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 3권  <수도사의 두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게.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작년에 10권까지 나오고 잠잠해서 아빠가 걱정을 좀 했었는데, 최근에 21권까지 모두 출간되었더구나. 이제는 끊길 걱정하지 말고 고고해야겠구나.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수도사의 두건> 역시 책표지에 커다란 두 눈이 등장한단다. 두 눈만 크게 클로즈업해서 섬뜩한 기운도 드는데, 각 권마다 그 눈모양이 다르단다. 각 권마다 책표지의 눈모양이 다른데 그것이 무언인가 의미를 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단다. 책표지 디자인은 워크룸이란 곳에서 했다고 하는데, 어떤 취지를 가지고 디자인했는지 궁금하구나.

그건 그렇고 곧바로 <수도사의 두건>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책 제목 <수도사의 두건>은 수도사의 두건을 닮았다고 하여 별명이 붙여진 독성 강한 약초를 뜻한단다. 근육통이나 관절에 좋은 것으로 피부에 발라서 치료하는 것인데, 잘못하여 먹는다면 죽을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독초가 될 수 있어. 이번 <수도사의 두건>의 사건은 어떤 식으로 벌어질 지, 제목을 통해서 대충 예상할 수 있겠구나.

 

1.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잉글랜드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했잖아. 이번 3권에서도 마찬가지란다. 1138 12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는 여전히 내전 중인데, 캐드펠 수사 시리즈 2권에서는 캐드펠 수사가 머무르고 있는 베네딕토회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근처에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3권에서는 그 전선이 물러나면서 수도원은 조금은 일상을 되찾았단다. 수도원장 헤리버트는 교황청으로부터 재신임을 받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고, 부수도원장 로버트가 대리 업무를 맡고 있었어. 헤리버트 수도원장이 나이도 있고 해서 로버트는 내심 이번에는 자신이 수도원장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었어. 캐드펠 수사는 그런 권력에는 큰 관심 없이 수도원의 농장에서 일했단다. 캐드펠 수사는 농사뿐만 아니라 약초도 키우고 약초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어. 수도원이나 인근 마을의 아픈 사람들이 오면 약초를 처방해주기도 했어.

수도원 근처에 말릴리 장원의 영주 거베이스 보넬이라는 사람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말릴리 영주는 자신 소유의 장원을 수도원에 기부하고 싶다고 해서 그 기부 건에 대해 계약을 진행하고 있었단다. 어느날 부수도원장 로버트는 흔치 않은 메추리 요리를 먹게 되었는데, 흔치 않은 요리라서 그 요리를 거베이스 보넬에게도 나누어주었단다. 장원을 기부해주어 고맙다는 마음으로그런데 거베이스 보넬이 그 음식을 먹고 위중한 상태로 빠지게 되었어. 말릴리 장원의 농노인 앨프릭이 캐드펠을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어. 캐드펠이 뛰어 가서 응급 조치를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단다. 손쓰지도 못하고 거베이스 보넬은 죽고 말었어. 보넬 씨의 증상을 보니 누군가 수도사의 두건이라는 부르는 독성 강한 약초를 음식에 탄 것으로 보였어. 캐드펠이 그렇게 잘 아는 이유는 그 약초를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같은 메추리 요리를 먹은 부수도원장은 멀쩡한 것으로 보아, 수도원에서 요리를 받아서 보넬 씨의 집의 식당, 거실로 오는 동안에 누군가 독초를 요리에 넣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단다.

여기서 잠깐 거베이스 보넬의 가계도를 좀 살펴봐야겠구나. 거베이스의 아내는 리힐르스인데 3년 전에 재혼한 사이였단다. 리힐리스에는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 시빌과 늦둥이 아들 에드윈이 있었단다. 에드윈은 이제 고작 열네 살이었어. 딸은 마틴 벨코트라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들 에드위가 있었단다. 에드윈이 늦둥이다 보니, 조카 에드위와 나이가 동갑이어서 둘은 친구처럼 지냈단다. 보넬 씨는 예전에 하녀와 정을 통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 하녀는 죽고 사생아 메이리그는 이미 성인이 되었지.

그렇다면 거베이스 보넬이 죽으면 누가 가장 이득이 될까. 당시 잉글랜드는 사생아에게 상속권이 없었기 때문에, 상속권은 친자는 아니지만 법적 아들인 에드윈이 갖게 된단다. 그렇다 보니, 이 사건을 조사하기 나온 행정관은 에드윈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었단다. 더욱이 사고 당일 에드윈은 보넬 씨의 집에 찾아와서 말다툼까지 한 것을 가족들과 하인들이 모두 보았어. 말릴리 장원이 아직 수도원으로 기부한다는 최종 계약이 안 되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장원의 권리는 에드윈이 갖고 있었단다. 그리고 보넬 씨와 말다툼을 한 에드윈은 그 집에서 뛰쳐나가 행적이 묘연해졌단다. 현실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추리 소설에서는 가장 범인 같지 않은 사람이 범인이니까 아빠도 에드윈은 무조건 진범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가끔 그 허를 찌르는 작가도 있지만 말이야.

 

2.

그 시각 에드윈은 조카이자 친구인 에드위와 함께 숨어 있다가 밤이 되자 캐드펠 수사를 찾아왔단다. 에드윈와 에드위는 삼촌과 조카 사이라고 하지만, 쌍둥이처럼 비슷하게 생겼어. 캐드펠은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에드윈이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했어. 에드윈이 그날 보넬 씨를 찾아온 이유는 그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아서, 엄마의 조언대로 화해하려고 왔던 거야. 선물까지 준비해서 왔는데, 처음부터 대화가 틀어져서 선물도 주지 못하고 말다툼만 하고 뛰쳐나왔다는 거야.

캐드펠은 에드윈을 수사들이 잘 오지 않는 마구간 창고에 숨겨두었고,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어. 조수인 마크 수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2권에서도 등장했던 휴 베링어도 캐드펠 수사를 도와주었단다. 그런데 있잖니캐드펠이 보넬 씨를 구하려 갔던 날, 또 다른 일로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단다. 보넬 씨가 3년 전에 재혼한 아내이자 에드윈의 엄마 리힐거스가 알고 보니 멀고 먼 시절 캐드펠의 첫사랑이었던 거야. 수십 년이 지나 자신의 첫사랑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단다. 수도원에 제롬 수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캐드펠과 리힐거스의 그런 관계를 알아내고, 캐드펠도 용의자일 수 있다고 주장했단다. 리힐거스와 다시 관계를 맺으려고 보넬 씨를 죽였다는 거지. 그 독초도 캐드펠이 만든 것이니 말이야. 제롬 수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부수도원장은 판단하여 캐드펠에게 금족령이 내려졌단다.

그렇게 외출을 할 수 없는데, 에드윈이 숨어 있는 마구간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어쩔 수 없이 에드윈은 말을 타고 도망을 갔고, 사람들은 에드윈을 쫓아가 결국 잡아 왔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이 잡은 사람은 에드윈이 아닌, 에드윈의 조카 에드위였어. 중간에 둘은 옷을 갈아 입고 에드위가 에드윈인 척 한 거야.

금족령은 풀려났지만, 캐드펠은 이 사건으로 격리를 시키려는 부수도원장의 의도에 따라 멀리 양목장 관리로 파견을 가게 되었어. 양목장은 원래 두 명의 수사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수사가 병에 걸렸기 때문에, 그 수사를 치료도 할 겸 양목장도 관리하라고 캐드펠 수사를 그곳에 보냈단다. 그런데 우연찮게 근처에 말릴리 장원이 있었단다. 캐드펠 수사는 오히려 그 말릴리 장원을 살펴 볼 수 있었단다. 그런데 말릴리 장원은 잉글랜드와 웨일즈 땅에 걸쳐서 넓게 펼쳐져 있었어. 심지어 웨일즈 쪽에 훨씬 많은 땅이 있었단다. 그래서 말릴리 장원에 관련된 재판은 웨일즈 재판장에서 받을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웨일즈에서는 사생아와 무관하게 친자에게 상속권의 우선권이 있었어. 오호,, 그렇다면 강력한 용의자가 한 명 등장하는구나. 바로 보넬 씨의 사생아 메이리그

캐드펠은 말릴리 장원을 조사해보려고 갔는데, 그곳에 숨어 있던 에드윈을 만났단다. 에드윈이 거기에 숨을 수 있던 것은 메이리그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야. 메이리그는 에드윈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동생으로 여겼어. 하지만 얼마 후 이 사건을 조사하는 행정관이 말릴리 장원에 찾아와 에드윈을 체포해서 에드윈은 감방에 갇히게 되었어.

캐드펠은 웨일즈의 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보러 갔다가 그곳에 증인들을 데리고 나타난 메이리그를 보았단다. 메이리그는 말릴리 장원의 상속권을 주장했어. 메이리그는 방청객에 캐드펠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메이리그가 상속권을 주장한 후, 캐드펠은 메이리그가 보넬 씨를 죽였다는 근거를 하나하나 이야기했단다. 메이리그가 가지고 있던 약병에 여전히 독초의 향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 명백한 증거였단다. 그러자 메이리그는 재판장에서 뛰쳐나가 도망쳤단다. 그날 밤, 메이리그는 캐드펠을 찾아와서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고 지금은 깊이 반성하고 벌도 달게 받겠다고 했어. 메이리그의 진심을 알게 된 캐드펠은 그를 사죄하고 앞으로 반성하며 살아가라면서 그를 도망가게 했단다.

캐드펠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굳이 감옥에 가두지 않고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그 죄를 덮어주었단다. 2권에서도 그랬잖니일종의 고해성사로 생각한 것 같아.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면 하느님과 화해를 했다고 보는 거지메이리그가 진심으로 후회한 것이 맞기를캐드펠은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에드윈이 무죄라는 것을 입증했어. 그래서 에드윈도 풀려나게 되었단다.

….

재신임을 받으러 갔던 헤리버트 수도원장이 돌아와서, 자신은 이제 평수사로 봉사한다고 했어. 부수도원장 로버트는 자신이 수도원이 되는 줄 알고 좋아했지만 그것은 순간이었단다. 헤리버트는 새로운 수도원장이 될 라둘푸스와 함께 왔던 거야. 로버트는 좋다 말았네지은이 엘리스 피터스의 유머 코드인 듯소설은 그렇게 끝났단다. 이번 소설도 재미있었어. 너희들도 시간만 있다면 읽어보면 좋을 텐데요즘처럼 더운 여름에 더욱 어울리는 소설인 것 같은데..

이 소설은 책 뒤쪽에 주석 설명이 따로 모여 있단다. 그런데 책에는 27번까지 주석 번호가 있는데, 책 뒤쪽의 주석 설명은 25번까지만 있더구나., 마지막 2개가 빠졌어. 출판사의 실수.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1138 12월 초순, 캐드펠 수사는 평온한 마음으로 수도회 평의회에 참석했다.

책의 끝 문장: 결국 이것이 모든 이를 위한 최선의 길이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9)

거울 속의 남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건장한 몸집의 남자. 한때는 짙은 색이었던 그의 머리카락이 이제는 희끗희끗하게 변해버렸다. 거친 피부와 주름진 얼굴, 벗겨진 이마, 작은 눈, 손질이 필요한 눈썹.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은 거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신체 부위 중에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발뿐이라 말하곤 했다. 그는 시선을 고정했다. 거울 속의 남자도 시선을 고정한 채 팔을 내리고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 다 알고 싶어 하는 남자였다. 날씨, 바람, 시간.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43-44)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그 끝은 결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다. 끝은 모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언젠가는 마지막으로 딸을 목말 태우고 숲을 산책하는 날이 올 것이다. 산 위에 올라가 발밑의 풍경이 마치 나만의 것 같다고 느낀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가게에 가서 빵과 우유와 버터를 산 날, 마지막 여름. 마지막 수영. 그는 8월의 어느 날, 튜브에 등을 대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올려다보았고, 햇살에 데워진 바위 위에 앉아 눈을 감고 피오르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81)

그는 어떻게 하면 그녀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일지에 그렇게 적었다. 우리는 쉽게 건널 수 있는 깊은 소금물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을 뿐이다. 어느 날 그는 배를 정박시키고 그녀의 집이 있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두세 발자국을 떼었을까. 갑자기 용기가 사라졌다. 그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이제 그의 삶은 저 집 안에, 저 대문 너머에, 마르타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삶 속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119-120)

때때로 우리는 자연의 가장 장엄한 측면을 접하기도 한다. 어떤 집이나 배도 견뎌내지 못하는 바람, 심지어는 그 어떤 풍경도 경험한 적이 없을 낯선 바람, 피오르에 세차게 몰아쳐 배를 질식시키는 바람. 그런 바람이 불면 집은 갈라지고 부서지며 벽은 힘없이 땅에 쓰러지고 지붕은 마치 빈 정수리를 숨기기 위해 빗어 넘긴 옆머리처럼 허공으로 풀썩 솟아오른다. 내 안의 날씨도 이렇게 변한다. 그는 일지에 어딘가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피오르 같은 사람이다. 피오로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다가, 다시 부풀어오르고 가라앉는다. 그렇다, 페리 운전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이지만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피오르 안팎을 막론하고 항상 그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다. 마치 물이 부서졌다가 합쳐지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싸안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항상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그의 손목시계 바늘처럼. 그는 이미 앞을 향해 출발했고 곧 엔진을 끌 것이며 배는 완전히 멈출 것이다.

(153)

그는 여전히 이 몸 안에 있다. 시간은 그의 몸속에 존재하고, 그의 머릿속에 존재한다. 모든 것은 몸과 영혼, 앞과 뒤, 두 개의 반쪽 퍼즐 사이의 그 어딘가에 존재하며 서로 끼워 맞추어지려고 노력한다. 시간은 우리가 태어나는 날부터 시작해 우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더 커지고, 더 현명해지고, 더 빨라지고, 더 명료해질 때까지 함께 하다가 천천히 내리막길로 향한다. 우리는 더 약해지고, 더 느려지고, 더 취약해지며, 어떤 일을 해보려는 우리의 열정은 사그라든다. 그는 이제 이것을 알고 있다., 천천히 시작해 천천히 끝을 맺을 것이다.

(181)

이렇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그가 물었다.

뭐가요? 그녀가 되물었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말이에요.

물론,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누군가가 속내를 털어놓고 조금이나마 화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살아가기가 더 쉬울 것 같긴 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194)

루나는 누구든 잠을 자는 동안에 얼굴이 변한다고 했다. 닐스, 당신도 알고 있었나요? 얼굴은 젊어질 수도 있고, 늙을 수도 있는데 그건 그 사람이 꿈이 앞으로 꾸는지 뒤로 꾸는지에 따라 달라진답니다. 닐스는 잠을 잘 때 자신의 얼굴은 어떻게 변하는지 물어보았다. 루나는 닐스의 얼굴이 늙어 보인다고 했다. 루나는 닐스가 뒤로 거슬러 꿈을 꾸기 때문에 얼굴이 늙어 보이며, 특히 왼쪽 얼굴이 눈에 띄게 더 늙어 보인다고 말했다.

루나는 닐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얼굴이 늙어 보일 때가 더 좋아요. 왜냐하면 당신의 얼굴이 울퉁불퉁한 산기슭처럼 보어거든요.

(208)

닐스는 하나의 이름은 운명이자 숙명이며, 모든 시를 시작하는 첫 단어라고 말했다. 비록 인간이나 배가 죽거나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이름은 항상 남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마르타는 그런 것쯤은 다 안다면서 자시는 바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당신은 어떤 이름이 좋을 것 같나요? 밤과 낮. 그녀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닐스는 코웃음을 치면서 배는 이미 완벽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피오르에 나가 있을 때, 그녀와 떨어져 있는 모든 밤과 낮에도 그는 항상 그녀 속에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 징그러워. 그녀가 쏘아붙였다.

(268)

닐스는 이것이 바로 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고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젤소민아 2025-08-30 0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펐어요~~~~희망적으로 슬픈.

bookholic 2025-08-30 21:59   좋아요 0 | URL
희망적으로 슬프다는 표현이 딱 맞는 표현 같습니다...^^
 
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백수린 작가님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를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작년에 읽은 백수린 님의 <눈부신 안부>를 재미있게 읽어서 백수린 님의 다른 책들을 알아보다가 알게 된 책이 오늘 이야기할 <여름의 빌라>라는 책이란다. 2020년에 출간된 책이고, 8편이 담겨 있단다. 그런데 어떤 작품은 읽다가 왠지 읽은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있었어. 그래서 아빠의 독서 기록을 찾아보니, 백수린 님이 젊은작가상을 탄 적이 있는데, 아빠가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읽을 때 읽었던 것이더구나. <시간의 궤적> <고요한 사건>이라는 작품이 예전에 읽었던 작품이더구나. 그런데 이번에 읽는데, 왠지 읽은 것 같은 느낌만 있지, 줄거리는 전혀 생각나지 않더구나. 그래서 또 한번 아빠의 기억력에 좌절을 느끼는 순간이었어. 작년에 읽은 <눈부신 안부>도 좋게 읽었는데, 이번에 읽은 <여름의 빌라>도 좋았단다. 앞으로도 백수린 님의 작품들은 눈여겨봐야겠다.

 

1.

<시간의 궤적>

주인공은 나이 서른 살.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로 미술사 석사 과정을 공부하러 갔어. 파리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녔는데, 그 학원에는 한국 사람이 두 명뿐이었어. 어느날 나머지 한국인이 주인공에게 말을 걸어와 밥을 같이 먹고 나서 친한 사이가 되었단다. 주인공보다 나이가 많아 언니라고 불렀어. 언니는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파리에 와 있다고 했고, 다른 주재원들은 가족들이 같이 왔는데, 자신만 미혼이라고 혼자 오다 보니, 다른 주재원 가족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색하다고 했어. 언니는 예전에 만났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주재원으로 온다고 해서 헤어지게 되었다고 했어.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했는데, 여전히 가끔 연락한다고 하더구나. 아무튼 주인공과 언니는 엄청 친해져서 같이 놀러가고 같이 밥도 자주 먹었어. 주인공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고 브르스라는 남자친구를 만나 사귀게 되면서 남자친구와 같이 언니를 만나기도 했단다. 주인공은 브르스와 결혼하는 것을 고민했지만 결국 결혼했단다. 시간이 흘러 언니가 주재원을 마무리하면서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단다. 그 시기가 주인공이 브르스와 사이가 안 좋은 시기여서 망설이다가 같이 갔단다. 그런데 브르스는 자신보다 언니와 더 사이 좋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어. 주인공은 언니와도 거리가 좀 멀어지고 있었는데 그런 눈에 거슬리는 장면까지 만들고주인공은 언니에게 아직 유부남이 된 남자친구에게 연락하냐고 물어봤고, 언니는 그렇다고 하니까주인공은 속에 품고 있던 말을 쏟아냈어. 왜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냐면서 말이야분위기가 어땠을지 예상되지? 언니가 귀국 전에 다시 만나긴 했지만 예전의 그런 사이는 아니었어. 귀국 이후에 연락이 끊겼단다. 그래서 주인공의 쓴 소리를 들은 언니는 그 이후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싶구나.

….

<여름의 빌라>

두 번째 작품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여름의 빌라. 주인공 이름은 주아. 주아는 오래 전 유럽 유학 중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여행에서 며칠 묶었던 집주인 노부부인 베레나와 한스와 친분을 쌓았단다. 그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지냈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주아는 지호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둘 다 시간강사로 힘들게 일하고 있었단다. 한스 부부의 연락을 받고 함께 캄보디아 여행을 갔는데, 한스 부부는 손녀 레오나를 데리고 같이 왔단다. 그들은 예의를 지키면서 잘 지냈지만, 지호는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단다. 한스 부부가 캄보디아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지호 생각에는 자신들이 인종적으로 우월감을 가진 듯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어. 한스 부부는 돈을 내고 관광 서비스를 받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지호는 약간 삐딱한 시선을 두고 있었단다. 계속 그 감정을 참던 지호는 결국 폭발하여 말다툼까지 이어졌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지호라는 사람의 속이 좁다고 생각했어. 현지인들도 관광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결국 한스 부부와 안 좋게 헤어져 귀국을 했어. 얼마 후에는 베레나가 할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편지를 받았단다.

<고요한 사건>

지방에 살던 주인공의 가족은 부모님이 재건축을 노리고 서울의 소금고개라고 하는 곳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단다. 그런데 그곳의 환경은 정말 안 좋았어. 여름이면 악취로 창문도 열지 못하고, 거리에는 쓰레기가 날리는 그런 동네였어. 길고양이들도 많았는데, 길고양이를 보살펴주는 고양이 아저씨도 있었어. 이사와 함께 서울로 전학을 하게 된 주인공은 해지, 무호라는 친구와 친하게 되었어. 드디어 재건축이 결정되면서, 찬성파와 반대파의 갈등이 심해졌단다. 전세를 살고 있던 해지는 이사를 가야 했어. 주인공은 무호를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전에, 무호는 주인공을 찾아와 해지에게 사랑 고백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단다. 사랑이라는 것이 쉽지 않지. 어느날 동네의 길고양이들이 죽은 채 발견되었단다. 재건축 찬성파들의 짓이 뻔했어. 길고양이들이 죽은 것에 대해 고양이 아저씨는 난동을 부렸고, 재건축 찬성파에게 의해 폭행까지 당했어. 주인공은 울면서 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아빠는 별일 아닌 듯 무관심하는 모습에 주인공은 충격을 받았단다. 그런 방법밖에 없었을까. 재건축을 하더라도 영리한 고양이들은 제살길 찾아 나섰을 텐데..

<폭설>

11살 때 부모임이 이혼을 하시고, 주인공은 아빠와 함께 생활했단다. 엄마는 아빠의 전 회사 동료인 케빈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지내셨어. 주인공은 방학 때마다 엄마를 만나러 미국에 갔지만,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어. 특히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생기는 몸의 변화에 대해 조언해 줄 사람도 없었지. 14살 이후에는 미국에 안 가기로 했어. 엄마가 가끔씩 한국에 오면 만나곤 했지만, 그 만남의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단다. 세월은 쏜살같이 빨리 흘러 주인공은 서른 살이 되었어.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고, 방황하기도 하던 시기오랜 만에 미국에 가서 엄마를 만났단다. 그리고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갔는데, 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폭설을 만나 차가 구덩이에 빠져 한 동안 둘이 차 안에 갇히게 되었어. 그러면 둘이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한번뿐인 인생.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며 자란 주인공. 엄마는 딸의 빈자리를 채웠을까?

….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주인공 희주의 남편은 성형외과의사야. 아이는 둘이고 둘째는 아직 수유중인 평범한 가족을 이루고 있단다. 아니다, 의사 가족이면 일반 평범한 가족의 범위는 벗어났다고 봐야겠구나. 희주의 친구 한나는 <카페 뮐러>라는 레스토랑을 차렸는데, 개업식날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발레를 하는 남자 후배를 만나게 되었어.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그 후배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거야. 그리고 동네 공사장을 지나가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가 그 발레리노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보겠다고 공사장을 자주 지나가기도 하고생각으로만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것은 죄악인가? 사랑은 무엇으로 막으려고도 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어코 찾아 드는가 보구나.

<흑설탕 캔디>

돌아가신 할머니의 일기장에서 할머니의 따듯한 사랑 이야기를 발견하는 이야기란다. 주인공의 엄마가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함께 사시면서 주인공을 키워주셨어. 아빠가 프랑스에서 일하게 되면서, 주인공과 할머니도 함께 프랑스에 가게 되었단다. 할머니가 대학까지 나오셨지만, 프랑스어는 못하시고 프랑스에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단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살던 집의 아래층에 노신사인 브뤼니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어. 브뤼니에는 4년 전 사별하고 혼자 지내셨어. 일 층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에 우연히 인사를 한 브뤼니에와 할머니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같이 차도 마시면서 애틋한 정을 쌓아갔단다. 그런데 아빠의 갑작스런 귀국으로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브뤼네에와 헤어지게 되었단다. 할머니와 브뤼니에는 서로 호감을 갖고 있지만, 할머니의 귀국을 반대할 만큼까지 진전은 없었던 것 같아. 그들은 이것 또한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

<아주 잠깐 동안에>

오랜 전 시절의 일을 회상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란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이 대부분 옛 이야기를 회상하는 전개 방식을 쓴 것 같구나. 지은이 백수린 님이 그런 스타일의 소설을 즐겨 쓰시는 건지, 아니면 여러 작품들 중에 그런 소설들만 묶은 건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유럽 배경의 소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건 지은이 백수린 님이 프랑스에서 유학한 경력이 있으셔서 그런 것 같구나. 무려 불문학 박사시구나. 이야기가 잠시 딴 곳으로 빠졌네. 다시 <아주 잠깐 동안에> 이야기를 해줄게.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남자란다. 주인공은 여주와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만나 호감을 갖게 되었단다. 여주가 이사를 가면서 소식이 끊기고 회사에 취업한 이후 수소문하여 여주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들은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에 골인하게 된단다. 그리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생활해서 드디어 작지만 자신들의 집을 얻을 수 있었어.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도 했어. 집들이에 온 손님들을 배웅하고 집에 오는 길에 주인공은 세탁기를 리어카에 싣고 혼자 끌고 올라가는 할머니를 보았어.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할머니의 집은 한참 올라가야했단다. 여주는 안주거리 만들어서 기다리고 있어서 마음이 급해졌단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서였나, 뒤에서 밀던 할머니에게 세탁기가 깔리기도 했어. 다행히 할머니는 많이 안 다치시고, 주인공은 할머니 집에 세탁기를 내려 놓고 집으로 달려왔단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 주인공은 자신의 실수로 세탁기에 할머니가 깔려 병이 심해지신 것은 아닐까그 생각을 그 이후로도 계속 갖고 살았단다. 선한 목적이었으니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주인공은 중학교를 멀리 배정 받아 초등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다니게 되었는데, 반편성고사에서 일등을 하게 되어 그나마 친구들이 무시하지 못했단다. 새로 사귄 친구 중에 선주라는 아이가 있는데, 선주는 범생 스타일이었어. 얼마 후 좀 노는 아이 다미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다미의 친구 무리들과 노래방도 가고, 성행위와 키스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어. 다미를 통해서 사랑도 알게 되고 첫키스도 해보았단다. 그런데 얼마 후 다미는 임신을 하여 퇴학을 당하게 되었어. 그리고 소식이 끊겼다가 대학에 가서 다미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이미 아빠가 다른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단다. 자신의 처지를 불만이 없어 보였고 심지어 쿨해 보였단다. .

아빠의 기억력이 사라지기 전에 줄거리라도 적어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정신 없이 줄거리만 이야기한 것 같구나. 이미 잘못된 기억력으로 다르게 이야기한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단편 소설은 늘 뒷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언니가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기 전의 어느 수요일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나는 무사히 차도를 건너길 바라는 마음에서 눈으로 개를 좇다가, 그 개가 마침내 반대편 도로에 무사히 닿는 걸 확인한 후 고개를 돌렸다.


기차가 조금씩 속도를 줄이는 것이 느껴집니다. 편지를 마쳐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도착역을 알리는 방송이 곧 나오고 기차는 역사 안으로 들어설 테지요. 때가 되면 우리는 옷가지와 부려놓는 짐을 챙겨들고, 열차에서 내린 후 영원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할 거예요. 풍화된 것들 것 바람에 흩어져 없어지고 말겠죠. 그렇지만 나는 덜컹거리는 열차 위에 아직 타고 있고, 여전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당신이나 지호처럼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이 편지를 쓴 것은 아니예요. 하지만요, 베레나, 이것만큼은 당신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신의 기억이 소멸되는 것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리라고 한다면 나는 폐허 위에 끝까지 살아남아 창공을 향해 푸르게 뻗어나가는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이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딸이 낳은 그 어린 딸이 내게 그렇게 말한 후 환하게 웃는 장면이요. - P71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굳는 속도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도 퇴화하는.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은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꼼짝도 못하는 육체에 수감되는 형벌이라니.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할머니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치매나 언젠가 차게 될지 모르는 오줌 주머니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악몽에까지 찾아오는 공포는 언젠가 남편이 입원해 있던 요양병원에서 보았던 뇌졸중 환자처럼 전신이 마비되고도 또렷한 의식을 지닌 채 울부짖으며 여생을 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었다. - P1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

내 이름은 주세죽. 1901년생. 직업, 조선 독립혁명가. 1919년 조선에서 일어난 3.1운동으로 감옥에 갇힌 이후 스무 성상 내내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줄기차게 싸워왔다. 그런데 항일 투쟁을 벌여갈 때 언제나 든든했던 언덕소련공산당이 돌연 나를 체포했다. ‘사회적 위험분자로 훌닦은 뒤 1938 5 22일 카자흐스탄의 사막 도시 크즐오르다로 유형 5을 명했다. 죄와 벌 모두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명백한 이유다.


(110)

<올타>철필 연주를 디딤돌로 직접 연주에 들어가면서 내가 조선 땅에 있다는 사실이, 조선의 민중돠 더불어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고마웠다. 상해를 떠나기 전에 이정은 원근, 단야와 함께 조선의 청년 속으로, 나와 정숙은 여성 속으로 들어가 조직을 일궈내기로 혁명사업을 분담했다. 단야는 상해 시절부터 내내 혼자였다. 고향 김천에 일찍 결혼한 아내가 있었지만 자신의 뜻과 전혀 무관한 혼인이었고 소통을 끊은 지도 오래라고 푸념하곤 했다. 낡은 시대의 혼인관이 빚어낸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훤칠한 단야가 고개를 숙이고 낡은 외투에 두 손 찌른 채 구부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종종 애처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판단하다면, 어린 단야와 결혼한 여성이야말로 더 큰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어 애써 그의 아내를 떠올렸다.


(125)

인내요? 지금 저만큼 선생이 인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야말로 더는 참기 어려우니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죠. 노동하지 않고 글 팔아 먹고사는 이들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의무가 있어요. 남의 생각을 베끼지 않는 겁니다. 선생의 민족개조론은 전혀 독창적이지 않아요. 우리 민중이 3.1만세운동에 나선 이후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조선 민족의 독립 불능론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나섰잖아요? 총독부는 우리 민족에게 성격적 결함이 있고, 종족으로 열악하며 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식민지로 전략하고, 못하는 것은 민족의 잘못이라고도 강조했지요. 선생의 민족개조론과 총독부 논리에 뭐가 다른가요?”


(256)

혁명 이후에 러시아 민중은 이혼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일부일처제를 여전히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실제로는 남성들의 가부장제가 남아 있지요. 가족은 혁명 러시아에서도 국가를 이루는 기본 단위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의 일부일처제와 마찬가지로, 혁명 러시아의 일부일처제도 또한 실질적으로는 일부다처제거든요. 여성과 남성 사이의 평등이 온전히 이뤄지지 않는 한, 배타적으로 동등한 성애를 전제로 한 일부일처제는 불가능합니다.”


(314)

조선인들 전체를 밀정일 가능성이 높은 집단으로 간주한 스탈린의 혁명적 혜안에 나는 감탄했다.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는 약소민족 탄압이 분명했다. 강제 이주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지도자나 지식인들은 사전에 전격 체포했다. 공포에 잠긴 동포들은 화물열차 한 칸에 수십 명씩 빼곡하게 실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한 달이 걸려 이윽고 내린 카자흐스탄에서 조선인들을 맞은 것은 모래바람과 황무지였다. 집과 살림살이를 모두 빼앗기고 맨 몸으로 온 동포들에게 소련정부는 약속했던 보상을 하지 않았다. 운이 좋은 이들은 카자흐인 집의 창고나 축사를 가까스로 얻을 수 있었다. 그조차 얻지 못한 이들은 허허들판에 토굴을 파고 갈대로 지붕을 올려 살았다. 강제 이주 안팎으로 숱한 동포들이 죽어갔다.


(316)

그래서 묻는다.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소련공산당 지도자 스탈린은 과연 혁명가인가. 나는 공산대학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을 배웠다. 두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제 동지들과 민중을, 약소민족의 혁명가들을 제멋대로 학살한 스탈린을 어떻게 볼 것인가.


(334-335)

나는 소련의 속살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마르크스나 레닌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실, 우리가 레닌학교와 공산대학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 속에 존재하는 어둠의 뿌리는 깊디깊더군요.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이 저지르는 폭력이나 도무지 바닥을 모를 탐욕 따위가 그 대표적 보기입니다. 제 노선만이 옳다고 부르대며 자기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 죽이기를 서슴지 않는 숱한 엄숙주의자들은 전장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심지어 공산당 내부까지 모든 영역에 깊숙이 똬리 틀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을 보다 - 문과생도 과알못도 재미있게 읽는 기발하고 수상한 과학책 과학을 보다 1
김범준 외 지음, 김지원 그림 / 알파미디어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과학을 보다>라는 책이란다. 얼마 전에 유튜브 채널 보다에서 과학 관련 콘텐츠를 봤는데, 쉽게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아서, 너희들도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특히 Shawn은 과학 관련된 책들도 재미있게 읽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채널의 콘텐츠를 책으로 엮은 것도 있다는 알게 되었어. 이미 몇 년 전에 책으로 출간되었고, 최근에는 시리즈 3권까지 출간이 되었더구나. 너희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교양과학 책이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이 책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선 1, 2권을 주문했단다. 그리고 1권을 먼저 읽었단다. 글씨도 큼지막하고 그림도 잘 나와 있어서 쉽게 쉽게 읽을 수 있었어. 주제도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들이더구나. 아빠가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은 복습 차원에서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길 수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도 좋았단다.

이 책의 지은이는 유튜브를 같이 진행하는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님, 핵물리학자 서균열 교수님, 천문학자 지웅배 교수님, 그리고 진행을 맡은 정영진 님의 공저로 되어 있단다. 진행을 맡은 정영진 님이 과학에 관련된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관련 있는 분이 답변하는 식으로 되어 있단다. 모두 67가지의 질문이 있단다. 아무래도 유뷰트 콘텐츠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보니, 최근에 관심이 높은 과학 관련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어.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에 대한 질문도 있고, 영화 <테넷>에서 등장한 인버전이라는 기술에 대한 질문도 있고, AI에 관련된 질문 등 시의성을 띠는 이야기들이 있단다. 그리고 우주의 역사, 원자폭탄에 관한 이야기, 과학자들의 머릿속 등 궁금증으로 유발하는 질문들도 있었단다. 다양한 주제에, 쉬운 답변으로 너희들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1.

아빠는 이 책에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만 전달해볼게. 너희도 학교에서 대기권이라는 것을 배우는데, 어디까지 대기권이냐고 물어본다면 지구의 중력이 미치는 데까지 대기권이라고 할 거야. 그런데 중력이라는 것이 불연속적인 것도 아니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데, 지구의 중력이 미치는 곳을 칼로 딱 자를 수가 없잖니. 그래서 이것을 두고 과거에도 과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대. 결론은 편한 숫자인 100km로 결정했다는구나. 싱겁지만 나쁘지 않은 결정 같아. 그 경계면의 이름은 카르만 라인이라고 하는데, 아빠도 처음 들어봤단다.

==================

(36-37)

이 문제와 관련해 과거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구의 대기권은 정확하게 구분되는 경계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대기의 밀도가 옅어질 뿐이니까요. 그래서 이 밀도의 변화에 따라 고도를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표적인 고도 100km 경계선인 카르만 라인(Karman Line)’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100km로 정했을까요? 그 이유가 일반인에게는 의외라고 여겨질 수 있는데요, 그냥 100이 딱 떨어지는 편한 숫자라는 것이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달과 지구 사이의 중력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운 적 있지? 그런데, 달이 1년에 3.8cm씩 멀어지고 있다고 하는구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 1년에 3.8cm라면 긴 거리는 아니지만, 100년이면 3m 인데 괜찮은 것인가?

==================

(85)

달은 1년마다 대략 3.8cm씩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재미있게도 지구에 있는 바다 때문입니다. 달은 거대한 중력으로 바닷물을 끌어당깁니다. 달이 가까워서 바닷물을 많이 끌어당기면 썰물이 되고 해변이 넓게 드러나죠. 반대로 달이 지구에서 멀어지면 중력이 약해져 바다가 평평해지면서 밀물이 되고 해변 끝까지 바닷물이 차오릅니다. 그 속도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어서 우리나라 서해안에서는 뻘에 있던 사람들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

….

지구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대체 지구로 화성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꾼다는 SF 소설이나 영화 등이 있단다. 그런데 있잖니화성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꾸는 게 쉽겠니. 지구 사람들이 다같이 노력하여 지구를 잘 보호하고 사랑하는 것이 쉽겠니.

==================

(107)

외계 행성을 지구화해서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걸 테러포밍(Terraforming)’이라고 부르는데요. 일론 머스크처럼 핵폭탄을 이용하겠다는 것 말고도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있긴 합니다. 화성의 우주 궤도에 어마어마한 반사경을 올려 인간이 거주할 지역에만 햇빛을 집중적으로 쏜다거나 화성에 탄소가스를 내뿜는 공장을 대량으로 지어 온실 효과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지금 현재 과학 기술로는 많은 한계가 있는 주장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아이디어들을 실제 추진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생각하면, 현재 지구가 직면한 심각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각자가 환경을 보호하고 지구를 더 사랑한다면 굳이 화성에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요?

==================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칠게. 이 책은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책 내용이 쉽고 알차서 너희들도 한번 읽어보면 좋겠더구나. 재미있는 과학 상식을 쌓는 기회도 되고 말이야.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우주는 무한하다고 하는데 사실 끝이 없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책의 끝 문장: 무속과 같은 민간 신앙은 그 자체로 문화로서는 존중할 필요가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추론해봐도 왜 부정적 사건을 더 강하게 기억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원시 인류가 새로운 거주지에서 식용 가능한 식물을 찾는 과정을 떠올려봅시다. 낯선 열매들을 살펴보다가 먹어도 될 것 같은 외관을 가진 열매 하나를 따서 살짝 맛을 봅니다. 운 좋게도 달콤한 맛이 느껴집니다. 그러면 그다음에도 따 먹을 수 있게 기억해둡니다. 그러다가 다른 열매의 맛을 봤는데 이번에는 쓴맛이 나며 혀가 얼얼해지고 복통에 시달립니다. 이번에도 다음번에 실수하지 않기 위해 기억에 남겨둡니다. 생존을 위해 어떤 기억을 더 오래 남겨둬야 할까요? - P140

물리학자 중에 암흑물질을 연구하는 리사 랜들이라는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이 물리학자가 <주기적 운석 충돌의 방아쇠로서 암흑물질>이라는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리사 랜들은 원반 형태의 우리 은하 근처에 거대한 암흑물질이 이중 원반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우리 은하의 태양계를 포함한 모든 별은 수평으로만 원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회전목마처럼 위아래로 진동하면서 돌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한 번의 진동이 완성되는 데 총 주기가 6,000만 년입니다. 그러니까 딱 3,000만 년마다 위로 한 번 지나가고 아래로 한 번 지나가고 하는 거예요. - P208

핵융합은 다릅니다. 만약 인류가 핵융합 반응을 안정적인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말 그대로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최초로 불을 건네준 이후, 최대의 사건이 되겠죠. 핵융합의 원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로서 고갈될 염려가 없고 핵분열과 달리 부산되는 방사성물질이 적어 훨씬 안전합니다.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영구적인 에너지원이 되겠죠. 이렇게 인류의 모든 에너지 문제가 해결된다고 상상해보세요. 도대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저는 짐작이 잘 가지 않을 정도네요. - P2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