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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
르 코르뷔지에 지음, 이관석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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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이 대지 위에 자리 잡았다. 마치 손에 장갑을 끼듯이 꼭 들어맞았다. 호수는 창문에서 사 미터 앞에 있었고, 도로는 문 뒤로 사 미터 떨어져 있었다. 다뤄야 할 면적은 삼백 제곱미터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평선들 중 하나인, 건물 때문에 망쳐서는 안 될, 비길 데 없이 훌륭한 전망을 제공한다.(p13)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은퇴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준비하는 호숫가의 작은 집 이야기. 제한된 예산으로 큰 집을 지을 수는 없지만, 대신 작은 집에 큰 자연을 담는다. 오늘날 규격화된 상자와 같은 곳에서 거주하며 역세권으로부터의 거리가 거주 가치의 척도인 우리들에게, 대가는 건축과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집 안으로 들어선다. 십일 미터 길이의 창 문이 집에 품격을 준다! 이것은 창문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고안된 구조상의 혁신이다. 집의 구성체이자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되는 것이다.(p34)

작은 집에 자연을 담아낸 대가처럼, 외부와 단절 대신 마음의 창인 눈을 통해 이웃과 소통하는 삶을 꿈꾼다는 것은 어쩌면 시대에 뒤쳐진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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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3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르 코르뷔지에가 이런 책도 썼네요.
역시...
근데 그가 말한 창으로 자연을 혹시 보신 적 있으세요?
국내에서도 건축가들이 너도나도 따라하여 이젠 좀 흔한 창인데요. 그 창을 통해 보신 적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0-09-03 21:46   좋아요 1 | URL
^^:) 아쉽게도 그런 창이 있는 집에 가보질 못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할 수 있다면)창을 통해서 자연을 시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도 좋겠지만, 한옥처럼 자연을 온전히 끌어들이거나, 아니면 문 밖으로 자연을 밟고, 숲냄새와 바람의 느낌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집에 살았으면 합니다... 집 안에서 바라본 자연과 문 밖의 자연은 분명 차이가 있더군요...

북다이제스터 2020-09-03 21:51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르 코르뷔지에 창은 성에 차지 않는 창이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요...
왜 다들 그의 창을 대단하다고 칭송하고 따라하는지 이해되지 않아서 그냥 여쭤봤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0-09-03 21:58   좋아요 1 | URL
정확하지는 않지만, 서양문화의 자연에 대한 태도와 동양문화의 자연에 대한 태도 차이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서양문화에서 자연을 대상화하고 이로부터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오감 중에서 시각을 충족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문화에서는 물아일체의 측면에서 촉각, 후각까지 고려하는 사고가 건축 철학에 드러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9-03 22:03   좋아요 1 | URL
곧 집 지으실 때 큰 도움되실 책이었다고 짐작됩니다. ^^
곧 이루어지실 것으로 느껴집니다. ^^

겨울호랑이 2020-09-03 22: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일단은 살 도시 아파트 구하느라 발품을 팔았지만요..ㅋㅋ 꿈을 놓쳐서는 안되겠지요.

초딩 2020-09-04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리고 읽었던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좋은 평을 듣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자연을 ‘바라보는 것‘을 꼬집어 비판 한 것 같습니다. 유교수의 지론처럼 자연과 동화되는 것은 그 속에 - 원래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니 - 있는 것이지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에서도 우리는 이미 ‘본다는 것‘으로 본연의 경험을 차단하고 또 ‘왜곡‘ 해버린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0-09-04 19:37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르 코르뷔지에가 서양에서는 건축대가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서양 전통인 ‘관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들의 자연환경과는 다른 우리 환경에 맞는 건축 철학, 생활 철학이 필요함도 함께 느껴봅니다.^^:)
 
공간을 쉽게 바꾸는 조명 좋은집 시리즈
안자이 테쓰 지음, 박은지 옮김, 고기영 감수 / 마티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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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계획이란 조명 기구를 이용해 빛과 그림자를 조절하여 공간을 더욱 쾌적하고 매력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다(p14)

「공간을 쉽게 바꾸는 조명」에서는 빛의 음영을 조절하여 집안 분위기를 새롭게 연출할 것을 제안한다. 세부적으로 저자는 필요한 밝기, 에너지 절약, 분위기, 유지 및 관리, 고령자 배려, 방범 등의 6가지 기본 포인트를 바탕으로 조명기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조명과 관련한 실무서적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거 생활과 밀접한 소재를 다루기에 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조명 계획에서 빛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를 함께 활용하는 조명계획이 책 전반에서 강조되는데 이는 우리 삶의 기준이 ‘양‘에서 ‘질‘로 옮겨가는 것과 관련있어 보인다.

덕분에 잠시나마 생활의 강조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조명을 매개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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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07-21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첨부해주신 사진으로도 많은 것이 이해되네요

저도 조명 조도에 민감한 편이라서
거실 침실.. 에 매입등을 설치하고 스탠드를 활용하여 생활하고 있는데

조명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의 힘이 의외로 크네요

겨울호랑이 2020-07-21 22:35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저희 집은 사실 기본 조명외에 스탠드만 사용하고 있어 조명의 중요함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나와같다면님께서는 이미 잘 활용하고 계시네요^^:)

2020-07-26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6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하와 현실 임석재 교수의 1990년대 한국현대건축사 3
임석재 지음 / 북하우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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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하원형성은 이 가운데 자연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대지조건 속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건축은 자연 속에서 인간만의 보호공간을 축조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자연과 인간세계 사이의 중간매개가 필요하다. 기하는 이러한 중간매개의 대표적 예이다.(p113)... 이와 동시에 기하는 인간의 사고와 논리에 의해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것이기 때문에 강한 인공성도 함께 갖는다.(p115) <기하와 현실> 中


 기하는 추상적 환원경향을 대표하는 매개방식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기하는 단순성과 본질성을 기본특성으로 갖는데 이런 특성들은 추상의 환원적 경향과 잘 부합된다. 기하 역시 환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갖는다는 의미이다... 사물의 형상에는 기하적 구성이 직접 드러나 있지는 않다. 예술을 사물로부터 이러한 기하적 구성을 찾아낸 뒤 이것을 더욱 환원시켜 가장 기본적 상태로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정의한다.(p163) <기하와 현실> 中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 때문에, 건축에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이 함께 표현된다. 건축의 예술미(美)는 자연의 법칙을 건물에 표현함으로써 표현되는 동시에, 인간의 실용성을 고려해야한다는 점에서 인공(人工)의 작품임을 느낀다. 그렇지만, 기하조작의 최상이 음(陰)과 허(虛)를 잘 활용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실용성 역시 자연법칙의 일부에서 온 것임을 깨닫는다.


 기하는 건축을 담기 위해 각색된다. 건축 가운데 기하적 각색의 목적이 되는 것은 기능이다. 기능은 단순히 실용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행동과 행태에서 파생된 연계성을 가지며 존재를 위한 포괄적 조건으로 정의된다(p97)... 기하조작은 그 과정에서 음 陰적인 여백이 만들어져 고형적 윤곽과 조화를 이룬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다. 이것은 곧 사용과정에서 사용자들이 몸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됨을 의미한다.(p132) <기하와 현실> 中


<기하와 현실>은 원리주의와 파생주의가 여러 기법으로 표현된 한국건축과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독자들을 실용성과 작가의 세계관이 잘 어울어진 건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건물 전체의 구조와 부분이 이루는 주제와 변주가 무엇인가로 안내한다. 



 기하가 분화되고 변신하는 정도에 따라 원리주의와 파생주의를 구별할 수 있다. 원리주의와 파생주의는 큰 차이를 갖는다. 기본목적부터 다르다. 원리주의가 기하원형이 갖는 본질적 가치에 의존한다면 파생주의는 기하가 갖는 변신능력과 이것의 포괄성에 의존한다. 원리주의가 현실 초월성을 기본 입장으로 갖는데 반해 파생주의는 가능한 한 현실과 닮으려는 입장을 갖는다.(p39) <기하와 현실> 中


 중첩, 파편, 반복 등의 조형기법은 이러한 중립성을 얻는 대표적 처리방식이다... 완전히 동일한 요소의 반복은 안정감을 바탕으로 한 규범성을 준다. 주제와 변주 개념으로 서로 일정한 차이를 갖는 동일 요소의 반복은 가변적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p125) <기하와 현실> 中


 [사진] 재건축이 예정된 서울 둔촌주공아파트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집의 시간들'. [사진 KT&G 상상마당] (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23080773)


 만약 우리가 시대를 살아간 건축가의 사상이 담긴 건물과 건물들이 모여 형성된 거리가 하나의 역사(歷史)임을 깨닫는다면, 부동산 재개발을 둘러싼 정치, 경제 이권을 둘러싼 다툼이 얼마나 서글픈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압축근대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80년대 주공아파트 역시 하나의 시대 표상, 상징임을 생각한다면 이를 래미안, 힐스테이트로 바꾸는 공사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발전인 것인가를 생각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압축 근대화라는 한국 현대사의 왜곡된 구조가 낳은 부정적 결과는 여러 분야에 걸쳐 복합적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단순 육면체와 라멘 구조로 단순화시킨 해석은 집중력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부정적 상황에 대한 대안은 단순히 건물형태를 바꾸는 데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건축이 사회에 대해서 갖는 존재론적 의미를 재정립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기하를 형태적 차원에서 해석하는 데에서는 찾아질 수 없다.(p92) <기하와 현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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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3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31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31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하와 건축 임석재 교수의 1990년대 한국현대건축사 2
임석재 지음 / 북하우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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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라는 주제는 추상이라는 주제와 함께 1990년대 한국 현대건축에서 가장 많이 유행한 경향 가운데 하나로 파악된다. 이때의 추상과 기하는 더이상 하나로 합쳐지지 않은 채 단독의 경향으로 추구되었다. 서로에게서 분리된 추상과 기하는 1990년대 한국 현대건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융성을 누렸다. 1990년대 세계 현대건축의 흐름이 다원주의임을 생각해볼 때 이처럼 한두 가지 경향이 비정상적으로 독주하는 현상은 일단은 왜곡된 시대상황이 투영된 결과로서 다름아닌 독재 개발기 때 강요되었던 압축적 근대화의 폐해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p21)

1990년대 한국건축의 주요 경향 중 하나인 기하. 건축가가 도형의 기하와 건축의 기하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할 때 단절과 불일치, 환원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보여준다. 건축을 통해 중용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비로소 건축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하는 건축이 아니다. 기하만으로는 건축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건축은 기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대부분의 건축은 기하, 즉 도형으로 환원되어 구성된다. 혹은 도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은 자기 모순이다... 건축가들이 기하에 매달리는 것은 기하는 건축가의 자의식을 가장 밀접하게 상징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p49)

초월성은 처음부터 비상한 의도를 지향하기 때문에 현실성과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초월성이 본래 의도한 바의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무엇이 남는가. 건축의 횡포만이 남을 뿐이다.(p96)... 도형적 기하와 건축적 기하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해석해내지 못할 경우 건축가의 극단적 자의식만 남게 된다.(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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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9 0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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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9 1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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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향하여 - 에스프리 누보 총서 1
Le Corbusier 지음, 이관석 옮김 / 동녘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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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것은 시다. 감각의 감동이자 측정하고 감상하는 정신의 기쁨이며, 우리 존재의 깊은 곳을 감화시키는 축의 원리에 대한 인식이다. 예술, 그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창조의 최고점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창조하고 있다고 느낄 때 커다란 행복을 느끼게 된다.(p220)

건축은 수정된 법칙에 직면해 있다. 건설은 너무나 큰 기술 혁신을 경험한 터여서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낡은 ‘양식들‘은 더 이상 그것을 포용할 수 없다... ‘양식‘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우리의 시야 바깥에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과거와 직면하게 한다면, 우리는 4000년 동안 전개되어 온 다수의 규칙 및 규정들과 함께 낡은 건축 법규는 더 이상 흥미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모든 가치는 수정되어 왔다.(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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