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감(同感)의 원인(原因)이 무엇이건 간에, 또는 그것이 어떻게 생겨나건 간에, 다른 사람도 마음속으로 우리 마음속의 감정(感情)에 동류의식(同類意識 : fellow-feeling)을 느끼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 이상으로 즐거운 것은 없다. 또한 다른 사람이 마음속으로 우리와는 반대로 느끼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만큼 충격적인 일도 없다.(p13)'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Getting more>는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Stuart Diamond, 1948 ~ )의 협상과 관련한 내용을 정리한 책으로,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 책 내용을 통해 스튜어트 교수의 강의가 20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가 강의가 된 비결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의 열 두가지 전략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1. 원하는 것을 얻는 협상 모델을 위한 열두 가지 전략(p191)


 1) 목표에 집중하라.

 2)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라.

 3) 감정에 신경 써라.

 4) 모든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라.

 5) 점진적으로 접근하라.

 6)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라.

 7)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라.

 8) 절대 거짓말하지 마라.

 9) 의사소통에 만전을 기하라.

 10) 숨겨진 걸림돌을 찾아라.

 11) 차이를 인정하라.

 12) 협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책은 위에 소개된 열두 가지 전략의 주요 내용을 바탕으로 일상 생활 내용과 접목시켜 독자의 이해를 높여주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 사실, 위의 내용만 읽어보면 그렇게 새로울 것도 우리가 모르는 사항도 아니다. 위의 내용을 한 줄로 줄이면 <손자병법 孫子兵法> 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알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다는 것과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는다는 손자의 말은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여겨진다. 다만, 이 책 그리고 저자의 강의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사례 제시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부분을 긍정적으로 강화시켜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동감(emphy)과 관련한 부분이다.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말한바와 같이 이 책에서도 동류의식을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가진 파이를 키워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러한 글 속에서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정글법칙이 아닌 상생(相生)의 정신을 발견하기에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책을 읽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에 바탕을 둔 사익(私益) 추구는 공익(公益)으로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각 개인이 최선을 다해 자기 자본을 본국 노동의 유지에 사용하고 노동 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동을 이끈다면, 각 개인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연간수입이 가능한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력하는것이 된다. 사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 지도 모른다...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p552)'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2. 자녀 교육의 비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는 다양한 협상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자녀 교육 부분이 가장 눈에 띈 것은 내 자신이 아무래도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이기 때문이리라. 


 현대 이전까지 교육(education)은 전통적으로 미성숙한 이(어린이)들을 성숙한 이(어른)으로 만드는 과정이었고, 이 과정에서 교육은 다소 강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고대(古代) 그리스 시대부터 근세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도 이러한 인식이 주류(主流)였다.


'교육(paideia)의 요지를 우리는 바른 양육(heorthe trophe)이라 말하는데, 이는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의 혼을, 그가 어른이 되었을 때 할 일(pragma)의 훌륭한 상태(arete)에 있어서 완벽함을 요구하게 될, 그것에 대한 사랑(eros)으로 최대한 이끌어 줄 것입니다.(제1권 643C)' 플라톤(Platon, BC 424 ~ BC 348) <법률 Nomoi> 



 '계절과 풍토와 환경이 불순한 지역에서 그들의 신체를 단련시켜라. 기아와 갈증과 피곤을 극복하는 훈련을 시켜라. 그들을 "지옥의 강물"에 빠뜨려라... 아이는 어른이 참아내지 못하는 변화들도 견딜 수 있다. 나긋나긋하고 유연한 어린 나무 줄기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휨을 어렵지 않게 견뎌낸다. 하지만 더 굳어진 어른 나무 줄기는 그것이 받은 휨을 겨우, 그것도 난폭한 힘을 가해야만 펴지게 할 수 있다. 그처럼 어린이는 생명과 건강에 위험을 주지 않고 튼튼하게 키울 수 있다. 설령 어떤 위험이 닥칠지라도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p80)'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 <에밀 Emile, ou De l'education>


 현대에 와서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는 달리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린이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다는 면에서 어린이를 약자(弱者)의 자리에 놓고 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나가서, 어린이를 아이와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다. 


 '핵심은 아이의 머릿속 그림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하는 것이다. 절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은 안 된다. 아이가 표현을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본능에 충실한 아이들의 인지력이 더 날카로울 수도 있다. 그러니 아이가 당신을 관찰하는 만큼 당신도 아이를 충분히 관찰하라... 그런 후에 아이의 말을 충분히 들어라... 아이가 말할 때 돌아보지도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은 아이에게 모욕감을 준다. 더욱 끔찍한 결과는 아이들이 그런 태도를 그대로 배운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대한 방식을 결코 잊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가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먼저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p323)'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는 자기계발서이고, 쉽게 읽히며, 평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만으로는 저자의 강좌가 인기있었던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아마도, 이 책이 20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로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은 책 전반에 협상 상대(어린이를 포함한)에 대한 배려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의 이런 관점이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를 착취하고, 뺏었던 역사를 가졌던 유럽/미국인들에게는 특히 더 새롭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점에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는 편안하게 상대방과 소통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에세이로서 일독(一讀)할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 전에 독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에 대한 답(答)을 하지는 않는다. 


* 이 페이퍼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으로 작성된 페이퍼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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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13: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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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14: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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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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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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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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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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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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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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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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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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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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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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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7: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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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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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빠 2017-11-15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문 평론가세요?리뷰가 좋고 기네요.

겨울호랑이 2017-11-15 21:08   좋아요 1 | URL
^^: 아닙니다. 그냥 책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사진(寫眞) : 사실(事實)의 기록 


 사진은 어떤 매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진은 여러가지 모습을 가진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하나로 규정하기는 어렵고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여러 책 속에 나타는 '사진'의 모습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윤곽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 ~ 2004)의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를 통해서 우리는 사실(事實)의 기록으로서 사진을 바라볼 수 있다.


'훨씬 더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은 자신들이 곧 죽게 될 것을 아는 사람들을 보게 될 때이다. 프놈펜 교외의 툴슬렝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비밀 감옥, 즉 "지식인"이라거나 "반혁명분자"라는 죄목으로 갇혀 있던 1만4천여 명 이상의 캄보디아인들이 살육된 이 감옥에는 1975년부터 1979년 동안 이곳에서 찍은 6천여장의 사진들이 은닉되어 있다. 크메루주가 행한 잔혹상을 기록할 특권을 누렸던 이 자료의 기록자들은 제 자리에 앉은 채 자신의 눈 앞에서 진행되는 처형 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훗날 몇 십년이 지난 뒤, 우리는 이 사진들을 발췌해 모아 놓은 <살육의 들판>이라는 책을 통해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얼굴들, 그래서 우리 자신들을 응시하고 있는 얼굴들, 그래서 우리 자신들을 응시하고 있는 얼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p95)'


 툴슬렝 감옥에 대한 사진과 사진에 대한 설명을 통해 우리는 '킬링 필드 Killing Field'의 처참한 살육현장 기록과 이에 대한 증거로 사진을 바라보게 된다. 


'폴 포트 정권 시기의 캄보디아에 세워진 툴슬렝 감옥은 'S-21 형무소'라고도 불렸다. 이곳에 수감됐다가 생존한 사람은 7명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곳은 기념관으로 개조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타인의 고통> 中 -



[사진] 엠 에인, <무제>, 툴슬렝 감옥, 1975 ~ 1979


 갓난 아기를 안고 무심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여인, 눈에 공포의 빛을 드리운 채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은 그 자체보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우리에게 의미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사진 속에서 이들은 '툴슬렝의 희생자들'라는 집합체(集合體)로서만 우리에게 인식된다.  

 

 '이 감옥에서 사진을 찍었던 인물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으며, 우리는 그 사진 작가의 이름을 언급할 수도 있다. (그의 이름은 엠 에인이다.) 이와 반면에 그가 찍은 사람들, 그러니까 여윈 몸에 걸쳐진 상의 위쪽에 번호표를 달고 아연실색된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일종의 집합체로만 존재한다. 즉, 익명의 희생자들로만. 게다가 그들의 이름이 명명되었을지라도, 그 이름이 "우리"에게까지 알려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p96)


 전쟁을 배경으로 한 기록사진들은 '사실'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사진 속의 인물과 사건들은 이러한 사건의 증거로서 의미를 지닌다. <타인의 고통>은 '사실의 충실한 재현'이라는 관점에서 사진을 해석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사진의 의미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2. 사진(寫眞) : 마음의 기록


<타인의 고통>에서 소개된 사진들을 통해서 우리는 거의 동일한 감정(感情)을 공유하게 된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성(性), 연령, 직업,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참혹한 현실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것은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라는 것이 결코 <아이언맨>에서 나오는 전투장면처럼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는 것을 감상자에게 깨닫게 한다면, <寫眞, 말 없는 詩>와 <소리 없는 빛의 노래> 속의 사진은 이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엠 에인의 <무제>에서 사실(reality)의 여부는 사진이 주는 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카메라의 대상이 누구인가 여부는 사실 그렇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그렇지만, 에세이와 시의 형태와 결합된 사진 작품 속에서 우리는 사진 속의 대상이 개별자(個別者)로서 존재(存在) 의미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타인의 고통> 속 작품과 <사진, 말 없는 이야기>와 <소리 없는 빛의 노래>가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라 생각된다.


[사진1] (출처 :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966164&memberNo=34220424)


[사진2] 출처 : [사진1] (출처 :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966164&memberNo=34220424)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감상자는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지나쳐 버리기도 한다. <사진, 말없는 시>와  <소리없는 빛의 노래>는 감상자의 서로 다른 배경에도 불구하고, 작가와의 대화가 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피사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의 노력과 독자와 소통하는 시(詩)와 에세이(essay)의 장르 특성이 결합되어 책 전반에 사람의 온기가 도는 따뜻한 감성이 전달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최근 읽은 <사진에 관하여>와 <타인의 고통> 속에서 저널리즘(Journalism)의 매체로서 사진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사진, 말 없는 시>와 <소리 없는 빛의 노래>를 통해서는 감성의 매체로서 사진을 확인하게 된다. 사진의 성격을 하나로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사진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얻은 작은 소득이 아닐까 생각된다. 항상 많은 도움을 주시지만, 특히 '사진'의 세계로 항상 잘 이끌어 주신 '유레카'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같은 대상에 대한 다른 해석의 사례로서 <소리 없는 빛의 노래> p34에 있는 '침묵에 대한 저항'과 <사진, 말 없는 시> p104에 실려있는 사진을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같은 대상을 두고도 작가의 서로 다른 관점을 확인하면서 '정답이 없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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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2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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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2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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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1-12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헌책방에서 <타인의 고통>을
사기는 했는데 완독에는 이르지 못했네요.

그냥 궁금한 것이 수잔 손택은 사진을 미디
엄으로 분석하는 일에는 능통했지만 과연
자신이 직접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하기도
해봤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노동일진대 노동은 배제하
고 컨텐츠 분석에만 집중한 게 아닌가 하
는 그런 생각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1-12 22:46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말씀을 듣고 보니, 수잔 손택의 글 중에는 ‘사진‘의 해석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예술작업으로서 사진에 대한 관점도 있겠군요. 레삭매냐님 생각치 못한 부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11-12 23: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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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2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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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3 0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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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3 06: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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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1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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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1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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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늘마다 연분홍 진달래가 햇살을 받으며 밝은 광채를 발하고 있었고, 길가엔 개나리가 아직도 노란 꽃을 머금은 채 연둣빛 새순을 피우고 있었다. 무위사 극락보전 뒤 언덕에는 해묵은 동백나무에 선홍빛 동백꽃이 윤기나는 진초록 잎 사이로 점점이 붉은 홍채를 내뿜고, 목이 부러지듯 잔인하게 떨어진 꽃송이들은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읍 묵은 동네 토담 위로는 키 큰 살구나무에서 하얀 꽃잎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남도의 봄빛이었다.(p33)」

어제는 전라도 강진에 다녀왔습니다. 매년 이맘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즈음에 할머니 산소에 가고 있는데, 어제가 그 날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때가 연의가 태어나고 2주 후 였습니다. 그래서 제게 2012년은 생명 탄생의 기쁨과 죽음이라는 슬픔을 함께 느꼈던 한 해로 기억됩니다. 그 후 할머니 산소에 가서는 손녀 잘 지내고 있다고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윤달이 있어 예년보다 늦은 가을 날을 보며 남도의 가을을 느껴봅니다. 마침 오늘은 「제2회 강진 갈대 축제」가 있어 남도의 가을을 낄 수 있었습니다. 순천 갈대 축제만큼 크지는 않지만, 작은 공간에서의 아기자기함이 오히려 남도의 정취를 더 잘 표현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겨울로 넘어가고 있는 11월 중순.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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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11-12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글을 읽고서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생각했습니다. 할머니의 현신은 사라졌다고 해도 할머니의 손자 사랑은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테고요. 증손자의 탄생으로 유대감이 이어졌다니 인연의 끈이 단단한 것 같습니다.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17-11-12 09:56   좋아요 2 | URL
^^: 오거서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뜻과 피가 흐르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조상님들을 추억하고 뜻을 기리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거서님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2017-11-12 1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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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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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1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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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1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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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로탱(Perotin, 1160 ~ 1230) <콘둑투스 Conductus> : 1183년


 '원시적인 형태의 오르가눔은 노래하는 목소리를 나란한 선들처럼 진행시키죠. 12세기 다성음악은 그 평행을 깨뜨립니다. 이제 서로 다른 멜로디들을 중첩시켜 그 합 合에서 고딕 조각의 얽힘 장식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유려하고 절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요. 12세기 말 작품인 대 페로탱의 <오르가나> 나 <콘둑투스>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때문에 현학적인 표현에 지칠대로 지친 우리의 귀에는 되레 신선하게 다가오는 음악일 겁니다.(p370)'


 '1183년에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 主 제단이 봉헌된 참이었죠. 파리의 "디스칸투스 작곡가"들은 모든 성부가 평행 진행하는 오르가눔의 단조로움을 깨뜨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대위법이 활기를 띠었죠. 동일한 구성이 다성음악이 서로 다른 성부들에 순차적으로 나타나기도 했고요.(p460)'


2. 마쇼 (Guillaume de Machaut, 1300? ~ 1377) <노트르담 미사곡 Messe de Notre Dame> : 1364년



 '마쇼야말로 이러한 음악적 무절제 속에서 처음으로 순수대위법을 탄생시킨 장본인일 겁니다. 그의 대위법은 화성의 사용에서 비롯되는 충만과 안식의 표현이었죠. <글로리아>의 도입부 "땅에는 평화 Et in Terra Pax"를 들어봐요. 무엇보다 <크레도>의 "육신을 취하시고 Et Incarnatus Est"가 압권이죠... 라틴어 가사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Ex Maria Virgine"에 이르면 지금까지 빠르게 음절에 맞추어왔던 리듬이 갑자기 확 달라졌다가 멈추면서 깊은 명상을 환기합니다... <글로리아>는 빠른 가사 진행을 보나, 음표 대 음표의 단순한 대위법을 보나, 완전히 달라요.(p467)... 또한, <크레도>는 고상한 것과 어긋난 것이 어우러지면서 거친 표현주의를 과시하죠.(p468)'


3. 깊이 읽기


'여러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마쇼의 기욤의 <노트르담 미사곡>은 하나의 작곡 단위였으며 또한 4성의 첫 미사곡이었다(p979)... <노트르담 미사곡>은 1364년 5월 10일 랭스에서 거행된 샤를 5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알려졌지만 봉헌미사곡일 가능성이 높다. 학자들은 미사곡이 성모 숭배와 관련된 예식용 곡들을 근거로 했기에"노트르담의 de Notre-Dame"라는 명칭이 유래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욤은 세속적인 작품에서도 성모 숭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자신이 사랑하는 귀부인을 지칭하는 모든 아름다운 senhal Toute Belle 역시 성모에 대한 최고의 라틴어 칭호인 온통 아름다운 tota pulchra 을 반영한 것이다... 획일적인 개념의 결과이기는 했지만 <노트르담 미사곡>의 형식은 부분적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키리에 Kyrie(불쌍히 여기소서), 상투스 Sanctus(거룩하시도다), 아누스 데이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 양)에 기욤은 아이소 리듬의 모네트(형식)서체와 매우 흡사한 서체를 사용했다... 반대로 대영광송과 신앙 고백의 글들은 상당히 직선적이었으며 콘둑투스 Conductus를 떠올리게 하는 음절 양식을 보여주었다. 대영광송과 신앙 고백은 아리소 리듬의 아멘 Amen으로 끝난다. (p980)'


 노트르담 악파였던 페로탱과 마쇼를 연결시켜 주는 고리가 노트르담 대성당이라 생각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건축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초기 고딕에서 축적된 기술을 집대성하여 수직성을 향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단의 성직자들과 장인들은 당시까지 건축된 건물들에서 자신들의 수직 욕망을 실현시켜줄 기술적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기술발전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기 고딕의 기술만으로는 분명한 한계도 있었다... 파리 노트르담은 과시욕과 기하학적 정형성의 두 가지 대표적 특징을 가졌다. 이 둘은 일정한 상반성을 가졌다. 이 가운데 과시욕이 더 두드러졌다. 기하학적 정형성은 그 자체로 독립된 가치로 추구되기도 했지만 수직성을 위한 구조 체계가 잘 작동하게 해주는 뒷받침의 성격이 더 강했다. 노트르담의 기하학적 정형성은 랑에서 안착된 고전적 정돈감을 구조성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곳에서도 구조 발전을 통한 과시욕과 고전적 안정감이라는 두 가지 경향이 함께 나타났다. 이 가운데 노트르담을 대표하는 것은 과시욕이었다. 기독교적 욕망이 다시 불붙으면서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이 실내외 곳곳에서 나타났다.(p408)'


 음악사적으로는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노래인 미사곡이 건축사적으로는 인간의 과시욕을 대표하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불려졌다는 것에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건축가는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기 위한 열망으로 성당을 지었을 것을 생각하면, '욕심'과 '열정'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러한 열망을 표현한 문학작품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 ~ 1885)의 <노틀담의 꼽추 Notre-Dame de Paris>도 같이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제가 애니메이션 으로밖에 접하지 않아 여기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의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에 언급된 노트르담의 건축가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에서 다룬 노트르담 이야기를 줄여야할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 출처 : 위키백과)


' 노트르담의 건축가는 오분식 네이브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행운아였다. 그는 정직하게 이 사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과감하게 중앙 부분에 비해 좌우 부분이 넓은 삼분식 파사드를 지었는데, 이로써 모든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다.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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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8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9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0 0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0 0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0 0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0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1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1-11 16:40   좋아요 1 | URL
저 역시 김영성님의 관심 덕분에 많은 힘을 얻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사진에 관하여 On Photography>는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 ~ 2004)의 사진에 관한 에세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본문에 담긴 7편의 에세이의 내용 중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수전 손택의 사진관(寫眞觀)에 대해 살펴보자.


 1. 사진을 찍는다는 것


 수전 손택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 작가가 대상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며, 이를 통해 대상과 작가가 특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존재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마치 상습적인 관음증 환자처럼 이 세계를 바라봄으로써 모든 사건의 의미를 대동소이하게 취급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도 사건인데, 그것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일으키는 사건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간섭하거나 침해할 수 있으며, 혹은 무시할 수도 있는 그런 권리를 갖고 말이다. 오늘날에는 카메라의 개입이 있어야 상황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p29)'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대상 그 자체, (적어도 "멋진" 사진을 찍을 때까지라도) 지금 모습 그대로 변함 없이 존재하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이며, 사진으로 찍어놓아야 할 만큼 그 피사체를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그 무엇인가(예컨대 남에게는 고통이나 불행이더라도 내게는 흥미로움을 주는 상황)와 공모하는 행위인 것이다.(p31)'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 대상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아름다워질 수 없는 피사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피사체에 뭔가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려는 사진 고유의 경향을 막아낼 방법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치 자체의 의미는 변할 수도 있다.(p54)'


 '오늘날은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그리고 사진이 이 향수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사진은 애수가 깃들어 있는 예술, 황혼의 예술이다...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또는 사물)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을 정확히 베어내 꽁꽁 얼려 놓는 식으로,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p35)'


 관심있는 대상과 관계를 맺는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체가 되는 '사진작가'와 대상인 '피사체'가 필요하며, 이들을 연관시키는 구체적인 도구인 '카메라'가 필요하다. 이들의 관계를 살펴보기 전에 '사진 Phtograpty'의 특성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사진을 찍는다'를 이해하는 것을  먼저 정리해 보자.


2. 사진의 특성


 사진은 필름을 넣은 사진기로 물체를 찍은 뒤에, 그 필름을 이용하여 특수한 종이에 재현한 영상이다. (출처 : 구글 국어사전) 사진이 '실재에 대한 증명'자료가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진'이 객관적이며, 진실된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사진 자체가 현실을 담는다고 해도, 사진작가가 '의미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사진에 담지 않는다면 그 현실은 사진으로 남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 속의 세계는 작가의 의식과 취향이 묻어나는 주관적인 세계다. 또한, 사진으로 남는 이미지는 '연속된 상황'에서의 한 순간이 아닌, 그 순간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도 사진과 현실의 세계는 같은 듯 다른 세계가 된다.


 '사진은 증명해 준다.(p20)... 회화나 산문을 통한 묘사가 세밀히 선택된 해석 이상이 될 수는 없는 반면, 사진은 세밀히 선택된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사진이 진실하기 때문에 영향력 있고, 관심도 끌며, 매력적이라고 가정한다... 그렇지만, 사진작가가 제아무리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려 해도, 은밀히 작동하는 자신의 취향과 의식에서까지 벗어날 수는 없다.(p21)'


 '움직이는 이미지보다는 사진이 기억하기 훨씬 쉽다. 사진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시간의 어느 한 순간을 깔끔하게 포착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흘려보내는 이미지는 신중히 선택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뒤의 이미지가 앞의 이미지를 곧장 지워버리곤 한다. 그러나 스틸 사진은 어떤 순간을 특권화해 놓은 것으로서, 그 순간을 계속 간직한 채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는 얇은 사물로 뒤바꿔 버린다.(p39)'


 '사진에게 진실인 것은 사진을 통해서 본 세계에서도 진실이다(p123)... 사진의 우발성은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다시 말해서, 사진으로 된 증거의 자의성은 현실이란 원래 분류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p125)'


 '사진은 실제와 가장 가깝고, 그렇기 때문에 매우 쉽다는 별로 좋을 것도 없는 명성을 얻고 있는 모방 예술이다. 사실, 사진은 유서 깊은 다른 예술이 경쟁에서 줄줄이 낙오되는 와중에서도 마치 초현실주의처럼 지난 1백여 년간 현대의 감수성을 장엄하게 장악해왔던 유일무이한 예술이다.(p87)'


3. '사진을 찍는다'의 주체 : 사진작가 


 사진작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기준으로 현실을 해석하게 된다. 비록, 다른 예술 작품보다 사진작가의 역할은 제한적이지만, 제한된 역할 속에서 은밀하게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하게 된다.


[사진] 사진작가 (출처 : 스마트인컴)


 '사진작가는 사진이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선호하는 노출 방식이 있기 때문에, 피사체에 특정한 기준을 들이대기 마련이다. 카메라는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생각도 존재하지만, 사진도 회화나 데생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행위의 수동성(그리고 편재성),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진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메세지"이자 사진이 드러내놓는 공격성이다.(p23)'


 '사진작가들의 말처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객관적 세계를 무한히 전유할 수 있게 해주는 기법이자 단 하나뿐인 자아의 유아론적일수밖에 없는 [자기]표현이다. 사진이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묘사한다면, 카메라는 그 현실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드러난 현실은 [카메라로 그 현실을 찍은] 개인의 기질을 보여준다. 현실의 어느 면을 잘라냈는지에 따라 기질이 드러나는 것이다.(p180)


 '우리는 사진에 찍힌 피사체를 잘 살펴봐야만, 사진작가가 [피사체 안에서] 매우 조심스레 존재감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진작가들이 각각 특정 피사체를 독점하지 않는 한) 뛰어난 사진작가의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데에 포토저널리즘이 성공한 이유가 있다. 사진은 개성있는 예술가의 의식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아니라 이 세상을 보여주는 이미지(혹은 복제)로서 힘을 갖는다.(p194)'


 '사진은 그 어떤 이미지-체계가 누렸던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예전의 이미지-체계와는 달리 사진은 이미지 제작자에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 제작과정을 준비하고 주도하는 데 사진작가가 제아무리 신중하게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 자체는 여전히 광학적, 화학적(혹은 전자공학적) 과정의 일종으로서 자동적으로 진행되며, 현실의 모습을 좀더 정확하게, 쓸모 있게 묘사하려면 불가피하게 기계의 힘을 빌려서 수정되어야 하는 과장인 것이다.(p225)'


4.  '사진을 찍는다'의 대상 : 피사체


  저 밖에 존재하는 세계와 피사체는 카메라를 통해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의미를 부여받는다. 비록, 현실과 사진 속의 세계와의 관계가 사진작가에 의해 맺어진 관계이기에 왜곡된 모습이지만, 바로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기대하고 사진의 매력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만, 이렇게 표현된 모습이 구체적인 (정치적인, 경제적인)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이념)가 그 안에 담겨 있을 때, 비로소 그 사진은 '사건'이 될 수 있다. 


[사진] 피사체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sung0908&logNo=50137211586&categoryNo=94&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사진은 필연적으로 현실과 모종의 거래를 한다. 이 세계는 "저밖에" 있기 때문에 카메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삶이나 사회의 특정한 순간을 정지시켜 놓은 사진이 일련의 과정, 예컨대 시간에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삶이나 사회와 상반된 형태를 갖고 있듯이 말이다. 사진에 찍힌 세계는 늘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스틸 사진이 영화와 부정확한 관계를 맺듯이, 현실 세계와 부정확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삶에서는 모든 순간이 중요하거나, 빛을 발하거나, 영원히 고정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진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한다. 사진은 단 한 순간에 우리로 하여금 예술품을 감정하는 사람처럼 세계와 관계를 맺게 만들면서도 이 세계를 아무렇게나 받아들이게 만들이기에 우리를 매혹하며 사로잡는다.(p127)


 '사람들은 경험한다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으로 자꾸 축소하려 한다. 결국 오늘날에는 경험한다는 것이 그 경험을 사진을 찍는다는 것과 똑같아져 버렸고, 공개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그 행사를 사진으로 본다는 것과 점점 더 비슷해져 버렸다... 오늘날에는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었다.(p48)'


  '한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되더라도, 정확히 말해서 사진으로 찍을 만한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인가가 되더라도, 그 사건을 사건으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인 요소는 (가장 넓은 의미의) 이데올로기이다... 사진이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 의식이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p41)'


5. '사진을 찍는다'의 도구 : 카메라


 '카메라는 (정밀 사진과 원격 탐사를 통해서) 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는 무엇을 보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보는 행위를 부추기며, 보는 행위 자체를 변화시킨다.(p142)'


[사진] 카메라 (출처 : https://www.popco.net/zboard/view.php?id=ur_dica&no=10007)


6. 사진의 해석 : 이미지-체계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사용해서 '피사체'를 사진으로 옮긴 과정이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였다면, 이에 대한 해석은 감상자의 몫이 된다. 비록, 사진이 현실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사진에 대한 이해는 그 이면을 바라볼 수 있을 때부터 시작됨을 저자는 <사진에 관하여>에서 말하고 있다.


  '현실에 끊임없이 토를 다는 사진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매하게 되면 모든 것을 동질화시킬 수밖에 없으므로. 사진은 아름다운 형상을 드러낼 때 못지 않게 무엇인가를 보도할 때에도 변형된다. 사진은 인간의 물성 物性과 사물의 인성 人性을 들춰냄으로써 현실을 일종의 동어반복 같은 것으로 뒤바꿔 버린다.(p165)... 그렇지만 정작 사진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확인해줄 뿐... 사진의 힘은 우리로 하여금 [사진에 포착된] 어떤 한 순간, 그것도 시간의 정상적 흐름이 곧 제자리로 돌려놓을 순간을 마음껏 검토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데에 있다.(p166)'


  '카메라가 기록해 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세상을 알게 되리라, 사진이 함축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해한다"는 것은 이와 정반대의 일이다. 이해라는 것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즉,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p47)'


 '사실상 사진의 힘은 이미지와 사물, 복제물과 원본과의 차이에 따라서 우리의 체험을 반영하기 위해서 현실을 점점 더 근사하지 않게 만드는 힘, 즉 플라톤의 철학을 소멸시키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진의 힘은 이미지에 대한 플라톤의 파괴적인 태도와 잘 어울린다. 플라톤은 이미지란 무상하며 별로 유익하지도 않으며, 비 非물직적이며 현실의 사물과 함께 존재하는 미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과소 평가했다.(p256)'


 <사진에 관하여>는 이처럼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와 이에 대한 해석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수전 손택은 여기 7편의 에세이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사진과 회화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20세기 복제 시대와 사진, 미국 문화와 사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에세이 속에서 우리는 여러 관점에서 '사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사진 전문 작가 뿐 아니라, 개인이 휴대한 스마트폰을 통해 이제는 '사진찍기'가 일상이 된 요즘 <사진에 관하여>는 사진에 관심있는 이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유용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PS. <사진에 관하여> 속에서 우리는 수잔 손택의 후대 저서인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과 연계되는 구절을 만날 수 있다. 다음의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제는 <타인의 고통>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고통을 받는다는 것과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본다고 해서 양심이나 인정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망가져 버릴 수도 있다... 한번 그런 이미지를 보게 되면 더 많은 이미지를 보려고 이곳저곳 두리번거리게 되기 마련이다. 우리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이미지, 우리를 완전히 마비시키는 그런 이미지를.(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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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6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6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6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6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11-08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강렬한 두 작품을 보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 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작품으로 그 답을 보네요

겨울호랑이 2017-11-08 14:15   좋아요 2 | URL
^^: 부족한 글에 항상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프레이야 2018-01-03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멋진 리뷰를 이제 보네요.
늦었지만 당선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18-01-03 12: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프레이야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