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로탱(Perotin, 1160 ~ 1230) <콘둑투스 Conductus> : 1183년
'원시적인 형태의 오르가눔은 노래하는 목소리를 나란한 선들처럼 진행시키죠. 12세기 다성음악은 그 평행을 깨뜨립니다. 이제 서로 다른 멜로디들을 중첩시켜 그 합 合에서 고딕 조각의 얽힘 장식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유려하고 절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요. 12세기 말 작품인 대 페로탱의 <오르가나> 나 <콘둑투스>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때문에 현학적인 표현에 지칠대로 지친 우리의 귀에는 되레 신선하게 다가오는 음악일 겁니다.(p370)'
'1183년에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 主 제단이 봉헌된 참이었죠. 파리의 "디스칸투스 작곡가"들은 모든 성부가 평행 진행하는 오르가눔의 단조로움을 깨뜨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대위법이 활기를 띠었죠. 동일한 구성이 다성음악이 서로 다른 성부들에 순차적으로 나타나기도 했고요.(p460)'
2. 마쇼 (Guillaume de Machaut, 1300? ~ 1377) <노트르담 미사곡 Messe de Notre Dame> : 1364년
'마쇼야말로 이러한 음악적 무절제 속에서 처음으로 순수대위법을 탄생시킨 장본인일 겁니다. 그의 대위법은 화성의 사용에서 비롯되는 충만과 안식의 표현이었죠. <글로리아>의 도입부 "땅에는 평화 Et in Terra Pax"를 들어봐요. 무엇보다 <크레도>의 "육신을 취하시고 Et Incarnatus Est"가 압권이죠... 라틴어 가사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Ex Maria Virgine"에 이르면 지금까지 빠르게 음절에 맞추어왔던 리듬이 갑자기 확 달라졌다가 멈추면서 깊은 명상을 환기합니다... <글로리아>는 빠른 가사 진행을 보나, 음표 대 음표의 단순한 대위법을 보나, 완전히 달라요.(p467)... 또한, <크레도>는 고상한 것과 어긋난 것이 어우러지면서 거친 표현주의를 과시하죠.(p468)'
3. 깊이 읽기
'여러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마쇼의 기욤의 <노트르담 미사곡>은 하나의 작곡 단위였으며 또한 4성의 첫 미사곡이었다(p979)... <노트르담 미사곡>은 1364년 5월 10일 랭스에서 거행된 샤를 5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알려졌지만 봉헌미사곡일 가능성이 높다. 학자들은 미사곡이 성모 숭배와 관련된 예식용 곡들을 근거로 했기에"노트르담의 de Notre-Dame"라는 명칭이 유래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욤은 세속적인 작품에서도 성모 숭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자신이 사랑하는 귀부인을 지칭하는 모든 아름다운 senhal Toute Belle 역시 성모에 대한 최고의 라틴어 칭호인 온통 아름다운 tota pulchra 을 반영한 것이다... 획일적인 개념의 결과이기는 했지만 <노트르담 미사곡>의 형식은 부분적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키리에 Kyrie(불쌍히 여기소서), 상투스 Sanctus(거룩하시도다), 아누스 데이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 양)에 기욤은 아이소 리듬의 모네트(형식)서체와 매우 흡사한 서체를 사용했다... 반대로 대영광송과 신앙 고백의 글들은 상당히 직선적이었으며 콘둑투스 Conductus를 떠올리게 하는 음절 양식을 보여주었다. 대영광송과 신앙 고백은 아리소 리듬의 아멘 Amen으로 끝난다. (p980)'
노트르담 악파였던 페로탱과 마쇼를 연결시켜 주는 고리가 노트르담 대성당이라 생각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건축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초기 고딕에서 축적된 기술을 집대성하여 수직성을 향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단의 성직자들과 장인들은 당시까지 건축된 건물들에서 자신들의 수직 욕망을 실현시켜줄 기술적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기술발전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기 고딕의 기술만으로는 분명한 한계도 있었다... 파리 노트르담은 과시욕과 기하학적 정형성의 두 가지 대표적 특징을 가졌다. 이 둘은 일정한 상반성을 가졌다. 이 가운데 과시욕이 더 두드러졌다. 기하학적 정형성은 그 자체로 독립된 가치로 추구되기도 했지만 수직성을 위한 구조 체계가 잘 작동하게 해주는 뒷받침의 성격이 더 강했다. 노트르담의 기하학적 정형성은 랑에서 안착된 고전적 정돈감을 구조성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곳에서도 구조 발전을 통한 과시욕과 고전적 안정감이라는 두 가지 경향이 함께 나타났다. 이 가운데 노트르담을 대표하는 것은 과시욕이었다. 기독교적 욕망이 다시 불붙으면서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이 실내외 곳곳에서 나타났다.(p408)'
음악사적으로는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노래인 미사곡이 건축사적으로는 인간의 과시욕을 대표하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불려졌다는 것에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건축가는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기 위한 열망으로 성당을 지었을 것을 생각하면, '욕심'과 '열정'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러한 열망을 표현한 문학작품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 ~ 1885)의 <노틀담의 꼽추 Notre-Dame de Paris>도 같이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제가 애니메이션 으로밖에 접하지 않아 여기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의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에 언급된 노트르담의 건축가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에서 다룬 노트르담 이야기를 줄여야할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 출처 : 위키백과)
' 노트르담의 건축가는 오분식 네이브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행운아였다. 그는 정직하게 이 사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과감하게 중앙 부분에 비해 좌우 부분이 넓은 삼분식 파사드를 지었는데, 이로써 모든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다. (p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