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사상과 종교공부 -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하여
백낙청 외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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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말하는 개벽은 물론 후천개벽인데, 이는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린 '선천개벽' 같은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일어나는 근본적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대변혁을 '후천개벽'으로 규정하고 추진한 것은 유독 한반도에서 시작된 현상이요 사건이다. _ 백낙청 외,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p6


 <개벽사상과 종교공부>는 근대성(modernity)이 가져온 여러 폐해들을 극복하기 위한 사상을 종교(宗敎)에서 찾는다.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동학과 이를 계승한 천도교, 원불교의 사상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저자들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찾아간다. 서구에서 '자본-과학-종교'가 융합되어 제국주의라는 형태로 주변을 침탈했던 시기에, 이들에 대항하는 민족종교에서 근대성을 극복할 사상적 기반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거나 왜곡되었던 천도교, 원불교, 증산교 등의 다른 면이 소개된다.  


 제국주의의 본질은 자본주의다, 그래서 물질개벽의 시대라는 건 자본주의 시대라는 진단까지 나아가셨지요.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정신개벽으로 가야 한다면, 정신수양도 해야 하고 사리연구도 하고 또 작업취사로 정의로운 행동을 실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마음공부, 다시 말해 삼학공부가 필요하다고 하신 거고요. _ 백낙청 외,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p175


 <개벽사상과 종교공부>에서 새롭게 느껴졌던 부분은 기독교를 외래종교가 아닌 유학(儒學)을 비롯한 한국사상의 바탕 위에 새롭게 이해되는 '한국적 기독교'를 개벽사상의 틀 안에 담았다는 점이다. 사실, 유교도 불교(佛敎)도 외래 종교지만, 한국의 전통 신앙과 결합하면서 새롭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해석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국주의에 저항한 한국의 민족종교와 제국주의의 종교가 아닌 한국적 기독교의 사상이 제국주의의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시사점을 던져주는가. 책의 결론 중 하나는 개인 각자의 공부(수양)가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공부의 방향성이 석학들의 토론을 통해 드러난다는 점에서 오늘날 의미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이제는 그 패션(passion)이라는 단어를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난이라는 말 대신 열정이란 뜻으로 말이지요.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고 바랐던 그분의 희망과 열정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으로 드러난 것이지, 십자가의 죽음이 대속적인 죽음을 목적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정과 희망,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고 한 예수님의 삶의 뜻이 표현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_ 백낙청 외,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p370


 신학(信學)은 언어철학의 문제인 동시에 지극히 초월적이고 영적인 일이기도 하고, 가장 평범한 일상과 정치, 교육, 문화의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동서고금에 신학(神學)도 있었고, 성학(聖學)과 이학(理學)도 있었지만, 신학(信學)은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신(信)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종교와 학문이 같이 연결되며, 형이상학과 윤리, 정신과 몸, 자아와 세계, 인간과 자연, 초월과 일상 등 지금까지 나뉘어 논의되던 영역들을 같이 연결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믿음을 위한 통합학'(Intergral Studies for Faith)을 말하며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것이지요. _ 백낙청 외,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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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군주와 신하는 피붙이와 같은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므로 정직한 방법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면 신하는 힘을 다해 군주를 섬긴다. 그러나 정직한 방법으로 안락함을 얻을 수 없다면 신하는 사사로움을 추구해 군주에게 발탁되기를 구할 것이다. 현명한 군주는 이를 알고 있어 이롭거나 해로운 이치를 설정하여 천하에 제시할 뿐이다. 무릇 이 때문에 군주가 비록 [자신의] 입으로 많은 관리들을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간사한 자를 찾아내지 않아도 나라는 잘 다스려진다.

어리석은 자는 본래 다스려지기를 바라면서도 그 다스리는 방법을 싫어하고, 모두 위태로워지는 것은 싫어하면서도 그 위태롭게 되는 방법을 좋아한다. 무엇으로써 이를 아는가? 무릇 형벌을 엄하고 무겁게 하는 것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나라가 다스려지는 까닭이며, 백성을 가엾게 여겨 형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이지만 나라가 위험해지는 까닭이다.

나라가 흥할 것인가 망할 것인가 하는 관건은 반드시 그 나라가 잘 다스리는 것과 혼란스러운 것, 부강함과 쇠약함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는가에 달려 있다.

법도가 세워지는 것은 군주의 보배이며 패거리를 갖추는 것은 신하의 보배가 된다.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지 못하는 것은 패거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한 치라도 잘못하게 되면 신하는 그 갑절의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나라를 갖고 있는 군주는 그 신하의 도읍을 크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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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군주와 소원한 자가 신임과 사랑을 받는 신하와 겨루면 이길 승산이 없고, 떠돌이 유세객이 군주와 오랜 친분을 쌓아온 신하와 다투면 이길 승산이 없다. 또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자가 군주의 좋고 싫음을 잘 맞추는 신하와 겨루면 이길 승산이 없다. 무시당하고 비천한 자가 존귀하고 권세 있는 신하와 다투면 이길 승산이 없으며, 혼자만의 입을 가지고 온 나라가 칭송하는 자와 싸우면 이길 승산이 없다.

술術을 아는 인사는 반드시 멀리 내다보고 명확하게 꿰뚫는다. 명확하게 꿰뚫지 않으면 사적인 음모를 밝혀낼 수 없다. 법法에 능한 인사는 반드시 굳세며 강직하다. 굳세고 강직하지 않으면 간사한 자들을 바로잡을 수 없다.

지혜로운 사람의 의견이 어리석은 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현명한 자의 품행이 현명하지 못한 자들에 의해 평가받게 되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들이 치욕을 당할 것이고, 군주의 판단도 어긋나게 될 것이다.

무릇 설득의 어려움이란 내가 알고 있는 바를 가지고 남을 설득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또 내 말주변이 나의 뜻을 분명하게 전할 수 있느냐의 어려움도 아니며, 또 내가 과감하고 거리낌 없이 나의 능력을 모두 다 펼쳐 보일 수 있느냐의 어려움도 아니다. 무릇 설득의 어려움이란 설득하려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 내가 설득하려는 것을 그에게 맞출 수 있느냐 하는 점에 있다.

따라서 간언을 하거나 논의를 하고자 하는 신하는 군주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미리 살핀 뒤에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용이라는 동물은 유순해 길들이면 탈 수 있다. 그러나 턱밑에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逆鱗,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어, 설득하려는 자는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어야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대체로 주옥珠玉은 제왕들이 조바심내는 것이다. 비록 화씨가 바친 옥덩어리가 아름답지 못할지라도 왕에게 해로움이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오히려 두 발을 잘리고 나서야 보배로 인정을 받았으니, 보물로 인정받기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지금의 군주들에게 법과 술은 결코 화씨의 옥을 얻는 것만큼 조바심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법술이 있어야 여러 신하와 사민들이 사사로움과 간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법과 술의 이치에 밝은 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 것은 단지 제왕의 보옥이라고 할 법술이 아직 바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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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0-22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득의 성공 비결은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기, 인 거군요. 결국 인간에 대해 잘 알기, 가 되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10-22 17:45   좋아요 0 | URL
페크님이 정리하신 내용에 공감합니다. 상대와 같은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관계는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
 

법도가 세워지는 것은 군주의 보배이며 패거리를 갖추는 것은 신하의 보배가 된다.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지 못하는 것은 패거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한 치라도 잘못하게 되면 신하는 그 갑절의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나라를 갖고 있는 군주는 그 신하의 도읍을 크게 하지 않는다.

환공이 말하였다. "포숙아鮑叔牙는 어떻소?"
관중이 말하였다. "안 됩니다. 포숙아는 사람됨이 지나치게 곧고 고집이 세며 일처리에 너무 과격한 면이 있습니다. 강직하면 백성들에게 포악하게 나설 우려가 있고, 고집이 세면 백성들의 마음을 잃게 되며, 과격하면 아랫사람들이 등용되기를 꺼릴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두려워하는 바가 없으니 패왕의 보좌역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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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임에서 논의하는 안건은 제규 제1조에 내건 것처럼 오로지 교육에 관계되는 학문, 기술, 사물의 이치, 일의 이치 등, 대저 인간의 재능을 풍부하게 하고, 품행이 나아지는 데 필요한 일들이다. 더군다나 기약하는 바는 오로지 후세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간혹 현재의 꺼리는 것을 건드리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에 관해 논하는 일 같은 것은 본래 우리가 모임을 연 주된 뜻이 아니다. _ 모리 아리노리, <메이로쿠 잡지>, p19

미국에서 돌아온 모리 아리노리와 니시무라 시게키가 주도해서 발간한 메이로쿠 잡지. 발간 초기 연설문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개화기에 쏟아져 들어오는 서양문물을 어떻게,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와 기존의 제도에서 수용할 수 없다면 어느 곳으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가야하는 종착지는 정해졌지만, 가는 방식은 서구의 방식을 따를 수 없었기에 지식인들은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해답으로 제시한다. 민선의원 선출, 처와첩 문제, 부부동권 문제, 정부주도 문제 등 여러 분야에 걸친 논의가 본문에 소개된다.

우리의 《메이로쿠 잡지》의 논의는 앞으로 정치상의 일과 관계가 없기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대할 수 없음이 이미 명백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중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혹시 모임 안에 의견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잡지의 이름에 의지하지 말고 각자 스스로 간행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메이로쿠 잡지>, p25

그렇지만, 현실문제의 궁극적 해결안을 갖고 있는 것이 정치이며, 정치를 배제한 이들의 논의는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1875년 이후 발간되지 않는다. 지식인의 고민과 정치적 한계를 잘 보여주는 <메이로쿠 잡지>를 통해 독자들은 일본 개화기에 벌어진 백가쟁명과 치열한 고뇌의 결과가 낳은 일본 번역 문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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