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브리아기는 진화의 역사에서 다양한 해양무척추동물이 나타나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다. 그중 일부는 눈과 강력한 턱 덕분에 최초의 적극적인 포식자가 되었다. 또한 삼엽충과 같은 다른 캄브리아기 진화동물군도 번성했다가 오르도비스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p70)... 디토모피게(Ditomopyge)를 포함한 마지막 삼엽충은 오래도록 쇠퇴기를 겪다가 페름기 말에 멸종했다._ 더글라스 파머 외, <선사시대>, p181
오파비니아 시리즈의 4번 째 주제는 삼엽충(三葉蟲, trilobite)이다. 삼엽충들이 살았던 시대는 약 3억 년이지만 이전 시대인 원생대(Proterozoic Eon)와는 달리 생명체들의 변화가 극심했던 시기였다. 삼엽충이 살았던 시대는 동물의 다양성이 극적으로 증가한 '캄브리아기'(Cambrian Period, 약 5억 4,200만 년 전~약 4억 8,830만 년 전), 해양동물군의 속성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오르도비스기'(Ordovician Period, 약 4억 8,830만 년 전~약 4억 4,370만 년 전), 해양무척추 동물이 자리를 잡고 오르도비스기 말의 멸망으로부터 벗어난 '실루리아기'(Silurian period, 약4억 4,370만 년 전~약 4억 1,600만 년 전), '어류의 시대'이자 세계 최초로 숲이 형성된 '데본기'(Devonian Period, 약 3억 9,500만 년 전~약 3억 4,500만 년 전), 거대한 석탄 퇴적지를 만들었던 '석탄기'(carboniferous period, 약 3억 5,920만 년 전~약 2억 9,900만 년 전), 마지막 5억년 동안 최소 90%이상의 생물이 사라진 대멸종의 시대인 '페름기'(Permian period, 약 2억 8,600만 년 전 ~ 약 2억 4,800만 년 전)에 이른다. 고생대의 대부분 기간 동안 삼엽충이 존재했기에, 많은 이들이 고생대를 '삼엽충의 시대'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삼엽충에 관한 사소한 진리들을 확장시키면 세계 전체와 연관지을 수 있다. 삼엽충에 관한 사소한 진리들을 확장시키면 세계 전체와 연관지을 수 있다. 에드워드 윌슨 Edward Wilson은 최근에 문화와 과학의 상호의존성을 주장하면서 지식의 통합사계를 제시했다. 그는 그것을 '통섭(consilience)'이라고 했다. 여기에 상술한 삼엽충 이야기는 더 작은 형태의 통섭을 보여준다. 종목록조차도 지자기, 판구조론과 결합되면 사라진 지구의 초상화를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_리처드 포티, <삼엽충>, p251
고생대의 랜드마크인 이 생물에 대해 <삼엽충 Trilobite!: Eyewitness To Evolution>의 저자 리처드 포티(Richard Fortey)는 화석을 기반으로 삼엽충에 대한 지식을 대중에게 소개한다. 오랜 기간 후손을 이어온 최초의 절지동물은 '눈'을 발달시키면서 캄브리아기에 등장한 후 빠르게 오르도비스기를 자신들의 전성기로 만들었다. 이 시기 다른 환경의 서식지에서 각각 살아왔던 삼엽충의 역사는 '눈(目)'의 역사이며, 이후 생명체 진화(evolution)의 방향을 '시각'으로 결정짓게 되었음을 <삼엽충>은 소개한다..
삼엽충의 눈은 방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점에서 그들은 동물계에서 독특한 존재다.(p115)... 방주석 결정을 살펴보면 삼엽충 시각의 비밀을 알 수 있다. 삼엽충은 맑은 방해석 결정을 눈의 수정체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그들은 특이했다. 다른 절지동물에게서는 대개 몸의 나머지 부위를 구성하는 물질과 비슷한 큐티클로 이루어진 수정체, 곧 '부드러운' 눈이 발달했다. 삼엽충은 이런 한계 안에서 대단히 다양한 눈을 발전시켰다._리처드 포티, <삼엽충>, p116
포식자, 뻘벌레, 여과섭식자는 한 군집을 이루어 함께 생활했다. 이제 물에 잠긴 대륙이라는 중심부에서 그 주변의 심해에 이르기까지, 이런 동물들이 일련의 서로 다른 군집을 이루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수심이 점점 깊어지면서 서식지가 달라지고, 각 서식지를 차지한 삼엽충들은 사냥하고 청소하고 침전물을 파고 뒤졌으며, 개흙이 부드러운 곳에서는 휘저어서 현탄액을 만들었다. 산소농도가 낮은 더 깊은 곳은 트리아르트루스 같은 전문가들이 차지했다. 그들은 풍요와 질식사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서식지에서 다른 삼엽충들보다 유리했다. 해저 바로 위에서는 작은 아그노스티드가 움직이는 렌즈콩처럼 헤엄을 치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 눈은 쓸모가 없어졌다. 그곳은 눈먼 자들의 세상이었다._리처드 포티, <삼엽충>, p249
오르도비스기 절정에 달한 삼엽충의 번성은 오르도비스-실루리아기 사이에 닥친 빙하기로 인해 큰 타격을 입는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빙하기가 삼엽충들을 멸종에 이르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오르도비스기와 같이 생태계의 주도권을 두 번 다시 잡지 못하고 결국 페름기 말 디토모피게(Ditomopyge)를 비롯한 마지막 삼엽충들은 지구에서 사라지게 된다.
오르도스기 말에 생명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인 대멸종이 일어났다. 당시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규모 빙하가 오르도비스기 말의 기온을 급격히 떨어뜨렸고, 아마 그것이 동물군 위기의 주된 원인이었을 것이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빙하기와 관련된 퇴적물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주위에는 삼엽충들도 있다.(p280)...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에 비해 데본기 초와 실루리아기의 삼엽충들은 훨씬 구분하기가 어렵다. 데본기는 파콥스와 그 친척들의 전성기였다. 잠시나마 집합복안이 지배한 시기였다._리처드 포티, <삼엽충>, p281
페름기 말이 되자 20여 속에 불과한 그리 많지 않은 삼엽충들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흔한 화석이 될 정도로 번성한 것들도 종종 있다. 가장 마지막 삼엽충은 페름기 말의 또 한 차례의 대멸종이 일어나기 얼마 전에 사라진 듯하다._리처드 포티, <삼엽충>, p220
<삼엽충>에서는 크게 두 번의 대멸종이 나온다. 오르도비스기의 대멸종과 페름기의 대멸종이 바로 그것이다. 삼엽충의 크기는 불과 3~10cm 정도에 불과하지만 (물론 고생물학자들이 생태계에 일어난 큰 변화를 기준으로 시대 구분을 했겠지만), 이 작은 삼엽충들이 3억년 동안 지구에 살면서 고생대의 6기와 2번의 대멸종의 시기 동안 남긴 자취를 보면서 우리 인류가 남긴 불과 600만년의 발자취는 보잘것 없음을 깨닫게 된다. 작은 <삼엽충>의 몸에 새겨졌을 지구의 역사를 떠올리면서 '(역사의) 기억 앞에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마침 글을 마무리 하는 시간대에 들은 어느 신박한 표현에 대한 오마주를 마지막으로 글을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