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에 읽었던 김영하 에세이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고양이 방울이와 깐돌이와 사는 이야기로 시작해

 의미있고 재미있는 소설가 김영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표지에 고양이발은 방울이 발.^^











2018. 6. 18. . 부산 수영구청 구민홀에서 들었던 특강을 요약한 기록입니다.

'소설' 대신 대입해 볼 단어가 제법 떠오릅니다. 

 


김영하 초청특강 (기록_프레이야)


소설을 읽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프롤로그>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다. ” - 밀란 쿤데라

(반면에 현실은 도덕적 판단과 타인의 실수에 냉혹하다)

복잡한 인생사, 복잡한 인간심리를 감안하여 내가 겪었을 수도, 겪을 수도 있을 일들을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간접체험 한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1. 자신의 내부를 이해하는 범위가 증폭된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갈등, 고통, 유혹 등등 무수히 많은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모호하고 다채로운 감정에 언어가 부여된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강한 자이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면 타인의 감정에도 공감 능력이 생긴다. 단순하게 판단해서는 안 되는 타인의 감정, 타인의 일, 타인의 삶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도의(도리)보다 감정의 공유(공감)가 필요한 일이다.


선은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의로 시작하는 일이 반드시 선의의 결과를 빚는 건 아니다. 선의의 결과를 빚으려면 이해와 공감이 우선 필요하다. 갈등을 대화로 풀 수 있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우선 상대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그러므로 간접적 대화(영화나 책 등)로 우선 그 대상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을 알려면 청소년 세계를 소재로 한 책이나 영화로 우회적 접근을 하라. (; 프레이야 생각 -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해 대신 무지가 있겠지요. 완전한 이해는 불가할 것입니다.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 작가의 의무라 생각합니다.)

 

2. 소설 속, 실패한 인물들을 보며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일들을 준비할 수 있다

(마음의 준비, 감정의 준비)


김영하 작가는 삶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한다고 합니다. 독자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안정감을 얻지요. (극히 공감되는 말이었습니다.) 옛날 동화의 내용이 잔혹하고 계모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야기(스토리)를 통해 경험하는 감정은 가짜가 아니다. 이성이 아니라 감정으로 배운 것은 잊히지 않는다. 대상(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기를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배운다.


진짜 성격은 시련을 통해 드러난다. 시련을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시련이 닥쳤을 때 스스로 알 수 있다. 이렇게 자기인식과 자기이해가 우선된 소통이어야 바람직하다. 언어(정제된 문학언어)로 표현된 이야기를 통해 무엇보다 를 알게 된다.

 

  

<청중 질의와 작가 답변>

 

1.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이 있나요?


성장의 통과의례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소설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소설을 읽게 된다. 고민이 해결되면 거기서 빠져나온다. 가령 판타지나 무협지를 읽는다고 걱정할 게 아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빠져나와 다른 것으로 옮겨간다. 하나에 빠져있는 게 오히려 유해하다. 내면의 공포, 불안 등의 감정과 문학은 관련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지적인 측면에서 편안히 사는 북유럽 사람들이 범죄소설에 매료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 모든 감정을 체험하여 쓰는 것인가?


꼭 그렇진 않다. 글로 이미 쓴 감정을 실제로 겪으며 그때의 감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더욱 언어화되는 경험을 했다.(얼마 전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그 장례식장에 앉아서 만감을 머릿속으로 언어화했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하는 데 능숙해질수록 텍스트를 더 잘 읽게 되고, 그러면 더 잘 쓸 수 있게 된다. 순환고리처럼. 언어를 다루는 능력은 자기인식의 능력과 비례한다. 자기감정을 잘 알자


그러기 위한 훈련으로, 먼저 찢어버려도 좋을 종이에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적어 내려가라. 다 쓴 후 찢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내면에서 자기검열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좋은 노트에 쓰지 말 것. 내 감정을 돌보기에 전념하라. 그렇게 하다보면 언어가 점점 정제되면서 감정을 극복(초월)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3. 소설을 외국어로 번역, 외국에 확장할 계획은?


세계는 실재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다. 세계는 은유나 비유로 존재한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소설읽기는 우회적 방식으로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한국어의 외연 확장보다 우리 사회 안에서 고급언어로의 외연 확산이 더 중요하다. (문학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는 너무 한정되어 있다. 이해하는 폭도 좁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언어화하지 못하는 자들이 폭력을 내세우게 된다. 실재로 범죄자들의 대다수는 언어능력과 공감능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는 능력이 클수록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이해능력도 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문학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이 외국으로 확장하는 일보다 우선이다. ***




그날의 광안리

동시에 소설을 읽는 목적도 달라진다. 감정이입을 통한 즉자적 수준의 감동보다는 텍스트 자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형태로 바뀐다. 대중가요의 가사가 다 내 얘기 같다고 느껴질 때 흘리는 눈물도 소중하지만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희롱할 수 있을 때, 나는 그가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단계로, 그 음악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믿는다. 소설에서는 왜 그럴 수 없단 말인가. 소설 역시, 그래 이건 내 얘기야, 라는 단계에서, 이건 내 얘기가 아니지만 새롭고 탁월해, 라는 단계로 전이할 수 있다. 그 단계의 즐거움이 이전 단계의 즐거움에 비해 월등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대단히 독특한 기쁨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계로 전이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 P244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그런 단계의 소설이다. 어렵지는 않다. 단, 이 소설은 절대로 독자인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중략)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며칠 동안 눈먼 자들이 도시를 배회하는 악몽에 시달려야 햇다. 멀쩡한 얼굴로 화사하게 웃으며 서울 시내를 활보하는 선남선녀들이 다르게 보였다. 저들은 아직 눈이 보이지! ‘눈먼 자들의 도시‘와 서울의 차이는 그것뿐이다. 사라마구가 본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견고해 보여도 아주 단순한 원칙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략) 이 수많은 단순한 원칙들 중 하나만 지켜지지 않아도 도시는 지옥이 된다. 그러니 인간이란 얼마나 불안한 존재이며 그 인간들이 끌고 가는 사회며 국가라는 것도 얼마나 허약한 것이냐.
그렇기에 이 불안한 평화는 역설적으로 달콤하다. 불안한 존재가 읽는 완벽한 소설. 이것만 한 즐거움을 나는 아직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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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21 23: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을때 우리에게 일어난 것들은 완전 공감이 가네요. 이렇게 기록을 잘 해놓으니까 완전 좋네요~!!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라니 ㅋ 맞는 말같아요~!

프레이야 2021-10-22 00:11   좋아요 4 | URL
그렇죠 쿤데라.
소설 읽는 분들 위해 공유해요^^.
밑줄긋기 인용문은 랄랄라하우스 안 문장인데 소설이 아니라 그 자리에 음악, 마술, 영화가 들어가도 비숫하지 싶어요.

페넬로페 2021-10-22 0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tv를 통해 만난 김영하작가는 말을 아주 잘하더라고요.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하기 어려운데 그 두 개를 다 잘하니 가진것이 많은 것처럼 보였어요~~
김영하작가의 소설론에 공감합니다^^

프레이야 2021-10-22 01:35   좋아요 3 | URL
네, 그렇더라구요^^ 저는 저 때와 그 이전에 비프 영화 상영 후 GV로 두번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김영하 단편소설을 옴니버스로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기억이 가물해요. ^^
암튼 말도 잘하지만 태도의 여유가 마음에 들었어요. 자신감에서 오는 여유겠지요.

2021-10-22 0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2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1-10-22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내부를 돌아보고 마음의 준비, 감정의 준비.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네요 ㅠㅠ 김영하작가님을 보셨군요 ㅎㅎ부럽습니다 ~ 목소리도 참 좋으신거 같아요. ~~ 광안리사진도 👍

프레이야 2021-10-22 10:36   좋아요 2 | URL
이미 소설을 많이 읽고 계신 분들에겐 딱히 필요없는 강의일 수도 있었지만 한번 돌아본다는 느낌으로다가요 ㅎㅎ 구름은 언제나 좋아요. 바다와 하늘과 구르미^^

페크(pek0501) 2021-10-22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하 작가는 팟캐스트를 통해 목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팬이 될 만큼 좋아해서 반복해 듣곤 했었죠.
목소리가 차분해서 좋아요. 잠이 오게 하는 목소리예요.
요즘은 장영희 에세이를 오디오북으로 한 시간쯤 듣는데 종이책으로 사 두고 싶을 만큼 좋습니다.
오디오북으로 좋았던 책은 꼭 종이책으로 또 사 봐야 해서 이중 지출을 하고 있어요.
비용 감소를 위해서라도 저는 다독보다 정독을 해야 할 듯해요.^^

그레이스 2021-10-22 13:47   좋아요 0 | URL
저게 이작가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아요
 
















시간에도 익숙한 길이 있다. 한 번 지나간 길은 기억의 회로에 내장된다. 그 길로 들어가면 아주 순수한 그림자 하나 만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여섯 해를 오갔던 길로 들어선다. 한낮의 열기가 지하로 기어들고 지상의 물상이 키를 낮추는,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교문 앞에 서니 오른쪽에 개교 110주년이라는 2017년도 표식이 보인다. 흙먼지 날리던 운동장은 초록 인조잔디로 옷을 갈아입었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축구부 꿈나무들이 그 위를 뛰어다닌다.


곧바로 본관으로 향한다.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아이들이 검정 줄무늬 축구복을 입고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다른 학교 축구부 학생들 같다.


안녕하세요?” “, 그래, 안녕!”

얼떨결에 명랑한 인사를 받고 화답한다. 잘린 나무를 보러 온 마음을 알 리 없겠지.


본관 앞에 다급히 선다.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자리는 생각보다 삭막하다. 삭둑 잘린 나무 밑동 가장자리에 거무스름한 진액이 채 마르지 않고 고여 있다. 주변에 새까만 개미 몇 마리가 기어 다닌다. 희미한 나이테와 가로세로 갈라져 터진 틈으로 모래흙이 성글게 박여 있다.


천천히 둥치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손가락을 쫙 펴 지름을 재어 보니 다섯 뺨 반이다. 백 살 하고도 열두 살을 더 먹은 고목이 살았을 적에는 4층 본관 건물보다도 훨씬 컸다. 마른버짐이 꽃처럼 핀 얼굴들이 내다보던 교실 창문도 쭉쭉 뻗은 가지와 짙푸른 잎으로 가릴 정도였다. 고개를 한껏 들어 나뭇가지와 잎이 사라진 허공을 올려다본다.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네모난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숫자 6을 막 지나는 나이 든 바늘이 숨차 보인다.


오월로 접어든 날 아침, 부고가 날아왔다. 한 그루 히말라야시다가 베였다는 비보였다. 거목의 발목이 꺾여 쿵 넘어지는 광경과 함께 무언가가 내 안에서 철렁 내려앉았다. 세상의 정체가 궁금했던 계집아이의 생애 첫 학교,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무 한 그루가 그 시간 그 시절을 데리고 와르르 달려왔다.


우리 학교, 다행복학교로 지정된 거 아세요?” 

춘계방학과는 별개로 봄방학 기간이라며 축구부 선생님이라는 남자가 말을 건다. 나무둥치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는 내가 이상해 보였던지 어떻게 오셨느냐 물으며 졸업생이냐고 덧붙인다.


, 실은 나무를 보러 왔어요. 학교도 와보고 싶었고요.”

나무 때문에 놀라셨죠? 무슨 일 하는 분이세요? 기자신가요?”

“...... 가지치기를 더 하고 지지대를 해 준다든지 뭐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요?”

다소 긴 설명을 듣고 보니, 몇 년 전 태풍으로 크게 한 번 타격을 받았던 터라 안전을 이유로 내린 결정이란 걸 알았다.


히말라야가 고향인 이 아열대성 상록수는 강직하고 푸르른 아름다움을 간직하지만 의외로 잘 부러지고 말라 죽는 수도 많다. 강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힘들게 버티고 있는 경우가 많듯이,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듯이. 그래서 히말라야시다는 가지치기를 자주 해주어야 한다. 사람도 자주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야 하듯이.


열일곱 해 후배라는 남자는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눈치다. 학교장의 권한이 학부모운영위원회의 결정을 내칠 정도로 크지 않다고 말을 잇는다. 젊은 학부모들이나 학교장이나 모교 출신이 아니니 그 나무의 의미를 되새김하지 않은 것 같다. 정작 그분도 잘린 나무에 대해서는 덤덤해 보이고 그저 다행복학교로 지정된 것에만 불만이 있어 보였다. 방학일수가 많아져 아이들은 좋겠지만 맞벌이 부부는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 아래까지 단추가 바투 채워져 있던 검은 교복 시절의 나, 돌아보면 결코 해맑거나 어리지만은 않았던, 호기심이 잉태한 어둠과 예민함이 생산한 상처가 키운 그 시절, 나는 행복한 아이였던가.


본관으로 들어가니 왼쪽 벽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빼곡하다. 오른쪽 벽에는 학교의 역사자료를 전시해 놓고 그 아래 나무의자를 마주 앉게 배열해 놓았다. 신설학교 비품들과 달리 나뭇결에 밴 쿰쿰한 시간의 냄새에 마음이 좀 누그러진다. 그 시절에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궤적을 들여다본다. 1921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장으로 치른 제1회 졸업생 애국지사 윤현진의 장례식 사진이 눈에 띈다. 1940년 운동장 조례 광경을 담은 흑백사진 속에 본관 옆 히말라야시다가 일장기와 나란히 건재하다.


전교 행사 때면 키다리 히말라야시다는 내리붓는 햇살에 이마를 찡그리고 줄을 맞춰 서 있던 우리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짙푸른 바늘잎을 당당히 내어 달고 양팔을 벌려 하늘 향해 치솟아 있던 늠름한 그 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하얀 블라우스에 하얀 타이즈, 검정 멜빵 주름치마를 입고 그 나무 앞에서 신입생 환영사를 읽고 재학생 대표로 송별사를 읽던 창백한 여자아이는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지금의 생을 그때 알 수 있었다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자신도 모르는 운명의 지도를 품고 결국은 갈 수밖에 없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운동회 날이면 본부석이 그 나무 앞에 마련되었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하고 나면 결승선이 있는 본부석 앞에서 손목에 도장을 받았다. 1, 2, 3등으로 들어온 아이에게만 주어지는 상이다. 백 미터를 이박삼일로 달렸던 여자아이는 늘 꼴찌였는데 한번은 너무 뒤처져 달리다 뒤이어 달려온 조의 아이들에 섞여 겨우 3등을 했다. 내 손목을 잡아채 도장을 쾅 찍어 주신 선생님은 당연히 3등인 줄 알고 그러셨지만 께름칙했던 느림보는 부상副賞으로 받은 공책을 누가 볼 새라 얼른 가방에 넣었다. 그 공책에도 도장이 찍혀 있었다. 얼떨결에 찍힌 도장은 잘 지워지지 않고 며칠 동안 손목 위에서 나를 놀리듯 헤실거렸다.


성석제 단편소설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에도 초등학교 교정에 히말라야시다가 나온다. 사생대회에서 같은 나무를 그린 남학생과 여학생은 각자의 진실을 침묵하며 각자의 생을 살아와 각자 다른 어른이 되었다. 소녀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에는 소년은 칠하지 않은 회색 붓질이 거북등 같은 회갈색 수피의 음영을 한층 잘 그려냈다. 재능이 모자랐던 소년은 이 사실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아닌 그림으로 상을 받고도 털어놓지 않았다. 대신 평생 자기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아 도약하는 쪽을 택했다. 재능이 뛰어났던 소녀는 번호를 잘못 기재한 자신의 부주의가 낳은 실수를 받아들이고 진실을 굳이 밝히지 않아 자신과 타인의 이면裏面의 생을 그러안았다. 소년의 수치심과 소녀의 우월감에서 나온 결과였다 해도 히말라야시다는 두 사람의 운명을 어떤길로 가게 했다.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알게 해 준 무엇이었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걸어 둥치로 돌아왔다. 제초제를 뿌려 썩히지 말고 그냥 두면 좋겠다. 넉넉한 나무둥치에 누구라도 털썩 앉아 잠시 쉴 수 있도록. 속말로 묘비명을 새겨 본다

- 여기, , 우뚝했었네! 잠시 앉았다 가게.


멀리 맞은편에 튼실한 벚나무 여섯 그루가 일렬횡대로 연초록 그늘을 드리운다. 그 아래로 길게 돌계단이 보인다. 젊은 엄마들이 돌계단에 앉아 축구부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팔순을 넘긴 젊은 엄마도 거북이 뜀박질하던 솜털 보송한 딸을 그 돌계단에 앉아 지켜보셨다. “애가 타면서도 어찌나 우습던지... 호호호...” 초등학교 28년 대선배의 얼굴이 히말라야시다만큼 푸르다.


운동장 저 건너편으로 뜨겁고도 서늘한 해가 서서히 엎드리고 있다.



정겨운 교정 본관 앞


싹둑 잘린 둥치


흙마당은 어디 가고 인조잔디 위에서 연습하는 축구부 소년들



우산 윤현진(1892.9.16. -1921.9.17.) 



일본 유학시절 조선유학생학우회와 신아동맹당의 핵심인물로서 항일운동에 앞장섰고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위원장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9월 17일부터 우산 윤현진 선생 서거 100주기 추모와 형 윤현태 등 윤 씨 일가의 행적, 양산의 유력자들을 기린 전시가 양산시립박물관에서 특별히 열리고 있다. 12월 12일까지니 아직 날짜 여유가 있다. 인물도 준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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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19 16: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남쪽지역이군요! 히말라야시다가 있었던걸 보니...^^ 히말라야시다는 밤에 보면 유령같은 자태로 사람을 놀라게 하죠^^ 유럽에서는 묘지주변에 주로 심는 수종이어서 오싹한 느낌이 더 하죠. ^^
학교에 심었던 이유는 북쪽 지방에서 주목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나무를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향나무나 화백종류는 너무 왜색이고 흔하기도 하고... 아마도 이색적인 모양때문에 심은것 같은데, 건물입구에 심기에는 적당하지 않네요. 너무 크게 자라기도 하구요^^
그래도 추억이 있었던 나무가 잘려나간 것은 마음이 아프네요.
성석제님 이야기도 너무 좋구요~♡

프레이야 2021-10-19 17:13   좋아요 3 | URL
묘지 주변. 그렇군요. 사이프러스나무만 그런 줄 알았네요. ^^ 히말라야시다ㅜ진짜 학교에서 키가 어찌나 컸던지 본관 건물 키만 했으니까요. 아이적엔 더 크게 느껴졌는데 말이죠. 검푸른 침엽이 오싹하기도 하고 힘 있어 보이기도 하고 당시 본관 앞 말고 학교 운동장 둘레따라 다른 곳에도 많이 있었는데 그날 가 보니 많이 베어 놓았더라구요. 가지치기가 필요한가 봐요. ^^

그레이스 2021-10-19 17:37   좋아요 3 | URL
도서관에 예약했습니다~♡^^

새파랑 2021-10-19 1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히말라야시다에 대한 글 멋지네요~!
오랜만에 학교에 가셔서 뿌듯하면서도 아쉬움이 있으실거 같아요😆

프레이야 2021-10-19 17:10   좋아요 4 | URL
네 새파랑 님 학교 역사가 좀 오래 되었는데 제가 60회 졸업이구요. 엄마는 32회 ㅎ 인조잔디 깔아둔 거 보니 깨끗하긴 한데 암튼 묘한 추억에 잠겼더랬어요. 해거름이라 더 그랬는지.

막시무스 2021-10-19 17: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크기의 그루터기 사진을 보니 뭔가 추억이 베어져 버린것 같은 상실감이 느껴집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도 히말라야시다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지는데요!ㅎ. 어머님이랑 같은 학교에 다니셨다니깐 모교에 더 정이 깊으시겠어요! 저도 2년전 쯤인가 모교에 간적이 있는데, 어린시절 그 넓던 운동장이 지금 갑자기 좁아졌는지 아니면 내가 훌쩍 커버렸는지 순간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ㅎ 별로 먹는것도 특별히 하는것도 없이 뛰어만 다녀도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는데요!ㅎ 히말리야시다 글 덕분에 여러가지로 그 시절을 즐겁게 추억해 봤습니다. 즐건 저녁시간 되십시요!

프레이야 2021-10-19 17:41   좋아요 4 | URL
히말라야시다가 교목인 학교가 더러 있더군요. 쭉쭉 뻗은 기상이 느껴지는 나무이긴 한데 잘 부러진다니 ㅠ 그땐 몰랐던 걸 세월 지나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학교 운동장은 추억을 불러주지요. 저게 2년 전인데 지금은 어찌 되어 있나 모르겠어요. 한번 가봐야겠어요.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

mini74 2021-10-19 18: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성석제 소설도 좋았지만 프레이야님이 풀어내는 이야기도 참 따뜻해서 좋아요 *^^*히말라야시다 저희 학교에도 있었던 기억이 나요 *^^*

프레이야 2021-10-19 20:06   좋아요 3 | URL
미니님 학교에두요 ^^ 울학교엔 또 플라타너스가 있었는데 송충이가 그 잎에서 떨어지던 어마무시 징그럽던 기억이 나요. 하교할 때 후문으로 가려면 그 나무 아래를 통과해야 되는데 ㅠ 후문으로 가면 조금 빨랐지만 정문으로 나가는 걸루. ㅎㅎ

붕붕툐툐 2021-10-19 2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엄마랑 같은 초등학교 졸업이라니~ 어머님은 같은 동네에서 오래 사신걸까요? 나무 보러 간 마음이 따뜻하네요~ 전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교문을 교체한다고 정문 바로 옆에 있던 소나무를 잘라버려 너무 속상했던 기억이 나네요~ 안전 때문이 아니라 그냥 더 큰 교문을 위해서요~ 전 나무 있는 교문이 훨씬 학교를 빛나게 한다는 생각입니다~
졸업생이 종종 오는 좋은 학교인 거 같아요~~ 윤현진 애국지사님도 졸업하시고~👍👍

프레이야 2021-10-19 21:31   좋아요 1 | URL
소나무 옆 교문 상상해보니 참 멋있구먼요 아쉽네요 잘린 나무라니. 초등 선배 울엄마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행하셨대요. 서울에서 저 낳고 동생 낳고 다시 돌아와서 셋째 낳고요. ㅎㅎ

scott 2021-10-20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나무 이름 이였네요
이름만 으로 추측하면
히말라야가 원산지 인 줄!!
포플러 나무보다 멋진데!


마미랑 동문 ^^ 멋집니다
학교 , 영원 했으면 ^^

그레이스 2021-10-20 05:17   좋아요 1 | URL
히말라야가 원산지 맞을거예요.
학명에 히말라야가 들어가니,,

프레이야 2021-10-20 06:53   좋아요 2 | URL
네. 그레이스 님 말씀대로 원산지는 히말라야에요. 다시 한번 찾아보니 울나라에선 천안 이남에 분포한다고 하네요. 상록수라 교목으로 하는 거 같아요.
엄마 이모 동생 제부 조카까지 ㅎㅎ 학교가 오래 되다보니 … 아마도 영원하겠죠^^
생각난 김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한번 가봐야겠어요. 나를 키웠던 곳.

책읽는나무 2021-10-20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현진 애국지사가 부산쪽 초등학교에서 졸업하셨었군요???
양산쪽 사람으로 알고 있었어요.늘 양산의 인물이라고 써져 있었던 걸 봐서....^^
히말라야시다란 나무가 정확히 어떤 나무인줄 몰랐었는데 덕분에 조금 알고 갑니다.저 책도 오래전에 읽었었는데 결말이 넘 좋았어요.성석제 작가도 이런 소설도 쓰는 구나!! 감탄했었던 기억이 어렴풋 떠오릅니다.
어머님이 선배님이셨던 학교의 오랜 전통은 나무 그루터기만 보아도 찡하게 다가오는 듯 합니다.^^

프레이야 2021-10-20 10:29   좋아요 2 | URL
네. 양산 태생이구요. 제가 나온 국민학교는 부산이라도 양산에서 많이 멀지 않은 북구쪽이지요. 국민학교 출신 ㅎㅎ 이 지역에서 그 집안 재력가에 좋은 일 많이 한 걸로 유명하지요. 학생 때 엄마에게 들었던 기억이. 그나저나 양산시립박물관 전시 가보셨나요?
잘려나간 나무 보니 마음이 이상했어요. 나무는 신령스러운 존재인데 말이죠. 성석제 소설가는 진짜 이야기꾼^^

책읽는나무 2021-10-20 10:42   좋아요 2 | URL
박물관은 아직 안가봤어요.코로나 시작된후로 공공장소는 아예....출입을 삼가중이었어요.ㅋㅋㅋ
요즘 조금씩 몰래 활보 중입니다.
안그래도 양산박물관에 전시중이라고 써놓으셔서 응??했네요^^
근데 우리동네는 규모가 작아서 얼마만큼이나 전시 되어 있을까?좀 걱정이 앞섭니다.스콧님 서재에서 하루키옹의 문학관을 보고 와서 눈만 높아져서 일까요????ㅋㅋㅋ
100주년이라니....시간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저분들이 계셨기에 지금 내가 있는 건데...싶네요^^

프레이야 2021-10-20 10:48   좋아요 2 | URL
나름 알차다는 소문이요 ㅎㅎ 전 마스크 하고 전시장 꽤 다녔어요. 마스크 하고 얼마나 북적북적하던지요. 그래도 전과 다른 거라면 대기순번 나눠주고 인원 제한하면서 한 팀씩 입장시켜서 괜찮았어요. 좀 있다 포스팅 하나 할까봐요 마스크한 프레이야 ㅋ

프레이야 2021-10-20 10:50   좋아요 1 | URL
하루키는 참 마음엔 아직도 청년같이 자리하는데 나이 들어 이제 하루키옹이라니. 대단대단. 우리 하루키옹 서재 보러 한번 갑시다요.

책읽는나무 2021-10-20 10:55   좋아요 2 | URL
일어가 되시나요???ㅋㅋㅋ
하루키옹 서재 구경 가서 하루키옹도 직접 봤음 좋겠네요ㅋㅋㅋ
그럼 지금부터 빠뜨렸던 하루키옹 소설도 다시 읽기 해야겠어요^^
코로나 잠잠해지는 시기를 기다리며 일어공부 합시다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21-10-20 10:58   좋아요 1 | URL
ㅋㅋ 스캇님 앞세워서 가야죠. 혼자 김칫국 마시기. 추진단장에 울책나무님을!

책읽는나무 2021-10-20 11:01   좋아요 2 | URL
스콧님이시면 우린 일어공부 안해도 되겠네요ㅋㅋㅋㅋ
깃발 로고 디자인부터 만들어야 겠어요.
사람 많은 곳에서 길 잃어버림 안되니까요~ㅋㅋㅋ
자꾸 상상하니 웃음이~ㅋㅋ

프레이야 2021-10-20 11:07   좋아요 2 | URL
히히 상상만으로도 즐거워라.
오늘도 기쁜 하루 보내세요 ^^
 

영화 <사울의 아들>, <줄무늬 파자마 입은 소년>, <카운터피트>를 추천하며...


고체가스를 담은 양철통 2015년 12월 촬영.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공노할 기만적인 문구, 그 아래 음산한 철문이 열리는 이곳은 가장 악랄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매년 127일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 행사가 여기서 열린다. 2021년에는 팬데믹으로 유럽 여러 나라가 온라인 행사를 진행했다는 뉴스를 보았신에게 바쳐진 재물이라는 뜻의 홀로코스트Holocoust보다 대재앙이라는 뜻으로 유대인들이 말한 히브리어 쇼아shoah가 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는 그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타자의 입장에서 홀로코스트를 쓴다는 한계를 어쩔 수 없이 또 마주한다.


오시비엥침은 폴란드 구도시 크라쿠프 서쪽에 위치하는 소도시다. 오시비엥침역은 유럽 전역에서 영문도 모르고 잡혀갔던 이들을 실은 기차가 마지막으로 지나는 역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당신, 모든 희망을 잃을 것이다.’ 단테의 문장을 떠올리기에는 아직은 이르다 했을지 모른다. 수용소 안으로 이어진 철로를 따라 기차가 들어가고 그들은 짐짝처럼 부려져 분류되었다. 노동 가능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후자는 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로 보내졌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가져갔던 물건은 모두 빼앗겼다. 안경, 신발, 가방, 의족, 의수에 아이의 인형까지. 이름마저 압수당하고 번호가 주어진 그들에게 소유물은 없었다. 싹둑 잘린 머리카락 더미는 카펫의 재료가 되었다. 어두컴컴한 시체소각실을 보러 가기 전, 유리관 안에 수북이 쌓인 망자들의 분신 위로 퀭한 눈동자들이 경악하는 방문객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연극 <목이 마르다J’ai Soif>는 극단 과 아비뇽 극단 발콩2016년 아비뇽국제연극제 출품을 위해 협연한 작품이다. 당시 프랑스문화원 실장이 티켓을 줘서 출품 전에 이 연극을 2016년 5월 20일 부산의 동래문화회관에서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유월 아비뇽에 발길이 닿았는데 연극제 기간이었다. 연극을 보러 간 건 아니었지만 거리에 우리 연극 포스터들이 보여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예수와 아우슈비츠 희생자를 동시에 떠올리며 신을 묻고 인간의 고통과 잔혹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음악극은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십자가 위의 일곱 가지 말씀과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토대로 한다. 오월 저녁 줄장미가 혈처럼 붉던 날, 극장 앞줄에 앉아 관람하며 스산한 겨울 수용소 전시실에서 보았던 망령(亡靈)을 떠올렸다. 소름이 돋았다.


소유물이 없다면 우리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이름이 아니면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 모노드라마의 배 나온 남자가 던진 질문이다. 강탈된 이름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듬해 봄날, 그 이름들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났다.


이스라엘 홀로코스트박물관의 이름은 1953년 건립 당시 야드 바셈(Yad Vashem)’이었다. ‘이름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멀리 예루살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이름의 홀에는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깊은 우물이 자리한다. 기억의 심연을 부르는 아득한 공간에서 이름이 공명하고 원뿔형 천장과 벽에 빙 둘러싸인 수많은 사진 속 얼굴을 소환한다. 얼굴을 서로 갸우뚱 기대고 찍은 젊은 부부, 귀여운 표정을 짓는 소녀, 진지한 노인 랍비, 잘생긴 젊은 장교, 눈 맑은 소박한 처녀... 스무 개 이상의 언어로 적힌 수많은 이름을 올려다보며 기이하도록 가슴이 아렸다. 저 아래에서 어디서 들어본 아우성이 들려왔다. 집어삼킬 듯 아가리를 벌린 검은 물속으로 익사한 이름들의 영혼이 오늘을 연명하는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구조되지 못한 영혼을 생각하며 눈을 감고 귀를 크게 열었다.


녹초가 되어 홀에서 빠져나오며 구조된 자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프리모 레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부정적인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자유롭게 살다가 파시스트 민병대에 체포된다. 폴란드 제3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후 파시즘을 우리 시대 붉은 신호등으로 삼고자 증언록을 남겼다. <목이 마르다>가 이야기의 기반으로 삼은 이 책은 화학자인 그가 남긴 첫 번째 증언문학이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수용소로 걸어가는 길을 여행이라 부르며 시작한다. 시종일관 섬세하고 면밀한 눈으로 주변과 인물을 파고들며 인간성의 본질에 천착한다. 절멸의 수용소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생의 값진 소득이라 여기는 힘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 기인하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을 과대평가하지도 인간성의 위대함만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가 목격한 것은 인간성의 허약함이다. 인간성의 연약함, 인간이 열망하는 자유,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일련의 일들을 증언하며 이것이 인간인가?”에 대한 진지한 답변을 내린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징후는 우리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잔인한 그러나 평범한 악의 얼굴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 얼굴은 모래성처럼 빈약한 실체감에 기반한. 이미지만으로도 괴력을 발휘하는 집단적, 총체적 두려움이 그 얼굴의 민낯이다. 독일군이나 독일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이 책에 왜 표현되지 않았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작가는 얼굴 없는 대상에 대고 어떻게 분노를 터뜨릴 수 있는가라고 답변했다. 프리모 레비는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을 암흑과 같은 시간에도 내 동료들과 나 자신에게서 사물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보겠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수용소에 널리 퍼져 수인들을 정신적 조난자로 만들었던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고집스럽게 지켜낸 것이라고 스스로 해석했다.


작품 전체에 장치된 단테의 신곡지옥편이것이 인간인가가 문학으로 승화할 수 있는 큰 요인이다.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로 가는 길부터 일 년 남짓의 수용소 생활과 퇴각하는 열흘간의 이야기까지 흘러오면서 내내 지옥을 연상했음이다. ‘오디세우스의 노래에서는 인간이 인간인 까닭과 인간임을 포기할 수 없어 감당해야 했을 자멸감이 절정에 이르러 직설적 어조보다 울림이 깊다. 어떤 생생한 증언이나 기록에서보다 극한의 상황에 다다른 슬픔의 극치를 느꼈다. 문학의 힘일 것이다.

 

그대들이 타고난 본성을 가늠하시오.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덕()과 지()를 따르기 위함이라오.

 

마치 나 역시 생전 처음으로 이 구절을 들은 것 같았다. 날카로운 트럼펫 소리,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잠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 잊을 수 있었다.

                                                                                 - <이것이 인간인가> 중


담백하고 미려한 문장을 따라가며 최대한 자제심을 발휘하려는 극한의 고통이 어떤 것일지 상상도 안 되어 곳곳에서 멈춰 숨을 고르고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책을 펼쳤음을 나는 사죄해야 한다.


생은 언젠가 종결된다. 프리모 레비는 1987411일에 그 일을 스스로 이루었다. 구조된 후 40여 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꽃봄 낭자한 계절에 스스로 익사하고 말았다. 혹독한 수용소에서도 실행하지 않았던 일이다. 수몰된 이름을 건져 올리고 존재증명을 이룬 세월이 더한 지옥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홀로코스트박물관 앞, 밝게 웃으며 걸어오는 군복 입은 청년들. 2017넌 3월 촬영.




- 빅터 프랭클 박사와 대조되는 삶을 선택한 프리모 레비를 생각하며. 수필미학 2021여름호 게재 원고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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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18 17: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내용도 넘 슬퍼요. 죽음의 수용소도 이것이 인간인가도 참 감명깊게 본 책. 그러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다른 의미로 너무 너무 충격을 준 영화얐어요. 책도 영화도 보고나서 한참 멍했던 기억이 납니다 ㅠㅠㅠ 좋은 글 잘 읽었어요 프레이야님 *^^*

프레이야 2021-10-18 18:40   좋아요 4 | URL
그렇지요 ㅠ 프랭클 박사의 다른 책, 회상록,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도 있구요.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줄무늬 파자마 그 영화 진짜 너무 ㅠ 베라 파미가가 통곡하는 장면 ㅠ 영화적으론 사울의 아들 강추에요. ^^

붕붕툐툐 2021-10-18 23: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프레이야님, 한국에서 만난 연극을 아비뇽에 가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포스터로나마) 너무 인연이 있네요~~
제가 좋아하는 레비와 프랭클 박사는 그렇게 또 다른 삶을 살았군요.. 에효~~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예전에 아이들과도 함께 봤던 기억이 나네요..ㅠㅠ

프레이야 2021-10-18 23:28   좋아요 3 | URL
아이들과 그 영화 보셨으면 아이들 반응이 궁금하네요. 의외로 아이들의 눈은 다르더라구요. 아비뇽에서 그 연극을 본 건 아니구요 다른 우리나라 연극 포스터 홍보를 거리에서 보았어요. 가기 전에 저 연극을 보게 된 건 참 묘한 우연이었구요. ^^

그레이스 2021-10-18 2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유물이 없다면 우리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이름이 아니면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비참한 존재의 절망적 선언이네요

프레이야 2021-10-18 23:36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그레이스 님 ^^ 우리 존재를 증명하라면 무엇으로 할 수 있을까요. 당시 가지고 간 소지품 중 가방을 압수하면서도 전부 가방에 이름을 쓰게 했더군요. 그 의미가 뭘까요. 가스실도 목욕하는 거라 속였듯 가방도 그냥 보관하는 정도로 알게 하려고 이름을 쓰게 했겠지만 그 속뜻을 생각하면 섬칫하죠.

모나리자 2021-10-19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두번 읽었는데 정말 인간이 인간에게 그렇게 고통을 가하며 살아야 할까..
먹먹한 마음이었고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더군요.
인용해 주신 문장도 살아가면서 새겨야 할 문장 같습니다. 책 제목에서 울림이 느껴지네요.^^

프레이야 2021-10-19 15:24   좋아요 2 | URL
모나리자 님, 두 번 읽으셨군요. ^^
프랭클 박사의 그 책을 저는 한때 마음이 아주 힘들고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할까 나름 고민이 많던 때
읽게 되었어요. 책도 인연이라면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로고테라피에 대한 글을 읽으며
주어진 같은 환경에서도 선택은 참 다를 수 있구나 느끼고 힘을 얻었어요.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는
그의 회상록으로 삶을 또 좀 더 알 수 있게 하더군요. 레비의 삶이 그렇다고 비교하는 건 아니구요.
<이것이 인간인가>는 인식과 서정의 힘이 함께 스민 문장만으로도 감동이 크구요. 내용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 문학적인 힘이 고양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점이 참 ^^

모나리자 2021-10-19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맞아요. 힘들때 읽는 책이죠. 저도 그랬어요..ㅎ^^

프레이야 2021-10-19 16:10   좋아요 2 | URL
모나리자 님 매일매일 기쁨 차오르는 날 보내세요 ^^
 

추석 연휴가 지나고 그 주 금요일에 점자도서관에서 하는 테마가 있는 시 수업을 마치고 약속 장소로 갔다. 앗, 그전에 엄마집에 잠시 들러 추석 때 못 찾아뵌 딸 노릇을 사들고 간 꽃등심으로 좀 하고 가느라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했다. 빈대떡집에서는 이미 세 분이서 한 순배 돌리고 계셨다. 나는 안주 킬러라 맥주는 한 잔만 받고 배가 엄청 부르도록 먹고 말았다. 

이런저런 근황을 이야기하다 협회 하반기 행사 일정 조율을 하는 중에 우리 동인 및 협회를 16년째 이끌고 계신 대장님 입에서 '이연실 편집자'가 나왔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를 만든 그분이고 에세이 편집자로 상당한 분이라며 한번 강연을 모시고 싶다는 요지였다. 11월 초로 모시려면 이미 강연 섭외나 그분 일정으로 바쁠텐데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내가 말했고 나중 연락을 취해 보셨는지 아무튼 강연은 다음에 하기로 되었다.


 그러고 이름을 새겨듣지는 않고 이 자리는 지나갔는데 며칠 전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제목이 먼저 보였고 유유출판사, 저자 이름은 나중에 보였는데 이력을 보니 그분이 맞다. 이미 유명한 에세이들이 이 분 손에서 나왔더라.  


조목조목 경험에 비추어 쉽고도 정확하게 쓴 이 책을 읽어보면 에세이를 쓰겠다는 작가와 삶, 원고를 대하는 편집자의 태도와 현실적으로 '일반 독자'를 향해 책의 방향을 모색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낌이 확 온다. 늘 공부하고 수집하고 작은 것에도 잘 느끼며 살아야 되는 직업 같고,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 같다. 책은 유유출판사다운 그 만듦새이니 읽기에 실용적이다. 제목의 중요성부터 표지, 다른 장르와는 다른 에세이 보도자료의 어조, 저자와의 좋은 관계, 디자인팀과의 지치지 않는 조율까지, 일을 하며 배우고 느끼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내용이 구체적이고 알차다. 겸손하고, 확고함에 유연성도 잃지 않는 좋은 태도를 지닌 사람 같아 호감이 간다. 게다가 좋은 책을 몇 권이나 건지게 되었다.


<에세이 만드는 법>을 읽고 끌려서 주문한 책


1

2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국적도 생소한 벨라루스의 작가다. 이연실 편집자는 어느 날 신문에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두고 '실제 사람들을 인터뷰한 논픽션인데 동시에 소설이기도 한 책'이라는 기사를 읽고 달려들었다. 인터뷰집과 르포의 성격을 한 권에 품은 책이다. 게다가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 끌렸던 건데, 편집자로서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거다.


이 책을 발간한 후, 알렉시예비치는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을 미리 알고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미리 당긴 거 아니라는 류의 소문과 달리 이 책은 2년간의 시간이 번역과 편집에 소요된 결과물이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그보다 전작이다.





3


미친 사랑의 서 


 '이연실 갤러리'에는 유난히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과 사진이 많다고 한다. 편집자 선배들은 오랫동안 풍요롭고 단단한 '자기만의 미술관'을 가슴에 꾸려온다고. 이렇게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모으고 채운 갤러리, 그중 아꼈던 중국 출신의 화가 '원우'의 유화를 표지에 올린 책이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유명한 작가들의 사랑과 연애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이 책의 원제는 '책 표지 속의 작가들Writers Between the Covers'인데 한국어판 제목을 다소 자극적으로 바꾸고 표지는 최대한 우아하고 고상하게 가야겠다는 작전을 세워 두고 시작했다고! 

김훈은 이 책을 40금이라고 했단다.

(페이퍼 쓰는데 이 책 벌써 도착했다. 오호 표지그림 정말 멋지다.)

목차를 보니 아는 이야기도 좀 있고, 당연하게도 보부아르가 있네. 

보부아르가 나오는 챕터 제목은 '섹스의 즐거움'. 



원우의 그림에는 친근한 동양인과 책이 등장하지만, 어딘가 좀 낯설고 독특한 기운이 감돈다. 원우의 그림 속 인물들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책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책을 머리에 이고 있거나 책에 파묻혀 있거나 때론 책을 애무하는 것 같다. 책을 데리고 살아가다가 약간 미쳐 버린 사람들 같달까. 나는 언젠가 환장할 것 같은 열기가 배어 있는 원고를 만나면, 원우의 그림을 꼭 표지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 59~60쪽 



무엇보다 에세이를 문학이 아니라고 보고 홀대하는 풍토를 지적하며 '잡문'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느꼈다가 정여울 작가가 하는 말에서 힘을 얻었다는 마지막 대목은 편집자로서 저자의 일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에세이는 흔히 자기고백적인 글이라 신변잡기에 머무르기 쉬운 함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좋은 편집자 이전에 좋은 작가라면 그 함정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편집자로서만이 아니라 글을 쓰고 구성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 될 내용이 알토란 같다. 


저자가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에서 들었다는 정여울 작가의 말은 아래 인용문에서...

타인이 에세이를 '잡문'이라 부를 때는 이 장르를 가볍게 보는 편견이 들어 있을 것이나, 스스로 나의 장르를 '잡문이라 말할 때 그것은 자기비하도, 겸손도 아닌 단단한 자신감이 된다고. '잡스럽다'는 것은 반듯하게 그어진 경계나 선 따위는 뛰어넘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고. 


나는 잡종 편집자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과 좋은 사람을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잡종 에세이 편집자이다. 앞으로도 매일 고민하고 가끔 실패하고, 종종 잘 팔면서 나는 계속 '잡문' 편집자로 살아갈 것이다. - 175쪽


나는 2014년부터 동인지와 계간지, 개인수필집 등을 만드는 일을 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모든 걸 믿고 맡겨주신 대장님에게 감사드린다. 지난 해에는 이런저런 한시적인 걸 더 맡아 한 달에 한 권 꼴로 만들었던 셈이다. 이연실 편집자처럼 메이저 편집자가 아니고 문단의 말석에서 글을 쓰며 삶의 의미를 찾는 수많은 글벗들의 글을 모두 읽고 교정교열하고 이쁘게 앉히는 일이었지만 나름의 보람과 의미가 있었다. 일을 하며 사람을 알게 되었고 모르던 면면을 보고도 마음에서 내치지 않을 수 있는 너그러움도 배우게 되었고 착오나 오차가 생겼을 때 능숙하게 서로 다치지 않고 해결하는 유연성과 여유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19년부터는 두 군데를 맡아 하다가 올 겨울호를 마지막으로 만기제대할 생각이다. 여기까지!


그런데 진짜 좋은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 책 <에세이 만드는 법>을 읽고 나서 불끈 생기고 말았다. 이 동네는 거의 자비출판이라 시중 마케팅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좀 다르긴 하지만 팔리는 책이 아니면 어떤가,라고 말하면 이연실 편집자 같은 분에겐 안 통할 이야기가 되겠다. 아무튼 이 동네 사람들은 무용한 일에 열정이 많다. 나도 그렇고. ^^

계간지는 표지와 특집 기획하고 회원의 글을 마감기일 안에 받아 편집교정하고 발간, 전국배부까지 일련의 과정이 한 계절을 앞서 반복해 이어졌고, 개인수필집 발간하는 일을 도맡아 도와드리면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일생과 생각이 담긴 주옥같은 스토리를 제대로 문장으로 앉히고 목차를 짜고 표지와 표제, 전체 구성에 모두 개입했다. 믿고 맡기니 처음부터 마지막 절차까지 성심껏 도와드렸다고 생각한다. 80세 전후 그보다 더, 미수의 나이에 돌아보는 한 사람의 인생은 눈물겹고 거룩하기에 내 글인 듯 감정이입해 내 책인 듯 만들었다. 


나는 쓰지 않으면 숨 쉴 수 없기에 계속 뭐든 쓸 것이고 좀더 다양한 시선을 두어야겠다고도 생각한다. 이 일을 하며 속으로 묵혀두었던 여러가지 소소한 일들을 좀전에 후임 선생님과 두 시간이 넘도록 통화했다. 다른 일로 통화했지만 이야기를 시작하니 줄줄이 사탕처럼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건 그렇고 나라는 사람은  "미친듯이 쓸 것이다. 기다려라." 이런 메모를 7,8년 전인가 어디다 해뒀더라.ㅎㅎ 한잔했던가 보다. 이제 기억이 마저 나는데 2013년 9월에 작은딸이 내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다 뭔가 다 통째 날려먹어 문서도 왕창 사라졌다. 나라는 사람은 그걸 백업도 해두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이삭 줍듯이 하며 들었던 생각이 '그냥 다시 쓰자'였다. 그냥 날려버리고 새로 하자고. 그리 될 운명의 문서라 날아간 거라고 위안하고 아이한테는 별말도 안 한 걸로 기억하는데 아이의 기억은 달라서 엄마가 미친듯이 화를 냈다고 했다. 다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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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16 2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 공감합니다 돌아보면 개개인 모두 눈물겹고 거룩한 인생 ~~ 글 쓰고 싶어하는 분들 도움 많이 주시면서 본인의 글도 열심히 쓰시는 모습 응원합니다 *^^*스베툴라나 전쟁은 여자의~~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안목있는 편집자님 덕분이군요.~~

프레이야 2021-10-16 22:24   좋아요 2 | URL
<전쟁은....> 그랬더라구요^^ 이연실 편집자, 대단! 문학동네 편집팀장인데 강의도 잘 할 거 같아요. 내년이나 여기서 초청해 들을 수 있을지도요.
저 책은 글을 에세이를 쓰거나 쓰려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거에요.

새파랑 2021-10-16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책 오늘 서점에서 봤었는데 살껄 그랬군요 ㅜㅜ 프레이야님도 출판일을 하시는군요. 어떤 책인지 궁금하네요. 멋집니다~!!

프레이야 2021-10-16 22:28   좋아요 2 | URL
아니에요 출판일 아니어요. 그냥 이곳 글쓰는 동네 말석의 조용한 편집일을 했을 뿐이에요 에구.

새파랑 2021-10-16 22:34   좋아요 2 | URL
편집도 출판이라 생각했는데 다른건가 보군요~ 제가 잘 몰라서 😅 편집이 더 멋진 일이죠~!!

프레이야 2021-10-16 22:51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 제가 많이 배우게 된 일이고 믿고 맡겨주신 문우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지요. 내년에는 뭔가 제 일상의 방향을 새로 잡아야 할 거 같아요. 어찌될지 모르지만요^^

scott 2021-10-17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단의 말석이라도
좋은 글 아름다운 글 엮는 일을 하시는 것
멋집니다!
언젠가
프레이야님의 글솜씨가 담긴 책을 만나 보고 싶습니다 ^^

프레이야 2021-10-17 09:4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스캇님 ^^ 따뜻한 말씀에 힘을 얻어요. 미숙한 사람이라 늘 고민하며 홀로 또 같이 가려구요.

책읽는나무 2021-10-17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응원하겠습니다^^
존경의 마음이 샘솟아...아...하며 읽다가 마지막 편에서 사람 냄새가 나 혼자 빵~터졌습니다.ㅋㅋㅋ
저희도 애들이 옛날 이야기를 할 때, 얼굴이 붉어지도록 지네들 혼났었던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얘기 하더라구요??
나는 정말 그렇게 혼낸 기억 없이 조금 인상쓰면서 타일렀던 것 같았었는데?????ㅋㅋㅋㅋ
기억이 각자 달라서 참 이상하다????
싶었었는데.....저만 이상한 게 아녀서 위안 받았습니다ㅋㅋㅋㅋ
사람 냄새가 나서 프레이야님 더 리스펙입니다♡♡

프레이야 2021-10-17 15:07   좋아요 1 | URL
그니깐요 ㅎㅎ 화를 미친듯이 한번 내긴 했지만 아이한테 대놓고 하진 않았는데 딱 기억하곤 ㅋㅋ 엄마들 다 글쵸. 갑자기 둥이 민이 요즘 모습이 궁금해지네요. 귀여운 둥이 잘생긴 민이. 저는 보기보다 허당이라 빈구석도 많고 그런 사람입니다요. ^^ 오늘 날씨 쨍하네요

2021-10-17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7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7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7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7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8월 중반에 가지 한 박스가 왔다. 웬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옆지기가 주문했던 것. 원래 들기름으로 무친 가지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말린 가지로 더 맛나게 반찬해 먹자고 주문을 했던 것이다. 처음 해 보긴 하지만 한 박스에 거의 75개 정도 든 가지를 용감하게 단번에 쓱싹 칼질했다. 가지 하나를 꼭지 부분은 남기고 사등분 정도로 칼질해 주면 옆지기가 세탁소 옷걸이 하나에 대여섯 개를 걸어 널었다. 어디서 본 모양이다. 이렇게 말리면 된다고. 


근사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8월23일 촬영



다하고 나니 옷걸이 수가 제법 되었다. 햇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베란다 쪽으로 걸어두고 아침저녁으로 들여다 보았다. 비가 자주 왔고 흐린 날이 많아서 어쩌나 했지만 더디긴 해도 별탈 없이 잘 말라갔다. 처음엔 가지 무게에 축 처지던 빨랫줄이 어느 날부터 괜찮아지는 거다. 제 속의 물기를 날리면서 가벼워지는 기특한 것들은 점점 냄새도 달큰하게 풍겼다. 우리의 가지는 잘 있냐, 이러며 매일 들여다보길래 피식 웃었지만 나도 매일 들여다보고 냄새 맡고 신기해 했으니 뭐.


3, 4주 정도가 지났던가. 제법 모양도 좋게 잘 마른 가지를 옷걸이에서 다 걷어내어 꼭지 부분은 자르고 나머지 부분을 길이로 이등분하여 냉동실에 보관했다. 오늘까지 모두 4번 나누어 볶아서 다 먹었다. 굴소스, 진간장, 마늘다대기, 매실청, 들기름, 통깨. 내가 먹어봐도 꼬들꼬들 맛났다. 야채를 건조하면 영양가도 높아진다지. 오늘은 어머님에게도 반찬해서 보내드렸더니 맛나다고 전화가 왔다.


그런데 사람일이란 참 웃기는 게, 이제 다시는 안 해도 되게 생겼다. 

첫 번째로 성공했던 마른 가지가 반 정도 남아 있는 시점에서 완전히 기분 상승해 있던 옆지기가 어느 날, 가지 한 박스 더 살까, 이러는 거다. 헉! 집중할 일도 있고 바쁘다고 했는데 이러니 시큰둥 놀랐지만 그 고집을 누가 꺾나. 한 박스가 또 배달왔고 이번엔 총 78개의 가지를 똑 같이 잘랐다. 손목이 좀 아팠지만 또 예쁘게 잘 마르면 보기도 좋고 맛도 좋으니 여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여기서 사람이 조금 편하려고 잔꾀를 부리면 안 된다는 것.  일을 조금 빨리 끝내려고 그랬는지 옷걸이 하나에 다닥다닥 붙여서 가지를 걸었다는 사실. 굳이 띄엄띄엄 널 필요 없겠더라고, 이러면서. 설마?, 했지만 그러겠다고 하니 별말 안 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한 옷걸이에 9-10개를 걸었으니 과밀지역에서 가지들은 숨을 못 쉬었을 수밖에 없었다. 9월 27일이 가지 한 박스 두 번째 건조의 1일차였고 이때까진 결과를 알지 못했다. 그저 첫 번째와 같이 잘 마를 거라고만 생각했지.


며칠 후부터인가 가지가 좀 이상하다 싶었다. 자세히 보니 곰팡이가 피고 있는 것이다. 시커먼 곰팡이 부분을 잘라내면 또 있고 또 있고... 포자가 다 죽질 않고 퍼지는 모양이었다. 너무 다닥다닥 붙여서 널어 그렇다고 말해도 그 이유일리가 없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선풍기를 가져다 돌리지 않나, 햇볕이 더 잘 드는 반대쪽 베란다로 모두 옮기질 않나. 아무 소용 없었다. 그렇게 잘라내 버리고 또 잘라내 버리고 해서 지금은 먹을 만한 게 반도 안 남아있다. 내일쯤 옷걸이에서 다 걷어내면 한움큼 정도 되려나 싶다. 귀한 교훈을 얻은 거지. 아직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말은 절대 안 한다. 식품건조기 살까 하다 그것도 안 하기로 했다. 물건을 더 사는 건 안 하는 걸로. 다음엔 말린 가지 1킬로 주문하자, 이런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굳 아이디어!! 


여기서 몇 년 전 썼던 글 '변신'을 발췌해 옮겨둔다. 

* *


습관처럼 코를 가까이 댄다. 달콤하지도 상큼하지도 않은 냄새가 얌전히 안겨든다. 오래된 책갈피에서 나는 도타운 냄새다. 만지면 부서질 듯 가녀린 꽃잎 위로 시간의 살비듬이 포슬포슬 내려앉았다.


조금은 지쳐 있던 그해 봄, 아주 커다란 꽃바구니를 배달받았다. 이런 걸 보낼 사람이 없는데 싶어 수신인을 재확인했다.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았다. 둥그런 등바구니에 선홍색 물이 묻어날 것 같은 한아름 장미가 터질 듯 들어앉아 있는데 앞다투어 내민 얼굴을 대충 헤아려봐도 이백 송이는 되어 보였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바구니를 안으로 옮기려다 긴 리본에 적힌 고전적인 글귀에 발이 걸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던 날을 상기했다. 설렐 일이라곤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방식의 고백이라니! 오래전 멀리 떨어진 어린 아내에게 손편지로 보내오던 눈 맑은 이등병의 글귀가 떠올랐다. 비무장 상태에서 변칙적인 한 방에 낯이 간질간질 가슴이 두방망이질해댔다. 집안 한가운데쯤 피아노 옆자리로 옮겨놓으니 은은한 향취가 온 집에 맴돌았다. 일주일이 그렇게 솔솔 흘러갔다.


날이 갈수록 꽃송이들이 변해갔다. 근사한 마른 꽃이 되어가는 모양새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향기는 옅어지고 물기는 차츰 날아가 파슬파슬해졌다. 한껏 부풀었던 꽃송이는 부피가 줄고 붉게 타던 겹겹의 꽃잎은 시간이 갈수록 색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힘을 빼고 색을 벗어 버렸다. 그야말로 인기 있는 립스틱 색상명, 말린 장미꽃 색이 되었다. 무심한 듯 차분하게 열정을 잘 다독인, 편안하면서도 세련미를 풍기는 색상이었다.


마른 장미꽃 바구니를 일 년이 넘도록 버리지 못했다. 먼지가 된 시간을 온몸으로 안으며 거듭 피어난 꽃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습윤이 증발하고 잘린 줄기의 먼 기억이 부른 은근한 흙냄새가 꽃잎 위로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의 분진粉塵을 말해 주었다. 다음 해 기념일을 맞이하고도 한참 지난 후에야 이별을 마음먹었다. 아이들이 스치고 지나다니며 꽃이파리가 바스러지는 게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못내 아쉬워 한 묶음 남겨 낮은 장식장 위에 정물로 앉은 청화백자 푼주에 뉘어두었다. 직립해 있던 꽃가지들이 또 다른 자리를 찾아 누운 모양새가 보기에도 썩 좋았다.


마른 꽃을 좀 더 오래 고이 간직할 순 없을까. 먼저 한 다발을 적당히 모아 꽃잎에 헤어스프레이를 살짝 뿌려주면 이쁜 모양새로 말리는 데 도움이 된다. 잘린 줄기 끝이 하늘을 보도록 거꾸로 매달아 둬야 하는데,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이면 최상이다. 햇빛이 센 곳에 두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금세 시들어 버린다. 물기가 서서히 증발하지 못하고 일순간에 다 타버리는 것이다. 무모하고 성급한 정열에 심신을 소진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이카로스의 밀랍 날개를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온전한 마음과 적절한 기술과 좋은 타이밍이 요구된다. 일도 사랑도 그렇다. 정성은 오래, 전부 쏟아야 진가를 발휘한다. 꽃을 말리는 일도 그렇다.


(중략 _ 이 부분은 엄마의 뜨개질 내용)


대중목욕탕에서 고화枯花를 본다. 연로한 몸에는 덧없는 홍조의 시절을 건너 고갱이로 남은 마른 꽃이 알록달록하다. 생의 갈증을 이기고 풍화를 견뎌온 연륜의 꽃은 인고의 삶과 지혜의 덕망을 품고 있다.

변해가는 건 생화生花만이 아니다. 우리가 그려가는 동행도 고화枯花로 변신 중이다. 벨 듯한 향기 대신 무향의 몸을 부대끼며 무언의 말을 나눈다. 부딪혀서 금 가고 부서지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말 한마디 삼키고 무던히 지나가는 날이 많다. 어디쯤에서 넘어지고 다치는지 이해하게 되기까지 천 개의 그늘과 만 개의 바람이 필요하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는 진실이다.


시간은 숨이다. 시간은 베일에 가린 우리 삶의 안자락을 춤추듯 들고 난다. 꽃은 그 시간을 야금야금 먹고 느린 숨을 쉬며 새로이 몸을 연다. 연지 바른 입술은 푸르죽죽한 맨살을 보이고 강퍅하게 제 향만을 뽐내던 허욕의 길을 돌아 나와 단출하게 홀로 선 자의 자태다. 보잘것없는 몸을 가려준 허식의 옷을 벗고 겨울숲으로 걸어 들어간 자의 뒷모습이다.


뜨개실을 풀어 새로 감듯 안과 밖을 되감는 중이다. 바람 좋은 창가에 말라가는 내 안의 꽃을 매단다. 그런대로 괜찮은 풍경이 되길.

 

* * 



그런데 가지 꼭지에 영양분이 다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 버렸는데 아깝다. 가지 꼭지가 눈에도 좋다고 하여 당장 주문했고 이틀 후 요렇게 깨끗하게 말린 가지 꼭지가 왔다. 냉장실에 넣어두고 꺼내 쓴다. 가지 꼭지에는 가시가 있으니 맨손으로 덥석 잡다가는 아얏,하는데 말린 가지 꼭지는 괜찮다. 끓여서 마셔 보니 구수하다.^^


드라이플라워도 그렇고 가지를 말리는 일도 그렇고 사이라는 이름의 바람이 들고나는 시간의 숨을 생각하게 한다. 사이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의 영지에서도 중요하다. 더구나 천공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그대들의 공존에 거리를 두라는 칼릴 지브란의 문장이 생각난다. 수분이 빠지고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 검정색 표지의 <예언자>를 엄마가 데려간 동네서점에서 '어린 왕자'와 같이 내가 골랐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은 언젠가부터 사라지고 안 보이지만... 대신 강은교 번역의 양장본을 중고도서로 갖고 있다.

이런 문장의 의미를 십 대 그때는 몰랐겠지.


 













 칼릴지브란 / 강은교 역




 결혼에 대하여



 그러자 알미트라는 또 다시 물었다. 그러면 스승이여, 결혼이랑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며, 또 영원히 함께 있으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생애를 흩어 사라지게 할 때까지 함께 있으리라.

 아, 그대들은 함께 있으리라, 신의 말없는 기억 속에서까지도.

 허나 그대들의 공존에는 거리를 두라, 천공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서로 저희의 빵을 주되, 어느 한 편의 빵만을 먹지는 말라.

 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저마다 외로운 기타 줄들처럼.

 

 서로 가슴을 주라, 허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을.

 참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2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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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15 2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지를 저렇게 옷걸이에 걸고 말리는군요 ^^ 다음부터는 말린가지로 ㅋ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가지 꼭지를 꼭 먹어야 겠네요~!!

프레이야 2021-10-15 20:33   좋아요 3 | URL
네. 의외로 간단한데 관건은 사이사이 붙이지 말고 거리를 두고 널어야 해요 ^^ 뼈아픈 교훈.

mini74 2021-10-15 2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만삭일때 감 한 상자 사서 곶감 만들겠다고 말리다가 ㅠㅠ 그 하 가을 내내 비가 자주 내리는 바람에 몽땅 썩어 버린 기억이 납니다. 깎은 공이 아까워서 ㅎㅎ 그 후론 말리는 건 안녕~ 했는데 가지 보니 또 욕망이 ! 말리고 싶다 건조기도 있는데 ! 하면서 보고있어요 ㅎㅎ 칼릴 지브란, 책받침 등 문구로 자주 뵌 분 , 반갑네요 *^^*

프레이야 2021-10-15 20:51   좋아요 2 | URL
세상에나.. 만삭에 그걸 다요. 진짜 공이 아깝네요. 건조기 있으면 해보셔도 ㅎㅎ
뭐든 말리기 좋아하는 분 제 주변에도 있어요. 온갖 거 다 말리더라구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손도 아프고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요.
지브란은 레바논 태생, 아랍어와 영어 모두 창작에 자유로이 쓰고
로댕에게 미술도 배워 그림도 잘 그리고 신비적이고 아무튼 고등학생 때
이 책을 고른 건 산문시도 좋았지만 삽화가 마음을 당겼어요.
책받침, 문구에도 있었나요^^ 못 봤네요 전.

mini74 2021-10-15 20:56   좋아요 1 | URL
책받침 연습장 등 표지에 예쁜 소녀 그림 등에 간단 문구에 밑엔 칼릴 지브란 이렇게~ 소녀 그림 등이 예뻐서 샀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좀 미련했지요 ㅠㅠㅠ 아파트 베란다에선 아무래도 힘들더라구요 ~~

scott 2021-10-16 00:30   좋아요 2 | URL
오! 넘 안타깝습니다 ㅠ.ㅠ(전, 곶감 귀신임 🖐)

서니데이 2021-10-15 20: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첫번째가 운좋게 성공하면, 그 다음 두번째나 세번째는 잘 안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희집에서는 몇 번 실패하고 요즘엔 안 하는 것 같아요.
베란다에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잘 마르지 않거나,
아니면 미세먼지 많은 시기여서 그런지 감이나 다른 과일이 검게 말라서
결과가 좋지 않았거든요.
건조기를 사고 싶었지만, 그것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아직 안 사고 있어요.
두번째는 실패의 원인 아셨으니, 다음엔 잘 되실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프레이야 2021-10-15 21:50   좋아요 3 | URL
앗. 그 시커먼스가 미세먼지 때문에 생기는 걸수도 있겠네요. 암튼 실패의 값진 교훈이죠 ㅎㅎ 다시는 하라고 안 하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그저 바람 잘 통하는 공기 좋은 곳에 널널하게. 이게 정답인 거 같아요. 기계 건조기보다 아무래도 낫겠죠. 손도 가고 시간도 정성도 들여야 되는 일이네요. 서니 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1-10-15 2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려서 먹어 보려고 감이랑 몇 개의 채소 말려 봤는데 곰팡이가 피던데요??
그래서 식품 건조기 사서 씽크대 선반에 잘 건조시키고 있구요ㅋㅋㅋㅋ
프레이야님댁 첫 번째 가지는 잘 말랐습니다.들기름에 볶아 먹었음 맛있었겠다..싶어요^^
저번에 나혼산에서 김지석이 딸기랑 김을 어떻게 양면으로 붙여 건조시켜 술안주로 먹던데 따라해 보려다 말았어요ㅜㅜ
모든 게 다 귀찮을 나이잖아요ㅋㅋㅋ
가지꼭지가 눈에 좋다는 건 첨 알았네요^^

프레이야 2021-10-15 23:06   좋아요 3 | URL
바람이 잘 통해야 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가지꼭지 소식에 괜스레 눈이 떠지는 듯요.
건조욕구들이 많군요 ㅎㅎ전 귀찮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을 옆지기 성화에 했는데 처음 건 어쩌다 얻어걸린 행운이었더라능.
그 댁 싱크대에서 잘 건조되고 있는 건조기 어쩐다요 ㅎㅎㅎ

oren 2021-10-15 2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지를 옷걸이에 걸어서 저렇게 말리니 그 모습이 썩 근사하군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저도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는 동안 가지를 참 자주 먹었더랬습니다. 온 식구들이(할아버지까지 모두 아홉 식구였지요) 아침과 점심으로 먹을 보리밥을 (쌀도 조금 섞어서) 지을 때, 커다란 철솥엔 철마다 콩가루 묻힌 정구지(부추), 풋고추, 가지 등이 자주 얹어졌고, 밥이 다 지어질 무렵에 건져올린 밥풀이 덕지덕지 붙은 그 반찬 소재들은 조선간장과 들기름에 적당히 버무려진 끝에 밥상 위에 무척이나 자주 오르곤 했더랬지요.^^ 추억이 몽글몽글 돋는 글, 너무 즐겁게 읽었습니다.^^

프레이야 2021-10-16 00:13   좋아요 3 | URL
색깔도 근사하죠.^^ 경북이 무슨 음식에도 콩가루를 많이 쓰던데요. 정구지까지 ^^
상상만 해도 군침 넘어갑니다. 조선간장이란 말도 ㅎㅎ 추억 돋네요.
전 왜 그런지 들깨랑 들기름 무지하게 좋아하거든요. 체질에 맞나 봐요.
건강밥상에 온 식구 둘러앉아 정겨운 풍경이 오렌 님 댓글로 생생하게 그려져요.

oren 2021-10-16 00:31   좋아요 2 | URL
들깨를 곁들인 음식들은 먹는 내내 건강해지는 느낌마저 들지요.
말이 나온 김에 <들꺠수제비>를 정말 맛있게 하는 곳 소개해 드릴께요.
가끔씩은 일부러 집에서부터 걸어서 이 음식점까지 간답니다.
날씨가 너무 좋을 땐 일부러 정발산을 넘어서 가기도 하고요.^^
https://blog.naver.com/2kihwan/222093861701

프레이야 2021-10-16 07:42   좋아요 2 | URL
오렌 님 그죠 몸에 좀 잘해주는 느낌 들구요. 들깨수제비 들깨칼국수 이런 거 엄청 좋아해요. ㅎㅎ 근데 링크가 안 열리네요. 식당 이름을 알려 주시면 제가 검색해 볼게요. 집에서 걸어서 가는 곳이군요. 한번 나들이 나가봐야겠어요.

oren 2021-10-16 11:16   좋아요 3 | URL
알라딘 서재 댓글창에는 링크 주소를 붙여넣어도 활성화되지 않아서 링크가 안 열린답니다.(링크 범람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막았다고 봐야겠죠.) 그냥 제가 알려드린 url 주소를 마우스로 드래그한 뒤 복사하여 인터넷 주소창에 붙여넣기 하시면 해당 인터넷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답니다. 상호는 <청정 바지락 칼국수>이고 <일산동구 정발산동 밤가시마을>에 있어요.^^

프레이야 2021-10-16 11:19   좋아요 2 | URL
오호 ~~ 완전 좋아요. 올해 안에 꼭 가보는 걸로 찜할게요 ^^

그레이스 2021-10-15 22: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지꼭지 말려서 눈 나쁜 남편 차 끓여 줘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메리골드도 좋다고 해서 말린 꽃차 마셔요~^^

프레이야 2021-10-16 00:16   좋아요 4 | URL
네, 그레이스 님, 메리골드차도 좋다고 해서 가끔 마셔요.
전에 몇 사람이서 일일수업으로 가서 차선생님에게 배우며
메리골드 직접 덖어서 가져왔는데 문제는 매일 마시지 않고
어쩌다 생각나면 마시고 이러니 효과를 못 보는 것 같아요.
꾸준히 매일 드셔야^^
앗참, 가지꼭지 떼실 때 손 조심하세요. 찔리면 된통 아파요.

scott 2021-10-16 00:29   좋아요 2 | URL
맛이 궁금합니다
가지꼭지 말린 차 맛!!

커피맛을 뛰어 넘었으면 ㅎㅎㅎ

프레이야 2021-10-16 09:40   좋아요 2 | URL
스캇님도 커피 많이 마시는군요. 저도 아직은 커피가 최고에요. 사실 좀 줄이고 다른 차 마셔야 되는데 몸에 좋다는 차들은 순위에서 밀리죠 늘. 가지차는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는데 뭐라 말을 못하겠네요 ㅎㅎ 한꺼번에 끓여두고 물 마시듯 해도 될까 싶기도 하고요. 평소 물을 잘 안 마시는 편인데 이 습관도 바꿔야겠죵. 비 오는 토요일^^

scott 2021-10-16 0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 프레이야님
작가님이셨군요
단어마다 시적인 운율이 느껴집니다
향과색!소리 까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을 읽는 것 같은 !!


**참고로 말린 꽃은 집안에 오래 두지 말라고 합니다

풍수적으로 별로 좋지 않다고 ^.~

프레이야 2021-10-16 09:41   좋아요 2 | URL
옴마나 야스나리가 놀라겠어요 ^^
부끄럽지만 고맙습니다. 호호~
말린 꽃이나 조화가 풍수적으로 집안에 두면 별로라고 해요. 마른꽃은 버렸고 조화나 리스는 아까워 아직 몇 개 있어요. 조화를 새로운 눈으로 보기로 마음 바꿨거든요. 향은 없지만 시들지 않는 영원한 꽃으로요. 생화의 향도 사실 며칠이면 금세 변하고 추해지구요. 금기시 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랄까 뭐 그런 것으로루다가요 ^^

붕붕툐툐 2021-10-16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글을 읽으며 우와 나도 가지 진짜 좋아하는 저렇게 말려봐야지 하다가, 두번째 망친 이야기 듣고 바로 맘을 접었습니다. 안 해본거라 영 자신이 없네요~ 그 꼬들한 식감 진짜 좋은데...ㅎㅎ
프리이야님 글도 쓰시는데 나물도 잘 무치시고 완전 다 가지셨네요~(저에겐 나물 잘 무치는 사람이 요리 젤 잘하는 사람~ㅎㅎ)
예언자 저도 넘 좋아하는 책이라 반갑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땐가 교회 오빠가 선물로 준 책인데 그 오빠는 뭘 알고 저 책을 선물한 걸까 싶긴 하더라구요~ㅎㅎㅎㅎㅎ

프레이야 2021-10-16 14:14   좋아요 2 | URL
오호 그 교회 오빠 왠지 진심인듯요
지적 허세를 좀 드러내며 ㅎ 나물은 참기름 들기름이 다하는 거 같아요. 멜젓을 쬐끔 넣어주면 확 감칠맛이 나요. 지인 어머니가 담가준 멜젓인데 그 엄니가 이제 병환 중이라 다신 못 만드신대요 에구 ㅠ 아껴 먹고 있어요.
가지 말리는 거 마음 접으신 거 완전 잘한 일이에요. ㅎㅎ 건조가지 팔더라구요.

moonnight 2021-10-16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붕붕툐툐님께서 제 맘을 대변해주시네요ㅎㅎ^^; 저도 가지를 무척 좋아해서 의지 불타 올랐다가 금세 사그라들었습니다^^; 프레이야님 글에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감사드립니다♡

프레이야 2021-10-16 20:57   좋아요 1 | URL
달밤 님 오랜만에 반가워요.
금세 사그라들길 잘하셨어요^^ 고요한 토욜 저녁이에요. 갯마을 차차차 본방사수 대기하고 있어요.

보슬비 2021-10-1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린 가지가 너무 근사해요. 가지에게도 사이와 시간이 필요하듯이 인간관계에도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이 쌓이는 시간 동안 맛있게 만들어진 가지처럼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는것 같아요. 역시 프레이야님 글들은 쫄깃하니 맛있어요~~

프레이야 2021-10-18 15:50   좋아요 0 | URL
보슬비 님 댓글이 참 좋아요. 그 시간을 사랑해야겠어요.^^
말린가지처럼 쫄깃하게 씹어드셔서 감사해요.
말린가지 인터넷으로 구매했네요.
곰팡이 핀 것들 다 버리고 그래도 제법 건졌어요. ㅎㅎ
한 박스 78개 중 그래도 그게 어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