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은 하나의 긴 기대이다. 즉 그것은 먼저 우리 목적의 실현에 대한 기대이고, 특히 우리 자신에 대한 기대이다... 우리의 인생은, 단순이 여러 가지 기대만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이 여러 가지 기대를 기대하는, 기대의 기대로도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성(自己性)의 구조 그 자체이다. 모든 계열은 원리상 결코 '주어지지' 않는 이 궁극적인 항에 달려있다. 이 궁극적인 항은 우리 인생의 가치이며, 다시 말해서 명백하게 하나의 '즉자-대자'라는 형식의 하나의 충실이다. 이 궁극적인 항에 의하면 우리의 과거에 대한 회복은 앞으로도 뒤로도 단 한 번만 이루어질 것이다. _ 사르트르, <존재와 무>, p871
"Life is Choice(C) between Birth(B) and Death(D)"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1905 ~ 1980)의 <존재와 무 L'Etre et le Neant >를 읽으며 그가 한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이 명제에 담겨있는 인생이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는 내용은 <존재와 무>의 큰 얼개인 과거-인생-죽음의 관계를 보다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과거의 불변적인 요소 중 하나인 '탄생(birth)'과 '죽음(death)' 모두 현재와 관계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과거의 자유와 죽음의 불확실성 모두 우리의 현재의 '기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과거-현재-미래'의 시간(time) 구조를 연결해주는 것은 '선택'이며, '기도'이고 '기대'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인생은 선택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보다 잘 느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행복'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자유는 과거와 관련하여 하나의 목적의 선택이 되지만, 거꾸로 말하면, 과거는 선택된 목적과의 관계에 있어서만, 자신이 그것으로 있는 것으로 있다... 과거의 의미는 나의 현재적인 기도에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결코 앞서는 내 행위의 의미를 내 마음 내키는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오직 나만 이 순간순간에 과거의 '유효범위'를 결정지을 수 있다. _ 사르트르, <존재와 무>, p813
다시 말하면 인생이란, 우리가 유한성을 선택하고, 그 유한성을 바탕으로 우리의 목적을 선택할 때의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진정 죽음의 특징은, 그것을 언제 어느 때의 일로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기한 이전에 언제라도 덮칠 수 있다는 것이다. _ 사르트르, <존재와 무>, p869
여기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 ~ BC322)에게 의견을 청해본다. '행복'에 관한 윤리학인 <에우데모스 윤리학 Ethica Eudaimonia>3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덕(arete)은 선택과 관련되어 있음을 말한다. 덕을 갖추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면,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기대를 갖는가'의 문제로부터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를 지나 '인생에서 최상의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관점을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1220b 모든 경우에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 중간인 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그것이 앎과 이성이 명령하는 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서나 그것이 가장 좋은 성향을 산출하기도 한다. 이것도 귀납과 추론을 통해 분명하다. 반대자들은 서로 파괴하니까. 양극단은 서로에게도, 중간에게도 반대이다... 따라서 성격의 덕을 필연적으로 어떤 종류의 중간과 어떤 중용(mesotes)에 관련된다. _ 아리스토텔레스, <에우데모스 윤리학>, p71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저서인 <니코마코스 윤리학 Ethica Nicomacheia>에서도 강조되는 중용(mesotes)이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중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인생에서의 중용은 무엇일까. 우리의 선택은 다른 기회비용을 낳는다. 보다 큰 기회비용을 지불하지 않도록(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의 마지막을 사르트르의 문장에 대응하며 정리하는 것으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Life is Choice(C) between Birth(B) and Death(D)"
"Eudaimonis(Happiness) is Balance(B) between Alternative(A) and Choic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