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 지식과 지혜를 실천으로 이끄는 마음 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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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채사장의 반가운 책이 나왔단다. 그것도 공존의 히트를 쳤던 지대넚얕 시리즈의 제목을 달고 나왔어. 아빠가 독서기록을 찾아봤더니, 채사장의 마지막 책은 2021 12월에 출간된 소설 <소마>를 읽은 것이 마지막이더구나. 한 동안 책도 나오지 않고, 유튜브나 팟캐스트도 안 해서 무엇을 하며 지내나 궁금했었는데, 약간은 갑툭튀 같이 책을 출간되었더구나.

이번 책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라는 제목으로 지대넓얕 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하는구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2권이 약 10년 전쯤에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것보다 앞선 이야기가 나중에 출간되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권이 출간되었어. 아빠는 채사장의 팬으로써 이 세 권을 모두 읽었는데, 현실 세계의 지식을 다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권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단다. 0권은 신비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읽기 쉽지 않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구나.

그렇게 지대넓얕 시리즈가 마무리가 된 것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출간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가 완결편이라고 하는구나. 이전에 출간된 0, 1, 2권이 지식에 관한 이론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이번에 출간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는 실천 편이라고 하는구나. 그 전의 지식의 이론을 실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런데, 책 제목에 ∞(무한)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지식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의 모양새를 보면 구부러져 다시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잖니, 그러니 지식에 대한 실천도 그렇게 구부러져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겨 있다고 책소개에 적혀 있더구나.

이번 책은 실천의 각 단계를 일곱 단계로 나눠 설명해주고 있어. 발심, 정비, 정진, 견성, 출세, 조망, 전진얼핏 보기에는 불교 용어가 많이 섞여 있는데, 책을 읽다 보면 아빠가 오래 전에 관심 있게 읽은 불교 경전에서 볼 수 있는 용어들이 자주 보였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아빠가 이해한 측면을 위주로 짧게 이야기를 해볼게.

 

1.

실천 없는 지식은 메마르고 삐쩍 마른 잡초에 비유했어. 지식이라는 것이 지혜가 되려면 실천이 필요하다고 했어. 그러면서 깨달음은 지식과 지혜 중 어느 것에 가까울 것 같으냐고 질문을 던졌는데, 지혜라는 답변을 이끌어낸 질문 같았고, 역시나 실천을 통한 지혜가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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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렇다면 깨달음은 어떠한가? 지금은 깨달음이 뭔가 싶은 마음이 더 클 테지만 일단 처음 듣는 단어는 아니니 대략적인 느낌을 말해보자. 당신에게 깨달음은 어디에 가까운가? 그것은 지식의 영역인가, 아니면 지혜의 영역인가? 모든 것이 그러하듯 깨달음도 이 두 가지 측면이 혼재해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느낀다. 어쩐지 깨달음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인 지혜일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지식을 통해 깨달음이 무엇인지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그 경계가 명확해지고 그에 따라 깨달음의 윤곽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깨달음의 실제 의미를 깊이 이해할 수는 없다. 실천을 통해 그것의 실제 의미가 체화될 때에야 우리는 깨달음에 대한 지혜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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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어떻게 깨달음에 다다를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자는 생각에 책을 넘기기 시작했단다. 실천의 핵심은 결국 자신의 내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것이란다. 먼저 1단계 발심은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야. 그 세상 모든 것에는 도 포함되어 있단다. 그리고 우리가 가려는 모든 길을 의심하여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믿는 신념의 한계는 임의성, 제한성, 맹목성을 띤다고 했어. 임의성은 나의 신념이라는 것은 역사적, 시대적, 지정학적, 문화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제한성은 나의 신념은 제한된 체계 안에서만 모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맹목성은 나의 신념이 타인의 이익이 개입된 결과라고 것을 의미한대.

이런 의심의 단계가 높아지면 내면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자신의 내면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것에 가장 큰 방해물이 될 수 있다고 하는구나. 내면 자체를 없다고 생각하면 내면으로 간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니 말이야. 유물론이라는 것이 내면 세계를 부정하는 것 같지만, 내면을 또 하나의 객관적 탐구의 대상으로 생각하기도 한대. 그렇게 모든 것을 의심하는 단계를 지나면 2단계는 정비란다.

정비는 주변을 정리한다는 의미라고 했어. 여기서 주변은 공간적인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공간, 생활 환경을 모두 의미하는데, 특히 시간의 정비는 오늘날 분절된 시간을 연속된 시간으로 환원하는 것을 의미했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면, 오늘날 스마트폰과 SNS 때문에 짤막한 시간대로 나눠 쓰고 있다는 것이야. 내면 세계로 가는데 가장 큰 방해물이기 때문에 이것을 연속적인 시간으로 정비를 하라는 거야. 스마트폰, SNS 시간을 한번에 끊기 어려우니 점점 줄여나가라고 했어. 이건 정말 힘든 실천 사항인 것 같구나. 스마트폰, SNS을 줄이라는 것은 자극을 멀리하라는 의미도 되는데, 이렇게 해야만 고요,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단다.

3단계 정진에 이르면 내면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야. 이때 사용되는 방법이 명상이란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어. 아빠도 명상에 관심이 많지만, 번잡한 일상에서 명상을 하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구나.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다시 한번 명상을 규칙적으로 해봐야지 생각하지만, 금방 그 다짐을 사라지고 만단다. 명상은 집중대상이 있는 명상과 집중대상이 없는 명상이 있다고 하는구나. 어떤 명상이든 계속 떠오르는 잡생각 때문에 쉽지 않은 것 같아. 그래도 의도적으로 생각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어. 그렇게 노력을 하다 보면 나 자신과도 대화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을 침묵이라고 하고, 이 침묵이 바로 명상의 본질인 것이야.

침묵의 단계가 되면 고요와 평온을 얻게 되고 내면의 길로 향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행복, 분노, 불행 등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쉽지 않지) 그 이야기는 진정한 행복도 내 마음 속에 있고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지. 고통이라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마음의 상태라고 하는데 이 또한 마음에 들어가야 고칠 수 있는 것. 명상이라는 것이 이 모든 것의 첫 관문이라고 이해했단다. 지은이가 명상이라는 단어를 설명해주는 부분이 좋아서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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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명상이라는 단어도 그러하다. 사전적으로는 어두울 명()에 생각 상()으로 어두운 가운데 생각함을 의미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어떤 이들은 명상이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고 생각해 명상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한다. 다른 이들은 똑같이 명상이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기에 명상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한다. 어떤 이는 명상을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서 명상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한다. 반면 다른 이는 같은 이유에서 부정적으로 사용한다. 어떤 이는 명상이라는 단어를 진리와 엮어 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현실 도피적인 무엇이라는 전제에서 사용하며, 또 다른 이는 오늘날의 힐링 문화가 만들어낸 상업화된 서비스의 일환이라는 측면에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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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는 견성의 단계이고 이 단계는 지식의 실천을 통해서 얻은 지혜의 단계라고 할 수 있대. 견성(見性)이라는 말은 마음을 보다는 뜻으로 자아의 본질이라고 하며, 여러 가지 단어로 부르고 있다고 했어. 불교에서는 아트만 또는 무아(無我)라고 부른다고 하는구나. , 견성이라는 것은 깨달음을 의미하기도 한대. 의식이란 깨어 있음을 의미하고 하는 것으로 깨어 있는 자의 내면 세계를 뜻하기도 한대. 보는 것은 의식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라고 했어. 침묵이라는 것도 보는 자가 보는 것, 관조자를 관조하는 것,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하는데, 이 때부터 점점 이해하기 쉽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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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우리는 침묵을 통해 알게 된다. 이 텅 비어 있음은 크기가 없고 경계가 없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자의 배경이다. 그렇기에 모든 생명 안에 깃든 의식은 몸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의식의 크기를 말할 수 없다. 작은 미물의 내면세계는 좁고, 큰 생물의 내면세계는 넓은가? 그렇지 않다. 그 반대는 어떤가? 개미는 상대적으로 작으니 외부세계가 크다 느끼고, 혹등고래는 상대적으로 크니 외부세계가 작다고 느끼는가? 그렇지는 않다. 의식은 몸의 크기나 신체 능력, 뇌의 크기, 지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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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단계 출세’, 6단계 조망’, 7단계 전진은 지혜의 단계를 넘어선 삶의 단계란다.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했어. 삶은 계속 되고 문제도 계속 된다고 했어. 내면의 세계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렀지만, 우린 내면의 세계가 아닌 외면의 세계도 있잖니. 그렇게 외면의 현실에 나아가는 것을 출세라고 했어. 현실의 세계에서는 다잡은 고요와 평온에 다시 파동이 일어날 수 있지만, 자신의 본질을 늘 생각하고 세속과 거리를 두라고 하더구나.

6단계 조망은 삶의 조망과 삶 너머의 조망으로 나뉘어 설명해주고 있어. 조망이라는 것이 널리 바라본다는 의미인데,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의식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어. 의식으로 바라보다 보면 욕심과 성냄을 줄이고 말과 판단을 멈춰야 한다고 하는데 점점 어려운 주문을 하는 것 같구나. 사실 점점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어. 이 단계의 글에서는 지혜로운 부모에 대한 글만 눈에 들어와서 발췌해 보았단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아빠는 지혜롭지 못한 부모인 것 같구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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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지혜로운 부모를 상상해보자. 모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 지혜로운 부모도 자녀의 안녕을 바란다. 하지만 지혜로운 부모는 그들의 자녀가 안락과 편안함보다는 적절한 위기와 실패에 대면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자녀가 스스로 어린아이의 모습을 깨뜨리고 어른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아의 본질도 그러하다. 나의 깊은 의식, 수많은 삶을 살아내고 또다시 수많은 삶을 이어나갈 자, 세상을 스스로 일으키고 그것을 관조하는 자도 그러하다. 그 본질은 어른 되고자 할 것이다. 신의 어른이, 모든 의식적 존재의 어른이 되고자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 모든 신체가 아이의 옷처럼 보이게 할 만큼의 깊은 성정을 원할 것이다. 그때서야 자아의 본질은 어른답게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생과 사를 관통하는 깊은 의식의 관점에서 배움과 사랑은 삶의 이유로서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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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7단계 전진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삶 속에서 성취를 하는 것으로, 짧게 이야기하면 삶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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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천천히 눈을 뜬다. 충분히 쉬었다. 침묵은 오래 지속되었다. 세상은 아직 적막하고 창문에 맺힌 물방울은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시계를 본다. 이제 사랑하는 이들을 깨우고 그들을 챙긴 후 출근할 시간이다. 어제는 나도 모르게 욕심을 부리고 화를 내었으며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조금은 줄이리라. 심판이나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보상이나 인정 때문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가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일으킨 것도 나고 굳이 이 신체로 이 세계를 미워하지 않으리라. 이제 시간이 되었다. 몸을 일으켜 세상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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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읽는데 쉽지 않았지만 지은이 채사장 팬심으로 끝까지 읽었단다. 이 책은 지식의 실천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지만, 실천은 무엇보다 어렵다는 것을 아빠는 잘 안단다. 각 단계의 실천이 모두 어렵지만, 중간에 잠깐 이야기했지만 명상이라는 것은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실천항목이구나. 그것에 내면 세계의 밑바닥까지 가는 것과 이어지지 못하더라고 번잡한 아빠의 마음과 영혼을 단순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구나. 호흡에 집중하고 눈을 감고…. 얼른 독서편지를 마치고 시작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안녕.

 

PS,

책의 첫 문장: 혹등고래가 자신의 하얀 배를 뒤집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것은 다이버에게 보내는 신호다.

책의 끝 문장: 당신이 내면의 바다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아름다운 혹등고래가 되기를 바란다.



인류 역사상 개인이 가장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시대, 다만 문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허하다.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모든 것이 빠져나간다. 그럴수록 스스로를 의심한다. 아는 것이 부족해서인가? 머릿속에 정보와 지식을 더 쏟아 넣어 가득 채우면 나아지려나? 채워보고 채워보지만 그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그 답 역시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머리만 키웠기 때문임을 말이다. - P8

사실 이 둘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당신 영혼의 두 가지 모습이다. 모든 개인은 한 가지 빛깔의 삶을 살지 않는다. 어느 때 우리는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이었고, 다른 때에는 진리를 향한 투사였다. 어느 때에는 세상이 명료했고, 다른 때에는 혼란스러웠다. 과거의 당신 영혼은 치기 어린 젊은이의 영혼이었고, 미래의 당신 영혼은 원숙한 노년의 영혼일 것이다.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오늘의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지금 당신의 영혼은 어떤 빛깔을 하고 있는가? - P29

마음에서 어떤 원인에 의해 하나의 상념이 일어서면 그 즉시 마음은 그것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려는 이원적 작용을 한다. 이때의 끌어당김과 밀어냄은 개인에게 매력과 혐오의 강렬한 감점으로 체험된다. 그리고 이 강렬한 감정은 상념을 강화하고 사유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결국 그 상념이 마음 안의 하나의 존재자로 일어서게 한다. 나의 마음에 드러나는 모든 존재는 끌어당김과 밀어냄의 작용에 의해 생겨나고 눌러앉아 있는 것이다. - P119

어떤가? 당신은 아, 이것을 말하는 것이구나, 하고 그것을 움켜쥐었는가? 우리는 나에게 없는 어떤 멀고 험난한 세계에서 진리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나에게 없지만 노력을 통해 얻게 되는 어떤 경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나에게 있었다. 나에게 속하고 나의 바탕이 되는 것. 이것이 자아의 본질이고, 세계를 일으키는 배경이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바탕과 배경이 그러하듯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 사유와 논리로는 그 앞까지 갈 수 있지만 도달할 수 없고, 그 끝에서의 단 한 번의 체험으로 정확히 알게 되는 것. 이것이 내면의 근원이자 의식의 실체이며 본질적인 자아의 모습이다. 이것이 우리가 찾던 것이다. - P138

이것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일상과 나의 감정과 나의 선택과 나의 모든 것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 그 이유를 안다. 끌어당김과 밀어냄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감정과 상념과 느낌과 욕망에 연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은 커져간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행동을 좋아하고 그 좋아함은 커져간다. 나는 내가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고 그 미움을 키워간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싫어하고 그 싫어함을 키워간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나의 경향과 쏠림도 조금씩 변해갈 테지만, 나는 나의 행동 양식과 내면의 상태를 섬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유의미한 시간의 범위 안에서 과거와 미래의 나를 가늠해볼 수 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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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내리기 귀찮을 때....
제인 에어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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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신부, 인생과 사랑에서 그보다 더 빛나는 말은 없다. 꽃들의 향기, 벌의 선물, 샘물의 첫 모금, 종달새의 서곡, 창조의 칵테일에 얹힌 레몬 껍질-신부란 바로 그런 것이다. 아내는 신성하고, 어머니는 위대하고, 여름 여자는 눈부시다. 하지만 신부는 남자가 인간의 운명과 결혼할 때 신들에게 받는 결혼 선물 가운데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다.


(567)

나는 이 도시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찾아야 해.” 내가 말했다. “다른 도시들은 목소리가 있어. 이건 과제야. 나는 찾아야 해.” 내 목소리가 커졌다. “뉴욕은 내게 시가나 건네면서 친구, 나는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어하면 안 돼. 다른 도시들은 그러지 않아. 시카고는 주저 없이 내가 하겠어. 필라델피아는 내가 해야 돼. 뉴올리언스는 나는 전에 했어. 루이빌은 해도 상관없어하지. 세인트루이스는 미안해하고 말해. 피츠버그는 다 말해라고. 그런데 뉴욕은……”


(614)

조용한 눈보라의 군대는 공기의 나룻배를 타고 음울한 이스트 강 너머에서 도시를 공격했다. 눈은 이미 도로를 30센티미터 두께로 덮었고, 눈 더미는 포위된 도시의 성벽을 기어오르는 접이사다리처럼 차곡차곡 쌓여 올라갔다. 대로는 폼페이 거리처럼 조용했다. 이따금 마차들이 흰 날개의 갈매기처럼 달빛 어린 대양을 스치고 날아갔다. 그보다 수가 적은 자동차들은 비유를 계속하자면- 유쾌하고 위험한 여행에 나선 잠수함처럼 거품 이는 물결을 헤치고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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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5 - 제2부 유형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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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5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5권은 유일표의 친구 이상재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단다. 이상재는 통일혁명당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뜻밖에 소식을 듣는단다. 자신이 활동했던 통일혁명당이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고 불법정당 활동을 하고 간첩 혐의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어. 그는 충격을 받았어. 이것이 실제인지, 누명을 쓴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았어. 그러면서 자신이 한국에 있다면 감옥에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베트남 참전을 신청하여 베트남에 가게 되었단다.

베트남에서 군생활을 하게 된 이상재는 친척의 빽으로 PX에서 일하게 되었어. PX는 군대 내에 매점이라고 할 수 있어. 아빠도 군대 있을 때 PX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아무튼, 이상재는 통혁당 간첩단 사건으로 배신감도 들었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일지도 의심을 했단다. 아빠도 통혁당 사건에 대해서 들어봤는데, 당시에 워낙 조작 사건이 많아서 이것도 그런 것인가, 검색해봤는데 이 사건은 실체가 있었던 사건 같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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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상층부 몇 명이 북쪽에 가고, 노동당에 입당을 하고, 거액의 돈을 받아가지고 내려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악명 높은 중정의 고문수사에 의한 조작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개된 재판을 하게 되면 조작이 폭로되고 말 텐데 그럴 수가 있을까. 더구나 한두 명이 연루된 사건도 아니고 70명이 넘게 구속된 대사건을 가지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보다 더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은 없었다. 그런 행위가 온몸에 휘발유 뒤집어 쓰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위험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자신들이 추구했던 운동이 김일성 정권을 편드는 것이었던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남쪽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동시에 직시하고 해결해 나아가는 것이 사회혁신이며, 진정한 통일운동의 길이라고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상층부에서는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인가? 자금이 필요해서? 그건 전혀 말이 안 된다. 돈이 없으면 운동을 중단해야지 돈 때문에 운동의 순수한 목적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게 아니면 상층부에서는 처음부터 그런 의식과 목적을 가지고 조직원들을 속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건 악질적인 흉계고, 속은 자들의 순수한 무참하게 짓밟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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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베트남은 군인들뿐만 아니라 기업들에게도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여 많이들 갔단다. 그렇게 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일반 노동자들도 베트남에 갔단다. 문태복이란 사람도 베트남에서 군수업을 하며 일했어. 베트남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귀국한 후 택시 회사를 차리는 것이 꿈이었지. 그런데 그는 도박에 빠져서, 돈을 모으기는커녕 빚만 늘어가고 있었단다. 그 빚을 벌기 위해 베트남 근무를 계속 연장해야 했단다. 이런 사람이 비단 문태복만이 아니었을 거야.

 

1.

김명숙이란 사람 기억나니? 김선오의 둘째 동생으로 가출해서 차장으로 일하고 있었어. 친구 박보금과 나복녀는 술집 웨이터를 한다면서 차장 일을 그만 두고 나서 한참 연락이 끊겨서 그들을 만나보려고 했어. 김명숙은 박보금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그냥 술집 웨이터가 아니고 2차까지 나가 몸까지 파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김명숙은 자신이 그런 일을 안하게 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단다. 김명숙도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안 하기로 했었거든. 그런데 나복녀는 폐병 걸린 것이 확인되어 그곳에서도 쫓겨나게 되었대. 그 이후 연락이 안 된다고 했어. 나복녀는 술집에서 쫓겨난 이후 불쌍하게도 사창가에 팔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성병까지 얻게 되고 또 폐병이 도지게 되었어. 결구 나복녀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자살 기도를 했단다.

...

천두만의 딸 천말분은 가발 공장에서 가발 만드는 일을 했는데 손놀림이 좋고 빨라서 동료들보다 돈을 많이 받았어. 그들의 보수는 도급제, 그러니까 실적만큼 주는 것이어서 천말분은 화장실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열심히 가발을 만들었단다. 천두만은 가발공장에 다니는 큰딸의 소개로 가발 공장의 원자재인 머리카락을 사는 일을 했어. 미용사 두 명과 함께 시골을 돌면서 여자들의 긴 생머리를 사는 거야. 당시에는 화학섬유로 만드는 가발도 있었지만, 실제 머리로 만든 가발이 더 품질이 좋았단다. 천두만과 미용사들은 시골에 가서 공짜로 파마를 해주고 머리카락 사는 돈도 준다는 전략을 썼는데, 이것이 잘 먹혀 들어가 벌이가 심심치 않았어. 뿐만 아니라 시골의 아가씨들에게 가발공장의 일자리 알선도 해주어 부수입도 챙겼어. 그에게는 꿈이 생겼어. 자신과 큰딸이 버는 돈을 모아서 조그마한 하청공장을 차리겠다는 꿈이었어.

나복남은 결국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어. 스테인리스 기계에 그만 손가락 네 개가 잘려나가고 말았어. 순식간이었단다. 하지만 공장에서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회사에서 해고까지 당했단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사장 집까지 찾아갔지만 소란을 피웠다며 자신만 파출소에 끌려가고 말았어. 아무도 그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어. 그에게 그런 일자리를 주었던 천두만은 미안함 마음이 컸단다. 어떻게든 나복남의 생활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 천두만은 나복남의 손이 다 나으면 자신과 함께 머리카락을 사러 다니는 일을 하자고 했어. 그리고 자신이 공장을 짓게 되면 그곳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면 된다고 희망을 가지라고 이야기했지만 잘려나간 손가락 네 개는 어디서 보상을 받겠니. 나복남은 계속 사장에게 복수를 계획했어. 그래서 자신처럼 공장에서 손가락을 잃고 일자리를 잃은 다른 피해자들에게 연락했지만, 그들은 소극적이었단다. 하지만 그는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접을 수 없었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억울하니 말이야.

김선오의 바로 밑 여동생, 김광자. 그녀는 선생님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다른 꿈이 생겨났단다. 서독에서 간호사로 일하러 간 다음에 그곳에서 틈틈이 공부하여 의대를 가겠다는 꿈이었어. 더욱이 서독은 공부만 잘하면 의대 비용은 무료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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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경은 박부길 사장에게 그만 겁탈을 당했어. 허미경은 자신을 좋아하는 오빠 허진의 친구 이상재의 마음을 알았기에 자신의 몸이 더럽혀진 이후 이상재에게 연락도 안 했어. 이런 소식을 모르는 이상재는 제대 후에 사라진 허미경을 찾아 다녔어. 6개월에 만에 허미경을 찾았지만, 허미경이 박부길의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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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강> 5권에서는 전태일 이야기도 나오는데, 전태일이야 말로 용기 있고 진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도 오래 전에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었는데 그 내용이 전부 기억나질 않지만, 자신은 충분히 먹고 살고 살 수 있는 재단사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서 헌신했던 위대한 노동자란다. 앞서 이야기했던 <전태일 평전>을 너희들도 나중에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전태일이 노동 운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강> 5권에 실려 있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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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전태일은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며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이야기 들을 자세를 전혀 갖추지 않은 채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훅 내뿜으며 책상 옆구리에 붙여둔 빈 의자가 있는데도 자리를 권하지 않았다.

저어, 저희들이 일하는 봉제공장들은 작업환경부터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도록 형편없이 나쁩니다. 먼저, 천장 높이가 1.5미터밖에 안 되어 모두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해야 합니다. 원래는 3미터 높이였는데 사장들이 임대료를 줄이고 돈을 많이 벌려고 절반을 막아 2층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장들은 대개 8평 정도고, 평균 32명씩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비좁은 공장이 복도로 통하는 문 외에는 세 벽이 모두 막혀 있어 통풍이 전혀 안 될 뿐만 아니라 환기장치도 일절 없다는 사실입니다. 감독관님, 봉제공장은 모두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통풍도 안 되고 환기장치도 전혀 없으니 원단에서 풍기는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며, 옷감을 재단하고 옷들을 만들면서 끝없이 일어나는 실밥먼지는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대로 공장 안에 갇혀 있어서 공장 안은 언제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침침합니다. 공원들은 그 먼지를 다 마시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지가 많이 나는 옷감일 때는 서너 시간만 일해도 먼지가 앉아 머리가 허옇게 되고, 도시락을 펴놓고 첫숟가락을 넘기기도 전에 밥에 먼지가 허옇게 내려앉아 먼지밥을 먹는 실정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먼저구덩이에서 날마다 14시간씩 일을 하다 보니 기관지염, 진폐증, 폐결핵, 각종 눈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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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자아, 그럼 내 말 똑똑히 들어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분명히 사람이야.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은 그 누구나 다 똑같이 평등해. 사람이면 모두가 다 공평하게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 것처럼 말이야. 사람은 모두 평등하니까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어.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말야. 우리 공원들도 일반 직장인들처럼 하루 여덟 시간 일하고 제대로 봉급받고, 야근을 하게 되면 야근수당을 따로 받고 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져 있어. 그건 나라가 만든 법인데, 그 법 이름이 바로 근로기준법이야. 그런데 그 법이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 공원들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기계처럼 뼛골 빠지게 혹사당하면서도 거지꼴을 못 면하고 살고 있는 거야. 그런데 왜 그 법이 안 지켜질까? 사장들이 돈 많이 벌 욕심으로 안 지키기 때문이라고? 그거 맞는 말이야. 그러나 그건 정확한 답이 아니야. 사장들의 잘못은 3분의 1밖에 없어. 그 법이 제대로 확실하게 지켜지게 하려면 사장들 말고 또 책임져야 할 데가 두 군데가 더 있다 그런 말이야. 자아, 이 대목에서 내 말 똑똑히 들어. 그 두 군데 중에 한 군데가 나라에서 만든 법을 제대로 잘 지키나, 안 지키나 감독해야 하는 공무원들이야. 그럼 나머지 한 군데는 어디지?”

전태일은 두 공원 아가씨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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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근로감독관, 노동청 등에 부당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서 이이기했지만 그들 모두 기업의 편에 서서 전태일의 의견을 묵살했어. 오히려 전태일은 회사에서 짤리게 되고, 다른 곳에도 취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단다.

 

2.

유일민은 임채옥이 준 돈으로 술 도매상 사업을 시작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단다. 서동철이 소개해준 남미미라는 전직 여배우가 운영하는 술집에 납품을 하기도 했어.

....

한정임은 복부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어. 강남 쪽에 새로운 개발이 있을 거라는 소문에,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남편으로부터 정보를 알아내어 강남땅을 사들이기 시작했지. 당시만 해도 강남은 허허벌판이었어.

...

독일에서 일하는 광부들 사이에는 미국으로 이민 가는 유행이 번졌단다. 미국에는 일자리가 더 많고, 광부처럼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한국에서는 미국 이민이 쉽지 않지만, 독일에서는 그것보다는 쉽게 이민을 갈 수 있었기 때문이야. 배상집은 광부 일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를 했단다. 자신이 원래 목표로 했던 박사학위를 따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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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백은 처가 등쌀에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어. 장인 어른은 검사인 이규백을 이용하여 이권을 챙기기에만 혈안이고, 아내는 시댁 식구들을 벌레 보듯 혐오하고 말이야. 이게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인지... 돈만 보고 결혼한 자신의 잘못도 적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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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경은 박부길의 첩이 되었고, 박부길은 허미경의 가족들한테도 아파트 한 채를 선물해 주었어. 그렇다고 허미경이 그에게 마음까지 준 것은 아니란다. 자신의 몸을 버려 체념을 한 것 뿐이지. 어느 날 허미경은 할머니와 가족들이 있는 아파트가 붕괴되어 무너졌다는 뉴스를 들었단다. 깜짝 놀라서 그곳에 갔는데 다행히 할머니가 사는 동은 아니고 옆 동이 무너졌단다. 이것은 실제 있었던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이란다. 15동이 그대로 주저앉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사건이야. 날치기로 허술하게 지은 아파트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논란이 되었지. 당시 책임을 져야 할 부르도자(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서울 시장은 책임만 회피하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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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284)

원병균은 여러 가지 정황을 세밀하게 살피면서 말을 잃고 있었다. 산비탈은 45도가 족히 될 만큼 경사가 심했다. 그런 급경사에 단층짜리 주택도 아니고 5층이나 되는 아파트를 세운 것이다. 최신 장비나 최신 기술이 있더라도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할 난공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모든 자재들을 등짐으로 져올리고, 콘크리트 반죽도 삽으로 적당적당 해치우는 형편에 그런 난공사를 한 것이다. 땅값 비싼 서울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평지보다 몇 배 더 강하고 튼튼하게 공사를 하도록 규정을 정하고, 감시했어야 한다. 그러나 산동네마다 솟아오르는 시민 아파트들이 너무 졸속이고 날림이라는 비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부르도자시장은 그런 우려와 비판을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깔아뭉개며 일을 몰아붙여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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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여기까지가 <한강> 5권의 이야기란다.., 해방과 전쟁 이후 나라의 시스템에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자본주의가 물밀듯이 들어오다 보니, 사람은 뒷전이 되고 돈이 우선인 세상이 된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나 월남 가기로 자원했다. 곧 떠나.”

책의 끝 문장: 박준서는 멀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까라면 까야지하고 생각했다.

 



미군들은 월남사람들을 ‘국’이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멸시하고 차별했다. 그러나 ‘국’이라는 비칭은 월남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국’은 원래 미국에 사는 중국인들을 천시해 생겨난 것이었고, 그 비하의 지칭에는 아시아 황색인종 전체를 업신여기는 의미가 포괄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군들은 한국군은 연합군으로 자기네와 같다고 애써 구분하면서 월남인들만 ‘국’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이상재는 그 얍삽한 수작이 오히려 역겹고 기분 상했다. 그건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백인들은 아시아인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간주한다는 글을 일찍이 읽었기 때문이다. 황인종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취급해 버리는 백인들의 그 대책 없는 오만과 우월감, 그에 대한 반감이 이상재는 월남에 와서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미군들이 더럽고 냄새난다고 해서 월남사람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6.25 때 한국사람들을 그렇게 취급했던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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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16)

그리고 여자 애들한테는 차가운 분노가 있어야 해요. 여자 아이들은 싸늘하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 사그라지지 않는 원한, 용서하지 않는 재능과 협상을 회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무슨 얘기를 할 때는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요. 그건 세상에서 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살아야 하는 데 대한 보상이에요. 남자에게 맞서 싸움을 해 이기면 자기 방식대로 계속 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 거죠. 여자한테 맞서면 온 우주가 다시 한번 다 바뀌어요. 왜냐하면 차가운 분노는 멸시와 모욕에 관한 한 어떤 문제에서든 언제까지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를 풀지 않는 법이니까요.” 사리마는 피예로에 대해, 리르에 대해 입 밖에 내지 않는 비난을 던지며 엘파바를 쏘아보았다.

 

(257)

약에 대한 진실은 여러분이 말한 것 중 그 어느 것도 아니야. 당신들은 악의 한쪽 면, 즉 인간적인 면만 발견했어. 영속적인 면은 그늘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 아니면 그 반대이든가. 옛날 속담 같은 거지. 껍데기 속의 용이 어떻게 생겼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지. 보려고 껍데기를 깨는 순간 용은 더 이상 껍데기 속에 없을 테니까. 악의 본질은 비밀스러움이기 때문에, 이 질문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어.”

 

(283)

종교라는 꼬챙이가 몸 전체를 꿰뚫고 있다면, 움직일 때마다 의식할 것이다. 그런 사람의 정신적, 도덕적 체계에서 종교라는 언월도를 뽑아낸다면 제대로 서 있기나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초원의 하마가 섬유질의 소화를 돕는 유독한 작은 미생물들을 몸속에 품어야 하듯이 인간도 종교를 품어야 하는 것일까? 종교를 벗어 버린 사람들의 역사는 종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설득력 있게 와 닿지 않는다. 그 진부하고 아이러니한 종교란 그 자체로 필요악인가?

 

(284)

이름 없는 신에게서 인격이라고 할 만한 부분을 다 쳐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거세게 몰아치는 한 줄기 공허한 바람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 바람은 모든 것을 쓸어 버리는 강풍일 수도 있지만, 도덕적인 힘은 없을지 모른다. 회오리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육제의 호객꾼이 손님을 끄는 외침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번만큼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교의 관념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요정 마차를 타고 구름 속 보이지 않는 곳을 맴도는 럴라이나라면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천년왕국이든 어디든 언제고 하늘에서 내려와 덮칠 것이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 없는 신이 갑자기 들이닥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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