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이다. 인간 정신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적개심에서건 경쟁심에서건 다른 사람들에게 인간 정신이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견해를 갖게 했다. 한쪽에서 앎에 대해 극단으로 갈 때, 다른 쪽에서는 무지에 대해 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만사에 절제를 모른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지점이 아니면 멈추기를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게끔 말이다.



그토록 무심하고 고요하게 자기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는 확실히 후세가 그를 그만큼 더 평가하게 할 만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정의 가운데 운명의 여신이 그의 죽음을 위해 마련한 영광만큼 정의로운 것도 없다. 왜냐하면 아테네인들은 그의 죽음을 야기한 자들을 너무 혐오한 나머지 마치 파문당한 자들을 대하듯 그들을 피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래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겠지만, 죽음을 죽음 자체 때문에 두려워할 것은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죽음은 삶 못지않게 우리 존재의 본질적인 일부분이다. 죽음은 대자연의 작업이 다채로이 펼쳐져 가는 것을 보장해 주며, 이 세계라고 하는 공동체 안에서 상실과 파멸보다 생성과 증식에 더 기여하는 것을 볼 때, 대자연이 무엇을 위해 우리 안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심어 놓았겠는가?

자연이 준 앎을 넘어서는 저 모든 학문이란 다소 공허하고 군더더기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 소용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짐이 되거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셈이다. C "건강한 정신은 대단한 학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세네카) B 그것은 칠칠맞지 못한 하인이 공연한 흥분 상태인 듯, 우리를 섬겨야 할 정신이 과도하게 열에 들떠 있는 상태이다.

마음을 모아 보라. 당신은 당신 안에서 대자연의 논거를 보게 되리니, 그것이야말로 필요한 때가 되면 당신에게 가장 적절하게 소용이 될 진실한 것이다. 바로 이 논거를 빌려 농부도, 또 어떤 민족들은 그 전체가 철학자처럼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다.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강력하고 유리한 자질을 내가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는 아무리 되풀이 말해도 부족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을 짧은 폭정이라 했고, 플라톤은 자연의 특혜라고 불렀다. 신뢰도에 있어서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자질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들의 사귐에 있어서 그것은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아름다움은 앞으로 치고 나서며, 대단한 권위와 경이로운 인상으로써 우리의 판단력을 유혹하고 점령해 버린다.

우리 용기를 북돋기 위해 학문이 주는 가르침은 대부분 굳건함보다는 겉치레이며 내실이기보다는 과시용이다. 우리는 대자연을 버렸으며, 그에게 선생 노릇을 하려 드는데, 우리를 그토록 운 좋게 또 안전하게 이끌어 온 것은 대자연이 아니던가.

어떤 학문이건 간에 그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들만이 그 어려움과 모호함을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으려면 일정 수준의 지력이 필요하며, 문을 밀어 봐야 비로소 그 문이 닫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아픈 것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병의 도움 없이도 죽음은 너를 능히 처분한다. 어떤 이들은 병이 죽음을 멀리 떼어 놓기도 하는데, 자기들은 이제 다 끝나 죽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더 오래 살았던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상처들이 그렇듯, 치료해 주고 건강을 돌려 주는 병들도 있다.

젊은이들에게 충고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움직일 것, 그리고 조심할 것, 두 가지이다. 우리의 삶이란 그저 움직임일 뿐이다. 나는 어렵사리 몸을 일으키며 무슨 일에나 꾸물거린다. 일어나는 것도 잠자리에 드는 것도 식사하는 것도 다 그렇다. 7시는 내게 너무 이르며, 내 뜻대로 일과를 정하는 곳에서는 11시 전에 아침을 드는 일도 없고, 6시가 넘어야만 저녁을 먹는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다고 해서 불평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너 한 사람에게만 불의한 법을 적용하려 들면 그때는 투덜대라."(세네카)321) 어떤 노인이 완벽하고 힘찬 건강을 계속 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다시 말해 청춘으로 돌려 달라고 신에게 빌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보라.

피할 수 없는 것은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삶이란 이 세상의 조화로움이 그렇듯이 서로 모순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감미로운 소리와 거친 소리, 날카로운 소리와 나지막한 소리, 여릿한 소리, 장엄한 소리 같은 갖가지 음조들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그중 한 가지 방향으로만 좋아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되겠는가? 그는 마땅히 양쪽 모두를 함께 쓸 줄 알고 또 섞어서 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역시 우리 삶과 떨어질 수 없이 함께 있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쓸 줄 알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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