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끝에 B형 예약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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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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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800페이지에 육박하는 산문집. 아무말 대잔치인데 그 와중에 문장이 어찌나 수려한지. 표지의 색감은 고급스럽고 (feat. 은은한 등불💡아래 금빛으로 빛나는 제목 ✨) 아마도 감성 가득한 번역과 (나는 포르투갈어를 모르지만 눈길이 가는 문장이 많아 그리 짐작해 본다.) 1~3 페이지 정도의 너무 길지 않은 산문이 주는 적당한 호흡. 무엇보다 정리가 하나도 되지 않은 내 머릿속 같은 산만함이 마음을 끈다. 염세주의와 허무주의로 가득차 있지만 그 서글픔을 아름다운 시로 쓴 산문같은 글.

나는 도시의 거리에 고인 긴 여름 저녁의 고요를 사랑한다.- P28

거리가 자아내는 느낌과 비슷한 삶의 느낌들이 산책 내내 나와 동행한다.- P28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이 악해서가 아니라 단지 외투의 단추를 풀고 지갑을 꺼내기 귀찮아서 거지에게 적선을 베풀지 않은 것처럼, 삶은 나를 그렇게 대했다.- P32

예술은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지만, 예술 덕분에 인생을 살기가 실제로 더 쉬워지는 건 아니다.- P39

내 영혼에는 마치 성가신 아이와 같은 짐스러운 조급함이 달라붙어 있다. 그것은 쉬지 않고 자라나는 동일한 성질의 불안이다. 모든 것이 나를 옭아매지만, 아무것도 나를 붙들어주지는 못한다.- P40

고백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고, 고백을 해서 유용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란 모든 이에게 일어나거나, 혹은 우리에게만 일어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첫 번째 경우라면 새로울 것이 없고, 두 번째 경우라면 타인들을 납득시킬 수가 없다.- P42

결코 완성되지 않는 작품은 졸작에 불과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아예 시작도 하지 않은 작품보다 더 졸작일 수는 없다! 완성된 작품은 최소한 탄생이라도 했다. 분명 대단한 명작은 아닐 것이나 그래도 노쇠한 내 이웃여자의 유일한 화분에 심어진 화초처럼, 초라하게나마 살아가고는 있는 것이다. 그 화초는 이웃여자의 기쁨이다. 그리고 종종 내 기쁨이 되기도 한다. 내가 쓰는 글, 나는 그것이 형편없음을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을 읽은 한두 명의 상처 입은 슬픈 영혼은, 한순간이나마 더욱 형편없는 다른 일을 망각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내가 만족하는가 만족하지 않는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내 글은 어떤 방식으로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생 전체가 그러하듯이.- P45

그러나 삶의 아름다움을 말 속에 포착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나날은 항상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다운 나날을 풍요로운 어휘와 찬란한 기억 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어느 날엔가 텅 비고 허무한 바깥세상의 공허한 들판과 하늘에 화사한 꽃과 별들을, 아름다운 날에 그랬던 것처럼 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P64

나는 눈을 감은 채, 잠들지 않았다면 내가 계속해서 했을 말들을, 마치 고양이처럼 쓰다듬는다.- P65

들판의 그늘 속에서 우리는 내면을 향해 몸을 수그리고, 우리 자신이라는 문 없는 집 안에서 힘겹게 스스로를 지킨다. 저녁이 시작되면 석양은 서서히 펼쳐지는 부채처럼 번져 나가고, 아직은 낮의 사물들 한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이제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싹튼다.
그러나 노동은 사그라드는 법이 없다. 노동은 저절로 더욱 활기를 띤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일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우리에게 선고된 행위 안에서 모종의 휴식을 발견하는 단계에 이른다.- P75

나는 다른 이들의 나 아님이란 성격을 질투한다. 모든 불가능 중에서 가장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것은 내 일상의 욕망이 되었고, 모든 슬픔의 시간을 채우는 좌절이 되었다.- P83

빗소리에서 정적이 피어난다. 정적은 회색빛 단조로운 크레셴도를 이루며 내가 바라보고 있는 좁은 거리 가득히 퍼져간다.- P89

내 삶의 모든 때늦은 통한이 멍한 내 시선 앞에서, 그동안 매일매일 수많은 예상치 못한 순간을 위해 늘 입고 다녔던 자연스러운 명랑함이란 의복을 벗는다. 나는 종종 기쁘고 만족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슬픔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는다.- P89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이 그리워 가슴이 터질 듯하다.- P105

그들의 눈에 내가 그렇게 보이듯이 내 눈에도 그들은, 우리들 공통의 불행인 자신과의 불화를 힘겹게 끌고 가는 신세로 보인다.- P122

우리는 현실에 대해 작은 오해를 재료로 하여 믿음을 상상하며 희망을 지어 올리고, 마치 가난한 아이들이 공상의 놀이를 하듯이 빵껍질을 케이크라고 부르며 그것을 먹고 살아간다.- P135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이, 설사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나에게 시적인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P179

오 죽어버린 지난날이여.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으나 오직 내 안에서만 살아 있었던 날들이여! 작은 시골집 정원에 피어난 꽃, 그러나 그 집은 오직 내 안에서만 존재했구나! 채마밭과 과수원, 농장에 딸린 작은 소나무 재배지, 그 모두는 단지 내 꿈에 불과했구나! 상상의 여름 휴가, 시골 풍경을 즐기는 느린 산책길, 그것은 실제로는 단 한번도 있지 않았구나! 길가의 나무들, 들판 가운데로 난 길, 바위들, 지나가는 농부들… 오직 꿈인 것들, 내 기억 속에 새겨진 상상의 그림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리고 나 자신, 그런 것들을 꿈꾸느라 많은 세월을 몽상으로 보낸 나는, 이제 내가 꿈꾸었던 것들을 추억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나는 꿈을 그리워하며, 과거의 꿈을 생각하며 운다. 현실의 삶은 단지 죽음이다. 삶은 관 속에 누운 채 장례식을 기다린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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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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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뜨뜻미지근한 스토리가 각광을 받는지 왜 사람들이 레이먼드 카버에 열광하는지 몇 년 전에는 음 🙄..

다시 읽어 보니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을 좀 더 두고 보면 더 많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물을 많이 넣고 끓인 수프같은 맛이랄까.. 자극적인 것들에 길들어진 내 입에 아직 이런 건강식은 가당치 않을지도.

[대성당]
눈으로만 볼 줄 아는 우리의 좁은 시야가 맹인의 확 트인 시야로 열린다는 역설. 기차를 타고 가면서 허드슨강의 풍광을 잘 보려면 어느쪽에 앉는게 낫네 어쩌네 헛소리를 할 때만 해도 이 질투심에 눈 먼 밴댕이 소갈딱지 남편이 또 뭔 말실수를 할까 봐 조마조마 했더니 의외로 대성당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심하고 귀여워. ㅋㅋ

[깃털들]
뭐지.. 그냥 우리네 사는게 다 비슷하단 소리인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전에 빨간 책방에서 이동진님이 읽어 주시는 걸 들었을 때는 빵집주인이 막 죽이고 싶게 밉더니 지금 다시 (책으로는 처음) 읽으니까 눈물이 고인다. 위로가 되는 것은 그때그때 다른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는건 병원 측 과실 아닌가..)

[비타민]
귀에 대한 김연수님의 해석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 시간을 두고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나머지 단편들도 시간을 내서 마저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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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7-28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놓고 언젠가 읽으려고 합니다. 꼭 고전이라서라기 보다는 그냥 어떤 책은 한번에 다가오지 않을 때도 있고 어느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읽는 날 가슴에 콱 박히기도 하는 것 같아요

북깨비 2020-07-28 09:50   좋아요 0 | URL
전체적으로 좀 가라앉는 분위기라 차마 재밌다고 말씀드리진 못하겠고.. 제가 단편쪽은 아직 많이 안 읽어봤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단편은 체호프가 정말 으뜸인 것 같다고 저는 왜 댓글 달아주신 것에 아무런 상관없는 체호프를 소환해 영업을 하고 있는 걸까요 🤣

transient-guest 2020-07-28 10:45   좋아요 1 | URL
저도 체호프 아주 좋아합니다 단편의 왕이라고 할만큼 아주 재밌게 봤어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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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관리의 죽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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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분께 침이 튀었군!> 체르바꼬프는 잠시 생각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부서의 장관님이시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용서를 구해야겠어.> p.11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마음에 걸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으니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나는 이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이 관리는 자신이 범한 실수가 마음에 걸려 상대에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차례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실상은 관리 자신이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 장관이 관리에게 좀 더 확실하게 용서를 표현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관리는 용서따위(?)로는 절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관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서가 아니라 그 일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는 것. 장관에게 침이 튀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했고,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가 없고, 따라서 관리는 용서를 받든 받지 못하든 죽었을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돌이키고 싶은 일들도 생긴다. 실수를 했을 때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올바른 행동이다. 하지만 아무리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아도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그에 합당한 죄값을 치르고 나면 종국에는 자기 자신도 용서해 주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자기 자신의 죄를 용서함을 이야기하면 전도연 주연의 영화 밀양을 떠올라 조심하게 되는데 (직접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그런 식의 용서를 말하고 있는게 아니다.)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되지 않음으로 살면서 내 실수나 잘못을 깨달았을때 혹은 누군가가 내게 실수나 잘못을 범했을때 어떻게 올바르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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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 자토의 소소한 자취 일기
자토 글.그림 / 시공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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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만에 읽은 것 같아요. 자토님 다른 책 한 권 더 주문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산책 중’). ‘우리들은 원래 더 귀여웠다’로 알게 된 작가님인데 비슷한 느낌의 작가님 중에는 도대체님, 정우열님이 계십니다. 세 분 다 느낌이 아주 밝아요. 지금 저는 인간미 넘치는 소비를 하고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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