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119)

포오셔 :

자비의 본질은 강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하늘에서 대지 위로 내리는

고마운 비와 같습니다. 이것은 이중의 축복으로

베푸는 자와 받는 자를 동시에 축복해줍니다.

이것은 가장 위력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위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왕좌에 오른 임금을 왕관보다 더욱

임금답게 해줍니다. 임금의 홀은

지상 권력의 상징이며 위풍과 존엄의 표지로

거기에는 임금의 위엄과 황공함이 깃들어 있지만

자비는 그 홀이 상징하는 위력을 초월하여

임금의 가슴속 옥좌에 자리 잡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친히 지니신 덕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자비심을 발휘하여 처벌을 완화시킬 때에

지상의 권세는 비로소 하느님의 권세에 가장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여, 비록 당신이 요구하는

심판이 정당한 것이기는 하나, 이 점을 고려해보시오.

, 심판하여 처벌하는 것만을 고집한다면

누구도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도 자비를 위하여 기도드리며, 이 기도는

또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한 것은 당신이 집요하게 요구하는

처벌에 대한 주장을 완화시키는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계속해서 당신이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엄격한 베니스 법정은 필연적으로 저 상인에게는

불리한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122-123)

앤토니오 :

별로요. 마음의 무장이, 그것도 단단히 되어 있습니다.

비싸니오, 자네의 손을 한번 만져보세. 잘 있게.

내가 자네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고 슬퍼하지는 말게.

이번 일에서 행운의 여신이 관례를 벗어나 내게 친절을

베푸는 것 같으니 말일세. 그 여신의 변합없는 습관은

파산 후에도 그 비참한 사람의 목숨을 부지시켜서

움푹 들어간 눈과 주름살이 진 이마를 하고 빈곤한 노년을

체험토록 하는 것이지만 그와 같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참한 고행으로부터 나를 끊어냈네.

존경하는 자네의 아내에게 안부 전해주게.

그리고 엔토니오의 최후의 과정도 얘기해주게.

내가 자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얘기하고 죽음에 임하여

내가 어떻게 했는가도 잘 말해주기 바라네.

이 이야기를 다 해준 후에 부인에게 판단을 부탁해보게.

바싸니오에게 한때 진정한 친구가 있었는지 여부를.

만약 자네가 친구를 잃게 된 것을 서러워해주기만 한다면

그대의 빚을 갚은 그 사람도 결코 후회가 없을 걸세.

이 유대인이 칼을 깊숙이 넣어서 살을 베기만 하면

나는 곧 내 심장 전부로 빚을 갚게 될 테니 말일세.

 

(141)

포오셔 :

경쟁자가 없을 때는 까마귀의 소리도

종달새 소리만큼 아름다운 법이며,

두견새라 할지라도 거위들이 제각기

꽥꽥거리는 대낮에 운다면 굴뚝새보다

훌륭한 음악가라고 생각되지 않을 거야.

세상만사는 적당한 때와 장소가 조화를 이룰 때 행해져야

비로서 정당한 칭찬을 받으며 완벽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조용히! 달님이 엔디미온과 함께 잠들어

깨려고도 하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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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7 - 제3부 불신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7권이란다. 어느덧 7권이구나. 7권부터 10권까지는 3불신시대의 제목이 붙어 있단다. 7권 첫 부분에 7.4 남북 공동 성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1972 7 4일에 있었던 것이란다. 그러니까 <한강> 3부는 1972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3부의 마지막은 1980 5월까지 이어진단다. 박정희 독사 독재라는 폭주기관차가 자기 마음대로 폭주하던 그런 시기란다. 온갖 불법이 성행하던 시기, 아무도 믿지 못하는 시기그래서 3부의 제목을 불신시대라고 한 것 같구나. , 그러면 제3부의 첫 번째 이야기 <한강> 7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유일민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어느날 재일교포 사업가로부터 연락이 왔어.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왔으니 만나자고 했어. 아버지의 편지라... 얼마나 보고 싶었겠니. 하지만 그 편지가 불러올 풍파가 눈에 보였기 때문에 유일민은 고민 끝에 그 사람과 만남을 거절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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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버지, 남쪽의 반공주의를 자극하고 유도하는 행위를 계속하는 북쪽의 저의는 무엇입니까? 모든 정치행위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게 마련인데, 저는 오래 전부터 북쪽이 노리고 있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고 있습니다. 남쪽의 반공주의를 강화시켜 가며 북쪽이 정치적으로 얻는 이득이 무엇일까 하고 신경을 집중시켜 왔습니다. 그동안 한 가지 사실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남쪽의 반공주의가 분단을 강화해 나가듯이 남쪽의 반공주의 강화를 유도하고 있는 북쪽도 분단의 벽을 쌓아올리는데 열중할 뿐 진정으로 민족통일을 이룩할 뜻이 없다는 걸 말입니다.

아버지, 단견이라는 저를 나무라지 마십시오. 저는 우리 집안의 특수성 때문에 몸사리고 조심스럽게 살아오면서 남과 북이 대립하고 있는 분단현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만나지 않고 아버지의 편지를 되돌려보내는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도 남과 북의 정치적 저의에 대해 계속 관심을 두고 살필 것입니다. 그건 구겨지고 찢겨진 제 인생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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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민이 올바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아빠도 생각했단다. 하지만 윗사람들은 더 독하고 무서운 사람들이었단다. 그렇게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민은 얼마 후에 잡혀 들어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헸어. 이유는 접선한 사람이 있었는데 왜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냐는 거야. 며칠 동안 잠도 안 재우고 자서전을 쓰게 했어.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술집의 자금을 어디서 구했냐고 추궁 당했단다. 유일민은 채옥의 이름을 이야기할 수 없었단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친구 서동철의 이름을 팔 수밖에 없었단다. 유일민이 감금되어 고문당하고 있을 때,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어. 남한과 북한의 대립이 격화되는 시기라서, 약간은 뜬금없는 7.4남북공동성명발표였단다. 조국 통일 원칙도 발표되었어. 얼마 후 유일민도 풀려나게 되었단다. 하지만 더 이상 술집 운영도 할 수 없었어.

 

1.

박정희는 경제를 살린다는 이유로 친기업 정책을 엄청 발표했단다. 그러면서 뇌물도 엄청 먹었지. 그 중에 하나가 사채를 빌려 쓴 사업가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정책인데, 3년 동안 사채를 갚지 않아도 되고, 그 이후에는 매년 분할해서 갚고 이자는 1/3로 팍 줄여준 정책이란다. 사채를 빌려 쓴 사업가들은 대박이었고, 사채업자들은 분노를 일으키는 정책이었단다. 심지어 어떤 사업가들은 이런 정책이 발표될 것을 알고 있었는지 최근에 엄청난 사채를 빌려 쓰고, 이 정책이 발표할 때는 외국에 피신해 있던 사업가들도 있었어. 정말 불법이 판을 치던 시대로구나.

그런데 많은 일반 노동자들도 피해를 입었어.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 줄 수 있어 자신의 돈을 회사에 빌려주고 있었거든. 천두만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야. 자산의 돈과 딸의 돈을 딸의 공장에 빌려주었거든. 얼마 있으면 조그마한 하청공장을 세우려는 꿈이 있었는데.... 3년 동안 돈이 묶이고, 그 이후 일년마다 적은 이자로 받으니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 뿐만 아니라 물가도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도 있어서 3년 뒤 자산의 돈은 그 가치가 더 떨어지게 되는 거야.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자50만원 이하의 사채는 제외하기로 했단다. 천두만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찾으러 갔더니, 황당한 소리를 들었단다. 공장에서 한 명이 노동자들의 돈을 취합하여 회사에 빌려주었다는 거야. 그러니 회사에서 받은 사채는 50만원이 넘기 때문에  50만원 이하 사채 예외 규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거야. 노동자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 김명숙도 자신의 돈을 회사에 빌려주어 못 받을 처지였어. 김명숙은 방법을 찾다가 검사인 자신의 오빠 김선오에게 부탁했어. 그러자 공장장은 바로 김명숙의 돈을 갚았단다. 검사라는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 막강하구나. 한편, 김선태는 몇 년째 계속 사법고시에 떨어지고 나서, 결국 비극적인 선택을 했단다.

강숙자의 친구 안경자는 의사 남편 신기훈과 결혼했다고 이야기했었나? 아무튼 안경자는 서울에서 산부인과를 차렸고, 남편 신기훈은 더 공부하겠다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단다. 의학 박사 남편과 병원장 아내.. 그야말로 막강한 스펙 부부가 되겠구나. 그런데 얼마 전부터 미국의 남편의 소식이 끊겼어. 안경자는 남편이 바람 피우고 있다는 것을 의심했으나, 당시 미국에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어. 강숙자는 결혼한 후에도 유일표와 가끔씩 만났단다. 사이 좋은 누나 동생과 같은 사이였지. 강숙자는 자신의 동생 강미현을 유일표에게 소개해주었단다. 일종의 맞선 자리였어. 유일표는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이야기하면서 거절했단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느날 불쑥 내려오기라도 하면 자신의 집안뿐만 아니라 아내의 집도 풍비박산이 날 거라고 말이야그래서 자신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 그것은 유일표의 형 유일민도 마찬가지였단다.

유일민은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 또 있는데, 그것은 임채옥 때문이란다. 임채옥은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결혼을 하긴 했지만, 임채옥 역시 여전히 마음 속에는 유일민뿐이었단다. 임채옥은 결혼하고 나서도 유일민을 찾아왔어. 유일민이 설득하여 일년에 한번만 만나기로 했단다. 임채옥의 부모들은 주변 사람들 몰래 미국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한국은 언제 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안전한 미국으로 이민하겠다고 한 거야. 자신들 뿐만 아니라 자식들 식구들도 모두 데리고 가려고 했어. 하지만 임채옥은 안 가겠다고 했단다. 다른 이유를 댔지만, 임채옥은 미국에 가면 유일민을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 거야. 결국 임채옥의 부모는 임채옥 식구들만 집에 남겨두고 미국 이민을 가버렸단다. 그래서 자식이다 보니 임채옥 부모는 임채옥에서 큰 돈을 주고 떠났단다.

….

그런데, 임채옥의 아버지 임상천이 이민을 떠나면서 얌전히 떠난 것이 아니란다. 어음을 잔뜩 떼어 놓고 현금을 틀고 튼 거야. 그리고 그 어음의 이름은 동업자인 정동진 앞으로 해 놓고 간 거야. 정동진은 몰려드는 어음을 지급할 수 없어서 회사는 부도 직전이었어. 뒤늦게 자신이 임상천에 사기를 당한 것을 알았지만, 임상천은 이미 미국으로 가버렸단다. 그는 옛친구 남재구에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남재구는 한번 만나 사연을 들은 이후로는 계속 그를 피했단다. 마치 자신이 옛날 한인곤을 피했던 것처럼 말이야.

정동진은 한인곤에게도 도움을 청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옛날 한인곤을 매몰차게 군 것이 있어 연락을 하지 못했단다. 정동진은 어렵게 임상천의 딸 임채옥을 만나 임상천의 미국 주소를 알아냈단다. 당시 미국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갈 돈도 없었단다. 임상천의 주소를 알아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편지를 보내는 것뿐이었단다.

부모로부터 큰 돈을 받은 임채옥은 그 돈을 다시 유일민에게 주려고 했어. 유일민은 극구 반대했단다. 임채옥이 그 이유를 계속 묻자, 잡혀 들어갔다가 사업 자금의 출처를 이야기해야 했던 일을 이야기했어. 그러자 임채옥은 자신의 이름을 대지, 왜 안 댔냐는 이야기를 했단다. 그런 이유라면 돈 받고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자신의 이름을 대라는 거였어. 정말 유일민을 엄청 사랑하고 있구나.

 

2.

다시 천두만의 이야기를 해줄게. 소설 시작부터 천두만의 일은 늘 꼬이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최악의 사건이 일어났단다. 천두만의 딸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모으려고 새벽까지 일하다가 집에 오는 길에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고 만 거야. 소설 속 인물이긴 하지만 너무 가슴 아픈 사연이구나. 조정래 작가님, 너무 하셨어요. 충격을 받은 천두만은 날마다 술에 취해 세상을 욕하고 분노했어. 그리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죽고 싶다고 울었단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전도사 김진홍이라는 사람이 잘 설득하여 남은 식구들, 특이 남은 아이들을 위해 다시 일자리를 찾아나서게 되었단다.

….

유일표의 친구 허진의 이야기를 해주어야겠구나. 허진은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 꿈이 명확했단다. 이 회사에서 성공을 하겠다는 것그는 회사에 목숨 건 사람처럼 일해서 한 단계 한 단계 잘 밟아 올라가고 있었단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힘들게 일하던 허진이었으니 그가 성공에 대한 야망은 이해가 가는구나.

….

당시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계엄령을 발표했단다. 유신헌법이라는 것은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는 것이 아니고, 몇몇 선거인단이 대신 뽑는 것이 기본 골조란다. 체육관 선거라고도 했어. 그렇게 헌법을 바꿔 박정희는 평생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야.

=======================

(143)

그래, 말 잘했다. 이번 사태는 그 누구보다도 대학생들이 그 흑심과 악영향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해. 신문에 보도된 왈 유신헌법이라는 것을 빨간 줄 쳐가면서 조목조목 따져봤는데, 그건 한마디로 법이 아니야. 아까 말한 대로 대통령을 임금으로 바꾼 건데, 이북에서 김일성이 혼자 출마해서 당선되는 것처럼 이쪽도 똑 같은 수법을 만들어냈어. 세상에 소가 웃을 일이지, 달에 사람이 오가는 20세기에 이 무슨 졸렬하고 유치한 만행이냐. , 내가 법을 공부한다는 것에 절망하고 환멸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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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도 중단되어 김선진은 일찍 방학을 했단다. 형 김선오가 찾아와서 김선진에게 고향에 내려가 있으라고 했어. 어머니도 보살펴드리면서 말이야. 아무래도 동생이 시위를 할까 봐 김선오가 미리 선수 친 것 같구나.

….

독일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배상집이라는 사람 기억나지? 그 사람은 열심히 공부해서 결국 경제학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후배가 찾아 와서

함께 동베를린에 가자고 했어. 당시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베를린도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으로 나뉘어져 있어 그것을 구분한 장벽이 있었는데 이는 냉전 시대의 하나의 상징이었어. 그러니까 동베를린은 공산주의 동독의 수도인데 그것으로 가자고 했으니 배상집은 거절했지. 자신의 성공에 방해가 요소가 될 것이 뻔하니까. 후배는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설득했지만 배상집을 끝내 거절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후배의 배후에 정부가 있었고, 배상집의 사상 검증을 위해 떠봤던 것이었어. 배상집의 입장에서 큰일날 뻔한 일이었어. 간호사들도 여전히 힘들게 일하고 있었어.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주말도 쉬지 않고 일했어. 그러다가 탈이 나는 사람도 있었는데,  

김광자의 친구 정남희라는 사람도 아픈 몸을 이끌고 계속 일을 했어. 아스피린만 먹으면서 참고 일했는데, 결국 야근하다가 쓰러져 죽고 말았단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은 소설 속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고 실제에서도 있던 사건이었을 거야. 참 슬픈 역사로구나.

다시 국내 사정을 이야기해줄게. 유신헌법과 계엄령이 발표되고 나서 야당정치인들을 뇌물수수사건으로 대거 체포했단다. 조작 사건이었지. 야당 강성 국회의원이었던 한인곤도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해 정신을 잃기도 했어. 하지만 그는 끝내 결백을 주장했단다. 그의 옛친구이자 지금은 여당 거물급 인사가 된 남재구가 찾아와서 회유했어. 하지만 한인곤은 배신자의 말을 듣지 않았지. 유신헌법에는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1/3을 선임할 수 있는 말도 안되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단다. 그러니 야당은 더욱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지. 대기업 사장 박부길의 아들인 박준서도 그렇게 유정회 국회의원이 되었단다. 박준서의 친구이자 매제인 원병균그동안 4.19 정신을 잃어가는 박준서에 대해 원망을 하긴 했지만, 그가 유정희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원망을 넘어 큰 배신감을 받았어. 박준서를 만나 친구로써 따져보았지만,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만 들을 수 있었단다.

이상재는 기자로 포항제철 박태준 사장을 취재할 수 있었어. 이 부분은 상당히 많은 지면에서 다루었단다. 당시 포항제철은 우리나라에서 할 수 없다던 제철소의 성공신화를 썼고 그 중심에는 박태준 사장이 있었다는 것이 취재의 핵심이야. 조정래 작가님은 어린이들을 위한 위인전을 몇 편 쓰신 적이 있는데, 그 중에 박태준도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박태준을 높이 평가했던 것 같구나.

=======================

(307-308)

저에 대한 것은 과찬입니다. 저는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오늘의 포철이 이룩된 것은 임직원 여러분들과 공사에 참여한 수많은 분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피땀을 흘려 쌓아올린 공입니다. 다시 말해 공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입니다. 이 말은 후판공장에서 첫 생산된 두루마리 후판 몸체에 제가 쓴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포철 준공을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포철의 성공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계를 비롯해서 재계, 언론계까지 포철은 실패할 거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후발국들은 종합제철 건설에 거듭 실패하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나라가 브라질과 터키입니다. 특히 브라질은 나라가 굉장히 크고 천연자원이 풍부한데도 실패했는데 우리나라는 별다른 자원도 없으니 더 어렵지 않으냐 하는 생각들이었습니다. 성심을 다한 사람의 힘은 하늘도 움직인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

이상재는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허미경에 대해 잊지 못하고 있단다. 허미경이 버림을 받아 혼자 된 뒤로는 그 마음이 더 커져갔어. 툭하면 허미경의 양품점을 찾아오곤 했어.

….

유일민은 임채옥이 준 돈으로 다시 사업을 준비했어. 당시 각광을 받고 있는 플라스틱 용기 사업을 하였는데, 이것이 잘되어 회사 규모도 조금씩 커져갔어. 여동생 유선희도 그 회사에서 경리를 보며 함께 일했어. 유일민과 유일표의 걱정거리 중에 하나가 동생 유선희가 결혼을 안 하는 것이야. 하지만, 유선희도 오빠들과 마찬가지 이유로 결혼을 안하고 있었단다. 아버지가 내려온다면 자신의 시댁까지 고초를 당하게 될 테니 말이야. 유일민의 어머니 해촌댁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결국 돌아가셨단다. 해촌댁의 유언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라는 것이었어. 남편과 헤어지고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고 희망을 가지면서도 겉으로는 이야기를 못하고 가슴에만 품은 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으니 유일민의 어머니는 그 한으로 온몸이 가득 차지 않았을까 싶구나.

7권의 이야기는 대충 여기까지란다.

7권에서 계엄령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이런 역사 대하 소설에서나 나오는 계엄령과 내란이 오늘날에도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아직도 그 내란 세력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그들이 행한 행태를 보고서도 지지를 하겠다니 이게 말이 되냐 말이야. 내란 세력에 사법부도 포함되어 있다니, 정말 충격적이고대선이 제대로 진행될 지 걱정이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강꼬꾸노 조세이와 야스리가리다.(한국 여자는 싸다니까.)”

책의 끝 문장: 유선희는 그제서야 집안일을 맡게 되었을 때처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10월유신’이란 지금까지 있어 온 군부독재가 더욱 강화된 것이 아니었다. 그건 죽을 때까지 권좌를 보장하는 임금의 탄생이었다. 그건 정치제도 중에서 가장 추악한 봉건제도의 부활이었고, 몇백 년의 뒷걸음질이었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이승만 독재를 비판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민중의 편에 설 것을 역설하며 후배들을 이끌었던 신 선배는 그때와 정반대의 배를 바꿔 타고 있었다. - P239

"사실 인생이란 게 별게 아니긴 한데 고비고비 잘 풀리지 않으면 그것 참 팍팍한 모래밭인 거라. 죽고 나면 다 헛것인데 산 목숨 하루하루는 심각하고 절실하니까 최선을 다해 노력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숱한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제 나름으로 많은 말들을 했는데 정작 정답은 없는 게 인생이거든. 사는 것, 그것에 열중할 수밖에 없어."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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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하지만 성스러운 음악이란…… 이것도 변칙이다. 내세가 온갖 좋은 것들이 영원히 다 함께 존재하는 곳이라면, 거기에 음악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음악이란 서로 인접한 소음들이 떠듬떠듬 연이어지는 것이다. 강세, 불협화음, 부조와, 협화음, 그리고 해소에 이른다. 이어진다는 건 시간차가 있다는 뜻이다. 음악을 이루는 소리들이 모두 함께 존재한다면, 즉 모든 음이 동시에 울린다면, 그리고 영영 그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소리일 것이다. 탁하게 흐린 소음 덩어리이자 청각을 교란하는 윙윙거림의 바다이리라.

 

(457)

거기에는 언덕 아래 네 번째 아이가 있었어요. 날씨를 볼 줄 알아서 벼락이 칠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 여자애는 달음질쳐 올라가서 다른 아이들을 모두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가게 할 수 있고, 그러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죽음을 무릅써요. 만약 그 용감한 아이가 벼락을 맞아 죽음을 당하면 그것은 엄정한 운명이 작용한 거예요. 그러나 다른 아이들의 인생은 달라졌지요. 역사는 줄곧 소수의 놀이꾼들의 간섭에 휘둘려 왔어요. 그게 우리가 소망하는 바이고, 또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요? 그렇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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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전영애 지음, 황규백 그림 / 청림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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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유튜브를 통해 즐겨보는 EBS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단다. 그 중에 특히 시골에 지은 집이 나올 때 유심히 보곤 한단다. 나이가 들다 보니 그런 시골살이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아. 어느날 아주 작은 시골 집에서 생활하는 인상 너그러운 할머니의 영상을 보게 되었어. 처음에는 시골의 여느 할머니라고 생각했는데, 반전의 반전집에 잔뜩 쌓여 있는 책들. 독문학 일인자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경력에, 괴테의 모든 책을 번역하셔서 괴테 할머니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 전영애라는 분이었단다. 2011년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괴테 금메달이라는 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는구나.

그가 번역한 책들을 조회해 보니, 아빠가 읽은 책들도 두어 권 있더구나. 아빠가 번역가들을 유심히 보지 않은 죄가 크구나. ^^ 가끔씩 그 분의 유튜브를 보면서 배우고 힐링하고 그랬단다. 몇 달 전에 책도 출간하셔서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빠 친구 중에 한 명이 전영애 님의 <인생을 배우다>라는 추천해 주었단다. 이 책은 최근에 출간된 것은 아니고 십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이었단다. 전영애 님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차에, 친구가 추천해주니 반갑기도 해서 얼른 읽어보았단다. 겉보기와 다르게 참 치열한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리고 평생 공부를 하신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 마치 공부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단다. 자신의 공부에 열중하면서도 서울과 독일을 오가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후학 양성에도 무척 힘을 쓰셨더구나. 일분 일초를 허투루 쓰지 않으셨는데, 그가 소원하는 후회하지 않은 삶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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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작가 헤벨이 주는 정답은 이렇다. 천사가 당신에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어줄 경우 답해야 할 첫째 소원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 둘째 소원은 무얼 빌어야 할지 물어서 알게 된 그 소원을 비는 것. 마지막으로 빌어야 할 세 번째 소원이 중요한데, 바로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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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과 서울을 오가면서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뒷전이라고 했어.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이 알아서 잘 큰 것 같다고 했단다. 그렇게 공부만 엄마를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잘못된 길을 가긴 쉽지 않겠지. 유전자도 물려받았다면 더욱 엄마를 닮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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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어두운 밤 지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불 켜진 딸의 방을 쳐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 정말로 따뜻하고 아름답게 피어 있구나, 작은 한 송이 지혜의 꽃이. 세상의 비바람 속에서도 견뎌야 할 텐데. (어미가 일하며 힘든 모습을 너무 많이 보인 탓인지 딸은 용돈을 달라고 떼를 써야 할 나이에도 용돈은커녕 학교에 내는 돈조차 안 받으려 들었다. 훗날 장학금 주며 데려가 공부 잘 시켜준 좋은 학교를 잘 마쳤다.)

만년필을 잡으면 글을 쓰지 않아도 손이 따듯하다. 만년필을 놓고 스탠드 불빛 앞에서 손을 펴본다.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주먹을 가만히 쥐었다가 다시 펴면, 내 손안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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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전영애 님은 아이들을 혼자 키운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대. 이웃들, 주변 사람들과 함께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구나. 우리와 같은 아파트 생활은 쉽지 않은 생활인 것 같구나. 아니다, 요즘은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그런 생활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웃들과 웬만큼 친하지 않고는 말이야. 그래도 아빠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집 문은 늘 열려 있었고, 이웃에 일이 있으면 서로 아이들도 봐주고 음식도 전해주고 그랬던 같구나. 책을 읽을 때는 전영애 님의 육아 방식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아빠도 어렸을 때 그런 생활을 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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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아이를 나 혼자 기른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어차피 세상에서 살 것이기도 하지만 당장 있으나마나한 어미 대신, 주변 사람들이 내 아이를 한번이라도 아끼는 눈길로 보아주길 바랐다. 나도 이웃아이들에게 그렇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다 보니 가끔씩은, 냉장고 안에는 이웃이 넣어두고 간 김치나 다른 반찬이 들어 있기도 했다. 헌 신발이나 옷가지가 현관문 안에 놓여 있기도 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내 아이들이 어디선가, 아프거나 슬퍼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그 분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어주셨을 것이다. 내 아이들은, 절절 매며 시간을 쪼개 쓴 어미가 아니라, 그 분들이 키워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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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야 우리나라 문화가 다른 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잖아. 전영애 님은 어떤 상을 받았는데 그 상금으로 독특한 일을 하셨단다. 독일 도나우 강변에 한옥을 짓는 것이었어. 한옥의 자재를 독일에서 구할 수 없으니 한국에서 자재들을 조달하여 독일에서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한옥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한옥의 이름을 시인의 집이라고 짓고 다른 문인들이 와서 머물다 갈 수 있게 했다는구나. 자재를 독일로 공수하고 그곳에서 조립하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일까? 아빠 같았으면 생각이 있었어도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실천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

자신의 제자들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그 스승에 그 제자들인 것 같더구나. 전영애 님은 스승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고, 제자들의 삶을 통해 자신도 배우는 자세를 보여주었단다. 자신의 자세의 낮추는 모습도 보기 좋았단다. 독일의 여러 문인들과 만남도 이야기를 주었는데, 특히 라이너 쿤체라는 시인과는 각별한 관계였다는구나. 독일에서 전영애 님의 시집을 내주기도 했대.

독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에서 오랫동안 독문학을 가르치셨어.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기 위해 집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경기도 여주에 여백서원이라는 집을 지으셨는데, 그 여백서원이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건축탐구 집>에 소개된 집이란다. 책을 읽고 그 프로그램을 다시 한번 보니, 괴테 할머니는 정말 존경하실 만한 분이구나. 여백서원이 3200평인데, 대부분이 손님들과 책들의 공간이고 자신은 1평도 안 되는 방에서 지내면서 내내 행복한 표정을 갖고 계셨어. 책을 바라보는 표정은 더욱 그래도 전영애 님은 문학과 빼고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지. 전영애 님께서 생각하는 문학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결국 사람과 연결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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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252)

나는 지금까지 글을 읽어오면서 문학이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남기고, 전하고, 읽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글에는 사람이 담긴다. 현실에서는 일일이 다 만나낼 수 없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 사람들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만나보는 일은 세상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의 갈피를 헤아리고 배려하는 것은 아마도 함께 살아가면서 가능 필요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글을 배우고 읽는 궁극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장 힘들여 남기고, 전하고, 읽는 것은 아마도 바른 삶이어야 할 것이다. 글 읽는 시간이란 것도 궁극적으로 바른 삶을 생각하는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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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애 님께서 최근에 출간한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그토록 따뜻한 분들을 처음 만났던 건, 괴테 탄생 250주년이던 해 여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기념 확회에서였다.

책의 끝 문장: 향기롭기까지 할 리야 없지만, 내 자신에게 혹시 어떤 양질(良質)의 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다스려온 긴 기다림, 견뎌온 어둠의 덕인 것 같다.



세상의 일은 다 어렵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면서, 이를테면 내가 죽지 못해서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제 일인걸요" 하면서 성실히 임하는 것은 많이 다를 것이다. 일의 성과도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의 삶의 질이 다를 겁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 지금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 P35

아이들은 아이들일 때 놀아야 한다. 놀아야 몸도 마음도 튼튼해지고 주위를 살피며 세상 이치도 깨닫고, 무엇보다 심심해서 이것저것 해보는 가운데 진정한 창의력이, 생각이 자란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아이 때 아이노릇 잘 해야 학생 때 학생노릇 잘 하고 어른 때 어른 노릇 잘 하는 건 자명한 이치이다. 아이 때는 공부하고, 어른 되어서는 남의 눈치나 보며 그저 놀고 싶어 하고, 저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세상이 가득 차면 어떻게 되겠는가. - P40

공부하느라 고생이 막심한 어미를 일찍부터 보아온 탓에 어려서부터 공부는 절대로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의 좌우명 삼고 산 것 같다. 그러나 자기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한도 끝도 없이 했다. 그러고 보면 어떤 점에서는 어미로부터 그리 멀리 가지도 않은 것 같다. 온 식구가 그렇다. 다들 가끔씩 만나면 매우 반가워하는 그런 사이가 일찍부터 되어버렸다. - P57

남의 살을 세세히 알 수야 없다. 그러므로 남들은 대체로 편안하거나 그저 그만한 것 같고 나 혼자만 이런 수렁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오해, 어쩌면 그런 오해를 기반으로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한 구절을 대할 때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 내 눈 앞을 스쳐가는 삶의 굽이굽이들. 그걸 지나고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 P139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눴고, 어딘가에서는 무얼 읽었고, 또 어딘가에서는 뭔가 간절한 생각을 했고, 그런 이유로 소중해진 곳들이 어느새 다 내 자리가 되어 있다. 푸코의 말마따나 이 세상에서 자리 하나 만드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개인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어 있는데 ‘나는 참 부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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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2)

네가 그런 사람이니까, 네 외모는 사랑 넘치는 할아버지면서 동시에 대량 학살범이 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네가 그 두 가지 역할을 너무나 잘 해냈기 때문에 난 네게서 눈을 뗄 수 없어. 변호사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싶을지 몰라도, 네가 미국에서 감탄이 나올 만큼 하찮은 삶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은 네가 최악의 변호다. 네가 오하이오에서 소박하고 지루한 삶을 그토록 훌륭하게 살아냈다는 것, 바로 그 점 때문에 너는 여기서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거야. 넌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삶을 차례로 살아냈을 뿐이다. 나치라면 이렇다 할 부담감 없이 동시에 즐길 수 있었던 그 두 삶은 서로 배타적인 관계지. 그러니 결국 그게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독일인들은 서로 크게 다른 성격, 그러니까 아주 착한 성격과 그리 착하지 못한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 이제는 사이코패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온 세상에 확고하게 증명해 보였다. 트레블랑카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낸 네가 미국에서 상냥하고 근면하고 하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건 수수께끼가 아니야. 너의 명령으로 시체를 치웠던 사람들, 여기서 널 고발한 사람들이 너 같은 사람들한테 그런 일을 당한 뒤 평범한 삶과 조금이라도 닮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수수께끼.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는 사실, 그게 믿기 힘든 일이라고!

 

(114-115)

홀로코스트의 현실은 모두의 상상력을 뛰어넘었습니다. 만약 내가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했다면,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당시의 나보다 아주 조금 나이가 위인 여자아이를 선택하는 순간, 기억의 힘센 순아귀에서 내 인생 스토리를 빼내 창조적인 실험실에서 넘겼습니다. 거기서 기억은 유일한 주인이 아닙니다. 거기서는 인과관계에 입각한 설명, 사건들을 서로 묶어주는 가닥이 필요합니다. 예외적인 일은 전체 구조의 일부로서 그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때에만 허용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인생 스토리에서 믿을 수 없는 부분을 덜어내, 좀 더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내놓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175)

놈들이 성공한다고 가정해보세. 놈들이 싸움에서 이겨 나블루스의 모든 아랍인, 헤브론의 모든 아랍인, 갈릴리와 가자의 모든 아랍인, 세상의 모든 아랍인이 유대인의 핵폭탄 덕분에 사라진다고 생각해봐. 앞으로 오십 년 뒤 놈들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중요성이라고 전혀 없는 작고 시끄러운 나라뿐이겠지. 팔레스타인을 박해하고 파괴한 결과가 그렇게 될 거야. 유대인만으로 이루어진 벨기에 같은 나라가 만들어지는 거지. 하지만 그나마 자랑할 만한 브뤼셀 같은 도시도 없는 나라. 진짜유대인들이 문명에 기여한다면 그런 것뿐이야. 유대인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모든 특징이 없는 나라! 자기들의 사악한 점령체제하에 살아가는 다른 아랍인들에게 자기들의 우월성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을 주입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난 자네의 민족과 함께 사람이야.

 

(185-186)

이스라엘의 군사적 팽창을 유대인의 희생에 대한 기억과 결부시켜 팽창주의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고, 점령지를 꿀꺽 집어삼킨 뒤 팔레스타인인들을 살던 땅에서 또다시 몰아낸 일을 역사적인 정의, 정당한 보복, 그저 자기방어로 정당화하기 위한 캠페인. 이스라엘의 국경선을 넓힐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움켜쥐는 모습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베이루트의 민간인들을 폭격한 일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뼈를 박살 내고 아랍인 시정들의 팔다리를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행동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다하우, 부헨발트, 젤젠, 트레블링카, 소비보르, 벨제크. “그건 거짓이라니, 필립. 어찌나 잔인하고, 냉소적인 거짓인지! 영토를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는 한 가지 의미를 지닌다. 딱 한 가지 의미만, 이런 정복을 가능하게 해준 물리적 능력을 과시하는 것! 영토를 다스리는 것은 지금껏 그들이 누리지 못했던 특권을 행사하는 일. 남을 억압하는 희생자로 만드는 경험, 이제는 타인들을 다스리는 경험. 권력에 미친 유대인, 이것이 그들의 모습이야.

 

(189)

전세계 유대인들의 눈에도 유지되는 나라라는 것, 점령지에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봉기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마키아벨리 국가라는 것, 이 나라가 마키아벨리식 세계에 있는 것은 사실일세, 시카고 경찰국과 마찬가지로 성결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그들은 이 나라가 유대인 문화, 민족, 유산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지난 사십 년 동안 선전했지. 사실 이 나라의 존재는 품질과 가치 면에서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선택적인 것이었는데도 이스라엘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현실이라고 선전하는 데 온갖 술수를 동원했어.

 

(204-205)

사람은 이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이건 아주, 아주 기본이죠. 사막에서 온 겁니다. 저 풀잎은 내 것이고, 내가 기르는 짐승은 그 풀을 먹지 못하면 죽는다. 우리 집 짐승이 먹을 것이야, 너희 집 짐승이 먹을 것이냐, 여기서부터 타키야(시아파 신도들의 박해의 위험이 있을 때 신앙을 감추는 행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대개 위장이라고 하죠. 시아파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지만, 사실은 이슬람 문화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위장은 이슬람 문화의 일부입니다. 위장을 허락하는 분위기는 널리 퍼져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위험해지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문화, 상대가 분명히 솔직하고 진실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문화죠.

 

(229)

당신은 그냥 정치투쟁이라는 저열한 어리석음보다 대학이라는 고상한 어리석음이 더 좋은 거겠지. 지금 이 일이 멍청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 심지어 쓸데없는 일이라는 말도 할지 몰라. 하지만 이런 게 원래 이 지상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야

 

(392-393)

그 작품의 첫 번째 대사, 그러니까 1 3장을 여는 대사에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의 사백 년 전 샤일록이 세상의 무대에 나와 자신을 소개한 말 때문에요. 그래요. 사백 년 전부터 유대인들은 이 샤일록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대 세계에서 유대인은 항상 재판을 받는 신세였어요. 지금도 유대인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이라는 형태로, 유대인을 상대로 한 현대의 재판, 결코 끝나지 않는 이 재판의 시발점이 바로 샤일록 재판입니다. 전세계 관객들에게 샤일록은 유대인의 화신입니다.

 

(469)

관용구, 관심사, 정신적인 리듬 면에서 K의 일기나 A. F.의 일기 같은 글들은 훤히 눈에 띄는 애잔함을 확인해준다. 첫째, 유대인은 평범하다. 둘째, 그들은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평범한, 단조롭고 눈부시며 축복받은 평범함, 모든 관찰, 모든 감상, 모든 생각에 이것이 있다. 유대인이 꾸는 꿈의 중심, 시온주의와 디아스포리즘 모두에 열기를 제공해주는 것은 유대인이 유대인임을 잊었을 때 사람이 되리라는 것. 평범함. 지루함.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단조로움. 진을 치지 않는 삶. 각자 자기만의 유람선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는 안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대인의 삶이라는 믿을 수 없는 드라마.

 

(499-500)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권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라서 벗어날 수 없는 도덕적 의무도 갖고 있소. 어떤 형태로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할 의무.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소. 그들을 쫓아내고 억압했으니까. 그들을 추방하고, 때리고, 고문하고, 살해했으니까. 유대인 국가는 처음 생겨난 순간부터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땅이었던 곳에서 팔레스타인들의 존재감을 지우고 그 땅을 빼앗는 데 전력을 다했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들 손에 쫓겨나 이리저리 흩어지고 정복당했지. 유대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 역사를 배반했소. 그리스도교인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했다는 뜻이오. 그들을 경멸과 예속의 대상인 타자(他者)’로 만들어, 인간의 지위를 빼앗았소. 테러나 테러리스트나 야세르 아라파트의 어리석은 정치행보와는 상관없이, 사실은 이것이오. 팔레스타인 민족은 전적으로 무고하며, 유대 민족은 전적으로 유죄다. 내게 있어 경악스러운 일은 소수의 부자 유대인이 PLO에 거액을 기부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대인이 자기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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