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 이미 71세에 이른 칸트가 영원한 평화의 실현을 바라며 쓴 저작. 칸트에 의하면 국가 간에는 법적 질서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 쉽고, 일어난 경우에는 서로 자기의 정의를 주장하여 언제까지나 전쟁이 계속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 쉽고, 일어난 경우에는 서로 자기의 정의를 주장하여 언제까지나 전쟁이 계속되기 때문에 섬멸전으로 되기 쉽다. 그러므로 우선 전쟁을 방지하고 영원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지반을 구축해야 한다. 칸트는 이를 위한 구체적 조건으로서 제 1장에서 여섯 가지 예비조항을 제시한다... 이어서 칸트는 제2장에서 이와 같이 하여 준비된 지반 위에서 영원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 세 가지 확정 조항을 제시한다... 칸트의 평화론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영원한 평화가 이성에 기초한 "도덕적 목적"이며 그 실현이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에 접근해야만 한다는 것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자각을 접근해야만 한다는 것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자각을 촉구한 데 놓여 있다.(p278) <칸트 사전> 中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그의 저서 <영구 평화론 Zum  ewigen Frieden. Ein philosophischer Entwurf>를 통해서 국가 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조항들을 제시하고 있다. 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위해 6개의 예비 조항과 3개의 확정 조항을 제시하는데, 이들 조항은 도덕과 정치간의 관계에서 기초한다.

 

 도덕은 우리가 그것에 따라야만 하는 무조건적인 명령적 법칙의 총체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의미에서 그 자체로 이미 실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의무의 개념에 권위를 부여하고 난 후, 우리가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는 것은 명백하게 불합리하다.(p63) <영구 평화에 관한 도덕과 정치간의 대립에 관하여> 中


 칸트는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에 기반하여 도덕이 정치보다 우선했을 때 영원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적인 정치가는 생각할 수 있지만, 정치적인 도덕가는 생각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칸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정치적 도덕가는 도덕적 정치가가 당연하게 중단한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며, 이로 인해 원칙을 목적에 종속시키기 때문에 정치를 도덕과 일치시키려는 그 자신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 버리는 데서, 모든 악이 생겨나는 것이다...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게 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고 하는 원리에서 출발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p73) <영구 평화에 관한 도덕과 정치간의 대립에 관하여> 中


 인간의 권리는, 비록 그것이 지배 세력에게 아무리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신성하게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여기에 타협해서 실용적으로 제약된 법이라는 중간 노선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모든 정치는 도덕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정치는 비록 완만하기는 해도 영원히 빛나게 될 단계에 도달할 것을 희망할 수 있다.(p79) <영구 평화에 관한 도덕과 정치간의 대립에 관하여> 中  


 이러한 칸트의 사상은 루소의 사상과 더불어 유럽 정치사에서 이상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이상주의에서는 특히 '여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이상주의자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근거하여 '이익의 조화'라는 명제를 도출하였으며, 이는 경제학에 있어서 '자유무역'과도 통하는 주장이었다.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 ~ 1778)와 칸트 모두 전쟁이란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국민들의 이익은 돌보지 않는 군주들이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공화정(共和政)에서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들은 여론이 제 효과를 발휘하면 그것으로도 전쟁을 막기에 충분하다고 믿었다.(p48) <20년의 위기> 中 


 4년 후 윌슨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이었던 브라이언(William Bryan, 1860 ~ 1925)이 새로운 조약안을 제안했다. 이 조약안은 사람들이 흥분한 상태에서는 이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일단 냉각기를 거치면 이성이 국제여론이란 모습으로 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다.(p56) <20년의 위기> 中


 18, 19세기의 이상주의자들의 가장 큰 장점은 이상과 같은 불만을 동시에 해소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최대 다수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합리적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상충되는 두 입장을 이처럼 종합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에게 최고의 이익과 사회의 최고 이익은 자연 발생적으로 같다는 주장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이익의 조화 (harmony of interest)]라는 명제이다.(p69)...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무의식적으로 전체 사회의 이익을 이루듯이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개별 국가들도 인류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고 믿었다. 세계자유무역론의 근거는 바로 개별 국가의 경제적 이익이 극대화될 때 전체 세계의 경제이익도 극대화된다는 믿음에 있었다.(p72) <20년의 위기> 中 


 20세기 초반 세계 정치외교을 중심에 있었던 이상주의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1929년 세계경제대공황으로부터 고전학파 경제학이 붕괴하고 케인즈 경제학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이익의 조화'에 대한 이상주의 사상 역시 도전을 받게 되었다.


 1930년대의 붕괴는 특정 개인의 작위나 부작위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압도적이고 엄청난 사건이다. 그것의 붕괴는 그것이 기반한 모든 명제의 파산을 의미한다. 19세기 신념의 기반이 의심받고 있다. 사람들이 어리석거나 사악하여 옳은 원칙을 따르지 못하거나 안 한 때문이 아니라 원칙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국제정치에 대해 올바르게 사고한다고 올바르게 행동한다는 보장이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혹은 자국의 이익을 올바르게 추론한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의 낙원을 보장하지 못한다.(p65) <20년의 위기> 中


 경제적으로 자국의 산업이 상대국에 대해 절대 또는 비교우위에 있을 때 이들은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이들은 정치적으로 이상주의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상대국에 비해 절대 또는 비교우위에 놓여 있는 이들은 보호무역주의 또는 산업보호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헤겔로부터 출발하는 현실주의 사상을 주장하였다.


 이성이 신의 소명을 대체함에 따라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은 합리적인 역사과정의 인식에 기반한 철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반복되는 과정을 전제한 헤겔은 역사를 이끌어 가는 힘을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로 추상화하는 정도에 만족했다. 그러나 일단 현실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자리를 잡은 이상 추상적인 시대정신을 모종의 물리적 힘으로 대체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p96) <20년의 위기> 中 


 철두철미한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치학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또 가장 이상한 교훈이다. 철저한 현실주의는 모든 정치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네 가지 요소를 배제한다. : (1) 확고한 목표, (2) 정서적 호소, (3) 도덕적 판단, 그리고 (4) 행동의 기준이 그것이다.(p123) <20년의 위기> 中


 정치, 경제적으로 이처럼 대립되는 듯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는 각각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한계는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고려하기 위해서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극단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인 E.H 카(Edward Hallett Ted Carr,1892 ~ 1982)의 주장이다. 


 우리는 모든 건전한 정치사상은 이상과 현실 모두에 기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상주의가 공허하고 특권층의 기득권을 대변하는, 참을 수 없는 겉치레가 되면 현실주의는 그 가면을 벗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순수한 현실주의는 적나라한 권력투쟁 외에는 대안적인 모습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제사회란 불가능해진다.(p128)... 정치란 결코 서로 만날 수 없는 두 개의 판에 떨어져 존재하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목표와 제도, 즉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정치적 사고에 장애가 되는 것은 없다.(p129) <20년의 위기> 中


 세계질서를 논의하면서 국력의 요소를 무시하는 것이 이상론이라면 도덕의 요소를 무시하는 것은 현실주의의 현실주의답지 않은 비현실적 성격이다... 국제질서도 권력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 국제질서도 상당한 정도의 일반적 동의를 필요로 한다. 도덕과 권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이 정치의 숙명적 이중성이다.(p295)... 국제적 조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궁극적인 길은 경제회복의 길에 있는 것 같다... 미국을 포함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윤의 창출이라는 경제적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용창출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위해 커다란 자본투자가 있었다.(p297) <20년의 위기> 中


 칸트에 따르면, 영원한 국제 평화는 도덕이 정치에 우선한다는 사상적 기반에서 여러 국가들이 조약을 맺어 유지할 수 있다. 반면, E.H.카에 따르면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도덕과 권력을 모두 고려해서 정치를 해야 하며, 국제 정치의 방향은 고용을 통한 사회 전체의 번영을 향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국제관계를 전적으로 지배하는 한 다른 모든 이들을 군사적 필요에 종속시키는 것은 위기를 악화시키고 전쟁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강화시킬 것이다. 반면 일단 권력문제가 해결되면 도덕이 그 역할을 재개하여 상황은 절망적이지만은 않게 될 것이다. 경제적 이익이 사회적 목적에 종속된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경제적으로 좋은 것이 항상 도덕적으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이제 국내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p298) <20년의 위기> 中


 정언명령에 근거한 칸트의 평화사상은 냉정한 국제 정치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말한 E.H.카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칸트의 이상주의가 없었다면, E.H카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균형 주장 역시 없었을 것이다. 칸트 사상의 의의는 세계 평화에 대해 누구도 말하지 않던 시절 처음으로 인류평화를 주장한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E.H.카의 주장은 이러한 평화주의 사상과 경제적 현실을 고려한 구체적인 국제 평화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에서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인가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이 동북아 지역 평화를 넘어 세계 평화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영구 평화론> 과 <20년의 위기>는 우리가 가야할 평화의 방향에 대해 여러 생각할 거리를 주는 고전(古典)들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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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0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8 0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30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성과 감정은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죠. 직관과 합리가 종합적 사고로 작용하듯이. 수많은 사람들의 판단이 작용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뫼비우스의 띠같기도 하고요. 그의 주저 진행을 보면 칸트도 이 딜레마를 모르진 않았다고 봅니다.
근친상간만 해도 진화적 문제(유전적 변형)에서 발생한 터부에서 사회 구조로 섞여 들면서 도덕 관념으로 굳건해져 있죠. 몰랐는데 피터 싱어 <더 나은 세상> 보니 한국에서는 친족이더라도 성인 간 합의에 의한 성 관계는 죄가 아니더라는? 그렇더라도 사회적 혐오를 피할 수 있을까요. 동성동본 결혼도 최근까지 그러했는데. 이런 복잡한 이해 관계에 따른 도덕, 윤리의 혼란을 생각할 때 칸트가 제시한 초국가적 보편 도덕 성립은 이론적으로는 타당한 공리이긴 합니다. 늘 그렇듯이 인간의 문제는 공통의 합의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 삐끗하면 전체주의가 될 수도 있고.
환경 보존, 고기를 먹지 말고 모두가 채식으로 바꾸자 등등의 뛰어난 문제 해결을 제시해도 자국의 이익, 개인의 자유와 권리, 인권 내세우면 또 공염불... 국제합의기구의 이해타산적 모습과 결과를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세상 참 지지고 볶고죠ㅡㅜ

겨울호랑이 2018-05-30 20:37   좋아요 1 | URL
칸트가 <영구 평화론>에서 말한 평화를 이루어 내는 힘의 기원은 <실천이성비판>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천이성비판>에서 인간 진보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합리적 이성을 칸트는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부과한 도덕 법칙의 요구라는 측면에서 칸트는 평화를 바라봤기에,칸트에게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장애는 아니었을까 여겨지네요. 이성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칸트였기에 감정은 고려허지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만,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 조금 더 공부를 해서 정리해봐야겠습니다...^^:)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 중동, 아시아 - 인류의 기원부터 현재까지
장 졸리 지음, 이진홍 외 옮김 / 시대의창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그림] 선사시대의 아프리카(p11)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 중동, 아시아 L'Afrique Atlas Historique et son environnement Europeen et Asiatique >는 다른 아프리카와 관련된 책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선사 시대의 아프리카 역사부터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계보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개체는 말라위와 케냐에서 발견된 호모루돌펜시스로 약 25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더 오래된 인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알려졌다. 약 4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프레안트로푸스 아프리카누스가 있고 350만년 전의 케니안트로푸스 플라티오프스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서 유라시아로 이주했음을 알려준다.(p9)


 대부분의 아프리카 역사서들이 선사시대 아프리카와 식민시대이전의 아프리카를 별도로 구분짓지 않고 한데 모아 서술하는데 반해,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에서는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였음을 시각적으로 보다 잘 보여준다. 책은 마치 중고등학교 사회과 부도를 보는 듯 풍부한 시각적 자료 제공을 통해 이전에 잘 알지 못한 아프리카 부족 역사를 제공하기에 우리는 아프리카 역사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현대 아프리카의 비극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림] 빈 회의(1815~ 1830) 시기의 아프리카(p111)


 독자들은 유럽의 여러 강대국에 의한 아프리카 침략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19세기 초반의 지도 모습에서 자연 환경에 따라 거주지가 바뀌온 여러 부족들의 영역을 확인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지형적 특성은 북부지역의 사하라 사막과 중부의 사바나 초원, 남부의 열대 우림, 동부의 고원지대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자연 환경의 영향으로 아프리카의 여러 부족은 선사 시대 이래 자유롭게 살고 있었지만, 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 분할 시에는 이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림]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1818~ 1939) 시기의 아프리카(p134)


 제국주의 시대 만들어진 현대의 아프리카 국경이 아프리카 부족의 분포와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것임을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는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이로부터 최근까지도 발생하고 있는 부족간 내전이 발생하고 있는 현재 아프리카 문제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시각적 자료를 통한 문제 제기는 이 책이 주는 장점이라 여겨진다.


 반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은 무엇인가.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으로 된 책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철저하게 유럽인의 입장에서 아프리카 문제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러한 점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이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을 제국주의 시대를 총평한 다음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자.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아프리카 식민지는 종주국에 거의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심지어 포르투갈은 더 가난해지기까지 했다. 한 예로 1960년 포르투갈의 1인당 국내총생산 GDP은 앙골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p156)... 식민지 건설의 경제적 수익이 형편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1960년 기준으로, 유럽 열강은 무역량에 견주어 너무 많은 비용을 해외 영토의 인프라 건설에 쏟아 부었다.... 이렇게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 든 투자비와 농업보조금은 식민지가 본국에 가져다준 수익보다 훨씬 높았다. 아프리카 식민지 건설로 인한 적자액이 총 700억 금 본위 프랑(1913)에 달했다. 이는 마셜 플랜으로 프랑스가 받은 원조금의 세 배에 해당한다.(p157)


 저자의 유럽의 아프리카 지배를 요약하면 유럽은 아프리카에서 손해를 입었으며, 식민시대를 통해 아프리카는 무거운 세금에서 해방되었고, 교육, 의료 서비스 등에서 큰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식민시대가 아프리카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암흑 시대는 아니었다...


 1939년 유럽인이 전체 인구의 0.4퍼센트에 불과했던 네덜란드 동인도의 경우, 국민의 세금 부담이 과거 이슬람 술탄 시대보다 낮았다. 영국령 인도의 경우에도 1941년 전체 인구 약 3억 3800만 명 중 유럽인의 수는 13만 5000명으로 0.004퍼센트에 불과했다. 무굴 제국이 주로 사치스러운 궁전을 유지하느라 부과했던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던 인도 납세자들에게, 식민 정부는 중간 과정을 없애는 방법으로 부담을 덜어주었다... 식민지 개발과 근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식민 본국에서 교육을 받고 서구화한 엘리트 계층이 등장한다... 의료 부문은 가장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다. 식민 통치기 말에는 영아 사망률도 크게 준다.(p157)... 끝으로, 유럽 식민지 몇 군데에서 후기에 발생한 분쟁(케냐, 알제리, 앙골라, 모잠비크)을 제외하면, 식민 통치기간은 대체적으로 비교적 평화롭게 번영한 시대였다.(p158)


 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대를 겪은 우리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일제 시대(1910 ~ 1945)의 시대에 철도, 도로, 항만 등의 건설이 이루어졌음을 근거로 일본이 우리 나라를 근대화시켰다는 주장과 책의 본문의 내용은 사실당 동일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일제 시대 이루어진 근대화로 인해 행복했으며 지금 행복한가?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 중동, 아시아>는 위와 같은 의미에서 <유럽인이 바라본 아프리카 역사 - 지도를 중심으로- > 라고 제목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른 책에서 제공하지 않는 선사 시대부터 대항해 시대 이전의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반면, 프랑스인인 저자의 편향된 시각이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이 책은 아프리카 역사 부도로만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아프리카 역사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인의 입장에서 저술된 책을 추가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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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5-27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지도 크기가 넘 작다는 걸 봐도 충분히 이해되는 책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5-27 18:49   좋아요 0 | URL
역시 북다이제스터님의 통찰력은 날카롭기만 합니다! ㅋ 한 방에 정리되네요.

2018-05-27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7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18-06-04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를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현재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내전들이 따지고 보면 19세기 서구제국주의자들이 그어놓은 컴퍼스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호랑이 2018-06-08 15:32   좋아요 1 | URL
NamGiKim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프리카의 문화와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인위적인 분할이 아프리카를 내전으로 몰고 있는 주요 원인이라 생각됩니다. 피식민지인들을 배려하지 않은 제국주의 시대의 상처때문에 지금도 아프리카의 피가 흐르고 있다 여겨집니다...

NamGiKim 2018-06-08 12:07   좋아요 1 | URL
따라서 아프리카 내전의 원흉은 서구 제국주의자들이라 볼 수 있다 봅니다.
 
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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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 ~ 1875)의 <안데르센 동화전집>은 안데르센의 작품 168편을 모아 놓은 전집이다. 본문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어공주>, <못생긴 새끼 오리>,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등 여러 동화가 담겨 있다. 안데르센은 머리말을 통해 자신의 동화 유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비평가들이 동화집에 대한 평가를 꺼려하자, 다시는 동화를 쓰고 싶은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동화와는 거리가 먼 작품에 매달리고 있을 때 "인어공주"의 줄거리가 머릿속을 맴돌아 다시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나는 동화와 이야기를 즐겨 들었다. 어릴 때 들었던 이런 이야기를 옮겨 쓰면서 고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될 때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에 신선함을 가미했다. 이 책에 나온 이야기 중 <부싯깃 통>, <장다리 클라우스와 꺼꾸리 클라우스>, <못된 아이>, <길동무>는 이렇게 쓰여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아나크레온의 시에 <못된 아이> 이야기가 나온다. <꼬마 이다의 꽃>, <엄지 아가씨>, <인어 공주>는 창작한 것이다.(p11) <머리말> 中


 머리말을 통해 <안데르센 전집>에 실린 동화의 성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덴마크 전래 민담을 작가가 적절하게 고친 이야기들이며, 다른 하나는 작가의 창작 작품들이다. 유래가 다른 이들 동화는 각각 어떤 특성이 있는지 이번 리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1. 전래 동화 : <못된 아이> <길동무>에 담긴 권선징악과 해악


 <안데르센 동화전집> 속 중에서 전래 동화로 전해 지는 <못된 아이>와 <길동무> 속의 이야기에는 전형적인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성격과 해학(諧謔, Humour)이 담겨 있다. <못된 아이> 속 큐피드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전래 도깨비의 모습을 연상하거나, <길동무>에서 경상도 아랑전설(阿娘傳說) 속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래 동화 속 이야기들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기초했음을 깨닫게 된다.


  큐피드는 못된 아이다. 절대로 큐피드와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큐피드가 여러분의 늙은 할머니 심장을 쏘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할머니는 아주 오래 전에 화살을 맞아서 이제 아픔을 느끼지 못하지만 결코 잊지 못한다. 짖궂은 큐피드! 이제 여러분도 그를 알게 될 것이다. 큐피드가 얼마나 못됐는지를!(p59) <못된 아이> 中


 "아닐쎄,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네. 난 자네에게 진 빚을 갚았을 뿐이네. 교회에서 나쁜 사람들이 시체를 내던지려 했던 일을 기억하나? 자넨 그 죽은 남자가 무덤 속에서 편히 쉬도록 전 재산을 내놓았네. 내가 바로 그 죽은 남자라네." 말이 끝나자마자 길동무는 사라져 버렸다.(p76) <길동무> 中


2. 창작 동화 : <인어공주> <눈의 여왕> 에 담긴 철학적, 종교적 의미


[사진] 인어공주 공식 포스터(출처 : 위키백과)


 <안데르센 동화전집> 속 창작동화는 전래 동화에 비해 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작가가 애정을 갖고 있는 <인어공주>를 통해 철학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인어공주>는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으며, 동시에 줄거리가 흥미롭기 때문에 아이들도 즐겨 읽을 수 있다.(p11) <머리말> 中 


 호기심 많은 인어공주는 할머니에게 사람에 대해 질문을 하는데,  할머니(안데르센 동화에서 할머니의 이미지는 '자비로운 현자'로 표현된다)는 인간만이 가지는 '불멸의 영혼'을 자신의 손녀에게 말해준다. 


 "그들도 죽는단다. 우리보다 생명이 훨씬 더 짧지. 우리는 삼백 년까지도 살 수 있지. 우리에겐 무덤도 없고 죽으면 물거품으로 변하지만 말야. 우리는 불멸의 영혼이 없기 때문에 다시는 생명을 얻지 못한단다. 우리는 해초와 같아서 일단 꺾이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지. 하지만 인간은 다르단다. 인간은 죽어서 흙이 된 후에도 영원히 사는 영혼을 가지고 있지. 영혼은 맑은 공기를 뚫고 반짝이는 별들 너머로 간단다. 우리가 물 위로 떠올라 인간 세계를 보듯이 인간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찬란한 곳으로 올라가지."(p85) <인어공주> 中


 그리고, 인어공주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자 열망하게 된다. (어린이판) <인어공주>에서는 인어공주가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져, 인간이 되기를 희망했다는 것으로 편집을 하지만, 원본에서 말하는 바는 다르다. '사랑'으로 이야기를 바꾼 것은 '불멸의 영혼'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겠지만, 이로 인해 <인어공주>의 성격은 크게 달라지게 된 부분은 아쉽게 느껴진다. 


 "우리에겐 왜 불멸의 영혼이 없나요?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이 되어 별 너머에 있는 찬란한 세계에 가 볼 수 있다면 제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겠어요." 인어공주가 애처롭게 말했다... "제가 죽으면 물거품이 되어 바다 위를 떠다니겠죠? 파도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름다운 꽃도 붉은 해도 보지 못하겠죠? 어떻게 하면 영혼을 얻을 수 있나요?"(p85) <인어공주> 中


  (전집)<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영혼을 얻을 수 있다는 할머니 말을 듣고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게 된다. 원본에 따르면 인어 공주에게 왕자는 불명의 영혼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지, '목적'이 될 수 없었다.


 '틀림없이 왕자가 탄 배일 거야. 내게 소망과 행복을 가져다줄 왕자 말야. 꼭 왕자를 얻고 말테야. 영혼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p86)  <인어공주> 中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와 거래한 파우스트(Faust)처럼 인어공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마녀에게 목소리를 주고, 사람이 된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에 소통할 수 없었던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결국 물거품이 되버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말을 우리는 비극(悲劇)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제 목소리를 가져가 버리면 제겐 뭐가 남죠?"

 "아름다운 모습이지. 우아한 걸음걸이, 그윽한 두 눈, 이것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어. 아직도 그럴 용기가 있니?"(p88) <인어공주> 中


[그림] 인어공주와 마녀와 거래 (출처 : http://oddidragon.tistory.com/24)


 소통 대신 외적인 아름다움을 선택한 인어공주의 선택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는 불멸의 영혼을 얻기를 희망했고, 비록 사람이 되어 사랑을 얻지는 못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어공주>는 진정한 해복한 결말로 끝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넌 공기의 딸들과 함께 있단다. 인어에겐 영혼이 없지.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영혼을 가질 수 없어. 인어가 영혼을 얻으려면 다른 힘에 의존해야 한단다. 공기의 딸들도 영혼이 없지만 착한 일을 하여 스스로 영혼을 만들 수가 있지. 삼백 년 동안 착하게 살면 불멸의 영혼을 얻어 인간들이 누리를 행복을 누릴 수 있단다. 가련한 인어 공주야, 넌 온 마음을 다해 우리처럼 영혼을 얻으려고 노력했어.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면서 말야.그 고통이 너를 너를 공기의 정령들 세계로 끌어 올린 거야. 이제부터 삼백 년 동안 착하게 살면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 있단다." 인어 공주는 눈을 들어 겸허하게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느꼈다.(p96) <인어공주> 中


  전집에 수록된 작품 중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눈의 여왕> 에서도 철학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이성의 거울'이라 하는 호수에 살고 있는 눈의 여왕은 주인공인 카이에게 '이성'이라는 놀이에서 '영원'이라는 글자를 맞추게 하지만, 글자를 맞추지 못한다.


[그림] 눈의 여왕(출처 : 위키백과)


 여왕은 그 호수를 '이성의 거울'이라고 불렀으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카이는 멍이 든 것처럼 추위로 온몸이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카이는 뭘 만들려는 것처럼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열심히 이리저리 맞추었다. 카이가 하고 있는 놀이는 차가운 이성이었다. 카이의 눈에는 자신이 만든 모양이 매우 훌륭하고 대단한 것으로 보였다. 카이는 얼음 조각들을 짜 맞추어 여러 가지 글자를 만들었지만, 아무리 애써도 만들어지지 않는 글자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원'이라는 글자였다. 눈의 여왕은 카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글자를 맞춘다면 넌 네 자신의 주인이 되지."(p295) <눈의 여왕> 中


 차가운 이성으로 맞추지 못한 '영원'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맞출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눈의 여왕>은 마무리 된다. 작품 속에 담긴 기독교적인 성격은 다른 안데르센의 창작 작품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 등에서도 발견된다.


 카이와 게르다는 의자에 앉아서 서로 손을 꼭 잡았다. 눈의 여왕이 살던 성에서 경험했던 추위와 황량함이 악몽처럼 기억에서 사라졌다. 할머니가 햇볕을 쬐며 앉아서 성경 구절을 큰 소리로 읽었다. "너희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p299)  <눈의 여왕> 中


 왕비의 창백한 두 뺨이 장밋빛으로 물들더니 두 눈이 커다랗고 또렷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는 그 책갈피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피에서 피어난 장미였다. "이제 알겠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를 보는 이는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왕비가 부르짖었다.(p428)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 中


 <안데르센 동화전집>에는 이처럼 다른 유래를 가진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어떤 전래동화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담겨 있는 반면, 창작 동화에는 안데르센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영원', '사랑' 등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서로 다른 유래를 가진 이야기들이 묶여서 어른들에게는 삶의 의미를, 아이들에게는 즐거움과 흥미를 주기에 <안데르센 동화전집>이 모든 세대에 널리 읽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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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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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2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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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5-23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데르센 동화집 읽은지가 오래되어서 다시 읽으면 새로울 것 같아요.
전에 읽었던 것도 잘 기억나지 않는 내용이 많고, 예전에 읽었던 것과 다른 내용도 있는 것 같아서요.
겨울호랑이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5-23 20:11   좋아요 2 | URL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과 어른이 되어서 읽는 동화책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 친구 같던 책을 지금와서 살펴보니, 현인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네요. 서니데이님도 하루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밤 되세요^^:)

북다이제스터 2018-05-23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좀 생각이 다른데요.^^ 아이들을 획일적 일관된 방향으로 길들이는 <안데르센 동화집>이 아이들에게 금서가 될 날을 꿈꿔봅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18-05-23 21:11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전래 동화 등이 어린이들에게 기존 사회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 여겨집니다. 동시에, 세대 간 유대감 형성 또는 문화의 전승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긍정적인 역할이라 여겨집니다.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전래 동화라 생각됩니다. 더 나아가 이와 관련된 문제는 전래 동화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교육‘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하지 않나 판단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5-23 21:17   좋아요 1 | URL
아, 미처 생각해 보지 못 했습니다. 세대 간 유대감 형성과 문화의 계승이 중요한 일인지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생각거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8-05-23 21:32   좋아요 0 | URL
예전보다 동화책도 많이 나오고, 유튜브 등 영상매체도 많아서인지 아이들(연의 포함)이 예전만큼 전래동화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안데르센 동화집>의 위상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다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는 어느 순간에는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도 하게 되네요. 저 역시 북다이제스터님 말씀 덕분에 동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AgalmA 2018-05-23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주인공들은 하지 말라는 걸 해서 일을 키우고 고생을 사서 하죠. 하긴 인간도 이 버릇 못 버려서....
그리하야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 먹지 말라 운운, 십계명을 인간에게 조건으로 내거는 거, (이건 좀 다른 경우지만)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쳐라 등등 그것들은 이야기의 은유 구조지 사실이라고 믿지 않게 된단 말이죠-ㅅ-!

겨울호랑이 2018-05-23 21:51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멀리 갈 것 없이, 왜 저는 부모님께서 공부하란 말을 듣지 않아서 고생을 사서 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건 은유가 아니라 팩트인 듯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5-23 22:07   좋아요 2 | URL
^^:) AgalmA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으니 긍정하게 되네요. 물론, 전부 다는 아닙니다만. ㅋ 저 역시 많이 부족합니다만, <성경>안의 의미를 해석하고 받아들일 때, 당시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신에 대한 여러 입장을 경청하게 되네요.

2018-05-23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23 22:32   좋아요 1 | URL
너무 까불대다 혼날 거 같아서🙏😅🙏

2018-05-24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4 2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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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16: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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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1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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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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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2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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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2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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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2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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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15: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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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 ~ 1856)의 삶을 그린 평전이다.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산숭해심(山崇海深)으로 정리한 추사의 예술과 학문세계가 시기별로 소개되고 있으며, 본문에 많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 볼거리 또한 풍부하다. 책에서 서술된 추사의 삶에서 큰 분기점을 고른다면 1809년 아버지를 따라 자제군관의 지위로 연경(燕京)을 방문하여 여러 학자들과 교류한 일과 1840년 제주도 유배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연경을 방문한 추사는 담계 옹방강(覃溪 翁方綱, 1733 ~ 1818)과 운대 완원(芸臺 阮元, 1764 ~ 1849)과 특히 깊은 친분을 유지하면서, 이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추사는 완원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뜻을 세워 자신의 아호를 완당(阮堂)이라 했고, 연행 후 중년으로 들어서면서 추사보다 완당이라는 호를 더 많이 사용했다.(p71) <추사 김정희> 中


 연경 방문 이후 추사는 청나라 학자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게 되었다. 이는 추사의 학문과 예술세계를 깊게 한 반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추사가 거만하다는 인상을 갖게 하는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제주도 유배 이전 추사의 글씨는 중국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는데, 이러한 그의 서체는 한 세대 이전의 서예가 원교 이광사(員嶠 李匡師, 1705 ~ 1777)와 많이 비교되었다. 저자는 두 사람의 서체를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원교의 <대웅보전>과 추사의 <무량수각> 두 글씨는 두 사람의 세예 세계가 얼마나 달랐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무량수각>은 기름진 획의 예서풍 글씨이고 <대웅보전>은 굳센 획에 리듬이 있는 해서체이다.(p243) <추사 김정희> 中


 추사는 자신과 다른 서체를 가진 원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는데, 제주도 유배 이전 대흥사에 들려 원교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현판을 내리게 할 정도로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청명 임창순(靑溟 任昌淳, 1914 ~ 1999)의 글에서도 원교에 대한 추사의 박한 평가를 확인하게 된다.

 

 김정희는 <서원교필결후 書員嶠筆訣後>에서 "세상 사람은 원교의 글씨 이름에 떨려서 그의 학설을 절대적인 것으로 신봉했다" 하였으며(p226)... <서결 書訣>에 대하여 거의 완전한 곳이 없을 정도로 혹평하였다.(p227) <청명 임창순> <원교 이광사전(員嶠 李匡師展)에 부침>中


 자부심이 강한 김정희에게 제주도 유배는 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지금은 비행기로 편하게 갈 수 있는 제주도는 과거에는 높은 파도와 잦은 풍랑등으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지난 2016년에 제주도에 배를 타고 갈 일이 있었다. 큰 배였음에도 비가 날리는 검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추사가 살았던 과거에는 어떠했을까. 


[사진] 추사는 저 검은 제주도 바다 저편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by 겨울 호랑이)


 제주는 옛 탐라인데 큰 바다가 사이에 끼어 있어 이곳을 건너가려면 보통 열흘에서 한 달 정도가 소요되곤 했다. 그런데 공이 이곳을 건널 적에는 유독 큰 파도 속에서 천둥 벼락까지 만나 죽고 사는 것이 순간에 달린 지경이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고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했고, 뱃사공도 다리가 떨려 감히 전진하지 못했다.(p245) <추사 김정희> 中


 들어가는 것만큼 험난했을 약 10여년의 제주도 유배생활을 통해 추사는 자신만의 필체인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하게 되었다. 걸작 <세한도 歲寒圖> 또한 이 시기에 그려진 것을 생각해본다면, 제주도 유배 시기를 통해 김정희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던 '완당'에서 '추사'라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진] 세한도 (출처 : 위키백과)


 서체의 기본은 해서(楷書)와 행서(行書)인데 (제주도) 유배 이후 추사의 간찰 서체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금석기와 예서의 맛이 들어가면서 필회개에 강약의 리듬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편지의 글씨들은 한마디로 해서, 행서, 예서(隸書)의 필법이 서로 뒤엉켜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아무 잘못이 없고 오히려 필획의 굳센 느낌만 강하게 다가온다.(p344) <추사 김정희> 中


 제주도 유배 이후 추사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예술 세계를 인정하는 넓은 마음도 갖추게 되었다. 제주 유배 이전 비판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글씨도 다시 달 것을 정중하게 요청하는 추사의 모습 속에서 한결 원숙해진 대인(大人)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원교는 원교대로 한 생(生)이 있고, 나름의 성취가 있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내가 원교의 시절에 태어났으면 원교만 한 글씨를 썼을 것인가. 사실 원교가 왕희지를 따른 것 자체야 잘못이 없지 않은가. 세상이 의심하지 않은데 어떻게 원교만이 그것이 왕희지의 진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p356)<추사 김정희> 中


 추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제주도 유배를 통해 플라톤(Platon, BC 427 ? ~ BC 348 ?)이 말한 '동굴(spelaion)의 비유'를 떠올리게 된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평생을 어둠 속에서 묶여 있다가 지내던 이가 동굴 밖의 햇빛을 바라보게 되는 상황을 <국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가령 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풀려나서는, 갑자기 일어서서 목을 돌리고 걸어가 그 불빛 쪽으로 쳐다보도록 강요당할 경우에, 그는 이 모든 걸 하면서 고통스러워할 것이고, 또한 전에는 그 그림자들만 보았을 뿐인 실물들을 눈부심 때문에 볼 수도 없을 걸세.(515c)... 그러나 만약에 누군가가 그를 이곳으로부터 험하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통해 억지로 끌고 간다면, 그래서 그를 햇빛 속으로 끌어내 올 때까지 놓아 주지 않는다면,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또한 자신이 끌리어 온 데에 짜증을 내지 않겠는가?(515e)... 그러기에, 그가 높은 곳의 것들을 보게 되려면, 익숙해짐(synetheia)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네.(제7권 515e) <국가, 정체> 中  


 추사가 기득권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보지 못했을 보다 넓고 큰 경지를 제주도 유배를 통해 끌려 가서 보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그 시기가 10여년이 되었기 때문에 그가 바라본 아름다운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유배 시기는 추사에게 '고통스럽지만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단련(鍛鍊)의 시기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추사 김정희>에서 저자는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 ~ 1799) 일화를 서두에 언급하면서 그의 파란만장했던 생애가 그의 뛰어난 글씨를 연계하는 분위기를 피워낸다. 만약, 추사가 글씨를 쓰지 않고 사상가로 남았다면 그의 인생은 편안했을까?


 김노경이 우리 집 아이의 글씨라고 대답하자, 채제공이 말하기를 "이 아이는 필시 명필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오. 그러나 만약 글씨를 잘 쓰게 되면 반드시 운명이 기구할 것이니 절대로 붓을 잡게 하지 마시오. 그러나 만약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게 하면 크게 귀하게 되리라" 했다고 한다.(p30)... 추사가 글씨를 잘 쓰게 되면 운명이 기구할 것이나 문장으로 나아가면 크게 귀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속뜻은 과연 무엇일까?(p31) <추사 김정희> 中


 글씨를 쓰면 기구한 운명이 될 것이나, 문장에 전념하면 이름을 떨칠 수 있다는 채제공의 예언은 분명 흥미로운 부분이 있지만, 추사의 글씨와 학문을 분리해서 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추사의 글씨가 그의 학문 세계를 담아내기 때문이 아닐까.


 금강산의 만이천봉은 모두가 절경이며 볼 적마다 새로운 것처럼 추사(秋史)의 글씨도 얼핏 보면 비슷한듯하나 모두가 특수한 형태를 지니고 웅장한 만폭, 구룡이나 섬세한 만물상처럼 볼 적마다 보는 사람의 넋을 뺏고 만다. 그러므로 몇 번을 거듭하더라도 또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추사(秋史)는 명필이기에 앞서 대경학자(大經學者)이다. 학자로서의 성과는 오히려 글씨에 묻혀서 바로 아는 사람이 적다. 저술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으나 그는 중국에서 들어온 고증학을 집대성한 학자다. 그러므로 글씨가 학문에 근거를 두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p220) <청명 임창순> <추사 김정희 명작전(秋史 金正喜 名作展)>中


 <추사 김정희> 뒷부분에는 과거 <완당평전>을 저술했던 저자가 이를 절판시킬 수 밖에 없었던 사연과 <추사 김정희>를 쓰게 된 이유 등이 담겨 있다. 그러한 사연 때문일까. 책을 읽으면서 과거 청나라의 영향을 받던 '완당'이 자신만의 세계를 갖춘 '추사'로 거듭나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추사 김정희>속에서 뛰어난 학자이자 예술가의 모습과 함께 시간에 따라 원숙해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기에 추사에 대한 좋은 평전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좋은 책을 선물해주신 이웃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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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2: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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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2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2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22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사가 제주 갔다 오면서 인물 됨됨이로서도 학자로서도 완성되는 부분이 너무 감동스럽더라고요! 사과를 받아줄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없었던 게 슬프던;_;)! 추사 글씨는 볼 때마다 어줍잖게 따라하고 싶어서 근질근질ㅜㅋㅜ)...뭐 나만 그런 건 아니니까ㅎㅎ;;...일단 벼루 열 개를 아작내고 붓 천 개를 몽당붓으로 만들어야 가능하다는데ㅎㄷㄷ

겨울호랑이 2018-05-22 22:46   좋아요 1 | URL
정말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하란 말도 있는 것 같아요. 이젠 AgalmA님의 ‘1일 1글씨‘ 개봉인가요? 기대해 봅니다!^^:) 생각해보니 「세한도」처럼 ‘1일 1그림‘에 추사체로 작품 설명을 ‘시‘로 하시면 3박자를 갖춘 예술 작품이 되겠어요!

AgalmA 2018-05-22 22:57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글을 담은 문인화처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긴 했는데 까마득한 저의 실력에ㅜㅜ....

겨울호랑이 2018-05-22 23:02   좋아요 1 | URL
태어나면서부터 문인이 있나요?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겠지요. AgalmA님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참, 음악까지 넣으면 거의 4D수준의 예술이.... 겨울호랑이님께서 AgalmA님께 부담을 백배로 선믈하셨습니다 ㅋㅋ

AgalmA 2018-05-22 23:14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이 옹방강과 완원의 역할을ㅎㄱㅎ!
얘얘~ 연의 가르치기도 힘든 분이야...ㅎㅎ;

겨울호랑이 2018-05-22 23:17   좋아요 1 | URL
ㅋㅋ 저는 믹스커피를 즐겨마시는초의선사 역을 맡겠습니다.

2018-05-22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2 2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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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司馬遷, BC 145 ? ~ BC 86 ?)의 <사기 史記>는 중국 24史 정사 중 으뜸으로 꼽히는 책이다. 그 중 <본기 本紀>는 중국 고대부터 한 무제(漢 武帝)까지 시기 동안 제왕(帝王)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한 책으로 역자인 김원중 교수는 <사기 본기>의 의의를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한 사마천의 역사관에서 찾는다. 

 

 본기의 서술 체계를 보면, 반드시 제왕의 역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던 사람을 실권자로 보아 선정의 기준을 삼았다고 볼 수 있다... <항우 본기>를 설정하고는 오히려 서초 西楚의 연도를 기록하지 않고 '한나라 원년' 혹은 '한나라 2년'의 형태로 기록하였는데, 이로써 '항우 열전'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며 <항우 본기>라 한 것은 정명 定名의 원칙에 위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역사가 유지기 (劉知幾, AD 661 ~ 721)가 <사통 史通>의 곳곳에서 반고를 기리고 사마천을 깎아내리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 비롯된다.(p30) <사기본기 史記本紀> 역자 해제 中


 반면, <사통>의 저자 유지기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사기> <항우 본기>에 대해 비판한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기 본기>의 역자 는 제왕의 위치보다 권력의 실질에 초점을 맞춰 사마천의 역사관을 옹호하는 반면, <사통>의 저자는 <본기>와 <세가>의 모호한 분류 기준을 비판하고 있다.


 사마천이 <사기>에 천자를 본기로, 제후를 세가로 한 것은 참 합당한 일이다. 다만 본기/세가/표/지/열전과 같이 분류의 범주는 정해졌음에도 그 구분의 실제 내용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후대의 학자들이 그 의미를 상세히 알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p107)... 항우 項羽는 군웅의 한 사람으로 과분한 자리를 차지했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더욱이 군주였던 적도 없으므로, 옛날의 사례로 비춰본다면 제나라 무지 無知나 위나라 주우 州吁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어떻게 그 이름자를 피하고 왕이라 부른단 말인가?(p108) <사통 史通> 내편 中 


 <사통>의 <사기>비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유지기는 <사기>의 사마천 기록에 간략하게 기록되거나, 생략된 내용이 많기 때문에 다른 자료를 참고하지 않는다면, 내용 평가가 어렵다고 비판한다. 


 <사기>에는 이들 역사서에 들어 있는 아름다운 일 가운데 생략되고 누락된 것이 매우 많았다. 만일 옛 기록을 가지고 현재의 기록과 비교하고...... 그러므로 태사공(사마천)도 당연히 같은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사마천의 기록은 매우 부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반고가 사마천에 대해 부지런했다고 칭찬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p806) <사통 史通> 외편 中 


 또한, 유지기는 <사기>의 기록에서 역사의 흐름을 '천명(天命)'에 의존한 서술 또한 비판하고 있다. 역사(歷史)가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을 기록한 자료라면 그 원인과 결과가 인간에게 한정되어야 함에도, '하늘의 뜻'을 여기에 끌어들이는 것은 역사가로서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이 유지기의 입장이다.


 (사마천은) 하늘이 바야흐로 진 秦나라에게 천하를 평정하도록 했으니, 아직 그 사업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도 위나라가 이윤 伊尹같은 인물을 얻은들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성패를 논할 경우에 사람들이 한 일을 중심으로 생각해야지, 굳이 천명에 미루어 말하기 시작하면 그 이치가 어긋나게 되어 있다.(p813) <사통 史通> 외편 中 

 

 역사가인 사마천이 '천명'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사기 본기> 의 시작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기 본기>는 <오제 본기 五帝 本紀>부터 시작된다. 신화(神話)의 시대로부터 역사가 기록된 이유를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일찍이 서쪽으로는 공동 空桐에 이르렀고 북쪽으로는 탁록을 지나왔으며, 동쪽으로는 바닷가까지 가고 남쪽으로는 바닷가까지 가고 남쪽으로는 강수와 회수 淮水를 건넌 적이 있는데, 때때로 장로 長老들이 황제, 요, 순을 칭송하는 곳에 가 보면 풍속과 교화가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달라, 이것들을 총괄해 보면 옛 글의 내용에 어긋남이 없고 사실에 가깝다.(p70) <사기본기 史記本紀> 中


 사마천은 위와 같이 사료(史料)를 확보하기 위해 곳곳을 직접 방문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신화 역시 인간의 이야기라는 사실과 역사의 흐름에는 개별적인 인과 관계 뿐 아니라 보편적인 흐름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천명'이라 부른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본다. 이와 같은 점을 살펴봤을 때 <사기 본기> 역사 서술의 특징은 '실질' 권력 위주의 역사 서술과 신화의 시대를 역사의 시대로 기술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독창적인 사마천의 <사기>의 내용은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이 기록물 자체는 한 인간이 궁형(宮刑)의 치욕을 딛고 기록을 남기고자 노력한 결과물로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준다고 생각된다.


PS. <사기 본기> 중 <오제 본기>는 중국 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화는 과연 얼마만큼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 <중국신화전설> 속 고대 동방의 어느 나라와 관련된 기록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사진] 무궁화(출처 : 위키백과)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은 장수국 중의 하나인데 이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가 수명이  매우 길었다. 그들은 가축과 들짐승을 잡아 먹었으며 그 나라에서 많이 생산되는 무궁화(木槿花)를 쪄서 일상 식품으로 먹기도 했다 무궁화는 관목(灌木)에 속하는 나무에 피는 꽃인데 붉은색과 보라색, 그리고 흰색의 여러 가지가 있었다.(p391)... 수명이 짧은 꽃(무궁화)을 먹는 그들이 장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장수는 어쩌면 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군자로서의 품덕이나 자애로운 마음씨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인자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오래 살았다고 하니까... 군자국 사람들은 옷과 모자를 모두 격식에 맞추어 차려입었고 허리에는 보검을 찼으며 모든 사람들이 각자 호랑이 두 마리를 하인으로 부렸다.(p392) <중국신화전설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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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5-17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 두 마리가 하인이고, 무궁화를 일상적으로 먹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요.
요즘 차로 마시는 히비스커스가 무궁화속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맛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편안한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5-17 22:25   좋아요 1 | URL
^^:) 무궁화 차가 있군요. 아마 호랑이를 하인으로 둔 조상님들 입맛이 요즘 우리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 군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봅니다. 서니데이 군자님 편한 밤 되세요!^^:)

2018-05-18 08: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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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7 2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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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09: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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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1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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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5-22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은 어떤 하인 역할을....(노...농담요;)
지금은 환생해서 연의 하인 아빠 역.

겨울호랑이 2018-05-22 22:51   좋아요 1 | URL
ㅋㅋ 세상의 모든 아빠가 딸아이의 하인이겠지요. 아내의 머슴이기도 하구요..ㅋㅋ 물론, 누군가는 마님의 마당쇠일 것 같다는 19금 상상도 해봅니다 ㅋㅋ