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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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죽음 직전 케베스와 심미아스와 논의한 내용이 담긴 대화편이다.

케베스의 질문 : 자살이 옳지 않은 이유

'소크라테스 선생님, 무슨 이유로 사람들은 자살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거죠?'(61e)
'신들은 우리의 수호자들이고, 우리들 인간은 신들의 소유물 가운데 하나라는 말은 옳은 것 같아.... 소유물이 죽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자네가 보내지도 않았는데 자네의 소유물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죽인다면 자네는 화나지 않을까?'(62c)

케베스의 재질문 : 철학자들의 죽음

케베스는 철학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모순된다며, 철학자들의 죽음에 대해 질문을 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통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으며, 철학자는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죽음이 철학자들이 추구한다는 반론을 편다.

'하지만, 그럴 경우 철학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기꺼이 죽을 것이라고 방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 가장 훌륭한 감독자들인 신들의 보살핌에서 벗어나면서도 언짢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으니까요.'(61d)
'그렇지만, 잘 알아두게, 내가 선하디선한 주인들인 신들 곁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있네..그래서 나는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후에는 어떤 미래가, 오래전부터 전해오듯 악인들보다는 선인들에게 훨씬 더 좋은 미래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낙관하는 것이라네.'(63c)
'죽음은 다름 아니라 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것이겠지?(64c) 대체로 자네는 철학자가 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되도록 몸에서 떨어져 혼을 지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인가?'(64e)
'혼은 언제 진리를 파악하는가?(65b) 어떤 실재가 어디에선가 혼에게 명확히 드러난다면 그것은 사유(思惟)속에서가 아닐까?'(65c)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 순수한 지식을 갖고자 한다면 몸에서 벗어나 대상 자체를 혼 자체로 관찰해야 한다는 사실이 실제로 밝혀진 셈이오.'(66d)
'철학자들의 관심사는 혼이 몸에서 풀려나고 분리되는 것, 바로 그것일세.'(67d)

케베스의 질문 : 혼에 관하여

케베스는 혼이 육체를 떠나면 사라진다고 말하자, 소크라테스는 죽음과 생성이 순환되며, 이러한 순환이 있기 위해서는 죽음 이후의 '되살아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혼이 몸을 떠난 뒤에는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사람이 죽는 그날 혼이 몸을 떠나자마자 파괴되고 해체된다고, 말하자면 혼은 몸 밖으로 나오면 숨결이나 연기처럼 흩어져 날아가버려 더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요.'(70a)

'죽은 사람들의 혼은 이승을 떠나 저승에 가 있다가 이승으로 돌아와 다시 태어난다는 거야.(70d)...그래서 대립되는 것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 대립되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 필연적인지 살펴보기로 하자는 말일세...(70e)... 자고 있는 것은 깨어 있는 것에서 생기고 깨어 있는 것은 자고 있는 것에서 생기네.(71d)... 되살아남과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어 있는 사람에게서 살아있는 사람으로의 생성과정이겠지?(72a)..만약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죽고, 죽은 뒤에는 죽은 상태로 머물며 되살않는다면, 종국에는 필시 모든 것은 죽어 있고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72d)

이 부분은 플라톤의 창조신인 '데미우르고스'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절대신이 아니라,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해야 이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이아닐까 생각된다. 유대교의 창조신 '야훼'는 말씀으로 세상을 만들었지만, '데미우르고스'는 '상태 변화'만 시켰기 때문에, 모두 죽으면 결국 순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데미우르고스'는 <티마이오스>에서 좀 더 자세히 봐야겠다.

심미아스의 질문 : 상기(想起)에 관하여

심미아스의 '상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지식'을 선천적으로 이미 가지고 있다는 논의를 편다.

'우리가 지금 상기하는 것은 언젠가 전에 우리가 배웠던 것임에 틀림없어요. 하지만 그런 일은 우리의 혼이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기 전에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해요.'(73a)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지식을 얻었다가 태어나는 순간 잃어버렸지만 나중에 적절한 감각 훈련을 통해서 전에 갖고 있는 지식을 되찾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전에 갖고 있던 지식을 되찾는 것이 아닐까?'(75e)
'그렇다면 심미아스, 우리의 혼은 사람의 모습을 취하기 전에도 몸과 떨어져 존재했고, 지혜도 갖고 있었겠구먼.(76c)'

소크라테스의 논리에 따르면, 절대적인 지식과 지혜가 있어서 우리 모두는 이것을 알고 있고, 배움을 통해 회상한다는 것을 기정 사실화한다.

'이제는 우리의 혼이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 못지않게 우리가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하네.'(77c)

소크라테스는 혼은 비가시적인 것으로 항상 '지혜'라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혼은 지혜로운 신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영원불멸인 신에게 가게 되고, 이에 따라 불멸한다고 주장한다.

'결합된 것과 본래 합성된 것은 합성된 부분에서 쉽게 분해될 것이네. 반면 합성되지 않은 것만은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것이네.'(78c)
'존재하는 것들을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두 종류로 설정하기를 원하는가?(79a) ...혼은 몸보다 비가시적인 것을 더 닮았고, 몸은 가시적인 것을 더 닮았네.(79b)...혼이 혼자서 고찰할 때는 순수하고 항상 존재하고 죽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의 영역으로 건너가서 이런 것과 동류인 까닭에 혼자 있거나, 혼자 있을 수 있을 때마다 늘 이런 것과 함께 한다네. 그러면 혼은 헤매기를 멈추고는 동류의 것과 접촉함으로써 변함없이 항상 같은 상태에 머문다네. 그리고 혼의 이런 상태가 '지혜'라고 불리겠지?(79d)'
'그러나 비가시적인 부분, 즉 혼은 그 자체처럼 고귀하고 순수하고 비가시적인 다른 곳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비가시적인 하데스의 나라로, 선하고 지혜로운 신의 면전으로 가게 되는데, 그런 자질과 본성을 지닌 혼이, 대중의 말처럼 몸을 떠나자마자 곧장 흩어지고 소멸하게 될까?'(80d)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들은 영혼이 사라질 것인가에 대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편다.

'오히려 철학자의 혼은 이성을 따르고 언제나 이성과 함께함으로써 그리고 의견의 대상이 아닌 참되고 신적인 것을 정관하고 양식으로 삼음으로써 그런 감정들에 초연해야 한다고 믿는다네. .. 그런 식으로 수련을 쌓은 혼이라면 몸에서 분리될 때 바람에 날려서 흩어져 없어지고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될까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걸세.'(84b)

심미아스와 케베스의 혼에 대한 의문

이에 대해 심미아스는 혼은 조화라고 주장하며, 케베스는 혼의 소멸이 죽음이라고 주장한다.

'심미아스는 혼이 비록 몸보다 더 신적이고 더 아름답긴 하지만 일종의 조화인 만큼 몸보다 먼저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네. 한편, 케베스는 혼이 몸보다 더 오래간다는 점에는 나에게 동의하지만, 혼이 수많은 몸을 잇달라 닳아 없어지게 한 뒤 결국에는 마지막 몸을 뒤로하고 스스로 소멸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몸은 계속해서 소멸하기를 멈추지 않는 만큼 이러한 혼의 소멸이야말로 죽음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네.'(91d)

심미아스에 대한 반론 : 혼은 조화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혼이 조화라면 구성요소들간에 상충되거나 부조화가 될 수 없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혼은 조화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조화가 그 구성요소들과 상반되게 움직인다거나 소리를 낸다거나 그 밖의 다른 짓을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네.(93a).... 혼도 그와 마찬가지여서, 어떤 혼은 미세한 정도로나마 다른 혼보다 더 혼이거나 덜 혼일 수 있을까?(93b)... 그렇다면 혼이 조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혼 안에 있는 미덕이나 사악함 같은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까?(93c) 혼이 만약 조화라면 올바른 추론에 의해 사악함을 전혀 내포하지 않을 걸세... 모든 생물의 모든 혼은 똑같이 선량할 것이네.(94a) 우리는 혼이 몸의 본능에 반대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네. 혼이 조화라면 긴장, 이완, 진동 등 구성요소들의 조건들과 상충되는 소리를 낼 수 없어 구성 요소들을 따를 뿐 지도하지는 못한다고 합의하지 않았던가?(94c) 호메로스는 틀림없이 혼을 몸의 느낌들을 지도하고 통제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조화보다 훨씬 더 신성한 것으로 여겼을 걸세.'(94e)

케베스에 대한 반론 : 혼은 불멸한다.

케베스의 논리에 반박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이데아'에 대해 정의한다.

'몇몇 경우 형상(이데아)이라는 이름은 형상 자체뿐만 아니라, 형상은 아니지만 형상의 특징을 띨 수밖에 없는 다른 것에도 영원히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네.'(103e)
'대립되는 것만이 대립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점유하는 것 속으로 대립되는 것과 동행하는 것도 있는데, 대립되는 것과 동행하는 것 역시 자신이 동행하는 것에 대립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네. 5는 짝수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배수인 10은 홀수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네.'(105a)

소크라테스는 혼은 '생명'이라는 이데아가 있기 때문에, 결국 혼은 불멸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케베스를 반박한다.

'무엇이 들어 있기에 몸이 살아있는가? 혼이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혼은 무엇을 점유하든 항상 그것에 생명을 가져다 주는가? 생명에 대립되는 것은 뭐지? 죽음이지요. 혼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겠지?네,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렇다면 혼은 죽지 않네.' (105d)

<파이돈>에서는 영혼불멸, 상기론, 이데아론이 종합적으로 제시된다. 소크라테스의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맞는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정의를 달리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심미아스에 대한 반론 (혼은 조화다) 중 소크라테스는 '모든 혼은 선하다'라고 말하며, '미덕은 조화로, 사악함은 부조화'로 해석한다.(93d) 그렇지만, 만일 혼의 속성을 말한다면 '미덕과 사악함의 조화'라고 정의하는 편이 보다 더 정확하지 않을까?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내용 - 혼의 단일한/절대적 속성- 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것 같다.

케베스에 대한 반론(혼은 불멸한다) 중 소크라테스는 '혼'은 생명의 이데아를 가지고 있다고 정의한다. 이미 '혼'안에 생명이 포함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전제 속에 더이상의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을 '혼과 몸이 결합되어 활동하는 상태'라고 합의하고 논의를 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논리는 더 진행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의 당부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미덕과 지혜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네. 그 상(賞)은 아름답고, 희망 또한 크기 때문일세.(114d) ... 절제, 정의, 용기, 자유, 진리 같은 혼 자체의 장식물로 장식한 다음 운명이 부르면 언제든 저승으로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혼에 대해 안심할 수 있다네.'(115a)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나타난 대화편으로, 초기 대화편들의 핵심요약정리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한층 플라톤 사상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갈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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