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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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피에르 르메트르의 소설을 읽었단다. 그의 소설을 여럿 읽었는데, 아직도 그의 이름이 헛갈린다. 피에르 르메르트? 피에르 르메트로? 피에로 로메트르? 피에로 르메트로? 아무튼 그의 가장 최근 소설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을 읽었단다.

피 말리는 이야기라고 해야겠구나. 죄를 숨기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야. 분명 그가 잘못을 했으니까 죄를 받아야 하는데,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다 보면, 들통날까 조마조마하게 되더구나. 그 이야기를 해볼까? 스포일러를 시작해보자꾸나.

 

1.

1999년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12살이었던 앙투안은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어. 엄마는 직장을 다녀야 했으니 집에서 늘 혼자 지내기 일쑤였지. 같이 놀던 친구들도 비디오게임이 유행하면서 보이지 않고, 앙투안은 혼자 숲에서 나뭇가지 등으로 아지트를 만들며 혼자 놀았어. 어느날 그를 따라온 이웃집 데스메트씨의 개 윌리스가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단다. 이후 늘 윌리스와 함께 지냈어. 그런데 어느날 교통사고로 윌리스가 중상을 입었어. 그를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데스메트씨는 윌리스를 총으로 죽였단다. 그 현장에 있었던 앙투안은 깊은 슬픔과 윌리스를 죽인 데스메트씨에 대한 강한 분노를 갖게 되었지.

그는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이 지은 숲 속의 아지트를 찾아가 다 부셔버렸어. 그때 숲에 놀러 온 레미. 데스메트씨의 어린 아들, 레미바로 그 윌리스를 죽인 데스메트씨의 아들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있던 앙투안은 막대기로 레미의 머리를 가격했는데, 그만 레미가 죽고 말았어. 뒤늦게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법. 앙투안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수를 할까? 시신을 숨겨야 할까? 고민하다가 숲 반대편에 잇는 동굴 안 구덩이가 생각이 났어. 그곳에 시신을 버리고 돌아왔어. 오다가 지나가는 차가 한대 있었는데 잘 몸을 숨겼지.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자신의 손목시계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어. , 어쩌지?

 

2.

집에 돌아오자 데스메트씨 집에는 난리가 났단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사라졌으니 말이야. 데스메트 부인은 앙투안에게도 레미를 못 보았냐고 물어보았어. 못 봤다고 했지. 나중에는 군경까지 출동해서 앙투안을 심문했어. 당황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려고 했어. 앙투안은 혼자 도망갈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하지 못했어. 열두살짜리가 가면 어딜 가겠어. 군경대는 주변에 있는 큰 연못을 샅샅이 수색했단다. 어린 아이가 실종했다면 실수로 연못에 빠졌을 확률이 가장 높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용의자로 지목되어 수사를 받기도 했단다.

며칠이 지나고 앙투안의 실종사고는 텔레비전에서도 크게 보도가 되었어. 앙투안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자수를 해야 하나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하나 괴로워했단다. 그리고 엄마의 약들을 한꺼번에 먹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 나중에 토하고 열이 심하게 나는 앙투안을 보고 엄마는 왕진 의사를 불렀어. 말이 적고 무뚝뚝하지만 친절한 의사선생님은 치료를 다 해주고, 마치 진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고민이 있으면 자신을 찾아와서 이야기를 하라고 했어.

레미의 수색은 점점 확대되어 대규모 자원봉사자들도 참여하기로 했어. 동네 사람들도 모두 참여하기로 했고, 수색지역도 넓혀서 시신을 숨긴 숲도 하기로 했어. 앙투안은 곧 자신이 범인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믿었어. 일분 일초가 무서운 시간이었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간들이었어.

 

3.

그런데 앙투안이 살고 있는 보발시에 강력한 태풍 2개와 엄청난 폭우가 왔어.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폭격을 맞은 듯 폐허로 만들었고, 그 폭우로 인해 죽은 사람도 있었어. 수해 복구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였어. 레미 수색 작업을 하려고 했던 자원봉사자들은 수해 복구가 더 급해 보였어. 그들이 모두 수해의 피해자였으니까 말이야. 그 숲도 완전 엉망이 되어버렸어. 레미 사건은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지.

 

4.

시간은 지나 2011년이 되었어. 앙투안은 파리에서 의대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었어. 여자 친구 로라와 함께 생활을 했지. 그는 대학 졸업을 하면 구호 단체에 가서 해외에서 활동할 계획도 세웠어. 앙투안은 어떻게 해서든지 보발시에서 멀리 벗어나려고 했어. 여전히 그날의 후유증으로 앙투안은 안정제를 먹어야 했고, 가끔씩 공황장애를 겼고 있었거든. 그 일이 그렇게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니지, 그는 변함없는 범인이고 죄를 여전히 받지 않고 있으니까 말이야. 정기적으로 보발시의 엄마가 혼자 지내는 집에 가는데, 어느날 어린 시절 짝사랑 하는 에밀리를 만났어. 순간적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짧고 어설픈 불장난 같은 사랑을 나누었단다. 그리고 후회했지.

그리고 뜻밖의 소식. 레미의 시신이 숨겨져 있는 그 숲을 재정비해서 놀이공원으로 만든다는 소식이었어. 그렇게 되면 레미의 시신이 발견되고, 그러면 앙투안 자신이 범인으로 밝혀질 거라고 생각했어. 다시 불안감과 공황장애로 괴로워했단다. 다시 파리로 돌아와 지내는데, 불안한 시간의 연속이었단다.

서너 달 뒤에는 에밀리가 찾아왔어. 임신을 했다는 거야. 앙투안은 순간 화가 났단다. 자신의 아이인지 어떻게 아냐고 했어. 자신의 아이더라도 낳을 수 없다고 했어.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중절 수술 비용을 주겠다고 했어. 에밀리는 종교적인 이유로 그럴 수 없다면서 화를 내며 보발시로 돌아갔어. 앙투안의 처지에서 보면 이것저것 한번의 실수들이 대형사고로 이어지니, 꼬인 인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단다. 하지만 모두 자신이 뿌린 씨앗들.

어느날 엄마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안 좋은 일들은 연이어 닥치는 것인가. 엄마를 간호해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어. 어쩔 수 없이 다시는 가기 싫은 보발시를 다시 가야만 했어. 병실에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통해 숲에서 어린 아이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봤어.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고 했어. 그 머리카락의 유전자 분석을 해 보았지만 경찰이 보관하고 있는 데이터와 일치하는 것은 없다고 했어. 12년 전에 용의자로 조사받았던 코발스키씨가 다시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지만 그의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풀려났단다.

한편, 에밀리가 그렇게 화를 내고 갔지만, 에밀리의 아버지는 가만히 있지 않았어. 앙투안을 고소하겠다고 했어. 에밀리가 임신한 아이와 앙투안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친자임을 확인하겠다고 했어. 앙투안은 다시 두려움이 엄습했어. 자신이 고소당해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면, 자신의 유전자는 경찰의 데이터에 저장이 되고, 언젠가는 레미의 유골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유전자와 일치됨을 경찰이 알게 된다면너무 앞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앙투안의 추리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할 거야. 그 방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에밀리와 결혼하는 방법뿐이지. 결국 앙투안은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으로 나가려는 계획을 접고, 사랑하는 여인 로라에게도 거짓말을 이야기해서 헤어지고, 에밀리와 결혼해서 다시 보발시로 돌아와 지내게 되었단다.

 

 

5.

2015년 보발시의 동네 병원 의사로 일하게 되었어. 어느날 코발스키씨가 환자로 찾아왔어. 레미 사건으로 두어 차례 경찰의 심문을 받았던 그 사람 말이야. 그가 앙투안에게 고백 비슷한 것을 했어. 그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단다. 1999년 레미가 죽던 날 차 운전을 하다가 앙투안이 허겁지겁 도망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어. 경찰서에 두 번이나 불려갔지만 그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앙투안의 엄마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리고 앙투안이 도망가는 것을 본 그 차 안에 그 혼자 있던 것이 아니라고 했어. 앙투안의 엄마도 같이 있었다고 했어.

그렇다면 앙투안의 엄마와 코발스키는 처음부터 다 눈치채고 있었다는 거야. 앙투안의 엄마도 말은 안 했지만 그 오랜 세월 얼마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셨을까. 앙투안에게는 내색하지 않고 숨죽이며 고생했던 그 시간들. 앙투안이 먹었던 엄마의 약들을 엄마도 계속 먹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또 하나 놀라운 사실. 코발스키와 앙투안의 엄마의 만남은, 앙투안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졌다고 했어. 그렇다면….. 앙투안의 아빠는 …..

코발스키는 평생 숨겨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숨길 이야기를 해주고 돌아갔어. 그리고 며칠 뒤, 소포 하나가 왔단다. 1999년 그날 숲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손목시계였어.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참 묘한 감정이었단다. 분명 앙투안은 실수이긴 하지만 사람을 죽인 중대한 죄를 지었어. 그것에 대한 벌을 받아야만 했어.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그가 잡히지 않길 바라게 되더구나. 지은이 피에르 르메트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그런 걸 노리지 않았나 싶구나. 아빠가 지은이와 게임에서 졌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주인공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라고 했을까.

 

PS:

책의 첫 문장 : 1999년의 12월이 끝나 갈 무렵, 일련의 돌연하고도 비극적인 사건들이 보발을 덮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은 물론 어린 레미 데스메트가 사라져 버린 일이었다.

책의 끝 문장 : 물론 그것은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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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클린느 뒤 프레 : 예술보다 긴 삶
캐럴 이스턴 지음,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풍월당 박종호님이 쓴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3 )>을 재미있게 읽었었어. 그리고 그 책을 통해서 여러 음악가들을 새로 알게 되었단다. 얼마 전에 책을 읽고 이야기해주었던 글렌 굴드도 그 책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고,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려고 하는 자클린느 뒤 프레도 그 책을 통해 알게 된 음악가였어. 자클린느의 삶이 너무 기구해서 특히 기억에 남았단다.

하늘에서 내린 듯한 천재적인 첼로 실력의 소유자였던 자클린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남. 그 사람과 함께 연주를 하며 행복한 시간은 영원할 것 같았으나, 정점의 시간에 찾아온 무서운 병. 그 이후 죽기 전 14년 동안 그 병과의 싸움. 그 책을 읽고 나서 자클린느가 연주하는 모습을 찾아 보기도 했었어. 그리고 언젠가는 그녀의 전기를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몇 년이 지난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단다. 그럼 너희들에게 간단히 자클린느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1.

자클린느의 엄마도 음악을 하셨고, 자클린느의 언니 힐러리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단다. 특히 피아노에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자클린느의 뛰어난 재능에 묻히게 되었단다. 힐러리는 나중에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나중에는 플롯으로 전향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음악을 그만두었다고 했어.

자클린느는 세 살 때 첼로 음악을 처음 듣고 첼로를 연주하고 싶다고 했대. 엄마는 자클린느에게 첼로 수업을 받게 했는데, 그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고 했어. 엄마도 자클린느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올인을 했어. 어쩌면 그것 때문에 힐러리의 재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어. 자클린느는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첼로 수업에 특화된 시간표를 짜서 다른 수업들은 제대로 받지 않았어. 그렇다 보니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했대. 후에 자클린느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에 대해 후회도 했지만, 그것이 첼로와 함께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했고, 첼로가 자클린느의 유일한 친구였다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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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00)

자클린느는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에 대해 자주 후회를 하지만, 첼로와 보낸 시간에 대해서는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첼로는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다는 것, 필요할 때마다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첼로는 나의 멋진 비밀이었다. 생명이 없는 대상이었지만 나는 첼로에게 나의 슬픔과 문제들을 모두 다 말하곤 했다. 그것은 내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건 뭐든 다 주었다. 첼로를 연주하는 일이 가장 좋았다. 연주를 할 때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첼로 연주를 통해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알 수는 없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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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클린느는 그야말로 첼로밖에 몰랐어. 1959, 자클린느가 1945년생이니까 14살 남짓 첫 번째 공연을 하였고, 1961년에는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다고 하는구나. 엄마가 피아노를 치면서 함께 연주를 하기도 했대. 17살의 자클린느는 집에서는 여전히 어린 아이를 취급 받았지만, 밖에서는 이미 연주가로서 어른 대접을 받았대. 십대 후반이 되면서 음악이 아닌 다름 것들도 접하게 되었는데, 음악 하는 친구들과 교제도 늘어나서 그러면서 사랑이라는 감정도 생겨나고 그랬지.

 

2.

그녀의 명성은 영국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퍼졌어.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순회공연을 하였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대

, 이제 그러면 자클린느의 사랑 이야기도 해보자꾸나. 친구 집에서 친구들과 모여 연주도 하곤 했는데 그때 이스라엘의 피아노 천재인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나게 되었어. 다니엘 바렌보임도 유명한 음악가로써 천재 피아니스트로 불렀고, 그는 지휘도 잘하는 지휘자이기도 했어. 그가 그의 이런 재능으로도 유명하지만, 자클린느의 남편으로도 더 유명해졌지. 당대 최고의 두 천재 음악가의 사랑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었어. 그들의 사랑은 곧 결혼으로 이어졌단다..

다니엘의 국가인 이스라엘은 당시 전쟁 중이었는데, 사랑의 힘은 대단했어. 이스라엘에 가서 결혼식을 하고 그곳에서 연주도 같이 했단다. 자클린느는 결혼 후 다니엘의 종교인 유대교로 개종하였는데, 이것은 부모님과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대.

다니엘은 포부가 큰 사람이었어. 결혼은 했지만, 그보다 자신의 야망이 더 중요한 사람 같았어. 두 사람은 사적인 둘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웠어. 늘 음악 연주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세계를 돌아다녀야 했지. 같이 하는 공연뿐만 아니라 다니엘만 하는 연주회도 자클린느도 함께 했어. 그들의 생활은 리허설과 공연, 그리도 다시 이동으로 이어졌단다. 어쩌면 이런 생활이 자클린느의 몸을 조금씩 망가뜨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리고 자클린느는 누구보다도 아이를 원했지만, 결혼하고 3년이 지나서 하게 되었대. 다니엘이 좀더 자클린느를 배려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어. 이런 빡빡한 스케줄에서는 어쩌면 아이를 가질 수도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3.

자클린느는 자주 피곤이 몰려왔단다. 빡빡한 연주 일정 때문일 거라고 단순히 생각했어. 쉬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자클린느가 걸린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병은 그 어떤 병보다 초기에 진단하기 어려운 악마의 병으로 불렀거든. 초기 증세가 그냥 피곤하다는 게 전부였으니까. 피곤은 아빠도 달고 사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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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다발성경화증은 가장 초기 단계엔 진단조차 어려운 악마의 측면이 있다. 증상이 나타났다 돌연 사라지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잠깐 나타났다가는 어느새 그랬냐는 듯 없어져서 쉽게 잊어버리기도 하며, 혹은 자클린느의 경우처럼 신경쇄약의 징후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호주에 있을 때 좀처럼 피로가 사라지지 않고 가끔 오른쪽 눈에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여서 진찰을 받았을때 의사는사춘기 외상장애라고 일축하고, 긴장을 풀 수 있는 취미를 시작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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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무서워 보이는 병, 다발성경화증. 그 병은 가벼운 초기 증세와 달리 엄청 무서운 병이란다. 우리 몸을 몰래 조금씩 못쓰게 만드는 병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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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357)

다발성경화증은 뇌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신경섬위의 절연체와 척수를 침범하는, 중추신경계에 일어나는 만성적이고 점진적인 질병이다. 손상을 입은 곳은 신경섬유를 감싸는 수초가 두껍고 딱딱한경화성상처 조각으로 대체되어, 뇌에서 근육과 장기로 전달되는 메시지들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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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클린느는 몸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가보았지만, 그저 휴식을 취하라는 이야기뿐이었어. 하지만 에이전트에 의한 계약이 있어 쉬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자클린느는 견딜 수 없는 무력감에 결국 6개월간 활동 중단을 했어. 6개월을 쉬었다고 해서 몸이 좋아진 것은 아니야.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병은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고 상태가 계속 악화될 수박에 없대. 하지만 여전히 자클린느는 자신이 다발성경화증에 걸렸다는 것은 모르고, 6개월을 쉬었으니까 이제 좀 괜찮겠지, 하고 복귀를 했어. 하지만 예전의 자클린느가 아니었어. 연주회에서 사소한 실수를 하고, 뉴욕에서 한 공연은 큰 실패를 하고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어. 병원에 다시 사보았지만 여전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단다.

책을 읽는 아빠가 다 답답하더구나. 자클린느는 다시 계획되었던 공연을 취소했어. 자클린느는 점점 자주 넘어지고, 계단 오르기도 힘겨워지고조페라고 하는 의사가 처음으로 다발성경화증을 의심하고 검사를 받아보니, 그 무서운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지.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고병에 걸린 사람의 15퍼센트는 급속히 진전되어 완전 마비 증세를 보인다고 했어. 그렇게 아픈 자클린느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사랑이었지만, 다니엘은 가부장적인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음악이 먼저였던 사람이야. 여전히 외국 순회 공연에 자클린느를 돌볼 겨를이 없는 사람이었어. 의사와 간호해주는 사람이 대신 그를 대신했단다.

그를 처음 보살펴주던 의사 조페가 심장마비가 갑자기 세상을 떠서 자클린느가 큰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아담 리멘타니라는 착한 의사가 뒤를 이어 자클린느를 보살펴주었어. 자클린느가 세상을 뜰 때까지 13년간 함께 했고, 물리치료사 소니아 또한 자클린느를 보살펴 주었단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자클린느는 스마일리라는 별명답게 다시 미소를 찾았단다. 그래서 방송에 참여하기도 했어. 그런 자클린느의 모습은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도 했을 거야.

이런 자클린느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으면 좋았겠지만 다발성경화증은 자클린느를 점점 죽음으로 데리고 갔단다. 그리고 42살 젊은 나이에 자클린느는 삶을 마감하고 말았단다. 풍월당 박종호님이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나는구나. 자클린느는 첫번째 14년은 첼로의 신동으로, 두번째 14년은 최고의 첼로 연주자로, 그리고 마지막 14년은 불우의 병과 싸웠다고 말이야. 마지막 그 병마를 이겨대고 다시 14,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세월 연주를 들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자클린느는 많은 사람들의 바램을 뒤로 하고 하늘로 떠났구나.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오늘도 인터넷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타이핑하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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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자클린느는 자신이 연주한 슈만의 협주곡 음반을 사랑했다. 어둡고 감상적인 그녀의 해석은 표현할 수 없는 것까지 표현했다. 슈만 협주곡의 연결된 세 악장은 정류해낸 순수의 감정이다. 졸라는 이를절망의 관능이라 했다. 첫 악장은 갈망으로 채워지고, 두 번째 악장은 부드럽고 시적이다. 마지막을 향해 가면 이행부가 있고 그 뒤 오케스트라와 첼로가 함께, 마치 슈만이 자신의 삶이 저물어가는 걸 지켜보기라도 하듯, 조용히 향수에 젖은 연주를 시작한다. 엔딩은 강력하고, 폭발적인 마지막 작별인사로 우리 모두를 울게 한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한다.

아직도 음악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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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악기를 연주하다보면 영혼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와 저 높은 곳의 자유롭고 행복한 황홀경 속으로 들어간다.”

책의 끝 문장 : 아직도 음악은 흐른다. 



(40)

자클린느의 정수 – 너그럽고, 밝고, 재능 있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큰마음 – 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 저 깊숙한 곳의 어떤 감정들이 용인되지 않음을 어릴 때부터 알았고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미소 띤 얼굴로 감추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해맑은 웃음 뒤에는 사적이고, 역설적인 성격이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그녀조차 꿰뚫어볼 수 없는 불가사의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자클린느 자신을 통해 그리고 그녀의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 사람들의 통찰력과 관찰을 통해 조금씩 베일을 벗었다. 마치 용액 속의 사진처럼 차츰 하나의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16)

지난 몇 주, 런던의 청중들은 전도가 유망한 다소 어린 솔리스트들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이들 가운데 지난밤 위그모어에서 첼로를 연주한 자클린느 뒤 프레 양은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어린 연주자라고 믿기 어려운 기량을 가졌기에 그녀의 공연 논평을 쓰면서 전도유망을 언급한다는 것이 모욕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155)

그녀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첼로는 도대체 만족이라곤 모르는 가혹한 공사감독이 되어버렸다. 헌신, 직관 그리고 타고난 재능이 그녀를 여기 멀리까지 데려왔고 더 멀리 나가기 위해서는 명료한 선택이, 일상의 삶을 넘어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음악적 통찰력을 더욱 날카롭게 하려면 삶의 무게, 경험의 무게가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앞뒤 보지 않고 오로지 연주만 계속한다면 언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딜레마는 더 깊은 고립감을 안겨주었다. 조운 클루이드가 그녀를 이해해주었지만, 자클린느에게는 자기 세대의 누군가로부터의 지지가 필요했다. 그녀는 조지 데버넘에게 눈을 돌렸고, 그는 흔쾌히 그녀에게 지지를 보냈다.

(446)

나는 그 놀라운 양면성을 지켜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아무 걱정 없는 소녀가, 계속해서 울어댈 이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항상 사랑스럽고 따뜻하며 잘 웃어대는 이 소녀가 있습니다. 반면에 우울해하는 모습을 본 건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년간 뿐이었으니까요. 그녀는 말하곤 했지요. ‘왜 내게 이런 병이 생긴 걸까?’ 처음에는 이렇게 대꾸하지요. ‘ 오 세셍에, 너무 두렵지?’ 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됩니다. 아무런 할 말이 없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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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마르크스의 무덤은 런던 시내의 북쪽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있으며,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석하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21)

이 말은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인류 역사에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영구불멸하리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현실 사회주의사회의 물락을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류 역사는 끝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과 같은 세계적 대불황에서 대부분에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나쁜사람일 뿐입니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22)

계급은 어떤 사회의 구성원 전체를, 지배하는 사람과 억압당하는 사람으로 나누는 개념입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지배계급은 먹고 살 수 있는 생산수단(예컨대 토지, 도구, 기계, 원료 등)을 스스로 가지고 있으면서 생산수단을 가지지 않은 사회 구성원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인구 집단입니다.

(26)

물론 임금노동자는 노예와는 다릅니다. 노예는 노예 주인이 가지고 있는 말하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으며, 노예 주인은 노예를 죽이든 팔아 버리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본가는 임금노동자에게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임금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자기의 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이 지니고 있는 노동력을 하루, 한 주, 한 달, 또는 1년에 걸쳐 판매할 뿐이므로, 어떤 자본가가 매우 잔인하게 일을 시키면 그 자본가를 떠나 다른 자본가에 자기의 노동력을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자유는 굶어죽을 자유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노예는 노예 주인이 늘 먹여 주지만, 임금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어버리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임금노동자는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아 임금을 얻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임금노예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34)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해방되면 자본가도 해방된다고 말합니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사회 이후의 새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합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토론하여 사회 전체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모든 주민들이 자기 능력의 따라 일하면서’ ‘자기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모두가 참여하고 모든 성과를 평등하게 나누는 민주주의가 나타날 것입니다.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중국, 북한, 쿠바 등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류입니다.

(43)

자본가들은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기술혁신을 촉진하여 더욱 다양한 상품들을 많이 생산하면서도, 임금노동자들에게는 더욱 낮은 임금을 주며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꾸고 정부의 복지 정책에 필요한 세금을 더욱 적게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리하여 생산력의 증가에 어울리는 분배 관계와 소비 수준 등 생산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서, 상품들이 팔리지 않으면서 생산지 정체되고 공장은 놀게 되며 실업자가 생기고 주민의 생활수준은 저하하여 실망과 자살이 증가한 것입니다.

(68)

자본가와 노동자 둘 다 상품 교환의 법칙으로 볼 때는 맞는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쌍방이 모두 동등하게 상품 교환의 법칙에 의해 보증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동등한 권리와 권리가 맞섰을 때는 힘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싼 투쟁, 다시 말해 총자본 즉 자본가계급과 총노동 즉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131)

최근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실업자를 줄이는 것은 민간기업의 고유한 영역이다라고 강변하고 있는데, 이것은 경제의 ABC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대규모 실업자는 결국 따져 보면, 민간기업들이 취업자를 대규모로 해고해야 기업의 수지가 맞겠다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취업자를 해고한 민간기업에 다시 고용하라고 하면 민간기업이 순순히 받아들일까요? 이 때문에 정부는 실업자를 고용하는 민간기업에게 공적 자금을 지원하거나 세금을 삭감해 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간기업은 이윤을 더 많이 얻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취업노동자를 해고하여 실업자로 만들기도 하고 실업자를 고용하여 취업자의 수를 늘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업자의 문제를 민간기업에게 맡기는 것은 애초에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218)

우리나라의 주류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져야 이윤율이 높은 기업과 산업으로 인적,물적 자원이 이동함으로써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재벌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독점의 폐해를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단순히 대기업이라고 묘사할 뿐입니다. “재벌을 해체하자고 주장하면 효율적인 대기업을 없애고 비효율적인 중소기업으로 어떻게 경제 발전을 달성하겠는가?”하며 흥분합니다. 그러나 재벌은 사실상 경제적, 정치적, 사상적 권력을 휘두르는 왕중왕입니다. 재벌과 재벌 총수는 공정거래에 관한 어떤 법률적 제재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법률 자체를 자기들의 이익에 맞게 수정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와 사회의 정의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독점이윤의 일부를 사회의 엘리트를 뇌물로 계속 나누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255-256)

마르크스는 주류경제학이 제시하는 삼위일체 공식을 비판합니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에 따르면, 산업자본의 지휘, 감독을 받는 임금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새로운 가치 중 일부가 임금이라는 형태로 노동자에게 분배되고 나머지는 잉여가치의 형태로 산업자본가의 주머니에 먼저 들어가는데, 이 잉여가치가 대부자본가에게는 이자의 형태로, 토지소유자에게는 지대의 형태로, 국가에는 세금의 형태로 분배되고, 마지막으로 남은 잉여가치가 산업자본가의 기업이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의 수입 원천이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자계급이 창조한 잉여가치입니다. 이로써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가 한마음 한뜻으로 창조한 잉여가치입니다. 이로써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동자계급을 더욱 착취하려고 탄압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속류경제학의 삼위일체공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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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 불멸의 신과 영웅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
아델 게라 지음, 강경화 옮김 / 열림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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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즘 너희들이 즐겨 보는 책 중에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잖아. 그리고 그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에 대해 퀴즈를 내고 맞추는 놀이도 자주 하잖아. 아빠는 어렸을 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어. 어른이 되어 읽어 보긴 했는데 유명한 이야기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만 조금 알고 잘 기억을 못한단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 어려운 이름들을 어찌 다 외우는지… 역시 어렸을 때 기억력이 더 좋은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너희들이 요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아빠는 한참 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책 한 권이 생각나더구나. <트로이>라는 책이야. 장르도 모르고 어디서 샀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그런 책이 있다는 생각이 나서 한참 시간을 들여 찾아냈단다. 책 아랫쪽에 REBOOK”이라는 인주가 찍혀 있는 것을 보니, 예전에 파주출판단지 리퍼북을 파는 서점에서 산 것 같구나. 책띠지에 청소년 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하지만,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위트 브레드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써 있더구나. 청소년들이 주 독자층인 책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어. 워낙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유명해서 큰 줄기는 알고 있었어. 이 책은 소설인데트로이의 영웅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트로이에 살고 있는 어떤 두 자매가 주인공인 소설이란다. 두 자매를 통해서 트로이 전쟁에 상황 또한 다 이야기가 되고 있으니, 다시 생각해보니 주인공은 그 자매가 아니고바로 트로이 자체가 주인공이구나 싶었단다.

 

1.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너희들에게 해줄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빠보다 더 잘 알고 있는데 말이야. 그래도 아빠의 기억력을 보조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단다. 제우스의 손자 펠레우스와 바다의 신 테티스의 결혼식 날, 초대를 받기 못한 불화의 신 에리스가 화가 잔뜩 나서 몰래 사과 하나를 던지고 가장 아름다운 신의 것이라고 써 놓았지.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는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워서 제우스가 그 판결을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하라고 했어. 세 여신은 파리스를 회유를 했는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한 아프로디테에게 그 사과를 주었지. 이에 헤라와 아테나는 불같이 화를 내고 돌아갔어.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나를 파리스에게 주었어. 그런데 문제는 헬레나는 이미 결혼한 몸이라는 거지. 그리스 아가멤논 왕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부인으로 딸도 있었어. 그런 헬레나를 파리스에게 주었으니 불란을 일으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어. 이 일이 전쟁의 주된 이유였는지핑계를 삼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리스는 대군을 이끌고 트로이를 쳐들어와 전쟁을 벌였단다.

그리스 진영에는 아가멤논 왕헬레나의 이제는 전(남편이 된 메넬라오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미친 척까지 했다가 아가멤논 왕에게 끌려온, 아름다운 절세 미인 페넬로페를 부인으로 둔 오디세우스가 있었어. 이에 맞서는 트로이에는 프리아모스 왕의 두 왕자 헥토르와 파리스가 있었지. 그렇게 시작한 그들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10년 가까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고, 트로이 사람들은 전쟁이 일상이 되었단다.

잠깐 트로이 왕족 집안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이미 너희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프리아모스 왕과 왕비 헤카베가 있었고, 그들 사이에 여러 아들과 딸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헥토르 왕자와 파리스 왕자가 있었고, 카산드라 공주와 헬레노스 공주가 있었단다. 헥토르 왕자의 부인은 안드로마케라는 사람이고그들은 아스티아낙스라는 아들이 있었어. 파리스 왕자는 그리스에 온 헬레나와 함께 살고 있었어.

 

2. 

크산테와 동생 마르페사.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란다. 그들은 산에서 태어나서 부모 없이 자랐단다. 크산테는 헥토르와 안드로마케가 보살펴 주었고, 마르페사는 파리스와 헬레나가 보살펴 주었단다. 전쟁이 시작할 때만 해도 어린이들이었는데, 이제 그들도 다 자라서크산테는 부상병을 돕는 간호사로 피의 방에서 일했어. 어느날 알라스토르라는 부상병이 왔는데, 이때 크산테는 에로스의 사랑에 맞게 되어 알라스토르를 사랑하게 된단다. 크산테에게는 절친 폴리스테나가 있는데, 폴리스테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트로이의 유명한 시인이었어. 그리고 그들의 친구 중에는 마굿간지기 이아손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아손은 크산테를 좋아하고폴리스테나는 이아손을 좋아하고, 크산테는 알라스토르를 좋아하고… 에로스와 아프로디테의 장난이 너무 심하구나.

그리스 진영에는 싸움에서 진 적 없고 죽지 않는다고 소문난 아킬레우스가 합류했다고 하고 헥토르는 그 아킬레우스와 결전을 하기로 했어. 결전을 앞둔 헥토르는 환자들을 격려하고 위해 피의 방에 방문했었어. 그렇게 헥토르는 자신들의 부하들을 잘 챙겼어. 그런데 결전이 있던 날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과 다투고 전투에 불참했고, 아킬레우스의 친구 라프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캍과 갑옷을 입고 전투에 출전했다가 헥토르의 공격에 그만 죽고 말았단다. 트로이는 이 승리에 한풀 들떠 있었지만곧 아킬레우스가 복수한다는 소문이 돌았어.

크산테는 자신이 피의 방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동생 마르페사에게 대신 부탁해서 마르페사가 피의 방에 가서 알라스토르를 보고 있을 때 아프로디테가 나타나서 그 둘에게 사랑의 씨앗을 뿌려 놓았어. 그렇게 마르페사와 알라스토트는 사랑에 빠지게 된단다. 마르페사는 괴로워했어. 알라스토르는 언니 크산테가 좋아하는 남자였잖아. 그런 것도 모르고 알라스토르는 마르페사에게 대쉬를 하고 마르페사도 그것을 거절하지 못했어. 이 모든 것이 아프로디테 때문이라고 했어.

한편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결투를 했고, 그 결투에서 헥토르는 그만 죽고 말았어.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끌고 다니면 친구의 복수와 승리의 기쁨을 누렸단다. 헥토르의 전쟁은 트로이에 큰 슬픔이었단다. 헥토르 왕자는 토로이 백성들이 모두 사랑했었거든.. 부인 안드로마케는 큰 슬픔에 빠졌단다. 그 어떤 위로도 필요 없었어. 헬레나가 위로를 했지만이 전쟁의 원인이 헬레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남편의 죽음에 헬레나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여 더 미워하게 되었어. 아들을 보는 것도 뒷전이었어. 그래서 크산테가 헥토르의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보살펴주었어. 이렇게 크산테가 헬레나와 아스티아낙스를 돌보고 있는 동안에 마르페사와 알라스토르의 사랑은 점점 불타오르고 과감해졌단다.

 

3.

프라이모스 왕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아킬레우스를 찾아갔어. 그리고 무릎을 꿇고 간청했어. 헥토르의 시신을 달라고. 아킬레우스는 그 부정의 감동을 해서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고 프라이모스 왕은 아들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단다.

복수는 끝없는 복수를 낳는 법. 파리스는 아킬레우스의 약점을 알고 있었어. 아킬레우스의 엄마 테티스가 그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죽음의 강에 넣었다 뺐는데 발목 뒷꿈치는 손으로 잡고 있어서 죽음의 강에 젖지 않았다는 것을... 그 발목 뒤꿈치는 후에 아킬레우스의 건으로 부르게 되었고, 어떤 사람의 약점을 가리켜 아킬레우스의 건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단다. 아무튼파리스는 그 아킬레우스의 발 뒤꿈치를 화살로 정확히 맞췄고 그로 인해 아킬레우스는 죽고 말았단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어. 아킬레우스의 친구 필로크테테스는 헤라클라스의 활을 이용해서 파리스를 쏴서 죽었어. 헥토르와 파리스… 트로이의 두 왕자는 모두 죽고 말았어. 이제 헬레나도 미망인이 되었어.

한편 마르페사는 알라스토르의 아이를 임신을 하게 되었어. 그런데 알라스토르의 엄마가 완전 극성인 엄마였어. 이미 알라스토르의 아내될 사람을 점지하고 있었지. 알라스토르는 엄마의 말을 잘 듣는 마마보이였고… 마르페사는 알라스토르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괴로워하고 그것 때문인지 아이도 유산하게 되었단다. 나중에 언니 크산테에게 모두 이야기하고 용서를 빌었어.

....

파리스가 죽고 난 다음 트로이와 그리스의 전쟁의 어떻게 되었을까.. 너희들도 잘 알고 있는 트로이 목마 작전… 트로이는 그리스의 트로이 목마 잔전에 완전히 속아서 대패하고 말았단다.  10년 넘게 이어진 길고 무서운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났어. 트로이 시민들은 많이 죽거나 부상당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들의 노예가 되었어. 이 전쟁의 원인이었던 헬레나는 다시 그리스로 데려갔단다. 헬레나는 그리스로 가면서 자신이 보살폈던 마르페사를 데리고 갔고, 마르페사는 언니 크산테도 같이 데리고 갔단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이 자라고 사랑하고 추억을 키웠던 트로이를 떠났단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단다.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고 나면더 할말이 많다고 할 것 같구나. 더 많은 영웅들을 이야기할 테고, 더 많은 신들을 이야기할 테고 트로이 전쟁 이후의 이야기도 하려고 할 테고 말이야.

.

아빠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예전에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읽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단다. 어렴풋하게 그 책들의 줄거리도 떠올랐어.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이런 책들도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했으면 좋겠구나. 그럼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 “크산테알고 있지조금 있으면 부상자들이 들이닥칠 거야.

책의 끝 문장 : 트로이를 향해 몰려가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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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동문선 현대신서 102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 동문선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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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천재 수학자들 중에는 괴짜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리고 사회 생활을 극도로 멀리하고, 집에 박혀 지내는 히키코모리 같은 천재 수학자들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었단다. 그런데 히키코모리 스타일의 피아니스트라면? 피아니스트라고 하면 보통 대중들 앞에서 공연을 하면서 대중들과 소통을 하면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사람들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혼자 있으려고만 한다면 어떨까.

글렌 굴드. 그런 마치 괴짜 수학자를 보는 듯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있었으니, 바로 글렌 굴드라는 사람이란다. 아빠가 이 사람을 알게 된 것은 풍월당 박종호님의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 그리고 인터넷 서점 서핑을 하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읽었단다.

 

 

1.

아빠는 절대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단다. 그런데 이 굴렌 굴드라는 사람의 인생을 알게 되고 나서, 혹시 절대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천상의 피아니스트를 실수로 지구로 내려 보낸 것은 아닌지.. 그래서 지구의 생활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피아노를 치는 것. 그것도 피아노에 푹 빠져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심지어 중얼거리면서 치다니. 자신의 피아노곡에 자신의 몸을 실은 것 같은 체스처. 건반 가까이 코가 닿을 것만 같은 자세로 말이야.

절대자가 그의 포지션을 실수로 잘못 지정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어. 그 실수를 뒤늦게 알게 되어 그를 빨리 천상으로 데리고 간 것은 아닌지절대자가 아니라면 유전자들이 그런 사람을 만들어낸 것인가? 유전자들의 짓이라면, 왜 글렌 굴드와 같은 사람을 조정했을까? 다른 유전자들에게 가끔은 신비의 음악을 들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1932년생이고, 캐나다에서 태어났단다. 음악을 하는 부모님의 영향이었는지 음악 신동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곤 했어. 또한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어.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사교성이 없었어. 그것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무척 어렵게 했지. 그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고, 그래서 피아노 연주와 책만 가까이 했다고 하는구나.

1946년 토론토에 있는 왕립음악원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와 첫 협연을 하면서 점차 유명해지게 되어 1947 14살 때 첫 독주회도 갖게 되었어. 1950년 캐나다에서는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단다. 1952년 텔레비전에서 연주를 하기도 하고, 1955년 드디어 미국에 진출하여 워싱턴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어. 그의 성공적인 공연은 그를 이제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놓았단다. 그는 유럽에 진출해 1957년 유럽 순회 공연도 성공적으로 마쳤어.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피아노 치는 것은 좋아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은 무척 싫어했단다. 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거야.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그는 어려서부터 우울증과 병에 시달렸어. 그리고 결벽증세도 나타났고 나중에는 심해져서 약병과 자신이 먹을 생수들은 직접 챙기기도 했대. 연주하기 전에 30분 이상 뜨거운 물에 손과 팔을 담그고 있는 습관도 생겼어.. 그의 이런 결벽증과 우울증은 심해져서 비행기도 안타고 먹는 것도 조심해서 먹었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받는 스트레스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는 최정상의 자리에 있던 1964년 공연 은퇴를 선언했단다. 그리고 그는 고독과 함께 삶을 같이 하게 되었어.

 

 

2.

그가 공연을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피아노를 그만 둔 것은 아니야. 오히려 자신만의 피아노에 빠져 지낼 수 있었어. 그의 삶은 수도자의 은둔생활과도 같았단다. 음악 속으로 숨어버린 것이지.

===================================

(59)

음악의 핵심 속으로의 온전한 칩거, 모든 것으로부터의 결별, 성급한 떠남, 이 모든 일은 굴드가 무대를 떠난 순간 이미 일어나 있었던 일이었다. 1963년의 사건은 그의 긴 탐구의 첫 단계가 아니고 마지막 단계였다. 후퇴 혹은 은거는 결렬이라기보다 음악과 이 반복되는 실종간의 해묵은 내밀한 공모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음악은 그에게 참으로 존재하며, 그를 사로잡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 밖의 것은 모두, 연주회는 한층 고통스럽게 그를 음악으로부터 갈라 놓는 것이었다. 집착하는 모든 것, 만남, 아이들, 일상의 작업들과 같은 기쁨과 고통의 이 매듭들은 늘 그에게 탈주를 꿈꾸게 했다. “아무곳이든지,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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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가 공연을 하지 않았지만, 스튜디오 녹음을 계속 했단다.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은 그렇게 그를 만나야 했어. CBS는 그가 살고 있는 토론토에 녹음 스튜디오를 만들어졌다고 했어. 그곳에서 촬영된 그가 연주하는 모습은 지금도 유투브를 통해서 볼 수 있단다. 그 영상을 아빠도 찾아서 봤어아빠가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자꾸 끌리게 되더구나.


 

 앞서 이야기했지만, 그는 결벽증과 우울증으로 각종 약을 많이 먹고 그런 것들에 영향으로 건강을 잃게 되었고, 1982 50년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되었단다. 그는 그렇게 다시 천상으로 돌아갔단다. 그곳에서는 우울증 없이, 약도 먹지 않고 원 없이 피아노를 치고 있을는지

 

PS:

책의 첫 문장 : 1964, 그때까지 뛰어난 연주자였던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대중 앞에서의 연주를 완전히 그만두게 되었다.

책의 끝 문장 : 글렌 굴드는 음악을 앓고 있었다. 치유될 수 없는 병.


(22)

혼자 있다고 꼭 고독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고독은 물론 ‘다른 사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벗삼고 있다. 반면 내자 혼자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나 자신이 내게 결핍되어 있을 때, ‘내게 결핍되어 있는 그 누구’가 다름이 아닌 나 자신일 때, 이런 상태는 고립이다. (반대로 사랑은 상대방이 거기 있을 때조차 그가 그리운 상태를 말한다.) 고독 속에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거기, 내 안에 있다는 확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대방과 내가 모두 결핍되어 있는 단절도 있다.

(41)

굴드는 청중 쪽으로 등을 반쯤 돌린 채 다리를 꼬고, 거의 비스듬히 앉은 자세로 첫번째 악장을 연주했다. 그리고 나서 느린 악장에 이르자 입이 반쯤 벌어지고 무대 천장에 눈이 고정된 그의 모습은 황홀경에 빠진 사람과도 같았다. 그 다음 마지막 악장에 가 거의 뒤로 나자빠진 듯한 자세가 된 그의 머리는 건반에서 너무도 떨어져 있어, 자신의 손을 마치 자기 것이 아닌 양 바라보는 것 같았다.

(74)

그는 음악에 옷을 입히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음악이 옷을 벗기를 원했다. 또한 음악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살가죽을 벗기는 것을, 털을 곤두서게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사진들 속의 그는 몹시 마른 모습이다. 뼈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살의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 몸에는 엄청난 힘이 배어 있다. 일상의 과육이 해체되는 이 순간, 푸가의 골격에서 찾아지는 그런 힘이.

(108)

굴드의 연주에는 몹시도 신비한 무엇이 들어 있다. 아주 스타카토적이고 점묘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이 세코(secco)식이 연주를 통해 탁월한 밀도와 놀라운 연속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굴드는 페달을 통한 음의 용해나 손가락의 레가토 연주 증 외부적인 무엇으로 연결성을 만들어 내지 않고, 크레셴도와 디크레셴도를 통해 리드미컬하다기보다는 강양이 위주가 된 프레이징을 만들어 낸다. 연속성은 인접성을 통해서가 아니고, 완전히 별개인 음들의 꾸준한 단계적 상승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재봉틀로 땀을 드느냐, 모호한 후광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딜레마를 비켜 간다.

(149)

고독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음악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따금 음악이 일체를 엄습해 깡그리 지워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음향 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 없을 수도 있지만, 음향은 거기에 있다.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다. 때론 아주 미미한 것, 거의 무효화된, 아니면 부서진 무엇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음악은 내 안에 있고, 나는 음악 안에 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외부로, 내면이 된 외부로 나아감이다. 마치 내면에 이미 외부가 존재하는 양. 음악은 신의 자질들을 지니고 있어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보존하면서 채운다. 그것은 에워싸고 조여 온다. 그러면서도 귀로 올라오는 기쁨, 혹은 첨예한 고통으로서, 아주 작은 부분이 되어 내부에 머문다.

(190)

나는 굴드가 연주한 <골트베르크 변주곡>의 마지막 녹음의 마지막 부분(아리아의 재현)의 마지막 음들을 듣는다. 지속된 화음이 잠시, 새가 날아가 버린 가지가 희미하게 떨리듯이 부르르 떤다. 굴드를 들으며, 굴드에 관해 쓰며 결국 알게 된 것은 나 자신이다. 자신들의 삶을 살지 않았던 예술가들, 그러나 이들 덕분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그나마 괜찮게 살 수 있게 된 그런 예술가들을 경험할 때 늘 그렇듯이. 이 놀라움은 놀래키고 당황하게 만들고 기발하게 보이려는 욕구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참된 놀라움은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가 “그래, 이거야. 이렇게밖에는 될 수 없었어”리고 말하도록 만든다. 발설된 것은 방금 전까지도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예술은 가장 높은 사명을 지닐 때 거의 인간적이 아닌 무엇이 되어 버린다.”고 언젠가 굴드도 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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