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뽕나무를 심고, 그것으로 누에를 치고, 누에고치에서 생사를 뽑는 일까지만 조선에서 했다. 질 좋은 원료를 값싸게 확보한 그들은 일본에서 비단을 짜가지고 서양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있었다. 군산항에서 주로 쌀을 실어내는 것처럼 목포항에 집결시켜 실어가는 목화도 이익 많이 남기는 장사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총독부에서는 뽕나무 심기와 목화씨 뿌리기를 해가 갈수록 더 다그치고 있었다._조정래, <아리랑 5>, p203/247


 조정래(趙廷來, 1943 ~ )의 <아리랑 5>에서는 본격적인 일제의 식민수탈이 그려진다. 군산이 쌀 수출항이었다면, 목포는 목화(면화) 수출항이었다. 쌀은 노동자들의 식량으로, 목화는 제조원재료로서 식민본국의 산업화를 뒷받침했다. 스벤 베커트 (Sven Beckert)이 <면화의 제국 The empire of cotton>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면화는 제국시대에 글로벌 상품으로 기능하고 있었으며, 이로부터 일본은 착실히 서구제국의 길을 따라갔음을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규모도 작고 기술적으로도 뒤처진 유럽 면산업의 기반을 잡아준 것은 바로 제국의 팽창, 노예제, 토지 약탈로 요약되는 전쟁자본주의였다. 전쟁자본주의 덕분에 유럽의 면산업은 역동적인 시장을 얻었고, 기술력과 필수 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 또한 전쟁자본주의는 자본 형성에도 중요한 추진 장치가 되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04



  전쟁자본주의는 세계를 '내부'와 '외부'로 가를 수 있는 부유하고 강력한 유럽인들의 역량에 의지했다. '내부'는 모국의 법과 제도와 관습을 포괄했고, 국가가 부과한 질서의 지배를 받았다. 반대로 '외부'를 특징지은 것은 제국의 지배, 방대한 지역의 수탈, 원주민 학살, 자원 약탈, 노예화, 그리고 멀리 떨어진 국가의 효율적인 감시를 벗어난 민간 자본가들의 방대한 토지 지배였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85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으로 막대한 양의 토지를 강탈한 것은 제국주의 일본에게 막대한 농경지의 확보와 함께 저임금 노동자들을 동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자본주의는 1910년대 착실히 성장하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경제 호황을 맞이했음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금을 주어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그들의 작업을 감시하며 그들이 기술과 열정을 쏟게 하는 동안 새로운 딜레마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공장을 벗어난 노동자들의 가정과 거주 지역에서 고용주의 권한은 훨씬 더 멀어졌다. 노동자들을 모집하고 규율을 시행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노동조건이 끔찍했기 때문이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07


 군산과 목포에 지어진 근대식 항만, 신의주에 부설된 철도 등 SOC 설비가 제국의 '내부-외부'를 연결하는 통로였고, 이를 통해 수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리랑 5>를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는 이로부터 '근대화'의 징후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일본-조선'의 관계가 제국주의 '본국-식민지' 관계의 전형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식민 지배 기간 이루어진 조선의 발전이 '의도치 않은 낙수 효과'인지 아닌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단순 증가율로 분석할 것이 아니라, 같은 기간의 일본과 조선 경제를 비교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양국간에 이루어진 수출입 품목, 조건, 경제 성장률 비교 등 다방면에 걸친 분석을 통해 '경제성장'이라는 과실을 누가 가져갔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여겨진다. 이는 전문적인 내용이 죌 것이니만큼 깊은 내용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살펴 보도록 하자. 


 신의주야말로 이름 그대로 일본사람들이 제멋대로 만들어낸 '새로운 의주'였다. 경의선 종착역을 땅 넓은 압록강변에 만들면서 그들이 지어 붙인 이름이 '신의주'였다. 그러니 역 뿐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왜색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p88/247)...  별로 볼품이 없었던 군산은 일본세상이 되면서 개명도시로 바뀌더니 느닷없이 부로 승격했고, 어느새 부윤자리가 12개의 부 중에서 세 번째로 좋은 벼슬자리로 꼽히고 있었다. 그건 순전히 일본으로 실려나가는 쌀이 만들어낸 힘이었다._조정래, <아리랑 5>, p90/247 


 한편, <아리랑 5>에서는 오랜 기간 중심도시였던 전주, 의주 등을 대신하여 군산, 신의주, 목포 등 이른바 신도시들이 일제 시대에 새롭게 떠오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러한 변화로 새롭게 떠오르는 이들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고, 이들이 자신들에게 부와 권력을 안겨주는 새로운 조국 일본을 따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친일'이 옳은 길이라고 말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국가'나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변 사람들의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의 발로 때문일까. 쉽게 단정짓기 어려운 문제라 여겨진다...


 양치성이 그 가위눌리는 충격 속에서 느낀 것은 조선사람이라는 창피스러움과 부끄러움이었다. 그건 곧 일본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흠모로 이어졌다. 일본사람들이 왜 조선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고 얕잡아보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_조정래, <아리랑 5>, p8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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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전의 법령대로 하여도 진실로 그들의 마음으로부터의 소망을 이미 끊어버립니다. 그런데 함부로 그것을 더욱 무겁게 한다면, 저 고유는 아마도 지금부터 군대에 있는 병사 가운데 한 사람이 도망치는 것을 보면 죽음이 장차 자기에게도 미칠까 역시 서로 따라서 달아나게 되어 다시는 죽일 수조차 없게 될까 걱정입니다. 이러한 무거운 형벌은 도망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늘어나게 합니다.(23/59) - P23

"지존하신 인주(人主)께서는 항상 당연히 신중함을 지녀야 합니다. 오늘의 일은 거의 화를 입어 패배하기에 이를 번하였습니다. 많은 아래 사람들이 떨면서 두려워하기를 마치 하늘과 땅이 없어진 것으로 생각하였으니, 바라건대 이것을 죽을 때까지 훈계로 삼도록 하십시오."(30/59)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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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장수의 목을 베고 깃발을 빼앗아서 적진에서 위세를 떨친다고 하더라도, 이는 편장(偏將)의 임무이지 주장(主將)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13/67) - P13

여몽이 말하였다.
"선비가 헤어져서 3일이 되면 곧바로 괄목상대(刮目相對
할 정도로 바뀌어야 하는데, 대형께서는 어찌 발견하는 일이 이리 늦으셨습니까?"
노숙이 마침내 여몽의 어머니에게 절하고, 우의를 맺고는 헤어졌다.(13/67) - P13

전쟁은 나에게 달린 것이지 적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22/67)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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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태연(黃台淵)의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 Confucian Philosophy and the Origin of the Western Enlightenment>은 서구 근대의 출발점을 르네상스( Renaissance)와 종교개혁(Reformation)이전의 공자(孔子, BC 551 ~BC 479)의 유가(儒家)철학에서 찾는다.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유럽 세계보다 이미 먼저 근대화를 이룩한 중국 문물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西遷) 비로소 유럽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책의 주된 요지다.


 이 책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으로 개시되는 서양 근대문명의 유교적 기원에 대한 탐색과 규명은 서구 계몽주의, '근대유럽', 그리고 보편사적 근대가 공자철학과 극동의 정치문화에서 유래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적/베버주의적 근대이론의 오류를 극명해 '새로운' 근대이론을 수립하는 출발점이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13


  그렇지만, 아편전쟁(鴉片戰爭, 1839 ~ 1842)로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한 중국의 근현대사를 생각해 볼 때,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자본주의를 생각해보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 ~ 1920)나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와 같은 사상가들은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꽃피울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프로테스탄티즘과 같은 자본주의 정신을 들고 있는 반면,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는 이러한 사상과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대해 저자는 '미발달'이 아닌 '다른 안의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비판한다.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는.

 

중국에서 대공업자본주의가 불가능하게 된 이유는 일단 매뉴팩처 생산의 경제적 한계와 질곡을 혁신기술로, 즉 정교한 역학적 자동화기계로 분쇄, 돌파하는 또 한 번의 기술혁명을 일으키지 - '못한' 것이 아니라 -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한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다른 길은 다름 아니라 '자호 字號(브랜드) 상인 주도의 광역 네트워크 자본주의'였다. 공장제는 기술혁신에 기초한 노동절약적 생산방식인 반면, '자호상인 주도의 광역 네트워크'는 경영혁신에 기초한 자본절약적 생산, 분배방식이다. 이 다른 선택의 원인은 중국인들의 완전한 사회해방, 인구폭발과 노동력과잉, 중국 상품에 대한 유럽의 수요의 소멸로 인한 중국시장의 축소 등이었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531


 저자는 결코 동양이 서양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선 선진 문명이었고, 서구 문명은 '동방의 빛'을 통해 무미몽매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책 전편을 통해 서술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기존 서구 중심의 근대관이 아닌 새로운 근대관을 제기한다.


 '송대 이래의 중국적 근대성의 서천 西遷'이라는 가설이 옳을 것으로 입증되려면 중국에서의 '근대의 발단'이라는 사실이 비교역사학적으로 증명되고 이론적으로 논증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사적(보편사적) 의미를 갖는 - 한국/중국/일본의 역사학에서 보통 '근세'라고 불리고 서양에서 '초기근대(the early midemity)'라고 불리는 - 보편사적 의미의 '초기근대'가 진정 중국에서 최초로 개시되었는가? 앞서 여러 번 시사했듯이, 제국주의시대 일본이 동양사학자 나이토고난(內藤湖南)은 1920년대에 이미 이 물음에 대해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해놓은 바있다. 그는 중국이 9세기에서 13세기에 걸친 시기, 특히 송대(960~1279)에 일어난 심원한 변혁을 "근세의 발단"으로 규정했다. 이것이 그의 이른바 '송대 이후 근세설 宋代以後近世說'이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473


 일단 유의해야 하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송대에 인류역사상 최초로 발단한 '근세'가 공자철학 및 송대의 순수한 유교정치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송대 근세를 개창한 북송 대개혁가 왕안석의 신법과 개혁정책에 대한 '정학 正學'운동 주도세력의 정치사상적 영향은 "심대했기" 때문이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473


 구체적으로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에서는 중국의 정치철학이 유럽으로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시점을 송(宋)대 이후로 바라본다. 저자는 특히 당대의 정치가 왕안석(王安石, 1021 ~ 1086)의 개혁을 나라 전체의 구조를 변화시킬 정도의 혁명으로 평가하고, 이 개혁안 안에서 '보편적 근대성'을 발견한다. 이는 나이토고난과 같은 관점이지만, 저자는 이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간다.


 나이토고난이 중국의 근대화 노력이 송대 이후 쇠퇴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황태연 교수는 청대에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오랜 기간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중국문화의 전파가 세계 여러 지역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극동지역이 강한 영향을 받았기에, 오랜 기간 극동 아시아 전체가 유럽보다 여러 면에서 앞서 있었음을 강조한다.


 나이토고난의 송대이후근세론을 수용하되 그의 원/명/청대 노쇠설을 버리고 청대까지 중국이 계속적 발전론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 수정된 역사관에 따라 중국의 역사시대 구분을 세계적 차원에서 재조명하면,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근세'는 '근대'와 구분되어 '초기근대(early modernity)'로 재再정의된다. 그러면 '근세'는 '근대의 전기 前期'로 이해되는 반면, '근대'는 '높은 근대(high modernity)'로 바꿔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중국의 명/청대와 17~19세기 조선을 '근세'(즉, 낮은 근대)의 '마지막 단계'(최후단계) 또는 '성숙단계'로 규정한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524

 

 극동아시아의 근대화와 관련한 저자의 관점은 구한말 대한제국의 역사를 다룬 책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들에서 우리는 곧 나라를 빼앗길 껍데기뿐인 제국이 아닌 일본 다음의 근대화를 추진하는 역동적인 '대한제국 大韓帝國'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또다른 관점의 구한말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정리하도록 하자.

 

이상의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과연 서구 근대 정신인 계몽(啓瞢)의 빛(light)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답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빛의 기원은 서구 문명 내부인 그리스 로마 문명이 아닌 외부에서 왔으며, 그 뿌리는 공자를 비롯한 유가 철학이라는 것이 책의 요지다. 이러한 주장이 낯선 것이 사실이지만, 근대 철학자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나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 1679 ~ 1754)가 중국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고려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동양철학과 서구 근대 사상을 비교하며 음미한다면, 이러한 노력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에서 개략적으로 전개한 논지를 보다 세부적으로 <근대 영국의 공자숭배와 모럴리스트들>, <근대 프랑스의 공자열광과 계몽철학>,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에서 펼치는데, 아직 여기까지는 선뜻 손이 미치질 못하고 있다. 최대 1,000 페이지에 달하는 책들이어서 적지 않은 페이지의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이 모두 긴밀한 관련이 있기에 큰 흐름을 잡고 세부 차이점을 위주로 정리하면 불가능한 작업은 아닐 듯하여 추후 계획으로 추가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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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6-13 23: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000페이지...흡
여기에 댓글 달 실력은 안되고...
애들 말로
그냥 짱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6-13 23:29   좋아요 3 | URL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이 다른 책들의 서론 격에 해당하는데,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큰 주제는 여기에서 거의 언급된 것 같아요. 다소 반복되는 느낌도 있지만,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역사적 반박‘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각합니다. 책에 정말 많은 사상가들의 주장이 정리되어 있는데, 따라가기에도 벅차네요. 독자가 읽기도 힘든 책을 쓴 저자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나리자 2021-06-14 1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철학과 역사물의 향연!! 멋지십니다~
정말 쨩이세요!!

겨울호랑이 2021-06-14 11:22   좋아요 3 | URL
황태연 교수의 책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근대의 기원‘이고, 각 권들은 세부적인 논증과 역사속에서의 실재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해됩니다. 독자들이 본문에 언급된 사상가와 역사적 사실을 다 알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니만큼, 전체적인 흐름을 잡고 비교해 읽는다면,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독서를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바라볼 때 황태연 교수를 비롯한 석학들의 내공은 정말 엄청남을 느낍니다.^^:)

Redman 2024-04-26 0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명의 수용과 전파 과정에서 수용자는 자신의 맥락과 관심사에 따라 타 문명권의 정보를 편의적으로 재구성하죠. 서양인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중국 철학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관심사와 기존 사상적 전통에 따라 재구성한 중국을 받아들인 거겠죠.

계몽 사상가들이 청이나 중국 사례를 인용하고 찬양한 건 맞으나, 그건 성서의 역사성을 부인하거나 유럽 절대주의 군주와 가톨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리고 비단 중국만이 아니라 타히티, 하와이, 북미의 휴런족 같은 멀리 떨어진 나라나 민족에 대한 여행기가 18세기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이들에 관한 언급은 유럽의 지배적 관념을 상대화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선택지를 제공했습니다. 중국, 공맹만 더 특별한 게 아니라, 중국은 유럽 사상가들에게 그저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볼프나 라이프니츠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겠죠.

애초에 자연법 전통, 기독교 전통, 공화주의 전통 등등 복잡한 사상의 지형과 전통, 패러다임이 더 영향을 미쳤다면 미쳤지, 단순히 중국철학을 읽었다고, 공자를 언급한다고 그 모든 사상가가 중국철학의 신봉자이며 근대는 동양에서 왔다고 하는 황태연의 주장은 지나친 단순화이자 편향적 독법의 소산이며 지난 반 세기 동안 축적된 탁월한 연구 성과들을 무효화해버리는 주장 같네요. 말하자면, 한국에서 샌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할리우드 영화가 천만영화로 등극했다고 21세기 한국문명의 기원은 미국에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논리 같습니다.

<국부론> 검색하다가, 그동안 궁금했던 황태연의 주장을 겨울호랑이님의 글을 읽고 드디어 접했네요. 저자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만 읽었어도 저런 주장은 안 할텐데

겨울호랑이 2024-04-26 06:02   좋아요 0 | URL
유럽의 계몽사상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대안 중 하나라는 Redman님 말씀에 충분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주역>이 라이프니츠에게 가져다 준 영향 등을 생각해본다면 저로서는 영향력에 대해 단정적으로 결론짓기도 어렵네요. 제가 아직 잘 몰라서겠지요... 글을 읽으며 서구 계몽사상에 미친 중국과 다른 문명들의 영향력에 대해 보다 깊이 알 수 있다면 문명의 우위에 대해 자리매김하기보다 오래전부터 문명 간의 교류가 물자 뿐 아니라 사상면에서도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유한 전통이라는 틀이 아닌 교류와 수용을 통한 발전이라는 흐름의 관점에서 문명사를 바라봐야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병원 대기실에 꽂힌 「미중전쟁」을 꺼내들었다. 책이 나온 시점이 2017년 12월이니, 다음해 4월 판문점 회담 등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급격한 국제 정세 변화를 겪은 후 2021년에 이 책을 보니 선뜻 ‘미-중 군사충돌‘이 현실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중국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거요.˝

2권 띠지에 적힌 자극적인 문구를 보면서, 세계 최대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의 농산품 수입국이 중국이라는 사실과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에 세계 공장인 중국의 생산품이 대량 수출되는 현실이 대비된다. ‘중국 때리기‘를 통해 인기를 올릴 수 있지만, 중국이 정작 죽어 버리거나 매입한 미국채를 대량 환매할 경우 미국 역시 큰 타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칸트의 ‘영원한 평화‘의 전제 조건 중 하나가 ‘자유로운 교역‘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미-중 전쟁‘이 아닌 ‘미-중 경쟁‘이 더 적절한 소재가 아니었을까. 또는, 문정인 교수의 지적처럼 동아시아에서의 국지전을 했으면 다소 흥미는 떨어지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다만, 이러한 평가는 2021년에 내리는 사후적인 평가이기에 2017년에 책을 쓴 작가에게 이러한 통찰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도 무리가 있다 여겨진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미중전쟁」은 한반도에 배치된 전략무기체계 등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읽는다면 나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무협지와 같은 작품으로 다가온다.

ps.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작계 5027, 작계5015 등 군사 전략과 무기 제원을 고려한 접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장비의 개별 성능과 실제 운용은 분명 다른 문제지만, 아쉽게도 이런 부분까지 깊이있게 들어가지는 못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군대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경험한 20여년 전 군사령부 지휘통제훈련(워게임)에 비추어 본다면, 기상조건 등 전장의 돌발 변수가 승패에 미치는 영향은 현대전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미중전쟁>에는 이러한 요소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는다. 여러 요건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지휘관의 의지와 성능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진행은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져 아쉽다...이 부분은 작가의 초기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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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2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12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1-06-13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글을 쓰는 데 필요해서 전쟁에 관한 책을 찾고 있어요. 검색해 보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6-13 10:01   좋아요 1 | URL
제 글이 페크님께 도움이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종이달 2021-12-31 1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12-31 13:14   좋아요 1 | URL
종이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