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에서 권정생은 이렇게 말한다. 


"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 속에 들어와 잤다. 자다 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 속으로 비집고 겨등랑이까지 파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 보니 그것들과 정이 들어 버려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아두고 기다렸다." <권정생의 낯선 사랑법> 中


 오늘 성당 주보에 실린 글을 읽다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을 품고 집에 돌아와 아이책 중 <강아지똥>을 모처럼 꺼내어 다시 읽어본다.

 

 "뭐야! 내가 똥이라고? 더럽다고?"

 강아지똥은 화도 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어요.(p2)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 강아지똥은 쓸쓸하게 혼자서 중얼거렸어요.(p8)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p10)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 싹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어요. 향긋한 꽃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어요.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어요.(p13) <강아지 똥> 中


 <강아지똥>의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지만, 몇 번을 읽어도 마음에 잔잔함을 퍼뜨린다.  말 그대로 강아지 똥이, 시간이 흘러 새로운 생명 민들레 싹을 틔워내는 이야기안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담겨있을까. 얼핏 <강아지똥>의 이야기는 다른 동화, 특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 ~ 1875)의 전래 동화와 많은 닮은 듯하다.  

 

 오리 새끼는 물 위로 날아가서는, 아름다운 백조들 쪽으로 헤엄쳤다. 백조들이 오리 새끼를 발견하더니 날개를 펼치고 그를 만나러 달려왔다. "좋아. 나를 죽여, 죽여봐"하며 불쌍한 새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죽음을 기다리듯이 머리를 물 쪽으로 숙였다. 그런데 맑은 물 표면에서 오리 새끼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오리 새끼는 자신이 더 이상 꼴사나운 새가 아니며, 못생기고 불쾌한 얼굴도 아님을 깨달았다. 그 자신이 바로 한 마리 백조였다!(p382) <주석달린 고전동화집, 미운 오리 새끼> 中


  "한 인간이 너를 너무 사랑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너를 더 소중히 여긴다면, 또한 그가 가슴과 영혼으로 너를 사랑하고 성직자 앞에서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너에게 충실하고 진실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너의 손에 그의 오른손을 올려놓으면, 그의 영혼이 너에게로 미끄러지듯 들어오게 될 것이고, 너도 인간이 누리는 행복의 몫을 얻게 될지도 모르지.(p401)... 왕자님과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p403) <주석달린 고전동화집, 어린 인어 공주> 中


  남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주인공이 새롭게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다는 이야기는 <미운 오리 새끼>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면에서는 <작은 인어 공주>유사점이 있는듯하다. 그렇지만, 내용적으로 보다 깊게 들어가면이들 안데르센 동화와 <강아지 똥>은 크게 2가지 면에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오리 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변신하는 이 고전동화는 여러 세대에 걸쳐 자신감 부족과 소외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작품으로 읽혀왔다. 미운 오리 새끼는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초라한 상황을 벗어난다. 오리 새끼는 때가 될 때까지 그저 묵묵히 굴욕과 궁핌 그리고 위험 요소들을 참아냈을 뿐이다.(p366)... 안데르센은 미운 오리 새끼의 타고난 우수성이 다른 혈통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오리들과는 다르게 미운 오리 새끼는 백조알에서 부화된 것이다.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왕과 귀좃가회를 아름다음과 연관시키는 문화적 편견을 영속화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 속에서 미덕을 찾는 경향, 즉 고통의 숭배를 조장한다.(p367) <주석달린 고전동화집, 미운 오리 새끼 註> 中


 어린 인어공주에게는 조용한 인내심을 넘어서는 세속적인 야망이 있다.(p384)... 어린 인어는 처음에는 바다 마녀가 줄 수 있는 것에 유혹되어 마녀의 처소를 방문하는 데 따른 여러 위험에 용감하게 맞선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왕자를 찌를 칼을 바닷속으로 던져버림으로써, 바다 마녀의 검은 마술을 버리고 불멸의 삶을 얻을 기회를 얻는다.(p385)<주석달린 고전동화집, 어린 인어 공주 註> 中


 <미운 오리 새끼>와 <어린 인어 공주>는 모두 태생적으로 고귀한 존재들이다. 오리 새끼는 '백조'의 혈통을, <어린 인어 공주>는 말 그대로 공주다. 이들은 각각 시련을 겪기는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그들안에 내재(內在)한다. 특히, 미운 오리 새끼에서 그런 면이 두드러지지만, 인어 공주에서도 고귀함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크게 같은 부류로 묶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성령(聖靈)이 육화(肉化)'된 것처럼 보통 이하의 존재로 하강한 후 시간의 흐름 또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상승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치 플라톤(Platon, BC 427 ~ BC 348) 의 동굴의 비유 또는 기독교의 메시아(Messiah)의 모습이 동화 안에 구현된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림] 무염시태 immaculata conceptio beatae virginis mariae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Feast_of_the_Immaculate_Conception) 


 그렇지만, 강아지똥은 그냥 똥이다... 안데르센 동화의 두 이야기가 금수저의 유학생활을 다룬 이야기라면, <강아지똥>은 흙수저의 삶을 다룬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평범한 이가 발견하는 삶의 의미. 이것이 첫 번째 차이라 생각된다.


 두 번째 차이는 두 이야기에서 고난을 겪고 얻어낸 성취가 '개인' 수준을 넘지 않는데 반해, <강아지 똥>에서는 자신을 넘어섰다는 점에 있다. <미운 오리 새끼>에서 오리 새끼는 '아름다운 미모'를 얻었고, <어린 인어 공주>는 다른 방식의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자신들이 열망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을 둘러싼 주변은 이들로 인해 바뀌지 않는다.

 

 단순한 즐거움이나 고통이든 아니면 이들의 변형된 형태든, 사람의 마음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관념들 거의 대부분을 우리는 자기 보존과 사회라는 두 가지 항목 아래 분류할 수 있다(p83)... 개인의 보존과 관련된 감정들은 주로 고통이나 위험이 있을 때 생겨나며 모든 감정들 중에서 가장 강한 감정이다. 어떤 형태로든 고통이나 위험의 관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강한 감정인 숭고의 원천이다.(p84)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中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 1729 ~ 1797)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A Philosophical Enquiry into the Origin of our Ideas of the Sublime and Beautiful>에서 숭고(崇高)의 기원 중 하나를 자기 보존에서 찾고 있다.    

 버크의 관점을 따른다면,  미운 오리 새끼, 어린 인어 공주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숭고미를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강아지똥에서 자신의 삶의 이유를 자신에게서 발견하지 않고, 민들레라는 타자(他者)에 의해 발견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키워낸다는 점에서 이들의 숭고를 넘어선 다른 의미에서 거대함(greatness)이 있지 않을까. ('거대함'은 버크가 <탐구>에서 논하는 숭고함의 필수적 요소이다.) 


 만약, 우리가 <강아지 똥>에서 숭고미를 발견할 수 있다라고 했을 때, 그 숭고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숭고미의 근원을 우리 문화와 작가에서 찾을 수 있다 생각한다. 먼저,  우리 신화(神話) 안에 담긴 숭고미를 살펴보자. 전국 여러 곳에서 폭넓게 이야기로 전해오는 <당금애기> 속에서 우리는 자기 희생의 신성(神性)을 발견할 수 있다.

 

 (당금애기에서) 운명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실현되는 무엇이 아니다. 거기 대면하여 감당하기를 시작할 때 비로소 그것은 나의 삶이 되어서 의미를 발하게 된다. 이 신화에서 당금애기는 무척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형태로 운명에 휘둘리는 존재로 보이지만, 되짚어보면 그렇지 않다.. 그는 방문 밖으로 나가서 시준님을 대면했고, 그를 방 안에서 들여서 자게 했으며, 그와의 만남을 운명으로 여겨 결연을 받아들였다. 뱃속에 버거운 생명이 자라났지만 마침내 그로부터 도피하지 않았다. 깜깜한 돌함 속에 홀로 갇혀서도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세상의 조롱과 박해를 무릅쓰고서 그 아이들을 키워냈다. 누군가 하면 세상의 신령한 구원자로.(p92)...  당금애기는 이렇게 한 명의 딸로부터 여자가 되고 또 어머니가 된다. 키워지던 존재에서 홀로 선 존재가 되고 타인을 키우는 존재가 된다. 요컨대 당금애기는 자신의 운명과 대면하여 그것을 감당함으로써 존재를 실현한 자였다. 일컬어, 신(神)!(p93) <살아있는 한국 신화> 中 


 이러한 전통 문화의 바탕 위에 고된 삶에서 피어난 연꽃 같은 작가의 맑은 정신이 <강아지똥>안에 담겨 있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 것은 아닐까. 마침 오늘 미사 주보에 실린 짧은 에세이 중 작가 권정생(權正生, 1937 ~ 2007)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 본다.


 권정생은 살아있는 모든 목숨이 애틋했다.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빛 아래 같은 공기과 물을 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게 아닌가, 연민을 느꼈다. 그에겐 위아래가 따로 없었다. 기름진 고깃국을 먹은 뱃속과 보리밥을 먹은 뱃속으로 위아래를 나누는 나누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했다. 약탈과 실인으로 살찐 육체보다 성실하게 거둔 곡식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의 길이라 믿었다. 그래서 제국주의도 전쟁도 빈부도 독재도 분단도 미워했다. <권정생의 낯선 사랑법> 中


  <강아지똥>안에서 <당금애기>에서와 같은 숭고를 넘어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넘어선 타인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강아지똥>안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전통의 아름다움 위에 작가 권정생의 아름다운 정신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아지똥>의 이야기는 순박하고 정겹다. 그리고, 이러한 숭고미가 있기에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널리 읽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PS. <캘리번과 마녀 Caliban and the Witch>>의 저자 실비아 페더리치(Silvia Federici)가 말한 자본주의가 살해한 여신(女神)의 모습 안에는 위와 같은 숭고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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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9-08-05 0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서양의 차이만 보기보다 작가의 세계관(물론 사회 인식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차가 크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어렸을 때 자신의 부모가 사실은 가짜이고 진짜 부모는 대단한 사람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단계가 있잖아요. 그런 게 이야기에 반영된 게 더 크다고 저는 생각되네요^^;
그럼에도 권정생 선생의 아름다운 정신은 존경스럽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8-05 08:28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말씀처럼 작가 역시 사회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기 때문에, 이들을 구별하는 것이 사실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세계관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그렇지만, 동시에 이러한 작가의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cyrus 2019-08-05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크가 말한 숭고는 거대한 자연(바다, 깎아지른 절벽이 있는 산)을 마주할 때 두려워서 아찔함을 느끼는 감정 상태라고 정의한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버크의 책을 더 읽어보고 난 후에 제 의견을 밝혀야겠지만, 어떤 존재의 자기희생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버크의 숭고와 연관 짓는 겨울호랑이님의 설명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버크가 숭고의 개념을 말할 때 언급한 ‘거대함’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8-05 18:46   좋아요 1 | URL
cyrus님께서 말씀하신 버크의 숭고와 관련된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자기 보존과 관련된 감정들은 고통이나 위험에서 생겨난다. 그 원인이 직접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그러한 감정들은 그저 고통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해있지 않으면서 고통이나 위험을 느낄 경우 그러한 감정들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다. 이러한 안도감은 고통에서 생겨나며 실질적인 즐거움과 다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즐거움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안도감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을 숭고하다고 부른다. 자기 보존과 관련된 이러한 감정들은 모든 감정 가운데서 가장 강한 것들이다.(p98)‘<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中

저는 위의 책에서 버크가 말한 ‘숭고‘의 개념을 절박한 위험이나, 두려움, 고통에서 벗어난 직후 경외감, 두려움 등이 짙게 배인 평온함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버크가 말한 ‘숭고의 원천‘ 중 자기 보존이 가장 강력하다는 것은 cyrus님께서 말씀하신 상황에서 자신의 안전 욕구가 가장 감정의 욕구라는 말이라 여겨집니다. 이는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과도 통한다 생각합니다... 잠시 엇나갔습니다만, 그렇게 본다면 버크의 ‘숭고‘는 ‘평안함을 주는 가장 강한 감정이 상태‘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신의 안전‘을 뛰어넘은 ‘자기의 희생‘은 더 숭고하다 생각됩니다. 자신의 안전이 ‘better‘라면 자기 희생은 ‘the best‘가 아닐까 생각해서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설명의 부족함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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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8월 2일 일본에서 한국을 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함으로서, 사실상 양국은 경제전쟁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발로 시작된 경제갈등의 기원이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1947년  이래로 미국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본의 경제적 영향력을 한국에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p448)...  케네디의 취임 이전 혹은 1961년 군사쿠데타 이전 한일관계에서 중요한 진정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후 미국정부는 국교정상화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로스토우와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는 일본이 동북아시아 지역경제의 축이 되도록 압박하는 애치슨의 전략을 사실상 되살려놓았다.(p450)... 박정희와 김종필을 위해 일정 몫의 정치자금을 분담하는 문제에서도 일본인들은 쩨쩨하게 굴지는 않았다. 미국 CIA의 정보에 따르면 1961년에서 1965년까지 일본회사들이 한국 집권당 예산의 3분의 2를 제공했는데, 6개 기업들이 6,6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를 기부했다. 그럼에도 정상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배상을 원하고, 일본인들은 '배상'이라고 불리지 않는 조건이라면 한 보따리의 원조와 차관을 내놓을 용의가 있었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의 대표들은 미해결로 남아 있는 모든 쟁점들에 대한 합의안을 발의했고, 대한민국 국회는 1965년 8월 14일 협정을 비준했다. 이 협정은 한국 경제에 경이로운 일을 해냈으나, 이 타결이 차후 일본에 대한 청구의 가능성을 없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p451)... 국교정상화로 대한민국은 일본으로부터 1965년 달러로 3억 달러의 무상 원조와 2억 달러의 차관을 받았으며, 일본의 민간기업들이 3억 달러를 더 투자했다. 결국 박정희는 1960년대 초에 미국으로부터 거절당한 강철공장을 건설하는데 이 돈과 일본의 최신기술을 사용했는데, 그는 이 공장을 자신의 고향에서 별로 멀지 않은 포항에다 세웠다.(p452)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中


 지난 2016년 체결된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가 미국의 이해를 위해 한-미-일 동맹의 수단으로 체결되었듯이, 그 이전의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역시 미국의 이해를 위한 방편이었다. 그 결과 일본은 '배상'이 아닌 '독립축하금' 명목의 과거 문제 해결을, 한국은 유/무상 원조와 차관을 통해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는 우리에게 양날의 검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1960년대 압축성장기에 공산주의 소련의 콤비나트(Kombinat)를 모방한  산업기지 조성과정에사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면, 환경 오염 문제, 지역불균형 발전의 문제 등이 대표적인 문제점이라 하겠다. 박정희 고향 지역인 경상도에 조성한 신흥공단들로 인해 식수원으로 활용되는 낙동강에 인근 공단의 폐수가 유입되는 공해 문제와 전라도 등 비경상도 지역의 불균형발전 문제가 이 시기부터 불거지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한 기술종속 문제 역시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기계공업 낙후의 보다 중요한 원인은 기계공업의 개발 주체인 대기업이 기초 기계공업 개발에 의욕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기업은 내부적으로 조립가공업에 집중함으로써 장기투자가 필요한 기계공업을 외면하고 있었다. 또한 기계공업은 종합도면 위에서 부품생산을 분업화하고 그 단위마다 전문화를 통한 기술개발 효과,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은 도급업체에 중요한 결정권을 주어 매이는 것을 싫어해 비합리적인 한국형 도급구조를 만듦으로써 기계공업의 발전구조를 원천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결국 세계 일류제품을 만들면서도 핵심부품은 미국, 일본에 의존하는 기술구조가 지속되었고, 이는 부가가치율의 하락과 해외 요인에 의한 공업구조의 불안정이라는 한국공업의 약점으로 지속되었다.(p425)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 中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 내재된 정치적 문제와 일본의존의 제조업 구조라는 경제적 문제가 얽힌 이 번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간 경제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당초 삼성전자, SK 하이닉스를 겨냥했던 수출규제가 한국수출품목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일본 상품/서비스 불매 운동도 한층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 있었던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모두발언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을 분석한 <사생활의 역사 Histoire de la vie privee>의 내용을 떠올리게 된다. <사생활의 역사>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4년의 시간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민족주의(民族主義, ethnism'를 지목한다.


 양 진영에서 모두 짧게 끝나고 만 1917년 소요와 달리 병사들은 어떻게 4년 이상을 '버틸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 가설은 모든 병사들이 민족주의 윤리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인데, 당시의 민족주의는 알자스와 로렌의 상실로 한층 더 격화되어 있었다. '독일놈'은 대대로 내려오는 원수이며 우리 두 지방을 빼앗아간 약탈자이며 침략자이다. 그리고 정의와 법은 프랑스 편이다. 진짜 '애국교'라고 할 만한 것이 생겨났다. 교회에 속하지 않은 일반 학교에서도 이러한 종교를 주입했으며 수도회 소속 학교들에서도 가르쳤다. 민족주의는 우파와 좌파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였다. 오로지 극소수 좌파만이 이러한 가치에 이의를 제기했다. 1914년 국제 협력 제체의 완전한 붕괴는 바로 이러한 민족주의로 설명된다.(p287) <사생활의 역사> 中


 이번 사태의 시작은 과거 불완전하게 봉합된 국가 간 협약의 문제가 표출에서, 이에 불만을 품은 '국가'가 '글로벌 대자본'의 국제 공급망에 대한 제재가 이어졌고, '민족주의' 감정의 분출과 함께 수출규제 확대-보복으로 갈등이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제는 갈등이 고조되어,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고 여겨지는 지금 에릭 홉스봄(Eric John Ernst Hobsbawm, 1917 ~ 2012)이 <제국의 시대 The Age of Empire 1875 ~ 1914>에서 규명하는 제1차 세계대전의 본질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경제적 세계는 19세기 중반에 그랬던 것처럼 유일한 항성인 영국을 둘러싸고 회전하는 태양계가 더 이상 아니었다. 영국의 상대적인 침체는 점차 분명해졌다. 이제 경쟁적인 다수의 산업경제국들이 서로 부딪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 경제적 경쟁은 국가들의 정치적인, 심지어 군사적인 행위와 맞물려 요동쳤다. 대공황기에 보호주의가 부활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초래한 최초의 결과물이었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 지원은 외국과의 경쟁에서 보호받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으며, 일국적인 산업경제들이 상호 경쟁하는 세계의 일부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것이었다.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는 국제적인 힘과 그 범주를 충족시켜주는 기반 바로 그것이었다. '강력한 경제'를 동시에 갖지 않는 '강대국'은 이제 인정될 수 없었다.(p550) <제국의 시대> 中


  '저출산-고령화'와 빈부격차의 확대 등으로 인한 구조적인 경제침체 아래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도약 등의 현상황 역시 본질은 같지 않을까. 여기에, 미국의 한-일 갈등 중재 시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을 대가로 요청했다는 사실도 함께 놓고 본다면 홉스봄의 제1차 세계대전 분석이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만약, 그렇다면 '민족주의'의 이름 하에 수없이 죽어간 일반병사들은 누구를 위해 싸운 것일까? 이러한 물음과 함께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 본다.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903190.html


 경제적 그리고 정치-군사적 힘에 대한 정체성을 대단히 위험하게 몰아갔던 것은 세계시장과 원료를 둘러싼 국가들의 경쟁뿐 아니라, 경제적/전략적 이익이 흔히 중첩되고 있었던 중동과 근동 같은 지역의 통제를 둘러싼 것이기도 했다. 1914년 훨씬 이전에, 중동의 석유를 둘러싼 외교는 이미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p551) <제국의 시대> 中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다. 1998년 지금은 사라진 을지포커스렌즈(Ulchi-Focus Lens) 훈련에 군단사령부에 소속되어 작전에 참가했었다. 당시 지휘부에 속했기 때문에 지하벙커에서 상황조치를 하면서 훈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령부는 지하벙커에 있어 한여름에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전쟁을 치룰 수 있었다. 일선부대에서 행군을 하면서 기동훈련과 사령부에서 경험한 훈련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야전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을테지만, 사령부에서는 상황판의 숫자로 표시되는 전쟁의 양상은 충격이었다. 차가운 전쟁. 그것이 사령부에서 내가 경험한 모의전쟁이었다. 그리고, 이번 경제 전쟁에서 사회 지도층이 겪는 전쟁 양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들은 생산차질이 빚어지면, 생산물량을 줄이거나 감원을 하면서 생산라인을 바꾸며 글로벌 기업으로 생존하겠지만, 하청을 받아 사업을 운영하는 중소기업은 도산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소속된 가계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소비자로서 불매운동을 하는 차원이 아닌, 가계가 생계위협에 노출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그 가족들에게 '우리는 일본을 이길 수 있다'라는 구호가 의미있게 다가올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일이 지금 나와 내 가족에게 일어났을 때에도 우리는 막연하게 '일본을 이겨야한다'는 구호와 지금 이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베르됭에서 프랑스인들이 보여준 믿기 힘들 정도의 저항은 범상한 참모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 병사들, 특히 '1914년의 용사들'에게 돌아가야 할 명예였다. 신념의 윤리와 인격의 윤리가 프랑스 병사들에게 전쟁의 운명은 그들의 용기에 달려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p283) <사생활의 역사> 中


 이번 한-일 경제갈등의 뿌리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없음으로부터 출발했기에 한국인으로서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한 분노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한-일 경제전쟁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분노 이전에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는 일본에 대한 보복카드를 뽑아들기 이전에 민간 피해 최소화에 대한 대책을 조속히 국민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하며 들뜬 마음으로 자원했다가, 실상이 기관총, 철조망, 독가스로 인한 학살의 현장임을 깨닫고 멘붕에 빠졌듯이, 이번 한-일 경제전쟁이 마찬가지 양상으로 빠지지 않고, 진정한 해방/독립의 원년이 되길 희망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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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03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또다른 전범국가 독일과 다른 방식의
역사 왜곡이 이번 사태의 근원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는 나라의 비극이
라고 해야 할까요.

겨울호랑이 2019-08-03 10:45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자신들 행동에 대한 반성보다 책임 떠넘기기식의 태도로 인해 과거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전후 천황제의 존속이 전후 처리에 큰 문제임을을 지적하는데, 이또한 역사 인식의 문제와 직간접의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2019-08-03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03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8-03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일로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 모두에게 ‘국뽕’ 맞는 계기가 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8-03 15:51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비록 이번 일이 경제 문제 외에 역사 문제도 연관되어 있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시적인 감정에 휩쓸려 일본 관광, 일본 맥주 불매 운동을 하기보다는 우리 주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일본어, 일본에 종속된 산업 구조, 식민 사관에 의해 왜곡된 역사 인식 등 우리 생활 전반을 돌아볼 때라 여겨집니다.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8-03 18:53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국수주의가 아닌 칸트의 세계 시민주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8-03 18:55   좋아요 0 | URL
네 또한 가라타니 고진과도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oren 2019-08-03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나라 사이에 켜켜이 쌓인 앙금을 최대한으로 가라앉히고 조금씩이나마 미래지향적으로 공존, 번영하는 길이 불행한 과거사를 극복하는 길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독 아베 정권에 와서 한국 때리기가 나날이 극심해 지고, 우리 정부에서도 뾰족한 대책도 없이 줄곧 맞장을 뜨는 식으로 대응한 게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게 아닌가 싶어 몹시 속이 상합니다. 가증스런 일본놈들을 죽도록 두들겨 패고 꺾어 이기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겐들 없겠습니까만, 죽창가니, 의병 운동이니, 단호한 대응이니, 국민들의 저력을 믿는다는 식의 공허한 구호만을 내세워서 이 난국이 타개될까 심히 우려됩니다. 국민들은 가뜩이나 어려워지는 경제 상황 때문에 앞이 캄캄하다고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는데, 위정자들은 마치 국민 총동원령이라도 내리듯이 살벌한 ‘일전 불사‘만 외치고 있으니 그저 딱할 노릇입니다.

이번에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일 텐데, 그 판결을 둘러싼 해법만이라도 양국이 좀 더 일찍 서로 머리를 맞대고 풀어봤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큽니다. 이제는 갈등의 골이 깊어져 ‘배상 문제 해결‘이 이뤄지더라도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원상복구되기 어렵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판국이니, 양국의 통치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사태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것이며, 무엇을 더 얻기 위해 ‘궁극적인 문제 해결‘은 한 켠으로 밀어놓은 채 끊임없이 싸움판만 키운단 말인가요.
* * *
˝진실로 옳구나! 이러한 말들이여. 법령이란 다스림의 도구일 뿐 백성의 맑고 탁함을 다스리는 근원은 아니다. …… 간사함과 거짓은 싹이 움트듯 일어나 극도에 이르러 …… 백성의 혼란이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관리들은 불을 그대로 둔 채 끓는 물만 식히려는 것처럼 정치를 조급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하고 준엄하며 혹독한 사람이 아니고야 어떻게 그 임무를 즐겁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 사마천, 『사기 열전_2』, <혹리酷吏 열전> 중에서

겨울호랑이 2019-08-03 16:15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경제 도발과 이에 상응하는 대응이 이어질 경우 일반가계의 피해가 염려됩니다. 예를들어 세븐일레븐 편의점주의 경우 불매운동으로 매출에 타격을 받으면서도, 일본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입게 된 수천만원의 피해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경제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정치권에서는 총선에서 표를 얻을 것이고, 국내 글로벌 기업은 시장다변화와 구조조정의 기회를 얻게 되겠지만, 민간 가계에게 돌아가는 실리는 없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8-03 20:1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국가주의에 놀아나면 안 됩니다. 어설픈 애국주의에 결국 피해는 개인만 보는 것 같습니다.
 
해삼의 눈 - 함경도에서 시드니까지, 문명교류의 바닷길을 가다
쓰루미 요시유키 지음, 이경덕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해삼의 눈」에서는 구석기 시대 한반도에서 시작되어 남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퍼져나간 식용 해삼의 역사를 역추적한다. 식생활에 남아 있는 문화 교류의 흔적은 세계 무역의 오랜 역사를 우리에게 알려줌과 동시에 일제 식민지배의 상처 또한 함께 보여준다. 

 나는 앞에서 잡고, 가공하고, 원상태로 복원해서 조리하는 과정을 해삼 문화의 3요소라고 썼다. 3요소를 갖춘 해삼 문화는 동북아시아에서 태어나 한인(중국인)의 위장을 통해 세련되었다. 남태평양의 진출은 완전히 상품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그곳에는 가공 기술만이 전해졌다. 큰 흐름은 이렇다.(p514)

 나는 해삼 문화를 발명한 것은 한반도 주변의, 아마도 퉁구스계의 해민(어민)일 것으로 생각한다.(p492)

 「조선 요람」에서 저자 기우치 주시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조선이 본질적으로는 풍요로운 땅이지만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유리‘는 그러한 정체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당시 자주 사용되었다. 또 하나는 그 정체를 타파하기 위해 뒤처진 조선인은 앞선 일본인의 지도에 따라 융합과 동화의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는 정책 판단이다. 식민지주의는 대개 자선자, 보호자로 위장한다.(p491)

 1897년에 ‘원양 어업 장려법‘으로 영세 일본 어민은 약자였다. 그러나 차별당한 약자는 더 약한 약자를 만났을 때 갑자기 강자로 변신한다.(p487)... 본토에서 약자로 억눌려 내몰린 일본의 영세 어민은 점차 방약무인해졌다. 이들은 누구나 조선이 미개국이고 열등한 나라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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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2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02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6
가라타니 고진 지음, 윤인로.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도쿄재판 이후의 점령군은 중국대륙과 조선반도에서 진행되던 혁명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추궁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에 재군비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전쟁책임이라는 문제는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p169)

나는 전쟁책임이란 국제법의 관점에서만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예를 들어 식민지지배의 책임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쟁책임보다 가볍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그와 같은 책임은 전쟁책임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전쟁책임을 인정할 때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p185)

일본은 조선이나 대만, 만주 등을 식민지로 만들고 동아시아 일대를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날 영국이나 프랑스 등이 행한 식민지지배는 문제 삼지 않으면서 일본과 같은 ‘후진‘ 제국주의국가의 그것만을 ‘침략‘으로서 비난하는 것은 기묘하지 않은가.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일본의 죄를 없애주는 것이 아닐뿐더러 비서양 사람들의 원한이나 보복의 문제도 아닙니다. 세계사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국가‘에 근거하여 행동해온 지난 인류사를 반복해서는 안 되며, 그때 각 나라사람들은 각국의 행위를 주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p187)

종군위안부 문제는 기존에 문제가 되었던 한일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다루어졌지만, 거기에는 이질적인 물음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여성의 관점에서 전쟁을 재검토하는 것, 세계사를 재검토하는 것입니다.(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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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1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01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황금모자 2019-08-01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죠. 다케우치 요시미,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들도 추천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19-08-01 17:45   좋아요 0 | URL
마루야마 마사오의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은 읽었습니다만, 다케우치 요시미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입니다. 황금모자님, 항상 좋은 책, 좋은 작가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