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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와 현실 ㅣ 임석재 교수의 1990년대 한국현대건축사 3
임석재 지음 / 북하우스 / 2002년 2월
평점 :
기하원형성은 이 가운데 자연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대지조건 속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건축은 자연 속에서 인간만의 보호공간을 축조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자연과 인간세계 사이의 중간매개가 필요하다. 기하는 이러한 중간매개의 대표적 예이다.(p113)... 이와 동시에 기하는 인간의 사고와 논리에 의해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것이기 때문에 강한 인공성도 함께 갖는다.(p115) <기하와 현실> 中
기하는 추상적 환원경향을 대표하는 매개방식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기하는 단순성과 본질성을 기본특성으로 갖는데 이런 특성들은 추상의 환원적 경향과 잘 부합된다. 기하 역시 환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갖는다는 의미이다... 사물의 형상에는 기하적 구성이 직접 드러나 있지는 않다. 예술을 사물로부터 이러한 기하적 구성을 찾아낸 뒤 이것을 더욱 환원시켜 가장 기본적 상태로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정의한다.(p163) <기하와 현실> 中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 때문에, 건축에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이 함께 표현된다. 건축의 예술미(美)는 자연의 법칙을 건물에 표현함으로써 표현되는 동시에, 인간의 실용성을 고려해야한다는 점에서 인공(人工)의 작품임을 느낀다. 그렇지만, 기하조작의 최상이 음(陰)과 허(虛)를 잘 활용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실용성 역시 자연법칙의 일부에서 온 것임을 깨닫는다.
기하는 건축을 담기 위해 각색된다. 건축 가운데 기하적 각색의 목적이 되는 것은 기능이다. 기능은 단순히 실용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행동과 행태에서 파생된 연계성을 가지며 존재를 위한 포괄적 조건으로 정의된다(p97)... 기하조작은 그 과정에서 음 陰적인 여백이 만들어져 고형적 윤곽과 조화를 이룬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다. 이것은 곧 사용과정에서 사용자들이 몸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됨을 의미한다.(p132) <기하와 현실> 中
<기하와 현실>은 원리주의와 파생주의가 여러 기법으로 표현된 한국건축과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독자들을 실용성과 작가의 세계관이 잘 어울어진 건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건물 전체의 구조와 부분이 이루는 주제와 변주가 무엇인가로 안내한다.
기하가 분화되고 변신하는 정도에 따라 원리주의와 파생주의를 구별할 수 있다. 원리주의와 파생주의는 큰 차이를 갖는다. 기본목적부터 다르다. 원리주의가 기하원형이 갖는 본질적 가치에 의존한다면 파생주의는 기하가 갖는 변신능력과 이것의 포괄성에 의존한다. 원리주의가 현실 초월성을 기본 입장으로 갖는데 반해 파생주의는 가능한 한 현실과 닮으려는 입장을 갖는다.(p39) <기하와 현실> 中
중첩, 파편, 반복 등의 조형기법은 이러한 중립성을 얻는 대표적 처리방식이다... 완전히 동일한 요소의 반복은 안정감을 바탕으로 한 규범성을 준다. 주제와 변주 개념으로 서로 일정한 차이를 갖는 동일 요소의 반복은 가변적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p125) <기하와 현실> 中
[사진] 재건축이 예정된 서울 둔촌주공아파트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집의 시간들'. [사진 KT&G 상상마당] (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23080773)
만약 우리가 시대를 살아간 건축가의 사상이 담긴 건물과 건물들이 모여 형성된 거리가 하나의 역사(歷史)임을 깨닫는다면, 부동산 재개발을 둘러싼 정치, 경제 이권을 둘러싼 다툼이 얼마나 서글픈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압축근대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80년대 주공아파트 역시 하나의 시대 표상, 상징임을 생각한다면 이를 래미안, 힐스테이트로 바꾸는 공사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발전인 것인가를 생각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압축 근대화라는 한국 현대사의 왜곡된 구조가 낳은 부정적 결과는 여러 분야에 걸쳐 복합적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단순 육면체와 라멘 구조로 단순화시킨 해석은 집중력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부정적 상황에 대한 대안은 단순히 건물형태를 바꾸는 데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건축이 사회에 대해서 갖는 존재론적 의미를 재정립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기하를 형태적 차원에서 해석하는 데에서는 찾아질 수 없다.(p92) <기하와 현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