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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좌절의 시대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평점 :
7-8년 정도 전에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해 내가 본 최고의 책 중 하나였는데 책은 아직 마이클 센델이나 다른 한국의 인문사회학자들보다 빠르게 능력주의를 지적했다. 물론 책에는 능력주의란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역량보다는 암기 위주의 서열형 평가의 의존한 선발, 대규모 시험 공채에 의한 한국 엘리트들의 선발은 우리 사회가 개개인의 진정한 역량보다는 서열형 시험에 의한 평가에만 매몰되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는 능력주의의 가장 큰 폐해와 부분 중 하나이다.
이번 책은 미세 좌절의 시대다. 4-5년에 걸쳐 쓴 단상을 모은 책인데 시기는 문재인 집권 초기부터, 코로나, 윤석렬 정권 초기로 이어진다. 그래서 다소 철 지난 감은 있지만 사회란게 급변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면도 있어 지금도 유효한 지적이 많았다.
여러 가지 단상이 다 재밌고 날카로우며, 따뜻했지만 진보와 보수에 대한 생각이 인상에 남는다. 장강명은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보다는 진보는 감수성, 보수는 일관성으로 구분한다. 진보는 사회의 여러 사안에 대해 감수성을 갖고 민감하게 바라본다. 그래서 약자와 변화에 불의에 대한 외침이 강하다. 하지만 보수는 그보다는 전체적인 공평함과 일관성에 무게를 둔다. 그래서 진보가 여러 입장이 다른 것에 대해 불만이다. 그래도 진보와 보수는 괜찮다. 90년대만 해도 양날개의 건강을 중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보, 아니 보수가 많이 망가져있다. 하라리가 넥서스에서 지적한 것처럼 보수는 포퓰리즘에 의해 오염되었고 크게 극우화하였다.
한국사회 역시 그러한다. 장강명이 보기에 한국은 더 이상 진보 보수보다는 아예 여러 부족으로 갈라진 상태다. 여기에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등장, 그리고 이로 인해 숙고와 공통의 분모가 사라진 것이 상당한 이유다. 과거 사람들은 느린 속도로 퍼지는 미디어를 봤다. 뉴스나 종이신문이다. 보수일색이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중간이란게 있었다. 그래서 터무니 없는 소문은 잘 없었고 사람들은 그걸 보며 공통의 생각과 숙고란걸 할 수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자기 맞춤형 미디어가 난무한다. 그걸 보면서 공통 분모는 당연히 없고, 잘못된 소문에도 쉽게 이끌린다. 장강명이 책을 쓴 것은 2020년대 초반인데 중반인 지금은 이러한 사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작가는 재밌게도 서점의 신간이나 베스트 셀러에 주목한다. 종이 매체가 하락임에도 그런 이유는 그의 직업적 이유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정신이 읽히기 때문이라 한다. 한국의 서적 시장은 외환위기 쯤부터 자기 계발서-힐링, 독설-웰빙, 휘게-자존감-괜찮아로 이동했다고 한다. 치열하게 신자유주의가 도입되어 자기 계발이 강조 되었고 이게 쉽지 않자 경쟁에서 스스로에게 쉼을 부여하고 독설을 통해 더욱 다그치게 되었고, 아예 어렵다는걸 알게 되자 물질적인 것에서 다소 벗어난 삶은 추구한게 웰빙이고, 이것도 쉬지 않자 무너진 자신을 긍정하는 자존감으로 이동했고, 이것도 쉽지 않자 아무것도 안되는 자신을 위로하는 괜찮아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별화한 개인이 사회의 구조적 벽에 부딪히며 좌절하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 같았다. 다만 여기에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없다는 것은 능력주의에 빠져 자신의 실패를 오로지 자신에게 귀인하는 한국 사회의 한계도 드러난 것 같아 더욱 뼈아프다.
책에는 재밌는 논의가 많다. 기자 출신이고, 작가이다 보니 사회를 보는 눈이 날카롭고 포근했으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