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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 - 열린 정치와 소통하는 리더십의 고전 ㅣ 명역고전 시리즈
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16년 5월
평점 :
무릇 수많은 군주를 보건대 하늘의 사명을 받아 기업 基業을 열 때는 심사숙고하며 덕행을 드러내지 않은 이가 없지만, 공을 세운 뒤 그들의 덕행은 점점 쇠퇴해갔습니다. 처음에 훌륭했던 이는 확실히 많지만, 끝까지 훌륭한 행실을 한 이는 아주 적습니다. _오긍, <정관정요> , p30/513
신하는 조정에 나와서는 나라를 위해 성심을 다하려는 생각을 해야 하고, 조정에서 물러나와서는 스스로를 수양함으로써 허물을 고치려고 해야 하오. 군주가 덕치를 하면 그 미덕을 도와서 일을 처리하고, 군주에게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아 구해주어야 하오. 이것이 군주와 신하가 마음을 같이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인 것이오. _오긍, <정관정요> , p33/513
오긍(吳兢, , 670~749)의 <정관정요 貞觀政要>는 정관의 치(貞觀之治, 627~649)를 이룬 당태종(太宗 李世民, 599~649)과 신하들의 문답(問答)을 기록한 책이다. 군주와 신하가 백성을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함을 강조하는 <정관정요>의 내용은 신하는 군주의 허물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하며, 군주는 신하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이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여 권한을 잘 위임해야 한다는 것으로 내용을 요약할 수 있겠다. 그 결과 당은 수(隋)나라가 남김 피폐함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정관의 치세 전반이 태평성대는 아니었다.
폐하께서 항상 겸허함과 공손함을 갖고 나날이 더욱 근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나라는 영원히 공고해져 뒤집히는 위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순 임금 때에 태평스러웠던 까닭은 사실상 이 원칙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_오긍, <정관정요> , p314/513
폐하께서는 정관 초년에는 자신이 누릴 것을 억제하여 백성이 이익을 얻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개인적인 욕망만을 따르며 백성을 수고롭게 합니다. 겸손하고 절약하는 기풍은 해마다 바뀌고 교만과 사치가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p501)... 근년 이래로 백성은 부역으로 지쳐 있고, 관중의 백성은 고통과 피곤함이 특히 심합니다. 각종 수공업 장인은 복역 기간이 찬 이후에도 전부 남아서 관청의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_ 오긍, <정관정요> , p506/513
<정관정요>는 태종 이세민의 위업만을 말하지 않는다. 책에 담긴 정관 말기의 혼란함과 태종의 흐트러진 마음은 제국을 다시 혼란스러워졌고, 결국 며느리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에 의해 주(周)나라가 세워지면서 일시적으로 나라가 멸망에 이르기도 하는 등 그 후유증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무엇이 정관의 치세 말기를 어둡게 하였는가? 그것은 초심을 잃었기 때문으로, 이를 잘 표현하는 것이 대(對)고구려정책이라 여겨진다. 처음에는 수 양제의 일을 교훈삼아 고구려 원정에 비판적이었던 당태종은 이후 무리한 고구려원정에 나서면서 결국 수양제의 전철을 밟게 되고 그의 치세 마지막을 흐릿하게 마무리 짓는다.
수양제도 隨煬帝도 반드시 고구려를 탈취하려는 생각으로 해마다 수많은 백성을 노역에 시달리게 하여 백성의 원망은 극에 달했소. 그래서 결국에는 평범한 한 사람의 손에 죽게 되었소. 힐리가한의 경우는 과거 수년 동안 우리나라를 끊임없이 침범하여 각 부락은 모두 정벌로 지쳤으며, 결국 멸망하게 되었소. 나는 지금 이러한 상황을 보았는데 어찌 군대를 파견하여 정벌할 수 있겠소? _오긍, <정관정요> , p440/513
태종은 고구려로 사람을 보내 다시는 백제와 함께 신라를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경고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이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태종이 직접 고구려 정벌에 나서게 되었다. _오긍, <정관정요> , p437/513
정관 10년에 이루어진 태종과 방현령(房玄齡, 578~648), 위징(魏徵, 580-643)간 이루어진 대화 중 창업(創業)과 수성(守成)의 어려움에 대한 위징의 말은 정관의 치세 전반을 잘 나타내는 듯하다. 당태종도 안시성에서 쓸쓸히 퇴각하면서 위징의 말을 떠올렸을까. 위징의 부재를 아쉬워했다는 태종의 귀환길에서 화려한 꽃과 같았던 정관의 치세보다 한결같은 평범한 치세가 더 나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위징이 대답했다. "창업은 하늘이 주고 백성이 받드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천하를 얻은 뒤에는 마음이 교만하고 음란한 데로 달려가게 됩니다." _ 오긍, <정관정요> , p25/513
현명한 군주가 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충직한 신하가 되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오. 나는 또 용은 어루만져 훈련시킬 순 있지만 용의 목 아래에는 역린 逆鱗이 있다고 들었소. 여러분은 군주가 화를 내는 것을 피하지 말고 각기 상소를 올리도록 하시오. 항상 이와 같이 한다면 내가 어찌 나라의 멸망을 걱정하겠소._ p88/513 - P88
군왕이 된 사람은 훌륭한 덕행을 추구하지만, 이성이 감정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미혹에 빠져 혼란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미혹에 빠진 정도가 아주 심하면 충언은 전부 막히기 때문에 신하들이 영합하게 되고, 군주의 덕행은 점점 손상되는 것입니다._ p218/513 - P218
<노자>에서 말하기를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할 수 없고, 적합함을 알고 멈추면 위험을 만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신은 폐하의 의무와 공덕 또한 만족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토지는 변방 지역까지 광대하게 개척했으니 멈출 수 있습니다. 고구려는 변방 멀리 있는 소수민족으로 인의로써 그들을 대우할 가치가 없으며, 통상적인 도리로써 질책할 수 없습니다.(p449)... 공업이 혁혁할 때 마음이 교만해지고, 시국이 안정되었을 때는 방종하게 게을러집니다. 폐하께서 마음을 억누르고 언제나 신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허물을 줄여 큰 덕을 늘리고, 오늘의 정확한 것으로 과거의 잘못을 대신한다면, 폐하의 광대한 명성은 일월과 함께 영원할 것입니다. _ p449/513
- P449
나는 이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일을 하려고 하오. 이것은 사관이 나의 과실을 기록할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오. 하나는 이전 시대 정치상의 득실을 고찰하여 역사의 거울로 삼는 것이고, 둘째는 어질고 선량한 사람을 기용하여 그들과 함께 나라는 다스리는 방책을 상의하는 것이며, 셋째는 소인을 배척하고 소원시하며 참언을 듣고 믿지 않는 것이오. 나는 이상 세 가지를 견지하며 끝까지 바꾸지 않을 것이오. _ p335/513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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