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연(黃台淵)의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 Confucian Philosophy and the Origin of the Western Enlightenment>은 서구 근대의 출발점을 르네상스( Renaissance)와 종교개혁(Reformation)이전의 공자(孔子, BC 551 ~BC 479)의 유가(儒家)철학에서 찾는다.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유럽 세계보다 이미 먼저 근대화를 이룩한 중국 문물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西遷) 비로소 유럽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책의 주된 요지다.
이 책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으로 개시되는 서양 근대문명의 유교적 기원에 대한 탐색과 규명은 서구 계몽주의, '근대유럽', 그리고 보편사적 근대가 공자철학과 극동의 정치문화에서 유래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적/베버주의적 근대이론의 오류를 극명해 '새로운' 근대이론을 수립하는 출발점이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13
그렇지만, 아편전쟁(鴉片戰爭, 1839 ~ 1842)로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한 중국의 근현대사를 생각해 볼 때,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자본주의를 생각해보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 ~ 1920)나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와 같은 사상가들은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꽃피울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프로테스탄티즘과 같은 자본주의 정신을 들고 있는 반면,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는 이러한 사상과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대해 저자는 '미발달'이 아닌 '다른 안의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비판한다.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는.
중국에서 대공업자본주의가 불가능하게 된 이유는 일단 매뉴팩처 생산의 경제적 한계와 질곡을 혁신기술로, 즉 정교한 역학적 자동화기계로 분쇄, 돌파하는 또 한 번의 기술혁명을 일으키지 - '못한' 것이 아니라 -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한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다른 길은 다름 아니라 '자호 字號(브랜드) 상인 주도의 광역 네트워크 자본주의'였다. 공장제는 기술혁신에 기초한 노동절약적 생산방식인 반면, '자호상인 주도의 광역 네트워크'는 경영혁신에 기초한 자본절약적 생산, 분배방식이다. 이 다른 선택의 원인은 중국인들의 완전한 사회해방, 인구폭발과 노동력과잉, 중국 상품에 대한 유럽의 수요의 소멸로 인한 중국시장의 축소 등이었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531
저자는 결코 동양이 서양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선 선진 문명이었고, 서구 문명은 '동방의 빛'을 통해 무미몽매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책 전편을 통해 서술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기존 서구 중심의 근대관이 아닌 새로운 근대관을 제기한다.
'송대 이래의 중국적 근대성의 서천 西遷'이라는 가설이 옳을 것으로 입증되려면 중국에서의 '근대의 발단'이라는 사실이 비교역사학적으로 증명되고 이론적으로 논증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사적(보편사적) 의미를 갖는 - 한국/중국/일본의 역사학에서 보통 '근세'라고 불리고 서양에서 '초기근대(the early midemity)'라고 불리는 - 보편사적 의미의 '초기근대'가 진정 중국에서 최초로 개시되었는가? 앞서 여러 번 시사했듯이, 제국주의시대 일본이 동양사학자 나이토고난(內藤湖南)은 1920년대에 이미 이 물음에 대해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해놓은 바있다. 그는 중국이 9세기에서 13세기에 걸친 시기, 특히 송대(960~1279)에 일어난 심원한 변혁을 "근세의 발단"으로 규정했다. 이것이 그의 이른바 '송대 이후 근세설 宋代以後近世說'이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473
일단 유의해야 하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송대에 인류역사상 최초로 발단한 '근세'가 공자철학 및 송대의 순수한 유교정치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송대 근세를 개창한 북송 대개혁가 왕안석의 신법과 개혁정책에 대한 '정학 正學'운동 주도세력의 정치사상적 영향은 "심대했기" 때문이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473
구체적으로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에서는 중국의 정치철학이 유럽으로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시점을 송(宋)대 이후로 바라본다. 저자는 특히 당대의 정치가 왕안석(王安石, 1021 ~ 1086)의 개혁을 나라 전체의 구조를 변화시킬 정도의 혁명으로 평가하고, 이 개혁안 안에서 '보편적 근대성'을 발견한다. 이는 나이토고난과 같은 관점이지만, 저자는 이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간다.
나이토고난이 중국의 근대화 노력이 송대 이후 쇠퇴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황태연 교수는 청대에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오랜 기간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중국문화의 전파가 세계 여러 지역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극동지역이 강한 영향을 받았기에, 오랜 기간 극동 아시아 전체가 유럽보다 여러 면에서 앞서 있었음을 강조한다.
나이토고난의 송대이후근세론을 수용하되 그의 원/명/청대 노쇠설을 버리고 청대까지 중국이 계속적 발전론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 수정된 역사관에 따라 중국의 역사시대 구분을 세계적 차원에서 재조명하면,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근세'는 '근대'와 구분되어 '초기근대(early modernity)'로 재再정의된다. 그러면 '근세'는 '근대의 전기 前期'로 이해되는 반면, '근대'는 '높은 근대(high modernity)'로 바꿔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중국의 명/청대와 17~19세기 조선을 '근세'(즉, 낮은 근대)의 '마지막 단계'(최후단계) 또는 '성숙단계'로 규정한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524
극동아시아의 근대화와 관련한 저자의 관점은 구한말 대한제국의 역사를 다룬 책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들에서 우리는 곧 나라를 빼앗길 껍데기뿐인 제국이 아닌 일본 다음의 근대화를 추진하는 역동적인 '대한제국 大韓帝國'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또다른 관점의 구한말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정리하도록 하자.
이상의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과연 서구 근대 정신인 계몽(啓瞢)의 빛(light)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답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빛의 기원은 서구 문명 내부인 그리스 로마 문명이 아닌 외부에서 왔으며, 그 뿌리는 공자를 비롯한 유가 철학이라는 것이 책의 요지다. 이러한 주장이 낯선 것이 사실이지만, 근대 철학자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나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 1679 ~ 1754)가 중국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고려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동양철학과 서구 근대 사상을 비교하며 음미한다면, 이러한 노력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에서 개략적으로 전개한 논지를 보다 세부적으로 <근대 영국의 공자숭배와 모럴리스트들>, <근대 프랑스의 공자열광과 계몽철학>,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에서 펼치는데, 아직 여기까지는 선뜻 손이 미치질 못하고 있다. 최대 1,000 페이지에 달하는 책들이어서 적지 않은 페이지의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이 모두 긴밀한 관련이 있기에 큰 흐름을 잡고 세부 차이점을 위주로 정리하면 불가능한 작업은 아닐 듯하여 추후 계획으로 추가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