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일본에 극악상태였다. 작년 7월에 괜찮다, 끄떡없다, 걱정 말라 하고 말해오던 사이판섬의 일본군은 전멸했고 유황도(硫黃島) 오키나와(沖繩)를 내어놓는 것은 시간문제로 박두해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도조 같은 미치광이 과대망상증환자가 물러선 것만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도 있겠다. 본토결전을 외치며 일본 국민 전원의 옥쇄 감행의 위험은 다소나마 엷어졌다 할 수도 있겠고 어딘가 구멍을 찾아내어 구명책을 강구할 가능성이 바늘귀 떨어진 것만큼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군부의 미치광이들이 어떻게 누비고 지나갈 것인가, 고이소나 요나이도 군인, 칼은 칼로써 망한다는 이치를 말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움일 뿐이며 식민지 조선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인 그들 국민 자체가 불운이며 불행이다. _ 박경리, <토지 20> , p263/510 (4/22)


 이번 주 <토지> 독서 챌린지 주제는 '내 마음대로 결말을 예상해본다면?'이다. 독서 챌린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쉽지 않은 주제라 고민하지만, 나름 전체적인 틀을 잡고 인물 배치를 해보려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사이판 함락이 1944년 7월이었고, 현재 시점은 1945년 8월 이전의 어느 날, 머지않아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는 기대와 불안감이 한껏 고조된 상황이다. 그리고, 곧 맞이할 해방에 서로 다른 처지에서 해방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논의의 주제는 마침내 한반도로 옮겨갔다. 루스벨트는 비공개 석상에서, 조선의 신탁통치에 영국의 동참을 요구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요청하지 않으면 처칠이 몹시 분개할지 모른다고 대꾸했다. "영국은 틀림없이 불쾌해할 것이오." 스탈린은 이를 드러내고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처칠이 우릴 죽이려들지도 모르지요." 루스벨트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스탈린은 영국의 참여를 요청하는 데 동의한다면서 유쾌하게 말했다. _ 톰 홀랜드, <일본 제국 패망사> , p886/1261


 해방 직전의 전세는 일본에 현저하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중일전쟁에서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고, 동남아 전선에서는 남태평양 여러 곳에서 고립된 일본군들이 죽어가고 있었으며, 만주 지역의 관동군들은 다른 전선으로 이미 빠져 나간 상황이었다. B-29 등장 이후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일본 경제는 급속하게 황폐화되었고, 이는 식민지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본 패방으로 막을 내리는 <토지>의 마무리는 해방 이후의 혼란상과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이후 민족 분단의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서희와 길상의 아들들인 최환국과 최윤국의 인생을 대비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 양현까지 포함해서 이들을 각각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


 미술 선생을 한 최환국은 윤국의 학병 지원 이후 최씨 집안의 당주로서 민족주의자로서 지방에 자리를 잡지만, 최윤국은 군대에서 충칭 지역 전선에 투입된 후 중국군에 포로로 잡혀 마오저뚱 휘하 팔로군 부대에 배속되고, 해방 이후 조선의용군의 한 명으로 북측으로 돌아오고, 한국전쟁으로 남으로 내려오게 된다. 양현은 고향에서 병원 개업 후 공산주의자로 변한 윤국과 대립하는 환국의 모습에서 회의를 느끼고 미국으로 건너가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길상은 일본 패망 이후 석방되어 아들 환국과 함께 지내지만, 아들 환국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가 되어 종교적, 예술적으로 갈등을 겪는다. 서희는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늙어간다.

 

 산으로 들어갔던 산 사람들과 이범호는 해방 이후 남조선노동당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리산으로 들어가 남부군으로 지내며, 일본에서 살던 찬하 부부와 쇼지는 해방 이후 조용히 살 계획을 가지고 제주도로 들어가 4.3을 맞는다. 명희는 사학 재단을 설립해서 학교를 만들고, 명빈과 함께 운영하며 노후를 보낸다. 홍이와 인실은 모두 만주에서 해방을 맞지만, 국공 내전을 겪으며 홍이는 대만으로 이주하고 인실은 중국 본토에 남는다... 대략 이런 구도로 큰 이야기 틀을 잡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면 어떨까. 다만, 여기서 한 인물이 남는데 이에 대한 배치가 쉽지 않다. 김거복이다.


 그의 친일 행적을 생각하면, 남은 자산을 정리하고 히로시마로 넘어가 피폭 당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싶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듯하다. 현실적이라면, 아들을 목사로 만들고 개신교 계 신문사를 차린다는 이야기로 가야할까, 그리고, 등장인물 자녀 중 한 명을 사법고시를 패스시켜야 하는데 누구로 할지도 아직은 미정이다. 만약 작품을 이정도 선에서 마무리짓는다면, <토지> 6부를 시작하더라도 큰 무리없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독서 챌린지 주제라 두서 없이 뒷이야기를 만들어 보았으나, 이야기가 너무 산으로 가는 것 같다. 이미 있는 인물들을 역사적 흐름에 세워 놓는 것도 쉽지 않은데, 새로운 작품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이번 챌린지를 통해 실감한다. 부족한 상상력을 보완한 책들을 마지막에 실으며, 이번주 독서 챌린지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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