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너 그 사람의 목소리에 흠뻑 빠졌구나! 그 목소리를 사랑하는 거야. 상대방이 가진 만 가지의 특징 중에서 단 하나의 특징이 마음에 쏙 들어오면, 사랑이 시작되는 거 같아. 나는 그 형이 문장 끝에 마침표를 잘 찍는 게 그렇게 좋았어. 다른 사람들은 그 말투가 딱딱해서 정이 안 간다고 하던데, 나는 자기 생각이 확고한 사람 같아서 좋았거든.”


(69)

인간 복제는 인간의 한계 같아. 그 한 사람을 온전히 살릴 수 있다면 아무도 인간 복제 따위는 하지 않으려 할걸. 인간은 영생에 실패했고, 뇌 정복에 실패했어. 전부 다 실패했어. 고작 똑 같은 인간 만들고 땅이나 파고 있다니. 최악의 진화 아니니? 이런 세상인 줄 알았으면 태어나지 않았을 건데. 너는?”


(156)

어떤 것도 안 됐을 거야. 지상이 황무지라고 하더라도 어쩌다 남은 들꽃 한 송이에 그 애는 모든 가진 듯 행복해했겠지. 세계를 지배한 절망보다 나약하게 핀 희망을 사랑했을 테니까.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면서.


(163)

이끼가 처음 등장하고 그로부터 일억 년 후, 관다발식물이 등장해 지표면세 붙어 퍼지는 이끼와 다르게 하늘로 솟아오르며 광합성을 시작했다. 고생대 데본기에 들어선 뒤에야 흩어져 있던 식물들이 군집을 이룬 숲이 등장했다. 고생대 초창기에는 커다란 고사리류가 이끼와 함께 지구를 뒤덮었다가, 고사리류는 버티지 못하고 멸종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침엽수 수목들이 대신하고 꽃은 더 나중에야 등장한다. 식물의 생태는 침묵 속에서 그 어떤 생태보다 소란스럽게 격변했다.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숱한 개체가 근본 없이 생겨나는 동안 이끼는 가장 낮은 곳에,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는 축축한 틈 곳곳에 머물고 있다. 멸종되지 않고.


(239)

끊임없이 순환하며 새 모습으로 계속 재탄생해. 하지만 그건 식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행성의 시스템이야. 모든 생명은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씨앗처럼 뿌린다는 걸, 비록 나는 없더라도 내 삶은 이 행성 전체에 퍼져 다른 생명을 꽃피우게 한다는 걸 잊지 마. 미안해.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말뿐이야. 그래도 기억해줘. 이 말을 너한테 꼭 해주고 싶었어. 흙이 무너지던 순간에 말이야.


(247)

바위틈에도 살고, 보도블록 사이에도 살고 멸망한 도시에서도 살 수 있으면 좋잖아. 고귀한 필요 없이, 특별하고 우아할 필요 없이 겨우 제 몸만한 영역만을 쓰면서 지상 어디에서든 살기만 했으면 좋겠어. 햇빛을 많이 보기 위해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물을 마시지 못해 메마를 일도 없게. 그렇게 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거야. 시시하겠지만 조금 시시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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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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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김영하 님의 책을 읽었단다. 소설로 국한하자면 더 오래된 것 같구나. 그도 그럴 것이 김영하 님이 9년 만에 장편소설을 내 놓았다고 하는구나. 이번에 읽은 <작별인사>라는 책이 그 책이란다. 아빠가 김영하 님의 광팬은 아니라서 그의 많은 작품을 읽은 건 아니지만, 가끔 에세이와 소설을 읽었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김영하 님은 글을 잘 쓰시는 것은 인정하지만, 텔레비전에 나와서 하시는 입담이 더 좋으신 것 같구나.

아무튼 이번에 읽은 <작별인사>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단다. 읽다 보니 SF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아빠가 알기로는 김영하 님께서 SF 소설을 출간하신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SF 소설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어서 김영하 님도 그런 SF를 쓰셨나 싶었는데, 책을 덮고 책소개를 읽어보니, 원래 이 소설은 2019년 신생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의 청탁으로 짧은 장편 소설로 썼다가 이후 코로나 19 바이러스 펜데믹을 거치면서 인간의 존재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 소설의 주제도 그런 인간의 존재로 바꾸면서 분량도 배 이상 늘려서 다시 써서 출간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바로 <작별인사>라는 소설이란다.


1.

아빠가 이 책이 SF라는 것으로 모르고 책 읽기를 시작해서 초반부에는 철이와 철이 아빠 그리고 고양이 세 마리가 함께 사는 가정집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기대를 하면서 읽기 시작했단다. 아빠를 마중 나갔던 철이는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잡혀가게 되는데, 미등록된 휴머노이드라면서 철이를 수용소로 보냈단다. 철이는 평생을 자신이 인간이라서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게 무슨 소리? 철이는 당연히 자신을 검사한 기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아빠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거절했어.

철이의 아버지는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는 회사 휴먼 매터스의 연구원인 최진수 박사였단다. 철이는 고성능 최신식 휴머노이드였는데, 최진수 박사는 그 사실을 철이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구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철이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란 것을 믿을 수 없었어. 그는 먹을 것도 먹고, 어렸을 때의 추억도 기억하고 있었거든

수용소에 있으면서 같이 잡혀 들어온 선이와 민이와 친해졌단다. 민이는 애완용 휴머노이드로 제작되었다가 버림 받은 후에 이곳에 왔다고 했어. 선이는 휴머노이드가 아닌 사람인데 수용소에 와 있었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선이는 불법으로 복제된 복제 인간 클론이었단다. 아참, 철이의 집이 있는 곳은 평양인데, 지금처럼 분단된 상황이 아니고 통일된 한국의 평양이었단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좋지 않았어. 무엇 때문인지 내전 중이었고, 수용소도 그 영향을 받게 되었단다. 어느날 수용소의 전기가 끊기고 외부 민병대의 공격으로 난리가 났단다. 그 혼란 속에서 철이, 선이, 민이는 수용소를 탈출했단다.

철이는 아빠가 있는 것으로 가려고 했는데, 곳곳에 추격대가 있어서 어려웠단다. 도망 중에 추격대의 공격으로 민이 죽었고, 선이는 민의 머리통만 챙겨 도망을 갔단다. 나중에 다시 재생시킬 수 있다는 희망으로선이는 달마라는 재생 휴머노이드를 만나게 되는데, 달마는 휴머노이드로 이루어진 조직의 리더였어. 달마는 휴머노이드 여부를 확인하는 장치가 있었는데, 철이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는데, 이번에는 철이는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로 확인됐어.


2.

철이 아빠 최진수는 철이를 다시 데려오려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어. 그런 와중에 철이가 수용소를 탈출하게 되어 재판은 할 수 없었지. 최진수는 철이의 위치를 파악하는 마지막 방법을 사용했어. 철이 몸 내부에 있는 통신 장치를 활성화하는 거야. 어느날 철이는 머릿속에서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이로써 철이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하고 절망했지. 얼마 후 철이 아빠가 철이를 찾아와서 함께 가자고 했지만, 철이는 안 가겠다고 했어. 철이는 자신은 인간이 아니니 선이와 함께 가겠다고 했지추격대들은 계속 공격을 했고, 그 공격 와중에 철이는 정신을 잃게 되었고, 적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게 되었단다. 철이가 정신을 잃게 된 것은 철이 아빠가 철이의 전원을 꺼버렸기 때문이란다.

철이 아빠는 철이의 머릿속의 자료를 서버에 일단 백업을 했어. 하지만 철이의 몸을 대체할 것을 구하지 못했지. 한동안 인공지능으로 만든 고양이에게 백업을 해서 철이는 고양이의 몸으로 살기도 했어. 철이 아빠는 무등록 휴머노이드를 개발한 일로 회사에서 짤리게 되고, 싱가폴 연구소에 재취업했지만 그곳에서도 성과가 없어서 금방 해고당했단다. 그 이후 술로 나날을 보내면서 타락의 생활을 하다가 정신병원까지 가게 되었어.

철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달마가 철이의 소식을 접하고 철이는 예전 모습, 그러니까 휴머노이드로 다시 만들어 주었어. 철이는 선이를 찾아 나섰고, 선이는 시베리아에서 지내는 것을 알게 되었어. 철이는 선이와 함께 그곳에서 세상을 등지고 지내게 되는데, 선이는 클론, 복제 인간의 한계로 병이 많이 생겼단다. 결국 선이가 죽고 철은 홀로 동물들과 함께 지냈어. 어느날 산책을 하던 중 곰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게 되었단다. 달마에게 연락을 하면 다시 재생할 수 있었지만, 철이는 달마에게 연락하지 않고 그냥 죽음을 맞이하게 된단다. 인간처럼 말이야.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전형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인 듯 했어. 휴머노이드, 우울한 미래 등을 다룬 다른 SF 소설들과 큰 차이점이 없어 다소 아쉬웠단다. 이 소설이 SF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뭔가 지금까지는 없는 디스토피아가 그려질 것이라 기대를 했는데 말이야. Jiny SF 소설을 좋아하니까 이 소설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그 무렵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바로 운동화를 꿰어 신고 나가 달렸다.

책의 끝 문장: 끈질기게 붙어 있던 나의 의식이 드디어 나를 떠나간다.


"중국인들은 낮의 하늘이 밤의 하늘이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낮의 하늘은 자꾸만 변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던 거야. 아침엔 붉었다가 낮에는 파랬다가 저녁엔 다시 붉어지잖아? 흐린 날에는 회색이고. 하지만 밤은 늘 검지. 그리고 중국인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점을 쳤기 때문에 밤하늘이 더 의미가 있었을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중국인들이 옳았어. 검고 어두운 하늘이 진실에 가깝지. 낮에는 태양의 강렬한 빛 때문에 오히려 우주의 본모습이 가려진 거고. 지금도 우주 관측은 깊은 산속의 천문대에서 밤에 하잖니." - P18

"그냥 얼음과 물일 뿐인데, 왜 이게 이렇게 가슴 시리게 예쁜 걸까? 물이란 게 수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한 물질에 불과하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 P135

"의식이 있는 존재는 돌멩이나 버섯과 달리 자기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요. 다른 존재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고, 우주의 역사나 기원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어요. 자기에게 고통을 준 존재들을 용서할 수 있고, 그 고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이 되새긴 다음, 그런 일이 자신에게든,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든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어요." - P152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 P160

인간은 지독한 종이야.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동원해 닥쳐온 시련과 맞서 싸웠을 때만, 그렇게 했는데도 끝내 실패했을 때만 비로소 끝이라는 걸 받아들여.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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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암살자들 - 김구 암살 공작의 전말
윤대원 지음 / 태학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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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아빠가 역사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란다. 읽은 것을 오랫동안 잘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는데, 금방금방 까먹어버리고그럴 때는 반복이 정답이지.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도 좋지만, 같은 시기의 역사를 다른 각도에서 본 책들을 읽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란다. 아빠가 일제 시대 독립운동을 다른 책들을 여럿 봤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에 독특해서 읽게 되었단다. 제국의 암살자들. 부제는 김구 암살 공작의 전말.

우리나라 독립 운동의 양대 산맥 중에 한 분인 김구. 일제는 그를 죽이려고 애를 썼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모두 실패했지.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에 우리나라 사람한테 총격을 받은 사건은 알고 있었단다. 그래도 목숨은 잃지 않고 우리나라가 해방을 하는 것을 보실 수 있었지. 해방은 되었으나, 남한과 북한으로 둘로 나뉘어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어. 김구는 하나된 조국, 그러니까 진정한 독립을 위해 노력하시다가 결국 암살당하시고 말았단다. 일본 놈들이 그렇게 암살 시도를 해도 실패했는데, 우리나라 사람한테 암살당하시다니그 배후는 열등감에 똘똘 뭉친 이승만임이 틀림없지만,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고  김구 암살 공작의 전말이라는 이 책의 부제를 이야기하다 보니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구나.

이 책은 윤대원 님이라는 분이 쓰셨는데, 아빠는 처음 알게 된 분이란다. 이 책은 지은이의 논문을 좀더 보충해서 출간한 것이라고 했어. 논문에서 출발한 책이라서 그런지 재미있게 읽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단다. 일제 시대 밀정들이 어떻게 활동을 했고, 그로 인해 진정한 독립운동가들이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단다.


1.

1919년 임시정부가 만들어지고 나서 초반에는 임시정부를 통한 독립운동이 활발했으나 192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서 파벌간 갈등도 있고 침체기를 맞이하기도 했단다. 그러다가 1929 12월 광주 학생 운동 소식이 날아왔어. 광주 학생 운동은 1929 11 3일 광주에서 우리나라 학생과 일본인 학생의 충돌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진 학생들 중심의 독립운동이었단다. 이 광주 학생 운동을 접한 상하이의 독립운동가들은 자극을 받았어. 김구의 임시정부 계열과 안창호의 흥사단이 주축이 되어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어. 그리고 중국과 연합하여 일본에 대응하려고 했어. 그런데 일본의 책략으로 한국과 중국의 백성들 사이에 불미스러운 사고들이 잇달아 일어났단다. 임시 정부는 중국 정부를 만나 이 불미스러운 사고들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 모든 것들이 일본의 기만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을 했단다.

1931 9 18일에는 일본이 만주를 불법 침략하는 일이 일어났단다. 중국에게 모멸감을 준 사건이지만 한국에게는 한중연합을 견고히 하고 함께 항일하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미온적으로 대응을 했어. 무력 항쟁이 아닌 국제연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단다. 이것이 중국의 만만디인가? 한국 임시 정부는 중국에 거세게 항의를 했단다. 결사 항전만이 답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중국은 무저항주의와 외교 노선으로 일관했단다.

========================

(37)

그런데 9*18 사변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일 정책은, 즉각적인 대일 항전을 바랐던 임시정부는 물론 상하이 민중과 대학생들을 점차 실망시켰다.

9*18 사변 직후 중국 정보는 일본 침략의 부당성을 국제연명에 호소하는 것과 함께 국내적 분열의 중심이 되고 있는 공산당 세력의 토벌에 집중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에 따라 동북지방의 방위를 맡은 장쉐량에게 일본군과 교전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중국 정부는 일본군의 침략에 대해 무저항주의를 선택하고 국제연맹을 통한 외교적 해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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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은 항일 운동에 독자노선을 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 임시정부 침체기에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김구도 생각했단다. 그래서 의열 투쟁을 위한 한인애국단을 비밀리에 조직했단다. 하지만 의거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어. 이봉창의 도쿄 일왕 암살 시도가 실패하고, 이덕주의 조선총독암살 시도는 사전에 체포되어 실패하고, 중국에서 최흥식, 유상근의 일제 요인 암살 시도도 사전에 체포되어 실패했단다. 그러다가 1932 4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성공하여 일본 상하이 사령관 등 일제 핵심 인사들이 죽었단다.

이 사건의 배후가 밝혀지기 전에 안창호 등 젊은 독립인사들이 줄줄이 체포 당했어. 김구는 로이터 통신을 통해 자신이 배후라고 밝혔단다. 이후 김구는 한동안 은거를 했고, 일본은 김구를 체포하기 위한 대대적인 작전에 들어간단다. 상하이 경찰 조직을 확대하고 밀정 활동도 확대했어. 특히 독립운동가들을 매수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단다. 김구의 연락책인 김긍호가 체포되고 그를 이용하여 김구의 거처를 알아내려고 했으나 실패했단다.


2.

윤봉길 의거 이후 김구는 프랑스 조계의 피치 목사의 아들에 집에 숨어 지내다가 항저우 근처 자싱에 은둔하며 지내고 있었단다.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한 것 같은데 김구의 자싱 은둔 생활은 중국작가 하련생이 쓴 <선월>이라는 소설에 잘 그려져 있단다. 아빠도 오래 전에 읽었는데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구나. 김구는 자싱의 은둔 생활을 하면서 오랜만에 평온을 되찾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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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43)

김구는 천퉁셩 부부의 극진한 환대 속에서 한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는 천퉁셩 부부의 안내를 받으며 자싱의 산천을 감상하고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상하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산과 호수, 넓게 펼쳐진 비옥한 토지를 감상했고, 임진왜란 당시 마을 부녀자들을 살리려다가 왜놈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승려의 슬픈 사연이 담긴 서문 밖 혈인사의 돌기둥, 그리고 소낙비에 보리가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오직 글 읽기에만 골몰한 서생 주바이신의 무덤에 얽힌 사연을 들으며 오랜만에 눈과 귀가 호사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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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김구 암살 작전이 시작되었어. 1934년 조선총독부 상하이 주재원으로 나카노 가츠지란 사람이 왔어. 그는 밀정을 이용해 김구의 위치를 파악하고 노력했단다. 그리고 1935 1월 김구가 난징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밀정 오대근에게 김구 암살 지시를 내렸지. 오대근은 오랫동안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사람으로 상하이에서 독립군 민족해방을 목표로 활동을 했는데 변절을 했단다. 오대근을 중심으로 다른 공작원들 데리고 난징을 갔지만, 김구는 그곳에 없었지.

두 번째 김구 암살 작전은 나카노 가츠지 후임으로 온 히토스키 도헤이에 의해 진행되었단다. 밀정 임영창을 이용하여 고도의 작전을 펼쳤어. 무정부주의자 정화암이 있었는데, 그의 동료 중에 김오연이 체포되었어. 그런데 그것이 김구와 안공근이 밀고해서 체포된 것이라고 거짓 정보를 주었단다. 그래서 정화암이 김구를 암살하도록 하는 작전이었어. 하지만 정화암은 히토스키의 작전에 휘말려 들지 않았단다. 그리고 정화암은 김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 그런데 이 일을 주도했던 밀정 임영창의 정체가 애매했단다. 지은이는 임영창은 이중첩자였던 위혜림과 동일인물로 보았단다.

========================

(277)

위혜림의 행적과 관련하여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해방 이후 그의 행적이다. 정병준은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의 이후 행적을 연구한 논문에서,

‘1959년 안두희가 서울 수도방위사단 사령부 고급부관(대령 계급)으로 오사카에 나타나 경무대 기관원이던 위혜림, 나카지마 등과 북송손 폭파 공작을 벌였으나, 정보 누설로 공작에 실패한 후 귀국하였다.’

고 했다. 그리고 위혜림은 해방 직전에 상하이에서 아마기스 기관의 하부 조직인 무라이 기관의 기관장을 지냈고”, 해방 후에는 맥아더 사령부 정보참모부 휘하 특수 공작 기관이던 캐논 기관에서 일해고 이 기관이 해산된 뒤에는 이승만의 도쿄 주재 사설 기관인 경무대 기관에서 일했다고 한다.

위혜림과 김구의 질긴 악연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해방 전 김구 암살 공작에 밀정 노릇을 했던 위혜림이 해방 후에는 이승만 사설 기관의 부하가 되어,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와 함께 재일교포의 북송선 폭파 공작을 함께한 이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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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번의 암살 시도가 실패했는데, 김구는 뜻밖의 총격을 받는단다. 1938 5월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재건 한독당이 한자리에 모여 3당 통일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이운환이라는 사람이 들이닥쳐 권총을 난사했단다. 이 사건으로 김구와 유동열은 중상을 입고, 함께 있던 현익철은 죽고 말았단다. 다행히 목숨은 건진 김구. 이운환의 총격 사건은 여러가지 설이 있었단다. 먼저 조선혁명단 소속의 박창세, 강창제, 이운환이 그들이 속한 조선혁명당을 차별했다는 것에 화가 나서 그랬다는 거야. 그리고 두 번째는 이운환의 일탈로 단독 범행이라는 설도 있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일제 배후설이 있었단다. 지은이는 일제 배후설에 힘을 실었단다. 박창세와 강창제는 이미 히토스키의 의해 포섭되었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했단다. 박창세의 아들은 이미 밀정이라고 알려졌거든. 박창세는 1924년 교민단을 가입한 후 의용대 활동을 했단다. 이후 임시정부 활동도 활발히 했어. 1934년 비록 불발탄으로 실패를 했지만 강병학 의거를 주도했고, 한독당 멤버로도 활동을 했단다. 1937년 이청천과 함께 조선혁명당을 창당했지만 결국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고 말았단 것이야. 일제가 그의 아들들을 이용하여 회유를 했던 것이야. 그리고 밀정이 된 박창세는 김구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이운환을 사주하게 된 것이고

세 번째 암살 시도는 거의 성공할 뻔했는데, 김구는 한 달 치료 후에 소생했단다. 정말 다행이구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일제의 암살 시도를 모두 이겨냈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우리나라 군인에게 총격을 당해 돌아가시다니

참 안타깝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상하이의 짧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1929 12 29, 바다 건너 고국에서 광주학생운동 소식이 들려왔다.

책의 끝 문장: 전자는 윤봉길 의거 이후 강화된 상하이 일본 총영사관의 경찰 조직과 활동을, 후자는 밀정 오대근의 최후 행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였다.


그런데 최근 학계와 사회 일각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계급적 이해관계를 위해 역사의 기억들을 왜곡하고 전용하는 현상들이 나타나 우려스럽다. 2019년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 문제를 구실로 경제보복 조치를 취했다. 이때 국내의 보수적인 정치인과 지식인, 나아가 경제 단체들이 원인 제공자인 일본이 아닌 자국 정부를 향해 마구 손가락질하며 법석을 떨었다. 일본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당장 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들은 한일 과거사 문제의 해결 방안에서도 같은 태도이다. - P5

임시정부가 재건됨으로써 이제 중국 관내의 독립운동 정국은 김구가 주도하는 임시정부와 김원봉이 주도하는 민족혁명당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독립운동의 주도권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양상이 되었다. 민족혁명당은 창당 당시 ‘임시정부의 해체’를 주장했다. 반면 임시정부는 이를 반대하고 재건한 입장이기 때문에 양측 사이의 갈등은 당분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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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문학과 지성? 말할 것도 없이 문학(writings)은 인간의 최고의지적 활동이다. 우리는 현실의 고통을 말할 수 없을 때 픽션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이건 소설로 써야 돼.”, “제 이야기를 좀 소설로 써주세요.”) 문학은 재현의 재현, 비유의 비유라는 점에서 언어를 생산하는 공장이자 끊임없는 사전(辭典) 활동이다. 문학은 현실에 대해 말하되, 현실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하나의 비유는 열 개의 해석을 낳는다. 비유를 통해 기존 개념은 이동하고 분화한다. 전이(轉移), 전의(轉意, 轉義). 은유(metaphor) meta(over) + phora(carrying)를 합친 단어로서 뜻을 나른다는 의미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오만할 자격이 있다.


(18)

모든 글쓴이들도 나와 같다고 생각한다. 쉬운 글은 있을지 몰라도 쉽게 쓰인 글은 없다. 글쓰기는 체력, 재능, , 정치, 좌절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글을 존중하고, 책을 쓰고 만든 이들을 존경한다. (특히 내게 번역은 어려운 일이다. 번역은 우리말 능력을 시험하는 과정이다.)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글을 다루려면 자신의 윤리와 정치적 판단에 관한 여러 번의 점검이 필요하다. 이것이 여성학자 사라 러딕이 말한 비판이 실천적인 개입인 이유다.


(47)

거듭 말하지만 내 몸은 나의 것이다.”가 아니라 내 몸이 나다.” 우리의 정신이 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바로 나다. 정신은 몸에 속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은 곧 자아관이 된다. 문제는 이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기 몸을 긍정하기 어려운 사회인데, 과학 기술의 발달로 자아만 팽창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는 모든 비극이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책이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48-49)

사회적 약자는 평생을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매일 밤 야식을 두고 사투한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53)

내게 용서는 저절로 잊히는 것이지, 용서를 위해 고민하거나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내겐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고 참을 수 없는 부정의다.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관련된 사건을 잊는 것이다. 사건을 무시한다.(ignore). 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몰두하고, 그 일을 잊는다. 물론 가해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다시는 접촉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가 일반 법칙이 될 수는 없다. 나의 완벽주의 성향, 결벽증, 비사회성에 상응하는 능력은 없지만, 일중독과 자기 몰입 성향이 용서따위를 잊게 해주는 것 같다.


(86-87)

미국 정신의학자 어빈 얄롬은 이렇게 위로한다(그가 실존주의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모든 이들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는다. 그러나 배에 혼자 타고 있더라도 다른 배들의 불빛을 가까이 할 수 있다면 한결 안심이 된다.” 조금 다르게 쓰면 삶의 유일한 위안은 우리 모두 비록 깜깜하고 추운 밤바다를 혼자 표류하고 있지만, 반짝이는 등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나마 소통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는 이 등대마저 민영화했고, 모든 불을 꺼버렸다. 인간은 철저히 각자(各自)가 되어 좌충우돌하기 시작했다(다른 말로 하면 “IT, 4차 혁명의 시대를 열렸다”). 혼자라는 상황은 갑을 관계로 이동했다. 혼자임의 조건이 몹시 악화된 것이다.


(151-152)

내가 생각하는 지식으로서 페미니즘의 가장 큰 매력은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는 점이지만, 페미니즘의 정수는 스스로 내파와 파생을 거듭하는 지식이라는 데 있다. 이 변화는 멈출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여성의 현실, 그리고 현실의 운동이 끊임없이 언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해 유행을 타는 공부가 아니다. ‘한물가거나’ ‘이제는 필요 없는페미니스트는 있을지 몰라도 페미니즘 자체가 그럴 일은 절대 없다. 이 과정이 진화다. 아직도 혁명과 개량, 진화와 일정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다면 어쩔 수 없다. 페미니즘은 불편함, 혁명, 폭동, 똑똑해서 미친 여자들의 병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상처럼 인류 문명의 수많은 소산 중 하나이며 진화, 즉 적응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반영한다.


(198)

이러한 과정, 다시 말해 감정의 기계화와 매개화 과정을 거쳐 저자는 감정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재현(emotions –as- representations, 옮긴이의 용어로는 표상’)이라고 본다. 문화 산업은 석화(石化)된 방식으로 추상화된 감정을 사용한다. 추상적 대표적인 예는 연대가 아니라 연민, 동정(pity)이다. 동정하지만 공감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탈감정사회는 대립 없는 사회다. 현대의 문제는 문화적 빈곤이 아니라 감정적 빈곤인데, 문화는 넘치고 대가로 감정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재현된 상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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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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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소설책이 하나 있단다. 정지아 님이 지은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님이 많이 유명하지 않은 분이었는데,(아빠만 모르고 있을 수도…) 이 한 작품으로 많이 유명해지셨단다. 그래서 정지아 님의 다른 작품들도 많이 소개되고 있단다. 아빠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나서, 정지아 님에 대해 알아보고 그 분이 쓰신 작품들을 찾아보았단다. 그리고 두어 권 사두기도 했어. 정지아 님이 예전에 쓰신 단편집도 하나 있는데, 이번에 재 출간이 된 책도 구입했단다. 이번에 아빠가 읽은 <나의 아름다운 날들>이란다.

이 책에는 총 열한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단다. 이번 소설에서도 빨치산 사람들 이야기도 실려 있었단다. 아무래도 지은이의 부모님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빠가 단편 읽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에 실린 정지아 님의 단편은 다 좋았단다. 아빠 취향의 글을 쓰시는 정지아 님이 어디에 숨어 계셨던 건가? 아빠가 독서 스펙트럼이 그리 넓지 않아 몰랐던 것 뿐이겠지? 정지아 님의 책들을 더 읽어봐야겠구나.

 


1.

자, 그럼 이 책에 실린 11개의 작품 이야기를 간단히 해줄게.

숲의 대화.

60년을 함께 해로한 아내 순심이를 먼저 보낸 운학은 순심이가 묻혀 있는 숲에 자주 오곤 했단다. 순심이와 60년을 함께 살았지만, 순심의 마음속에는 늘 도련님이 자리잡고 있었단다. 먼 옛날, 도련님은 하인이었던 운학과 순심에게 글도 가르치고 공부도 시켜주었어. 그리고 숲에 들어가 빨치산 운동도 있어. 운학은 마을에 머물렀지만, 순심과 도련님과 함께 숲에 들어가서 빨치산 활동도 하고 사랑도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순심이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빨치산 무리는 토벌군에게 쫓기고 있었어. 도련님은 순심과 아이를 살리기 위해 동네로 보내면서 운학을 찾아가라고 했어. 그렇게 순심은 운학을 찾아왔고 평생을 함께하게 된 거야. 도련님은 그만 순심과 헤어져 빨치산 부대로 돌아가는 길에 토벌대의 총에 맞고 죽었지. 순심이를 보낸 늙은 운학이 가끔 숲을 찾는데, 어느 날 젊은 도련님을 만나게 되었단다. 환상이겠지만, 운학과 젊은 도련님은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눈단다. 땅이 분단되고, 사상이 분단된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아픈 사랑 이야기였단다.

봄날 오후, 과부 셋

이 이야기는 80대 할머니들 세 분의 이야기란다. 그들은 보통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였어. 그들이 보통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는 일제 시대였고, 그들은 우리나라 이름이 아닌 일본 이름으로 부르던 시절이었어. 그 당시 친구들이다 보니, 그들은 여전히 그때 불렀던 일본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단다. 에이꼬, 하나꼬, 사나꼬. 그렇다고 그들이 친일을 한 것은 아니야. 그저 학생이었던 것이지. 그들은 다 같이 사회주의를 받아들였고, 젊은 시절은 활동을 하기도 했어. 그들 마음 속으로는 사회주의를 평생 버리지 않고 살았단다. 하지만 그들이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세상은 사회주의를 겉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세상이었지. 남편들은 모두 죽고 과부가 되신 세 노부인들이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히 빨갱이 이야기가 오고 간단다. 

천국의 열쇠.

이 이야기는 어느 시골에서 중풍 든 아버지를 홀로 시중 드는 마흔 살 다 된 장애인 노총각 아들의 이야기란다. 아들은 자신의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인데 중풍에 꼼짝 못하는 늙은 아버지를 홀로 보살피고 있어. 아버지를 보살펴주던 어머니가 3년 전에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시중은 온전히 장애인 노총각 아들의 몫이었단다. 이런 상황이니 노총각 아들이 결혼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더구나. 스스로도 결혼 생각은 아예 안 하는 것 같았어. 다행히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시던 헛개나무 농장이 있어서 먹고 사는 것은 지장이 없었어. 물론 다리가 불편한 아들이 농장 일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래 전부터 해와서 익숙했단다. 그 헛개나무 농장은 일터뿐만 아니라 그의 쉼터이기도 해서,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농장을 가곤 한단다. 그런데 어느날 농장에 가다가 숲에서 이웃집 새댁 호아를 보았단다. 그날도 남편 길호 형한테 매를 맞고 도망 온 모양이었어. 호아는 베트남 사람인데 우리나라 시골로 결혼을 왔던 것이란다. 호아는 툭하면 남편한테 맞는데, 그날은 농장 근처까지 도망을 온 것이야. 그는 호아에게 헛개나무 열쇠를 주고 도망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농장에 왔다가 가라고 했단다. 호아에게도 농장이 잠시 쉴 수 있고, 평안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마음으로… 주인공의 선을 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좋았단다.

목욕 가는 날.

이 이야기도 참 따뜻한 이야기란다. 시골집에 홀로 사시는 늙은 어머니. 2주일에 한번씩 대중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시는데, 그 길을 어머니 집 근처에 사는 언니가 모시고 간단다. 언니는 성격이 좀 세지만 정이 많았어. 어느날 언니는 시댁에 일이 있다고 이번 주는 서울 사는 주인공에게 어머니를 모시라고 했어. 언니의 말을 거절할 수 없는 소심한 주인공은 날짜에 맞춰 엄마 집에 왔단다. 그랬더니 이건 언니의 작전이었어. 언니도 엄마 집에 와 있었어.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언니와 주인공 이렇게 셋이 대중목욕탕에 갔단다. 주인공은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대중목욕탕을 가게 된 거라 자신의 맨몸을 엄마에게 보이는 것도 낯설고, 엄마의 맨몸을 보는 것도 낯설고 그랬단다. 하지만 그들은 식구잖니. 세 모녀는 서로 등도 밀어주고, 수다도 떨면서 작지만 행복한 추억거리를 하나 만들었단다.

….

브라보, 럭키 라이프.

이번 이야기는 가슴 아픈 이야기. 경우는 착실한 아들이었단다. 그런데 군대 휴가 나왔다가 복귀하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식물인간이 되었어. 부모님들은 그에게 희망을 놓지 않고 정성 들여 간호했단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어느덧 8년째 어느날 갑자기 경우의 의식이 돌아왔단다. 부모님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어. 하지만 경우는 의식만 돌아온 것인지, 전신 장애를 가지고 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물론 계속 누워서 생활했고 손가락 하나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어. 병원비도 많이 나가서 병원에서도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어 그들이 살고 있는 시골집으로 옮겼단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15년이 지났어. 나라에서 비용을 지원해주긴 하지만 경우를 보살피고 치료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서 재산도 거의 날렸단다. 부모님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어느날 경우는 손가락으로 스스로 움직일 수 있었단다. 사고 나고 23년만에 일이었어. 부모님은 경사가 난 듯 기뻐했지만, 또 그것이 끝이었어. 시간은 빠르게 지나고 경우의 회복은 무척, 아주 무척 더뎠단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 경우 하나가 아니라는 것. 경우만 챙긴다고 큰 아들 경환은 알아서 제 앞길을 찾아갔어. 경환도 부모님을 이해하고 도움도 청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사업이 무척 어려워졌단다. 시골에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걸 아는 경환은 마지 못해 부모님께 금전적 도움을 받으러 왔는데, 이미 부동산은 다 팔려서 남아 있는 것이 없었어. 경환은 참고 있던 울분을 터뜨렸지. 회복되기 어려운 거 뻔히 아는 병신 아들 살린다고 산 자식 죽게 생겼다고 말이야.. 경환의 심정도 이해가 가고 아픈 아들을 보살피는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이런 이들은 나라에서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할 텐데…

핏줄.

27대손 장손인 아들이 노총각으로 결혼 못하고 있어 속이 타는 아버지. 장손이라 집을 지켜야 한다고 시골에 묶어두어서 결혼을 못했나. 아버지는 외국 사람은 절대 안 된다고 하고 아들은 나이만 먹어가고… 결국 한 발 물러나 연변의 아가씨와 결혼하게 되는데, 결혼하고 돈만 가지고 도망가 버린 며느리. 더 급해진 아버지는 이제 국적 가리지 않겠다고 했어. 그런데 태국 아가씨, 필리핀 아가씨도 줄줄이 돈만 갖고 튀었단다. 아버지는 자신이 며느리를 직접 고르겠다고 베트남까지 가서 맞이한 이가 쑤언이었어. 아버지는 직접 며느리를 골랐지만, 마지못해 선택이었고, 자신의 대를 이을 장손이 외국인 며느리라는 것이 여전히 꺼림칙했어. 쑤언은 그 전 며느리들과 달리 착실했단다. 한국말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시부모님께도 잘 했단다. 어머니는 쑤언에게 잘 해주었단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임신. 아버지는 제발 아들놈 닮은 손자가 태어나길 바랬는데…. 

혜화동 로터리.

빨갱이 집안에서 태어나거나 연루되어 평생 차별을 받아 제대로 직업을 갖지 못한 세 남자들이 오랜만에 만나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 끝^^ 

인생 한 줌.

산에서 밭을 일구며 큰 욕심 없이 살던 주인공. 밭에 큰 돌이 있어 캐내려고 했는데, 그 큰 돌은 땅 속에 엄청난 크기의 진짜 모습을 가지고 있던 바위. 오기가 생긴 주인공은 바위의 끝을 보냈다고 파내기 시작하는데 5년째 파도 여전히 끝을 보이지 않는 바위. 이 바위는 화제가 되어 텔레비전 방송에도 나오고 거북 바위니, 봉화 바위니 별명까지 붙어 유명해지게 되었단다. 큰 돈 주겠다고 그 바위가 있는 산을 사겠다는 사람도 나섰는데, 주인공은 이 바위가 이제는 자신의 한 일부분이라고 생각이 드는지 아무리 큰 돈을 주어도 팔지 않겠다고 했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바위의 진모습은 어느날 갑자기 마지막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때 느끼는 주인공의 허탈감, 어쩌면 배신감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싶구나. 집착하게 되면 욕심이 생기고,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크고… 바위 같은 무생물을 향한 인간의 마음 또한 똑 같은 것 같구나.

즐거운 나의 집.

음, 이 이야기는 전원주택의 로망을 무참히 밟아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단다. 아빠도 나중에 은퇴하면 전원주택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곤 하는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 소설이란다. 전직 기자인 주인공이 전원주택의 로망을 가지고 시골에 왔다가 맞닥뜨린 현실을 유머와 곁들여 그린 이야기란다. 벌레와 전쟁에 기겁을 하고, 오지랖 넒은 이웃에 스트레스 받고 이웃과 땅 분쟁까지 이어지면서 전원 주택의 낭만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지 오래구나. 

나의 아름다운 날들.

이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완벽해 보이는 주인공 김여사를 비꼬는 듯한 소설로 아빠는 읽었단다. 자신의 식구들이 완벽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누가 봐도 그럴 만했어. 친정아버지와 남편 모두 박통 시절에 장관을 지냈고, 자녀 셋은 모두 일류 대학을 나와 법관을 하거나 의사로 일하고, 은퇴한 남편과 70평 아파트에 살고, 

일하는 아줌마를 둘 정도로 경제적 여유도 있고, 금혼식이라고 며느리, 손자, 손녀의 진심 어린 축하도 받고, 남편과 오랜 결혼 생활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김여사는 스스로 찬란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단다. 이 소설의 제목이 그냥 <아름다운 날들>이 아니라, <나의 아름다운 날들>인 점을 알겠더구나. 가난하고 힘든 시절 권력 측근에 있으면서 축적한 부로 대를 이어 잘 살고 있는… 소설 제목을 <나의 아름다운 날들>이 아닌 <나만 아름다운 날들>로 해도 좋을 듯싶더구나. 

절정.

주인공 ‘그’는 알코올 중독자 출신 노숙자란다. 정간사의 도움으로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노숙 생활을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 ‘그’와 같이 노숙생활을 하는 김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김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김은 한 달에 20일 이상 막노동을 3년간 쉬지도 않고 했어. 김은 노숙자이지만 아직 식구들과 연락을 하고 자신이 번 돈 거의 대부분을 한 달에 한번씩 집에 보낸단다. 아이들 학원비에라도 보태라고 말이야. 조금이라도 더 보태기 위해 고시원에서도 나왔어. 그런데 어느날 김이 사라졌단다. 김이 고시원에서 나간 이후로는 ‘그’가 김의 편지를 대신 받아서 전해주었는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어. 사라진 시간이 길어지면서 김이 걱정되기도 했단다. 어느 날 고시원에 돌아오니 김의 편지가 와 있었어. 무덤덤한 문체로 간암에 걸렸다는 소식과 함께. 살고자 발버둥치고 노력하는 이에게 이런 안 좋은 소식은 소설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소설을 읽고 울컥했단다.

….

이상으로 이 책에 실린 11권의 이야기를 짧게 해주었는데, 아빠가 메모를 하면서 읽긴 했는데도 메모에 없는 부분은 기억을 의존해서 써서 잘못된 부분도 있을 수 있어. 그 점은 양해 바란다. 이 책의 소설들을 통해 정지아 님의 소설 스타일을 좀더 확실히 알게 된 것 같아. 사회의 소외 받지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모든 이들의 인생이 그렇지만, 그들의 삶 속에 행복이 있고, 희망이 있고, 하지만 슬픔도 있다는 것. 정지아 님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호르르, 바람이 세월을 밀어낸다.

책의 끝 문장: 그 ‘평범한 비범한’이야말로 이 참혹한 세상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건너가게 만드는, 우리가 매일매일 마주치면서도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기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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