 놀이가 있다. 법적으로 핀란드의 교사들은 45분 지도할 때마다 15분의 자유 놀이 시간을 줘야 한다. 그 결과는? 핀란드 어린이의 겨우 0.1퍼센트만이 집중력 문제를 진단받으며, 핀란드인은 세계에서 읽고 쓰는 능력과 산술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행복한 사람들 중 하나다.


(405)

오늘날 성인은 어린이와 10대들이 집중에 어려움을 겪는 듯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종종 지긋지긋함과 짜증이 깃든 우월감을 느끼며 말을 얹는다. 그 말들은 이런 의미를 내포한다. 이 열등해진 세대를 봐! 우리가 얘네보다 낫지? 쟤네는 왜 우리처럼 못할까?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뒤 나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이에게 욕구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어른인 우리의 일이다. 이 문화에서 우리는 대체로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다. 자유롭게 놀지 못하게 하고, 전자기기 화면으로 소통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게 없는 집 안에 아이들을 가두며, 우리의 학교 제도는 대개 아이들을 무감각하고 지루하게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은 에너지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약물처럼 아이들을 들뜨게 할 수 있는 첨가제가 들었으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소는 없다. 우리는 뇌를 망가뜨리는 대기 속 화학물질에 아이들을 노출시킨다. 아이들이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만든 이 세상의 잘못이다.


(429-430)

현재 우리는 녹초가 될 만큼 일해서 물건을 살 수 있으면(대부분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는다) 번영을 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제이슨은 우리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자연에 머물거나, 충분히 자거나, 꿈꾸거나, 안정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번영의 의미를 재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는 빠른 삶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좋은 삶을 원한다. 죽기 직전에 자신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바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형 상태 경제에서는 우리의 집중력을 공격하지 않고 지구 자원을 공격하지 않는 목표를 선택할 수 있다.


(433)

기후위기는 해결 가능하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깨끗한 녹색 에너지원으로 사회에 동력을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려면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분별력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하며, 명료하게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3분마다 작업을 전환하고 알고리즘이 붙어넣은 분노 때문에 늘 서로에게 고함을 치는 정신없는 인구 집단은 이 해결책을 실행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집중력 위기를 해결할 때에만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이 문제를 고심하다가 제임스 윌리엄스가 한 말을 떠올렸다. “나는 중요한 정치적 투쟁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어쩌면 인간 집중력의 해방이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도덕적, 정치적 투쟁일지 모른다. 이 투쟁의 성공이 선행되어야만 사실상 다른 모든 투쟁이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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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3-15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메모실력!!!

bookholic 2024-03-16 21: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하지만 다시 보니 오타남발이네요...^^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64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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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박지리 님의 시작을 알리는 그 작품 <합체>라는 소설을 읽었단다. 이 책은 십여 년 전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박지리라는 작가를 세상에 알리게 된 작품이란다.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작가 수업을 받은 적 없던 당시 신인 작가 박지리 님의 화려한 등장이란다. 아빠가 처음 읽은 박지리 님의 작품이 박지리 님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다위 영의 악의 기원>이었고, 그 책을 읽고 나서 가끔씩 박지리 님의 책들을 찾아 있는데, 지금까지 실망을 안겨준 책이 없었단다. 이번에 읽은 <합체>라는 데뷔작부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던 천재작가였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단다. 그 천재적인 능력을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음이 안타깝구나.

이 책은 너희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청소년 성장 소설이었단다. 이 책이 예전에는 너희들 같은 청소년들의 추천 도서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최근에는 리스트에 빠져 있는 것 같더구나. 아무래도 박지리 님의 마지막 선택 때문이 아닌가 싶구나. 그래도 아빠는 너희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더구나. 재미도 있고, 짠한 감동도 있고, 주인공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통해서 둘이 합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교훈적인 내용도 있고 말이야 ㅎㅎ


1.

소설의 제목 <합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두 개의 어떤 것이 하나로 합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소설의 제목의 사이의 별모양() 모양이 눈에 띄게 된단다. 소설의 제목 <합체>는 중의적인 제목이야. 하나는 원래 우리가 알고 있던 두 개의 어떤 것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의미하고, 하나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의미한단다.

오합과 오체 쌍둥이가 그들이란다. 그들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합친 합체이고 그들의 이름을 구별하기 위해 책의 제목에 사이에 ★을 함께 적어 둔 거야. 주인공 오합과 오체의 아버지는 난쟁이란다. 오합과 오체의 아버지는 지방 순회를 다니는 공연단에서 난쟁이 쇼를 하셨는데, 후진하는 트럭에 치여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어. 트럭 운전사는 뒤에 분명히 보았고,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고 했어. 그렇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합과 오체는 어머니와 함께 셋이 생활했단다.

오합과 오체는 아버지를 닮아서 키가 무척 작았고, 학교에서는 그것 때문에 놀림을 받곤 했단다. 쌍둥이 형인 오합은 모범생이고 공부를 무척 잘했으나 체력이 약했단다. 쌍둥이 동생 오체는 운동을 아주 좋아했으나 공부는 잘 못했어. 오합은 키가 작은 작은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오체는 키 작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단다. 학교에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 중에도 오합과 오체를 놀리는 선생님이 있었단다. 특히 체육 선생님은 체육 시간에 농구 시합을 하는데 둘을 한 팀에 몰아 놓고 합체해보라고 하기도 했어.

오체는 어느 날 자신과 이름이 같은 유명한 사람을 한 명 알게 되고, 그를 우상으로 생각하게 된단다. 오체와 이름이 같다면 체? 너희들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 특히 아빠 세대들은 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단다. 바로 체 게바라. 쿠바 혁명의 영웅. 얼굴도 잘 생겨서 그의 얼굴을 새긴 옷도 많았단다. 오체는 체 게바라를 알게 된 이후, 그를 우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방에 체 게바라 사진도 붙여 놓고 그랬어. 이 책의 책 앞표지를 다시 보면 체 게바라 얼굴이 그려진 빨간 티셔츠를 볼 수 있을 거야. 그 옷을 아이가 오체겠구나.

오체는 농구 연습 하러 뒷산 약수터 근처 공터에 갔다가 천막 치고 지내는 도인 같은 노인을 만나게 되었단다. 그 노인은 뱀에 물렸는데, 오체가 도와 주어 살아났어. 그 이후로 그 도인 같은 노인을 알게 되었어. 어느날 반 친구 하나가 오체를 난쟁이라고 놀렸는데, 이 일로 오체는 그 친구와 치고 박고 싸움을 했단다. 이후 오체는 학교를 안 가겠다고 했어. 오합이 학교에 핑계를 잘 대서 잘 넘어갔고, 다행히 여름 방학이 되었단다.


2.

오체는 학교를 안 가고 뒷산에 갔다가 얼마 전에 만난 도인 같은 노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에 키 작은 것에 대한 신세 타령을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도인 같은 노인은 키 크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어. 도인 같은 노인은 자신이 계룡산에서 도를 터득한 계도사라고 했어. 그러면서 계룡산 동굴에서 33일간 도를 닦으면 키가 커진다고 했어. , 동굴에서 삼칠일 동일 마늘을 먹으면 사람이 되는 단군신화가 생각나는구나.^^

이 말을 철썩 같이 믿는 오체는 어느날 오합을 무작정 데리고 계룡산으로 갔단다. 엄마에게는 걱정하지 말라는 편지 한 통만 남겨두고 말이야. 오합은 방학 동안 공부해야 한다고 하니, 오체는 공부할 것 다 싸가지고 왔다면서, 계룡산 동굴에서 공부를 하면 더 잘 될 거라고 설득했어. 그렇게 오합와 오체는 계룡산의 이름 없는 동굴에서 키 크는 수련을 시작했어. 오합은 오체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오합과 오체는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계도사가 알려준 방법으로 수련을 했고, 오합은 수련하는 시간 이외에는 계속 공부만 했단다. 둘이 함께 지내면서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형제의 정을 더 키웠단다.

하루 이틀이 지날 때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하루 이틀이니 그러려니 했는데, 전체 수행 기간의 절반이 지나가도 효과나 나타나질 않아 오체는 거짓말인가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어. 오합은 수련을 하니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

그들이 수련을 한지 24일째, 하루에 한 시간씩 듣는 라디오에서 사연이 하나 소개되었어.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찾는 사연인데 누가 들어도 계도사에 관한 이야기였어. 식구들이 말하길, 사람들을 자꾸 계룡산으로 보낸다고 했어. 이 방송을 들은 오체는 화를 마구 내면서 곧바로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엄마한테 엄청 혼나긴 했지만, 엄마는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 주었단다.


3.

여름 방학이 그렇게 계룡산 해프닝을 끝나고 개학을 했단다. 오합은 집에 와서도 계룡산에서 했던 수련을 새벽마다 일어나 뒷산에 가서 계속 했단다. 얼마 후에는 오체도 합류해서 함께 했어. 어느날 오합과 오체는 라디오를 듣다가 계도사 할아버지의 또 다른 사연을 듣게 되었어. 사연의 주인공은 몇 년 전 수능을 망치고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계도사가 그의 자살을 막았다고 했어. 그러면서 계룡산에 가서 수련을 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대. 수련을 하면 키가 큰다거나, 수련을 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하니 엉터리이긴 엉터리인가 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사연의 주인공은 계도사 할아버지의 말대로 계룡산에 가서 수련을 했는데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건강해지게 되었대 그리고 다시 공부를 해서 원하는 대학에서 갔다는 아주 훈훈한 사연이었단다. 오합과 오체도 키는 크지 않았지만, 계도사 할아버지가 알려준 수련법으로 몸이 더 튼튼해진 것 같았어.

….

2학기 중간 고사 체육 실기는 농구. 오체와 오합은 친구들의 무시를 당하곤 했어. 그런데 오합과 오체가 그동안 수련을 해온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어. 오체의 3점슛 2개와 오합의 마지막 골로 그들의 팀이 역전승을 했단다. 그리고 바짓단이 살짝 올라와 있는 것 같았어. 그렇게 소설은 해피하게 끝이 났단다.

이 소설에서 오합과 오체가 다니는 학교에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조세희 님의 소설을 읽는 장면이 있었어. 이 소설은 여러 교훈이 담긴 책으로 교과서에도 실린 것으로 알고 있단다. 아무리 교훈적인 글이긴 하지만,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한 키 작은 아이가 읽는다면,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오체가 수업 시간에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라는 글을 읽는데 오체에게는 그것이 단순히 인용문을 읽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많은 아이들 앞에서 읽는 것이었어. 창피하고 떨리고 정신이 멍해졌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교과서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박지리 님의 <합체>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오합과 오체라는 매력 만점 캐릭터들을 통해 <단군 신화>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박지리 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너희들도 한번 꼭 읽어보길 바란다. 오늘은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

책의 끝 문장: 계절은 가을이었고, 바람은 상쾌했고, 하늘에는 누가 쏘았는지 모를 빛나는 공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오늘에 이어 내일도 쉬지 않고 튀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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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차득보는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담배를 깊이 피웠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해가 막 떠오르는 순간 바람결이 휘익 스치고 지나갔다. 그 문득 스치는 바람결을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 햇살이 쫙 비치면서 일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바람이었다. 그건 해가 내뿜는 힘이었다. 누구에게 들은 말이 아니었다. 스스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농사를 지어 갈수록 해가 얼마나 오묘하고 큰 힘을 지녔는지 깊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농사는 사람의 힘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거의가 해의 힘으로 지어졌다. 사람의 힘은 그저 잔일을 거들 뿐이었다. 해와 땅과 물, 그것들이 어우러져 벼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이삭을 맺게 했다. 그것을 한문으로 하면 火•土•水였다. 신세호 선생 앞에서 늦공부를 하며 뜻인지 잘 몰랐었다. 그런데 농사짓는 세월이 쌓이면서 그 뜻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76)

그런데 광주의 여러 학교 학생들이 그렇게 연대투쟁에 나선 것은 조선 여학생이 희롱당한 것에 대한 감상적인 민족감정의 발로거나 충동적인 젊은 혈기의 폭발이 아니었다. 3.1운동 이후부터 전국의 수많은 학교들은 끊임없이 동맹휴학을 일으켜왔다. 어느 학교에서나 학생들이 내세운 맹휴의 이유는 거의 동일했다. 일인 교사나 일인 교장의 배척, 식민지 노예교육의 철폐, 조선어교육의 강화, 조선인 교사들의 학대 같은 것을 내세웠다. 그건 단순한 교내문제가 아니라 학생의 입장에서 전개한 맹휴투쟁은 사회주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차츰 빈번해지고 격렬해졌던 것이다. 그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비밀조직이 배후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95-96)

송수익은 지금도 독립투쟁의 가장 효과적인 방략은 모든 세력들이 화합적으로 뭉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희박했다. 만주의 삼부는 29 3월에 제2차 통합회의를 개최하여 다행스럽게 자치기관으로 국민부를 조직했다. 그런데 7월에 신민부의 군정파를 이루고 있는 김좌진의 다시 한족총연합회라는 것을 만들어 분리되어 나갔다. 또 통합체의 한쪽이 허물어진 상태가 된 것이었다. 국내에서 발족된 신간회의 영향으로 만주에서 일어난 민족유일당 결성 운동은 그 상태로 끝나고, 사회주의 단체들과의 연합이란 막연한 일로 남겨지고 말았다. 그리고 만주와 같은 시기에 한국유일독립당촉진회를 만들었던 상해임정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여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98)

우리는 그동안 2단계의 사업을 해왔습니다. 1단계는 무정부회의에 대한 이해•습득과 동지들의 규합이었습니다. 2단계가 국내의 신간회 발족을 계기로 우리의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해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28년에 상해에서 결성했고, 뒤이어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여 동방 제국의 동지들과 결속을 강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제3단계 사업을 전개할 시점에 와 있다고 판단되어 그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기 위해 본 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제가 향후 사업에 대하여 한 가지 의견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투쟁노선은 무산계급을 중추로 한 폭력혁명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산계급을 중추로 한 폭력혁명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산계급이 많은 곳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만주입니다. 만주는 우리의 적인 왜놈들과도 가깝습니다. 하므로 앞으로 만주에 우리의 총력을 집중하여 조직을 확대하고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고견들을 많이 내주시기 바랍니다.”

회의를 주재하는 이회영의 말이었다.


(103)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 의열단의 정신과 목표를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최고 최대의 대의는 조선의 독립입니다. 그건 우리의 유일한 길이며 최후의 길입니다. 우리는 그 목적을 쟁취하기 위하여 결속했고, 투쟁해 왔고, 앞으로도 투쟁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투쟁과정에서 상해임정과 협조했고, 중국공산당을 도와 광동코뮌에서 싸웠고,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도 동참했습니다. 그건 우리의 최우선의 목표인 독립을 성취시키기 위해 모든 세력과 협조하고 연합하자는 우리 의열단의 투쟁방법을 실천한 것이었습니다. 우린 독립을 위하여 어린아이들의 힘까지 빌려야 할 처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도 모든 항일세력들과 연합하고 결속하고 통일체를 이루는 노력을 변함없이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중국공산당의 입당은 하등의 문제가 될 것이 없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강압적인 필요는 없고 자율적으로 선택하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디까지나 의열단이며, 그 문제로 하여 우리 의열단은 추호의 변동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는 것은 인민대중과 결속하여 투쟁을 확대해 나가는 방법과 인민존중의 사상에 공감하는 것이지 의열단의 근본 정신과 목표를 훼손하자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 좋은 일례가 광동코뮌에서 싸우는 동시에 변절자가 된 박용만을 제거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이 기회 의열단원의 임무와 사명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바랍니다.”

김원봉이 총괄적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단원들을 휘둘러보았다.


(104)

김원봉이 언급한 박용만은 바로 하와이에서 건너온 박용만이었다. 그는 변절한 밀정으로 판명되어 2년 전에 의열단원에게 살해되었다. 그러나 그의 변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구구하게 말이 많았다. 그 말들을 간추리면 변절했다, 아니다, 하는 엇갈린 주장이었다. 그것은 박용만이 그만큼 지명인사이기 때문이었고, 변절자로 죽어간 그의 죽음이 또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죽고 없었다. 어쨌거나 의열단에서는 그만한 인물을 죽이기로 결정하기까지는 확실한 근거를 확보했을 것이고, 박용만의 죽음은 실망스러운 슬픔이 아닐 수 없었다.


(161)

하와이의 조선 사람들은 세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그 누구든 자식들에게 다시는 농장생활을 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자기들의 고생을 자식들에게까지 되풀이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자기들의 고생을 자식들에게까지 되풀이시키지 않겠다는 부모님들의 마음이었다. 농장생활을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학교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육열은 더없이 뜨거웠다. 둘째, 법에다 김치를 먹듯이 조선사람으로서의 생활과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여름뿐인 땅이었지만 해가 바뀌면 꼭 설을 쇴고, 비록 양주를 따라올리더라도 꼭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셋째, 어떻게 해서든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얼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서만이 아니었다. 실생활에서 노란둥이라는 차별에다가 나라 없어서 당하는 설움이 겹쳐지고 있었다.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들이 당하지 않는 무시와 멸시 그리고 손해를 언제나 당하며 살고 있었다.


(174)

그려, 나가 공산주의 변호인도 아닝게 그 말언 그만 허세. 근대 우리가 한 가지 명심헐 것이 있네. 자내가 나나 멀라고 만주짱서 요 고상덜얼 허고 있능가? 그야 천번 만번 물어도 대답언 똑겉이 독립, 독립얼 위해서 아니여? 민족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무정부주의자든 조선사람이먼 그 목적은 다 똑겉이 한나여. 단지 목적얼 달성허는 방법으로 서로 다른 주의럴 택런 것뿐이란 말이시. 근디 주의가 다르다고 혀서 서로 미와허고 등지고 싸와서야 되겄능가. 아니여, 서로 돕고 손얼 잡고 연합혀야 혀. 우리 의열단이 중국공산당이나 조선공산당얼 도운 것언 다 그런 뜻 땀시여. 자네넌 공산주의자덜얼  원수 대허디끼 허는디, 나넌 시방 송 선생님 밑에서 무정부주의 투쟁얼 허세만 언제 또 공산주의자로 활동헐란지 몰르네. 독립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허먼 주의야 언제든지 바꾼다는 것이 내 주의잉게로. 글먼 그때 가서 자네 나 가심에다 총질헐랑가?”


(250)

송수익은 눈을 내리감았다. 이회영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그분은 이제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만주의 상황은 돌변하고 있었다. 독립군들이 처한 입장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바로 후방이 전방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무정부주의 투쟁도 새롭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직의 총력을 만주에 집중시킨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구체적인 투쟁사업을 정했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이회영은 작년 11월에 만주를 향해 상해에서 배를 탔다. 그러나 대련에 내리자마자 수상경찰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상해에서 밀정에게 탐지되어 미리 연락이 취해져 있었다. 이회영은 고문을 못 이기고 다음 달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그분은 떠났지만 그분과 함께 세운 계획은 남아 있었다.


(297)

다시 말하면 조선농민들은 긴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또 투쟁의 방법과 기술도 다양하게 가지고 있다 그겁니다. 그건 바로 무엇입니까? 혁명적 잠재력입니다. 총독부가 발표한 것을 보면 지난 10년 동안에 노동쟁의보다 소작쟁의가 세 배 네 배로 많이 일어났던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그 혁명적 잠재력의 폭발인 동시에 우리의 운동을 그만큼 빨리 흡수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해왔습니까? 그저 무조건적으로 쏘련의 이론을 우리에게 적응시키려고 급급하면서 노동자 우선, 농민 경시의 운동을 해왔습니다. 그건 우리가 저지른 큰 불찰이고 오류입니다. 물론 운동지도층이 도시 중심의 지식인들이었으니까 농민들의 그런 특질을 잘 모르고 소홀히 했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지금까지도 쏘련이론의 맹목적이 추종과 무조건적인 대입을 심각한 문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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