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 세트 - 전10권 (꼴 1~9권 + 신기원의 꼴 관상학) - 허영만의 관상만화 시리즈
허영만 지음, 신기원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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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은 제목 그대로 `관상`에 관한 책이다.

몇 년전에 읽어 내용이 상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관상 중에서 저자가 `코`의 생김새와 `눈빛`을 강조한 것은 기억이 남는다. 또, 얼굴의 특정부분이 잘 생긴 것보다 얼굴전체와의 조화를 더 중요하게 강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상에 대해서는 시각적인 설명이 서술설명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꼈다. 전체 10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에 허영만화백의 상세한 묘사가 내용을 풍부하게 한다. 다만, 관상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터득될 수는 없기에, 책의 풍부한 내용이 하루 아침에 내 것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한계가 아닌 내 자신이 담을 수 없는 한계. 그렇기에, 전문가가 아닌 이 책만 접한 초보독자가 자신이 잠시 접한 짧은 지식만으로 타인을 평가하거나 편견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타인을 평가하기보다 자신을 살필 때 이용하면 좋를 것 같다.

`매일 매일 새로워져라`는 「대학」의 경구처럼 매일 자신의 기색을 살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작은 표정과 행동이 나를 만들고, 주변 사람과 나를 조화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는 것. 그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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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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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연>은 소크라테스,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뤽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 간 이루어진 '에로스(Eros)'를 두고 이루어진 대화편이다. 논의가 끝난 후 술취한 알키비아데스가 잠시 등장한다.

 

 모임에서 파이드로스가 '에로스'에 대한 각자의 찬가를 대화주제로 할 것을 제안한다.

'다른 신들에게는 시인들이 지어 바친 찬신가와 송가들이 있는데, 유서 깊고 그토록 강력하신 시인 에로스에게는 그토록 많았던 시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찬가 하나 지어 바치치 않았다는 것은 좀 심하지 않은가?'(177a)

 

 파이드로스의 찬가
파이드로스는 에로스가 가장 오래되고 인간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신이라고 찬미한다.

 

'에로스는 가장 오래된 신들 가운데 한 분이기에 존경받는데, 에로스에게는 부모가 없으며, 산문에서도 운문에서도 그의 부모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라네.(178b)... 그리고 에로스는 가장 오래되었기에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큰 은혜를 베푼다네.(178c)'
'게다가 오직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남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하네.(179b)... 그래서 내 주장인즉 에로스는 신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존경스러우며, 인간들이 생전에나 사후에 미덕과 행복을 얻는데 가장 도움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이네.(180b)'

 

 파우나시아스의 찬가
파우나시아스는 연인과 연동에게 서로 도움이 되는 에로스만이 찬미받을 자격이 있는 에로스라고 에로스를 구분한다.

 

 '하지만 에로스는 사실은 한 분뿐이 아니며, 한분뿐이 아니라면 먼저 어떤 종류의 에로스를 찬양해야 할지 규정하는 것이 더 타당할 걸세. 아프로디테는 실은 두 분이니 에로스도 필연적으로 두 분일세... 두 번째 아프로디테와 협력하는 에로스는 당연히 만백성의 에로스라고 불려할 것이고, 다른 에로스는 우라노스의 에로스라고 불려야 할 것이네.(180d)'
 '어떤 행위든지 행위 자체는 아름답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네. 오히려 행위가 행해지는 방법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되네.(181a).. 그런데 만백성의 아프로디테에게 속하는 에로스는 말 그대로 만백성의 것인지라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일을 해치운다네... 그와는 달리 우라니아 아프로디테에게 속하는 에로스에게 영감을 받은 자들은 본성상 더 강하고 더 지성적인 것을 좋아하여 남성적인 것을 지향한다네.'(181c)
'연인은 연동이 더 지혜롭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게 도와줄 수 있고 연동은 배워서 지식을 증진하기를 열망할 때, 이처럼 두가지 원칙이 완전히 일치할 때에만 연동이 연인의 청을 들어주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고, 다른 경우에는 절대로 그럴 수 없네.'(184e)

 

에뤽시마코스의 찬가

의사인 에뤽시마코스는 에로스가 보편적인 현상이며, 좋은 에로스와 나쁜 에로스를 구분하고, 나쁜 에로스를 경계할 것을 이야기한다.

 

'에로스는 인간의 혼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훨씬 광범위한 현상이네.'(186a)
'절제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이나 그런 사랑으로 더 절제 있게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은 우라니아 무사(Mousa)에게 속하는 아름다운 천상의 에로스라네. 반면, 범속한 사랑은 폴륌니아 무사에게 속하는 사랑으로..(187e).. 모든 몸에는 이런 이중적인 에로스가 내재한다네.(186b).. 간단히 말해서, 의술이란, 몸을 채우거나 비우는 것과 관련하여 에로스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학문이라네.(186d)..음악은 간단히 말해 조화와 리듬에 미치는 사랑의 영향에 관한 지식이라네.(187c)...예언술이 하는 일은 이들 두 에로스를 감시하고 치유하는 것이네.'(188d)

 

아리스토파네스의 찬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에로스가 원래 '남녀추니'였던 인간이 완전해지기 위해 반대편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인간들은 에로스가 얼마나 강력한지 아는데 완전히 실패한 것 같아.(189c).. 처음에 인간의 성(性)은 셋이었고, 지금처럼 남성과 여성 이렇게 두 성만 있었던 것은 아닐세. 이 두 성의 결합체인 세 번째 성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름만 남아있고 그 자체는 사라져버렸네.'(189e)
'이렇듯 우리 각자는 넙치처럼 잘려 하나가 둘이 된 만큼 온전했던 한 인간의 부절(符節)이며, 그래서 저마다 늘 자신의 부절을 찾는 것이라네.(191d)..우리는 본래 완전한 전체였기 때문에네. 그리고 사랑이란 완전한 전체가 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구에 붙여진 이름이라네.'(192e)

 

아가톤의 찬가

아가톤은 에로스가 가장 외적으로 완벽하고, 내적으로도 정의, 절제, 용기, 지혜를 갖춘 최고의 신이라고 찬미한다.

 

'나는 신들께서 모두 행복하지만 에로스야말로 가장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바일세. 그분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하니까.'(195a)
'그분은 젊으며, 젊은 데다 부드럽기까지 하다네.(195d).. 누구나 인정하듯 우아함은 에로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일세.(196a)...에로스는 신이든 인간이든 어느 누구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어느 누구로부터도 불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네.(196b)...에로스는 정의뿐 아니라 절제에도 누구보다 많이 관여한다네.(196c)...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자를 제압하는 에로스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분이네....에로스가 남까지 시인으로 만들 수 있을만큼 지혜로운 시인이라는 점을 지적해두겠네.'(196e)

 

소크라테스의 반론

소크라테스는 에로스에 대해 찬미하는 대신, 에로스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을 원한다는 것은 무엇이 결여된 상태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원하는 에로스는 아름답지 않다고 다른 이들을 논박한다.

 

'에로스가 어떤 것을 원하고 사랑한다면 자신이 원하고 사랑하는 것을 소유하고 있어서인가, 아니면 소유하고 있지 않아서인가?(200a) 반드시 원하는 주체는 자기에게 결여된 것을 원하고, 결여되지 않으면 원하지 않을 걸세.(200b)'
'그러니 갖고 있지 않는 것, 그 자신이 아닌 것, 결여되어 있는 것, 이런 것들이 욕망과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네.(200e)...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지, 추함에 대한 사랑이 아니겠지? 아름다움이 결여되어 있고 어떤 식으로든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을 자네는 아름답다고 말할 텐가?'(201b)

 

만티네이아 여인 디오티마의 에로스

디오티마는 에로스가 아름답지 않을 뿐 아니라, 신(神)도 아니고, 정령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에로스는 중간적인 존재로서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을 통해 불멸을 꿈꾸는 혼의 노력으로 정의된다.

 

'그대는 지혜와 무지 사이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나요? 옳은 의견이야말로 그처럼 지혜와 무지 사이에 있는 것이라오... 마찬가지로 에로스도 아름답거나 좋지 못하다고 그대가 동의한다고 해서 그분이 추하고 나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것들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202b)'
'에로스는 위대한 정령(daimon)이에요.(202b). 방편이 없던 페니아[가난의 여신]가 포로스[방편의 신]의 아이를 갖기로 작정하고는 포로스 옆에 누워 에로스를 잉태했지요.'(203b)
'지혜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가운데 하나이고 에로스가 아름다운 것에 관련된 사랑이라면,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분이고 지혜를 사랑하는 분으로서 필연적으로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의 중간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204b)
'사랑하는 자들이 대체 어떤 방법으로 어떤 행위를 통해 사랑을 추구하기에 그들의 열성과 노력이 사랑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거죠? 그러한 활동의 목적은 몸과 관련해서도, 혼과 관련해서도 아름다운 것 안에서 생식(生植)하는 것이라오.(206b).. 필멸의 존재는 본성상 가능한 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는 원칙은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적용되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생식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 이런 현상은 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혼에도 일어나요.'(207e)
'신들의 사랑을 받고 불사의 존재가 되는 일에는 인간의 본성에 에로스보다 더 훌륭한 조력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 한다네.'(212b)

 

 소크라테스의 말 중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은 '무엇인가를 결여했을 때, 그것을 욕망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주변에는 결여되지 않았음에도 욕망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령, 우리집 딸아이의 경우 자신이 사탕을 10개 가지고 있더라도, 절대 아빠에게 사탕 1개 나누어 주지 않는다. 혼자 먹는다....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도 그런 경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끊임없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며, 수탈을 통해 확대재생산하려는 본능을 가진 거대자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반드시 '결핍'이 욕망의 전제조건은 아닌 듯하다.

 

 욕망의 전제조건은 '결핍'보다는 '탐욕'과 '이기심'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이러한 잘못된 전제하에 논의된 소크라테스의 '에로스론'은 잔치집에 찬물붓는 느낌을 준다. 그 외에 마치  '깔대기'처럼 무슨 이야기로 시작을 해도, 나중에는 '지혜사랑'으로 끝나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이제는 어느정도 뻔한 스토리가 되버린 것 같다. <향연>을 읽고나서, 소크라테스처럼 분위기를 깨는 사람은 되지 말자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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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01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향연................심포지움...^^..술이 있는 대화.어울려 마시는 거 ..좋쵸.ㅋ

겨울호랑이 2016-07-01 14:27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yureka01님 마침 불금이네요..ㅋ 비도 오고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오거서 2016-07-01 2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돈 있는 놈이 돈 걱정을 더 한다잖아요. 탐욕의 예가 되겠지요. 결여된 상태에서 욕망은 본능이겠지만 만족을 모르는 탐욕은 병이 아닐까요.

겨울호랑이 2016-07-01 20:34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오거서님 말씀하신대로 일반적으로는 결여의 상태에서 욕망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본능이겠지만 탐욕으로 인한 욕망은 비정상인 상태, 병인것 같습니다^^ 저는 단순히 욕망의 원인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원인의 상태까지는 고민을 못했네요 감사합니다^^
 
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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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죽음 직전 케베스와 심미아스와 논의한 내용이 담긴 대화편이다.

케베스의 질문 : 자살이 옳지 않은 이유

'소크라테스 선생님, 무슨 이유로 사람들은 자살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거죠?'(61e)
'신들은 우리의 수호자들이고, 우리들 인간은 신들의 소유물 가운데 하나라는 말은 옳은 것 같아.... 소유물이 죽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자네가 보내지도 않았는데 자네의 소유물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죽인다면 자네는 화나지 않을까?'(62c)

케베스의 재질문 : 철학자들의 죽음

케베스는 철학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모순된다며, 철학자들의 죽음에 대해 질문을 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통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으며, 철학자는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죽음이 철학자들이 추구한다는 반론을 편다.

'하지만, 그럴 경우 철학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기꺼이 죽을 것이라고 방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 가장 훌륭한 감독자들인 신들의 보살핌에서 벗어나면서도 언짢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으니까요.'(61d)
'그렇지만, 잘 알아두게, 내가 선하디선한 주인들인 신들 곁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있네..그래서 나는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후에는 어떤 미래가, 오래전부터 전해오듯 악인들보다는 선인들에게 훨씬 더 좋은 미래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낙관하는 것이라네.'(63c)
'죽음은 다름 아니라 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것이겠지?(64c) 대체로 자네는 철학자가 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되도록 몸에서 떨어져 혼을 지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인가?'(64e)
'혼은 언제 진리를 파악하는가?(65b) 어떤 실재가 어디에선가 혼에게 명확히 드러난다면 그것은 사유(思惟)속에서가 아닐까?'(65c)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 순수한 지식을 갖고자 한다면 몸에서 벗어나 대상 자체를 혼 자체로 관찰해야 한다는 사실이 실제로 밝혀진 셈이오.'(66d)
'철학자들의 관심사는 혼이 몸에서 풀려나고 분리되는 것, 바로 그것일세.'(67d)

케베스의 질문 : 혼에 관하여

케베스는 혼이 육체를 떠나면 사라진다고 말하자, 소크라테스는 죽음과 생성이 순환되며, 이러한 순환이 있기 위해서는 죽음 이후의 '되살아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혼이 몸을 떠난 뒤에는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사람이 죽는 그날 혼이 몸을 떠나자마자 파괴되고 해체된다고, 말하자면 혼은 몸 밖으로 나오면 숨결이나 연기처럼 흩어져 날아가버려 더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요.'(70a)

'죽은 사람들의 혼은 이승을 떠나 저승에 가 있다가 이승으로 돌아와 다시 태어난다는 거야.(70d)...그래서 대립되는 것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 대립되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 필연적인지 살펴보기로 하자는 말일세...(70e)... 자고 있는 것은 깨어 있는 것에서 생기고 깨어 있는 것은 자고 있는 것에서 생기네.(71d)... 되살아남과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어 있는 사람에게서 살아있는 사람으로의 생성과정이겠지?(72a)..만약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죽고, 죽은 뒤에는 죽은 상태로 머물며 되살않는다면, 종국에는 필시 모든 것은 죽어 있고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72d)

이 부분은 플라톤의 창조신인 '데미우르고스'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절대신이 아니라,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해야 이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이아닐까 생각된다. 유대교의 창조신 '야훼'는 말씀으로 세상을 만들었지만, '데미우르고스'는 '상태 변화'만 시켰기 때문에, 모두 죽으면 결국 순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데미우르고스'는 <티마이오스>에서 좀 더 자세히 봐야겠다.

심미아스의 질문 : 상기(想起)에 관하여

심미아스의 '상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지식'을 선천적으로 이미 가지고 있다는 논의를 편다.

'우리가 지금 상기하는 것은 언젠가 전에 우리가 배웠던 것임에 틀림없어요. 하지만 그런 일은 우리의 혼이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기 전에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해요.'(73a)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지식을 얻었다가 태어나는 순간 잃어버렸지만 나중에 적절한 감각 훈련을 통해서 전에 갖고 있는 지식을 되찾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전에 갖고 있던 지식을 되찾는 것이 아닐까?'(75e)
'그렇다면 심미아스, 우리의 혼은 사람의 모습을 취하기 전에도 몸과 떨어져 존재했고, 지혜도 갖고 있었겠구먼.(76c)'

소크라테스의 논리에 따르면, 절대적인 지식과 지혜가 있어서 우리 모두는 이것을 알고 있고, 배움을 통해 회상한다는 것을 기정 사실화한다.

'이제는 우리의 혼이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 못지않게 우리가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하네.'(77c)

소크라테스는 혼은 비가시적인 것으로 항상 '지혜'라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혼은 지혜로운 신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영원불멸인 신에게 가게 되고, 이에 따라 불멸한다고 주장한다.

'결합된 것과 본래 합성된 것은 합성된 부분에서 쉽게 분해될 것이네. 반면 합성되지 않은 것만은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것이네.'(78c)
'존재하는 것들을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두 종류로 설정하기를 원하는가?(79a) ...혼은 몸보다 비가시적인 것을 더 닮았고, 몸은 가시적인 것을 더 닮았네.(79b)...혼이 혼자서 고찰할 때는 순수하고 항상 존재하고 죽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의 영역으로 건너가서 이런 것과 동류인 까닭에 혼자 있거나, 혼자 있을 수 있을 때마다 늘 이런 것과 함께 한다네. 그러면 혼은 헤매기를 멈추고는 동류의 것과 접촉함으로써 변함없이 항상 같은 상태에 머문다네. 그리고 혼의 이런 상태가 '지혜'라고 불리겠지?(79d)'
'그러나 비가시적인 부분, 즉 혼은 그 자체처럼 고귀하고 순수하고 비가시적인 다른 곳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비가시적인 하데스의 나라로, 선하고 지혜로운 신의 면전으로 가게 되는데, 그런 자질과 본성을 지닌 혼이, 대중의 말처럼 몸을 떠나자마자 곧장 흩어지고 소멸하게 될까?'(80d)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들은 영혼이 사라질 것인가에 대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편다.

'오히려 철학자의 혼은 이성을 따르고 언제나 이성과 함께함으로써 그리고 의견의 대상이 아닌 참되고 신적인 것을 정관하고 양식으로 삼음으로써 그런 감정들에 초연해야 한다고 믿는다네. .. 그런 식으로 수련을 쌓은 혼이라면 몸에서 분리될 때 바람에 날려서 흩어져 없어지고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될까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걸세.'(84b)

심미아스와 케베스의 혼에 대한 의문

이에 대해 심미아스는 혼은 조화라고 주장하며, 케베스는 혼의 소멸이 죽음이라고 주장한다.

'심미아스는 혼이 비록 몸보다 더 신적이고 더 아름답긴 하지만 일종의 조화인 만큼 몸보다 먼저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네. 한편, 케베스는 혼이 몸보다 더 오래간다는 점에는 나에게 동의하지만, 혼이 수많은 몸을 잇달라 닳아 없어지게 한 뒤 결국에는 마지막 몸을 뒤로하고 스스로 소멸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몸은 계속해서 소멸하기를 멈추지 않는 만큼 이러한 혼의 소멸이야말로 죽음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네.'(91d)

심미아스에 대한 반론 : 혼은 조화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혼이 조화라면 구성요소들간에 상충되거나 부조화가 될 수 없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혼은 조화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조화가 그 구성요소들과 상반되게 움직인다거나 소리를 낸다거나 그 밖의 다른 짓을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네.(93a).... 혼도 그와 마찬가지여서, 어떤 혼은 미세한 정도로나마 다른 혼보다 더 혼이거나 덜 혼일 수 있을까?(93b)... 그렇다면 혼이 조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혼 안에 있는 미덕이나 사악함 같은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까?(93c) 혼이 만약 조화라면 올바른 추론에 의해 사악함을 전혀 내포하지 않을 걸세... 모든 생물의 모든 혼은 똑같이 선량할 것이네.(94a) 우리는 혼이 몸의 본능에 반대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네. 혼이 조화라면 긴장, 이완, 진동 등 구성요소들의 조건들과 상충되는 소리를 낼 수 없어 구성 요소들을 따를 뿐 지도하지는 못한다고 합의하지 않았던가?(94c) 호메로스는 틀림없이 혼을 몸의 느낌들을 지도하고 통제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조화보다 훨씬 더 신성한 것으로 여겼을 걸세.'(94e)

케베스에 대한 반론 : 혼은 불멸한다.

케베스의 논리에 반박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이데아'에 대해 정의한다.

'몇몇 경우 형상(이데아)이라는 이름은 형상 자체뿐만 아니라, 형상은 아니지만 형상의 특징을 띨 수밖에 없는 다른 것에도 영원히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네.'(103e)
'대립되는 것만이 대립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점유하는 것 속으로 대립되는 것과 동행하는 것도 있는데, 대립되는 것과 동행하는 것 역시 자신이 동행하는 것에 대립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네. 5는 짝수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배수인 10은 홀수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네.'(105a)

소크라테스는 혼은 '생명'이라는 이데아가 있기 때문에, 결국 혼은 불멸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케베스를 반박한다.

'무엇이 들어 있기에 몸이 살아있는가? 혼이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혼은 무엇을 점유하든 항상 그것에 생명을 가져다 주는가? 생명에 대립되는 것은 뭐지? 죽음이지요. 혼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겠지?네,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렇다면 혼은 죽지 않네.' (105d)

<파이돈>에서는 영혼불멸, 상기론, 이데아론이 종합적으로 제시된다. 소크라테스의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맞는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정의를 달리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심미아스에 대한 반론 (혼은 조화다) 중 소크라테스는 '모든 혼은 선하다'라고 말하며, '미덕은 조화로, 사악함은 부조화'로 해석한다.(93d) 그렇지만, 만일 혼의 속성을 말한다면 '미덕과 사악함의 조화'라고 정의하는 편이 보다 더 정확하지 않을까?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내용 - 혼의 단일한/절대적 속성- 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것 같다.

케베스에 대한 반론(혼은 불멸한다) 중 소크라테스는 '혼'은 생명의 이데아를 가지고 있다고 정의한다. 이미 '혼'안에 생명이 포함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전제 속에 더이상의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을 '혼과 몸이 결합되어 활동하는 상태'라고 합의하고 논의를 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논리는 더 진행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의 당부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미덕과 지혜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네. 그 상(賞)은 아름답고, 희망 또한 크기 때문일세.(114d) ... 절제, 정의, 용기, 자유, 진리 같은 혼 자체의 장식물로 장식한 다음 운명이 부르면 언제든 저승으로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혼에 대해 안심할 수 있다네.'(115a)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나타난 대화편으로, 초기 대화편들의 핵심요약정리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한층 플라톤 사상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갈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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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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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톤>은 사형 선고 이틀 전 친구 크리톤과 소크라테스간 이루어진 대화다. 

 

먼저,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유한다.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의 입장과 평판, 경제적 부담, 탈출 후 처신, 자기 자식들의 교육 문제 등 여러 면에서 걱정하겠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득한다.

 

 '자네와 내가 당할 불행이 한 가지가 아닐세. 나는 두 번 다시는 구하지 못할 친구를 잃을 뿐 아니라, 자네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돈을 썼더라면 자네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테니 말일세.'(44c)

 '자네를 구출해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겠다는 사람들에게는 큰돈을 주지 않아도 되니까.... 또한 자네가 아테나이를 떠나면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한 자네의 법정 진술에도 신경 쓰지 말게..... 또한 소크라테스, 자네는 구출될 수 있는데도 자포자기하려고 하는데, 나는 자네의 그런 행위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네.... 게다가 내가 보기에, 자네가 하는 짓은 자네 아들들을 배신하는 행위인 거 같네. 자네 아들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킬 능력이 있는데도 자네가 그 애들을 버리고 그 애들 곁을 떠나니 말일세.'(45d)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전문가의 권위가 대중의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의 의견들은 존중하되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은 존중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옳은 말이라고 생각되지 않나?'(47a)
'체력 단련을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칭찬이나 비난이나 의견에 신경 써야 하는가, 아니면 단 한 사람, 즉 의사나 트레이너의 칭찬과 비난과 의견에 신경 써야 하는가?'(47b)

 

이이서, 소크라테스는 '국법'과 '국가'를 의인화시켜 소크라테스의 도주가 불의하다며 비난하는 내용으로 크리톤을 논박한다.

 

'불의한 짓을 저지르는 것도, 불의한 짓을 앙갚음하는 것도, 해를 입은 사람이 앙갚음으로 자기를 지키는 것도 결코 옳지 못하다는 전제를 우리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겠는지 말일세.... 어떤 사람이 누구에게 정당한 것을 약속했을 때 그것을 이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약속을 어겨도 좋은가?'(49e)
'우리가 이곳에서 도주할 채비를 하고 있을 때 국법과 국가 공동체가 다가와 우리를 막아서며 다음과 같이 묻는다고 가정해보세. "소크라테스, 이런 일을 기도함으로써 그대는 우리둘을, 즉 국법과 국가 전체를 파괴할 작정인가?"'(50a)
'그대는 시민으로서의 모든 활동에서 우리들 국법을 준수하기로 합의해놓고 계약조건과 합의사항을 어기고 도주하려고 기도하는데, 그것은 가장 천한 노예나 할법한 짓이라네.'(52d)
 
이렇게 해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소크라테스의 말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대중의 의견보다 권위있는 전문가 한 사람이 더 옳다면 그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47b)면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한 대중(아테나이 배심원들)보다, 전문가(양심에 따라 행동한 소크라테스)의 말에 따라 판결에 불복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적어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을테니까.)

 그리고, 여태까지 국가나 국법이 옳다고 하더라도, 특정사안에 있어서는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다른 내용에 대해 불만없이 합의했기 때문에,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불만없이 따라가야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다분히 개인보다 국가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전체주의'적인 시각이라 생각된다.

 

 <크리톤>은 짧은 대화편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플라톤의 '엘리트주의(대중보다 전문가의견 중요)'와 '전체주의(국가 공동체 중시)'가 아주 잘 나타난 대화편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크리톤>의 논리 전개로 볼때, 플라톤에게 있어 '엘리트 주의'는 '전체주의'를 위한 기본 조건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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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6-06-30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채링 크로스 84번지를 읽고 플라톤을 한번 읽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리뷰쓰신 것 보니까 역시 어렵네요. 대화 한마디 한마디를 고민해보며 읽으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어요. 그래도 언제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ㅎㅎ

겨울호랑이 2016-06-30 10:5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북깨비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도움이 될까 해서 적어봅니다. 저도 처음에는 머리에 하나도 안들어왔는데 러셀의 「서양철학사」로 줄기를 잡고 다시 읽으니 조금 낫네요. 한번 고려해 보셔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제 코가 석자라 좀 부끄럽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syo 2016-06-30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더 어려웠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6-30 11:1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syo님 감사합니다. 사실은 저도......ㅋㅋ 지금도 플라톤을 보며 내 머리는 돌인가보다고 절망하고 지내요. 그래도 아마 몇 번 들여다보니 돌에 글이 새겨져 비석이 되듯이 좀 나아진것 같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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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스스로를 변론한 글.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 아뉘토스, 뤼콘으로부터 고발을 당한다. 첫번 째 고발내용은 다음과 같이, `자연철학`에 관심이 있으며, 이를 가르친다는 고발이다.

`소크라테스는 주제넘게도 지하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을 탐구하고 사론을 정론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침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습니다.`(19b)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자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으로 자신을 변론한다.

`그런 종류의 지식을 폄하하려고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테나이인 여러분, 그런 주제들은 실제로 내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19d)`
`아테나이인 여러분, 내가 이런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어떤 지혜 때문입니다. 그게 어떤 지혜냐고요? 그것은 아마도 인간적인 지혜일 것입니다.`(20d)

동시에, 소크라테스 자신이 생각하는 소크라테스가 미움을 받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한다.

`나는 그와 대화해보고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그 자신에게 지혜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21c)
`나는 분명 저 사람보다는 더 지혜로워. 우리 둘 다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을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그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모르면 모른다고 생각하니까.`(21d)

두번 째 고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새로운 신을 섬긴다는 내용의 고발이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인정하는 대신 다른 새로운 신들을 믿음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24b)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행하는 일은 델포이 신탁에 의한 것이며(21a), 자신은 신의 뜻에 따라 이 일을 행단다고 말한다.`(30e)

`내가 미움을 산다는 것을 알고 슬프고 두렵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신에 관한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21e)
`신만이 진정한 현자이며, 신께서는 그 신탁을 통해 인간의 지혜란 별로 또는 전혀 가치가 없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23a)
`내가 하는 일이래야 돌아다니며 노소를 막론하고 여러분의 몸과 재산이 아니라, 여러분 혼의 최선의 상태에 관심을 쏟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도록 여러분을 설득하는 것이 전부이니까요.`(30b)

사형 선고를 받은 후에는 `죽음`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말하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변론을 마친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혜롭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음이 인간에게 사실은 최대의 축복이 아닌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29a)
`죽음은 둘 중 하나입니다. 죽음은 일종의 소멸이어서 죽은 자는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말하듯 죽음은 일종의 변화이고 혼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주하는 것입니다.`(40c)

소크라테스의 생애는 여러가지 면에서 예수와 비교된다.
혼란한 시대 속에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다가, 반대자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지만, 후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주목한 학자들에 의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학자들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소크라테스를 굳이 비교한다면 예수보다 `세례자 요한`과 비교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등에의 자극이 필요한 말에게 배정되듯, 신에 의해 이 도시에 배정된 것입니다.`(30e)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복음 1:27)`

예수를 `로고스`로 규정한 <요한 복음>저자의 시각과, 자신을 `신`이 아닌 `등에`로 비유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함께 본다면 `세례자 요한`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하는 짧은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개인적으로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42a)

소크라테스는 이 말처럼 선고를 받고 한 달 후에 독배를 마시고 죽는다. 반면, 많은 아테나이인들은 그보다 더 오래 살았을 것이지만, 소크라테스는 그가 말한 대로 `불멸의 영혼`이 되어 우리에게 인식되는 반면, 많은 아테나이인들은 잊혀지고 말았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서 <파이드로스>에서 언급한 `혼의 불멸성`과 `에로스`의 의미를 입증하게 된다.(이 부분은 예수와 연관성이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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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30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은 플라톤의 모든 책들을 독파하실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6-06-30 17: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아이구 아닙니다...읽기는 하는데 제것이 되어야 말이지요... 그저 한 번 익숙해지겠다는 생각으로 보고 있어요..ㅜ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