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네(오복이 할매) 평사리의 과부로 5부까지 등장하는 몇 안 되는 평사리의 이야기꾼. 남편은 폐병으로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아낙들과 어울려 성실히 일하며, 말이 많고 가난하나 욕심 없으며 정이 많아 사람들의 인심을 얻는다... 같은 과부 처지이던 복동네의 억울한 죽음에 충격을 받고 천일네와 함께 나서서 봉기를 혼내주기도 하고 석이네를 구박하는 귀남네에게 야단을 치기도 하는 경위 바른 사람이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 p120/214


 <토지>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때문에, 별도의 인물사전이 필요할 정도지만 이들 중 서희가 주인공임은 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구한 말부터 일제시대를 관통하는 이 시대의 아픔을 최서희는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 개인적인 아픔을 겪기는하지만, 할머니 윤씨 부인으로부터 얻은 재산을 기반으로 더 큰 부(富)를 이루며 권력을 얻은 서희는 분명 어두운 시대의 아픔과는 거리를 둔 인물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1975)가 바라본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1892~1940)와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면에서 작품에서 비중은 작지만, <토지> 전반에 걸쳐 여러 아픔을 겪으며 살아간 야무네는 고단한 민중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시대에 영향을 가장 덜 받고 시대와 먼 거리를 두고 있어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있다. 시대는 이들에게 이 특징을 아주 명료하게 각인시킨다. 프루스트, 카프카, 크라우스(Karl Krauss) 그리고 벤냐민(이 그런 사람들이다. 벤냐민의 경우 몸짓, 말하고 들을 때 머리를 세우는 습관, 예의범절, 특히 용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구성하는 것을 포함한 표현방식, 대단히 독특한 취향 등은 고풍스러워 보였다.(p490)... 그는 망명자로  파리에 살게 된 이후에 천성적인 고결함 때문에 가벼운 만남을 친분관계로 발전시키기 못했으며, 사람들을 새롭게 접촉하지 못했다. _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 p491/886


 여러 곳에서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야무네지만, 이번 주 <토지 10>에서 보여진 야무네의 마음은 고통스럽다. 낯선 섬으로 시집 가결핵에 걸려 아픈 딸 푸건과 딸을 만나고 돌아오는 야무의 모습 속에서 죽어가는 딸을 보면서도 가난과 시집간 이는 출가외인(出家外人)이기에 차마 말을 못 건네는 모습 속에서 속으로 흘리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 무상한 것아, 니 몸이 성함사. 죽물이라도 에미가 끓이주는 것 묵으믄 맴이라도 안 편하겄나. 굶으나 묵으나 나랑 함께 가자."  "한 분 데리고 왔이믄 그만이제, 벵들었다고 내치는 법은 없소. 아예 시어무니 앞에서는 말도 내지 마소." 가고 싶지 않아서 그러겠는가. 찢어지게 가난한 친정에 책임을 지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야무네는 안다. (p155)... 다음 푸건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루에도 몇 번 있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목이 꽉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딸이 죽을 것이란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거니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픈 것은 아니다. 헛간 같은 방이며 시어머니, 동서의 쌀쌀맞은 눈빛이며 무엇을 먹고 온종일을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가, 그 생각 때문에 목이 메이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0> , p160/682


 야무네가 어머니로서 겪어야 하는 아픔이 죽어가는 딸을 바라보며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한 심리적 고통이라면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에서 팡띤느가 딸 꼬제뜨의 양육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육체적인 것이었다. 죽어가는 딸을 지켜보며 마음 아파하는 야무네와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머리를 자르고, 이를 뽑고, 심지어 몸까지 팔아야 했던 팡띤느. 비참한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이들 어머니들 마음은 자식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고, 이들의 마음은 피에타(Pieta) 그 자체였다.


[사진] 피에타 (미켈란젤로) Pieta, Michelangelo [출처 : https://www.mentalfloss.com/article/63602/15-things-you-should-know-about-michelangelos-pieta]


 아이(꼬제뜨)는 그 나이에만 볼 수 있는 완벽한 신뢰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모든 엄마들의 팔은 자애로움으로 형성된지라, 아이들이 팔에 안겨 깊이 잠들 수 있는 것이다.(p493)... 한겨울에, 아직 나이 여섯도 채 아니 된 그 가엾은 아이가, 구멍투성이 낡은 누더기를 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커다란 두 눈 속에 고인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빨갛게 언 작은 손으로 커다란 비를 들고, 해가 뜨기 전부터 집 앞길을 쓸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가슴이 찢어질 듯 비통한 일이다. _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1> , p526/1084


  팡띤느는 뜨개질하여 지은 치마 하나를 사서 떼나르디에 내외에게로 보냈다. 치마를 받고 떼나르디에 내외는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그들이 원하던 것은 돈이었다. 그들은 치마를 에뽀닌느에게 주었다. 가엾은 '종달새'는 여전히 추위에 떨었다. 팡띤느는 홀로 생각에 잠기었다. '내 아이가 이제는 춥지 않을 거야. 나의 머리채로 감싸 주었으니까.'(p607)... 아이에게로 향한 그녀의 사랑은 더욱 열렬해졌다. 추락하면 할수록, 그리하여 주위의 모든 것이 음침해질수록, 그 다정한 어린 천사가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서 더욱 광채를 발산하였다. 그녀가 홀로 중얼거리곤 하였다. "부자가 되면 꼬제뜨와 함께 살 수 있을 거야." _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1> , p609/1084


 야무네와 팡띤느의 자식사랑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면, <토지>에는 이와 다른  모성(母性)도 공존한다. 홍이를 대하는 임이네의 모습은 자신에게도, 용이에게도, 홍이에게도 모두 어려운 짐이었고, 상처가 되버렸다. 특히, 홍이에게 생모(生母)와 양모(養母) 사이에서 겪었던 마음의 갈등이 후에 첫사랑 장이와 부인 보연 사이에 방황하는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때문일까. 보연과  홍이의 혼인날 내린 장대비가 예사롭게 느껴지질 않는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홍이는 죄의식 때문에 진주로 왔다. 장이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순순하게 느낄 수 있는 죄의식이지만 다른 또 하나의 죄의식, 밟아 뭉개고 싶지만 훨씬 더 쓰라리고 괴로운 감정, 때문에 진주로 왔다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것은 어미에 대한 것이다. 설령 어미가 바위 같은 강자요 자신은 모래알 같은 약자일지라도 자신이 거부하는 쪽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상대로부터 어떤 고통을 받든 피해를 받든 가해자는 거부하는 쪽이다. 깊은 관계일수록 특히 혈육관계일수록 거부에는 죄의식이 따르게 마련이다. _ 박경리, <토지 10> , p212/682


 이번 주 <토지>를 읽으며 비참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두 모녀를 떠올린다. 야무네와 팡띤느. 서로 다른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생각하는 두 인물을 보면서 부모의 마음을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모성(母性)을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구속이라고 설명하고, 다른 이는 능동적인 대처가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유전자의 작용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자기 중심적'인 다른 행동과 다른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설명하려는 여러 이론들이 저마다의 근거를 가지고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이러한 논리에 한편으로 수긍하면서도, 야무네와 팡띤느의 행동을 마음깊이 받아들이는 것은 '부모' 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같은 길을 선택했으리라는 공감대가 있어서가 아닐까.


 우리가 '유전자'가 아닌 '개체' 단위에서 사고를 하며, '개체' 단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에서 만들어 낸 '문화' 안에서 살아가기에 '부모의 자기 희생'이라는 예외적으로 보이는 현상의 제1원인이 무엇인가 보다 우리 모두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이런 감정 안에서 야무네와 팡띤느의 사랑에 마음 아파하고, 임이네에 분노를 느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팡띤느의 그 이야기는 무엇인가? 사회가 여자 노예 하나를 매입하는 이야기이다. 누구로부터?  비참함으로부터. 배고픔과 추위와 고립과 저버림과 궁핍으로부터. 비통한 거래이다. 영혼 하나를 빵 한 조각과 바꾸다니. 비참함이 공급하고 사회가 인수한다._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1> , p622/1084


 결국 이상적인 어머니는 공감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적인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도 개인적인 야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인 어머니는 자녀의 틀을 형성할 때,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역사가 일깨워주듯이, 훌륭한 어머니라는 개념은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_ 섀리 엘 서러, <어머니의 신화>, p400


 부모는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진히 자식을 돌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부모 쪽이 나이도 많고 매사에 더 능숙해서 자식을 도울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는 형제 관계에는 해당되지 않는 또 다른 비대칭성이 있다. 자식은 항상 부모보다 젊다. 이것은 항상은 아니더라도 대개의 경우 자식의 기대 수명이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_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 p327/996 


PS.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에 따르면, 임이의 행동도 홍이를 위해서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고,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결과적으로 자신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월선에게 홍이를 밀어넣은 임이의 행동은 '뻐꾸기의 사랑'의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감동적으로 보일지라도 입양하는 행동은 대부분의 경우 어떤 정해진 규칙이 잘못 사용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암컷은 자기의 친족, 특히 장래의 자기 새끼들을 살리는 데 투자할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다.(p314)... 고의적으로 모성 본능을 악용하는 예는 다른 새의 둥지에 산란하는 뻐꾸기 같은 '탁란조 托卵鳥'에서 볼 수 있다. 뻐꾸기는 부모 새에게 내장된 "자기 둥지 속에 있는 새끼 모두에게 친절하라"라는 규칙을 악용한다. _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 p315/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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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親日)을 더 해야겠다, 친일을. 그 말은 확실히 혜관을 감동시킨 것이다. 용정촌에 군자금을 보낸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위장을 한다는 뜻인 것은 물론이지만 그 말은 서희의 괴로움, 서희의 갈등, 서희의 냉정, 서희의 총명을 웅변해주었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9> , p296/580


 <토지 9>에서는 진주로 돌아온 서희의 복수가 성공을 거두고, 조준구는 오천 원의 돈을 받아들고 평사리의 집을 넘기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로써 어린 시절 평사리에서 쫓겨나 간도로 내몰렸던 서희는 오랜 기간 기다렸던 가문의 복수를 해치웠다. 그러나, 조준구는 너무 무력하게 무너졌기에 서희는 시원함보다 오히려 허무함을 안고 만다. 간도에서 살 적부터 오랜 기간 공양과 기도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던 서희. 복수의 끝에 조준구에게 오천 원을 주고 평사리 집과 허무함을 받은 서희는 이제 그 칼 끝을 조준구가 아닌 자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길상에게돌린다. 


 '구경(究竟)열반한들 그것이 무엇이랴. 석가여래께서 입멸(入滅)하셨을 적에 많은 성문(聲聞)들은 어찌하여 울었더란 말이냐. 죽음이기 때문일 것이며, 다시 만나볼 수 없다는 슬픔 때문일 것이며....형체가 있고서야 마음을 보지 아니하겠는가. 마음 없는 형체는 물건이요, 형체 없는 마음은 실재가 아니지 아니한가. 목숨이 오고 가고, 오고 갔을 뿐인데 육도윤회라 하는가. 윤회는 무엇이냐. 내가 모르는 윤회는 없는 것이며 내 목숨 간 곳을 모른다면 그것은 내 목숨이 아니지 아니한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 아아-어느 곳에도 실성(實性)은 없느니. 사멸전변(死滅轉變), 내가 없도다!' 불교적 비애, 근원적인 허무의 강을 서희의 생각은 떠내려간다. 가다가, 가다가 자맥질을 한다. '어째서 오천 원을 던져주었을까?' (p336)...  용정촌을 떠나올 때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맹세했던 길상의 얼굴이 눈앞을 지나간다. 조준구와의 어이없는 끝장의 원인이 거기 있는 것을 서희는 깨닫는다. _ 박경리, <토지 9> , p338/580


 다만, 조준구에게 대한 복수가 차가운 냉정함으로 이루어진 복수라면, 길상에 대한 복수는 자신과 아이들을 저버린 것에 대한 뜨거운 감정으로 행해질 복수다.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을 버린 남편 길상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군자금 원조라면, 이를 감추기 위한 친일은 복수다. 이러한 서희의 선택이 길상이 아닌 제3자인 혜관 스님에게는 냉정함과 총명함으로 보였겠지만, 분명 그 날카로움은 길상의 가슴 깊이 꽂혔으리라.


 '나는 독립운동가의 아내는 아니야. 친일파 최서희, 내게는 아직 친일파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 자식의 아비요, 내 남편이다.' 서희 얼굴에 핏기가 돈다. 이성으로는 달래볼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십 년 전에 이동진이 군자금을 요청했을 때 거절한 일이 생각난다. 기본적으로 그때 생각과 오늘의 생각엔 별 변화가 없다. 다만 다르다면 그땐 냉정했었고 지금은 감정이 앞서는 차이점이다. 그리고 또 그때 이성은 편협했지만 지금의 감정은 포용의 폭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서희의 생각은 중단되었다. _ 박경리, <토지 9> , p282/580


 이러한 서희의 선택을 보면서, 그가 떠내려 간 비애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조준구에 대한 복수의 끝에 얻어진 허무의 강으로 들어갔을 때, 육도윤회(六道輪廻))의 인과율(因果律)을 깨닫아 열반(涅槃 nirvana)의 길로 가라는 부처의 말씀을 따르는 대신 길상에 대한 복수를 택한 서희. 그의 선택에 종교적 옳음, 그름을 말하기 전에 그 선택이 양날의 검이 되어 서희에게 가져올 괴로움을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나 친척들 사이에는 마땅히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생각을 가지지 말라. 얼굴이나 말소리는 화평하고 부드럽게 서로 가져라. 만일 마음속에 남을 미워하는 생각을 두면, 금생에서는 비록 작은 다툼을 할 뿐이라 하더라도, 오는 세상에서는 그것이 큰 원수가 되는 것이다.(p711)...  믿을 수 없는 세상만사를 다 버리고, 몸이 젋었을 때에 부지런히 불법을 듣고 행하여, 죽고 나는 일이 없는 열반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_ 대한불교청년회, <우리말 팔만대장경> <방등경 법문>, p712


 이 세상은 모두 혼란하고 아득하여, 올바른 도를 아는 이는 극히 드물고, 어느 한 사람 믿을 이가 없으므로, 가난한 이와 넉넉한 이와, 귀한 이와 천한 이 할 것 없이, 쓸데없는 일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가슴속에는 무서운 생각만 가득하여, 천지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만 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것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죄의 항아리가 가득차게 되면, 인과의 법칙은 어길 수 없으므로, 이 세상에서 목숨을 마치자 곧 지옥이나 아귀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_ 대한불교청년회, <우리말 팔만대장경> <방등경 법문>, p713


  <토지 9>에는 서희 말고도 허무의 강에서 좌절하고 있는 또 다른 중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이상현(李相鉉)이다. <토지 인물 사전>에는 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상현... 주권을 잃은 나라의 젊은 지식인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한 무력한 지식인에 불과함을 깨닫는 한편, 덕망 있는 혁명가인 아버지 이동진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유학을 떠난다. 서울로 돌아와 3.1운동을 맞지만 지식인으로서의 무력함에 방황하며 서의돈, 임명빈, 유읜성, 선우 일, 선우 신 등 '용렬하고 옹졸한 도령'인 지식인들과 교류한다.. _ 이상진, <토지 인물 사전> , p150/214


 서희가 너무도 갑작스럽게 다가온 복수의 성공에 허무감을 느꼈다면, 이상현은 3.1운동의 환희에서 빠르게 흥분하고 더 빠르게 식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하면서 허무함에 빠져든다.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은 잦아드는 불씨처럼 되어가고 대신 해외로 번져서 한때 저조했던 항일투쟁에 기름을 부었다는 자위도 있었으나 상현은 해외에서 움직이는 뭇 단체나, 기라성같이 많은 독립투사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그렇다 해서 상현이 실의의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은 3.1 운동이 성과 없이 끝난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다소 심리적인 영향이야 끼쳤을 테지만 상현은 자기 자신, 이상현이란 한 인간에 절망했다는 것이 옳을 성싶다. _ 박경리, <토지 9>, p35/694


 상현은 자신의 인간됨이 선이 가는 것을 안다. 동시에 맹목적 무조건일 수 없는 자신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꽃같이 떨어져라! 꽃같이 떨어질 충격이 있어야 한다. 서의돈과 함께 군중 속에서 울었다. 밟혀 죽어도 여한이 없겠노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체처럼 열정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조선도 고아임을 확인할밖에 없고 상현은 자신도 끈 떨어진 연일 수밖에 없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그 비애가 단순할 수 없는 것이다. 비겁한 놈! 유약한 놈! 비애는 다시 멍이 든다. _ 박경리, <토지 9> , p45/694


 3.1 운동 이후 절망하는 이상현의 모습은 당대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 ~ 1924)과 레닌(Vladimir Ilyich Ulyanov, 1870 ~ 1924)입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해진 '민족자결주의'란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는 다른 어느 계층보다 지식인들을 흥분시켰지만, 이들이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이라는 현실 속에서 약소국 '대한제국'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더 빨랐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지식인들은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었다. <3.1운동 100년 2>속 청년 혁명가 양주흡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이상현의 고뇌를 발견한다. 이러한 고뇌는 어디로 향하는가.


 시기는 도래하였으나 어느 곳도 착수할 곳이 없다. 이를 어찌하여야 하는가. 중화민국으로 가려고 여비를 수차례 청구하였으나 회답이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좋겠다...


 '혁명'을 스스로 성취하겠다는 이상은 있었지만, 내부 운동에 접속하지 못한 한계와 임시정부 수립이나 파리강화회의 같은 외부에서 전해지는 높은 성취들 앞에서 양주흡은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조급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 조급함을 해소할 현실적 요건을 갖추기는 어려웠다. 양주흡은 독립에 대한 열망과는 별개로 자신이 독립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양주흡을 비롯해 모두가 그런 처지에 놓여 있었다. 거대한 운동 속에서 어느 개인이 뚜렷한 전망과 정확한 대안을 지녔겠는가. _ 최우석, <3.1운동 100년 2> <청년 양주흡, 혁명을 꿈꾸다>p188/322


 서희의 허무함이 같은 '복수'로 채워지듯, 지식인들의 허무는 자신들의 무력함과 함께 자신이 원래 가졌던 생각을 강화하는 쪽으로 채워진다. <2.8독립선언의 전략성과 영향> 속에서는 유학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2.8 독립선언이 독립에 대해 부정적인 '이 달'과 같은 인물을 잠시나마 독립운동의 길로 이끌었다는 내용이 다루어진다. 그렇지만, 이 달과 같은 인물들의 독립투사의 면모는 곧 사라지게 되었고, 이는 1919년 민족대표 33인 다수가 친일의 길을 걸었던 것과도 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그들은 일본제국 내에서 자치를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쪽으로 의식 전환을 해 나간다.


 재일 조선인 유학생의 민족운동은 도쿄에 체재하는 일본인을 비록한 동아시아 지식인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전개되었다. 또한 <저팬 애드버타이저>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 내에 비해 국제 정세에 관한 지식도 입수하기 쉬웠다.. <2.8 독립선언서>가 윌슨의 사상을 분석해 작성되었다는 것은, 국제성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던 조선인 유학생의 민족운동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_ 오노 야스테루, <3.1운동 100년 2> <2.8독립선언의 전략성과 영향>, p70/322


 1917년 동양청년동지회 결성 당시 이달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조선인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했고, 스스로 "일선동화(日鮮同化)"를 제창했다. 그 때문에 조선인 유학생으로부터 "반감을 사"왔다.(p67/322)... 이달이 생각하는 '동양의 평화'는 동양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반(半) 식민지 지배에서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달은 동양청년동지회의 기관지 <혁신시보>에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언론의 자유를 비록한 조선인에 대한 차별정책을 없애기 위한 "일선동화의 방법"을 고려해달라는 주장을 했다. 즉, 이달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조선인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삼을 뿐, 신아동맹당 같이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을 상정하지는 않았다._ 오노 야스테루, <3.1운동 100년 2> <2.8독립선언의 전략성과 영향>, p51/322


 그 결과 1930년대 중일전쟁(中日戰爭)과 1940년대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을 통해 일제가 우리에게 강요한 '내선일체(內鮮一體)'사상을 전파하는 것에 당대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후대에 '친일청산'이라는 과제를 던져주게 된다. 다만, 같은 '친일' 이지만, 그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토지>에서도  서희에게 '친일'이 길상에 대한 사랑의 포장이자 복수라는 일시적인 감정의 결과였다면, 이상현으로 표현되는 지식인들의 친일 행적(이상현이 친일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은 절망으로부터 온 신념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전자의 친일이 '감정의 친일', 후자의 친일을 '이성의 친일'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허무함'이 자리한다.


  최서희와 이상현. 상현이 결코 원하지 않았던 이들 의남매는 같은 시기 다른 이유로 허무에 빠지게 된다. 서희는 허무한 복수의 결말로, 상현은 너무도 빨리 식은 3.1운동의 열망과 결론으로. 그 결과 서희와 상현으로 표현되는 지식인들 다수는 친일의 길을 걷게 된다. 친일이라는 불행함으로 가는 여러 길에 공통적으로 '허무함'이 있었음을 이번 주 <토지 9>독서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내선일체(內鮮一體)란 중일전쟁기에서 태평양전쟁기에 걸쳐 조선총독부가 황민화정책과 함께 추진한 전시동원정책의 일환이며, 조선 민족 및 조선 민족 문화를 말살하고 일본 민족으로 <황민화=동화>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중일전쟁기 내선일체론은 조선 자치론이라는 적극적 입장에서 조선 문화 보존이라는 소극적 입장까지 다양한 차이를 내포하면서도 공통적으로 조선적인 것의 고수를 내세우는 '협화적 내선일체론'과, 조선 민족의 완전한 해체, 즉 전면적인 일본과의 동화를 통해 '신일본민족'을 형성하고자 하는 '철저일체'론, 이 두 가지 내선일체론 사이의 논쟁을 기초로 논의되었다. _ 식민지/근대 초극 연구회, <식민지 지식인의 근대 초극론>, p157


 ps. 최서희의 친일과 일제 하 지식인들의 친일을 구별하면서,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말을 떠올린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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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K68A1)

 [데모크리토스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것들은 필연(ananke)에 따라 생겨난다. 회오리가 모든것들의 생성의 원인(aitia)이기 때문인데, 그는 그것을 필연(必然)이라고 부른다.(p555)...  심플리키오스(DK68B167) 데모크리토스가 온갖 형태(원자)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왔다(apokrithenai)고 말할 때, 그는 저절로(t'automaton)와 우연(偶然)(tyche)으로부터 그것을 산출해 내는 것 같다. _ 김인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 p559


 우연과 필연은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BC 460 ? ~ 380 ? ) 원자론의 두 주제다. 그리고, <토지>에서도 우연과 필연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토지 2>와 <토지 3>에서는 최치수와 윤씨 부인의 잇달은 죽음이 서희를 낯선 간도로 몰았다면, <토지 8>에서는 '간도댁' 월선의 죽음 이후 서희는 진주로 이주한다. 다만, 앞선 사건이 서희의 간도 이주에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면, 후자는 우연적 사건일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에게 모든 물리적 변화는 '필연'이다. 그렇다면, '우연'은 무엇일까.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에 의하면 '우연'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虛狀)에 불과하다. 인간에 의해 우연으로 간주되는 모든 일 안에는 법칙성이 있다는 마르크스의 해석을 따라간다면, 월선의 죽음 역시 단순히 우연적 사태로만은 볼 수 없지 않을까.


 데모크리토스는 현실에 대한 반성 형식으로 필연성을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가 모든 것을 필연성에 돌렸다고 말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는 원자의 소용돌이(Wirbel)를 데모크리토스적 필연성이라고 적고 있다.(p42)... 인간은 스스로 우연이라는 허상(Scheinbild)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 이것은 그들 자신의 혼돈(Ratlosigkeit)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연(Zufall)은 건강한 사유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_ 칼 마르크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 , p43 


 월선의 죽음은 이 용과 이 홍, 두 부자(父子)와 홍이 어머니 임이네를 갈라놓는 직접인 계기가 된다. 그리고, 월선 아지매의 죽음으로 상실감에 빠져 있던 길상은 구천(김환)과의 만남을 통해 서희와 이별하고 간도에 남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길상의 결정이 결국 <토지> 완결에 이르기까지 차갑게 식어버린 부부 사이가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월선의 죽음은 단순한 한 인물의 퇴장이 아니라, <토지>에서 '간도 시대'의 종결이라 생각된다. (연장성산에서 '평산리 시대'의 종결은 최치수의 죽음이 아닌 윤씨 부인의 죽음이라 여겨진다. 서희는 '최치수의 딸'이기보다는 '윤씨 부인의 손녀'이기에.). 그런 점에서 '월선의 죽음'은 <토지>에 있어 하나의 필연이 아닐까.


 길상은 김환의 외침으로 오히려 자신이 굳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서는 그 자신을. 그것은 생명의 유한(有限)이다. 죄(罪)에 얽매인 것 아닌 삼라만상, 모든 것은 생명이 있고 또 생명이 없는 유한, 역설이라면 기막힌 역설이겠으나. 어느 시기까지 유지될 안정(安定)일지는 모르지만 길상은 서희와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담백한 상태로 자리잡는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이 죽 끓듯 하는 환의 그 반역의 피조차 돌연 잠들어버린 느낌이다. 왜 이리 고요한가. 고요하게 고요하게 네 개의 발은 내디뎌지고 있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8> , p454/510


 "전 여기 있을 테예요! 아버지 오시면 함께 간단 말입니다."

 "아버진 볼일 보시고 뒤따라 오신다 하지 않았느냐?"

 "거짓말인 것 저는 알아요, 아버지만 내버려두고 가는 거 아닙니까!"

 서희의 눈알이 시뻘겋게 충혈된다.

  '오냐! 나 당신 용서하지 않을 테요! 저 어린 것 가슴을 멍들인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테요! 결코, 결코!' _ 박경리, <토지 8> , p492/510


 간도 시대의 종결은 한 인물의 죽음과 함께 한 가족의 헤어짐으로 성징된다. 서희와 길상의 이별이 그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만들었고, 다시 둘로 돌려놓았는가. 그 전에 먼저 <토지인물사전>을 통해 길상과 서희의 삶을 다시 바라본다. 


 

김길상(金吉祥)... 서희의 절대적인 조력자가 된 후, 하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 윤씨부인이 준 정에 대한 보답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에 철저하게 물들어가는 서희에 대한 안타까움과 회의를 가지게 된다... 젋은이로서의 욕정에 시달리면서는 서희에 대한 연민과 애정, 주종관계에 의한 갈등, 봉순에 대한 그리움과 죄의식에 괴로워한다... 마차사고를 계기로 결국 서희의 결혼 제의를 수락하여 환국과 윤국 두 아들을 둔다. 그러나 살을 저미듯 짙은 애정을 가졌던 서희가 길상에게는 쓸쓸한 아내로만 느껴질 정도로 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결국 서희의 귀향에 동행하지 않고 간도에 남아 그곳의 독립운동 조직에 합류하여 신분적 이질감을 극복하려 애쓴다.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명분보다는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선택하려는 그의 의지는 계속적인 갈등으로 남는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p40/214


 최서희(崔西姬)... 조준구에게 복수하고 평사리의 땅을 되찾기 위해, 윤씨부인에게 비밀리에 받은 금괴와 은괴를 자본으로 토지 매입과 장사를 하여 막대한 재산을 모은다. 이 과정에서 매점매석과 친일도 서슴지 않으며, 이상현의 연모를 거절하고 길상과 신분을 넘어선 결혼을 하여 환국과 윤국 두 아들을 얻어 대를 잇는다. 공노인과 임역관의 중개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 진주에 정착하지만 복수의 허무함에 빠진다... 만주에 남은 남편의 길상의 뜻을 받아들여 독립자금을 전달하는 등 은밀하게 항일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이를 엄폐하기 위해 최씨 일문의 기반을 다지며 진주지역의 유지로서 일본인들과는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막대한 재력과 미모, 천성적인 위엄, 능란한 일본어 실력과 독서로 다져진 지식, 더욱이 근화방직의 사장 황태수와 사돈이 됨으로써 이런 관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놓는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p188 /214


 마차 전복 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함께 넘어갈 뻔 했던 이들은 이를 계기로 결혼한다. 다만, 길상이 꾼 귀마동(歸馬洞) 꿈은 이들의 결혼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토지 6> 꿈속의 귀마동) 미루어 생각해 보면, 길상은 어려 고아가 된 서희에 대한 연민을 '마차 사고' 를 통해 죽음(死)과 삶(生)'을 겪으면서, 서희와의 결혼을 운명(運命)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는지. 길상은 '우연'적 상황'을 '인생의 정해진 길/법칙'으로 생각하고 결혼했지만, 자신 안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부로 걸어들어간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본다면, '길상-서희' 결혼을 순간적인 감정이 가져온 우연의 비극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적어도 길상에게 서희라는 인물과의 결혼은 안정된 지위와 부를 가져다 주긴 했지만, 그가 감당하기 무거운 짐이었음을 생각해본다면, 크게 무리는 없으리라 여겨진다. 반면, 서희에게 길상과의 결혼도 같은 의미였을까.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신의 하인과 결혼할 정도로 기존 질서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가문(家)을 위해 나라(國)에 대한 마음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 서희임을 생각해본다면 그의 잘 드러나지 않는 속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해봐야겠다.


 결혼은 여성에게 안정된 지위와 남편의 보호를 보장해 줄 것이다. 최상의 경우라면 재정적인 후원자 겸 다정한 동반자를 얻을 것이다. 한 신심 깊은 목사의 표현에 따르면 아내와 남편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동료"가 될 것이다.(p189)... 이 시기(셰익스피어 시대) 영국인들의 결혼관이 유럽 다른 나라들의 결혼관과 달랐던 점은 최선의 결혼이란 동반자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_ 매릴린 옐롬, <아내의 역사> , p190


 1880년대와 1890년대의 영국에서 여성 문제는 정점에 도달했다. 신문과 잡지의 기사들, 소설과 희곡들, 공적인 연설과 사적인 대화들은 신여성(New Woman)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었다. 신여성의 특징은 높은 교육 수준과 독립성, 가족의 전통적인 가치를 무시하고 남성과 여성이 지켜야 할 관습적인 영역의 경계들을 무너뜨리려는 성향이다. _ 매릴린 옐롬, <아내의 역사> , p403


 여지까지 읽으면서 길상과 서희 모두 전형적인 인물이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문장에 담긴 신(身), 가(家), 국(國)에 대한 길상과 서희의 생각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자신의 길을 결정한 길상이 '신(身)'을 선택했다면, 서희는 '가(家)'를 더 중시한다. 이런 점에서 길상은 개인주의자, 서희는 공동체주의자의 면을 보인다. 반면, 독립운동을 하는 길상과 가문을 위해 친일도 서슴지 않지만, 독립운동도 후원하는 서희를 통해 애국지사와 무정부주의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처럼 그들의 가치관이 극명하게 달랐기에 그들의 삶은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면에서 그들의 별거는 필연적인 결과로 생각된다.


 길상은 담배를 붙여 서희를 바라본다. 강한 눈길이었다. 서희는 이같이 강한 길상의 눈을 본 일이 없다. 아니 강한 사나이의 그러한 눈길을 본 일이 없다.

 '나는 너를 소유했지만 넌 나를 소유하지 못할 게야.'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눈 같기도 했었다. 그 강한 눈을 서희는 강하게 받는다. 미동하지 않고 받는다. 그러자 길상의 눈에는 말할 수 없는 비애의 그림자가 밀려왔고, 희미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비로소 서희는 그 눈에서 자신의 시선을 떨어뜨렸다. 서희는 싸움이라 생각했었지만 그쪽은 그것이 아니었다. _ 박경리, <토지 8> , p475/510


 '월선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가져온 크고 작은 여파는 간도에서 자리잡던 이들의 삶에 크고 작은 풍파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풍파 속에서 <토지>안의 또다른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생각하며 '우연과 필연'으로 한 주간의 <토지>독서를 갈무리한다...


PS. '우연'과 '필연'에 대한 해석은 에피쿠로스 해석은 데모크리토스와 정확하게 대척점에 있다. 즉, 필연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것은 우연적으로 생겨나고, 자의에 의존한다는 에피쿠로스의 주장을 들여다 보면 '적대적 공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길상과 서희는 서로 사랑했기에, 이러한 '애증(愛憎)'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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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30 14: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옮겨주신 토지의 문장, 역시 정말 좋으네요.
전집 읽기 내년엔 시도할까 합니다 ^^
아내의 역사, 는 전부터 담아 두곤 미뤘는데 호랑이님 페이퍼로 다시 보네요. 찜!

겨울호랑이 2021-10-30 14:38   좋아요 3 | URL
대가의 작품이라, 때로는 굵은 붓으로 시대를 담아내는 호방함도, 때로는 가는 붓으로 인물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묘사하는 섬세함도 <토지> 안에 함께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프레이야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
 

 하늘 가득히 뿌려진 별은, 별 하나하나에서 뿜어낸 여광(餘光)들은 서로 녹아 흘러서, 그야말로 은하(銀河)인가, 지상에도 천상에도 견사 같은 엷고 맑은 어둠이 부유(浮遊)하고 있는 아름다운 밤이다. 밤바람이 한랭하여 더욱 맑은 느낌인지, 멀리 있는 성당의 첨탑이 뚜렷하게 솟아올라 있다. _  박경리, <토지 7> , p400/514


 이번 주 토지독서챌린지 미션 :  '2부 3권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 소개'를 포함한 감상평 작성하기. 


 2부 3권에서 극적인 장면은 길상, 서희와 봉선의 반갑고도 어색한 재회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맞닿은 지평선 끝의 성당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별이 뜨기 얼마 전에 울렸을 성당 종(鐘)소리가 사라지면서 이를 대신해서 떴을 별들의 모습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 ~ 1922 )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A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편에서 '성당'의 이미지는 마들렌 과자의 환상 이후 조금씩 다르지만 반복적으로 제시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이 '청각'과 '시각'의 이미지를 잘 살리는 듯하다.


 혼자 남은 내가 앞에 있는 녹색 덩어리에서 성당을 발견하려면, '성당'에 대한 관념을 보다 깊이 파헤쳐 보는 노력을 해야했다. 실제로 라틴어에서 모국어로 번역하거나, 모국어에서 라틴어로 옮겨야 할 때, 평소에 익숙한 형태를 벗어던져야만 문장의 의미를 더 잘 깨닫게 되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여느 때는 종탑만 보아도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어 그다지 생각해볼 필요가 없었던 그 성당이라는 관념에, 여기 담쟁이덩굴의 아치는 고딕식 채색 유리의 아치이며, 저기 나뭇잎들의 돌출부는 기둥의 돋을새김에 해당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환기해야 했다. 그러나 약간의 바람이 불어와 움직이는 성당 정문을 흔들자 빛의 소용돌이와도 같은 것이 일면서 전율하듯 번져 나갔고, 나뭇잎들은 파도처럼 부서졌고, 식물로 뒤덮인 정면은 파르르 떨면서 물결치듯 애무하며 사라지는 기둥을 함께 휩쓸어 갔다. _ 마르셸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p85/419 


 <토지 7>에서 이 아름다운 광경은 임역관과 공노인이 조준구를 만나기 전에 그려진다. 탐욕스러운 조준구에게 금광(金鑛)관련 정보를 흘리면서 접근하는데 성공한 두 사람. 이로써 서희의 조준구에 대한 복수는 은밀하게 성공적으로 시작되었다. 성공을 거둔 두 사람은 돌아오는 길에 같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조준구를 만나기 전 밤하늘은 아름다운 풍경에 불과했다면, 악인(惡人) 조준구를 만나고 다시 올려다 본 하늘은 하나의 깨우침을 주는 천지질서로 두 사람에게 보였을까. 


 밤하늘이 그 수많은 별들 운행같이 삼라만상이 이치에서 벗어나는 거란 없는 게야. 돌아갈 자리에 돌아가고 돌아올 자리에 돌아오고, 우리가 다만 못 믿는 것은 이르고 더디 오는 그 차이 때문이고 마음이 바쁜 때문이지. 뉘우침 말고는 악이란 결코 용서받을 순 없는 게야. _  박경리, <토지 7> , p581/614


 밤하늘을 보며 공감(共感)하는 두 사람. '성당'을 매개로 한 두 사람의 공감을 소재로 한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의 <대성당 Cathedral>을 떠올리게 된다. '대성당'에서도 두 인물이 등장한다. 볼 수 없지만, 느끼려고 했던 맹인과 그에게 '대성당'을 보여주려 했던 장교. 서로 넘어설 수 없는 '시각'과 '청각'의 한계를 인정하고 대신 '촉각'을 통해 교감했던 그들처럼, 임역관과 공노인이 악(惡)인 조준구에게 선(善)을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려 했다면 조준구의 결말은 달라졌을까. 아마도 모를 일이다. 이번 주 읽은 내용 중에는 실존인물 한 명이 지나가듯 나온다. 이인직(李人稙, 1862 ~ 1916)이다. 최초의 신소설을 쓴 작가이자 이완용(李完用, 1858 ~ 1926)의 비서로 활약한 친일행적으로 생을 마감한 그에 대한 내용 일부를 옮겨본다.


 1906년 2월 일진회(一進會) 기관지 <국민신보>의 주필을, 같은 해 6월 손병희, 오세창 등이 일진회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천도교 기관지 <만세보>의 주필을 맡았다. <만세보> 주필로 활동하면서 1906년 7월부터 10월까지 <혈의 누>를, 1906년 10월부터 1907년 5월까지 <귀의 성>을 연재했다. 1907년 7월 <만세보>가 재정적 이유로 폐간되고 친일 이완용 내각의 기관지 <대한신문>으로 바뀐 뒤 대한신문사 사장에 취임했고, 이후 이완용의 후원을 받으면서 그의 비서 역할을 수행했다... 1913년 11월 경학원이 전라북도 강사의 순회강연을 시찰할 때, 금산군에서 조선왕조의 통치를 비판하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강연을 했다. 1914년 총독 데라우치의 조선합병을 칭송하고 일제의 무단통치를 덕치(德治)에 비유하면서 모든 분야가 발전하는 은택을 입었다고 식민통치를 미화했다... <친일인명사전> 中


  <토지 7>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되는 <혈의 누>를 쓴 이인직 이름과 함께 문학과 번역에 관한 대화가 이어지는데, 이러한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각은 근대문학(近代文學)과 근대화(近代化)로 이어진다. 뒤이어 생각은 네이션(nation)=근대국가(state)의 출현을 국민문학과 연결시킨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에 이른다.


 몇몇 식자들이 새로운 문명을 두고 왈가왈부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 일반대중이 짧은 시일에 눈을 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 얘기라구. 우물 안 속에서도 한 권의 소설을 통해서 그 나라의 풍물이며 새로운 사상, 그네들의 생활방도 종교 윤리관을 싹 훑을 수 있다면은 그런 작품의 소개란 상당히 시급한 일일 게고 몇 사람은 선구자가 있어야잖겠어? 물론 지금까지의 얘기는 번역하는 일인데 그런 다음." _ 박경리, <토지 7> , p435/514


 근대의 네이션이 성립하기까지의 '세계제국'에서는 라틴어나 한자나 아라비아문자라는 공통의 문자언어가 사용되었고, 또 각 민족이나 각 공동체의 종교를 넘어선 '세계종교'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입니다. 그런 '제국'이라는 것은 지배관계에 저촉되지만 않는다면, 각 부족의 습관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운데서 근대적 의미의 네이션(민족)이 출현했습니다. 그러나 네이션이 네이션이 되는 데에는 언어의 변혁, 즉 그런 '보편적'인 개념을 토착적이랄까 신체적/감정적 기반에 의거하는 것이 되도록 하는 언어를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언어란 음성언어 또는 속어입니다. _ 가라타니 고진, <문자와 국가> , p138  


  '언문 言文일치' 운동의 본질은 문자개혁이다... '언문일치' 운동은 무엇보다도 '문자'에 관한 새로운 관념에서 비롯되었다. 막부의 통역 마에지마 히소카를 사로잡은 것은 음성 문자가 갖는 경제성, 직접성, 민주성이었다. 그는 서구의 우월성은 음성 문자에 있다고 생각했고, 음성 문자를 일본어에서 실현시키는 일이 긴급한 과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 , p58


 가라타니 고진은 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국가 출현 이전에 민족의식을 보편화할 수 있는 언어의 출현이 필수적이었다고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시대의 일본 지식인에게도 공통된 것이어서 이들은 기존의 '한자가나혼용' 대신 '가나'혼용을 주장하게 된다. 이론적-도덕적인 내용을 담는 '한자'와 , 감정과 기분 등 느낌을 담는 '가나'. 이들이 '언문일치'를 통해 한자 사용을 금하고자 했던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기존의 추상적 표현을 서구문화를 번역한 새로운 용어로 대체함으로써 그들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그들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자에서는 형상이 직접 의미로 존재한다. 그것은 형상으로서의 얼굴이 직접 의미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표음주의에서는, 설사 한자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문자가 음성에 종속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얼굴'은 이미 맨 얼굴이라는 일종의 음성문자가 된다. 그것은 거기에 표현되어야 할 '내적인 음성=의미'를 존재하도록 만든다. '언문일치'로서의 표음주의는 '사실'이나 '내면의 발견과 근원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 , p62


 과거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새롭게 유럽의 제국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일본의 지식인들과 이들을 따라 근대화를 이루려 했던 구한말의 지식인들. 이인직처럼 이들중 다수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 속에서 언어와 문자 그리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글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글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분명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임을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근대문학을 다루는 문학사가들은 '근대적 자아'가 그냥 머릿속에서 성립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자기 self가 자기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추상적 사고 언어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언어 표상의 감각적 잔재가 내적인 것과 연결되며, 그에 따라 내적인 것 그 자체가 점차 지각되게 된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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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말아놓았던 지나간 세월은 풀어지고 연못가 그 자리로 돌아온 서희와 봉순이는 한 사내를 의식 밖으로 몰아내 버린다. 공동의 기억이란 순수한 것이다. 특히 어린 날의 그 공동의 기억 때문에 형제 자매 부모 자식이라는 의식의 유대가 지속되는지도 모를 일이라면, 이들이 비록 혈육이 아니요 신분의 도랑이 깊다 하여도, 서희가 남다른 아집의 여자라 하여도 이들의 해후가 슬프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7> , p153/514


 토지 독서챌린지 13주차. <토지 7>의 처음에서 간도로 떠나올 때 서희네와 헤어지게 된 봉순은 다시 이들과 만나게 된다. 혜관 스님과 함께 나타난 봉순. 오랫만에 만난 이들이지만, 흐른 시간이 적지 않았던 만큼 이들 사이에 놓여진 간격 또한 너무도 멀었다. 예전에 아기씨 서희를 지키기 위해 호위무사로 의기투합한 길상과 봉순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기녀(妓女) 기화(紀花)가 된 봉순. 서희의 남편이 된 길상. 애기씨에서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의 아내가 된 서희. 봉순은 이들과의 만남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봉순이...... 하인하고 혼인을 했다 해서 최서희가 아닌 거는 아니야. 나는 최서희다! 최참판댁 유일무이한 핏줄이야. 이곳 사람들은 호기심에 차서 나를 바라본다. 고향 사람들은 힐난의 표정으로 내 얼굴을 외면한다. 모두들 나를 격하하려 들고 있다. 봉순이 그 아이는 더욱더 그러하겠구나. 최참판네 가문이 시궁창에 던져졌다 생각할 게 아니냐? 시녀였던 그 아이가 사모하던 하인이 지금은 내 남편이야.' _ 박경리, <토지 7> , p173/614


 봉순의 생각을 서희도 모를리가 없기에 서희 역시 봉순을 편하게 대할 수가 없다. 은연중에 가졌을 봉순에 대한 미안함, 과거 자신을 돌봐주었던 사실에 대한 고마움을 애써 뭉개며 자존심을 세우는 서희. 이러한 서희의 모습에서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1775 ~ 1817)의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된다. 


 샬럿이 말했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으니까. 가문이며 재산,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렇게 훌륭한 젊은이가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잖아. 이런 표현을 써도 좋다면, 그분은 오만할 권리가 있어."... "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메리가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뽐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_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 p22/438


 모든 것을 다 갖춘 이가 자신의 자질에 대해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오만. 샬럿의 말에 따르면 여러 면에서 서희는 오만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거기에 더해 메리의 말처럼 오만한 것이 일반적인 성향이라고 한다면, 봉순과 대면하는 서희가 가졌을 오만함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거의 모든 것을 잃고 도망치다시피 간도로 건너온 서희. 이제는 재산을 쌓아 과거 최참판댁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지게 된 그는 누구보다도 오만할만한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그것이 권리가 되어 남들에게 '허영'으로 보여졌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길상은 고독했다. 고독한 결혼이었다. 한 사나이로서의 자유는 날개죽지가 부러졌다. 사랑하면서, 살을 저미듯 짙은 애정이면서, 그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던 애기씨, 최서희가 지금 길상에게는 쓸쓸한 아내다. 피차가 다 쓸쓸하고 공허한가. 역설이며 이율배반이다. 인간이란 습관을 뛰어넘기 어려운 조물인지 모른다. 그 콧대 센 최서희는 어느 부인네 이상으로 공손했고, 지순하기만 하던 길상은 다분히 거칠어졌는데.  _ 박경리, <토지 7> , p171/514


 물론, 부부간의 문제가 어느 한 편의 문제인 경우는 극히 드물기에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문제가 있겠지만, 한때 '아씨- 하인' 관계가 이들 부부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면에서 오만한 서희와 '콧대 센 아기씨'라는 편견을 가진 길상 내외는 다른 면에서 한국판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들이 아닐까 한다. 다만, <오만과 편견>에서는 오만한 피츠윌리엄 다아시와 그에게 편견을 가진 엘리자베스 베넷이 결혼을 하면서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같은 결말로 나아가지만, 후자는 극적인 결혼 이후 점차 식어가는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판이 보다 현실적이라 하겠다. 


 이와 함께 <토지>의 또다른 커플 '윤이병 - 금녀'는 다른 의미에서 이루어지지 못한다. 어린 시절 서로 좋아했고, 그 결과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으나 현실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깨진 사랑의 전형을 이들 사이에서 떠올리게 된다.


 아무튼 금녀는 이제 윤이병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핀 꽃이었다. 손에 닿지 않기 때문에 한층 요염하게 핀 꽃이었고, 욕망으로써도 꺾을 수 없는 꽃을 방편으로 어찌 꺾을 수 있을 것인가.(p202)... 금녀를 좋아한 건 사실이야. 금녀의 집안이 망하지 않았다면 결혼을 했을지 몰라. 처가의 후원을 받아서 일본으로 유학하고, 결국 금녀도 나도 불운했던 거야. 교회당에 나오는 처녀 중에 금녀가 젤 예뻤지. 감히 김두수 같은 놈, 언감생심이지. 찬송가를 부를 때 금녀는 천사 같았어. 그런 금녀가 점박이 병신을 좋아해? 아닐 거야. _ 박경리, <토지 7> , p207/514


 이처럼 이번 주에 읽은 <토지 7>에서는 과거와는 달라진 이들의 사랑 이야기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과 같이 여러 사연을 가진 이들의 사랑이 모두 같은 밝기를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어둡고 힘든 시기에 이들이 겪는 사랑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진다...


 시기와 조롱을 면전에서는 교묘히 감추는 뭇시선 속에 상처받기론 마찬가지다. 그 상처를 서로 감추고 못 본 척한다. 왜 드러내 보이고 만져주고 하질 못하는가. _ 박경리, <토지 7> , p17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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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0-10 03: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젊은 시절 읽었던 토지에서는 길상과 서희의 관계가 식어가는게 이해가 어려웠었는데 지금은 너무 잘 이해돼서 좀 슬퍼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1-10-10 08:14   좋아요 0 | URL
저는 뒤늦게 읽어서 그들의 관계가 잘 이해되었지만, 만약 저도 결혼 전에 읽었다면 안타깝게만 느꼈을 듯 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