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지성이 연장의 양태들을 여기 지금 실존하는 대로 사유할 필연성 때문에 자기 자신과 분리되었다면, 그것은 인류가 자기 자신과 더 잘 화해하는 만큼 이런 분리를 더 잘 극복할 것이다. 따라서 3종의 실존은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지속의 구도에서, 3종의 실존은 우리의 개인적 · 인간 상호적 코나투스에 완전한 만족을 안겨 줌으로써 2종의 실존을 완성한다. 일체의 소외와 분열을 극복하며, 가장 완전한 명료함 속에서 자아를 현실화하며, 가장 완전한 교유 속에서 우리를 현실화한다._알렉산드르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p845
알렉상드르 마트롱 (Alexandre Matheron, 1926~2020)는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Individu et communaute chez Spinoza>에서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의 <에티카>와 <신학-정치학>을 하나로 묶는다. 마트롱은 본문에서 '영원한 상 아래에서 sub specie aeternitatis' 개인 영혼은 신체의 한계를 벗어나 온전한 인식을 하게 된다는 스피노자의 주장을 국가(공동체)에도 적용하며, 그 결과, 공동체또한 '영원한 상 아래에서' 보다 완전한 결합을 이루게 된다.
스피노자는 부득불 이 정도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개인의 완벽하고 결정적인 해방과 제한이 없는 공동체. 이 두 극한으로의 이행이야말로 스피노자주의의 가장 심오한 동기들을 소급적으로 밝혀 주지 않는가?_알렉산드르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p845
개인적으로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각기 별개의 것으로 설명되는 <에티카>의 개인윤리와 <신학-정치학>의 정치철학의 접점을 보여주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영혼은 경향적으로 명석한 사유를 향해 가는 와중에 신의 무한한 관념 안에 있는 자기 자리로 복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영혼이 은닉해 둔 참된 관념이 다른 참된 관념들과 내적으로 소통하듯, 영혼은 보편적 경쟁 너머에서, 또한 그것을 거쳐서 다른 영혼들과 소통하려고 한다. 가장 낮은 단계에서조차, 정신적 우주의 삶을 특징짓는 것은 교유에 대한 거대한 열망인 것이다._알렉산드르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p58
인간은 고도로 분화된 유기체지만, 그 행위는 아직 능동적이기보다는 훨씬 더 수동적이다. 또한 영혼은 이미 매우 의식적이지만, 여기서도 명석 판명한 표상들의 작은 섬은 혼동된 관념들의 대양 한가운데 거의 떠오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영혼의 노력은 그것을 고취하는 것이 이성이냐 정념이냐에 따라, 상충하는 두 방향으로 진로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경향 가운데 적어도 처음에는 두번째 경향이 분명히 우세할 것이다._알렉산드르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p114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영혼 안의 존재한 신의 관념 - 본유관념 innate idea -을 통해 정념에 이끌린 삶에서 벗어나 필연적으로 이성에 의한 삶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에티카>에서 논의한 이러한 개체의 내적 상태와는 별도로 개체 외적으로는 이런 선택을 위한 조건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는 자연 상태에서의 불완전한 결합에서 보다 견고한 이성들의 결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성적 삶이 내적 통일이라면, 외적 통일은 공동체에서 이야기 되며, 이로부터 보다 이상적인 국가 체제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진다.
개인에게 '운동'과 '정지'의 적절한 비율이 '정신'과 '신체'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에 있어서 '철학'과 '정치'가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 철학은 개인 윤리의 연장(extension) 상에 놓이고 연결점이 만들어진다. 개인적으로 이 지점에서 적정한 혼합, 중용을 말한다는 이유로 플라톤(Platon, BC428~BC348)의 <필레보스>를 떠올리게 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음으로 넘기자.
국가의 발생이란 더 이상 독립성에서 의존성으로의 이행이 아니라 자연 상태의 동요하는 상호의존에서 견고해진 상호의존으로의 이행이며, 정치사회는 바로 이처럼 견고해진 상호의존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행은 처음부터 추구되어 왔던 것이 아니다... 이행의 연속적 계기들은 다음과 같은 연쇄로 요약된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 상호간의 정념적 삶의 전개 결과 출현하는 협동의 기미-집단적 규율의 기미-국가의 탄생-집단적 규율의 강화-협동의 강화 등등의 무한정한 사이클.._알렉산드르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p466
인간 상호적 차원에서는 이성이 도래하려면 사회 평화의 분위기가 요구된다. 사람들을 화합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모든 것은 선이며, 불화를 끌어들이는 모든 것은 악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이성이 도래하려면 적절한 심리-물리적 균형이 요구된다. 이는 두 가지를 함축한다. 한편으로는,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 곧 인간 신체의 본질을 정의한 운동과 정지의 비율이 보존되어야 한다. 만일 이 비율이 파괴되면, 신체는 죽어 버리기 때문에 주변 환경과도 아무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정신도 지속 안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하며, 시간상에서 지성의 진보는 아예 불가능하다._알렉산드르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p601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를 읽다 보면, 유클리드(Euclid, BC 300 ?)의 <기하학 원론>을 떠올리게 된다. <에티카>의 체계 자체가 기하학 구조를 갖고 있기에 이러한 연상이 무리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중에서도 다음의 공리 1을 통해 신의 무한 지성이 사물에게 '필연성'이라는 직선을 그었음을, 공리2를 통해 <에티카>의 윤리가 <신학-정치론>으로 연장될 수 있음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데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공리(公理, Axiom). 다음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자.
1. 모든 점에서 다른 모든 점으로 직선을 그을 수 있다.
2. 유한한 직선이 있으면, 그것을 얼마든지 길게 늘일 수 있다._유클리드, <기하학 원론>,p5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안의 논의는 스피노자 철학을 바탕으로 하지만, 이의 해석에 있어서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등의 영향이 있기에 스피노자 본인의 생각이라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저자의 말처럼 '스피노자주의'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분량의 압박은 있지만,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PS. 스피노자의 <에티카>, <신학-정치론>과 관련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322)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이 좋은 비교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신의 관념과 가까워지는 스피노자의 이성과 관련해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실천 이성 비판>에서의 자유 의지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스피노자 자신은 자유의지를 부정헸지만...)이들은 다음 페이퍼에서 다루는 것으로 하고. 이만 페이퍼를 줄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