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글을 아주 훌륭한 시라고 본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감동하는 어린이 시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순수한 직관(바로 보고 곧 느끼는 것)의 지혜로움이 아무런 장애도 입지 않고 잘 나타난 시라고 본다. 어린이가 가진 이런 '바로 봄'과 '바로 느낌'을 방해하지 않고, 그것을 불러일으키고 꾀어내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시 지도에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p49)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이오덕(李五德, 1925 ~ 2003)의 <우리 글 바로쓰기 5>에는 좋은 어린이 시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진다. 저자에 따르면 좋은 어린이 시의 조건을 어린이 생각(지혜로움)이 잘 표현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좋은 시의 조건을 수식으로 표현한다면, '생각 * 표현 =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과 표현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0'이라면) 작품이 되지 않을테니 이들을 곱셈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서, '좋은 생각' 또는 '잘된 표현'을 '+1'로 '좋지 않은 생각' 또는 '서툰 표현'을 '(-)1'로 바꿔보자. 간단히 '+1'을 긍정으로, '-1'을 부정으로 표현했을 때 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부호의 법칙이 성립할까?


(1) (+)1 * (+)1 = (+)1 -> 좋은 생각의 잘된 표현이 갖춰지면 좋은 작품이다.

(2) (+)1 * (-)1 =(-)1 -> 좋은 생각을 서툴게 표현하면 좋은 작품이 아니다.

(3) (-)1 * (+)1 = (-)1 -> 좋지 않은 생각을 잘 표현하면 좋은 작품이 아니다.

(4) (-)1 * (-)1 = (+)1 -> 좋지 않은 생각을 서툴게 표현하면 좋은 작품이다.


 부호의 법칙 (1) ~ (4) 번까지는 일반적으로 수학의 세계에서 공리(公理, axiom)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이번 명제에서는 내용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1)번의 예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속할 것이고, (1)과 (2)의 법칙은 받아들이는데 굳이 크게 무리가 없다 생각된다. 


 자연을 이렇게 따스한 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훌륭하다. 읽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는 좋은 시다. 여기서는 자연이 인간이고 인간이 자연이다. 자연과 인간이 아주 하나로 되어 있는 훌륭한 시다.(p33)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그렇지만, 문제는 (3)법칙에서부터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우리 글 바로쓰기 5>에서 여기에 해당되는 예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글에 대한 김 씨의 의견은 "아이가 어른의 눈치를 계산하지 않고 솔직한 자기 생각을 쓴 용기가 좋다. 그렇지만 이 글을 두고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썼기 때문에 좋은 글이라고 하며, 어른들의 잘못된 생활 태도를 지적하고 비판한 점을 칭찬할 수 있을까?" 하는 말로 시작하여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길게 적어놓았다.(p156)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김 씨의 의견에 따르면 '좋지 않은 생각(-1)'을 '숨기지 않고 잘 표현(+1)' 했기에, '좋은 글이 아니다(-1)'가 성립한다. 이는 수학의 부호의 법칙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은 수학과는 달리 논란의 소지가 있기에.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도 이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이다.


  나는 김 씨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사람이다.(p158)... 우리의 학교 교육은 자주성이고 자발성이고 창의성 같은 것은 철저하게 둘러막아버리고, 다만 지시와 명령만으로 아이들을 기계같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기의 마음과 삶을 잃어버리고 어른들이나 그밖에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슬픈 버릇을 몸에 익혀버렸다.(p160)... 많은 아이들이 시키는대로 움직이기만 하지만 이 아이만은 행동만 하지 않고 생각을 했다. 자기를 움직이게 한 사람의 태도에 대한 생각이다. 어쩌면 이 생각은 이 아이뿐 아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 같이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생각을 이 아이는 확실히 붙잡았고 그래서 그것을 글로 밝혔다. 이것이 소중하다. 이것저것 다 살피고 계산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우러난 절실한 느낌과 생각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이것이 귀중하다.... 만약 교사가 참 교육자라면 학생의 이런 비판의 소리에 마땅히 반성해야 한다.(p163)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이 명제에서 부호의 법칙 (3), (4)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김씨의 생각을 요약하면,어린이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의견을 숨겨야 좋은 작품이라는 것으로 이는 수학의 법칙에는 들어맞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저자의 반대 입장처럼 다른 의견도 존재할 수 있기에, 부호법칙 (3)과 (4)에 대한 맞고 틀림은 각자의 몫으로 넘기도록 하자. 현실과 이론의 세계는 다르니까. 

 

 법칙(-1)(-1) = 1은 음수의 곱셈에서 성립하는 법칙인데 이와 같은 법칙은 분배법칙a(b + c) = ab + ac를 유지하고자 하는 바람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1) (-1) = -1이 성립한다면, 분배법칙에서 a = -1, b = 1, c = -1로 각각 잡았을 때, - 1(1 - 1) = -1-1=-2가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1(1 - 1) = -1.0 = 0을 얻기 때문이다. 음수와 분수에 적용되는모든 다른 정의가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과 ˝부호의 법칙˝ (3)을 수학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p73) <수학이란 무엇인가> 中


 수학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책으로 넘어가 보자. <우리 글 바로쓰기>의 저자 이오덕은 생각의 가치보다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가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글은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며,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 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때문에, 글의 내용에 무엇이 담겼는가에 대한 책임은 어른의 몫이고, 아이들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저자의 교육철학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이 시는 실제로 체험한 것을 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거짓스럽게 느껴진다. 자기의 마음과 삶을 정직하게 쓰려고 하지 않고 '이런 것을 써야 근사한 시가 되겠지'하고 썼으니 말이다. 실제로 겪지 않은 일을 상상으로 쓸 때는 바로 그것이 상상임을 읽는 이들이 알도록 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른의 시와 어린이 시가 다른 점이다.(p37)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글쓰기는 인간교육의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저마다 쓰고 싶은 것을 정직하게 쓰게 하지 않고, 교육을 잘 한 것처럼 윗사람이나 학부모나 사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선전의 수단으로 이용이 될 때는, 이 글쓰기가 아이들을 아주 좋지 못한 사람 - 꾀부리고 거짓말 꾸며대고 사람답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게 한다.(p101)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1940 ~ )의 <무지한 스승 Le Maitre Ignorant >에서 '보편적 가르침'과 맞닿아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강요가 아닌 해방이며, 이를 위해서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도와 교육의 조화로운 균형은 이중의 바보 만들기의 균형이다. 여기에 정확히 해방이 대립된다. 해방이란 모든 인간이 자기가 가진 지적 주체로서의 본성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데카르트의 정식을 거꾸로 뒤집은 평등의 정식이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이 뒤집기는 인간 주체를 코기토(Cogito)의 평등 안에 포함시킨다. 생각은 사유 실체가 가진 한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속성이다.(p33)... 보편적 가르침의 모든 실천은 다음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너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p77) <무지한 스승> 中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주의깊게 들어야 한다. 우리(어른)들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무조건 따를 것을 강요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배에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에 따른 이들이 희생되었던 4.16 세월호 참사는 (비록 그것이 모든 원인은 아닐지라도) 어른들의 일방적인 강요가 비극적인 결과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라 생각한다. 가볍게 시작한 글이 무겁게 끝나게 되지만,  자신이 가진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 글 바로쓰기> <무지한 스승>을 통해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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