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2 ㅣ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2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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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와 솔직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에세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어느 누가 읽어도 맞닿아 있는 공감의 지대에서 위로 받는다. 그가 쓴 모든 논픽션을 따라 읽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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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대 중반 아버지는 이제 자주 사후 당신이 묻힐 곳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린다. 사후 당신의 영혼이 안식을 찾을 곳을 찾아 헤매며 육신의 죽음을 넘어선 그 이후 흐를 시간을 당연한듯 전제하는 모습에 나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종교가 없는 아버지는 그럼에도 영혼과 넋에 대한 믿음이 있다. 고인을 기리고 추억하며 각종 의례를 지내는 일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거의 신앙에 가깝다.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죽음 이후라는 가정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직도 내 죽음을 떠올리면 아득한 두려움이 몰려오지만, 그 공포를 잠재우는 건 산란한 일상 빼고는 없다. 즉, 나는 내 호흡이 멈추고 육신이 부패하고 남을 그 뼈의 운명에 대해 불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 남는 것이 있다면, 죽음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답을 영영 알지 못한 채 나는 죽음으로 건너갈 것이다.



이 도발적인 제목은 누구나에게 공명하는 한탄이기도 하다. 과연 누가 알겠는가? 종교적 믿음이 신실하다고 해도 죽음 너머 남을 뼈의 운명을 확신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17세기 의사이자 산문 작가였던 토머스 브라운은 영국 노퍽주 들판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의 것으로 추정한 수십 개의 유골 항아리들을 시작으로 죽음과 장례, 매장, 화장 풍습들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은 결국 삶에 익숙해지며 결코 적응하지 못할 허무한 결말인 죽음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러니임을 설파하는 브라운의 문장은 버지니아 울프의 경탄과 닿아 있다. 그는 종잡을 수 없는 "기이한 설교자"이며 동시에 독자를 "비범한 사색의 비상으로 이끈다." 허무론자 같으면서 동시에 삶의 찬란한 불꽃을 찬탄하는 그 아이러니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삶은 순수한 불꽃이며, 우리는 내면의 보이지 않는 태양에 의지해 살아간다. 살아생전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작은 불씨 하나면 충분하지만, 죽음 뒤에는 아무리 거대한 불길도 인간의 허영을 채우기엔 늘 부족해 보인다.

-pp.124


그의 사후 벌어진 웃지못할 해프닝은  그 자신이 쓴 이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에 덧붙여질 텍스트가 된다. 19세기 중반, 근처 무덤 작업 중 드러난 브라운의 두개골이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반출되어 병원에 전시되었다 다시 원래 무덤에 안치된다. 그의 뼈는 만인의 전시 대상이 될 운명이었을까? 그 정도로 아무도 우리 사후 벌어질 일에 대한 통제권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방증 같기도 해서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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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8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08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평일
이시다 센 지음, 서하나 옮김 / 1984Books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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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거리의 다양한 풍경을 다양한 시점으로 묘사한 에세이집인데 마치 단편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책속 "오늘이 일생이야!"라는 문구처럼 이 평일의 풍경은 아름다운 일생의 농축된 버전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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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비현실적인 정경이 있다. 집앞에 대학교가 있었고, 그 안에 대형 서점이 있었다. 지역 주민들도 부담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심지어 그 안의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서너 살 아이를 데리고 그 서점에 가는 게 우리 가족에게는 일종의 가족 나들이였다. 매대에 눕혀 있던 수많은 책들 중 김연수 작가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거기에서 만났다. 이름만 아는 작가의 이 표지에 매혹 당해 이 책을 집어들었던 시간. 서가 사이를 신나는 미로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를 말려야만 했다.



이 표지다. 지금도 눈에 선연하다. 대학교 안 서점에서 집어들기에 가장 위화감이 없는 표지가 아닌가. 맨몸으로 자신을 감싸 안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그 하늘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결국 그는 땅을 내려다보며 점점 고개를 숙여야 하겠지만, 그런 말로는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때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러 여기에 왔다. 이제 그 서점은 사라졌고, 우리는 더는 대학교에 함부로 드나들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암묵적 합의. 세대는 분리됐고, 대학교 안에서 문학책을 파는 서점은 이윤을 남기기 어렵다. 작가와 나만 남아 그 사이로 나만 소중하게 생각하게 하는 애착이 자라났다. 김연수 작가의 책을 신간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 읽었다. 그는 나의 그 시절을 환기한다. 조금은 더 밝았고, 조금은 더 무람 없었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는 온전히 그 시대의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젊었던 내 과거에 대한 애달픈 복기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그리워한다. 

















내가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 건 그의 글에는 소위 '젠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줄, 한줄 읽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 지점을 만나게 된다. 30대였던 작가도 이제 50대를 훌쩍 넘었고, 청년이었던 인물들도 함께 나이 들어 인생의 능선을 내려오고 있다. 그 안엔 시간 여행자로 삶을 경유하는 감각이 있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기점으로 오고 가며 때로는 섞이고, 삶은 그 바깥에서 바라보는 관찰자로서의 정경으로 떠오른다. 


우주는 머물러 있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비로소 움직인다. 일월성신은 본래 멈춰 있으되 일월성신의 빛은 사람을 따라 움직이나니 그것이 시간이다. 빛은 나로 인해 생겨나고 나로 인해 소멸한다. 

-김연수 <눈 내리는 삼일포>

좀이 슬어 구멍이 뚫린 삼일포의 그림은 어느새 그것이 실격의 이유가 아니라 존재의 의의가 된다. 손상이나 실패, 좌절은 눈부신 눈이 되어 현재의 예술 작품으로 태어나고, 그것을 조우한 다른 작가는 하나의 서사를 꿰어낸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일까. 지금 여기에서 맞닥뜨리는 숱한 좌절들이 결국 빛의 염주가 되어 하나의 결실로 나타날지 모르는 이야기를 우리는 일상이라 부르며 사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표현으로 "너울거리는 신의 마음 아래에서"에서는 복원된 마음이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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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 가장 맞춤한 작가의 조언 아닐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가을가을을 누려 보자. 이 찰나 같은 삶에 그보다 훨씬 더 짧은 가을날은 언제나 누리기에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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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10-03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씻고 나가야겠어요. 글씨가... 너무 예쁘네요. 어쩜~~~

blanca 2026-10-03 14:30   좋아요 1 | URL
오늘 아침 하늘은 진짜 축복 그 자체더라고요. 마침, 이 책 읽는데 당장 나가야겠다 싶었어요.

다락방 2026-10-05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맞춤한 한 줄이며 모두에게 들려주고픈 한 줄 입닌다. 필체도 좋으시네요, 정말.

blanca 2026-10-05 14:54   좋아요 0 | URL
캘리그라피 하시나 봐요. ㅋㅋ 이 책 읽느라 콕 박혀 있다가 나가야 될 듯 하는 문구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