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앨런 튜링 지음, 노승영 옮김, 곽재식 해제 / 에이치비프레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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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링 테스트에서는 지능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한 문제는 잠시 젖혀 놓는다. 대신에 기계가 하는 말이 사람이 하는 말과 얼마나 구분하기 쉬운지 어려운지만 따진다. 그리고 만약 기계와 대화할 때 기계가 하는 말이 사람의 말과 아주 비슷해서 구분되지 않는 정도라면 기계가 마치 사람 같다고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자명하므로, 마치 사람 같아 보이는 이 기계도 지능 같은 것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바로 튜링 테스트의 핵심이다.(p15)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해제 中


[그림] Turing Test(출처 : https://medium.com/thinkmobiles/evaluating-artificial-intelligence-from-turing-test-to-now-b64a8fced070)


 <앨런 튜닝, 지능에 관하여>에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로 유명한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 ~ 1954)의 논문 중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관련한 5편을 옮긴 책이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기계가 과연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로 정리되는데 이에 대해 튜링은 가능하다고 본다.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을 만한 확실한 이유는 사람의 어떤 부위에 대해서든 이를 흉내 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p42)... 우리는 인간이 (만일 기계라면) 막대한 개입을 겪는 기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개입은 예외라기보다는 규칙이다.(p46)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中


  그렇다면, 어떤 근거로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을까? 먼저 튜링은  비(非)정형기계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유아(乳兒)와 같은 상태의 비정형 기계가 학습을 통해 정형화될 수 있다면 - 어른이 될 수 있다면 - 우리는 기계가 '자란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튜링의 설명이다. 


  비정형 기계로 하여금 한정적(definite) 유형의 개입을 받아들이도록 하여 정형화를 시도하는 - 이를테면 만능 기계로 바꾸는 - 실험은 흥미롭다. 기계를 만능 기계로 정형화하는 것이 가장 인상적인 경우는 매우 적은 입력만 가지고 개입할 때다... 기계의 구성은 두 가지 표현으로 서술되는데, 이것을 성격 표현(aharacter-expression)과 환경 표현(situation - expression)으로 부를 것이다.(p51)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지능을 가진 기계 Intelligent Machinery 中


 훈련 받지 않은 유아의 마음이 지능을 가지려면 훈육(discipline)과 창의(initiative)가 둘 다 필요하다... 한 번에 하나씩 기계가 점점 많은 '선택'이나 '결정'을 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비교적 소수의 일반 원칙을 적용한 논리적 결과로서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원칙이 충분히 일반적으로 바뀌면 더는 개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기계는 이른바 '어른'이 된다. 이것을 '직접적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p60)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지능을 가진 기계 Intelligent Machinery  中


 우리가 사회화를 이루기 위해 교육과정에서 시험을 보고 이를 통해 정답과 오답을 배우는 것과 같이 튜링은 비정형 기계가 적절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표준 튜링 기계(Standard Turing Machine) 수준의 초기에는 유한한 개수의 기초적 지시문으로 프로그래밍되겠지만, 기계가 학습을 통해 범용 튜링 기계(Universal Turing Machine) 수준으로 진화한다면, 이때는 스스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계의 학습이 고도화된다면, 인류의 지성보다 뛰어난 기술적 특이점(技術的特異點, 영어: technological singularity, TS)에 이를 것을 튜링은 예측한다.


 인간의 마음은 대부분 '아임계적(sub-critical)'이다. 즉, 비유에서 임계 크기 이하의 원자 덩어리에 해당한다. 이런 부분에 제시된 관념이 일으키는 반응은 평균적으로 하나의 관념에 미달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에서 극히 일부분은 초임계적(super - critical)이다. 이런 부분에서 제시된 관념은 2차 관념, 3차 관념, 그 이상의 관념으로 이루어진 '이론' 전체를 발생시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초임계적인 기계를 만들 수 있을까?... 관건은 프로그래밍이다.(p102)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계산 기계와 지능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中


 기계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우리의 하찮은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죽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기계는 서로 대화하면서 지혜를 닦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단계가 되면 우리는 새뮤얼 버틀러의 <에레혼>에서 묘사하듯 기계가 주도권을 쥐는 상황을 예상해야 합니다.(p121)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지능을 가진 기계라는 이단적 이론 Intelligent Machinery a Heretical Theory 中


 결론적으로, 마치 지구 상의 초기 생명체가 진화(evoltion)를 통해 단세포에서 다세포 생물체로 발전해 온 것처럼, 간단한 기계가 학습을 통해 '두뇌'가 수행하는 복잡한 연산을 처리할 능력을 획득한다면 기계 또한 두뇌처럼 지능을 갖는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튜링의 주장이다. 


 제가 가장 중점을 둘 것은 저 자신의 견해입니다. 그것은 디지털 컴퓨터를 두뇌라고 부르는 것이 전적으로 비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p125)... 저는 디지털 컴퓨터가 어떻게 쓰일 수 있느냐보다는 실제로 어떻게 쓰이고 있느냐라고 생각합니다. 두뇌라고 부를 수 있는 기계가 하나라도 있다면 디지털 컴퓨터도 두뇌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은 디지털 컴퓨터의 한 가지 특징에서 비롯하는데, 저는 이 특징은 '만능성(universality)'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디지털 컴퓨터가 '만능'이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부류의 기계를 무엇이든 대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p126)... 어떤 기계를 두뇌라고 부를 수 있을 경우, 디지털 컴퓨터가 그 기계를 모방하도록 프로그래밍 할 수만 있다면 디지털 컴퓨터 또한 두뇌라고 불릴 것입니다.(p127)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디지털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을까? Can Digital Computers Think? 中 


 그렇지만, 기계가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 답을 낼 수 있을 정도로 프로그래밍되었다는 사실만으로(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만으로) 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실제로, 존 설(John Searle, 1932 ~ )은 '중국어 방(Chinese room)'이라는 사고 실험을 통해, 많은 경우의 수가 준비되고 주어진 표에 따라 응답하는 것만으로 지능을 가졌다고 예단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의 결과값만으로 지능유무를 판별할 수 없다는 존 설의 논증은 날카롭지만, 이는 인공지능에게만 따끔한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이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다른 동물에 비해 빠른 학습 능력을 가진다는 결과값을 통해 답한다면, 우리 역시 '먼저 등장한 지능'에 불과한 것은 아닐런지.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지능만이 가진 고유의 특질은 무엇일까. 어쩌면 지능(知能)이란 '새로운 사물 현상에 부딪쳐 그 의미를 이해하고 처리 방법을 알아내는 지적 활동의 능력'이라는 명사적 의미가 아니라, '시행착오 - 피드백'의 속도(velocity)라는 동사적 의미가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식물, 동물, 인간, 기계 모두 각자가 가진 뇌(또는 CPU)에서 빠르게 연산하고, 망각곡선에 따라 연산결과가 소멸되기 전 또 다른 연결을 통해 이를 저장, 축적할 수 있다면 지능은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지능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일 수도 아니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제 주장은 인간 정신의 행동을 매우 비슷하게 흉내 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계는 이따금 실수를 저지를 것이며 이따금 새롭고 매우 흥미로운 진술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 가치는 참인 진술의 빈도가 더 클 것으로 기대된다는 사실에 있으며 진술이 정확한지 여부와는 무관할 것입니다.(p116)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지능을 가진 기계라는 이단적 이론 Intelligent Machinery a Heretical Theory 中


 튜링 테스트는 다음과 같은 두 명제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1) 사람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2) 기계가 사람과 같은 결과를 계속 보일 수 있다면 기계는 지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앨런 튜링은 이로부터 기계 역시 사람과 같은 능력을 보일 수 있음을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에서 밝힌다. 앨런 튜링의 논문은 오늘날의 인공지능 연구에 선구적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 인간의 지능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는 점이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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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7-24 2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팔자에도 없는 인공지능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얇은 지식으로 보면 인공지능은 아직 허구라고 보입니다.
단편적인 예로 알파고에 이식된 알고리즘과 학습은 다른 인공지능에 전의되지 않습니다. 다른 인공지능에 이식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요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0-07-25 04:4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나니 어쩌면 우리 모두는 과학이 광고하는 무한한 발전과 결과를 낙관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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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의 손에 의해 태어난 괴물. 유명한 공포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기술에 대한 지나친 맹신에 대한 경고로 흔히 해석된다. 그렇지만, 작가인 메리 셀리와 어머니 이자 초기 여권운동가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조금 다르게 읽혀야 되지 않을까. 로고스(Logos)가 만들어 낸 뮈토스(Mytos), 역사 속에서 타자로서, 역사 속에서 어둠에 쌓인 괴물(Monster)로, ‘~이 아닌‘ 존재로 설정된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무리가 있을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여다 본다면, 이제까지 알던 것과는 다른 낯선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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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1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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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1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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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의 경우에는 단식으로 인한 건강 효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혈압과 인슐린 민감성, 일부 만성 질환 위험에 보인 긍정적인 효과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단식이 인간에게도 비슷한 건강 효능을 나타낼 잠재력이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동물 연구 결과 단식은 인슐린 민감성 향상, 항암 효과, 뇌 건강 향상, 세포 저항력 향상, 암 위험 감소, 혈압 강하, 뇌 질환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DK <음식 원리> 편집 위원회, <음식 원리> , p201


  나이가 들어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 요즘입니다. 예전에는 무엇이든 양껏 먹어도 불편함 없이 활동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조금만 먹어도 배가 더부룩해지는 것을 보면 신진대사(新陳代謝, metabolism) 능력이 확연히 떨어졌음을 실감합니다. 덕분에, 체형도 미래인류형인 E.T처럼 진화하는 것 같아 신경쓰던 중 아내의 권유로 3일간 금식이 힘들겠지만, 고비만 넘기면 5kg 빼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말에 물만 만시는 금식을 했습니다. 임상실험결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5kg 정도는 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단식 1주 전과 1주 후 보식(회복식)기간을 가졌는데, 제게는 이 기간이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준비기간은 충분히 가져가야 후유증이 적다는 말이 있어 탄수화물과 당 섭취를 줄이는 준비기간을 가졌습니다. 결과적으로 단식 전 보식기간에 1kg 정도, 금식 기간에 4kg 정도 빠지고, 단식 후 보식 기간에 1kg 정도 빠져 총 6kg 감량이 되었으니 나름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감량보다 긍정적인 요소는 안 좋은 습관을 끊어갈 수 있는 기간을 가졌다는 점이라 여겨집니다. 마치, CPU(Central Processing Unit)를 포맷(format)한 느낌이랄까요. 준비기간을 통해 부작용을 줄이고 잠시 전원을 꺼두고 나니 리부팅(Re booting)할 수 있어 원하는 습관을 몸에 새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 생각됩니다. 건강한 습관이 지속가능한 건강을 보장해 주리라 희망해 봅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름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금단현상입니다. 평소 커피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셨는데, 못 마시다 보니 금식 초기 금단 현상이 심했는데, 하루 정도 참고 나니 배가 고파지면서 저절로 해결되었습니다. 큰 고통은 작은 고통을 잊게 해주나 봅니다.

 

 또한, 3일 동안 몸의 통증이 가볍게 있었습니다.  첫째 날에는 두통이 있었고, 둘째 날에는 복부(위)에서, 셋째 날에는 허벅지 근육에서 통증을 느꼈는데,  금식을 끝내고 먹은 끊인 토마토가 들어가니 곧 해결되더군요. 통증의 원인은 첫째 날은 금단현상으로, 둘째 날에는 지방 연소, 셋째 날에는 근손실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가끔 가지는 휴식 시간처럼 정기적으로 금식으로 몸을 쉬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금식이 제게는 맞았습니다만, 다른 모든 이들에게 맞지는 않을 것이기에 추천 드리기에는 조심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고혈압이나 당뇨를 앓고 계신 분께서는 매우 위험하겠지요. 


 24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것은 십중팔구 불필요한 것이므로, 그것을 버리게 되면 여가는 늘고, 마음의 동요는 줄 것이다. 그러니 매사에 이것을 불필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고 자문(自問)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불필요한 행동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도 피해야 한다... 26 너 자신을 단순화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p60


 단식을 준비하던 중 이 기간을 의미있게 보낼 요량으로 <코란>, <셰익스피어 전집>을 골랐습니다. <코란>은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Ramadan)에 <코란>을 읽는 이슬람 신도들을 심정에 가까이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셰익스피어 전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인간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에 골랐습니다만, 모두 하루만에 본연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배고픈 것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을 절감했습니다. 이들을 대신하여 아내는 새로운 책들을 꺼내 주었는데, 이 때 읽었던 책은 페이퍼의 마무리에 소개하겠습니다.(개인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과학자 베일리스(W. M. Bayliss)와 스탈링(E. H. Starling)가 개를 가지고 실험을 했다. 그들이 한 실험에서 소화 기관은 매우 입체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 현상은 재현성이 매우 높았다. 내부의 압력이 높아질수록 소화 기관의 근육 층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험을 반복한 결과 소화 기관의 내용물을 한 방향으로만 밀어내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방식의 연동 운동은 매우 조직화해 있었으며, 구강 수축에서 항문의 이완에 이르는 하향식으로 조화롭게 움직였다. 장 안의 내용물은 기본적으로 항문을 향해 나아갔다.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압력에 반응하는 소화 기관의 움직임을 '소화 기관의 법칙'이라 불렀다. - 마이클 D. 거숀, <제2의 뇌>, p5


 배고픔과 관련해서 마이클 D. 거숀(Michael Gershon)이 <제2의 뇌 The Second Brain>에서 말한 뇌의 통제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기관으로 소화 기관의 역할을 재조명한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읽겠다'는 뇌 또는 의지는 '배고프다'라는 원초적 기관의 신호에 무력해짐을 느낀 저로서는 소화기관이 뇌의 지배를 받지 않은 독립된 기관임을 더 실감했습니다.


 신경계가 끊기기 전이나 다름없이 수축이나 이완같은 소화 기관의 연동 운동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뇌 혹은 척수에서 오는 입력 신호와 관계없이 하향식 연동 운동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마이클 D. 거숀, <제2의 뇌>, p7


  배고픔 이외에도 <코란>을 못 읽은 것에는 다른 원인도 있습니다. 기독교 <구약 성경>에서 율법서에 해당하는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경전을 읽다보니 지루함을 느낀 것도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상세 내용은 후에 정리하겠습니다만, 인상적인 부분을 꼽는다면 <코란>에서는 다른 경전(經典)과는 달리 유대교와 기독교(그리스도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명문화 되어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는 후발 종교로서 이슬람교가 앞선 두 종교와 차이점을 명확히 할 필요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이러한 경전의 구절들이 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2 일찍이 알라께서는 이스라엘이 자손들과 계약을 맺은 일이 있다. 그때 그들 중에서 열두 사람의 우두머리가 뽑혀 왔다. 알라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너희들과 함께 있다. 만일 너희들이 예배를 지키고 희사(喜捨)를 하고 나의 사도들을 믿고 그들을 도와, 신께 좋은 대부(貸付)를 한다면 아래에 냇물이 흐르는 낙원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러나 그후에 너희들 중 믿음을 배반하는 자가 있으면 그야말로 바른 길에서 멀어져 미로에서 헤매게 된다.' 13 그러나 그들이 그 계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들을 저주하고, 그 마음을 굳게 다졌다. - <코란>, 5. 식탁(食卓)의 장(章), p143


 14 또 '우리들은 그리스도교도이다'라고 청하는 사람들과도 우리들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르침을 받은 바의 일부를 잊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부활의 날까지 그들 사이에 적의와 증오를 일으켰다. 알라께서는 그들이 한 행실에 대하여 일일이 알려 주실 것이다.- <코란>, 5. 식탁(食卓)의 장(章), p143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 1616)의 작품은 <헨리 6세>를 읽었습니다. 이 역시 내용 정리는 추후 하도록 하고, 간단하게 작품의 성격만 <셰익스피어의 책>을 통해 옮겨봅니다. <헨리 6세>는 100년 전쟁(the Hundred Years' War, 1337 ~ 1453) 후반부터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 1455 ~ 1485)까지 이르는 시기에 2번의 재위기간을 가진 헨리 6세(Henry VI, 1421 ~ 1471)와 주변 인물을 다룬 작품입니다. 


 근거로 미루어 볼 때 <헨리 6세 1부>는 <헨리 6세> 3부작 중 제일 마지막에 집필되었고, 1592년에 초연되어 격찬을 받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헨리 6세> 2부와 3부에서 펼쳐지는 사건의 배경을 제시하는 프리퀄(prequel) 성격을 띤다. 1부는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오가며 대구모의 전투 장면과 스릴 넘치는 백병전이 펼쳐지는 장대한 작품인 반면, 2부와 3부는 비교적 좁은 범위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 스탠리 웰스외 공저, <셰익스피어의 책>, p46


 <헨리 6세 3부>는 헨리 6세의 통치기(1422 ~ 1461, 1470 ~ 1471)를 다룬 셰익스피어의 연극 세 편 중에 마지막 작품이다. 여기서는 가장 피비린내 나는 장미전쟁 시기를 다루고 있어, 요크가가 왕위 쟁탈전에서 헨리의 랭커스터가를 제압하고 요크 공작의 장남이 헨리에게서 왕좌를 빼앗아 에드워드 4세로 즉위하는 과정을 그린다.- 스탠리 웰스외 공저, <셰익스피어의 책>, p42


 <헨리 6세 1부>에서는 잔다르크(Jeanne d'Arc, 1412 ~ 1431)도 등장하는데, 프랑스의 국민영웅이 영국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다르게 조명된 점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淵蓋蘇文, ? ~ 665)이 중국 경극에서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된 것처럼 한 인물에 대한 평가도 관점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느껴봅니다.


[사진] 경극에 나타난 연개소문(출처 : KBS)


 글이 다소 길어졌지만, 단식 3일을 함께 한 책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페이퍼를 마무리 하려 합니다. 단식 기간에는 되도록 머리를 가볍게 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다는 말로 아내가 꺼내준 애장판이지만, 제게는.... 만약 리뷰를 쓸 수 있다면 제 서재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 분명하기에 도전하고 싶지만,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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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20-07-23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리가면은 상당히 재밌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7-23 13:27   좋아요 0 | URL
닷슈님 말씀처럼 유리가면은 주인공이 성장해가는 서사와 갈등묘사가 뛰어난 작품이고, 여기에 재미까지 있는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순정만화는 거의 접하질 않아서 처음에 상당히 어색했습니다.^^:)

hnine 2020-07-23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단식을 성공하셨군요. 유리가면 저렇게 통째 가져다주고 단식하면서 보라면 저도 단식 기꺼이 도전해볼것 같은데요 ^^
(라마단은 금식 기간이라기 보다 해 떠 있는 동안 안먹는 기간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아요. )

겨울호랑이 2020-07-23 13:56   좋아요 0 | URL
hnie님 감사합니다. 단식에 처음 도전하는 이들은 무리하지 말고 휴가온 것처럼 해야 부담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씀처럼 라마단은 해가 떠 있는 기간동안 안 먹는, 간헐적 단식에 해당하는 기간이기에 수정했습니다.^^:)

페넬로페 2020-07-23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 끼만 굶어도 너무 힘든데
어려운 일을 해내셨네요~~
그것도 책과 함께요^^

겨울호랑이 2020-07-23 17:11   좋아요 1 | URL
그리 말씀하시니 쑥스럽습니다. 그저 만화책 보고 놀고 마시고 잤을 뿐인걸요. 조금만 배고파도 머리 쓰는 것을 싫어하는 자신을 발견해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7-24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픈 현실이지만, 다음 글처럼 한번 살찌면 평생 다이어트 해야 한다고 합니다. ㅠㅠ 제가 그렇습니다. ㅠㅠ

“훗날 대비해 지방 분자를 저장하는 지방 조직은 거의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 이는 지방 조직이 피부를 제외한 다른 신체 조직과 다른 특성이다. 지방세포는 원래 크기의 열 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 지방세포는 크고 둥근 지방 방울을 싸는 얇은 막과 같은데, 돼지고기로 채워진 소시지의 막보다 더 잘 늘어난다.
섭취한 식품에 지방이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 체내 존재하는 지방세포가 다 흡수할 수 없으면, 신체는 새로운 지방세포를 생산해서 남은 지방을 흡수한다.
또 지방세포는 한번 생성되면 죽은 법이 없다. 체중이 줄 때는 지방세포가 죽은 것이 아니라 수축하는 것뿐이다. 한번 만들어진 지방세포는 절대로 죽지 않고 지방질이 풍부한 식품을 늘 기다리고 있다.”

겨울호랑이 2020-07-24 19:54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입니다. 마치 늘어진 위장처럼 끝도 없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때문에, input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식을 해보니 제게 잘 맞는 것 같아서, 평상시에는 간헐적 단식을 하고 정기적으로 금식을 하는 것을 생각 중에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자발적인 금식은 여러모로 좋은 것 같습니다.^^:)

2020-07-26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6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본론 3 - 상 - 2015년 개역판, 정치경제학비판 자본론 3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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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양적 증가를 나타내는 잉여가치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 - 분배과정에 매개됨으로써 실존할 수 있다. 이러한 잉여가치는 이윤으로 전환되고, 잉여가치율은 이윤율로 전환되며, 전환된 이윤은 다시 평균이윤으로 바뀐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경쟁에 노출된 자본가들은 보다 높은 생산성 높은 신기술 도입을 강요받게 되고, 그 결과 이윤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성을 보인다.(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 이윤율의 경향운동) 한편 자본제 생산의 기초 위에서 화폐는 본래의 사용가치 이외에 추가적 사용가치 - 평균이윤 생산 - 를 갖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화폐소유자가 기능자본가에게 화폐를 일정기간 대여하면서 이윤을 낳는 능력을 양도하는 ‘이자 낳는 자본‘이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은 상품자본과 화폐자본이 각각 상인자본(상품거래자본과 화폐거래자본)으로 전환되는 역사적 과정을 설명한다.

<자본론 3-(상)>의 전체적인 얼개는 위와 같다. 마르크스가 설명하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진행형이기 때문에, 해당 주제는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상세한 내용은 리뷰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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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7-22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본론> 3권은 말씀하신 이 부분이 항상 흥미롭고 궁금했습니다.^^

<자본론> 1권에서 잉여가치는 노동자의 노동력에서 나온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는데,
<자본론> 3권에 오면 그는 ˝잉여가치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분배 과정‘에 매개됨으로써 실존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통-분배 과정‘이 없으면 잉여가치가 생길 수 없다는 주장인데, 1권과 상충되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여튼, 만약 3권 주장이 맞다면, 유통-분배 과정에서 말하는 잉여가치를 ‘추가로 발생한‘ 가치라고 본다면,
가치가 ‘추가로 발생‘한 ‘원천‘이 궁금해 집니다.

예를 들면, 사회가 5명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A가 B에게 가치를 유통-분배하는 과정에서 추가 가치를 얻고,
B가 C에게 가치를 유통하여 추가 가치를 얻고, C가 D에게 가치를 유통하여 추가 가치를 얻고, D가 E에게 추가 가치를 얻은 후, 1) 만약 E가 A에게 추가 가치를 얻었다면 추가 가치가 사회 내에서 돌고 돌았기에 그 사회는 잉여가치를 생산했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2) 만약 E가 A에게 추가 가치를 얻지 못했다면, E는 사회에서 착취 당했다고 볼 수 있고, (계속)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논리가 맞다면 <자본론>의 잉여가치와 착취 문제는 노동력이 아닌 3권 주장처럼 가치의 유통-분배 과정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제 해석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20-07-22 21:10   좋아요 1 | URL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를 ‘하루 노동일 가운데 노동력 가치 부분을 재생산하는 필요 노동 이상의 잉여노동이 산출하는 가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자본론> 1권의 내용이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본론> 3권의 도입부분에서는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통일‘이라고 말하면서 <자본론> 2권이 유통과정을 다루고 있음도 함께 말합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논지로 볼 때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단순 생산이 아닌 유통과정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해석됩니다. 때문에,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론> 전체를 관통하는 논리는 흔들리지 않아 보입니다.

보다 세분화하여, <자본론> 1권에서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근원에 대해 말하고, <자본론> 3권에서는 잉여가치의 실재화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본다면, 1권에서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3권에서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읽혀집니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언제나 북다이제스터님의 날카로운 말씀을 듣고나면, 다시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7-22 18:06   좋아요 1 | URL
결국 생산 과정과 유통-분배 과정 두 번에 걸쳐 잉여가치가 두 번 만들어지고 두 번 착취 당한다는 해석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 ㅎㅎ

겨울호랑이 2020-07-22 21:16   좋아요 0 | URL
투하된 자본의 초과분이 잉여가치이고, 잉여가치가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이윤이라고 바꾸어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자본가는 현상으로 나타는 이윤을 착취하는 것이며, 가치가 형성되는 잉여가치는 그 자체로 착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페크pek0501 2020-07-22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잉여가치. 오랜만에 보는 학구적인 낱말이네요.

겨울호랑이 2020-07-22 17:35   좋아요 1 | URL
예전 대학생 때에는 일상회화처럼 참 친숙하게 들었던 단어인데, 시대가 변하고 나니 책에서나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본론>의 시대가 저무나 싶습니다...

NamGiKim 2020-07-29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알아보니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출간한 자본론이 있더군요. 채만수 선생(김근태 의원의 대학선배이자 노사과연 창립자)이 번역했습니다. 김수행 교수는 영문판을 번역한거라면 채만수 교수는 독어원전 번역이더군요. 나중에 읽게되면 독어 번역판 읽을 생각.

겨울호랑이 2020-07-29 19:4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저는 강신준 교수의 <자본>과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으로 읽었는데, 전자 또한 독일어 판을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NamGiKim님 말씀을 듣고 보니 채만수 선생의 판본도 궁금해 집니다. 좋은 리뷰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