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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연구 ㅣ b판고전 17
니시다 기타로 지음, 윤인로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9년 10월
평점 :
선(善)이란 한마디로 말해 인격의 실현이다. 이를 내부에서 보면 진지한 요구의 만족 곧 의식통일이고 그 극한은 자기와 타자가 서로의 경계를 잊고 주체와 객체가 함께 가라앉는 곳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외부로 드러나는 사실로서 보면 작은 것은 개인성의 발전에서 나아가 인류 일반의 통일적 발달에 이르러 그 정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_ 니시다 기타로, <선의 연구> , p237
니시다 기타로 (西田幾多郞, 1870 ~ 1945)는 <선의 연구 善の硏究>에서 인격의 실현으로서 ‘선‘을 말한다. 기타로는 본문을 통해 직접 경험인 ‘순수경험‘으로 부터 시작된 주관과 객관, 수동과 능동, 의지와 지식의 통일을 강조한다. 다만, 기타로가 말한 이러한 통일의 중심은 외부인 물(物)이 아닌 내면에 있다는 점에 다른 사상들과 구별된다.
진리는 통일에 있는 것이되 그 통일이란 추상적 개념의 통일을 말하는 것이 아닌바, 진리의 통일은 그와 같은 직접적 사실에 있는 것이다. 완전한 진리는 개인적이고 현실적이다. 모든 진리의 표준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의 순수경험의 상태에 있으며 진리를 안다는 것은 그런 상태에 일치한다는 것이다. _ 니시다 기타로, <선의 연구> , p52
우리는 결코 단순의 의지의 결정이나 해결 같은 내면적 통일의 상태에만 머무는 것은 아닌데, 의지의 결정은 말할 것도 없이 실행이 뒤따르는 것이고 무언가 실천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상 또한 반드시 실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안 되는, 곧 순수경험의 통일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순수경험의 사실이란 우리들 사상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이다. _ 니시다 기타로, <선의 연구> , p36
니시다 기타로의 <선의 연구>에서 우리는 칸트, 헤겔, 마르크스, 흄, 버클리, 아우구스티누스, 베르그송 등 여러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함께 만나게 된다. 그들의 용어와 사상을 동양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했다는 점이 사상가로서 그가 남긴 업적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본문의 아래 구절은 <중용中庸> 24장 지성지도(至誠之道)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런 면에서 그는 사상가로서 서양사상과 동양사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만, 탈아입구( 脫亞入歐)를 강조하던 근대일본지식인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그에게 내면은 서양사상이겠지만. 여기까지만 보면, 기타로는 시대를 앞선 통섭(通涉, consilience)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의 사상이 정치철학으로 확장시키면서 발생한다.
우리들 인격 전체의 요구는 우리들이 아직 사려/분별하지 않는 직접경험의 상태에서만 자각할 수 있다. 그런 경우에 인격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발현해 나오며 서서히 마음 전체를 포용하는 일종의 내면적 요구의 목소리이다. 지극한 성실至誠은 선행에 결여되어서는 안 되는 주요 조건이다. _ 니시다 기타로, <선의 연구> , p223
기타로의 선(善), 인격의 실현은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가 말한 실천이성의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에 머무르지 않는다. 통합 이전에 발생하는 격렬한 대립과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실체는 변증법적으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게 되는데 마치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의 <정신현상학 精神現象學, Phanomenologie des Geistes>에서처럼 개인의식은 가족, 국가, 세계로 확산된다.
나는 개인의 선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서 다른 모든 선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된 위인이란 그 사업이 위대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강대한 개인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개인주의와 공동주의가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 그 둘이 일치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이 제각기 충분히 활동하고 그 천품을 발휘할 때야말로 비로소 사회가 진보하는 것이다. _ 니시다 기타로, <선의 연구> , p229
마치 칸트의 인식론을 동양적으로 해석하고, 개인의 통합된 의식을 세계정신으로 확대시키는 헤겔의 틀을 도입한 느낌을 주는 기타로의 철학. 얼핏 보면,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지만 그가 속한 교토학파(京都學派)가 훗날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1910년대 쓰여진 <선의 연구> 안의 결론 부분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들의 사회적 의식의 발달은 가족과 같은 작은 단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정신적/물질적 생활은 모두 각각의 우리들의 사회적 단체에서 발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가족에 뒤이어 우리들의 의식활동 전체를 통일하는 것이자 한 인격의 발현으로도 간주해야 하는 것은 국가이다... 우리들 개인은 오히려 한 사회의 세포로서 발달해왔던 것이다. 국가의 본체는 우리들 정신의 근저인 공동적 의식의 발현이다. 우리는 국가에서 인격의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국가는 통일된 하나의 인격이고 국가의 제도/법률은 그러한 공동의식의 의지의 발현이다. _ 니시다 기타로, <선의 연구> , p235
신은 우주의 근본이고 겸하여 우리의 근본이어야 한다. 우리들이 신에게 돌아가는 것은 그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또 신은 만물의 목적이기에 곧 인간의 목적이어야 하는 것으로, 인간은 제각기 신에게서 자신의 참된 목적을 발견하는 것이다(p254)... 신과 인간의 본성을 동일하게 하고 인간이 신에게서 그 뿌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모든 종교의 근본적 사상인 바, 그것에 기초함으로써만 비로소 참된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_ 니시다 기타로, <선의 연구> , p255
일왕을 정점으로 하는 일본군국주의의 기원을 <선의 연구>에서 발견한다는 것은 어쩌면 과도한 해석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반성없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선‘은 제국주의 침략자로서의 순수경험이고, 이를 통한 역사해석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기에, 그들의 사상적 기반인 기타로의 내적 주관주의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순수경험은 직접 경험과 동일하다. 자기의 의식 상태를 직접 바로 그 아래에서 즉각적으로 경험했던 때, 아직 주(관)도 아니고 객(관)도 아닌 지식과 그 대상은 완전히 합일하고 있다. 그것이 경험의 가장 순연한 상태이다. _ 니시다 기타로, <선의 연구> , 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